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21:01:07

조이(로마)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조이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4A3800; margin: -5px 0px"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리비아 드루실라 소(小) 안토니아 리비아 오레스틸라 롤리아 파울리나 밀로니아 카이소니아 메살리나 소(小) 아그리피나 클라우디아 옥타비아 포파이아 사비나 클라우디아 아우구스타 스타틸리아 메살리나
네 황제의 해 갈레리아 푼다나
플라비우스 왕조 소 도미틸라 도미티아 롱기나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폼페이아 플로티나 울피아 마르키아나 살로니아 마티디아 비비아 사비나 대(大) 파우스티나 소(小) 파우스티나 루킬라 브루티아 크리스피나
다섯 황제의 해 플라비아 티티아나 만리아 스칸틸라 디디아 클라라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돔나 풀비아 플라우틸라
마크리누스 노니아 켈사
세베루스 왕조 율리아 코르넬리아 파울라 아퀼리아 세베라 안니아 파우스티나 율리아 마이사 율리아 소아이미아스 율리아 아비타 마마이아 살루스티아 오르비아나
군인 황제 시대 카이킬리아 파울리나 파비아 오레스틸라 안토니아 고르디아나 트란퀼리나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 헤레니아 에트루킬라 코르넬리아 수페라 에그나티아 마리니아나 코르넬리아 갈로니아 코르넬리아 살로니나 술피키아 드리안틸라 빅토리아 제노비아 울피아 세베리나 마그니아 우르비카
사두정치 아우렐리아 프리스카 에우트로피아 갈레리아 발레리아 발레리아 막시밀리아
콘스탄티누스 왕조 플라비아 막시미아나 테오도라 플라비아 율리아 헬레나 미네르비나 플라비아 막시마 파우스타 플라비아 발레리아 콘스탄티나 플라비아 율리아 콘스탄티아 율리우스 콘스탄티우스의 딸 플라비아 에우세비아 파우스티나 헬레나
요비아누스 차리토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마리나 세베라 유스티나 알비아 돔니카 플라비아 막시마 콘스탄티아 레타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일리아 플라킬리아 플라비아 갈라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마리아 테르만티아 아일리아 풀케리아 갈라 플라키디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 유스타 그라타 호노리아 리키니아 에우독시아
레오 왕조 아일리아 마르키아 에우페미아 플라키디아 율리우스 네포스의 아내 아일리아 베리나 아일리아 아리아드네 아일리아 제노니스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에우페미아 테오도라 아일리아 소피아 아일리아 아나스타시아 콘스탄티나
포카스 레온티아
이라클리오스 왕조 파비아 에우도키아 마르티나 아우구스티나 아나스타시아 그레고리아 파우스타 아나스타시아 에우도키아 하자르의 테오도라
아나스타시오스 2세 이리니
이사브리아 왕조 마리아 안나 하자르의 이리니 마리아 에우도키아 이리니 암니아의 마리아 테오도테
니키포로스 왕조 테오파노 프로코피아
레온 5세 테오도시아
아모리아 왕조 테클라 에우프로시나 테오도라 에우도키아 데카폴리티사 테클라 안나 아나스타시아
마케도니아 왕조 에우도키아 잉게리나 테오파노 마르티나키아 조이 자우치나 에우도키아 베아나 조이 카르보노프시나 테오도라 엘레니 레카피니 소피아 안나 가발라 엘레니 테오파노 마마스 베르타 테오파노 테오도라 엘레니 알리피아 조이 테오도라
콤니노스 왕조 불가리아의 예카테리나
두카스 왕조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 알라니아의 마리아
콤니노스 왕조 안나 달라시니 이리니 두케나 헝가리의 이리니 키예프의 도브로데이아 줄츠바흐의 베르타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프랑스의 아녜스
앙겔로스 왕조 헝가리의 머르기트 에우프로시나 두케나 카마테리나 에우도키아 앙겔리나
라스카리스 왕조 안나 앙겔리나 아르메니아의 필리파 마리 드 쿠르트네 이리니 라스카리나 호엔슈타우펜의 안나 불가리아의 엘레나 아세니나
팔레올로고스 왕조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 헝가리의 언너 몬페라토의 이리니 아르메니아의 마리아 브라운슈바이크의 이리니 사보이아의 안나 이리니 아사니나 엘레니 칸타쿠지니 이리니 팔레올로기나 불가리아의 케라차 마리아 엘레니 드라가시 이리니 가틸루시오 안나 바실리예브나 몬페라토의 소피아 트라페준타의 마리아 }}}}}}}}}}}}
로마 제국 제101대 황제
조이
Ζωή Πορφυρογέννητη
파일:XTOZaBT.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조이 포르피로게니타
(Ζωή Πορφυρογέννητη)
출생 978년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사망 1050년 (향년 72세)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
재위 기간 로마 황제
1042년 4월 21일 ~ 1042년 6월 11일 (2개월)
전임자 미하일 5세
후임자 콘스탄티노스 9세
부모 아버지 : 콘스탄티노스 8세
어머니 : 엘레니 알리피아
배우자 로마노스 3세, 미하일 4세, 콘스탄티노스 9세
자녀 미하일 5세 (양자)
종교 기독교
1. 개요2. 생애3. 여담4. 같이보기

[clearfix]
지위 기간
로마노스 3세의 황후 1028년 11월~1034년 4월
미하일 4세의 황후 1034년 4월~1041년 12월
미하일 5세의 모후 1041년 12월~1042년 4월
테오도라와 공동 황제 1042년 4월~1042년 6월
콘스탄티노스 9세의 황후 1042년 6월~1050년

1. 개요

로마 제국의 101대 황제이자[3] 마케도니아 왕조의 14대 황제. 동명이인들과의 구별을 위해 'Zoë Porphyrogenita(조이 포르피로게니타)'로 칭해지기도 한다.

콘스탄티노스 8세 엘레니 알리피아의 차녀. 당시 동로마 제국의 몇 안되는 포르피로옌니티였다.

2. 생애

세 자매 중 가장 아름다워 구혼자가 줄을 설 정도였지만, 조카딸이 결혼할 경우 조카사위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여긴 숙부 바실리오스 2세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아예 결혼을 안 시키려 했던건 아니고 23세 때 신성 로마 제국 오토 3세와의 혼담이 성사되어 성대한 결혼식 행렬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났는데 신랑이 식을 올리기는 커녕 얼굴도 보기 전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50세가 되도록 결혼을 못했던 것이다.

1028년, 아들이 없던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8세의 임종이 가까워 오자 조이는 차기 황제로 세울 남편감을 찾게 된다.[4] 그녀의 첫번째 남편이 로마노스 3세[5]이다. 조이는 로마노스 3세와 결혼한 뒤 자식을 보길 바랐지만[6] 로마노스 3세는 안그래도 조강지처와 강제로 이혼당하고 조이와 결혼한 마당에다가 새 아내는 이미 50세가 넘었으니 조이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로마노스 3세는 조이와의 동침을 거절하고 각방을 썼으며, 조이의 지출을 제한한데다 나중엔 젊은 정부까지 들이게 된다.

그러던 중 조이는 환관장의 소개로 환관장의 동생인 젊은 미남 미하일을 총애하게 되었고, 시름시름 앓던 로마노스 3세가 목욕탕에서 의문사한 날 곧바로 미하일과 재혼하여 미하일 4세로 즉위시켰다. 미하일 4세는 명군이 될 자질을 보여주었으나 젊은 나이에 병들어 죽었다.

미하일 4세가 죽자 조이와 미하일 4세의 양자 미하일 5세[7]가 즉위했다. 그러나 양아들 미하일 5세는 황제로 즉위한 후 양어머니인 조이를 박해하고 추방하여[8] 반발을 사 몇달 후 시민군의 반란에 의해 폐위되었다.[9]

시민군에 의해 조이는 여동생 테오도라와 공동 여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테오도라를 싫어한 조이는 얼마 후 콘스탄티노스 9세와 재혼해 그를 새 황제로 삼고 자신은 테오도라와 같이 황제에서 물러나 다시 황후가 되었다. 세번째 남편 콘스탄티노스 9세는 정실부인이자 계승권자이며 포르피로옌니티인 조이를 멀리하고 젊은 애인인 마리아 스클레리나(Maria Sklrarina)를 가까이하다가 1044년 축일 행진 중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는 문제가 있었다. 조이는 1050년에 72세로 죽었다.

정리하자면 조이는 1028년~1042년 동안 황후 또는 모후로서 첫번째 남편( 로마노스 3세), 두번째 남편( 미하일 4세), 양아들( 미하일 5세)을 차례대로 황제로 삼았고, 1042년에 두달 간 여동생( 테오도라)과 공동 여황제였다가, 다시 황후가 되어 세번째 남편( 콘스탄티노스 9세)을 황제로 삼았다.

3. 여담

50세가 되는 해에 첫 결혼을 했기에 결혼을 3번이나 했지만 자식이 없었다. 본인은 평생 결혼을 꿈꾸며 간절히 자식을 원했지만 그와 반대되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아야 소피아 콘스탄티노스 9세와 조이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사실 이 모자이크는 그녀가 재혼을 할 때마다 남편의 얼굴과 이름을 새 남편에 맞추어 바꾼 거라고 한다.
파일:ofeVGwl.jpg

4. 같이보기



[1] 신약 성경이 쓰여지던 시절의 그리스어로 하면 조에가 맞다. 하지만 그 시절과 이 사람이 살던 시절과는 거의 1000년의 갭이 있으며, 그리스어는 2세기~4세기 이후 모음 단순화 현상이 벌어져 η의 발음이 i로 변동되었다. 때문에 조이로 읽는게 옳다. [2] Ζωή는 그리스어로 '생명'이라는 뜻이다. [3] 테오도라 여제와 공동 즉위했기 때문에 테오도라도 101대 황제이다. [4] 콘스탄티노스 8세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사후 조이의 남편이 황제가 되고 조이는 황후가 된다. 이렇게 황녀가 정통성을 갖고서 군주로서의 남편을 택군(擇君)하는 제위계승 메카니즘은 전대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일리아 풀케리아 레오 왕조 아일리아 아리아드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제까지 오른 것은 조이 뿐인데, 이는 마케도니아 왕조의 통치기간이 테오도시우스 왕조나 레오 왕조와는 달리 당시 기준으로 150년이 넘었을 정도로 오래되어서 정통성 내지는 통치 정당성을 더욱 높게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5] 로마노스 1세 레카피노스의 딸의 아들의 아들이 콘스탄티노스 8세였고, 또다른 딸이 아르이로스 가로 시집가서 낳은 아들의 아들이 로마노스 3세라 6촌간이다. 즉 조이와 테오도라 자매에게는 7촌 아저씨. 원래 결혼 예정에 있었지만 친척이라 로마노스 3세가 고사했으나, 부황 콘스탄티노스가 죽음 목전에 그를 결혼하라고 강제 지명했다. [6] 임신을 위해 온갖 약물과 부적, 주술까지 동원했다고 하지만 40대 임신이 꽤 많이 늘어난 요즘도 50대가 임신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인데 당시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7] 미하일 4세의 누나의 아들이었다. [8] Anthony Kaldellis의 Byzantine Republic 92쪽에는 'had her tonsured', 즉 남자 성직자처럼 대머리 일부가 보이게끔 삭발시켰다고 한다. [9] 당시 바랑기안 가드로 복무 중이던 노르웨이의 하랄 3세는 이때 자기가 직접 미하일 5세의 눈을 뽑아 죽였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물론 과장이 섞인 영웅담이겠지만 하랄 3세가 미하일 5세 폐위 반란에 참가한 건 사실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