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5 22:11:49

나치 독일

독일의 역사 Die Geschichte Deutschl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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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국
Deutsches Reich[1]

대독일국
Großdeutsches Reich[2]
파일:나치 독일 국기.png 파일:나치 독일 국장.png
국기[3] 국장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92px-German_Reich_1942.svg.png
1933 ~ 1945
표어 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
(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총통)
국가 독일의 노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위치 중부유럽
수도 베를린
인구 67,300,000명(1936년)[4]
정치체제 일당제 전체주의 독재
국가원수 대통령 (1933~1934)
총통 (퓌러)[5] (1934~1945)
대통령 (1945)
민족 독일인
언어 독일어
종교 개신교, 가톨릭
통화 라이히스마르크(RM)
성립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
멸망 이후
연합군의 군정

[템플릿사진출처]

1. 개요2. 상징
2.1. 국호2.2. 국기 및 하켄크로이츠2.3. 국가
3. 행정구역
3.1. 1937년까지의 행정 구역3.2. 안슐루스 이후 추가된 구역3.3. 뮌헨 협정 이후 추가된 지역3.4.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가된 지역3.5. 그 외의 지역
4. 역사
4.1. 히틀러의 집권과 일인독재 수립4.2. 사회 분위기
4.2.1. 전통적 인식: 전체주의론4.2.2. 새로운 해석 : 일상사(Alltagsgeschichte) 연구
4.3. 전쟁의 길
4.3.1. 전성기4.3.2. 몰락
4.4. 멸망
5. 역사적 손실
5.1. 독일인이 입은 손실5.2. 학문과 문화의 손실
6. 대외 인식7. 정치
7.1. 지도자 원리(Führerprinzip)7.2. 일당 독재
8. 대외 관계9. 대중매체
9.1. 창작 매체9.2. 나치 전문(?) 배우
10. 관련 인물11. 용어 및 사건

1. 개요

파일:Bundesarchiv_Bild_183-1987-0703-507,_Berlin,_Reichstagssitzung,_Rede_Adolf_Hitler.jpg

Großdeutsches Reich.[7]1933년부터[8] 1945년까지 유럽에 존재했던 독일의 국가 체제이다. 외견적으로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연장선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는 갖다버린 독재 국가였다.

1933년 수권법을 통과시켜 독재의 기반을 만들고 1934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아돌프 히틀러가 총통에 취임하면서 완전한 독재를 성립하게 된다. 1936년 라인란트 재무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나치 독일은 독일어권 지역을 독일의 영토로 포함시키려는 목적으로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을 시작으로 뮌헨 협정으로 수데텐란트를 획득하고 체코슬로바키아를 해체시켰다.

또한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이후 노르웨이 침공 프랑스 침공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처음으로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한다. 그 후 북아프리카[9] 발칸 반도를 침공하다가 1941년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해 독소전쟁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갔지만 소련의 반격 및 소련의 매우 추운 겨울날씨 탓에 모스크바를 점령하는데 실패한데다 동맹국인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시전하였고 이에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미국까지 적국이 되자 전세가 불리하게 되었다. 1942년 1943년에 걸처 동부전선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로 결국 수세에 들어섰고 북아프리카 전역 횃불 작전으로 완전히 패배했으며 시칠리아에 상륙을 허용했고 이탈리아가 연합국으로 전환하여 이탈리아 전선이 생기고 만다. 1944년 서부전선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완전히 양면전쟁을 맞이하게 되고 동부전선은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중부집단군이 궤멸되고 동유럽 대부분에서 후퇴하게 되었다. 1945년 베를린 전투로 연합군에게 패전하고 베를린이 함락되며 완전히 소멸했다. 패전의 결과로 독일 본토 전체와 오스트리아 또한 점령을 겪었다.(아돌프 히틀러는 집권할 때 제3제국이 천년 동안 지속하리라고 호기롭게 떠벌렸으나 12년 만에 패망했다.)

( 나치의 남미 도주 문서를 보면) 남아메리카를 비롯해서 연합국의 식민지였거나 적대적이었던 국가들은 적의 적은 아군 논리로 나치 독일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들은 미국에 대항할 국가로써 추축국에 우호적이었던 것 뿐이다. 독일군이 소련에 진군했을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의 압제와 피우스트스키 치하의 폴란드의 침공을 받았던 과거가 있던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등을 비롯한 동유럽 소수민족들은 독일군이 해방자라고 환영했으나 독일군, 소련군이 전쟁을 벌이면서 학살 또한 일어났고 결국 사람들은 등을 돌리게 되었다.

2. 상징

2.1. 국호

공식 국명은 1943년까지 Deutsches Reich(도이체스 라이히, 독일국)이었고 1943년부터는 Großdeutsches Reich(그로스도이체스 라이히, 대독일국)를 썼다. 단,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 독일이라는 명칭도 쓰길 바랐다고 한다. 나치라는 표현이 민족사회주의를 줄여서 멸칭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공식명칭으로 부르는 경우는 네오 나치 같은 나치 추종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고 그냥 "나치 독일"(Nazi Deutschland) 또는 " 나치 정권"(Nazi Regime)으로 통칭된다. 북한에서는 파쑈도이췰란드라고 한다.(대한민국 표준어로 풀이하면 ' 파시스트 독일'이라는 뜻)

" 라이히(Reich)"는 흔히 제국이라 번역하지만, 독일어 단어 Reich는 한국어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뜻의 제국이 아니다. 차라리 "나라", "영토"의 뜻에 가깝다.[10] 심지어 현제 오스트리아의 원어 명칭도 'Österreich'이다. 그래서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도 독일 제국 시대의 "도이체스 라이히"라는 국호를 그냥 뒀다.

제3제국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제3'이란 의미는 신성로마제국 독일 제국에 이은 3번째 단일국가( 라이히)라는 의미다. 이 명칭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1933년 수권법을 만든 뒤 1934년 힌덴부르크 대통령 사망 이후 총통으로서 권력을 장악하고 1939년까지 스스로를 일컬을 때 쓰던 명칭이다.

흔히 히틀러나 나치당이 " 제3제국"이라는 명칭을 썼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연합군의 선동 등을 방지하기 위해 1939년부터 독일 안에서 금지한 명칭이었다. # 하지만 나치도 초기에는 엄연히 쓰던 명칭이고, 역시 연합군도 같은 뜻에서 나치 독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써서 현재 역사서나 전기(戰記), 다큐멘터리 등에서 공식 명칭이 아님에도 널리 쓴다.

제3제국은 영어권에서도 'The Third Reich'라고 하며, Reich라는 독일어를 번역 없이 그냥 쓰고 있다. 나치 집권 과정을 직접 겪고 쓴 미국 저널리스트의 윌리엄 샤이러의 명서 '제3제국의 흥망'도 원제는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이다. 그런 뜻에서 국어의 "제3제국"이란 표현 역시 "제3라이히"라는 표현이 지지를 받지 않는 한 타당할 수는 있다. 이건 같은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모두에서 오역이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예라 할 수 있다.

2006년 국내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독일 점령하의 노르웨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다룬 다큐를 방영했다. 그런데 나레이터가 '히틀러의 Third Reich가 어쩌구...' 하고 말하는 걸 '히틀러의 써드 라이는'이라고 개판으로 자막 처리해 많은 이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차라리 "제3라이히"로 되었으면 맞는 표현이 될 수 있다. 다만 NGC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NGC 작품을 번역하는 아이앤키 미디어의 과실로 보인다.

동서독 통일 뒤 민족주의적인 일부 독일인들은 이것을 "제4제국의 시작"이라 불렀고, 궁극적으로 독일 민족에 속하는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여기에 참여시켜 독일인의 진정한 제4제국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정세를 볼 때 주변 어떤 나라도 이런 "제4제국"을 용인 못할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1955년 재출범 당시 조건이 독일하고 절대로 통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독일은 통일 독일이나 현대 독일로 불리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에 따르면 나치라는 단어 자체가 현재 독일에서는 욕으로 통한다고 했다.

2.2. 국기 및 하켄크로이츠

파일:독일 제국 국기.png
국기 1933 ~ 1935

파일:나치 독일 국기.png
국기 1933 ~ 194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0px-War_Ensign_of_Germany_1938-1945.svg.png
군기 1935~1945[1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Reichsadler_der_Deutsches_Reich_%281933%E2%80%931945%29.svg.png

당시 독일에선 이 상징을 아리아 인종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기원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툴레 협회의 상징을 사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독일연방공화국 형법 86조와 86a조에 의거, 이거 들고 다니다간 경찰이 바로 체포한다. 독일에서 나치 깃발은 물론이거니와 나치를 연상시키는 사물을 소지하는 것은 학술연구나 당시를 반영하는 영화 촬영 등의 특수한 상황을 빼면 불법이다. 미니어처조차도 빨간 바탕에 하얀 동그라미로 대체할 정도이다. 음??? 이런 까닭에 네오 나치조차 저 깃발을 사용하지 못한다. 다른 서구권에서도 불법으로 지정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혐오 문장 취급한다. 서구의 불교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불교 상징물로 만(卍)자 대신 오해를 살 여지가 없는 법륜을 쓴다.

나치가 대두되기 이전인 193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역)만자는 세계적으로도 거부감 없이 쓰여지던 심볼이었으며, 심지어 전간기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에서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져 신년 연하장에 자주 쓰이던 문자였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사용함으로써 나치의 상징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악마 효과( 후광 효과의 반의어)인 셈.

2.3. 국가


3절까지 있는 것. 참고로 1절과 4절은 내용이 같다.

국가는 독일의 노래였으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도 국가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다.(위 동영상은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는 법으로 청취를 금지하고 있다.

3. 행정구역

본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까지 독일은 주(Land / Staat)와 같은 행정 명칭을 사용했지만, 나치가 집권한 이후 가우(Gau)라는 명칭을 도입[12]하여 행정 구역을 재편성했다. 이러한 행정 구역 재편성에는 크게 2가지 목적이 존재했다. 하나는 신성 로마 제국 시기에 사용됐던 행정 명칭을 재도입하여 과거의 향수를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자극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무부 관할의 행정구역과 나치당 휘하의 당 관구를 일치시켜 당의 업무를 좀 더 손쉽게 진행하기 위함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rmany1941.png
나치 독일이 여러 차례에 걸쳐 침략 전쟁을 통해 팽창해갔으므로, 가우도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갔다. 위의 지도에서 보라색 영역은 폴란드 총독부(General Government)를 제외한 1937년까지 독일의 영토였으며, 녹색 영역은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폴란드를 합병한 이후에 새로 추가된 구역이다. 이외에도 프랑스 침공 이후 획득한 알자스-로렌 영역 및 기존 가우에서 새로운 가우를 신설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2차 대전이 격화되면서 실현되지 못한 경우도 존재한다.

3.1. 1937년까지의 행정 구역

명칭 주도 비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
Schleswig-Holstein
베저-엠스
Weser-Ems
올덴부르크
오스트하노버
Osthannover[13]
뤼네부르크
함부르크
Hamburg
함부르크
메클렌부르크
Mecklenburg
슈베린
포메른
Pommern
슈테틴
동프로이센
Ostpreußen
쾨니히스베르크
에센
Essen
에센
베스트팔렌-노르트
Westfalen-Nord[14]
뮌스터
쥐트하노버- 브라운슈바이크
Südhannover[15]-Braunschweig
하노버
마그데부르크-안할트
Magdeburg-Anhalt
마그데부르크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Mark Brandenburg
베를린[16]
베를린
Berlin
베를린
뒤셀도르프
Düsseldorf
뒤셀도르프
베스트팔렌-쥐트
Westfalen-Süd[17]
보훔
쿠어 헤센
Kurhessen
카셀
튀링겐
Türingen
바이마르
할레-마그데부르크
Halle-Magdeburg
할레
쾰른- 아헨
Köln-Aachen
쾰른
모젤란트
Moseland
코블렌츠 원래 명칭은 코블렌츠- 트리어(Koblenz-Trier). 1940년 룩셈부르크 합병 이후 명칭이 변경되었음
헤센-나사우
Hessen-Nassau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마인 프랑켄
Mainfranken
뷔르츠부르크
작센
Sachsen
드레스덴
니더 슐레지엔
Niederschlesien[18]
브레슬라우
오버슐레지엔
Oberschlesien[19]
카토비체
베스트마르크
Westmark[20]
자르브뤼켄 라인란트-팔츠에다 자르(Saar), 로렌(Lorraine) 지역을 합쳐서 편성
바덴
Baden
카를스루에 알자스 지역과 합쳐 나중에 오버라인[21]으로 재편성. 주도도 스트라스부르로 변경.
뷔르템베르크- 호엔촐레른
Württemberg-Hohenzollern
슈투트가르트
프랑켄
Franken
뉘른베르크
슈바벤
Schwaben
아우크스부르크
바이에른-오스트마르크
Bayern-Ostmark[22]
바이로이트
뮌헨-오버바이에른
München-Oberbayern[23]
뮌헨

3.2. 안슐루스 이후 추가된 구역

명칭 주도 비고
케른텐
Kärnten
클라겐부르크 1941년 이후로는 슬로베니아 속령으로 편성.
니더 도나우
Niederdonau[24]
크렘스 1939년 이후로는 모라비아 속령으로 편성.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
슈타이어마르크
Steiermark
그라츠 1941년 이후로는 슬로베니아 속령으로 편성.
티롤-포어아를베르크
Tirol-Vorarlberg
인스부르크
오버도나우
Oberdonau[25]
린츠[26] 1939년 이후 보헤미아 속령으로 편성.

3.3. 뮌헨 협정 이후 추가된 지역

명칭 주도 비고
수데텐란트
Sudetenland
라이헨베르크 뮌헨 협정에 따라 편성됨.

뮌헨 협정을 파기하고 독일에 의해 점령된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영토는 가우가 아니라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과 괴뢰국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 된다.

3.4.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가된 지역

명칭 주도 편성연도 비고
단치히-베스트프로이센
Danzig-Westpreußen
단치히 1939년 베르사유 조약 이전 독일의 영토.
바르테란트(편성 당시에는 포젠)
Wartheland
포젠 1939년 베르사유 조약 이전 독일의 영토.
플란데른
Flandern
안트베르펀 1944년 벨기에 영토 중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플란데런 일대를 묶어서 편성.
발로니엔
Wallonien
나뮈르 1944년 벨기에 영토 중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왈롱 일대를 묶어서 편성

3.5. 그 외의 지역

이 외에도 레벤스라움의 확보를 위해서 덴마크, 네덜란드, 세르비아, 폴란드 곳곳에 가우를 신설할 계획이었으나 2차 대전으로 인해 무산됐다. 해외 영토로는 남극 노이슈바벤란트가 있었으나, 실제로 영유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4. 역사

4.1. 히틀러의 집권과 일인독재 수립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민주주의를 최대한 보장하려고 노력한 긍정적인 체제였으나, 군국주의에 길들여졌던 상당한 독일인들은 이렇게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제도를 약해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바이마르 정부와 집권 사회민주당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애썼지만, 그때마다 대공황의 여파와 베르사유 조약의 독소 조항을 들먹이며 정부를 흔드는 좌우파의 극단세력에게 시달렸다.

베르사유 조약의 경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미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의 입장에서도 그것은 너무 과하다고 여겨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많은 금액을 탕감해주거나 해서 그렇게까지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초인플레이션이 독일 국민에게 많은 고통을 안기긴 했으나, 그 고통에 가린 중요한 이점이 하나 있었으니, 이런 초인플레 때문에 1차대전 당시의 빚을 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가 정부가 망해버려 대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되어 부채에 허덕이던 많은 독일 기업들은 부채를 사실상 탕감받으면서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초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미국의 차관이 들어오자 독일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1920년대 후반이 되면 이미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공업 규모를 다시 보유했다. 문제라면 당대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적 발전은 미국의 도움이 강했는데, 세계 대공황이 미국에서 터지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를 뒷받침해주던 미국의 달러가 대거 이탈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워졌다. 사실 이것은 (소련 등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였는데, 상당한 독일 국민들은 이런 위기는 극우 극좌에 의해 모두 바이마르 공화국 탓으로 돌렸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강력한 정치세력을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 때까지만 해도 맥주홀에서 폭동을 일으켰다가 지대로 데이는 바람에 숨죽이고 지내던 나치당과, 그 나치당을 이끌던 아돌프 히틀러가 대두되기 시작한다.

히틀러와 나치당은 대공황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독일 국민들을 선전과 선동을 바탕으로 자신들을 지지하게 만들고, 자신을 대놓고 까는 사람들은 온갖 정치적 공작과 폭력으로 매장하거나 암살해버렸다. 그 후 1932년 대선에서 다 늙어가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대통령이 되자 히틀러는 힌덴부르크를 포섭하여 1933년 힌덴부르크가 의회를 해산하게 만들고, 프란츠 폰 파펜과 연정을 통해 수상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나서 히틀러가 제정한 법은 바로 수권법(授權法).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멸망했다. 이후 나치당 외 정당을 해산하고 정당 신설을 금지하여 나치당은 국가 유일의 독재정당이 된다.

1933년 3월 총선의 결과로 나치당이 득표율 44%, 의석수 45%를 차지해서 1당이 되었고 히틀러가 수상자리에 올랐다. 즉 그때까지만 해도 과반수의 국민들은 나치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반년후인 11월 총선때는 나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금지돼서 의석수 100%를 달성한다.

사실 집권 초기나 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인식이 나쁘지 않았고, 심지어 미국 학생들도 무솔리니, 히틀러 등을 존경하였다고 한다. 물론 2차대전이 터져서 그런거 없지만.

( 아돌프 히틀러 문서에서 그가 어떻게 제국을 세우게 되었는지 더 자세히 나와있으며 집권하는 과정의 선전, 선동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 문서 참조.)

4.2. 사회 분위기

4.2.1. 전통적 인식: 전체주의론

총통 신앙은 계급과 직위를 망라하여 철두철미한 확신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된 많은 발언은 마치 화자가 히틀러와 개인적 관계가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대중 스타가 닿을 수 없을 만큼 저 멀리 있고 남다른 특징을 지니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친밀하고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프로파간다에서 철저한 계산을 통해 총통을 디자인하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은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모든 자기 연출과 마찬가지로 실상 매우 현대적인 특징을 지닌다. 처칠이 히틀러처럼 연서를 수천 통 받는다거나 괴링처럼 딸이 태어났을 때 전보를 10만 통 이상 받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우리라. 제3제국의 지도자들은, 아니, 적어도 이 두 인물은 대중 매체의 전문적 연출로 나타나는 대중문화 현상을 매우 뚜렷하게 미리 보여 준다.

소박하고 선량하면서도 신비롭고 전능한 느낌을 주는 총통의 아우라는 대중 스타와 마찬가지로 일부러 퍼뜨린 무수한 일화들을 통해서 늘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함을 유지한다. 가령 연설 중에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히틀러의 다소 특이한 습성, 금욕적인 식습관, 그리고 분을 못 참아 양탄자를 물어뜯었다는 저 유명한 일화[27]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총통과 아주 가깝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한 번이라도 총통 옆에 앉았다거나 (장군들에게는 드물고 특이한 일은 아니지만) 총통과 군사적 문제를 논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일화는 언제나 자세하게 이야기되고 이야기 중에는 언제나 히틀러의 특별한 점들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총통과 친밀하게 알고 지낸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건 거짓이건) 총통을 직접 만났다는 사람에게 총통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청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총통의 매혹이라는 토포스는 되풀이되어 등장한다. 히틀러는 말 그대로 사람을 마취시키는 것처럼 자신의 매력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총통과 진짜 만난 사람은 다른 인상도 받았다. 가령 루트비히 크뤼벨(Ludwig Crüwell) 기갑대장은 이야기에 홀딱 빠져 귀를 기울이는 영국 측 첩자 폰 발데크(von Waldeck) 중위에게 이렇게 말한다.

크뤼벨: 확신합니다. 총통이 당을 지휘하면서 거둔 상당 부분은 그가 대중에게 암시를 거는 것 같은 절대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최면과도 같지요. 그는 이런 최면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걸었죠. 솔직히 말해서,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지적으로는 히틀러보다 우월하면서도 이런 마력에 홀딱 빠진 사람들이 있어요. 왜 저는 안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남자가 짊어진 책임이 그야말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다는 사실은 저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지요. 그가 제게 아프리카에 대해 한 말은 저를 깜짝 놀라게 했어요.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고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특이한 건 손이에요. 아름다운 손이지요. 사진으로 보면 눈에 안 띄죠. 진짜 예술가의 손이라니까요. 저는 그 손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지요. 아주 아름답고 예사롭지가 않은 손이었어요. 섬세한 손이었지요. 손의 종류 자체가 달랐어요. 소시민의 손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특히 놀랐던 건, 그는 독수리처럼 사람을 응시하면서도 긴 말을 하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이 곡엽 훈장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이에요. 이해하겠어요? 사실 그 전에는 완전 다르게 상상했거든요.[28]

히틀러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크뤼벨은 총통을 개인적으로 만났음을 증명하기 위해 친밀하고 가까운 거리에서만 알 수 있는 세부 사항들을 내세운다. 총통은 "아름답고" "섬세한" 손을 가졌다. 아주 특이한 손이다. 그리고 아주 정중하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크뤼벨이 상상했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그러니까 총통을 그처럼 개인적으로 만나 보면 공적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최면을 거는 총통보다 한결 매력적이다. 크뤼벨의 설명에는 우스꽝스러운 점도 있다.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히틀러의 마력에 홀딱 빠지지 않았다고 강조하지만,("왜 저는 안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다음에는 마치 구세주를 눈앞에서 영접하듯이 총통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가 이 만남에 대해 지녔던 커다란 기대는 충분히 실현되었다. 총통은 자신을 "깜짝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상상하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어떤 오락적인 요소도 깃드는데, 화자는 이런 요소를 가지고 자신이 총통 가까이 있던 사람이라고 과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자는 다소 냉랭하게 대답한다.

폰 발데크: 그의 모든 행동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크뤼벨은 이 말을 비판으로 받아들이고 곧바로 반박한다.

크뤼벨: 그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그냥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면 됩니다.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생각한다면 벌써 잘못되어 버리지요. 제 말은 이런 뜻입니다. 어떤 군인들은 아주 훌륭한 군인인데도 늘 어떤 사람을 골라서 그를 모방하려 합니다. 그런 건 모두 잘못입니다. 총통은 유연하게 걷습니다. 옷을 아주 잘 입지요. 아주 소박하게요. 검은 바지에 외투를 입습니다. 이것보다 좀 더 회색인데 국방색은 아니지요. 뭐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괴링처럼 훈장을 주렁주렁 달지 않아요![29]

크뤼벨은 히틀러의 감정에 사로잡힌 행동을 오히려 진정성의 증거로, 그가 지닌 개인적 설득력의 일부로 평가한다. 그다음에 총통의 두드러진 소박함과 겸손함에 대한 자신의 내밀한 지식을 계속 늘어놓는다.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또 다른 사실은, 이런 만남 이전부터 가지고 있는 총통의 위대함과 카리스마에 대한 기대를 실제 만남을 통해 충족하여 그 후에는 다시 새로운 일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총통과의 만남은 이런 식으로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된다. 즉 총통 신앙은 일종의 '정서적 영구기관'이 되는 것이다. ...(후략)...
-《나치의 병사들: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죙케 나이첼, 하랄트 벨처. 민음사. p320 ~ p323 에서 발췌

한나 아렌트와 같은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설로, 나치 독일 수권 당시부터,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나치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 요제프 괴벨스와 같은 소수의 나치 수뇌부들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군국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인 되는 사회이다. 당장 이전 버전 역시 이러한 역사 인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치 정권의 입장에 반하는 세력들, 대표적으로 공산주의와 사민주의를 망라한 좌파 계열[30]에게는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위시하여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다. 이러한 탄압을 두려워 한 대다수의 독일 국민들은 체념한 채 나치 정권에게 순응하는 길을 택하였고, 그 결과 2차대전이라는 늪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이 이러한 전체주의론의 골자이다.

4.2.2. 새로운 해석 : 일상사(Alltagsgeschichte) 연구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역사학계에서는 연이어서 전체주의론에 대해 반박이 가해졌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역사 인식의 포문을 연 것은 마르틴 브로샤트였다. 독일 역사학계를 뒤흔든 저서 <히틀러 국가(Der Staat Hitlers)>에서 마틴 브로샤트는 나치 정권이 결코 하나의 단일한 목표를 바탕으로 결집한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냈다. 나치당 내의 다양한 세력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을 지적하며서 브로샤트는 나치 정권이 전체주의적인 정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다극혁명이었다고 주장한다.[31]

한편 브로샤트의 뒤를 이은 알프 뤼트케, 데틀레프 포이커트를 필두로 한 일련의 소장 역사학자들 역시 브로샤트의 주장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인류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이들은 '아래로부터의 역사(Geschichte von unten)'을 기치로 내걸고 나치 정권 시기에 실제 청~장년기를 보낸 노동자 계층[32]들과의 인터뷰 및 그들이 남긴 무수한 회고록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나치 시대의 '일상사(Alltagsgeshichte)' 연구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먼저, "숨도 못쉴 만큼 억압적인" 나치 정권 시기라는 기존의 통념이 완전히 무너졌던 것이다. 1933년 집권 이전만 하더라도 나치 정권에 대해 가장 적대적이었던 노동자들에게조차도, 전쟁 발발 이전이었던 1933년부터 1939년까지의 시기의 나치 정권에 대한 기억은 지극히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기억 속에서 초기 나치 정권 시기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대공황으로 인한 실업과 궁핍은 상당부분 해소되었던 기간이었다. 나치 정권은 (공공연하지는 않지만 내심) 자신들을 적대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노동자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이들을 달래고자 노력했다. 게다가 나치 정권이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젊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억제하고자 시도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들에게 많은 일자리가 돌아갔으며, 노동자들은 다시 사회적 지위 상승(중산층으로의 계층 상승이 아니라, 노동자 계층 내에서의 지위 상승 - 예를 들어 숙련공 대우- )을 꿈꿀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치 정권이 도입한 복지 정책인 기쁨을 통한 힘(KdF, Kraft druch Freude)을 통하여서 노동자들에게는 이전까지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여가 생활(가령 인근 영국/프랑스로의 해외 여행이라던가,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하는 클래식 청취)을 향유할 수 있었다.

두번째로, 수많은 당대 독일인들의 회고록에 따르면 나치 독일은 결코 정권의 일방적인 통제에 의해 돌아가는 국가가 아니었다. 나치 정권의 통제력은 오로지 국가 차원의 정책이 평범한 독일인들의 이해관계와 수렴할 때에만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936년 이후 나치 정권이 대외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4개년 계획(Der Vierjahreplan)을 수립하고 노동자들의 근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 갑자기 노동생산성이 급감하는 한편으로 불량품 발생률이 치솟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이 의도적으로 사보타주를 펼쳤던 것이다. 도시 노동자들 의외에도 다양한 세력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반하는 정부 정책에 대항하였다. 농촌에서는 농민들은 자신의 농작물을 군수물자로 공출하려는 정권의 움직임에 대해 암시장 반출과 같은 지하 경제 행위로 저항하였고, 도시의 청년들 역시 획일적인 히틀러 유겐트 문화에 반발하여 에델바이스 해적이나 모이텐과 같은 조직을 자발적으로 조직하고 히틀러 유겐트 간부들에 대항[33]하였다.

다시 말해서 나치 정권 시기 독일 사회는 부분적인 일탈과 저항[34]이 만연한 사회였던 것이다. 알프 뤼트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치 정권에 대한 대다수 독일인들의 입장은 (자신의 이익이 보존되는 한에서 암묵적으로 정권을 인정하는) 유보적 수용(Abwartendes Hinnehmen)에 가까웠던 것이다. 요컨대, 나치 독일 시대는 결코 침묵/순응하는 대다수 국민 對 처절히 저항하는 소수의 영웅[35]이라는 이분법 구도로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체제 자체에 대해서는 적당히 순응하면서도, 부분적인 일탈과 저항 역시 만연한 회색 지대(Grauzone)가 당대 독일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36]

아울러서 이러한 일상사의 수정주의적인 시각은 독일의 역사청산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존의 수정주싀적인 시각은 나치 정권 그 자체를 철저한 악으로 묘사해왔다. 그 결과 많은 독일 국민들에게 ("악마적인 정권이 폭압을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의)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부과해왔지만, 일상사가들에게 이러한 도식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조금만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면 탄압받는 정치적 반대세력, 유대인, 집시, 성소수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음에도, 나치 정권이 제공해주는 복지와 여가에 취해서 주변 환경을 외면해버린 당대 독일 국민들 역시 나치 정권의 공범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나치 정권이 제공해준 개인적인 만족감에 취하여 사회적인 연대를 망각하게 된 원인은 넓게 보자면 근대화로 인한 사회의 원자화에 있는만큼, 나치 독일이란 결코 역사상의 일탈[37]이 아니라, 현대 서구 사회에서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철저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3. 전쟁의 길



케인즈적 경제 회생정책을 통해 국내사정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나치 독일은 외부로 시선을 돌린다. 첫번째 목표는 국제 연맹이 관할하던 라인강 연안의 공업도시 루르를 되찾아오는 것이었다. 이곳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비무장지대가 된 곳이었다. 1936년 히틀러는 빈약한 무장[38]의 독일 국방군을 진주시키는 도박을 거쳐, 이곳을 무혈로 되찾는 데 성공했다. 이는 조약의 위반사항이었으나 전쟁을 피하려는 영국과 프랑스의 묵인 속에 히틀러는 대박을 얻는다.

1938년 오스트리아 나치당을 선동하여 혼란을 조장, 오스트리아 정부를 무력화시켰다. 이후 독일 국방군을 진주시켜 오스트리아 공화국을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독일의 한 주로 병합하였다. 이를 안슐루스라고 한다. 이것도 명백한 베르사유 조약 위반이었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수수방관했다.

1939년 3월 다민족국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이 다수였던 수데텐란트가 히틀러의 눈독에 들어왔다. 히틀러는 이곳을 독일령으로 할양하라고 체코슬로바키아에게 협박을 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를 달래기 위해 체코 영토였던 수데텐란트를 독일에게 떼어주며 독일의 요구를 수용하는 뮌헨 협정을 맺었다. 이로서 히틀러는 다시 도박에서 승리했다.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에 '더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겠다'라 했고, 그 서약서까지 영국과 프랑스에 제출했으나 실제로는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영국과 프랑스의 인내력은 이것으로 한계에 달했고 더 이상 독일이 협박을 이으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여론이 우세하게 되었다. 서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1939년 여름, 히틀러는 폴란드에게 동프로이센과 독일 본국을 잇는 단치히 회랑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그러나 폴란드는 뮌헨 협정 당시 수테텐란트 지역을 독일에게 내줬던 체코슬로바키아와는 달랐고 전쟁을 염두에 두며 총 동원령을 내리는 등 독일의 단치히 회랑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가 또 방관할 것[39]이라는 생각을 했고, 폴란드와의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소련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을 맺고 독일은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개시했다. 이로서 제2차 세계 대전이 개막되었다.

4.3.1.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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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1]

1939년 9월 시작된 폴란드 침공에서 독일군은 고작 1달만에 육군력이 강력했던 폴란드를 철저히 격파하고 소련과 함께 폴란드를 분할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는 했으나 독일에 선제공격을 가하려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다.[42] 이후 아돌프 히틀러는 1940년 4월에는 하루만에 덴마크를 점령하고 전광석화처럼 바다를 넘어 노르웨이도 침공, 점령했다. 이로써 발트해에 갇혀 있었던 독일 해군은 이제 대서양으로 나갈 출구를 확보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출구는 확보했는데 독일 해군의 전력을 거의 상실했다.

마침내 독일군은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침공을 시작하였다. 프랑스군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마찬가지의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예상했다. 그러나 낫질 작전으로 독일군은 단 6주만에 프랑스군을 패퇴시켜 항복을 받아냈고, 이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이쯤에서 히틀러는 영국과 종전협상을 맺으려고 했으나 영국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독일은 공군을 동원하여 영국을 폭격하지만( 영국 본토 항공전)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히틀러는 공군을 늘리기보다는 먼저 소련을 정복하기로 결심했고 몇 달간 부대들을 동부로 이동시켜 소련 침략 준비를 했다.

그 사이 이탈리아는 히틀러를 본따서 그리스를 침공했으나 거꾸로 지면서 도리어 이탈리아의 식민지인 알바니아가 위험해 독일에 구원을 청했다. 히틀러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지만 이탈리아를 구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1941년 4월에는 다시 발칸 침공을 벌여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그리스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은 300만명을 동원한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독소전쟁을 시작했다. 독일군은 초반에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43] 소련군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의 모스크바 공방전에서는 독일 육군은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이래 최초의 참패를 겪었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군이 전쟁이 뛰어들면서 나치 독일은 전략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44][45]

4.3.2.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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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8일 항복 시점에 독일군이 통제하고 있던 지역)[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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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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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인 1942년 봄과 여름에 나치 독일은 다시 전세를 회복했다. 소련의 남부를 공략하여 석유와 기타 지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블라우 작전(청색 작전)이 진격 속도를 높이며 성공을 거두었지만 전략적으로 의미가 적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붙들리고 말았다. 결국 여기서 소련군의 역포위에 걸려 수십만의 인명 손실이 발생했고 장비의 손실도 막대했다[48][49]. 이로써 동부전선의 균형추는 소련 쪽으로 기울어 버렸다. 그러는 동안 이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파견한 에르빈 롬멜의 북아프리카 군단도 영국군과 미군에게 섬멸당해 버렸기 때문에 독일군은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1943년 2월의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으로 잠시 소련군의 예봉을 꺾기도 했으나, 1943년 7월에 벌어진 소련군과의 최후의 대공세인 쿠르스크 전투에서 참패한다.

전세가 한 번 기울기 시작하자 전황은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서방연합군은 독일군이 쿠르스크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이탈리아에 상륙했고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은 무너져 버렸다. 1944년 6월 6일에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서방 연합군이 프랑스에 진출했고 6월 22일에는 동부에서 소련군이 바그라티온 작전을 펼쳐 독일 중부 집단군을 분쇄해 버렸다. 나치 독일의 영토는 독소전쟁 이전의 영토로 크기가 축소되어 버렸다.

이 와중에 1943년과 1944년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핀란드는 독일과의 동맹 조약을 파기하고 연합국에 항복하여 연합국의 편에 서서 총부리를 독일 쪽으로 돌렸고(루마니아는 독일의 유일한 석유 공급원이었다.) 독일의 편은 헝가리, 일본 제국만 남게 되었다. 이들 동맹국들을 잃게 되자 독일 공군과 육군 기갑부대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게다가 헝가리군은 부다페스트 공방전으로 소련군에게 점령당하고 일본 제국은 애초에 멀리 떨어져 있어 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50][51].

이에 히틀러는 동부전선의 정예부대를 서부전선으로 차출하여 병력을 모은 뒤 1944년 12월 아르덴 대공세를 펼쳤으나 실패했다. 오히려 이 때문에 동부전선에 구멍이 나 버렸고 이에 소련군은 쉽게 독일 영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소련군은 1945년 5월 2일 베를린을 함락시켰고 베를린 수비대의 항복을 받았다. 1945년 5월 8일에 되니츠가 수반으로 있는 플렌스부르크 정부는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했다.

4.4. 멸망

"낡은 독일은 히틀러와 함께 사라졌다. 아돌프 히틀러를 낳았고 히틀러의 비전에서 미래를 보았고 히틀러를 흔쾌히 섬겼고 히틀러의 오만을 공유했던 독일은 히틀러가 받은 복수도 나누어 받아야 했다." - 이언 커쇼, 히틀러 (p. 1024)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으로 나치 독일은 사실상 멸망했으나 그 껍데기는 며칠 더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4월 20일, 자신의 마지막 생일을 맞고, 4월 29일 자살 하루 전에는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4월 30일에 히틀러는 자신의 총통 자리를 총리와 대통령으로 나누어 총리직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에게, 대통령직은 카를 되니츠에게 맡기라는 유언을 남기고 에바 브라운과 자살했다. 곧 괴벨스가 히틀러의 뒤를 따라 자살하면서 얼떨결에 나치 독일의 수장이 된 되니츠는 자신의 사령부가 있는 덴마크 인근의 발트해 군항 플렌스부르크에서 정부를 구성했다. 다른 나치 고관들과 마찬가지로 되니츠는 서방과 단독 강화를 맺고 소련군과는 계속 싸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미 연합국은 독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얄타 회담에서 다 결정해 버린 상태였기에 이는 되니츠의 망상에 불과했다.

5월 4일 되니츠는 자신의 부하인 프리데부르크 제독을 랭스에 있는 아이젠하워 사령부로 보내 항복협상을 개시했으나, 실제로는 의도적으로 협상을 질질 끌었다. 다만 이것은 독일이 무슨 협상력이 남아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강화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이미 패배가 확정된 상황에서 독일군 장병이나 독일 민간인들이 소련군이 아니라 서방연합국 관할지역으로 도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미 서로 이 문제에 대해 협의까지 했던 연합국 측에서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서방 측으로 도망 오는 독일군은 발포하겠다고 경고를 했다.

그리하여 5월 7일 랭스에서 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은 연합국에 대한 항복 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다만 서명이 랭스 현지 시각으로 새벽 2시 30분에 이루어지면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는데, 이게 모스크바 기준으로는 새벽 4시 30분의 일이라 소련 본국에서 훈령을 보내줄 만한 수뇌부들이 모두 자고 있었던 것. 사인을 안 하면 소련이 공식적인 항복 문서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되고, 그렇다고 스탈린의 허가 없이 사인하면 서방연합국 주도의 항복 조인식을 인정한 셈이니 어느 쪽으로 결정하건 매끄러운 해결책은 아니었다. 만약 스탈린이 이것 때문에 분노할 경우 최소 굴라그 행이요, 재수 없으면 처형까지도 갈 수 있었다. 아이젠하워 사령부에 파견 나왔던 소련군 연락장교 이반 수슬로파로프 대장은 고민 끝에 결국 서명에 참여했다. 다행히 모스크바에 있던 친구들이 잘 무마해 별 다른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일단은 이것으로 소련 역시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사인을 한 것이 되었으나, 이를 뒤늦게 안 스탈린이 "항복은 적국의 수도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말하며 베를린에서 다시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다음 날 독일의 수도이자 주코프의 사령부가 위치한 베를린에서 다시 동일한 항복 문서에 대한 조인식이 열렸다. 이번에는 빌헬름 카이텔이 독일을 대표하고 주코프가 소련을 대표하여 조인하였고 이것으로 항복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상의 과정을 보면 사실 절차적인 면에서는 소련 측 행동이 정당했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대장 계급이라지만 총사령관도 아닌 일개 연락장교가 본국의 지시 없이 교전 대상국의 항복을 인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 항복을 인정한다는 말은 곧 전쟁을 끝낸다는 뜻인데, 일개 장교가 본국의 지시도 없이 뭐, 전쟁 끝내죠?"라고 결정하면...

이런 결과는 소련을 배제하고 서방연합국만을 상대로 항복 협상을 진행하려던 독일측의 계획[52][53]에 소련 측이 문제를 제기했고, 서방연합국 역시 독일 편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플렌스부르크에는 서방 연합국이 들어왔고, 당시 서방측은 되니츠 정부를 정식 정부로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한 동안은 SS 대원이 미군 트럭의 교통정리를 하고, 독일군과 미군이 함께 정부청사의 경비를 서는 기묘한 광경이 10일 남짓 계속되었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3,000만 명이나 사망해서 전범들을 철저히 처벌하려고 이를 갈던 소련은 이런 행태를 참지 못하고 서방연합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후 서방연합국과 소련은 플렌스부르크 정부를 해산하기로 합의하고 5월 23일 각료들을 체포하였다.

이것으로 나치 독일은 완전히 멸망하였으며, 이후 나치란 단어는 오늘의 유럽인들 사이에서 파시스트 출신 보수주의자에 대한 큰 욕으로 쓰이고 있다.

5. 역사적 손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벌인 것까지 합치면 당시 5,000만명이 사망했다.[54]

체코 또한 특유의 공업 때문에 무기 생산 기지용으로 노예 수준의 취급을 받긴 했으나 절멸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치 독일이 처음부터 레벤스라움의 중심지로 설정했던, 자신들의 궤변에 따르면 '독일 민족의 역사적 진출 방향'에 있었던 동유럽이야 말로 본격적인 강제 추방, 집단 학살, 노예화 삼박자의 제노사이드 정책의 중심지가 되었다. 예외적으로 크로아티아 발트 3처럼 어쩌다 히틀러 눈에 들어서 피해를 면하고 우등국민 취급을 받거나 헝가리처럼 대전 전부터 최우방인 국가도 있었다. 역설적인 점은 이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제국, 제정 러시아가 분할하고 있었던 중동부 유럽은 실제로 중세 이후로 독일계 이주민들을 대거 받아들이고, 지속적인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따라 2차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독일어가 인텔리 계층의 보편 언어로 대접 받을 정도로 독일의 문화적 영향력은 깊숙한 곳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의 시발점이 된 단치히만 하더라도 전후 재건 과정에서 일부러 '독일색'이 나는 건물들은 다 싸그리 밀어 버리고 죄다 '폴란드 민족 전통적'이라고 판단된 디자인으로 구시가지를 다시 지었을 정도이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독자적인 종교개혁 역사를 갖고 있는 체코 정도를 제외하면 종교개혁(특히 루터교회)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편이다. (아일랜드 공화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전후 독일인들은 심지어 나치와 전혀 관계 없는 수백년 전의 프로이센의 역사마저도 군국주의의 색채가 짙으며,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실제로 이 점과 반공주의가 프로이센 군부와 나치당의 공통점이었다. 그러나 이걸 빼면 둘의 사이는 매우 나빴다.) 제대로 역사 교육을 시키는 걸 학교에서 주저할 만큼 철저하게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거세되어 버렸다.

나치 독일은 고대의 게르만족의 서진, 중세 독일 기사단의 동진 이래 독일 민족국가의 숙원이었던 영토 확장 및 유럽의 패권 쟁취를 내세우며 거대하게 판을 벌였으나 끝내 거대하게 망해버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5.1. 독일인이 입은 손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다른 나라들의 피해 이상으로 독일은 거대한 손실을 입었다.[55] 나라가 연합국에 의해 된 것은 물론이요, 근대 독일의 기원이라고 할 프로이센이나 포메른, 슐레지엔 지방, 그리고 쾨니히스베르크는 폴란드나 소련에게 할양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과학 기술은 미국에 뒤처지게 되었다. 인명 피해도 심각해서, 직접적인 인명피해만 수백만 명의 전사자를 내었으며, 패전 이후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 각국에서 박해당해 본국으로 쫓겨난 독일인도 수백만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서독으로 이주했는데, 그 결과 독일은 독일 본토 거주민만 따지면 오히려 인구가 증가했다.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독일은 중세와 근세에 걸쳐서 독일인들이 꾸준히 넓혀왔던 국토를 다 잃었다. 게다가 체코, 폴란드 등 외부 영토에 있던 독일계 주민들이 해당 영토에서 완전히 쫓겨나면서 동유럽에 광범위하게 남아 있던 독일어권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수십개의 국가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유럽, 그 중에서 중앙 부분에 위치한 독일이 주변의 독일어권을 잃은 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1914년의 독일 제국의 영토와 지금 현재의 독일 영토를 비교해보면 자그만치 절반 가량이 크게 줄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독일도 제2차 대전 패전, 나치 패망 이후에도 동프로이센이나 포메른, 슐레지엔 등 이전 영토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며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1990년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소련,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과거 제2차 대전 당시의 연합국들이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설정된 독일-폴란드 국경선인 오데르 나이세 선과 폴란드와 소련에 할양된 구 독일령 지역을 폴란드, 소련 영토로 승인하지 않으면 독일의 통일을 허락해주지 않겠다며 압박했고 결국 독일은 통일을 조건으로 오데르 나이세 선을 인정하고, 이들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모두 말끔히 포기했다.

'독일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돌프 히틀러는 영웅이다!'란 주장도 있다. 물론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베르사유 조약의 불합리한 조건들을 다소나마 만회한 것도 사실이고 윈스턴 처칠조차 히틀러 집권 초기에는 국가 안정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전쟁 이전에만 하더라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력을 과시하고 사람들의 선망을 얻었고 심지어 노벨평화상 후보였었다. 본질적으로 영토 야욕을 드러낸 순간부터 히틀러와 독일의 공멸은 예정된 수순이었으며 전쟁이 일어나고부터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얻은 손실은 어떻게 해도 덮을 수 없을 지경이라 독일에서 저런 주장을 했다간 바로 드잡이질이 날아온다.그냥 전쟁만 안하는 선에서만 했다면 위인이었을지는 몰라도 본인이 스스로 말아먹었으니 영웅이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의 전쟁에서 전 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독일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해외 동포들이 추방당해 독일로 오는 바람에 겨우 인구 부족을 메울 수 있었다. 유대인이나 로마니인들 뿐 아니라 제국 내의 반체제인사들도 가차없이 숙청했다. 전술적으로는 동부전선 병력들에게 기동 방어를 금지하고 무조건 위치고수라는 말도 안되는 명령들을 내림으로써 피해를 가속화했다. 더군다나 침략 전쟁을 위한 징병제를 실시했으며, 병역기피자들을 현장에서 총살했다. 제1차 세계 대전 기간까지만 해도 대다수 유럽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미국 정도가 예외였음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형국이니 일반 군인들로서는 목숨 걸고 조국에 반하여 싸우든가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로 나치에 동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의 광기가 저지른 죄악이 전황이 역전됨에 따라 아무 잘못 없는 민간인들에게 돌아왔으니 소련군과 현지인에 의한 무차별적인 보복 학살[56][57]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질질 끌다가 결국에는 패전하여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고 독일 민족의 수많은 문화 유산들이 파괴되었으며, 전후 독일의 정치적 위상은 심각하게 약화되었다.

45년 동안 국토가 두 쪽이 나는 바람에 국력도 상당히 손해를 봤다. 동서 분단 이외에도 독일의 영토는 크게 줄어들었으며, 현재 독일의 영토는 근대 독일 국가가 형성된 이래 가장 작다. 특히 근대 독일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프로이센 지역[58]은 영구적으로 폴란드(바르미아-마주리, 포모제 주),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리투아니아( 메멜)에 넘어가는 것으로 해체되었다. 이 지역의 상당 부분은 기존에 나눠먹었던 폴란드 동부 지역을 뱉을 수 없던 소련이 보상으로 폴란드에게 넘겨줬으며 거주중이던 독일인은 모조리 동독으로 쫓겨나[59] 민족적 명분이 없고 폴란드 또한 이 땅이 없으면 영토가 쪼그라들어버리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돌려줄 수 없다. 결정적으로 독일의 통일을 위해 기존의 영토 수복을 시도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기 때문에 세계대전이 터져서 독일과 폴란드가 적국이 되거나 어떤 이유로 폴란드인이 전멸해버리고 빈 땅이 되지 않는한[60] 독일의 손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된다.

5.2. 학문과 문화의 손실

나치 독일 기간 독일은 학문적으로도 큰 손실을 겪었는데, 전쟁 전에는 나치당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유대인 탄압을 피해, 전쟁 후에는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 많은 독일 과학자들이 타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여기에 가장 이득을 입은 국가가 미국으로 미국이 전후 과학계의 중심이 되는데는 독일계 과학자들의 공적도 컸다. 그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중립국 스위스에서도 위험함을 느껴 미국으로 가지 않았는가. 미국의 로켓 기술은 독일의 V2을 개발한 폰 브라운이 밑천을 닦고. 물론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 속담처럼 독일도 완전히 밑천이 날아가지는 않아서 여전히 과학 기술력이 뛰어난 국가이기는 하지만, 세계 과학계의 중심에서는 밀려나게 되었다. 특히 수학에서 이런 경향이 심한데 당시까지만 해도 세계 수학의 중심이었던 괴팅겐 대학이 나치로 인해 몰락하고 학자들은 모두 타국으로 가게 된다. 힐베르트는 이런 상황을 보고 괴팅겐에 더이상 수학은 없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그래도 현재는 순수 과학분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와, 응용과학분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가 서로 경쟁하며 독일 과학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음악을 듣는데 사용하는 MP3도 알고 보면 독일 '프라운호퍼'의 기술이기도 하다.[61] 말인 즉슨 옛날 명성이 무색해질 정도의 변방은 아니라는 소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경제력을 기반으로 과학기술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퍼붓는 미국이 버티고 있는 한 옛날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로켓기술 분야는 개발진이 미국과 소련, 영국으로 넘어가버렸고 각종 규제도 가해지면서 사실상 복구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62]

아인슈타인은 단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박해받았으며, 결국 베를린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히틀러가 핵물리학을 '유태인 물리학' 드립치면서 폄훼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회주의 학자의 본산이었던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도 멤버들이 유대계 출신이 많았고,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한다는 이유로 나치의 탄압 끝에 폐쇄되었다. 소장인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스위스로 도망쳤으며 다른 멤버들도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으로 피신했다. 이 멤버들 중에는 에리히 프롬, 테오도르 아도르노 같은 사회과학계의 거성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결국 미국으로 옮기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단지 유대계라는 이유만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자체가 유대인의 허접쓰레기 학문이라는 규정을 받았고, 나치 집권 이후 처음 열린 심리학 대회에서는 정신분석학 학자들의 참가가 금지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오스트리아가 합병된 후 프로이트는 살해 위협까지 받게 되자[63] 프로이트는 결국 가족을 위해서 오스트리아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문화계로 보면 나치당의 문화 탄압 때문에 독일의 문화계도 큰 타격을 받아서 후퇴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출판, 영화, 연극 분야에 활동을 많이 하던 유대인들은 거의 예외없이 국외로 빠져나갔다. 특히 영화 산업은 1920년대 유럽 전체에서 제작되는 영화 수보다 독일 내에서 제작되는 영화가 더 많을 정도로 번성했고, 미국의 할리우드에 이어 두번째로 번성했지만 나치 집권 후 괴벨스가 영화 산업을 통폐합하면서 거의 국영화시켜 몇 개 회사만 남겼고 정권 찬양적 홍보 영화나 반유대주의 영화만 찍어내게 된다. 독일 영화 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견디다 못한 프리츠 랑이나 빌리 와일더 같은 내노라하는 독일 영화 인재들이 영국이나 미국 같은 곳으로 망명해버렸다. 후폭풍도 엄청나게 심해서 뉴 저먼 시네마로 대표되는 독일 전후 영화는 나치 독일 영화의 철저한 안티테제를 내세울 정도였다.

연극계는 우익이나 민족주의 성향이 멀었기 때문에 역시 직격탄을 맞았고, 문학계에서도 <서부전선 이상없다>로 국가공인 좌빨 선고를 받은 레마르크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마스 만 등 유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선고 받은 작가들도 나치 독일을 떠났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좌파 예술인들이 탄압받다 망명했으며, 망명하지 않은 케테 콜비츠는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유대인이었던 멘델스존의 음악도 당연히 금지당했다.[64] 2차대전 시기에는 러시아, 폴란드 작곡가의 연주도 금지당한다.

다른 예술 분야에도 나치당의 잣대로 '유대적인 요소'가 들어갔다 선언하면 탄압을 면치 못했다. 히틀러는 자기가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현대 예술을 매우 증오했으며, 단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많은 유대인 출신 예술가, 과학자들을 박해했다. 히틀러는 인체를 새롭게 재해석한 입체파 등의 새로운 예술 사조를 '인체공부를 게을리 한 화가가 그린 3류 작품'으로 깎아내리고 이것이 독일 국민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명목 하에 퇴폐미술로 분류하고 탄압한 반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지만 해석이나 창의력이 다소 제한된 신고전주의는 우대했다. 이에 나치는 또한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작품을 퇴폐미술로 낙인찍고 대대적인 박해를 가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예술가들은 작품 활동을 포기하거나 해외 이주를 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화가들이 추방당하거나 온갖 수모를 당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히틀러가 게르마니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수많은 문화 유산들이 깡그리 박살났다. 유네스코 문화유산급 건축물들이 불도저에 박살났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주도하던 바우하우스(Bauhaus 바이마르 공예학교)도 유대적 바우하우스 악질 문화라는 나치의 비난을 받으며 학교가 폐쇄되었고, 함부르크의 바르부르크 예술사 연구소도 설립자가 유대계라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우려해 나치가 집권하자마자 연구소를 영국으로 이전해버렸다.

나치의 탄압을 받은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들은 대부분 유럽을 거쳐 결국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미국은 비록 반유대주의적인 성향의 인물들이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걸 불쾌하게 여기긴 했어도 이들을 받아들이고 구해내서 제2의 터전이 되었다. 나치 집권 후 수십만의 유대인이 국외로 이주하면서 대학 교수급 석학들도 800명이나 빠져나갔는데 이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20명이었다고 한다.[65] 물론 그들이 미국의 과학 발전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66],[67] 실제로 이 당시 미국으로 옮겨간 수학자들의 활약으로 미국은 전세계 최고의 8개의 수학연구소 중 3개를 보유하고 있는 반면 독일에는 단 하나도 없다.

6. 대외 인식

히틀러가 언제든지 환생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유럽 국가들은 두 번 다시 히틀러라는 보통명사가 되살아나는 것을 막으려고 유럽연합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유럽연합이 없었더라면 초유의 금융위기를 맞아 유럽은 다시 자국 이기주의가 충돌하는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치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히틀러는 역설적으로 역사 발전에 기여한 셈이다. 히틀러라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경계심이 유럽연합을 낳았다면 말이다. -이언 커쇼, 히틀러 (p. 1203)

누가 봐도 확실하게 최후까지 뻘짓하며 망한 덕분에 전후 독일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생각을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바꾸었다 라고 해도 될 정도로 뇌리셋을 감행했다. 히틀러와 졸개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6년간이나 처절하게 한 끝에 독일 본토가 쑥밭이 되고,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누가 봐도 확실한 패전을 한 덕분에 독일 사람의 뇌리 속의 극우민족주의나 전체주의나 독일우월주의 같은 생각이 봉인된 것이다. 지금도 국뽕이나 국수주의에 항의할 때 주로 쓰는 레퍼토리가 "나치랑 다를게 뭐냐!" 라는 걸 생각해보면 재밌게도 나치 독일이 깽판친 덕분에 전체주의를 나쁜 사상이라고 못 박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거 하나는 좋은 결과라고 볼 수 있지만, 그걸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당시 독일은 '막대한 영토 손실 + 전후 복구 + 승전국의 지나친 배상청구'로 말 그대로 절망의 구렁텅이였다.[68] 그런 상황에서 히틀러가 죽어가던 나라를 살린 것은 사실이며, 재무장을 하고 라인란트 점령 등으로 프랑스에게 한방 먹인 것에 대해 독일 국민이 얼마나 열광하고 후련해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로 라인란트 점령 후 3주 뒤의 총선에서 독일 국민의 히틀러 지지율은 98.8%였다. 그 시점까지는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제 회복과 합병 등에서 보여준 강한 모습은 다른 나라들에도 큰 충격을 줘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유일하게 혼돈이 멈추고 안정되어 보이는 '듯한' 독일을 본받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약 이쯤에서 평화롭게 해결했다면 오늘날의 비판은 없었고 독재자이지만 혼란을 잘 수습한 유능한 지도자, 제2의 비스마르크로 독일 제일의 정치가 정도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보다 더 나가서 프랑스 전역 종결 직후, 아니면 영국 본토 항공전의 패배후 어떻게든 평화조약을 체결시켰으면, 최소 공칠과삼의 지도자로 평가 받았을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억압과 독선으로 이루어진 독재는 개인의 망상으로 인한 전쟁을 전세계로 확대시켰으며,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수없는 사람들의 처참한 죽음이었다. 그것도 독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히틀러 비판은 전쟁 패배로 인한 결과론적인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럼 히틀러가 승리했더라면 인권 말살과 인종주의, 그리고 세계적 레벨의 민간인 학살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물론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등 추축국이 연합국에 승리해서 온 세상이 나치와 일제의 지배 하에 떨어졌다면 충분히 권력자에 오른 나치나 일제는 자기들의 업적을 과대포장하고 찬양하게 강조시키고 모든 국가적 교육에서 자기들 찬양만 해댈 것이 뻔하고 반대는 무조건 숙청 탄압 사형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히틀러 비판이 전쟁 패배로 인한 결과론적인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즉 객관적인 윤리적 도덕적 지표에서 본다면야 히틀러가 설령 승리했다고 쳐도 많은 억압받는 세계 사람들은 겉으로야 처벌과 보복이 두려워 말 못할 뿐 속으로는 히틀러 개새끼 라는걸 다 알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객관적 윤리적인 관점에서 정당화가 아니라 단지 겉으로 보여지는 정당화라면 만약 나치가 세계를 지배했을 때 자기네들이 강제적으로 "야 우리가 한게 옳아 아니야?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옳다 라고 얘기해!"라고 강요하면서 억지로 정당화 시킬 수는 있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이란 말은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이 행위의 결과에 따라 판명될 뿐이란 말이다. 무력이나 협박에 의한 억지 정당화가 결과론적 정당화와 같은 뜻인양 써서는 올바른 논의가 될 수 없다. 차라리 결과론적이란 표현 대신 나치가 이겼었다면 나치에 대한 평가도 역사는 승자의 논리로 쓰여진다는 관점에서 달라졌을 수 있다는 식으로 썼으면 한다.

물론 나치 독일은 국력상 독일의 최전성기 시대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 제국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대영제국, 소련 등을 비롯한 막강한 제국들 역시 과대한 군비 지출, 스스로의 모순, 피지배층의 항쟁 등으로 결국 몰락했는데 하물며 앞서 소개한 국가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정신나간 이념과 학살, 테러등을 저지른[69] 대독일제국이 오래 유지될리도 없을 것이고, 전쟁이 벌어지지 않거나 설사 전쟁에서 승리했더라도 그동안 노예노동에 시달리던 수많은 피지배국 민중의 저항이나, 나치당과 기업간의 정경유착에 의한 각종 부정부패 및 과도한 군비지출 등으로 스스로 몰락했을 것이다.

현재 독일 정치, 교육 시스템에서는 히틀러와 나치의 과오를 반성하며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학살과 세계적 전범이라는 원죄는 경제 정치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룬 지금도 독일 전체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되었다.

물론 독일에도 히틀러가 전성기를 열었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네오 나치들도 있다[70].

인도에는 아돌프 루 히틀러 마락이라는 정치인도 있다. 부모가 히틀러를 존경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사상적 다양성이 허용되는 사회이다 보니 각종 독재자들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일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2차대전 당시의 인도의 관점에서 영국이 적이면 나치 독일은 적의 적이었다. 근데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적의 적을 동맹 비슷하게 맺고 공공의 적을 견제하는 게 상식적으로 당연한 거고, 겨울전쟁 당시의 핀란드도 적(소련)의 적(독일)과 손잡고 같이 소련을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핀란드는 제 2차대전 전기 때나 독일과 손잡았지 이후 전쟁 후기에 가면서 전세가 연합국에게 유리해지자 독일과 관계를 끊고 소련과 평화협정을 맺은 뒤 독일군과 싸우기는 했지만... 그리고 일본과 손 잡고 인도를 독립시키려던 찬드라 보세만 해도 나치랑 손 잡을 준비도 얼마든지 했다. 이들에게 나치나 히틀러는 나쁜 놈이라고 해봐야 우리에겐 영국이 나치이며 윈스턴 처칠이 히틀러와 같다고. 나치에 묻혀서 그렇지, 처칠 또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라크에서 쿠르드인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독가스를 사용하여 학살한 전범 맞다. 다만 히틀러도 간디의 비저항 운동에 대해서 저항을 멈출때까지 처형하라는 막장 해답을 외무장관인 헬리팩스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다. 나치 독일이 비난 받는 이유는 자국민들까지 탄압하고 억압했으며 산업적인 방법으로 체계적인 학살을 했기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한 식민제국들이 까여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나치 독일을 비롯한 추축국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연합군쪽 식민제국에 가려져서 그렇지 추축국도 식민제국들이며 식민지에서 학살을 저지른것도 똑같다. 일본이야 말할것도 없이 잘 알려져있고 독일도 나치독일의 전신인 독일 제국은 식민제국이며 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앞장서서 쌍수를 들고 남의 나라를 침공하던 누구씨들과는 다르게 어쩔수 없이 나치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던 국가가 있다는 사실은 전세계적 측면으로 봤을 때 나치의 만행이 더 큰 탓에 묻혔다. 때문에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핀란드와 불가리아가 제2차 대전 당시 추축국이었다는 사실만 보고 앞뒤 파악도 안한 채 똑같이 이 두 나라들을 악당, 친나치국가, 전범국 취급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71][72] 나라에 따라서는 역사를 얼마나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준 예시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제3세계의 국가들 중 독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지배와 착취에 심하게 시달렸던 국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히틀러가 유럽을 전쟁에 말려들게 하고 영국과 프랑스를 공격한 덕분에 이게 이후의 독립에 도움이 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적의 적은 친구요, 이 나라들 입장에서 히틀러는 독립유공자일 수도 있다는 얘기 또는 이스라엘, 유대인을 증오하는 감정이 강한 곳에서도 히틀러를 좋게 보는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 유대인, 반유대주의 항목 참조.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지의 소련에 시달렸던 발트3국에서도 가끔씩 나치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아예 에스토니아 쪽에서 대놓고 나치 친위대를 자유의 전사로 성역화하려 하기도...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 몇몇 중남미 국가들과 이슬람 문화권,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들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면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져서 자신들에게 더 좋아질 거라는 기대도 했던 모양이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73]이나 아프리카,[74] 남아시아, 중남미 또는 이슬람 문화권 같은 데서는 히틀러를 칭찬해도 아무 문제 없을지도, 아니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중남미, 특히 아르헨티나 칠레 같은 경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나치 독일군 전범과 정치범들이 도망쳐 오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놈이 그놈'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으니 무조건적인 일반화는 곤란하다.[75] 아프리카에서도 독일 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나미비아 탄자니아같은 경우 독일 식민지 시대에 헤레로족 학살, 마지마지 반란 등 독일군에게 자국 흑인들이 학살당하기도 했었고 나치가 독일 제국 때의 만행을 그대로 계승해서 흑인-독일인 혼혈아들을 라인란트 사생아(Rheinlandbastard)라 부르며 박멸 대상으로 삼은 데다, 홀로코스트 문제와 달리 현재까지도 제대로 된 식민지 사과나 보상을 안하는 형편이라 이 나라들도 독일과는 사이가 몹시 나쁘다. 심지어 독일 정부가 나미비아와 탄자니아에서 독일 군대가 직접 안 죽이고 칼라하리 사막에서 굶어죽었다, 현지 흑인들끼리 서로 싸움질하다 공멸해 죽은 사망자들이라는 식의 망언들을 하자 나미비아와 탄자니아에서는 나치 시대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꺼내며 "유대인과 집시도 직접 독가스로 안 죽이고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보내서 거기서 죽었냐?"라고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76] 위에서 언급한 중남미에서도 독재 정권이 나치와 연계되었다는 점 때문에 8~90년대 민주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나치를 혐오하며[77] 각국 정부 차원에서도 반서방이면서 반추축국 진영인 중국[78]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흑역사로 취급하며 오히려 눈치를 보아서라도 나치 관련 인사를 처벌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79]

이 때문에 현재의 독일은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있는 애국심 교육 자체가 없다. 아무래도 자국의 역사를 가르칠 때는 어느 나라나 애국심 보정으로 약간씩이라도 화려하게 치장하기 마련인데, 독일 역사교육 시간에는 감성적인 측면은 철저히 배제하고 진짜 있었던 일 위주로만 가르친다. 심지어 나치의 만행에 대해서 배울 때는 이러한 일이 있었으니 우리는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면 안된다고 교육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것도 전혀 없다. 국사적인 행사에 무조건 들어가는 국가 합창도 없다(그냥 노래만 틀어주고 따라 부르지는 않는다). 심지어 국제경기에서 독일 국기를 들고 응원하는 행동이 옳은가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벌어질 정도로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국가와 민족, 애국이라는 단어를 교육에서 아예 배제시켰다. 미르야 말레츠키는 국방일보에서 연재 중인 병영 칼럼에서 나는 독일인이라 애국심이 없습니다라는 글을 올렸을 정도. 거의 국민성 자체를 포맷한 수준이다. 유럽 재앙의 근본이던 민족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요소[80]를 국민성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고, 이를 자유주의적이며 평화주의적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권위주의적이었던 동독 체제는 밑에서부터의 반발로 자발적으로 서독에 흡수·합병되었다. 그리고 현재 독일은 전쟁 피해를 받은 국가들의 이의제기 없이, 유럽연합의 지도국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는 매우 긍정적이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민족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없애버렸다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봉인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교육으로 심어진게 아니라 진짜로 자기 나라가 좋아서 애국심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누군가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인위적인 감정일지언정 그것이 내셔널리즘과는 다른 건전한 방향의 애국주의일수도 있는데,[81] 그런것들을 지나치게 억압하다보니 오히려 그 반발로 위대한 독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네오 나치 네오 파시스트들이 등장한다는 것. 즉 어떤 형태로든 국가나 공동체를 강조하기만 하면 싸잡아서 나치니 전체주의니 하며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이 정말 옳은 방향인가'라는 반론들이 꽤 있다.

독일 제3제국이나 히틀러에 대한 현대 독일인의 인식에 대한 관련 기사( 이코노미스트) 원본

7. 정치

나치즘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생각외로 의회 관료주의와는 다소 별개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는 히틀러가 관료주의를 싫어했던 것도 있다.

7.1. 지도자 원리(Führerprinzip)

지도자 원리는 인간에게는 우열(優劣)의 차가 있다고 보는 사회진화론을 그 바탕으로 한다. 이는 다수결에 기반을 두는 민주주의와 의회 정치를 부정하여 오직 최고의 두뇌를 가진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자기 민족을 지도해야 하며, 국민 대중은 이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세한 것은 지도자 원리 문서 참조.

7.2. 일당 독재

나치는 독일을 일당 독재 국가로 만들었으며, 아무리 사소한 단체라도 나치당 이외의 정치 결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우선 독일 사민당, 독일 공산당 등의 라이벌 정당들은 나치의 집권 즉시 해산되었다. 이는 우익 단체도 마찬가지였는데, 철모단 같이 나치와 비슷한 성향이고 공투도 했던 극우 정당, 툴레 협회와 같이 초창기 나치에 큰 도움을 주었던 우익 비밀 결사도 존속하지 못했다. 기존의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에 나치당 이외의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도 금지되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정작 나치당의 지위는 모호했다. 초기에는 나치당의 지위를 공법인으로 하여 법률적으로 국가 사상의 담당자로 정의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1942년 12월 12일 명령에 따라서 나치당의 지위를 정의한 모든 법률을 삭제했다. 당과 국가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이후에도 종종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최후까지 나치당은 모호한 상태로 남았다.

나치당의 세계관에서 당은 국가와 같이 지도자 원리를 구현하는 조직이었으나, 동시에 국가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겼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관청과 관료 정치를 이용하여 나치당에 주어진 사명을 경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8. 대외 관계

나치 독일/외교 문서 참조.

9. 대중매체

외계인, 악마, 좀비, 로봇 과 함께 대중 매체의 주적을 도맡는 5대 트로이카로 활동한다. 가끔 나치 좀비 같이 두 막장 요소를 섞어놓은 때도 있다.

거의 모든 작품에선 세계정복을 꾀하고,가끔씩은 오컬트에 심취해있는 모습으로 대부분 나치 독일을 최대한 부정적으로, 온 세계의 악이란 악은 죄다 모아둔 이미지로 묘사하는 등, 환타지 집단이다. 위의 나머지 4대 악의 세력들이 그나마 몇 작품 이나 잠시 라도 주인공을 맡을 여력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나치 독일은 주인공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 나치 독일은 대체역사물을 빼면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어떤 작품에서든 절대 못 이기고,그 대체역사물에서도 결국에는 어떻게든 패배하게 되거나 패배의 운명이 기다린단 암시를 맞이한다.

가끔 대체역사물이나 판타지 세계관에서 현재진행형인 강대한 세력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언젠가는 멸망시켜야 할 악의 제국','비정상적인 광기의 제국'등의 모습으로 묘사되지 '정의의 우리편'으로는 결코 묘사되지 않는다. 가끔 나치 독일의 후예나 후신을 자처하는 존재(네오 나치라든가)도 나오는데 이 역시도 절대 좋은 대접을 못 받는다. 다만 레드 오케스트라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히어로즈 & 제너럴, 세계 정복자2, 3와 같은 게임에서는 밸런스와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나치 독일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문명 5는 지도자가 비스마르크로 나오고 종특은 야만인을 흡수하고 지상군 유지비가 감소하는 것으로 대놓고 나치 느낌이 나진 않지만 산업/현대시대에 이념중 독재를 선택하면 간접적으로 나치 흉내를 낼 수는 있다.

당사국인 독일에서 나치 독일 관련 매체는 엄청난 검열을 거쳐 출시된다. 애초에 독일의 매체의 폭력성에 대한 검열 기준이 빡세지만 나치 독일 관련 매체는 더 그렇다. 애초에 매체에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것에 알레르기처럼 반응하는 것이 나치 시절 트라우마 때문이다. 이마저도 은근히 나치 독일과 관련된 것들은 최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아예 삭제해 버리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하켄크로이츠를 평범한 철십자로 바꾼다거나.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의 특성상 사실상 '주인공 국가'인 Hearts of Iron 시리즈에서도 독일어판은 나치 관련 인사들은 개명되었고 사진은 삭제되었다.[82] 그나마 제작사인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하켄크로이츠 대신 제2제국 국기를 쓰는 등 최대한 나치색을 빼려 노력했음에도 게임 배경이 배경인지라 어쩔 수 없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는 이상하게도 피해국인 듯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덕분에 렐릭 엔터테인먼트가 나치가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였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레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히어로즈 & 제너럴, 데이 오브 디피트, 세계정복자 시리즈, Hearts of Iron 시리즈 등에서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마음대로 나치 독일을 선택해 플레이가 가능하다. 이것은 나치 독일을 병적으로 혐오하는 독일을 비롯한 온갖 서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게임 플레이어들은 나치 독일을 플레이할 수 있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에서는 아인슈타인이 과거로 가서 히틀러를 지워버렸기 때문에 당연히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소련이 나치 독일 역할을 맡아 미국&유럽을 침공한다.

마블 코믹스에서는 나치의 초과학 수준이 40~50년대는 커녕 2099년에서도 OP로 보일 정도로( 스파이더맨 2099의 반응) 굉장한 초과학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아직까지 세계 곳곳에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조직이자 아직까지 활동 중이다. 문제는 이런 슈퍼 오버 테크놀로지를 지니고도 어벤저스, 특히 캡틴 아메리카에게 심심하면 털린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 파놓은 기지만 수만 개로 추정 중.

코믹스 헬보이에서도 전쟁 전부터 수많은 유물들을 긁어 모았고 오컬트 집단, 흡혈귀, 외우주의 존재를 끌어들였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의 훈테 성에서 외우주의 존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로켓을 발사하는가 하면, 히틀러는 화염 계열 능력자인 블랙 플레임을 포섭하였다. 또한 전쟁에서 패하기 직전 흡혈귀들의 뒤통수를 치고 복제 흡혈귀를 모스크바와 워싱턴에 쏘아 보내는 흡혈귀 폭풍(Vampirstrum)작전을 기획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혼돈의 신 그 자체인 오그드루 자하드를 소환해서 세계 자체를 멸망시킬 뻔 했다.[83] 독일이 패망한 이후 잔당들은 남미로 도망갔다. 다만 세계 곳곳에 비밀 연구소를 마련해두어 심심할 때마다 연구소에서 무언가 튀어나온다.

강철의 왈츠에서는 D국으로 등장하며(글로벌 서버를 제외한 중국, 국내, 태국, 일본 서버), 전차야수에게 털렸다. 물론 F국인 프랑스는 독일에게 점령 당하지 않은 상태. 단, 서독군에서 운용했던 장비까지 나오는걸 보면 나치독일과 그 이후 서독까지 포함된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다.

머신게임즈가 개발을 맡은 울펜슈타인 시리즈에서는 데스헤드가 역설계한 오버 테크놀로지 덕분에 전쟁에서 승리, 세계 정복[84]에 성공했지만 14년 동안 코마 상태에 있던 나치 백정이 깨어나면서 연구 시설이 박살 나고 기껏 달에 건설한 기지도 전멸해 무인화되고 나치 문명을 만들어낸 데스 헤드도 저승길로 가게 된 데다 저항군 역시 오버 테크놀로지를 손에 넣게 되면서 안습의 징조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 영국은 수도 런던의 공포 정치의 핵심이었던 런던 감시자가 깨강정이 나면서 대대적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85]그리고 소련에는 아직 소식이 없지만 [86] 영국 쪽 레지스탕스가 얻은 기술들을 얻어서 독일을 파괴할 수도 있고, 덤으로 상술한 안습 행보는 모두 한 사람이 저지른 거다. 그리고 이제는 기껏 점령한 미국에서 반 죽었던 나치 백정이 다시 살아나 자유를 빼앗긴 분노로 불타고 있는(혹은 불씨를 숨겨놓은) 미국인들의 분노에 휘발유를 절찬리에 세일해줬고 그 결과 미국의 레벤스라움은 무산, 미국 전역에서 들고 일어난 저항군에 의해 학살당하는 안습한 말로를 겪게 된다. 다만 2019년 발매 예정인 울펜슈타인: 영블러드의 시간대가 1980년이고 파리가 여전히 나치령인 것으로 보아 최소한 서유럽의 지배는 아직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87]

만화 블리치에선 반덴라이히의 모티브가 나치 독일이라고 한다.

소설 유녀전기에서 주인공이 속한 국가인 라이히의 모티브는 나치 독일이라 추정하는 자들이 있다. 작가 본인은 세계 1차 대전의 독일 제국이 모티브라고 주장한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가끔씩 등장. 과거 회상이나 역사 비디오 등에서 나오는데 물론 항상 사악한 이미지로 나온다. 그런데 번즈사장은 나치부역자여서... [88] 극중극 이치 앤 스크래치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2차세계대전당시 대독 선전용으로 이치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히틀러의 목을 잘라서 축구를 하거나, 루즈벨트의 연설을 하는 스크래치를 이치가 죽이자 탱크를 탄 히틀러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서는 등 심슨 답게 우스꽝스럽게 나온다.그래도 메기가 TV에서 나온대로 나치식 경레를 하자 웃다가 바로 정색하며 메기의 팔을 내린다

일본 극우물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집단으로, 일본 극우물의 공통적 특징인 일본의 피해자 행세를 위해 나치에게 모두 전쟁범죄를 뒤집어씌우기 때문이다.

대중매체 속의 나치 독일 캐릭터들을 더 알아보고 싶다면 Deutsche Soldaten Wiki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게임, 영화, 만화 가릴 것 없이 나치 또는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 제국 관련 캐릭터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적지만 네오나치 캐릭터 항목들도 있다. 해당 위키는 나치즘을 비롯한 파시즘을 신봉하는 위키가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 것. 다만 단순히 나치풍이거나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는 등재 대상이 아니다.[89]

실제 나치 독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Plague Inc.에선 독일이 덴마크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같이 묶여 나왔다. 이로 인해 몇몇 뉴저들이 나치 독일을 연상케 한다고 한다는 말이 있었다.


가끔씩 나치를 모에화, 의인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런 걸 유럽인에게 보여준다면 그 유럽인은 분명 기절해 버리거나 당신을 줘팰것이다. (그리고 진짜 유럽 여행가서 보여줘 두들겨 맞은 용자가 있다 카더라.) 심지어 SS친위대까지 모에화한 그림까지 있는데 독일 가서는 그걸 보여준 것 만으로도 경찰에 끌려갈 수 도 있다. 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짓은 절대 하지 말자.솔직히 오타쿠들 말고는 그런 짓거리를 할 사람은 없지만

9.1. 창작 매체

9.2. 나치 전문(?) 배우

  • 토마스 크레취만: <스탈린그라드>[108], <몰락>, <피아니스트>, <작전명 발키리>에서 모두 나치 장교를 맡았다.심지어 <어벤져스 에이지 울트론>에서 하이드라의 수장 역을 맡는데 이 하이드라라는 가공의 조직이 나치를 따르는 집단이다.만화 캐릭터까지 나치
  • 크리스티안 베르켈: <몰락>, <블랙북>, <안나 성당의 기적>, <작전명 발키리>에서 모두 나치 장교를 맡았다.
  • 마티아스 하비히: <에너미 엣 더 게이트>, <몰락>에서 각각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와 히틀러의 주치의를 맡았다.
  • 막시밀리안 셸: <젊은 사자들>에서 매사 의욕 있게 행동하는 보병장교인 하르덴베르크 대위를, < 철십자 훈장>에서 무능하고 오만한 귀족 장교 슈트란스키 대위를, < 머나먼 다리>에서 SS 기갑군단장 빌리 비트리히 SS 대장을 연기했다.
  • 발데마르 코부스: <슈타우펜베르크>, <블랙북>에서 나치 장교를, <작전명 발키리>에서 베를린 경찰청장 헬도르프 백작을 맡았다.
  • 볼프강 프라이스: <지상 최대의 작전>, <대열차 작전>,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안지오의 영웅들>, < 머나먼 다리>에서 모두 나치 장교를 맡았다. <롬멜 습격 작전>에서는 에르빈 롬멜 원수를 연기했다.
  •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몰락>, <안나 성당의 기적>, <작전명 발키리> 등에서 히틀러의 속기사, 나치의 선전 아나운서, 나치 타자수를 맡았다.
  • 제바스티안 코흐: <블랙북>, <슈타우펜베르크>에서 나치 장교를, TV영화인 <슈페어와 >에서 알베르트 슈페어를 연기했다.
  • 제임스 메이슨: <사막의 여우 롬멜>에서 에르빈 롬멜 원수를, <철십자 훈장>에서 주인공 슈타이너 원사의 상관인 브란트 연대장을 연기했다.
  • 카를 오토 알베르티: <대탈주>,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에서 SS 장교, < 벌지 대전투>에서 마틴 헤슬러 대령의 부하인 디펠 소령, < 공군 대전략>에서 공군 참모총장 한스 예쇼넥 상급대장, < 켈리의 영웅들>에서 SS 전차장을 연기했다. <롬멜 습격 작전>에서는 롬멜의 부하인 아프리카 군단의 대위 역을 맡았다.
  • 쿠르트 위르겐스: <상과 하>, <악마의 장군>, <지상 최대의 작전>, <철십자 훈장 2>에서 모두 나치 장교를 맡았고, < 공군 대전략>에서는 나치 외교관 리히터 남작을 연기했다.
  • 하디 크루거 (Hardy Krüger) : 1928년 베를린 출생으로, 전쟁 당시 강제 가입이던 히틀러 유겐트 단원이었다. <산타 비토리아의 비밀>, < 머나먼 다리> 등 여러 영화에서 나치 장교 역할을 했다.
  • 한스 크리스티안 블레흐: <지상 최대의 작전>에서 독일군 제352보병사단 소속 베르너 플루스카트 소령을, <벌지 대전투>에서 마르틴 헤슬러 대령의 당번 부사관인 콘라트 상사를 연기했다. <레마겐의 철교>에서는 마을 초등학교 교장 출신의 카를 슈미트 대위 역을 맡았다.

단, 위의 배우 대부분은 독일인 또는 독일계 배우라서 나치 역할을 맡은 것이고, 연극 및 TV드라마, 영화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였거나 현재 활동 중이다. 나치 인물 배역은 이들의 필모그래피에서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10. 관련 인물

11. 용어 및 사건



[1] 1933~1943 [2] 1943~1945 [3] 하켄크로이츠.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사용되었다. 1933년~1935년까지는 독일 제국의 국기에서 색깔 비율만 바뀐 국기를 겸용했다. [4] 독일/인구 참조. [5] 엄밀히 말하면 나치 독일에서 총통이라고 번역되는 독일 단어 퓌러(Führer)는 '지도자'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퓌러로서의 히틀러는 대통령과 수상의 권한을 모두 갖고 있었다. 덧붙여 총통이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나치의 이미지가 있지만 중국과 대만, 베트남에서는 president를 대통령이 아닌 총통(總統)으로 번역한다. [템플릿사진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B9%98_%EB%8F%85%EC%9D%BC, 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B9%98_%EB%8F%85%EC%9D%BC, https://en.wikipedia.org/wiki/Nazi_Germany [7] '그로스도이치 라이히' 한국어로는 '대독일국' 이란 뜻이다. [8] 아돌프 히틀러 총통 취임을 기준으로 하면 1934년부터 [9] 다만 이쪽은 이탈리아 왕국 이집트 왕국을 침공하였으나, 패배를 거듭하자 독일군이 개입한 것이다. 사실상 독일군 영국군의 전투였고 오히려 이탈리아군 이집트군이 보조 병력 수준이였다. [10] 제국은 Kaiserreich, 왕국은 Königsreich이다. 도이체스 라이히의 '라이히'라는 의미는 이와 다르다. [11] 지정된 건 1935년부터였는데 실질적으로 전군이 완전히 사용된 건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 부터이다. 그 전까진 독일 제국군기를 혼용했다. 당연히 공식적으로 지정된 깃발이 아니기 때문에 제외됐다. [12] 다만 가우라는 단어 자체는 고대/중세 독일어에서부터 존재했으며, 실제로 행정 구역을 지칭했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부/목/현 정도의 어감. [13] 동(東)하노버로 번역 가능 [14] 북(北)베스트팔렌으로 번역 가능 [15] 남(南)하노버로 번역 가능 [16] 독자 행정 구역인 베를린에다가 주도를 정한 게 어색해보이지만, 불과 최근까지도 경상북도 도청이 독자 행정구역인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17] 남(南)베스트팔렌으로 번역 가능 [18] 하(下)슐레지엔으로 번역 가능 [19] 상(上)슐레지엔으로 번역 가능 [20] 서부 변경으로 번역 가능 [21] Oberrhein. 상(上)라인. [22] 동부 변경으로 번역 가능 [23] 상(上)바이에른으로 번역 가능 [24] 하(下)도나우로 번역 가능 [25] 상(上)도나우로 번역 가능 [26] 히틀러 본인의 고향이다. [27] 히틀러가 분노 발작 때문에 양탄자 귀퉁이를 물어뜯었다는 소문은 1938년 9월 22일 히틀러와 체임벌린 회담에 대한 William Shirer 기자의 보도에서 기인한다. Shirer는 단지 히틀러가 신경쇠약으로 쓰러졌다고만 썼다. 물론 '양탄자 무는 자'라는 이미지는 매우 오래 지속되었다. Kershaw, Hitler, p. 169. [28] "예사롭지 않은 손"과 같은 총통의 특징은 물론 그에 대한 공적 이미지의 한 부분이기도 했고 대중 매체에서도 다루었다. 다음을 참고할 것. Kershaw, op. cit., p. 410. 이러한 이미지들이나 풍문으로 널리 퍼진 히틀러의 분노 발작 이야기들은 총통이 대중문화의 의미에서 '공인' 이었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직접 만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사람들이 총통의 공적 이미지에 들어맞는 바로 그 특징들을 강조했음을 보여 준다. [29] SRX(통합 특별보고서) 1167, 15. 10. 1942, TNA, WO 208/4161 [30] 물론 백장미단으로 대표되는 중도/우파 성향 세력이나, 1944년 7월의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으로 드러난 구체제 융커/군부들의 반대 움직임 역시 존재하였으나, 나치 정권 시기 내내 가장 뚜렷하게 저항 움직임을 펼친 세력은 아무래도 좌파 계열이었다. [31] 여담이지만, 마틴 브로샤트가 사망한 이후 브로샤트 본인이 나치 당원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다시 한 번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학계 일각에서는 브로샤트가 본인의 흑역사를 부정하기 위해서 자기 입맛에 맞춘 역사관을 제창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의 일생과 성과는 구별하는 것이 학계 내의 입장. [32] 물론 노동자 계층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 계층이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나치 정권의 집권기 내내 가장 큰 잠재적 반대 세력이 노동자 계층이다보니 이들의 주 연구 대상은 노동자 계층일 수 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포이커트의 경우에는 중산층 청소년 집단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나치 정권에 대한 중산층 청소년들의 입장은 본 항목의 하부 서술 및 스윙 청소년 항목을 참조할 것. [33] 히틀러 유겐트 간부들에게 야유를 퍼붓고 도망가는게 일방적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대범해져서 두들겨패는 경우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오죽하면 루르 지역의 나치 관구 담당자가 이를 갈면서 게슈타포에게 검거 협조를 요청할 정도. 심지어 전쟁 말기였던 1944년에는 쾰른에서 일부 청소년들이 무장봉기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34] 체제 자체에 대한 항쟁(Widerstand)과 구분하기 위해서 브로샤트의 경우는 소극적인 일탈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Resistenz라는 개념을 창안해냈다. [35] 예를 들어 상술한 백장미단이나 로테 카펠레, 슈바르체 카펠레, 마르틴 니묄러,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등. [36] 심지어 일부 일상사가들은 백장미단과 같은 나치 독일에 항쟁한 일부 인물들에 대해서 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들 역시 그저 소극적인 저항을 펼치다가 재수가 없게 나치 정권에게 시범 케이스로 걸렸을 뿐인데, 전후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위해 / 서독 정부에 의해 영웅으로 미화됐다라는 것. [37] 비스마르크에 의한 독일 제국의 성립부터 나치 독일의 등장이 역사적 필연인지 우연인지에 대한 논쟁은 독일 역사학계에서 1945년 이후 오랜 논쟁거리였다. 이를 특수여정(Sonderweg) 테제라고 부른다. [38] 군비확장선언을 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당시 독일 국방군의 무장은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오죽하면 호전적인 독일 국방부도 프랑스군의 개입을 우려해 참패할까봐 이 도박을 말리려고 했다. [39] 가짜 전쟁을 보면 히틀러의 예상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40] 진한 초록색: (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 폴란드 총독부를 포함한) 독일 본토, 초록색: 국가판무관부, 연한 초록색: 점령지( 군정청) [41] 여담으로 벨기에-북프랑스 군정청은 44년 이후에 벨기에-북프랑스 국가판무관부로 바뀌었다. [42] 히틀러의 회고에 따르면 이 기간동안 독일은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자신에게 가장 피말리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43] 이는 스탈린이 대숙청이라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들을 조용히 없애버린 대사건이 문제였다. 숙청당한 사람들 가운데 군사장교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뒤늦게 독소전쟁 초기에 공백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장교들이 없는 병사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고 졸전할 수 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스탈린의 오랜 친우조차도 "너가 대숙청 때 군사 장교들을 많이 죽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 아니야?!"라며 다그친 적도 있었다고(...) [44] 이 경우는 '설상가상'이란 표현이 적합하지 않은 것이, 삼국 동맹 조약에는 동맹국이 선제공격을 했을 경우에 대한 참전의 의무가 없었다. [45]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했다고 해서 나치 독일이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할 '의무'가 없었으며 일본 역시 독일이 연합국이나 소련과 싸우는 동안 이들 국가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특히 소련, 그러나 일본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할 '의리'도 없었다. 그러나 전쟁기간동안 미국은 독일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고려하면 미국과 전쟁을 피할 방법은 없다고 봐야한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나치 독일이 자청해서 미국에 선전포고를 해서 미국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줬으니 이는 설상가상이 아니라 스스로 수렁에 뛰어들었다고 볼 수 도 있겠다. 물론 독일은 내심 일본이 미국이 아니라 소련의 뒤를 쳐줄 것을 기대했는데 정작 일본이 어이없게 미국을 공격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상가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 [46] 이들 지역 말고도 독일 영토 대부분에서 독일군 패잔병과의 전투가 이어졌다. [47] 하지만 나치독일에 반감을 품고 있었던 저항세력과 시민들이 오히려 연합군을 돕거나 같이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미 나치 독일이 점령 했었던 영토 자체 내에서도 전투가 계속 오갔다고 한다. [48] 사실, 정치적 의미로 스탈린그라드를 차지하려던 오판 말고도 이미 전략적으로 문제가 있었는데 전선이 두 곳이나 생겨버린 것도 있고 무엇보다 히틀러는 소련 곳곳의 작은 마을까지 점령하려고 들었다가 오히려 병력을 지치게 만들었다고 한다.과거 나폴레옹도 이런 짓까지는 하지 않았었다(...) [49] 거기다 무엇보다도 히틀러가 계속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등 돌린 것도 문제였다. 러시아는 그래도 독일 내에서 자체 생산이 힘든 천연자원 등을 보내줘 전쟁에 큰 보탬이 되었는데 문제점은 이들까지 등을 돌렸으니 엄청난 실수다. [50] 오히려 일본 제국이 나치 독일에게 도움을 빌어야할 판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일본 제국이 제조업이나 군수생산 물품도 모두 수작업(?!)이었기에 미국에게 오히려 뒤떨어진 처지고 진주만 기습을 받았다고 해서 미국의 항공모함들 중 아직 가동할 수 있는 것들을 하루 밤새서 다시 원상복구시키는 위엄에 자국 남자들은 스스로 자원입대해서 일본군들을 쓸어버리겠다고 일심단결해서 싸우겠다고 꼭지를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51] 이래저래 일본도 자국의 무기가 미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는지 멀리서 나치 독일의 지원물품을 받으려고 잠수함이나 어선으로 위장한 군수물품을 실어나르려고 애를 썼으나 순순히 봐줄 미국군이 아니었고, 오히려 미국에게 들통이 나서 미국의 잠수함과 호위함의 함포사격으로 지원을 차단시키는 바람에 일본 제국은 그야말로 바다 한 가운데에서 미국에게 고립되어버린 동맹국이 되어버렸다(...)도움이 안되네 [52] 항복을 통해 서방연합국과의 전쟁을 일단 끝내고 동부전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소련군을 밀어내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추진하려던 듯하다. [53] 다만 독일의 계획대로 서방 연합군과 단독으로 강화를 맺고 동부전선에 모조리 쏟아붓는다 해도, 항복 시점에서 독일군 전력은 비전투병, 경찰인력까지 전부 합쳐도 100만이 채 되지 않았고, 종전 시점에서 소련군의 총 병력은 1000만에 가까웠다.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54] 제2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가 100% 나치 독일에 의한 것은 아니다. [55] 소련은 승전국이라 보상이라도 받았지, 전범국 독일은 그야말로 망했어요... [56] 독일의 잔혹 행위에는 못 미치지만 현재 독일 동부국경 동부의 발칸 발트해 연안 도나우 강변, 폴란드, 러시아 등지에 살던 독일계 주민 1,300만 중 약 200만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57] 니얼 퍼거슨 저 '증오의 세기', 소련군이 독일인에게 점령지에서 독일군이 했던 짓의 단 10%만 해도 '독일인은 다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58] 프로이센 왕국 영토 전체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동프로이센, 서프로이센을 합친 의미 [59]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재 독일 국경 밖에 살다가 추방된 실향민은 1200~1600만명에 달했다. [60] 유럽 연합 vs. 러시아의 구도로 갔는데 핵세례를 맞는다던가... [61] 참고로 MP3 플레이어는 한국의 '새한미디어'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62] 단적으로 전투기만 봐도...현재 독일군이 전차나 다른 육상병기는 자체 개발해서 쓰지만 전투기는 아닌 것만 봐도 답 나온다. 그러나 이는 독일이 독자개발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기술, 자본 등)이지 유로파이터 타이푼처럼 유럽 합작 전투기는 잘만 만들어내고 있다. [63] 노령의 프로이트 본인을 직접 건드리진 않았지만,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가 체포되어 하룻동안 심문을 받은 후 풀려난 일이 있었다. [64] 동상 철거에 반대한 라이프치히 시장 카를 괴를데러는 시장직에서 짤렸다가 후에 발키리 작전에 가담한 후 발각, 처형당한다. [65] 니얼 퍼거슨 저 <증오의 세기> 참조. [66] 핵무기를 만들어낸 맨해튼 프로젝트에 종사했던 상당수의 고급 과학자들이 바로 나치의 탄압으로 인해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들이다. 결론적으로 2차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67] 세계 1차대전 이전에 이미 미국은 경제력에서 유럽을 뛰어 넘은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서 있었다. 그저 고립주의 정책으로 외부에 그것이 표출되지 않았을 뿐. [68] 일단 해외 투자와 배상금 경감으로 바이마르 공화국이 어느정도 숨을 돌리나 했는데 하필 대공황이 닥쳐서 망했다. [69] 물론 스탈린이 통치하던 소련이라면 하위호환으로 비교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스탈린은 얼마후에 죽었고 소련 중후반기는 절대 파시스트와 비교될 전체주의 체제가 아닌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했다. [70] 물론, 이건 그들만의 주장이다. 히틀러가 다스렸던 나치 독일은 그나마 독일 국민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을지는 몰라도 전쟁으로 인해 많은 국력을 소모한 데다가 많은 국가들을 적으로 돌려 포위되어 수도까지 점령당하는 와중에도 항복은 하지 않았고 그 대가는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다. 거기다 전쟁 후에는 독일은 연합국에 따라 분할되었고 홀로코스트라는 비인륜적인 짓을 저질러서 한 동안 많은 국가에게 눈초리를 당해야 했던 것과 동시에 독일 국민들 스스로 반성의 태도를 보이기 전까지는 통일도 꿈도 꿀 수 없었다. 차라리 지금의 독일이 더 전성기라고 봐도 좋은데 이들의 주장은 그저 히틀러의 매력에 심취해서 현실을 왜곡한 주장 밖에 들리지 않는다. [71] 핀란드는 소련에게 먼저 선빵을 맞아 어쩔 수 없이 독일과 손잡아야 했고 불가리아는 사실상 독일에 종속되다시피 하여 히틀러의 추축국 참전 요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72] 특히 불가리아는 이러한 점 때문에 자기 나라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의한 전쟁 피해국이라고 주장하며 독일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73] 상당수 중동 아랍 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편을 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74]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바로 독립한 게 아니라, 아프리카의 경우 그러부터 15년이나 그 이상이 지난 1960년대가 되어서야 독립한 점을 보면 나치가 제3세계 독립에 도움이 되었다고는 해도 그렇게까지 크게 도움이 되었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근데 만약 나치가 초반에 바로 깨졌으면 60년대에도 독립한 나라들도 그 때 독립 못했을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75] 마하트마 간디는 히틀러에게 '전쟁하지 마'란 내용의 개인적인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었다. [76] 헌데 아이러니한 건 같은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 피해자이긴 해도 제2차 대전 전후 독일 정부로부터 사과와 피해배상을 받았던 유대인과 달리 집시는 그마져도 못 받고 있다. 자세한건 집시 문서 참조. [77] 중남미의 경우 20세기 후반 냉전기의 독재 정권들이 나치보다는 미국, 자유진영과 연계되었던 정권이 더 많았고, 미국과 연계된 독재 정권들의 실책이 더 컸기 때문에 나치보다 미국을 더 혐오할 가능성이 높다. [78] 사실 중국하고 독일은 상대적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악감정은 별로 없다. 오히려 중일전쟁 초반기에는 나치 독일이 중국에게 고문관 파견과 무기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79] 여기서 괜히 러시아 눈치를 안 보고 나치를 옹호했다가는 상임이사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어서 외교적으로 매우 곤란해지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80] 유럽이 다른 대륙보다 월등히 발전히 빨랐기 때문에 지금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가 선진국이라는 것을 들어 은근히 우월감을 고취시킨다거나, 약탈과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인 대항해시대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하는 등. [81] 이를테면 위르겐 하버마스가 말한 헌법적 애국주의(헌법을 사랑하는 것이 곧 애국이다) 등은 내셔널리즘과는 그 방향이 많이 다르다. [82] 예: 아돌프 히틀러 → 알베르트 힐러. [83] 물론 이것은 히틀러를 도와주는 척 했던 라스푸틴이 헬보이를 소환하기 위한 것이었다. [84] 게임 자체와 별개로 나치가 전쟁에서 이긴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묘사도 매우 충실하다. 가상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둘러볼 가치가 있는 게임. 대중가요, 일반 시민들의 대화 내용과 그걸로 짐작할 수 있는 가치관, TV광고, 신문기사, 도시의 모습 등에서 수준 높은 완성도의 가상 세계관을 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 건 순수한 "기술/공학" 말곤 없는 암울한 세계. [85] 런던 감시자 첫 격파 시 해금되는 도전과제가 London uprising(런던 폭동)이다. 런던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셈. [86] 레벤스라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신들의 조국에서 지속적 저항으로 세기말 무법천지가 된 이쪽 세계보다 훨씬 넘사벽으로 나치가 강한지라 슬라브족과 키릴 문자는 저승에서나 들을 언어가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그 잘난 위대한 게르만족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당장 해당 게임의 최정예 보병 데스헤드 코만도의 훈련캠프가 위치한 곳이 시베리아다. 다만 하우스 오브 라이징 선이란 트레일러에서 1960년이란 문장이 나오며 붉은 광장으로 추정되는 곳에 폭동을 벌이는 시민들을 보아선 완전히 슬라브족과 키릴 문자가 멸종했다고 볼순 없다. 적어도 작은 항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이스터 에그로 나온 대체역사 미니게임 울프스톤 3D에서는 소련군이 비록 제4의 벽 너머이지만 최초로 언급(원작의 SS 엘리트 가드 포지션이다.)되어 3편에서 꽤 비중 있게 등장할 듯하다. [87] 다만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정식 속편이 아니라 외전작이므로 주류 스토리와는 관련 없다. [88] 나치를 쏴죽이는 게임을 하다가 하켄크로이츠를 보고 경악하는 등 나치였다는걸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89] 예를 들어 철십자 군단, 쿠로모리미네 여학원 등의 경우이다. 이들은 진짜 나치가 아니므로 등재되지 않았다. [90] 정확히는 독일인들을 고양이로 표현했다. [91] 나치 독일 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동로마 제국 특징 또한 보유하고 있다. [92] 사실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실행되었던 제 3의 물결이라는 이름의 사회실험을 모티브로 했다. [93] 일본 제국의 특징 또한 보유하고 있다. [94] 독일 모티브로 한 전체주의 경찰 국가로 소설을 보면 완전히 나치 독일을 모티브로 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회 체제나 문화가 일치하는데, 문제는 이 소설이 나치 독일이 탄생하기 20년전인 1918년에 출판되었다. [95] 현실 세계의 미국과 다른 나라로 하는 짓은 오히려 나치에 가깝다. 그리고 이세계의 중국은 일본 제국이 모티브다. [96] 이름만 다를 뿐 작중 행적은 사실상 나치랑 판박이이다(...) 독일 해군 소속 함정들로만 이루어진 건 물론이요, 심지어 동맹국인 사쿠라엠파이어 또한 일본제국이 모티브이다 [97] 독일을 중심으로 독일어권 여러 국가들(토메니아(Tomania, 위대한 독재자)에 나오는 국가. 모티브는 독일.), 메카니아(Meccania, 오웬 그레고리의 책 'Meccania: The Super-State' 나오는 전체주의 경찰국가. 모티브는 역시 독일.))을 합병하고, 폴란드, 오스트리히(Osterlich, 위대한 독재자)에 나오는 국가. 모티브는 오스트리아)를 침략하여 강제 합병하며, 박테리아(Bacteria, 위대한 독재자)에 나오는 국가. 모티브는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어 만든 연합국가다, [98] 2차 대전 시절 독일의 공수부대가 모티브다. [99] 기후와 문화는 현실의 영국과 흡사하며, 국가의 지리적 위치와 제식 병기류는 옛 독일(제2~3 제국)에서 따온 듯 하다. [100] 알 카포네 아돌프 히틀러에서 모티브를 따온 아르투로 우이가 시카고에서 세력확대를 하는 내용의 희곡이다. [101] 나치 독일과 소련, 프랑스, 영국 등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102] 스타워즈 전체에 혐나치 요소가 있다. 악역들은 뭔가 나치풍이라고. 팰퍼틴황제와 아미티지 헉스는 아예 히틀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거기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7에 헉스가 연설하는 장면은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카더라 통신으로는 네이버 사전에 스톰트루퍼(storm trooper)리고 치면(특히 나치스의)돌격대(...)라고 뜬다. 은하 제 3제국 [정확히] 말하면 1차 대전시기의 프로이센으로 시작해서 작품 후반으로 갈수록 나치 독일에 가까워진다 [104] 독일 제국의 특징 또한 있다. [105] 다만 쿠로모리미네는 숙청이 존재하는 프라우다라든가 반자이돌격만 외치는 치하탄과 달리 전차도복과 학원함, 전차, 전술만 나치 독일의 것을 사용했다. 진짜 나치 풍의 쿠로모리미네가 2차 창작에서 가끔식 나오긴 하지만. [106] 나치의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에서 레퍼런서를 따왔다. [107] 취소선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들의 사상은 매우 유사하다. [108] 93년 독일에서 만든 것과 2013년 러시아에서 만든 버젼에서 둘다 독일군 역할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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