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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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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종류4. 과정5. 어려움
5.1. 직역이냐 의역이냐5.2. 문학5.3. 청소년 대상 창작물5.4. 인문 고전5.5. 게임5.6. 기타 전문 분야5.7. 한계5.8. 오해
5.8.1. 다중 언어 사용 능력에 대한 오해5.8.2. 일본어 번역가에 대한 오해5.8.3. 오역으로 오해하는 경우
6. 음차와의 차이7. 저작권8. 번역과 인공지능
8.1. GPT의 등장이후 인공지능 번역기의 강세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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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Translation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로 옮김. 한자로는 '뒤집다'의 뜻이 있는 飜(번)과 '풀이하다'의 뜻이 있는 譯(역)의 조합어다. 영어 동사 translate는 라틴어 translatio에서 왔으며 원래의 뜻은 '옮기다'이나, 의미가 확장되어 이식, 번역 등의 뜻도 갖게 되었다. 글이 아니라 말을 옮기는 것은 통역이라고 한다. 번역의 1차적인 목적은 원문과 번역문이 동등한 관계, 즉, 똑같은 의미를 갖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1]

물론 독자가 여러 가지 언어를 알고 있어서 원전을 직접 읽을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한 사람이 여러 나라의 말을 동시에 잘하는 건 서로 다른 문화의 성격을 이해하는 감수성 +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야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번역은 필수다. 특히 현대에는 언어가 다른 사회 간의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대하면서 번역의 수요와 중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요즘도 가끔 그렇지만, 컴퓨터 같은 게 없었던 옛날엔 당연히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일일이 필사하며 번역했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이젠 번역도 자동화가 추진되고 있다. 아예 번역기까지 등장했지만,[2] 아직까지 인간 주관적 사고의 함축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글은 완벽한 기계번역이 불가능해서, 사람이 작업을 하되 컴퓨터로 이를 보조하는 컴퓨터 보조 번역의 형태로 번역 작업의 효율성 제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역사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번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235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수메르어 아카드어가 나란히 적힌 진흙판이 발견되었고,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에서 의 칙서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원전 196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칙령을 새긴 로제타 석은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일한 내용을 세 가지 언어로 옮긴 것으로 이집트 상형문자, 이집트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있다.

인류 문명 초창기의 번역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그대로 옮기는 직역의 형태였고, 이는 키케로 시기까지 한 줄 단위로 범위를 넓혀 번역하는 행간 번역(interlinear tranlsation)으로 발달했다. 시를 번역할 때는 아직도 행의 길이에 맞추어 행 단위로 옮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행간 번역의 유형에 속한다. [3]

로마 공화국에서는 당시 선진 문명의 언어였던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므로, 키케로는 이 경우 단어 차원이 아니라 의미를 동일한 것으로 전달하는 것이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에는 당연한 주장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문제 제기였고,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명의 번역 풍토는 크게 보아 키케로에서 시작된 의역의 전통에 속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리스어 및 라틴어 고전을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번역의 융성은 보편어로서 라틴어의 지배적 위치가 쇠퇴하고 각국이 자국어로 문화 활동을 하게 되는 역사적 변화를 촉진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대의 번역가들은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 주었고, 적극적인 행동가, 혁명가로서의 면모까지 얻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가 대표적인 예.

1500년대의 가장 큰 변화는 성경 번역의 활성화로, 민족국가가 태동하고 교회의 절대적 지위가 도전받으면서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되었고, 성서 번역은 이 과정에서 신구교간 교리적 갈등과 정치투쟁 등 양 측면에서 무기로 활용되었다.

최초의 영어 성서 완역본은 1380년경 출판된 John Wycliffe의 성서였고, 뒤를 잇는 역본이 1525년 평신도도 읽을 수 있는 성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William Tyndale(1494-1536)의 성서이다. 이후 16세기말까지 봇물 터지듯 유럽 각국의 언어로 성서가 번역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식자층이 아니라 일반 서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인 성서가 필요하다 주장했고 그의 독어 성서 번역본은 이후 독일어와 독일 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성서는 이후 표준 독일어가 자리잡는 데 기여했다.

흠정역성서(킹 제임스 성경, KJV)는 47명의 학자가 번역에 참여하여 3년여 작업 끝에 1611년 출간되었다. 이 성서는 영어 발달사에서 중요한 기점이 되는 번역본으로, 평이한 단어, 고어 느낌을 주는 장중한 문체, 유려한 리듬, 구체적 이미지 등의 특징으로 힘 있는 영어 산문의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번역학(translation studies)이 독자적 학문 영역으로 발전하면서 번역이 종속적 위치를 탈피하고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창조 행위로 인정받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번역 그 자체가 연구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3. 종류

번역은 여러 가지 종류가 존재하는데, 원문의 언어(출발어) 구조를 더 존중하느냐, 번역문의 언어(도착어)의 언어 구조를 더 존중하느냐에 따라 직역과 의역 둘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원문의 손상 정도에 따라 완역, 경개역, 축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원문의 언어에서 바로 번역했느냐, 아니면 원문의 번역문을 또 번역했느냐에 따라 원전 번역 중역으로 나눌 수 있다. 심지어 번역문에서 다시 원문의 언어로 옮기는 역번역도 있다.

이 중 어떤 번역의 형태가 가장 옳느냐는 아직도 뜨거운 논쟁거리다. 상황에 따라 직역, 혹은 의역이 더 어울리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또한 굳이 번거롭게 싸그리 완역하기보다는 발췌역이 적합한 때도 있다. 그리고 원문의 언어를 이해하는 번역자가 희귀하거나 없다면 출발어를 힘들게 익히는 것보다 중역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를 잘 구분하려면 원문의 저자, 번역문을 읽을 독자층, 글의 종류, 글의 목적, 각 언어권 문화의 상이함 정도, 시대상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3.1. 원전 번역

3.1.1. 직역

비슷한 말로는 축자역(逐字譯, literal translation)이 있다. 축자역의 경우 어순까지 일대일로 번역하는 흔히 말하는 왈도체 같은 경우고, 직역의 경우 어순 정도는 수정하되 원문의 형태나 문법, 어법, 단어를 최대한 유지한 채 최소한의 의미가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번역이다. 즉, 축자역은 어절, 구절 단위 번역, 직역은 문장 단위 번역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직역 문서 참조.

3.1.2. 의역

의역(意譯, free translation)은 직역과는 달리 원문의 언어 구조를 다소 무시하고, 번역문의 언어 구조에 자연스럽게 옮기는 걸 우선으로 한다. 의역 문서 참조. 의역을 오역에 가깝게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적절한 의역이 필수이다.

3.1.3. 완역

완역(完譯)은 원전의 내용을 빠짐없이 모두 번역하는 것이다. 중역이나 편역, 발췌역에 비해 원전내용이 왜곡될 소지가 적은 방식이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현재 한국사 최대 프로젝트 중 하나인 승정원일기 번역 작업은 완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외 조선왕조실록이나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현재 모두 우리말로 완역되어 있으며, 난중일기 징비록등의 사서들도 완역이 되어있다.

3.1.4. 발췌역

초역(抄譯, selective translation)이라고도 한다. 발췌역은 원문 전체를 다 번역하는 게 아니라 일부만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원문을 크게 훼손하여 줄거리만 남기면 경개역(梗槪譯, condensed translation), 원문을 상당히 축소하면 축역(縮譯, abridged translation)이라고 한다.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 시기에 발행된 국내 신문에서 해외의 사건사고를 보도할 때 발췌역이 애용됐다. 해외 주요 인사의 발언이라든지 중요한 문장만 따로 떼어 번역하는 모습은 현대 언론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3.2. 중역

한 번 번역된 문장을 또다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중역(重譯, retranslation)이다. 언어 간의 괴리로 번역문과 원문의 의미는 항상 완벽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므로, 중역을 거치면 원전이 전달하고자 했던 바와는 점점 동떨어진다. 따라서 중역은 될 수 있으면 지양하고 원전 번역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원전 번역이 아닌 중역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시대적인 한계나(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 서구 쪽 언어 해독능력자가 전무했던 한국 근대시기의 번역은 대부분 일본어 중국어 중역이었다), 재정적인 문제(원저의 언어가 어렵고 이를 아는 번역자가 많지 않아 중역이 번역료가 더 저렴한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역 참조.

3.3. 역번역

역번역(逆飜譯, back-translation)은 한 번 번역된 글을 다시 원문의 언어로 재번역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역번역은 단순한 재번역이라기보다도 원문에 대한 어떠한 참고자료도 없이 원저의 언어로 행하는 번역을 뜻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연구 등의 학술 활동에 이용하거나 번역문의 정확도를 교차검증할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3.4. 편역

원서의 지명, 세부내용 등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역자가 뜯어 고치면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실용서가 그렇게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번안도 일종의 편역이라 할 수 있다.

저작권의 개념이 희박하던 90년대 이전에는 외국의 영상 매체 작품을 번역 소설화 하면서 '편역'이라는 명칭을 쓴 적도 있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웨스트월드와 오기노 마코토[4]의 공작왕 시리즈 등이 한국에서 편역이라는 이름으로 소설화 되어 발매된 적이 있다.

3.5. 페미니즘 번역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페미니즘 번역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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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1년 이후 한국에선 페미니즘 번역론이라는 번역론이 퍼지게 됐다.(...) 이 주장이 요지는 원본이 페미니즘 책이 아닌데도 원본을 무시하고 페미니즘 형식에 맞춰 개조하는 번역을 의미한다. 이들에 의하면 원본=남성, 번역=여성이며 번역은 여성처럼 의존적이고 나약하고, 열등하게 보는 관점에 반대하며, 번역을 원본에 충실해선 안 되며 가부장제 권력에 저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한강의 소설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해당 이론을 전파하려는 윤선경 교수의 출판 논문에 대해 한강이 인용을 거부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에 대해 페미니즘 번역론 측은 "한국문학 번역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 한국문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쓰는 번역가들에게 참담한 소식이 되는 건 아닐까 우려", " 한국문학의 위상에 누가 될 것이다"라는 식의 궤변을 일삼았지만 10개월 후에 정작 한강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므로 헛소리임이 드러났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4. 과정

번역 과정은 기본적으로 세 단계를 거친다고 볼 수 있다.
  • 출발어로 작성된 글을 해독하고 이해하기
  • 1차 번역(초벌 번역)
  • 결과물을 도착어의 구조에 맞게 구성하기

번역자는 일단 원문을 단순히 읽는 게 아니라 의식적이면서도 다양한 기법으로 해석하고 글이 갖는 특성(글의 주제와 종류, 글의 작성 목적, 글이 작성된 시기, 작가의 이력과 성향, 번역문을 읽을 대상 독자층)을 분석해야 한다. 단순히 너무 흥분해서 외국어가 나왔네요 수준으로 무의식적이고 유창한 구화가 가능한 정도를 넘어서, 출발어의 문법, 관용어와 특이점, 출발어를 상용하는 문화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 다음 글이 담고 있는 생각의 의미 단위를 나눠야 한다. 이러한 의미 단위는 단어, 구, 때로는 문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단위마다 구분선을 세워준다. 이러한 번역 단위는 아주 작은 음소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단락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 후 의미 단위 별로 도착어로 옮긴다. 독자들이 번역문을 읽는데 지장이 없도록 도착어로 자연스럽게 재구성해야 한다. 글이니만큼 읽는 사람이 만족하려면 당연히 작가에 준하는 글쓰기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지만, 단순히 어떤 언어로 말만 잘한다고 그 언어로 글도 잘 쓰는 게 아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알겠지만, 일견 간단해 보이는 번역 작업 뒤에는 머리를 쥐어뜯어야 할 정도로 복잡한 사고 과정이 자리잡고 있다. 외국어나 번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이런 과정이 무척이나 쌈빡하게 보이니 번역 그거 그냥 외국어로 바꾸면 되는 거 아님? 하고 쉽게 말하지만, 인간의 감성과 사고를 담는 그릇인 언어란 매우 주관적이고 모호한 것이여서, 그렇게 단순한 치환, 등가교환이 가능한 게 아니다. 어떤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른 언어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전달하라는 말은, 한마디로 장기판에서 매번 신의 한수를 두라는 것과 똑같다.[5]

5. 어려움

天竺國俗, 甚重文製. 其宮商體韻, 以入絃為善. 凡覲國王, 必有贊德. 見佛之儀, 以歌歎為貴. 經中偈頌, 皆其式也. 但改梵為秦, 失其藻蔚, 雖得大意, 殊隔文體, 有似嚼飯與人, 非徒失味, 乃令嘔噦也.
천축국의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대단히 중시한다. 그 오음(五音)의 운율(韻律)이 현악기와 어울리듯이, 문체와 운율도 아름다워야 한다. 국왕을 알현할 때에는 국왕의 덕을 찬미하는 송(頌)이 있다. 부처님을 뵙는 의식은 부처님의 덕을 노래로 찬탄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경전 속의 게송들은 모두 이러한 형식이다. 그러므로 범문(梵文)을 중국어로 바꾸면 그 아름다운 문채(文彩)를 잃는다. 아무리 큰 뜻을 터득하더라도 문장의 양식이 아주 동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밥을 씹어서 남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다만 맛을 잃어버릴 뿐만이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구역질이 나게 한다.
<양고승전(梁高僧傳)>권2, 진장안구마라집(晉長安 鳩摩羅什)[6]
일단 번역을 잘 하려면 도착어[7]무조건 모어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실제로도 사실상 그렇게 돌아간다.] 실력이 대단히 뛰어나야 한다! 외국어 문장을 보고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아는데 정작 옮기려면 적절한 느낌을 지닌 단어를 선택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걸 대충이나마 번역을 해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텍스트 전체의 내용과 그 배경, 의미, 미묘한 뉘앙스[8]를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모어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노래, 영화 게임 제목 등을 번역할 경우 그 언어를 웬만큼 잘 안다 하더라도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매우 어렵다. 정말로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것이지만 번역자의 첫째 조건은 훌륭한 언어 실력이다. 게다가 프로 통번역가라면 외국어 → 모어 뿐만이 아니라 모어 → 외국어 번역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히 후자가 더 어렵기 때문에 번역 단가도 그만큼 높다.[9]

거기에 번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 실력 뿐만이 아니라 각 나라의 관습, 문화, 역사 및 관련 분야 지식에도 능통해야 하고[10] 언어유희는 물론 직역 의역을 동시에 능숙하게 다뤄야 하며,[11] 여기에 원문이 노래 가사 같은 운문이라면 운율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의 문제로 시적인 감각까지 요구하고, 때때로 의역을 넘어선 초월번역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고된 작업이다. 이에 대해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명언이 있을 정도다.[12] 이 문단의 서술도 사실은 어느 정도 전문번역가들의 시각이고 예컨대 철학책을 원문직역한다고 했을 때 단순히 어문학과 교수 출신들은 매우 높은 확률로 오독 밎 오역을 많이 한다. 결국 해당 분야의 조예가 깊은 전문가들이 직접 번역가들만큼 해당 언어 지식을 쌓고 번역을 해야 가장 정확한데 한마디로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면서 해당 외국어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도 풍부하거니와 해당 번역내용의 전문가 혹은 전공자가 원전번역을 해야 제대로된 번역이 될 가능성이 큰 상당히 조건이 까다로운 일인 것이다. 또한 일반인이 주로 접하는 영화/만화/소설같은 경우에는 번역 기간이 매우 촉박하기 때문에 오역을 줄이기 위해서는 번역가의 실력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역설적이게도 촉박한 번역 기간 때문에 고용주측이 번역가의 실력보다는 펑크를 내지 않는가에 대한 신뢰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번역 일을 시작하려면 우선 인맥이 있어야 쉽다는 얘기도 있으며, 대부분의 번역가 자질 논란이 이런 인맥/번역 속도 위주의 업계 사정 때문에 일어난다.

굳이 대중문화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도 번역은 매우 중요한데, 정작 대한민국 학술계는 번역을 대단히 하찮게 여긴다. 대충 해당 분야를 전공한 말단 대학원생 혹은 초짜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기며 투자를 안 한다. 이 경우 해당 분야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번역자로서 필요한 국어 실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원서보다 읽기 어려운 것들이 양산된다. 대충 일본식 번역을 빌려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국내에선 쓰이지 않는 일본식 한자용어도 난무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번역을 무시하는 이런 현실을 여러 차례 비판한 적이 있다. 이러한 번역에 대한 취급 때문에 번역서들의 수준이 더욱 낮아지고 외국 원서에 대한 추종이 심해지며, 더더욱 번역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학계에서도 이런 심각성을 알고 번역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현시창에 가깝다.

이런 현실은 한영번역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영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다르기에 영미권에서 자란 한영번역만 맡는 번역가들이 꽤 있다.) 번역 시 직역이 아닌 능동적인 번역을 원한다면 당연히 표현 하나하나에 적잖은 고민을 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번역가들이 받는 번역단가는 낮아 그렇게 시간을 투자해서 번역할 경우 먹고 살기 힘들다. 결국 직역수준으로 빠르게 번역할 수밖에 없는데 이게 또 의뢰자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번역이 rewriting을 의미한다 하여도 본인 외에는 이해하기 힘든 정도의 글을 기가 막힌 문장들로 구성된 번역본으로 탈바꿈 시켜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표현이 깔끔하고 정확한 언론기사라든지, 공공문서, 기업자료, 공식보고서들의 경우 원문 자체가 이해가 쉬워 번역이 용이하다. 반면, 대다수의 글들은 문법의 철저한 파괴는 기본이고 아무리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조차 어려운 수준인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번역자가 알아서 좋은 문장으로 바꿔줄 것을 기대하고 의뢰하기 때문에 대충 써놓고 이런 이런 의미니 알아서 훌륭한 영어문장들로 탈바꿈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번역이 아닌 대필을 요구하는 셈이다. 이런 경우들은 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 번역료는 균일하기에 고충이 많다. 또한 대다수 평생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보니 매우 기본적인 문법도 지키는 경우가 드물고, 두리뭉실한 표현이나,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렇기에 원문을 읽다보면 의미파악이 되지 않아 계속 작성자의 의도를 어렵사리 추론해내야 하는 과정이 많아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 결국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수가 없는 환경이란 거다. 20년째 인상은 커녕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번역단가 때문에 훌륭한 문장력을 가진 이들은 번역계를 떠나게 되고 실력이 없는 이들만이 남게 되어 전반적인 번역의 질은 나날이 떨어져가고 있다.

반면에 전문 번역가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해당 전공자를 공동번역자나 감수로 붙여줘야 하는데,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대부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준 이하의 오역이 속출하고 아예 원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내용이 산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야구를 다루는 《 머니볼》의 국내발매 초판은 야구 용어에 수많은 오류가 난무했다. 밀덕 지식이 부족한 번역자의 전쟁영화 자막, 과학기술 지식이 없는 번역자의 SF 소설 번역 등등 덕후 입장에서 읽다보면 어이가 없어지는 이런 사례는 정말 끝도 없이 나온다. 이런 문제는 오역 문서에 보다 자세히 설명돼있다.

오래 전부터 번역은 많은 번역가들에게 고민거리였다. 이를 잘 설명한 글이 있다. 번역과 번역 문화.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Something's Gotta Give》의 경우를 들어보자. 이 제목은 대충 '(무언가를 하려면) 뭔가 줘야 한다, 즉 포기 혹은 희생해야 한다' 정도가 될 테지만 이걸 앞뒤 자르고 영화 제목으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결국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란, 맞는 뜻이기는 한데 다소 장황한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Let It Go, 가을의 전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문서 참조.

번역의 어려움은 언어 체계, 구체적으로는 문장구조나 단어 조합, 더 나아가서는 모어 화자의 사고방식 등이 언어권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때문에 우리말로는 단어 몇 개에 불과하지만 외국에서는 문장이 줄줄이 이어진다든가,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작품 중에는 아예 번역 자체가 대사업인 케이스도 있다. 피네간의 경야는 40개의 언어로 이루어진 괴이한 작품으로 한때 번역 자체가 불가능하게 여겨질 정도로 난해한 물건이라 한국어판의 경우 결국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의 권위자인 김종건 교수가 고통스러운 번역 끝에 번역본을 내놓았으나 이마저도 신조 한자어가 너무 많아서 완전한 번역이라고는 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무슨 문자인지조차 몰라서 번역이 불가능한 케이스도 존재한다. 보이니치 문서 로혼치 사본, 파에스토스 원반 마도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고고학/암호학자들을 빡치게 만드는 물건들. 그러나 사실 이런 예는 번역이 아나라 "해독"이다. 번역은 "양 쪽 문자와 언어를 다 안다."는 전제가 있다.

종종 존비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언어, 대표적으로 미국 등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대사를 번역할 때 상황이나 별 다른 이해 관계 없이 여성 캐릭터는 무조건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런 남존여비식 의도적인 오역을 ' 춘추필법'이라고 낮춰 부른다. 영화 번역자 이미도가 이 점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는다.

5.1. 직역이냐 의역이냐

네티즌과 비전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문제는 전문가들에게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번역이란 직역과 의역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어려운 작업이며, 대체로 날림 번역일수록 직역이나 의역 어느 한쪽으로 쏠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번역에 대한 오해에 빠진 비전문가, 실력 없고 불성실한 역자의 번역은 강한 직역 혹은 강한 의역이 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대충 번역하면 자연스럽게 직역이나 의역이 되는 마법을 누구나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민하고 노력할수록 직역과 의역에 얽매이지 않은 정역(正譯)이 된다. 다만 현대의 일반적인 인식은 직역에 좀더 부정적이다. 의역 문서와 비교했을 때 직역 문서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것만 봐도 직역=우리말 실력이 떨어져서 그냥 일대일로 번역함, 의역=언어 능력이 뛰어나서 자연스럽게 번역함으로 인식하는 대중의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원문을 봐야 잘못을 알 수 있는 의역과 달리, 직역은 그냥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직역이 오역인 경우를 대중들이 더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정역의 기본 원칙을 굳이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문의 의미와 문장 요소를 될 수 있으면 모두 옮겨야 한다(함부로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 둘째, 원문의 길이에 맞춰 되도록 짧게 번역해야 한다. 셋째, 우리말의 감각에 맞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첫째와 둘째는 굳이 말하자면 직역, 셋째는 의역의 요소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의역과 직역의 정신을 모두 담아내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며, 따라서 이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특히 문화적으로 미묘한 차이가 있을 때 어려움이 발생한다. 아주 큰 차이면 문화의 차이를 살리기 위해 최대한 원문 위주로 번역했다고 하면 되지만, 예를 들어 일본의 존대 문화처럼 친구에게도 존대를 쓰는 경우. 분명 어른에게 쓰는 존대와 친구에게 쓰는 존대는 거리감의 차이가 있음에도 둘다 한국어의 존대로 바꾸면 굉장히 어색해지고(우리나라는 친구에게 존대를 쓰는 문화가 아니므로), 그렇다고 친구에게 쓰는 존대를 평대로 치환하기엔 일본어에도 평대가 있으므로 친구에게 존대, 평대를 쓸 때의 거리감 차이를 살릴 수 없다. 직역하자니 어색하고, 의역하자니 우리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런 점 때문에 아무리 탁월한 번역가라도 원문의 의미를 손상시킬 수밖에 없으며, 번역 논란이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아마추어 번역자들이 본인들의 '탁월한 언어감각' 에 바탕을 두고 ' 초월번역'을 한답시고 한 번역들은 대체로 원문의 의미와 길이를 무시한 엉성하고 낮간지러운 '창작'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글은 대부분 시장에서 통용되거나 문학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들이 못 된다. 또한 직역, 의역 강박증에 빠진 인터넷의 '오역 감별사'들이 시중의 번역서에서 '무수한 오역'을 찾아냈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대체로 의역, 직역, 번역체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다. 전자는 의역이 원문의 뜻을 망치는 것이라며 오역이라 주장하고, 후자는 직역이 번역체라며 배척하고 '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프로 번역가들에게서조차 번역체=오역이라는 오해는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부류의 작자들은 번역가의 권한을 과대평가하고 멋대로 원문을 뜯어고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중도를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지만 중요하며, 저렇게 중도를 지키지 못하는 이들에게 막상 번역을 맡겨보면 역시 돈 받고 팔아먹을 수 없는 기괴하고 나쁜 번역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소위 프로 번역가들도 이러한 사항을 모두 완벽하게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직역과 의역 사이의 어딘가에서 가장 원문에 가까우면서도 어감이 자연스러운 번역어를 떠올리는 데는 어지간한 프로 번역가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일일이 써 가면서 번역하다 보면 자칫 의뢰인이 요구하는 마감일을 훌쩍 넘겨버릴 수도 있기에 시간적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5.2. 문학

간혹 작가가 외국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경우라면 아예 작가 본인이 여러 국어로 출판을 하거나, "외국어로 번역할 때 이런 어휘를 사용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비범한 경우가 있기도 하다. 전자의 예로는 시인 타고르, 후자의 예로는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는 않은 모양인가보다. 어느 작가는 자기 작품이 형편없이 번역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자기가 두 가지 언어로 책을 써서 냈는데 두 책이 완전 다른 느낌이 나는 책이 되었더라 하는 이야기도 있다. 반대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어떤 인터넷 소설가의 책의 경우는 중국어로 번역이 되자 완전히 다른 느낌의 물건이 나온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중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2차 창작에 준하는 글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한편 어떤 뱀파이어 할리퀸 취급받는 시리즈의 경우는 한국어 번역판이 더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것에는 이세욱판 번역의 질이 굉장히 뛰어났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문학에서의 번역은 학술서 등의 번역보다도 그 비중이 훨씬 크다. 문학은 엄연히 예술임에도, (가사 역시 중요하긴 하지만) 멜로디만으로 사람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음악, 형식 자체가 일종의 보편성을 지니는 미술, 사진과 달리 하나의 언어공동체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 문학서의 번역은 그야말로 2차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상기한 사례에서도 나오듯 업계에는 번역을 내용만 전달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으로 치부하는 작자들이 꽤 있어서 번역가가 번역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도착어 번역가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이다.

5.3. 청소년 대상 창작물

만화나 청소년 대상 소설을 많이 출판하는 출판사에도 '중고딩들이 보는 거니까 제일 저렴한 번역가한테 맡겨도 된다. 부정확해도 그냥 욕이랑 유행어 좀 많이 넣어 번역하면 오히려 애들이 더 좋아하겠지'라는 유치한 멘탈로 번역가를 섭외하고 진행하는 팀장들이 은근히 많다. 번역가 섭외하라고 책정한 예산의 일부를 중간에서 빼돌리려고 횡령 일부러 저렴한 번역가를 찾는 인간도 있다고 한다.

또한 번역가의 번역 수준은 받는 보상의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엉망 번역으로 욕먹는 번역가라도 환경만 좋으면 번역 수준이 높아지기도 한다. 라이트 노벨이나 만화 번역에서는 엉망진창 번역이 곧잘 나오는데, 번역가의 실력 부족보다 시간이 너무 빡빡한 것이 큰 이유다. 그래서 만화, 라노벨의 경우에는 번역자가 한 번에 여러 개를 맡아 후다닥 끝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보상이 짜서 번역의 질도 나빠지고, 독자들의 기분도 나빠지고의 악순환. 문제는 이런 상황에도 계속 그쪽 작품을 읽어주고 사는 독자나 대여점이 있다는 점이다. 비단 이 논리는 번역만이 아니라 소비자/판매자 관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써먹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소비자의 권리는 소비자가 찾아야 한다.

5.4. 인문 고전

땅 파서 묻어놓고 숨구멍만 틔어놓는 상황.
파일:인문고전_번역.jpg
참고1 - 플라톤 전집은 2019년 완역되었다.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은 2021년에야 시작되었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 30년짜리 프로젝트라고...
참고2 - 위의 비교군에 독일어가 들어가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예시 다섯가지 중 칸트, 헤겔, 마르크스-엥겔스는 모두 독일어 원전이기 때문.

인문 고전을 번역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학부생들이 고전을 빠르게 접하게 하고 교수의 강의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일반인들에게 고전에 접근하는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100명이 각자 원어를 배워서 원서를 공부하는 것과, 전문가 1명이 책을 번역하고 나머지 99명이 번역본으로 공부하는 것을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가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교수나 대학원생들은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13] 학부생들이나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아니다. 안 그래도 역사적 맥락과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 문단의 논리적 구조 파악이 중요한 인문학 전반에서, 읽어야 할 텍스트는 많은데 번역이 없거나 질이 떨어진다면? 안 그래도 높은 인문학의 진입 장벽이 더더욱 높아진다.

이렇듯 중요한 고전 번역이지만, 국내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번역 자체의 어려움
    번역가가 이 작품 본래의 가치를 다 없애버린거야. 시를 외국어로 번역할 때 의당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아무리 정성을 들이고 재주가 많아도 번역이 원작만큼 훌륭해질 수는 없는 것이야.




    동시대의 지배적인 사고 체계의 영향력 내에서 쓰인 현대 경소설이나 만화 번역이라면, 해당 언어의 아주 본질적인 역사적 흐름과 사상적 맥락까지 고려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인문 고전을 번역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제대로 번역한다는 건, 이미 내뿜은 담배연기를 다시 입으로 빨아들이는 수준의 살인적인 노력을 요한다. 당연히 번역을 하려면 해당 분야의 전공자, 그 중에서도 최소한 십년 이상은 학계에 몸담으며, 해당 1차 문헌이 쓰인 시대의 사회와 학계 상황부터, 그 이전 시대의 저작들과 역사적 흐름도 당연히 빠짐없이 참고해야 하고, 후대의 2차 문헌들을 통해 어떤 어휘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지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원전이 구전돼서 여러 판본일 경우 당연히 해외의 연구 기록들을 짚어가며 기준판본을 선정해야 한다. 모국어와 외국어 능력이 탁월해야 하는 건 당연히 다른 번역가들과 마찬가지로 말할 것도 없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사어들과 고어들의 의미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다 만족한 번역가의 번역본까지도 후대에 오역으로 평가받기 일쑤다.
  • 학계의 평가
    번역도 엄연한 연구의 일부인데 지원을 안 해준다. 번역이란 작업 자체를 상당히 천시하는 게 현 학계의 현실이다. 심지어는 '원서를 읽지 않으면 학문을 연구하는게 아니다'라는 지나친 자부심을 부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영어를 모르면 해외의 연구성과를 그때그때 따라가지 못하고, 해당 연구의 원저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으로 인해 이러한 인식이 매우 크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일반인들에게 전달해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법한 여러 전문지식들이 대학이나 연구 집단 내에서만 묶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당장 유사역사학의 난립도 역사학계의 연구 결과나 한문 번역 성과 등이 충분히 대중에게 전달되지 못하면서 생긴 문제였음을 생각해 보자.

    베냐민 같은 학자를 예로 들면 인지도는 높으나 막상 국내 학계에서 전문 연구자가 매우 적은 편이며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교수들의 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런데 그 정도 학명을 떨치는 교수가 번역을 직접 할까? 차라리 논문을 쓰는 게 연구 경력에 더 큰 도움이 된다. 번역보다 논문이 더 높이 평가받으니 권위있는 교수들이 직접 번역을 다 하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일부 서적은 한 두 절을 교수가 직접 하고 나머지를 대학원 스터디 용으로 번역시켜 번역본을 다시 중역하는 방식으로 번역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번역 수준 차이가 들쭉날쭉한 책들이 일부 있는데, 학부생 수준의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동료 교수들의 눈에는 '아 대학원생들 썼구나'라는 티가 확 난다.
    그나마 한국연구재단에서 '동서양명저번역지원'이라는 이름의 지원사업을 실시해서 해마다 평균 17억 정도의 지원금을 주던 걸 2010년경에 10억으로 줄였다가 2017년에는 그마저도 없어졌다. 기재부 관료가 돈줄 끊으면서 연구재단 담당자에게 "영어로 읽으면 되는데 뭐하러 번역해요?"라는 개드립을 날려서 관계자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고 한다.
  • 수요
    라이트노벨, 게임, 망가 등 인기있고 잘 팔리는 말랑말랑한 서적들에 비해 고대 그리스나 라틴어, 한문, 그 외 '이미 죽은' 언어로 작성된 문헌의 번역본은 재미가 없고 수요층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전공자에게 번역을 맡겨도 언제 번역이 완성될지 모른다. 이러니 인문 고전 번역은 말 그대로 '양산'되는 수준에 그치기에 이르며, 날림으로 내놓은 번역본은 많은데 정작 제대로 된 번역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수요층이 줄어든 인문학계의 진입 장벽은 더더욱 높아진다.


물론 천병희 선생처럼 그리스 원전 번역에 정력적으로 평생을 바치신 분도 있고, 근래 들어서는 올재 클래식스, 정암학당의 플라톤 전집 번역 프로젝트, 혹은 칸트 전집 번역 등이 활성화되고 있긴 하나 다른 선진국들을 따라가려면 이제 갓 걸음마 뗀 셈이나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아니지만 국내 학술번역의 수준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저서가 오역 그것도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내용변경 때문에 전량 회수 후에 재번역본이 나오는 황당한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바로 2015년 앵거스 디턴 위대한 탈출 오역 논란으로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5.5. 게임

게임의 한국어 번역 문서 참고.

5.6. 기타 전문 분야

각 분야의 전문 용어들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생소한 언어가 많고, 익숙한 단어일지라도 이것이 특정 분야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와 아주 다른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은 오역이 발생하기 쉽다.

예를 들면 회계 분야에서는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이를 대신할 순화 용어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므로 아무리 맘에 들지 않아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또한 콘도, 리조트 업계에서 쓰이는 구좌라는 단어는 익숙한 단어가 그 분야에서만 특이한 의미로 쓰이는 사례다. '구좌라고 하면 흔히들, 계좌를 일본식으로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회원권 분양 단위를 말한다. 예를 들면 1구좌는 이용할 수 있는 객실이 1개임을 의미한다.

여담이지만, 회계 분야 전문가 중에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교정원들의 교정을 반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컴퓨터 관련 번역을 할 때에는 정말 일상적인 의미와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용어가 꽤 많다. 이는 컴퓨터 용어 자체가 개발자, 프로그래머가 쓰던 별칭이나 은어(jargon)가 그대로 들어간 것이 꽤 되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커널(kernel)이라는 단어의 원 뜻은 호두 같은 단단한 열매의 속살이므로, 대충 사전만 찾아 보게 되면 '프로그램의 핵심[14]이 되는 부분'이라는 번역이 나오지 않는다. 다른 예로 3D 게임에서 엔진(예: 언리얼 엔진)과 자동차의 엔진은 뜻이 다른데, 번역기를 돌리거나 해당 지식이 없다면 번역이 딱 막히게 된다.

노래가사를 번역할 때에는 음표 수와 음절 수도 맞춰야한다.[15]

5.7. 한계

번역은 원문과 다를 수밖에 없다. 문법, 어휘, 정서 측면에서 언어간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영미권에서 운명의 상대를 말할 때 흔히 말하는 the one, 절대반지로 번역된 the one ring, 죽느냐 사느냐 to be or not to be, 다 잊어 Let it go 등의 사례 뿐만 아니라 'I'm a boy' 조차도 '나는 소년이다'가 아니다. 가끔은 일부 서사를 완전히 뒤바꾸는 경우도 있는데, 원문대로 번역시 문장이 매우 길어지거나 문화적, 언어적 유머 등을 번역할 때 자주 보인다. 물론 번역본만 보았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원문을 본 사람들에게는 이런 언어적 차이가 괴리감으로 다가온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러한 이유로 완전한 번역이 불가능함을 지적했으나, 한편으로는 같은 언어간에도 완전한 소통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임을 역설함으로써 번역을 옹호하기도 했다.
……번역이라는 기본적으로 부정확한 현상에 대해 상당히 명확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어쨌든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엄격한 이론적 검증에 비추어 보면 번역은—완전한 동의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불가능한 원리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격한 논리적 검증에 비추어 보면 완벽한 커뮤니케이션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이론상 상호작용은 불가능하지만 통상 실천상에서는 잘 실현된다. 나는 마찬가지의 일이 번역에서도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를 둘러싼 번역 이야기』, 「에코를 둘러싼 번역 회의, 회의의 기조 발언」, 송태욱 옮김, 열린책들 (2005), p.68-69

5.8. 오해

5.8.1. 다중 언어 사용 능력에 대한 오해

두 언어를 모두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번역 또한 쉽게 할 것이라는 오해가 있다. 두 언어, 예를 들어 한국어 영어를 모두 접하고 자라서 이중언어 화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완벽한 번역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 거리낌 없이 옮길 수 있는 범주는 일상 대화 정도다.

언어를 쓰는 것과 달리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앞서 이미 설명이 나왔듯이, 문화의 차이 등에서 기인하는 고유한 표현은 옮기는 일이 쉽지 않기 마련이다. 어릴 때부터 영어와 한국어 모두 노출돼 자란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한국적 분위기에서 영어를 쓰거나 영미권적 분위기에서 한국어를 써 온 것이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두 언어로 표현해 온 영역은 다르기 마련이다. 이미 위에서 '단어는 알겠는데 막상 이걸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그 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권 문화 고유의 뉘앙스에서 나온 표현이 있을 때, 누군가 그게 한국어로 하면 무엇인지 말하면 선뜻 답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장 한국에서만 해도 서울말로 바꿀 수 없는 지방 고유의 표현과 같은 말이 어째서 생기는지 생각해 보자. 또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라는 것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결국 한국어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일 다른 어떤 언어에서는 그 느낌을 정확히 한 단어로 나타낼 수 있다면?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언어와 한국어를 모두 모국어로 구사하는 이중언어 화자라면? 평생에 해당 느낌은 그 표현 가능한 언어로 말할 때에만 나타내 온 입장에서는 한국어로 말을 하다가도 해당 뉘앙스가 나오면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당장 한국어를 쓰는 우리만 하더라도 어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뉘앙스를 만나면 버벅인다.

이렇다 보니 간혹 재밌는 사례가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한국어 - 영어 이중언어 화자일 경우,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 중간에 영어를 끼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그 둘을 다른 언어로 인식하지 않는다. 모국어와 외국어를 다르게 익힌 일반 사람과는 달리, 이중언어 화자들의 머릿속에서는 두 언어가 정확히 똑같이 처리되기 때문에 중간에 한 언어로 표현하기 까다로운 게 있으면 자연스레 다른 언어의 표현을 사용한다.

이제 다시 앞서 거론한 곤란한 표현으로 넘어가 보자. 해당 현상은 곧 자신이 무심코 쓸 수 있는 표현을 애써서 걸러 표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 있다. 온라인 세계에서 쓰는 온갖 신조어들로 프리토킹이 가능하고 성인들과도 일반적인 말로 프리토킹이 가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막상 일부 신조어(e.g. 뻘쭘, 꽁기꽁기하다 이걸 요즘 아는 사람이 있나? 아는 사람이라도 이걸 일반 언어로 해석하기란 어렵다.)를 일반 언어로 옮기려면 어려울 수 있는 것과 같다. 혹시 이 비유가 와닿지 않는다면, ' 한자어를 몽땅 신조어나 은어가 아닌 순우리말로 해석해서 말해 보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분노(憤怒)'를 써야 할 자리라면 어떻게 순우리말로 쓸 것인가? '화'라고 할 것인가? 이것도 '火'로 한자어다.[16] '빡침'이라고 할 것인가? 신조어나 은어를 뺀다고 가정하면 대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노여움 게다가 야민정음이나 외계어 같은 언어 파괴급의 신조어라면? 답이 없다. 물론 이 예는 매우 극단적인 예이기는 해도, 어느 한 언어에서 표현이 가능하나 다른 언어에서는 그렇지 않다면 그 두 언어를 쓰는 이중언어 화자라도 해당 표현의 번역 및 통역에는 충분히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결론을 지으면,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모국어로 구사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중 어느 한 언어를 다른 쪽 언어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번역은 외국어만 잘하면 할수 있는것 아니냐는 질문은 번역가/번역가 지망생에게 할수 있는 가장 무례하면서도 무식한 질문으로 꼽히는데(..) 고음만 잘 올라가면 가수 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는 말이다. 글과 글 사이에서 나오는 막대한 의미의 변수를 다루려면 외국어가 오히려 부차적인 능력으로 보일 정도의 극한의 국어 능력이 필요하다.

5.8.2. 일본어 번역가에 대한 오해

앞서 언급했듯이, 회계 분야의 경우, 일본식 용어를 거의 그대로 쓰는 형편이므로, 아무리 잘 번역해도 일본스러움을 없앨 수 없다. 여기서 번역가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는 것과 몇몇 조사 정도다.
그런데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러면 주어를 아예 뒤집어야 하므로 문맥까지 고려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즉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하지만, 애초에 회계 분야를 모르는 사람들은 번역가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결과물을 보고도, 번역가가 게으르거나 일본어에 사고방식이 오염되어 태업을 했다고 오해하기 쉽다. 직장에 국어국문학과 출신이 있을 때 쉽게 빚어지는 오해인데, 국어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회알못이라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지만, 국어국문학과 출신들은 자기네 스타일이 아닌 문장은 번역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출판계는 기본적으로 국문과 출신이 많으므로 이러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잦다.
다만 라노벨 쪽의 경우 전문성을 갖고 번역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오래, 꾸준히 독학으로 번역을 하다가 발탁되는 경우도 많은데, [17] 이 경우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져서 멀쩡한 문장을 번역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번역체라는 것은 단순히 오역인 게 아니다. 그러므로 번역하면서 나올 수밖에 없는 번역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또한 문맥상 꼭 필요한 수동태 문장을 일본어투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사례에 대한 것은 과도교정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5.8.3. 오역으로 오해하는 경우

최근 외국어 학습자 증가와 학력 인플레로 인한 스노비즘이 맞물려 멀쩡한 번역을 오역으로 오해하고 번역가를 비난하는 사례도 잦아지고 있다.
누가 번역을 해도 원문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번역이므로, 번역문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번역가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일도 많다. 특히 대중문화 소비자 중에서 많은데, 애초에 학구적인 분야가 아니다 보니, 번역이 자기 입맛에 안 맞을 경우, 왜 저렇게 번역했을까?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지갑에 흠집을 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강의 중인 전문 번역가 이상원이 서울대학교 기초대학원 글쓰기센터 홈페이지에 기고한 이 글이 이런 현실을 잘 설명해 준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오렌지’라는 단어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격렬한 전투 장면이 끝난 후 지친 앤트맨이 “Does anyone have orange slices?”라고 말한 대사가 “누구 오렌지 있어?”라고 자막 번역된 것이 문제였다. 관객들은 뜬금없이 등장한 오렌지에 당황했고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배급사가 나서서 오렌지가 정확하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미국에서는 운동한 후 과일을 먹는 경우가 흔하고 오렌지가 가장 대표적이라는 것이다. 운동 후에 오렌지를 먹는 문화가 없는 한국 관객들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관객은 번역 때문에 흐름이 끊기지 않는, 매끄러운 영화 감상을 기대했다.) 번역자가 이를 예상했다면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 “이제 좀 간식 좀 먹어볼까?”라든지 “당 떨어졌는데 뭐 없나?” 같은 번역을 했다면? 안타깝게도 대안적 선택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영화 자막 번역은 원문을 소리로 듣고 있는 관객들에게 제공된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귀에 ‘오렌지’가 들리는데 번역에 ‘오렌지’가 없다면 이 역시 관객들의 항의를 받기 쉽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번역에서 논란이 된 “누구 오렌지 있어(Does anyone have orange slices)?”라는 번역문은 영화 속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절대로 오역이 아니지만, 운동 후에 오렌지를 먹는 문화가 없는 한국 관객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 마디로 문화 차이로 인한 문제인데, 그렇다고 우리 실정에 맞게 “당 떨어졌는데 뭐 없나?”라는 식으로 의역했을 경우, 귀에 오렌지가 들리는데 왜 엉뚱한 말이 나오느냐며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에 의역을 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18]

물론, 이 경우는 번역가가 하필 박지훈이어서 문제가 된 것도 있지만, 이런 경우까지 오역이라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다만 케이블의 경우 시원하게 오렌지 한 쪽이라고 번역했는데, 이게 사실 원문에 더 가까우며, 대사를 쓴 작가의 의도에 더 맞는다. 즉, 말을 정확히 옮기되 말투를 자연스럽게 하는 감각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사흘 논란처럼 독자가 무식한 경우도 있다. 모 일본 만화 번역을 본 독자가 원문엔 三日이라 쓰여 있는데 왜 사흘이라 했느냐고 항의한 사례가 있으며, 당면과제라는 한자어의 당면(當面)을 음식 당면으로 오해하고 번역가가 배가 고프셨나 보다라고 글을 올린 사람도 있었다(...)

또한 오역으로 오해하는 경우는 번역문을 교열하는 교열자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나는데 개중에 자격 미달 교열자들의 독선으로 인한 갈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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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음차와의 차이

'어떤 언어의 발음을 그 언어에서 사용하지 않는 다른 문자로 표기하는 것'은 음차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받아쓰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pple을 '사과'라고 하면 번역이고 '애플'이라고 하면 음차이나, 번역에 있어서는 명사를 일반 명사로서 번역할 것인지, 고유명사로서 음차할 것인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과일인 '사과'는 일반명사이지만 회사인 '애플'은 고유명사다.

때문에 번역할 때에 음차를 주의해서 적당히 해야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번역의 질이 올라간다. 지나치게 음차 일변도로 해도 문제가 되고, 반대로 지나치게 다 번역하려 해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Bloated Man's Grotto'를 '블로티드 맨스 그로토'라고 그냥 음차해버리면 아무도 이게 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 '부푼 사내의 암굴'이라는 식으로 뜻을 번역해줘야 이해하기 쉽다. 반면 'New York'을 '새 요크'로, 'John Smith' 를 '대장장이 요한'으로 뜻을 번역해도 이상할 것이다. 이런 대도시 지명이나 사람 이름 같은 고유명사는 그냥 '뉴욕', '존 스미스'라고 음차해야 맞다.

7. 저작권

번역 저작권에 관해 자세한 것은 저작권 문서와 번역가 문서를 참조. 그 외 불법 번역 문서도 참고.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베른 협약에 의해 저작권은 국제적으로 보호된다.
  • 원 저작권자의 허락이 없는 번역은 원 저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이다.[19]
  • 번역한 문서는 번역자에게 저작권이 있다.[20]

8. 번역과 인공지능

컴퓨터 인공지능을 통해 글을 번역해 주는 프로그램을 번역기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2017년 2월 21일 세종대학교에서 인간 전문 번역가 팀과 AI 번역기 3대( 파파고, 구글 번역, 시스트란)가 번역 대결을 벌인 결과, 아직까지는 인공지능 번역의 수준이 인간 번역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함이 드러났다. # 그러나 단어 200자씩 끊어 쓰기를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인공지능이 작동되지 않는 등 불공정한 대결이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

물론 앞서 말한 성능에 대한 논의는, 언제까지나 자기가 외국어를 깊이 배웠거나 전문 번역가를 고용할 만한 여력이 될 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만약 본인이 모르는 외국어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걸 번역할만한 인맥이 없다면 유일한 대안은 구글 번역기 같은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이런 비교는 사실 실생활에서는 의미없는 문제이다.

애초에 한글로 된 외계어 마냥 대충 번역해 놓기만 해 놓는 정도로도 사람들이 외국인 한테 이메일을 보내거나, 외국 서적을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수준까지는 유용히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4년 기준 GPT-4 이상의 기술을 이용하면 문맥을 알려줘서 번역을 하는 시도까지 가능하고, 특정한 단어의 의미를 고정해서 번역할 수 있으며, 인간보다 정확한 부분이 조금씩 등장하기도 할 정도다. 왜 그렇게 번역했는가에 대해 질문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면 ChatGPT, Claude3로 외국 노래 가사를 두고, 이것은 노래 가사임을 감안하여 번역하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인공지능 번역은 문맥, 역사를 고려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것도 이제는 부분적으로 가능한 부분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런 수요는 꾸준할 수 밖에 없었기에, 번역기 같은 것은 지금보다 인공지능 수준이 더 떨어지던 시절에도 꾸준히 개발될 수 있었고, 자율주행차 문제와 달리 잘못된다고 사람이 죽고 다치지도 않으니 이런 논의에서는 더 자유롭다.

8.1. GPT의 등장이후 인공지능 번역기의 강세

인공지능 번역기의 이점을 활용하여 현재 몇몇 번역업체들에서는 인공지능 번역기 혹은 기계 번역(Machine Translation)의 결과물을 에디팅(Editing)하여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령 2018년 10월 티브릿지-한국국제통상번역원은 기계번역 감수 서비스를 도입해 매뉴얼, 카탈로그, 계약서, 제품소개서 등 산업 문서들의 번역 단가를 기존보다 낮췄다고 전했다. # 2020년대부터는 간단한 산업문서는 검수 인력이 줄어드는 등 인력 문제가 대두되기는 하나, 문화적 맥락이 중요한 문서나 작품을 중심으로는 현재로서는 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번역기의 결과물을 사람이 수정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 인간초벌&인간검수에서 인간초벌을 인공지능으로 바꿨을 뿐, 결국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엄밀히 '인공지능 번역'이라고 하기는 힘들다는 반론도 있다. 그리고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는 성향이 있다보니, 제대로 검수하지 않으면 오류를 통과시킬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앞서 언급한 고의로 인간이 번역물에 편견을 담거나, 인간조차 ' 아무도 잠들지 마라'를 '공주는 잠 못 이루고'처럼 오역을 한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닌 반면 인공지능은 다양하고 많은 데이터를 훈련시키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서 번역의 질이 점차 비슷해지고 있다. 2024년 3월 기준 기계 번역이 인간이 온전히 해석 못하던 에트루리아어를 해석하려고 하거나 #, 심지어 Anthropic의 Claude3, 구글의 Gemini 1.5 pro부터의 최신 모델은 한국에서는 누구도 해석하지 못하는 러시아 일대 소수민족 체르케스인의 언어 #까지 한국어로 직역이 가능한 상황이다. 어느 지역의 언어를 막론하고 태국어 이상의 메이저한 언어가 아니면 이것보다 더 텍스트 번역을 잘하는 한국인을 찾기 힘들 정도다. 사멸 위기 언어 보존에 이것을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언어학자들이 현재 남아 있는 자료만을 가지고 아예 화자가 사라진 언어를 복원해내듯, 언어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언어를 보존하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라틴어 같은 유명한 사어를 중심으로 기계 번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한문도 고전 번역 단축을 위해 기계 번역을 부분적으로 쓰는 일도 생겼다.

단순 텍스트 번역의 능력만 갖춘 번역가에게는 생계에 위협을 주는 상황이기에 번역가에게는 새로운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인공지능 자체를 일반인보다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고려하거나, 문화적인 컨설팅 부분에 과거보다 더 초점을 맞추는 대안 등이 있다. 대량의 번역이 번역가에게도 손쉬워지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9. 관련 문서


[1] 하지만 언어 간에는 문맥, 문법, 관용어구의 차이 뿐만 아니라 글쓰기 전통도 다른 경우가 많아 완전히 똑같은 의미를 갖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 이를 기계번역, machine translation이라 한다. [3] 이는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의 번역이지만, 아직도 성경을 대할 때 글자 하나하나가 신의 계시로 쓰였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원전의 의미와 권위를 손상시킬 수 있는 의역을 피하고 행간 번역 또는 직역의 방식을 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4] 감추려는 의도였는지 실수였는지 '마코토'를 '신'으로 읽어 '오기노 신'이라는 작가명으로 출간했다. [5] 간단히 구글번역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냥 단어와 문장을 외국어로만 바꾼 게 현재의 구글번역이라고 보면 된다. [6] 해당 전기는 현재 고려대장경 및 다이쇼신수대장경에 실렸다. 고승전2 구마라집전(국역 한글대장경) 국역 한글대장경 사이트에서 양고승전의 원문을 제공하고 있는데 검색할 때는 양고승전이 아니라 고승전으로 입력해야 나온다. [7] 절대다수는 도착어를 모어로 삼는 사람들이 번역을 한다. 그리고 어떤 번역가들은 번역을 하려면 도착어가 [8] 단어가 주는 느낌은 단어의 길이와 음운, 사회/문화적인 인식까지 포함되므로 원문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물론 현실적으로 번역가 역량상 여기까지 신경쓰는 경우는 드물다. [9] 프리랜스 번역을 하고 있다면 외국어 → 영어 번역 일이 들어올 수도 있다. 의뢰가 외국에서도 들어오기 때문. [10] 좋은 예로 원피스의 이가람은 국왕 네펠타리 코브라와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라 코브라가 괴상한 짓거리를 하면 '국왕 너 임마!"라고 태클을 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택도 없는 일이라 "폐하 체통을 지키세요!"로 바꿔버렸다. [11] 주로 만화와 영화, 특히 자막이 동원되는 영화가 더 어렵다. 불과 몇 초 안에 몇 자로 제한된 자막에서 개그까지 살리려면 정말 골 때릴 것이다. 게다가 더빙이라면 립싱크까지 맞춰야 하므로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 [12] 유명한 말이긴 하지만 이 말을 부정적으로 보는 기성 번역가들도 많다. [13] 물론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원문만 읽고 번역본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번역본은 그 자체가 거대한 연구성과이니 당연히 참고해야 한다. [14] 한자로 하면 核心으로, 씨앗의 중심부라는 의미이므로 커널과 같은 말이 된다. 우연히 동서양의 생각이 일치한다. [15] 이것은 번안곡을 쓸 때 이야기고, CD에 가사 번역집을 동봉하는 식의 서비스라면 거기까지는 필요하지 않다. [16] 순우리말은 '성'이다. '성내다' 할 때의 '성' [17] 굳이 라노벨이 아니더라도 관련 학과를 나온 게 아니라 그냥 관련 업종에서 일하다가 번역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출판업계가 정확성, 전문성보다는 이 사람이 믿을 수 있는지, 제 때 납품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겨 인맥 등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안에 번역해야 하는 영상 쪽은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18] 과거 활자 매체에서는 의역이 통했다. 예를 들면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건 무조건 이라고 퉁치는 식이고 성경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요즘에 이런 식으로 번역하면 독자들에게 욕 먹는다. [19] 물론 이 경우에도 공정이용 등의 조항을 들 수는 있다. 공정이용 적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기관의 안내를 참조할 것. [20] 그러나 번역한 문서를 맘대로 쓰는 것은 보통 원 저자에 대한 저작권 침해가 된다. [21] 외국어번역행정사는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서류를 번역하는 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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