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19:57:04

아일랜드 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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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영지
Lordship of Ireland | Tiarnas na hÉireann
파일:아일랜드 영지 국기.svg 파일:Coat_of_arms_of_the_Lordship_of_Ireland.svg
<rowcolor=#fff> 국기 국장
1171년 ~ 1542년
헨리 2세의 정복 이전 헨리 8세의 자칭 이후
더블린 왕국 아일랜드 왕국
<colcolor=#fff><colbgcolor=#1353b4>위치 아일랜드 섬
수도 더블린
정치 체제 봉건군주제
국가 원수 영주(명목상)[1], 총독(실질적)
언어 영어, 아일랜드어
현재 국가
[[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영국|]][[틀:국기|]][[틀:국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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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71년부터 1542년까지 지금의 아일랜드 섬에 있었던 잉글랜드 왕국의 영지로,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한 이후 잉글랜드 왕국의 영지가 되었다.

1171년 이전부터 몇몇 노르만 영주들은 독자적으로 아일랜드로 떠나 영지를 얻으며 정착을 시도했다. 이들을 히베르노 노르만(Hiberno-Norman)[2]이라 부르는데, 1155년 펨브로크 백작 리처드 드 클레어를 시작으로 더블린, 리머릭, 워터포드 등 이전 바이킹 시대때 바이킹들이 정착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핸리 2세가 아일랜드를 침공을 결심하게 된 계기 또한 이 노르만 영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는데, 공식적으로는 교황으로부터 ‘아일랜드를 로마 교회의 체계 내에 통합시킬 것’이라는 명분을 자신이 받았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아일랜드를 침공해 1171년 더블린 왕국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이후 아일랜드 영주들에게 압력을 넣어 로마 교회에 십일조를 낼 것을 포함해 아일랜드 교회의 독자적인 체계를 폐지하고 로마와의 일치를 하겠다는 선언을 이끌어냈다.

한편으로는, 아일랜드는 헨리 2세가 자신이 아끼던 막내아들 에게 물려주기 위해 마련한 땅이기도 했다. 당시 존만이 헨리 2세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영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헨리 2세는 장남 청년왕 헨리에게 잉글랜드를, 차남 리처드에게 아키텐 등등을, 삼남 아서에게 브르타뉴를, 막내 존에게 아일랜드를 물려줄 계획이었는데 장남 헨리가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 리처드가 잉글랜드까지 이어받았고, 리처드도 자식없이 죽으며 존이 다 물려받게 되어 결국 아일랜드 영주는 잉글랜드 국왕이 겸임하게 된다.

그런데 16세기에 이르면 아일랜드 각지의 소영주들이 사실상 독립적인 지역들로 떨어져 나가 실제 잉글랜드 국왕 = 아일랜드 영주가 지배하는 영역은 더블린 주변으로 크게 축소되었다. 이 시기 잉글랜드 국왕이 실질 통치하던 더블린과 그 주변을 현재 통칭 The Pale 또는 The English Pale[3]이라고 부른다.

1542년 잉글랜드의 헨리 8세가 이런 상황을 탐탁치 않아해서 아일랜드 전역을 다시 정복해 지배 하에 두고 아일랜드 국왕을 자칭하면서 아일랜드 왕국으로 개편되었지만 대부분의 아일랜드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 잉글랜드 국왕이 겸임 [2] 히베르노는 아일랜드의 라틴어 표현 히베르니아를 뜻한다 [3] 이와 비슷하게 백년전쟁 이후에도 100년 정도 잉글랜드가 지배했던 과거의 칼레를 오늘날 The Pale of Calais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