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대 28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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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武
(? ~ 61)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자급(子張). 형주 남양군(南陽郡) 호양현(湖陽縣) 사람이다. 운대 28장 중 한명으로 서열 15위에 속한다.2. 생애
젊었을 적 누군가의 원한을 사는 바람에 고향을 떠나 강하(江夏)로 피신하였다. 신나라 말, 경릉(竟陵), 서양(西陽)의 삼로(三老)가 거병하자 마무도 동참했고, 이후 녹림군에 소속되어 신나라군과 싸웠다. 녹림군에 의해 옹립된 경시제 유현(劉玄)은 마무를 시중에 임명했다가 진위장군으로 삼았다.경시 2년(24년), 경시제는 본래 대사마 유수를 의심하여 하북으로 보내 적들의 손을 빌어 제거하려 했으나, 유수가 되려 하북에서 승승장구하니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마무와 상서령 사궁(謝躬)을 보냈다. 마무와 사궁은 유수를 도와 왕랑의 근거지인 한단(邯鄲)을 함락하였다. 왕랑을 주살한 유수는 마무와 사궁을 불러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는 그 자리에서 사궁을 암살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술자리가 파하고 유수는 마무만 따로 남게 한 뒤, 함께 무령총대(武靈叢臺)[1]에 올라 마무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내 어양(漁陽)과 상곡(上谷)의 돌기병대를 얻었으니, 장군으로 하여금 이들을 이끌게 하려는데 장군의 생각은 어떠한가?"
마무는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며 한사코 사양하자 유수가 웃으며 말했다."장군은 오랫동안 장수로 있어 병사에 익숙할텐데 어찌 나의 연사(掾史)들과 같으리오!"
실제 그에게 부대를 맡기진 않았으나 유수가 자신에게 거리낌없이 핵심 전력을 맡을 것을 제안하며 신뢰를 보여주니, 마무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유수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이후 사궁이 제거당하자 마무는 사견(射犬)으로 달려가 유수에게 곧바로 투항하였다. 유수는 마무가 온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였고, 잔치를 열어 제장들을 위로할 때 마무가 일어나 직접 장수들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잔치가 무르익고 어느덧 취기가 오른 유수는 그에게 농담삼아 그때의 제안을 지금이라도 받아들이겠냐 물었다. 이에 마무가 머리를 조아리며 유수의 곁에 머무르고 싶다 답하니 유수는 무척 즐거워하였다.유수가 도적떼 우래(尤來)와 오번(五幡)을 토벌하다가 신수(愼水)에서 이들에게 역전당해 퇴각하였다. 후군(後軍)을 이끌던 마무는 자신의 부대만으로 자리를 지키며 몰려 오는 적들을 막아내 유수의 주력이 무사히 전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도왔다. 패잔병 수습을 마친 유수는 다시 진격하여 안차(安次), 소광양(小廣陽)에 이르렀는데, 마무는 언제나 선봉에 서서 적들을 격파하고, 여러 장수들과 함께 평곡(平谷), 준미(浚靡)까지 도적들을 몰아낸 끝에 돌아왔다.
건무 원년(25년), 마무가 제일 먼저 유수에게 칭제를 권했지만 거절당했다. 유수는 이후로도 한 차례 더 칭제를 거절하다가 호현(鄗縣)에 이르렀을 때 제장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에 즉위하였다. 광무제는 마무를 시중, 기도위로 삼고 산도후(山都侯)에 봉하였다.
건무 4년(28년), 호아대장군 갑연과 함께 경시제가 임명한 양왕(梁王) 유영(劉永)을 정벌하는 임무를 맡았다. 마무는 갑연과 군사를 나누고 제음(濟陰)을 공격해 성무(成武), 초구(楚丘)를 함락시키는 전공을 세워 포로장군으로 승진하였다.
건무 5년(29년), 평적장군 방맹(龐萌)이 갑연의 지휘 아래 동헌을 토벌하던 중, 초군태수 손맹(孫萌)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상관인 갑연의 부대를 기습하였다. 갑연은 방맹과 여러 번 싸웠으나 모두 이기지 못하니, 인근에 있던 마무가 도성(桃城)으로 가 방맹을 쳤다. 때마침 광무제도 군사를 거느리고 친정하여 방맹을 공격했고, 방맹은 결국 대패하여 동헌에게로 도망쳤다.
건무 6년(30년), 마무는 건위대장군 경엄 휘하에서 다른 다섯 명의 장수들과 함께 농도(隴道)를 지켰는데, 서주(西州)의 군벌 외효가 장수 왕원(王元)을 보내 공격해왔다. 경엄 등은 전세가 불리하여 농도를 왕원에게 내어주고 농(隴)으로 급히 후퇴하였다. 왕원이 끈질기게 추격해오자 마무는 정예 기병들을 엄선해 후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직접 창을 들고 정예 기병들과 적진으로 돌격하여 적병 수천 명을 베고 부대로 복귀했다. 얼마 뒤, 광무제가 장안에 병력을 소집한 후 서쪽으로 친정하여 외효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광무제가 나머지 장수들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돌아갈 때, 마무는 광무제를 수행해 장안으로 갔다.
건무 13년(37년), 광무제가 마무의 식읍을 늘려주고 그를 유후(鄃侯)로 개봉하였다. 마무는 하곡양(下曲陽)에 주둔하며 흉노에 대비하다가 사사로이 군리(軍吏)를 처형했다는 이유로 탄핵되어 수도로 소환되었다. 마무는 처자식을 거느리고 지름길을 통해 낙양으로 달려가 장군의 인수를 반납하면서 면직되었다. 광무제는 그의 식읍 5백 호를 삭감해 양허후(楊虛侯)로 전봉시키고, 봉조청(奉朝請)으로 삼아 조정에 행사나 의례 등이 있을 때만 입조하도록 하였다.
건무 25년(49년), 몇 해 전에 마원과 유륭이 평정했던 무릉만이 또 반란을 일으켰다. 광무제는 마무를 중랑장으로 다시 기용해 무릉만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마무는 군사를 이끌고 무릉만을 격파하고 돌아와 인수를 반납하였다.
영평 원년(58년), 광무제가 사망하고 명제가 황위를 계승하였다. 서강족(西羌)은 정권이 불안한 틈을 노려 농우(隴右)를 침노하니, 명제는 마무를 다시 포로장군으로 임명하고 삼보(三輔)와 양주(涼州) 산하 군(郡)에서 병사를 징집해 이를 토벌하게 하였다. 마무는 도합 4만의 군사를 모아 중랑장 왕풍(王豊), 감군사자 두고(竇固), 우보도위 진흔(陳訢)을 거느리고 호미(浩亹)에서 서강족과 싸워 승리하였다. 패배한 서강족은 낙도곡(洛都谷)에서 항거했으나 마무는 이들을 또 격파하고 천여 명을 베었다. 서강족이 변방으로 도망치려 하자 마무는 다시 군사를 몰아, 동한(東邯)과 서한(西邯)에서 이들을 붙잡아 4,600여 명을 참수하고 1,600여 명을 사로잡으니, 그 잔당들은 모두 항복하거나 흩어졌다. 마무는 개선하여 장안으로 돌아왔고, 명제가 식읍 700호를 더해주니 그의 식읍이 1,800호에 달했다.
영평 4년(61년), 마무가 사망하고 아들 마단(馬檀)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마단의 형 마백제(馬伯濟)가 초왕(楚王) 유영(劉英)의 난에 가담하는 바람에 연좌되어 봉국이 폐지되었다. 다행히 훗날 화희황후가 개국공신의 후손들을 찾아내 표창할 때 마무의 손자 마진(馬震) 또한 복권되어 유정후(漻亭侯)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