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02:55:33

암흑시대


1. 개요2. 사례
2.1. 고대 그리스 중기2.2. 중세 유럽
2.2.1. 중세 암흑시대론과 반박
3. 창작물 속의 암흑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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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암흑시대(暗黑時代, Dark Ages)는 인류사에서 문화가 쇠퇴한 시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역사학에서는 대개 아래에서 제시한 고대 그리스의 암흑시대와 서로마 제국 붕괴 이후 서유럽 중세 초기를 가리키는 말로, 일반인들 사이에선 다른 시기로 좀 더 확장해서 쓰기도 한다.

"문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전쟁이 일어나고 살기 힘든 시대를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즉, 당시의 세태가 매우 암울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암흑'이라는 단어가 붙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록이 없어져서 당시에 대해 연구하기가 매우 힘든 시기라는 것. 고고학 발굴로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릴 수 있기는 하지만 상세한 연대기가 없기 때문에, 학자들의 눈앞이 깜깜하다는 비유로 이해하면 좋다.

동양권에서는 진나라의 분서갱유 문화대혁명 시기가 암흑시대로 꼽힌다.[1] 특히 문화대혁명의 경우 중국 자국민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궁중음식 만한전석의 구성조차 중국인들이 직접 샅샅이 뒤져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유실되어서, 오죽하면 중공 학자들이 해당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바다 건너 대한민국이나 철천지원수 중화민국까지 날아가야 했었다.

2. 사례

2.1. 고대 그리스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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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100년 즈음~기원전 750년 즈음(기원전 약 7~8세기)[2].

'그리스 암흑기'라고 불러진다. 도리아인 또는 바다 민족의 침략으로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이후 기원전 13세기부터 새로운 도시국가들이 형성되는 기원전 10세기까지를 말한다. 보통 서양사학에서 상고대와 고전 고대를 구분하는 시점으로 친다.

고대 그리스에서 미케네 문명이 붕괴하고[3] 그리스 고전기의 기록도 뭐도 아무 것도 안 남은 시기로, 1차 문헌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며, 고고학 유적과 유물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사실 이때는 미케네뿐만 아니라 히타이트, 이집트 등 동지중해의 다른 청동기 문명들도 줄줄이 아작나던 시기였다. 당시 그리스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던 왕국[4]이 망했으니 전체적인 경제력도 침체되었다. 그리스 지역과 히타이트 지역은 거의 자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초토화되었고, 이집트의 기록에 따르면 바다 민족들이 몰려와 히타이트 키프로스를 멸망시켰다고 한다.

그리스의 경우 북쪽에서 내려온 도리스인과 기타 북방 민족, 가뭄, 전염병 등에 의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그리스의 생존자들이 바다 민족이 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실제로 필리스티아의 유전자에서 그리스계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 성경》에서는 크레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으로 건너왔다고 언급되며, 이집트에서는 그들이 바다 민족의 일부라고 기록한다.

물론 이 시기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한 건 절대 아니었고, 페니키아인들에게서 페니키아 문자를 배워와 그리스 문자로 사용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기원전 8세기 중엽 호메로스로 대표되는 기록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파우사니아스의 그리스 서술,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또는 디오도루스 시쿨루스라고 불리는 자의 역사집, 히에로니무스의 《크로니콘》(Chronicon) 등 2차, 3차 사료는 이 시기의 짤막한 연대기와 군주들의 목록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확실하게 알려진 자료가 없다. 자세한 건 청동기 시대 바다 민족 참조. 시사저널 -'암흑기'에서 시작되는 그리스 문명사

2.2. 중세 유럽

2.2.1. 중세 암흑시대론과 반박

흔히 '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로마 문명은 단절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엄연한 정식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위치하는 정통 로마인 동로마 제국에 의해 로마의 문명은 계승, 발전되었으며, 프랑스 아일랜드도 가톨릭 수도원들이 자체적으로 요새화하고 기록과 법치를 유지하는 등 로마의 유산을 보존했다.

또한 중세 전반을 암흑시대라고 지칭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 고대 근대는 좋은 거고, 그 사이는 나쁜 거였다. 특히 중세는 아주 나쁘다"라는 계몽주의 발흥기의 근대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편견 속에서 중세란 엄밀히 정의된 시대라기보단 눈부시게 발전했던 로마 시대보다는 이후고 문명이 발전한 지금은 아닌 그 사이의 가난하고 미개한 어느 시대라는 뜻 정도로 수백년간 사용되었다. 또 이러한 말이 나온 '근대'는 다름 아닌 르네상스 시대로, 현대 역사에서는 중세 말기에 포함되는 시대로 본다. 참고로 처음 중세를 암흑시대로 지칭한 기록은 14세기 초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저작인데 정작 14세기엔 중세 흑사병 판데믹이 터져서 후대인들은 이때 또한 암흑시대로 생각했다(...). 페트라르카 본인도 흑사병 관련으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최근 들어 중세를 재조명하려는 서양사학계에서는 중세를 마냥 암흑기라고 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하며 중세를 너무 암울하게만 해석하지는 말자는 관점이 대두되고 있으며, 국제 과학사학 및 과학철학연맹 회장인 로널드 넘버스가 이런 쪽으로 가장 잘 알려진 역사학자 중 하나이다. 굳이 어렵게 재조명할 것도 없이 당장 거성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 알리기에리가 어느 시대 사람인데 중세를 싸잡아서 암흑시대라고 하겠는가? 서유럽을 기준으로 해도 적어도 서기 1천년기 이후 이탈리아 도시국가 문명은 암흑기로 단정하기엔 중세시대 내내 지나칠 정도로 번영했으며, 오히려 중세가 끝나자마자 절대군주제와 중앙집권의 이점을 갖춘 초강대국의 침략과 정복전쟁에 휩쓸리며 쇠퇴하게 된다.

이러한 반론이 쌓이자 중세 '초' '서유럽'으로 범위를 좁혀서 암흑시대론을 계속 지지하는 역덕후들도 있지만, 역사학자들은 초기 중세 서유럽도 암흑시대로 보지 않는다.
In fact, it was a time where literature was encouraged and highly-valued, especially by the upper-echelons of Early Middle Age society.
사실, 특히 초기 중세 사회의 상류층에 의해서 문예는 장려되고 높이 평가되었다.

The term ‘the Dark Ages’ gained greater usage during the 18th century Enlightenment ...
"암흑 시대"라는 용어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

During the 20th century, many historians have rejected the term, arguing that there is a sufficient amount of scholarship and understanding of the Early Middle Ages to make it redundant. However, the term is still used in popular culture and regularly referred to.
20세기 동안, 많은 역사가들은 이 용어를 거부했다. 초기 중세에 관한 학술과 이해는 이 용어를 폐기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며.

It will take time for the term the ‘Dark Ages’ to fully fall out of use but it is clear that it is an outdated and pejorative term for a period where art, culture and literature flourished across Europe.
"암흑 시대"라는 용어가 완전히 사라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예술, 문화, 문예가 유럽에서 번창하던 시대에 대해서 이 용어가 구식이고 경멸적이라는 건 분명하다.
-트리스턴 휴스 #[5]
우선 게르만 왕국들은 매우 로마화된 국가들이었다. 가령 북아프리카 반달 왕국의 행정구조는 로마와 유사하며, 다른 게르만 왕국들 역시도 근본적으로는 서로마의 통치 엘리트들과 국가조직을 그대로 인수인계했다. 예를 들어 서고트 왕국의 경우에도 행정체계나 관직 등에 있어서 로마의 그것을 매우 똑같이 따라했으며, 이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토착 로마인들은 이들 게르만인들을 매우 무시했지만, 이것은 객관적인 의미의 문명화 문제가 아니라 민족 감정의 문제이며, 가톨릭과 아리우스파 사이의 종파적 적개심까지 섞인 문제였다. 이를테면 동고트 왕국에서 토착 로마인들과 고트족의 차이는 문명화의 차이가 아니라, 아리우스주의 고트인들과 가톨릭 로마인들 사이의 종교 차이였다.

더군다나 소위 야만적이라는 게르만인들은 의도적인 파괴 행위를 하지 않았고, 단지 정치적 난세만 야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정치적 난세에 의한 문명사적 민폐 행위는 게르만인들이 아니라 동로마인들이 훨씬 심했다. 흔히 아틸라의 파괴행위나 게르만족의 로마 약탈 등을 들기도 하는데, 밑에 나와있는 것처럼 아틸라의 파괴행위는 근본적으로 매우 극단적으로 과장, 과대평가된 면이 많으며, 게르만 족의 로마 약탈은 '파괴와 방화'라기보단 '조직적인 도둑질'이었다. 실제로 로마 약탈 당시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문화재가 최근 매우 멀쩡한 상태로 발견되어서 이탈리아에 충격을 준 바 있다.

반달족 역시 마찬가지다. 반달족은 파괴의 대명사로 쓰이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대접을 받고 있는데, 해당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오히려 반달당한 것은 반달족들이었다. 동로마가 벌인 조직적인 증오범죄는 반달족에 대한 흔적을 말끔히 일소시켜버렸을 뿐더러, 아이러니하지만 안 그래도 종파갈등으로 불안했던 기독교 카르타고 교구를 완전히 붕괴시켜 후일 이슬람 침략 이후 엄청난 속도로 이슬람화되게 하는데 영향을 크게 미쳤다. 학자들은 북아프리카 기독교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가 종파갈등 및 동로마의 파괴행위로 인한 기반 붕괴로 본다. 또 동로마 고토 수복 전쟁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로마'라는 정체성을 서유럽에서 완전히 일소시켜 버린 건 야만적인 게르만족이 아닌 무리한 침공과 악질적인 파괴행위로 로마를 서유럽 최고의 도시에서 불과 몇백명만이 사는 소도시로 만들어버린 동로마 본인들이다.[6] 그런데 도대체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이탈리아 도시들은 5세기 초와 6세기에 서방의 다른 도시들만큼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았다. 410년에 알라릭이 로마를 약탈한 사건은 심리적으로는 중대한 충격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심각한 파괴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455년 반달족의 공격조차 그렇게 심각한 참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가 재정복 전쟁을 벌이는 동안 심지어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의 대도시들 대부분은 초토화되고 인구가 격감했다.
《하이켈하임 로마사》(김덕수 번역) 981쪽
그마저도, 이탈리아는 고대부터 근대 초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문명사적으로 활기찬 곳이었다.

또한 편견과 달리 메로비우스 왕조 카롤루스 왕조의 엘리트들 대다수는 결코 문맹이 아니었으며, 이들이 통치를 위해 남긴 문서들은 양과 질에서 후기 로마제국보다 뒤떨어지지도 않았다. 학자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메로빙거 왕조시절 이미 기사들을 비롯한 귀족이나 핵심 엘리트층은 정교한 수준의 전술적, 전략적 명령을 이해하고 수행할 만한 학식이 있었으며, 군사적 능력 또한 이전에 무시되던 것과 달리 로마 시대보다 결코 발전했으면 발전했지 뒤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3. 창작물 속의 암흑시대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의 암흑시대 - 중세시대를 다루는 RTS로, 중세 초기 서유럽을 가리키는 2번째 암흑시대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게임 속 첫 시대로서 전작의 석기시대(Stone Age)와 유사하며, 건물 건설과 유닛 양성에 제약이 가장 많은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공격하는 걸 '드러시'(Drush)라고 하는데, Dark age와 Rush의 합성어이다.
  • 턴에이 건담 흑역사 - 이쪽은 기록이 정말로 지워졌다기보단, 시대가 혼란스러워서 기억하고 싶지 않아 은폐했던 역사의 의미가 크다.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 사라져버린 역사의 의미로 쓰는 단어. 문서에서도 보듯 이 단어는 오늘날 창작물 외의 분야에도 쓰이게 되었는데, 본래의 의미를 어느 정도 반영하여 '치욕스러운 시기'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1] 많은 고서들이 분서갱유를 즈음하여 실전되었으며, 이 시기 문헌은 그 이전의 것이 용케 전해진 것을 '고문'(古文), 그 이후의 것을 '금문'(今文)으로 부르곤 한다(예: 효경(孝經) - 참고 링크). 물론 '금문'도 그 시대 기준으로 '요즘 글'이라는 것이지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오래된 글이다. [2] 보통은 최초의 올림픽이 개최된 것으로 알려진 기원전 776년 시점을 암흑시대의 끝으로 본다. [3] 고대 그리스 고전기(기원전 1,100년경)의 미케네가 무너지고 선문자 B가 사라진다. [4] 미케네 왕국은 공동 경작물을 국가가 받아서 분배하는 정책을 취했다. [5] 위 인용문에선 그냥 Europe이라 언급하지만, 출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건 프랑크, 앵글로색슨 등 서방권이다. 즉 비잔티움 이야기가 아니다. [6] 이때 로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교황이 한탄을 할 정도였다. 교황마저도 없었다면 로마라는 도시는 지금쯤 이탈리아의 수도가 아니라 안티오키아처럼 버려진 작은 마을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동로마의 깽판으로 완전히 부서져버린 서유럽 간의 연결고리를 간신히 붙잡아 지탱해 끝내 서로마의 부활을 이뤄낸건 바로 기독교였다. [7] 아래의 암흑시대와 다른 게 가논돌프의 침공에 의해 일어난다. 공통점이라면 시열대가 시간의 오카리나에서 시간의 용사 링크가 가논돌프에게 패배했을 때의 시열대라는 점. [8] 중간에 볼드모트의 몰락~볼드모트의 부활까지 대략 13년 정도의 비교적 평화로운 시간이 있었지만 이 때에조차 사람들은 볼드모트를 두려워했다. [9] 사실 볼드모트에 비해서 겔러트 그린델왈드가 더욱 넓은 영향력을 끼치며 활동했기에 그린델왈드 활동기가 진정한 암흑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볼드모트는 그린델왈드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막장성으로 인해 마법사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선사하는 악몽이었다. 작중 등장인물들의 보가트(가장 두려워하는 모습)가 대부분 볼드모트인 것 역시도 이 때문으로 그 이유로 마법사들은 볼드모트가 완전히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를 두려워해야 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덤블도어의 죽음~호그와트 전투까지의 시기는 암흑시대 중에서도 가장 막장인 시대로 볼드모트 자신이 활동하던 영국 마법사 사회를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순수혈통 외 마법사들을 박해하는 막장 시대였다. [10] 이쪽은 사실 전성기지만 관련 기술과 기록이 싸그리 사라져서 암흑시대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