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11:21:05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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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 ·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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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112년 보결 112년 보결 112년 보결 112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네르바 트라야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루소 그나이우스 피나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세베루스 푸블리우스 스테르티니우스 콰르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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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푸블릴리우스 켈수스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메틸리아누스 폼페이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스테르티니우스 노리쿠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우르비쿠스 퀸투스 닌니우스 하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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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 117년 보결 117년 보결 118년 118년 보결
퀸투스 아퀼리우스 니게르 루키우스 코소니우스 갈루스 ignotus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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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파키우스 실바누스 퀸투스 코레디우스 갈루스 가르길리우스 안티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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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년 보결 120년 120년 보결 120년 보결 121년
가이우스 헤렌니우스 카펠라 루키우스 카틸리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 클라우디우스 레기누스 가이우스 퀸크티우스 케르투스 포블리키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아르미니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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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1년 보결 122년 122년 보결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파우스투스 티투스 폼포니우스 안티스티아누스 푸니술라누스 베토니아누스 마르쿠스 스타토리우스 세쿤두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칸디두스 카피토
퀸투스 폼포니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메룰라 아우스피카투스 루키우스 코렐리우스 네라티우스 판사 루키우스 비트라시우스 플라미니누스
122년 보결 123년 123년 보결 123년 보결 124년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아르티쿨레이우스 파이티누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게미누스 티투스 살비우스 루피누스 미니키우스 오피미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칼레스트리우스 티로 오르비우스 스페라투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푸블리우스 메틸리우스 세쿤두스 그나이우스 센티우스 아부르니아누스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플라쿠스 토르콰투스 테바니아누스
124년 보결 124년 보결 125년 125년 보결 126년
아울루스 라르키우스 마케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발레리우스 아시아티쿠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베티나 베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푸블리우스 두케니우스 베레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티티우스 에피디우스 아퀼리누스 푸블리우스 루키우스 코스코니아누스 가이우스 에기우스 암비불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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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프로핀쿠스 루키우스 쿠스피우스 카메리누스 티투스 아틸리우스 루푸스 티티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바로 퀸투스 티네이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사이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스퀼라 갈리카누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켈레르 네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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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루키우스 노니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카이센니우스 안토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메티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퀸투스 폼포니우스 마테르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호물루스]
128년 보결 129년 129년 보결 130년 130년 보결
아울루스 에그릴리우스 플라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유벤티우스 켈수스 티투스 아우피디우스 호에니우스 세베리아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카툴리누스 카시우스 아그리파 (또는 아그리피누스)
퀸투스 [플라니우스 사르두스 바리우스 암비불루스] 루키우스 네라티우스 마르켈루스 퀸투스 율리우스 발부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콰르티누스
131년 131년 보결 132년 132년 보결 133년
세르기우스 옥타비우스 라이나스 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세리우스 아우구리누스 가이우스 아킬리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히베루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피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비우스 세르기아누스 아울루스 카시우스 아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뭄미우스 시센나
133년 보결 133년 보결 134년 134년 보결 134년 보결
퀸투스 플라비우스 테르툴루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티쿠스 헤로데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우르수스 세르비아누스 티투스 하테리우스 네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판사
퀸투스 유니우스 루스티쿠스 푸블리우스 수페나스 베루스 티투스 비비우스 바루스 루키우스 아티우스 마르코
135년 135년 보결 135년 보결 136년 137년
루키우스 투틸리우스 루페르쿠스 폰티아누스 마르쿠스 쿠티우스 프리스쿠스 메시우스 루스티쿠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아리우스 프로쿨루스 율리우스 켈수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파비아누스 루키우스 케이오니우스 콤모두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칼푸르니우스 아틸리아누스 (아티쿠스 루푸스) 루키우스 부르불레이우스 옵타투스 리가리아누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아이밀리우스 투스킬루스 섹스투스 베툴레누스 키비카 폼페이아누스 푸블리우스 코엘리우스 발비누스 비불리우스 피우스
138년 138년 보결 138년 보결 139년 139년 보결
카누스 유니우스 니게르 마르쿠스 빈디우스 베루스 푸블리우스 카시우스 세쿤두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루키우스 미니키우스 나탈리스 콰드로니우스 베루스
가이우스 폼포니우스 카메리누스 푸블리우스 팍투메이우스 클레멘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무키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루키우스 클라우디우스 프로쿨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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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플라쿠스 ign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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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바르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피시바누스 티투스 카이세르니우스 스타티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스틀로가 프리스키누스 (라르키우스) 레피두스 ignotus ign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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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쿠스피우스 팍투메이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그라니우스 카스투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 루키우스 투시디우스 캄페스테르 [술피키우스] 율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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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켈레르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롱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티투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피우스 루키우스 플라우티우스 라미아 실바누스 그나이우스 아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프로쿨루스 퀸투스 무스티우스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피두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포블리콜라 프리스쿠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라일리아누스
145년 보결 145년 보결 146년 146년 보결 146년 보결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파디우스 루푸스 섹스투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퀸투스 리키니우스 모데스티누스 (섹스투스) 아티우스 라베오 푸블리우스 뭄미우스 시센나 루틸리아누스
가이우스 비크리우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비크리우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아라비아누스 티투스 프리페르니우스 파이투스 로시아누스 노니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라베오 테티우스 게미누스
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6년 보결 147년 147년 보결
그나이우스 테렌티우스 호물루스 유니오르 퀸투스 보코니우스 삭사 피두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롱구스 가이우스 울피우스 파카투스 프라스티나 메살리누스 아울루스 클라우디우스 카락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안니아누스 베루스 퀸투스 코르넬리우스 프로쿨루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라르구스 퀸투스 푸피키우스 코르누투스
147년 보결 147년 보결 147년 보결 148년 148년 보결
쿠프레세누스 갈루스 섹스투스 코케이우스 세베리아누스 호노리누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코르넬리우스 푸블리우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아이밀리아누스 사티리우스 피르무스
퀸투스 코르넬리우스 콰드라투스 티베리우스 리키니우스 카시우스 카시아누스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카루스 페도 가이우스 벨리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토르콰투스 가이우스 살비우스 카피토
148년 보결 148년 보결 149년 149년 보결 150년
루키우스 코엘리우스 페스투스 가이우스 파비우스 아그리피누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살비디에누스 스키피오 오르피투스 퀸투스 파시에누스 리키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스퀼라 갈리카누스
푸블리우스 오르피디우스 세네키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제노 퀸투스 폼페이우스 소시우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비투스 섹스투스 카르미니우스 베투스
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0년 보결 151년 151년 보결
[…]mus 마르쿠스 카시우스 아폴리나리스 가이우스 쿠르티우스 유스투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콘디아누스 마르쿠스 코미니우스 세쿤두스
가이우스 La[berius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마메르티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리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152년 152년 보결 152년 보결 152년 보결 153년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세베루스 푸블리우스 수페나스 [베루스] 가이우스 노비우스 프리스쿠스 푸블리우스 클루비우스 막시무스 파울리누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호물루스 루키우스 다수미우스 툴리우스 투스쿠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로물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아울루스 유니우스 루피누스
153년 보결 153년 보결 153년 보결 154년 154년 보결
섹스투스 카이킬리우스 막시무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아페르 가이우스 카티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프리페르니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세다티우스 세베리아누스 울리우스 아케르 메틸리우스 네포스 루피누스 티베리우스 루틸리아누스 켄소르 퀸투스 페티에디우스 갈루스 티투스 섹스티우스 라테라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마크리누스
154년 보결 154년 보결 154년 보결 155년 155년 보결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에트루스쿠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스타티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섹스투스 칼푸르니우스 아그리콜라 티투스 유니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루피누스 사비니아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
155년 보결 155년 보결 156년 156년 보결 156년 보결
안티우스 폴리오 [데키무스 루필리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케이오니우스 실바누스 아울루스 아빌리우스 우리나티우스 콰드라투스 퀸투스 카누시우스 프라이네스티누스
미니키우스 오피미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세리우스 아우구리누스 스트라보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루시우스 스파르수스
157년 157년 보결 157년 보결 157년 보결 158년
마르쿠스 베툴레누스 키비카 바르바루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콤모두스 오르피티아누스 퀸투스 빌리우스 프로쿨루스 (또는 퀸투스 비리우스 라르키우스 술피키우스) 섹스투스 술피키우스 테르툴루스
마르쿠스 메틸리우스 아퀼리우스 레굴루스 네포스 볼루시우스 토르콰투스 프론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세쿤두스 퀸투스 […]binus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클레멘스
158년 보결 158년 보결 159년 159년 보결 159년 보결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파비아누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포니우스 무사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 마르쿠스 피시바니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덱스테르
퀸투스 얄리우스 바수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유베날리스 마르쿠스 스타티우스 프리스쿠스 리키니우스 이탈리쿠스 루키우스 마투키우스 푸스키누스 ignotus
159년 보결 160년 160년 보결 160년 보결 160년 보결
아울루스 쿠르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아피우스 안니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아울루스 플라토리우스 네포스 칼푸르니아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프라스티나 파카투스
ignotus 티투스 클로디우스 비비우스 바루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페스투스 […] 플라부스 마르쿠스 켄소리우스 파울루스
160년 보결 160년 보결 161년 161년 보결 161년 보결
티베리우스 오클라티우스 세베루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율리우스 게미누스 카펠리아누스
[퀸투스] 닌니우스 하스티아누스 [… N]ovius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퀸투스 카무리우스 누미시우스 유니오르 티투스 플라비우스 보에투스
162년 162년 보결 162년 보결 162년 보결 163년
퀸투스 유니우스 루스티쿠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파울리누스 데키무스 폰테이우스 프론티니아누스 루키우스 스테르티니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인스테이우스 비티니쿠스 마르쿠스 폰티우스 라일리아누스
루키우스 티티우스 플라우티우스 아퀼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ignotus ignotus 아울루스 유니우스 파스토르 루키우스 카이센니우스 소스페스
164년 164년 보결 165년 166년 166년 보결
마르쿠스 폼페이우스 마크리누스 티베리우스 하테리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오르피투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푸덴스 마르쿠스 비비우스 리베랄리스
푸블리우스 유벤티우스 켈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아비투스 루키우스 아리우스 푸덴스 루키우스 푸피디우스 폴리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167년 167년 보결 168년 168년 보결 169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덴틸리아누스 루키우스 베눌레이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옥타비우스 프리스쿠스 퀸투스 툴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세네키오 소시우스 프리스쿠스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팔라스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파울루스 ignotus 푸블리우스 코엘리우스 아폴리나리스
170년 170년 보결 171년 172년 172년 보결
가이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티투스 호에니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세베루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스키피오 오르피투스 가이우스 모디우스 유스투스
마르쿠스 가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ignotus 루키우스 알피디우스 헤렌니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막시무스 ignotus
173년 174년 174년 보결 175년 175년 보결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마케르 사투르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투스 볼루시우스 플라쿠스 코르넬리아누스 ignotus 푸블리우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마르쿠스 디디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
176년 177년 178년 179년 179년 보결
티투스 폼포니우스 프로쿨루스 비트라시우스 폴리오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카이사르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디에누스 오르피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아누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페르 마르쿠스 페두카이우스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 데키무스 벨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베루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윤쿠스
179년 보결 180년 181년 182년 182년 보결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루스티쿠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마메르티누스 (아우렐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프로쿨리아누스 섹스투스 퀸틸리우스 콘디아누스 루키우스 안티스티우스 부루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티디우스) 코르넬리아누스
183년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3년 보결 184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투틸리우스 폰티아누스 겐티아누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세쿤두스 티투스 팍투메이우스 마그누스 루키우스 코소니우스 에기우스 마룰루스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ignotus 마르쿠스 에그나티우스 포스투무스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아일리아누스
184년 보결 185년 186년 186년 보결 186년 보결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빈덱스 트리아리우스 마테르누스 라스키비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노비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사부키우스 마이오르 카이킬리아누스
카시우스 아프로니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쿠스 아피우스 아틸리우스 브라두아 레길루스 아티쿠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안니우스 라부스 발레리우스 세네키오
187년 188년 189년 189년 보결 190년
루키우스 브루티우스 퀸티우스 크리스피누스 푸블리우스 세이우스 푸스키아누스 둘리우스 실라누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마르쿠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실라누스 비텔리우스 마르쿠스 페트로니우스 수라 셉티미아누스
190년 보결 191년 192년 193년 193년 보결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포필리우스 페도 아프로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소시우스 팔코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아풀레이우스 루피누스 (또는 아툴레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브라두아 마우리쿠스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에루키우스 클라루스 비비아누스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프리스쿠스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3년 보결 194년 194년 보결
마르쿠스 실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율리우스 메살라 루틸리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가비니우스 바르바루스 폼페이아누스
ignotus 가이우스 아이밀리우스 세베루스 칸타브리누스 데키무스 클로디우스 셉티미우스 알비누스 카이사르 ignotus
195년 196년 197년 198년 198년 보결
푸블리우스 율리우스 스카풀라 테르툴루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티투스 섹스티우스 마기우스 라테라누스 푸블리우스 마르티우스 세르기우스 사투르니누스 퀸투스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클레멘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트라세아 프리스쿠스 (루키우스 또는 가이우스) 쿠스피우스 루피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갈루스 ignotus
199년 20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프로쿨루스
마르쿠스 아우피디우스 프론토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빅토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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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제19대 황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Didius Iulianus
파일:external/www.rome101.com/0609_2538WS_L.jpg
<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마르쿠스 디디우스 세베루스 율리아누스
(Marcus Didius Severus Julianus)
출생 133년 1월 29일
로마 제국 메디올라눔
사망 193년 6월 2일 (향년 60세)
로마 제국 로마
재위 기간 로마 황제
193년 3월 28일 ~ 193년 6월 1일 (65일)
전임자 페르티낙스
후임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부모 아버지 : 퀸투스 페트로니우스 디디우스 세베루스
어머니 : 아에밀리아 클라라
배우자 만리아 스칸틸라
자녀 디디아 클라라
종교 로마 다신교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즉위 전까지의 삶2.2. 돈으로 황제를 사다2.3. 몰락과 죽음
3. 평가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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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기 193년의 혼란기에 페르티낙스 다음으로 제위에 오른 로마 제국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의 마르코만니 전쟁에서 페르티낙스와 함께 용장으로 평가된 장군으로, 콤모두스 황제를 위해 선정된 고문단이었다. 제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바른 말 하고 애국심 강한 충신으로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황제의 자리를 돈으로 산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1]이 되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선대 황제 페르티낙스를 살해한 프라이토리아니(근위대)에게 막대한 하사금을 지불하고 제위에 올랐다가, 먼친척으로 황제 선포 후 판노니아 장병들에게 지지를 받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로마 근처까지 밀고 내려오자, 원로원의 명으로 폐위가 되고 곧바로 처형됐다. 사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그 시신을 수습해 정식 장례를 허락한 뒤, 세베루스가 페르티낙스, 율리아누스 일을 명분으로 기존 프라이토리아니, 원로원을 숙청한다.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즉위 전까지의 삶

부친 퀸투스 페트로니우스 디디우스 세베루스는 본국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밀라노 출신, 어머니 아이밀리아 클라라는 북아프리카 해안인 푸닉 지방 중 중심 속주로 유명한 아프리카 속주 출신의 오래된 이탈리아 가문 사람이다. 동시대 동료 원로원 의원 디오 카시우스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133년 1월생으로 부친의 고향 밀라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4세기 작가미상의 후기 로마제국의 믿을 수 없는 역사서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서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137년생이라고 하고 있다.

훗날 제위 경장자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마찬가지로, 세베루스 가문 출신으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외가를 통해 먼 친척이다. 두 사람 중 먼저 원로원에 들어간 사람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인데, 세베루스가 원로원 입성 후 여러 친척에게 후원받는 과정에서 율리아누스가 많은 도움을 줬는가는 모른다.

부계는 대대로 밀라노의 지역유지로 상당한 부자였고, 본래 성씨는 페트로니우스이다. 그러나 율리아누스 일가는 할머니가 밀라노 근처에 살던 디디아 족 출신이라서, 성씨에 해당한 노멘으로 디디우스를 썼다. 상술한 그대로 어머니는 카르타고가 지배한 북아프리카 해안 일대를 의미한 푸닉 지방에 포에니 전쟁 이후 이주한 이탈리아 가문 사람이다. 외가는 푸닉 지방에 정착한 속주 출신 이탈리아계 로마인이지만, 일찍부터 집정관을 배출한 원로원 가문 여인이었다. 위로는 두 형이 있었으며, 성년 이후 비슷한 계급 여성인 만리아 스칸틸라와 결혼해 슬하에 외동딸 디디아 클라라가 있었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좋은 집안 태생임에도 원로원 입성 전까지는 세간사람들에게 꽤나 힘들고 하찮게 여겨진 직업들을 여러 개 경험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로마로 건너온 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친모 도미티아 루킬라 집에서 잠시 살면서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와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되어 출셋길이 열렸다. 172년경에는 제국 최정예군단 중 하나인 게르마니아 주둔 22군단장에 올랐고, 3년 뒤에는 페르티낙스와 함께 나란히 파트너 집정관에 취임했다. 이후에도 그는 어린 시절 황제의 어머니 집에서 자랐던 덕에 달마티아, 저지 게르마니아 속주총독을 지낸 뒤, 이후 비티니아 총독을 거쳐 카르타고에서 총독 사무를 볼 수 있는 아프리카 속주 총독에 임명됐다. 특히, 그는 페르티낙스의 후임으로 아프리카 속주 총독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 동안 부유하고 성공한 원로원 의원이 되었는데, 황실과의 인맥으로 성공하긴 했어도 순수한 개인능력으로 밑바닥에서 성공한 페르티낙스처럼 문무 능력 모두 꽤 괜찮고 유능한 사람로 인정받았고, 게르만족에게는 페르티낙스보다 위협적인 로마 용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갈리아 벨기카 속주 총독 시절부터 이 명성을 떨쳤고, 당시 군부 안에서 평가는 페르티낙스와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황제가 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지가 최악이 되었기 때문에, 고대기록들은 율리아누스가 용장이자 뛰어난 총독, 원로원 의원인들, 많은 공직을 비슷한 시기에 같이 한 페르티낙스와 비교해 인망이 없었고, 대중들에게도 인기와 존경을 많은받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마르쿠스 황제가 서거 전에 선정한 콤모두스 고문단에 임명됐다. 그는 페르티낙스처럼 콤모두스 밑에서 꽤 성공했다. 하지만 달마티아 속주 총독 시절에 개인비리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면서, 콤모두스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 그가 신임을 받다가 콤모두스에게 찍힌 이유는 페렌니스, 클레안데르에게 연이어 국정을 맡기고 놀고 먹은 콤모두스 황제에게 고문답게 충언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래서 현대 학자들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이때의 일이 후일 그가 경매로 제위를 산 일과 엮이면서 고대기록상 이미지가 더 나빠지게 됐다고 일관되게 평가한다.

그가 콤모두스에게 추방형을 선고받을 때 상황은 당시 사람들이 어이없어 할 정도로 막장이었다. 율리아누스는 달마티아 속주 총독 당시 총독의 업무 그대로 콤모두스 황제의 이름으로 속주민을 돕고, 이후 본국 이탈리아의 헐벗은 주민에게 시혜했다. 이후 귀국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가난한 본국 이탈리아 시민들에게 함부로 돈을 하사한 혐의”로 고발됐다. 당연히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놀고 먹던 콤모두스는 평소 자신에게 충언을 하던 고명 대신인 율리아누스를 추방하는 것에 동의했다. 따라서 그동안 황제에게 악감정이 없던 그는 이 일 이후 서서히 대립각을 세웠는데, 현대의 역사가들은 콤모두스가 부친 생전부터 두루 공직을 거친 그를 어거지로 죄를 뒤집어 씌워 정치적으로 내상을 입게 했다고 분석한다. 이후 추방형이 취소되면서 위기를 넘겼는데, 얼마 안 가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콤모두스 암살 미수 혐의의 죄목을 뒤집어쓰고 다시 기소당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그는 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2.2. 돈으로 황제를 사다

콤모두스 암살 후 자신들이 추대한 황제 페르티낙스를 죽인 근위대장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라이투스(레토)와 휘하 병사들은 로마 시민들의 반응이 두려워 페르티낙스의 머리를 장대에 높이 매단 채 진지로 돌아와 병영의 문을 걸어 닫았다. 사실 콤모두스 암살 당시, 로마에는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피를 물려받은 이들이 소수나마 있긴 했다. 원로원에는 콤모두스의 매형들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가 복귀한 상태였고, 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장녀 루킬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도 있었다. 또 콤모두스의 매형 중 루키우스 베루스의 친조카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라는 원로원 의원도 있었다. 그는 전직집정관이었고 양심적이고 고결한 명문가 출신 귀족이었으며, 혈통적으로도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피를 이어받았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어머니는 루키우스 아일리우스 카이사르의 장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옛 약혼녀였고, 아내는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 차녀 파딜라였기 때문이다. 또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는 손윗동서 폼페이아누스처럼 겸손한 인품과 매우 양심적이고 헌신적 태도로 생전의 마르쿠스 황제에게 여러 사위 중 상당한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이 세 사람 모두 콤모두스 암살 당시 페르티낙스와 달리 적극적으로 제위를 원하지 않았으며, 망가진 국가 시스템과 정국안정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또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는 아내의 동생 콤모두스 생전부터 권력욕이 강한 사람도 아니었고[2],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던 폼페이아누스 역시 페르티낙스 이후의 다음 황제를 결정할 열쇠를 쥐지 못했다. 그 이유는 새 황제와 관련된 결정권을 쥔 실세는 다름 아닌 프라이토리아니 병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과는 막장으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괴상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였다.

이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새 황제를 정하는 일은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황제 후보자가 원로원 회의장도 아닌, 근위대 진지에 나타나 일종의 경매 방식을 통해 군사들의 지지를 얻는 대가로 입찰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더 웃긴 것은 이때 근위대는 이를 굳이 숨기지 않은 채 제위 경매에 관한 공고문을 벽에 붙여 놓았다.

따라서 네르바-안토니누스 가문의 사위들인 폼페이아누스, 플라우티우스 퀸틸루스는 이런 행태에 혀를 내둘렀고 개탄해 마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원로원 의원들도 건국 이래 개판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제위를 원한 이들은 있었고 경쟁은 치열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두 명의 경쟁 후보가 남게 됐는데 그 가운데 첫 번째는 페르티낙스의 장인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3]였고, 두 번째 후보는 유력한 전직 집정관이자 상당한 재력가로 널리 알려진 마르쿠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였다. 그리고 경매방식으로 의논된 새황제 최종후보는 결국 군인들에게 막대한 보너스를 약속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로 선택했다. 그런데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행동은 디오 카시우스의 당시 현장 목격담에 따르면, 매우 비양심적이고 저급했다고 한다. 또 그는 상대방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만약 술피키아누스를 뽑는다면 자기 손으로 페르티낙스 모살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고 그들에게 경고했다고 한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제위에 오른 것은 순전히 근위대의 지지 때문이었고 이러한 취약한 입지와 페르티낙스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알고 있던 그는 그가 말한 대로 "운명에 대한 불안감으로 첫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뜬 눈으로 지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근위대에게 했던 무절제한 선심성 공약을 모두 지키지 못한 것이 컸다[4]. 또 막장군주 콤모두스에게 부패혐의로 기소돼 두 번이나 처벌받을 뻔한 탓에, 율리아누스는 무죄로 방면되었음에도, 정치적 내상이 상당했다. 그래서 그는 세간의 존경은 기대하기 힘든 인사로 추락했는데, 돈으로 제위를 샀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로마 시민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원로원에게도 그 평가가 안좋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율리아누스는 경쟁자 술피키아누스에게 어떠한 정치적 보복도 하지 않았고, 페르티낙스와 달리 무리하게 콤모두스 시대와의 절연을 외치며 로마 전체를 혼란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티낙스의 죽음과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즉위과정, 사회 분위기는 야심있고 능력있는 속주 총독과 군사령관들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따라서 국경 지역 주둔군을 휘하에 거느린 3명의 경쟁자 간의 제위 쟁탈전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로 시리아의 총독 가이우스 페스켄니우스 니게르(Gaius Pescennius niger) 총독이 4월 중순에 시리아의 4개 군단에 의해 황제로 추대받고 안티오키아를 임시수도로 선포하여 스스로 황제라고 자처했다. 이후 브리타니아 총독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도 황제를 자처했다. 그러나 좀 더 강력한 후보자가 나왔는데 그가 바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였다. 냉혹하고 영리한 정치가인 그는, 니게르가 먼저 황제를 참칭한 것을 알아챈 이후 가장 적절한 시점을 정해 16개 군단을 비롯한 라인 강과 도나우 강 주둔군 전체의 지지를 얻어낸 다음 황제를 자처했다.

2.3. 몰락과 죽음

페르티낙스가 죽은 지 2주가 채 되지 않은 4월 19일, 세베루스는 지금의 빈 근처에 있는 카르눈툼에서 자신의 본부에 주둔 중인 군단으로 하여금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게 했다. 그는 즉시 로마를 향해 진군을 준비했지만 우선은 브리타니아의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와 협정을 맺고 그의 지원을 얻기 위해 그에게 카이사르 칭호를 주었다. 세베루스의 군대가 로마를 향해 남쪽으로 진군하는 동안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그를 저지하기 위해 별에 별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다, 그는 근위대를 시켜 로마 주변의 땅을 파서 요새를 만들게 했다.[5]

그러나 이러한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프라이토리아니 병사들은 그 일을 회피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써서 그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즉위 후, 전임자를 살해한 근위대장 라이투스를 제거하지 않다가 뒤늦게나마 처형했는데 이 부분도 그의 근위대 장악능력을 확실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설상가상 세베루스를 살해하기 위해 암살범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밀착 경호를 받고 있는 세베루스의 보안을 뚫지 못했고, 민중들은 세베루스 진군 직전 니게르를 공동황제라도 올리던지 하라고 항의도 받았다. 그리고 이런 위기 속에서 율리아누스는 마지막 절망적인 조치로 원로원에게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를 공동 통치자로 임명할 것을 요청했지만, 로마 가까이 오고 있던 세베루스로서는 권력을 나눠 가질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

193년 6월 1일 원로원은 율리아누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세베루스를 황제로 임명했으며, 페르티낙스에게 신성한 영예들을 수여했다. 관리가 형을 집행하러 갔을 때 율리아누스는 모든 이에게 버림받아 홀로 된 채, 울고 불고 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처형되었다.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율리아누스는 죽기 직전에 "그런데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단 말인가? 내가 누굴 죽였단 말인가?"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불과 2개월 만에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온 판노니아(도나우) 사령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 의해 그의 66일의 짧은 치세는 막을 내리고, 곧이어 시작된 세베루스 왕조에 의해 로마는 얼마간 안정을 되찾게 된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비참하게 처형됐지만, 그래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또다른 정적들인 니게르,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와 달리 그의 유족들인 아내와 외동딸에게 시신을 인도하고 정식장례를 치룰 수 있게 해줬다.

3. 평가

사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평가는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는 즉위 과정에서 돈으로 제위를 산 행동과 노골적으로 제위에 욕심을 낸 모습 때문이다. 또 그는 국고를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도 페르티낙스와 함께 통화가치 하락의 책임이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따라서 그는 전임자와 함께 로마동전 가치 하락의 책임이 있다고 까이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노골적으로 제위를 사면서 국격을 떨어트린 그의 행동도 욕하고, 초인플레이션 상황을 초래한 황제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재위기간은 66일에 불과했고, 이 기간마저 본인 앞가림하면서 무력으로 밀고 내려오는 경쟁자와의 협상, 대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추가로 율리아누스는 돈으로 제위를 샀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제위에 오른 과정을 본인이 판을 짜고 주도해 오른 케이스도 아니었으며 제위에 오른 이후 원로원 내부 문제 정리를 평화롭게 조정하는 등 꽤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즉,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돈으로 제위를 샀다고 해도 이미지와 달리 전혀 함량 미달의 황제가 아니었다.

더 자세히 이 인물에 대해 평가해보면, 먼저 능력은 출중했던 황제였다. 즉위 전까지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곁에서 게르만족들로부터 본국 이탈리아를 훌륭히 지킨 공이 있던 장군이었으며, 콤모두스가 막장짓을 시작한 이후에도 자신의 전임자인 페르티낙스처럼 원로원과 군부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거물급 인사였다. 특히, 이 사람의 콤모두스 시대 행적들은 폭군에게 그냥 마음에 안 드는 이버지 시절 주요대신 중 한명이라고 찍힌 까닭에 공격받고 이를 법정 등에서 결백함 등으로 극복한 모습도 보여줬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그는 동년배의 라이벌 페르티낙스와 비교해 전혀 꿀리지 않았다. 황제로서의 모습 역시 마찬가진데 재위기간이 짧긴 했지만, 적어도 그는 콤모두스가 망친 로마 상황을 파악해 일처리를 했고 페르티낙스처럼 무리하게 개혁을 시도하고 이를 밀어붙이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속사정을 알고보면 이 사람을 막장으로 치부하기엔 분명 문제가 있으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황제는 결단코 아니었다. 즉위과정에서 보인 행동 탓에 혹평은 들을 수 있어도, 콤모두스 이후 상황과 3세기의 위기 중 한가지 원인으로 지적받는 초인플레이션 상황까지 그가 모두 책임지면서 욕 먹는 것은 본인의 마지막 절규처럼 진짜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율리아누스는 라이투스가 이끈 프라이토리아니에게 돈으로 제위를 산 황제였고 이런 연유로 인망이 없어진 채 소방수로 투입된 황제였다. 즉, 백번 양보해 자질도 있고 세간의 평과 달리 나쁜 행동은 안했다고 해도, 즉위 과정에서 부도덕한 행동에 가담한 것만으로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스스로 제위에 욕심내면서 즉위한 까닭에 국격을 훼손한 당사자 중 한명이 바로 디디우스 율리아누스 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분명히 그 평가가 박할 수 밖에 없었고, 황제라는 직위와 위용에 심각한 타격을 준 인물이라고 고대부터 지금까지 두고두고 씹히고 있다.

4. 여담

  • 황제가 되기 전, 로마장군으로 있으면서 상대한 게르만족이 카티족, 카우키족 등 이름난 부족들이었는데 로마 국경을 넘어 침공한 이들 부족들은 율리아누스에게 패한 뒤 한동안 국경을 위협하지 못했다고 한다.
  • 외동딸 디디아 클라라가 상당한 미녀로 유명했다. 디디아 클라라가 어린 시절 약혼한 약혼자는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의 형 디디우스 프로쿨루스였지만, 실제 결혼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이후 디디아 클라라는 세습 원로원 의원 코르넬리우스 레펜티누스[6]와 결혼했는데, 로마 교외에서 열린 율리아누스의 정식 장례식 후 딸 내외는 완전히 중앙정계를 떠나 조용히 살았던 터라 더 이상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율리아누스 사후 한달여 뒤 아내 만리아 스칸틸라는 사망했다고 한다.

[1] 그것도 후보 둘이 군인들 앞에서 하사금을 제시, 즉 경매였다. [2] 루킬라가 콤모두스를 암살하기 위해 여동생 부부들과 공모해 콜로세움에서 암살을 시도할 당시에도 개입하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3] 그리스 크레타 섬 태생으로 사위 페르티낙스보다 10살 정도 어렸다.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에게는 용서를 받아 지위를 유지했지만, 율리아누스 몰락 직후 클로디우스 알비누스를 지지했다. 따라서 뒤에 등장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명에 따라, 197년 기소된 뒤 반역 혐의로 처형됐다. [4] 그래도 막대한 자산을 가진 부자였고, 돈으로 제위를 산 만큼, 막대한 보너스는 예정대로 지급했다. [5] 당시 도시에는 방어 시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6]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기간동안 로마 고위직을 두루 거친, 철인황제의 스승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프론토의 친구 섹스투스 코르넬리우스 레펜티누스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