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정책

전후 시대에는 다섯 가지 명확한 지정학적 규약이 존재해 왔다는 게 내 주장이다. 조지 케넌(George Kennan)이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최초로 제시한 봉쇄전략은 그 시기에 트루먼 행정부가 실행했다고 생각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제68호 문서(NSC-68)을 둘러싼 가정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부터 1953년 사이에 실행되었다. 아이젠하워-덜레스의 "뉴 룩(New Look, 새로운 관점)" 전략은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지속되었다. 케네디-존슨의 "유연한 대응(flexible response)" 전략은 존슨이 1969년 퇴임할 때까지 미국이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아련한 향수에 젖어 "데탕트(detante)"라는 용어와 연관시키는 여러 개념들의 복합체는 닉슨과 키신저가 1970년대 초에 실행했고, 이는 사실상 포드와 카터가 계승해 1979년 말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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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루이스 개디스, 미국의 봉쇄전략, 13p

냉전 시대 (1945-1990)

1945년 독일 제3제국이 붕괴했을 당시 소련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등장했다. 일본제국은 4개월 후 몰락했고(1945년 8월), 그 결과 소련은 동북아시아에서도 가장 강한 국가가 되었다. 유럽이나 동북아시아에 막강한 소련군이 그 지역들을 점령하여 패권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강대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련의 팽창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유일한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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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소련을 제어하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으며 45년 후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미국은 엄청난 봉쇄정책을 지속했다. 마크 트라크텐버그Marc Trachtenberg는 이 관점을 잘 지적했다.
"봉쇄정책이라 불린 정책은 1946년이 시작될 무렵 채택되었다. 이 정책은 용어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아마도 봉쇄정책의 중요한 이론가인 조지 케난이 그 근거를 제시하기 이전부터 이미 채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민첩하고 효과적으로 소련과 균형을 이루었는데, 이는 소련이 유럽과 동북아시아를 지배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국가이익과 일치하기 때문이고, 1940년대 중반 양극체제의 세계에서 소련의 유럽과 동북아시아 지배를 막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미국은 책임전가 전략을 택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소련을 봉쇄하는 무거운 부담을 혼자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국의 전략적 행태

이란과 터키는 냉전초기 소련 팽창정책의 중요한 표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은 북부 이란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었으나 태평양 지역에서의 전투가 종료되면 6개월 이내에 이란에 주둔하는 소련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1946년 초반 소련군이 이란을 떠날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미국은 소련에게 약속을 지키라며 압력을 가했다. 미국의 압력은 효과가 있었다. 소련군은 1946년 5월초 이란으로부터의 철수를 완료했다.

스탈린은 동부 지중해 지역에 대한 팽창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의 중요한 표적은 터키였다. 1945년 여름 스탈린은 터키 동쪽의 영토를 요구했고 다르다넬스에 소련군의 기지 건설권을 요구했다. 이는 소련 해군이 지중해에 접근하기 위한 방편이었따. 게다가 1944년부터 1949년 사이 내란으로 혼란해진 그리스에서는 강력한 공산주의 폭동이 야기되었다. 스탈린이 그리스 공산주의자들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내란에서 승리하여 그리스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스탈린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미국은 소련으로부터 그리스와 터키를 방어하는 일을 영국에게 맡기려 했지만 1946년 내내 영국이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우려했다. 1947년 2월 말 영국의 경제력이 그리스와 터키에게 필요한 경제 및 군사지원을 제공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해졌음이 분명하게 드러났을 때 미국은 즉각 그 공백을 메웠다.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 합동회의에서 그의 이름이 붙여진 유명한 독트린을 제시했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미국이 지중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 위협 앞에 맞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와 터키를 지원하기 위한 4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했다. 아더 반덴버그Arthur Vandenberg 상원의원(공화당, 미시간 주 출신)은 트루먼에게 만약 그가 그만한 금액의 돈을 원한다면 우선 "미국 국민을 벌벌 떨 정도로 겁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했고, 미국의회는 그의 요구를 승인했다. 그리스의 공산당은 결국 패퇴했고, 소련은 터키 영토도 다르다넬스의 기지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리스와 터키는 1952년 2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회원국이 되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또한 1946년, 그리고 1947년 초반 소련이 곧 서유럽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소련군이 대서양까지 밀고 올 것이라고 우려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미국의 지도자들은 모스크바와 연계된 강력한 공산당이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출현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이들의 경제상황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으며 이 나라 국민들은 대단한 불만족 속에서 처절한 상태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1947년 6월 초 미국은 유명한 마셜 플랜(Marshall Plan)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마셜 플랜은 서유럽에서의 "가난, 궁핍, 좌절 그리고 혼란"과 싸울 것을 분명한 목표로 설정했다.

동시에 미국은 독일의 미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미국은 물론 소련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이 없었다. 냉전 초기 서방측은 소련이 독일을 무력으로 정복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스탈린이 영국, 프랑스, 미국이 점령지역을 통합하여 서독 국가를 건설하지 않는 한, 영구히 분단된 독일의 상태에 만족해 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1947년을 거치면서 서유럽(독일의 연합군 정복지역을 포함하는)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서유럽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질 강력하고 번영하는 서부독일의 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47년 12월 런던회의에서 그 방안이 확정되었고, 다음 2년 동안 실행에 옮겨졌다. 1949년 9월 21일 독일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ermany, 서독)이 탄생했다. 요약한다면 미국은 서독이 중심이 된 막강한 성곽을 서유럽에 구축함으로써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자 했다.

소련이 독일의 미래에 관한 미국의 계획을 심각한 경종으로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멜빈 레플러Melvyn Leffler가 지적했듯이, "서부 독일에 관한 영국과 미국의 계획보다 크렘린을 더 자극한 것은 없다. 서독의 자치정부가 형성될지도 모른다는 악몽은 독일이 서방 경제블록에 편입될 것이라는 전망만큼이나 러시아인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소련은 1948년 2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쿠데타를 지원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를 서방에 대한 소련 성곽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다. 더 중요한 것으로 소련은 1948년 6월 베를린을 봉쇄함으로써 위기를 야기했다. 소련은 독일의 서방측 점령 지역과 베를린을 연결하는 도로와 수로(水路)를 모두 차단했던 것이다.

미국은 소련의 행동에 신속하고 강압적으로 대응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쿠데타가 발발했을 당시 미국은 향후 서유럽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억지하기 위한 서방측의 군사동맹 결성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1948년 5월 계획안이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했고 결국 1949년 4월 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탄생했다. 서방측의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은 전략적인 골칫거리이며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비참하게 된 베를린시에 대해 대규모 물자 공수작전을 전개했다. 미국이 베를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인식한 소련은 1949년 5월 베를린 봉쇄를 해제했다.

스탈린은 냉전 초반 동북아시아에서도 소련의 영향력 팽창을 시도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은 만주에 진주한 소련군을 1946년 2월 1일까지는 모두 철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약속한 날짜가 되었을 때 만주에 계속 주둔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에 대해 항의했고 소련군은 1946년 5월 철수했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내란에서 마오쩌둥의 공산주의자들이 민족주의자인 장제스를 패배시키고 중국을 소련의 동맹국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관계는 복잡했지만 스탈린은 중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적당한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미국은 1949년 장제스를 궁극적인 패배로부터 구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할 수 없었다. 장제스군이 너무나도 부패하고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Dean Acheson은 1949년 7월 30일 대통령에게 전달된 중국에 관한 국무성의 유명한 백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미국이 했거나 능력의 합리적인 한도 내에서 할 수 있었던 어떤 일로도 지금의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이 하지 않은 그 어떤 일로도 그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이 영향을 미치려 했지만 가능하지 않았던 것은 중국의 내부적 힘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한 침략은 당시 스탈린이 허락하고 지원한 것이라고 널리 인식되었다. 트루먼 행정부는 이 공격에 대해 즉각 반응했고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북한 및 중국에 대항하여 3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다. 전쟁의 결과 중 하나는 남은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이 한국에 상당수의 미군을 주둔시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게 되었다는 점과 소련을 봉쇄하는 데 더욱 전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유럽, 동북아시아, 걸프 지역 등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에서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한 막강한 억지력을 구축하였다. 40년의 냉전 기간 동안 소련이 팽창할 수 있었던 지역은 오직 제3세계뿐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소련은 이렇다 할 이득을 얻지 못했으며, 미국은 소련의 모든 움직임에 대해 일일히 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 당시 미국에게 소련을 봉쇄하는 책임을 다른 나라에게 전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49년 나토 조약(NATO Treaty)을 상원에서 승인받기 위한 목적에서 애치슨 장관은 미국은 유럽에 대규모의 상비군을 파견할 의도가 없다고 언급했다.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대통령은 미군을 본토로 철수시키고 소련의 침략위협을 서유럽국가들이 스스로 담당하도록 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실제로 미국의 이런 생각은 냉전 초반 미국이 유럽의 통합을 적극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더 나아가 미국의 상원에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유럽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완전히 손을 떼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상당 수준 축소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적이 있었다.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재임 중에도 미국의 유럽주둔 군사력을 대폭 감축해야 한다는 영향력있는 목소리들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1945년으로부터 1990년까지 지속된 양극체제의 세계에서 책임전가는 미국의 좋은 정책대안이 될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부터 냉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소련에 대해 강력한 봉쇄정책을 실시했고 이 정책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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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미어샤이머,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433~43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