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4 17: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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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분파3. 역사4. 5. 상징
5.1. 적기(Red Flag)5.2. 장미(Rose)5.3. 세 화살표(Three Arrows)5.4.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5.5. 적기가(The Red Flag)
6. 영향7. 미래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8. 오해
8.1. 사회주의 = 공산주의?8.2. 사회주의는 모든 사유재산을 부정한다?8.3. 사회주의는 시장경제의 반대말?8.4.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8.5. 사회주의는 종교 상극이다?8.6. 파시즘 나치즘은 사회주의인가?8.7. 사회주의는 실패했다?8.8.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8.9. 사회주의는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9. 대한민국의 사회주의10. 관련 어록11. 관련 인물
11.1. 대한민국11.2. 그 외 국가
12. 정당
12.1. 대한민국12.2. 그 외 국가
13. 단체
13.1. 대한민국13.2. 그 외 국가
14. 역사적 사건
14.1. 대한민국14.2. 그 외 국가
15. 국가16. 관련 사이트17. 관련 문서

1. 개요

사회주의(, Socialism)는 굉장히 의미가 다양하게 쓰이는 단어로, 좁은 의미로는 '생산 수단의[1] 공유화'[2]를 주장하는 이념이며[3] 넓은 의미로는 사회민주주의, 자유사회주의 등의 사회주의 시스템을 포기한 분파들 또한 포괄한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아나키즘사회로 나아가는 공산주의 사회 전의 과도기적 단계다.

두산백과에서는 사회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회주의란 말은 다음 다섯 가지의 각기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 제도를 수단으로, 자유· 평등·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는 사상과 운동을 뜻하는 경우(고전적 사회주의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②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라고 하는 제도 자체만을 가리켜 뜻하는 경우
③ 사회주의의 목적만을 가리키는 경우(자본주의보다 한층 훌륭한 사회를 뜻하는 경우)
공산주의의 첫째 단계 또는 보다 낮은 단계를 뜻하는 경우( 마르크스주의의 따른 변증법적 유물론으로써 쓰일 경우)
민주사회주의적 용법(민주주의적 방법에 의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완성함으로써 사회를 개조하려는 사상 및 운동 또는 민주주의의 최고의 형태를 뜻하는 경우) 등이다.
두산백과, 사회주의 항목 중.

아주 넓게는 '사회주의'라는 말이 개인주의와 반대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공동체주의와 혼동될 우려가 있고 특히 공동체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화주의자들 대부분은 사회주의를 자칭하지 않는다.

1753년 프랑스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레제 마리 데샹(Léger Marie Deschamps)이라는 수도자가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사회성이 있음을 가정하는 자연법의 근대 이론가들(계몽주의자)을 지칭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물론 오늘날의 사회주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의미고,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은 프랑스의 피에르 르루가 처음이다. 정확히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연대는 알려지 있지 않으나 1826년 이전으로 보인다.

사적인 욕망과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와 개인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생기는 부작용,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폐단인 부의 극단적 독점, 인간의 소외, 비인간적 노동환경 및 금권정치 등의 반대급부로서 생겨났다. 각 이론이나 계파, 계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반대[4]를 기본적인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이견과 방식이 있기에 19세기 전후로 수많은 분파가 생성되었다. 세세한 차이점이 있으나 대다수의 사회주의는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생성된 마르크스주의를 그 뿌리로 한다.

사회주의는 크게 공산주의 시장사회주의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더불어 자본가-노동자 간의 관계를 없애고 모두가 공동체를 위해 노동하고 일한 양에 따라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시장 경제를 허용하는 것이다.

2.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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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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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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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징

5.1. 적기(Red Flag)

파일:빨간색 깃발.svg
사회주의와 그 분파들의 상징인 적기.

적기는 '붉은 깃발'로 1800년대경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현재는 사회주의의 상징 깃발이다. 적기의 내력에 대해서는 문서 참고.

5.2. 장미(Rose)

파일:external/anticap.files.wordpress.com/socialdemocracy.png
사회주의 단체들의 국제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상징이다.

5.3. 세 화살표(Three Arrows)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40px-Antifascist_Circle_BW.svg.png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의 민주주의 수호조직인 국기단의 상징이 그 기원이다. 화살표가 3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왕당파, 극우, 공산주의(정확히는 스탈린주의)를 타도한다는 의미이다. 이후 이 화살표들은 반(反)파시즘 투쟁에 나서는 안티파 조직들의 상징으로도 쓰이고 있다.

5.4.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민중가요로 지금도 사회주의자들과 좌파 사이에서 널리 불러지고 있다. 또한 과거 소련의 국가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5.5. 적기가(The Red Fla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적기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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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민요 O Tannenbaum의 선율을 따라서 영국에서 작곡된 민중가요로 영국 사회주의자들과 좌파 사이에서 유명하다. 영국 노동당에서는 이 노래가 전당대회 등의 행사마다 계속 불려지고 있다.

6. 영향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닌 '개량적' 사회주의[5] 자본주의가 완전히 양립불가능한 체제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사회주의는 19세기 무렵부터 노동운동의 발달사와 함께 발달했으며, 어느 정도 노동법과 같은 부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사회 운동에도 영향을 끼치며 여러 족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시도함으로써 자본주의 내에서도 자본주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심하도록 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주의의 기표를 무한히 확장시켜서, 단순히 사회적 요소만 들어간 것만으로 사회주의의 영향이라고 주장한다거나, 케인스주의 중상주의와 같이 국가 경제 개입을 찬성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의 영향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식으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6] 왜냐하면, 소위 우파 이데올로기로 간주되는, 사회주의 그 자체보다도 훨씬 역사가 오래된 중상주의나 공화주의적 맥락에서도, 국가의 번영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최소한의 온정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기 때문이다.

6.1. 복지 노동운동

사회주의는 노동운동 등의 사회 운동과 급진적, 진보적 운동과 관련되어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8시간 노동시간, 아동의 노동 방지, 주5일 근무제 등은 사회주의적 이념의 확대, 이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격렬한 노동운동의 결과물로 나타났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운동 등을 통하여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하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들고자 노력해 왔고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7] 또한 사회민주주의의 경우에는 북유럽에서 사회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복지국가의 기틀을 닦았다. 그래서 이런 영향으로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 등은 지금도 유럽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8]

7. 미래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관점에서는 최근의 몇 가지 흐름에서 사회주의에 유리한 동향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한 전문적 글을 링크에서 볼 수 있다. 관련 글 링크)
  • 미래에 모든 생산을 기계가 담당하게 되고 인류의 저출산 기조가 가속화되어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풍부하게 공급된다면, 미래 사회는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자원의 희소성 하에 생산요소를 투입해서 이윤을 내기 위한 것인데 그럴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든 재화가 시장에서 굳이 거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남아돈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전제부터가 훼손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소비자는 제한된 상황에서 합리적 선택을 할 필요도 없고,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생산과 소비의 영역은 사회주의 체제에 맡기고 인간은 그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예술적, 학문적인 활동에 몰두하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것이 현실화되려면 핵전쟁 등의 큰 사건으로 인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체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 되며 꾸준히 지구적 저출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기술의 기반이 무너진다면 이러한 사회는 몇백 년은 뒤로 밀려날 것이다.
  • 위의 낙관적인 전망과 다르게 기술의 발전과 생산력의 증가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일자리의 위협으로 나타난다. 없어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낙관주의도 있지만 일반인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로봇 등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고실업과 그로 인한 수요 부진, 불황과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들이 있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도 점점 새로운 수익 원천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고 한계이익이 0으로 수렴함에 따라 플랫폼의 독점을 통한 진입장벽에 의존하지 않고는 영업을 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 사회주의적 관점에서의 대안은 엄청난 생산력을 더 이상 사적 소유에 맡겨 두지 말고 사회적 소유로 하는 것이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듯,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같은 기업들의 주식을 국가가 국민에게 양도불가능한 주식으로 무상배분하고 국민들은 그 배당금으로 기초적인 생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남아도는 시간은 추가적인 소득을 제공하는 고급일자리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거나 공공일자리나 인공지능이 못하는 잡일을 하면서 소소한 부수입을 얻거나 아니면 소득과 무관하게 스스로 의미를 둘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취미 활동이나 예술 활동, 자원봉사나 스스로 의미있다고 여기는 공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면서 지낼 수 있다. 물론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공상일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에 대해 기업들의 저항과 국민들의 거부감을 극복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국가 간의 무한경쟁의 상황에서 특정 국가가 이와 같은 정책을 단독으로 취한다면 국가 경제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그런 움직임들은 나타나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의 예로, 젊을 때 짧고 굵게 돈을 벌고 경력을 쌓은 후에 소득과 관계 없이 자신이 의미를 둘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정책적인 차원의 예로,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은 사회의 높아진 생산력의 혜택을 전 국민에게 배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부결되긴 했지만 스위스에서 전국민에게 무조건 30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친 일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이상이 전혀 비현실적인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을 주었다. 핀란드는 실제 매월 71만원의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 반면 민영화의 확대, 법인세의 인하와 같은 흐름도 있어서 하나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예단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극화를 심각한 도전으로 여기고 이에 대처하려는 여러 노력들은 부분적으로 사회주의적 처방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수주의적 관점에서는 체제에는 문제가 없고 규제 완화, 창조 경제 등으로 기업들이 더 잘 돈을 벌 수 있게 도와주면 일자리도 많아지고 경제도 성장하고 격차는 커질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의 소득도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늘어나게 될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아직 문제의식은 많지만 사람들에게 납득이 되는 방향성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여겨지며,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960년대 나온 SF물 스타 트렉이 이미 이런 미래를 다뤘다. 원료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는 물질재조합장치라는 치트급 기술력의 등장으로 인해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잉여생산물이 썩어넘치게 되고 결국 자본주의가 붕괴한 미래상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세계구급 전쟁도 벌어졌지만 작중에서 다루는 시점은 주로 그 이후 사회가 안정화된 때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풍요롭고 편하게 살고 있다. 다만 물질재조합장치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고 경영/자산/노동 등의 개념과 사회적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므로 완전한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아니다.

8. 오해

[9]

8.1. 사회주의 = 공산주의?


공산주의는 사회주의의 하위 개념이다.

쉽게 우리는 공산주의가 사회주의라는 거대한 틀 아래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사상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반적으로는 공산주의가 사회주의의 하위 개념이지만 카를 마르크스의 이념을 이어받은 레닌은 "사회주의는 공산주의가 되기 전의 단계이며, 사회주의가 절정에 달하면 국가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사멸되어 노동자, 농민들의 자유로운 결사에 의거한 코뮌주의 사회가 도래한다." 라고 정리했다.

또한 사회주의 아래에는 공산주의만 있는게 아니라 민주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등이 존재한다.

참고로 우경화된 네이버 뉴스 댓글창에는 이 개념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보인다. 이미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고 이제는 공산주의 국가로 전향하는 중이다!라는 선동이 매우 많은데, 애초에 말이 안되는 소리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것은 공산주의는 사회주의로 이행하며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고, 결국 목표는 코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애초에 좌파면 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사람에게 배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좌파를 싫어하는 전원책 변호사도 '우파와 좌파는 사회의 양 날개로서 공존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의 생각이 매우 허튼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8.2. 사회주의는 모든 사유재산을 부정한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주장하지, 사유재산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꽤나 유서깊은 오해로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에서도 이것에 대해 지적할 정도였다.[11]

이는 공산주의에서 이해하는 사유재산과 일반적으로 정의되는 사유재산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다. 사유재산제도의 폐지를 주장한다는 공산주의를 했던 소련에서도 생산수단은 국유화되었지만 엄연히 소비재같은 재화를 사유하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되었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의 극심한 빈부격차만 봐도 사회주의가 사유재산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12]

8.3. 사회주의는 시장경제의 반대말?

시장경제의 반대말은 계획경제이다. 자본주의/사회주의는 생산기반에 대한 소유를 기준으로 하고, 시장경제 계획경제는 재화의 배분이 기준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는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급격한 경제성장기나 전면전 등의 위급한 상황이라면 계획경제, 배급제가 실시되기도 하고, 토지개혁 등 사유재산의 몰수 및 분배가 벌어지기도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흑묘백묘론, 도이머이, 장마당(시장) 등 시장경제가 도입되기도 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큰형이었던 소련이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계획경제를 유지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 참고로 그 소련은 영국보다도 더 빠르게 배급제를 중단했다.

또한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와 같은 사회주의 이념들은 시장 경제를 인정하며, 자본주의와의 양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8.4.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반대말?

한국과 미국 등 반공 성향이 강한 국가들에서는 전체주의 및 공산주의와 혼동하여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반대 의미로 아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민주주의의 반대는 국민에게 주권이 없는 모든 정치체계[13]를 말하고, 자유주의의 반대는 권위주의이며, 사회주의의 반대는 경제적 자유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체제에 대한 이념이고 사회주의는 경제에 대한 이념이다. 한국어의 경우, 언어학적으로 보면 애초에 정치체제를 나태내는 Democracy의 번역어로써 더 적절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정이다. 보통 ~주의로 끝나는 영단어는 ~ism으로 끝나는 점과 정치체제를 나타내는 단어인 귀족정, 과두정과 같은 단어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마치 이념처럼 들리는 민주주의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이 굳어졌기 때문에 한국어에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비교되어 더 헷갈리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의 반대라는 오해가 생긴 이유는, 가장 유명한 사회주의 이념인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계급투쟁과 폭력혁명,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독재를 위한 공산당 일당독재를 추구하였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선택한 제2세계의 국가들이 전부 전체주의적인 독재국가였는데, 제1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이를 사회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선전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정의하고, 이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사회주의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나 아나키스트들은 진짜 민주주의 사회주의가 실현되어 노동자들이 더이상 자본에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전위대의 도움 없이 산업을 굴릴 수 있는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 그리고 의회등의 대리인을 세우는 것이 아닌 인민들이 스스로 의견을 내고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사회가 실현돼야만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즉 이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자유민주주의도 둘 다 자유도 민주주의도 아닌 자본과 국가의 억압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따를 것을 주장하는 사회주의도 존재하는데, 바로 개혁적 사회주의이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 유럽공산주의 등이 이념들을 포함안다. 이들은 혁명적 사회주의의 계급갈등을 통한 폭력혁명과, 공산당 일당독재에 반대하며 거리를 둔다. 또한 이들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한 집권과 정치참여를 주장한다. #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민주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를 수정주의, 개량주의라고 비난하였으며, 부르주아 반동적인 기회주의 사상으로 여겼다. 정통 마르스크주의자들은 민주적인 선거와 의회정치 자체를 부르주아의 자본에 의해 놀아나는 괴뢰기구로 보고 있고, 심지어는 부르주아 독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일:헌법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근거 조항.jpg

한편 2011년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2011년 9월 국감 진행중) 이때 격렬한 논쟁이 된 것이 바로 이 부분.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없으며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요소를 각각 담은 조항이 있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유사 표현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자동으로 자유민주주의가 도출된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8.5. 사회주의는 종교 상극이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창안한 카를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을 따르는 마르크스주의 지지자들은 실제로 종교와 상극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분파인 사회민주주의 등에서는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급진적인 분류 무정부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은 분명히 반종교적이지만 온건한 종교적 사회주의 역시 존재한다.

8.6. 파시즘 나치즘은 사회주의인가?

나치나 파시스트들의 사상을 민족사회주의로 일컫는데, 비스마르크 시절의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와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전쟁으로 엉망이 된 국가의 재건을 위한 기치로서 국가를 향한 개인의 희생과 계획경제 등을 주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주의라고 하면 대개 마르크스주의를 떠올리고, 파시즘이 초기에는 좌파적 성향이 있었지만 점차 우경화 되었고, 마르크스주의를 반대하였기에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흔히 오해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추구하는 사상이며,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의 일종일 뿐이다. 마르크스 본인부터가 공상적 사회주의나 봉건적 사회주의, 부르주아 사회주의라고 비판한 다양한 사회주의가 존재했다. 파시즘은 개인주의나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이었으며, 집단주의적 전체주의적 목표를 추구하였기에, 파시즘 역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목표로 하였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전적인 오역과 몰이해로 만들어진 사례이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봉건적 사회주의, 부르주아 사회주의(보수적 사회주의)[]보수공산주의와는 다른 표현이다. 보수공산주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이들을 말하며 마르크스주의를 수정없이, 본연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쓰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를 우익 사회주의(Right-wing socialism)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파시즘과 연관하는 사람은 없다. 이를 연관시킬려는 표현은 맑스가 사용한 적 없는 표현이다. 설사 파시즘과 저 단어를 연관시킨다 하더라도 봉건적 사회주의와 부르주아지 사회주의는, 맑스가 말했듯이 사회주의가 아닌 사이비 사회주의 일뿐이며 말 그대로 이름에만 사회주의가 들어간 우익 공동체주의에 불과한 단어이다.

즉 애초에 우익 사회주의란 단어 자체가 맑스가 쓰지 않은 단어이며[15] 나아가서 그 누구도 저 둘을 파시즘에 연관시키지 않는다. 즉 애초에 파시즘 사회주의가 아니며, 나아가서 애초에 공동체적 목표를 추구했다는 것이 생산수단의 공동소유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기업가가 생산수단을 가지는데 이게 어떻게 사회주의적 공동소유가 되는가? 나아가서 그럼 파시즘보다도 직접적으로 사회화를 하자고 하는 지공주의는 사회주의 이념인가?

출처: Huerta de Soto, Jesús. Socialism, Economic Calculation and Entrepreneurship. Fourth edition. Glos, England, UK; Northampton, Massachusetts, US: Edward Elgar Publishing, 1992, 2010. pp.80 - 90
Viereck, Peter. 『Conservative thinkers: from John Adams to Winston Churchill』 pp.74 - 75

맑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들의, 그리고 왕당파들의 사회주의를 2가지로 나눴는데 하나는 부르주아 사회주의(Kleinbürgerlicher Sozialismus)와 하나는 봉건적 사회주의(Der feudale Sozialismus)로 나눴는데 전자는 흔히 말하는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 또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말해지는 이들이며 모든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로 만들게 하자는 주장이며 후자는 전통적인 기독교 반근대주의적 전통주의 왕당파를 애기한다. 그리고 후자는 스스로가 사회주의를 거부했다. 아니 애초에 이들은 근대가 낳은 산물 즉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중앙집권 그리고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근대적 산물을 거부했다. 실제로도 이들은 프롤레타리아보단 농민에 중심을 줬고, 더 나아가서도 전통적인 장인식 도제제도를 옹호한 이들이다. 아나키스트였던 프루동조차도 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아래와 같이 평했다.
The Socialistic bourgeois want all the advantages of modern social conditions without the struggles and dangers necessarily resulting therefrom.
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은 투쟁과 (삶의)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 현대사회를 만들길 원한다.
The Philosophy of Poverty
봉건 영주들은 자신들의 착취가 부르주아지의 착취와는 달랐음을 역설하지만, 그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완전히 다른 정세와 조건 밑에서 착취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 자신들이 지배할 당시에는 현대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현대 부르주아지야말로 자신들의 사회 질서가 낳을 수밖에 없는 산물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한 자신들의 비판이 갖고 있는 반동적 성격을 감추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르주아지를 비난하는 주된 이유는, 부르주아지의 지배 밑에서 낡은 사회 전체를 산산이 부숴 버릴 계급이 발전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일반을 만들어 낸다는 점보다 그들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그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치적 실천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강압하는 모든 대책에 동참하고 있으며, 일상 생활에서는 자신들의 모든 미사 여구와는 반대로 공업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황금 사과를 주워 모으며 신의와 애정과 명예를 버리고 양모와 사탕무와 술의 판매로 이익을 누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2>.

성직자가 언제나 봉건 영주와 손을 잡았던 것처럼, 성직자의 사회주의 또한 봉건적 사회주의와 손을 맞잡고 있다.

기독교적인 금욕주의에 사회주의적 색깔을 입히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기독교 또한 사적 소유, 결혼, 국가를 극구 반대하지 않았던가? 기독교는 그 대신에 자선과 구걸, 독신과 금욕, 수도원 생활과 교회를 설교하지 않았던가? 기독교[18] 사회주의는 성직자가 귀족들의 분노에 끼얹어 주는 성수(聖水)일 뿐이다.
-중략-
그러나 그 적극적 내용을 살펴보면, 이 사회주의는 낡은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 및 낡은 소유 관계와 낡은 사회를 부흥하려 하거나 또는 현대의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들을 낡은 소유 관계의 틀 속에, 즉 현대의 생산 수단과 교환 수단에 의해 이미 파괴되었으며 또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낡은 소유 관계의 틀 속에 또다시 억지로 밀어 넣으려한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경우이든 그것은 반동적이며 또 공상적이다.

동업 조합 형태의 매뉴팩처와 가부장적인 농업, 이것이 이 사회주의의 마지막 약속이다.

이러한 노선이 좀더 발전하게 되자 그것은 결국 비겁한 푸념에 빠지고 말았다[19].

경제학자, 박애주의자, 인도주의자, 근로 계급의 처지 개선론자, 자선 사업가, 동물 애호 협회원, 금주 협회 조직자, 각양 각색의 보잘것없는 개량주의자들이 모두 이에 속한다. 이러한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완전한 체계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적 부르주아들은, 현대 사회 존립의 여러 조건은 유지하되 이 조건들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투쟁과 위험만은 없애려 한다. 그들은 현대 사회를 유지하되 그것을 변혁하고 분해하는 요소만은 없애려 한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없는 부르주아지를 갖고 싶은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물론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를 최상의 세계로 생각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이러한 편의적인 관념을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춘 체계로 완성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 사회주의체계를 실험하여 새로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권고하고 있으나, 사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현존 사회에 머물러 있되 부르주아 사회를 그 어떤 증오스러운 것으로 보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사회주의 가운데 덜 체계적이기는 하지만 더 현실적인 또 하나의 형태가 있는데, 이것은 노동자 계급에게는 이러저러한 정치 변혁이 유익한 것이 아니라 오직 물질적 생활 조건이나 경제적 관계를 바꾸는 것만이 유익하다는 사실을 논증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혁명 운동에 염증을 느끼도록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가 말하는 물질적 생활 조건을 바꾸는 것이란 혁명으로만 달성될 수 있는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의 폐지가 아니라 이 생산 관계의 기반 위에서 실현되고 따라서 자본과 임금 노동 사이의 관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는, 고작해야 부르주아지의 지배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부르주아지의 국가 운영을 간소화하는 행정적 개선을 뜻한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웅변가의 단순한 수식어가 덧붙을 때에만 더욱 그럴듯한 표현이 된다.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자유 무역!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보호 관세!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독방 감옥!

이러한 것이 부르주아 사회주의의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단 하나의 결론이다.

부르주아 사회주의란 한마디로, 부르주아는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부르주아라는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공산당 선언 제3장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마르크스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차이를 살펴보자면, 파시즘에서는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주체가 노동계급의 평의회인 소비에트나 코뮌이 아니라 민족공동체(Volksgemeinschaft)였으며, 계급과 국가가 사라지고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르게, 사회유기체적 입장에서 민족구성원 각자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위계적 질서의 공동체를 추구한다.

전체주의 이론에서는 개인주의와 전체주의라는 대립적 구도속에서,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모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에 반대하는 전체주의적 본질을 가진 사상이라고 본다. 전체주의론에서는 공적인 영역이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여 경제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를 가진 사회주의가 발전하여 점차 정치적인 자유까지도 억압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파시즘이라고 본다. 즉 전체주의 이론에서는 사회주의 발전의 최종단계가 파시즘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사회주의의 예측하지 못한 결과들에 대한 오래된 근심들이 다시 한번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곳으로부터 강한 목소리로 제기되었다. 정반대의 예상으로 자신의 주제에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시즘'(fascism) 과 '공산주의'(communism) 체제 아래의 조건들이 여러 측면에서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데 관찰자들마다 놀라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과 여타 나라의 '진보주의자들'(progressives) 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정반대의 양극을 대표한다고 여전히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독재들이 동일한 경향성에 따른 결과가 아닌지 자문하기 시작하였다.
공산주의자들조차 레닌의 오랜 친구인 맥스 이스트만(Max Eastman) 과 같은 이들의 증언을 접하고 어느 정도 그 신념이 흔들렸었다. 이스트만은 "스탈린주의는 파시즘보다 낫기는커녕 더 열악하며, 더 무자비하고, 야만적이며, 불공정하고, 비도덕적일뿐더러 반민주적이며, 어떠한 희망이나 양심의 가책에 의해서도 속죄될 수 없으며" 또 "스탈린주의는 차라리 초 파시스트주의(super-fascism) 라고 묘사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트만이 "스탈린주의는,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스탈린 계획의 일부로 스탈린이 의존했던 국유화와 집단화라는 비록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긴 하나 불가피했던 방식이 성취되었다는 의미에서 사회주의이다"라고 인식하는 것을 보면, 그의 결론은 분명히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이스트만의 경우는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예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러시아 실험의 관찰자들 중에서 유사한 결론에 도달한 최초의 관찰자도 아니며 유일한 동정적 관찰자도 아니다. 몇 년 먼저, 미국 특파원으로 러시아에 12년 머물렀던 챔벌린(W. H. Chamberlin) 은 그의 모든 이상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목격하고,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에서 관찰한 것들을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요약하였다. "사회주의는 최소한 시작단계에서는 자유의 길이 아니라 독재와 반독재 간 투쟁의 길이며, 가장 치열한 내전으로 이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민주적 방법에 의해 성취되고 유지되는 사회주의란 명백히 유토피아의 세계에서나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작가 보이트(F. A. Voigt) 는 외국특파원으로 유럽에서 사상의 진전에 대해 수년간 밀접하게 관찰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맑스주의는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모든 본질에서 맑스주의는 파시즘과 민족사회주의이기 때문이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 박사도 다음과 같은 확신에 도달하였다. "우리가 속한 세대는 이제 경험으로부터 사람들이 자유로부터 후퇴하여 자신의 일들을 강제적 조직에 의존할 때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배우는 중이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보다 풍성한 삶을 약속하고 있지만, 그들은 실제에서는 그것을 단념하고 있다. 조직화된 명령이 증가하면서, 목적들의 다양성은 통일성에 자리를 내주고 만다. 그것이 계획된 사회의 인과응보이며, 인간사에서의 권위주의적 원칙이다"
이 문제에 대해 판달할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 썻던 이와 유사한 더 많은 글들은 최근의 출판물들에서 뽑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은 권위주의적 국가들의 시민으로 전환기를 살았으며, 소중히 여기던 신념들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하였던 말들은 더 의미가 있다. 앞서 인용했던 것보다 더 공정하게 마찬가지 결론을 표하는 독일작가 한 사람이 바로 그 한 예이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맑스주의를 통해 자유와 평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념이 완전히 붕괴하자, 러시아는 독일이 따르던 전체주의적이고도 완전히 부정적인 자유롭지 못한 비경제적 사회로 향하는 똑같은 길을 걷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은 공산주의가 환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후 도달한 단계이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환상이라는 것은 히틀러 이전의 독일에서만큼이나 스탈린 치하의 러시아에서도 밝혀졌다."
많은 나치와 파시스트 지도자들의 지적 편력의 역사도 중요하다. 이탈리아 혹은 독일에서 이들 운동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은 누구나 사회주의자로 출발했다가 파시스트나 나치가 된 지도자들, 무솔리니(Mussolini) 로부터 라발(Laval) 과 크비슬링(Quisling) 등 계속 이어지는 숫자에 충격을 받았다. 지도자들에게 해당하는 이 사실은 정치운동의 일반 구성원들에게는 더욱더 사실이었다. 젊은 공산주의자가 나치로, 또 반대로 젊은 나치주의자가 공산주의자로 얼마나 쉽게 개종하는지는 독일에서 널리, 특히 두 당의 선전원들에게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1930년대에 영국의 많은 대학교수들이 유럽대륙(주로 독일) 으로 부터 돌아오는 영국과 미국 학생들이 공산주의자인지 아니면 나치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서구 자유문명을 혐오한다는 점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 67~70p

하지만 반대로 오히려 파시즘 스탈린주의 자본주의 의회민주주의가 끝에 다다랐을 때 나오는 사상이며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절정이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 좌파공산주의 분파 중 하나인 보르디가주의를 만든 아마데오 보르디가(Amadeo Bordiga)는 스탈린과 같은 인물들은 그저 낭만적 부르주아 혁명주의자들뿐이라며 주장하였다.

출처:Goldner, Loren (1995). "Amadeo Bordiga, the agrarian question and the international revolutionary movement"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단계가 파시즘이며, 부르주아가 국가권력을 통하여 자본주의를 계획경제에 의하여 운영하는 국가자본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이고, 자본주의가 한계에 도달하자 부르주아들이 국가권력을 동원한 최후의 저항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사실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도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꽤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면, 자본주의에 내재된 모순이 극대화되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고 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곧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 즉 사회주의 시대로 돌입하고 이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양성, 전문화 등의 요인을 통해 하부계급이 상부계급을 지배한다는 구조하에 국가를 자연스레 소멸시키고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한다 하였다. 소련이 실패한 이유는 러시아가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하지 않고 매우 낙후된 경제구조를 가진 상태에서 공산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16][17] 그렇다면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단계인 파시즘을 거쳐야지만 공산주의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사회주의자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스탈린은 사회민주주의가 파시즘의 온건한 형태이며 부르주아들의 기만적 도구라는 '사회파시즘' 이론을 주장하였고,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가 좌익 파시즘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이시기 아나키스트, 좌파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간 파시즘 논쟁은 조지 오웰이 말했던 바, 진짜로 이새긴 파시스트다! 라기 보다는 욕설로서 쓰인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 아나키스트, 좌파공산주의자들은 비단 스탈린주의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체제 역시 파시즘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으며 로자 룩셈부르크는 아예 자본주의가 영속되면 야만의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비판 한 바 있다.

이탈리아 파시즘의 구성원 대다수가 사회주의자였다. 무솔리니도 그랬으며 조반니 젠틸레 등의 인물도 그러했다. 이들은 협동조합주의에 의거하여 국가관제노동조합이라는 단일 노동조합을 두고 노동자를 강제 가입시켰고 국가 노동자를 대변해 노동자의 의견을 대신 내는 형태로 이루어젔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견은 아예 형식적으로라도 낼 수가 없었다. 대신 국가가 내주기에 기업가가 맘대로 굴려먹지도 못하게 강제적으로 협력시켜버리는 체제를 낳아버리고 이를 계급협력주의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실제로도 노동자가 노예의 신세로 전략하자 카르나로 헌장 등을 쓰던 초기 파시스트들, 예를 들어 가브리엘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는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자, 이를 반동적이라며 역겨워하고 자신의 집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안토니오 그람시와 손을 잡고 파시즘 정부를 전복하여 혁명적 조합주의 정부를 만들려고도 하였고, 민족조합주의자이자 초기 파시스트였던 알체스테 드 암브리스(Alceste de Ambris)는 아예 이탈리아의 반동화를 역겨워하며 이탈리아 자체를 떠났다. 이후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시절, 노동자도 자신의 이윤에 참여할 수 있게 국가관제노조를 국가노조로 바꾸고 노동자가 생산수단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 사회화를 할 수 있게 하는 베로나 선언(Manifesto di Verona)이 발표되었으나 무솔리니는 이 선언을 받아들이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파시스트 노동자들이 베로나 선언을 받아들이라고 총파업을 일으키자 이들을 강제로 진압하고 이 노동자들을 독일로 넘겨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시즘이라는게 워낙 일관성없는 사상이다 보니, 무솔리니는 포드주의와 컨베이어 벨트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하는 등[18] 반자본주의적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공산주의적 색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무솔리니는 사회 공화국 당시 정부내의 인물들이 좌파적, 혁명적, 사회주의적, 심지어 프롤레타리아적이라고 애기하던 베로나 선언을 가열차게 무시하고 탄압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산주의적 색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색채를 보였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도 당시 파시스트 세력에서도 부르주아와의 연대 그만하라! 우리가 반동인 줄 알겠다! 라는 애기도 오가는 수준일 정도로 오히려 반사회주의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국가를 자본 깡패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오히려 반사회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I nostri programmi sono decisamente rivoluzionari, le nostre idee appartengono a quelle che in regime democratico si chiamerebbero "di sinistra"; le nostre istituzioni sono conseguenza diretta dei nostri programmi; il nostro ideale è lo Stato del Lavoro. Su ciò non può esserci dubbio: noi siamo i proletari in lotta, per la vita e per la morte, contro il capitalismo. Siamo i rivoluzionari alla ricerca di un ordine nuovo. Se questo è vero, rivolgersi alla borghesia agitando il pericolo rosso è un assurdo. Lo spauracchio vero, il pericolo autentico, la minaccia contro cui lottiamo senza sosta, viene da destra. A noi non interessa quindi nulla di avere alleata, contro la minaccia del pericolo rosso, la borghesia capitalista: anche nella migliore delle ipotesi non sarebbe che un'alleata infida, che tenterebbe di farci servire i suoi scopi, come ha già fatto più di una volta con un certo successo. Sprecare parole per essa è perfettamente superfluo. Anzi, è dannoso, in quanto ci fa confondere, dagli autentici rivoluzionari di qualsiasi tinta, con gli uomini della reazione di cui usiamo talvolta il linguaggio.
우리의 계획은 확실히 혁명적이며 우리의 생각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좌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속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당의 계획은 직접적인 결과이며 우리의 이상은 노동자의 해방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우린 삶과 죽음을 위해 자본가와 싸우는 프롤레타리아입니다. 우린 새로운 질서를 찾는 혁명갑니다. 붉은 위협을 휘두르며 자본가 계급을 다루는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며 진짜 위협, 진짜 악몽, 우리가 끊임없이 싸워야하는 적은 우파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을, 붉은 위협에 맞서 같이 연대해야한다는 것에 우린 관심을 둬선 안됩니다. 여기에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불필요합니다. 모든 피부색의 혁명가들이 우리가 말하는 이 '부르주아와의 연대'라는 단어 때문에 우리를 반동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Enzo Pezzato in The Fascist Republic
È certo che oggi – 20 giugno 1944 XXI – i lavoratori affermano che la socializzazione non si farà o se si farà essa contribuirà a rafforzare i ceti capitalistici e a mantenere in istato di soggezione il lavoro... Il che fa dileguare ogni speranza ed allontana sempre più da noi i lavoratori che ci considerano, a torto s'intende, gli sgherri del capitale; fa gravare su noi il loro disprezzo perché affermano che non siamo in buona fede, e fa ritenere l'annuncio della socializzazione come un ennesimo espediente per attirare nella nostra orbita i pochi ingenui che ci accorderebbero ancora del credito. Insomma, i lavoratori considerano la socializzazione come uno specchio per allodole e si tengono lontani da noi e dallo specchio
오늘 노동자들은 사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자본가 계급을 강하게 만들고 노동자를 그들에게 종속된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우리를 자본의 깡패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가 더이상 선한 존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들의 경멸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사회화 발표는 소수의 순진한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끌고오게 하는 방편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요켠데 노동자들은 사회화를 위해 우리와 멀리 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Rapporto di Anselmo Vaccari a Mussolini, 20 giugno 1944

그리고 나아가서 과연 이탈리아 왕국 사회화를 제대로 했느냐, 혹은 그렇게 평가받았냐고 하기엔 역시나 아니였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무솔리니는 이러한 사회화 주장자를 철저히 탄압하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수많은 파시스트들은 파시즘을 버렸다. 버리고서 사회주의의 길을 다시 가거나, 민족주의를 포기하는 이들도 속출했다. 초기 파시즘은 민족주의[19]를 거부하고 아예 독재자를 거부했고, 나아가서 독재 파시즘에 존재하면 안된다고, 혹은 있어도 임기를 정해놓고 모든 민중들의 투표로 임시직을 맡아야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였으며 독재자는 모든 민중이 될수 있다고 봤다. 그니까 애초에 독재자가 아니라 로마 공화정 시기의 독재관으로서 말했다. 이들은 집회 ,결사의 자유는 물론 파업의 자유를 주장했다. 왜냐면 이들이 영향받은 미래주의는 과거의 단절, 과거를 부시고 미래로 향해야가야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였고 애초에 이들은 부르주아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양분해야한다고도 안봤다. 그니까 이들은 모든 이들을 부르주아로가 아니라 모든 부르주아를 프롤레타리아로를 외친 것이다. 즉 애초에 이탈리아 파시즘은 그 당시 파시스트들한테서도 사회주의는 물론 조합주의조차 아니란 평을 받았던 이념이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드 암브리스를 암살하는 명령과 단눈치오를 감시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는 아래와 같은 초기 파시스트들의 선언, 발언 등에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나아가서 미래주의당 선언에서 보이듯 이들도 완전한 사회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적 느낌이 가장 강할때던 초기 파시즘에서조차 완전한 사회화를 추구하지 않았는데, 후기 파시즘이 사회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불성설인 말이다.
우린 성별, 인종, 언어, 계급, 종교의 차별이 없으며 모두 같은 민족이며 민족국민의 주권임을 인정한다.
집회, 결사의 자유, 기본권적 자유, 사상 및 언론의 자유는 모든 인민에게 보장된다.
국가는 물질적, 정신적 발전을 위해서 공동체를 통해 국민의 열망과 노력을 나타낸다. 노동자들은 국가의 부와 힘을 위해서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시민들이다.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모든 인민을 단합시키고 인민의 승리를 위한 노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함이 한 사람의 의지와 헌신에 달려있음을 알게될 때 대국민 평의회는 가장 엄숙한 회의에서 아렝고의 구두적 투표아래 '독재자(독재관)'을 지명할 수 있으며 국가 최고 권위를 그에게 부여한다. 독재자는 로마 공화정에서의 독재관의 임기가 6개월이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그가 통치할 기간을 6개월로 하게한다.
6개월의 통치기간 이후 대국민 평의회는 다시 소집되고 독재자의 지위를 유지할 지, 다른 이를 독재자에 올릴 지, 독재자를 해임하여 독재관 시기를 끝낼 지, 아니면 그를 추방할 지를 결정한다.
카르나로 이탈리아인 섭정국 헌법(Constitution of Fiume)
Per il problema sociale: Noi vogliamo:
a) La sollecita promulgazione di una legge dello Stato che sancisca per tutti i lavori la giornata legale di otto ore di lavoro.
b) I minimi di paga.
c) La partecipazione dei rappresentanti dei lavoratori al funzionamento tecnico dell'industria.
d) L'affidamento alle stesse organizzazioni proletarie (che ne siano degne moralmente e tecnicamente) della gestione di industrie o servizi pubblici.
e) La rapida e completa sistemazione dei ferrovieri e di tutte le industrie dei trasporti.
f) Una necessaria modificazione del progetto di legge di assicurazione sulla invalidità e sulla vecchiaia abbassando il limite di età, proposto attualmente a 65 anni, a 55 anni.
우리는 사회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루 8시간 노동의 보장
최저임금제의 도입
산업의 기술적 기능에 대하여 노동자 대표의 참여[20]
프롤레타리아 조직을 통한 산업과 공공서비스 관리의 완전한 공유화[21]
노령 보험 나이제한을 65세에서 55세로 낮춰야한다.
전투적 이탈리아 파시스트 선언문(Il manifesto dei fasci di combattimento, 또는 파시스트 선언)


현실적 필요에 의해 ‘근대적’ 기업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무솔리니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무솔리니와 아녤리는 기본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양자 사이에는 지속적으로 불화와 갈등이 존재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0년대 후반 피아트가 “합리화”를 명분으로 노동자 인력 감축과 임금 삭감을 단행할 때에 빚어진 불화와 갈등이다. 당시 “합리화”라는 말 외에 “과학적인 노동의 조직화”나 “위계적 조직화”라는 말이 동시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 말들은 모두 영미권의 ‘테일러주의’에 해당하는 용어였다. 린고토의 기계화와 라인 체제가 완성된 후에 새롭게 ‘합리화되고’ ‘테일러화된’ 공장의 노동과정에서 노동 강도는 1분 1초도 허비하지 않도록, 즉 “엉덩이에 빗자루를 묶지않을 이유가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런가하면 고용 및 직업 유연성도 커져서 1927년 이후에는 대폭적인 인력 감축 조치들이 주기적으로 취해졌다. 노동자 대중 속에서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던 파시스트들에게 피아트의 “합리화”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특히, 파시스트 생디칼리스트들이 공격의 선봉에 나섰는데, 피아트의 감원과 임금 인하를 겨냥하여 줄기차게 피아트 경영진을 탄핵했다. 무솔리니도 1927년 7월에 정부의 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피아트가 잇따른 인력 감축을 시도하려고 하자 피아트가 ‘국가 속의 국가’처럼 행세한다고 비난했다.
피아트에 대한 두체의 염증은 1936년에 피아트가 린고토를 대체하는 공장인 미라피오리(Mirafiori)를 완벽한 미국식 생산 이념에 입각하여 건립하려는 계획을 제시했을 때 극에 달했다. 무솔리니는 이 계획에 처음부터 격하게 반대했다.
그는 무려 22,000명에 달하는 노동자 군단이 한 공장에 집중되는 것이 초래할 사회적 위험을 본능적으로 눈치 채고 있었다. 그에게 미라피오리는 천박하고 비인간적인 미국주의의 산물일 뿐이었다. 무솔리니가 그 계획을 되돌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새로운 공장이 파시즘의 사회 정책 노선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이 사회 정책이란, 다음과 같은 무솔리니의 말에서 잘 확인되듯이, 품위있고 인간적인 노동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아녤리 상원 의원에게 피아트의 새로운 공장들에 노동자들을 위한 안락하고 품위있는 구내식당들이 갖추어져야 함을 연락할 것. 그에게 기계 곁에서 헐레벌떡 밥을 먹는 노동자는 이 파시스트 시대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을 말할 것. 인간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덧붙일 것.”
비록 두체는 피아트의 미라피오리 공장 건립을 막지 못했지만 아녤리와 같은 부르주아적 인간형에 대해 점점 더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적의는 전쟁이 일어나고 패색이 짙어지면서 격화되었다. 외무장관을 지낸 차노(Galeazzo Ciano) 백작이 자신의 일기에서 무솔리니의 그런 정서를 잘 전해주고 있다. 무솔리니는 부르주아적 인간형을 “노동자도 아니요, 농민도 아닌, 그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여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가하면 무솔리니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전쟁이 끝나면 나는 소심하고 비열한 부르주아에 대한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1943년 궁정 쿠데타로 실각한 뒤 무솔리니는 저 유명한 ‘부르주아지의 배신’이라는 테제를 내놓았다. 자신의 실패를 부르주아지의 탓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부르주아지가 배신했다. 우리는 교활한 산업과 그에 못지않게 교활한 은행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반부르주아 감정은 파시즘 초기부터 확인되는 것이지만 체제가 안정화된 뒤에는 잠복해 있다가 체제가 몰락하면서 수면 위로 완연히 떠올랐다
...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연구한 추니노(Pier Giorgio Zunino)는 파시즘에 강력한 반미국주의적 경향이 내장되어있었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파시즘의 반미국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저변에 깔려있던 핵심 담론은 미국이 질보다 양이 우세한 사회라는 것이었다. 즉 미국은 일종의 “산업 몰렉(Moloch industriale)”이었고, “금권정의 철권 통치”가 관철되는 사회였으며, 모든 것이 “숫자, 돈, 시간 측정기, 크기로” 환원되는 나라였고, 결국 “너무나 많은 부가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사회였다. 이러한 고찰로부터 추니노는 파시즘의 반미국주의가 서구의 민주주의와 금권정에 맞선 공동의 투쟁에서 역설적이게도 서로 원수지간인 파시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을 한데 뭉치게 한 이데올로기적 공유점'''이었다고 지적한다.
추니노의 판단대로, 대량 생산과 대중 소비에 기초한 미국식 물질 문명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비판은 볼셰비즘에 대한 ‘온건한’ 견해, 심지어 소련에 대한 호감으로까지 나아간 게 사실이다.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채색된 제2차 세계 대전기에 볼셰비즘과 파시즘 사이에서 벌어진 혈투로 말미암아 지금은 깡그리 잊혀지고 말았지만, 1930년대에 비행 편대를 이끌고 소련의 오데사에 도착한 이탈리아 파시즘의 제2인자 발보(Italo Balbo) 일행이 볼셰비키들에 의해 성대하게 환영받았고, 서로를 “동지”로 불렀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리하여 소련에 대한 파시스트들의 태도를 관찰하면서 역사가 바시냐나(Pier Luigi Bassignana)는 이렇게 평가했다. 파시즘에게 “볼셰비즘은 적이었다. 그러나 공동의 적은 서구의 타락한 금권정과 저주받은 부르주아적 ․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였다. 아마도 ‘적의 적’과의 동맹이 이루어질 법했다.”
그렇다면 미국에 대한 파시즘의 표상이 갖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소련에 대한 표상을 좀더 자세히 살펴봄 직하다. 파시즘이 처음 대두할 때 내세운 구호가 “볼셰비즘에 맞서 조국을 구하자”였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대적 태도는 20년대 후반부터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고 이 위기에도 불구하고 소련이 안정된 체제로 보이면서 우호적인 (적어도 중립적인)태도로 바뀌었다.
장문석, 파시즘과 근대성 -미국주의에 대한 인식과 표상을 중심으로-,2008 #

나치즘은 슈트라서 형제나 돌격대의 에른스트 룀 그리고 괴벨스처럼 좌익 사회주의 계열의 인물들이 존재하였고, 나치당의 강령에서도 좌익 사회주의적 강령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당시 나치당에서 에른스트 룀, 슈트라서등을 이루던 말이 바로 스테이크.[22] 그니까 그당시 나치에서도 우린 열렬한 반공주의며 공산주의적 색체를 띄는 이들은 겉만 나치지 속은 빨갱이새끼라고 멸시하며 불렀다는 뜻이다.그리고 이후 나치는 보수세력과의 연대를 위해 이들을 숙청해야함을 생각하였고 괴벨스등의 전향자를 제외하고 나치당은 장검의 밤을 거치면서 이들을 숙청하며 점차 우경화된다. 나치 독일에서 포르쉐, BMW, IG 파르벤 , 라인메탈, MAN등의 수많은 전범기업들은 나치당의 전시경제계획에 '복종하는 조건하에서' 나치독일의 철저한 지원아래 성장하였기에 자본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고 볼 수 있다. 파시스트들은 나치즘을 보고 파시즘이 아니라고 외치기도 하였다.[23] 또한 나치는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화하고, 임금의 상한을 지정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였다. 그러면서도 숙련공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등 대우를 개선하였고, '기쁨을 통한 힘'과 같은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단체를 만들었다. 나치즘 역시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추구했으며, 선전과는 달리 민간기업들의 자율성은 보장되지 않았다. 물론 복종하는 기업들이 특혜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24] 나치체제하에서의 경제는 철저히 국가주도의 계획체제였고, 나치의 경제성장 또한 민간투자 보다는 국가주도의 공공지출과, 메포-벡셀 채권과 같은 재무장 정책에 의한 군수산업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 또한 나치즘 역시 마르크스적 좌익 사회주의와[25]도 관련이 있었다. 나치의 복지정책의 특징은 마르크스적 평등주의를 혐오하였는데, 이는 사회유기체론과 사회진화론에 따른 위계질서와 인종적 우월성에 적합한 인간에 대한 복지를 목표로 하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열심히 일하는 게르만족 노동자는 복지의 대상이었지만, 나치가 보기에 열등한 장애인과 유대인들은 민족공동체의 우월성에 해롭기 때문에 제외되었다.
나치는 집권 초기부터 ‘투자승수효과가 현저히 낮은’ 군비지출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나가면서 군비경제계획에 부응하지 않는 거의 모든 ‘생산적인’ 민간부문에 대해서는 강력한 투자 및 생산통제를 가하는 등 ‘결코 혁신적이지 않은’ 파시스트정책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생산재 및 교통부문에 대한 투자는 급격히 성장했던 데 반해 소비재산업과 3차산업 등 민간부문의 자본형성은 크게 위축되었다. 결국, 대공황 회복기 독일의 자본축적은 민간부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대공황 회복은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이윤율이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투자가 상대적으로 위축됨으로써 엄청난 성장의 기회가 상실되었다. 즉, 고도의 재무장과 통제경제정책을 통한 나치의 자본축적과정이 경제구조를 크게 왜곡시킴으로써 이미 1932년 중반부터 ‘소비 붐’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대공황의 `자연스러운' 회복과정을 크게 저해했던 것이다.
대공황 회복기 독일의 자본축적 #
좌익사회주의자들은 우익사회주의자들과 점점 더 비슷해졌다. 독일로부터 자유주의적인 모든 것들을 몰아낸 것은 바로 좌-우익의 반자본주의적 세력들, 즉 급진사회주의와 보수사회주의의 연합이었다.
독일에서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매우 긴밀하였다. 민족사회주의의 가장 중요한 조상인 피히테(Fichte), 로트베르투스(Rodbertus), 라살(Lassalle) 등이 사회주의의 공인된 조상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맑스주의의 모습을 띤 이론적 사회주의가 독일 노동운동을 지도하였으며, 권위주의적이고 민족주의적 요소는 당분간 배후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14년부터 계속 맑스사회주의 진영으로부터 하나, 둘 선생들이 나타나서, 보수주의자들과 반동주의자들을 지도한 것이 아니라 어렵게 일하는 젊은 노동자들과 젊은 이상주의자들을 '민족사회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그후에야 비로소 민족사회주의의 물결이 중요한 세력이 되고 급성장하여 히틀러식의 교리가 되었다. 독일의 패배로 결코 완전히 아물지 않았던 1914년의 전쟁 히스테리는 민족사회주의를 출현시킨 현대적 발전의 시초였으며, 이 기간중 민족사회주의가 발흥한 것은 주로 옛 사회주의자들의 지원 때문이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 12장 나치즘의 사회주의적 뿌리, 243p

파시즘은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를 민족공동체라는 유기적 사회구조에서 위계적 질서로 실현하는 사회주의 이념이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입발린 립서비스에 불과했으며 법적으로도,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파시즘은 단 한번도 공유화란거 것을 하지도, 그리고 이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파시즘은 앞서 말했듯이 기존 정권과의 연대가 필요했고 이는 곧 기존 자신들의 지지세력이던 노동자, 사회주의자를 갉아먹어아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파시즘이 그런 예였고 실제로도 노동자들은 이런 배신행각에 분노하였고, 오히려 공유화를 하지 않았다.라고 평했다. 실제로 초기 파시즘의 카르나로 헌장(Constitution of Fiume)과 미래주의당 선언(Partito Politico Futuris)를 보면 사회주의적 성격을 띄우는 것은 맞았다. 실제로도 이들은 오히려 적극적인 파업, 적극적인 투쟁, 심지어 나아가서 노동자가 정치를 완전히 휘어잡아야함도 주장하였고 이를 청춘, 민족적 열정, 해방등으로 말했고 아나키즘적인 모습을 띄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무솔리니 이탈리아 파시즘은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을 철저히 숙청, 혹은 이들의 탈퇴로 만들어젔다. 암브리스는 무솔리니를 부르주아라고 욕했고, 단눈치오는 끊임없이 감시받았고 나아가서 추축국을 탈퇴하자고도 말하였다.

마리네티도 비슷했다. 오히려 마리네티는 더 철저히 이용당하고 배반당한 편이였는데 이탈리아는 사회주의적이였던 이들의 혁명적 예술을 뽑아다가 선전용에 사용했지만 정작 젊은이들의 파업, 투쟁, (마리네티가 주장하던) 과거의 대한 파괴와 진보 등은 철저히 무시했고 실제로도 마리네티는 이에 삶의 대한 의지를 잃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무늬만, 겉만 사회주의이지 그 내부는 오히려 철저히 사회주의를 배신하거나 이들에게 당근 조금 던저주는 선에서 그첬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스스로 노동자의 사회화를 거부했다.

왜냐면 무엇보다 초기 파시스트들, 사회주의적 파시스트들은 독재를 거부했으며(두체 선거제를 주장하거나 아니면 아예 절대적인 지배자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국제주의적 민족주의와 노동자의 진정한 생산수단의 완전한 노동자 관리화를 원했기 때문이였다. 오히려 파시즘은 철저하게 사회주의를 '이용'해먹으려는 입장에 있었지 그 스스로가 사회주의자가 되려는 입장에 있지 않았다. 하이에크 노예의 길은 애초에 있지도 않은 단어를, 혹은 자신이 오독한 대로의 단어를 토대로 자신이 만든 사회주의 파시즘과 연동시켰고, 그 마저도 수많은 오류 덩어리[26]를 낳았으며 애초에 파시즘은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이들이였다. 즉 애초에 인종적 민족공동체라는 개념, 그리고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나눠서 계급협력을 하는 개념은 애초에 초기 파시스트가 부르주아적이다. 자본주의적이다라고 줄창까던 방식이며 그렇기에 초기 파시스트들은 파시즘을 애초에 던저버리거나 자신이 만든 괴물을 보며 죽었다. [27]


즉 결론적으로 애초에 파시즘 사회주의가 아니였으며 사회화를 거부하는 입장이였으며 나아가서 사회화를 원하는 이들을 처참하게 탄압했던 이념이다. 애초에 생산수단은 자본가에서 노동자에게 넘어가지도 않았으며 자본가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즉 하이에크는 자신의 저서 노예의 길에서 파시즘의 의대한 몰이해는 물론 사회주의에 대해서도 완전한 몰이해를 가진 사람이란 것을 공개해버린 셈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라살레가 그의 말년에 보여주었던 정치 전략을 강경하게 거부하였다. 독일 시민계급은 진정한 혁명투쟁을 수행할 수 없으며, 자신에게도 독일인의 민족주의적 요소가 많이 있음을 깨달은 라살레는 자유주의자들로부터의 지지를 거부하고 비스마르크와 협상하였고, 비스마르크와 군주를 통하여 그가 노동운동에 앞서 1863년 2월 선언과 ‘공개 서한’에서 제시한 2대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공허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목표 가운데 하나는 국가를 민주화하기 위한 보통 평등 선거이고, 다른 하나의 목표는 그가 방임주의적 자유주의자를 비난했던 바와 같이 국가를 더 이상 ‘야경국가’나 경찰국가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경제를 점진적으로 사회화시키는 노동자 조합을 보장하는 사회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었다.
라살레가 이끄는 정당은 그 스스로도 분노를 느낄 정도로 완만하게 성장하였으며, 베를린에서는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지방유세 방식은 그를 영향력있는 대중 운동가로 만들었으며,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명성과 조직은 계속 존속하였다. 1875년에 이 정당은 맑스에 더욱 가까웠던 리프크네크트(William Liebknecht)와 베벨(August Bebel)이 지도하던 정당과 통합하기로 합의하였다. 맑스는 고타회의에서 채택된 강령이 맑스적 이념보다는 라살레적 이념을 더 많이 포함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분개하였다. 맑스는 그 실례로서 라살레가 옹호했던 소위 ‘임금의 철칙’의 영속화에 반대하면서, 라살레는 지주는 제외하고 자본가만 공격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그 강령을 조목조목 비판하였다. 그러나 1890년에 가서야 그 강령이 수정되었다. 엥겔스는 1891년 2월 23일자 카우츠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라살레에 대하여 마지막 총평을 하였는데, 그 내용은 매우 혹독하였다.
노동자의 책 라살레
Le sue idee sul sindacalismo d'urto, estraneo ad ipotesi di pace con l'organizzazione economica italiana, di ieri di sempre, cozzano con quelle di Rossoni e, perché no, con le mie. Il tema da lui preferito:"Tutto il potere ai sindacati", io non lo condividevo affatto. Ero per lo Stato, un nuovo Stato. E basta. L'avventura dannunziana della quale De Ambris era stato protagonista sociale, era irripetibile, nella forma e nella sostanza»
이탈리아 경제 조직(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평화을 거부하는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생디칼리슴에 대하여 그(암브리스)의 대한 생각은 로마냐와 충돌하고, 나와도 충돌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 노조에게 모든 권한을을 보며 나는 이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나는 국가, 새로운 국가를 원할 뿐이였다. 드 암브리스와 사회적 주인공이였던 가브리엘 단눈치오의 모험은 새 이탈리아에서 형식과 그 내용 모든 면에서 번복될 수 밖에 없다.
Benito Mussolini parlando di De Ambris con Yvon De Begnac sui "Taccuini mussoliniani"

출처:Mussolini and the Cult of the Leader, John Whittam, New Perspective, vol 3, no 3, March 1998 pp. 12–16
Italian Futurism, 1909–1944: Reconstructing the Universe, Solomon R. Guggenheim Museum, 2014
Enrico Serventi Longhi, Gli italiani «senza patria», Mondo contemporaneo, n. 1-2012.
Giuseppe Parlato, La sinistra fascista, Bologna, Il Mulino, 2000 pag 90
Bernstein, Eduard 1891(1893) : Ferdinand Lassalle as a Social Reformer.
Footman, David 1946 : The Primrose Path. A Life of Ferdinand Lassalle.
Morgan, R. 1965 : The German Social Democrats and the First International 1864-1872.
Oncken, Hermann 1920 : Lassalle, Eine politische Biographie.등


다음은 공산주의 파시즘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1. 생산수단이 온전히 노동자에게 있지 않았다.: 앞서말했듯이 이들은 협동조합주의에 의거한 계급협력을 원했기에 노동자, 자본가들 중 그 어느 하나가 생산수단을 독점하기 못하게 하였고 대신 이 둘의 계급적 성격을 초월한 영도자가 국가관제노동조합, 국유화를 통하여 강제적으로 협력시켜버리는 관계를 취했다.

2. 이들은 계급보다 민족과 국가를 위에 두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최종적으로 국가가 사라진 사회를 원한다,[28] 그렇게 해야 생산수단을 온전히 노동자에게 줄 수 있고 그렇게 해야 노동자들의 자유롭고 단결된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마르크스주의는 계급성을 국가와 민족보다 위에 뒀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국제 노동자들의 단결을 외첬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대표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만들 수 있었다. 파시즘은 이와 정반대로 오히려 민족과 국가를 이 위에 두웠다. 흔히 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대표되는 국민생디칼리슴주의자들의 철학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부르주아 계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 아래의 협력, 혹은 국가 아래로 모든 부르주아 계급의 조국 프롤레타리아 계급화(부르주아 계급의 소멸이 아니다.)를 원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국가의 해체를 향해 나아가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국가의 영속성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취했다.

그런데 이론적인것과 다르게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을 살펴보면, 사실 소련도 동유럽에 대한 군사개입에서 드러나듯이 노동자들이 국가노조에 반대하며 민주적 노조를 주장하거나 파업하면, 탱크로 깔아뭉개는 식으로 대응하였고, 현실사회주의국가들 역시 생산수단이 온전히 노동자에게 있지 않았으며, 엘리트 전위대인 공산당 특권계급에게 지배당했다.

물론 소련은 형식상으로나마 하부토대인 노동자들이 생산수단을 쥐고 있었고, 부르주아와의 협엽관계는 없었다고 주장하며 하부토대의 노동자들이 상부토대(즉 국가에 직접적)으로 의견을 내면 국가가 이를 검토하고 내리는 방식을 하긴 했다. 형식상으론. [29][30] 이로 인하여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소련은 국가자본주의라는 비판을 듣기도 하였다. 또한 민족주의라는게 워낙에 강력한 사상이다보니,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도 민족주의를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식민지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로서 받아들인 경우도 있으며,[31] 소련은 노동자들의 국가라는 논리로 국가를 향한 애국심을 정당화하였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였다. 마오주의를 [32][33] 따르는 중국공산당 역시 대한족주의라는 중화사상에 기반한 극단적 민족주의를 추구하였다. 김일성, 모택동, 등소평, 베트남의 호지명 등 동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다 공산주의자 겸 민족주의자였다. #

8.7.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보수주의 내지 신보수주의 등 일각에서 주로 제기되는 관점으로, 동구권 소련 해체, 북한, 중국,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의 역사적 실패 사례들을 근거로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에는 공산주의만이 있는 것은 아니며, 공산주의가 완전히 실패한 이념인가의 문제는 둘째치고 공산주의의 실패를 근거로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또한 대공황이나 대침체같은 위기를 겪었던 적이 있으며, 전간기 파시즘의 발호에도 나쁜 의미로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던 바 있다. 비록 현실사회주의와는 달리 자본주의 권역은 최종적으로 전면 붕괴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가 한계를 인정하고 보완을 시도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부분은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촉구하는 사회주의 운동에서 일부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의 정책을 수용했다거나, 이로써 순수 자본주의가 종말을 맞이했다는 투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현대의 복지정책의 이론적 근간은 대부분 마셜과 피구에 의해 집대성된 후생경제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후생경제학은 명백하게 자유주의 전통에서 시작되고 지탱된 것이었지 사회주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사회보험제도 역시 비스마르크 치하 독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팽배하던 사회주의 분위기에 자극을 받았을지언정 사회주의 진영이 고안한 정책을 끌어다 쓴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사회주의 진영에서 자유주의 진영이 고안한 복지정책을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교육 바우처제나 부의 소득세제는 대표적인 자유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고안하거나 제안했다. 애당초 자본주의 역사에서 '순수한 자본주의'는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노동법의 제정 및 개정이나 금융규제, 국가에 의한 산업진흥 등의 주장은 자본주의 역사의 초창기인 18세기에서 19세기 초반 경에 이미 나타난 흐름이다. 애초에 순수한 형태를 가정할 수가 없는 자본주의가 자체적으로 끝없이 보완의 노력을 기하는 것을 사회주의의 기여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심각한 비약이다.[34][35]

그런데 1880년대에 비스마르크와 같은 이들이 복지법을 재정하였지만 보어전쟁 징집병들의 행태에서 보이듯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비스마르크시기에 복지법이 만들어젔음에도 복지개혁 요구가 빈번했다. 이같은 복지법들이 실행에라도 옮겨지던 것이 20세기 초반이었다. 특히 영국 복지법은 흔히 점진적 사회주의자 모임이라고 일컬어지는 페이비언 협회(그의 후계 중 하나인 노동당등도 포함하여)의 활동의 영향도 컸다. 다만 페이비언 협회는 엄밀한 이론 체계를 갖춘 이념집단이라기보다는 빈민구제나 노동조건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한 사회운동에 가까워서[36] 그 당시 페이비언 협회에 참여한 이들이 현재에 와서는 사회주의로만은 분류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또 그 당시 기준으로 보아서도 이들은 철저하게 비스마르크식 사회보장제도를 지지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철저히 배격했을 뿐 아니라 오언주의 생디칼리즘과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점은 감안하자. 여하간 "복지제도가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이에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문제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또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도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국내총생산 등 거시경제적 지표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확실히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국가들은 모두 자본주의 자유시장을 중시하니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념이 맞을 수도 있다.[37] 그러나 수백 개가 넘는 사회주의의 분파 중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의 경우 북유럽이 복지 선진국이 되는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국가들은 미국을 위시한 경제 대국들보다 시장경쟁력은 약할지언정 소득격차가 작고 복지제도가 더 잘 갖추어져 있어 사회 불안 요소가 훨씬 적다.[38] 뿐만 아니라 서유럽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중량감 있는 경제강국들 역시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정당이 집권한 역사가 꽤나 길며 이들 역시 해당 국가들에게 크고 작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는 결코 실패했다고 볼 수 없다.

한편, 트로츠키주의, 신트로츠키주의, 좌파공산주의 등 잔존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현실사회주의는 명분만 사회주의였지 실상은 국가자본주의나 좌파대중주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스탈린 이후의 공산 진영은 민주주의를 없애버렸고, 관료들이 생산수단을 독점해 제1세계의 기업자본주의처럼 이윤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국가자본주의에 가깝다는 것이다.[39] 다만 이들이 주장하는 '민주적 공산주의'란 현실세계에서 단 한 번도 집권한 적이 없고[40], 따라서 그들이 상상하는 형태의 국가 운영이 가능하며 자본주의 등 다른 체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단 한 번도 실증된 바가 없다.[41]

다만, 동구권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들에 속했다고 보는 게 보수뿐만 아니라 다수의 의견들이며 앞서 언급한 국가자본주의론은 소수 의견이다. 동구권 소련이 택했던 사회주의 분파, 그러니까 '자본주의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농경사회에서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유일 집권당인 공산당의 지도를 따라 중앙집권 계획경제를 구축하여 자본주의를 따라잡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려는 분파'는 결과적으로 붕괴된 게 맞다. 흔히 이런 점을 토대로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로 사회주의가 주류 담론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보완적인 측면에서밖에 존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앞서 보다시피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사회주의라는 담론에서 창안해낸 개념이나 해법이 직접적으로 현대사회에 기여한 것을 꼽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

8.8. 사회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

소위 '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성공했다'의 프로파간다는 초기 자본주의자들의 작품이다.

이런 선전은 많은 체제에서 이용되었다. 예를 들면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폭력성을, 노예제, 봉건제 같은 계급사회에서는 노예 근성 등이다. 이런 선전의 결과는 아직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평상시 쓰는 단어와 표현이 매우 폭력적인 북한이라던가, 계급사회를 정당화하는 브라만교 힌두교 아래의 인도 사회가 그렇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학적으로 본성 본능의 정의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본능이 변하지 않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행동 양식을 말한다면, 본성은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긴 하지만,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약 절반 정도는 환경적인 요인을 받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즉,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럼 다시 한번 살펴보자, 과거 원시공동체에서 살아왔던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개인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직 공동의 소유로만 이해했다. 심지어 중세에도 농노들은 사유지라는 개념을 거부했고 공동경작하는 공유지 개념만을 알고있었고 그렇기에 코뮌(공동체)를 이루고 농민, 농노 평의회를 열어 영주에게 세금을 받치고 남은 것을 어떻게 처리할 지의 대한 애기를 하곤 했다. 러시아 제국의 미르는 그런 성격이 극단적으로 있던 것이기도 했다.[42]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그들의 자손은 사유재산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중세시대까지만 해도 금융업은 가장 천한 직종으로써 유럽의 경우에서는 오직 탄압을 받던 유대인에게만 허락되었으며, 이슬람에서는 이자 자체가 금지되어 수쿠크라는 편법을 쓴다. 유교의 경우에는 상업 자체를 억압했고 금융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왜냐면 기독교, 이슬람, 유교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금융가들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아주 악독한 자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금융업은 자본주의의 꽃이며, 산업이 돌아갈 수 있는 근본으로써 작용한다. 왜냐하면 시장이 커지고 경제력의 규모가 커지며 금융업을 도저히 배격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대나 이념에 따라 그것이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또한 달라지며, 사회주의에는 사회주의에 맞는 본성이 필요한 것이다.[43]

이제 이기심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그 동안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이기심을 경계하는 격언이 많았고, 이기적인 인간은 대부분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에서는 이기심 뿐만 아니라 자유와 평등 또한 인간의 본성으로 추구한다. 그런데 이기심에 의해 각자가 벌인 이윤추구의 결과 사유재산의 차이가 생기거나 누구는 무산자가 되어 사유재산을 갖고 있는 누군가에게 고용되며, 이런 과정에서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이러한 상태의 물신주의 사회에서는 애초의 자유주의자들이 의도했던 바와 달리 각자의 이윤 추구가 사회 보편적 이익, 즉 공익에 기여하지 않는다. 즉, 누구는 더 잘살고 누구는 더 못살게 되는데, 문제는 능력주의의 부작용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불평등이 자기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대대로 이어지면서 점점 심해지고 공고해지며,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결과, 자유주의자가 타도하고자 했던 신분제와 신분에 따른 자유의 억압, 불평등이 새로 생겨났다. 즉, 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자본주의가 오히려 자유주의를 무너뜨리고 도로 봉건제로 돌아가고 마는 모순이 생겨난 것이다. #

반면에 사회주의는 개인의 가치와 자유를 존중한다.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자유'이며, 오직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자유주의가[44][45]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유재산이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게 되면서,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직장의 주인이 되어 인간의 잠재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의 핵심은 노동자의 자가해방이며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개인 자아실현의 실현이다.

8.9. 사회주의는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카를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자본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재산의 격차나 사회적 차별이 아니라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하에서 화폐가 순환되지 못하고 소수 대자본가들만 장악하여 이윤율 저하로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46] 정작 카를 마르크스는 평등을 반대했고 자유를 옹호했다. 마르크스가 평등을 언급했더라도 특정 계급의 생산 수단 독점이 아닌 생산수단을 모든 인류가 소유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의 의미로 쓰일 뿐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재산이 평등해야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노동자들이 속박당하지 않는 사회를 생각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정의하는 불평등은 사회 정의를 옹호하는 사회자유주의자가 정의하는 불평등과 차이가 있다. 그가 말하는 불평등은 특정 계급의 생산 수단 독점으로 생산 수단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억압당하고 재산마저 착취당함으로서 경제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까지 생긴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난하는 대안우파들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드립으로 카를 마르크스가 결과의 평등을 추구했다고 오해하는데 카를 마르크스는 경제를 제외한 사회, 정치에 대해선 연구를 한 적이 없었다. 사회주의가 아닌 사회자유주의자들이 어퍼머티브 액션을 옹호하는 식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고 있는데 일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명분으로 결과의 평등을 위반하고 있다,[47]

사실 '결과의 평등'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결과의 평등은 기회의 평등과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의 평등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결과의 평등 또한 저절로 이루어지는 관계에 가까운 것을 볼 때, 사회주의 또한 결과의 평등은 물론 그 전에 기회의 평등을 지향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9. 대한민국의 사회주의

사회주의가 처음 소개가 된 것은 한성순보(漢城旬報)에서 유럽의 사회당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직후에는 사회주의 진영의 지지세가 상당했으며, 여운형이 이끌었던 민주적 사회주의 정당인 조선인민당은 부의 재분배를 원했던 가난한 대중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지는 지금은 보수정당의 텃밭으로 여겨지는 대구로, 대구는 '한국의 모스크바'로 일컬어지기도 했다.[48] 그러나 해방정국의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인해 사회주의는 탄압받았으며, 미군정 제1공화국의 반공주의 정책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면서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다.[49] 결정적으로 당대 좌파 대다수[50]를 흡수한 공산주의 국가 북한 한국전쟁을 일으키면서, 한국 사회에서 '좌파'와 관련된 이미지 역시 한동안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냉전으로 인한 남북분단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사회주의자들은 북한과의 연계성과 무관하게 대부분 불순분자, 종북주의자 내지는 매국노로 몰려 거의 사멸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서 역시 개량사회주의 세력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탄압받았고, 8월 종파사건 이후 김씨 가문의 절대권력이 확립되면서부터는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사회주의 활동이 더 이상 법적으로 제약되지는 않으나, 21세기에도 민간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인 편이다. 이는 '사회주의'가 오랫동안 ' 북한, 중국, 소련 등 냉전의 최전선에서 대한민국을 위협해 왔던 공산주의 국가 혹은 그들을 추종하는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기 때문이다. 기실 이러한 인식이 냉전 구도에서는 크게 틀리지 않았기도 하고.[51] 게다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냉전적인 이념대립 구도가 막을 내린 반면, 한반도에선 여전히 북한과 중국이라는 자칭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냉전이 현재진행형인 것도 있다. 진보정당의 경우는 과거 민주노동당의 당 강령에 사회주의가 있었으나 이러한 현실을 이유로 해산 직전 열린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를 강령에서 삭제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결국 삭제되었다. # 진보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사회주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

그래도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면서 복지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는데다가, 북유럽의 성공 사례들 등 긍정적인 면모도 알려지면서 점차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기는 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설사 사회주의에 비판적이더라도 예전처럼 반공주의적인 맥락에서 사회주의를 무작정 종북주의자 친중과 동의어로 여기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다. 지지자들이든 비판자들이든 간에 사회주의를 공산주의 유머처럼 일종의 밈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사회주의를 절대악으로 여겨 터부시했던 냉전 시대였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10. 관련 어록

The issue is Socialism versus Capitalism. I am for Socialism because I am for humanity. We have been cursed with the reign of gold long enough. Money constitutes no proper basis of civilization. The time has come to regenerate society — we are on the eve of universal change.
쟁점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이다. 나는 사회주의를 지지한다. 인류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금의 지배라는 저주를 받아 왔다. 돈은 문명의 적절한 토대가 되지 못한다. 사회를 재생시킬 때가 왔다. 우리는 세계적 변화의 전야에 와 있다.
유진 데브스, 1897년.
For you, to be a Communist or a Socialist is to be totalitarian; for me no.… On the contrary, I think Socialism frees man.''
당신에게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전체주의자이겠지만, 저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 저는 사회주의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자유에 대한 이보다 더 넓고 동시에 구체적인(실질적인)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런 의미로 자유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공산주의는 모든 개인적 자유를 축소하고 심지어 말살할 수도 있음을 물론 인정해야 한다.(많은 사회에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또한 이 자유를 최대로 확대할 수 있고, 이런 조건에서만 즉 개인적 자유가 확대될 때에만 공산주의는 인간사회에서 견고해질 수 있다.
표트르 크로포트킨
개인을 불구로 만드는 것은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최대 악이다. 이 악 때문에 우리의 교육체계 전반이 고통을 겪고 있다. 과장된 경쟁을 벌이는 태도가 학생들에게 주입됐고, 그래서 학생들은 미래 직업을 위한 성공을 숭배하게 됐다.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런 경제에서는 생산수단을 사회 전체가 소유하며 계획된 방식으로 이를 활용한다. 생산을 사회의 필요에 맞추는 계획경제는 일감을 일할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분배할 것이고 모든 사람(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에게 생활을 보장할 것이다. 개인의 교육은, 현재 우리 사회의 힘과 성공을 칭송하는 대신에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신장하고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을 자신 속에 심으려 시도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11. 관련 인물

사실 사회주의는 분파가 다양하기 때문에 여기에 수록된 사람들도 그만큼 다양한 정치사회적 스펙트럼을 보인다. 여기에서는 사회주의 성향과 사상을 가졌던 대표적인 인물들을 수록하였다. 단,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의 원류가 되는 인물들 중에는 아래의 목록에 추가될 수도 있다.

※ 공산주의 혁명가나 정치인을 찾는 경우에는 관련 목록 참고.
※ 아나키스트를 찾는 경우는 관련 목록 참고.

11.1. 대한민국

11.2. 그 외 국가

12. 정당[61]

12.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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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진보정당이 대체로 사회주의 성향이라는 거지 모든 진보정당이 사회주의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12.2. 그 외 국가

13. 단체

13.1. 대한민국

13.2. 그 외 국가

14. 역사적 사건

※ 일부 사건은 공산주의의 역사와 겹칩니다.

14.1. 대한민국

14.2. 그 외 국가

15.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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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관련 사이트

17. 관련 문서


[1] 토지, 공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 그 자체. 배송사도 생산 수단에 포함되고 학교나 병원도 생산 수단에 포함된다. 물자와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업장을 생산 수단이라고 한다. [2] 공유화와 국유화는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노동자들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직접 생산 수단을 돌리는 것이고 후자는 국가의 보호나 간섭아래 움직이는 것 [3] 여기서 시장경제를 허용하느냐에 따라 공산주의 시장사회주의로 나뉜다. [4] 사회주의가 사유 재산의 철폐를 주장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주장한다. 이 두 가지를 오인하여 사회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사회주의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버는 것에 의문을 던지고 그에 반대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입장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생산수단 사적 소유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사유권의 침해라고 주장하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옹호한다. [5] 예를 들어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6] 다만 케인스주의의 경우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채택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런데 일부 극우주의자나 보수주의자, 혹은 자유지상주의자의 경우에는 그러한 국가의 경제적 개입조차도 사회주의적이라면서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7] 물론 이에도 반론이 있다. 이러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의 과정을 사회주의의 영향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자유주의적 맥락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이클 샌델은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8시간 노동법이 제정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존의 노사관계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닌 이유를 설명할 때, 고드킨은 자유방임적 보수주의자들이 제시한 자발주의적 혹은 계약적 자유관을 수용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임금노동이 계약의 자유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자기만족적 가정은 거부했다. 노동자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생존의 극한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임금과 진정으로 교환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중략) 고드킨은 노동자들의 진정한 동의에 필요한 교섭 조건을 만들어내느 많은 조치들을 지지했다. 그 중 첫째는 노동자들이 자본의 시장 지배력과 균형을 이루고 '고용주와 평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었다." 샌델은, 이러한 입장이 사회주의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보다 이전의 중세의 시민적 공화주의에서부터 엄밀한 현대의 권리중심적 자유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이념 역시 상당한 역할을 한 것 역시 사실일 수는 있겠지만, 이념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이처럼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힘든 일이다. [8]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민주당, 프랑스의 사회당은 모두 사회민주주의를 당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거나 적어도 사회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은 정당들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은 특히 복지국가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반론이 많긴 하지만, 최소한 사회 민주주의적 풍토가 강한 북유럽 국가에 자유주의적 정책이 상당부분 적당히 조화가 되어, 현재의 북유럽 모델이 탄생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편이다. 반면, 그리스 등 남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서도 사회주의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거나 대중의 인기에만 영햡한다는 비판 등 그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미국은 2010년대 후반부터 젊은층 중심으로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9] 단, 이 영상에서는 사회주의 전체가 아닌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10] 맑스는 사회주의는 코뮌주의 사회를 위한 이행기 '국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종적인 목표는 코뮌주의 사회 즉 노동자들이 스스로 분배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결사체제를 형성하는 사회를 건설하고 이 코뮌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사회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사회를 말했다. 여기서 사회주의 국가는 단지 이 코뮌주의 사회로 가기 위한 중간다리 역할에 불과하다. 맑스는 이 사회주의 국가는 사적유물론에 따라서 자연스레 소멸할 것이라고 봤다. [11] 다만 생산수단 집단소유와 혼동하면 안되는데 집단소유는 개인이 아닌 특정 집단이 소유권이 있는 것이고 사회적 소유는 배타적인 소유권을 반대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소유하는 방식이다. [12] 이에 클리프주의같은 신트로츠키주의, 제3의 진영주의자들은 소련은 생산수단 국유화로 사회주의를 어겼고 중국은 덩샤오핑 이후로 생산수단 사유화를 허용하여 사회주의를 어겼다고 주장한다. 국유화, 집단소유 둘 다 생산수단 사회화에 위배된다. [13] 왕정·과두정·금권정·귀족정·독재 등 [] [15] 우익(Right)와 보수적,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다른 뜻이다. 그니까 오역이란 뜻이다. [16] 다만 맑스는 후기에 가서 러시아를 눈여겨보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마르크스는 역사발전 5단계론을 거부하는 모습도 보인다. [17] 출처: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카를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사이 제12장 미래 [18] 물론 그렇다고 컨베이너 벨트를 찬성하는 사회주의는 없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특히 소련의 가스테프(Алексей Капитонович Гастев)는 오히려 열렬한 과학적 방법론의 선구자이자 컨베이너 벨트 옹호자였다. [19] 인종주의를 의미한다. 반유대주의같은 것을 말한다. [20] 이탈리아 파시즘 두체가 이 역할을 맡았다. 즉 노동자 대표란게 따로 없었다는 뜻이며 이미 이 시점부터 파시즘적 사회화조차 안된다는 뜻이 된다. [21] 국가관제노동조합이 아니다. 국가단일노동조합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파시즘이 사회주의는 커녕 조합주의도 아니라고 까였던 것이다. 당장 베로나 선언문을 보자, 1945년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에서도 국가관제단일노동조합을 국가단일노동조합으로 확실히 그 자치성을 보장해야하며, 노동자가 생산수단에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라고 말하였다. 물론 그 사회주의적 참여가 아니긴 했다. 즉 후기 파시즘에서의 사회화시도조차도 사회주의적 사회화 시도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 그니까 애초에 하이에크는 알지도 못한 채 사회화를 추구했다고 말하는 것. [22] 겉은 갈색(나치)인데 속은 빨간색(공산주의)라는 뜻의 멸칭 [23]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원류 파시스트들 중 하나였던 마리네티 [24] 애초에 이 시점부터 공동소유가 아니지만. [25] 초기 괴벨스등의 좌파나치들은 민족과 사회주의에서 더 우선시해야될 것은 사회주의이며 모든 민족은 각 민족마다의 사회주의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후 이런 좌파세력은 하나 둘 숙청당하고 괴벨스는 히틀러 빠돌이가 되며 자신의 사소한 생각정도는 접어뒀다. 그니까 장검의 밤 이후에는 애초에 자기 스스로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대신 기존 기업가, 지주, 프로이센 출신 장교단들과 서로 상부상졸하며 여러가지를 양보하며 생산수단의 공유화도 어느정도 포기하며 경제를 이끌었다. [26] 당장 초기 파시스트들의 파시스트 선언, 카르나로 헌법은 물론 후기 파시스트 선언서인 베로나 선언 등만 봐도 그 당시 파시즘은 같은 파시스트 당원은 물론 파시스트 노동자들조차도 사회화와 공유화가 안됐다고 비판했던 것을 몰랐다. 더불어 라살(Lassalle)과 같은 이들은 이미 마르크스가 쌍욕하며 깠던 것도 모르고있으며 전체적으로 1차적 자료를 제대로 찾지 못한 점에서 부실함이 엿보인다. 뭣보다 라샬을 지지하던건 독일 사회민주당의 (맑스가 아예 책으로서 비판하던)고타강령이였다! [27] 특히 마리네티는 무솔리니 유대인 인종차별법을 제정하였을 때 이를 격렬히 반발하며 파시즘에 인종차별은 있어서도, 존재해도 안된다며 극렬하게 반대하였다. 이는 그의 미래주의 선언문과 미래주의당 선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면모이다. 물론 무솔리니를 엿을 날리시며 법을 제정하였고 마리네티를 협박하자, 마리네티도 어쩔 수 없이 이 법을 받아들이고 당시 이탈리아내 미래주의자들한테 같은 비판을 당했다. 물론 이들은 숙청당하거나 도망갔다. [28] 이는 원본 사회민주주의도 동일하다. 다만 노동자를 키우고 국가를 해체하기 위한 방법을 개량주의적으로 택한 것 뿐이다. [29] 출처:textsThe New Soviet Constitution: A Study in Socialist Democracy [30] 그러나 파시즘은 이게 형식상으로도 안됐고 자본가가 뭘 하고 싶으면 부르주아 즉 기업가와 먼저 대화해야하는 입장이였다. [31] 다만 파시즘은 대항하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오히려 이를 장려하는 이데올로기로 남았다. [32] 다만 현 중국 공산당은 마오주의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오주의는 원래 반권위주의적 반관료주의적인 모습을 띄고 실제로도 문화대혁명 당시에도 급진파 마오주의자들은 국가, 군대, 관료제를 완전히 해체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즉 지금 중국 공산당이 하는 것은 이름만 마오주의 시진핑주의이며 이는 마오주의와는 아예 다른 체계이다. [33] 출처:개혁개방 이전 중국의 민주주의 인식 이홍규, 중국에서 ‘사회주의적 민주’ 논쟁을 통해서 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백승옥, ‘중국식 민주’의 역사적 형성과 의미 이홍규 [34]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의 원류는 이미 1550년 경 영국에서 구빈원의 설치 등으로 이미 등장했으며, 이후 1601년 구빈법이 제정된 이래에 끝없이 발전되어왔다. 물론 초창기 구빈 이념이 비스마르크 이후의 본격적인 사회보장제도와 조금씩 목적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 복지국가의 이념이 사회주의와 맞닿아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 복지국가의 이념은 대체로 사회 공동체의 의무와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 해소, 사회 안정화 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데에 반해, 사회주의에는 공동체주의적 지향이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상당부분 노동자 계급의 각성과 계급의 이익 증대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의무로서 사회보장제도의 존립을 정초하고자 하는 시도는 비단 사회주의 뿐 아니라 공화주의나 보모국가론 등 사회주의와 상당히 다른 맥락의 이념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유주의자인 하이에크마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복지제도의 존재를 일부 옹호한 적도 있다. 심지어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은 이미 1906년 학교 무료급식, 1908년 노인연금, 1909년 최저임금의 도입을 통해 이미 러시아 혁명 훨씬 이전에 나타난 흐름으로 이것이 도대체 러시아 혁명을 위시한 공산권의 흥기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미 초창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너무나도 명백해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19세기 초반부터 활발하게 제시되었다. 노동법 제정이 큰 기여를 한 로버트 오언을 위시한 소위 초창기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자본주의 개혁에 일정부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제시한 방법은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는 협동조합운동이라던가 노동조합에게 자원의 관리권을 주어야 한다는 생디칼리즘 등의 해법이었지, 이들이 실질적으로 현대 자유주의 진영에서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물론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의 경영권 요구 운동 등이 일정부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대안으로 거론되거나 일부 시범적인 형태로 실행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대적 사회보장제도의 확립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적이 없으며 또한 현대의 노동운동은 노동자 계급의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주의의 이념과도 동떨어져 있다. 예컨대 마이클 센델은 19세기 미국의 노동운동과 노동법 개정을 단순히 권리중심적 자유주의가 확산된 영향이라고 보고 있으며. 영국 내의 노동조합운동 역시 지극히 타협적이고 실용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 대부분은 소위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사회주의는 단순히 '다 같이 잘 살자'를 외치는 허구적 정치적 구호가 아닌 명백하게 실존하는 이데올로기로, 단순히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해서 이런 주장들을 모두 사회주의 이념의 영향이라고 과장하는 것을 옳지 않으며, 정말로 사회주의 이념이 자본주의의 개혁에 영향을 끼쳤다면 사회주의 진영에서 제시하여 자본주의 진영에 영향을 끼친 명확한 제도적 제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이념이 본격적으로 탄생하고 발흥하기 이전부터 발달하고 있던 사회보장제도를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독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잘 쳐줘야 로버트 오언이나 칼 폴라니 등을 위시한 공상적 사회주의가 일정부분 자본주의 개혁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르크스주의로 대별되는 공산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등 주류에 해당하는 현대적 사회주의의 영향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35] 다만 구빈법은 애초에 복지법이 아니라 거리 빈민 청소에 가까운 법이였고(출처: 국가도 시장도 답이 아니다.) 1610년 구빈법 개정안은 오히려 도적, 무법자, 거리빈민들을 "수감"하고 "교육"시켜서 "사회에 다시 보내는 오히려 현대 감옥과 같은 법이였다. 특히 피털루 학살에서 보이듯 복지법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법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1831년 구빈법 개정안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48년과 56년에 공공복지법과 경찰법이 만들어젔지만 이 역시도 완전한 복지라기보다는 치안유지로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회복지학 개론서에서는 구빈법을 사회보장제도의 시원으로서 인정하고 있는데,이는 구빈법이 구빈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 때문이다.(김연희,영국 구빈법의 사상적 배경) 요컨대, 국가에 대한 복지 책임의 주장이 사회주의자의 영향이라는 일각의 인식과는 별개로, 이같은 구빈법은 이미 중상주의의 온정적인 기조에서 이미 출발해서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 이념이 오로지 치안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비록 맬서스 등 자유주의자에 의해 구빈법은 일정부분 축소 조정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맬서스는 구빈법의 완전한 철폐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빈민에 대한 교육과 자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오히려 현대 복지국가의 생산적 복지의 개념을 선취하기도 했다. [36] 예컨대 이들은 어떤 구체적인 이상적 사회를 구상한다거나, 이론적인 부분에서 논박을 벌이기보다는 빈민의 실태를 실증적으로 조사하여 소수파 보고서를 발행하는 등 실천적인 활동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37] 나아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운동 이외에 구체적인 제도적, 이론적 족적을 남긴 부분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38] 엄밀히 말해 이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복지 시스템을 도입한 것 뿐이며, 복지 시스템이 사회주의에만 가능한 것도 아니긴 하다. 위의 각주에서 언급하듯이, 그런 복지정책들 대부분은 사회주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또한 현재의 모범적인 북유럽 복지제도가 완성된 것은 북유럽이 90년대에 일제히 금융위기를 겪은 뒤 재정건전성의 관점에서 사회보장지출을 상당부분 축소, 개혁했기 때문이다. [39] 좌파공산주의같은 아나키즘, 자유지상주의적 요소가 있는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40] 네팔, 페루, 포르투갈 등 민주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집권 혹은 연립여당을 꾸렸던 공산당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들은 당 이름만 공산당일 뿐 민주사회주의지 민주공산주의가 아니었다. [41] 마르크스 엥겔스는 이상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도 구체적인 방법론은 설명하지 않았고, 여기에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각자가 생각한 방법론을 가져다 붙인 것이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로 이어졌다. 말로 이상사회를 상상하고 묘사하기는 쉽지만, 현실정치의 국가 운영은 이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이들이 혁명의 배반자라 비판하는 스탈린도 혁명의 관점에선 어땠을지 모르지만 현실정치의 관점에서는 소련을 단숨에 세계 제2의 패권국으로 끌어올리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실지를 회복해낸 유능한 지도자였고, 설사 트로츠키가 집권했더라도 같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표하는 학자들이 많다. [42] 출처:크로포트킨 - 상호부조론 [43] 그리고 몇몇 사회주의자들은(특히 나로드니키등) 오히려 인간은 공유지로 경작하며 생산수단을 공유하며 살았던 기간이 더 길기에 오히려 더 익숙하고 친근한 사회주의가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44] 다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자유주의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의지주의로서의 자유가 되는 것이 맞다. 왜냐면 마르크스주의 아나키즘이든 결국 이들은 노동자가 개인의 자유를 가지며 해방된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계급과 국가가 해체된 무계급, 무국가 사회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5] 출처: 웨인 프라이스 - 국가의 철폐 [46] 실제로 이로 인한 경제공황이 몇 번 있었다. [47] 어퍼머티브 액션은 원래 사회적 소수자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된 제도이다. 그러나 사회자유주의자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명분으로 막무가내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48] 반대로 공산주의 국가가 된 북한의 수도 평양은 일제강점기 기준 기독교 보수주의의 근거지였다. [49] 좌우익 모두 정치깡패를 위시한 백색테러, 적색테러를 벌였지만, 국가에서 양자를 처벌하는 온도는 현격히 달랐다. [50] 물론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한 일부는 소련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산국가 북한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미래를 내다본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탄압받던 좌파 지식인들 입장에선 그래도 이념적 스펙트럼이 가까운 북한을 선택할 동기가 있었다. [51] 사회주의 국가들이 전부 제2세계의 구성원들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이 밀접하게 교류하던 미국, 일본, 대만,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하면 소련이나 중국에 친밀한 태도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명백한 민주국가였던 북유럽 국가들도 지정학적인 이유는 있다지만 서유럽만큼 강경하게 반소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건 미국이 사회주의의 ㅅ자만 보여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해당 국가가 공산권에 접근할 수밖에 없도록 자초한 면도 있긴 하지만. [52]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자. 다만 그라쿠스 형제를 최초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동양까지 폭을 넓히면 왕안석도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53] 바로 위의 루터킹 목사와는 같은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였지만, 한때 폭력 혁명 노선을 두고 폭력을 사용해야한다는 말콤과 평화적으로 조정해야한다는 루터킹 목사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다만 루터킹 목사와 말콤 엑스가 서로의 노선을 존중하면서 암살되기 직전에는 화해했다고 한다. [54] 흔히 "이 사람도 사회주의자였어?"라고 하면서 놀라는 인물이다. 한국에는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한 시절에 비해 유년기가 훨씬 더 많이 알려져있기 때문. [55] 상대성 이론 등으로 유명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왜 사회주의인가"라는 글을 써서 사회주의를 논하는 등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성향을 보였다. 동시에 민족주의에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56] 다만 사회적으로는 인종차별주의를 신봉해 논란이 있다. [57] 공산주의(실상은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인 동물농장(소설)을 썼기 때문에 반공주의 인사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그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 군인으로 파시스트와 싸운 적이 있었던 사회주의자였다. 오웰은 '진정한 사회주의 이념을 깨뜨린' 소련을 싫어한 반소주의자였지 결코 반공주의자가 아니었다. [58] 사회주의 소설 강철군화의 작가. [59] 아나키즘, 평화주의,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명곡인 Imagine을 작곡했다. [60] UN 사무총장이며 소속 정당이 사회당이다. [61] 단, 공산주의 아나키즘 성향의 정당 및 단체는 제외 [62] 영국 노동계층의 선거권 쟁취 운동으로 당시 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이 참여했다.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이 운동에 참여한 바 있다. [63] 이 혁명 당시 노동자들은 적기를 들고 활동했다. 적기는 현재 사회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64] 마르크스 외 기타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의 문서가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문서가 보관되어있다. # 사회주의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가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65] 미국의 몇 안되는 사회주의 언론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미국 사회주의 계열 언론중에선 가장 크다. 이 잡지는 스스로 민주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로 다양하게 묘사되어왔다. 이 잡지의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낸 기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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