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29 16:26:12

앵글로색슨족

파일:1152px-Valknut-Symbol-triquetra.svg.png 게르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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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종교4. 10세기 이후5. 여담6. 이들이 주류가 된 국가7. 앵글로색슨 문화권에 속한 비앵글로색슨 국가8. 관련 문서

1. 개요

서기 5세기경 브리튼 섬에 나타난 게르만족의 일파.

2. 상세

현재 영국인들의 조상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영국인은 잉글랜드인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스코틀랜드인, 웨일스인, 북아일랜드인 등도 포함하기 때문에 전체 영국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단순히 현대 영국인의 앵글로색슨의 혈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앵글로색슨 조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수 영국인의 조상이라는 것은 엄연히 사실이다. 영국인들의 하플로그룹은 게르만족의 하플로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브리튼인들이 살던 브리튼 섬을 로마의 라틴족들이 점령했고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앵글로색슨족의 지배하에 있다가 바이킹 크누트 대왕이 한때 지배하기도 했으며 노르만족이 지도층을 차지하게 된다.

앵글로색슨이라는 의미는 앵글족+색슨족의 혼혈이라는 의미이며, 보다 엄밀하게는 '앵글화된 색슨'이라는 의미대로 색슨족을 메인으로 두는 표현이다. 하지만 어째 앵글로가 색슨보다 앞에 와서인지, 본국 격인 잉글랜드의 잉글도 어두 앵글로가 변한 것이고, ' 영미권'은 영어로 색슨스피어가 아니라 앵글로스피어(Anglosphere)며, 캐나다+미국을 색슨아메리카가 아니라 앵글로아메리카라고 부른다. 또한 11세기부터 잉글랜드 지배계층 차지하는 노르만족도 앵글로-노르만이라고 구별지어 지칭하기도한다. 사실 중세에는 앵글족과 색슨족 외에도 켈트, 바이킹까지 가세해 대혼전 양상을 띠었는데, 앵글족의 독자적 세력은 중세 초에 일찌감치 역사에서 패망하고 색슨족은 앵글족 잔당과 주트족을 흡수해 브리튼 남부의 마지막 패자가 되었다. 앵글로색슨족에 동화되지 않은 남부 켈트계 브리튼인들은 웨일스, 콘월의 주민들이 되었다.

파일:external/pre02.deviantart.net/heptarchy_by_c00lfr0g-d6dcfp2.png

앵글로색슨 칠왕국
앵글족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Flag_of_Northumbria.svg.png
노섬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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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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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앵글리아
색슨족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9px-Coa_King_Edmund_Ironside.svg.png
웨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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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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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식스
주트족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9px-Coat_of_arms_of_Kent.svg.png
켄트


색슨족은 지금의 잉글랜드 남부,[1] 앵글족은 지금의 잉글랜드 북동부,[2] 주트족은 지금의 켄트 주에 주로 정착했다고 한다.

참고로 색슨족은 현재의 윌란 반도 일부 해안 & 독일 북서부 해안에서 발원했으나 동족 간 세력 다툼으로 쪼개진 후 밀려나 브리튼 섬에 밀려든 것이다.[3] 당시 영국은 로마군이 철수하여 각지에서 군벌이 할거하고 북쪽과 서쪽에서는 픽트족과 아일랜드인 약탈자들이 침략해 오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브리튼인 군벌들이 약탈자들을 막기 위해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헹기스트와 호르사 형제의 지도 아래 브리튼에 정착하였고, 이들이 나중에 이스트 앵글리아 머시아 왕국을 세운다. 이후 엘레 왕이 이끄는 또 다른 색슨족 집단이 남부에 상륙하여 서식스 왕국이 건국된다. 이를 앵글로색슨 칠왕국이라고 한다.[4] 그리고 남은 색슨족은 독일의 작센족이 되고 여기서 니더"작센"과 "작센"이란 명칭이 생겼다.

같은 종족인데 영어로는 '색슨족(Saxons)', 독일어로는 '작센족(Sachsens)'이라고 읽는다고 보면 된다.[5] 그들은 현재의 니더작센에서 작센까지 확장을 하면서 저지 독일어권을 형성하게 된다. 독일의 통합이 어려웠던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각 영방국가들의 세력이 하나로 통제하기 힘들 만큼 강하고 기풍도 사납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하기 어렵다.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을 모두 호령했던 근세 유럽의 제왕 카를 5세에게조차도 작센과 그 이웃뻘 헤센에서 들고 일어난 반란군은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앵글로색슨이 영국의 동쪽에서부터 원주민들을 대부분죽이거나 쫓아내 잉글랜드를 차지하고, 쫓겨난 켈트계 주민들이 웨일스 콘월 등에 정착했다는 식의 역사관이 오랫동안 지배적으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게 나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연구결과에 따르면 잉글랜드 주민의 혈통 중 앵글로색슨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1/3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근데 이걸 '앵글로색슨은 소수의 지배층이고 켈트족이 대다수다!'로 왜곡하면 곤란하다. 잉글랜드에서 켈트족 혈통은 이보다도 더 적고 영국인들 대다수는 혼혈인이다. 심지어 켈트족의 혈통이 그나마 보존됐다는 아일랜드마저 순수한 켈트족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실 영국이 어느 정도 국력을 갖추기 전에는 지리적 이점[6]에도 불구하고 호전적이며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는 족속[7]들에게 자주 침공을 당하여 그렇다.[8] 더구나 노르만인들이 본거지였던 프랑스 영토에 있던 사람들이나 외국인 용병들을 아예 자신의 부하로 삼아 데려오기도 했었고 심지어 1680~90년대에도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영국에 기습 상륙하여 왕이 된 후 네덜란드와 동군연합을 이루기도 해서 당시에도 새로운 혈통들이 수혈되었다.[9] 즉, 잉글랜드 내에서 먼 고대의 원주민, 켈트족, 라틴족, 앵글로색슨족, 데인족, 주트족, 노르만족 등 간에 이뤄진 광범위한 혼혈의 결과가 오늘날의 토착 잉글랜드인의 인종적 구성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세간의 인식과 달리 현대 잉글랜드인에게 앵글로색슨 혈통의 비중은 생각보다 압도적이지 않다는 것.[10]

3. 종교

본래 게르만족의 일파이니만큼, 앵글로색슨족들은 오딘 토르 티르 같은 게르만 신들을 섬기는 게르만 다신교를 믿어왔다. 다만 신들의 이름이 스칸디나비아에 비해 약간 다를 뿐인데, 오딘과 토르와 티르를 앵글로색슨족들은 워든(Woden)과 투노르(Thunor)와 티우(Tiw)라고 다르게 불렀다.

그밖에도 영국으로 이주한 앵글로색슨족들은 세악스네아트(Seaxneat), 혹은 삭스노트(Saxnot)라 불리는 신을 숭배했다. 이 신은 북유럽 신화를 기록한 원전인 에다에 그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앵글로색슨족들만의 고유한 신으로 여겨진다. 세악스네아트는 색슨족의 수호신이자 색슨족 왕가의 조상신으로 추정되는데, 그 중에서 에식스 왕조는 자신들이 세악스네아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에식스 왕조는 오파(Offa) 왕의 6대 조상이 세악스네아트이며, 그 위의 7대 조상은 워든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일설에 의하면 세악스네아트는 원래 색슨족들의 최고신이었다가, 훗날 워든의 아들로 그 위치가 낮아졌다고 한다.

색슨족들은 봄과 생명과 출산을 다스리는 두 명의 여신인 흐레타(Hretha)와 에오스트레(Eostre)도 믿었는데, 오늘날 부활절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이스터(Easter)도 색슨족들의 여신인 ‘에오스트레’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서기 7세기 이후 색슨족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나서도 에오스트레 신앙은 부활절 축제를 알리는 이스터(Easter)로 바뀌어 계속 그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이 밖에도 색슨족들은 이르민(Irmin)라 불리는 전쟁의 신을 숭배했다. 이르민은 색슨족이 사용한 고대 영어에서 강력함, 완벽함이란 뜻을 담은 말이었다. 브리튼으로 이주한 색슨족들은 삭스노트를 수호신으로 숭배한 반면, 독일 본토에 남아있었던 색슨족(작센족)들은 이 이르민을 최고신으로 섬겼다. 일설에 의하면 이르민은 고대 게르만족들의 최고신이었던 티르(티우)와 같은 신이라고도 한다.

다른 고대 사회에서처럼 앵글로-색슨족의 왕들도 반신(半神)적인 존재인 신들의 자손으로 여겨졌다. 대부분의 왕들은 워든이나 프레이(풍요의 신) 같은 게르만족 신들로부터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주장을 했으며, 훗날 8세기에 활동한 알프레드 대왕의 아내도 자신의 조상이 워든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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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인식과는 달리, 앵글로색슨족들은 기독교로 쉽게 개종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전통 신앙인 게르만 다신교에 꽤나 오랫동안 집착했다. 그들이 서기 5세기 초반부터 브리타니아로 이주하여 토착민인 켈트족들을 정복한 이후로 약 150년 동안 브리타니아의 초기 기독교는 거의 죽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597년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보낸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장과 다른 선교사들이 켄트의 타넷 섬에 상륙하면서 기독교가 다시 전파되기 시작했다.

앵글로색슨 7왕국들 중의 하나인 노섬브리아의 에드윈 왕(Edwin: 586~633년)은 폴리누스 주교가 기도를 한 덕분에 자신을 죽이려던 암살자의 칼을 막아내고, 왕비가 무사히 딸을 낳았다고 생각해서 전통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에드윈 왕은 게르만 다신교를 믿었던 머시아의 펜다(Penda: ?~655년)에게 패배하여 633년 살해당했고, 노섬브리아 왕국은 기독교를 버리고 게르만 다신교로 돌아간 왕들에 의해 지배당하여, 한동안 기독교 전파는 큰 지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57년 노섬브리아 왕실은 힐다의 수도원에서 열린 종교회의를 통해, 결국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한 앵글로-색슨족의 믿음은 그리 굳건하지 못했으며, 그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주 기독교를 버리고 전통적인 게르만 다신교로 돌아갔다. 린디스판 교회의 커즈버트 주교는 신이 내린 대재앙이 돌자, 자신의 교구민들 중 많은 수가 “나쁜 행동으로 기독교 신앙을 더럽히고, 우상을 숭배하며 주문이나 부적으로 위기를 벗어나려 하였다.”고 한탄했다. 커즈버트 주교가 언급한 대재앙은 전염병을 가리키는 듯한데, 전염병이 돌자 앵글로-색슨족 주민들이 기독교를 버리고 ‘우상’이라고 표현된 옛 신들을 섬기며, 주문과 부적을 썼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캔터베리의 테오도르 대주교는 669년 색슨족들이 게르만 신들을 섬기는 사원을 다시 세우는 장면을 보았으며, 리폰의 월프리드 주교를 제외하면 자신의 교구에서 주교가 전혀 없었다고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동앵글리아의 레드왈드 왕은 켄트 왕국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독교 교리를 배웠으나, 고향에 돌아오자 게르만 다신교를 믿던 왕비와 사제들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기묘한 절충안을 고안해 냈는데, 예수와 게르만 신들을 함께 숭배했던 것이다. 물론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성직자들은 이조차도 사악한 우상 숭배라고 비난했다.

이렇게 전통 신앙과 새로운 신앙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앵글로-색슨족들은 747년 클로베쇼 종교회의에서 잉글랜드의 모든 백성들은 옛 게르만 신들을 숭배하거나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하는 선언이 나온 후에야 비로소 모두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되었다. 색슨족이 브리튼에 최초로 상륙한 지 300년이 지나서야 그들은 전통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던 것이다.

하지만 수천년 동안 섬겨오던 신들에 대한 기억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웨섹스의 알프레드(Alfred) 대왕은 침략해온 바이킹들과 평화 협상을 맺으면서 천둥의 신 토르(투노르)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다. 그런가 하면 잉글랜드의 변방인 맨 섬에서는 무려 11세기에 가서도 <에다>에서 말한 라그나로크의 내용을 묘사한 비석이 세워지기도 했다. 아울러 현재 일주일 중 화, 수, 목, 금요일의 영어 단어들은 모두 앵글로-색슨족을 포함한 고대 게르만족 신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화요일인 튜즈데이는 하늘과 맹세의 신인 티우에게, 수요일인 웬즈데이는 워든에게, 목요일인 서즈데이는 투노르에게, 금요일인 프라이데이는 풍요의 신인 프레이에게 각각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 신들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그런가 하면 독일 본토에 살던 색슨족들인 작센족들은 잉글랜드로 이주한 동족들보다 더 전통 신앙에 집착하였고, 그와 반비례하여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도 심했다. 잉글랜드의 학자인 비드가 쓴 책 <영국민의 교회사>에 의하면 ‘헤아왈드’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잉글랜드인 선교사가 작센 지역으로 가서 기독교 선교를 하자, 작센족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신들을 버리게 하고 기독교로 개종시킬 것을 우려하여 선교사들을 칼로 찌르거나 온갖 고문을 하고 나서 강물에 던져 죽였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작센족들은 브리튼의 색슨족보다 약 100년 동안이나 전통 신앙을 더욱 오래 보존하였다.[11]

4. 10세기 이후

파일:external/www.medievalchronicles.com/A.D-500-1000-Anglo-Saxons-Costumes-All-Nations.jpg

어쨌거나 대륙에서 브리튼 섬으로 흘러든 앵글로색슨족은 10~11세기경이면 순조로이 잉글랜드 통합을 완료하고 독자적인 왕조를 개창한다.[12] 그러나 이 무렵부터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이 남하해오면서 사실상 덴마크의 간섭을 받는 속령이 되었고, 이후 바이킹 자체적인 내분 및 '참회왕' 이라 불린 앵글로색슨 출신 에드워드의 후계자 없는 사망으로 대혼란기에 빠진다. 이를 틈타 정복왕 윌리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에드워드의 뒤를 이은 앵글로색슨족의 마지막 왕 해럴드 2세 끔살시키고 새 왕조를 개창한다.

그러나 노르만족은 앵글로색슨족에 동화되었고 이들은 중세 이후 대륙 세력이 근대까지 종교와 영토 싸움 등으로 치고받는 사이 섬 안에서 독자세력화해 민족주의를 태동시켰고, 이에 따라 앵글로색슨족도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첫 민족'으로 규정되었다.[13] 이들 중 일부가 섬 밖으로 나가 미국 캐나다 건국의 핵심 세력이 되었음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이 두 국가는 ' 앵글로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동질적 그룹에 묶이게 되었다. 또한 영국 밖으로 나간 다른 무리의 앵글로색슨족 그룹들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원주민을 몰아내거나 혹은 원주민들과 상생하여 개척함으로써, 그들의 본거지인 브리튼 섬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14] 거대한 대륙과 섬들을 앵글로색슨족의 새로운 본거지로 삼게됐다.

어쨌거나 19세기에 세계를 제패하고 20세기에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대영제국과 21세기인 현재 세계 제1의 초강대국 미국의 가장 주도적 세력이며, 이들의 언어인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자리잡아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이걸 배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서쪽으로는 카리브 해의 섬들부터 동쪽으로는 한반도 남반부에 이르기까지, 북쪽으로는 노르웨이로부터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희망봉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앵글로색슨족의 문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고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등장한 여러 부족 중 가장 성공한 세력이자 최후의 승자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5. 여담

여담으로 켈트족과 라이벌 기믹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아일랜드인에게는 과거 자신들을 식민지배하고 학살한 원수들. 지금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경기는 각종 스포츠에서 제일 가는 앙숙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앵글로색슨족과 켈트족이 서로 섞인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특히 이들이 이민으로 건너간 미국이 대표적. 이민 초기엔 먼저 자리잡은 브리튼 출신자들이 아이리시들을 차별하고 생활공간도 나눠놓는 등 선을 그어놓으려 애를 썼고, 지금도 미국 상류층의 조건으로 WASP(미국)를 따지기도 하는 등 알게 모르게 선을 갈라놓고 있다. 이 두꺼운 차별의 벽을 깨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 존 F. 케네디지만 알다시피...

당연하지만 현재 영국의 국민적 영웅인 아서 왕은 원래 앵글로색슨의 적대자였다. 더불어 아서 왕은 프랑스의 영웅이기도 한데, 이 덕에 프랑스 구전설화가의 오너캐인 랜슬롯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같은 골족 국가로 여겨지는 스코틀랜드+프랑스가 동맹이기도 했고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켈트 국가로 여기는 면이 없진 않아서... 여하튼 이러한 판본에서는 켈트 영웅이 사악한 앵글로색슨을 비롯한 게르만 침략자들을 아서 왕의 기사들이 무찌르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물론 현대 영국인들은 켈트족+라틴족+앵글로색슨족+데인족(덴마크+노르웨이)+노르만(프랑스화된 바이킹) 계열 핏줄이 마구 뒤섞여 구분조차 불가능하다. 지배층은 바뀌어도 거기 살던 사람들을 다 죽이고 민족 교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서 왕 시기에도 이미 영국은 켈트족, 라틴족이 혼혈로 섞여 살 때고 아서 왕은 그들의 영웅이었다. 당연히 현대 영국인들의 조상이기도 하므로 영웅으로 여기는 게 이상할 건 없다.[15] 사실 영국은 로마 압제자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킨 이케니족의 부디카도 영웅으로 여기기도 하니..[16]

6. 이들이 주류가 된 국가

여담으로 5개의 눈 항목도 참고하면 좋다.

7. 앵글로색슨 문화권에 속한 비앵글로색슨 국가

8. 관련 문서


[1] 에식스, 서식스, 웨식스 등의 지명으로 남아있다. [2] 이스트 앵글리아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3] 앵글로족이라는 부족 이름은 윌란반도의 앙겔른(Angeln)에서 기원한다. 앵글족은 윌란반도의 남슐레스비히에서 발원했다. [4] 얼음과 불의 노래 칠왕국(얼음과 불의 노래)이 앵글로색슨 7왕국을 모티프로 하였고 안달족을 앵글로색슨족에서 따왔다. [5] 독일 작센 지방을 영어로 색소니(Saxony)라고 하고, 니더작센 주를 영어로 로어 색소니(Lower Saxony)라고 한다. [6] 더구나 대륙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섬이라는 이점도 일본에 비하면 떨어진 거리와 항구들의 배치가 훨씬 접근성이 좋아서 침공당하기 쉬웠다. [7] 수백 명의 노르만 기사들이 수천 명의 앵글로색슨 영주들을 학살하고 영토와 사람을 취하기도 했다. [8] 그래서 원래부터 살던 원주민들은 거의 궤멸당했고 역시 빨리 들어온 편에 속한 켈트족들도 많이 사라졌다. [9] 즉, 외국에서 높으신 분들이 영국으로 이주할 때 사람을 포함한 자신의 기반을 많이 가져왔다. 영국은 처음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으니 상대적으로도 적지 않은 숫자의 다른 사람들이 섞이게 되었다. [10] 이러한 혼혈의 결과가 영어에도 영향을 크게 미쳐서 아주 많았던 영어 관사들은 a, an, the를 제외하고 다 제거되었으며 명사를 복수형으로 만들 때 원래는 명사마다 변하던 것을 s나 es 붙이는 걸로 통일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미래형 역시 본래는 복잡한 동사 변화가 있었으나 will이나 shall을 앞에다 붙이는 걸로 쉽게 만들었다. 심지어 과거형도 복잡하게 변화했던 것을 ed를 붙이는 것으로 통일했다. [11]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 129~143쪽 [12] 귀네드, 디버드, 궨트 등 웨일즈 지역의 브리튼 왕국들과 둠노니아( 콘월), 스트래스클라이드(지금의 스코틀랜드 서부에 있던 브리튼인 왕국) 정도를 제외하면 브리튼인 왕국들은 7세기까지 대부분 앵글로색슨족에게 정복당한다. 콘월은 9세기에 완전히 정복되었고, 웨일즈와 스트래스클라이드는 각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국에 정복당하였다. [13] 그래서 유전적으로는 앵글로색슨이 아니어도 앵글로색슨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귀족들 같은 경우야 옛날 이민족 조상들의 성이나 이름을 간직하거나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둥, 민족 정체성에 그렇게까지 휩쓸리지 않는 모습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앵글로색슨에 묻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14] 브리튼 섬의 정확한 지구 대칭점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 뉴질랜드라고 한다. [15] 당연하지만 여기도 아서 왕하고 적대했던 주제에 영웅으로 여긴다고 까는 사람들은 있다.특히 앵글로색슨이 아니면 [16] 세계사를 살피면 이런 게 영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17] 특히 잉글랜드 [18] 설명이 필요없는 앵글로색슨족의 대 브리튼섬 밖의 첫 번째 식민지라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800년이 넘게 앵글로색슨족의 영향을 받았다. 영국계 개신교도가 인구의 절반 넘게를 차지하는 북아일랜드 6개 주를 제외한 현대 아일랜드는 혈연적으로 아일랜드계 켈트족이 주류다. 하지만 1167년 이후 1930년대까지 잉글랜드 그리고 연합 왕국의 침공과 지배를 받으며 토착 문화 중 상당수가 소실됐다. 대표적으로 현대 아일랜드의 아일랜드 켈트족 토착어인 아일랜드어 사용률은 5% 내외이며, 절대다수의 아일랜드 국민들은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한다. 그래도 현대까지 보존된 아일랜드 문화와 기록도 상당하다. 또한 아일랜드인들과 앵글로색슨권 각국으로 넘어간 아일랜드계 이주자들의 문화적 영향력도 상당하다. 아일랜드가 독립한 현대에도 영국, 미국, 영연방 국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로 앵글로색슨 문화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19]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이미 원주민들의 씨가 거의 말라버려, 오늘날에는 원주민 문화는 흔적이 미미하다. 그 대신 영국인들이 데려온 아프리카계와, 영국인과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의 혼혈인 크리올들이 주류를 잡았다. 이들의 경우 세대가 갈수록 영어 구사, 개신교 신앙, 영국식 생활 방식 등으로 영국 문화에 동화되었다. 자메이카 독립 이후 앵글로색슨계 문화를 기반으로 주민들 사이에 남아있던 아프리카계 문화와 주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교류의 영향으로 독특한 문화적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레게, 스킨헤드 등 영국 문화를 바탕으로 흑인 문화,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섞은 현대 자메이카 문화가 영국과 미국, 영연방 각국의 현대 문화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캐나다, 미국, 영국령 카리브 속령들과 함께 앵글로 아메리카의 일원으로 꼽힌다. [20] 1994년 아파르트 헤이트 철폐 이전까지 남아공의 주도 세력은 네덜란드계인 보어인들과 영국계 앵글로색슨족이었고, 아파르트 헤이트 철폐 이후로도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이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인구나 정치면에서 주도권은 흑인인 남아공 원주민들과 원주민, 인도계, 백인의 피가 섞인 컬러드들에게 있기 때문에 인종적으로 앵글로색슨족이 주류인 국가라고 보기는 힘들다. 영어가 남아공의 공용어 중 하나이기는 하나, 남아공 내에서 영어를 제1모국어로 하는 이는 전체의 9% 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영어 구사 가능자는 31%로 상대적으로 비율이 높은 편이며, 과거로부터 이어진 영국-영연방과의 인종적, 문화적, 역사적 연결 고리로 인해 Anglosphere로 묶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