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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노네 | Domnonée(
프랑스어) 돔노니아 | Domnonia( 라틴어) 둠노네아 | Domnonea( 브르타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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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년/513년 ~ 7세기 | |
위치 | 상부 브르타뉴 |
수도 | 렌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언어 | 웨일스어, 브르타뉴어, 프랑스어 |
종교 | 가톨릭 |
민족 | 켈트인, 프랑스인 |
성립 이전 | 서로마 제국 |
멸망 이후 | 브르타뉴 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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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11년 또는 513년, 웨일스에 거주하던 켈트인이 렌을 중심으로 북부 브르타뉴에서 건국하여 7세기까지 유지한 왕국.2. 상세
4세기 후반, 웨일스 남서부의 데번, 콘월과 서머싯 등지에 켈트인 계열의 둠노니 족(Dumnonii)이 거주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아들이면서도 대체로 로마화되지 않고 고유의 관습을 유지했다. 그러던 5세기 초에 로마군이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철수한 이래, 앵글로색슨족이 침공하면서 이들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그러던 511년 또는 513년, 스스로 둑스(Dux: 군사 지도자)를 칭한 리왈(Riwa)이라는 인물이 무리를 이끌고 브르타뉴 북부로 이주한 뒤 독자적인 국가를 건설했다. 그는 프랑크 왕국의 국광과 협의해 프랑크 왕의 봉신이 되는 대신 그곳에서 살고, 경작하고, 주고, 파는 걸 허락받았다.브르타뉴의 성인 위녹 드 베르그(Winoc de Bergues, 640년에서 650년 사이 ~ 716)가 이력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프랑크 왕은 클로타르 1세이며, 513년에 조약이 체결되었다고 한다. 반면, 프랑스 언어학자이자 역사가 레옹 플뢰리오(Léon Fleuriot, 1923 ~ 1987)는 이 조약이 파리-오를레앙 프랑크 국왕 킬데베르 1세의 주도로 체결되었다고 추정했다.
리왈은 509년부터 돔노네에 먼저 자리를 잡았던 코솔드(Corsold) 왕이 이끄는 고트족과 프랑크인 혼혈 집단을 토벌한 뒤, 동료들에게 빈 땅을 분배하고 교회를 세웠다. 브르타뉴 의원이자 역사가 아르투르 드 라 보드리(Arthur de La Borderie, 1827 ~ 1901)에 따르면, 리왈은 520년에 사망했고,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데로크(Deroch)는 535년까지 통치하다가 사망했으며, 뒤이어 이오나가 540년까지 통치했다고 한다.
브르타뉴의 성인인 삼손 드 돌(Samson de Dol, 495 ~ 565)의 전기인 <삼손 드 돌의 생애>에 따르면, 이오나가 사망한 뒤 주드왈(Judwal)이 왕위에 올랐지만, 당시 나이가 5살 밖에 안 됐고 코노모르가 섭정에 올랐다. 그러나 코노모르는 전 왕의 미망인과 강제로 재혼했고, 주드왈은 코노모르에게 살해될 위기에 몰렸지만 킬데베르 1세의 궁정으로 피신했다. 그 후 삼손이 이끄는 켈트족이 546년 또는 548년에 돔노네에 이르렀다. 삼손은 돌(Dol)에 수도원과 주교단을 세웠다. 2년 후, 그는 파리로 가서 킬데베르 1세로부터 주드왈을 넘겨받은 뒤, 채널 제도로 이동하여 지지자들을 끌어모았다. 이후 돔노네에 돌아와서 여러 차례 전투를 치른 끝에, 554년 또는 555년 브랑크-할레그(Brank-Halleg)에서 벌어진 3번째 전투에서 주드왈이 코노마르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왕위를 탈환했다고 한다.
580년 주드왈이 사망한 뒤 왕위에 오른 주다엘(Judhaël)은 프리텔(Pritelle)과 결혼해 아들 15명과 딸 5명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605년 주디엘이 사망했을 때, 주다엘의 막내아들 헤일록(Haëloc)의 양아버지인 레스왈(Rethwal)이 헤일록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헤일록의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려 했다. 이로 인해 7명이 살해되었지만, 장남 주다키엘(Judicaël)을 비롯한 일곱 형제는 탈출했다. 주다키엘은 생멘 수도원으로 피신한 뒤, 멘 수도원장의 보호 아래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레스왈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헤일록이 홀로 통치하다가 610년 왕위를 주다키엘에게 반환하고 브로셀리앙드 일대를 영지로 수여받고 615년 사망할 때까지 영지를 다스렸다고 한다.
<생브리외 연대기>에 따르면, 주다키엘은 '삼촌'인 코르누아이유의 부디크의 지원을 받아 프랑크 국왕 다고베르 1세의 브르타뉴 침공을 2차례 격파했다고 한다. 프레데가르 연대기에 따르면, 635년 '브르타뉴 국왕' 주다키엘은 프랑크 왕국의 국경을 침공했다. 현대의 여러 학자는 주다키엘이 브르타뉴 국왕으로 언급된 걸 볼 때, 브르타뉴의 다른 두 구성국인 코르누아이유와 브로그웨네드가 돔노네에 통합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바스크인의 침공을 막 격파한 부르군트군의 개입으로 위협을 받자, 클리피아쿰에 있는 자기 별장으로 가서 왕을 만나기로 했다. 주다키엘은 다고베르 1세와 선물을 주고받았고, 다고베르 1세를 자신의 주권자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국경을 돌, 몽토방, 기프리, 르동 및 생나제르를 통과하는 선에 고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하느님에 대한 큰 두려움을 갖고 있다"라는 이유로 프랑크 왕국의 수도에 직접 가서 경의를 표하는 건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옥스퍼드 대학교 중세 역사학과 교수 줄리아 M.H. 스미스(Julia M.H. Smith, 1965 ~ )는 다고베르 1세에게 완전히 복종하지 않고 주권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발호였다고 추정한다.
642년, 주다키엘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종교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왕위를 형제 조세(Josse)에게 넘겼다. 그러나 조세는 종교 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하여 역시 왕위에서 물러나 로마로 떠나는 순례자 무리에 합류했다. 이후 주다키엘의 조카 위녹 드 베르그가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그 역시 왕이 되기를 거부하고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후 돔노네 왕국의 역사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3. 역대 군주
- 초대: 리왈(511/513 ~ 520)
- 2대: 데로크(520 ~ 535)
- 3대: 이오나 (535 ~ 540)
- 4대: 주드왈(540)
- 5대: 코노모르(540 ~ 554/555)
- 복위: 주드왈(554/555 ~ 580)
- 6대: 주다엘(580 ~ 605)
- 7대: 헤일록(605 ~ 610)
- 8대: 주다키엘(610 ~ 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