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30 00:04:01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왕조 틀
[ 펼치기 · 접기 ]
[[고대 로마|
파일:SPQR_sign.png 파일:투명.png
로마의 역사
Historia Romae
Ἡ Ἱστορία τῶν Ῥωμαίων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color: #fff; margin: -5px -11px; padding: 5px 0px; background-color: #9F0807"
{{{#fbe673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4A3800; margin: -5px 0px"
<colbgcolor=#fff5d2,#ccc4a8> 시대 국가
고대
로마
<colbgcolor=#FFF5D2,#ccc4a8> 왕정 <colbgcolor=#fff9e3,#ccc7b6> 로마 왕국
공화정
로마 공화국
원수정
로마 제국
갈리아 제국 | 팔미라 제국
전제정
전제정 서로마 제국
수아송 왕국
<colbgcolor=#fff9e3,#ccc7b6> 동로마 제국
중세 동로마 제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라틴 제국 니케아 제국 <colbgcolor=#faf7ed,#c8c6be> 트라페준타 제국
동로마 제국
근세
잔존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모레아 전제군주국 <colbgcolor=#faf7ed,#c8c6be> 트라페준타 제국

제정 왕조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네 황제의 해 플라비우스 왕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 오현제 다섯 황제의 해 세베루스 왕조 여섯 황제의 해 군인 황제 시대 사두정치 사두정의 내전 콘스탄티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왕조 레오 왕조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왕조 20년간의 혼란 이사브리아 왕조 니키포로스 왕조 아모리아 왕조 마케도니아 왕조 두카스 왕조 콤니노스 왕조 앙겔로스 왕조 라스카리스 왕조 팔레올로고스 왕조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font-size: 0.95em; letter-spacing: -0.35px"
원수정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가이우스(칼리굴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
네 황제의 해 갈바 |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 | 비텔리우스
플라비우스 왕조 베스파시아누스 | 티투스 | 도미티아누스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네르바 | 트라야누스 | 하드리아누스 | 안토니누스 피우스 | 공동 즉위 루키우스 베루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콤모두스
비정통 아비디우스 카시우스
다섯 황제의 해 페르티낙스 |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 페스켄니우스 니게르 | 클로디우스 알비누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세베루스 왕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 공동 즉위 게타 · 카라칼라
- 마크리누스 · 디아두메니아누스
세베루스 왕조 엘라가발루스 |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군인 황제 시대 막시미누스 트라쿠스 | 공동 즉위 고르디아누스 1세 · 고르디아누스 2세 | 공동 즉위 푸피에누스(막시무스) · 발비누스 | 고르디아누스 3세 | 필리푸스 아라부스 · 필리푸스 2세 | 데키우스 | 공동 통치 데키우스 ·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 공동 즉위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 호스틸리아누스 · 볼루시아누스 | 아이밀리아누스 | 공동 즉위 발레리아누스 · 갈리에누스 |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 퀸틸루스 | 아우렐리아누스 | 타키투스 | 플로리아누스 | 프로부스 | 카루스 | 공동 즉위 누메리아누스 · 카리누스
비정통 스폰시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 카리누스 · 디오클레티아누스
서방 동방
양두정치 막시미아누스 양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사두정치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막센티우스 | 2차 재위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누스 1세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 갈레리우스 | 리키니우스 | 막시미누스 다이아 | 발레리우스 발렌스 | 마르티니아누스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공동 즉위 콘스탄티누스 2세 · 콘스탄스
비정통 마그넨티우스 · 율리우스 네포티아누스 · 베트라니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서방 동방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콘스탄티누스 왕조 콘스탄티우스 2세
통일
콘스탄티누스 왕조 율리아누스
-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서방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1세 | 그라티아누스 |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발렌스
비정통 프로코피우스
비정통 에우게니우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마그누스 막시무스 · 플라비우스 빅토르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통일
테오도시우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동방
테오도시우스 왕조 호노리우스 | 콘스탄티우스 3세 | 발렌티니아누스 3세
비정통 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
테오도시우스 왕조 아르카디우스 | 테오도시우스 2세 | 마르키아누스
비정통 콘스탄티누스 3세 · 프리스쿠스 아탈루스 · 요안네스
최후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아비투스 | 마요리아누스 | 리비우스 세베루스 | 안테미우스 | 올리브리우스 | 글리케리우스 | 율리우스 네포스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레오 왕조 레오 1세 | 레오 2세 | 제노 | 바실리스쿠스 · 마르쿠스 | 2차 재위 제노
동방
레오 왕조 2차 재위 제노 | 아나스타시우스 1세
유스티니아누스 왕조 유스티누스 1세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유스티누스 2세 | 티베리우스 2세 | 마우리키우스 · 테오도시우스
- 포카스
이라클리오스 왕조 이라클리오스 | 공동 즉위 콘스탄티노스 3세 · 이라클로나스 · 다비드 티베리오스 | 콘스탄스 2세 · 콘스탄티노스 4세 · 이라클리오스 · 티베리오스 | 유스티니아노스 2세
20년간의 혼란 레온티오스 | 티베리오스 3세 | 2차 재위 유스티니아노스 2세 | 필리피코스 | 아나스타시오스 2세 | 테오도시오스 3세
이사브리아 왕조 레온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아르타바스도스 · 니키포로스 | 2차 재위 콘스탄티노스 5세 | 레온 4세 | 콘스탄티노스 6세 | 이리니
니키포로스 왕조 니키포로스 1세 | 스타브라키오스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테오필락토스 · 스타브라키오스
- 레온 5세 · 콘스탄티노스
아모리아 왕조 미하일 2세 | 테오필로스 | 미하일 3세
마케도니아 왕조 바실리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 레온 6세 | 알렉산드로스 2세 | 콘스탄티노스 7세 | 로마노스 1세 · 흐리스토포로스 레카피노스 · 스테파노스 레카피노스 · 콘스탄티노스 레카피노스 | 로마노스 2세 | 니키포로스 2세 | 요안니스 1세 | 바실리오스 2세 | 콘스탄티노스 8세 | 로마노스 3세 | 미하일 4세 | 미하일 5세 | 공동 즉위 조이 · 테오도라 | 콘스탄티노스 9세 | 2차 재위 테오도라
- 미하일 6세
콤니노스 왕조 이사키오스 1세
두카스 왕조 콘스탄티노스 10세 | 미하일 7세 · 콘스탄티오스 두카스 · 안드로니코스 두카스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로마노스 4세 · 레온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디오예니스 | 니키포로스 3세
콤니노스 왕조 알렉시오스 1세 · 콘스탄티노스 두카스 | 요안니스 2세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 마누일 1세 | 알렉시오스 2세 | 안드로니코스 1세
앙겔로스 왕조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3세 | 2차 재위 이사키오스 2세 | 알렉시오스 4세 | 알렉시오스 5세
니케아
라스카리스 왕조 테오도로스 1세 | 요안니스 3세 | 테오도로스 2세 | 요안니스 4세 | 미하일 8세
비정통 콘스탄티노스 라스카리스
동방
팔레올로고스 왕조 미하일 8세 | 안드로니코스 2세 | 미하일 9세 | 안드로니코스 3세 |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요안니스 6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공동 즉위 안드로니코스 4세 · 요안니스 7세 | 3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2차 재위 요안니스 7세 · 안드로니코스 5세 | 4차 재위 요안니스 5세 | 마누일 2세 | 요안니스 8세 | 콘스탄티노스 11세
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4A3800,#FFF {{{#!wiki style="margin: -5px 0px"
단독황제 양두정치 제1차 사두정치 제2차 사두정치
동방 정제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동방 부제 - 갈레리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서방 정제 - 막시미아누스 콘스탄티우스 1세
서방 부제 막시미아누스 - 콘스탄티우스 1세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  306 ~ 310년  >>>
제2차 사두정치 제3차 사두정치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갈레리우스
리키니우스
동방 부제 막시미누스 다이아
서방 정제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콘스탄티누스 1세
막시미아누스
막센티우스
서방 부제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1세 -
막센티우스
>>>  311 ~ 316년  >>>
내전기
동방 정제 갈레리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동방 부제 -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1세
막센티우스
서방 부제 - 바시아누스
>>>  316 ~ 324년  >>>
내전기
동방 정제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우스 발렌스 마르티니아누스
동방 부제 발레리우스 발렌스 - 리키니우스 2세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부제 - 크리스푸스
콘스탄티누스 2세
>>>  324 ~ 352년  >>>
콘스탄티누스 왕조
동방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우스 2세 콘스탄티우스 2세
중앙 콘스탄스 콘스탄스
서방 콘스탄티누스 2세 베트라니오
마그넨티우스
>>>  353 ~ 364년  >>>
콘스탄티누스 왕조 -
동방 콘스탄티우스 2세 콘스탄티우스 2세 율리아누스 요비아누스
서방 율리아누스
>>>  364 ~ 378년  >>>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동방 발렌티니아누스 1세 발렌스
서방 발렌티니아누스 1세 발렌티니아누스 1세 발렌티니아누스 2세
그라티아누스
>>>  379 ~ 395년  >>>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테오도시우스 왕조
동방 테오도시우스 1세 테오도시우스 1세
서방 발렌티니아누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 2세
그라티아누스 마그누스 막시무스
에우게니우스 플라비우스 빅토르
>>>  395년 ~  >>>
동방 동로마 제국
서방 서로마 제국 }}}}}}}}}}}}}}}
테오도시우스 왕조
Domus Theodosiana
379년 ~ 457년
성씨 테오도시우스
창건자 테오도시우스 1세 (379~395)
주요 황제 호노리우스(서방)
발렌티니아누스 3세
아르카디우스(동방)
테오도시우스 2세
로마 제국의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왕조 레오 왕조

1. 개요2. 역사
2.1. 테오도시우스 1세 치하(379~395)2.2. 서로마 제국(395~455)2.3. 동로마 제국(395~457)
3. 역대 황제
3.1. 서로마3.2. 동로마
4. 평가

1. 개요

로마 제국의 세습왕조. 379년부터 457년까지 약 한 세기 가까이 지속된 황가로, 로마 제국 서방 로마 제국, 동방 로마 제국의 황제를 배출한 첫 왕조로도 유명하다. 379 ~ 392년까지는 발렌티니아누스 왕조와 공존했고 창건자 테오도시우스 1세 그라티아누스의 처남이 된 탓에 종종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로 묶여 불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1].

창건자는 테오도시우스 백작( 대 테오도시우스)의 아들인 테오도시우스 1세 마그누스이며, 혈통적· 지리적 기원은 3,4세기동안 로마 제국의 제위를 대부분 차지해온 발칸반도 황제들과 달리 히스파니아(오늘날의 스페인)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로부터 시작됐지만, 그가 밀라노에서 사망한 이후, 그의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 호노리우스가 각각 동, 서로마를 나눠 맡으면서 이 왕조에 이르러 로마가 동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창건자가 의도한 탓에 한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진 것은 전혀 아니며, 로마 제국이 동서로 갈라졌다고는 하나 두 나라가 완전히 따로 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실의 역사와 가계는 455년 서로마에서 왕조가 먼저 단절됐으며, 457년에는 동로마에서도 역시 왕조가 단절되면서 제국은 이후 완전히 두 갈래로 따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2. 역사

  • 자세한 내용은 각 황제의 개별 항목 참조.

2.1. 테오도시우스 1세 치하(379~395)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동생으로 동로마 일대를 다스리고 있던 발렌스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참패당하고 전사하자 동로마의 혼란을 막기 위해 당시 서로마 황제였던 그라티아누스가 칩거 중이었던 테오도시우스를 동로마 황제로 임명하면서 테오도시우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동로마 일대에서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게르만 족들을 등용하면서 게르만 족의 침입을 최대한 막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서로마 일대에서 그라티아누스가 살해당하고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제위를 찬탈하자 내전을 피하기 위해 그를 황제로 인정하고 안정을 꾀하고자 했다. 하지만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발렌티니아누스 2세 치하의 이탈리아로 침공해오자 곧바로 그를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에 나섰고, 결국 그를 패배시킨다. 이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서로마 황제로 복귀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별로 없는 편이기 때문에 사실상 테오도시우스 1세가 전 로마의 황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역시 암살당하자 이에 완전히 서로마를 정복하게 되고, 유일한 통일황제가 된다. 하지만 395년 병으로 죽게 되면서 제국은 항구한 분열의 역사로 가게 된다.

2.2. 서로마 제국(395~455)

서로마를 받게 된 차남 호노리우스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유능한 장군 스틸리코의 섭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호노리우스는 상당히 무능한 편이어서 결국 스틸리코를 408년 역모로 몰아 죽이고, 이후 알라리크의 로마 침공을 막지 못한다.

이후 장군 콘스탄티우스 3세가 활약을 하여, 호노리우스는 417년에 서고트 왕 아타울프와 결혼했다가 사후 귀국한 여동생 갈라 플라키디아를 그에게 시집보낸 후 421년에 그를 공동황제에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콘스탄티우스 3세가 그해에 병으로 죽은 이후 남은 그의 가족들에게 위협을 가하여 병 주고 약 주고 여동생 갈라 플라키디아를 포함한 그 가족들은 모두 동로마로 망명을 가기에 이른다.

423년 호노리우스가 자녀 없이 죽게 되자 동로마의 테오도시우스 2세는 콘스탄티우스 3세의 아들을 서로마로 다시 보내 황제에 올린다. 그가 바로 발렌티니아누스 3세다. 당시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어머니인 갈라 플라카디아도 같이 따라가서 섭정을 하게 되고,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와 보니파키우스의 보좌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에티우스를 발렌티니아누스 3세모자가 견제를 하게 되고, 보니파키우스가 그 견제책의 일환으로 반달족을 불러들이면서 그야말로 파국이 시작된다. 이후 반달족은 아프리카를 장악하게 되고, 보니파키우스는 아에티우스의 침략을 막아내지만 전사하면서 결국 아에티우스가 제국의 전권을 장악한다.

이후 아틸라의 침략을 받게 되지만 아에티우스와 교황의 활약으로 간신히 막게 되었다. 하지만 그 직후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아에티우스를 암살한다. 그리고 아에티우스의 잔당이 역시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암살하면서 결국 서로마에서의 테오도시우스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서로마는 반달족의 침략을 받고 그야말로 혼란의 양상에 빠지면서 멸망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2.3. 동로마 제국(395~457)

동로마를 이어 받은 아르카디우스도 호노리우스 못지 않게 어리석은 군주였다. 거기다 동로마의 섭정이었던 루피누스는 서로마의 섭정이었던 스틸리코보다 더 무능했다. 결국 루피누스는 곧바로 암살당하고 늙은 환관 에우트로피우스가 섭정을 맡게 된다. 그는 좀 더 섭정을 강화하고자 본인이 교육시킨 아일리아 에우독시아를 황후로 앉힌다. 그러다가 가이나스가 400년 반란을 일으켜 에우트로피우스를 실각시키고 전권을 장악하나 게르만족에 불만이었던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의 대규모 폭동으로 인해 게르만계 병사들이 학살당했으며 가이나스가 실각당하고 황후 아일리아 에우독시아가 새로운 섭정이 된다. 또한 동로마 내에서의 게르만족 군대의 세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통수? 서로마처럼 안 됐으니 결과는 좋았다? 황후 에우독시아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모를 실각시키는 등 각종 권한을 행사했으나[2], 404년 아이를 낳다가 유산하고 죽게 된다. 그리고 무능한 아르카디우스도 408년 젊은 나이에 죽게 된다.

자신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의 후견인으로 적국이었던 사산 왕조 페르시아 야즈데게르드 1세를 선택하여 아즈데게르트 1세의 치세에 동로마는 가장 큰 적국이었던 사산 왕조의 침입을 받지 않게 되어서 보다 여유가 있었다. 또한 민정 총독이었던 안테미우스를 섭정으로 세우는데 이 역시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414년 안테미우스가 사망하자 테오도시우스 2세의 두 살 위 누나인 아일리아 풀케리아가 새로운 섭정이 되어서 제국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후 서로마 황실과의 화해를 시도한 테오도시우스 2세는 곧바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벽을 보수하여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세우며 제국의 방어를 한층 강화시켰다. 또한 438년 테오도시우스 법전을 만드는데 이는 서로마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3세와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황실에서 대립구도를 펼쳤던 누나 풀케리아와 황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가 각각 440년과 444년 황궁을 떠나게 되고 그 빈 자리를 환관 크리사피우스가 채우지만 그의 외적에 대처하는 자세로 인해 위신이 떨어지게 된다. 그것이 450년 테오도시우스 2세의 사망 이후 유능한 장군 마르키아누스가 제위에 오르게 되는 결과가 된다.

450년 테오도시우스 2세가 죽고 마르키아누스가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의 누나 풀케리아의 도움을 받아 제위에 오르게 된다. 그는 풀케리아와의 형식상의 결혼을 통해 테오도시우스 왕조를 잇는 황제가 되었다. 곧바로 환관 크리사피우스를 숙청하며 그가 취했던 훈족에 대한 공물을 폐기하고, 훈족이 아틸라의 사후 약해진 틈을 타 도나우 강 유역을 안정화시킨다. 또한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가 2가지 본성인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모두 가졌다는 정통 그리스도교 교리를 다시 확인하고 단성론을 부정하였다. 또한 그의 치세 동안 안정적인 국외 정세를 바탕으로 재정도 튼튼히 하면서 이후 동로마 제국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457년 그가 죽자 테오도시우스 왕조의 핏줄은 완전히 끊기게 되었고, 제국은 다음 왕조로 이어지게 된다.

3. 역대 황제

대수 이름 재위 기간
1대 테오도시우스 1세 379년 1월 19일 ~ 395년 1월 17일

3.1. 서로마

대수 이름 재위 기간
1대 호노리우스 395년 1월 17일 ~ 423년 8월 15일
2대 콘스탄티우스 3세 421년 2월 8일 ~ 421년 9월 2일
3대 발렌티니아누스 3세 425년 10월 23일 ~ 455년 3월 16일

3.2. 동로마

대수 이름 재위 기간
1대 아르카디우스 395년 1월 17일 ~ 408년 5월 1일
2대 테오도시우스 2세 408년 5월 1일 ~ 450년 7월 28일
3대 마르키아누스 450년 7월 28일 ~ 457년 1월 27일

4. 평가

왕조를 세운 테오도시우스 1세는 유능했지만 그의 두 아들들은 모두 무능했다. 결국 그 무능함으로 인해 제국은 위기에 빠지게 되며 서로마, 동로마로 분열된 이후에는 서로 쳐다보지 않는 관계가 될 뻔하기도 했다. 그나마 테오도시우스 2세 치하 때 동로마와 서로마가 서로 힘을 합쳤었고, 테오도시우스 2세가 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서로마 황제로 세우면서 두 나라는 어느 정도 통합된 상태에 있게 된다.

하지만 외적의 침입을 비교적 잘 막아내고 안정적인 기반을 갖고 있었던 동로마에 비해 서로마는 외적의 침입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었고, 무능한 황제들이 유능한 사령관들을 자주 의심하는 바람에 그러한 점들로 인한 유능한 사령관들의 죽음은 결국 두 차례에 걸친 로마 약탈로 이어지게 되었고, 서로마는 발렌티니아누스 3세 사후에 제국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동로마의 경우 테오도시우스 2세가 괜찮은 제국 운영을 해나갔으며, 마르키아누스라는 장군이 역시 제위를 이어 받으며 안정적으로 제국을 이끌었고, 이후에 테오도시우스 왕조가 끊기더라도 지속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지난 왕조인 콘스탄티누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 왕조와 마찬가지로 무능한 후계자들로 인해 왕조가 단명되고, 제국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거의 같다고 보면 되겠다.


[1] 다만 마그누스 막시무스를 처단하고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서로마 황제로 복귀한 이후에는 사실상 테오도시우스 1세가 통치했다고 보고 있으며, 그 시기는 387년이다. [2] 참고로 이 문제로 인해 서로마 황실과는 대립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