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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Wer davon lebt, einen Feind zu bekämpfen, hat ein Interesse daran, daß er am Leben bleib."
적과 싸우기 위해 사는 자는 그 적을 살려둘 이해관계가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적대적 공생(敵對的共生 / Adversary Symbiosis)은 별명이 적대적 동반자인
냉전 시절
정치
용어다. 현재에도 지구 곳곳에서 드러나는 모습이다. 원래의 의미는
미국과
소련의 강경파들이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며 위협하는 것을 이용하며 자신들의 이득을 채우는
공생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이다.적과 싸우기 위해 사는 자는 그 적을 살려둘 이해관계가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가령 소련의 강경파가 "미제를 쓸어버리기 위해 대륙간 탄도 미사일 배치를 늘리자"고 하면 미국의 강경파는 이를 가지고 최대한 선전하면서 "소련의 침략에 대비해서 국방비를 늘리자"고 외치는데 이번에는 미국의 강경파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비난하면 소련의 강경파는 다시 "미제의 침략에 맞서 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하면서 자국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 이러한 무한 루프가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정치인들은 콩고물을 챙기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지위를 단단히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미소의 강경파들이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적대정책을 취하면서 서로가 세력을 불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대부분 적대적 공생의 당사자들은 적대적 공생 관계를 딱히 인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진지하게 서로를 이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부 음모론에선 마치 당사자들이 의도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겉으로는 대립하는 척하며 이익을 얻는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는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음모론에 불과하다.
실제로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의 강경파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행동이 상대를 돕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군비를 확대하고 정치적 입지를 확대했으며 소련이 미국에게 직접 망한 것은 아니지만 소련이 사라진 후 중국과 유럽이 치열한 경쟁을 할 때 미국은 한동안 단독으로 전 세계를 제패하게 되어 경계를 풀게 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해 9.11 테러라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현재 미국은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을 비롯한 반서방 진영과 적대적 공생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미국에서도 애국자법과 국방수권법 같은 반자유, 반인권적 법률이 통과었으며, 냉전 종식 이후 계속 축소되던 정보기관들도 인력, 예산, 권한 등에서 큰 수혜를 입었다.
2. 대한민국 정치에서의 적대적 공생
2.1. 남북관계
"오늘은
공산당에 대한 나의 감상을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공산당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주의에 대하여도 찬성함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대책을 세울 때
공산주의를 채용할 점이 많이 있다."
-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해 한 말. #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명분으로 국가보안법제정, 제주 4.3 사건 과잉진압, 여순사건 과잉진압,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주도했던 사람이 정작 공산주의에 대해 찬성한다고 말하고 있다.[1]
-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중앙방송국을 통해 한 말. #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명분으로 국가보안법제정, 제주 4.3 사건 과잉진압, 여순사건 과잉진압,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주도했던 사람이 정작 공산주의에 대해 찬성한다고 말하고 있다.[1]
"
총비서님. (중략) 나는 대통령 재임 중 남북이 당면한 주요 사안에 대해
김일성 주석님과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님은 1985년 9월 내게 특사로 보낸
허담
노동당 비서를 통해, 만일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민족 모두가 파멸하게 될 것이므로 최대한 당면 과제는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나는
장세동
안기부장을 평양에 보내 김일성 주석님에게, 허담 비서를 통해 말씀해주신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생각을 전해 드린 바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우리는 대승적 차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포용해야 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 보복하지 않고 단 한 사람의 정치적 희생도 내지 않으며 평화적으로 합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업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총비서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총비서님의 건승을 빕니다."
- 전두환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보내려고 한 서한. #
적대적 공생이라는 용어는
미소관계에서 나온 것이지만
남북관계에도 적용되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의 김일성 정권은
6.25 전쟁 이후부터
미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선 일사불란한
유일지도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면서 비판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국민을 통제하면서 김씨왕조 체제를 완성하였다.
대한민국도 북한과 공산권의 위협을 내세워서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국민들에게 주입하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합리화하면서, 민주화 세력을 친북용공으로 몰아서 탄압하였다.[2][3]- 전두환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보내려고 한 서한. #
지금도 북한에서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연례 군사 훈련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키며 주민 통제와 세뇌의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강경 보수, 우익 세력들은 북한의 도발과 핵무기개발을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슈를 묻거나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소재로 삼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부터 대한민국의 우익세력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북풍몰이, 종북몰이를 하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해서 위기를 탈출하곤 했다.
이처럼 각각의 지도층(보수 강경파)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수십년 동안 이어진 결과 상대방의 도발이나 위협이 될 만한(이라고 자신들이 믿는) 사건이 오랫동안 없다면 체제의 안정이나 세력의 이익 확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위기가 없다면 위기 상황을 만들면 된다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결과물이 유신 체제와 사회주의 헌법 체제의 등장과 대한민국 희대의 스캔들인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총풍 사건이다.[4]
당시 대선 승리를 위해서 북풍이 필요했던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과 경제난 때문에 돈이 필요하던 북한 정권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가 총풍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북풍이라는 대한민국 보수 강경파들이 매우 좋아하는 이슈가 시기 적절한 때에 터졌으며[5] 지금도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직접적인 도발이 아니더라도 국내외의 이슈에 대해 황당하며 부적절한 북한의 코멘트를 대한민국의 강경파가 확대하여 반대파를 탄압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반미주의자 김기종이 벌인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에서 북한이 테러를 정당화하는 코멘트를 하고 다시 그것을 대한민국의 강경파가 피습 사건을 공안 사건으로 확정하고 반대 세력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 좋은 사례다. 박근혜 정부의 여러 실책성 정책으로 선거 승리가 불확실한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 터진 습격 사건은 보수 강경파에게 호재가 되었지만 북한의 뜬금없는 코멘트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자 임지현이 북한과 과거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의 관계를 이 개념으로 설명했다. 다만 이쪽은 그 표현이 좀 더 과격해서 ' 적대적 공범자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적대적 공범자라는 표현 자체는 남북관계를 설명한 것이고 꽤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는데 정작 2005년의 책은 원조로 돌아가서 이라크 전쟁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기를 탄 것이기는 하지만.
2.2. 한일관계
이 문서에는 남북관계가 먼저 서술되었지만 한일관계에서의 적대적 공생 또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남북관계에서의 적대적 공생은 서로 직접적으로 대치하는 만큼 인지하면서 일어났거나 그렇게 의심되는 상황과 사람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과는 달리 한일관계는 적어도 같은 친서방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이 비교적 옅다.대표적으로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 경우 당시 일본 방위성총장은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영상을 공개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아베 신조는 그런 거에 상관하지 않고 영상을 공개했다. # 당연히 일본 여론과 한국 여론은 악화될 대로 되었고 각각 내부 결집은 강화가 되었다. #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이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이후 해당 기업을 상대로 자산 압류 및 매각 명령을 내렸다는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였고 한국은 이에 대해 일본 상품단위 불매운동으로 응수하는 등 갈등이 불거졌다. 다만 삼성 같은 한국 대기업에서 납품하거나 받던 일본 기업들이 거래가 불안정해지고 여러 뒷감당을 하던 외무성의 반발로 출혈도 커졌다.
역사학자 임지현은 한국의 극우 세력과 북한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 또한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하였다.[6] 한국은 피해자 입장의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피해자 민족주의의 형태로 정당화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때 일본의 극우 민족주의가 강해지면 한국의 민족주의적 여론이 강해지게 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피해자 민족주의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시각인 듯하다. 임지현 교수는 일본 역사 교과서가 문제가 되자 한국에서 국사 교육 의무화에 대한 여론이 강해진 것을 예로 들어 이것이 민족주의자들의 권력 강화를 이끌어내었다고 해석하였다. 이 때문에 적대적 공범자들의 출간 당시 일부에서 친일 논란이 나오기도 하였다.
3. 적대적 공생의 문제점
적대적 공생 관계가 지속되면 각국의 강경파 이외의 국민 대부분이 피해자가 된다. 정작 수호했어야 할 경제나 안보나 외교는 무너지고 국가질서나 시민질서가 붕괴가 되어 버리며 도리어 독소 요인이 되어서 한 정부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군사적인 경쟁을 지속해야 하는 만큼 국민의 세금 부담은 커지고 복지는 줄어들면서 따라오는 경제적인 부담은 기본이다. 많은 경우 각국의 강경파들은 상대방의 도발과 위협을 자국 안에서의 정권 체제 안정 목적으로 활용한다. 작게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슈를 덮는 물타기 효과부터 인권 탄압과 반대파 숙청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명분이 되는데 아예 심해지면 적대적 공생 관계를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익만을 위해 활용하고 국가의 이익에는 반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좋은 사례다.
4. 적대적 공생의 장점
적대적 공생이라는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적을 제거한다기보다는 적에 대한 적개심을 이용하여 내부적인 권력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므로 적을 아예 파멸시키거나 정복하는 것이 목적인 전쟁광 같은 부류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을 수 있다. 내부적인 권력이 목적이라면 최소한 국가의 존속에 신경쓰겠지만 후자는 적은 물론이고 자신까지 파멸에 이르게 될 수도 있으니...이러한 적대적 공생에 의한 경쟁이 결과는 좋았다가 되는 경우도 있긴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양대 최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직접 무기 들고 싸우는 전쟁(열전)이 아닌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인 냉전을 택함으로써 서로간의 전면전은 피하면서도 대신 과학기술이나 우주경쟁 등등 다른 분야에서 승부를 겨루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져 발전에 공헌한 면도 없지 않다.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소련을 이겨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천문학적인 돈을 때려넣은 아폴로 계획 같은 것은 냉전이라는 시대상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계획들이었다.
스포츠 종목에서는 더비 매치나 라이벌전과 같은 사례가 스포츠 리그의 흥행이나 동기부여를 낳기도 한다.[8] 일방적으로 한팀이 독주를 하는 리그는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5. 적대적 공생 관계의 예시
- 이스라엘과 중동에서도 이러한 관계가 보인다. 선민사상과 시오니즘에 찌들은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모든 아랍인, 모든 이슬람은 테러리스트다!라면서 민간인과 테러리스트 가리지않고 무차별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하고 여기에 반응해서 아랍-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보아라 이스라엘과의 평화는 헛된 환상이다. 이스라엘과 그 뒤를 봐주는 미국놈들을 다 죽여라!' 식의[9] 무차별적인 테러 전술로 나오는데 그러면 여기에 반응해서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며 이런 악순환이 5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런 관계는 알카에다의 9.11 테러를 촉발시켰고 결국 인류 최악의 막장집단인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를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대 팔레스타인 강경 정책을 펴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 분열 및 파타 견제를 위해 하마스를 의도적으로 지원[10]한 것이 드러났다.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느니 하마스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 적당히 살려주며 영원히 싸우겠다는 것이다.
- 이런 적대적 공생 관계를 깨기 위해서 1994년 10월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의장이 땅과 평화의 교환이란 원칙하에 오슬로 평화협정에 합의하였지만 라빈은 1995년 이스라엘 강경파한테 암살당했으며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강경파 하마스가 떨어져 나가면서 지도력을 상실하였으며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 정치권과 이스라엘 정계를 장악한 극우 강경파의 방해속에 협정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는데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생지옥이고 이스라엘도 걸핏하면 터지는 전쟁과 테러로 조용할 날이 없어 유대인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는게 현실이다.[11]
-
중동
수니파 국가들과
시아파 국가들의 관계.
대표적으로 수니파의 대표주자 격인 수니파 와하브파가 국가 이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12이맘파가 국가 이념인 이란 관계가 있다. 둘은 페르시아 만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같은 이슬람이지만 서로 민족도 다르고 결정적으로 수니파냐 시아파냐 종파가 다르기 때문에 항상 적대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절대왕정/신정독재를 더욱 공고히 하게 해주기 때문에 적당히 이용해먹고 있다.
- 21세기 이후 미중관계: 양국은 서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 대립은 할지언정 감정적으로 관계를 파탄내는 짓은 하지 않는다.
5.1. 정치극단주의 및 진영논리
Somoza may be a son of a bitch, but he's our son of a bitch.
소모사는 개새끼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소모사는 개새끼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상대방의 극단적인 주장을 이유로 자신의 극단적인 주장을 합리화한다.
정치극단주의 세력들은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적이 필요하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말살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같은 혐한 단체가 한국인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면 한국에서도 수위를 높여 있는 것 없는 것을 더해 무고한 일본인까지 싸잡아 모욕하는 주장이 나오고 다시 그 주장을 혐한 단체가 받아 살을 더 붙여 혐오스러운 주장을 하는 것의 무한 루프가 일어난다. 이렇게 하면 각국에서 정치적인 힘을 얻고 경제적인 이득도 얻을 수 있지만 정작 양국의 평범한 국민들은 여러모로 피해를 보게 된다.
한국으로 치면 정치적 성향으로 논란이 많은 극우와 극좌, 그리고 중도극단주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사이트는 상대를 진심으로 싫어하지만 그 상대를 이기려는 무의미한 경쟁심과 단결로 인해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이 다른 커뮤니티들에도 피해를 입힌다.
냉전 시대에 미국은 자국민을 대량학살하고 인권을 무자비하게 침해하는 독재정권도 반소, 반공을 내걸기만 하면 동맹이라면서 서슴없이 지원하였는데 단순히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정보기관을 동원해서 직접 군부쿠데타를 배후 조종해서 스스로 반공독재 정권을 세우기도 하였다.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중남미 지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고 소련과 공산권이 붕괴하자 미국은 당연히 반소, 반공 정책을 폐기했고 이런 독재정권들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였다. 즉 소련의 존재가 중남미 우익독재 정권의 기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것도 일종의 적대적 공생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정치권이 과거 한국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탐탐치 않게 여기면서도 축출하지 못 한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게 대한민국을 동아시아 지역에서 반공의 최전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NLPDR 계열과 주사파들의 해석과는 달리 냉전 시대 미국과 남한 독재정권의 관계는 일방적인 예속 관계로 보긴 힘들다. 실제로 미국 정치권은 독재정권을 항상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고 대부분 마지못해서 지원하는 양상이었으며 여러 문제에서 끊임없이 충돌하였다. 이승만이 독재로 치닫자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을 동원해서 이승만을 체포하는 에버레디 계획을 수립한 적도 있고 박정희 시대에도 미국은 대외 개입을 줄이고 공산권과의 장기 공존을 선택하는 데탕트 정책으로 나갔지만 박정희는 종신집권을 위해서 오히려 남북긴장을 고조시키면서 10월 유신이라는 친위 쿠데타를 결행하였고 그 이후로 인권 문제로 계속 충돌하였다. 전두환도 정권을 인정받기 위해서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김대중을 석방하는 식으로 미국과 타협해야만 했다.
5.2. 라이벌
서로간의 피터지는 경쟁 속에서 링 위의 선수들처럼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고 양측 모두 성장한다. 다만 이런 개인적인 스포츠나 대결 같은 구도와 달리 국제정치적 관점으로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사소한 이유로 최악의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 VS. 중국 - 미국-중국 무역 전쟁
- 삼성전자 VS. 애플 - 스마트폰 시장 파이의 성장과 양강구도의 형성.
- 리오넬 메시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챔피언스 리그에서 엘 클라시코라는 브랜드 확립. 2018년 월드컵에서 둘이 맞붙었더라면 이보다 더 큰 월드컵 대박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에게, 호날두의 포르투갈은 우루과이에게 각각 썰리면서 둘 다 8강 진출을 못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여기서 최종승자는 우루과이를 이기고 올라간 프랑스가 되었다.
- 각종 더비 매치
5.3. 자연계에서
자연에서 서로 경쟁 관계나 포식-피식 관계에 있는 생물들을 적대적 공생 관계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토끼와 여우 두 종의 동물이 사는 지역에서, 두 종은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한 쪽은 죽이고, 다른 쪽은 도망치려 하는 적대 관계이나, 토끼가 없다면 여우는 굶어죽게 되며 여우가 없다면 토끼는 개체수가 과도하게 늘어났다가 식량 부족으로 굶어죽는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먹이사슬의 원리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다.위와 같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경우 피식자가 없으면 포식자는 굶어죽지만, 포식자가 없더라도 피식자의 개체수는 급격하게 불어났다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과 서식지의 환경에 의해 조절된다. 이 과정에서 포식자, 피식자의 생태와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개체수가 시간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할 수도 있고, 한 값으로 수렴하여 안정화할 수 있으며, 요동이 극심해지다 종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체수가 줄어들면 멸종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식량이나 서식지 등을 두고 경쟁 관계에 있는 종은 패배한 쪽이 밀려나거나 멸종할 순 있어도, 대치 상태를 적극적으로 유지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표현 자체가 인류의 국가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인 만큼 자연에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6. 관련 문서
- 1984 - 가장 끔찍한 사례. 3개의 독재국가는 저강도 분쟁만을 지속하며 독재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저강도 분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3국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더 끔찍한 추측에 따르면 이 분쟁조차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형태일 수도 있다.[12]
- 고장난명
- 공포 마케팅
- 공동경비구역 JSA - 남한과 북한의 군 수뇌부.
- 단두대 매치 - 반대 사례.
- 북풍
- 수평폭력
- 상호확증파괴
- 총풍 사건
- WWE(은어)
[1]
사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 정책은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많았다. 예로 경제 정책의 대다수는 공산주의에서 볼 수 있는
계획경제였다. 문제는 공산주의의 반대파 탄압을 그대로 본받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박정희가 반대파들에게 즐겨 쓰던
사법살인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받은 냉전 초기 몇몇 동유럽 국가들과 일부 이슬람권 국가들 외에는 드물게 쓰이는 방식이고(대부분의 독재 국가들은 정적들을 탄압할 때 재판 없이 살해하는 '초법적 살인'이나 수용소로 끌고 간 후 죽으면 '실종'이나 의문사로 처리하는 방식을 쓴다)
10.26 사건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공산국가인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처럼 학살하자고 주장했다는 말이 있기도 할 정도다.
[2]
이러한 적대적 상호의존이 심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칼럼으로
군사 충돌에 짓밟힌 민주주의의 봄이 있다.
[3]
이런 주변 환경을 명분으로 반공 독재를 강화한 경우는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시기
그리스와 냉전 시기
태국이 대표적이다. 둘 다 주변이 온통 공산주의 국가에 둘러싸여 체제적으로 고립된 환경에 속했다.
[4]
북한 측에 총을 쏴 달라고 했다고 요구했다는 것 자체는 사전 모의 없이 그냥 회담 중 돌발적으로 나온 발언이었음이 밝혀졌지만, 우발적이었든 계획적이었든 간에는 상관없이 보수 정당 관련자가 저런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는 국민들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5]
특히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민주화 후 첫 대선인
13대 대선 직전에 터졌기 때문에 정부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루머까지 돌았다. 물론 후에 자작극설은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결론이 났지만.
[6]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논리를 펼쳤다.
[7]
이 말은 실제로 옥스포드 대학의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했던 말로 알려졌다.
[8]
예를 들어서
라리가의
엘 클라시코가 없으면 지금처럼 라리가라는 리그가 인기가 있으리란 법도 없다. 세리에도 양밀란이 침체하면서 리그의 인기도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
물론 미국은 워낙 강해서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실제론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이지만.
[10]
정확히는
카타르가 하마스를 지원하는 것을 묵인했다.
[11]
병역 의무는 거부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초강경책만 주장하는 유대교 근본주의 종파
하레디가 이스라엘에 심각한 짐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2]
작중 '
오세아니아' 밖의 다른 국가가 과연 있기는 한지도 의심스럽고 작중에서도 독재 정권이 고의로 로켓 폭발 등의 행위를 자행한다는 추정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