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22:37:53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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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5678d,#7183aa> 근대 총기 발전사
장전 방식 전장식 후미장전식
격발 방식 매치락 휠락 플린트락 퍼커션 캡 탄피
강선 유무 머스킷 소총(라이플)


1. 개요2. 언어별 어형3. 역사4. 근대전과 소총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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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08270200.jpg

총신이 길고 총열 내부에 나선형의 홈인 강선을 팠으며, 개머리판이 있어 어깨로 지탱하며 발포하는 .

일반적으로는 개머리판이 있으며 적당히 길이가 있는 총을 의미한다. 대개는 소총탄 체급으로 분류되는 구경의 탄환을 쓰지만, 일단 소총 형태이기만 하면 산탄 셸이 아닌 한 어떤 구경의 총알을 써도 소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민수용으로는 사냥과 타겟 사격에 사용하는 스포츠용 소총이 있으며, 군경용으로는 용도와 형태에 따라 볼트액션 소총, 반자동소총/ 자동소총이나 돌격소총으로 분류되며 보병용 제식화기 전반을 아우른다.

2. 언어별 어형


소총(小銃)이란 한자어 자체는 일본 에도 시대에 쓰기 시작한 단어로, 당시 일본은 에도시기 이러한 총기류를 대포 등과 같은 대총(大銃)과 구별하여 사람이 들고 다닐 만큼 작은 총이란 의미로 소총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과 달리 과거에 동양에서는 대포를 총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총을 포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총과 포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일례로 조선에서도 천자총통처럼 대포도 총이라고 불렀다. 영어에서도 건(gun)은 총포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4] 그보다 전인 전국시대에는 총보다는 철포(鉄砲 てっぽう)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였고, 총을 처음 생산한 곳의 이름을 따서 타네가시마(種子島)라고 부르는 일도 흔했다. 소총이란 단어의 유래로 치면 현재의 영어에서도 개인화기와 그 외의 화기를 구분할 때 쓰이는 Small firearms(소화기小火器=individual firearms 개인화기)와 같은 맥락의 단어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대비되는 개념은 일단 화기에 대칭되는 냉병기(cold arms)가 있고, 개인화기에 대응되는 중화기(heavy weapons)가 있으며, 포병이 사용하는 화포류(cannons)가 있다. 일단 arms이라는 사람이 휘두르는 무기를 지칭한다. 중화기는 개인화기에 대비되는 무기로 보병부대에서 사용하는 무기를 말하는데 포병과도 대비된다. 박격포나 중기관총 같은 화기중대의 무기들이 여기에 해당되고 화포류는 포병이나 군함 등에서 쓰는 무기를 말한다. 냉병기와 화기를 합쳐서 부르는 상위 개념인 small weapons라고 할 경우 총화기만을 지칭하지 않고 개인 병장기를 두루두루 지칭하므로 보통 (미)군에서는 weapons보다는 화기를 특정하는 말인 firearms를 주로 쓴다.

북한에서는 보총()이라고 하는데 '보병총'의 준말로 '소총'이 보병총을 이르던 말이라고 간주한다. 어원을 따지면 중국과도 다른 독자적인 한자어다. 권총이나 저격소총에 대비되는 용어이다. 중국에서도 步铳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현대적인 소총을 일컬을 때는 잘 안쓰이고 步(보창)이라는 단어가 더 통용되는 듯하다. # 선우휘의 소설 <불꽃>에도 보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출판연도를 생각하면 옛날에는 보총이라는 표현을 구분없이 쓴 듯 하다.

영어 명칭인 라이플(rifle)은 본래 강선이라는 뜻으로, 과거 활강총이 대세이던 시절 총열에 강선을 판 특수 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기술 발전에 따라 라이플이 주력이 되어 활강총을 밀어내자 보병용 장총 전반을 일컫는 보편 용어가 되었다.

영어에서는 "롱 건(Long gun)", 말 그대로 장총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19세기부터 미국 등에서 견착식 대형 총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말이다. 영단어의 라이플(강선)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딴 선조총이라는 말도 있으나, 일상 용어로도 전문 용어로도 쓰이지 않는 준사어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소총이 산탄총으로 대표되는 무강선 총기(smooth-bore weapons)와 강선총(rifle, refled weapons)등을 다 포함해서 장총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롱 라이플, 롱 건이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롱이라고 붙일 필요 없이 그냥 소총이라고 하면 장총, 심지어 머스킷 등의 강선(rifle)이 없는 총기도 총열이 얼추 길고 개머리판 달렸으면 죄다 소총이라고 부를 수 있다. 피스톨이든 리볼버든 데린저든 전부 뭉뚱그려 권총(handgun)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어에도 롱 건과 정확하게 같은 의미와 용법을 가진 장총(長銃)이라는 말이 있는데, 주로 소총과 산탄총 등 길고 개머리판이 있는 총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이가 있는 사냥꾼들은 볼트액션 소총이든 사냥용 산탄총이든 모두 장총으로 부르기도 한다. 터미네이터 1편의 한국어 더빙 대사에서는 돌격소총도 장총으로 부르는 등, 90년대까지 권총이나 기관단총같은 단총(短銃)에 비해 총열이 긴 총을 묶어 부르는 용어로 쓰였다. 사실, 소총의 어원이 작은 포임을 고려하면,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인 장총이 오히려 소총을 더 명쾌하게 잘 설명하는 단어인 것이 재미있다.

3. 역사


1776년부터 미군 제식소총의 진화과정

발전과정: 전장식 머스킷 → 전장식 소총 → 후장식 소총

강선이 파인 조총이 처음 고안된 것은 16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 본디 소총을 의미하는 라이플이란 강선을 새기는 작업, 혹은 강선 자체를 의미했으며 후에 선조 조총류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변했다.

고안은 16세기에 이루어졌지만 이때는 정밀하게 금속을 가공할 수 있는 선반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지라[5] 탄환의 모양도 고속 회전에 적합하지 않은 단순한 구형이었고 지나치게 컸다. 또한 강선에 물리기 위해 헝겊이나 가죽 등으로 총알을 감싸 빡빡하게 만들어 장전해야 했다.

이후 약실을 총열보다 좁게 한 후 무른 금속으로 된 총알을 작은 망치로 톡톡 두드려서 강선에 맞물리게 하는 방식이 등장하였지만, 총알의 모양이 찌그러져 명중률의 저하가 나타났다. 결국 탄두 변형의 명중률 저하를 줄이고자 앞이 뾰족한 총알까지 등장했지만 장전 속도는 변한 것이 없어 사냥용이나 저격용의 특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파일:external/bemil.chosun.com/20091227190746.jpg
이것이 초기의 리드(Lead)탄(납탄)


척후병 전술과 소총 사격에 대한 설명 영상. 척후병 얘기를 하기 이전에 활강식 머스킷 사격과 보병 진형 전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미니에 탄이 보급되기 이전의 척후, 수렵용 소총의 장전 과정은 현대인이 보기에 상당히 골 때린다. 소총 사수는 먼 거리를 쏴야 하는 만큼 전열보병들보다 화약의 양을 더 정밀하게 재야 하고, 상황에 따라 화약을 더 부어 넣어 일종의 오버클럭(?)을 가해야 할 때가 있었기에 전열보병들이 납탄과 정량 화약이 함께 담긴 종이 카트리지를 입으로 뜯어서 장전할 때 군장에 달린 황동 계량컵을 이용해 황동 탄피에 화약, 헝겊, 총알을 미리 재 놓고 다니거나 아예 계량컵에 화약을 적당히 모아서 그대로 총구에 부어 넣는 짓을 해야 했다. 그 당시의 사냥꾼들이나 현대의 전장식 라이플 마니아들이 이렇게 장전하고는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장전해도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라이플 경보병은 초기부터 페이퍼 카트리지를 썼을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페이퍼 카트리지를 보급받거나 아님 개인정비 시간에 미리 준비하면 될 텐데 굳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쟁터에서 화약 양을 계량해서 넣는 짓 따위를 할 리가 없다.

그 뒤에는 총알이 강선에 맞물리게끔 헝겊 조각을 끼워 넣는 절차를 거쳐야 했으며, 총알을 총구에 얹듯이 물린 뒤 군장에서 손잡이에 달린 돌기로 헝겊을 감싼 탄을 밀어 넣는 bullet starter를 꺼내 톡톡 두드려서 끼워 넣고 그제야 여타 머스킷 사수들처럼 램 로드를 꺼내 총알과 화약을 다져 넣은 뒤 화약접시에 화약 붓고 코킹하고 쏘는 절차를 거칠 수 있었다. 물론 전열보병처럼 지향(present)하는 대신 정밀 조준 사격을 추구하였으므로 여기에도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19세기 초가 되면 전열보병처럼 페이퍼 카트리지를 쓰는 게 보편화되었는데, 화약 계량 문제 때문에 전열보병들처럼 총알과 화약이 같이 든 카트리지를 쓰지 못하고 납탄을 파우치에 따로 넣고, 헝겊을 모자에 따로 꽂고 다녀야 했다. 무겁고 비싼 황동 카트리지를 들 필요는 없어졌지만 헝겊과 총알을 따로 집어넣는 절차가 필요했다는 게 함정이지만, 어차피 조준하는 데에 시간도 걸리고 쏘고 튀어야 할 걸 감안하는 경보병 입장에서는 장전 절차가 조금 복잡해지는 대신 행군하기 편한(...) 무장을 갖추는 게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장전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헝겊으로 감싸 바느질한 총알을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물론 소총병들이 페이퍼 카트리지를 쓸 때 전열보병들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입으로 페이퍼 카트리지 뜯고 총알 뱉어 넣은 뒤 램 로드 쓸 필요도 없이 총을 땅에 쳐서 장전하는 테크닉을 쓰고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이 썼던 방법인데, 사격 속도를 최대한 올리기 위해 쓰는 임시방편으로, 원래 정석대로라면 꼬질대를 써야 한다.

선조총을 실제로 보병의 제식화기로 사용한 것은 19세기 초반 이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미니에 탄(minie ball)이 보급된 이후이다.

파일:attachment/d0056023_4a913588a66dd.gif
미니에 탄

획기적인 발상으로 새로 개발된 뾰족하고 유선형의 탄두, 그리고 총열 내부와 총알에 정밀한 강선을 새길 수 있게 된 선반 등 가공장치의 발달은 수십m에 불과하던 유효 사정거리를 수백m로 왕창 늘려버렸고 노린 대로 맞출 수 있는 정확도도 상승시켜버렸다. 당장 머스킷으로 조준사격을 하려면 해당 총기와 매우 익숙한 숙련자가 아닌 이상 50m 이상의 거리는 정확도가 떨어졌다. 평범한 보병들이 종래의 전열보병 교리에 따라 입으로 카트리지 찢고 꼬질대로 힘 안 들이고 쓱 넣어도 척후병의 소총과 필적하는 명중률이 나오니 보병 개개인의 화력이 이전 시대에 비해 무시무시해진 건 당연지사다.

이 덕분에 크림 전쟁에서 영국 프랑스 육군 러시아군을 화력 면에서 압도할 수 있었다. 이어진 남북전쟁에서는 발달한 야포와 더불어 이 소총이 양측에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양측의 보병들은 서로에게 정밀한 조준사격을 해대었고, 이 때문에 보병 개인의 살상 능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졌고, 이에 따라 사상자가 천문학적 숫자로 증가하며 전쟁은 점차 대량살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러한 소총의 발전 뒤에는 특허제도가 있었다.

말하자면 철기, 화약, 기관총, 핵무기 등과 더불어 인간의 전쟁사에 엄청난 획을 그은 무기가 바로 소총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4. 근대전과 소총

파일:external/www.warlordgames.com/9781855326040B4_big-600x398.jpg
나폴레옹 시대에는 보병 부대가 오와 열을 맞춰서 전쟁을 했다. 그래야만 여러모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갈 무렵,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소총을 개발함으로 인해 과거의 전술은 무용지물이 되고, 흔히 각개전투로 일컫는, 현대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술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전장의 주력이던 머스켓은[6] 사거리와 정확성이 라이플(소총)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예를 들어 당시 유럽 최정예 부대 중 하나였던 나폴레옹의 군대가 주 무기로 사용한 머스켓인 Modèle 1777 corrigé(1777형 머스켓 개량형)은 훈련된 사수가 사람 크기의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이 가능한 최대 거리가 90m였으며, 최적의 상태에서 연사 속도가 분당 3회였다.

그리고 100년 가까이 큰 발전이 없던 머스킷을 대신하여 전장식 라이플(소총)이 보병의 제식 무기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이다. 이 미니에 탄이 도입된 라이플은 연사 속도 면에서 머스킷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었지만, 유효 사거리와 명중률 면에서 이미 기존의 활강 머스킷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라이플로 무장한 보병은 2백여 미터 거리에서도 적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머스킷의 낮은 명중률을 보완하기 위해 집단으로 사격해야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전열보병의 장점은 거의 사라지고 단점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오와열을 맞춰 진격해오는 군대는 그저 크고 느려터진 손쉬운 표적이 되었다. 집단으로 사격을 하나 따로 떨어져 각개전투를 펼치나 명중률의 차이는 없었다. 따라서 멀리서 나무나 바위뒤에 숨어 조준사격을 가하는, 오늘날의 보병전투와 비슷한 전술이 가장 큰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전술의 발전속도가 무기의 발전속도에 비해 느렸던 것이 부각되는 편인데, 크림전쟁 시기부터 대량으로 쓰이기 시작한 전장식 강선총은 구시대 적인 전술과 맞물려 엄청난 사상자를 유발하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남북전쟁부터 이미 북군이나 남군이나 할것 없이 은엄폐전투가 더욱 빈번해졌고, 보어전쟁에서 기존의 전술로 일관했던 영국군은 보어군의 게릴라 사격전에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된다.

1860년대에는 연사 속도가 높고 장탄수가 많은 후장식 소총과 탄창식 소총이 보병의 주 무기로 널리 보급되었으며, 이 시기를 소총의 황금기라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정예 기병조차도 소총 사격을 뚫고 접근하여 백병전을 펼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소총의 사거리가 구식 활강포( 화포)의 사거리를 능가하게 되면서 대포가 보병의 밥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지휘관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대포를 토벽 등의 진지로 보호함으로써 소총탄으로부터 보호하였다.

이 무렵 등장한 프로이센 바늘총[7]의 위력은 유럽 열강에게 소총의 무서움을 절감하게 하여, 이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근대식 소총으로 무장한 보병부대를 운영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0px-Z%C3%BCndnadelgewehr_m-1841_-_Preussen_-_Arm%C3%A9museum.jpg
프로이센 육군 제식소총이었던 M1841 경뇌관총(leichtes Perkussionsgewehr). 별명인 Zündnadelgewehr(격발침 소총, 바늘총)이 더 유명한 최초의 근대식 제식 소총이다.

그러나 무기가 근대화되었다고 해서 전술도 근대화되는 것은 아니라서, 상당한 기간 동안 많은 나라들은 전근대적인 돌격을 시도했었고 그 결과는 항상 처참한 대살육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주요 참전국들은 사이좋게 참호를 뚫으려고 시도하다가 기관총과 철조망에 죽어나갔다. 고성능 원거리 무기가 지배하는 1870년대의 전장(예를 들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은 그야말로 도살장을 방불케 하는 지옥이었다.

한편 유럽 밖에서는 아직 현대식 소총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은 나라들도 많았다. 미국만 해도 스페인과의 전쟁(1898년)에서 보병용 총기로 흑색 탄약을 사용하는 후장식 단발 소총들인 스프링필드 M1873 레밍턴 롤링블럭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에는 총기를 개발해 판매하는 수많은 개인 기업들이 존재했고, 이런 회사들은 개량과 혁신을 거듭하여 머지않아 유럽의 제식 소총을 능가하는 고성능 소총(과 권총)을 만들어 미군과 개인들에게 공급하였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은 소총이 전장의 왕자로 군림하도록 오래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소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연사력을 가진 기관총은 보병을 압도하였으며, 라이플링이 된 포신을 가진 속사 강선포는 그 사거리가 소총을 크게 상회하여 공용화기(Crew-served weapon; 병사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운용하는 무기)가 전장의 저승사자로 다시 군림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초에는 유럽의 전장에서 소총의 황금기는 이미 끝나 있었으며, 이후 전쟁은 한동안 참호, 고지, 철조망, 폭격, 자살에 가까운 보병들의 돌격 등으로 대표되는 아수라장의 양상을 띠게 된다. 1차 대전 동부전선 같은 사례를 제외한다면 참호와 진지를 제대로 구축한 상황에서는 적의 거점을 손쉽게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며, 모든 전면전은 필연적으로 장기전, 소모전의 양상을 띠며 무수한 인명의 희생과 거대한 경제적 손실을 수반하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서부전선과 러일전쟁 당시 203 고지, 보어전쟁 등이 좋은 예다.

이를 혁파한 것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전차의 등장과 이를 중심으로 하는 기동전(소위 전격전)이 대두되며 20세기 초의 장기전이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는 참호 안에 있는 병사들이 거의 다 죽고 나서야 사령부 및 요충지(도시 등)가 함락되었던 것과 달리, 장갑판을 두른 기병대와도 같은 존재인 전차들이 적의 방어선에 구멍을 뚫고 그 뒤로 보병의 후속타가 이어지는 블리츠크리그에서는 전투 개시에서 종료까지 1개월도 걸리지 않는 고속전이 일반화되게 된다. 소총의 황금기에 적의 진영을 무너뜨리고 패퇴시키는 것이 착검한 소총을 든 소총병이었던 것처럼, 전격전의 시대에는 그 역할을 전차와 같은 기계화 병력이 넘겨받았다. 소총병은 그 대신 둔중한 기계들이 할 수 없는 다양한 업무, 예를 들어 기계화부대에 따라붙는 기계화 보병, 기갑이 활약하기 어려운 시가전에서 사각을 메우는 역할, 점령지에 깃발을 꽂고 유지하는 역할 등, 폭넓고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전차나 공격 헬리콥터가 지상전의 벽돌이라면 소총병은 벽돌과 벽돌 사이를 메꾸는 모르타르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기동전 전술의 출현을 근대전과 현대전의 경계로 보며, 이를 시작으로 항공기 근접지원, 전차와 보병의 협공, 보병 전투차, 헬리콥터를 이용한 적 후방 병력 투입 등 기술적 전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술이 등장하면서 현대전이 우리가 아는 21세기의 전투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근대전에서 보병과 소총이 주 무기, 즉 중세의 워해머나 창, 검처럼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역할을 했던 것에 비해 현대전에서는 이러한 역할은 주로 전차와 기갑차량, 항공기, 드론 등의 기계가 수행한다.

현대전에서 소총은 모든 전후방 가리지 않고 군인을 위한 다목적 호신용 화기, 또는 저강도분쟁에서 전술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특수목적 화기의 특징을 띤다. 옛날에는 최전방 보병에게 기다랗고 총검 달린 소총을, 후방 경계 병력에게는 권총이나 호신용 화기를 따로 줬다면, 현대에는 모두에게 무난한 소총을 주어 보급 소요도 통일하고 유사시 전투 능력도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포병, 미사일, 기갑, 공군 등이 국가의 망치라면 소총을 자유자재로 쓰며 첨단 장비로 무장한 특수부대는 수술용 메스같은 작업을 한다.

5. 관련 문서



[1] 영어 명칭인 Rifle을 음차하여 그대로 사용한다. 물론 한자어인 [ruby(小銃,ruby=しょうじゅう)](쇼쥬)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2] 원래는 강선을 뜻하는 영단어였으나, 총탄의 명중률과 탄도의 안정성을 높이려 총열에 강선을 파기 시작하며 소총의 영단어도 Rifle이 됐다. [3] 여담으로 .338 Lapua Magnum을 호환하는 반자동 저격소총인 Kivaari도 이 단어에서 따왔다. [4] 현대 영어에서 gun은 대공포, 전차포 같은 직사화기를 gun 이라고 한다. 구경별로 포냐 총이냐를 나누는 한국식 구별과는 다르다. [5] 역사적으로 탄환을 선반을 이용한 절삭가공으로 제조한 적은 없다. [6] 이전까지의 전쟁 추세는 활강 총열 머스킷과 화포를 이용한 화력전이었고, 특히 화포류가 사상자를 많이 냈다. 예를 들어 양측 합쳐 수백문의 대포를 동원한(그렇기에 사상률도 통상적인 15~ 20퍼센트보다 높아 무려 30퍼센트에 달한!) 바그람 전투나 보로디노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 대부분이 대포에 죽은 것으로 추정한다. 총검, 세이버, 랜스 등의 백병전 무기는 이미 부무기 수준을 넘지 못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냉병기로 인한 사상자는 15% 이하였다. #1 #2 그중 총검으로 생긴 사상자는 고작 2퍼센트 이하밖에 안 된다. 애초에 총검돌격 자체가 절대적 우위인 상황에서 하는 거고, 정상적인 보병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총검으로 맞서는게 아니라 그냥 도망친다. 기병의 주무기가 검이었고 추격임무까지 전담했음을, 그리고 전체 병력 중 기병의 비율이 이전 시대에 비하면 훨씬 는 것을 고려하면 절대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없다. 당대 병사들의 수기에 따르면 총검과 기병도가 두꺼운 군모나 군복 때문에 큰 상처를 못내거나 흘려맞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총상이 치료하기 더 어려운 점 역시 머스킷의 사상률을 끌어올리거나, 통계도 부정확하고 부상 원인보다는 사후 대처가 안 돼서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이므로 100% 맹신할 순 없지만, 어쨌거나 대포와 머스킷이 전장의 주력인 것은 명백했다. [7] Zündnadelgewehr. 원래 이름은 "1841형 경뇌관총"으로, 종이로 싼 카트리지를 이용하는 후장식 뇌관 소총이다. 바늘총이라는 별명은 뇌관을 격발 하는 공이가 바늘 형태였기 때문에 붙은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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