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14:10:06

웨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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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식스 왕국
Westseaxna rīce
Westseaxe
파일:FlagOfWessex.png
국기[1]
파일:웨식스 왕국 국장.svg
문장
파일:웨식스 지도.jpg
데인로의 침략 시기 웨식스(주황색)
519년 ~ 927년[2]
위치 잉글랜드
주요 도시[3] 윈탄체스트레(Wintanceastre)
언어 고대 영어, 라틴어
종교 게르만 종교 가톨릭
종족 앵글로색슨
정치 체제 군주제
국가원수
주요 국왕 체르디치 (519 ~ 534)
캐드왈라 (685 ~ 688)
이네 (688 ~ 726)
브레트왈다 에그버트 (802 ~ 839)
앨프레드 대왕 (871 ~ 899)
대 에드워드 (899 ~ 924)
애설스탠 (924 ~ 939)
성립 이전 로만 브리튼
국호 변경 잉글랜드 왕국

1. 개요2. 건국3. 머시아의 간섭4. 바이킹의 침략5. 잉글랜드 통일6. 크누트 대왕의 정복7. 멸망

[clearfix]
언어별 명칭
고대 영어 Westseaxna rīce / Westseaxe
라틴어 Regnum Occidentalium Saxonum
영어 Kingdom of the West Saxons / Wessex

1. 개요

519년부터 927년 잉글랜드가 통일되기 이전까지 존재하던 고대 왕국이자 잉글랜드의 통일을 주도한 국가다.

잉글랜드 왕국의 직접적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2. 건국

잉글랜드에 칠왕국이 있었던 시대에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왕국 중 하나로 중심지는 오늘날의 햄프셔, 도싯, 윌트셔, 서머싯주, 에이번주 남부에 해당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체르디치가 햄프셔에 상륙하여 건국했다고 전하며, 영토는 템스 강 북쪽부터 서쪽의 데번 주, 콘월 주에 이르렀다. 체르디치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어쩌면 게르만족 계열 앵글로색슨이 아니라 브리튼인일 수도 있다.

3. 머시아의 간섭

웨식스가 기록에 확실하게 처음 등장한 것은 성 비리노(Birinus) 주교가 630년 교황 호노리오 1세의 명령으로 웨식스에 선교하러 간 뒤 635년 웨식스 왕 퀴네길스(Cynegils)를 가톨릭으로 개종시킨 사건이었다. 이 때문에 비리노는 도체스터(Dorchester)에 주교좌 성당을 세울 수 있었다.[4] 퀴네길스는 당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머시아의 펜다(Penda)를 견제하기 위해 북쪽의 노섬브리아 왕 오수왈데(Osuualde, 오즈왈드)와 동맹을 체결했다.

하지만 그들의 연합에도 불구하고 머시아의 펜다(Penda) 왕은 여러 번에 걸친 노섬브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오수왈데 왕을 전사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한창 세력을 떨치던 노섬브리아를 한풀 꺾은 머시아는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펜다(Penda)의 공격적인 확장 정책에 웨식스는 크나 큰 압박을 받았다. 퀴네길스의 아들인 첸왈흐(Cenwalh) 왕[5]은 645년 펜다에게 왕위를 잃었다가 648년 다시 복위하기도 했고, 템즈 강과 에이번 강 남쪽으로 웨식스의 세력이 크게 밀려나기도 했다.

첸왈흐의 왕비였던 색스부르흐(Seaxburh)가 672년~674년 웨식스의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각지의 세력들이 왕을 자처하며 봉기하자 내란이 이어졌다. 7세기 말 캐드왈라(Cædwalla)와 이네(Ine)를 거치며 웨식스의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8세기경 브리튼 섬의 강력한 세력인 머시아의 간섭을 웨식스의 군주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웨식스는 머시아가 있는 북부로 확장하는 것을 단념하고, 켈트족이 차지한 서부로 진출했다. 웨식스는 둠노니아(Dumnonia)[6]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남서부 반도 지역의 왕국을 정복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머시아와 웨식스의 국경은 템즈 강과 에이번 강 유역으로 굳어졌고, 덴마크계 바이킹인 데인족의 침공 때까지 이어졌다.

4. 바이킹의 침략

802년 즉위한 에즈베르흐트(Ecgberht, 에그버트)는 남부 브리튼을 석권했다. 에즈베르흐트 왕 치하에 있으면서 웨식스는 유래없는 성장을 이어갔고, 머시아 중심의 통치에 반발하며 825년 머시아를 침공했다. 당시 머시아의 왕이었던 베오른울프(Beornwulf)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병한 엘렌둔(Ellendun) 전투에서 에즈베르흐트 왕은 대승을 거두었다. 머시아의 권위가 실추되자 머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서식스 켄트 지방을 웨식스가 점령했다. 또한 머시아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던 이스트 앵글리아가 독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즈베르흐트는 머시아군을 격퇴함으로서 브리튼 섬의 명실상부한 패자가 되었고, 북쪽의 노섬브리아까지 위협할 정도의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에즈베르흐트 왕은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브리튼의 지배자'라는 뜻을 가진 ' 브레트왈다'로 평가받았다. 830년 머시아의 위즐라프(Wiglaf[7])가 웨식스로부터 머시아를 독립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머시아의 옛 남동부 지역은 여전히 웨식스가 지배했다.

833년 덴마크의 데인족들이 해안가에 모습을 드러냈고, 웨식스를 포함한 해안가 전역을 침공하며 무려 20년 동안 약탈했다. 에즈베르흐트의 아들 애델울프(Æthelwulf, 애설울프)가 851년 연합한 바이킹 세력을 크게 물리쳐 데인족들의 잉글랜드 침공이 15년 정도 미뤄졌지만 여전히 데인족들은 웨식스에게 심각한 위험요소였다.

865년 데인족의 대규모 군대가 결국 잉글랜드 전역을 침공했다. 이교도 대군세의 시작이었다. 이스트 앵글리아 해안에 상륙한 바이킹들은 북상해 노섬브리아 왕국을 침공했다. 865년 이스트 앵글리아의 군대를 격파해 에드문드 왕을 죽이고, 867년 노섬브리아의 수도였던 요크를 함락시켜 노섬브리아의 남부 지역을 점령했다.

이어서 871년 바이킹의 두 번째 대규모 군대가 잉글랜드로 상륙해왔고 웨식스로 진격했다. 당시 애델울프의 네 아들들이 왕국을 분할해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중 에델레드( 애설레드 1세)와 앨프레드가 연합했고,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또한 앨프레드의 연속된 승리로 바이킹들은 웨식스에서 쫓겨났다.

데인족 바이킹들은 패배 이후 노섬브리아에 정착하거나 도주했다. 876년에는 머시아의 동부를 합병했고, 또 다시 웨식스로 진군해왔지만 앨프레드 대왕은 877년 바이킹들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계속되는 패배에 데인인들은 정복을 그만두고 정착을 선택했다. 878년 일부 데인인들이 기습 공격을 해왔지만 앨프레드 대왕이 에단둔(Ethandun, 에딩턴) 전투에서 이들을 격파해 데인인들의 대대적인 침공은 막을 내렸다. 이렇게 '이교도 대군세'는 끝이 났다.

5. 잉글랜드 통일

데인인들은 노섬브리아, 이스트 앵글리아, 머시아의 절반을 획득했고, 잉글랜드의 동부 해안 일대를 점령해 엄청난 영토를 차지했는데 이것을 데인로(Danelaw)라고 했다. 데인인들의 대규모 침략은 종식되었지만 가끔 소규모 부대가 인근 마을을 약탈하는 등 계속해서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었다. 앨프레드 대왕의 아들이자 웨식스의 왕 에아드웨아르드(Ēadweard, 대 에드워드)와 앨프레드 대왕의 딸이자 머시아의 여군주였던 애설플래드(Æthelflæd)는 데인인들에 대한 방어에서 공세로 전환해 911년부터 918년까지 머시아의 동부 지방과 이스트 앵글리아를 탈환했다.

918년 애설플래드가 죽자 웨식스가 머시아를 합병했다. 대 에드워드의 아들 애설스탠 노섬브리아를 침공해 항복을 받아냈고, 잔존한 데인족 세력들을 몰아냈다. 927년 웨식스 왕국은 잉글랜드 왕국(Engla rīce, Englaland[8])으로 국호를 변경했고, 브리튼 섬을 통치하는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6. 크누트 대왕의 정복

잉글랜드가 성립된 이후에도 데인인들이 있었던 덴마크의 침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9] 991년 맬둔(Maeldun, Maldon) 전투에서 패배한 잉글랜드는 덴마크의 조공국이 되었고, 1013년 덴마크의 스벤 1세 트베스케그에게 결국 정복당했다. 하지만 스벤 1세가 1014년 2월에 급사하자 추방당했던 애설레드 2세가 그 틈을 타 1015년 다시 잉글랜드의 왕위를 차지했다.

1016년 덴마크의 왕이자 스벤 1세의 아들인 크누트 대왕이 잉글랜드를 다시 정복했으나 잉글랜드는 당시 왕이었던 에아드문드 2세(Ēadmund Isernside, 에드먼드 2세)의 지휘 아래 맞서 싸웠다. 결국 크누트 대왕이 노섬브리아, 머시아, 동앵글리아를 지배하고 나머지를 에아드문드 2세가 통치하기로 했다. 에아드문드 2세의 사후 잉글랜드 전체는 크누트 대왕에게 귀속되었다. 정복 이후 크누트 대왕은 직접 웨식스를 통치했지만 나중에는 앵글로색슨 귀족인 고드윈(Godwin)을 백작으로 임명해 통치하도록 했다.

7. 멸망

고드윈과 그의 아들 하롤드( 해럴드 2세)는 거의 50년간 웨식스의 영지를 다스리면서 엄청난 부를 누렸으며 당시 왕인 에아드웨아르드( 참회왕 에드워드) 다음일 정도로 막강한 권력자였다. 1066년 에아드웨아르드 왕이 죽자 해럴드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르면서 웨식스 백작과 잉글랜드 왕이 통합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발생한 노르만 정복 이후에는 웨식스 백작 작위가 폐지되어 1066년을 기점으로 웨식스는 사라졌다.

다만 노르만 왕조의 마지막 왕 헨리 1세가 이 웨식스 왕조의 후손과 혼인을 하며 대를 이었기에 플랜태저넷 왕조부터는 이 웨식스 왕조의 피가 어느 정도 흘러 현대 영국 국왕까지 이어진다.[10]
[1] 1970년대에 사료를 바탕으로 재현한 깃발이다. [2] 애설스탠 시기부터 잉글랜드(엥글랄란드, Englaland)로 국호 변경 [3] 웨식스의 정확한 수도는 알 수 없다. [4] 퀴네길스 왕의 개종 한 번에 바로 그리스도교 국가가 된 건 아니었다. 첸왈흐나 캐드왈라 같은 몇몇 후대 왕들은 가톨릭을 처음부터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을 정도로, 웨식스에 기독교가 정착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체르디치의 진짜 후손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6] 현재의 데번 콘월이다. [7] ˈwiːjlɑːf [8] 고대 영어식 표기 [9] 다만 이때쯤 되면 덴마크도 게르만 이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상태였고, 기존의 민족 말살의 사생결단식 전쟁보다는 중세 왕위 계승 분쟁의 성격을 더 띄게 되었다. [10] 영국 왕실이 자신들의 계보도 제일 위에 앨프레드 대왕을 박은 것 역시도 이것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