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8 14: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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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

1. 개요

Acacian Schism

서기 484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아카키오스가 발표한 헤노티콘(Henoticon)에 교황 펠릭스 3세가 반발하면서 벌어진 동서 교회 분열. 519년에 종식되었다.

2. 전개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단성론을 이단으로 정죄하였지만, 단성론은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고 칼케돈파와 단성론파 간의 갈등은 수십년간 지속되었다. 457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프로테리오스가 살해당했고, 단성론파인 디모데 3세 아엘로스가 뒤를 이었다. 475년 칼케돈파인 살로파키오로스가 그를 밀어내고 새 총대주교가 되었지만 477년 사망하였고, 아엘로스가 다시 총대주교에 선임되었다. 481년 아엘로스가 사망한 뒤, 칼케돈파 요안니스 탈라이아가 새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단성론파는 이에 불복하여, 자신들과 가까운 페터르 몽고스를 482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내세워 탈라이아에 대적했다.

한편, 콘스탄티노폴리스 역시 정국 혼란에 휩싸였다. 474년 레오 1세가 사망하자, 아들 레오 2세가 즉위했으나 겨우 10개월만에 사망하고 제노가 새 황제로 등극했다. 475년 바실리스쿠스가 반란을 일으켜 제노를 축출하고 새 황제가 되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디모데 아엘로스의 영향을 받아 칼케돈 공의회를 거부하는 선언문 에킬리오스(egkylios)를 발표했다. 하지만 476년 8월 제노가 일루스의 도움으로 바실리쿠스를 몰아내고 제위에 복귀했다. 제노는 에킬리오스를 부정했지만, 칼케돈파와 단성론파의 갈등을 중재해 제국의 단합을 이끌어낼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황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아카키오스에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누구를 세울지를 물었고, 더 나아가 모두를 만족시킬 신경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카키오스는 오랫동안 장고를 거듭한 끝에, 자신을 무시하고 로마 교황 심플리치오와 협력하는 탈라이아보다는 페터르 몽고스를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추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또한 그는 제국의 단결을 이루기 위해 헤노티콘(Henoticon)을 발표했다. 헤노티콘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재확인하고, 에우티케스의 교리와 네스토리우스의 교리를 비난하고,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의 아나타마를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다만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 명확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단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라고만 묘사해, 반발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페터르 몽고스는 헤노티콘을 기꺼이 수용했지만, 탈라이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카키오스는 이를 명분으로 삼아 제노에게 탈라이아를 파면하고 몽고스를 새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세우라고 권했고, 제노는 그 말에 따랐다. 이렇게 밀려난 탈라이아는 로마로 피신한 뒤 교황청에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고, 교황 심플리치오는 페터르 몽고스가 알렉산드리아의 단성론파와 깊은 연관이 있다며 서한을 보내 항의했다. 그러나 제노와 아카키오스는 무시했다.

심플리치오가 483년 3월 10일 사망한 뒤, 새 교황 펠릭스 3세는 비탈리스와 미세누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사절로 가서 아카키오스에게 로마로 와서 탈라이아의 고소에 응답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카키오스는 사절들을 회유했고, 사절들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484년 로마로 돌아갔다. 펠릭스 3세는 공의회를 소집해 두 주교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임 및 파문하고, 아카키오스를 파문하기로 결의했다. 투투스는 교황의 지시에 따라 아카키오스에게 파문장을 전달하려 했다. 아카키오스가 면담조차 하지 않자, 그는 파문장을 양피지에 배껴 쓴 뒤 소피아 대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아카키오스의 외투에 몰래 넣었다. 아카키오스는 몇 달 후 외투 주머니에서 이걸 발견하고 분노하였고, 펠릭스 3세의 이름을 딥티코스(diptyque)에서 삭제했다. 딥티코스는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세계 정교회 독립교회 주교들의 명단으로, 성찬예배 중에 보제가 큰소리로 낭송하는데, 세계 각지 여러 정교회들과 영적으로 연대하고 기억하는 걸 암시한다. 반면에 딥티코스에서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은 상대를 독립교회의 합법적인 수장으로, 또는 아예 독립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동서교회의 분열을 야기하면서까지 밀어붙였으나, 헤노티콘은 제노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수많은 이들은 헤노티콘이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지나치게 모호하다며 불만을 제기했다. 제노와 아카키오스는 이들을 파면하고 박해를 가함으로써 동방 전역이 수용하게 만들려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다 489년 아카키오스가 죽었고, 491년 제노가 사망했다. 뒤이어 새 황제가 된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단성론 신자였지만, 황제로서 칼케돈 공의회를 따르겠다고 밝혀 문제를 일단락시켰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교황 펠릭스 3세에게 화해를 제안했지만, 헤노티콘을 부정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펠릭스 3세는 황제를 파문하지는 않았지만 강하게 비판했다.

492년 펠릭스 3세가 선종한 뒤 뒤를 이은 젤라시오 1세도 단성론을 철저히 배격하고, 교황이 모든 주교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아나스타시우스 1세에게 "신권과 왕권은 구분되며, 사제는 세속 권력을 준수하고 황제는 교황의 권위를 기꺼이 승인해야 한다"며 황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직접 임명하는 걸 비판하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496년 새 교황에 즉위한 아나스타시오 2세는 동방 교회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 과정에서 동방 교회에 유화적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로마에 혼란이 벌어졌다.

498년 11월 22일 아나스타시오 2세가 급사한 뒤 헤노티콘을 배격하는 성향의 심마코가 새 교황에 선출되었지만, 같은 날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받은 수석사제 라우렌시오 대립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테오도리크 대왕이 보다못해 직접 나서서 더 많은 지지자를 얻은 심마코가 교황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라우렌시오 측에서 심마코가 표를 얻기 위해 금품을 살포했으므로 선출 자체가 무효라 주장하면서 논란은 계속되었다. 심마코는 499년 3월 1일 로마 공의회를 소집한 뒤 주교들의 지지를 받아내고, 라우렌시오를 캄파니아 지방 누체리아의 주교로 임명했다.

그러나 501년 라우렌시오의 지지자들이 심마코가 부활절 미사 날짜를 지키지 않은 점과, 그 외에 각종 비리 혐의로 고발했다. 테오도리크 대왕이 심마코에게 소환령을 내리자, 심마코는 도주했다. 라우렌시오는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로마에 입성한 뒤 교황을 자칭했다. 테오도리크 대왕은 로마에서 공의회를 재소집하기로 했고, 심마코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하기로 했다. 그런데 공의회는 교황이 주최해야 하나, 심마코가 죄인이 되어버리면 교황이 없으니 공의회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 또한 교황을 신이 아닌 사람이 정죄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결국 로마에서 공의회를 반대하는 소요가 벌어졌다.

주교들은 이 혼란에 지쳐 돌아가려 했지만, 어떻게든 합의를 보라는 테오도리크 대왕의 엄명에 굴복하여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을 사람이 치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심마코가 계속 교황 직을 유지하게 하였다. 그러나 소요는 계속 이어졌고, 라우렌시오는 4년간 교황을 자칭했다. 심마코는 이에 대항하고자 교회 심판 기록들을 조작하였고, 정쟁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506년 테오도리크 대왕은 라우렌시오를 로마에서 영구 추방하고 심마코를 교황으로 확정지으면서, 이 소란은 마침내 종결되었다. 한편,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말년에 단성론을 정식 교리로 확정지으려 시도했다가 513년 플라비우스 비탈리아누스의 반란을 겪어야 했다. 결국 그는 계획을 포기하였고, 단성론은 계속 이단으로 남았다.

519년, 황제 유스티누스 1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요안니스 2세는 호르미스다 교황에게 화해 의사를 내비쳤다. 이에 호르미스다는 헤노티콘을 배격하고 아카키오스를 정죄하는 신조에 서명하라고 요구했고, 유스티누스 1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아카키오스 분열이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