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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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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터넷의 역사
2.1. 컴퓨터 네트워크의 개념적 탄생2.2. ARPANET의 탄생2.3. ARPANET의 탄생 이후2.4. WWW의 탄생2.5. 한국에서
3. 월드 와이드 웹
3.1. 인터넷과 WWW3.2.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3.3. HTML과 W3C
4. 인터넷의 기원에 대해
4.1. 영국 측 입장
5. 인터넷 혁명
5.1. 인터넷의 파급효과5.2. 인터넷 보급율
6. 나라별 인터넷 속도 순위
6.1. 2016년 당시
7. 인터넷 관련 용어8. 매체에서9. 기타10.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인터넷 시각화.jpg
위 이미지는 인터넷을 시각화한 이미지이다.[1]
The Internet is the first thing that humanity has built that humanity doesn't understand, the largest experiment in anarchy that we have ever had.

인터넷은 인류가 발명해 놓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최초의 발명품이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아나키에 대한 실험이다.
- 에릭 슈밋

인터넷 프로토콜 스위트( TCP/IP)를 기반으로 하여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컴퓨터 네트워크 통신망을 일컫는 말이다. 그야말로 인류의 역사상 전례 없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인 셈이다. 인터넷[2]하면 흔히 이라고 줄여 부르는 월드 와이드 웹만 생각하기 쉽지만 인터넷은 월드 와이드 웹, 전자 메일, 파일 공유( 토렌트, eMule 등), 웹캠, 동영상 스트리밍, 온라인 게임, VoIP, 모바일 앱 등 다양한 서비스들을 포함한다.

2. 인터넷의 역사

인터넷을 누가 왜 발명했을까? - 쿠르츠게작트 영상

2.1. 컴퓨터 네트워크의 개념적 탄생

1950년대 영국의 크리스토퍼 스트라치[3]는 컴퓨터끼리 네트워크를 구성해 시간을 동기화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특허를 신청한다. 이 아이디어는 컴퓨터 네트워크, 더 나아가 인터넷의 근간이 되었다.

1960년대 소련에선 오가스 즉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전자정부, 전자 상거래, 전자 화폐를 구상했으나 이는 당시 시대에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4]

2.2. ARPANET의 탄생

미국 국방부는 중요 군사 정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었다. 처음에는 철벽 요새를 하나 구축한 뒤 이곳에 중앙 서버를 두어 모든 정보를 중앙 집중형으로 관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핵미사일이 이 요새를 공격하면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서 해결책이 없었다.[5] 그래서, 여러 곳에 서버를 분산 설치한 뒤 이를 서로 연결하여, 일부 서버가 공격 당하더라도 나머지 서버들로 관리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1969년 국방부 산하의 고등 연구국(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ARPA, 현재의 DARPA)에서는 이런 핵전쟁 하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교환을 위한 네트워크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기존의 회선 방식보다는 패킷 방식이 안정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또는 UCLA)와 스탠퍼드 연구소(Stanford Research Institute, SRI),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 바바라(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또는 UCSB),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 4곳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최초의 패킷 스위칭 네트워크인 ARPANET이 탄생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중 한명인 로런스 "래리" 로버츠(Lawrence "Larry" Roberts)는 ARPANET을 탄생시킨 업적으로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린다.

2.3. ARPANET의 탄생 이후

ARPANET은 초기에 NCP 패킷 송출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1983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현재와 같은 TCP/IP 패킷 송출 방법[6]으로 전환하였다. E-mail과 같은 통신 규약이 이때부터 만들어 졌으며, 이를 통해 논문 등의 자료를 주고 받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초기 4개 대학 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학교들이 ARPANET 에 연결되며 그 규모를 확장하였다.

원래 군사적인 목적[7]이었던 ARPANET에 눈독을 들이는 대학/기업이 늘어나자, 국방부는 ARPANET을 민간용으로 풀어 버리고 이것이 현재의 인터넷 환경의 기반을 갖추었다. 국방부는 이와 별도로 군사용의 MILNET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한편 미국 국립과학재단(NSF)도 TCP/IP를 사용하는 NSFNET라고 하는 새로운 통신망을 1986년에 구축하여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NSFNET는 전 미국 내의 5개소의 슈퍼컴퓨터 센터를 상호 접속하기 위하여 구축되었는데 1987년에는 ARPANET를 대신하여 인터넷의 근간망(backbone network)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2.4. WWW의 탄생

1989년 3월, CERN의 소프트웨어 공학자 팀 버너스리 경은 CERN에서 인사 재배치 등으로 기존에 수행했던 실험 결과를 비롯한 각종 문서들이 유실되는 비율이 높은 것을 보고 이를 줄이기 위해 Information System: A Proposal을 제안하였다. 또한 여러 연구기관에 흩어져 있는 문서들을 체계화하여 전 세계의 대학 및 연구소들끼리 정보를 신속하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문서뿐만 아니라 소리, 동영상 등을 망라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전문 열람 소프트웨어로 열람하는 방식을 생각해 내게 됐다. 이것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WWW)의 탄생 배경이다.

월드 와이드 웹 사이트는 1990년 12월 20일에 게시된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이 세계 최초의 WWW 사이트이며, 1991년 1월부터 CERN 외부에 공개되었다. 1991년 8월 6일자 월드 와이드 웹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여담으로 세계 최초로 인터넷에 업로드된 이미지는 이것이다.
파일:attachment/인터넷/image_1.jpg
CERN 연구소 여성 직원들 몇 명이서 만든 코믹 밴드 "Cernettes"의 사진.

냉전에 대비하여 군사목적으로 탄생했고 그 사용법도 어려웠기 때문에 군관계자 및 전문가 등 일부만 사용했으며 이는 컴퓨터가 업무용으로 보급된 1980년대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컴퓨터가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 업무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인터넷은 커녕 PC통신조차도 사용자가 백수십만 명 내외에 그쳤다. 그러다가 1989년에 PC통신 서비스 업체 컴퓨서브에서 인터넷 서비스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이 민수용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월드 와이드 웹이 탄생한 뒤에는 신규 업체들이 인터넷을 경쟁적으로 깔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 중순에 이르러서는 기존 PC통신 서비스들도 인터넷을 주 서비스로 변경하였고, PC통신은 사장되다시피 했다. 공교롭게도 월드 와이드 웹의 탄생시기는 냉전체제 대립 몰락의 시기와 거의 일치하였다. 물론 우연의 일치지만.

이보다 앞서서 널리 퍼진 PC통신은 8년 전쯤부터인 1980년대에 퍼진 프랑스 미니텔이 대표적이나, 이 성공이 역설적으로 인터넷 보급을 막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어쨌든 프랑스도 1990년대 말부터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미니텔 이용자가 크게 줄어나갔고, 결국 2012년 6월 30일 서비스 중단. #

2.5.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1982년 5월 서울대학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구미 전자기술연구소가 TCP/IP를 이용하고 1200 bps 전화선을 통해 연결한 SDN이 인터넷의 시초이다. 이것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TCP/IP 기반 인터넷 연결을 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연결을 주도했던 전길남(Kilnam Chon) 박사는 세계 인터넷 개척자 30중 한 명으로 인터넷 소사이어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8] 한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인터넷에 연결된 나라라는 주장이 인터넷에 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시아 최초의 인터넷 연결이자 TCP/IP 프로토콜을 사용한 초기의 자체 개발 네트워크로, 중요한 기술적 성과로 인정받지만, 이미 1973년에 영국의 UCL이 미국 ARPANET에 연결됐다.

1983년에는 UUCP[9]를 이용해서 네덜란드와, 1984년에는 미국의 CSNET과 연결했다. 그런데 이 시절에는 회선 유지비가 비싸서 CSNET 유즈넷의 자료를 마그네틱 릴에 백업 받아서 우편으로 한국에 가져올 정도였다고 한다. 회선비용도 부담이었지만 당시에는 전송 속도가 너무 느려서 대용량 자료는 이런 식으로 전달받는 게 일반적이었다.[10][11]

1984년에는 이 때 공중정보통신망(PSDN)도 개통하여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패킷보유망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1985년 최초의 PC통신 '천리안' 서비스가 문을 열었고 한글 전자우편 서비스가 개시되었으며, 1986년에 IP 주소와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kr을 할당받은 이후에는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ETRI 등 초창기 인터넷을 사용하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IP와 도메인을 할당했다. 1994년 초에는 카이스트에 국내 최초의 웹사이트인 ' cair.kaist.ac.kr'[12]이 개설되고 행정종합정보망이 개통된다.

1994년 김영삼 정부는 2015년까지 전국에 초고속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한국통신(현 KT)에서 코넷(KORNET)이란 이름으로 WWW기반의 인터넷 상용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하였다. # 코넷 말고도 데이콤인터넷, 아이네트의 누리넷 등이 일반 기업 및 개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연구기관이 아닌 일반인들도 점차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첫 서비스는 지금처럼 포탈 서비스 뜨고 그런 것은 물론 아니고 광활한 터미널 화면에 프롬프트만 깜빡이는 화면이 제공되는 것이었으므로 실질적으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사용하기는 힘들었으며 요금도 비싸기 그지 없었다. 1995년부터 누리넷이 대중매체에서 흔히 알려진 PC통신의 모습인 쉬운 사용자 환경으로 제공하면서 인기를 끌어 일반인 사용자가 늘기 시작했다. 물론 이 당시에는 PC통신을 통해서 접속하는것이 일반적이기는 했다. 이후 1997년에는 014XY 정액 서비스료가 실시됐고 넷츠고 다음의 한메일넷이 오픈하면서 국내 최초의 무료 전자메일 서비스와 온라인 검색, 포털 사이트가 시작된다.

1998년부터 김대중 정부는 2002년까지 초고속 통신망 구축 등을 목표로 한 "사이버 코리아 21" 정책을 추진하였다. # 그리고 1999년 제2시내전화사업자로 선정된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이 최대 8Mbps라는 속도를 내세운 ADSL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인터넷 보급에 큰 역할을 했는데, 대우전자 사장 출신으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첫 정보통신부 장관이었던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결정 덕분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부와 통신업계 주요 인사들은 속도가 일반전화모뎀하고 다를 바 없는 기존의 ISDN 동축케이블로 인터넷망을 구축하려 했고, KT도 1990년대 중반 ADSL 시범 서비스를 했지만 이를 뒷전으로 미뤄두고 ISDN을 계속 인터넷 전용선의 주류로 밀고 있었으나, 배순훈 전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이를 극구 만류하고 전화 기지국을 기반으로 광케이블을 설치하도록 설득하였다. 광케이블은 기지국 의존성이 높지만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아 도시권의 경우 단일 기지국 반경 5km안에도 인구가 빽빽하게 거주해서 매우 적절한 정책이었는데, 이 때 만약 일본, 독일을 따라 동축케이블을 깔았으면 발전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1999년을 기점으로 ADSL과 케이블 인터넷이 상시 24시간 정액제 요금제[13]도와 함께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전화망용 모뎀과 PC통신을 넘어선 진정한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하나로텔레콤과 두루넷, 메가패스 등의 인터넷 제공 업체의 탄생은 인터넷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IMF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벤처기업 진흥정책, 국민PC 사업등 인터넷 관련 사업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고속인터넷망이 널리 보급되자 속도가 느리기 그지 없었던 데다가 이용요금도 비쌌던 PC통신을 대체했으며, 국민PC 보급으로 컴퓨터 보급이 이전에 비해서도 획기적으로 늘어나고 2002년에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가입자가 1000만을 넘어서게 되었다. 또한 벤처기업 진흥정책 덕에 인터넷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와 관련 사업도 단기간에 풍부해졌으며 PC방의 대대적인 확산으로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인터넷 사용률이 완전히 대중화되었다. 다만 장노년층들의 인터넷 사용률이 늘어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20년이 지난 2020년 현재도 노년층을 위한 인터넷, 스마트폰 사용법 강의가 남아있다.

이후로 2000년 경에는 케이블 인터넷, 2002년 VDSL, 2005년 100Mbps 광랜, 2010년 160Mbps HFC, 2014년 1Gbps 기가 인터넷을 거치며 지속적으로 속도가 향상되었다. 이처럼 유선 인터넷이 활성화된 반면 모바일 인터넷은 비싼 요금 때문에 사용률이 높지 않았는데, 2010년대 스마트폰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모바일 인터넷의 사용빈도가 크게 늘었다.

한국의 인터넷 발전에서 관공서 인터넷 설치와 전자정부화 정책의 공로도 무시할 수 없다. 관공서에 인터넷이 설치되려면 인프라의 설치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특성상 관공서가 사람들이 사는 웬만한 지역마다 있으므로, 민간인들은 이 인프라를 통해 인터넷을 설치하기가 쉬워지고 이를 통해 인터넷망의 보급이 촉진된 것이다.

23시 50분 ~ 7시까지는 인터넷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인터넷 회사들의 대다수 서버가 점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의 인터넷은 ActiveX를 쓰는 곳이 많아서 크로스 플랫폼이어야 할 인터넷의 본질과는 다르게 플랫폼 의존성( Microsoft Windows)이 있다. 초기에는 보안관련 미국의 규제로 부득이 엑티브엑스를 써야했다는 옹호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미국의 수출규제가 풀린 이후에도 계속해서 엑티브 엑스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래서 iOS/ 안드로이드가 촉발한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현 한국 인터넷 환경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3. 월드 와이드 웹

3.1. 인터넷과 WWW

워낙 WWW가 대세이기에 WWW를 인터넷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웹은 TCP/IP 기반 물리적 통신망인 인터넷을 활용한 서비스로 인터넷의 하위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WWW은 다음 세 가지의 기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통일된 웹 자원의 위치 지정 방법. 예를 들면 URL(Uniform Resource Locator).
두 번째, 웹의 자원 이름에 접근하는 프로토콜(protocol). 예를 들면 HTTP.
세 번째, 자원들 사이를 쉽게 항해할 수 있는 언어. 예를 들면 HTML.

따라서 이메일 같은 경우는 SMTP나 IMAP 등의 프로토콜을 사용하므로 엄밀히 말하면 WWW는 아니다. 다만, 이메일을 WWW 라는 껍데기를 씌워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한데, 일반적으로 '웹메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3.2.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

우리는 너무 흔하게 사용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하이퍼링크(Hyperlink)이다. 앞에서 상술한 인터넷의 역사, 특히 WWW 문단을 보면 원래 WWW은 학술 자료 열람용이었다고 되어 있는데 영미권의 학술 자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용이다. 한 자료가 얼마나 권위가 있냐를 따지거나 심지어 한 대학을 평가할 때도 이 인용 횟수를 따질 정도이니까. 특히 이러한 인용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 바로 구글의 페이지 랭크이다. 각설하고, 이러한 인용은 책에서 각주나 책 뒷장에 몰아 실릴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하이퍼링크이다. 즉, 하이퍼링크는 애초에 인용을 전자식으로 각색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하이퍼링크를 담고 있는 것을 하이퍼텍스트라고 부른다.

3.3. HTML과 W3C

하이퍼링크, 하이퍼텍스트와 함께 WWW를 특징 짓는 것이 바로 HTML이라는 언어이다. 이 언어는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고 표시해주는 언어로써, 팀 버너스리가 WWW 개념의 시초가 된 엔콰이어(Enquire)를 창안한 이래로 1994년, W3C (World Wide Web Consortium)를 창립하여 현재까지 HTML에 대한 규격을 만들어오고 있다. 최근의 HTML5 지원이니 뭐니 하는 것도 W3C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 참고로 이것이 팀 버너스리가 1991년 8월 6일 최초로 만든 웹 사이트이다.

4. 인터넷의 기원에 대해

보통은 인터넷의 시작을 ARPANET으로 잡는데, 인터넷(Internet)이라는 단어 자체가 말해주듯이 각 지역 네트워크(Local Area Network, LAN 즉 인트라넷)를 연결(Inter - Network)하기 위해서 출발했기 때문이다.[14][15] WWW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잡는 경우에는 단순히 인터넷이 컴퓨터 상호 간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웹 사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후부터 일부 소수의 전문가, 얼리 어뎁터 집단의 점유물이 아닌 대중 전반의 정보 교류로 확장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WWW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보는 쪽에서는 '현재의 웹 사이트가 없는 인터넷을 과연 인터넷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대중적이지 않은 목적으로 시작한 ARPANET을 인터넷의 시초로 잡는다면 좀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유럽 쪽의 의견에 손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성이 아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WWW보다는 ARPANET을 인터넷의 시작으로 잡는다.[16] 이러한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미국 VS. 유럽의 자존심 싸움으로도 번져, 소설 < 천사와 악마>에도 나오듯이 미국 유럽 간에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의견 대립은 꽤나 골이 깊은 편이다.[17] 이는 인터넷의 시작을 어느 쪽으로 잡는지에서부터 인터넷의 정의에 관한 문제로써, 개인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다.

유럽 미국간의 자존심 대결을 떠나서 봐도, 기반이 되는 TCP/IP 프로토콜이나, E-mail을 비롯 gopher(웹이 등장하기 전에 검색엔진+html역할을 하였다), mailing service(푸싱서비스 및 오늘 날의 불법 파일 공유 역할), gml, sgml(html의 전신), irc(인터넷 채팅) 같이 www이 등장 이전부터 인터넷을 사용했던 소수들과 오늘날의 www 형태의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다수간의 인터넷에 대한 관점에 대한 차이도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rmtp(미디어 전송, 스트리밍이나 인터넷 TV, 올레TV같은 VOD), voip(인터넷 전화,보이스톡 같은 음성전송), dns(도메인 주소를 ip로 전환해줌)등과 같이 인터넷인지도 모르고 우리가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 집단에서는 아무래도 ARPANNET 손을 들어줄수 밖에 없다. 특히나 이러한 프로토콜이 오늘날 실제 인터넷 트래픽의 기반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4.1. 영국 측 입장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전 행사에서, 영국 팀 버너스리를 소개하여 인터넷의 뿌리가 WWW임을 표명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한순간에 논란이 종식될 리가 없지만, 행사의 한 부분을 버너스리, 한 인물에게 집중하면서까지 강조를 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소개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컴퓨터 네트워크(ARPANET)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인터넷은 WWW부터 시작한다는 영국, 더 나아가 유럽 쪽의 의견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5. 인터넷 혁명

인터넷의 태동은 소위 '인터넷 혁명'이라고도 한다. 혁명이라는 단어에서 의미하듯 인터넷 시대로의 진입은 이제껏 인류 사회에 없던 거대한 변화를 이루어냈다. 불과 25~30년 전만 해도 외국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은 국제전화라든가 편지, 전신 등의 수단뿐이었고, 그마저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는 침대에 누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는 항공술의 발달 이후 태동한 '지구촌'의 개념을 더욱 현실화 시켜주었다. 때문에 농업 혁명, 산업 혁명과 함께 인터넷 혁명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은 컴퓨터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최종 발전체로, 정보 공유는 물론이며 소통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곳은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우리 삶에 하나의 요소로써 크게 작용하고 있다. 현재는 인터넷 없이 컴퓨터를 도저히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오히려 컴퓨터를 지배해 버린 상태다.

2010년에 인터넷이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었다. 만약 인터넷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면 최초로 '사람 및 단체가 아닌' 무형의 기술이 상을 받는 사례가 된다. 그래서인지 노벨 위원회도 일단은 후보이지만 받을 리는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인터넷이 상을 수상하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관련 캠페인까지 벌어졌으나 결국 2010년 노벨평화상은 류샤오보가 가져갔다.

인터넷의 순기능은 최근에 와서도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미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귀가 안들리는 청각장애인들에는 또 하나의 소중한 존재 중 하나가 인터넷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라디오가 큰 의미를 가졌던 것처럼 인터넷이 청각장애인들에게 그 역할을 하는 셈. 자유롭게 정보를 받고 의견을 개진하는 데 있어 이만한 것이 없다. 현재 장애인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기기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으니 그 장점이 점점 커질 것은 당연지사.

장하준은 인터넷은 대단한 발명품이긴 하나 세탁기에 비하면 아직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이 적다고 2011년에 주장하였다.[18] 물론 점점 빨라지는 기술의 발전과 스마트폰의 대중화, 사회 문제에 있어 커지는 영향력을 보면 2023년 현시점에서 인터넷은 인류의 대표적인 발명품 중 하나이며, 정하준이 주장한 "범용성"의 관점에서가 아닌 "기능성"의 관점에서 인터넷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이다. 인터넷으로 파생된 각종 산업, 시스템들을 생각하면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1999년, 영국에서 독방에서 100시간 생존 게임 실험을 한적이 있는데 인터넷만으로 생활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나왔다. 이게 1999년에 나온 실험 결과다! #

5.1. 인터넷의 파급효과

명실상부 인류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래서 여러가지 폐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계적으로 더욱 더 보급되었다.
  • 지구 반대편 국가의 소식들 조차도 순식간에 빨리 퍼지게 되고, 인터넷 마켓을 통해 거래되는 물품들이 늘어나며 정보산업과 경제에 기여도 했다.
  • 인터넷으로 인하여 오프라인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어려워졌다. 인터넷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범죄를 저지르면 멀리 떨어진 나라로 도망가서 조용히 짱박혀 살면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19] 되었지만 이젠 그게 불가능하다. 한 번 범죄를 저지르면 현상수배서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다 열람할 수 있으므로 범죄자는 도망갈 곳이 없다. 홍석동 납치 사건의 경우도 범인들을 체포하는 데 인터넷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반대급부로 사이버 범죄가 많아졌다.[20]
  • 인터넷으로 인하여 재택근무에 해당하는 직업이 많이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쇼핑몰, 스트리머, 웹툰 작가 등이 있다. 물론 웹툰 작가는 만화가가 업그레이드된 직업이고 나머지 직업도 마찬가지다. 쇼핑몰은 상점주인의 온라인판이고 스트리머 또한 광대 혹은 배우의 온라인판. 순수히 온라인이 낳은 직업은 인터넷 설치기사 정도다.
  • 인터넷으로 인해 여론조작이 엄청나게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어용방송을 틀어주고 프로파간다를 하면 국민들을 쉽게 현혹시켰으나 현재는 자국의 뉴스보다 인터넷을 훨씬 신뢰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여론을 조작해봤자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거짓인 게 바로 들통난다. 하지만, 반대로 언론 직종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들에 의해서도 가짜뉴스가 손쉽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 인터넷의 기능 중 하나인 업로드 다운로드 덕분에 누가 특정 정보를 업로드(올려놓기)하면 어디에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또다른 사람이 그 올려놓은 정보를 해당사이트에 접속한 후 거기서 집어다가 자기 컴퓨터에 다운로드(가져가기)를 해서 유용하게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정작 다운로드를 받은 사람이 다운로드를 받은 물건을 재미나게 사용하는데 정작 그걸 업로드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혜택은 보는데 누구 덕분에 혜택을 보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 각종 서류 및 문건 관리가 훨씬 쉬워졌다. 회사의 예를 들면 기존에는 문서화해서 캐비닛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거나, 디스켓이라 하더라도 자료를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이제는 인터넷 사이트 및 개인 계정에 문건을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빈 손으로 돌아다니더라도 언제든지 문건을 열람할 수 있으며 분실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최근 스팀을 비롯한 ESD도 등장하면서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의 물리적 장치( CD DVD 등)가 훼손되거나 분실하여도 개인 계정만 잘 관리한다면 인터넷이 되는 어디서든 실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 위와 관련하여 소프트웨어 출시에 드는 비용이 대폭 줄었다. 이전에는 CD나 플로피 디스크 등으로 소프트웨어를 배포해야 했기에 생산 및 재고에 대한 비용 부담이 제법 있었다. 이는 Steam과 같은 ESD에서 파격적인 할인이 가능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업데이트 역시 인터넷으로 배포하면 되기에 업데이트 배포에 드는 비용도 대폭 줄었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미완성인 채로 일단 소프트웨어를 출시하고, 나중에 업데이트로 수정하는 일이 흔한 관례가 되었다.
  • 구인 구직도 집에서 할 수 있으며 더군다나 하루에 몇십 곳의 업체에 이력서를 넣는 게 가능해졌다. 그 결과 좀더 다양하게 비교 분석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결국 구인 및 구직자들이 자기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상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 물건을 구매하는 것조차 집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각종 구매사이트나 여행사, 각종 역이나 공항 사이트에 접속해서 인터넷 구매를 해두면 굳이 물건을 사러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 생판 얼굴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게 가능해졌다. 심지어는 나이도 국적도 직업도 성별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힘을 합쳐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페인에서 서로 상대방의 이름도 직업도 아무것도 모르는 고전 게임 덕후들끼리 모여서 스트리트 오브 레이지 리메이크라는 게임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게임이 또 대박이 났다. 또한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라는 가수와 빌리 해링턴이라는 배우가 대한민국에 알려진 이유 역시 인터넷이다.
  • 전문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졌다. 간혹 인터넷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는 말이 존재하지만 이는 위키나 SNS때문에 생긴 편견이지 인터넷 자체의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요즘은 RISS DBpia, 최종병기급인 구글 학술검색의 존재로 인해 인터넷이 '훨씬 양질의 자료'들을 '훨씬 빠르고 편하게' 구할 수 있다.
  • 극단주의 성향을 가진 자들이 인터넷에서 보장되는 익명성을 악용하여 쉽게 활동할 수 있으며, 여러 극단주의자들이 난립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판국에 극단주의자들 중 한 집단이 인터넷 여론과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될 경우, 그들의 의견과 가치관이 인터넷 여론의 주류가 되고 그들의 가치관과 의견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치관과 의견이 인터넷에서 위축되거나 말소되는 최악의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인터넷과 네티즌이, 사회적으로 미숙한 존재가 난관을 딛고 세계평화를 이룰 만한 인재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벽으로 전락할 수 있다.
  • 국제 금융 거래를 혁명적으로 진전시킨 일등공신이다. 증권거래소가 닫혀도 다른 나라의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하면 24시간 내내 거래할 수 있다.
  • 높은 접근성으로 인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좆문가, 유언비어, 거짓 정보, 뇌피셜 등이 넘쳐나게 되었다. 인터넷의 이용자 규모와 이 지구상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 가뭄에 콩나듯이, 아니면 복권에 당첨될 확률처럼 뜸하기는 하지만 간혹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많이 힘든 장애인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온라인 마켓도 있지만, 본인의 취미생활이나 창작활동을 온라인에 올려놨는데 그게 운좋게 인기를 끄는 경우가 있다. 애초에 인터넷 공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으므로, 겉모습이 어떤 장애인이든 온라인 활동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사회에 비해 하루종일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히키코모리들도 늘어났다.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위축된 사람들일수록 인터넷의 편리함에 빠져들기가 더 쉽다.
  • 관심사 분야로 덕질을 하기가 과거보다 매우 쉬워졌다. 따라서 돈을 제대로 모으기도 그만큼 어려울 수 있다. 덕질을 하려면 엄청나게 부지런하게 사람들을 통해 관련 정보들을 찾아 다녀야 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온라인에 덕질 정보들은 물론이고 여러가지 물건들이 가득해서 마음만 먹으면 온라인 상에서 몇번의 클릭으로 돈이 없는 사람들도 물건을 쉽게 사는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 모든 정보들을 누구나 쉽게 올릴 수 있기에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대면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간에서는 앞에서 하기 어려운 노골적인 의견을 마구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악플, 트롤링 역시나 인터넷 세계의 큰 폐단이다.
  • 대학교, 대학원, 회사를 비롯한 큰 단체의 분위기에 대한 평가를 자유롭게 올리고 볼 수 있게 되면서, 과거 사회에 존재했던 사회부조리가 조금이나마 수정되어 가고 있다.
  • 사회적 약자들의 매우 솔직하고 노골적인 생각과 의견들이 다 튀어나오는 곳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다. 현실적인 공간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주류나 강자들한테 대들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상으로 익명을 이용해서 불만사항을 다 토로하는 것. 물론 부당한 행동을 자행한 일부 주류나 강자들도 사회적 약자들이 인터넷상으로 본인들을 비난한다는 사실을 모를리는 없어서 약자들을 상대로 한 트롤링도 일어난다.

5.2. 인터넷 보급율

2024년 현재 시점에서 국내용 인트라넷을 주로 사용하는 북한[21]을 제외한 나라에는 전부 널리 보급되어있다.

2023년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의 지역별 인터넷 보급율은 아래와 같다.
순위 지역 인터넷 보급률(%)
1 북유럽 97.3%
2 서유럽 93.7%
3 북미 92%
4 남유럽 88.7%
5 동유럽 88.1%
6 남미 82.3%
7 오세아니아 79.4%
8 중앙아메리카 78.7%
9 서아시아 76.2%
10 동아시아 76%
11 중앙아시아 73%
12 남아프리카 72%
13 동남아시아 71.6%
14 카리브해 지역 68.6%
15 북아프리카 66.3%
- 세계 평균 65.7%
16 남아시아 51.5%
17 서아프리카 48%
18 중앙아프리카 28.4%
19 동아프리카 23.9%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통계는 노인인구나 모종의 인구로 인터넷 접근이 힘든 사람(장애인 등)을 모두 포함한 통계라는 것이며 또한 위와 같이 지역별로 묶으면 개별 국가의 통계를 명확하게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가령 동아시아의 인터넷 보급률이 76%로 나왔으나 한국의 인터넷 보급률은 2023년 기준으로 97.3%로 국민 전원이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인터넷 보급률은 94%(2022년) 중국 76.4%(2023년) 몽골은 66.4%(2023년)로 국가 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여 어떤 국가를 어떤 지역에 포함 시키냐에 따라 결과가 아주 상이하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 통계는 71.6%로 기재되었으나 동남아시아의 부국인 태국은 85.3% (2023년) 말레이시아는 94.5% (2023년)가 사용하고 있어 절대 다수의 국민이 인터넷에 접근 가능하며 동남아 최빈국 중 하나인 동티모르의 51% (2022년)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가장 사정이 좋지 않은 동아프리카의 인터넷보급률이 23.9%인데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2024년 현재는 아주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도 기본적으로 20% 이상의 인터넷 보급률을 기록한다. 예멘, 시리아, 아이티,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내륙국으로 매우 고립되어있거나 독재정 아래에서 신음하거나 전쟁의 참화 속에 인프라를 날려먹은 국가들도 20~40%의 인터넷 보급률을 구가한다. 이스라엘에 의해 이동의 자유가 통제당하는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합해 2023년 기준 89%, 외국인 관광 제한과 중국정부의 철권통지에 억압당하는 티베트는 70.7%의 높은 보급률을 보인다.

이들보다 더 사정이 좋지 않은 가장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국가들 가운데는 극빈국 중 하나인 남수단 7.0% (2023), 바다에는 해적들이 날뛰며 육지에서는 군벌이 할거 중인 소말리아 9.8%, 지구 최악의 극빈국 부룬디 14.6% (2022년), 테러리스트 탈레반 정부의 억압 아래 극도의 미디어 통제를 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18.4% 정도가 있다.

정리하자면 2024년 현재는 인터넷이 미얀마, 캄보디아 수준의 가난한 나라에서도 주요 도시 젊은 층 사이에서 대부분 널리 보급되어 있다. 도시의 20대 이하의 접근성은 사실상 100%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탈레반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로 꼽히기도 하는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점령했을 때도 인스타그램 등으로 그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 이런 젊은이들은 모바일 결제, 동영상 시청 같은 것을 주로 하고 다닌다. 미얀마보다 더 사정이 나쁜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와 비견될 정도로 사정이 좋은 나이지리아 등에서도 고유 언어( 암하라어, 요루바어)로 된 통신체(주로 영어, 프랑스어 같은 언어가 섞인 형태)까지 등장하기도 하며, 사정이 안 좋은 나라도 최소 공공 와이파이 등을 사용해서라도 인터넷을 쓰기는 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자신들이 만든 저예산 영화를 유튜브에 공개하여 광고 수익 등을 창출한다. 북한, 에리트레아, 남수단, 부룬디 급의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경우가 아니면 최소 도시에서는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인터넷이 널리 퍼져 있으며, 심지어 북한마저도 중국 국경에서 몰래 북한을 찍은 영상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찍은 북한 영상이 인터넷으로 퍼지고 있다.

인터넷 보급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예시를 몇 개 들자면 인터넷의 태동기인 1992년 '중진국의 최대'이던 대한민국의 인터넷 보급률이 0.1%였으나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인 2002년[22]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하위권 최빈국들[23]도 0.1~0.2%는 넘기게 될 정도였고,[24] Windows 95가 발매된 1995년 세계 최강대국이던 미국의 인터넷 보급률(9.2%) 역시 2005년[25]에는 최빈국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중국의 인터넷 보급률(8.5%)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

6. 나라별 인터넷 속도 순위

Speed Test Global Index 페이지에서 글로벌 속도 순위를 볼 수 있다.

6.1. 2016년 당시

순위 국가 2016년 2분기 평균 속도
(Mbps)
속도 등락
(전분기 비교)
속도 등락
(전년 비교)
- 세계 평균 6.1 -2.3% 14%
1 대한민국 27.0 -7.2% 17%
2 노르웨이 20.1 -5.8% 55%
3 홍콩 19.5 -1.9% 15%
4 스웨덴 18.8 -8.8% 19%
5 스위스 18.3 -1.9% 17%
6 핀란드 17.6 -0.6% 26%
7 라트비아 17.5 -4.5% 23%
8 싱가포르 17.2 4.5% 27%
9 일본 17.1 -5.7% 5.1%
10 아이슬란드 17.0 -2.6% 49%
순위 국가 2016년 2분기 최고 속도
(Mbps)
속도 등락
(전분기 비교)
속도 등락
(전년 비교)
- 세계 평균 36.0 3.7% 2.5%
1 싱가포르 157.3 7.1% 44%
2 홍콩 114.3 3.6% 21%
3 대한민국 110.1 6.3% 33%
4 바레인 100.9 32% -12%
5 카타르 97.8 9.6% 36%
6 마카오 94.5 10% 51%
7 인도네시아 91.9 -17% 335%
8 타이완 88.8 6.9% 23%
9 일본 85.3 0.9% 14%
10 루마니아 84.2 2.2% 22%

2016년 당시에는 1위인 대한민국이 2위인 노르웨이를 여유롭게 따돌리고 있다. 평균 속도가 아닌 최고 속도 기준으로는 3위를 랭크하고 있는데, 1,2위인 싱가포르, 홍콩 뿐만 아니라, 4, 6위인 바레인, 마카오 모두 도시국가 또는 미니국가급의 작은 나라들이다. 5위 카타르도 대한민국의 1/10 크기. 속도가 국가 면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도시급에서나 가능한 속도를 한국에서는 국가급으로 달성했다는 뜻이다.[26]

국내 지역별 속도는 2016년 10월 기준 다음과 같다.
순위 광역자치단체 100Mbps 회선 다운로드 속도
(Mbps)
지역 1Gbps 회선 다운로드 속도
(Mbps)
- 전국 79.6 전국 316.4
1 세종 92.3 울산 371.9
2 인천 90.1 전남 367.1
3 전북 88.5 제주 355.7
4 충남 88.3 대전 353.7
5 강원 83.5 광주 342.8
6 충북 82.0 충북 337.6
7 경기 80.7 강원 336.7
8 대전 79.5 대구 333.1
9 서울 78.6 세종 326.0
10 광주 78.5 경북 311.4
11 경북 78.4 인천 303.8
12 전남 77.8 충남 303.3
13 제주 75.6 경남 294.6
14 부산 72.3 경기 293.5
15 대구 71.8 전북 284.7
16 울산 71.2 부산 280.0
17 경남 71.0 서울 275.5
출처 인터넷 품질현황

다운로드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인터넷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다. 레이턴시라는 응답속도가 존재하는데 컴퓨터가 다음번째로 준비해 놓은 패킷을 보내려면 응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입한 대역폭과 관계없이 레이턴시는 거의 광케이블을 기반으로 10ms 언저리보다 작다. 실제 게임을 할 때라던가 레이턴시가 늦어지면 오작동이 생기거나 상호작용 반응이 늦어진다. 이 현상을 랙(컴퓨터)으로 볼 수도 있다.[27]

랜 설정에 보면 전이중, 반이중 같은 것이 있다. 전이중은 1차선 도로와 같고 반이중은 일방도로를 한번씩 왕복하는 것과 같다. 이 제어 조건은 신호의 안정을 고려한 것인데 딱히 효과는 없는것 같다. 신호 간섭원인. 전이중은 초당 1Gbps 대역폭에서 초당 다운로드 1Gbps/업로드1Gbps를 동시에 처리하므로 다운로드 속도가 초당 1Gbps에 도달하는 반면에 반이중은 TCP 통신 특성상 초당 0.8Gbps 언저리가 될것이다.

대칭형은 전이중이며 비대칭형은 반이중으로 볼 수 있다.

꼼수라고 주장하는 곳이 많은데 다운로드와 업로드를 동시에 측정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TCP 통신 방식은 오버헤드가 있기에 정밀한 속도 측정은 안 된다. 인터넷은 UDP 기반으로 속도를 측정해야 한다. 아날로그 통신은 사장되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7. 인터넷 관련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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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매체에서

보급되기 전후의 인류 생활사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물건이라, 시간 여행자를 다룬 매체에서 종종 다뤄진다.

일례로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에선 주인공 사라 코너가 2017년[28]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데, 모두가 인터넷을 통해 생판 남의 삶에 접근하는 걸 보고는 트로이 목마 같다며 경악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캡틴 아메리카는 1940년대 이래로 냉동 수면 상태였다가 2010년대에 깨어나면서 인터넷을 접한다. 닉 퓨리한테 말하길, 참으로 편하다고.

상술한 두 캐릭터와는 반대로, 엑스맨 시리즈 울버린은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데[29], 1960년대에 인터넷을 찾다가 없다는 걸 알고 한숨 짓는다.

9. 기타

10. 관련 문서



[1] 하나하나의 선이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얽혀있는 망이란걸 알수 있다. 인터넷이 구름으로 자주 표현되는 이유중 하나. [2] 인터네트워크(internetwork)에서 나온 이름이다. 하지만 인터넷과 인터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개념이며, 이를 구분하기 위해 인터넷은 Internet 또는 INTERNET과 같이 고유명사로 표기한다. [3] Christopher S. Strachey. 세계 최초의 컴퓨터 음악을 코딩하기도 했다. [4] 컴퓨터를 통한 전자정부는 1970년대 초반 사이버신 계획으로 칠레가 어느 정도 실현했고, 전자상거래는 1980년대에 프랑스에서 미니텔을 보급하면서 실현되었지만, 속도가 현저히 느렸기 때문에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5] 핵미사일에 의해서 서버가 직접적으로 파괴되지 않더라도 방사능에 오염되기 때문에 사람이 서버에 접근할 방법이 없게 된다. [6] 빈트 서프(Vint Cerf)는 TCP/IP 프로토콜 탄생에 기여한 사람으로, 래리 로버츠처럼 인터넷의 아버지라 부른다. [7] 상술하였듯이, 핵전쟁 하에서도 안정적인 정보 교환이 목적 [8] 이걸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케이스 중 하나가, 스팸 IP를 막는 필터 중에 다른 나라에 해당하는 건 전혀 없으면서도 한국 IP를 막는 필터는 있다. # 이미 2001년에 한국발 스팸이 독보적으로 많을 수준이었다는 뜻(...) [9] Unix to Unix Copy Protocol. 유닉스 시스템끼리 서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간단한 프로토콜이다. [10] 1980년대 중반 당시에 1200bps와 2400bps 모뎀이 일반적이었지만 인터넷 사용하는데에는 300baud 모뎀을 사용했고 에러체크가 잘 되는 프로토콜인 zmodem도 나오기전이다. 상연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느려터지기 그지없었고 글씨 1줄 나오는데 10초는 걸렸으며 자료 다운은 더욱 힘들었는데 1메가에 10시간 그것도 국제전화 요금으로 나왔다 당연히 중간에 전송 에러가 났다면 다시 다운받는데 시간은 길게 걸렸고 요금은 요금대로 나왔으니 요금폭탄 확정. [11] 사실 21세기에도 페타바이트급 대용량 데이터는 물리적인 저장 매체에 담아서 배송하는 쪽이 전송 속도가 더 빠르다. Amazon Web Services Snowball이 대표적인 데이터 배송 서비스이다. 전파 망원경에서 외부로 관측 자료를 보낼 때도 하드 디스크를 배송한다. [12] 1996년 12월 12일 아카이브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카이브다. 2001년 5월 이후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13] 014XY 정액 서비스료는 적용시간이 별도로 있었으며 도수 정액형 서비스는 한도가 있었다. [14] ARPANET이 군부대, 연구소,기업 대학에 있던 각 인트라넷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 개발된 인프라였다. [15] 특히 지역네트워크를 지칭하였던 도메인(domain),지역네트워크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지점을 Gateway(관문)이라고 부르는 등 당시의 구축된 인터-네트워크 개념이 오늘날 그대로 남아 있다. [16] 특히나 현재에도 광범히 하게 사용되는 이메일(smtp), ntp, ftp, dns 등과 같은 서비스는 http(www) 이전 부터 널리 사용되었다. [17] 물론 천사와 악마의 배경이 WWW를 창안했다는 자부심을 갖는 CERN이 배경이여서 더욱 부각된 면이 있기는 하다. [18] 인터넷이 주로 아직까지는 선진국이나 소수의 신흥공업국 중심으로 정보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면 세탁기류의 가전용품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가정에서 사회로 이끌었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 참정운동도 이것이 개발될 무렵부터 활발해졌다. [19] 해외 체류 중에는 공소 시효가 정지된다. [20] 대표적으로 사이버 불링. [21] 북한은 독재 체제에 위협시되는 해외 정보 유입을 막아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일반적인 고위 간부를 포함한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약 수천 명의 특수한 계층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지만, 사유서를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한 번에 1시간만 허가해 주는데 눈으로 직접 인터넷 사용을 감시 받아야 한다. 북한/IT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아프가니스탄도 2001년까지 존속한 1차 탈레반 정권 시기에는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었고, 이라크 사담 후세인 집권기에는 일반인의 인터넷 이용이 사실상 금지되었으며,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고 불리는 독재국가 투르크메니스탄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시절에는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었다가 니야조프의 사망 직후인 2007년 해금되었다. [22] 사족이지만,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해이기도 하다. 자세한 사항은 선진국/대한민국 문서 참조. [23] 여기에도 르완다 내전의 상흔이 가라앉기 전이던 르완다, 부룬디, 소말리아도 포함된다. [24] 다만 당시에도 콩고민주공화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0.1%에 근소하게 미치지 못했고, 라이베리아, (아프리카 국가는 아니지만) 탈레반이 물러난 직후였던 아프가니스탄, 군사독재국가 미얀마만큼은 인터넷 보급률이 0%에 가까웠다. 그리고 북한은 2024년 현재도 인터넷 보급률이 높게 잡아야 0.1%다. [25] 사족이지만, Windows Vista 발매 1년 전이기도 하다. [26] 정보 출처 : http://speed.nia.or.kr/, 정보센터 > 인터넷 품질현황. [27] 컴퓨터 내부나 외부나 처리 지연은 마찬가지라서 프레임 저하나 응답률 저하 둘다 랙으로 부른다. [28] 영화 개봉 시점에선 2년 후 미래였다. [29]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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