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0:21:03

글라디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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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여담4. 매체에서

1. 개요

글라디우스는 로마군의 대표적인 한손검이다. 로마군의 표준 제식 무장이자 주력 무기였다. 로마군의 주력 무장은 시대에 따라 달랐지만, 대중에 가장 잘 알려진 무기는 언제나 로마군과 함께한 글라디우스이다. 글라디우스라는 말은 라틴어로 '검'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이다. 원래는 글라디우스 히스파니엔시스(Gladius Hispaniensis), 즉 '스페인제 검'이란 명칭으로 불렸다.

2. 특징

기원은 산이 많은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이 사용하던 곧은 군용 양날검이었으며, 그중에서도 톨레도산 강철 검이 유명하다.

원래 로마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반도 철광석이 풍부한 곳이 아니었다. 로마 초기, 이탈리아 반도 북부 갈리아치살피나(알프스 산맥 남쪽 및 동쪽 지역)와 투스카니, 엘바 섬과 사르디니아 섬에서 철광석을 채취했었다.

포에니 전쟁 전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카르타고에도, 이 검을 사용한 이베리아 용병들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역시 이탈리아의 산악지대에 걸쳐 웅거한 에트루리아 삼니움에게 전래되고, 다시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은 로마에도 이 칼이 병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포에니 전쟁 승리 이후에는 갈리아트란살피나(프랑스 남부 지역)와 이베리아 반도로 뻗어나갔는데 모두 철광석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톨레도산 강철과 엘바산 강철 이외에 유명한 강철의 경우, '노리쿰(Noricum) 지역(현재의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에서 '노릭 강철'이라는 의미인 '칼립스 노리쿠스' 등의 강철이 유명해졌다.

본래 로마는 귀족 중심의 기병대를 주력으로, 그리스의 군제를 본받은 단창과 방패를 이용한 밀집 대형으로 군을 편제했으나,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한 에트루리아와 삼니움 부족과의 교전에서 고전하면서 그들과 같은 투창과 칼, 방패를 무장한 중장보병을 주력으로 바꾸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로마 군단병들의 주무기로 사용되었다. 이후 2세기 시기부터는 군사학의 변화로 검의 형상은 유지하되, 점점 길이가 길어지며 후에는 켈트 장검의 영향을 받은 스파타로 교체되었다. 4세기경에는 실전용 도검으로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고대 로마 초기부터 후기까지 사용된 로마군의 표준 제식 무장이었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형태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길이가 짧고 무게가 가볍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대략적으로, 평균적인 길이는 70㎝에 무게는 1㎏ 미만이었다. 검날은 길이에 비해 넓은 편이었고 형태는 특별한 변화 없이 곧게 뻗어 있었다. 검의 가드 부분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손잡이 그립은 쥐기 쉽도록 손 모양으로 파여 있고, 끝의 폼멜(무게추)은 타원형 공 모양이다.

실전용 도검인데도 길이가 이렇게 짧았던 건 당시 사람들의 신체적, 기술적 한계와 군사적 문제가 겹쳤기 때문이다. 우선, 당시의 제련 기술로는 튼튼하고 긴 칼을 만들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장장이들이 길이를 짧게 하고 칼날 너비를 넓혀서 검날의 내구도를 높였다.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평균적인 체구도 현대인들보다 작았기 때문에 짧은 칼이 다루기 편했을 것이다.[1]

그리고 전술적인 이유도 있었다. 글라디우스는 개인용 결투를 위한 무기가 아니라 로마군의 표준 제식 무장이었다.[2] 즉, 일대일 전투보다는 대군의 집단전을 상정한 용도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로마 군단병은 주로 흉갑을 입고 한 손에는 큰 방패인 스쿠툼을 든 채 촘촘한 방진을 짜서 싸웠다. 그래서 한 손으로 사용하기 힘든 무장은 주력으로 쓰기 힘들었다. 밀집대형에서는 날이 쓸데없이 길면 걸리적 거리기만 했다. 결국 글라디우스의 길이와 형태는 밀집대형에서 찌르기를 펼치기에 최적으로 발달한 결과였다. 이 시대의 "장검"이었던 스파타도 중세시대의 츠바이헨더 같은 무식하게 긴 검이 아니라 바이킹 소드 정도 길이였다. 그리고 글라디우스는 오른쪽 허리에 차고 오른손으로 뽑아서 사용했는데 - 칼날의 길이가 짧아서 의외로 잘 뽑히며, 덕분에 왼쪽의 대형 방패로 밀어붙이기할 때 방해가 되지도 않는다.

길이가 짧았음에도 검의 강도나 위력은 결코 낮지 않았던 듯하다. 로마군과 마케도니아군의 격돌에 대한 리비우스의 묘사에 따르면 마케도니아군의 시신들이 "장비들은 모두 찢겨져나갔고, 어깨와 머리는 완전히 절단되어 몸에서 분리되었으며, 내장은 산산조각났다."라고 한다. 이를 보면 당시에는 개인 무장으로서 꽤나 위력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3] 괜히 로마군에 채용된 것이 아니었다.

베고 찌르는 용도로 모두 사용되었지만, 주된 용법은 역시 찌르기였다. 플라디우스 베게티우스가 저술한 ' 군사학 논고'에도 로마군의 검술 훈련은 찌르기 위주였고, 로마군의 베테랑 병사들은 검의 날로 싸우는 사람을 아예 조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베는 동작은 쓸데없이 크고 공격이 적의 방어구에 막힐 가능성이 높지만, 찌르기는 공격이 상대에게 2인치(약 5㎝)만 들어가도 치명적이고 찌를 때 발생하는 빈틈도 매우 적은 효율적인 공격이라고 묘사되어 있다.[출처] 실제로 검술에서 베기술은 의외로 숙련된 검사만이 할 수 있지만, 찌르기는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으며, 진형을 이루고 좁은 공간에서 싸울 때도 위력이 유지된다. 대규모 징집병을 운용하고 방진을 짜서 싸운 로마군에는 당연히 찌르기 위주의 검술이 더 적합했던 것이다. 글라디우스는 고대 그리스 지역 국가들의 주력군인 중장보병대의 주무기인 단창을 활용한 백병전을 더욱 더 밀착한 형태로 벌이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면 적절하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글라디우스가 곧게 찌르는 공격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찌르기를 할 때는 'Handshake grip'이라 불리는 자세로 검을 비스듬히 앞을 향하도록 쥐는 것이 일반적이다. 망치를 쥐듯 검을 잡은 상태에서 검을 앞쪽으로 기울이면 그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지와 손목에 힘이 가해지고, 이 상태에서 찌르기를 했다간 안 그래도 긴장하고 있는 손목 근육에 큰 충격이 가해지면서 심각한 부상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글라디우스는 사용자의 손에 딱 맞게 만들어져 자세를 유연하게 변경하기 어렵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점이다. 이 때문에 글라디우스로 찌르기를 할 때는 앞으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망치를 쥐듯 단단히 쥐고 적의 복부를 목표로 삼아[5] 아래에서 위로, 혹은 역수로 쥐고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듯 찔렀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약간 사선으로 찔러들어가는 공격법은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술만의 특징이 아니라 한 손 검으로 찌르기를 하는 다른 검들에게도 종종 사용되는데, 가령 중국무술에서도 검으로 찌르기를 할 때에는 위에서 약간 아래로 찔러들어가는, 혹은 아래에서 약간 위로 찔러들어가는 식으로 구사한다. 이렇게 사선을 찔러 들어가야 팔의 부상도 줄이고, 힘을 칼날로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용이하다.

이처럼 베기보다는 찌르는 용도이기에 군인 처형 시 사용될 때에도 휘둘러 참수[6]하지 않고, 목과 쇄골 사이를 위에서 아래로 깊게 내려 찌르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로마의 처형은 십자가형 등 여러모로 고통이 오래 가는 방법이 많았는데 이 방식은 차라리 처형이 빨리 진행되고, 덜 고통스러우며, 다른 방식보다 겉으로 보기에 신체에 가해지는 상흔이 적기에 전반적으로 선호되는 명예로운 처형방식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계급이 낮거나 중죄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으며 보통의 경우에는 군인이나 덕망이 높은 시민들에게 허락된 방식이었다. 해당 처형 방법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와 HBO 드라마 로마 시즌2에서 고증되었다.

글라디우스가 이만큼의 위력을 보인 또 다른 이유는 이 무기가 사실상 유럽 최초의 강철 무기였기 때문. 이전까지는 그저 철을 두들기고 갈아 날카로운 형태로 만드는 데 그쳤지만, 글라디우스에는 넓게 펴낸 철을 여러번 접어 ' 접쇠 공정'을 통해 강도를 높이는 과정이 추가되었다. 이른바 ' 접쇠 공정'이 일본도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 오히려 몇 세기나 더 빨랐다. 이 제강기법은 나중에 북쪽으로 퍼져 나가 여러 변형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로마군단이 사용한 강철검은 예로부터 품질 좋기로 이름난 이스파니아산 철 등을 사용했으니 검의 위력이 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력을 자랑한 글라디우스는 계속 길어지다가 스파다로 진화 혹은 대체된다. 일반적 오해와는 달리 글라디우스를 쓰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스파다로 갈아탄 게 아니라, 글라디우스 자체가 계속 길어졌고 검신이 게르만족이 애용한 검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때까지 길어진 글라디우스와 게르만족의 긴 검[7]이 서로 혼용되다 어느 시기 이후엔 스파다만 쓰게 된 것이다. 글라디우스와 스쿠툼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1. 빡센 훈련을 제대로 받는 로마군 밀집 진형 + 2. 극소수 외엔 갑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는 상대편 진형(=게르만족, 갈리아인) 혹은 글라디우스보다도 짧은 칼을 근접전에서 쓰는 창병(=디아도코이 시대 그리스인 혹은 파르티아인) + 3. 진법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진형이거나(=게르만족, 갈리아인) 특정 상황에서만 진형을 이루는 군대(=디아도코이 그리스인 혹은 파르티아인) 이 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벌써 2세기 후반만 되면 그중 2, 3 조건이 무너져 있는 상황이었다.

즉 게르만족의 경제력과 지적 역량이 상승하면서 로마식으로 진형 훈련하고 갑옷을 입는 장병의 비율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게르만족은 비밀 병기를 들고 나왔으니 그것이 바로 중세 기병 또한 훗날 애용하게 되는 쐐기꼴 대형이었다. 한편 파르티아군은 로마 입장에선 황당하게도 아케메네스조 때 판도 회복을 부르짖는[8] 사산조 페르시아군으로 교체되었고, 파르티아 시대의 봉건제를 어느 정도 극복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파르티아 때의 몇 배에 달하는 동원력에 그간 로마군 보병에게 여러 차례 쓴맛을 본 전훈을 반영하여 로마군을 흉내내면서 보병 전력까지 어느 정도 신경쓰게 되었다.

로마군은 더 이상 종전의 전통적인 밀집 대형 사각방패-짧은 검 전술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음을 통감했고, 때문에 이후의 로마군은 야만족처럼 똑같이 쐐기꼴 대형을 취하거나, 매복처에서 은신했다가 약탈처에서 복귀해오는 게르만족을 역공하는 역 게릴라 전도 자주 치르거나, 역시 똑같이 사산조 페르시아 기병처럼 기병으로 맞돌격도 가끔은 걸어줘야 했다.[9] 그러니 검신은 길어져야 했으며 방패 또한 더 이상 시야를 제한하는 사각형을 고수할 이유가 없어졌다. 즉 짧은 글라디우스를 버려서 로마군이 약해졌거나 갑자기 한꺼번에 글라디우스가 군사 장비에서 퇴출되어 '야만화'된 게 아니란 얘기.

그리스-로마 문명을 고평가하고, 이후 로마가 쇠퇴해가던 중세를 암흑시대라며 미친 듯이 까던 근대 유럽에서는 고대 로마의 풍습이나 문물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종종 있었는데[10][11] 글라디우스도 예외가 아니라 프랑스에서는 1831년 Artillery sword라면서 글라디우스 판박이를 만든 적이 있다. 그리고 칼날의 디자인을 본뜬 1966년작 거버 Mark II 파이팅 나이프도 있다. 실전용 도검으로서는 은근히 명줄이 긴 셈.

3. 여담

로마 시대에는 글라디우스가 남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였다. 사실 남성의 성기를 칼이나 포신 등에 비유하는 것이 로마 시대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말이다. 참고로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Vagina는 라틴어 칼집이란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일본어에는 L(ㄹ받침) 발음이 따로 없어서[12] ' 그라디우스(グラディウス)'라고 읽는데, 동명의 게임 제목이 아마 여기서 유래한 듯. 이쪽은 Gladius가 아니라 Gradius다.

인터넷에서는 약 2010년경부터 이 무기로 인한 사망자 수가 무려 1억 명으로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무기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자료가 떠돌아다니는데, 그냥 헛소문에 불과하다. 기네스북에는 그런 항목이 존재하지도 않고, 윗 항목만 봐도 알겠지만 글라디우스가 로마군에서 쓰인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으며, 1억 명이면 당시 유럽 인구 전체보다 많은 숫자고[13],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다.

홍수환은 자신의 복싱 철학을 이야기할 때 "로마의 칼은 짧았지만 먼저 움직여서 세계를 제패했다."라는 비유를 들기를 좋아했다.

4. 매체에서

명실상부 로마군의 상징으로, 로마 시대를 묘사하는 매체에선 반드시 등장한다. 제식 검이 스파타로 대체된 로마 제국 후반기를 배경으로 해도 이걸 들고 나오는 경우가 잦으며, 심지어 동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에도 동상이나 그림으로 간접 등장한다.

이는 로마군은 무려 기원전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존재했던 집단으로서[14] 세월에 따라 수많은 모습으로 변했지만서도, 로리카 세그멘타타를 입고 글라디우스를 휘두를 때 가장 빛났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때 모습 그대로 대중들에 각인된 것이 아직까지 남았기 때문.

글라디우스란 이름 자체도 꽤 멋있는 로마풍의 단어라서[15], 여러 작품의 제목이나 캐릭터의 이름으로 자주 차용된다. 원피스의 글라디우스나 코나미의 그라디우스 시리즈[16]가 대표적이다.

아서왕 로만 브리튼 시대 로마 장군이었을 거라는 역사적 견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킹 아더에서는 엑스칼리버가 글라디우스 형상으로 나온다.

로마 시대 배경에 판타지적 요소를 곁들인 라이즈: 선 오브 롬에선 스쿠툼과 함께 주인공의 무장으로 대활약한다. 게르만 전사부터 검투사, 네로 황제의 타락한 근위대까지 모두 이 검에 토막나서 엘리시온으로 떠난다.

포 아너의 기사 진영 중, 센추리언의 주무장이다.[17] 롱소드 클레이모어 노다치 같은 장검들이 판치는 세계관에서 1미터가 안 되는 물건으로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검술보다는 격투술에 가깝게 싸우는 모습이 되었는데, 이게 꽤 호쾌해 보여서 성능 대비 인기가 좋다.

무사만리행의 등장인물, 아비도스가 생의 마지막 결투에서 선택한 무기다. 상대가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 맹독을 발라 사용했다.

파일:울트라마린 글라디우스.jpg
4만년 후의 미래인 Warhammer 40k의 세계관에선 놀랍게도 현역이다. 물론 파워 웨폰의 일종으로 내부는 달라졌지만, 전체적인 형태가 기원전에서 전혀 바뀌지 않았다. 특히 로마군이 컨셉인 울트라마린에겐 부무장이자, 제식용 도검으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게임 도미네이션즈에선 유물로 등장한다.

디아블로 2에선 숏소드의 상위 등급 무기로 나온다.

Leviathan의 주인공이자 Limbus Company의 등장인물인 베르길리우스의 주무기이기도 하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에서도 그라디우스라는 이름으로 무기로 나오는데, 어째서인지 여기서는 한손검이 아니라 단검으로 분류되었다.

[1]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팔카타, 이집트의 코피스, 페르시아의 검도 로마의 글라디우스처럼 검이 짦다. [2] 물론, 워낙에 로마에서 흔한 무기이다보니 당연히 결투나 호신용으로도 쓰이기는 했다. [3] 실제로 유물과 그림을 통해 복원한 글라디우스를 보면 검날에 무게감이 있는 꽤나 묵직한 검이며, 이런 검을 강하게 내려치면 당연히 어깨와 목 정도는 금세 너덜너덜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글라디우스를 휘둘러 적을 참수하거나 팔다리를 떨궜다는 묘사는 꽤 자주 기록에 등장한다. 또한 장기인 찌르기로는 당대 존재하는 어떤 검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특히 날의 폭이 매우 넓고 전술상 상대에게 깊숙히 찔러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 검을 조금만 비틀어도 상대방의 내부 장기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출처] 플라이비아우스 베게티우스 저, 정토옹 역 '군사학 논고' 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37p [5] 이는 상당히 효율적인 살상 방법이다. 상술했들 전투 시에 팔다리를 공격하더라도 바로 무력화되지 않지만 장기를 공격하면 훨씬 빠르게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6] 참수 시에는 도끼를 이용하였다. [7] 이것조차도 게르만족이 글라디우스를 따라 만들다보니 생긴 산물이었다. 게르만족 무기가 스파다고 라틴 로마군 무기는 글라디우스란 이분법이 있는 게 아니다. [8] 즉, 이집트, 시리아, 발칸 반도, 아나톨리아까지 다 내놓으라는 요구였다. [9] 이 전술은 로마군이 게르만족 및 사산조의 전술을 분석한 뒤 채택했던 것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동로마 제국군이 훗날 압도적인 규모와 자금력을 자랑하는 이슬람 제국군을 상대할 때 크게 도움이 된다. [10] 과거 그리스 독립 전쟁 시절에, 로맨티시즘에 심취해 여기 참전한 유럽 쪽 지식인들이 그리스 저항세력에게 "왜 그리스 시민군의 전통을 살려 방진을 짜지 않고 게릴라전을 하느냐?!"라고 해서 비웃음을 산 일이 있는데, 애당초 이 시기는 총기가 주력인 시대로 고대 그리스 시기와는 군사기술력이 하늘과 땅 차이인 데다, 전력상 열세인 독립군에게 방진을 짜서 정규전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11] 단 이것은 19세기 전반의 일로 이 시절에는 유럽 국가들도 전열방진을 이루어서 싸우는 것이 대세였기 때문에 자신들이 고국에서 하던 것과 똑같이 하려 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더 사실과 부합할 것이다. 좀 심각한 경우로 슬슬 정신차릴 때가 되었음직한 20세기 초 스페인 내전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정신 나간 지식인들이 있었다. [12] 그나마 장음 ー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13] 로마 제국 전체의 인구 중 유럽 지역에 해당하는 인구는 약 3500만 명이었다고 한다. 로마 전체의 인구와 함께 로마와 함께 문명화된 지역이었던 파르티아나 사산조의 인구까지 합쳐도 7~8천만 수준이다. [14] 한국사로 치면 단군 조선시절부터 조선 왕조 성종 시대까지 존재했단 얘기다. [15] 물론 뜻은 그냥 검이지만. [16] 글라디우스의 일본식 발음. [17] 기사 진영에 있기에는 시대가 맞지 않은 것 같지만, 기사들의 공동체 이전에 존재했던 어느 고대 제국의 직계 후예라는 설정 덕분에 위화감은 적은 편이다. 후에 추가되는 다른 클래스들과는 달리 싱글에서 언급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