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26 19:47:03

경단(후한)

운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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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丹
(? ~ 26)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손경(孫卿). 옹주 빙익군(馮翊郡) 역양현(櫟陽縣) 사람이다. 운대 28장 중 한명으로 서열 10위에 속한다.

2. 생애

어린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장안(長安)에서 공부했으며 학식이 무척 높았다고 한다. 왕망 신나라를 건국하고 관리 등용에 유덕행(有德行), 능언어(能言語), 통정사(通政事), 명문학(明文學) 이 4가지 기준을 적용시켰는데, 경단은 능언어로 관리에 합격되어 고덕후상(固德侯相)으로 고덕후를 보좌하였다. 이후 삭주연솔(朔調連率) 경황(耿況)의 부이(副貳)[1]로 옮겨졌다.

경시 원년(23년) 2월, 경시제 유현(劉玄)이 즉위하여 각지에 사자를 파견해 복속될 것을 권유했다. 삭주군 역시 예외는 아니었기에 경황은 항복하여 다시 태수가 되었고, 삭주군 또한 본래 명칭인 상곡군으로 돌아갔다. 이때 관직명이 전부 한나라 시절로 돌아가면서 경단도 상곡군의 장사(長史)가 되었다.

동년 10월, 경시제가 대사마 유수를 하북 원정을 보냈다. 당시 왕랑(王郎)이 한단(邯鄲)에서 거병하여 유수와 대립하였는데, 상곡태수 경황은 관리들과 의논한 끝에 유수를 편들기로 하고 아들 경엄에게 장사 경단과 군사를 주어 유수에게 보냈다. 경엄과 경단은 어양태수 팽총의 지원군인 오한(吳漢), 갑연(蓋延), 왕량(王梁)과 합류해 유수가 주둔해 있는 광아(廣阿)로 향하면서 왕랑의 군대를 격파해나갔다.

경시 2년(24년) 2월, 마침내 광아에 도착하자 유수가 환대했고 웃으며 말했다.
"한단에서 어양과 상곡으로 장수를 보내 군사를 징발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나 또한 그러하리라 여겼소. 헌데, 두 군(郡)의 병사들이 나를 위해 올 줄은 어찌 알았으리오! 이제 그대들과 공명(功明)을 함께할 따름이오."
유수는 경단을 편장군으로 삼고 봉의후(奉義侯)에 봉했다. 경단은 유수를 수행하여 남련(南䜌)에서 왕랑의 장수 아굉(兒宏)과 격돌했는데, 초반에 형세가 불리하여 유수는 후퇴하려 하였다. 그러나 경단이 돌격기병을 거느리고 아굉의 진영을 돌파해 무너뜨리니, 아굉이 패주하였다. 경단은 도망치는 적군을 10리 정도 추격하다가 돌아왔다. 유수는 경단을 칭찬하며 주위에 이르기를, "내 돌기병이 천하의 정예라 듣기만 하였으나, 오늘에서야 그 전투를 볼 수 있었다니 참으로 기쁘지 아니한가?"라 하였다. 이후로도 경단은 한단이 함락될 때까지 유수를 따라 전투를 벌였다.

건무 원년(25년) 6월, 광무제 유수가 황제에 올라 한나라의 부흥을 선포하였다. 광무제는 참언을 믿어 평적장군 손함(孫咸)을 대사마로 삼으려 하자, 제장들이 반대하며 적임자로 경단과 오한을 추천했다. 광무제는 고심 끝에 오한을 대사마로 삼는 대신, 경단을 표기대장군에 임명하면서 서로 같은 반열에 두었다. 얼마 후, 경단은 건위대장군 경엄, 강노장군 진준과 함께 경(京)과 밀(密) 땅에서 염신장군(厭新將軍)을 자칭하던 군벌 유무(劉茂)를 쳤다. 경단이 보내 공격해오자 유무는 즉시 광무제에게 항복하고 중산왕(中山王)에 봉해졌다.

건무 2년(26년), 광무제는 낙양을 도읍으로 삼고 그동안 공을 세운 제장들을 열후에 봉하였다. 장수들은 모두 작위와 영지를 확인하고 크게 만족하였으나 역양후(櫟陽侯)로 봉해진 경단만이 영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항의하였다. 광무제는 경단만 따로 불러 말했다.
"지금 관동(關東)은 과거 왕국이 있던 곳으로, 비록 현(縣) 자체는 수 개에 불과하나 역양은 1만 호를 보유하고 있는 읍이다. 무릇 ' 부귀해졌는데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에 다니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므로 짐은 경에게 고향인 역양을 봉해준 것이다."
경단은 광무제의 속 깊은 배려에 고개를 조아려 감사를 표했다. 그 해 가을, 경단은 오한, 경엄, 진준, 건의대장군 주우, 집금오 가복(賈復), 편장군 풍이, 좌조 왕상, 기도위 장궁(臧宮)과 함께 광무제의 지휘 아래 의양(羛陽)에서 도적떼 오교(五校)를 격파하고 5만여 명의 항복을 받았다. 전투에서 승리한 광무제는 군대를 돌려 회(懷)로 이동하였는데, 경단이 병을 얻어 발열과 오한에 시달렸다. 황제 앞에서도 이를 숨기지 못해 떨고 있으니, 광무제는 그를 안타깝게 여겨 낙양에 보내 요양하도록 했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동년 9월, 섬(陝) 땅에서 일어난 도적 소황(蘇況)이 홍농(弘農)의 태수를 생포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때 광무제는 등봉(鄧奉)의 난 진압을 위해 보낸 잠팽이 역으로 털리고 있어 급히 친정을 결정한 상황이었고, 쓸만한 장수들은 다 외지로 파견나가 있었다. 거기다 홍농은 수도인 낙양과 무척 가까워서 방치할 수도 없었기에, 광무제는 하는 수 없이 요양 중인 경단을 불러 말했다.
"적들이 경사(京師)로 접근해 오고 있으나 경은 누워만 있어도 장군의 위엄으로 그들을 진압할 수 있을 것이오."
경단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명을 받들어 홍농으로 진격해 진영을 세웠다. 하지만 출정 준비를 모두 마쳤음에도 병세가 더욱 심해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는 바람에 전투를 개시하지 못했다. 그렇게 경단은 진영에서 앓기만 하다가 홍농에 도착한지 10여 일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경상이 아버지의 작위를 이었다가 훗날 여오후(余吾侯)로 전봉되었다.


[1] 연솔은 신나라 시절 잠시 썼던 관직 명칭으로 한나라 시절 태수와 같으며, 부이 또한 태수 휘하에서 일하던 관직인 장사(長史)와 똑같다. 물론 신나라가 멸망하자마자 이러한 호칭들은 사라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