최근 수정 시각 : 2019-10-21 22:43:46

냉전

냉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6px"
제1세계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 파일:그리스 국기.png 그리스 ·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png 남아프리카 공화국 · 파일:네덜란드 국기.png 네덜란드 · 파일:노르웨이 국기.png 노르웨이 · 파일:뉴질랜드 국기.png 뉴질랜드 ·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 파일:1280px-Flag_of_Laos_(1952-1975).svg.png 라오스 왕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_of_Rhodesia.svg.png 로디지아 · 파일:룩셈부르크 국기.png 룩셈부르크 · 파일:말라위 국기.png 말라위 · 파일:멕시코 국기.png 멕시코 ·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png 남베트남 · 파일:벨기에 국기.png 벨기에 · 파일:볼리비아 국기.png 볼리비아 · 파일:브라질 국기.png 브라질 · 파일:독일 국기.png 서독/ 독일 · 파일:스페인 국기.png 스페인 · 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png 아랍 에미리트 · 파일:아르헨티나 국기.png 아르헨티나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0px-Flag_of_Ethiopia_%281897-1936%3B_1941-1974%29.svg.png 에티오피아 제국 · 파일:영국 국기.png 영국 · 파일:우루과이 국기.png 우루과이 · 파일:이라크 왕국 국기.png 이라크 왕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50px-State_Flag_of_Iran_%281964-1980%29.svg.png 이란 제국 · 파일:이스라엘 국기.png 이스라엘 ·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이탈리아 · 파일:인도네시아 국기.png 인도네시아 · 파일:일본 국기.png 일본 · 파일:Flag_of_Zaire.svg.png 자이르 · 파일:대만 국기.png 중화민국 · 파일:칠레 국기.png 칠레 · 파일:Cuba_firstrepublic.svg.png 쿠바(~1959)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_of_the_Khmer_Republic.svg.png 크메르 공화국 · 파일:캐나다 국기.png 캐나다 · 파일:태국 국기.png 태국 · 파일:터키 국기.png 터키 · 파일:파라과이 국기.png 파라과이 ·파일:파키스탄 국기.png 파키스탄 · 파일:페루 국기.png 페루 · 파일:포르투갈 국기.png 포르투갈 · 파일:프랑스 국기.png 프랑스 · 파일:필리핀 국기.png 필리핀 · 파일:호주 국기.png 호주
제2세계
파일:소련 국기.png 소련 · 파일:external/www.worldstatesmen.org/ye-south.gif 남예멘 · 파일:니카라과 국기.png 니카라과 · 파일:독일민주공화국 국기.png 동독 · 파일:라오스 국기.png 라오스 · 파일: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국기.png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 파일:리비아 1977-2011.png 리비아 · 파일:모잠비크 국기.png 모잠비크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Flag_of_the_People%27s_Republic_of_Mongolia_%281940-1992%29.svg.png 몽골 인민 공화국 · 파일:베냉 국기.png 베냉 · 파일:베트남 국기.png 북베트남/ 베트남 · 파일:북한 국기.png 북한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Flag_of_Bulgaria_%281971-1990%29.svg.png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 파일:소말리아 국기.png 소말리아 · 파일:시리아 국기.png 시리아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_of_Afghanistan_%281987%E2%80%931992%29.svg.png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 파일:알바니아 인민 공화국 국기.png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 · 파일:앙골라 국기.png 앙골라 · 파일:125px-Flag_of_Ethiopia_(1987-1991)1.svg.png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 · 파일:320px-Flag_of_Iraq_(1963-1991);_Flag_of_Syria_(1963-1972)_svg.png 이라크 · 파일:이집트 국기.png 이집트 · 파일:중국 국기.png 중화인민공화국 · 파일:체코슬로바키아 국기.png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Flag_of_Democratic_Kampuchea.svg.png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 · 파일:쿠바 국기.png 쿠바(1959~) · 파일:팔레스타인 국기.png 팔레스타인 · 파일:폴란드 국기.png 폴란드 인민 공화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Flag_of_Hungary_%281957-1989%3B_unofficial%29.png 헝가리 인민 공화국
}}}}}}||


파일:Cold_War_Map_1959.png

공산권의 팽창이 절정에 다다랐던 1960년 즈음의 세계, 진한 푸른색은 북대서양 조약기구, 푸른색은 제1세계 미국의 동맹국들, 진한 붉은색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붉은색은 제2세계 소련의 동맹국들, 회색은 비동맹중립 노선의 중립국, 녹색은 식민지 상태의 현 국가들이다. 지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이 아니라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이 제1세계에 더 가까웠고 녹색 국가들은 대부분 제1세계 소속으로 분리될 때도 많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40px-Cold_War_Map_1980.svg.png

냉전 후반기인 1980년의 세계, 진한 푸른색은 북대서양 조약기구, 푸른색은 제1세계 국가들, 진한 붉은색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붉은색은 제2세계 국가들, 노란색은 중국과 친중 국가, 연한 붉은색은 친소 성향의 중립국, 연한 푸른색은 친서방 성향의 중립국, 회색은 비동맹중립 노선의 중립국이다. X표시는 그 나라 내부에서 활동하는 반군 세력이다. 붉은색 X는 공산주의 반군, 푸른색 X는 친서방 반군, 녹색 X는 민족주의 반군이다. 지도와는 다르게 스위스/오스트리아/스웨덴/핀란드/유고슬라비아는 친서방 성향의 중립국이라고 보기 어려웠고 알바니아 역시 친 공산권이 아니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EasternBloc_BorderChange38-48.svg.png

소련의 세력 확장
In Europe and America, there's a growing feeling of hysteria
Conditioned to respond to all the threats
유럽과 미국에서 모든 위협에 응하게 하는 광란의 감정들이 자라고 있네.
In the rhetorical speeches of the Soviets
Mr. Khrushchev said we will bury you
소비에트의 수사적인 연설에서 흐루쇼프 씨는 우리가 너희를 묻어버리겠다고 말했지.
I don't subscribe to this point of view
난 이런 관점에 찬성하진 않겠어.
It would be such an ignorant thing to do
그것은 실행하기엔 무지한 일이 돼버릴 테니.
If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만약 러시아인들도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말이야.

How can I save my little boy from Oppenheimer's deadly toy
내가 어떻게 하면 내 작은 소년 오펜하이머 끔찍한 장난감[1]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There is no monopoly in common sense
상식적으로 거기엔 어떤 독점도 없어.
On either side of the political fence
정치적인 담장의 다른 저 편에서
We share the same biology
우리는 같은 생활을 공유하지.
Regardless of ideology
이데올로기(이념)에 상관없이 말이야.
Believe me when I say to you
내가 네게 말할 땐 내 말을 믿어줘.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나는 러시아인들 역시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길 바라.

There is no historical precedent
To put the words in the mouth of the President
대통령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거기엔 역사적인 전례가 없어.
There's no such thing as a winnable war
거기엔 이길 수 있는 전쟁같은 건 없다고.
It's a lie that we don't believe anymore
우리가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야.
Mr. Reagan says we will protect you
레이건은 '우리가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하지만,
I don't subscribe to this point of view
난 이런 관점에 찬성하지 않아.
Believe me when I say to you
내가 네게 말할 땐 내 말을 믿어줘.
I hope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나는 러시아인들 역시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길 바라.

We share the same biology
우리는 같은 생활을 공유하지.
Regardless of ideology
이데올로기(이념)에 상관없이 말이야.
What might save us, me, and you
우리를, 나를, 그리고 너를 구원하는 것은,
Is that the Russians love their children too
아마 러시아인들도 역시 그들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일 거야.

- 영국 가수 스팅의 'Russians'[2]

1. 설명2. 구도3. 결말4.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vs WP(바르샤바 조약기구)5. 역사6. 관련 창작물7. 관련 문서

1. 설명

冷戰, Cold War / Холодная война(차가운 전쟁)


Hot War(열전)의 반대말. 적성국 관계인 두 나라[3]가 실제로는 일대일 전면전을 하지 않지만 첩보전이나 군비경쟁, 대리전 등의 방법으로 대치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냉전 시기에 서로가 병기로 맞대는 것에 비쳐 철의 장막이 드리워졌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사실 냉전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서로 대치한 상황' 정도로 끝내기에는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으니 아래를 좀 더 참고하자.

미국과 소련은 2차대전 때까지 동맹이었고, 연합국의 투탑이었으나 소련이 나치 독일을 굴복시키며 동유럽 국가들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고, 영미권을 제외한 유럽이나 당시 그들의 식민지배를 받던 주변부 국가들에서 공산주의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2차대전 후에는 세계 절반이 빨간 깃발이 휘날리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거기에다 그 수장인 소련은 강력한 국력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과 소련의 대결 구도가 성립되었고, 실제로 공산주의 열풍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유럽이야 공산주의의 본거지였고 반쪽은 냉전 내내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했고(물론 대륙만) 나머지 반쪽은 반강제적으로 공산화되었다. 동아시아 역시 이미 20세기부터 공산당들이 나타난 상태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립 중이었으며, 일본은 군국주의 하에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부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나타나고,[4] 조선은 말할 것도 없이 민족주의 우익과 함께 독립운동가의 쌍벽을 이룬 세력이 공산주의 좌익들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91년 12월의 소련 붕괴까지 계속됐던 미국 소련 간의 총성없는 전쟁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흔히 1945~1991년의 시기 자체를 냉전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냉전 또한 이 시기동안 일어났던 한 가지 프레임으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 냉전이라는 프레임이 지극히 미국 중심이라고 생각해서 생긴 듯하다. 다른 프레임들로는 식민지해방, 신식민주의, 근대화, 인권/민주화 등이 있다.

이 기간 동안 우주 경쟁, 군비경쟁이 절정에 달했으며, 긍정적인 면으로는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에 엄청난 디딤돌이 되었으나[5] 다른 면으로는 대량살상무기가 유례없이 불어나고 파괴력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시작 지점과 끝 지점에는 다소 견해차가 있다. 미국의 소련 주재 외교관 조지 케넌(George F. Kennan)이 "긴 전문(The Long Telegram[6])"을 본국에 송신한 1946년을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1950년 한국전쟁을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공개된 대량의 기밀 문서들이 증거가 되어 오늘날에는 전통주의적, 수정주의적, 후기 수정주의적 입장을 막론하고 대부분 마셜 플랜을 냉전의 계기로 본다. 본래 전통주의적 견해에서는 트루먼 독트린을 냉전의 시발점으로 보아왔으나, 스탈린이 트루먼 독트린을 비난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서방에 대해 유화적이었고, 한 발 물러서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사실이 기밀 해제된 소련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는 "냉전"이 1945~1991의 시대를 칭하는 단어였지만, 요즘 사학계에서 이를 부정하고 '시대를 바꾼 여러 큰 파도들 중의 하나'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냉전 자체가 1945~1991의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벤트 중 하나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냉전은 기술의 급진적 진보, 비식민지화, 신식민주의, 인권 운동, 민주화 등과 같이 그 시대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시대의 모습, 현재를 결정한 여러 큰 파도들 중 하나였다는 주장이다.

2. 구도

파일:attachment/berlin_cold_war.jpg

1961년, 베를린 위기 때 체크 포인트 찰리에서 대치 중인 미군과 소련군의 전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ld_war_europe_military_alliances_map_en.png

1949년 ~ 1982년, 냉전시기 유럽에서 NATO WTO의 군사적 세력 지도

냉전 동안 사람들은 핵전쟁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으며, 소련과 미국은 서로에게 수없이 많은 ICBM을 겨냥해놓고 있었다. 군비경쟁은 레이건 시절 때 절정에 달해, 소련은 그 당시 45,000발 정도의 핵무기를, 미국도 25,000발 정도를 갖고 있었다. MAD전략에 기초해 '공포에 의한 평화'라는 모토 아래 아슬아슬하게 핵전쟁을 피했다. 더불어 잠수함전도 치열했다. 냉전 당시 소련과 미국은 북극해에 항상 전략핵잠수함을 순찰시키고 있었고, 가끔 소련 잠수함과 미국 잠수함이 교전 직전까지 간 경우도 더러 있었다.

유럽에서는 WTO와 NATO가 각각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을 대표해 대치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서독에는 미국의 핵 발사기지가 있었다. 현재 미사일방어체계( MD)의 전신인 SDI가 발표된 것도 이때.

그러나 냉전 시대 전체에 걸쳐서 모든 점에서 경쟁만 한 것은 아니다. 미국과 소련에도 국력의 한계는 있었고 함께 멸망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흐루쇼프 시대부터 경쟁은 하면서도 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브레즈네프의 시대에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체결하는 등 서로 군비경쟁을 제한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다 소련 지도자가 고르바초프가 된 이후 소련이 개혁·개방 정책을 폄에 따라 상황은 눈에 띄게 바뀌기 시작했고, 전략무기도 '제한'을 넘어서 '감축'에 이르기 시작했다. START I, II조약이 체결되어 핵무기 감축이 시작됐으며, 1989년 동유럽 위성국가 붕괴와 1991년 소련 붕괴로써 냉전이 막을 내렸다.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12개 공화국 중 조지아를 제외한 11개국은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했다. 이미 1991년 9월 6일에 독립을 승인받은 발트 3국과 조지아는 독립국가연합에 참여를 거부했다. 이후에 조지아는 러시아의 압력으로 1993년 12월에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지만, 2008년에 터진 남오세티야 전쟁이 끝난 후 독립국가연합 회원국에서 제명되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서독- 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서 철의 장막 너머의 위협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서독은 2차대전의 흑역사 때문에 정치활동을 주도적으로 펼치지는 못했으며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산권과의 최전선을 담당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의 동맹이긴 했지만 잃어버린 패권을 되찾으려고 중간마다 시도한 정황들이 있었다. 또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함께 공산당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국가이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국내의 정치문제와 지리적 위치 덕에 경제발전에 주력투자했으며 그 결과, 일본에 이어서 냉전기간동안 가장 크게 발전한 국가가 되었다. 북유럽 국가들(NATO나 중립국)은 안정된 정치와 발전된 경제로 이 시기를 비로적 평화롭게 보냈다. 반면 남유럽 국가들은 군사독재에 시달리다가 70년대 말을 기점으로 대부분 민주화 되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서유럽과 반대로 공산권 영향에 놓여 소련의 동맹이 되었다. 대부분 국가가 독재이긴 했으나 국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동독, 체코슬로바키아가 철통같은 공산독재를 유지했다면 폴란드나 헝가리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발칸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1인독재 국가들이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철저하게 소련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으나 여기도 서방과도 동방과도 친하게 지내느냐, 정반대로 둘 모두와 사이가 좋지 않느냐, 모스크바의 동맹이긴 하지만 좀 떨어져 있는가 아니면 거의 자치령 수준으로 친한가의 차이를 보인적은 있다.

'냉전'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은 미국과 소련, 양국이 확실한 적성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서로 간에 직접적인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가리켜 차가운 전쟁이라고 부르게 된 것에 뿌리를 둔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직접적 교전은 없었으나 각자가 지원하는 세력들에 의해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등 세계 각지에서 대리전이 벌어졌다. 이 냉전기의 긴 평화(The Long Peace)[7]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양극체제의 안정성'에 근거를 두고 설명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ld_war_europe_economic_alliances_map_en.png

1950년대 ~ 1980년대 냉전 말기까지 유럽 연합(유럽동맹, EC, EFTA)의 경제적 세력 확장

3. 결말

파일:COLD_WAR_END.jpg
1990년, 맥도날드 모스크바에 들어서다.[8]

1989년 동구 공산권 붕괴의 주인공은 바웬사 하벨이 아닌 미하일 고르바초프다. 고르바초프는 막장으로 치닫는 소련 경제를 개선하고자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를 추진, 돈만 처먹는 군비 경쟁을 줄이고 미국의 지원을 얻고자 평화 외교ㆍ군축 협상을 실시해 서구권에서 엄청난 외교적 인기를 구가하며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한 것이 동구 공산권 붕괴로 이어졌다. 고르바초프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버려도 동유럽이 친소파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현실은...
한편 냉전 말엽, 소련의 경제가 막장으로 치달으면서 소련이 히틀러 제3제국처럼 살아남으려 마지막 발악을 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다행히 소련은 미국과 NATO를 향해 발악하지 않고 스스로 붕괴되었으며[9] 세계멸망의 위기는 조금 사라졌다.

세계를 양분했던 두 거대 세력의 대결치고는 마무리가 허전한 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소련이 사라지면서 냉전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이후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종주국이었던 소련 쪽은 물론이고 다른 공산권 국가들 사이에서도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국 베트남 같이 공산국가이긴 했지만 소련의 영향 아래 있지는 않았던 공산국가들도 차차 덩샤오핑 흑묘백묘론이나 베트남의 도이모이 운동과 같은 개방 정책으로 선회하였으며 동유럽의 수많은 공산국가들도 소련의 영향력을 벗어나 하나의 유럽 체제로 뭉쳐 나갔다. 물론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처럼 사회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막장으로 개조시킨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문을 닫아건 나라도 있다(...)

결국 냉전은 소련, 즉 러시아의 패배로 끝나 버렸기 때문에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이기지 못한 러시아의 추위를 미국은 이겼다는 우스갯소리가 존재한다. 러시아의 겨울(폴란드볼)

다만 러시아인들 앞에서 "냉전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내지는 "러시아가 패배했다"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해질 수도 있다. 러시아인들은 냉전의 끝이 '자신들의 패배'가 아니라 '소련이 무너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냉전 말기에 냉전을 이기기 위해 큰 공작을 한 것도 아니고 냉전 승리를 주워먹은 것이 맞다. 소련에 강경하던 레이건 정권도 고르바초프 집권 직후 대소 강경 정책에서 유화 정책으로 돌아섰다.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강경하던 레이건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자 소련을 비난하여 자극하지 않고 유화 정책을 펼쳤다. 비록 레이건이 상호확증파괴 개념을 극단적으로 싫어해 SDI에 집착해서 SDI 포기를 요구하는 고르바초프와 정상회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은 SDI 기술을 소련과 공유하겠다며 미국과 소련이 SDI를 공유하면 핵무기가 무력화되어 결국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게 될 거라는 이상론을 주장했다(...). 사실 집권 2기 레이건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야 된다고 수시로 주장했고 화성인이 침공하면 미국과 소련이 힘을 합쳐야 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10]

비록 SDI 문제로 갈등이 있었지만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INF 협정을 체결했고 레이건은 소련을 방문해서 더 이상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베를린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는 명연설을 하기는 했지만 립서비스였고 레이건은 집권 2기에 냉전 승리를 위해 특별히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다.

이후 부시 집권기에도 미국은 소련에 유화 정책을 펼쳤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위성국들이 민주화되자 미국은 환영했지만 동유럽 공산 정권 붕괴를 위해 큰 공작을 하지는 않았고 소련의 브레즈네프 독트린 폐기로 위성국들의 공산 정권이 무너졌다. 미국은 동유럽 민주화와 독일 통일에 만족하고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소련이 소수민족들의 독립운동으로 흔들렸지만 미국은 독립운동 지원은 커녕 소련 붕괴 직전까지도 소련의 내전을 우려하며 오히려 독립 요구를 말리려 했다. 사실 8월 쿠데타 전에는 공산당의 권력이 살아 있었고 소련이 평화적으로 붕괴될 거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1991년 8월 쿠데타 직전에는 고르바초프의 요청으로 부시는 우크라이나에서 독립 반대 연설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쓴 이 연설에서 부시는 미국은 독립운동을 지원하지 않을 거라며 독립운동을 자기파괴적인 민족주의라고 발언해 미국 보수파들에게 비판받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아버지 부시는 당시 독립운동을 노골적으로 미국이 지원해서 독립운동이 과격해졌다면 전쟁이 날 수 있었다고 해명하였다.

4.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vs WP(바르샤바 조약기구)

미군 vs 소련군, NATO, 바르샤바 조약기구 문서 참고.

5. 역사

1940년대 철의 장막
트루먼 독트린
마셜 플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베를린 봉쇄
그리스 내전
1950년대 한국전쟁
대량보복전략
1956년 폴란드 반소항쟁
1956년 헝가리 시민혁명
쿠바 혁명
진먼 포격전
1960년대 베트남 전쟁
피그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프라하의 봄
우주 경쟁
1970년대 닉슨 독트린
데탕트
미중 관계정상화
브레즈네프 독트린
핵확산금지조약
제4차 중동전쟁
베트남 통일
이란 혁명
중월전쟁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신냉전
"스타워즈" 계획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소련)
개혁/개방(중국)
천안문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
1989년 동유럽 혁명[11]
1990년대 동서독 통일
소련 해체
유고슬라비아 내전
8월 쿠데타

6. 관련 창작물

첩보전의 시대이기 때문에 스파이가 나오는 작품이라면 대부분 이 시대가 배경이거나 이 시대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둘이 정말로 전쟁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추측하는 대체역사물도 많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가 정말 대체현실로 끝난 것에 감사하자.

RTS 첩보물의 단골 소재로 나온다. 대한민국 또한 냉전시대 때의 최전선이었던 만큼 가끔 등장한다.

7. 관련 문서



[1] 작은 소년을 뜻하는 little boy와 실제 핵무기인 리틀 보이를 활용한 말장난. 히로시마에 떨어진 그거 맞다. [2] 이 곡은 1985년 발표 당시 한국에서는 금지곡이었다. 당시 적성국가였던 소련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 및 레이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참고로 이 곡에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교향조곡 "키제 중위"의 멜로디 일부가 삽입되었다. [3] 당연히 실제 역사에서 미국 소련이었고 다양한 대체역사물에서 미국과 소련이 아닌 다른 주체들이 냉전을 벌이는 경우가 등장한다. 자주 등장하는 형태는 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바뀌어서 미국 vs 독일( 당신들의 조국), 독일 vs 일본( 높은 성의 사나이) 등의 상황이 일어났다. [4] 일본은 본토 모두가 미국의 지배에 놓여 공산당이 득세하지 못했지만, 냉전기간 내내 그 억눌린 댓가로 폭력적인 전공투, 적군파 등의 극좌 세력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5] 특히 항공우주공학 방면에서는 매우 비대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보잉 747, 콩코드, SR-71, 우주왕복선, 미르, 아폴로 11호, 이 모두가 냉전의 산물이다. 그 외에 에너지공학 분야의 원자력 발전소와 전자공학 분야의 개인용 컴퓨터 역시 냉전기에 발명, 상용화된 냉전의 결과물들이다. [6] 이후 케넌이 이 전문을 기반으로 작성한 논문을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발표하며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 논문은 X라는 가명으로 발표되어 'X 논문(X-article)'로 불린다. [7]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냉전기에는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없었다. [8] 냉전의 종결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으로서 당시 서방 국가들 뿐 아니라 러시아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쇼크로 다가왔던 사건이다. 평양 시내에 롯데리아가 들어섰다고 생각해 보자. 그만큼이나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 소련(러시아) 최초 맥도날드에서 자본주의의 맛을 맛보기 위해 수많은 소련 국민들이 밤낮을 줄을 서 가며 햄버거를 주문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프랜차이즈가 공산주의의 심장에 들어섰다는 것은 공산주의가 이념적으로 완전히 패배하였음을 의미했으며 개방과 개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많은 공산국가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9] 정확히는 소비에트 건국의 주요자들이 퇴직하며 등장한 기술관료들(테크노크라트)이 특권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생긴 공산귀족, 노멘클라투라들에 의해 강제로 소비에트를 해체하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러시아를 건국함으로써 냉전 또한 막을 내렸다. [10] 그래서 극단적인 강경파도 아니었던 닉슨도 집권 2기의 레이건이 지나치게 소련에 유화적이라고 레이건을 비판하기도 했다. [11]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을 시작으로 하여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공산독재를 무너뜨렸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