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제정 시대 로마에 대해 다루는 문서입니다. 고대 로마 전반에 대한 내용은 고대 로마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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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IMPERIVM ROMANVM ΒΑΣΙΛΕΙΑ ΤΩΝ ΡΩΜΑΙΩ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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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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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00201><colcolor=#fbe673> 기원전 27년~1453년 서로마 제국 395년~476년 동로마 제국 395년~145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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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이전 | 최종 분할 | |||
로마 공화국 | 서로마 제국 | |||
동로마 제국 | ||||
초기 국호 |
로마의 원로원과 백성 Senatus Populusque Roma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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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로마(기원전 27년~476년) 콘스탄티노폴리스[2](330년~1204년) 니케아(1204년~1261년)[3] 콘스탄티노폴리스(1261년~1453년)[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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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라틴어(서방 공용어/ 610년 이전 국어) 그리스어 (동방 공용어/610년 이후 국어) 기타 지방 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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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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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 원수정 → 절대군주제[5] | |||
국교 |
고대 로마 다신교 (380년 이전) 니케아파 기독교 (380년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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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750,000km² (기원전 25년) 5,000,000km² (117년)[6] 4,400,000km² (39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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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56,800,000명 (기원전 25년) | |||
통화 |
아스[7](동화) 듀폰디우스[8](황동화) 세스테르티우스[9](황동화) 데나리우스(은화) 안토니니아누스[10](은화) 아우레우스[11](금화) 솔리두스[12](금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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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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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 ||||
라틴어 | Imperium Romanum | |||
고전 그리스어 | Βασιλεία Ῥωμαίων | |||
중세 그리스어 |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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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馬帝國 (
정체자) 罗马帝国 ( 간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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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어 | امپراتوری رو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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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말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면,
로마가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53년[21]만에 전세계를 장악했는지 알고 싶어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은 이전에 없었다. 이것 이외에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주제가 어디 있으며, 누가 다른 주제를 연구할 수 있겠는가?
-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폴리비오스, <역사> 중
-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폴리비오스, <역사> 중
고대사는 모두
로마사로 흘러들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개울이 호수로 흘러들어 가듯이, 그리고 근대사는 다시금 로마사에서 흘러나옵니다. 로마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저는 과감히 주장합니다.
- 1854년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2세의 사학 강의 중[22]
- 1854년 바이에른 국왕 막시밀리안 2세의 사학 강의 중[22]
로마 제국은 로마 공화국 이후로 등장한 기원전 27년부터 1453년까지 이어진 고대 로마의 제정 체제, 혹은 왕정, 공화정, 제정을 모두 포함한 고대 로마 전체 역사를 말한다.
로마의 임페리움은 지중해 전반에 걸쳤으며, 지중해 세계를 빠르게 정복하며 당대에도 강대한 제국으로서 로망스어군, 로마자, 키릴 문자, 로마법 대전 등등 유럽 문화와 사회 체제에 광대한 영향을 준 국가로 평가된다. 근동과 이슬람 문화권 역시 로마의 문화를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에 고대 그리스와 함께 유럽 문명의 기초를 닦았다고 여겨지며, 현대까지도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
2. 역사
자세한 내용은 로마 제국/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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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속주
자세한 내용은 속주 문서 참고하십시오.2.2. 유럽에 끼친 영향
자세한 내용은 제3의 로마 문서 참고하십시오.유럽 문화권에서 ' 황제'라는 칭호는 그 Imperium(통치권)이 로마의 것을 계승했다는 최소한의 족보가 있어야 했다. 따라서 유럽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황제를 칭했던 모든 나라들[23]은 로마의 Imperium을 평화롭게 계승한 것이든 신성 로마처럼 교황이 날조라도 하거나 오스만처럼 로마를 멸망시켜 뺏은 것이든 러시아처럼 결혼이라도 하든 간에 어떻게든 인정 받아야 황제 칭호를 쓸 수 있었다.
그 강대했던 대영제국조차 로마 Imperium을 계승하거나 뺏었다 할 건덕지가 없어서 유럽 세계 바깥 인도 제국의 황위(즉, 무굴 제국 황제의 후임자)를 겸하는 수준이었다.[24]
3. 정치
자세한 내용은 고대 로마의 정치제도 문서 참고하십시오.4. 군사
자세한 내용은 로마군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역대 황제
자세한 내용은 로마 황제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로마 황제/명단 문서 참고하십시오.
6. 창작물
자세한 내용은 고대 로마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서로마 제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동로마 제국/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
7. 명칭
용어 혼란이 있는데, 오늘날 '로마 제국'Roman Empire로 번역되는 Imperium Romanum(로마의 통치권)은 원래는 고대의 왕정 시절부터 후기 중세인 1453년까지 2,206년을 존속한[25] 로마國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러나 Imperium의 번역인 Empire(제국)가 오늘날에는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로 의미가 바뀌었기에, 좁은 의미에서는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기존 공화정이 사실상 폐지된 후의 로마만을 말한다.[26] 끝으로 잡는 시점 또한 엄밀하게는 1453년까지로 보는 게 맞지만, 관습적으로는 476년 서로마의 멸망 이전까지로 보고 그리스와 아나톨리아 위주의 동방만 남은 뒤는 비잔티움이나 동로마로 따로 분류하는 시각이 통상적이다.[27] 단 최근에는 변화된 독자적 성격보다도 고대와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시각이 늘어나면서 1453년으로 보는 의견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이러한 로마의 강력한 영향력이 드러나는 단어로, 흔히 영어 ecumenical과 한국어 '보편적인'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oikoumenikos[28](명사형: oikoumenē[29])가 있다. '거주지'[30]를 어원으로 하는 이 단어는 본래 그리스인들이 오랑캐Barbaroi와 구분되는 의미에서의 '문명인 거주 구역'을, 곧 '그리스어권'을 일컫는 말이었고, 때로는 그냥 '온 세상'을 의미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뉘앙스의 단어였다. 즉 '문명 세계' 혹은 '세계'라는 상반된 두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단어였고, 그런 의미에서 oikoumenikos, 곧 ecumenical의 의미는 전통시대 중화권의 화이론(華夷論)적인 천하 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로마가 지중해 세계 전체로 임페리움을 확장하면서, oikoumenē의 의미에 '로마 제국'이 추가되어버렸다. 그래서 제정 초기에 저술된 루가 복음서 2장 1절에서는 oikoumenē를 '로마 제국'의 동의어로 사용하고[31], 흔히 '보편' 공의회 내지는 '세계' 공의회라 번역되는 oikoumenikos 공의회란, 고대에는 '로마 제국' 공의회를 의미했다. 즉 로마 제국이 곧 oikoumenē(보편)인 것이었다.[32] 물론 로마의 이 oikoumenikos 개념은 마치 현대의 미국마냥 모든 문화권의 다양성을 이념적으로는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고, 화이론적인 천하 개념에 더 가까운 의미였지만, 아무튼 이 로마식 천하(oikoumenē) 개념은 이후의 유럽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
벡실룸(Vexillum)이라는 군기이며 가로 깃대에 수직으로 늘어진 형태다. 오른쪽은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카이 로(☧)를 벡실룸으로 지정하면서 동로마 제국의 벡실룸으로 사용한 것이다. 카이 로가 있는 벡실룸은 '라바룸(Labarum)'이라 불린다.
[2]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도로서의 건설을 명했지만 천도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건설되고 서로마가 망해버리면서 모양새가 로마시를 버리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콘스탄티우스 2세 치세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로마시와 동일한 특별시로 승격되어 로마와 대등하게 되었을 뿐, 사실 동서 최종분할 전까지 로마 제국의 명목상 수도는 항상 로마였다. 제국 최종 분할 이후에도 서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수도가
메디올라눔,
라벤나였다지만 명목상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멸망할 때까지도 항상 로마였다.
[3]
니케아 제국 시절 수도
[4]
니케아 제국의 점령 이후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동로마 제국 시절이다.
[5]
공화정 시대의 전통을 일부 계승한 로마 특유의 전제정이었다. 안소니 칼델리스(Anthony Kaldellis)는 그의 저서 비잔틴 공화국(The Byzantine Republic)에서 황제를 마치 '제위 세습이 가능한 초강력 종신 대통령직'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6]
사실 이는 북아프리카의 국경을 어디로 하냐 문제로서, 6,500,000km²로 보기도 한다. 북아프리카의 경우 사하라 사막이 있기 때문에 국경선이 무의미하다.
[7]
1/16 데나리우스
[8]
1/8 데나리우스
[9]
1/4 데나리우스
[10]
카라칼라 황제 때 추가된 2 데나리우스짜리 은화.
[11]
25 데나리우스
[12]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화폐개혁 때부터 나온 금화.
[13]
조사인 '
의'에 해당하는 τῶν의 유무에서
고전 그리스어와의 차이가 있다.
[14]
'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다른 언어와 달리 독일어에서는 '로마제국기(Römische Kaiserzeit)'라는 표현으로 로마 제국을 지칭하는데 이는 단순 한 국가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로마라는 다양한 국가들의 시기를 포괄하여 지칭하기 위함인듯 하다. 보통은
로마 공화국 이후에서
서로마 제국에 이르는 기간의 로마제국을 지칭한다.
[15]
여헌(혹은 이헌). 트락시아네, 레켐, 알렉산드리아 등의 도시명을
음차한 것으로 추정. 가장 오래된 한문 명칭. 상고한어: *riːl *qʰan (정장상팡), *(r)ˤij *qʰa(r) (백스터-사가르)
[16]
여헌. 앞선 여헌과 같은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음차. 가장 오래된 한문 명칭. 상고한어: *riːl *qʰan (정장상팡), *(r)ˤij *qʰa(r) (백스터-사가르)
[17]
대진.
장건의 원정으로 생겨난 명칭. 주로 '로마 제국'의 공식 명칭으로 통용됨. 상고한어:
/*lˤat-s (dz)i(n)/ (백스터-사가르) /*daːds zin/ (정장상팡)
[18]
불림. 주로
당나라시기의 명칭. '로마'를 뜻하는
고전 그리스어 Ῥώμη에서 유래했다.
[19]
나마(라마). '로마' 자체의 음차. 현대 중국어에서도 이 명칭을 사용함. '로마' 도시를 통칭하기도 하다.
[20]
아주 짧은 시기이지만,
근대 한국에서는 나만/라만(羅曼)으로 음역했었다. 중국어에서는 Roma(罗马/羅馬)를 음역한 것에 비해, 당대 한국에서는 형용사형 Roman을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21]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한
기원전 219년부터
피드나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그리스 전역을 장악한
기원전 167년까지의 반세기를 말한다. 물론 지중해만 해도 동방에
셀레우코스 왕조나
고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등이 남아있으니,
고대 카르타고와 그리스만이 전세계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당대인에게는 167년을 기점으로 서방 문명 세계는 로마가 통일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로마가 로마, 카르타고, 그리스 3강 구도에서 불과 53년 만에 경쟁자들을 모두 복속했다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는 기원전 64년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기원전 30년에 정복된다.
[22]
다만 근대사가 로마사에서 다시 나왔다는 말은 중세를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던
계몽주의가 유행하던 시대의 발언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3]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카이저)하고
러시아
제국(
차르),
나폴
레옹 시대의
프랑스 제국(
제1,
2 제정)이 그 예다. 우선 오스트리아는 황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이 그 유명한 신성 로마 제국의 황가였다는 명분이 있으며, 또한 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라는 명분덕에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아서 그랬지 합스부르크 가문에는 동로마 황가 중 하나였던
팔레올로고스 가문의 피도 섞여 있었다. 독일 제국도 황가였던
호엔촐레른 가문(프랑켄)이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황제 선출권이 있으며 원칙상 황제 후보로도 등록될 수 있었다)였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의 신분이었던지라 역시나 명분이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서방 세계에선 로마의 Imperium을 가진 것으로 인정 받았으며, 812년 동로마 제국의사절단이
엑스라샤펠에서
카롤루스 대제를
바실레우스로 인정함으로써 결국 동로마에서도 전쟁을 피하려고 대외적으로 신성 로마의 황제자리를 인정하게었다. 또 러시아는 아예 이반 3세 가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공주와 결혼해 제3의 로마를 칭하기도 했다.(단, 이는
류리크 왕조까지만이며
표도르 1세가 죽고 류리크 왕조가 단절되면서 이후 이어진
로마노프 왕조는 로마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단절되었다.) 나폴레옹 같은 경우에는 좀 억지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키고 나서야 황제 칭호를 쓸 수 있었다.
[24]
물론 영국 입장에서 '굳이' 황제 칭호에 집착할 이유도 없었다.
진시황이 왕보다 더 높은 칭호를 만들어서 시작된 동아시아식 황제 개념과 달리, 유럽에서 황제 개념은 공화정에서 실질적인 왕 노릇을 해먹으려는 꼼수에서 출발한 것이었고 단지 최강국이었던 로마의 군주의 칭호였기에 조금 더 격이 높게 취급된 것에 불과하기에, 왕(Rex)은 언제나 자주국의 수장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매우 좋은 칭호였다. 즉 영국 군주가 왕(Rex)이라고 해서 황제의 봉신도 아닌데, 굳이 예쁜 직함 더 달겠다고 외교적 어그로를 끌 이유가 없었다.
[25]
이 중 제정 시기는 무려 1,480년에 달한다.
[26]
원래는 Imperium Romanum이라는 말은 제정 시기뿐만이 아니라 로마國 역사 전체를 의미한다.
공화정 시절도 있는데 왜
제국(Empire)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이건
번역의 문제이다. 라틴어 Imperium(
임페리움)은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를 일컫는 게 아니라, '다스림'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기에 공화정 시대에도 정치적 의미의 통솔권, 지배권 등을 군주적 뉘앙스 없이도 Imperium이라 불렀다. '
황제'로 번역되는 제정 시절의 Imperator는 근동의
왕중왕처럼 거창한 뜻이 있는 게 아니고, 그 자체로는 그냥 담백하게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일 뿐이다. 곧 Imperium Romanum은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라는 이름의 나라'가 아니라 '로마의 다스림'이다. 현대 영어에서도 이런 라틴어 뉘앙스는 남아있어서, Roman Empire는 많은 경우 로마國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27]
이 부분은 동로마는 로마가 맞지만 "동로마는 로마가 아니다"라는 근대의 폄하와도 엮여있어서 매우 민감한 부분이지만, 동일 법통의 국가를 관습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는 비하적 의미가 없으며 딱히 알아듣는데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다. 물론 후기 고대까지만 로마로 잡는 구분법이 그 자체론 비하적 뉘앙스가 없는 관습상 구분이라 하더라도,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맥락에 따라 비하적 의미로 쓰일 수 있으므로, 결국엔 맥락을 봐야 한다.
[28]
οἰκουμενικός
[29]
οἰκουμένη
[30]
οἰκέω [oikéō]
[31]
"Ἐγένετο δὲ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ἐκείναις ἐξῆλθεν δόγμα παρὰ Καίσαρος Αὐγούστου ἀπογράφεσθαι πᾶσαν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그러나 크게 쪼그라들은 이라클리오스 왕조부터는 달라진다. 그 이후의 제국도 자국을 여전히 기독교 세계 그 자체 즉 oikoumenē로 보면서 서유럽을 위계상 자국의 아래로 깔아보는 시선을 내내 견지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마가 망한 지는 수백년이 되었고 동로마의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도 미완으로 끝이 났는데 그때 정복한 영토마저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자, 게르만 각 왕국들의 독립 및 할거 상태가 로마령이던 옛 시절을 과거의 역사로 완전히 밀어내고서는 소위 뉴 노멀로 자리잡은 서유럽인들 사이에선 "서방의 통치권Imperium은 동방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같은 맥락에서 로마 주교는 랑고바르드의 로마 포위 그리고 로마 황제로의 정치적 예속을 벗어나기 위함으로서 프랑크 왕을 속권 파트너로 택했으며, 콘스탄티누스 기증이라는 당시에는 믿었지만 현대와선 날조로 밝혀진 것도 이용해가며 카롤루스를 서방의 임페라토르Imperator로 대관했다.
[
발췌자 번역: 그 무렵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온 오이쿠메네에 칙령을 내려 호적등록을 하게 했다.]
[32]
그래서 고대 말~중세 초까지는 (동)로마 밖의 서유럽 식자층들도 다소 세력이 쪼그라들었을지언정 그래도 아직은 건재하던 (동)로마 황제를 자타공인 기독교 세계의 정치적 최고 보호자로 인정했고, (동)로마를 신성한 공화국(sancta res publica)으로도 칭했다. 애당초 oikoumenikos 공의회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동)로마를 oikoumenē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했고, (동)로마를 인정하기 싫다면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로부터 시작되어 차곡차곡 쌓여온 oikoumenikos 공의회를 통째로 거부하고
아리우스파로 갈아타야 했다. (많은 게르만 국가들이
아리우스파를 택한 이유도, 흔히 단순화되는 것처럼 게르만이 정밀한 신학적 개념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미개(...)해서가 아니라, 일단 로마 제국을 oikoumenē로 인정하고 나면, 종교뿐만 아닌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그 종주국으로서 제국의 간섭이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하고 그 대신 최대 경쟁 교파인 아리우스파를 택한 것이다.)그러나 크게 쪼그라들은 이라클리오스 왕조부터는 달라진다. 그 이후의 제국도 자국을 여전히 기독교 세계 그 자체 즉 oikoumenē로 보면서 서유럽을 위계상 자국의 아래로 깔아보는 시선을 내내 견지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마가 망한 지는 수백년이 되었고 동로마의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도 미완으로 끝이 났는데 그때 정복한 영토마저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자, 게르만 각 왕국들의 독립 및 할거 상태가 로마령이던 옛 시절을 과거의 역사로 완전히 밀어내고서는 소위 뉴 노멀로 자리잡은 서유럽인들 사이에선 "서방의 통치권Imperium은 동방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같은 맥락에서 로마 주교는 랑고바르드의 로마 포위 그리고 로마 황제로의 정치적 예속을 벗어나기 위함으로서 프랑크 왕을 속권 파트너로 택했으며, 콘스탄티누스 기증이라는 당시에는 믿었지만 현대와선 날조로 밝혀진 것도 이용해가며 카롤루스를 서방의 임페라토르Imperator로 대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