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9:30:19

예형

후한서(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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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 「환제기(桓帝紀)」 8권 「영제기(霊帝紀)」 9권 「헌제기(獻帝紀)」
유지 유굉 유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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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통 · 음여화 · 명덕황후 · 장덕황후 · 효화황후 · 등수 · 염희 · 양납 · 양여영 · 등맹녀 · 두묘 · 효인황후 · 효령황후 · 영사황후 · 복수 · 조절 · 무양장공주 · 열양공주 · 관도공주 · 육양공주 · 역읍공주 · 획가장공주 · 평양공주 · 융려공주 · 평지공주 · 심수공주 · 평고공주 · 준의공주 · 무안공주 · 노양공주 · 낙평공주 · 성안공주 · 무덕장공주 · 평읍공주 · 음안공주 · 수무장공주 · 공읍공주 · 임영공주 · 문희공주 · 무양장공주 · 관군장공주 · 여양장공주 · 양안장공주 · 영음장공주 · 양적장공주 · 만년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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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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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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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사3. 연의4. 평가5. 기타6. 미디어 믹스7. 같이보기

1. 개요

禰衡
(173년~198년)

후한 말의 선비. 는 정평(正平)으로 청주(靑州) 평원군(平原郡) 반현(般縣)(現 산동성 더저우시의 일부)사람이다.

2. 정사

예형의 이야기는 후한서 예형열전, 정사 삼국지 순욱전의 주석에 적혀있다.

흥평[1]년간에 난리를 피해 형주(荊州)로 갔던 그는 건안 연간 초[2]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허도로 가는 길에 영천(潁川)에 이르렀다. 당시의 허도는 새로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유능한 인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예형도 자신을 채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자기의 이름을 새긴 명패를 준비하고 다녔다. 그러나 끝내 누구도 자신을 추천해주지 않자, 마침내 그가 가지고 다니던 명패의 글씨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닳고 말았다.어떤 사람이 당시 임용을 담당하던 진군, 사마랑을 찾아가라고 하자 예형은 나보고 백정들이랑 어울리라는 말이냐라고 하고 찾아가지 않았다.

성격과는 별개로, 재능이 뛰어나 중원에 이름을 알렸다. 공융의 말에 따르면 예형은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한 번 보거나 들으면 외워버리고, 생각하는게 귀신 같고, 암산 능력이 한무제 때 유명했던 홍양에 뒤지지 않았다. 예형은 너무나 오만하였고 독설이 심해 남의 의중과 시선을 개의치 않아 하였으며, 그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나누려고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 예형 본인도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융, 양수와 친분이 있었다. 특히 공융과는 서로를 높게 평가했다. 정사에 공융을 큰 아이라고 부르고, 양수를 작은 아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나오는데 '兒' 자는 젊은, 어린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이니 연배가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이 아니다. 더구나 공융은 본인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데도... 그나마 본인이 인정하고 높게 평가하는 공융, 양수에게조차 이러한 낱말을 선택할 정도였으니 예형의 성향을 잘 시사한다고 하겠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조조 순욱 조융이 당대를 대표할 만하냐고 묻자, 예형이 답하기를, 조조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순욱은 그의 얼굴을 빌려 초상집에 조문하게 할 만하고 조융은 주방을 감독하게 하며 손님을 맞이하게 할 만하다고 말했다. 순욱은 그저 얼굴만 잘 생겼고 조융은 대식가인 게 다라고 놀린 것이다.[3] 이 평을 듣고 사람들이 예형을 더 싫어했다.

공융이 여러 번 예형의 재주를 칭찬하자 궁금해진 조조가 예형을 만나보고자 했다. 조조가 사악하다고 생각했던 예형은 자신이 미치광이병이 있다는 핑계로 조조를 만나지 않았다. 조조는 화가 났지만 예형의 재주가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인망을 잃을까봐 죽이지는 못했다.

조조는 예형을 놀릴 마음으로 북을 치는 고사(鼓史) 직책을 주어 예형이 음악에도 기량이 뛰어난지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예형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뛰어난 연주 실력을 보여주었다.[4] 행사를 담당한 관리가 예형의 복식을 가지고 혼을 내었다. 그러자 예형은 그 자리에서 옷을 홀라당 벗은 뒤 복장을 바꾸어 입고 다시 북을 쳤다. 이에 조조는 "내가 예형을 욕보이고자 마련한 자리인데 오히려 욕을 본 사람은 나로군!"이라고 했다. 공융은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정평(正平)이야말로 대아(大雅)[5]로구나. 내가 감당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후, 나중에 조조에게 가 예형이 미치광이라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대신 사죄했다.[6] 조조도 그 일을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흔쾌히 받아주는 척 했다.

그러던 어느날에는 문지기가 어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문을 통과하려고 하자, 밤이 되어 늦었다고 하여 기다리라고 했다. 그것을 본 예형이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짧은 옷을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3척이나 되는 긴 지팡이를 든 그는 대영의 문 앞에 앉아서 지팡이로 땅바닥을 치면서 큰 소리로 욕을 해댔다. 관리가 바깥에 미치광이와 같은 자가 나타나 대영의 문 앞에서 욕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조조는 화가 잔뜩 나서 예형을 추천한 공융에게 "예형이라는 자는 그저 더벅머리 사내요. 내가 이 자를 죽여 보았자, 참새나 쥐새끼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오. 생각을 해 보니 이 자는 평소에 쓸데없이 이름만 높았을 뿐이나, 내가 죽이면 원근의 사람들이 나를 포용력이 없다고 할 것이니, 유표에게나 보내어서 어떻게 하나 두고 보겠소." 이렇게 말하고는 예형을 내쫒아 버렸다.

결국 예형은 유표에게 항복을 권하라는 임무를 받고 형주로 떠나게 되었다. 정사 삼국지 주석 평원예형전과 후한서에 따르면 예형을 전송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예형을 싫어했기 때문에 보복할 목적으로 여행의 안녕을 비는 의식에서 일어나지 않고선 미리 짠 대로 계속 앉아있었다고 한다. 이때 지나가던 예형이 느닷없이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왜 우냐고 묻자 예형이 "시체더미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데 왜 슬프지 않겠소."[7]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강하팔준으로 명성이 자자하였던 유표는 호승심이 들어 자신의 재주를 예형과 비교하기 위해 밤낮으로 토론을 벌였으나, 예형의 학식이 높음을 깨끗이 인정했다. 이 이야기 후에 예형은 유표의 글을 잠깐 훑어보고 찢은 뒤 다시 그대로 적는 가공할 만한 기억력을 선보였다. 이후 유표는 예형의 글을 소중히 보관할 만큼 예형을 높이 평가했다.[8] 정사 삼국지 주석 장형문사전에 따르면 예형은 쫒겨난 것에 대한 반성은 있었는지 유표를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으나 유표의 주변 인사들에 대해서는 평소의 그 답게 그럭저럭 써먹을 만한 먹물들이라고(繩墨) 깔보았다. 이로 인해 유표의 주변 인사들이 유표에게 "님이 주문왕과 비견될만해도 세상을 바로잡지 못하는건 이런식으로 예형같은 놈을 가만히 나둬서 그러는거 아닙니까"라고 뭐라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중에 예형은 그 성격을 여전히 못 고치고 다시 유표에게 오만한 태도로 모욕을 여러차례 주었고 결국 유표 역시 더 이상 못 견디고 예형을 황조에게 보냈다. 황조 역시 처음에는 예형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예형을 아꼈고 그를 잘 대해주었다. 예형은 글을 쓸 때 경중을 잘 가늠했으며, 대략 쓸 것과 치밀하게 써야 할 것을 잘 구분하여, 매번 대체를 놓치지 않았다. 황조는 그의 손을 잡고 "처사는 정말 이 황조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알고 있소이다."라고 말할정도 였다. 황조의 아들 황역은 아버지보다도 더 예형을 좋아했다. 예형과 황역이 놀러갔다가 채옹의 비문을 본 일이 있었다. 황역이 이것을 베껴오지 못해 아쉽다고 하자 예형이 한 번 본 비문을 그대로 적어주었다. 어느날엔가는 황역이 손님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었는데. 어떤 사람이 앵무새 한 쌍을 선물로 주었다. 황역이 앵무새를 들어 보이며 예형에게 손님들이 즐겁도록 시 한 수를 지어주시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예형은 즉시 붓을 잡고 글을 썼다. 예형의 글은 점 하나도 보탤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으며, 문채도 대단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렇게 황조 부자가 예형을 우대했음에도 예형은 끝까지 자신의 성질머리를 고치지 못했다. 결국 어느날에 손님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예형이 황조를 모욕하자 화가 난 황조가 예형을 죽였다. 전말은 이런데, 황조가 몽충(蒙衝)배에서 손님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었을 때 예형이 몹시 불손하게 굴자 황조가 기분이 나빠서 그를 심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그러자 예형은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라고 심한 욕을 퍼부었다.

황조가 크게 분노하여 시종에게 명하여 바깥으로 끌고 나가 매를 치게 했는데, 예형은 이 상황에서도 사과하거나 그러지도 않고 다시 큰 소리로 황조에게 욕을 퍼부었다. 화가 난 황조는 예형을 죽이라고 지시했다. 황조의 주부(主簿)도 평소에 예형을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즉시 죽여 버렸다. 그의 나이 고작 26세였다. 황조는 곧 후회하고 예형의 대표작인 앵무부(鸚鵡賦)라는 시를 따라 예형을 앵무호라는 호수에 떠있는 앵무주라는 작은 삼각지에 후히 장사지냈다. 예형의 묘는 세월이 흐르며 지형이 바뀌어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지만, 도시 외곽으로 이장되어 아직도 문화 사적지로 유지되고 있다.

문장력이 좋고 문채가 아름다워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의 글은 인정할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인망이 없어 모으는 사람도 없었는지 그의 글은 사후에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3. 연의

대부분의 행적은 정사와 비슷하지만 조조를 좀 더 직접적으로 까고 그만큼 조조 일당의 치졸함도 자세해졌다. 일단 정사와 비슷하게 승상부에 들어와 조조의 부하들을 깨알 단위로 깎아내리면서 첫 등장한다. 이때의 장수와 모사들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 순욱 - 잘생겼으니 초상집 문상객이나 문병객 대표
  • 순유 - 묘지기
  • 정욱 - 문지기
  • 곽가 - 유행가 작사가
  • 장료 - 북이나 징 치는 사람
  • 허저 - 마부
  • 이전 - 전령(오늘날 식으로는 우체부)
  • 악진 - 조서 읽는 이
  • 여건 - 대장장이
  • 만총 - 술지게미나 먹고 살 인간
  • 우금 - 막노동꾼, 공사장 작업부
  • 서황 - 개백정
  • 하후돈 - 완체장군: '완벽한 몸을 가진 장군'. 한쪽 눈을 잃은 하후돈을 반어법으로 놀리는 것이다. [9]
  • 조인 - 요전태수,[10] 직역하면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태수'라는 의미다.
  • 그 밖의 인물들 - 옷을 걸기 위한 옷걸이, 고기를 담기 위한 자루, 밥을 담기 위한 밥주머니, 술을 담그기 위한 술독 등일 뿐이다.

그걸로 모자라 예형이 자신을 공자에 비유하며 뻗대자 분개한 장료가 죽이려 했으나, 조조는 예형을 공개적으로 면박주기 위해 북 치는 사람 일을 맡기고 내보낸다. 예형이 나가자마자 좌우에선 불만이 대폭발했고, 특히 죽이려다 제지당한 장료는 조조에게 나아가서 "왜 저 썩을 놈을 죽이게 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따질 정도였으나 조조의 설명을 듣고 참는다. 이 정도면 가히 모두까기 예형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의 말빨이다.

이후 음악회에서 뛰어난 북솜씨로 조조 일당의 넋을 빼놓다가 예복이 아니라 허름한 평상복을 입고 왔다며 조조에게 지적당하자 나체로 응수하는 것은 정사와 같다.[11] 하지만 예형이 한실에 충성하는 몸으로서 조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더욱 구체적으로 변했다.
조조: 묘당에서 어찌 그렇게 무례할 수가 있느냐!
예형: 한나라의 승상 운운하면서 황제를 속이는 그대보다는 낫다.
조조: 닥쳐라! 너는 입을 열 때마다 너만이 깨끗하고 옳다고 하는데, 내가 어디가 더럽단 말이냐?
예형: 그릇된 신하들을 보지 못하니 눈이 잘못됐고, 옳은 소리를 듣지 못하니 귀가 잘못됐고... (중략) 한나라에 반역을 일으킬 생각을 품었으니 마음이 잘못됐다. 천하를 다스리려는 사람이라곤 말할 수가 없다.
거의 수준으로 초전박살을 내자 조조는 안색이 창백해졌고 주위 사람들도 식겁했다. 이후 공융이 끼어들어 어물쩍 넘기려 했으나 조조가 예형을 유표의 손으로 죽이기 위해 사신이란 명목으로 보내면서 다시 정사와 같이 흘러간다. 그러면서도 조조가 그 대가로 관직을 주겠다고 회유하자 예형이 '쥐가 관복을 입고 갓을 쓰면 참 볼만하겠다'고 조롱하며 거부하고, 이에 조조도 말싸움을 하느니 그냥 사람을 둘이나 붙여 좌우에서 붙잡고 유표한테 끌고 가라고 명령하는 등 그들의 신경전이 깨알같이 더욱 묘사되었다.

(김홍신 평역판 기준으로) 이후 예형을 사신 자격으로 유표에게 억지로 보낼 때, 순욱을 필두로 한 조조의 신하들과 예형 간의 욕배틀도 진국이다.
위에서 예형이 유표를 만나러 출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침 대문 밖에서 술상을 준비하고 배웅하라던 명령을 받은 순욱이 옆의 신하들에게 말했다.
"예형이란 놈이 오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계십시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예형이 오자 모두들 그를 무시하며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예형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통곡을 했다. 궁금한 순욱이 묻자 예형이 답했다.
"죽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어찌 곡을 하지 않겠소?"
"우리가 죽은 사람이라면 그대는 머리가 없는 미치광이가 아닌가?"
조조의 신하들이 우루루 따지자 예형이 간단히 받아쳤다.
"나는 한조(한나라)의 신하고 자네들은 조조의 신하가 아닌가. 어찌 머리가 없다고 하는가?"
"당신만 한조의 신하요? 우리도 한조의 신하요."
이에 예형은 비웃으며 말했다.
"하하, 조조는 한나라를 거스르는 역적인데 어찌 한조의 신하인가. 그리고 그대들은 그 역적 아래에 빌붙어 있으니 자네들의 머리는 내일을 기대할 수 없지 않겠나?"
이에 분노한 장수들이 화를 참지 못해 순욱에게 소리쳤다.
"저 놈을 죽여야겠소. 당장 넘기시오."
하지만 조조조차 참고 유표에게 보내는데 그들이라고 어쩔 수 없었다. 순욱 역시 화가 치밀었지만 억지로 참으며 그들을 달랬다.
"쥐 같은 놈 때문에 어찌 칼을 더럽히겠소."
그러자 예형이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쥐 같거니와 너희들은 모두 똥통 속에서 꾸물거리는 구더기가 아닌가?"[12][13]
이에 모든 장수들이 이를 갈았다.

진정한 독설가의 모습이다. 이후 유표를 편드는 듯하다 그 기괴한 성격 때문에 유표의 분노를 사고, 이후 황조에게 넘어가 황조의 손에 죽는 것은 정사와 같다.[14]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유표가 조조의 의도를 깨닫고 천하의 원망을 사지 않기 위해 다시 황조에게 보내면서 부하들에게 '나도 바보가 아니다'라고 설명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또한 예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무덤을 만들어준 유표와 달리, 조조가 그 소식을 전해듣고 "썩은 선비놈의 혀가 검처럼 날카롭더니 결국 자신을 죽였다!"며 크게 웃는 장면도 추가되었다. 외척세력 때문에 우유부단하지만 나름대로의 지략을 보여주는 유표와 서서히 한나라의 역적으로서 자리매김하는 조조의 이미지가 부각된 셈이다.

4. 평가

삼국지 팬덤 사이에서는 자기 똑똑한 것만 믿고 혀를 함부로 놀리다가 죽은 악플러,혹은 고결한 이상을 가졌으며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풍자한 문인으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예형의 오만방자한 독설은 정상적인 성격의 권력자라도 참지 못할 수준 참수이었으니, 이를 듣고도 그 자리에서 죽이진 않은 조조가 오히려 잘 참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존하는 대다수의 악플러들은 안전한 인터넷에 숨어서 다른 사람들을 모욕할 뿐, 예형은 정말 자신의 목숨을 걸고 권력자들의 면전 앞에서 비난한 것이었다. 실제로 예형이 대놓고 면전에서 욕을 퍼붓은 대상인 조조와 유표 둘 다 중국 전역에서 명성을 떨친 군웅들 중에서도 탑 3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당시 중국 정세의 최강자 반열이었다. [15][16] 즉 예형을 죽여서 화풀이를 할 작정이었으면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과 비난은 엄연히 다르다. 예형이 이왕 옳은 소리를 할 거였으면 조조나 유표 앞에서 그들이 명사나 백성들을 함부로 살해하거나 학대한 악행을 노골적으로 집어가며 공격했다면 괜찮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예형의 행적을 보면 알겠지만 그 비난이라는 게 죄다 저급하고 천박한 인신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인품으로나 능력으로나 절대로 깔 게 없는 진군이나 사마랑 같은 사람들도 깐 것은 예형이 의미 있는 비판을 한 게 아니라는 가장 큰 근거이다. 오죽했으면 역시 악플(...)로는 한 일가를 이룬 공융이 이런 천지분간 못하는 애송이를 이용해서 조조 정권을 조롱할 목적 때문에 문객으로 들였다는 평가까지 있을까. 때문에 대중에게도 강직한 비평가라는 어필도 거의 하지 못했고 그저 무례한 놈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죽을때 일화만 봐도 그냥 매를 맞을 정도의 일로 끝났을수도 있었을텐데 그 성질을 못 고치고 기어이 더 심한 욕을 하다 죽은걸 보면 조금의 화도 참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물론 연의가 집필될 당시에 대중 수준에선 고결한 비꼼보다는 저런 1차원적인 인신공격을 시원하다고 느꼈을 테니 그렇게 묘사한 것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과연 연의에서처럼 무너져가는 한실에 울분을 느껴 예형이 조조를 비난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일단 예형이 허도에 도착한건 건안 연간으로 허도가 막 건설되고 헌제가 허도로 이주한 시기로 되어 있는데, 이 시기라면 아직 의대조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어쨌거나 '조조는 위급에 처한 한실과 황제를 옹위하여 보호하고 있다'는 협천자의 이상에 대한 대외적 선전이 유효하게 먹히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조조는 천자를 보호하며 천자로부터 정상적으로 삼공 중 하나인 사공을 수여받아서 조정의 영수가 되었고, 원소조차 조조와 티격태격을 좀 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조조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해 대장군직을 받아들였던 때니 예형이 조조와 그 일파들을 모욕한게 정말로 역적 조조를 욕하는 그런 의도였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조정의 영수인 사공과 관리들이 모인 앞에서 의도적으로 스트립쇼를 하고 모욕한 행위는 정당한 천자의 조정을 모욕하는 행위로 볼 소지가 매우 다분해서, 조조가 괜히 선비를 함부로 죽였다고 명성을 더럽히기 싫었다고는 한들 그를 살려둔 것만 해도 조조의 도량이 높다고 칭찬할만한 일이었던 것이고 괜히 공융이 예형을 대신해 조조에게 사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토록 관직을 얻고자 매명을 했어도 아무도 그를 제대로 찾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면 당초에는 조조 정권에서 관료 노릇을 하려고 허도에 왔지만 아무도 그를 중히 써주지 않으니 불만에 가득차 평소 아무나 비난하고 인신공격 해대는 성격대로 그저 조조 정권의 주요 인사들을 아무렇게나 욕하고 다녔을 여지도 다분하다. 거기다가 유표에게 가서 처음에는 유표에게 몹시 아첨을 하는 모습까지 관측되는데 이때의 유표는 형주목으로써 황제의 의식을 따라하는 등 오히려 한실에 대한 불측한 마음을 품고 있다고 헌제 및 헌제파 대신들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정말로 헌제를 자신의 군주로 여기고 한실에 충성을 다하는 자였다면 이런 무빙을 보이는 것이야 말로 그 저의가 매우 의심되는 행위인 것이다. 이 행위만 보면 무슨 반동탁연합 당시 원소마냥 헌제를 동탁이 세운 가짜황제라며 비난하며 헌제를 모욕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애초에 허도에 간거부터가 조조가 세운 헌제 정권에 출사하여 헌제의 신하가 위함이니 이런 오락가락 하는 행보를 보면 진짜로 이 사람이 한실에 대해 제대로 된 지조가 있긴 했는지 의심되는 부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간 이렇게 성격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융이나 유표같은 당대의 명사들을 비롯해 그를 만난 사람들이 그 재능에 반하여 그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거나 처음에는 그를 아껴 후하게 대접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 성격과는 별개로 재능만은 진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면에서 봤을때 건안문학의 창시자로 유명하고 본인도 뛰어난 문인이었으며 성격이 나빠도 재능이 있는 자라면 총애했고, 그런 취지의 인재까지 구하는 구현령까지 내렸었던 조조가 그를 죽이지 않은것도 일단은 본인의 명성을 위해서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재능을 함부로 폐하기는 아깝다고 생각해서 그랬을 여지도 충분하다. 그렇게 예형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본인을 모욕했음에도 당장 체직하거나 처벌하지도 않았던 것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악플러나 무례한 놈으로 기억되는게 아니라 조조의 총애를 받아 건안칠자 같은 당대의 뛰어난 문인으로 기억될 만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성질을 다스리지 못해서 재능을 충분히 펴지 못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전근대 기록이 대부분 그렇듯이 단순히 기록만 가지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울부짖거나 미치광이 같은 행동을 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잔치에서도 우울해 하면서 공격적인 언사를 했다는 부분, 죽을때도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미친듯이 공격적으로 발악을 했다는 기록을 보면 예형이 그냥 성격이 나빴다기 보단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우울증을 동반한 간헐적 폭발장애 였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이문열 삼국지의 평에서도 그저 악플러 수준으로 취급하는데, 원래 이문열 감성이 좀 그런 부분이 있고, 사실 따박따박 정론으로 조조를 비판했다면 고상이라도 하지 실제로도 감성과 행보 자체가 미치광이 같던 인물인지라 이문열 입장에선 별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여서인지 잘 표현되지 않는다. 사실 비단 이문열뿐만 아니라 전근대 사람들도 예형에 행동에 냉소적인 경우가 많았다. 포박자의 저자인 갈홍은 포박자에서 예형을 이렇게 냉소적으로 평가했다.
예형은 남을 경시하는 행동을 했지만, 남몰래 출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때문에 시골 구석에 은거하지 못하고 귀족사회의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방자한 행동은 남의 눈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혹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입만 열면 미움을 사고, 한 발자욱만 내딛어도 함정이 기다린다. 이와 같은 태도로 어찌 세간에서 받아들일 수가 있으며, 편안히 죽을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올빼미와 여우의 우는 소리가 불길하다 하여 사람들이 꺼리는 것을 그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는 아무리 주거를 옮겨 보아야 소용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허도라는 곳은 인물이 모여드는 곳이다. 공융은 그곳의 수령이었다. 이러한 공융의 보호 아래에서 지낸다면 그 이상 좋은 곳은 없다. 이러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고 하면 다른 곳이야 찾아가나 마나 한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이라면 유부(俞附)나 월인(越人; 편작)이라 할지라도 어찌 할 수 없으며, 시든 나무와 납 뭉치로야 공수반이나 구야라 해도 작품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예형은 형주로 달아났고, 마침내 더없는 재난을 당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예형이 앞 일을 내다볼 줄 몰랐다는 증거이다. 생각건대 예형은 출세하기를 바랬지만, 출세할 만한 인물이 되지 못한 것이다. 결코 출세할 만한 능력은 있었지만, 불행히 출세할 수 없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즉 예형의 행동은 정말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고자 하는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랬다면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 은거하며 포의의 몸으로 그러는게 차라리 맞는데 굳이 권력의 중추로 기어들어가서 이곳저곳에 기웃거리고, 당대 사대부의 수령인 공융 밑에 들어가 재주를 뽐내고 기성 사대부를 비난하면서 방자하게 굴었던 것은, 결국 출세할 기회만을 노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갈홍의 시선에 따르면 예형은 당대 시대정신에 대한 준엄한 비판을 하는 것도 아니라 인신공격을 일삼으며 방자하게 재주를 뽐내는 것이 불과했고 그렇기에 당대 권력의 중추인 허도에서도 쫒겨나서 형주 구석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5. 기타

예형은 호종전에도 등장한다. 손권이 호종에게 은번이라는 사람에 관해 묻자 호종이 "은번이 올린 상소에서 과장된 언어는 마치 동방삭(東方朔)과 같음이 있고 교묘한 언어와 궤변은 마치 예형(禰衡)과 같음이 있지만, 재능에 있어서는 모두 이 두 사람에 미치지 못합니다."라고 답한다. 예형이 당대에 유명했고 이미지가 말 잘하는 사람,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사람, 궤변론자, 재능 있는 사람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포박자에 따르면 예형은 공융과 양수 두 사람 외에 순욱 정도는 (자신의) 말 상대가 되겠지만 그 이하의 사람들은 모두가 나무나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 사람을 닮았지만 인간다운 피가 통하지 않으며, 술을 담은 항아리나 밥을 담은 주발 정도밖에는 안 된다고 모욕했다고 한다. 또 어느 날에는 백관이 모인 연회가 벌어져서, 예형도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예형이 돌연 눈살을 찌푸리면서 슬픈 듯 개탄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연회 분위기를 망치는 예형을 두고 "영웅 호걸들이 즐겁게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탄식을 하다니, 불손하지 않는가." 라고 나무랐는데 예형은 곁눈질로 그 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을 쭉 흝어보고는 "이와 같이 시체와 관짝만이 늘어서 있는 자리에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라고 했다고 한다.

계속 예형이 이런식으로 주변 사람을 모욕하니 조조도 이를 갈면서 예형을 살해하려고 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예형의 이런 인신공격 자체가 사형에 처할만한 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젊은 학자를 살해했다는 평판이 나돌면 역시 곤란한 일이라고 생각해 태고를 치는 관리로 좌천시켰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예형은 전혀 후회하는 빛도, 부끄러워하는 얼굴도 아니었다고 한다.

형주에 가서도 예형의 오만한 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형주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워했고, 관리 중에서는 앙심까지 품은 자도 있었다. 예형의 문학적인 재능을 높게 샀던 유표마저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하여 그를 살해하고자 했다. 이를 보고 한 사람이 말했다.
조공은 가혹하다 하여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참았습니다. 예형은 아직 나이가 젊기 때문에 허명만 높을 뿐입니다. 만약 여기서 그를 살해한다고 하면 천하의 낭인들도 이 땅에 발을 디딜 자가 없어질 것입니다.

때문에 유표는 예형을 죽이려는 것을 그만두고 황조에게 보냈다고 한다.

세설신어에 이런 일화가 있다. 공융은 조조에게 간하기를, "예형의 죄는 서미의 형에 처한 부열과 같지만 명군의 꿈에 나타날 수 없었을 뿐이다."라며 설명했고,[17] 조조는 이를 듣고는 부끄러워하면서 그를 사면해주었다고 한다.

백제의 배신자인 예식진(禰寔進)의 선조라고 한다. 2010년에 발견된 예식진의 손자인 예인수(禰仁秀)의 묘지명에서 언급되었다. 다만 예씨(禰氏) 가문의 일원의 묘지명들끼리 엇갈리는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에 진위여부는 불명이나, 이 시점에는 이미 몇백년 전에 역사 속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던 인물에 불과한 예형을 조상이라고 주장했다면 어느 정도 근거는 있었던 듯하다.

2020년 10월,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이 진중권을 예형에 빗대어 비난한 적 있다. #

6.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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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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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0, 11

삼국지 시리즈들 중 초창기 시리즈들에서는 그가 공융과 친했다는 사실이 반영되어 평원 등지에서 재야로서 등장하거나 공융에 소속된 일반 무장이었는데, 중후반기 시리즈들에서는 특수 무장으로서 게임에 등장한다. 예형의 성격이 반영되어 매력은 낮다.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20/지력 92/정치력 88/매력 23. 지력이 90 이상, 정치가 80 이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군사가 되어 2만명의 군대를 부릴 수 있으며 참모로서의 능력도 출중하다. 재야로 하북일대를 오가는데, 공융이랑 상성이 좋아 예형을 얻는다면 공융의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문사다. 몇몇 시나리오에선 아예 처음부터 공융의 수하로 등장한다. 공융 외에는 조조, 유표, 엄백호, 유언, 유장, 공주, 왕랑과 상성이 좋으며 원소나 손견과는 상성이 심하게 좋지 않다. 매력이 심각하게 낮긴 하지만 어차피 예형은 매력 능력치의 비중이 높은 군주로 볼일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으며 역대 시리즈 중에서도 예형의 대표적인 리즈시절인 시리즈로 꼽힌다.

삼국지 6에서는 일반 장수로서 게임에 등장하며, 군웅할거 시나리오에서 평원을 수색하면 찾을 수 있다. 그의 능력은 통솔 77/무력 31/지력 95/정치 87/매력 20의 A급 모사로, 조조나 원소 또는 손책과 같은 세력이 아닌 이상 바로 군사 자리를 꿰찰 수 있다. 다만 꿈이 은둔이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명하든지 무조건 불만을 가지니 그저 조언을 듣는 역할로만 부리는 것이 좋다.

삼국지 8에서는 명사로 등장하며, 도발을 비롯한 특기를 가르쳐 주는 NPC로 등장하는데, 독설가 다운 면모를 보인다. 역사적으로도 그는 조조와 그 수하들에 대하여 독설을 날렸지만, 게임 내에서는 특별한 소속이 없는 NPC다 보니 모든 인물들에게 면박을 준다. 하지만 예형이 인물에 대하여 독설을 하는 것은 다른 장수의 능력에 대해 알려주기 위함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상대방의 악명이 높을 경우에 예형은 "오오, 그대는 악명높은 여포님. 건강해 보이는 것 같군." 과 같은 답을 해준다. 단 인물의 악명이 1000 이상일 경우에는 아예 방문이 거부된다.

삼국지 9에서는 신망이 낮은 상태에서 지역을 탐색하면 랜덤으로 나타나 면박을 주는데, 이를 무시하면 실행장수의 지력이 2 상승한다. 신망이 약간 높은 상태(300 이상)에서 만나면 술값이 모자라다며 금 200을 뜯어가기도 하는데 이 경우 신망 2가 상승한다. 두 경우 모두 처단을 고를 경우 실행장수가 부상을 입고 신망이 떨어진다.

삼국지 10에서는 면박을 습득하기 위한 조건인 설전 30연승이 성취된 상태에서 예형에게 계속 대화를 걸거나 술을 함께 마셔 친해지면, 예형과 설전을 벌일 수 있다. 설전에서 이기게 되면 굉장한 특기인 면박을 습득할 수 있다. 다만 설전은 자신이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예형은 설전의 고수고, 그가 내뱉는 말들은 매우 불쾌하여 플레이어를 분개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소용없다. 너는 내 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쳇, 방심했군. 가르쳐주마. 감사하게 생각해라!' 등등.

그러나 면박은 예형만 가르치는 특기가 아니다. 좌자도 이를 가르친다. 좌자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등장하는데다, 플레이어를 계속 구박하는 예형과 달리 여유 넘치고 성격 좋은 노인네이므로, 본인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라면 좌자에게 청하여 배우기를 권한다. 설전 난이도도 같으니 해가 되는 것은 없다. 다만 예형은 주로 하북 지방에서 만날 수 있는 반면, 좌자는 파촉 지방이나 오월 지방 같은 남부 지방에서 만날 수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지력 71 이상인 장수로 인재 탐색을 실행하면 가끔 나타나 설전을 신청한다. 설전에서 이기면 유명한 자신을 이겼다며 기교 포인트 고작 2를 플레이어 세력에 준다. 논쟁에서 지더라도 물리적인 손해는 크지 않다. 하지만 정신적인 손해를 주기 위해 플레이어 세력의 기교 포인트 1을 깎는다. 예형을 무시할 경우 실행장수의 매력 경험치가 약간 상승할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예형의 성격은 '저돌'이며,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면 강력한 일격을 날린다. 그리고 가끔 유적을 파괴하면 예형이 '네가 유적을 파괴했구나. 알려야지!' 라고 말하며 플레이어가 지배한 도시의 치안을 70으로 내린다. 만일 무덤을 파괴하는 사람이 조조라면 적절하다. 당연히 에디터에서는 친애무장이 공융과 양수, 혐오무장이 황조다. 에디터상 설정된 특기는 없다. 데이터상 능력치는 통무지정매 순으로 3/6/83/76/6이다.

삼국지 12에서는 관로, 교국로, 우길, 허소, 황승언과 함께 삭제되어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다.

동오의 덕왕이라면서 컬트적인 인기를 가진 엄백호처럼 이쪽도 나름 유명세를 갖춘 인물이지만 동정을 받고 있는 엄백호와는 다르게 애초에 예형은 듣는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버릇이 게임에서도 그대로 구현되어 플레이어를 구박하기 때문에 동정을 받지도 않는다.

6.2. 삼국전투기

삼국전투기에서는 테스타먼트의 드러머였던 존 템페스타가 사우스 파크 스타일로 그려진 캐릭터로 등장한다. 수춘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정작 본편에서는 짤려서 언급만 가끔씩 되는 정도고, 단행본에 이야기가 실려있다.

하비 전투 편에서는 자기 이야기가 단행복 부록으로 빠져버리자 "이런 쇄따빡! 나 편집된겨?!"라고 자기 분량이 통편집됐다고 욕하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엄청난 욕설을 날려대는 통에 작가 최훈이 "어, 언어순화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쩔쩔매는 중.

마지막에 최훈이 권력자들 앞에서도 용기있게 직설을 내뱉는 예형같은 사람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냐며 마무리를 짓는다.

6.3. 고우영 삼국지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굳이 이름 있는 선비를 죽였다는 오명을 남기기 싫던 조조가 일부러 유표에게 보내 죽게 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 악명 높은 누드 연주회에서 북을 치자 북 치는 소년처럼 '라팜팜팜' 하는 소리가 나오며 자신의 알몸을 조각품이라고 표현하는 비범함을 선보인다. 게다가 성인용 만화라는 특성을 한껏 살려 라임까지 맞춰 가며 신명 나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비속어 또한 압권. 결과는 연의에서와 마찬가지로 유표를 거쳐 황조에게로 가게 되는데, 유표가 그를 떠나보내면서 황조를 소개해 주자 예형의 말이 압권이다.
"그건 또 어디 사는 개OO요? 어차피 가 봤자 똑같을 테지 뭐."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의 내레이션 왈 예형의 말은 유표도 개OO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예형이 황조에게 목이 잘렸다는 [18] 소식을 듣자 조조는 통쾌하게 웃어젖히면서 "썩은 선비가 혓바닥만 믿고 날뛰다가 죽었구나."라고 신나게 까는 장면이 나온다. 덧붙여 "비단 예형뿐 아니라 선비의 약점은 바로 그따위 반골기질에 있는 거야. 대안도 없으면서 궤변만 떠드는 못난이들..."이라며 조조의 입을 빌려 신랄하게 까버린다. 예형에게 더 이상은 없을 정도로 욕을 본 조조는, 이후 몇 권 뒤 죽음을 앞두고 또다시 좌자에게 안드로메다급 능욕을 당하게 된다.

7. 같이보기



[1] 興平, 194~196이다. [2] 196~220년이다. [3] 배송지는 주석에서 순욱 본전에는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없지만 전략, 예형전, 순욱의 비문에 뛰어난 용모에 관한 언급이 있다고 말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안하무인의 끝을 달리는 예형조차 순욱의 외모를 인정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4] 이 때 예형의 연주곡이 어양참과로, 예형이 만든 어양참과가 후대에 전해졌다. [5] 나이가 서로 비슷한 친구(親舊)나 문인(文人)에 대하여 존경(尊敬)한다는 뜻인데 공융이 진짜 칭찬하는 의미에서 한 말인지, 아니면 본인보다도 한술 더 뜨는 인간이라고 비꼬는 말인지는 불명이다. 평소 조조를 싫어한 공융이 겉으로나마 저놈은 미친놈이라고 조조에게 사과할 정도면 후자 감성에 가까울 듯도 하다. [6] 라곤 하지만 사실 이 미친놈을 조조에게 소개한놈이 공융 본인이다, 일각에선 공융이 노골적인 목적을 띄고 예형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조를 괴롭힐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있을 지경이니. [7] 후한서 예형열전에 따르면 욕의 수위가 좀 더 높았는데 예형이 앉아 있는 자들을 향해 크게 울부짖으며 "앉아 있는 것은 무덤이고, 누워 있는 것은 시체가 아닌가? 시체와 무덤의 사이를 지나가니 슬픔을 참을 수 없도다!"라고 이들을 죄다 욕했다고 한다. [8] 장소전에서 등장하는 내용을 보면 유표가 손책에게 보내려고 직접 글을 쓴 뒤 예형에게 보여주었더니, 예형은 '이 정도 글은 손씨의 어린아이들에게나 보여줄 만한데 장소에게 보여주려 하시다니 말이 됩니까?'라며 비난했다고 한다. [9] 몸이 불편하다는 사람에게 인신공격을 한 셈이나 조조의 신하들도 역적에 빌붙었다 생각하는 그가 애꾸눈이라고 해서 좋게 평가할리 만무하다. [10] 조씨가문 재산 1위를 오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쪽 눈을 잃은 하후돈을 몸이 멀쩡하다며 조롱했던 것처럼, 조인의 검소함을 가리켜 인색하다고 조롱한 것인지도 모른다. [11] 정사에선 그 자리에서 옷을 홀라당 벗어버리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연의에선 그냥 벗은 채로 북 연주를 계속한다. 주위 사람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니네가 새옷 입고 오라고 해서 지금 부모님이 주신 가장 좋은 새옷을 입고 왔는데 난리를 치냐"라는 식으로 대꾸한다. 예형이 미친놈 같아도 똑똑하고 맞는 말만 한다고 생각해서 좀 참고 보던 조조도 이 때 폭발한다. [12] 판본에 따라서는 "쥐는 그래도 생각하는 머리라도 있지, 너희들은 그런 것도 없는 구더기에 불과하다!"라고 욕을 하는 내용도 있다(...) [13] 이현세 만화 삼국지에선 나는 쥐나 참새 같아도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너희들은 뒷간의 구더기 같은 놈들이다!라고 말한다, 조조의 신하들 역시 구, 구더기 저 놈을 당장!이라고 반응하는 건 덤. [14] 연의에서는 황조를 사당의 귀신으로 비유하되, 재물만 받아먹고 영험은 없는 귀신이라며 디스한다. [15] 특히 조조는 상당히 감정적인 인물이었다. 대표적으로 호관을 3개월 가량 공격했음에도 점령하지 못하자 점령하면 모두 파묻어버리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후 조인의 충고를 듣고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발언을 철회하는 것을 통해 앞선 발언이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나왔음을 추론할 수 있다. [16] 그래서 혹자는 현대에도 권력자들 눈치를 보면서 활동해야 하는 제약 때문에 고평가를 못 받는 중국 힙합 계에 빗대어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중국 힙합의 대부(...)로 평하기도 한다. [17] 서미(胥靡)는 부역형, 즉 강제노동형을 의미하고 부열(傅說)은 은나라 왕 무정(武丁) 시대의 현인이다. 무정이 꿈 속에서 현인을 만난 후 성 쌓는 곳에 가 보았는데, 강제노역을 하던 사람 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어 이 사람이 부열로 대화를 나누다보니 현인이라 중용했다는 고사이다. 즉 공융의 말은 예형의 행동이 일단 죄에 해당되긴 하나, 또한 보기 드문 현인이니 부열처럼 용서하고 되도록 중용해달라는 뜻이다. [18] 그 바로 전에 황조가 예형한테 자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예형이 "아니, 자네도 사람 축에 들겠다는 거냐? 개라면 주제 파악이나 해야지, 예끼!"라고 싸가지 없는 인신공격을 하자 분노한 황조가 바로 칼을 뽑아 예형의 목을 잘라버렸다는 내용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