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04 16:06:49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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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를 주제로 한 금호타이어 CF. 영상에는 34번째로 많은 까지만 등장한다. 다만 5번째 자리에 실제 5위인 씨 대신 41위인 씨가 대신 들어갔다.[1]

1. 한국 성씨의 역사
1.1. 성과 본관1.2. 현황
2. 문화적 수입품으로서의 한국 성씨3. 귀화성(歸化姓)4. 조상이 같다고 보는 성씨들5. 등록된 성씨 목록6. 등록된 본관 목록( 가나다순)7. 한국의 성씨 분포8. 성씨별 상징(종문)9. 기타10. 같이 보기

[clearfix]

1. 한국 성씨의 역사

한국의 성씨는 삼국시대 한자(漢字) 등 중국 문물 수입과 함께 도입되었으며 한민족식 복성도 사용하였다.[2] 고구려 또한 고구려식 성씨를 사용했을 것이지만 중국 사서나 삼국사기에서는 중국식 단성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경우 한민족식 성씨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에 고구려인의 성씨가 복성으로 표현되었고 신라 이사부 등도 이질부례지간기 등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을 보아 중국 사서와 그것을 인용한 삼국사기에서는 한국의 성씨를 표현할 때 한민족식 복성보다는 중국식 단성 성씨로 표현을 바꾸어 기록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일본의 五왕들 또한 중국 기록에서는 단성으로 표현된다. 신라(+ 가야)는 금석문 등을 통해 볼 때 삼국시대 초기에는 부족명이나 지명에서 따온 토착식 성씨를 사용하였으나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삼국시대 후기로 갈수록 중국식 단성을 사용하게 되며 토착식 성씨는 거의 없어지게 된다. 백제 또한 중국측 기록에서는 단성으로 나타나지만 일본서기 등에서는 발음 그대로 한자로 표현하여 복성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많다.

이후 남북국시대로 들어서면서 발해 신라든 토착식 복성 기록은 거의 쇠퇴한다.[3]

그러나 후삼국시대의 인명을 보면 신라나 발해 귀족층을 제외하고는 고려, 후백제 귀족 및 유력 호족층이라도 아예 성씨가 없는 고유명이 훨씬 많았다. 즉 남북국시대까지 성씨는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었으며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토착문화가 강해 성씨 없이 이름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때부터 본격적인 한국 성씨의 역사가 시작된다. 본관이 처음으로 도입되고 중국식의 한 글자로 된 단성이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본관 + 단성'의 형태가 주류가 됐다. 특히 1055년 고려 문종 9년에도 아직 성씨가 없는 귀족층이 많았는데 성씨 사용을 추진하기 위해 성씨가 없는 사람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는 봉미제도(封彌制度)가 시행되었다. 봉미제도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모든 귀족층들은 중국 성씨를 빌려다가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족보가 오래될수록 권위가 높아지는 시대였고 그 권위가 과거 합격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사서 등 옛 서적에 존재하는 중국 성씨와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중국 인물들을 가져다 족보를 만들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성씨는 가문의 권위나 역사를 늘리기 위해 실제로 자신들 조상과 혈연이나 관련이 없는 중국 성씨를 빌려다가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족보에 존재하는 중국 인물들이 중국 측 기록에는 전혀 등장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고려시대 때는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에서의 공격과 합병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려인은 거란족과 여진족과는 차별성을 두어야 했고 봉미제도까지 시행이 되니 중국에는 기록이 전혀 없는 가공의 인물을 이용하거나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족보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였다. 또한 고려 왕조에서 복성을 가진 자들은 거란식 복성 같다며 중국식 성씨를 하사하는 경우도 많았다.[4] 조선시대에는 모화사상으로 인해 혈연이 없는 중국 성씨를 조상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한국인 90%가 가짜 성·가짜 족보?...몰랐던 성씨 이야기 특히 고려시대 때는 거란과의 긴장적 대립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거란과 여진에 편입되지 않을 차별화된 성씨가 필요하게 되었고 한민족 토착 대가세족들은 중국식 성씨를 빌려와 족보를 제작하면서 출신 또한 거란과 여진과는 다르게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제작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이러한 기록들이 족보에선 보이나 실제 중국의 기록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출처] 또한 조선 중기부터 양민들이 중국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족보 위조로 양인층에게도 성씨가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위조된 족보를 미화하였다. 1764년 중인이었던 김경희가 거짓 중국 인물들을 족보로 위조 판매하다가 발각되었던 사건도 있었다.

15세기 초를 기준하여 한국의 성씨가 총망라된 『 세종실록지리지』소재 성자(姓子)를 당대(唐代)의 ‘군망표’ 소재 성자와 대비해 보면, 전자는 대부분 중국의 유명 성자를 모방한 것이며, 후자에 없는 것은 박씨 등 16성(···············)에 불과하다. 그나마 군망표에 없는 성자도 박씨를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정초(鄭樵)의 『 통지략』(通志略) 씨족지에 나타나 있다. 중국 역대에 걸쳐 성씨를 취득한 연원 32가지를 열거하면서 (國)·(邑)·(鄕) 등 지명을 성자로 한 것이 가장 많고, 명(名)·자(字)로 한 것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고 하였다. 박·석·김씨와 같은 신라의 종성은 원래 신라에서 출자한 것이며, 후삼국시대 이래 호족들의 한자성씨화 과정에서 스스로 성씨를 호칭해 놓고 보니 우연히 중국의 성자와 동일한 것도 많았다.

이중환은 『 택리지』에서 본격적인 중국식 성씨의 보급시기를 고려 초로 잡고 있다. 그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비로소 중국식 성씨제도를 전국에 반포함으로써 사람들은 모두 성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는 성씨의 보급과정을 설명하면서 크게 ① 고려 초 사성(賜姓) 이전의 성씨(삼국 및 가야의 왕실), ② 중국에서 동래(東來)한 성, ③ 고려 초 사성 등 셋으로 나누면서, ①과 ②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③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에 대하여 확실한 근거자료는 아직 찾지 못하였지만, 940년(태조 23)경을 전후하여 전국 군현에 성씨가 분정되었던 것이며, 이는 다음의 사실이 뒷받침해 준다.
  1. 왕건은 즉위 이래 개국관료·개국공신 및 귀순호족들에 대한 사성을 광범위하게 실시하였다. 둘째, 신라의 왕가 3성(박, 석, 김)과 6부의 성씨(이, 최, 정, 손, 배, 설), 그리고 한씨, 마씨, 전씨 등 기타 유래 성씨처럼 고려 건국 이전에 성립한 기존의 한성과 중국에서 도래한 외래성을 제외하면 나머지 각 성의 시작은 대부분 고려 초기로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2. 고려사』 태조세가에 등장하는 인물을 분석해 보면 태조 23년을 전후하여 그 이전에는 고유명이 주류를 이루다가 그 이후부터는 한식성명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광종을 거쳐 성종대(982∼997)와 현종대(1010∼1031)로 내려오게 되면 고유명을 가진 인물이 관료 계층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성종(10세기 말) 이후가 되면 지방군현의 양민층에게까지 성씨가 수용되고 있었다.

고려 초에 확립된 성씨 체계는 15세기 초까지 끊임없이 분관·분파 등을 통해 성의 분화와 발전이 계속되었던 것이며, 조선왕조의 성립과 함께 성씨체계도 다시 정비되었는데 그것이 15세기에 편찬된 『 세종실록지리지』와 『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중국식 성씨의 수용 및 보급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첫째 왕실과 중앙귀족층에게 수용된 시기는 삼국 말기부터 남북국 말기까지이며, 둘째 지배층 일반에게 중국식 성씨가 보급되어 성과 본관체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 초기이며, 셋째 양민층에게 확대된 시기는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다.

중국식 성씨가 대규모로 보급된 뒤에도 무성층으로 남아 있던 공사노비, 화척(禾尺), 향·소·부곡민, 역·진민 등 천민층은 10세기 이래 조선시대까지 개별적인 신분해방과 신분상승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성씨를 획득해 갔지만 그들에게 성씨가 획기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조선 후기였다. 최하층인 이들은 조선 후기 300년간에 걸쳐 점차적인 신분해방과 함께 새로이 성을 가지게 되었다. 다만 그 이전에도 성씨가 있던 양인이 죄를 짓거나 몰락해 노비가 되거나 부모중 한쪽이 양인이어서 이어줄 성씨가 있던 경우 천민이라도 성씨를 쓰는 경우가 있었고 특히 공노비의 경우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당시 사회계층을 크게 양반·중인·상민·천민으로 나눌 때, 양반층은 일찍이 군현토성에서 귀족과 관인을 배출한 사족(士族) 가문이며, 중인층은 각 관청과 군현의 서리·기술직을 맡은 이족(吏族)으로 양반의 서얼 출신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 상민층은 고려 이래 관인을 내지 못한 일반 농민층으로서 성종(姓種)상 백성성·촌성·향·소·부곡성 출신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는 공명첩을 가진 관리가 팔도를 돌면서 군량을 바친 자나 군공을 세운 자에게 공명첩을 발부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가 재정이 탕진되었고, 당쟁의 폐로 국가 기강이 문란하였으며, 또 흉년이 자주 들어서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니 조정에서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명예직을 주고 그 대가로 많은 재정을 확보하였다. 1677년(숙종 3) 기근을 당하여 가설첩을 만들어 진휼청에서 매매했다. 가설첩의 매매로 얻은 돈으로 영남 지방의 기민들을 구제했으며 영조 시대에 공명첩의 이름으로 여러 번 발행하여 돈을 얻어 백성을 구제하였고, 순조 시대에도 이조정랑 김재찬(金在瓚)의 적극적인 주장에 따라 공명첩을 발행하였다. 이것은 사회가 극도로 혼란되었을 때에 매관매직을 합리적으로 조장했다. 물론 이때 공명첩은 부가 있는 양민들에게나 해당되며 노비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성종7년(1476년)에 완성된 『경국대전』에는 각종 노비의 가치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여기선 15-16세기 초 장년노비 한사람의 가격은 저화 4000장이었다고 한다. '저화20장=면포1필'로 환산할 경우, 노비 가격은 면포 200필에 해당한다. 노비는 소보다 값어치가 낮았다. 노비들은 가축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전란에도 동원되지 않았고 당연히 양반은 커녕 양민되기도 불가능한데 공명첩은 쳐다볼 수도 없었다.

특히 1894년 고종 때의 갑오개혁을 계기로 종래의 신분·계급이 타파되며 인구의 거의 전부가 성씨를 가지게 되었고, 1909년 새 민적법(民籍法)이 시행되면서부터는 누구나가 다 성과 본을 갖게끔 법제화되었다. 오늘날의 희성·벽관 가운데는 당시 경찰이 호구조사를 하고 호적담당 서기가 호적을 일일이 손으로 기재하다가 한자의 획(劃)을 잘못 적은 데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다.

어쨌든 이 당시 무성인이 이때를 기하여 새 성을 갖게 되자 갖가지 희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성이 없는 사람에게 본인의 희망을 따라 호적담당 서기나 경찰이 마음대로 성을 지어주기도 하였는가 하면, 노비의 경우는 상전의 성을 따르기도 하였다. 또 주위에 많은 김·이·박 등 대성을 모방하여 성을 정함으로써 종전의 대성 명문들은 그 수가 더욱 늘어갔다. 가령 전주에서 출생한 사람은 이씨, 경주지방 출신은 김씨나 최씨 하는 식으로 출신지의 대성이나 문벌을 본떠서 자기 성으로 정한 경우가 많았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전근대시대 귀족 혹은 유력계층의 성씨 독점→근대화 확립 후 일반 평민들의 작성(作姓)을 거쳐서 성씨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상술한 한국식 성씨를 정하는 방법과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한국의 성씨가 만들어진 배경에서 기인하는데, 대개 아래로부터의 시민 혁명이 일어나 구체제가 청산되었거나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근대화가 진행되며 만들어진 다른 나라들의 성씨와는 다르게 조선의 상민들은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인 전근대시대부터 조세를 피하고 군역을 면하기 위해서 족보를 사거나 위조했다. 당연히 신분제가 존속하는 중에 새로운 성씨를 만들어봤자 전혀 이득이 없었기에 다른 양반의 성씨를 빌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 특히 보편적인 양반 성씨가 아닌 벽성을 빌리거나 창성했다간 상민 출신인 티가 팍팍 났기 때문에 더더욱 대성으로 몰리게 되었다. 갑오개혁 이후에도 법적인 신분제는 없어졌어도 신분제의 관습은 바로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찬가지였다. 민적법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노비와 천민 계급까지 모두 성을 갖게 되었는데, 노비의 경우에는 주인의 성씨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6]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이 추진되었다. 그 이전에도 경우에 따라 일본식으로 성명을 고치는 사람은 있었을 테지만 창씨개명은 이를 전 조선인에게 '권장'하는 것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강제였다. 그러나 한민족에게는 성이란 일생토록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관념이 철저했기에 친일/반일을 막론하고 반발이 심했다. 그때 각 씨족 문중은 회의를 열어 창씨를 하면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어떻게든 고유의 성이나 본관의 흔적을 남기려고 무척 애를 썼다. 가령 이가(李家)·김본(金本)·배정(裵井)·오산(吳山)·장전(張田) 하는 식으로 본성을 표시하였는가 하면, 남양(南陽)·수원(水原)·경산(京山)·광산(光山) 하는 식으로 본관을 그대로 성으로 쓰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시조전설이나 연고지를 상징화하여 성으로 쓴 일도 많았다. 가령, 파평 윤씨의 경우 평소(平沼, 히라누마)라 하였는가 하면, 한산 이씨는 본관에다 목은(牧隱)의 자손임을 강조하여 목산(牧山, 마키야마)이라 하였고, 청주 한씨는 청주의 고호인 서원(西原, 니시하라)[7]을 그대로 성으로 썼다. 남씨, 오씨, 류씨 등은 이미 일본에도 미나미, 구레, 야나기 씨로 있던 성씨라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도 불이익 없이 넘어갔다. 이러한 일본인식 창씨는 입부혼인(入夫婚姻)·서양자(婿養子) 제도와 함께 1939년 말부터 실시되었다. 하지만 일제가 패망한 뒤 미군정의 조선성명복구령(朝鮮姓名復舊令)이 1946년 10월 23일 법령 제122호로 공포되며 일제하의 창씨개명으로 인한 일본식 씨명은 그 효력을 잃었다.

한편, 성자에 의한 한국 성의 수는 성씨관계 문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성씨 관계자료인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모두 250여 개의 성이 나오는데, 그중에는 이미 소멸된 망성이 포함되어 있다.

1486년(성종 17)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세종 이후에 귀화한 성과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성씨(망성 포함)를 수록한 결과 277성이나 되었다.

영조 때 이의현(李宜顯)이 편찬한 『도곡총설 陶谷叢說』에는 298성이 나오는 데 비하여 고종 때 발간한 『증보문헌비고』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던 고문헌에 있는 모든 성을 거의 망라하였기 때문에 무려 496성이나 수록되었는데, 여기에는 한성화 이전의 고유명자(固有名字)와 이미 소멸된 역대의 망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걸쳐 후대까지 존속된 성수는 15세기 지리지 소재 성수대로 대략 250성 내외였다. 그러한 사실은 1930년대 국세조사 때 250성, 1980년대 국세조사 때 250성 안팎으로 나타나는 데서 확인된다.

성세(姓勢)와 본관수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김·이·박씨 등과 같이 대성일수록 본관수가 많았다. 이의현은 『도곡집』의 「도곡총설」에서 한국의 성 298성을 그 성세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① 저성(著姓): 李·金·朴·鄭·尹·崔·柳·洪·申·權·趙·韓(12성).[8]

② 그 다음 저성: 吳·姜·沈·安·許·張·閔·任·南·徐·具·成·宋·兪·元·黃(16성).[9]

③ 그 다음 다음 저성: 曺·林·呂·梁·禹·羅·孫·盧·魚·睦·蔡·辛·丁·裵·孟·郭·卞·邊·愼·慶·白·全·康·嚴·高(25성).[10]

④ 희성(稀姓): 田·玄·文·尙·河·蘇·池·奇·陳·庾·琴·吉·延·朱·周·廉·潘·房·方·孔·偰·王·劉·秦·卓·咸·楊·薛·奉·太·馬·表·殷·余·卜·芮·牟·魯·玉·丘·宣 (41성).[11]

⑤ 그 다음 희성: 都·蔣·陸·魏·車·邢·韋·唐·仇·邕·明·莊·葉(섭)·皮·甘·鞠·承·公·石(19성).[12]

⑥ 벽성(僻姓): 印·昔·龔·杜·智·甄·於·晉·伍·拓·夜·賓·門·于·秋·桓·胡·雙·伊·榮·思·邵·貢·史·異·陶·龐·溫·陰·龍·諸·夫·景·强·扈·錢·桂·簡(38성).[13]

⑦ 귀성(貴姓): 段·彭·范·千·片·葛·頓·乃·間·路·平·馮·翁·童·鍾·酆·宗·江·蒙·董·陽·章·桑·萇·程·荊·耿·敬·寗·京·荀·井·原·袁·萬·班·員·堅·騫·燕·時·傅·瞿·嵇·米·艾·梅·雷·柴·聶·包·何·和·賀·花·華·賈·夏·麻·牛·僧·俊·曲·栢·翟·畢·谷·弓·種·邦·凉·良·芳·卿·刑·永·乘·登·昇·勝·信·順·侯·藩·端·鮮·芊·牙·水·彌·吾·珠·斧·甫·部·素·附·凡·固·台·才·對·標·肖·那·瓜·化·壽·祐·價·尋·森·占·汎·克·郁·翌·宅·直·則·澤·綠·赫·冊·濯·骨·燭·律·物·別·實·弼·合·乜·鴌·揚(136성).[14]

⑧ 복성(復姓): 南宮·皇甫·鮮于·石抹·扶餘·獨孤·令狐·東方·西門·司馬·司空(11성).[15]

이상 298성에는 『세종실록』 지리지 소재 250여 성과 『동국여지승람』 270여 성 및 그 뒤 귀화성이 모두 합산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이미 소멸된 망성이 많이 포함되었다. 성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늘고 줄게 마련이어서 옛날에 있던 성이 뒤에 소멸되기도 하고 과거에 없던 성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15세기 이래 현재까지 한국의 성수는 대략 250성 내외가 되었는데, 송나라 소사(邵思)의 『성해姓解』에 의하면 한자성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2,568성이나 되며[16], 한국의 성에 해당되는 일본의 씨(氏)는 그 종류가 10만에 가깝다 하니, 중일 양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성종은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250여 성 가운데 김·이·박·최·정씨 등 5대성이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같은 성씨여도 파가 다양하게 존재하기도 한다.

1.1. 성과 본관

씨성(氏姓) 또는 토성(土姓)이라 할 때 ‘씨’와 ‘토’는 그 성의 출자지인 본관을 의미하고 있다. 성과 본관은 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한국의 성씨 체계 가운데 한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본관제도이다.

일반적으로 성과 본관이 모두 같으면 동족이 된다. 다만 이것은 원칙론이지, 실제로는 예외가 많아 상당히 복잡하다.

씨족의 연원을 같이하면서도 성 또는 본관을 서로 달리하는 성씨가 많은가 하면, 반대로 이족이면서도 성과 본관을 같이하는 경우도 많다. 편의상 성과 본관을 조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몇 개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동족의 동성동본과 동성이본, 동족의 이성동본과 이성이본, 이족의 동성동본과 동성이본, 이족의 이성동본과 이성이본 등 8가지 경우가 있다.

본관의 연원을 추적해 보면, 첫째 성을 사용하기 전인 7세기 이전에는 그 사람의 출신지(거주지)가 신분의 표시로서 성의 구실(신라의 6부 같은)을 하였으며, 둘째 본관이란 시조의 출신지 또는 그 씨족이 대대로 살아온 고장을 가리킨 것이며, 셋째 신라 말 고려 초 이후 성이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혈족계통을 전혀 달리하는 동성이 많이 생겨남으로써 이족의 동성과 구별하기 위하여 동족의 표시로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성의 분화과정에서 성만으로는 동족을 구별할 수가 없으므로, 조상의 출신지 또는 씨족의 거주지를 성 앞에 붙여서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본관이 곧 신분의 표시이기도 하였으므로 주로 지배층에 사용되었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성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신분질서의 유지와 효과적인 징세·조역의 필요상 일반 주민에게까지도 호적에 본관을 기재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적제도가 정비된 고려시대부터는 성이 없는 천민층도 본관을 호적에 기입했던 것이다.

성의 분화와 같이 본관도 후대에 내려올수록 분관·분적이 늘어 시조의 발상지 외에 봉군지(封君地)·사관지(賜貫地) 또는 그 후손의 일파가 이주한 곳이 새 본관이 되었다. 한국의 본관체계가 최초로 확정된 시기는 고려 초이며, 그때부터 15세기 초까지 본관의 구체적인 모습이 담긴 기본자료는 『세종실록』 지리지 성씨조이다.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발전에 따라 기존의 대성과 명문들의 본관은 우월시되고 무명의 벽관은 희성·벽성과 함께 천시하는 관념이 만연되어 갔다. 그래서 기성 사족(士族)이 된 본관은 그 성씨가 계속 증가해 간 반면, 관인이나 현조를 내지 못한 본관은 개관(改貫)하는 추세에 있었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전기에는 본관수가 수십이 넘던 성 가운데 조(曺)는 창녕 조씨, 한(韓)은 청주 한씨, 심(沈)은 청송 심씨, 문(文)은 남평 문씨 하는 식으로 본관의 개변이 많았다.

한국의 성씨는 16세기부터 성을 바꾸는 행위는 극히 드문 반면 본관을 개변하는 경우는 많았다. 왜냐하면 성보다는 본관에 따라 성씨의 우열과 가문의 품격에 차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의 행정실무를 장악하고 있던 군현 향리의 사족화에 따라 본관의 개변이 자행되었고, 왜란·호란 후 모화사상의 영향을 받아 주(朱)씨는 신안(新安), 공씨는 곡부(曲阜), 천씨는 영양(穎陽)으로 바꾸는 예가 있었다.

1.2. 현황

다른 나라와 달리 전체의 10%가 안 되는 성씨들이 전 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른 나라는 하나의 성이 인구의 1%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17] 1%를 넘는 경우에도 10%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 성씨라는 김씨는 인구의 20%에 육박하고, 김이박 3성이 전체 인구의 45%를 넘는다. '한양에서 돌을 던져 누가 맞으면 김이박 중 한 명'이라는 농담도 있고, 오죽하면 동남아시아에서도 소문이 나서 동남아 여행하는 한국 사람을 본 현지인 행상꾼이 '김 사장님, 물건 싸요 사세요'를 외워서 외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 이렇게 된 것은 성씨가 없던 사람들이 성씨를 가지게 되었을 때, 새로운 성씨를 만들기보다는 동일 성씨 집단 부여, 족보 위조 등과 같이 기존의 성씨로 편입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희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주변으로부터 놀림을 받는 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결코 적지 않아서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2008년에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자식의 성씨를 부친의 것이 아닌 모친의 것으로 물려줄 수 있게 되면서 희성을 물려받지 않는 사례도 나오는 중이니[18]세월이 흐르면서 안 그래도 적은 한국의 성씨는 더 적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으로 귀화한 프랑스 출신의 방송인 이다도시는 인구 5,000만이 넘는 나라에서 어떻게 성씨가 고작 300개 정도에 불과하냐[19]면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서양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나라 중국, 일본의 성씨 수와 비교를 해보면 턱없이 적은 수의 성씨이다.

귀화인을 제외한 한국 성씨는 2003년 기준 286개이다 출처.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중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씨를 제외하면 전 국민의 절반도 남지 않는다. 게다가 성씨 종류 자체도 심하게 적다.[20] 많이 쓰는 성씨만 해도 중국은 100~200개[21], 일본은 약 2100개로, 한국이 얼마나 성씨가 적은지 알 수 있다. 아울러 286개라는 숫자도 발음은 같아도 한자가 다른 성씨를 따로 집계한 것이고, 성씨를 한글로만 적었을 때는 100개를 조금 넘는 정도다. 이보다 더 심한 사례는 베트남밖에 없다.[22]

성씨 통계에 500개도 잡히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시 기준으로 그때부터 존재하고 있던 성씨만 조사에 넣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귀화계인 ' 존슨씨' 같은 것은 통계 순위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다만 조선족이나 재일 등의 한국계 외국인이 한자 성씨를 가지고 귀화할 경우 이런 경우는 귀국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통계에 새로 추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성씨가 같은 사람이 자주 나타나며, 성만으로는 희귀 성씨가 아닌 이상 사람을 구별하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라는 속담도 있을 정도다. 따라서 성만으로 사람을 부르거나 지칭하는 경우는 뒤에 계급이나 직함이 붙는 경우(김 일병, 박 선생 등)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에 비하면 거의 없다. 게다가 기존 한국인의 창성을 금지하는 법이 성씨의 희소함에 한몫을 하기도 한다. 뭐 덕분에 성을 뺀 이름이 일종의 대물림되지 않는 성씨(?) 같은 역할을 하기는 한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한국인의 언어 사용 문화에서 '성씨만으로 사람을 칭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행위로 취급받는 편이다.[23] 사람을 '김 씨', '박 씨' 등으로 호칭하면 질 낮은 직장과 같이 구성원의 교양 수준이 떨어지는 곳에서 상대방을 함부로 막 부를 때나 쓰는 용어라고 여기는 것은 이 때문. 성씨로만 부르는 것이 상대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서양권이나, 친소관계에 따라서 오히려 성씨로 호칭하는 것이 격식을 차린 표현이 되는 일본과는 정반대다. 대신 그 반대급부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의 장벽이 위 두 문화권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부문에 따르면 5,582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지난 통계에 비해 급증하였는데[24], 이는 한자가 없는 성씨 4,075개까지 통계로 넣어 귀화성까지 추가된 것 때문이다.[25] 한자가 있는 성씨만 따져도 1507개로 5.27배로 폭증하였는데, 이는 중국, 일본계 귀화인이 원래의 성씨를 그대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성씨본관의 경우 36,744개로 김해 김씨가 전체 국민의 9%를 차지했고, 상위 10개 성씨가 전체 국민의 63.9%를 차지했다. #

북한으로부터의 월남, 6.25 전쟁, 그리고 산업화로 인한 인구 이동으로 정도는 약해졌지만, 한국에서도 어느 지방에서는 흔한 성씨가 다른 지방에서는 드물어지기도 한다. 특히 본관별로 본다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북 지역으로 차(車)씨, 강(康)씨는 대부분 황해도 지방, 계(桂)씨, 선우(鮮于)씨는 대부분 평안도 지방, 동(董)씨는 대부분 함경도 지방에 많으며, 이남 지역으로 권(權)씨, 박(朴)씨는 경상북도, 곽(郭)씨, 하(河)씨는 경상남도, 신(辛)씨, 함(咸)씨는 강원도, 가(賈)씨, 임(任)씨 맹(孟)씨는 충청남도, 변(卞)씨 어(魚)씨는 충청북도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소(蘇)씨, 온(溫)씨는 전라북도, 나(羅)씨, 국(鞠)씨는 전라남도, 고(高)씨, 양(梁)씨는 제주도에 많다.

전산 오류로 인해 새로운 성씨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부분 한자 오기로 인해 생긴 성씨이며 이렇게 생긴 성씨들은 대개 집계될 때 한 자리 수 단위밖에 되지 않는다. 순씨 같은 경우 오기로 인해 분화된 성씨가 많다.

2. 문화적 수입품으로서의 한국 성씨

전부 중국식 성씨 아니냐는 태클을 종종 받기도 하지만 북위를 건국하여 중국 한족들을 지배한 선비족들도 한자를 쓰는 한족들에게는 한자식 성씨로 기록되어 있었고 당시 중국을 지배하던 이민족 지배층들이 한자식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인들도 한자식 성씨를 쓰게 된 것이다. 또한 이사부가 일본서기에선 만요 가나[26]로 적힌 이름이 존재하듯이 한국인들은 한국식 성씨를 썼더라도 고려시대 삼국사기에선 한자 성씨로 표기된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에 있는 주류 성씨들은 대부분 한국 고유 계통이 맞다. 이미 중국을 지배하던 이민족들이 사서에선 한자 성씨로 기록되었듯이 한국에서도 한자 성씨를 쓰는 것이 유행이였고 특히 고려시대 때는 거란의 요나라와 여진의 금나라의 공격과 합병의 위험때문에 거란족이나 여진족과의 차별성이 중요하였고 그래서 고려 왕조에서 한자식 성씨를 하사하거나 중국에는 기록이 없고 자신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가공의 중국 인물을 이용하여 너도 나도 족보를 만드는 것이 유행하였다. 즉 족보에선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만든 가공의 족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이를테면 신라 왕성 김씨 박씨[27], 그리고 신라 건국 6성인 이씨, 최씨, 정씨(鄭), 손씨, 배씨, 설씨(薛), 그리고 허씨 등은 시조가 분명히 한인(韓人)이다. 그러나 시조가 한인이라고 해서 해당 성씨 자체가 무조건 한반도에서 유래했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사람의 이름은 스페인식, 아이티 사람의 이름은 프랑스식 이름이나 성씨가 많다. 필리핀 사람이 고대부터 스페인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원주민들이 멸종하여 스페인인만 남게 된 것도 아니다. 라모스· 에스트라다· 아키노 같은 스페인식 성씨를 가진 사람들은 어쩌면 스페인 귀족 가문의 후예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토종 필리핀 사람이 단순히 성씨만 차용하였을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인명기록을 찾아보면 알 수 있지만 1자 성씨는 지리적으로 가까워 중원 문화를 접하기 쉬웠던 고구려에서 우선으로 시작하여 신라로 전파되었고, 백제는 1자와 2자를 혼용하여 사용했다. 특히 신라같은 경우 초기 비문에서는 부족명이나 존칭어까지 모두 이름으로 합하여 기재하는 등 좀 복잡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야와 비슷한 경우.

이는 일부 귀족층 한정이었고, 본격적으로 중원 문화를 받아들여 중국식 성씨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된 건 다양한 호족들의 출신과 가문을 본관성씨 체계를 통해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고려시대부터였다. 발해 말갈족이나 피지배층은 몰라도 사절단의 인명을 볼 때 지배층은 중국식 성씨와 3자 이름을 사용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그 중에서는 박씨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 발해로 건너가 정착한 사람도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결과 현대 한국인의 성명은 한자 정자로 써 놓으면 글자만 갖고는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식별이 힘들 정도로[28] 중국인과 닮게 되었다. 물론 이는 일본, 베트남 같은 다른 한자문화권 국가들도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사항이기는 하다. 의외인 사실은 1자성+2자명은 오히려 중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정착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1자를 가장 우월하게 봤기 때문에 삼국시대(중국)까지만 해도 1자성+1자명이 대세였다. 반면 한국의 경우 원래 성씨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29] 초창기 인명의 경우 주로 그냥 2자명으로만 표기하다가 삼국시대부터 중국 문화를 본격적으로 수입하며 1자성 또한 수입되었고 자연스럽게 1자성+2자명의 형태가 발생하였다.[30] 이후 중국은 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 이민족의 대규모 유입과 강남 개발로 인한 인구 폭증 때문에 동명이인이 늘어나 2자명이 대세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단 적어도 당나라부터는 2자명이 확실히 대세가 되어 있었다.

현대 한국의 성씨가 중국식이라는 것은 성씨가 거의 일반명사로서의 뜻이 없거나 알기 힘든 데서도 나타난다. 성씨도 결국 언어(굳이 한정하자면 낱말)이므로, 대개 일반명사에서 발전하거나 특수하게 한정되어 성씨로 쓰이기 마련인데, 한국의 성씨는 고유어 일반명사에서 나온 사례가 드물다.

"고허촌장 소별공이 양산의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옆의 숲에서 웬 말이 꿇어 앉아 울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자 말은 홀연히 사라져 보이지 않고 큰 알만 하나 남았다. (중략) 커다란 알이 마치 의 모양과 비슷하게 생겼으므로 그의 성을 '박(朴)'으로 한 것이다."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박씨의 유래가 박(식물) 모양의 알에서 따왔기 때문에 박이라는 성씨를 지었다는, 한반도의 고유 성이 틀림없음을 증명해주는 특별한 사례다. 이렇게 중국과 아무 관련이 없음이 명확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박(朴)씨가 매우 드물고, 일부 있더라도 한반도의 박씨와 많든 적든 관련있는 조선족, 만주족 계열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예를들어 배(裵)씨가 ' 배(梨)'나 ' 배(舟)'나 ' 배(腹)' 등과 관련이 있다거나, 이(李)씨가 ' 이(齒)'나 ' 이(蝨)' 등과 관련이 있는 게 확인되면 한반도 토착어에서 발전한 고유 성씨가 틀림없겠는데, 아무리 봐도 절대다수는 성으로 쓰인다는 것 이상의 언어적인 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아 이거 중국에서 복붙해 온 모양이네?" 하는 것이다. 비주류 성씨 가운데 어원이 본디 고유어였을 가능성이 있는 성씨는 앞서 설명한 박씨 말고도 제주 양(梁 ← 良)씨·제주 고(高)씨·제주 부(夫)씨, 그리고 궉(鴌)씨가 있다. 양씨·고씨·부씨는 각각 탐라 건국설화의 삼성혈 전설의 양을나(良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를 시조로 하는데, 乙那는 소리값이나 표기한자를 보아 탐라어를 뜻과 관계없는 한자로 적은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양·고·부도 현재로선 어원이 불확실한 탐라어의 접두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중국에서 부씨는 극히 희귀한 성씨이기 때문에 박씨와 함께 한국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성씨이기도 하다. 한편 鴌의 독음은 '봉'이고 뜻은 '봉황'인데 궉이라는 독음은 한국에서만 쓰는데다가 그 뜻이 '꿩'이다. 다시 말해서 '꿩'이라는 고유어가 '궉'이라는 한자음으로 굴절된 것이다. 현재 궉씨는 명나라에서 귀화한 중국인을 일단 족보상으로는 시조로 하고 있지만, 이런 사정을 따져볼 때 이것은 아래에도 나올 실제 혈통과 전혀 관계 없이 조상을 중국인으로 지어낸 대표적 사례로 볼 수도 있겠다.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연결고리를 찾으려면, 이들 글자가 어떤 일반적인 뜻에서 성으로 전이되었는지를 한문( 중국어)를 통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음독하여 중국화한 성씨가 사실 토착어 유래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도 있다. 소(蘇)를 쇠(鐵)의 변형으로 보아 소씨와 김(金)씨가 서로 통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쇠와 발음이 비슷한 경주 최(崔)씨의 시조가 마침 김씨가 다스렸던 나라인 신라 초기의 인물인 소벌도리(蘇伐道理)라고 하는 걸 보면 뭔가 의미심장하다. 또한 소벌도리의 후손 알천(閼川)은 진골귀족(=김씨)인데 동시에 소씨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진주 소씨는 소벌도리를 비조[31], 알천을 시조로 삼고 있다. 다만 경주 최씨 측에서는 알천이 소벌도리의 후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역사서에서 한 사람을 최씨와 소씨로 동시에 부른 예는 존재하지 않으나, 소씨와 김씨로 동시에 쓰인 예는 소알천/김알천 이외에도 김율희(金律熙)/소율희(蘇律熙) 등이 존재한다.

당대의 인명을 보여주는 1차 사료(신라 금석문)를 보면 사람 이름이 성씨 없이 '출신지명+이름+관등명’ 순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출신지명이 부분적으로 성씨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근대 이전에 성 없이 이름만 쓰이던 문화권은 얼마든지 있었고( 터키 페르시아가 비슷한 예) 여기에 그 사람의 직업이나 출신지를 덧붙여 동명인을 구별했던 걸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나마 백제의 경우에는 대성팔족이라는, 성씨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음이 기록에 남아 있다.

아무튼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때 중국식 성씨란 귀족들이 당시 선진국이던 중국물 먹은 티를 내기 위한 과시용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려시대로 들어서 과거제를 도입하면서 성이 없는 사람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어서 중국식 성씨 제도가 꾸준히 정착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호족들의 출신과 가문을 본관성씨체계를 통해 엄밀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본관성씨체계가 빠르게 정착했다.

고려시대 중후기로 넘어가면서 각종 전란과 이로 인한 유망민 증가 때문에 큰 의미는 없어졌지만, 고려시대 초기만 해도 본관이라는 건 그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으며 함부로 이동하는 것을 금지할 정도였다. 물론 양인이나 천민 같은 경우는 토착인명을 줄곧 유지했으며 조선시대 말기까지도 그러했다.

물론 사람 이름이 중국화 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만 보이던 현상은 아니다. 인명이나 지명이 한화(漢化)된 대표적인 사례는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고 과거제를 실시했던 베트남이 있으며[32], 과거 중원을 지배하거나 할거했던 이민족 왕조인 요나라, 금나라, 서하와 멀리는 류큐 왕국도 왕족, 귀족층에서 중국풍 이름을 썼던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청나라 처럼 특수한 사례도 있다. 청나라 멸망 이후 만주족들은 한족 치하에서 역관광 당하고 살면서 중국식 이름을 지을 때 성을 진(金)씨로 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것은 청나라 황족의 성인 '아이신기오로'에서 '아이신'이 '금'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창씨개명 때 조선인들이 보였던 작씨법(作氏法)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비한족의 이름이 한문으로 적히면서 멋대로 잘리거나, 외국인이 편의상 중국식 이름을 짓기도 했다. 중국인으로서는 2~3음절의 짧은 인명을 선호했으므로, 익숙치 않은 외국인의 이름을 적을 때는 처음에는 한자로 음역하다가, 점점 줄여서 쓰는 것이 흔했다.

중국 무슬림이나 유대인의 경우 셈어 계통 인명의 첫 글자를 따서 성씨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무함마드에서 나온 마씨, 하산에서 나온 합哈씨가 있다. 한국에서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를 ' 석호필'이라고 불러서 친숙하게 만드는 것과도 비슷한데, 이런 식으로 오언(Owen)은 오원(吳元)선생이 되고, 베델(Bethel)은 배설(裵說)이 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비교적 근대기 인물이라서 그렇지, 수백 년이 지나고 나면 오언이 오원이 된 까닭을 알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에는 1음절에 중국과 겹치는 한자를 쓴 성이 주종이고 두 글자 복성[33]도 중국 귀화성이 주류이나 역사적으로 성의 양상은 훨씬 다양했는데, 예를 들어 삼국시대 백제 인명에서는 독특한 복성 부여(扶餘)[34], 흑치(黑齒)[35], 사택(沙宅) 등의 사용이 보이며, 고구려 인명에 보이는 을지(乙支)나, 을(乙), 명림(明臨) 등 고구려 계통의 성도 보인다.

다만, 을지의 경우는 을+존칭의 접미사라는 설도 꽤 유력하며[36] 고구려 인명의 경우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음절 성씨를 사용하였다.[37] 따라서 복성을 가장 많이 사용한 건 백제였다.[38]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 일본서기에서 그의 이름이 "이리카스미"로 적혀 있어 연(淵)으로 적어놓고 훈독을 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러한 고구려, 백제계 성씨들은 신라가 병합한 이후로 거의 사라진 후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이후 남북국시대 당나라의 문화가 동아시아의 표준 규범으로 자리잡으면서 발해 또한 중국식 문화를 수용하게 되어 중국식 1자 성씨를 지배층에서 주류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성씨의 대부분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세계를 세기 때문에[39] 사실상 고려시대부터 성씨제도가 정립되고, 이 때 형성된 성씨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다만 오늘날엔 이 문제가 중국 동북공정과 맞물려 역사 왜곡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동북공정의 '중한간 성씨 고찰'이라는 항목에서 한국의 성씨 대부분이 한족 계열이라는 내용을 실었다가 2006년 9월에 뉴스 보도가 되었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정확하게 말해서 ' 족보상'으로는 한국 성씨의 시조에 유명한 중원의 인물이 꽤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애초에 해당 족보 자체가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 게 대다수인데다가 옛날 그 당시에는 가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당대의 유명인을 시조로 삼는 일은 많았다. # # 특히 당대에 유명했던 인물 중에서 중원의 인물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많은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에서 기원한 시조를 가진 성씨의 수가 대부분이다. 당장에 한반도 기원 시조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김이박최 계열 4개만 계산해도 한국인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게다가 현대에는 유전공학 발달에 힘입어 하플로그룹 검사를 통해 부계 및 모계 혈통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중원 기원이라는 성씨를 비롯해 본관까지 같은 성씨에서 여러 부계 유전자가 검출된다는 게 확인되었다. 즉 외국에서도 흔했던 것 처럼 한국에서도 가문이 폐쇄적인 혈통으로만 내려온 게 아니라 사학계의 연구결과 그대로 편입이나 사성이 광범위하게 있었다는 게 과학으로도 증명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를 놓고 볼 때도 한족과는 부계혈통의 차이도 나타나 한반도 토착민의 비중이 대다수임도 드러났다. 한민족 문서에서 한국인과 한족간 유전자 차이 자료를 볼 수 있다.

학술적으로 보면 대륙계 시조들은 대다수가 모화사상으로 의한 숭조사업의 결과물로 왜곡한 것이기 때문에[40] 크게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숭조사업 같은 사례가 한국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라서, 서양에서도 심지어 로마 제국이 자기네가 트로이의 후손이라 자처했을 정도였고 온갖 이민족들이 "엉 우리는 사실 알고 보면 그리스계 후손이야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에서 나오는 XX가 YY지방으로 이주했다고 하지? 그게 사실 우리 조상이야"식의 개드립을 치는 일이 빈번했다. 중국의 주장을 의미있게 받아버리면 현재 수많은 서구인들이 곧 그리스인의 후손이라는 이상한 소리가 된다.

3. 귀화성(歸化姓)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성씨 277개 중 130여개가 외래 귀화 성씨로 알려져 있다. # 그리고 외래 귀화 성씨의 절대다수는 중국계(한족계)를 시조로 둔다.[41]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외래 귀화 성씨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현대 귀화 성씨와 똑같이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애초에 시조는 당대에 유명했던 인물을 가문의 권위를 위해 허위로 설정한 것이 매우 많았고, 그런 족보는 교차검증이 안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본관, 성씨, 시조, 족보 등은 생물학적인 계보가 아닌 사회, 문화적인 계보로 보아야 한다. # #

한반도계/중원계가 아닌 시조도 일부 존재한다. 덕수 장씨( 고려 충렬왕 때 한국에 귀화한 위구르계 장순룡이 시조), 화산 이씨( 베트남 리 왕조의 왕자 이용상이 시조), 김해 허씨( 인도에서 건너온 허황옥이 연원이고, 시조는 가야 수로왕의 차남과 삼남이다.), 사성 김해 김씨( 임진왜란 조선으로 귀순한 일본의 무장 김충선(일본명 사야가)이 시조), 경주 설씨( 위구르계 귀화인인 설손( 설장수의 아버지이며 설순의 할아버지)의 후손) 등. 이참(이한우)의 독일 이씨와 로버트 할리( 하일)의 영도 하씨,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 오주한)의 청양 오씨,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 지정환)의 임실 지씨도 근래에 이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42] 다만 이들도 근대에 귀화하여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시조이거나, 다른 역사적 사료와의 교차검증이 가능한 게 아니라면 시조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족보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인지는 알 수 없다.[43]

외국에서 귀화한 사람들이 성을 그대로 보존하는 경우, 귀화 성씨라고 해서 한국의 성씨로 인정된다. 2015년 기준으로 5000여개의 성씨 중 4000여개가 넘는 성씨가 현대에 와서 새로 만들어진 성씨이다. 다만 귀화할 때 이름을 등록하면서 새롭게 성씨를 만든 경우라, 본인만이 성씨를 보유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당 인구는 매우 적으며, 대부분이 동남아/기타 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해 온 여성 결혼이민자라 해당 성씨가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

4. 조상이 같다고 보는 성씨들

본관은 다르지만 같은 조상을 모셔서 명목상 동성동본으로 삼는(또는 그렇게 간주하는) 성씨의 일람. 이성동본(異姓同本)이라 하기도 한다. 이곳에 가면 자신의 본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과거 동성동본금혼법이 있을 당시, 법적으로는 혼인이 금지되지 않았으나 인습에 의해 혼인을 하지 않았다.
  • 신라계 박씨
    신라의 박씨 왕조의 후손들. 중국에서도 한족화한 신라방 출신의 후손들이 있다. 대부분 경명왕 계열, 그 중에서도 특히 밀양 박씨가 많지만, 경명왕의 다른 왕자나 혹은 경애왕계 등의 이본(異本)도 있으므로 일반화는 금물. 밀양 박씨는 단일파로 김해 김씨 다음으로 랭크되어 있는 것이 특이점[45]. 그리고 '朴'이라는 글자를 쓰는 성씨는 전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과 북한에만 존재한다. 바꿔 말하자면 중국에는 이 성씨가 전통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인이 이 성씨라면 통일신라 때 중국으로 이주한 신라인의 후예이거나, 조선족이거나, 귀화한 후 한국식으로 이름을 개명한 경우다.
  • 제주 양(梁)씨, 고(高)씨, 부(夫)씨
    세 성씨의 시조는 각각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라는 제주도 신화의 삼형제로, 같은 성씨 안에서는 아무리 본이 달라도 동성동본으로 생각한다[48].
  • 충주 지(池)씨와 충주 어씨
    원래 지(池)씨였던 어씨의 시조 어중익이 나중에 사성(賜姓)받은 경우.
  • 영양 김씨와 남씨
    시조 김충은 중국에서 사신으로 일본으로 가다 안록산의 난으로 신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때 신라왕에게 남민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서 그 후손들이 남씨를 따랐으나 일행에 있던 맏아들 김석중은 사성 전에 태어났기에 김씨를 그대로 썼다.
  • 서촉 명씨 창평 승(昇)씨
    고려 말기에 귀화한 명승은 중국 사천에 대하(大夏)[49]라는 나라를 세운 왕인 명옥진의 아들이었는데, 명나라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하자 명나라한테 망한 명씨 주원장에게 붙잡혀 고려로 유배당했다. 이 과정에서 명승의 아들 중 한 명인 명신이 할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집을 떠나 성을 자신의 아버지의 함자로 바꿨다고 한다. 야사에 의하면 조선 용포의 디자인을 짠 사람이 바로 명승과 함께 고려로 유배온 명승의 어머니라고 한다. 용재총화에 나온 이야기로, 명승의 어머니는 짧게나마 황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곤룡포는 항목에도 나오듯이 명나라에서 기본 디자인과 샘플 의상을 보내준 그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야사로 봐야 할듯.
  • 남양 제갈(諸葛)씨, 칠원 제(諸)씨, 남양 갈(葛)씨
    제갈규( 제갈량의 아버지)의 20대손 제갈공순이 신라 흥덕왕 때 귀화를 했는데(신라 미추왕 때 제갈규의 5대손 제갈충이 귀화를 했다는 설도 있다.), 고려 고종 때 이들의 자손인 제갈홍(諸葛泓)과 제갈형(諸葛瀅) 형제가 분성을 해서 형인 제갈홍은 제씨, 동생인 제갈형은 갈씨로 서로 갈라졌다. 그리고 이들의 후손 중 일부는 조선 고종 때 성씨 복원 운동으로 다시 제갈(諸葛)씨로 복성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들의 족보를 보면 조상 중에 제갈량이 있기 때문에 국내에 무후사가 있다.
  • 진주 소씨와 경주 최씨
    신라 초기 6촌(후의 6부) 중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의 아들 최대벌리가 최씨를 사성받아 그의 후손 최치원이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다른 아들 소해리는 본래의 성을 이어 그의 후손 소알천이 진주 소씨의 시조가 되었다.
  • 청주 한(韓)씨 와 행주 기(奇)씨, 태원 선우(鮮于)씨
    청주 한씨 족보에 의하면 청주 한씨는 기자조선에서 연원한다고 하며, 마한 말기의 삼형제가 각각 성을 받아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계보는 실전되었고 실제로 각 성씨의 시조 기록은 고려 중기로 내려온다. 물론 이들이 진짜 기자의 후손인지는 미지수[50]. 애초에 기자조선 자체가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 안동 장씨에서 유래된 장(張)씨
    일반적으로, 귀화 성씨인 덕수 장씨 절강 장씨를 제외 한 나머지 장(張)씨는 모두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안동 장씨에서 분가한 성씨로 본다. 그렇기에 덕수와 절강을 본관으로 하는 집안 외의 다른 장(張)씨끼리는 원래는 한 집안 출신이라 하여 금혼하였다.
  • 풍양 조씨와 강진 조씨
    본래 두 집안은 별개의 가문으로 취급되었는데, 조선 정조 때 풍양 조씨 회양공파 후손 조지명이 강진현감으로 부임한 뒤 강진의 호적을 보고 예조에 풍양 조씨와 강진 조씨가 같은 가문임을 통보했다. 곧 정조의 명으로 강진 조씨는 풍양으로 본관을 바꾸었다.
  • 배천 조씨, 진보 조씨, 임천 조씨
    배천 조씨의 시조 조지린이 송 태조 조광윤의 손자라 하고, 임천 조씨 시조 조천혁은 조광윤의 증손이라 전한다. 그래서 두 집안은 같은 가문으로 인식된다. 진보 조씨는 배천 조씨의 후손 조용을 1세로 한다.

논란이 되는 경우는 다음이 있다.
  • 문화 류씨 연안 차씨
    류/차 논란 참조. 연안 차씨 족보에 따르면 연안 차씨의 시조는 신라 시대 귀족 차무일이며, 33대손 차승색이 신라 헌덕왕의 쿠데타에 반대하여 헌덕왕을 암살하려다 발각되자 체포를 피하기 위해 류씨로 변성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38대손 류차달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로로 원래 성인 차씨가 복원되어 첫째 아들에게는 차씨, 둘째 아들에게는 류씨를 물려주게 되었다고 한다 연안 차씨측 주장. 반면에 문화 류씨 족보에 따르면 두 성씨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여 문화 류씨측 주장 현재 두 가문 사이에 논쟁 중이다[51]. 허나 전주류씨는 차씨 복원설로 조상이 같다고 보고 있다.

5. 등록된 성씨 목록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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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등록된 본관 목록(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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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국의 성씨 분포

2015년 기준 각 시/도별로 인구가 가장 많은 10개의 성씨는 다음과 같다. 특정 지역에서 유독 많이 나타나는 성씨(전국 순위가 10위 밖이지만 특정 지역에서 10위 안에 들어간 성씨)는 볼드체로 표시했다. 더 자세한 통계는 한국의 성씨별 인구 분포, 한국의 지역별 성씨 순위 문서로.
/ 1위 2위 3위 4위 5위 6위 7위 8위 9위 10위
서울특별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강(姜) 윤(尹) 장(張) 임(林)
인천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강(姜) 윤(尹) 장(張) 한(韓)
경기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강(姜) 윤(尹) 장(張) 한(韓)
강원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장(張) 윤(尹) 조(趙) 전(全) 권(權)
충청북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윤(尹) 장(張) 신(申) 강(姜)
대전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송(宋) 조(趙) 윤(尹) 오(吳)
세종특별자치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임(林) 윤(尹) 강(姜) 조(趙) 오(吳)
충청남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조(趙) 윤(尹) 강(姜) 장(張) 한(韓)
전라북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임(林) 장(張) 오(吳)
광주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임(林) 윤(尹) 장(張) 오(吳)
전라남도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장(張) 조(趙) 서(徐) 윤(尹)
대구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권(權) 장(張) 윤(尹) 서(徐) 강(姜)
경상북도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권(權) 장(張) 강(姜) 윤(尹) 황(黃)
부산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윤(尹) 조(趙) 장(張) 서(徐)
울산광역시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윤(尹) 권(權) 장(張) 서(徐)
경상남도 김(金) 이(李) 박(朴) 정(鄭) 최(崔) 강(姜) 조(趙) 윤(尹) 서(徐) 장(張)
제주특별자치도 김(金) 이(李) 고(高) 강(姜) 박(朴) 양(梁) 오(吳) 강(康) 정(鄭) 문(文)
전국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한편 전국 기준으로 인구수가 가장 많은 10개 성씨의 지역별 인구 대비 비율은 다음과 같다. (단위: %)
/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서울특별시 21.17 15.07 8.19 4.68 4.18 2.22 2.26 2.13 2.00 1.70
인천광역시 21.19 15.05 8.02 4.85 3.97 2.16 2.40 2.14 2.10 1.66
경기도 20.98 15.43 8.14 4.78 4.08 2.16 2.28 2.15 2.01 1.67
강원도 22.54 14.46 7.98 6.25 3.93 1.64 1.92 1.94 2.07 1.35
충청북도 20.40 15.36 8.09 4.42 4.16 1.88 2.28 2.19 2.18 1.73
대전광역시 20.36 15.16 8.36 4.25 4.07 2.36 2.21 2.18 1.74 1.84
세종특별자치시 19.75 15.25 8.04 4.38 3.80 2.25 2.05 2.38 2.02 3.14
충청남도 20.79 16.07 7.94 4.77 3.88 2.26 2.48 2.28 1.95 1.74
전라북도 21.19 13.94 8.14 5.45 3.97 2.66 2.22 1.50 2.03 2.05
광주광역시 22.84 12.13 9.40 4.62 5.01 2.43 1.81 2.02 1.95 2.04
전라남도 23.45 11.66 10.14 4.48 4.87 2.76 2.11 1.94 2.26 1.77
대구광역시 21.39 15.35 8.88 4.50 4.49 1.83 1.63 1.97 2.19 1.46
경상북도 23.00 14.92 8.62 4.86 4.49 2.03 1.69 1.94 2.27 1.71
부산광역시 22.24 13.79 9.22 4.48 5.09 2.90 1.86 1.96 1.83 1.44
울산광역시 23.05 14.71 9.34 5.03 4.65 2.23 1.66 1.97 1.89 1.42
경상남도 21.49 13.61 9.11 4.23 5.43 3.59 2.55 1.91 1.67 1.41
제주특별자치도 23.80 10.25 5.17 1.88 2.62 5.36 1.49 1.53 1.51 0.94
전국 21.51 14.70 8.43 4.70 4.33 2.37 2.12 2.05 2.00 1.66

8. 성씨별 상징(종문)

2016년 이후로 각종 커뮤니티에서 유럽의 문장이나 일본의 가몬처럼, 한국에도 성씨별로 상징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1 #2 #3 #4
파일:김해 김씨 종문.svg 파일:밀양 박씨 종문.svg
김해 김씨의 종문 밀양 박씨의 종문
전통적으로는 가문마다 고유의 문양을 떡살에 넣어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상징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문을 만들었을 때이다. 이화문 외의 다른 가문들의 경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중인 가장보(家章譜) #의 가장(家章)과 문장(紋章)의 사용이 조선에는 없는데 일본에서는 이전부터 은행, 회사, 조합, 상업가, 개인가정 등에서 가장과 문장을 사용하는 풍습이 있다고 소개하는 내용과 매일신보에서 1916년 10월부터 12월까지 연재되었던 가장연구(家章硏究)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 무렵에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이런 상징물을 종친회마다 로고, 마크, 심볼 등 제각각으로 부르며, 인터넷 상에선 국어사전에 실리지 않은 단어인 '종문(宗紋)'으로도 알려져있다.
또한 해주 오씨처럼 같은 본관임에도 종친회가 통합되지 않아서 상징이 저마다 다른 경우도 있다. 해주오씨대동종친회 해주오씨대동종회 해주오씨대종회

종친회별 상징과는 별개로, 2009년 경상북도에서는 종가 문화 명품화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각 문중이 보유한 고택[57]과 종택[58]을 상징하는 고유한 로고를 만들기도 하였다. 경북의 종가(宗家), 세계적 명품문화로 발돋움 문중 고택도 '브랜드 시대' 이러한 사실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한국의 종문은 2009년 경상북도에서 대대적으로 제작한 것이 기원"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다니는데, 경상북도에서 제작했다는 102개소 종가 문장 디자인을 보지도 않고 하는 이야기이다. 경북도 제작 종가 디자인 경상북도에서 제작했다는 종가 디자인은 앞서 언급했듯이 '종가 건축'을 브랜드 이미지화한 것에 불과하다.

상징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비록 전통은 아니지만 오늘날 규모 있는 가문들은 대부분 '종문(宗紋)'으로 불리는 로고들을 웬만하면 갖고 있는 추세. 물론 '종문(宗紋)'의 유무에 따라 명문가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표적인 명문가 신 안동 김씨 화수회의 경우 딱히 '종문(宗紋)'이라 부를만한 로고를 갖고 있지 않다.

"조선시대때 없었던 가문의 문장을 왜 이제와서 쓸데없이 만드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조선시대에 각군현의 로고가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각 지자체마다 CI가 만들어져 요긴하게 사용되듯이, '종문(宗紋)' 또한 여러모로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족보와 종보 또는 N주년 기념서적등 각종 출판물 표지에 사용되고, 종친회의 깃발(宗旗)에도 사용되며, 심지어는 배지같은 조형물을 만드는 종친회도 있다.

대전의 '뿌리공원'에는 각 성씨의 이미지를 조각상으로 상징화한 조각공원이 존재하는데, 여기에 각 가문의 종문 또한 함께 조각되어 있다.
보학 전공자나 족보/성씨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방문할 만한 공간.

9. 기타

  • 불교의 관습으로 승려는 원래 속세의 출신과 상관 없이 승려가 되면 법명 앞에 '석'을 붙여 성씨처럼 쓴다. 예를 들면 석 원광. # 석은 석가모니의 석(釋)으로, 영원히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맹세하였으므로 부처님 성씨를 따라 석씨를 쓴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천방지축마골피 성은 천민 출신이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도 있었던 모양. 하지만 한국에 그렇게 많은 김씨, 이씨, 박씨가 있는 이유가 근현대 한국에서 성씨가 없던 대규모의 노비층이 비교적 흔한 성씨 족보를 사고 위조하면서 벌어진 일임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희귀성씨에 해당하는 천방지축마골[59]피는 출신성분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성 중 음이 맞는 것이라도 노비 성이었다는 성씨와 한자가 다르다. 몇몇 성은 아예 있지도 않고.
  • 현재 남한에서 볼수 있는 성들은 대부분 남한 지역에 본관을 두고 있다. 20명에 한 명쯤 있어도 신기하지 않을 법한 성씨들 중 북한 지역을 본관으로 둔 성씨는 평산 신씨, 문화 류씨, 연안 차씨, 연안 김씨, 연안 이씨, 해주 최씨, 해주 오씨, 신천(+곡산,재령)강씨 정도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강씨는 90퍼센트 이상이 진주 강씨이고 신천 계열은 6% 정도로 소수에 불과하다. 그나마 제주도에는 신천 강씨가 상대적으로 많다. 심지어 위 성씨들도 모두 황해도 지방 본관이고 평안도 지방을 본관으로 둔 성씨는 연주 현씨 함종 어씨 정도 밖에 없고 함경도 지방을 본관으로 한 성씨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몇 년 전에 롯데카드가 롯데DC카드를 런칭하면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롯데카드 회원의 모든 성씨 한 명씩을 롯데월드로 초대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추첨 접수 이벤트 페이지를 보면 롯데카드 가입자의 성씨를 모두 작성해 놓았는데(해당 성씨가 두 명 이상일 경우 추첨), 김 씨는 당첨 확률이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었지만 영어로 된 성씨 등 일부 성씨는 경쟁률이 1:1이었다.
  • 북한에도 현재 남한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희귀 성씨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을지'씨나 '치'씨 등. 전자는 국가과학원산하 기계공학연구소 실장 을지기호가, 후자는 평양시 제2인민병원 산부인과 과장 치인옥이 있다. 인옥의 오타 아닐까 싶겠지만 한 번만 나온 것도 아니고 2번 이상 반복해서 등장했으니 오타일 리는 없다. 을지씨야 고구려 띄우기에 혈안이 된 북한 특성상 을지문덕의 후손인 목천 돈씨를 을지씨로 바꿔버렸다는 식으로 추측이 가능해도, 치씨는 대체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 부여씨의 경우 현재는 부여씨를 가진 사람이 없고, 부여 서씨 의령 여씨로 대체된지 오래지만 어째서인지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부여씨가 한국에 89명 살고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10. 같이 보기



[1]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나, 정(鄭)씨는 범 현대계열 소유 가문이고, 구(具)씨 범 LG계열 소유 가문이다. [2] 부여, 목리, 사택, 고이( 고이만년), 재증( 재증걸루), 명림, 흑치(흑치상지) 등. [3] 남북국시대 왕족 및 귀족층의 주요 성씨를 예로 들자면 발해의 경우 왕성인 대씨 및 주요 귀족 성씨인 고(高), 장(張), 양(楊), 두(竇; 하賀씨의 오기라는 설이 있다), 오(烏), 이(李), 배(裵), 왕(王)씨가 있었고 신라의 경우 왕족 3성씨인 박씨, 석씨, 김씨 및 주요 귀족이었던 신라 6부 성씨(이, 최, 정, 손, 배, 설) 및 가야 금관국 김씨가 있었다. [4] 고려 고종이 제갈씨가 복성이라며 제씨와 갈씨로 나뉜 경우도 있었다. [출처] 박홍갑,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 [6] 비슷한 경우로 미국, 쿠바, 브라질 아메리카 국가 흑인들이 노예였던 자기 조상의 주인이 속한 가문의 성씨를 그대로 따른 경우가 있다. [7] 그 흔적이 서원구로 남아 있다. [8] 이, 김, 박, 정, 윤, 최, 류(유), 홍, 신, 권, 조, 한. [9] 오, 강, 심, 안, 허, 장, 민, 임, 남, 서, 구, 성, 송, 유, 원, 황. [10] 조, 림(임), 려(여), 량(양), 우, 라(나), 손, 로(노), 어, 목, 제, 신, 정, 배, 맹, 곽, 변, 변, 신, 경, 백, 전, 강, 엄, 고. [11] 전, 현, 문, 상, 하, 소, 지, 기, 진, 유, 금, 길, 연, 주, 주, 렴(염), 반, 방, 방, 공, 설, 왕, 류(유), 태, 탁, 함, 양, 벽, 봉, 태, 마, 표, 은, 여, 복, 예, 모, 로(노), 옥, 구, 선. [12] 도, 장, 륙(육), 위, 차, 형, 위, 당, 구, 옹, 명, 장, 섭, 피, 감, 국, 승, 공, 석. [13] 인, 석, 공, 두, 지, 견, 어, 진, 오, 척, 야, 빈, 문, 우, 추, 환, 호, 변, 이, 영, 사, 소, 공, 사, 이, 요, 롱(농), 온, 음, 룡(용), 저, 부, 경, 강, 호, 전, 계, 간. [14] 단, 팽, 범, 천, 편, 갈, 돈, 내, 간, 로(노), 평, 풍, 옹, 동, 종, 풍, 종, 강, 몽, 동, 양, 장, 상, 장, 정, 형, 경, 경, 녕(영), 경, 순, 정, 원, 원, 만, 반, 원, 견, 건, 연, 시, 부, 구, 혜, 미, 애, 매, 뢰(뇌), 시, 섭, 포, 하, 화, 하, 화, 화, 가, 하, 마, 우, 승, 준, 곡, 백, 적, 필, 곡, 궁, 종, 방, 량(양), 량(양), 방, 경, 형, 영, 승, 등, 승, 승, 신, 순, 후, 번, 단, 선, 천, 아, 수, 미, 오, 주, 부, 보, 부, 소, 부, 범, 고, 태, 재, 대, 표, 초, 나, 과, 화, 수, 우, 가, 심, 삼, 점, 범, 긍, 욱, 익, 택, 직, 측, 택, 록(녹), 혁, 책, 탁, 골, 촉, 률(율), 물, 별, 실, 필, 합, 먀, 궉, 양. [15] 남궁, 황보, 선우, 석말, 부여, 독고, 영호, 동방, 서문, 사마, 사공. [16] 한국에 없는 한자 성씨에다가 소수민족 계열의 성씨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17] 가령 일본의 경우 인구 수가 가장 많은 성씨인 사토는 전체 인구의 1% 남짓 되는 정도다. [18]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곧 태어날 아이에게 팽씨 물려주는 여부에 대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글. [19] 해당 기사는 희귀 성씨를 가졌다고 당사자를 놀리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인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20] 중국의 성씨는 약 7000개, 일본은 약 123,000개, 베트남은 700~800개 정도. [21] 상위 100개가 인구 85% 차지. [22] 베트남은 응우옌(阮, Nguyễn) 성씨가 전체 인구의 40%에 육박하며, 응우옌 포함 14개의 성씨가 베트남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한다. [23] 그나마 '김 선생님', '최 부장님', '박 교수님' 등과 같이 직책명을 붙여서 부르는 경우는 무례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것도 상황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면 학생이 김 선생님 하는 식으로 부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24] 2000년의 430개에 비해 12배 이상 증가. [25] 다만 여전히 귀화성은 각 성씨별로 몇 명 존재하는지 (5명이 넘어도) 공개되지 않는다. [26] 한국의 이두와 비슷 [27] 신라 왕가 중 석씨는 시조 석탈해가 바다를 건너온 외국인 출신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석씨 또한 섬으로 이동한 신라인이다. 그러나 '성씨를 만들었다'는 개념에서 볼 때는 석씨 또한 신라에서 만든 성씨이다. [28] 읽었을 때 어감을 통해 다소 구별할 수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판빙빙(范冰冰)을 한국식 발음으로 읽으면 '범빙빙'인데, 이런 이름을 한국인의 이름으로 짓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29] 동아시아의 성씨 문화 자체가 중국에서 시작한 것이다. [30] 게다가 고려시대 이전까진 성씨 문화가 널리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삼국시대 인명을 보면 유력자라도 성씨 없이 그냥 2자명으로만 표기된 경우가 흔하다. [31] 시조 이전의 선조. [32] 여기 왕족은 리(李), 레(黎), 쩐(陳)같은 성을 칭했다. [33] 제갈, 남궁, 사공, 독고 등 [34] 왕성(王姓)으로 부여 대신 여(餘)만 이용해 1음절로 쓰기도 했다. 그 후손이라는 현 부여 서씨의 경우 여(餘)와 비슷한 한자인 서(徐)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35] 흑치의 한자 뜻을 그대로 해석해서 이를 검게 물들이는 동남아 및 일본의 풍습과 관련지어 남방민족 계통 성씨라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끼워맞추기일 뿐 사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36] ~지는 삼국시대 고구려부터 가야까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보편적인 존칭접미사로 쓰였다. [37] 훈독을 했을 수는 있으나 한자 자체는 1글자인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중국과 거리가 가장 가까웠으며 중국의 여러 군현을 정벌하고 투닥거리는 과정에서 중국계 인구를 가장 많이 흡수했기 때문에 그런 문화의 흡수가 빨랐던 걸로 추정된다. [38] 이 때문에 백제의 복성이 일본의 복성에 영향을 주었다라는 추정도 있으나 실제 일본에서 복성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게 된 건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기존의 성(姓) 대신 영지명을 씨(氏)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오히려 헤이안 시대 일본의 최상위 귀족들의 성씨인 4대 본성 '겐페이토키츠(源平藤橘)'는 후지와라(藤原)氏를 제외하고 모두 단성이었다. 이는 미나모토(源)氏, 타이라(平)氏, 타치바나(橘)氏가 한문으로 단성이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성씨 제도가 완전히 정착하기 전의 일본 귀족의 이름은 관직명, 영지명, 존칭 등을 다 붙여서 굉장히 복잡한 모습을 보이며, 이는 백제보단 오히려 초기 신라 가야의 이름 형태와 유사했다. [39] 이전은 세계가 실전되었으며, 따라서 중시조 누구부터 센다라는 식으로 기록된 경우가 많다. [40] 심지어 고유 계통만 봐도 고조선 왕가의 경우 기자(중국)의 후손이라 기록되었고 삼국사기에서도 고구려계 고씨는 삼황오제 제곡고신씨(帝嚳高辛氏)의 후손, 신라계 김씨 또한 삼황오제 중 하나인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손이라 기록했다. 물론 이들은 자칭이 아닌 중국측만의 기록일 가능성도 높지만 신라의 경우는 직접 소호금천씨가 조상이라 한 기록을 남겼으며 심지어 흉노 출신의 김일제를 조상으로 왜곡하려 하기도 했다( 흉노족 신라왕족설). 역사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병크를 터트렸던 사례로는 고려 태조 왕건의 증조부 왜곡 사건이 있다. 삼국시대에도 김일제는 이미 까마득한 옛날 사람이었지만 고려 왕실은 숭조사업을 통해 왕건의 증조부를 별로 시대차도 안 나는데다 기록도 많이 남아있는 당숙종이라고 왜곡했는데, 원나라의 학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대놓고 물어봤다가 (당숙종은 안사의 난 때문에 당나라를 벗어날 수가 없었는데 고려는 당숙종이 한반도까지 왔다고 왜곡한 것) 고려 측에서 간신히 얼버무리는 ( 당숙종이 아니라 당선종이 그랬다고 얼버무렸지만 사실 당숙종이든 당선종이든 당나라의 황제가 고려까지 왔다가 다시 당나라로 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엄청난 외교 스캔들을 일으킬 뻔 했다. [41] 곡부 공씨, 남양 제갈씨, 연안 이씨, 신안 주씨등이 대표적으로 각각 공자, 제갈량,이무(귀화한 당나라 장수), 주자 등을 시조 및 중시조로 두고있다. [42] 이들 중 임실 지씨는 지정환이 결혼이 불가능한 가톨릭 신부였던 탓에 그의 선종으로 대가 끊어진 상태다. 반면 독일 이씨, 청양 오씨, 영도 하씨는 이후로도 남자 후손이 계속 생겨나는 한 화산 이씨, 덕수 장씨, 김해 허씨, 사성 김해 김씨, 경주 설씨처럼 계속 이어지게 된다. [43] 당대에 쓰여진 족보라면 모르겠지만, 족보라는 게 상당수가 몇 백년은 지나고 쓰여진 게 대부분이라 역사적 기록으로써의 가치가 떨어진다. 또한 다른 사료와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44] 안동 권씨, 수성 최씨, 광산 이씨, 감천 문씨 포함. [45] 보통 성씨의 랭크는 김, 이, 박 順이나 단일 성씨로는 밀양 박씨가 전주 이씨보다 많다. 상기한바와 같이 박씨의 거의 대부분이 밀양 박씨이다. [46]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두 집안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수로왕의 후예인 김유신의 둘째 아들 김원술을 시조로 한다. 김해 김씨 (법흥파)도 제외함 [47] 항왜 김성인을 시조로 삼는다. 함박을 본관으로 쓴 건 대한민국 개국 이후고 그 전에는 김해 김씨를 사용했다. 그의 후손들 중 다수는 지금도 김해 김씨로 남아 있다. [48] 다만 한자가 다른 양(楊)씨는 한족계 성씨이고, 횡성 고(高)씨는 고구려 동명성왕을 시조로 한다. [49] 명하(明夏), 혹은 촉하(蜀夏). [50] 기자는 한씨가 아니라 자(子)씨, 이름은 서여(胥餘)이다. '기자'는 자서여 또는 그 선조가 은나라 시기에 받은 작위이다. [51] 문화 류씨 대종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미 종결된 논란이라는 입장이다. 차씨와 류씨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차씨가 류씨에 속하려 속였다는 증거를 찾아내어 전혀 다른 성씨라는 주장이 게재되어 있다. [52] 양근 함씨와 합본 [53] 협계 태씨, 영순 태씨와 합본 [54] 상주 방씨, 군위 방씨와 합본 [55] 안변 한씨와 합본 [56] 함안 윤씨, 남원 윤씨와 합본 [57] 오래된 집 [58] 종가가 대대로 사용하는 집 [59] 골씨는 적어도 남한에는 아예 후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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