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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에서 거행된 열병식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
1. 개요
러시아는 과거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열병식으로 유명했던 나라이다. 힘센 발걸음과 끊이지 않는 웅장한 음악이 러시아 제국군 - 소련군 - 러시아군으로 이어지는 열병식의 주된 특징으로 꼽힌다. 러시아 제국과 소련도 많은 부분이 현대 러시아와 겹친다.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현대 러시아까지 공통적으로 열병식은 국방장관의 군대 사열 - 연설 - 국가 연주/제창 - 군대 행진 - 기갑 열병식 - (항공 열병식)[1] - 군악대 퇴장 순서로 진행된다. 소련 시대의 열병식은 민간 퍼레이드까지 합쳐져서 주로 두 시간, 현 러시아의 열병식은 주로 한 시간 내외로 진행된다.
2. 역사
2.1. 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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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롭스키성 옆에서 거행된 파벨 1세 치세의 열병식 |
니콜라이 1세 치세에는 나폴레옹 전쟁 승리에 취해 열병식에 지나칠 정도로 주의를 기울였고, 이 때문에 기병이 열병식 대형밖에 설 줄 몰라 전쟁에서 무능했다는 기록도 있다.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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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한 열병식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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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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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열병식 |
2.2. 소련
소련은 1917년부터 1990년까지[A] 10월 혁명 기념일에, 1917년부터 1968년까지[A] 노동절에, 1945년, 1965년, 1985년, 1990년 4차례 승리의 날에, 그리고 국가 장례식이[4] 거행될 때 붉은 광장에서 대규모로 열병식을 개최했다. 또한 각 자치 공화국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열병식이 소규모로 개최되었다.
소련 시절 열병식은 소련군이 신형 전차, ICBM, 신형 전투기 등 신무기를 처음 세계에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해서, 열병식이 열리면 미국 등 서방 정보기관에서 녹화 테이프를 눈에 불을 켜고 보면서 새로 등장한 신무기가 있는지 확인하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소련의 열병식 구성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바뀌었다. 독소전쟁 이전과 독소전쟁 이후, 흐루쇼프 시기 그리고 브네즈네프 시기 이후 열병식 구성은 서로 다르다. 현재 러시아의 열병식 방법과 비슷하게 바뀐 것은 브네즈네프 집권기였던 1970년대 중반부터였고 해당 열병식의 구성은 오늘날 러시아, 중국, 북한 같은 동구권 국가들의 열병식 구성의 기본이 되었다. 군부를 견제하느라 열병식을 승리의 날보다는 주로 혁명 기념일에 열었다.
열병식의 시작은 레닌 묘를 참배하고 나온 소련의 최고 회의의 상무회 위원들과 총참모장을 비롯한 고위 군 지휘관들이 레닌 영묘 위의 연단에 나열하고 10시 정각에 제병 지휘관인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의 구령에 맞춰 시작된다. 역사 박물관 쪽에서는 제병 지휘관이, 스파스카야 탑에서는 소련 군부의 1인자인 국방장관이 의전차량에 탑승하여 붉은 광장을 각각 가로질러 레닌 영묘 앞에서 만나며, 제병 지휘관의 열병식 준비 보고 이후 도열한 모든 부대들을 사열한다. 이후 '우리 조국이여 영원하라' 전주가 연주 되며 병사들이 '우라'를 외치는 가운데 군악대는 열병제대 앞쪽으로,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과 열병식 선두서는 모스크바 군악 대학 생도들이 열병 선두로 이동한다. 이후 국방장관이 연단으로 올라가서 기념일을 축하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연설을 마치며 국방장관이 우라를 외치고 나면 소련 국가 3절까지 [5]연주가 되고 이후 열병식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린다.
이후 제병 지휘관의 구령과 함께 열병식 참여 부대들이 정렬을 하는 동시에 깃발 신호에 맞추어 의장대가 붉은 광장에 도열하게 된다. 이때 의장대는 레닌 영묘를 기준으로 역사 박물관과 스파스카야 탑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구령과 함께 떨어지는 의장대 장교의 첫 깃발 신호에 맞추어 의장대 병사들은 대검에 붉은 기가 달린 소총을 들고 빠른 구스 스텝으로[6] 도열한다. 이후 별도로 소총을 들고 있지 않고 바리케이드 역할을 하는 장교들은 살짝 뒤쪽에 도열하게 된다. 열병식 선두 대열에는 군악대가 위치하는데 '앞으로'라는 구절이 떨어지면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살짝 들어올리게 되며 '가!'라는 구호에 맞추어 모스크바 군악 대학 생도들이 피페와 드럼을 연주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되며 일정 구간을 지나게 되면 제일 앞쪽에 위치해 있는 트럼펫 수들이 신호에 맞추어 트럼펫을 하늘로 치켜들며 연주하게 된다.[7]
이후 등장하는 부대들은 열병식에 따라 달랐다. 굳이 정해진 것이 있다면 프룬제 군사대학은 각급 군사대학 장교들 중 행진 1순위 였으며 2순위는 레닌 정치대학 장교들이었다. 1987년 11월 7일 10월 혁명 70주년 기념 열병식의 경우 혁명 시기 군복을 입은 기병들과 타찬카, 승리의 깃발과 독소전쟁 당시 전공 부대기들의 행진 이후 선두에 프룬제 군사대학과 레닌 정치대학, 제르진스키 포병학교, 말리놉스키 기갑학교, 쿠이비셰프 공병학교, 티모셴코 화학학교, 가가린 항공학교, 주코프스키 항공공학학교의 대위에서 소령까지의 장교들이 행진하고, 이후 레닌그라드 고등 해양 공병학교의 생도들, 공수군 병사들, 모스크바 고등 국경수비대 군사학교의 생도들, 발트 함대의 해군 보병들, 내무군 제르진스키 사단의 병사들, 수보로프 군사학교와 나히모프 군사학교의 생도들, 모스크바 고등 군사학교의 생도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1985년 5월 9일 승리의 날 4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는 제1벨라루스전선군 제3충격군 제79군단 제150이드리츠카야 사단 군기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장교들은 독소전쟁 당시 10개 전선군의 군기를, 당시의 군복을 착용한 병사들은 독소전쟁 주요 전공 부대들의 군기를 들고 행진한 이후 육해공군 의장대 병사들이 뒤를 이어 행진한다. 이후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참전용사들과 파르티잔들의 행진 이후 전쟁 당시의 군복을 입은 병사들의 행진이 있었다.[8] 마지막 부대가 광장을 통과하게 되면 군악대가 굼 쪽으로 옮겨가고 이후 기갑 차량들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현대 러시아와의 차이점이라면 제일 선두에 T-34 전차 부대들을 투입할 때 해당 부대 지휘관과 기수가 탄 지프차들이 제일 앞에서 통과한다. 전차 부대들과 기계화 부대들이 통과하고 나면 단, 장거리 미사일이 통과한다. 소련 시기에는 별도로 공군기들이 하늘을 통과하는 곡예비행을 실시하지 않았지만, 장거리 미사일들이 통과하고 나면 화동들이나 열병식에 참여한 군인들이 영묘 위에 도열해 있는 상무회 위원들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이어 각 연방에서 모인 인민들이 해당 시기 공산당 주석의 초상화와 레닌의 초상화, 공산당 선전 구호 등이 적힌 펫말과 붉은 꽃을 들고 행진한다.
시기마다 이때 인민들이 어떤 식으로 행진하느냐가 달랐다. 1970년대 중반에는 대규모 메스 게임이 진행되었지만 80년대에는 메스 게임보다는 그냥 영묘 앞을 각지에서 동원된 인민들이 펫말과 꽃을 흔들며 통과하는 쪽으로 바뀌었다.[9]
====#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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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0월 혁명 24주년 기념 열병식[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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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전승 기념 열병식[11] |
게오르기 주코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원수가 말을 타고 사열을 받았다.[12] 영상을 잘 보면 연단 위에서 스탈린을 비롯한 당시 소련의 수뇌부들인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세묜 부됸니,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미하일 칼리닌 등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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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혁명 40주년 기념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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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0월 혁명 46주년 기념 열병식[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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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승리의 날 20주년 기념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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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0월 혁명 50주년 기념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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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0월 혁명 57주년 기념 열병식[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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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0월 혁명 60주년 기념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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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승리의 날 40주년 기념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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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혁명 70주년 기념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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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승리의 날 45주년 기념 열병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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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혁명 73주년 기념 열병식 |
2.3. 러시아
승리의 날에 붉은 광장에서 국가 차원의 대규모로 열병식을 하고, 그 외 레닌그라드 공방전, 모스크바 공방전[15],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 각 지역의 승전 기념일에도 지역 차원의 열병식을 개최한다.
열병식의 주제는 독소전쟁이지만 독소전쟁은 물론 적백내전, 멀게는 러시아 제국 시절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강렬한 군가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눈 못지 않게 귀도 호강하는 열병식으로 평가받는다. 본래 매년 했던 것은 아니다.
2.3.1. 역사
첫 개최는 1945년이었다. 전쟁 직후인 6월 24일에 로코솝스키 원수가 총지휘를 맡고 주코프가 부사령관으로서 행진을 주관했다. 독일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역전의 부대 12개 연대를 동원했는데 각 연대는 무공훈장 수훈자 등 최정예 전투병력으로 편성했다. 총 4만 명의 인원과 1850대의 장비가 동원됐으며 기상 사정으로 항공기는 빠졌다.1946년과 47년은 5월 9일이 공휴일이었지만 열병식은 없었고, 그 뒤로 64년까지는 승전기념일 행사가 아예 없었다.
1965년에는 종전 20주년 기념으로 행사가 크게 열렸다. 독일 국회의사당에 붉은 깃발을 게양했던 콘스탄틴 삼소노프, 미하일 에고로프, 멜리톤 칸타리아 등이 참가했고 전체 참가인원의 1/2이 2차대전 참전용사였다.
1985년에 40주년으로 또 열렸다. 2차대전 참전용사들과 더불어 2차 대전 당시 장비인 T-34/85, SU-100, BM-13 등이 등장했다.
소련 해체 직전인 1990년에는 베를린 트레프토프 공원에 설치된 소련군 기념비 #를 복제해서 트랙터에 싣고 행진했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부터 1994년까지는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할 수 없었다.
1995년에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과 포클론나야 언덕(Поклонная гора) 두 곳에서 열렸는데 제1차 체첸 전쟁으로 러시아의 군사행동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에 이를 의식한 옐친 정부에서 기갑 부대와 항공기는 포클론나야 언덕으로 모두 보내고 외국 정상들이 참석한 붉은 광장에서는 노병들과 일부 보병 부대만을 참가시켰다. 붉은 광장에서는 1945년의 열병식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2차 대전 당시 군복을 입은 현역병들이 대거 참가했다. 이때부터 현대 전투장비가 본격적으로 동원됐으며, Tu-95와 Tu-160 등 최신 항공기 79기가 투입되었다. 그리고 이해 5월 19일에 ‘1941-1945년 대조국전쟁 당시 소련의 승리를 영속화한 연방법’을 채택해서 매년 열병식을 열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60주년인 2005년에는 2차대전 당시 사용한 군용트럭인 GAZ-AA로 꾸민 차량 130대에 탄 참전용사들이 붉은 광장을 가로질렀다.
승리의 날 60주년, 70주년같이 10년 단위의 기념일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육군 보병, 수색대, 기병대, 코사크 부족, 해군, 공군, 기갑부대 등을 재현한 부대가 나온다. 독소전쟁 당시의 PPSh-41, PPS-43 등의 무기는 기본이요, T-34 전차 및 SU-100 자주포 등 당시 사용되었던 기갑장비까지 동원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러시아의 경제가 회복됨에 따라 다시 열병식의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2008년부터는 기갑 차량과 항공기를 대규모로 동원한다.
2.3.2. 구성
현재 러시아의 열병식 구성이나 진행방식은 브네즈네프 시기 소련의 열병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 과거 소련의 열병식과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열병식을 기준으로, 행사 시작 30초 전에 아나운서가 행사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방송을 한다.[16] 오전 10시(대한민국에서는 오후 4시)에 스파스카야 탑의 종이 울리고 제병 사령관의 구령과 함께 러시아 국기와 제1벨로루시전선군 제3충격군 제79군단 제150이드리츠카야 사단의[17][18]사단기인 "승리의 깃발"[19]과 러시아 연방 국기를 든 의장대 병사들이 성 바실리 성당 쪽에서 역사 박물관 쪽으로 붉은 광장을 가로 질러 간다.[20] 몇 보간 걸은 다음 보폭을 늘려 큰 걸음으로 전환된다. 의장대가 위치할 때까지 아나운서는 깃발에 관한 소개와 대조국전쟁에서 소련군의 업적을 간략하게 소개한다.[21][22]
다음으로 러시아 국방부 장관과 제병지휘관인 러시아 육군 총사령관이 탄 두 대의 자동차가 광장을 가득 메운 열병식에서 병사들을 사열한다. 사열이 끝나면 제병지휘관은 대열 앞에 위치하며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 사열대로 이동한다.[23]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경례 후 사열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보고한다.[24]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하며 연설 중간에 묵념한 후 다시 연설을 재개한다. 연설 막바지에 전승 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대통령이 "우라"로 연설을 끝맺으면, 장병들이 일제히 우라를 세 번 외치면서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고 예포가 발사된다.[25]
예포 발사와 함께 국가가 끝나면 열병식 행렬의 맨 앞에 선 제병지휘관의 구령에 따라서 의장대 병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렬한다. 제병지휘관의 구령이 떨어지면 행진이 시작되고, 드럼을 연주하는 모스크바 군악대학교 학생들과[26] 열병식이 시작할 때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갔던 의장대를 선두로 하여 먼저 외국 군대가 지나가고 그 다음으로 대조국전쟁에서 전공을 세웠거나, 러시아군의 핵심 전력을 담당하는 현역 부대들과 특수부대, 여러 종류의 군사교육기관, 군사조직, 준군사조직(철도경비대[27], 비상사태부[28], 내무군, 국경수비대 등) 부대들이 붉은 광장을 지나간다. 이때 각 부대의 최고 지휘관들은 붉은 광장을 벗어나 퇴장하지 않고, 중간에 관중석 쪽으로 빠져서 정렬하고 있다가 대통령의 사열을 받는다. 이러한 부대들이 지나가기에 앞서 2005년, 2010년, 2015년 열병식처럼 독소전쟁 때의 모습을 재현한 장병들이 나오기도 하며, 2005년처럼 2차대전 참전 용사들과 노동자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보병 부대의 행진이 끝나면 군악대가 굼 쪽으로 이동하고, T-34-85 한 대[29]를 시작으로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갑 차량들이 진입하면서 기갑 열병식이 시작된다.[30] BTR-80, T-90, T-72B3[31], T-90M, T-14, T-15, S-400, 9K720 이스칸다르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첨단 기갑 차량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보면 된다. 아예 이날 신형 장비를 대중한테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32] 2010년대부터는 현대 기갑 차량들이 등장하기 전에 T-34, SU-100같은 2차대전 차량들이 나오기도 한다.
기갑 열병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토폴-M이 빠져나가고 나면 Mi-26을 선두로 하는[33][34] 곡예비행이 시작된다. 2005, 2007년에는 Su-27과 MiG-29로 구성된 곡예비행편대가 붉은 광장 상공을 지나쳐가는 것으로 끝났고, 2011~2012년에는 러시아 국기와 육해공군기 등을 매단 Mi-8헬기들이 상공을 지나가는 것으로 끝났지만, 2008년~2010년, 그리고 다시 2013년부터는 각종 헬기와, 전폭기, 수송기, 공격기, 폭격기, 조기경보기, 공중급유기 등을 수십 대 동원해서 대규모 항공 열병식을[35] 항공 대열의 맨 끝에서 Su-25 편대가 하늘에 러시아 국기의 삼색을 그리며 지나가면서 항공장비 사열까지 종료되면 군악대가 관중석 쪽으로 전진하고, 의장대도 퇴장. 군악대는 군가를 연주하면서 둘로 갈라진 다음 양쪽으로 퇴장하고,[36][37]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이 군 지휘관들을 사열하는데 열병식을 마치고 퇴장한 부대 병사들은 가두 행진을 하고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등 전승 행사에 참여한다.
2022년 5월 9일 실시된 전승기념일 77주년 열병식에서는 악천후를 이유로 에어쇼가 취소되었음을 행사 2시간 전 크렘린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2023년 5월 9일의 열병식 중계에서는 항공기는 물론이거니와, MBT조차 단 한대도 찍히지 않았다. 차량부대를 이끄는 T-34/85 1대와 GAZ 티그르와 같은 고기동 차량들, BTR-80 소수, 야르스 차량과 맨 끝에 러시아 육해공군기를 계양한 K-17 부메랑 BMP 세 대만 지나갔다. 열병 인원도 사관학교 생도들 위주로 구성했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비아냥으로 1941년 10월 혁명 24주년 기념 열병식보다도 기갑차량이 적게 나왔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판.
정작 지방의 주요 도시들에서 벌어지는 열병식은 모스크바의 열병식보다 장비들이 좀 더 충실히 등장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 칼리닌그라드의 열병식에서는 모스크바에서 없었던 T-72BM 전차, 판치르-S1 등이 등장했고, 페름에서는 2S19 므스타-S, 노나 자주박격포, 2S31 베나 등이 등장했다. #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T-80BV, 하바롭스크 열병식에서는 T-80BVM 등의 전차도 등장했다. # # 로스토프나도누도 마찬가지였으며 #, 볼고그라드에서는 T-90A와 에어쇼까지 등장했다. # # 니즈니 타킬에서도 T-72, T-80 계열 전차들과, 코넷-D1 대전차 미사일 차량이 등장했다. # #
2024년 모스크바 열병식은 눈보라 속에서 거행되었다. 2023년과 동일하되 에어쇼가 포함된 형태로만 진행됐다. T-34-85 1량 후 기동차량 및 MRAP, BTR, 미사일 순이었다. 이로서 모스크바는 2년 연속 MBT 없이 열병식이 거행되게 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2024년엔 전차로서는 T-34-85 한대만이 등판했다. # 하바롭스크에서는 T-90M을 포함한 전차들이 등판했다. #
2.3.3. 기타
1990년대 이후로는 패전국인 독일 총리가 승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와 뒤를 이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거의 매년 승리의 날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2015년 행사에도 당일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모스크바에 가서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2022년 77주년 행사는 올라프 숄츠 총리 취임 이래 첫 행사이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국의 정상들을 초대하지 않으면서 숄츠 총리의 참석이 무산되었다. # 2023년에도 푸틴 대통령이 독립국가연합의 정상들만 주로 초대하고 서방 국가 정상들은 단 한 명도 초대되지 않아서[38] 독일 총리는 2년 연속으로 불참했다.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군사에 참가하는 장병들은 실수 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기에 몇 개월 전부터 연습해야 한다. 열병식은 5월 9일에 열리지만 연습은 그 전 해의 늦가을이나 겨울부터 시작된다. 차량이나 비행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갑 부대 승무원들도 바퀴까지 먼지 하나 없게 광택이 나게끔 닦아야 하고, 항공기 조종사들도 복잡한 비행대형을 유지하면서 정확한 위치와 시각을 맞추어 광장에 진입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게다가 사관학교 위주로 보병 행진을 진행하다 보니 최선두에는 연대장생도 내지 사관학교장이 서야 하고, 결국 나이 지긋한 중장이나 상장까지 고생하게 된다. 항공기 조종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60대인 장성급 조종사가 공중급유 시범을 보인다.
다른 지역의 열병식도 형식은 대동소이하다. 다만 열병식의 지휘관이 해당 지역의 사령관들로 바뀌고, 해당 도시가 전쟁 기간 어떤 전공을 세웠는지가 뚜렷히 강조된다. 예를 들면 상트페테르부르크 열병식에서는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900일이 넘는 포위를 견뎌낸 레닌그라드 공방전의 역사가 항상 강조되고,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롭스크에서는 일본과의 전쟁도 언급되는 식이다.[39] 또한, 경찰, 교도국, 소방대 등의 기타 국가기관 종사자들이나 명문 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경우도 있으며 열병식이 열리는 지역이나 해당 지역과 가까운 외국의 참전노병이나 군대가 초청되는 경우도 있다.[40] 물론 대외적으로 가장 많이 노출되고 신무기가 우선적으로 배치되는 모스크바의 열병식과는 달리 다른 도시에서는 S-300, BM-21, BMP-2, T-72, T-80 등등 2선급 무기도 많이 보이고 규모도 훨씬 작은 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세바스토폴처럼 항구도시인 경우 해상 열병식이 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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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전승기념일 열병식 군가 모음집 |
열병식에서 연주되는 군가를 맞추는 것도 군가 매니아들에게는 쏠쏠한 재미이다.
승리의 깃발과 함께 최초로 등장하는 군가는 성전이다.
이후 사열간에 나오는 25주년 기념 행진곡,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 행진곡, 사관학교분열행진곡, Встречный Марш для выноса Боевого Знамени, Гвардейский Встречный Марш В.М.Ф., (이름없는 행진곡), 영광(Славься)
이후 5월 9일 기념 팡파르 가 나온 다음 연설 후 러시아 연방 국가가 나온다.
본격적인 분열은 밀로라도비치 장군 행진곡 으로 시작한다. 뒤따라 수도행진곡, 5월의 모스크바, 나히모프 행진곡, 스포츠의 명예, 조국수호 행진곡, 카츄샤, 항공행진곡, 나는 믿는다 친구들아, 바다가 부른다, 전설적인 세바스토폴[41], 포병 행진곡, 우리는 하나의 승리카 필요하다, 레닌그라드 행진곡, , 진격, 소련 전차병 행진곡
기타 행진곡으로 사용되는 곡들 중에는 슬라브 여인의 작별, 우리는 인민의 군대, 세 전차병, 승리의 날 등이 있다. 군가 이외에도 Синий Платочек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민간 음악도 들린다.
[1]
기상에 영향을 많이 받아 순서에서 빠지기도 한다.
[A]
1942년부터 1944년까지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개최되지 않았다.
[A]
[4]
물론 장례식 중 열병식의 규모는 타 기념일에 비해 제한되었다. 아무래도 장례식이다보니 기갑 부대나 전략무기 부대를 제외하고 군사학교 생도들로만 진행했다.
[5]
열병식 마다 느낌이 다르다. 같은 기념일이라고 해도 어떤 년도는 웅장한 느낌, 또 어떤 년도는 템포가 빠르다던지 공식적으로 정해진 곡조는 없다.
[6]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때 구스 스텝은 현재의 러시아 의장대와 같은 각도가 아닌 열병식 대원들과 동일한 각도이다.
[7]
1974년까진 드럼만 연주했으나 1975년부터 피페가 추가 되었고 1976년부터는 트럼펫이 추가되었다. 주로 연주된 곡은 '동지들, 용감히 행진하자'
[8]
현재 기준으로는 참전 용사들이 상당히 고령이라 그렇게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지만 1985년이면 승전 당시 30세라 쳐도 딱 70세이니 거동은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물론 더이상 청춘도 아닌 만큼 구스스텝은 현역 군인들보다 훨씬 작은 보폭과 낮은 각도로 시행하여 무리를 최소화하였다.
[9]
이때 소련 인민들의 행진은 오늘날 북한이 열병식 이후 시민들의 행진과 상당히 다르다. 소련은 북한과 달리 지도자를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처럼 상무회의단들을 바라보며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환호하는 연출은 없었고 그저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미소나 자신들이 생산해 낸 물품이나 직종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영묘 앞을 통과하는 방식이었다.
[10]
독소전쟁 발발 직후 긴급히 소집된 열병식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연설이 전쟁 초반 소련군의 사기를 복돋았다고 평가받는다.
[11]
승리의 날인
5월 9일에 개최되지 않았고 전후 복구가 일정 부분 이루어진
6월 24일에 개최되었다.
[12]
원래는
기병부대
정치장교 출신
이오시프 스탈린이 직접 말을 타고 사열하는 것도 검토했지만
오랫동안 말을 타보지 않아서 감각이 떨어지고 나이도 있어서 승마 사열이 곤란해지자 기병 장교였던 주코프에게 양보했다.
[13]
완전히 영상으로 기록된 최초의 열병식이다.
[14]
폭우로 인해 민간 퍼레이드가 취소된 유일무이한 열병식이다.
[15]
1941년
11월 7일 열병식을 기념한다.
[16]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주목해주십시오! 모스크바에서 알려드립니다. 붉은 광장을 주목해 주십시오! 승리의 날 퍼레이드!"이라는 방송을 한다.
[17]
러시아 서북부 국경 지대에 근접한 도시로, 이드리차(Идрица)를 해방한 전공으로 수여된 명예 칭호이다.
[18]
베를린 독일 국회의사당에 소련 국기를 게양한 미하일 예고로프와 밀리톤 칸타리야의 소속 부대이다.
[19]
Знамя Победы, 위 사진에서 러시아 국기 오른쪽에 있는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 깃발이다.
[20]
여기서 연주되는 배경 음악은
священная война이다.
[21]
소련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단기의 행진이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성전이 아닌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 행진곡과 함께 빠른 행진 방식이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전과 큰 보폭 구스 스텝이 도입되었다.
[22]
사실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일부 구소련 국가들도 이 방식을 넣는다.
카자흐스탄이나
아르메니아가 그 예, 다만 카자흐스탄의 경우 성전만 연주하는 것이 아닌 전주곡으로
이블라이 칸 행진곡을 연주한 뒤 중반에 성전을 연주했다가 막판에 다시 이블라이 칸 행진곡을 연주하는 방식이며 아르메니아는 성전을 연주하지 않으며 승리의 깃발이 아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깃발을 들고 행진한다. 이 외에도 미승인국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에서도 이 방식을 사용했다.
[23]
이때 군악학교 학생들도 같이 대열로 이동하여 제병지휘관 뒤에 위치한다.
[24]
보고 후 군악대가 트럼펫을 연주하는데 국가원수가 연설 등을 할 때 주목하라는 신호로 사용된다. 정식 곡명은 Московская Парадная Фанфара
[25]
2008년 이래로 모스크바에서는 군악대가 국가 1절만 연주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3절까지 합창한다.
[26]
소련시기와의 큰 차이점으로 소련시기에는 군악대가 피페와 트럼펫, 드럼을 사용했기 때문에 열병식 마다 다른 군가를 연주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27]
2011년에 승격되어 육군의 일부가 되었기에 현재는 아니다.
[28]
비상대책군이라는 준군사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29]
2015년과 2020년에는 T-34-85 11량과 SU-100 7량이 등장했다.
[30]
소련 시절 열병식 때는 붉은 광장 입구에 위치한 역사 박물관 양쪽으로 각 2줄씩 총 3~4줄에 달하는 기갑 행렬이 붉은 광장으로 진입했는데, 현재는 차량 수도 줄어들었고 왼쪽 입구가 복원되어 막혔기 때문에 한 쪽에서만 2~3줄로 나누어 진입한다.
[31]
T-72의 최신 개량형이다. 최근에 T-90 대신에 등장했다.
[32]
그래서 2015년에는 전 세계의 군사전문가들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이유는 열병식에서 공개된
T-14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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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항공행진곡이 연주된다.
[34]
다만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는
Tu-160이 선두였다. 당시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악화로 핵전력을 과시할 의도로 선두에 띄운 것으로 추정.
[35]
아예 동원되는 항공기의 숫자까지 해당년도에 맞게 맞추기도 한다. 예를 들면 2014년 69주년 열병식에서는 69기를 동원했다.
[36]
이 때 군악대가 연주하는 군악은
슬라브 여인의 작별,
소련군 찬가,
승리의 날,
우리는 인민의 군대 등이 있다.
[37]
1995년에서 2000년까지는 '
승리의 날'이, 이후 2001년에는 '
우리에게는 승리가 필요하다'가, 2002년에는 '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잠깐 연주되었다. 이듬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
소련군 찬가'가 연주되었고, 러시아 외의 군대가 처음으로 참여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연주되었다. 2015년에는 70주년을 맞이하여 군악대는
우리는 인민의 군대를 제창하고 '승리의 날'을 마지막 분열곡으로 연주했다. 이후 다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 75주년인 2020년에는 '승리의 날'이 연주, 제창되었다.
[38]
2022년부터 지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보인다.
[39]
일부 대도시에서는 여러 대형 군용 트레일러 위에 세트를 지어 파노라마 형식으로 역사적인 전투 장면이나 후방의 전시산업 등을 열병식 전후로 보여준다. 이에 과거 생각에 잠겨 눈물을 훔치는 참전용사는 덤.
[40]
예를 들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열병식에서는 그냥 깃발만 들고 지나가는 정도이긴해도 미군도 자주 모습을 비췄다. 당연히 2013년 후반 우크라이나를 두고 양국 관계가 경색되면서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되었다.
[41]
주로 해군보병이 등장할 때
저격용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