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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인민위원장 블라디미르 레닌 |
제2대 |
이오시프 스탈린 |
임시 |
게오르기 말렌코프 |
제3대 |
니키타 흐루쇼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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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
제5대 |
유리 안드로포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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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
콘스탄틴 체르넨코 |
제7대 |
미하일 고르바초프 |
}}}}}}}}}}}}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최고지도자 руководителей Сою́з Сове́тских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их Респу́бли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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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마지막 최고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 | |
취임일 | <colbgcolor=#ffffff,#1f2023> 1985년 3월 11일 |
정당 |
[[소련 공산당|]] |
관저 | 러시아 SFSR 모스크바 크렘린 |
[clearfix]
1. 개요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원수, 정부수반, 최고지도자.1917년 소비에트 헌법 발효 이후 소련은 장관평의회 주석을 정부수반으로, 최고 소비에트 상임간부회 주석을 국가원수로 삼았다.
여느 최고지도자가 그렇듯, 권력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련 최고지도자 역시 직책 이름이 무엇이든 의미가 없다.
2. 상세
1920년대에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이후 처음으로 ‘ 서기장’ 이라는 명칭이 쓰였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당과 정부에서 두 개의 최고 직책을 맡는 전통을 통해 서기장이라는 개념은 1952년 스탈린 치하에서 폐지되었다가 나중에 니키타 흐루쇼프에 의해 제1서기의 이름으로 재설립되었다. 1990년까지 서기장은 소련에서 가장 높은 자리였으나, 소련 지도자의 후임은 일반적으로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정치국, 중앙위원회 또는 다른 정부나 정당의 지원이 필요했다. 1990년, 개방 정책을 펼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국가원수를 서기장이 아닌 대통령으로 바꾸면서 서기장이라는 개념은 더이상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아니게 되었다.또한 대통령 집무실 설립과 동시에 인민대표대회 대표들은 소련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일당제 국가이며 공산당이 지도적 역할을 한다는 소비에트 연방 헌법 6조를 삭제하기로 했다.
3. 임기
제3조 소비에트 국가의 조직과 활동은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의 원칙 즉 상하의 모든 국가권력기관의 선거제, 이러한 기관의 인민에 대한 보고의무제, 상급기관의 결정에 대한 하급기관의 구속성에 따라 행하여진다.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는 통일적 지도, 현실적 창의 및 창조적 적극성과 위임받은 사무에 대한 각 국가기관 및 공직자의 책임을 결합시킨다.
소비에트 연방 최고지도자는 민주집중제 방식의 집권 체제였으며 임기에 제한이 없었다. 따라서 최고지도자가 죽을때까지 종신 집권이 가능하였다.
4. 목록
4.1. 블라디미르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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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레닌 (1922.12.30. ~ 1924.1.21.)[1] |
4.2. 이오시프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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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스탈린 (1924.1.21. ~ 1953.3.5.)[2] |
4.3. 게오르기 말렌코프 (임시)
게오르기 말렌코프 (1953.3.5. ~ 1953.9.14.)[3][4] |
4.4. 니키타 흐루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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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타 흐루쇼프 (1953.9.14. ~ 1964.10.14.)[5] |
4.5.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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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트 브레즈네프 (1964.10.14. ~ 1982.11.10.)[6] |
4.6. 유리 안드로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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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안드로포프 (1982.11.10. ~ 1984.2.9.) |
4.7. 콘스탄틴 체르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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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체르넨코 (1984.2.9. ~ 1985.3.10.) |
4.8. 미하일 고르바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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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고르바초프 (1985.3.10. ~ 1991.12.25.)[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