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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이집트 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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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중간기 First Intermediate Period of Egyp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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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중간기 이집트의 세력구도[1] | |||||
기원전 2181년 ~ 기원전 2055년 | |||||
위치 | 이집트 | ||||
수도 |
멤피스 (제7~8왕조) 헤라클레오폴리스 (제9~10왕조) 테베 (제11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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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 전제군주제, 제정일치 | ||||
국가 원수 | 파라오 | ||||
주요 파라오 |
멩카레[2] 케티 1세[3] 멘투호테프 1세[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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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 고대 이집트어 | ||||
종교 | 고대 이집트 종교 | ||||
주요 사건 |
기원전 2181년
이집트 제8왕조 시작 기원전 2160년 이집트 제9왕조 시작 기원전 2130년 이집트 제10왕조 시작 기원전 2134년 이집트 제11왕조 시작 기원전 2061년 멘투호테프 2세 즉위 기원전 2055년 이집트 재통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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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이전 | 이집트 고왕국 | ||||
종결 이후 | 이집트 중왕국 |
[clearfix]
1. 개요
기원전 2181년부터 기원전 2055년까지 지속된 고대 이집트의 시대 구분. 제7왕조부터 제10왕조까지가 제1중간기에 해당한다.[5]한때 강력했던 이집트 고왕국은 제6왕조의 무능력한 페피 2세가 94년이라는 지나치게 오랜 세월 동안 장수하며 후계 구도를 무너뜨리고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급속도로 붕괴되었다. 페피 2세 사후 고왕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몰락했으며, 그 뒤를 이어 제1중간기의 첫 왕조인 제7왕조가 들어섰다. 하지만 제7왕조의 파라오 10명의 재위기간을 모두 합해도 1년을 못채울 정도로 재위기간이 짧은 파라오들이었고,[6][7] 네페르카레 6세가[8] 1년 이상을 겨우겨우 버티면서 제8왕조가 들어섰다. 그러나 제8왕조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고, 헤라클레오폴리스의 대귀족 케티 1세가 왕위를 찬탈하여 제9왕조를 세웠다. 케티 1세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방의 귀족들을 압살하려 들었으나 이미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귀족들도 병력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케티 1세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제9왕조와 후계 왕조인 제10왕조는 수도 헤라클레오폴리스 인근의 나일 강 삼각주 일대까지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이 약화되었고, 그 틈을 타 남부 상이집트 지역에서는 테베를 중심으로 하는 제11왕조가 세워졌다. 결국 제11왕조의 멘투호테프 2세가 기원전 2055년 제10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재통일해 중왕국을 세우며 제1중간기도 종식되었다.
세 번의 중간기들이 다 그랬지만 제1중간기는 워낙에 혼란스러운 시기였기에 제7왕조, 제8왕조, 제9왕조, 제10왕조에 대한 기록이나 유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는 형편이다. 다만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제1중간기 시대에 이집트가 다시 하이집트와 상이집트 일대로 나뉘면서 예술풍이나 조각상들의 모습이 서로 약간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상이집트의 중심 도시 테베에서는 고왕국 시대와는 확연히 차별성이 있는 조각과 그림들이 등장했는데, 여성을 묘사할 때 가슴을 더 크고 각지게 그리거나 남성들의 조각이 이전보다 훨씬 호리호리한 모습으로 정적인 자세를 하고 있는 등의 특징이 있었다. 훗날 테베를 기반으로 한 제11왕조가 이집트를 다시 통일하면서 테베의 예술 풍조는 중왕국 시대까지 이어졌다.
2. 역사
2.1. 군웅할거
제1중간기 시대의 부조[9] |
2.2. 제7, 8왕조
제1중간기의 첫 왕조인 제7, 8왕조는 알려진 것도 적은 단명 왕조였다. 제8왕조의 개창자였던 멩카레는 수도를 멤피스에 두고 왕권 강화에 노력했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멩카레의 뒤를 이어 네페르카레 2세, 네페르카레 네비, 제드카레 셰마이, 네페르카레 켄두, 메렌호르, 네페르카민, 니카레, 네페르카레 테레루, 네페르카호르, 네페르카레 페피세네브, 네페르카민 아누, 카카레 이비,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리르카레 등의 여러 파라오들이 즉위했으나 대부분이 길어봐야 3년을 채 못채우고 죽거나 암살당했다. 게다가 중동 지방 전역에 닥친 가뭄과 기후 변화로 인하여 이집트의 경제와 농경은 갈수록 피폐해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 와중에 제8왕조 최후의 파라오 네페리르카레는 집권 1년 반 만인 기원전 2160년에 헤라클레오폴리스를 기반으로 한 케티 1세에 의해 살해당했다. 결국 제8왕조는 기원전 2181년에 세워진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완전히 멸망했고, 제8왕조의 뒤를 이어 제9왕조가 들어섰다.[14]2.3. 제9, 10왕조의 난세
이집트 왕조들의 《연대기》를 적은 신관 마네토가 제9왕조를 '역대 최악의 왕조', '전대 왕조들보다도 못한 악마들'이라고 혹평을 남겼을 정도로 제9왕조 시기의 이집트는 그나마 통일 왕국을 유지하고 있었던 제8왕조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 중 남아있는 것들이 워낙 없기 때문에 심지어 파라오들의 이름이나 명단, 계보마저도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15] 제9왕조의 초대 파라오인 케티 1세는 헤라클레오폴리스를 기반으로 해서 왕좌를 찬탈했던 인물로, 고왕국 제6왕조의 후계를 주장하면서 탄압을 전제한 철권통치를 펼치려고 들었다. 당연히 왕권이 땅에 떨어진 시점이었던 이집트에서 철권통치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었으니, 제9왕조의 영향력은 헤라클레오폴리스 일대와 나일 강 하류에만 한정되었고 옛 수도 멤피스를 포함한 상이집트 지방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해버렸다. 이후 잠시동안 기록이 없는 시대가 나오다가[16] 기원전 2130년에는 파라오 메리하토르가 즉위하면서 헤라클레오폴리스에 제10왕조가 들어섰다. 물론 제10왕조 역시 전대인 제9왕조와 마찬가지로 왕권은 대단히 약했으며 전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메리하토르 사후 네페르카레 8세, 와카레 케티, 메리카레 등이 즉위했으나 이들 역시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2.4. 제11왕조의 중흥과 재통일
나일 강 하류에 위치한 헤라클레오폴리스 정권이 제대로 맥을 추지 못하자 나일 강 상류를 포함한 남부 상이집트에서는 군벌 시대가 개막되었다. 지방의 총독들이 파라오의 허가없이 서로 전투를 벌이거나 상대 도시를 점령해 취하는 등 사실상 파라오의 지배하에서 떨어져 나간 것인데, 그들 중 테베의 총독 인테프가 가장 힘이 강력하여 상이집트의 군벌들 대부분을 정리하고, 거의 파라오의 힘에 맞먹을 만한 세력을 키웠다. 인테프 본인과 그 후계자 멘투호테프 1세는 직접 파라오를 칭하지는 않았으나 멘투호테프 1세의 아들 인테프 1세가 전이집트의 통치자를 선언하면서 사후 추존이 이루어져 역대 파라오들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학계에서는 테베에 기반을 둔 멘투호테프 1세 혈통의 왕조를 제11왕조라고 부른다. 제11왕조는 인테프 1세, 인테프 2세, 인테프 3세를 거치며 꾸준하게 상이집트를 통일하는 한편 북쪽으로 진군하여 아비도스 등지에서 전투를 벌이며 헤라클레오폴리스를 위협했다. 결국 인테프 3세의 아들 멘투호테프 2세가 재위 39년 만에 마침내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제10왕조를 무릎꿇리고 상•하 이집트를 재통일하면서 130여 년에 걸친 제1중간기의 혼란도 수습되었다. 이집트를 재통일한 제11왕조가 상이집트의 테베를 중심으로 했기에 테베 왕조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이집트에는 중왕국 시대가 개막되었다.3. 관련글
[1]
북쪽 나일 강 삼각주 지대의 보라색 영토는 헤라클레오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제9왕조와 제10왕조의 영향권. 아래쪽의 초록색 영토는
테베를 수도로 삼은 제11왕조의 영토이다.
[2]
제8왕조의 초대 파라오이자 제1중간기 시대의 첫 파라오. 왕위에 즉위한 지 얼마 되지도 못해 사망했다.
[3]
제9왕조의 초대 파라오. 왕위를 찬탈한 인물로, 철권 통치를 강요했지만 오히려 이집트 전역에서 일어난 반란에 직면했다.
[4]
테베를 중심으로 상이집트 일대를 통치한 유력 귀족. 스스로 왕위를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훗날 후손인 멘투호테프 2세가 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사후 추존되었다. 제11왕조의 직접적인 시조로 불린다.
[5]
제11왕조는 제1중간기와 중왕국 시대에 걸쳐있으나, 제11왕조가 다시 이집트를 통일하고 중왕국을 세웠기에 일반적으로 중왕국에 포함시킨다.
[6]
이로 인해 제7왕조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니카레.
네페르카호르의 존재가 증명되어 있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7]
이로 인해 제8왕조와 같이 합쳐서 부른다
[8]
네페르카레 6세는 7, 8왕조 11대 파라오인데
아버지는 7, 8왕조 2대 파라오였다.
[9]
남성의 팔과 다리, 허리 등이 상대적으로 더 가늘게 표현된 것이 특징이다. 고왕국 시절에는 훨씬 근육질 모습의 남성들이 주로 등장한 것과는 대조된다.
[10]
페피 2세는 특히 고구려의
태조대왕을 더해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인물이다. 6세에 즉위해 '겨우' 99세에 죽었지만...여하간 존재 자체가 웬만한 왕조보다 길다(...). 하지만 다른 왕들의 재위가 하도 짧아서 제6왕조의 기간은 160년 수준에 불과하다.
[11]
혹은 75일간 파라오 5명. 하지만 하루나 한 달이나 그게 그거지 여기서 70은 정확한 숫자보다는 동양에서의 100과 마찬가지로 많다는 뜻을 의미하는 듯하다.
많은 자칭 파라오들이 난립했다는 것이다.
[12]
이런 난립 정권들이 차례로 등장하지 않고,
병립하여 싸우면서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13]
현재의
파이윰 인근의 고대 도시.
[14]
일부 학자들은 그나마 이집트 전역을 통치했던 제8왕조를 이집트 고왕국의 마지막 왕조로 보기도 한다. 제8왕조 뒤에 들어선 제9왕조와 제10왕조는 헤라클레오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북부 하이집트 지방밖에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15]
대략 19명의 파라오가 있었다고 추정되나 이마저도 확실치 않고, 남아있는 명단은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 네브카우레 케티, 세투트 등 총 4명뿐이다.
[16]
파라오가 즉위했다는 흔적은 있으나 그게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