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

"대왕께서는 용호(龍虎)의 자태로 풍운이 일어나는 때를 맞아 재빠르게 일어나신 덕에 한 달만에 형제가 왕을 칭하게 되었습니다. 하나, 백성에게 아직 덕망과 신의를 베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총애와 녹을 받으셨으니, 이는 지혜로운 자라면 꺼리는 바입니다. 지금은 전전긍긍 하시면서 스스로를 위태롭다 여기시고 총애와 녹이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 하셔야 할 때임에도, 오히려 스스로 만족하고 계시니 어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보건대, 명공(明公)께서는 수레 한 대를 타고서 하북으로 오셨지만, 창고에 수많은 재물을 비축해 놓지도 않으셨고, 후한 상과 달콤한 미끼로 사람을 모은 것도 아니며, 오직 은덕으로 백성들을 품으셨기 때문에 백성들이 기꺼이 따랐던 것입니다. 지금 한단이 스스로 독립하여 북주(北州) 사람들이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비록 모든 친척을 다 명공의 명에 따르게 하고 노약자도 따르게 하였으나 친족과 빈객 중 절반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라 염려되었기 때문에 가옥을 전부 불살라서 그들의 뒤돌아 볼 생각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어젯밤은 곤란하지 않았는가?"

"명공(明公)의 위엄 덕분에 다행히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대병(大兵)은 야간에 이동시킬 수 없는 법이라 서로 구하지 못한다네. 군영의 진퇴에는 정해진 것이 없으니, 앞으로 경의 친족들을 군중에 거주하게 하지 말도록 하게."

저는 황제의 사신으로서 왕후(王侯), 목(牧), 태수(太守)를 만나야 하므로 먼저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만약 만나고 싶거든 친히 객사로 나와 주십시오.

"신(臣)은 본래 관리 집안의 자손이나, 다행히 대한(大漢)이 부흥하고 성제(聖帝)께서 천명을 받으시는 때를 만나 장군을 지내고 후작에 올랐습니다. 이제 천하가 평정되어 신은 재능을 발휘할 데가 없으니, 한 군(郡)의 관리로 부임하여 최선을 다해 다스려 그 효과를 거두기를 원합니다."

"경은 지금까지 무치(武治)를 하였건만, 이제 문치(文治)를 하고 싶은 것이오?"

"경순은 젊었을 적부터 갑주를 입고 군리(軍吏)의 일만 하였다. 그런데도 군을 다스리자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 이와 같을 수 있는가?"[1]

" 문제(文帝)께서 주발(周勃)에게 이르길, 『승상은 내가 중히 여기니, 군(君)은 나를 위해 제후를 거느리고 봉국을 취해 주시오』라 하였는데 지금도 그와 같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