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11:30:34

알제리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프랑스 해군의 중순양함 함급에 대한 내용은 알제리급 중순양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프랑스에서 일어난 토막살인사건에 대한 내용은 알제리 할머니 살인사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전함소녀'의 캐릭터에 대한 내용은 알제리(전함소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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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인민 민주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جزائرية الديمقراطية الشعبية
République algérienne démocratique et popu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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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بالشّعب وللشّعب
Du peuple et au peuple
국민에 의하여, 국민을 위하여
국가 정보
국가 맹세( 아랍어: نشيد وطني جزائري)
면적 2,381,741㎢
인구 42,354,819명 (2019년)
수도 알제
시차 UTC+1
공용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국민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헌법상), 프랑스어 (사무 및 교육용)
종교 이슬람교( 수니파)
화페 디나르 (DZD)
GDP 명목 1683억 1800만$(2016)
1인당 GDP 명목 4,123$(2017), PPP 13,913$(2017)
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압델마드지드 테분 (Abdelmadjid Tebboune)
총리 압델아지즈 드제라드(Abdelaziz Djerad)
남북수교현황 남북동시수교
( 대한민국: 1990년, 북한: 1963년)
여행경보
여행자제 적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철수권고 카빌리 지역 6개주 산악지역(부메르데스, 부아라, 티지 우주, 베자이아, 보르즈부아레리즈, 지젤), 국경지역(튀니지(테베사, 엘웨드 동부, 오아글라 동부), 리비아(일리지 동부), 니제르ㆍ말리ㆍ모리타니(타만라셋 남부, 아드라르 남서부, 틴두프 남서부))[1]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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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geria / Argelia (2004) (Olympic Version / Versión Olímpica) (HD)
Algeria / Argelia (HD)

1. 개요2. 상징
2.1. 국명2.2. 국기2.3. 국가
3. 역사4. 군사5. 경제와 자원6. 관광7. 스포츠8. 종교와 문화
8.1. 종교탄압과 현재8.2. 어느 정도 세속적인 문화8.3. 언어
9. 외교10. 알제리의 도시11. 둘러보기12. 관련 문서

1. 개요

아프리카 북부 마그레브 지역에 위치한 아랍- 베르베르 국가. 수도는 알제.

서쪽으로 모로코, 서사하라[2] , 모리타니, 남쪽으로 말리, 니제르, 동쪽으로 리비아, 튀니지와 국경을 접한다. 그리고 직접 국경을 접하진 않았지만 북쪽의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있는 주변국가들로는 스페인, 프랑스가 있으며 지브롤터와도 멀지 않은 편이다. 마르세유에서 알제까지의 거리가 마르세유에서 파리의 거리와 비슷하다!

파일:external/premium.britannica.co.kr/onorafr005m4.jpg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가장 땅이 넓은 나라이다. 동시에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나라다. 아랍연맹 회원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영토가 넓으며, 북아프리카를 중동에 포함시킬 경우 중동에서 가장 넓은 나라가 된다. 국가별 국토 면적 순위 참조. 더불어 이슬람 다수 나라에서 가장 넓은 나라이다.(2번째가 사우디아라비아, 3번째가 인도네시아). 2011년 7월 9일부로 남수단이 독립하기 전에는 수단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그리고 아랍연맹에서 가장 넓은 나라였고 알제리는 아프리카에서 수단 다음으로 2번째로 크고 세계에서 11번째로 크며 아랍연맹에서 2번째로 땅이 넓은 나라였지만, 남수단의 독립으로 알제리가 아프리카 및 아랍연맹 1위로 올라섰다.

석유(세계 4위)와 천연가스(세계 5위), 망간(세계 3위), 수은(세계 3위), (세계 5위), 코발트(세계 2위)같은 자원 매장량 및 세계 점유율이 엄청나며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광석 및 석탄 및 온갖 자원이 수두룩하다. 땅이 넓다 보니 따스한 온대 지중해성 기후에서부터 더운 사막성 기후와 온대 기후 또는 스텝 기후지만 겨울이 내리기도 하고 추운 기후까지 골고루 존재한다.

바트나(Batna)는 알제리에서 가장 낮은 온도를 기록한 곳이다. 이곳의 최저기온 기록은 1945년 1월 4일의 영하 20℃. 아프리카 대륙에서 손꼽히는 기록이다. 위도상으로는 전라북도 고창군이나 울산광역시(북위 35도 30분)와 비슷한 위도에 있다.

북부의 지중해 연안과 아틀라스 산맥이 지나가는 고원이나 산지가 있다. 바트나가 바로 그 아틀라스 산맥이 지나는 고원, 산지 쪽에 위치해 있다. 바트나의 해발고도는 1048m이다. 이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에 속한다.

2. 상징

2.1. 국명

공용어인 아랍어로 이 나라를 이르는 이름은 '자자이르(جزائر‎, Jazā'ir)'이며, 아랍어의 알제리 방언으로는 자이르(دزاير, dzāyīr)라고 부른다. '알자이르'(الجزائر, al-Jazā'ir/dzāyīr)의 '알'은 아랍어 정관사까지 포함해서 가리키는 말로, 아랍권에선 다른 나라를 부를 때도 정관사 알ال을 쓰는데 프랑스의 영향으로 유독 알제리만 세계적으로 정관사를 포함한 이름이 알려졌다.

원래 자이르는 수도 알제를 가리키는 아랍어 이름인데, 수도 이름이 나라 이름이 된 것이다. 자이르의 유래가 된 자지라(جزيرة , jazīra)는 아랍어로 을 의미하는데, 베르베르인이 이곳에 처음 도시를 세울 때 알제 앞바다에 섬이 있는 것을 보고 거기서 도시 이름을 땄다고 한다. 현재는 매립으로 인해 섬이 사라졌다.

알제리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프랑스에서는 자이르에 정관사를 넣은 알자이르를 Alger(알제)로 음차했고, 이 이름에 프랑스어로 '-의 땅' 정도의 의미가 되는 '-ie'를 붙여서 알제리(Algérie)가 되었다. 한국어 명칭은 이 프랑스어 명칭을 들여온 것이다. 알제리의 '리'(-ie) 부분이 프랑스어 유래이기 때문에 다른 서양 언어에서는 이 부분을 자국어 접미사로 바꾼 명칭을 사용한다. 영어의 Algeria나 독일어의 Algerien 등.

베르베르어 국명은 자예르(ⴷⵣⴰⵢⵔ, Dzayer).

알제리의 정식 명칭은 '알제리 인민민주공화국'이다. 이는 알제리 독립운동가들이 반불 독립운동을 벌이면서 소련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사회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알제리는 독립 후 제3세계 진영에 속하면서도 오랫동안 친소 반미 경향을 보였다.

2.2. 국기

알제리의 국기는 왼편에 초록색, 오른편에 흰색이 들어가고 중간에 붉은색 초승달과 별을 박아둔 국기이다. 초록색은 번영을, 하얀색은 순결과 평화를, 붉은색은 독립전쟁 당시 인민들이 흘린 피, 초승달과 별은 국교인 이슬람을 상징한다.

이 국기는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 독립진영에서 1958년에 채택했으며, 1962년에 독립할 때 정식으로 국기로 채택되었다.

2.3. 국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맹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알제리/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군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알제리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경제와 자원

경제적으로 자원수출이 전체 수출량 97~8%를 차지할 정도로 자원 수출량 의존이 너무 심한 게 문제. 때문에 자국 공업 생산 및 경제적 토대가 거의 없고, 알제리의 경제적인 위상도 천연자원의 가격에 의해 오르락 내리락 하고있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뭐, 알제리 내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려고 했던건 아니었지만 1980년대 유가 급락과 부채급증으로 중공업 투자정책이 실패로 끝나면서 망했다. 이것이 알제리 내전이 터진 이유 중 하나다.

사막이 많다지만 땅이 넓다보니 풍요롭고 따뜻한 기후를 가진 농경지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밀이나 여러 자국 소비되는 오렌지 포도같은 과일과 채소와 올리브 대추야자가 많이 재배되고 있어서인지 여기도 먹을게 꽤 싸다.

프랑스는 학살까지 저지르면서 여길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 장군들 및 정치가에게 프랑스 측은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나 마찬가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유는 알제리에 막대한 자원과 같이 풍요로운 농경지와 경치좋은 피서지에서부터 온갖 발전가능성이 큰 지리적 요소(수력 및 풍력같은 자연 자원의 개발 여건)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고대 유적지에서부터 온갖 관광자원이 될 것들도 꽤 많기에, 세계적인 관광 대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그런 장점들 덕에 외세의 억압 속에서 빚어진 갈등과 여러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도 자원 수출에 너무 의존하는 천수답 경제의 전형적인 문제점을 겪고 있다. 아랍의 봄은 고유가 시기다보니 일단 지원금을 내주는 것으로 어떻게든 때웠지만 산업 다각화에 실패해서 2010년대 중반 들면서 유가가 급속히 하락하여 정부 재정이 급속히 줄어드는 바람에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런 내부적 문제도 있는데다가 실업도 심각하여 청년실업률도 정부의 발표로는 10%를 넘지만 실제론 30%에 달하는 수준이다보니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프랑스 및 유럽으로 가서 일하고 있는 처지이다. 설상가상으로 알제리는 갈수록 심해지는 사막화로 인해 물부족도 심각하며 식료품 가격들까지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6.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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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튀니지나 모로코 등에 비해 비자 발급이 지나치게 어려운 탓에[3] 관광국가로서 인지도가 낮아서 그렇지, 팀가드 유적 같은 로마 유적 같은 좋은 관광지가 많다. 팀가드는 고대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의 명으로 건립된 도시. 로마제국 당시의 도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4] 위의 사진은 트라야누스 황제 개선문이다. 팀가드를 직접 다녀온 사람들의 전언에 따르면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고(...)...

이 외에도 고대 가에툴리인들이 파놓은 지하수로 유적도 있고, 해안가의 도시들은 겨울에도 따뜻하고 여름에도 지나치게 덥지 않은 온난한 기후 덕택에 차후 비자 발급 난이도가 낮아지거나 무비자로 바뀐다면 이집트나 모로코, 튀니지 비슷한 관광 대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이다.

7. 스포츠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것은 알제리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한국에서는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이 알제리를 그래도 가장 만만한 나라로 봤다가 제대로 털렸다. 사실 한국 말고도 세계적으로 알제리가 한국보다 밑이라고 평가했었지만...

그러나 축구 리그 열기도 너무 뜨거워서 또 문제. 2014년 7월 24일 알제리 리그에서 JS 카빌레 USM 알제와의 경기 후 팀 패배에 흥분한 관중이 경기장으로 돌을 던졌고 JS카빌레 소속인 알베르토 에보세(24)가 돌에 맞아 사망했다. 알제리 프로축구협회는 이 사고로 리그를 무기한 중단했다.

그래도 2014년 CAF 챔피언스 리그에서 ES 셰티프 AS 비타( 콩고)를 상대로 2무를 거두고(2-2,1-1 원정 다득점 우위) 26년만에 우승(물론 다른 알제리 구단인 JS 카빌레가 이 대회를 우승한 적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1990년 일이다)하면서 알제리 구단으로서 첫 클럽 월드컵에 진출했다.

8. 종교와 문화


▲최근의 알제리 사람들의 생활문화

8.1. 종교탄압과 현재

과거의 선교정보나 종교 관련 책에서는 기독교(카톨릭, 개신교 포함한 전체 종파)를 가장 증오하는 국가 중 하나라서 기독교 탄압은 일상이고 시민 중에 기독교를 믿거나 성경이 발견되면 경찰이 즉결처분하는 등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알제리가 과거 프랑스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애먼 기독교인들까지 탄압하거나 사살하는 사례가 많아서였다.

알제리의 종교탄압은 다른 이슬람국가들 못지않게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그 원인은 과거 지배자들이었던 프랑스가 뿌린 원인이다. 실제로 130년이 넘는 프랑스 식민지 지배 및 알제리 전쟁으로 200만이 넘는 사망자를 냈고 프랑스의 종교탄압정책[5]으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증오가 컸다. 결국 독립초부터 기독교에 대한 차별 및 테러가 이어져왔다. 게다가 근래들어서는 1996년 순수하게 의료봉사와 지역주민들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던 가톨릭 수도자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서 집단으로 처형되는 사건이 있었으며 [6] 이슬람 과격세력과 갈등 및 군부와 민간정부의 대립, 부족갈등과 같은 내부 문제가 깊어지면서 점차 민간정부 및 군부까지도 이슬람 근본주의를 고집하는 경향이 커져갔다.

21세기 넘어서도 이는 계속되었는데, 2003년에는 프랑스인 천주교 수녀들이 과격파에게 산 채로 난도질당해 간살되기도 했으며 2005년에는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를 난도질을 오랫동안 하며 고통스럽게 죽였는데 당시 프랑스가 알제리 지배에 대하여 책임없고 민간인 학살이라든지 여러 모로 부정하고 알제리에게 프랑스 지배를 긍정하라는 병크적인 정치인 발언으로 인해 반프랑스 감정이 커지면서 보복으로 살해당했다. 결국 이 사건들은 범인이 잡히지 않았는데 과격파도 과격파지만 알제리 정부가 일부러 묵인해준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2008년 오로지 이슬람만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선교사들이 무조건 추방 및 입국 금지되었으며 56개에 이르는 교회들을 경찰 및 군대를 동원하여 강제 폐쇄하였다. 그나마 이후에는 극단주의는 살짝 사그러들고 2011년 이후 알제리 정부가 개신교회를 인정하는 등 # 유화책을 펴면서 그나마 기독교에 대한 차별도 약간은 줄어들었다. 다만, 2016년 들어서 또다시 기독교에 대한 테러와 박해가 늘었다고 한다. 참고1 참고2 즉, 극단주의가 사그러드는건지 다시 피어오르는건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작 알제리에는 토착 기독교도들도 살고 있는데 이들은 독립 이후에도 대대로 살아온 기독교도들과 공존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극단주의가 심했을 때 피해를 입긴 입었다고 한다. 현재는 상황이 전보단 나아진 듯 하다고 하지만, 최근 기독교 박해가 또 다시 심해져 또 골치아픈 상황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대놓고 교회 등에서 종교행사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진 못하고, 친목계나 월례회 등의 명목으로 모인 다음 예배를 드리는 수준으로 소수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형태다.

8.2. 어느 정도 세속적인 문화

이슬람이 대다수이고 명목상 국교이긴 하지만 이웃 모로코 튀니지처럼 세속주의가 강하다고 한다.[7] 알제리 노래나 여러가지 뮤직비디오를보면 여성들이 히잡도 쓰지않는것을 볼수있다. 참고로 이 나라 주말은 토요일과 일요일 대신 금요일 토요일이다.[8] 이런 탓에 알제리에서 일요일은 그냥 평일이다(...).

대 프랑스 독립투쟁때는 남성과 여성 차별없이 싸웠고 여성들도 많이 희생했다. 현재도 여성 대학진학률이 높으며, 법조계및 의료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반절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사회참여도 또한 높다.

정작 프랑스에 거주하는 알제리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가 번지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의 이슬람 선교를 목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와하비즘 선교 및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비롯되었다. 알제리계 프랑스인 상당수가 원래 알제리 독립운동에 맞서서 프랑스 편에 든 사람들 후손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

2011년 튀니지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알제리에도 불길이 번지고 있다. 혁명 전 튀니지 상황이 알제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정책과 유통정책의 실패로 물가가 폭등하면서 실업자가 늘어나는 모습은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상세 진행 상황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알제리에는 고등학교, 대학교 등록금이 없다.

2018년 10월 19일에 알제리는 직장에서 니캅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

알제리 내 리비아 인근 지역 및 사하라 사막에 걸친 영토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해쉬를 핀다(같은 종인 대마초를 피기도 함). 보통 1시부터 3시 사이 일명 티타임에 차와 함께 피는 것이 전통처럼 보여지는데 아즈웨 아 테(Azer wei a tea)라는 전통 노래를 흥얼거리며 시간적 여유를 즐긴다. 이유는 1시부터 3시까지 일광량이 워낙에 강하다보니 일을 쉴 수밖에 없으며 오전동안 일한 심신을 달래주려는 성격이 크다. 이는 비단 교외 지역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도인 알제나 지중해 해안 도시인 오란 등에서의 휴양지에서도 1시부터 3시 사이에 점심을 먹고 난 뒤 티타임을 가지는데 집에서건 공공장소에서건 공연히 이 해쉬를 흡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마초와 달리 해쉬는 냄새가 거의 없고 역하지 않다는 것과 대마초는 하층민들만 핀다는 관념이 서려있어 대부분 해쉬를 흡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고난 시기인 1990년대 대마초와 해쉬로 세금을 충당하려는 정부에 대해 많은 민중이 시위를 벌였으며 알제리 내에서는 이 소요사태를 'Hash crisis'라 일컫는다. 다만 이렇게 알제리가 모든 마약에 대해 관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해쉬와 대마초를 제외한 나머지 향정신성 약물 등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마약을 지나치게 남용하는 마약 중독자에 대한 대중의 시선도 좋지 않은 편.

한 알제리 국민에 따르면 술은 몸과 정신을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하고 건강에 안좋은 것에 비해 해쉬는 오직 정신을 편안하게 하는 기능만 있다고 한다. 해쉬라는 대마초를 문화적으로 정착시킨 최초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작물로서 삼베가 아닌 기호 마약품으로서 대마초를 피기 시작한 지역도 중세 말, 근세의 수피즘 신비주의 명상가, 유랑 수행자들 중심으로 이슬람권의 중동과 북인도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마약'에 대한 인식과 대마초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다르다. 이란이나 아라비아 반도의 신정국가들 같이 술 한방울 마시면 외국인도 얄짤없이 처벌할 거 같은 억압적인 정치적 이슬람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들도 대마초에 대해서는 유독 관대한 면이 있다. 저런 나라들도 사실 자세히 알고 보면 마실 놈들은 다 마신다고 해도 표면적으로나마 엄격한 금주법을 미는 반면 대마초 관련해선 왠만큼 공공연하게 "나 잡아가줍쇼" 하지 않는 이상 공권력도 무해한 일탈 행위로 보고 넘어가는게 일반적이라 한다. 미국의 마약문화와 베트남전의 관계처럼 지리멸렬한 게릴라전 중심의 외지 주둔군 생활에 질렸던 군인들이 대마 빠는거 보고 본국에 돌아가서 그 문화를 전파한(...) 패턴도 스페인 모로코 서사하라 분쟁 시절, 프랑스군의 알제리 전쟁 시절에서도 발견되는 전형이다.

8.3.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를 지정하고 있다. 알제리에서 쓰이는 아랍어는 아랍어 방언에 속하는 마그레브 방언을 쓰고 있다. 그리고 알제리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지배와 탄압의 영향으로 알제리는 프랑코포니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다. 그외에도 베르베르어랑 약간의 영어, 러시아어도 사용되고 있다.

9. 외교

9.1. 프랑스

지중해를 사이에 둔 프랑스와의 관계는 바르바리 해적의 약탈과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배도 있고 동시에 전쟁을 거쳐서 독립했기에 서로 불편한 관계이면서도 밀접한 관계이기도 하다. 또한, 과거에는 프랑스 지역과 알제리 지역은 로마 제국의 일부였지만,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서로 달라지게 되었고 알제리 지역은 아랍의 침략을 받으면서 아랍화가 되고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프랑스의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의 아버지는 카빌리족 계통 알제리인이다. 전엔 그녀의 아버지가 터키계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남편이 알제리계라는 혈통이 부끄러워서 그렇게 알렸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고 한다. 또 어머니는 독일인이다. 아이러니한 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이면서 동시에 프랑스와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나라의 피를 물려받아, 이 때문에 종종 프랑스의 극우파 정치인들과 긴장관계에 있기도 하다. 알제리계지만 가톨릭이 다수이던 카빌리족 후손이다보니 반 이슬람주의자인데 이슬람이라면 아주 치를 떠는 수준으로 특히 히잡 반대 시위를 주동하기까지 했다. 관련기사. 그래서 알제리에서도 듣보잡으로 무시한다.

지네딘 지단도 이 알제리계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마르세유 태생. 그래서 지단이 남아공 월드컵 때 이 나라 경기를 관전했던 것. 그런데 알제리에서도 영웅으로 알아주는 지단은 사실 한국으로 치자면 친일파의 후손과 마찬가지이다. 지단의 아버지는 무슬림이지만 하르키(Harki)라는 조직에 속했었다. 덕분에 알제리 극우단체인 알제리 민족전선에선 이 점으로 지네딘 지단 찬양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주장한다.

하르키는 알제리 독립전쟁 와중에 프랑스군을 편들어 싸웠기에, 알제리 독립이 이뤄지자 전국적으로 하르키들은 길거리에 끌려나가 맞아죽거나, 아니면 알제리군에게 교수형을 당해야 했다. 이 때 20만명의 하르키(가족까지 160만명) 중에서 살아서 프랑스로 도주한 자는 3만명에 불과했다고한다. 그런데 2012년 기준으로 프랑스에 사는 하르키의 추정치가 50만에서 80만이다. 프랑스 법이 민족별 데이터를 내는 걸 불법으로 치기에 정확히 계수가 되지는 않지만 숫자가 꽤 되는데 단 3만 명의 후손이 이 정도로 불지는 않을 것이다.

하르키들은 프랑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를 위해 싸웠지만, 이미 알제리를 잃은 프랑스에게 있어서 하르키란 귀찮은 불청객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곤 차별 뿐이었다. 직장을 다니다가도 하르키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동료들의 눈치에 그만둬야 했다. 지금도 실직자의 35%가 하르키 및 알제리 출신의 후손이라고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D업종 뿐이었다. 지단의 아버지도 항만에서 짐꾼으로 일했다. 그래서 많은 하르키의 자식들은 사회적 냉대에 결국 나쁜 길로 빠진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현재 알제리에선 감정이 희석된 건지, 다시 알제리로 돌아가서 사는 하르키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알제리 대통령도 하르키 문제를 "우리가 할 일은 심판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라며 지단을 위로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견부호자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지단은 세계가 다 아는 유명인이니 박대해서 좋을 게 없으므로 지단의 사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풀렸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식민지배를 132년이나 받기도 하였고 처절한 전쟁 끝에 독립했으니 프랑스에 대한 증오가 장난아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극우들의 헛소리라든지 1998년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은 알제리에서 프랑스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계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1960년 프랑스는 바로 알제리 땅에서 핵실험을 해버렸다... 게다가 후술하듯이 1966년까지도 핵실험을 알제리에서 계속 했으니... 더불어 1961년 모리스 파퐁( 훗날 친나치파인 게 발각되어서 전범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받기 전에 사망) 당시 파리 경찰청장은 치안 문제로 야간 통행을 금지했는데 죄다 알제리계 이민자들에게만 요구하여 이를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졌는데, 경찰이 시위자들에게 발포하여 40여명이 죽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당시 프랑스는 무슬림끼리 싸워서 3명이 죽었다는 투로 발표했다. 그리고 1998년에서야 시라크는 진실을 발표했으나 파퐁은 나치 부역죄로 처벌받아 수감 중(2002년에 교도소에서 사망.)이었기에 처벌받을 이가 없다고 후다닥 덮어버렸다. 그래서 2005년 알제리로 방문한 시라크에게 알제리 극우들이 돌을 던지고 비난했다.

게다가 2010년 2월,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앵 보도에 의하면,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가 독립한 뒤인 1966년까지도 알제리의 사막 핵실험장에서 알제리인 150명을 대상으로 핵무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생리적, 심리적 효과를 연구하는 생체실험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알제리에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이에 대하여 프랑스 정부는 오리발 내밀기로 어그로를 곱배기로 드셨다(…).

프랑스 국대 축구팀이 2001년에 생드니 경기장에서 알제리와 축구 A매치를 한 적이 있는데, 경기장에 대거 입장한 알제리 팬들이 마치 홈경기를 방불케 하듯 자국의 국가를 부른 다음에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에 야유를 퍼붓고, 프랑스가 압도적으로(4:1) 이기고 있자 거의 폭동 수준의 난동을 일으켰었다. 결국 경기가 중단되고, 경찰의 호위 속에 경기장을 나가는 선수들에 대한 오물투척은 계속됐다. 이 때 유독 지단만은 무사했을 뿐만 아니라 알제리 선수들은 지단과 친근하게 어울리고 알제리 팬들은 지단에게 사인까지 받았는데, 여기서 알제리에서의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다.

반면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들을 프랑스에서는 피에 누아르(검은발)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부분이 원래 그쪽 태생이 아니라 식민지배가 시작되면서 알제리로 건너온 프랑스인들의 후손이다. 철학자 알튀세르, 디자이너 입생 로랑 등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계 지식인, 유명인사도 제법 있었으나 이들은 대개 식민통치를 긍정하고 알제리 사회의 특권층으로 군림했다.

그 덕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제리 출신 소설가 알베르 카뮈(아버진 프랑스인, 어머니는 스페인계)도 반대로 알제리에선 철저하게 잊혀졌다. 자세한 건 알베르 카뮈 항목 참고할 것.

까뮈는 위에 언급한 대로 카빌리족이 프랑스에 충성을 다함에도 프랑스가 외면하여 비참하게 산악지대에서 어렵게 산다고 기자 시절 신문으로 보도하였다가 기자에서 잘린 적이 있다. 이 덕분에 프랑스에서 카빌리족을 좀 신경쓰기도 한 계기가 된 바 있다. 어찌보면 까뮈가 카빌리족에겐 은인이 될 지도 모르지만, 현재 알제리 카빌리족들도 까뮈를 모른다. 하긴 프랑스도 하르키로 들어온 카빌리족에 대한 냉대와 알제리에서 벌인 학살을 생각하면 알제리도 프랑스도 다 이가 갈릴 정도로 싫어할 만하다.

프랑스로서도 워낙에 자원이 많은 알제리를 놓칠 수도 없기에, 2000년대 와서 일부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도 인정하며 달래는 분위기다. 하지만 2005년 5월 프랑스는 이런 와중에 자신들이 북아프리카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홀로 자축하는 헛소리 발언을 정부요인들이 했다. 그러자 알제리 사르 알 부지드 광장에서 알제리 국가를 부르고 프랑스 국기를 불태우는 시위가 일어났고 프랑스계 천주교 신부와 신도들이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 곳은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는 잔 다르크 광장이라고 불렀던 곳인데 1945년 6월에 알제리 국기를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총에 맞아 살해된 12살 아이 사르 알 부지드의 이름을 따서 독립한 뒤에 이름이 바뀌었다. 이 아이의 죽음이 알제리 독립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으므로, 알제리가 독립하자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고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 이렇듯 지금도 반프랑스 감정이 매우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긴 그럴만한 게 프랑스는 식민지배 시절 알제리인이 이슬람을 포기하지 않으면 시민권도 주지 않았고, 무슬림이라면 평생에 한번은 꼭 해봐야 한다는 메카 순례도 금지했고, 투표권에도 제한을 두었다. 또 얼마 안 되는 프랑스 본토인이 알제리의 알짜배기 땅들을 싹쓸이하고 그러면서도 대중교육이나 일반 알제리인들을 위한 경제정책에 신경조차 안 써서 소수 기득권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무슬림들은 문맹으로 살아야 했던 데다가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고, 그래서 절대 다수가 빈민층들으로 살아야 했다. 이 정도로 차별을 했으니 사과 몇 마디로 넘어갈 리가 없다.

장 마리 르 펜 같은 프랑스 극우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알제리인을 그리 욕하고 허구한 날 비하하면서 알제리는 프랑스 땅이란 망언을 한다. 이러니 알제리에서 프랑스를 도저히 좋게 봐줄 리가 있나.

거기에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도 똑같다. 알제리를 방문하고 무사히 살아돌아와 다행이라고 말을 하지 않나, 식민지배가 악랄한 건 사실이지만 사과할 마음은 없다라고 당당하게 망언을 하며 알제리 여론과 정계를 격분하게 하고 있다. 오죽하면 프랑스 내 기업인들이 " 좀 닥쳐, 왜 겉으로 내색하지 못해 발광하냐?"라고 으르렁거릴 정도.

이 때문에 프랑스에 대한 반감은 단순히 축구 경기 말고도 많다. 알제리 극우파들은 프랑스어를 배제하고 제2언어로 차라리 영어( 영국식 영어)를 배우자고 주장할 정도이다(당연히 제1언어는 아랍어이다.). 알제리 노인들은 아랍어를 잘 모르고 프랑스어를 아는 이들이 아직도 많을 정도로 프랑스의 프랑스어 강요 및 아랍어 탄압은 똑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알제리 젊은이들은 아랍어와 같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러시아어 같이 가까운 유럽 나라 언어들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서 알제리 정부는 자원개발이나 여러 문제를 프랑스 말고도 스페인이나 벨기에[9], 러시아와도 협력하자고 하면서 프랑스를 최대한 약올리려고까지 한다. 게다가 친러국가라서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이기도 한다.

덧붙여 한 가지 놀라우면서도 우스운 사실도 있다. 알제리는 프랑스어가 공용어인데도 프랑스어 사용국 모임인 프랑코포니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부터 영연방 가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코포니는 프랑스와의 감정 문제가 심각하고, 가입 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그에 비해 적기 때문에 가입을 안 하고 있다. 반면 영연방은 감정 문제도 별로 없을 뿐더러, 영연방에 가입하면 나이지리아, 남아공, 케냐 등 기존 영연방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수 있음과 동시에, 영국,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 영연방 선진국들로부터 원조를 받음과 동시에, 알제리인들이 해당 국가로의 이민과 유학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8년 9월 13일에 알제리 독립 전쟁당시 프랑스군의 고문, 살해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죄했다. #

9.2. 러시아

알제리는 친러 국가이다. 알제리 전쟁 당시 소련 시절 막대한 지원을 받아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알제리군의 무기 및 장비들은 러시아제가 대부분이다.

9.3. 미국

알제리 전쟁 당시 미국이 프랑스 편을 들었던 전적 때문에 알제리는 냉전 시대에 반미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그나마 독립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가 상원의원 재직 당시 알제리의 독립을 지지했던 덕분에 국교는 맺을 수 있었으나 그마저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든 것을 이유로 단절했다. 이후 1974년에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복구하였다.

그러나 알제리는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때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을 중재하였으며 이후 1980년에 미국과 이란 간의 국교가 단절되었을 때부터 미국 내 이란의 이익대표국 역할을 한동안 맡기도 했다.[10] 냉전 종식 후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등의 식으로 미국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9.4. 영국

영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지만, 영연방에 가입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9.5. 아프리카 국가들

요약하자면 만고불변의 이웃나라의 법칙에도 불과하고도 서사하라 문제로 갈등하는 모로코 빼면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다. 아랍권 내에서 극심한 상호 불신에 비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관계이다.

튀니지와는 우호적이다. 일단 이웃나라이긴 하지만 영토나 국경 등을 두고 분쟁 갈등 거리도 없고 오일머니를 통해 경제적으로 비교적 잘 사는 알제리에 튀니지인들이 석유 노동자, 편의점 직원 등으로 일하러 오기도 한다. 양국간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어서 알제리와 튀니지 국민들은 상대방 나라를 무비자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알제리가 프랑스와 식민지 독립 전쟁을 치룰 당시 튀니지는 프랑스를 비판하며 알제리를 지지한 적도 있었다. 튀니지는 알제리와 프랑스가 프랑스 식민지 시절 과거사 문제로 두 나라가 대립할때면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군이 알제리인에게 자행한 학살 등 전쟁 범죄와 만행을 인정하며 알제리를 지지한다.

반대로 모로코와는 영토 문제와 같이 서사하라 문제로 갈등도 있고 국경에서 총격전도 치룬 바 있다. 더불어 지금도 서사하라 독립군들을 지원하며 서사하라 망명정부를 받아주었다. 같은 이유로 모리타니와도 갈등이 남아있다. 물론 모리타니는 1984년 서사하라를 인정했다. 게다가 냉전 때는 알제리는 공산 국가는 아니지만 상당히 좌경화된 반서방 진영에 가까웠던 반면 모로코는 역사적,외교적 수사라 한들 미국의 가장 오래된 우방으로 굳건한 반공 자본주의 세계와 가까웠기에 이념적인 갈등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나아진 편이다.

이슬람 과격파 지원 문제로 카다피를 추궁하면서 역시 리비아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2011년 리비아 내전 당시에 카다피의 딸 등의 망명을 받아주기도 했던 걸로 보면 과거에 안 좋았던 건 일시적인 듯 하고 리비아와의 관계도 우호적인 편이다. 서사하라를 국가로 인정하는 것도 같고 냉전시기에 반미, 반서방 외교노선도 같이 했던 사이이기도 하고.

이집트와는 국경이 없는 먼 나라인데다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적이 있는지 공식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지만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수단에서의 중립경기까지 갈때 과정에서 사이가 엄청 나빠졌다. 이집트 원정에서 이집트 광팬들이 알제리 선수단에 폭력을 행사해(벽돌 따위를 던졌다고 한다) 선수들이 부상을 당했고(이집트의 쐐기골 영상을 보면 벤치에서 머리와 팔에 붕대를 한 채 허탈해하는 알제리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이 영향인지 이집트에 골득실 동률이 되는 패배까지 당하며 수단에서의 중립경기를 벌였는데, 쌓이고 쌓인 감정 때문에 양측 관중들이 충돌하며 양국간 외교문제로까지 번졌을 정도..그렇지만 6년전 이야기인데다 먼 나라의 관계여서 지금은 과거보다 꽤 좋아진 편이다.
2018년 1월 23일에 알제리와 말리는 합동보안위원회 회의를 열어서 국경선에 대한 보안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

또한, 알제리는 아프리카 연합에도 가입되어 있다.

9.6. 중국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국과는 프랑스와 독립한 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프랑스에 대한 반감으로 친러성향을 띄면서 친중성향도 강하게 띄고 있다. 그리고 알제리는 소련제 무기와 중국제 무기를 수입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21세기에도 깊어지고 있으면서 중국 기업들도 알제리에 많이 진출했고 중국인 공동체도 존재한다.

9.7. 대한민국

1963년 북한과 단독 수교한 이래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였으며 대한민국 1962년 알제리를 독립국으로 공식 인정하였지만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국제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었던 반한(反韓) 성향의 국가로 대한민국 외에도 미국 서방국가와도 적대관계를 맺었으며(반서방) 국제사회에서도 북한, 소련, 쿠바 등 공산국가들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는 등 친(親) 공산 성향 및 친북(親北) 외교를 고수하며 한국을 적대시해 왔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의외로 자국 선수단을 서울특별시에 공식 파견한 데 이어서 2년 후인 1990년에는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여 오랫동안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였고 이후 아프리카 경제 교역 상대국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1993 대전 엑스포에서는 '중동공동관' 국가로 모리타니, 수단, 요르단과 공동참가하였다. 알제리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1,183명이고 대부분 현지에 진출한 건설 인력들이다. 그러나 재외 한국 학교도 없을 뿐더러 현지에서 한국어 수업을 개설하지 않았다. 이 탓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알제리 노선을 못 만들어 한국인이 알제리에 가려면 제3국에( 파리, 이스탄불, 도하, 두바이 등) 가서 비행기를 최소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알제리 외교부 인사 인터뷰를 보면 한국은 알제리를 너무 모르며 프랑스어나 아랍어를 모르고 그저 영어만 알고 알제리에서 구사하며 자원 계약이나 무역을 하러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은근히 비아냥거린 바 있다.

다만, 막상 현지인과 프랑스어나 아랍어로 의사소통만 원활히 할 수 있다면 알제리인들은 한국인을 매우 좋아한다. 알제리인과 한국은 역사적인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식민 통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유대감을 형성할 계기를 만들어 주는데 대부분의 알제리인들은 자기네 나라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외지인에 대해 엄청 호의를 가지고 다가온다. 거기다가 역사적인 공감으로 인한 시너지는 충분히 알제리와 대한민국 사이에 좋은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연줄을 엄청 중요시여겨 친구를 한명 제대로 사귀고 나면 알제리를 여행하는 도중 일어나는 여러 일에 대해 엄청 잘 도움을 주는 정도. 특히 수도 알제에 있는 한국대사관 주변에 사는 알제리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주변에 사는 알제리인들은 대부분 알제리의 재력가이고 여행객들이 영어로 말하지 않으려하고 아랍어나 프랑스어를 섞은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만이라도 보이면 엄청 호의적으로 생각한다.
실제 알제리로 여행을 갈 계획이 있는 여행객들에게몇가지 팁을 주자면 알제리는 북쪽 해안 휴양도시 오란과 수도인 알제를 빼면 여행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동부에 있는 콘스탄틴이라는 도시의 위험도는 중간정도(외교부에서 아무런 위험을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행동거지에 의해 위험할 수는 있다는 뜻.). 콘스탄틴은 수많은 협곡으로 이루어진 도시로써 그 협곡과 협곡을 이어주려 로마시대에 만든 아치꼴 다리와 수많은 로마시대 조형물들이 아직까지 아름답게 보존되어있는 도시이다.(유튜브를 통하면 콘스탄틴 상공에서 콘스탄틴을 드론 촬영한 영상을 볼 수 있다.)

북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지령 출신 국가들 중 한국과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 국가이다. 한국과의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주변의 튀니지, 모로코 등과 달리 사전에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만 갈수 있는데다가, 발급이 워낙 번거로워서[11] 여행 이야기가 많은 모로코와 튀니지와 달리 알제리는 여행을 갔다오거나 이들 국경을 접한 3개국 전체를 여행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별로 없는 편이다.

2007년 6월 15일에 한-알제리 형사사법공조조약이 발효됐다. #

2018년 12월에 알제리를 방문중인 이낙연 국무총리는 12월 17일에 알제리의 아흐메드 우야히아 총리와 회담하면서 인프라 등 각종 사업에 한국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 그리고 이낙연 총리는 대우건설이 건설중인 발전소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

현대엔지니어링은 ARNA에 1,200MW급, BISKRA와 JIJEL에 각각 1,400MW급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알제리는 프랑스어가 널리 사용되는 국가라서 의외로 프랑스어와 관련된 한국 기업들중에는 알제리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편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이 2020년초에 알제리에서 대형 정유 플랜트를 공동수주했다. # 그리고 현대건설은 알제리에서 8,500억원 규모 복합화력발전소건설을 수주했다. #

9.8. 터키

터키 오스만 제국시절에 알제리지역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양국은 대체로 우호적인 편이고 종교적인 면에서도 가까운 편이다.

10. 알제리의 도시

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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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관련 문서



[1] # [2] 서사하라는 알제리에서 공식 승인하고 적극 지지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승인하는 나라가 많지 않은 미승인국가다. [3] 과거 알제리 독립 전쟁 과정에서 소련에게 군사 지원을 받았던 덕택에 친소국가가 되면서 독립 이후에도 외국인에게 폐쇄적인 국가로 남았다. [4]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로마인 이야기' 제10권에서도 직접 소개하고 있다. [5] 성지 메카 순례를 금지하거나 프랑스인 거주지역에 이주 금지, 다만 허드렛일같은 일 하는 사람만 예외. [6] 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신과 인간>은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7] 프랑스 식민 영향과 정부의 세속주의 추구도 있긴 하지만, 원래 다수를 차지하는 베르베르족의 여권은 이슬람 도래 이전에도 열악하지 않았다. 아랍인의 침략에 저항한 베르베르족 족장도 여성이었다. 심지어 알제리에는 근본주의 이슬람에서 금지하고 있는 위인의 동상까지도 세워져 있다. [8] 그나마도 2009년 이전에는 목요일과 금요일이 주말이었다. 목금 주말제가 서방과의 교류의 지장을 준다고 목요일 대신 토요일을 주말에 넣은 것. [9] 근데 이쪽도 프랑스계 국가다(...). [10] 이후 이란이 1992년 1월에 알제리의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세력인 '이슬람 구원 전선'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알제리 정부가 반발하면서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이 역할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약 2개월 후인 같은 해 3월부터는 파키스탄이 미국 내 이란의 이익대표국 역할을 맡고 있다. [11] 비자 신청, 발급 과정이 2~3 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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