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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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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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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주요 민족: 예맥 · 삼한 · 한민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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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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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 新羅
Silla (Sh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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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경 신라의 강역[1]
기원전 57년 6월 8일[2]
~ 서기 936년 1월 13일[3][4] (약 992년)
시대 구분
<rowcolor=#000,#fff> 진한 사로국 삼국시대 신라 통일신라 후삼국시대 신라
성립 이전 합병 이후
진한 고려
국호 <colbgcolor=#fff,#1f2023> 사로, 사라, 신라 등[5] → 신라[6]
위치 경주 분지 계림 일대 한반도 동남부[7] ㆍ부속도서[8] 한반도 중부 · 남부 ㆍ부속도서[9] 한반도 중부ㆍ북부ㆍ부속도서[10] / 요동 (670)[11] 한반도 동남부ㆍ부속도서[12]
수도 서라벌(금성)[13][14]
행정구역 6부 5주 2(3) 소경[15] 9주 5소경
국조 (추정)[16]
종족 예맥인[17], 진한인[18], 말갈[19]
언어 신라어
문자 한자 ( 이두[20], 향찰, 구결)
종교 토속 신앙 불교( 교종[21] 선종[22])
정치 체제 군주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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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
간지
거서간[24]
차차웅[25]
이사금[26]
마립간[27]
매금[28]
코니키시[29]
[30][31]
매금지존[32]
태왕
대왕
제왕
태왕
황왕[33]
주요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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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혁거세 거서간[34]
4대 탈해 이사금
5대 파사 이사금
13대 미추 이사금
17대 내물 마립간[35]
19대 눌지 마립간
22대 지증왕[36]
23대 법흥왕
24대 진흥왕[37]
26대 진평왕
27대 선덕여왕
29대 태종 무열왕
30대 문무왕[38]
31대 신문왕
33대 성덕왕
35대 경덕왕
38대 열조 원성왕
42대 흥덕왕
53대 신덕왕
55대 경애왕
56대 경순왕
국성[39] 박(朴)[40] · 석(昔)[41] · 김(金)[4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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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7년 박혁거세 신라 건국
94년 황산진구 전투
94년 마두성 전투
116년 ~ 117년 황산하 전투
209년 ~ 212년 포상팔국의 난
364년 ~ 404년 신라-왜 전쟁
512년 신라-우산국 전투
548년 독성산성 전투
551년 ~ 553년 신라의 한강 유역 점령
554년 관산성 전투
562년 가야멸망전
602년, 616년 아막성 전투
611년 ~ 612년, 618년, 628년 가잠성 전투
642년 대야성 전투
660년 백제멸망전
638년, 660년, 673년, 675년 칠중성 전투
661년 북한산성 전투
661년 ~ 662년 평양성 전투
668년 사천 전투
670년 ~ 676년 나당전쟁 사천 전투
672년 석문 전투
675년 매소성 전투
762년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
811년 ~ 10세기 신라구의 일본 침입
822년 김헌창의 난
839년 달벌대전
889년 후삼국시대 개막
899년 비뇌성 전투
934년 운주성 전투
936년 경순왕 투항, 신라 멸망
현재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북한|]][[틀:국기|]][[틀:국기|]]
1. 개요2. 국호3. 연호4. 역사5. 행정
5.1. 중앙 행정5.2. 지방 행정구역
6. 사회7. 문화8. 언어9. 외교10. 군사11. 평가12. 외국사서의 기록13. 시기 구분14. 왕조
14.1. 왕비14.2. 왕실14.3. 왕릉
15. 신라의 인물들16. 신라/문화재17. 신라부흥운동18. 역사귀속과 계승의식19. 신라를 소재로 한 작품20. 기타 21.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cineaste.co.kr/14010711162408_cd500eb86897c4e0324a540a3e6844cb.jpg 파일:/image/003/2007/07/18/NISI20070718_0004825592_web.jpg
통일신라 시기 서라벌 상상도[43]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의 궁궐터 월성
( 사적 제16호)
신라(新羅)는 고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군주제 국가이다. 약 1천 년간 56명의 군주를 거치며 한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존속하여 천년왕국이라는 별명과 함께 화려한 황금 문화로도 알려져 있어 황금의 나라라고도 불린다. 삼국시대의 세 나라 중 동남쪽에서 시작[44]했으며 《 삼국사기》의 서술에 따르면 고대 한반도에 존재한 삼국 중 가장 빨리 건국됐다. 삼국통일전쟁 끝에 백제 전체와 고구려 중남부[45]를 병합한 이후 삼국통일 의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대부분 지역을 지배했다. 676년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는 통일신라라고 불린다. 이때부터 남북국시대에 접어들고 정세가 이전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통일신라 시대의 신라를 단독으로 신라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 사실상 다른 나라 취급된다.

나당전쟁에서 당나라의 침략을 막아내고 완전한 통일을 이룬 뒤로는 강력한 군사력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강국이자 부국으로 거듭나 청해진 등을 통해 남해와 동중국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했으며, 불교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당대 아시아에서 중국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운 바 있다. 옛날 신라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문화적 번성함은 멀리 서역까지 알려져 아랍인 페르시아인들 사이에서도 이상향으로 인식되었다.[46] 그러다가 9세기 말에 이르러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나머지 다시 후삼국으로 분열되었으며 종국에는 왕건을 필두로 한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고려에 의해 병합되었다. 신라정통론(新羅正統論)적 입장에서는 신라의 삼한일통 사상을 이후 고려 왕조가 계승한 것이 훗날 한민족 의식으로 발달하였다고 보아 삼한일통 사상을 한민족의 의식의 원형으로 보기도 한다.[47]

2. 국호

신라 국호
한국어 신라(新羅)
나라 이름의 의미는 '덕업일사방: 德業日四方’에서 두 글자를 취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말 뜻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wiki style="margin:1em"
四年, 冬十月, 群臣上言, 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群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 지증왕) 4년 10월에 군신(群臣)이 말하기를, " 시조께서 나라를 세운(創業) 이래로 나라 이름이 일정치 아니하여 사라(斯羅), 사로(斯盧), 신라(新羅)라 하였으나, 신(臣)들은 생각건대 '신'(新)은 (德業)이 날마다 새로와져서, '라'(羅)[48]동·서·남·북의 것들을 널리 받아들여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이므로, 그것으로 국호(國號)를 삼는 것이 좋을 듯하오며, 또 생각건대 자고로 국가를 가진 이가 다 제왕(帝王)이라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가 건국한 지 지금 제22대에 이르도록 단지 방언(邦言)으로 칭하여 존호(尊號)를 정하지 아니하였으니 지금 군신(群臣)은 한뜻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란 존호를 올리옵니다"고 하니, 왕이 거기에 좇았다.

김부식, 《 삼국사기》 4권 〈신라본기〉 제1 지증마립간
}}}
다만 '신라'라는 명칭 자체는 지증왕 때 뜻풀이하여 확정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고구려와 함께 '신라'가 전진 시기인 377년과 381년에 등장해 《 자치통감》 등에 기록되어 있고, 당대 사료인 광개토대왕릉비에도 신라가 이미 등장하고 있다.
百殘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백잔신라는 과거에 속민이었기에 조공을 해왔다.
광개토왕릉비, AD 414 건립
따라서 지증왕 시절의 의미 풀이는 원래 존재하던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려는 과정에서 음도 의미도 적절한 한자를 찾아서 유교적인 해석을 끼워 맞춘 것이며, 이전부터 사용되던 '신라'라는 이름을 유일한 공식 명칭으로 규정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증왕 대에 국호를 통일하기 이전까지는 사로국, 사라 등 다른 표기를 혼용했다.

신라 이전에 불렸던 이름들은 시라(尸羅), 사라(斯羅), 사로(斯盧), 시림(始林), 유계(有鷄), 계괴(鷄怪), 계림, 서야벌(徐耶伐), 서라벌(徐羅伐), 유잠국(有蠶國) 등으로 불렸다. ㅅㄹ 계열의 고유어 국명을 음차한 것으로 보이는 표기가 주를 이루며, 누에치기와 관련된 이름 또한 일부 존재한다. 일본에서 발견된 〈 민정문서〉에서도 유달리 뽕나무 재배 수량이 많아 신라가 전통적으로 누에치기와 관련이 컸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에 관한 이름도 많은데 실제로 신라 건국 설화에는 계룡이 등장한다.

불교계 일부에서는 신라가 계(戒)를 나타내는 시라(Sila)에서, 서라벌을 부처님 당시 코살라국의 수도였던 슈라바스티(Sravasti)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의 특성상 어느것이 맞다 아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신라에 불교가 전래, 공인되는 눌지왕, 법흥왕대 한참 이전부터 신라와 통하는 사로, 사라 등의 이름이 쓰이기도 했고, 이병도나 환빠들이 자주 넘겨짚는 성운의 유사성을 가지고 하는 주장은 딱히 근거랄 게 없으며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근거라고 내미는 것이 도올 김용옥의 생각이다.

계림(鷄林)은 좁은 의미로는 경주시에 있는 작은 이름이자, 넓게는 신라국 전체를 이르는 이름인데 사서에서는 제3대 탈해 이사금부터 계림을 정식 나라 이름으로 쓰다가 제15대 기림 이사금이 다시 신라로 되돌렸다고 되어있고, 이후 공식적으로 신라라는 국명이 정해진 뒤에도 계림은 신라라는 나라의 일종의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별칭으로도 쓰였다.[49]

신라의 또 다른 이름으로 걸의식국(乞衣食國)이 있다는 정보도 인터넷 상에서 많이 떠도는데 이는 중국의 기담집 《유양잡조(酉陽雜俎)》 〈방이 설화〉의 한 구절을 띄어쓰기가 없는 한문을 제대로 끊어 해석하지 않고 오역한 것이다. '(방이가) 옷과 음식을 빌어먹고 살았는데(乞衣食), 나라 사람들(國人) 중에 남는 땅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에서 걸의식과 바로 뒤에 나오는 국인의 국을 '걸의식국'이란 한 단어로 오역한 것이다.
중국어 신뤄(Xīnluó). 사로국은 쓰루(Sīlú). 현대 관화 기준이다.[50]
일본어 시라기(しらぎ) 혹은 신라(しんら)

초기부터 일본과 거리가 가깝고 서로 많이 얽혔던 관계라 백제를 쿠다라로 읽는 것과 같이 신라를 읽는 법이 따로 존재한다. 시라기는 《 일본서기》의 훈을 따른 것이다. 때론 しんら, 즉 한국어 독음과 유사한 '신라'로 읽기도 하는데 이건 한자 新羅를 현대 일본어식으로 음독한 것이다. 다만 한국어에서 신라를 읽을 때는 자음동화 현상으로 실제로는 저절로 '실라'라고 읽게 되지만, 일본어로 しんら를 읽을 때는 실라가 아닌 '신'라 그대로 읽는다. 신라에 대해서는 新羅라 적고, "シラギ(< シラキ)"(시라기/시라키)로 읽는데, 이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신라의 본래 이름인 斯羅를 그대로 일본식으로 읽은 シラ에 キ(城의 뜻)를 더한 것이다. 일본 동양학의 토대를 놓은 학자인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キ(고대 일본어 독음 *kuy)를 백제어 '기(己)'의 차용어로 추정했다. 마쿠라고토바에서는 "栲衾新羅(タクフスマシラキ)"( 타쿠후스마시라키)라고도 하는데, 이는 특산물인 종이의 원료 "닥(タク(타쿠))"과 "シラ"에서 연상되는 백색의 이미지가 이불(フスマ(후스마))과 연상되어 이루어진 명칭이다.
아랍어 알실라(Alshillaالسيلى)[아랍어]
페르시아어 베실라(Beshilla), 바실라(Bashilla)

통일 신라 시기에는 알 이드리시 같은[52] 아랍 페르시아 사람들이 신라를 찾은 이후 아랍 문헌에선 신라의 국호가 '알실라(Alshillaالسيلى)', 페르시아 문헌에선 '베실라(Beshilla)' 등으로 표기됐다. 2010년 말 한국에 그 정체가 알려진, 신라에 관한 내용이 풍부한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 쿠쉬나메》( کوش نامه, Kush Nama)에선 신라의 국호가 '신라(Shilla)' 또는 '바실라'라고 나타난다. 이때 '베' 혹은 '바' 부분(ب)이 '더 나은, 더 좋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견해가 있다. 당시 무슬림들에게 신라가 일종의 이상향으로 여겨진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이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이다.
라틴어 Sella[53]
인도 구구탁예설라(矩矩托禮說羅)
범어 굴굴타아람마(Kukkutaarama)를 번역한 것으로, 계원(鷄園)이라고도 번역한다, 계작사(鷄雀寺), 계두말사(鷄頭末寺)라고도 한다. 인도 마갈타국에 있던 절 이름이며, 아쇼카왕(BC 3세기)이 창건하였으며, 이름난 스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삼국유사에 천축 즉 인도 사람들이 신라인을 가리켜 구구탁예설라(矩矩托禮說羅)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는 닭을 숭상하는 나라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의미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4권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신라를 '구구탁예설라(矩矩托禮說羅)'라고 불렀다는데, 구구탁은 닭이고 예설라는 귀하다는 말이라고 한다. 즉 닭을 귀히 여기는 나라. 이어서 신라는 닭신을 공경하여 높이기 때문에 관에 깃을 올려서 장식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절풍에 새깃을 꽂아 장식하는 조우관(鳥羽冠)이나 조미관(鳥尾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애시당초 신라는 알영부인 설화에 계룡이 등장하고 김알지 탄강 신화에 흰 닭이 등장하며, 여기에서 '계림(鷄林)'이라는 국호가 파생되기도 한 것으로 보아 닭을 나라의 상징동물 국수급으로 신성시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과거에는 삼족오(고구려)나 닭(신라), 거북(금관가야) 등이 국수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삼족오는 해당 문서 참조. 대한민국 4대 국새의 인뉴를 봉황 대신 삼족오로 만들자는 여론도 있었다.

3.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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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222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FFEFA7,#5A004A> 삼국 - 남북국 - 후삼국
신라 건원(建元) 개국(開國) 대창(大昌) 홍제(鴻濟) 건복(建福) 인평(仁平) 태화(太和)
고구려 영락(永樂) 연수(延壽) 연가(延嘉) 건흥(建興)
발해 인안(仁安) 대흥(大興) 보력(寶歷) 중흥(中興) 정력(正曆) 영덕(永德) 주작(朱雀) 태시(太始) 건흥(建興) 함화(咸和)
태봉 무태(武泰) 성책(聖冊) 수덕만세(水德萬歲) 정개(政開)
후백제 정개(正開)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고려 천수(天授) 광덕(光德) 준풍(峻豊) 천개(天開)
조선 개국(開國) 건양(建陽)
대한제국 광무(光武) 융희(隆熙)
대한민국
대한민국 대한민국(大韓民國) | 단기(檀紀) }}}}}}}}}}}}


신라는 한반도에 존재한 나라들 중 독자적인 연호를 걸고 내린 기간이 가장 명확하게 확인된다.
신라의 연호
건원(建元) 법흥왕 ~ 진흥왕 (536년 ~ 551년)
개국(開國) 진흥왕 (551년 ~ 567년)
대창(大昌) 진흥왕 (568년 ~ 572년)
홍제(鴻濟) 진흥왕 ~ 진평왕 (572년 ~ 583년)
건복(建福) 진평왕 ~ 선덕여왕 (583년 ~ 634년)
인평(仁平) 선덕여왕 ~ 진덕여왕 (634년 ~ 647년)
태화(太和) 진덕여왕 (647년 ~ 650년)

4.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신라/역사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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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행정

현대 한반도의 지명들은 신라 경덕왕 대에 행정을 개혁하면서 지은 한자식 명칭[54]을 토대로 한다. 다만 경덕왕의 한자식 지명은 신라 당대에는 행정개혁을 통한 왕권강화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진골귀족들의 반발로 제대로 쓰이지 못했고 후의 고려 왕조에 들어서 경덕왕이 만든 한자식 지명을 참조하여 새로 작성한 한자식 지명을 완전히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다. 당연히 이 또한 고려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한 행정개혁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55]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게, 경덕왕의 지명 개혁을 마치 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작업인 것처럼 착각해 신라중심주의적인 입장에서는 한반도의 지명은 경덕왕이 완전히 새로 창조한 것이며 후대에도 계승했으니 신라의 문화만이 남았다고 여기고,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경덕왕은 삼국의 전통을 소멸시킨 사대주의자(이에 따르면 기존 신라의 전통 또한 말살된 것이 된다)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일단 이런 한자식 지명은 삼국시대에도 한자문화가 완숙해지며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56] 경덕왕 또한 무작위로 새로 창조하여 작명을 한 게 아니라 이전 삼국시대 지명의 뜻과 전통을 계승하여 한자화한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이미 중국 문화 도입을 통한 중앙집권화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고, 권력과 기존 전통을 유지하려 했던 기성 귀족들의 반발 또한 시시각각 터졌다는 건 기록으로도 많이 남아있다.[57]

5.1. 중앙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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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지방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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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ec9f19,#11499C><colbgcolor=#000,#fedc89>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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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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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5부 지방 5부 3경
백제
5부 5방 22 담로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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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5경 15부 62주 통일신라 9주 5소경 115군 201현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10도
파일:고려 의장기.svg 고려 5도 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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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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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제작 태극기.svg 조선 23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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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제강점기: 13도, 부군면 통폐합
남북​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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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colbgcolor=#fee,#300>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colbgcolor=#eef,#003>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1특별시 6도
(1946-49년)
1특별자유시 9도
(1946-49년)
1특별시 7도
( 자강도 설치 / 1949-51년)
1특별시 9도
(서울특별자유시를 서울특별시로 개칭 / 1949-63년)
1특별시 7도 1지구
( 개성시 설치 / 1951-52년)
1직할시 7도 1지구
( 평양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52-54년)
1직할시 9도 1지구
( 량강도 설치, 황해남도· 황해북도 분도 / 1954-57년)
2직할시 9도
( 개성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57-60년)
3직할시 9도
( 함흥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60-63년)
19​63​년
~
19​95​년
4직할시 9도
( 청진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63-70년)
1특별시 1직할시 9도
(부산시를 부산직할시로 승격 / 1963-81년)
2직할시 9도
( 함흥시, 청진시를 일반시로 격하 / 1970-77년)
3직할시 9도
( 청진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77-79년)
4직할시 9도
( 남포시를 직할시로 승격 / 1979-85년)
1특별시 3직할시 9도
(대구시, 인천시를 대구직할시, 인천직할시로 승격 / 1981-86년)
3직할시 9도
( 청진시를 일반시로 격하 / 1985-2000년)
1특별시 4직할시 9도
(광주시를 광주직할시로 승격 / 1986-89년)
1특별시 5직할시 9도
(대전시를 대전직할시로 승격 / 1989-95년)
19​95​년
~
1특별시 5광역시 9도
(지방자치제 실시 및 행정구역 대개편 / 1995-97년)
4직할시 9도
( 라선시를 직할시로 승격 / 2000-03년)
1특별시 6광역시 9도
(울산시를 울산광역시로 승격 / 1997-2006년)
3직할시 9도
( 개성시를 특급시로 격하 / 2003-04년)
1직할시 9도
( 남포시, 라선시를 특급시로 격하 / (2004-10년)
1특별시 6광역시 8도 1특별자치도
( 제주도 제주특별자치도로 개편 / 2006-12년)
1직할시 2특별시 9도
( 남포시, 라선시를 특별시로 승격 / 2010-19년)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8도 1특별자치도
( 연기군을 해체하고 그 일대에 세종특별자치시를 신설 / 2012-23년)
1직할시 3특별시 9도
( 개성시를 특별시로 승격 / 2019년- )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7도 2특별자치도
( 강원도 강원특별자치도로 개편 / 2023-24년 )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6도 3특별자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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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이전 시대의 행정 구역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데, 아직 신라의 영토가 경상도 일대에 머물러 있던 514년( 지증왕대)에 지금의 함안군 또는 의성군에 아시촌소경을 설치하고, 진흥왕 대 557년에는 충주에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한 기록이 있는 등 , 소경식의 행정구역 체계는 삼국 통일 이전에도 비슷하게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6세기 진흥왕대에 실직주(옛 실직국, 현 영동지방), 신주(백제 한강유역), 사벌주(옛 사벌국, 상주 등 경북 북서부 일대), 비사벌주(옛 비화가야, 창녕 일대), 비열홀주(옛 옥저 등 함경남도 해안 지대) 5주와 중원경(현 충주), 동원경(현 강릉) 2경 # 체계였다. 이후 신주가 남천주, 북한산주로 개편되고 비열홀주가 고(구)려에 함락되어 폐지되었다.
파일:삼한위치비정통합수정본.jpg
1세기경의 추정 위치.
(11)이 신라의 모체인 사로국.
파일:saroguk_200ad_map.jpg
3세기경의 통치 영역
파일:신라의 지도 (진흥왕 시대).png
6세기경의 통치 영역
파일: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jpg
9세기경의 통치 영역과 하위 행정구역
통일신라 행정구역 9주 5소경으로 대표된다. 9주 5소경 문서로.
파일:후삼국시대의 지도.png
10세기경( 후삼국시대)의 통치 영역.
청록색이 신라이다.

6.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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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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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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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어 고대 한국어의 동남지역 방언인 신라어를 기반으로 발달했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병합한 이후 고구려어 백제어는 거의 소멸되어 신라어로 통합되었으며 고려의 영토는 통일신라 시기의 영토와 거의 동일했기 때문에 사실상 현대에 이르는 한국어 신라어에 기반을 두었다고 보는 가설이다. 다만 현대에는 신라와 고려의 향가에서 나타나는 차이[58] 등의 역사적인 기록 및 유화부인 숭배, 5층 석탑 건립 등 이전 삼국시대 문화를 계승해온 흔적이 드러나는 후삼국 호족 문화의 삼국문화로부터의 연속성, 현대 한국어의 방언연속체가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는 점 등에 근거해 고대 한국어의 동남방언보단 중부지역 방언[59]이 후의 표준어로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론 또한 제기되고 있다. 또한, 삼국어 자체가 예맥계의 언어이기에, 애초부터 삼국어 자체가 방언연속체였을 경우, 한반도 중부지역 방언이라는 것은 결국 고구려 유민들의 전통의 거주지인 개성 및 평양시 주변부 언어이기 때문에, 현대 한국어가 고구려어계 직계 또는, 고구려어와 통일신라어의 융합의 결과물이라는 반론 또한 강하게 존재한다.

9. 외교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신라의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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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고구려 가야 발해
태봉 고려 후백제 탐라국
당나라 일본
(삼국시대)
일본
(통일신라)
중동
고조선 · 부여 · 고구려 · 백제 · 가야 · 발해 · 고려 · 조선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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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는 상쟁하면서 나제동맹을 맺기도 했다. 《 삼국사기》에 의하면 많은 전투가 있었고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 적도 있었다. 때론 국가의 이득을 위해 혈연이 맺어지기도 했다[60]. 하지만 국가의 이익에 따라 관산성 전투처럼 나제 동맹도 결렬된다. 이후에는 백제 멸망 시기까지 양국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고,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여 백제 영역과 인구는 고스란히 신라에 귀속된다.

고구려와의 관계도 국가의 이득에 따라 동맹하거나 싸웠다. 광개토대왕 시절,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에 의하면 왜의 공격에 5만의 군사로 신라를 구원하였고( 十年庚子敎遣步騎五萬住救新羅) 신라가 조공하였다고 한다(寐錦家僕句請朝貢) 장수왕 대에 고구려가 남진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이후 진흥왕이 반격에 나서 고구려의 남쪽 영토를 대거 빼앗기도 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 고구려군에게 잦은 공격을 받기도 하는 등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하였다. 삼국시대 말기까지도 무열왕은 고구려로 가서 연개소문을 찾아가 동맹을 맺으려고 했다.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기는 하지만 나당전쟁 과정에서 고구려 유민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다.[61] 이후 고구려인의 일부[62]는 신라인에 포함되었다.[63]

발해와는 초반에 고왕이 신라 대아찬 벼슬을 받으면서 외교관계를 형성했고[64] 당나라에 의해 한때 상호 대립하기도 했지만 선왕 시기 남경 남해부를 통해 신라도가 연결된 이후에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발해가 거란에 압박받을 때에는 신라와의 동맹을 추구하기도 했으나 별 소득이 없었고, 두 나라는 사이좋게 9의 시차를 두고 멸망했다.

가야와는 초기부터 경쟁하는 관계였으나, 금관국을 멸망시킨 후 구형왕 가문을 진골로 편입시켰다. 이후 중심을 잃은 가야의 소국들은 신라에 각개격파당하면서 흡수된다.
파일:external/study.zumst.com/%EC%8B%A0%EB%9D%BC%EC%9D%98%EB%8C%80%EC%99%B8%EA%B4%80%EA%B3%84.png
중국과의 관계는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조공이라는 교류를 하였으나 초기에는 한반도 동남부라는 지리적 위치상 한반도 서해의 중국과 직접 교역은 불가능해 많은 교류는 어려웠던 걸로 보인다. 그러다 진흥왕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서해안에 영토가 닿게 되면서 항구 도시 당항성을 통해 직접 교류가 가능해졌고, 고구려와 백제에게 남북으로 협공당하게 되자 수나라, 당나라와의 교류가 수월해졌다. 한때 나당전쟁으로 관계가 단절되기도 했지만, 이후 회복되었고, 통일신라시대에도 신라의 인재들이 당나라에 유학을 가고 신라방, 신라원 등이 생기면서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숙위 학생단이라는 유학생단을 만들어 10년 정도의 기간씩 교대로 유학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한때 그 숫자가 105명에 이르기도 했으며 일부는 빈공과라는 당나라의 과거 시험에 응시해 당나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고 귀국해 신라에서 관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당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에서 5대 10국 시대가 개막하며, 한반도에서는 태봉과 후백제가 신라에서 갈라져 후삼국 시대가 시작되어 한강 유역과 서해안을 상실한 이후에도 신라는 후당 등 중국의 5대 10국 국가들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멸망 직전에도 중국과 교류했다.

고대사에서 이 부분이 간과되는데, 왜국과 신라와의 관계는 끔찍이도 좋지 않았다. 왜국은 신라보다는 백제, 가야와의 친밀한 관계를 삼국시대 거의 내내 유지했으며, 때로는 백제-가야-왜가 힘을 합쳐 신라를 공격하기도 했고, 심지어 신라와 백제가 손 잡은 나제동맹 때도 왜는 '친구의 친구'라 할 수 있는 신라를 공격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초기부터 많은 침략을 받았다. 《 삼국사기》 기록에서만도 박혁거세 시대부터 수십 번 쳐들어오고, 신라도 말기의 신라구를 제외하면 직접 왜를 침략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없지만, 《 일본서기》에는 527년 규슈 북부의 유력자 이와이(磐井)에게 왜군의 신라 침공을 저지하도록 포섭한 일이나, 신라 원정군을 꾸리던 일본 왕자에 대한 암살을 사주했다는 설, 유례 이사금 시기에 신라가 왜국의 오사카까지 침공했다는 일본측 기록 등 기타 일본측 사서에서 신라가 일본을 침공했다는 기록들도 많이 나오는 등 신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더 자세한 내용은 신라의 일본 침공 사례 문서로.) 《일본서기》에 의하면 왜는 백제를 하나의 번국으로 보았고[65](반면에 백제는 왜를 자신들의 번국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칠지도 명문)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도 신라를 공격하고, 후속 공격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 문서로.) 백제가 완전히 멸망한 이후에는 신라와도 교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통일신라 때도 신라와 일본은 아주 사이가 나쁜 시기와 그나마 괜찮던 시기가 있었는데, 양국 모두 자존심이 무척 강해서 대체로 서로 상대방이 오만하며 무례하다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신라와 일본의 사이가 단순히 좋지 않았다는 편견과 달리, 이전 백제 때 만큼은 아니지만 이후 시대인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 비해서는 양국간 교류량은 훨씬 많은 편이었다.

특히 일본의 우방이던 백제가 사라진 통일신라로 들어서는 상황이 변하게 된다. 나당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선 후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일본 역시 백제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다음에는 나당연합군이 일본에 쳐들어올 것을 염려해 얼마 전까지 싸웠던 신라와 전격 화친하기에 이른다. 신라는 왜전(倭典)이라는 일본 외교사신 접객을 담당하는 관청을 따로 두어 체계적으로 대일관계를 관리했다. 훗날의 조선 통신사 파견이 조선 후기 200여 년간 고작 9회에 불과했지만, 한일 양국의 사료를 종합해보면 신라 때는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670년부터 779년까지 1세기 동안 일본으로 사신단이 39차례나 파견됐고, 동시기 일본 사신단도 신라를 25차례나 방문했다. 사신단의 규모에 있어서도 성덕왕 2년(703년)에 204명의 사신단을 파견했다는 기록을 참고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횟수까지 감안했을 때 1회에 300~500명을 파견한 조선 통신사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 8세기 중후반으로 가면서 일본의 자존 의식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자국을 상국으로 모실 것을 신라에 요구하는 형식적 외교 관례에 집착했고, 이러면 신라도 무례하다고 사신을 쫓아내고 개무시하면서 차츰 정부간 교류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래도 장보고로 대표되는 사무역이나 민간 교류는 9세기에도 꽤 많았다. 다만 활발한 교역량과는 별개로 왕실과 백성들은 서로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갖지는 않았던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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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는 중동 지역과도 교류가 있어서, 아라비아 페르시아의 기록에 '알실라'(Alshillaالسيلى), '베실라'(Beshilla) 등의 이름으로 중동과 유럽 지역에 소개되었다. 위 지도는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인데, 아랍인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 시칠리아 왕국 노르만 왕조의 루지에로 2세의 지원하에 제작했다. 한국이 포함된 최초의 세계지도로, 참고로 원본은 남쪽이 위로 가게 만들어서 신라가 좌측 끝에 있다. 다만 신라가 섬나라로 묘사된 오류가 있는데, 멀리서 한국에 오는 사람들은 바다를 항해해 동중국해에서 올라와 한국에 상륙했기 때문에 한국의 북쪽으로 가 볼 일이 없어 섬나라로 오해한 것이다. 수백 년 뒤 조선을 표시한 유럽 세계지도에서도 조선을 섬나라로 잘못 그린 지도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1636년작인 테세이라의 <일본전도>에서도 한반도가 섬나라로 잘못 그려져 있다.

중동인들의 기록에서는 대체로 신라가 이상향마냥 살기 좋은 곳으로 기록했고, 이라크 지역 사람들 몇십명이 신라에 정착해 있었다고 기록했다. 일본 도다이지 쇼소인에 소장 중인 <매신라물해>(買新羅物解)의 기록에 따르면 752년에는 아랍 상인단이 신라 사신단을 따라서 일본까지 갔다오기도 했다. 일부 중동인들은 신라에 정착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66]

경주시에서 특이한 유리구슬들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식리총 상감 유리구슬, 경주 노서리 상감 유리구슬이 그것이다. 영국 런던 고고학연구소의 제임스 랭턴 박사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지역의 고대 펠랑기 구슬과 동일한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적어도 4세기 이전부터 신라인들이 인도네시아 자바 섬 주민들과 직접 교류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그 외에 당나라의 의정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는 신라 승려 2명이 인도에 가기 위해 배를 타고 실리불서국(室利佛逝國)을 거쳐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에 있었던 스리비자야 왕국을 말하는 것으로, 인도로 오가는 구법순례의 중간 거점으로 인도네시아와 교류가 있었던 근거가 되고 있다.한국에서 베트남에 대해 기록한 최초 사례는 신라의 문인 최치원의 882년 저작 <보안남록이도기>(補安南錄異圖記)이다. 《계원필경》의 일부이며, 당시 베트남 역사에 대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신라 승려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여행기를 남겼는데 이는 지금도 남아있으며, 기록이 부족한 당시 인도-중앙아시아의 정세를 기록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여행기를 남긴 혜초가 가장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많은 신라 승려들이 인도를 오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당나라의 의정이 쓴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는 아리야발마 법사, 혜업 법사, 현태 법사, 현각 법사, 혜륜 선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른 두 사람까지 일곱 명의 신라 승려가 인도에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중 현태법사는 중앙아시아 루트를 선택한 혜초와 달리 650년에서 656년 사이에 티베트와 히말라야 산맥, 네팔을 거쳐서 육로로 인도에 갔고, 반면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승려는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를 지나 해로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신라인의 인도 구법순례는 비록 기록이 부족해 완전한 복원은 어렵지만, 이렇게 여러 경로가 개척될 정도로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시기엔 이란의 전신인 사산조 페르시아와 무역으로 교류가 있었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도 혜초가 파사국(波斯國)도 갔다 왔음이 언급되는데 파사국은 페르시아를 음차한 것이다.

반대로 훗날 이란계가 관료층으로 자리잡은 중동, 이슬람의 세계지도나 지리서에선 신라가 언급되며 신라에 정착한 이란인들도 있었다. 또한 중세 이란의 서사시 샤나메에서는 판타지가 가미된 픽션이지만 신라가 '바실라'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고 극중의 무대가 되기도하며 주인공인 파리둔은 페르시아-신라 혼혈이기도 하는 등 상당히 우호적으로 묘사되어있다.

원성왕릉의 호인석과 처용역시 당시 이주한 이란인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삼국시대의 경우, 태봉은 신라와는 거의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았다. 궁예는 신라를 '멸도'(滅都)라고 칭하며, 우호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적개심을 드러냈다.[67] 후백제는 태봉에 비하면 신라 눈치를 보는 시늉은 했지만[68] 역시 후백제의 창업자인 견훤이 신라에 반기를 들고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그렇게 관계가 좋지 않았으며 후백제도 신라를 침략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약탈하기까지 했다. 반면 태봉국을 쿠데타로 무너트리고 즉위한 왕건 고려는 궁예와는 상반되는 친신라 정책을 펼쳤으며, 동시기에 존재한 후백제보다는 고려 쪽에 신라가 의탁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중국과 조공을 하였는데 5대 10국 후당과 주로 조공을 하였다.

10.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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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군 백제군 신라군 가야군
남북국시대 발해군 신라군
고려시대 고려군
조선시대 조선군
대한제국 대한제국군 / 의병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 육군 조선군· 조선보병대 / 독립군
분단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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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해방병단 조선해안경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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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보안대 해안경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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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라 말머리 가리개.png
신라 초의 갑옷과 말머리 가리개.

신라는 초기에 6부(部)의 장정을 징발하여 편성한 6부병(六部兵) 제도로 운용되었다. 기록을 봐도 무슨 일이 있으면 총사령관인 국왕이라도 6부병 부하 지휘관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했는데 이는 신라왕이 다른 부 수장들의 대표였지 그들 모두의 위에 초월적으로 서는 위상은 아니었던 게 이유다. 하지만 나물 마립간 때부터 슬슬 신라왕이 다른 부 수장들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찍어눌러서 씹어버리고 독자적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승리를 거두는 사례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나물 ~ 소지 마립간 때까지 신라 임금들이 걸핏하면 딴지를 걸어대는 진골들에게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오늘날 경북 서남부, 충북 남부 추풍령 일대를 왕실 직할령으로 키우면서 그 일대에서 진골들과는 무관한 정예 부대를 육성한 게 이유다. 이후로 지증왕 때부터 등장하는 습보계 왕가는 눌지계 왕실에게서 승계한 추풍령에 더해 고구려에게서 수복한 '고구려 고지'인 경북 북동부 조령 일대을 또 하나의 직할지 비슷한 영역으로 확보하고, 이를 통해 옛 6부병 체제의 유산을 청산해낸다.

국력이 급속도로 팽창하는 시점인 진흥왕 때부터 늘어난 영토의 방위 목적 등으로 군사 편제가 큰 변화를 겪게 되며, 초기 6부 체제는 6정의 6개 군단 편제로 바뀌게 된다. 나중에 이 지방군 체제는 더 증편되어 진평왕 때에는 10정(停)으로 바뀐다. 지방 체제의 군단 편제 외에도 중앙군도 개편에 맞추어서 서당(誓幢: 583년), 낭당(郞幢: 625년)이란 부대로 개편되었고 왕궁 수비대인 시위부(侍衛府: 624년)도 창설되게 된다. 관련 정보 이러한 개편은 결국 신라가 그간 수천 단위로 동원되던 수준의 원정 능력에서 10,000 단위 이상의 동원 능력을 보이는 계기가 되며 삼국 전쟁 말기 고구려 원정, 그리고 이후 달벌대전 때에는 10만 단위의 대군을 동원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봐도 참으로 특이한 편제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진흥왕 이래로 서라벌 방어 부대 편제와 서라벌 왕궁 방어 체제를 완전 분리한 것이었다. 서라벌 방어 정예 부대는 당연히 서라벌 거주 왕경인들을 위주로 편성되었는데, 기이하게도 서라벌 왕궁 근위대는 지휘관이든 병사든 서라벌인들은 아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근위대는 앞서 신라 왕실이 진골들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개척한 추풍령과 조령 등에서 자원 입대를 받았으며, 왕궁 근위대장 자리는 아예 진골은 임명되지 못하게 하여 왕궁 내 무력 집단에 서라벌 거주 진골이나 6두품 등이 진입하는 건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이는 이미 진흥왕 때부터 진골 집단이 골품제의 한계를 벗어나 광범위한 개혁을 추구하는 왕실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었던 것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69]

군복무 기간은 삼국사기에 실린 가실 열전에 의하면 3년인 듯 하지만, 워낙 전쟁이 많았던 난세인 삼국시대다보니 한없이 연장되는 일이 많았던 듯 하다. 가실은 6년이 지나서야 결혼을 약속했던 설씨녀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일본과 워낙 전쟁이 자주 일어나다보니 군복무도 혹독했는지 6년만에 나타난 가실은 너무 초췌해져 처음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70] 그러다 나당전쟁을 마지막으로 통일신라부터는 한반도에서 큰 전쟁이 수백년간 거의 없는 평화기가 찾아오게 된다.

신라는 삼국통일 후 전국을 옛 고구려 지역 3주, 옛 백제 지역 3주, 원래 신라였던 지역 3주인 9주 5소경으로 편제하고 국왕 직속으로 수도에 출신별로 아홉 개 서당(誓幢) 부대, 그리고 지방 각 주에 하나씩 정(停) 부대를, 단 전방지역인 한주만 2개 부대씩 해서 9서당 10정 체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 주마다 만보당 2개 부대를 각각 배치해 지방을 방어하였다. 이들은 현대의 부대마크처럼, 부대별로 옷깃(衿) 색깔을 다르게 해서 구분했다.
  • 신라 중앙군
부대명칭 출신지 창설 시기
녹금서당(綠衿誓幢) 신라 583(서당)
자금서당(紫衿誓幢) 625(낭당)
비금서당(緋衿誓幢) 672(장창당)
백금서당(白衿誓幢) 백제
청금서당(靑衿誓幢)
황금서당(黃衿誓幢) 고구려
벽금서당(碧衿誓幢) 보덕국(고구려계)
적금서당(赤衿誓幢)
흑금서당(黑衿誓幢) 말갈( 예맥 위말갈)
  • 신라 지방군
주둔한 주[71] 10정 부대명[72] 부대 주둔지의 현재 지명
남천정(南川停) 경기도 이천시
골내근정(骨乃斤停) 경기도 여주시
벌력천정(伐力川停) 강원도 홍천군
이화혜정(伊火兮停) 경상북도 청송군
고량부리정(古良夫里停) 충청남도 청양군
전주 거사물정(居斯勿停) 전라북도 임실군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 전라남도 나주시
음리화정(音里火停) 경상북도 상주시
소삼정(召參停) 경상남도 함안군
삼량화정(三良火停) 대구광역시 달성군

신라군은 보병 위주의 군대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백제와 마찬가지로 말을 목축화하는데 어려운 지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백제와 유사하게 보병 중심이었으나, 이후 나당전쟁 때 당나라의 유목민 출신 기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말 그대로 장창을 주 무기로 하는 장창당(長槍幢) 부대를 따로 구성해 운용하기도 했다.
파일: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마갑1.jpg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 신라 마갑과 신라 중장기병 복원도.

기병의 전체적 비중은 적었지만 소수의 정예 기마병을 육성했고, 경주시와 인근 가야 지역인 함안군에서 상태가 좋은 마갑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탑승자와 말 전체를 갑옷으로 감싸는 중장기병을 운용했음이 유물로 밝혀졌다. 갑옷은 고구려의 영향 전에는 판갑(板甲)을 주력으로 운용했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구원 이후 고구려의 영향으로 찰갑(札甲) 운용이 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구진천 천보노라는 우수한 쇠뇌, 그리고 거점 수비에 쇠뇌를 사용하는 노사(弩士)를 몇천명씩 배치해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후 조선시대부터는 쇠뇌보다는 국궁[73] 주력으로 사용했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화랑 / 낭도 제도를 운용한 것도 특징. 대체적으로 고급 장교 - 하급 장교 / 부사관 급 인사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보는 편이다.

신라의 군기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신라 사람들의 휘직은 띠를 푸르거나 붉거나 하는 등의 색깔로 구분하였고 모양은 반달의 형상을 취하였다. 계(罽) 또한 옷에 다는 것인데 그 길이의 길고 짦음에 대한 제도는 분명하지 않다.” 해당 링크.

이러한 신라의 군제는 통일기에 격변을 거쳤고, 통일한 이후 경덕왕에 의해 한차례 더욱 정밀한 군제 개편을 거치게 된다. 경덕왕의 군제 개편으로 구서당은 완전 해체되었고[74] 서라벌 방어 부대는 육기정 부대로 제개편되어 서라벌로 향하는 여섯 경로를 방어하도록 구체적인 임무를 받았으며, 일본이 침공해올 가능성에 대비해 부산으로부터 경주 방어선을 구축했다. 위에서 상술한 정예 쇠뇌부대들도 물론 그 방면에 배치되었다. 또한 발해나 여진을 대비해 동북방 국경 부대도 대폭 확충되었고 전면적인 요새 정비 사업도 행해졌다. 태봉과 고려가 생각보다 여진족이 북쪽으로부터 내리누르는 압력에 고생한 편인데, 경덕왕의 이런 군제 개편에 아주 덕을 많이 보았음은 물론이다. 자세한 부분은 경덕왕 문서로.

이후 김헌창의 난을 거치면서 신라의 지방군 동원 체제가 생각보다 취약하고, 옛 고구려, 백제 유민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게 확인되자 이번에는 헌덕왕 때부터 종심 방어선 체제 구축이 시작되어 헌강왕 때 끝을 본다.

통일신라의 중후기에 행해진 신라 임금들의 주도면밀한 군제 개편 작업 및 축성 작업 등은 후삼국시대 때도 후삼국의 쟁패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경덕왕, 헌강왕 문서로.

신라 수군의 활약상은 우산국 정벌, 기벌포 전투 등 다방면에서 전하지만 수군의 편제에 대해서는 육군에 비해서도 기록이 훨씬 부족하다. 삼국사기의 본기와 직관지를 참조하면, 신라 초기에는 오늘날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부(兵部)가 선박에 관한 일을 맡았는데 문무왕 18년(678) 선박 업무를 전담하는 선부(船府)를 설치했다.

660년 백제 침공 당시 기록을 토대로 당항성에 소속된 신라 황해 함대가 100척에 6,500여명 규모일 것으로 이상훈 교수는 추산했다. 이들은 병선(兵船), 대선(大舩), 거함(巨艦)으로 표현되고 있어 당시 동아시아 기준으로도 규모가 큰 전투함으로 볼 수 있으며,[75] 황산벌 전투에 참여한 신라 육군과 별개로 당나라 수군과 오늘날의 경기도 앞바다에서 합류해서 서해안을 따라 남하해 금강 하구에서 백제 수비군을 물리친 후 백제 수도 사비성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라에서도 시기별로 수군의 규모나 편제가 달랐을테고, 신라 국토 구조를 보면 신라 수군의 주력은 남해 동해에 배치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 황해 함대 기록만으로 신라 수군을 완전히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신라군은 상당히 수성을 잘 한 편이었는데, 천년이나 되는 긴 역사 동안 수도인 경주가 외적들에 의해 점령된 건 1번 뿐이었다. 고구려는 이미 동천왕, 고국원왕 국내성 수도가 점령당했고, 백제는 아예 한강 시절 수도인 위례성 장수왕 때 통째로 점령당해 결국 천도했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는 결국 수도가 점령당하면서 나라가 멸망했다. 이에 반해 신라는 거의 천년에 달하는 역사 중에서 10세기 초에 견훤이 경주를 점령한 게 유일하다. 그 외에는 내물 마립간 시절, 왜군들에 의해 수도가 거의 점령당할 뻔 할 정도로 위기가 있었는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에 의해 위기를 벗어난다.

역사가 신라에 비해 절반 수준인 고려나 조선 역시 수도가 최소 2번 이상 점령당했다는 걸 고려해보면 신라군은 수성을 정말 잘 한 편이었다. 물론 신라 시절엔 수나라, 당나라가 수십만, 100만 이상 대군으로 쳐들어 온 적도, 북방 민족인 거란족, 몽골족이나 왜군이 많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온 적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기록이 적어서 그렇지, 나당전쟁 시절은 신라에게 국가적 위기였다.

11.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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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외국사서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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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권 「양본기상·중(梁本紀上·中)」 8권 「양본기하(梁本紀下)」
소연 소강 · 소역 · 소방지
9권 「진본기상(陳本紀上)」 10권 「진본기하(陳本紀下)」
진패선 · 진천 · 진백종 진욱 · 진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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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1·12권 「후비전(后妃傳)」 ||
조안종 · 소문수 · 장애친 · 장궐 · 사마무영 · 호도안 · 원제규 · 노혜남 · 왕헌원 · 은숙의 · 하영완 · 심용희 · 왕정풍 · 진묘등 · 강간규 · 진법용 · 사범경 · 진도정 · 유지용 · 배혜소 · 왕보명 · 하정영 · 왕소명 · 유혜단 · 저영거 · 왕순화 · 장상유 · 치휘 · 왕영빈 · 정영광 · 완영영 · 서소패 · 장요아 · 심묘용 · 왕황후 · 유경언 · 심무화 · 장여화
13·14권 「송종실급제왕전(宋宗室及諸王傳)」
유도린 · 유도규 · 유의경 · 유준고 · 유의진 · 유의강 · 유의공 · 유의선 · 유의계 · 유소 · 유준(濬) · 유삭 · 유굉 · 유탄 · 유위 · 유창 · 유혼 · 유휴인 · 유휴우 · 유휴무 · 유휴업 · 유휴천 · 유이부 · 유휴범 · 유휴약 · 유자상 · 유자훈 · 유자방 · 유자욱 · 유자란 · 유자인 · 유자진 · 유자원 · 유자우 · 유자맹 · 유자운 · 유자사(劉子師) · 유자소 · 유자사(劉子嗣) · 유찬 · 유우 · 유홰 · 유숭 · 유희
15권 「유목지등전(劉穆之等傳)」 16권 「왕진악등전(王鎮惡等傳)」
유목지 · 서선지 · 부량 · 단도제 왕진악 · 주령석 · 모수지 · 부홍지 · 주수지 · 왕현모
17권 「유경선등전(劉敬宣等傳)」
유경선 · 유회숙 · 유수 · 손처 · 괴은 · 상정 · 유종 · 우구진 · 맹회옥 · 호번 · 유강조
18권 「조륜지등전(趙倫之等傳)」 19권 「사회등전(謝晦等傳))」
조륜지 · 소사화 · 장도 사회 · 사유 · 사방명 · 사령운
20권 「사홍미전(謝弘微傳)」 21권 「왕홍전(王弘傳)」 22권 「왕담수전(王曇首傳)」
사홍미 왕홍 왕담수 , 왕훈,
23권 「왕탄등전(王誕等傳)」 24권 「왕유지등전(王裕之等傳)」 25권 「왕의등전(王懿等傳)」
왕탄 · 왕화 · 왕혜 · 왕욱 왕유지 · 왕진지 · 왕소지 · 왕열지 · 왕준지 왕의 · 도언지 · 원호지 · 장흥세
26권 「원담전(袁湛傳)」 27권 「공정등전(孔靖等傳)」 28권 「저유지전(褚裕之傳)」
원담 공정 · 공림지 · 은경인 저유지
29권 「채곽전(蔡廓傳)」 30권 「하상지전(何尙之傳)」 31권 「장유전(張裕傳)」
채곽 하상지 장유 , 장승,
32권 「장소전(張邵傳)」 33권 「범태등전(范泰等傳)」 34권 「안연지등전(顔延之等傳)」
장소 범태 · 순백자 · 서광 · 정선지 · 배송지 · 하승천 안연지 · 심회문 · 주랑
35권 「유담등전(劉湛等傳)」 36권 「양흔등전(羊欣等傳)」 37권 「심경지등전(沈慶之等傳)」
유담 · 유열 · 고침 · 고기지 양흔 · 양현보 · 심연지 · 강이 · 강병지 심경지 · 종각
38권 「유원경전(柳元景傳)」 39권 「은효조등전(殷孝祖等傳)」 40권 「노상등전(魯爽等傳)」
유원경 은효조 · 유면 노상 · 설안도 · 등완 · 종월 · 오희 · 황회
41권 「제종실전(齊宗室傳)」
소도도 · 소도생 · 소요광 · 소요흔 · 소면 · 소경선 · 소적부 · · 소탄 · 소탄지
42·43권 「제고제제자전(齊高帝諸子傳)」
소억 · 소영 · 소황 · 소엽 · 소고 · 소장 · 소삭 · 소감 · 소봉 · 소예 · 소갱 · 소구 · 소현
44권 「제무제제자·제문혜제자·명제제자전(齊高帝諸子·文惠諸子·明帝諸子傳)」
소장무 · 소자량 · 소자경(卿) · 소자향 · 소자경(敬) · 소자무 · 소자륭 · 소자진 · 소자명 · 소자한 · 소자륜 · 소자정 · 소자악 · 소자문
소자준 · 소자림 · 소자건 · 소자하 · 소소수 · 소소찬 · 소보의 · 소보현 · 소보원 · 소보인 · 소보유 · 소보숭 · 소보정
45권 「왕경칙등전(王敬則等傳」 46권 「이안인등전(李安人等傳)」
왕경칙 · 진현달 · 장경아 · 최혜경 이안인 · 대승정 · 환강 · 초도 · 조무 · 여안국 · 주산도 · 주반룡 · 왕광지
47권 「순백옥등전(荀伯玉等傳)」 48권 「육징등전(陸澄等傳)」
순백옥 · 최조사 · 설연 · 우종 · 호해지 · 우완지 · 유휴 · 강석 육징 · 육혜효 · 육궐
49권 「유고지등전(庾杲之等傳)」 50권 「유환등전(劉瓛等傳)」
유고지 · 왕심 · 공규 · 유회진 유환 · 명승소 · 유이 · 유규
51·52권 「양종실전(梁宗室傳)」
소경 , 소매 소발 소앙 소욱, · 소의 · 소부 · 소창 · 소융 · 소굉 , 소정인 소정의 소정덕 소정립, 소수 · 소위 · 소회 · 소담
53권 「양무제자전(梁武帝諸子傳)」
소통 · 소종 · 소적 · 소속 · 소윤 · 소기
54권 「양간문제자·원제제자전(梁簡文帝諸子·元帝諸子傳)」
소대기 · 소대심 · 소대관 · 소대림 · 소대련 · 소대춘 · 소대성 · 소대봉 · 소대아 · 소대장 · 소대균 · 소대위 · 소대훈 · 소대구 · 소대흔 · 소대지 · 소대원 · 소방등 · 소방제 · 소방구 · 소방략
55권 「왕무등전(王茂等傳)」
왕무 · 조경종 · 조의종 · 석천문 · 하후상 · 길사첨 · 채도공 · 양공칙 · 등원기 · 장혜소 · 장징 · 풍도근 · 강현 · 창의지
56권 「장홍책등전(張弘策等傳)」 57권 「심약등전(沈約等傳)」 58권 「위예등전(韋叡等傳)」
장홍책 · 유역 · 정소숙 · 여승진 · 악애 심약 · 범운 위예 · 배수
59권 「강엄등전(江淹等傳)」 60권 「범수등전(范岫等傳)」 61권 「진백지등전(陳伯之等傳)」
강엄 · 임방 · 왕승유 범수 · 부소 · 공휴원 · 강혁 · 서면 · 허무 · 은균 진백지 · 진경지 · 난흠
62권 「하창등전(賀瑒等傳)」 63권 「왕신념등전(王神念等傳)」 64권 「강자일등전( 江子一等傳)」
하창 · 사마경 · 주이 · 고협 · 서리 · 포천 왕신념 · 양간 · 양아인 강자일 · 호승우 · 서문성 · 음자춘 · 두즉 · 왕림 · 장표
65권 「진종실제왕전(陳宗室諸王傳)」
진의 · 진상 · 진혜기 · 진창 · 진담랑 · 진백무 · 진백산 · 진백고 · 진백공 · 진백인 · 진백의 · 진백례 · 진백지 · 진백모
진숙릉 · 진숙영 · 진숙견 · 진숙명 · 진숙경 · 진숙헌 · 진숙제 · 진숙문 · 진숙달 · 진숙탄 · 진숙표 · 진숙웅 · 진숙중 · 진숙엄 · 진숙신 · 진숙우 · 진숙평 · 진숙오 · 진숙흥 · 진숙선 · 진숙목 · 진숙검 · 진숙징 · 진숙소 · 진숙광 · 진숙순 · 진숙모 · 진숙현 · 진숙륭 · 진숙영
진심 · 진장 · 진윤 · 진억 · 진언 · 진경 · 진건 · 진념 · 진지 · 진전 · 진번
66권 「두승명등전(杜僧明等傳)」
두승명 · 주문육 · 후진 · 후안도 · 구양위 · 황법구 · 순우량 · 장소달 · 오명철
67권 「호영등전(胡穎等傳)」
호영 · 서도 · 두릉 · 주철무(1) · 정령세 · 심각 · 육자륭 · 전도집 · 낙문아 · 손창 · 서세보 · 주부 · 순랑 · 주경 · 노실달 · 소마하 · 임충 · 번의
68권 「조지례등전(趙知禮等傳)」
조지례 · 채경력 · 종원요 · 한자고 · 화교 · 유사지 · 사기 · 모희 · 심군리 · 육산재
69권 「심형등전(沈炯等傳)」
심형 · 우려 · 부재 · 고야왕 · 요찰
70권 「순리전(循吏傳)」
길한 · 두기 · 신념 · 두혜도 · 완장지 · 견법숭 · 부염 · 우원 · 왕홍궤 · 심우 · 범술증 · 손겸 · 하원 · 곽조심
71권 「유림전(儒林傳)」
복만용 · 하동지 · 엄식지 · 사마경 · 변화 · 최령은 · 공첨 · 노광 · 심준(峻) · 공자구 · 황간 · 심수 · 척곤 · 정작 · 전완 · 장기 · 고월 · 척곤 · 왕원규
72권 「문학전(文學傳)」
구영국 · 단초 · 변빈 · 구거원 · 왕지심 · 최위조 · 조충지 · 가희경 · 원준 · 유소(昭) · 종영 · 주흥사 · 오균 · 유협 · 하사징 · 임효공 · 안협 · 기소유 · 두지위 · 안황 · 잠지경 · 하지원 · 서백양 · 장정견 · 완탁
73·74권 「효의전(孝義傳)」
공영 · 유유(瑜) · 가은 · 곽세통 · 엄세기 · 오규 · 반종 · 장진지 · 구걸 · 사각수 · 왕팽 · 장공 · 서경 · 손법종 · 범숙손 · 복천여 · 허소선 · 여제인 · 손극 · 하자평 · 최회순 · 왕허지 · 오경지 · 소예명 · 소교처양 · 공손승원 · 오흔지 · 한계백 · 구관선 · 손담 · 화보 · 해숙겸 · 한영민 · 유풍 · 봉연백 · 오달지 · 왕문수 · 악이지 · 손법종 · 유도민 · 등담공 · 도계직 · 심숭소 · 순장 · 길분 · 견염 · 조발호 · 한회명 · 저수 · 장경인 · 도자장 · 성경준 · 이경서 · 사린 · 은불해 · 사마고 · 장소
75·76권 「은일전(隐逸傳)」
도잠 · 종소문 · 심도건 · 공순지 · 주속지 · 대옹 · 적법사 · 뇌차종 · 곽희림 · 유응지 · 공기 · 주백년 · 관강지 · 어부 · 저백옥 · 고환 · 두경산 · 장영서 · 오포 · 서백진 · 심인사 · 완효서 · 등욱 · 도홍경 · 제갈거 · 유혜비 · 범원엽 · 유선 · 장효수 · 유승선
77권 「은행전(恩倖傳)」
대법흥 · 서원 · 완전부 · 기승진 · 유계종 · 여법량 · 여문현 · 여법진 · 주석진 · 육험 · 사마신 · 시문경 · 심객경 · 공범
78·79권 「이맥전(夷貊傳)」
임읍 · 부남 · 중천축국 · 사자국 · 고구려 · 백제국 · 신라 · · 부상국· 하남왕국 · 탕창 등지 · 무흥국 · 형옹주·예주만 · 고창 · 쿠처 · 우전국 · 파사국 · 연연
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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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권 「위본기1(魏本紀一)」 2권 「위본기2(魏本紀二)」 3권 「위본기3(魏本紀三)」
탁발규 · 탁발사 탁발도 · 탁발황 · 탁발준(浚) · 탁발홍 원굉
4권 「위본기4(魏本紀四)」 5권 「위본기5(魏本紀五)」
원각 · 원후 원자유 · 원공 · 원랑 · 원수 · 원보거 · 원흠 · 원곽 · 원선견
6권 「제본기상(齊本紀上)」 7권 「제본기중(齊本紀中)」 8권 「제본기하(齊本紀下中)」
고환 · 고징 고양 · 고은 · 고연 고담 · 고위 · 고항
9권 「주본기상(周本紀上)」 10권 「주본기하(周本紀下)」
우문태 · 우문각 · 우문육 우문옹 · 우문윤 · 우문천
11권 「수본기상(隋本紀上)」 12권 「수본기하(隋本紀下)」
양견 양광 · 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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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13·14권 「후비전(后妃傳)」 ||
신원황후 · 봉황후 · 기황후 · 평문황후 · 소성황후 · 헌명황후 · 도무황후 · 선목황후 · 소애황후 · 명원밀황후 · 태무황후 · 경애황후
울구려황후 · 문명황후 · 문성원황후 · 헌문사황후 · 효문정황후 · 폐후 풍씨 · 효문유황후 · 효문고황후 · 우황후 · 고황후 · 호황후 · 효명황후 · 효무황후 · 문황후 · 도황후 · 우문황후 · 약간황후 · 효정황후 · 누소군 · 원황후 · 이조아 · 원황후 · 호황후 · 곡률황후 · 호황후 · 목야리 · 풍소련 · 원씨 · 질노씨 · 원호마 · 독고황후 · 아사나 · 이아자 · 양려화 · 주만월 · 진월의 · 원락상 · 울지치번 · 사마영희 · 독고가라 · 소황후
15권 「위제종실전(魏諸宗室傳)」
탁발흘나 · 탁발영문 · 탁발육 · 탁발인 · 탁발수낙 · 탁발퇴 · 탁발소연 · 탁발욱 · 탁발목신 · 탁발육수 · 탁발비간 · 탁발여 · 탁발고
탁발돈 · 탁발석 · 탁발위 · 탁발대두 · 탁발제 · 탁발처진 · 탁발니 · 탁발식군 · 탁발한 · 탁발준(遵) · 탁발건(健) · 탁발순 · 탁발의열 · 탁발굴돌
16권 「도무7왕·명원6왕·태무5왕전(道武七王·明元六王·太武五王傳)」
탁발소 · 탁발희 · 탁발요 · 탁발수 · 탁발처문 · 탁발연 · 탁발려(黎) · 탁발비 · 탁발미 · 탁발범 · 탁발건(健) · 탁발숭 · 탁발준(俊) · 탁발복라 · 탁발한 · 탁발담 · 탁발건(建) · 탁발여(余)
17·18권 「경목12왕전(敬穆十二王傳)」
탁발신성 · 탁발자추 · 탁발소신성 · 탁발천사 · 탁발만수 · 탁발낙후 · 탁발운 · 탁발정 · 탁발장수 · 탁발태락 · 탁발호아 · 탁발휴
19권 「문성5왕·헌문6왕·효문6왕전(文成五王·獻文六王·孝文六王傳)」
탁발장락 · 탁발략(略) · 탁발간(簡) · 탁발약(若) · 탁발맹 · 원희 · 원간(幹) · 원우 · 원옹 · 원상 · 원협 · 원순 · 원유 · 원역 · 원회 · 원열
20권 「위조등전(衛操等傳)」
위조 · 막함 · 유고인 · 울고진 · 목숭 · 해근 · 숙손건 · 안동 · 유업연 · 왕건 · 나결 · 누복련 · 염대비 · 해목 · 화발 · 막제 · 하적간 · 이율 · 해권
21권 「연봉등전(燕鳳等傳)」 22권 「장손숭등전(長孫嵩等傳)」
연봉 · 허겸 · 최굉 · 장곤 · 등언해 장손숭 · 장손도생 · 장손비
23권 「우율제전(于栗磾傳)」 24권 「최영등전(崔逞等傳)」
우율제 최영 · 왕헌 · 봉의
25권 「고필등전(古弼等傳)」
고필 · 장려 · 유결 · 구퇴 · 아청 · 이후 · 을괴 · 주기 · 두대전 · 거이락 · 왕낙아 · 거로두 · 노노원 · 진건 · 내대간 · 숙석 · 만안국
주관 · 울발 · 육진 · 여락발 · 설표자 · 울원 · 모용백요 · 화기노 · 순퇴 · 우문복
26권 「송은등전(宋隱等傳)」
송은 · 허언 · 조옹(刁雍) · 신소선 · 위랑 · 두전
27권 「굴준등전(屈遵等傳)」
굴준 · 장포 · 곡혼 · 공손표 · 장제 · 이선 · 가이 · 두근 · 이흔 · 한연지 · 원식 · 모수지 · 당화 · 구찬 · 역범 · 한수 · 요훤 · 유숭
28권 「육사등전(陸俟等傳)」 29권 「사마휴지등전(司馬休之等傳)」
육사 · 원하 · 유니 · 설제 사마휴지 · 유창 · 소보인 · 소정표
28권 「노현등전(盧玄等傳)」 29권 「고윤등전(高允等傳)」
노현 · 노부 고윤 · 고우 · 고덕정 · 고익 · 고앙
32권 「최감등전(崔鑒等傳)」 33권 「이령등전(李靈等傳)」
최감 · 최변 · 최정 이령 · 이순 · 이효백 · 이예 · 이의심
34권 「유아등전(游雅等傳)」
유아 · 고려 · 조일 · 호수 · 호방회 · 장담 · 단승근 · 감인 · 유연명 · 조유 · 색창 · 송요 · 강식
35권 「왕혜룡등전(王慧龍等傳)」 36권 「설변등전(薛辯等傳)」
왕혜룡 · 정희 설변 · 설치 · 설징
37권 「한무등전(韓茂等傳)」
한무 · 피표자 · 봉칙문 · 여나한 · 공백공 · 전익종 · 맹표 · 해강생 · 양대안 · 최연백 · 요훤 · 이숙인
38권 「배준등전(裴駿等傳)」 39권 「설안도등전(薛安都等傳)」
배준 · 배연준 · 배타 · 배과 · 배관 · 배협 · 배문거 · 배인기 설안도 · 유휴빈 · 방법수 · 필중경 · 양지
40권 「한기린등전(韓麒麟等傳)」 41권 「양파등전(楊播等傳)」
한기린 · 정준 · 이표 · 고도열 · 견침 · 장찬 · 고총 양파 · 양부 양소
42권 「왕숙등전(王肅等傳)」 43권 「곽조등전(郭祚等傳)」 44권 「최광등전(崔光等傳)」
왕숙 · 유방(劉芳) · 상상 곽조 · 장이 · 형만 · 이숭 최광 · 최량
45권 「배숙업등전(裴叔業等傳)」
배숙업 · 하후도천 · 이원호 · 석법우 · 왕세필 · 강열지 · 순우탄 · 음중달 · 장당 · 이묘 · 유조 · 부영 · 부수안 · 장열 · 이숙표 · 노시경 · 방량
조세표 · 반영기 · 주원욱
46권 「손소등전(孫紹等傳)」
손소(孫紹) · 장보혜 · 성엄 · 범소 · 유도부 · 녹여 · 장요 · 유도빈 · 동소 · 풍원흥
47권 「원번등전(袁翻等傳)」 48권 「이주영전(爾朱榮傳)」
원번 · 양니 · 가사백 · 조영 이주영
49권 「주서등전(朱瑞等傳)」
주서 · 질열연경 · 곡사춘 · 가현도 · 번자곡 · 후심(2) · 하발승 · 후막진열 · 염현 · 양람 · 뇌소 · 모하 · 을불랑
50권 「신웅등전(辛雄等傳)」
신웅 · 양기 · 고도목 · 기준 · 산위 · 우문충지 · 비목 · 맹위
51·52권 「제종실제왕전(齊宗室諸王傳)」
고침 · 고악 · 고성 · 고영락 · 고현국 · 고사종 · 고언귀 · 고령산 · 고준 · 고엄 · 고유 · 고환(高渙) · 고육 · 북제 · 고식 · 고제 · 고응 · 고윤
고흡 · 고효유 · 고효연 · 고효완 · 고장공 · 고연종 · 고소신 · 고소덕 · 고소의 · 고소인 · 고소렴 · 고백년 · 고량 · 고언리 · 고언덕
고언기 · 고언강 · 고언충 · 고작 · 고엄 · 고곽 · 고정 · 고인영 · 고인광 · 고인기 · 고인옹 · 고인검 · 고인아 · 고인직 · 고인겸 · 고각 · 고선덕
고매덕 · 고질전
53권 「묵기보등전(万俟普等傳)」
묵기보 · 가주혼원 · 유풍 · 파륙한상 · 금조 · 유귀 · 채준 · 한현 · 울장명 · 왕회 · 임상 · 막다루대문 · 사적회락 · 사적성 · 장보락
후막진상 · 설고연 · 곡률강거 · 장경 · 요웅 · 송현 · 왕칙 · 모용소종 · 질열평 · 보대한살 · 설유의 · 모용엄 · 반락 · 팽락 · 포현 · 피경화
기연맹 · 원경안 · 독고영업 · 선우세영 · 부복
54권 「손등등전(孫騰等傳)」
손등 · 고융지 · 사마자여 · 두태 · 울경 · 누소 · 사적간 · 한궤 · 단영 · 곡률금
55권 「손건등전(孫搴等傳)」
손건 · 진원강 · 두필 · 두태 · 울경 · 장찬 · 장량 · 장요 · 왕준 · 왕굉 · 경현준 · 평감 · 당옹 · 백건 · 원문요 · 조언심 · 혁련자열 · 풍자종 · 낭기
56권 「위수등전(魏收等傳)」
위수 · 위장현 · 위계경 · 위난근
57권 「주종실전(周宗室傳)」
우문호 · 우문련 · 우문낙생 · 우문중 · 우문측 · 우문신거
58권 「주실제왕전(周室諸王傳)」
우문진 · 우문직 · 우문초 · 우문검 · 우문순 · 우문성 · 우문달 · 우문통 · 우문형 · 우문강 · 우문현 · 우문정 · 우문실 · 우문찬 · 우문지
우문윤(允) · 우문충 · 우문태(兌) · 우문원 · 우문연(衍) · 우문술(術)
59권 「구락등전(寇洛等傳)」 60권 「이필등전(李弼等傳)」
구락 · 조귀 · 이현 · 양어 이필 · 우문귀 · 후막진숭 · 왕웅
61권 「왕맹등전(王盟等傳)」
왕맹 · 독고신 · 두치 · 하란상 · 질열복귀 · 염경 · 사녕 · 권경산
62권 「왕비등전(王羆等傳)」 63권 「주혜달등전(周惠達等傳)」 64권 「위효관등전(韋孝寬等傳)」
왕비 · 왕사정 · 울지형 · 왕궤 주혜달 · 풍경 · 소작 위효관 · 위진 · 류규
65권 「달해무등전(達奚武等傳)」
강자일 · 약간혜 · 이봉 · 유량 · 왕덕 · 혁련달 · 한과 · 채우 · 상선 · 신위 · 사적창 · 양춘 · 양대 · 전홍
66권 「왕걸등전(王傑等傳)」
왕걸 · 왕용 · 우문규 · 경호 · 고림 · 이화 · 이루목 · 달해식 · 유웅 · 후식 · 이연손 · 위우 · 진흔 · 위현 · 천기 · 이천철 · 양건운 · 부맹 · 양웅 · 석고 · 임과
67권 「최언목등전(崔彥穆等傳)」 68권 「두로녕등전(豆盧寧等傳)」
최언목 · 양찬 · 단영 · 배과 · 당영 · 류민 · 왕사량 두로녕 · 양소(楊紹) · 왕아 , 왕세적 한웅 · 하약돈
69권 「신휘등전(申徽等傳)」
신휘 · 육통 · 사적치 · 양천 · 왕경 · 조강 · 조창 · 왕열 · 조문표 · 양대 · 원정 · 양표
70권 「한포등전(韓襃等傳)」
한포 · 조숙 · 장궤 · 이언 · 곽언 · 양흔 · 황보번 · 신경지 · 왕자직 · 두고 · 여사례 · 서초 · 단저 · 맹신 · 종름 · 유번 · 류하
71권 「수종실제왕전(隋宗室諸王傳)」
양정 · 양찬 · 양상 · 양홍 · 양처강 · 양자숭 · 양용 · 양준 · 양수 · 양량 · 양소(楊昭) · 양간 · 양고
72권 「고경등전(高熲等傳)」
고경 · 우홍 · 이덕림
73권 「양사언등전(梁士彥等傳)」
양사언 · 원해 · 우경칙 · 원주 · 달해장유 · 하루자간 · 사만세 · 유방(劉方) · 두언 · 주요 · 독고개 · 걸복혜 · 장위 · 화홍 · 음수 · 양의신
74권 「유방등전(劉昉等傳)」
유방(劉昉) · 유구 · 황보적 · 곽연 · 장형 · 양왕 · 배온 · 원충 · 이웅
75권 「조경등전(趙煚等傳)」
조경 · 조분 · 왕소 · 원암 · 우문필 · 이누겸 · 이원통 · 곽영 · 방황 · 이안 · 양희상 · 장경 · 소효자 · 원수
76권 「단문진등전(段文振等傳)」
단문진 · 내호아 · 번자개 · 주나후 · 주법상 · 위현 · 유권 · 이경 · 설세웅
77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배정 · 이악 · 포굉 · 고구 · 영비 · 육지명 · 양비 · 유욱 · 조작 · 두정
78권 「장정화등전(張定和等傳)」
장정화 · 장윤 · 맥철장 · 권무 · 왕인공 · 토만서 · 동순 · 어구라 · 왕변 · 진릉 · 조재
79권 「우문술등전(宇文述等傳)」
우문술 · 왕세충 · 단달
80권 「외척전(外戚傳)」
하눌 · 요황미 · 두초 · 하미 · 여비 · 풍희 · 이혜 · 고조 · 호국진 · 황보집 · 양등 · 을불회 · 조맹 · 호장인 · 여씨
81·82권 「유림전(儒林傳)」
양월 · 노추 · 장위 · 양조 · 평항 · 진기 · 유헌지 · 장오귀 · 유란 · 손혜울 · 서준명 · 동징 · 마자결 · 이흥업 · 양원의 · 풍위 · 장매노 · 유궤사
포계상 · 형치 · 유주 · 마경덕 · 장경인 · 권회 · 장사백 · 장조무 · 곽준 · 심중 · 번심 · 웅안생 · 악손 · 기준 · 조문심 · 신언지 · 하타 · 소해 · 포개 · 방휘원 · 마광 · 유작 · 유현 · 저휘 · 고표 · 노세달 · 장충 · 왕효적
83권 「문원전(文苑傳)」
온자승 · 순제 · 조홍훈 · 이광 · 번손 · 순사손 · 왕포 · 유신 · 안지추 · 우세기 · 유변 · 허선심 · 이문박 · 명극양 · 유진 · 제갈영 · 왕정 · 우작
왕주 · 유자직 · 반휘 · 상덕지 · 윤식 · 유선경 · 조군언 · 공덕소 · 유빈
84권 「효행전(孝行傳)」
장손려 · 손익덕 · 동락생 · 양인 · 염원명 · 오실달 · 왕속생 · 이현달 · 장승 · 창발 · 왕숭 · 곽문공 · 형가 · 진족 · 영선 · 황보하 · 장원
왕반 · 양경 · 전익 · 유인 · 유사준 · 적보림 · 화추 · 서효숙
85권 「절의전(節義傳)」
우십문 · 단진 · 석문덕 · 급고 · 왕현위 · 누제 · 유갈후 · 주장생 · 마팔룡 · 문문애 · 조청 · 유후인 · 석조흥 · 소홍철 · 왕영세 · 호소호
손도등 · 이궤 · 장안조 · 왕려 · 곽염 · 지용초 · 을속고불보 · 이상 · 두숙비 · 이악 · 유원 · 장수타 · 양선회 · 노초 · 유자익 · 요군소
진효의 · 두송지 · 곽세준 · 낭방귀
86권 「순리전(循吏傳)」
장응 · 노옹 · 염경윤 · 명량 · 두찬 · 두원 · 소숙 · 장화업 · 맹업 · 소경 · 노거병 · 양언광 · 번숙략 · 공손경무 · 신공의 · 유검 · 곽현 · 경숙
유광 · 왕가 · 위덕심
87권 「혹리전(酷吏傳)」
우락후 · 호니 · 이홍지 · 장사제 · 조패 · 최섬 · 저진 · 전식 · 연영 · 원홍사 · 왕문동
88권 「은일전(隐逸傳)」
휴과 · 풍량 · 정수 · 최곽 · 서칙 · 장문후
89·90권 「예술전(藝術傳)」
조숭 · 장심(1) · 은소 · 왕조 · 경현 · 유영조 · 이순흥 · 단특사 · 안악두 · 왕춘 · 신도방 · 송경업 · 허준 · 유준세 · 조보화 · 황보옥 · 해법선 · 허준 · 위녕 · 기모회문 · 장자신 · 육법화 · 장승 · 강련 · 유계재 · 노태익 · 경순 · 내화 · 소길 · 양백추 · 임효공 · 유우 · 장주현 · 주담 · 이수 · 서건 · 왕현 · 마사명 · 요승원 · 저해 · 허지장 · 만보상 · 장소유 · 하조
91권 「열녀전(列女傳)」
난릉공주 · 남양공주 · 초국부인
92권 「은행전(恩倖傳)」
왕예 · 왕중흥 · 조수 · 여호 · 조옹(趙邕) · 후강 · 구락제 · 왕거 · 조묵 · 손소(孫小) · 장종지 · 극붕 · 장우 · 포억 · 왕우 · 부승조 · 왕질 · 이견 · 유등 · 가찬 · 양범 · 성궤 · 왕온 · 맹란 · 평계 · 봉진 · 유사일 · 곽수 · 화사개 · 안토근 · 목제파 · 고아나굉
93권 「참위부용전(僭偽附庸傳)」
혁련발발 · 모용외 · 요장 · 풍발 · 걸복국인 · 저거몽손 · 소찰
94권 「고려등전(高麗等傳)」
고려 · 백제 · 신라 · 물길 · 해족 · 거란 · 실위 · 두막루 · 지두우 · 오락후 · 류구 · 왜국
95권 「만등전(蠻等傳)」
만족(蠻) · 요족(獠) · 임읍 · 적토 · 진랍 · 파리
96권 「저등전(氐等傳)」
저족 · 토욕혼 · 탕창 · 등지국 · 당항 · 부국 · 계호국
97권 「서역전(西域傳)」
선선 · 포산국 · 실거반 · 권우마국 · 차사국 · 우전국 · 고창 · 차미 · 언기 · 구차 · 고묵국 · 온숙국 · 울두국 · 오손국 · 소륵국 · 열반국 · 토호라
소월씨 · 아구강국 · 속특국 · 파사국 · 복로니국 · 색지현 · 가색니국 · 고창 · 차미 · 여국
98권 「연연등전(蠕蠕等傳)」
연연 · 우문막괴 · 단질육권 · 고차
99권 「돌궐등전(突厥等傳)」
돌궐 · 철륵
100권 「자서전(自序傳)」
이연수
(1) 본명이 장연(張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2) 본명이 후연(侯淵)으로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하여 심(深)으로 개칭되었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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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당서(舊唐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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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고조기(高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6권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 7권 「 중종·예종기(中宗睿宗紀)」 8·9권 「현종기(玄宗紀)」
무조 이현(李顯) · 이단 이융기
10권 「숙종기(肅宗紀)」 11권 「대종기(代宗紀)」 12·13권 「덕종기(德宗紀)」
이형(李亨) 이예(李豫) 이괄
14·15권 「순종·헌종기(順宗憲宗紀)」 16권 「목종기(穆宗紀)」 17권 「경종·문종기(敬宗文宗紀)」
이송 · 이순(李純) 이항 이심(李湛) · 이앙
18권 「무종·선종기(武宗宣宗紀)」 1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2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염(李瀍) · 이침(李忱)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21권 ~ 50권은 志에 해당. 구당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a48252> 51·52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왕폐후 · 소양제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양귀비
원헌황후 · 장황후 · 장경황후 · 예진황후 · 정의황후 · 소덕황후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적선황후
53권 「이밀전(李密傳)」 54권 「왕세충등전(王世充等傳)」
이밀 , 선웅신, 왕세충 · 두건덕
55권 「설거등전(薛舉等傳)」
설거 , 설인고 이궤 · 유무주 , 원군장, · 고개도 · 유흑달 , 서원랑,
56권 「소선등전(蕭銑等傳)」
소선 · 두복위 · 보공석 , 감릉 왕웅탄, · 심법흥 · 이자통 , 주찬 임사홍 장선안, · 나예 · 양사도 , 유계진 이자화,
57권 「배적등전(裴寂等傳)」
배적 · 유문정 , 이맹상 진행사 유세룡 조문각 장평고 이사행 이고천 허세서 유사립 전구농 번흥 공손무달 방경운 장장경 이안원,
58권 「당검등전(唐儉等傳)」 59권 「굴돌통등전(屈突通等傳)」
당검 · 장손순덕 ·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 · 시소 · 무사확 굴돌통 · 임괴 · 구화 · 허소 · 이습지 · 강모
60권 「종실전(宗室傳)」
이효기 · 이신통 · 이신부 · 이숙량 · 이침(李琛) · 이효공 · 이원(李瑗) · 이도현 · 이도종 · 이박예
61권 「온대아등전(溫大雅等傳)」 62권 「이강등전(李綱等傳)」 63권 「봉륜등전(封倫等傳)」
온대아 · 진숙달 · 두위 이강(李綱) · 정선과 · 양공인 · 황보무일 · 이대량 봉륜 · 소우 , 소예 소균 소관 소업, · 배구 · 우문사급
64권 「고조22자전(高祖二十二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65권 「고사렴등전(高士廉等傳)」 66권 「방현령등전(房玄齡等傳)」 67권 「이정등전(李靖等傳)」
고사렴 · 장손무기 방현령 · 두여회 이정(李靖) · 이세적
68권 「울지경덕등전(尉遲敬德等傳)」 69권 「후군집등전(侯君集等傳)」 70권 「왕규등전(王珪等傳)」
울지경덕 · 진경 · 정지절 · 단지현 · 장공근 후군집 · 장량 · 설만철 왕규 · 대주 · 잠문본 · 두정륜
71권 「위징전(魏徵傳)」 72권 「우세남등전(虞世南等傳)」 73권 「설수등전(薛收等傳)」
위징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설수 · 요사렴 · 안사고 · 영호덕분 · 공영달
74권 「유계등전(劉洎等傳)」 75권 「소세장등전(蘇世長等傳)」
유계 · 마주 · 최인사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76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77권 「위정등전(韋挺等傳)」 78권 「우지녕등전(于志寧等傳)」
위정 · 양찬 · 유덕위 · 염입덕 , 염입본, · 유형 · 최의현 우지녕 · 고계보 · 장행성
79권 「조효손등전(祖孝孫等傳)」 80권 「저수량등전(褚遂良等傳)」
조효손 · 부인균 · 부혁 · 이순풍 · 여재 저수량 · 한원 · 내제 · 상관의
81권 「최돈례등전(崔敦禮等傳)」
최돈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이의염 , 손처약, , 악언위, , 조인본,
82권 「허경종등전(許敬宗等傳)」 83권 「곽효각등전(郭孝恪等傳)」
허경종 · 이의부 곽효각 · 장검 · 소정방 · 설인귀 · 정무정 , 정명진, , 장사귀, , 조도흥,
84권 「유인궤등전(劉仁軌等傳)」 85권 「당림등전(唐臨等傳)」
유인궤 · 학처준 · 배행검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86권 「고종·중종제자전(高宗中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李孝)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중무
87권 「배염등전(裴炎等傳)」 88권 「위사겸등전(韋思謙等傳)」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위사겸 · 육원방 · 소괴
89권 「적인걸등전(狄仁傑等傳)」 90권 「왕급선등전(王及善等傳)」
적인걸 · 왕방경 · 요숙 왕급선 · 두경검 · 주경칙 · 양재사 · 이회원 · 두로흠망
91권 「환언범등전(桓彥範等傳)」 92권 「위원충등전(魏元忠等傳)」
환언범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위원충 · 위안석 · 소지충 , 종초객 기처눌,
93권 「누사덕등전(婁師德等傳)」 94권 「소미도등전(蘇味道等傳)」
누사덕 · 왕효걸 · 당휴경 · 장인원 · 설눌 · 왕준 소미도 · 이교 · 최융 · 노장용 · 서언백
95권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96권 「요숭등전(姚崇等傳)」 97권 「유유구등전(劉幽求等傳)」
요숭 · 송경 유유구 · 종소경 · 곽원진 · 장열
98권 「위지고등전(魏知古等傳)」 99권 「최일용등전(崔日用等傳)」
위지고 · 노회신 · 원건요 · 이원굉 · 두섬 · 한휴 · 배요경 최일용 · 장가정 · 소숭 · 장구령 · 이적지 · 엄정지
100권 「윤사정등전(尹思貞等傳)」
윤사정 · 이걸 · 해완 · 필구 · 소향 · 정유충 · 왕지음 · 노종원 · 이조은 · 배최 · 왕구
101권 「이예등전(李乂等傳)」 102권 「마회소등전(馬懷素等傳)」
이예(李乂) · 설등 · 위주 · 한사복 · 장정규 · 왕구례 · 신체부 마회소 · 저무량 · 유자현 · 서견 · 원행충 · 오긍 · 위술
103권 「곽건관등전(郭虔瓘等傳)」 104권 「고선지등전(高仙芝等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우선객 · 왕충사 고선지 · 봉상청 · 가서한
105권 「우문융등전(宇文融等傳)」 106권 「이임보등전(李林甫等傳)」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이임보 · 양국충 · 장위 · 왕거 · 왕모중
107권 「현종제자전(玄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108권 「위견소등전(韋見素等傳)」 109권 「풍앙등전(馮盎等傳)」
위견소 · 최원 · 최환 · 두홍점 풍앙 · 아사나사이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다조 · 이사업 · 백효덕
110권 「이광필등전(李光弼等傳)」 111권 「최광원등전(崔光遠等傳)」
이광필 · 왕사례 · 등경산 · 신운경 최광원 · 방관 · 장호 · 고적 · 창최
112권 「이고등전(李暠等傳)」 113권 「묘진경등전(苗晉卿等傳)」
이고(李暠) · 이린(李麟) · 이국정 · 이환(李峘) · 이거(李巨)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114권 「노경등전(魯炅等傳)」 115권 「최기등전(崔器等傳)」
노경 · 배융 · 내진 · 주지광 최기 · 조국진 · 최관 · 경괄 · 위원보 · 위소유 · 위백옥 · 이승
116권 「숙종·대종제자전(肅宗代宗諸子傳)」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희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117권 「엄무등전(嚴武等傳)」 118권 「원재등전(元載等傳)」
엄무 · 곽영예 · 최녕 · 엄진 · 엄여 원재 , 왕앙, , 이소량, · 왕진 · 양염 · 여간 · 유준
119권 「양관등전(楊綰等傳)」 120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21권 「복고회은등전(僕固懷恩等傳)」
양관 · 최우보 · 상곤 곽자의 복고회은 · 양숭의 · 이회광
122권 「장헌성등전(張獻誠等傳)」
장헌성 · 노사공 · 곡환 · 진한형 · 양조성 · 번택 · 이숙명 · 배주
123권 「유안등전(劉晏等傳)」 124권 「설숭등전(薛嵩等傳)」 125권 「장일등전(張鎰等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 설숭 · 영호창 · 전신공 · 후희일 · 이정기 장일 · 유종일 · 소복 · 유혼
126권 「이계등전(李揆等傳)」 127권 「요령언등전(姚令言等傳)」
이계(李揆) · 이함(李涵) · 진소유 · 노악 · 배서 요령언 · 장광성 · 원휴 · 교림 · 장섭 · 장진 · 홍경륜 · 팽언
12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29권 「한황등전(韓滉等傳)」 130권 「왕여등전(王璵等傳)」
단수실 · 안진경 한황 · 장연상 왕여 · 이필 · 최조 · 관파
131권 「이면등전(李勉等傳)」 132권 「이포옥등전(李抱玉等傳)」
이면 · 이고(李皋) 이포옥 · 이포진 · 왕건휴 · 노종사 · 이봉(李芃) · 이징(李澄)
133권 「이성등전(李晟等傳)」 134권 「마수등전(馬燧等傳)」
이성 마수 · 혼감
135권 「노기등전(盧杞等傳)」
노기 · 백지정 · 배연령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위집의 · 왕숙문 · 정이 · 황보변
136권 「두참등전(竇參等傳)」
두참 · 제영 · 유자 · 노매 · 최손 · 제항
137권 「서호등전(徐浩等傳)」
서호 · 조연 · 유태진 · 이서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여위 · 정운규 · 이익 · 이하(李賀)
13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39권 「육지전(陸贄傳)」 140권 「위고등전(韋臯等傳)」
조경 · 위륜 · 가탐 · 강공보 육지 위고 · 장건봉 · 노군
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전승사 · 전홍정 · 장효충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이회선 · 주도 · 유평 · 정일화 · 이전약
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상가고 · 이관(李觀)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한유괴 · 가은림 · 두희전 · 울지승 · 형군아 · 양조성 · 장경칙
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유현좌 · 동진 · 육장원 · 유전량 · 이충신 · 이희열 · 오소성
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설파 · 포방 · 이자량 · 이설 · 엄수 · 소흔 · 두아 · 왕위 · 이약초 · 우흔 · 노징 · 양풍 · 정원 · 두겸 · 양조성 · 설비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두황상 · 고영 · 두우 배기 · 이보길 · 이번 · 권덕여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우휴열 · 영호환 · 귀숭경 · 유후인 · 해척 · 장천 · 장예 · 유등 · 심전사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고숭문 · 이신(伊慎)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염거원 · 맹원양 · 조창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마린 · 학정옥 · 왕서요 · 유창 · 이경략 · 장만복 · 고고 · 학자 · 단좌 · 사경봉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요남중 · 유내 · 원고 · 단평중 · 설존성 · 노탄 공소부 · 허맹용 · 여원응 · 유서초 · 장숙 · 웅망 · 백기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목녕 · 최빈 · 두군 · 이손 · 설융 우적 · 한홍 · 왕지흥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왕굉 · 치사미 · 이용(李鄘) · 신비 · 마총 · 위홍경 · 왕언위 무원형 · 정여경 · 위관지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위차공 · 정인 · 위처후 · 최군 · 노수 한유 , 장적 맹교 당구, · 이고(李翱) · 우문적 · 유우석 · 유종원 · 한사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이공(李珙) · 이우(李祐) · 동중질 · 양원경 · 유오 · 유면 · 석웅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반맹양 · 이소(李翛) · 왕수 · 조화 · 위수 · 정권 · 주지 · 한전의 · 고하우 · 고우 · 최융 · 육선 · 장정보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맹간 · 호증 · 최원략 · 두원영 · 최홍례 · 이우중 · 왕질 · 노간사 왕파 · 이강(李絳) · 양어릉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위하경 · 왕정아 · 유공작 · 최현량 · 온조 · 곽승하 · 은유 · 서회 원진 · 백거이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조종유 · 두역직 · 이봉길 · 단문창 · 송신석 · 이정(李程) 위온 · 독고울 · 전휘 · 고익 · 풍숙 · 봉오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왕번 · 가속 · 서원여 · 곽행여 · 나립언 · 이효본 배도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이발 · 장중방 · 배린 · 이중민 · 이감 · 고원유 · 이한 · 이경검 영호초 · 우승유 · 소면 · 이석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정담 · 진행이 · 이신(李紳) · 오여납 · 이각(李珏) · 이고언 이덕유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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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권 「이종민등전(李宗閔等傳)」
이종민 · 유위 · 양우경 · 마식 · 이양이 · 위모 · 주지 · 최귀종 · 정숙 · 노상
177권 「최신유등전(崔慎由等傳)」
최신유 · 최공 · 노균 · 배휴 · 양수 · 위보형 · 노암 · 하후자 · 유첨 · 유전 · 조확 · 필함 · 두심권 · 유업 · 두로전
178권 「조은등전(趙隱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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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권 「소구등전(蕭遘等傳)」
소구 · 공위 · 위소도 · 최소위 · 장준 · 주박 · 정계 · 유숭망 · 서언약 · 육의 · 유찬
180권 「주극융등전(朱克融等傳)」
주극융 · 이재의 · 양지성 · 장중무 · 장윤신 · 장공소 · 이가거 · 이전충
181권 「사헌성등전(史憲誠等傳)」 182권 「왕중영등전(王重榮等傳)」
사헌성 · 하진도 · 한윤충 · 악언정 · 나홍신 왕중영 · 왕처존 · 제갈상 · 고병 · 시부 · 주선
183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두덕명 · 장손창 · 무승사 · 위온 · 왕인교 · 오서 · 유성 · 두유 · 왕자안
184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이보국 · 정원진 · 어조은 · 두문장 · 구문진 · 토돌승최 · 왕수징 · 전령자 · 양복광 · 양복공
185권 「양리전(良吏傳)」
위인수 · 장윤제 · 이동객 · 이소립 · 설대정 · 가돈이 · 이군구 · 최지온 · 고지주 · 전인회 · 위기 · 권회은 · 풍원상 · 장엄 · 왕방익 · 설계창 · 배회고 · 장지건 · 양원염 · 예약수 · 이준(李浚) · 양교 · 송경례 · 강사도 · 강순 · 반호례 · 양무겸 · 양인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여인 · 소정 · 장연 · 이혜등 · 임적간 · 범전정 · 원자 · 설빈 · 염제미
186권 「혹리전(酷吏傳)」
내준신 · 주흥 · 부유예 · 구신적 · 삭원례 · 후사지 · 만국준 · 내자순 · 왕홍의 · 곽패 · 길욱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길온 · 나희석 · 모약허 · 경우
187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나사신 · 여자장 · 이공일 · 장선상 · 이현통 · 경군홍 · 풍립 · 사숙방 · 왕의방 · 성삼랑 · 윤원정 · 고예 · 왕동교 · 소안항 · 유문준 · 연흠융 · 안금장 · 이징(李憕) · 장개연 · 최무피 · 노혁 · 장청 · 안고경 · 설원 · 장순 · 허원 · 정천리 · 원광정 · 소진 · 부린 · 조엽 · 석연분 · 장비 · 견제 · 유돈유 · 고목 · 가직언 · 유경휴 · 신당
188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군조 · 조홍지 · 진집원 · 원양 · 배경이 · 배수진 · 이일지 · 최면 · 육남금 · 장수 · 양문정 · 최연 · 정공저 · 나양
189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가공언 · 장후윤 · 곡나율 · 소덕언 · 허숙아 · 경파 · 유백장 · 진경통 · 나도종 · 형문위
고자공 · 낭여령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위숙하 · 축흠명 · 곽산운 · 유충 · 노찬 · 윤지장 · 서대 · 소변 · 육질 · 풍항 · 위표미 · 허강좌
190권 「문원전(文苑傳)」
공소안 · 원랑 · 하덕인 · 유포 · 채윤공 · 정세익 · 사언 · 최신명 · 장온고 · 유윤지 · 장창령 · 최행공 · 서제담 · 두역간 · 노조린 · 양형 · 왕발 · 낙빈왕 · 등현정 · 곽정일 · 원만경 · 교지지 · 유윤제 · 부가모 · 원반천 · 유헌 · 심전기 · 진자앙 · 송지문 · 염조은 · 가증 · 허경선 · 하지장 · 석예 · 제완 · 왕완 · 이옹(李邕) · 손적 · 이화 · 소영사 · 육거 · 유포 · 최호 · 왕창령 · 맹호연 · 원덕수 · 왕유 · 이백 · 두보 · 오통현 · 왕중서 · 최함 · 당차 · 유분 · 이상은(李商隱) · 온정균 · 설봉 · 이증 · 이거천 · 사공도
191권 「방기전(方伎傳)」
최선위 · 설이 · 견권 · 송협 · 허윤송 · 을불홍례 · 원천강 · 손사막 · 명숭엄 · 장경장 · 이사진 · 장문중 · 상헌보 · 맹선 · 엄선사 · 금양봉 · 장과 · 엽법선 · 현장 · 신수 · 일행 · 상도무
192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전유암 · 사덕의 · 왕우정 · 노홍일 · 왕희이 · 위대경 · 이원개 · 왕수신 · 서인기 · 손처현 · 백이충 · 왕원지 · 반사정 · 유도합 · 사마승정 · 오균 · 공술예
193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경상자 · 위무기 · 두백랑 · 두중랑 · 이현진 · 왕화자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회흘 토번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임읍국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남조만 · 표국
198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고창 · 토욕혼 · 언기국 · 소륵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발율국 · 강국 · 파사국 · 불름국 · 대식국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 실위 · 말갈 · 발해 ·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안녹산 , 안경서 고상 손효철, · 사사명 , 사조의, · 주차 · 황소 · 진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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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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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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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고조기(高祖紀)」 2권 「태종기(太宗紀)」 3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4권 「측천황후·중종기(則天皇后中宗紀)」 5권 예종·현종기(睿宗玄宗紀)」 6권 「숙종·대종기(肅宗代宗紀)」
이현(李顯) · 무조 이단 · 이융기 이형(李亨) · 이예(李豫)
7권 「덕종·순종·헌종기(德宗順宗憲宗紀)」 8권 「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기(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紀)」
이괄 · 이송 · 이순(李純) 이항 · 이심(李湛) · 이앙 · 이염(李瀍) · 이침(李忱)
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1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11권 ~ 60권은 志에 해당. 61권 ~ 75권은 表에 해당. 신당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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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bgcolor=#a48252><tablewidth=100%> 76·77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무조 · 왕폐후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원헌황후 · 양귀비
장황후 · 장경황후 · 정의황후 · 예진황후 · 소덕황후 · 위씨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선의황후 · 곽귀비 · 왕현비 · 원소황후 · 혜안황후 · 곽숙비 · 공헌황후 · 적선황후
78권 「종실전(宗室傳)」
이도종 · 이도흥 · 이효기 · 이도현 · 이숙량 · 이효협 · 이사훈 · 이진(李晉) · 이유량 · 이침 · 이효공 · 이괴 · 이원 · 이신통 · 이도언 · 이효일 · 이신부 · 이박의 · 이봉자
79권 「고조제자전(高祖諸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80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81권 「삼종제자전(三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82권 「14종제자전(十四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이근(李沂) · 이택 · 이윤 · 이흡 · 이예(李汭) · 이문 · 이옹(李澭) · 이일(李佾) · 이건 · 이길 · 이간(李侃) · 이보(李保) · 이의(李倚) · 이진(李震) · 이승 · 이유(李裕) · 이우(李祤) · 이계(李禊) · 이인(李禋) · 이의(李祎) · 이비 · 이기(李祺) · 이진(李禛) · 이상(李祥) · 이정(李禎) · 이기(李祁) · 이복 · 이희(李禧) · 이고(李祜) · 이제 · 이희(李祐)
83권 「제제공주전(諸帝公主傳)」
동안공주 · 장사공주 · 양양공주 · 평양소공주 · 고밀공주 · 장광공주 · 장사공주 · 방릉공주 · 구강공주 · 노릉공주 · 남창공주 · 안평공주 · 회남공주 · 진정공주 · 형양공주 · 단양공주 · 임해공주 · 관도공주 · 안정공주 · 상락공주 · 양성공주 · 여남공주 · 남평공주 · 수안공주 · 장락공주 · 예장공주 · 북경공주 · 보안공주 · 동양공주 · 임천공주 · 청하공주 · 난릉공주 · 진안공주 · 안강공주 · 신흥공주 · 성양공주 · 합포공주 · 금산공주 · 진양공주 · 상산공주 · 신성공주 · 의양공주 · 고안공주 · 태평공주 · 신도공주 · 의성공주 · 정안공주 · 장녕공주 · 영태공주 · 안락공주 · 성안공주 · 수창공주 · 안흥소회공주 · 형산공주 · 회양공주 · 대국공주 · 양국공주 · 설국공주 · 식국공주 · 금선공주 · 옥진공주 · 곽국공주 · 영흥공주 · 천장공주 · 영국공주 · 흥당공주 · 서평공주 · 낭령공주 · 광화공주 · 창락공주 · 수춘공주 · 장녕공주 · 연경공주 · 정락공주 · 낙온공주 · 영청공주 · 위국문의공주 · 안화공주 · 보강공주 · 창원공주 · 창녕공주 · 금화공주 · 인수공주 · 영수공주 · 당흥공주 · 영평공주
84권 「이밀전(李密傳)」 85권 「왕두전(王竇傳)」
이밀 , 선웅신 조효징, 왕세충 · 두건덕
86권 「설이이유고서전(薛李二劉高徐傳)」 87권 「소보심이양전(蕭輔沈李梁傳)」
설거 , 설인고 이궤 · 유무주 · 고개도 · 유흑달 · 서원랑 소선 · 보공석 · 심법흥 · 이자통 , 주찬 임사홍 장선안, 양사도(梁師都) , 유계진,
88권 「유배전(劉裴傳)」 89권 「굴돌울지장진당단전(屈突尉遲張秦唐段傳)」
유문정 · 배적 굴돌통 · 울지공 · 장공근 · 진경 · 당검 · 단지현
90권 「이유은허정시임구전(二劉殷許程柴任丘傳)」 91권 「온황보이이강최전(溫皇甫二李姜崔傳)」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회 · 허소 · 정지절 · 시소 · 임괴 · 구화 온대아 · 황보무일 · 이습지 · 강모 · 최선위 · 이사진
92권 「두감왕이원나왕전(杜闞王李苑羅王傳)」 93권 「이이전(二李傳)」
두복위 · 감릉 · 왕웅탄 · 장사귀 · 이자화 · 원군장 · 나예 · 왕군곽 이정(李靖) · 이적
94권 「후장설전(侯張薛傳)」 95권 「고두전(高竇傳)」 96권 「방두전(房杜傳)」
후군집 · 장량 · 설만균 고검 · 두위 방현령 · 두여회
97권 「위징전(魏徵傳)」 98권 「왕설마위전(王薛馬韋傳)」 99권 「이이대유최전(二李戴劉崔傳)」
위징 왕규 · 설수 · 마주 · 위정 이강(李綱) · 이대량 · 대주 · 유계 · 최인사
100권 「진양봉배우문정권염장강장전(陳楊封裴宇文鄭權閻蔣姜張傳)」
진숙달 · 양공인 , 양사도(楊師道), · 봉륜 · 배구 · 우문사급 · 정선과 · 권만기 · 염입덕 · 장엄 · 위홍기 · 강사도 · 장지건
101권 「소우전(蕭瑀傳)」 102권 「잠우이저요영호전(岑虞李褚姚令狐傳)」
소우 잠문본 ·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 요사렴 · 영호덕분
103권 「소위손장전(蘇韋孫張傳)」 104권 「우고장전(于高張傳)」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우지녕 · 고풍 · 장행성
105권 「장손저한내이상관전(長孫褚韓來李上官傳)」
장손무기 · 저수량 · 한원 · 내제 · 이의염 · 상관의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두정륜 · 최지온 · 고지주 · 곽정일 · 조홍지 · 최돈례 · 양홍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유덕위 · 손처약 · 형문위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누전(劉裴婁傳)」
부혁 · 여재 · 진자앙 유인궤 · 배행검 · 누사덕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최의현 · 양재사 · 두회정 · 종초객 · 축흠명 , 곽산운, · 왕여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사대내 · 풍앙 · 아사나사이 · 아사나충 · 집실사력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근행 · 천남생 · 이다조 · 논궁인 · 손유정 · 울지승 · 상가고 · 배분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곽효각 · 장검 · 왕방익 · 소열 · 설인귀 · 정무정 , 정명진 왕효걸 · 당선 · 장인원 · 왕준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113권 「당장서전(唐張徐傳)」
왕의방 · 한사언 · 소안항 · 설등 · 왕구례 · 류택 · 풍원상 · 장흠서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114권 「최서소두로전(崔徐蘇豆盧傳)」 115권 「적학주전(狄郝朱傳)」
최융 · 서언백 · 소미도 · 두로흠망 적인걸 · 학처준 · 주경칙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왕침 · 위사겸 · 육원방 · 왕급선 · 이일지 · 두경전 · 이회원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 길욱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장정규 · 위주 · 한사복 · 송무광 · 신체부 · 이발 · 배린 · 이중민 · 이감 무평일 · 이예(李乂) · 가증 · 백거이
120권 「오왕전(五王傳)」
환언범 , 이복업 습수 설계창, · 양원염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121권 「유종최이왕전(劉鐘崔二王傳)」 122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유유구 · 종소경 · 최일용 · 왕거 · 왕모중 위원충 · 위안석 · 곽진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이교 · 소지충 · 노장용 · 위거원 · 조언소 · 화봉요 요숭 · 송경
125권 「소장전(蘇張傳)」 126권 「위로이두장한전(魏盧李杜張韓傳)」
소괴 · 장열 위지고 · 노회신 · 이원굉 · 두섬 · 장구령 · 한휴
127권 「장원배전(張源裴傳)」
장가정 · 원건요 · 배요경
128권 「소윤필이정왕허반예석제전(蘇尹畢李鄭王許潘倪席齊傳)」
소향 · 윤사정 · 필구 · 이걸 · 정유충 · 왕지음 · 허경선 · 반호례 · 예약수 · 석예 · 제한
129권 「배최노이왕엄전(裴崔盧李王嚴傳)」 130권 「배양송양최이해전(裴陽宋楊崔李解傳)」
배수진 · 최면 · 노종원 · 이조은 · 왕구 · 엄정지 배최 · 양교 · 송경례 · 양창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해완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유침전(劉吳韋蔣柳沈傳)」
이적지 · 이현(李峴) · 이면 · 이이간 · 이정(李程) · 이석 · 이회 유자현 · 오긍 · 위술 · 장예 · 유방 · 심기제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왕충사 · 우선객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가서한 · 고선지 · 봉상청 이광필 곽자의
138권 「이이마노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여전(崔苗李裴呂傳)」
이사업 · 마린 · 이포옥 · 노사공 방관 · 장호 · 이필 최원 ·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 여인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최광원 · 등경산 · 최관 · 위소유 · 위백옥 · 이징(李澄) · 한전의 · 노종사 · 고하우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이린(李麟) · 양관 · 최우보 · 유혼 · 위처후 · 노수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고적 · 원결 · 이승 · 위륜 · 설각 · 최한형 · 대숙륜 · 왕굉 · 서신 · 치사미 · 신비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내진 · 전신공 · 후희일 · 최녕 · 엄여 원재 · 왕진 · 여간 · 양염 · 엄정 · 두참 이서균 · 이용(李鄘)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왕사례 · 노경 · 왕난득 · 신운경 · 풍하청 · 이봉(李芃) · 이숙명 · 곡환 · 왕건휴 · 노군 · 이원소 · 노사매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영호창 · 장효충 · 강일지 · 이유(李洧) · 유옹 · 전홍정 · 왕승원 · 우원익 · 사효장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李巽) 이계 · 상곤 · 조경 · 최조 · 제앙 · 노매 관파 · 동진 · 원자 · 조종유 · 두역직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장일 · 강공보 · 무원형 · 이강(李絳) · 송신석 단수실 · 안진경 이성, 이소(李愬),
155권 「마혼전(馬渾傳)」
마수 · 혼감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양조성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이관(李觀) · 한유괴 · 두희전 · 형군아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육지 위고 · 장건봉 · 엄진 · 한홍
159권 「포이소설왕오정육노유최전(鮑李蕭薛樊王吳鄭陸盧柳崔傳)」
포방 · 이자량 · 소흔 · 설파 · 번택 · 왕위 · 오주 · 정권 · 육긍 · 노탄 · 유성 · 최융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조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서호 · 여위 · 맹간 · 유백추 · 양풍 · 반맹양 · 최원략 · 위수 장천 · 조연 · 이서 · 정운규 · 서대 · 왕중서 · 풍항 · 유경휴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요남중 · 독고급 · 고소련 · 위하경 · 단평중 · 여원응 · 허맹용 · 설존성 · 이손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공소부 · 목녕 · 최빈 · 유공작 · 양우릉 · 마총
164권 「귀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귀숭경 · 해척 · 최연 · 노경량 · 설빈 · 위차공 · 설융 · 호증 · 정공저 · 최홍례 · 최현량 · 왕질 · 은유 · 왕언위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정여경 · 정순유 · 고영 · 정인 · 권덕여 · 최군 가탐 · 두우 · 영호초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백지정 · 배연령 · 최손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황보박 · 왕파
168권 「위왕육유유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위집의 · 왕숙문 · 육질 · 유우석 · 유종원 · 정이 두황상 · 배기 · 이번 · 위관지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고숭문 · 이신(伊愼)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맹원양 · 왕서요 · 유창 · 조창 · 이경략 · 임적간 · 장만복 · 고고 · 학비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양원경 · 조화 · 고우 · 유면 · 석웅 우적 · 왕지흥 · 두겸 · 두아 · 범정전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배도 이봉길 · 원진 · 우승유 · 이종민 · 양사복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두군 · 유서초 · 장우신 · 양우경 · 장숙 · 웅망 · 백기 한유
177권 「전최이위이고풍삼이노봉정경전(錢崔二韋二高馮三李盧封鄭敬傳)」
전휘 · 최함 · 위표미 · 고익 · 풍숙 · 이우중 · 이고(李翺) · 노간사 · 고원유 · 봉오 · 정훈 · 경회 · 위박 · 이경양
178권 「유분전(劉賁傳)」
유분
179권 「이정이왕가서전(李鄭二王賈舒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가속 · 서원여 · 왕파 · 곽행여 · 한약 · 나립언 · 이효본 · 고사옹 · 이정소
180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81권 「진삼이조유전(陳三李曹劉傳)」
이덕유 진이행 · 이신(李紳) · 이양이 · 조확 · 유첨 · 이울
182권 「이이최소이정이노위주이배유조왕전(二李崔蕭二鄭二盧韋周二裴劉趙王傳)」
이고언 · 이각 · 최공 · 소업 · 정숙 · 노균 · 노간방 · 위종 · 주지 · 배휴 · 유전 · 조은 · 배탄 · 정연창 · 왕부 · 노광계
183권 「필최유육정주한전(畢崔劉陸鄭朱韓傳)」
필함 · 최언소 · 유업 · 육의 · 정계 · 주박 · 한악
184권 「마양노노전(馬楊路盧傳)」 185권 「정이왕위장전(鄭二王韋張傳)」
마식 · 앵수 · 노암 · 노휴 정전 · 왕탁 · 왕휘 · 위소도 · 장준
186권 「주왕등진유조이양고전(周王鄧陳劉趙二楊顧傳)」
주보 · 왕처존 · 등처눌 · 진유 · 유거용 · 조덕인 · 양수량 · 양성 · 고언랑
187권 「이왕제갈이맹전(二王諸葛李孟傳)」 188권 「양시주손전(楊時朱孫傳)」
왕중영 · 제갈상 · 이한지 · 왕경무 · 맹방립 양행밀 · 시부 · 주선 · 손유
189권 「고조전주전(高趙田朱傳)」 190권 「삼유성두종장왕전(三劉成杜鐘莊王傳)」
고인후 · 조주 · 전군 · 주연수 유건봉 · 성예 · 두홍 · 종전 · 유한굉 · 장웅 · 왕조 · 유지겸
191·192·193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경군홍 · 여자장 · 왕행민 · 나사신 · 장도원 · 이육덕 · 고예 · 안금장 · 왕동교 · 오보안 · 이징(李憕) · 노혁 · 장개연 · 최무피 · 안고경 · 가순 · 장순 · 허원 · 남제운 · 뇌만춘 · 요은 · 정천리 · 방견 · 장흥 · 채정옥 · 부령기 · 유내 · 맹화 · 장비 · 주증 · 장명진 · 석연분 · 오서 · 고목 · 가직언 · 신당 · 황갈
194권 「탁행전(卓行傳)」
원덕수 · 권고 · 견제 · 양성 · 사공도
195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소현 · 임경신 · 지숙재 · 정원사 · 무홍도 · 정잠요 · 원양 · 배경이 · 양문정 · 심계전 · 허백회 · 진집원 · 장수 · 서원경 · 여상안 · 양열 · 목종세 · 후지도 · 정구라 · 하징수
196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긍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197권 「순리전(循吏傳)」
위인수 · 진군빈 · 장윤제 · 이소립 · 손지원 · 설대정 · 가돈이 · 전인회 · 배회고 · 위경준 · 이혜등 · 나상 · 위단 · 노홍선 · 설원상 · 하역우
198·199·200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안사고 · 공영달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장후윤 · 개문달 · 곡나율 · 경파 · 나도종 · 낭여령 · 서제탐 · 심백의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팽경직 · 노찬 · 윤지장 · 유충 · 마회소 · 공약사, 공소안, · 저무량 · 원행충 · 진정절 · 시경본 · 노이빙 · 왕중구 · 조동희 · 담조 · 위융 · 진경(陳京) · 창당 · 임온 · 위공숙 · 허강좌
201·202·203권 「문원전(文苑傳)」
원랑 · 하덕인 · 채윤공 · 사언 · 최신명 · 유연우 · 장창령 · 최행공 · 두심언 · 왕발 · 원만경 · 이적(李適) · 위원단 · 유윤제 · 심전기 · 송지문 · 염조은 · 윤원개 · 유헌 · 이옹(李邕) · 여향 · 왕한 · 손적 · 이백 · 왕유 · 정건 · 소영사 · 소원명 · 이화 · 맹호연 · 유태진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이익 · 노륜 · 구양첨 · 이하(李賀) · 오무릉 · 이상은(李商隱) · 설봉 · 이빈(李頻) · 오융
204권 「방기전(方伎傳)」
이순풍 · 견권 · 원천강 · 설이 · 명숭엄 · 상헌보 · 엄선사 · 두생 · 장과 · 강무 · 상도무
205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왕난영 · 경상자 · 위무기 · 하후쇄금 · 왕아족 · 왕옥영 · 요아 · 두백랑 · 두중랑 · 이묘법 · 왕화자 · 사소아 · 봉순
206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무사확 · 위온 · 주인궤 · 왕인교 · 양국충 · 이소(李翛) · 정광
207·208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정원진 · 어조은 · 유정양 · 토돌승최 · 마존량 · 구사량 · 양복광 · 이보국 · 왕수징 · 유극명 · 전령자 · 양복공 · 유계술
209권 「혹리전(酷吏傳)」
삭원례 · 내준신 · 후사지 · 왕홍의 · 곽홍패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최기 · 모약허 · 경우
210권 「번진위박전(藩鎭魏博傳)」 211권 「번진진기전(藩鎭鎭冀傳)」
전승사 · 사헌성 · 하진도 · 악언정 · 나홍신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212권 「번진노룡전(藩鎭盧龍傳)」
이회선 · 주도 · 유평 · 주극융 · 이재의 · 장중무 · 장윤신 · 이무훈 · 이전충 · 유인공
213권 「번진치청횡해전(藩鎭淄青橫海傳)」 214권 「번진선무창의택로전(藩鎭宣武彰義澤潞傳)」
이정기 · 정일화 · 이전략 유현좌 · 오소성 · 이우 · 이비
215권 「돌궐전(突厥傳)」 21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토번
217권 회흘전(回紇傳)」 218권 사타전(沙陀傳)」
회흘 사타
219권 북적전(北狄傳)」 220권 동이전(東夷傳)」
거란 · 해족 · 실위 · 발해 · 말갈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유귀국
221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동여국 · 고창 · 토욕혼 · 언기 · 구자 · 소륵 · 갈반타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강국 · 안국 · 동안 · 동조 · 서조 · 중조 · 자지국 · 미말 · 굴상니가 · 화심 · 갈상나 · 나색파 · 달밀 · 영원국 · 대발률 · 토화라 · 읍달국 · 구란국 · 월저연국 · 범연국 · 석한나 · 식익 · 사몰 · 구밀 · 호밀 · 개실밀 · 골돌 · 소비 · 다미 · 이오성 · 사자국 · 파사국 · 구위 · 불름국 · 대식국 · 달만
222권 「남만전(南蠻傳)」
남조 · 임읍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표국
223권 「간신전(奸臣傳)」
허경종 · 이의부 · 부유예 · 이임보 · 진희열 · 노기 · 최윤 · 최소위 · 유찬 , 장현휘 장정범 씨숙종 주우공,
224권 「반신전(叛臣傳)」
복고회은 · 주지광 · 양숭의 · 이회광 · 진소유 · 이기(李錡) · 이충신 · 교림 · 고병 · 주매 · 왕행유 · 진경선 · 이거천
225권 「역신전(逆臣傳)」
안녹산 · 고상 · 손효철 · 이희열 · 사사명 · 주차 · 황소 · 진종권 ·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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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양서(梁書) ]
{{{#181818,#e5e5e5
1·2·3·4·5·6·7권 「태조기(太祖紀)」 8·9·10권 「말제기(末帝紀)」
주황 주우정
11권 「후비전(后妃傳)」
문혜황태후 · 원정황후 · 장덕비
12권 「종실전(宗室傳)」
주전욱 · 주우량 · 주우능 · 주우회 · 주우녕 · 주우륜 · 주우유 · 주우문 · 주우규 · 주우장 · 주우자
13권 「주선등전(朱瑄等傳)」 14권 「나소위등전(羅紹威等傳)」
주선 · 주근 · 시부 · 왕사범 · 유지준 · 양숭본 · 장은 · 장만진 나소위 · 조주 · 왕가
15권 「한건등전(韓建等傳)」 16권 「갈종주등전(葛從周等傳)」
한건 · 이한지 · 풍행습 · 손덕소 · 조극유 · 장신사 갈종주 · 사언장 · 호진 · 장귀패 · 장귀후 · 장귀변
17권 「성예등전(成汭等傳)」 18권 「장문울등전(張文蔚等傳)」
성예 · 두홍 · 전군 · 조광응 · 장길 · 뇌만 장문울 · 설이구 · 장책 · 두효 · 경상 · 이진
19권 「씨숙종등전(氏叔琮等傳)」
씨숙종 · 주우공 · 왕중사 · 주진 · 이사안 · 등계균 · 황문정 · 호규 · 이당 · 이중윤 · 범거보
20권 「사동등전(謝瞳等傳)」
사동 · 사마업 · 유한 · 왕경요 · 고소 · 마사훈 · 장존경 · 구언경
21권 「방사고등전(龐師古等傳)」
방사고 · 곽존 · 부도소 · 서회옥 · 곽언 · 이당빈 · 왕건유 · 유강예 · 왕언장 · 하덕륜
22권 「양사후등전(楊師厚等傳)」 23권 「유심등전(劉鄩等傳)」
양사후 · 우존절 · 왕단 유심 · 하괴 · 강회영 · 왕경인
24권 「이정등전(李珽等傳)」
이정 · 노증 · 손즐 · 장준 · 장연 · 두순학 · 나은 · 구은 · 은심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당서(唐書) ]
{{{#181818,#e5e5e5
1·2권 「무제기(武帝紀)」 3·4·5·6·7·8·9·10권 「장종기(莊宗紀)」 11·12·13·14·15·16·17·18·19·20권 「명종기(明宗紀)」
이극용 이존욱 이사원
21권 「민제기(閔帝紀)」 22·23·24권 「말제기(末帝紀)」
이종후 이종가
25권 「후비전(后妃傳)」
정간황후 · 유태비 · 위국부인 · 신민경황후 · 한숙비 · 이덕비 · 소의황후 · 화무현황후 · 선헌황후 · 공황후 · 유황후
26·27권 「종실전(宗室傳)」
이극양 · 이극수 · 이극공 · 이극녕 · 이존패 · 이존미 · 이존악 · 이존예 · 이존확 · 이계급 · 이계동 · 이계숭 · 이계섬 · 이종경 · 이종영 · 이종찬 · 이종익 · 이중길 · 이이미
28권 「이사소등전(李嗣昭等傳)」 29권 「이존신등전(李存信等傳)」 30권 「왕용등전(王鎔等傳)」
이사소 · 배약 · 이사본 · 이사은 이존신 · 이존효 · 이존진 · 이존장 · 이존현 왕용 · 왕소회 · 왕처직
31권 「강군립등전(康君立等傳)」
강군립 · 설지근 · 사건당 · 이승사 · 사엄 · 개우 · 이광 · 이승훈 · 사경용
32권 「주덕위등전(周德威等傳)」 33권 「곽숭도전(郭崇韜傳)」 34권 「조광봉등전(趙光逢等傳)」
주덕위 · 부존심 곽숭도 조광봉 · 정각 · 최협 · 이기 · 소경
35권 「정회등전(丁會等傳)」 36권 「이습길등전(李襲吉等傳)」
정회 · 염보 · 부습 · 오진 · 왕찬 · 원상선 · 장온 · 이소문 이습길 · 왕겸 · 이경의 · 노여필 · 이덕휴 · 소순
37권 「안금전등전(安金全等傳)」
안금전 · 안원신 · 안중패 · 유훈 · 장경순 · 유언종 · 원건풍 · 서방업 · 장준회 · 손장
38권 「맹방립등전(孟方立等傳)」 39권 「장전의등전(張全義等傳)」
맹방립 · 장문례 · 동장 장전의 · 주우겸
40권 「곽언위등전(霍彦威等傳)」 41권 「이건급등전(李建及等傳)」
곽언위 · 왕안구 · 대사원 · 주한빈 · 공경 · 유기 · 주지유 이건급 · 석군립 · 고행규 · 장정유 · 왕사동 · 삭자통
42권 「안중회등전(安重誨等傳)」 43권 「두로혁등전(豆盧革等傳)」
안중회 · 주홍소 · 주홍실 · 강의성 · 약언조 · 송영순 두로혁 · 위설 · 노정 · 조봉 · 이우 · 임환
44권 「설정규등전(薛廷珪等傳)」
설정규 · 최기 · 유악 · 봉순경 · 두몽징 · 이보은 · 귀애 · 공막 · 장문보 · 진예 · 유찬
45권 「장헌등전(張憲等傳)」
장헌 · 왕정언 · 호장 · 최이손 · 맹곡 · 손악 · 장연랑 · 유연호 · 유연랑
46권 「원행흠등전(元行欽等傳)」
원행흠 · 하노기 · 요홍 · 이엄 · 이인구 · 강사립 · 장경달
47권 「마욱등전(馬郁等傳)」
마욱 · 사공정 · 조정은 · 소희보 · 약종지 · 가복 · 마호 · 나관 · 순우안 · 장격 · 허적 · 주현표
48권 「장승업등전(張承業等傳)」
장승업 · 장거한 · 마소굉 · 맹한경
49권 「모장등전(毛璋等傳)」 50권 「강연효등전(康延孝等傳)」
모장 · 섭서 · 온도 · 단응 · 공겸 · 이업 강연효 · 주수은 · 양립 · 두정완 · 장건쇠 · 양언옹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진서(晉書) ]
{{{#181818,#e5e5e5
1·2·3·4·5·6권 「고조기(高祖紀)」 7·8·9·10·11권 「소제기(少帝紀)」
석경당 석중귀
12권 「후비전(后妃傳)」
이황후 · 안태비 · 장황후 · 풍황후
13권 「종실전(宗室傳)」
석경위 · 석훈 · 석중윤 · 석중영 · 석중신 · 석중예 · 석중진 · 석중고 · 석중예 · 석연후 · 석연보
14권 「경연광등전(景延廣等傳)」
경연광 · 이언도 · 장희숭 · 왕정윤 · 사광한 · 양한옹 · 양사권 · 윤휘 · 이종장 · 이종온 · 장만진
15권 「상유한등전(桑維翰等傳)」
상유한 · 조형 · 유구 · 풍옥 · 은붕
16권 「조재례등전(趙在禮等傳)」
조재례 · 마전절 · 장균 · 화온기 · 안숭완 · 양언순 · 이승약 · 육사탁 · 안원신 · 장랑 · 이덕충 · 전무 · 이승복 · 상리금
17권 「방지온등전(房知溫等傳)」
방지온 · 왕건립 · 강복 · 안언위 · 이주 · 장종훈 · 이계충 · 이경 · 주광보 · 부언요 · 나주경 · 정종
18권 「요의등전(姚顗等傳)」
요의 · 여기 · 양문구 · 사규 · 배호 · 오승범 · 노도 · 정도광 · 왕권 · 한운 · 이역
19권 「노질등전(盧質等傳)」
노질 · 이혜미 · 노첨 · 최절 · 설융 · 조국진 · 장인원 · 조희 · 이하 · 윤옥우 · 정운수
20권 「장종간등전(萇從簡等傳)」
장종간 · 반환 · 방태 · 하건 · 장정온 · 곽연로 · 곽금해 · 유처양 · 이경 · 고한균 · 손언도 · 왕부증 · 비경 · 이언순
21권 「황보우등전(皇甫遇等傳)」
황보우 · 왕청 · 양한장 · 백봉진 · 노순밀 · 주환 · 심윤 · 오만 · 적장 · 정복윤 · 곽린
22권 「공숭필등전(孔崇弼等傳)」
공숭필 · 진보극 · 왕유 · 장계조 · 정완 · 호요 · 유수청 · 방고 · 맹승회 · 유계훈 · 정수익 · 정손 · 이욱 · 정현소 · 마중적 · 진현
23권 「범연광등전(范延光等傳)」 24권 「안중영등전(安重榮等傳)」
범연광 · 장종보 · 장연파 · 양광원 · 노문진 · 이금전 안중영 · 안종진 · 장언택 · 조택균 · 장려 · 소한 · 유희 · 최정훈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한서(漢書) ]
{{{#181818,#e5e5e5
1·2권 「고조기(高祖紀)」 3·4·5권 「은제기(隱帝紀)」
유고 유승우
6권 「후비전(后妃傳)」
이황후
7권 「종실전(宗室傳)」
유승훈(劉承訓) · 유승훈(劉承勛) · 유신 · 유빈
8권 「왕주등전(王周等傳)」
왕주 · 유심교 · 무한구 · 장관 · 이은 · 유재명 · 마만 · 이언종 · 곽근 · 황보립 · 백재영 · 장붕
9권 「사홍조등전(史弘肇等傳)」
사홍조 · 양빈 · 왕장 · 이홍건 · 염진경 · 섭문진 · 후찬 · 곽윤명 · 유수
11권 「이숭등전(李崧等傳)」 12권 「두중위등전(杜重威等傳)」
이숭 · 소봉길 · 이린 · 용민 · 유정 · 장윤 · 임연호 두중위 · 이수정 · 조사관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주서(周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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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1·2·3·4권 「태조기(太祖記)」 5·6·7·8·9·10권 「세종기(世宗紀)」 11권 「공제기(恭帝紀)」
곽위 시영 시종훈
12권 「후비전(后妃傳)」
성목황후 · 양숙비 · 장귀비 · 동덕비 · 정혜황후 · 선의황후
13권 「종실전(宗室傳)」
곽동 · 곽신 · 시종의 · 시희회
14권 「고행주등전(高行周等傳)」
고행주 · 안심기 · 안심휘 · 안심신 · 이종민 · 정인회 · 장언성 · 안숙천 · 송언균
15권 「왕은등전(王殷等傳)」
왕은 · 하복진 · 유사 · 왕진 · 사언초 · 사의 · 왕령온 · 주밀 · 이회충 · 백문가 · 백연우 · 당경사
16권 「조휘등전(趙暉等傳)」
조휘 · 왕수은 · 공지준 · 왕계홍 · 풍휘 · 고윤권 · 절종완 · 왕요 · 손방간
<rowcolor=#373a3c> 17권 「풍도전(馮道傳)」 18권 「노문기등전(盧文紀等傳)」
풍도 노문기 · 마예손 · 화응 · 소우규 · 경범
19권 「왕박등전(王朴等傳)」
왕박 · 양응식 · 설인겸 · 소원 · 노손 · 왕인유 · 배우 · 단희요 · 사도후 · 변울 · 왕민
20권 「상사등전(常思等傳)」
상사 · 적광업 · 조영 · 이언군 · 이휘 · 이건숭 · 왕중예 · 손한영 · 허천 · 조봉 · 제장진 · 왕환 · 장언초 · 장영 · 유인섬
21권 「왕준등전(王峻等傳)」
왕준 · 모용언초 · 염홍로 · 최주도
22권 「유호등전(劉皞等傳)」
유호 · 장항 · 장가복 · 우덕진 · 왕연 · 신문병 · 호재 · 유곤 · 가위 · 조연의 · 심구 · 이지손 · 손성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folding [ 열전(列傳) ]
{{{#181818,#e5e5e5
132·133권 「세습열전(世襲列傳)」 134·135·136권 「참위열전(僭位列傳)」
이무정 · 고만흥 · 한손 · 이인복 · 고계흥 · 마은 · 유언 · 전류 양행밀 · 이변 · 왕심지 · 유수광 · 유엄 · 유숭 · 왕건 · 맹지상
137·138권 「외국열전(外國列傳)」
거란 · 토번 · 회골 · 고려 · 발해 · 흑수말갈 · 신라 · 당항 · 곤명부락 · 우전 · 점성 · 장가만
※ 138권 ~ 150권은 志에 해당. 구오대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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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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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양본기1·2(太祖紀一二)」 3권 「양본기3(梁本紀三)」
주황 주우정
4·5권 「당본기1·2(唐本紀一二)」 6권 「당본기3(唐本紀三)」 7권 「당본기4(唐本紀四)」
이존욱 이사원 이종후 · 이종가
8권 「진본기1(晉本紀一)」 9권 「진본기2(晉本紀二)」
석경당 석중귀
10권 「한본기(漢本紀)」
유고 · 유승우
11권 「주본기1(周本紀一)」 12권 「주본기2(周本紀二)」
곽위 시영 · 시종훈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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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권 「양가인전(梁家人傳)」
문혜황후 · 원정황후 · 진소의 · 이소용 · 장덕비 · 곽비 · 주전욱 · 주존 · 주우유 · 주우문 · 주우규 · 주우자
14권 「당태조가인전(唐太祖家人傳)」
유부인 · 정간황후 · 신민경황후 · 이극양 · 이극수 · 이극공 · 이극녕 · 이존미 · 이존패 · 이존례 · 이존악 · 이존예 · 이존확 · 이존기 · 이계급 · 이계동 · 이계숭 · 이계섬 · 이계요
15권 「당명종가인전(唐明宗家人傳)」
화무헌황후 · 소의황후 · 위황후 · 왕숙비 · 공황후 · 이종경 · 이종영 · 이종익 · 이종찬 · 이종장 · 이종온 · 이종민
16권 「당폐제가인전(唐廢帝家人傳)」
유황후 · 이중길 · 이중미
17권 「진가인전(晉家人傳)」
황후 이씨 · 안태비 · 풍황후 · 석경위 · 석경윤 · 석경휘 · 석중신 · 석중예(重乂) · 석중예(重睿) · 석중고 · 석연후 · 석연보
18권 「한가인전(漢家人傳)」
이황후 · 유빈 · 유승훈(劉承訓) · 유승훈(劉承勳) · 유신
19권 「주태조가인전(周太祖家人傳)」
성목황후 · 양숙비 · 장귀비 · 동덕비 · 곽동 · 곽신 · 곽수원 · 곽손
20권 「주세종가인전(周世宗家人傳)」
시수례 · 정혜황후 · 선의황후 · 부황후 · 시종의 · 시희성 · 시희함 · 시희양 · 시희근 · 시희회
21권 「양신전·1(梁臣傳一)」 22권 「양신전·2(梁臣傳二)」
경상 · 주진 · 방사고 · 갈종주 · 곽존 · 장존경 · 부도소 · 유한 · 구언경 강회영 · 유심 · 우존절 · 장귀패 · 왕중사 · 서회옥
23권 「양신전·3(梁臣傳三)」 24권 「당신전·1(唐臣傳一)」
양사후 · 왕경인 · 하괴 · 왕단 · 마사훈 · 왕건유 · 사언장 곽숭도 · 안중회
25권 「당신전·2(唐臣傳二)」 26권 「당신전·3(唐臣傳三)」
주덕위 · 부존심 · 사건당 · 왕건급 · 원행흠 · 안금전 · 원건풍 · 서방업 부습 · 오진 · 공겸 · 장연랑 · 이엄 · 이인구 · 모장
27권 「당신전·4(唐臣傳四)」 28권 「당신전·5(唐臣傳五)」
주홍소 · 유연랑 · 강사립 · 강의성 · 약언조 두로혁 · 노정 · 임환 · 조봉 · 이습고 · 장헌 · 소희보 · 유찬 · 하찬
29권 「진신전(晉臣傳)」 30권 「한신전(漢臣傳)」
상유한 · 경연광 · 오만 소봉길 · 사홍조 · 양빈 · 왕장 · 유수 · 이업 · 섭문진 · 후찬 · 곽윤명
31권 「주신전(周臣傳)」 32권 「사절전(死節傳)」
왕박 · 정인회 · 호재 왕언장
33권 「사사전(死事傳)」
장원덕 · 하노기 · 요홍 · 왕사동 · 장경달 · 적진종 · 심빈(1) · 왕청 · 사언초 · 손성
34권 「일행전(一行傳)」
정요 · 석앙 · 정복윤 · 이자륜
35권 「당육신전(唐六臣傳)」 36권 「의아전(義兒傳)」
장문울 · 양섭 · 장책 · 조광봉 · 설이구 · 소순 이사소 · 이사본 · 이사은 · 이존신 · 이존효 · 이존진 · 이존장 · 이존현
37권 「영관전(伶官傳)」 38권 「환관전(宦官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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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권 「왕용등전(王鎔等傳)」 40권 「이무정등전(李茂貞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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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권 「노문진등전(盧文進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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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권 「두중위등전(杜重威等傳)」 53권 「왕경숭등전(王景崇等傳)」
두중위 · 이수정 · 장언택 왕경숭 · 조사관 · 모용언초
54권 「풍도등전(馮道等傳)」 55권 「유구등전(劉昫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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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권 「화응등전(和凝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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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권 「이숭등전(李崧等傳)」
이숭 · 이린 · 가위 · 단희요 · 장윤 · 왕송 · 배호 · 왕인유 · 배우 · 왕연 · 마중적 · 조연의
{{{-2 (1) 구오대사 진서에서는 심빈(沈贇)으로 표기되며, 신오대사에서는 심빈(沈斌)으로 표기된다.
}}}}}}
[ 세가(世家) ]
||<-2><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width=50%> 61권 「오세가(吳世家)」 ||<-2><width=50%> 62권 「남당세가(南唐世家)」 ||
양행밀 · 서온 이변
63권 「전촉세가(前蜀世家)」 64권 「후촉세가(後蜀世家)」
왕건 맹지상
65권 「남한세가(南漢世家)」 66권 「초세가(楚世家)」
유은 마은 · 유언 · 주행봉
67권 「오월세가(吳越世家)」 68권 「민세가(閩世家)」
전류 왕심지
69권 「남평세가(南平世家)」 70권 「동한세가(東漢世家)」
고계흥 유민
※ 71권은 譜에 해당. 신오대사 문서 참고
[ 부록(附錄)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 72·73권 「거란전(契丹傳)」 ||
거란
74권 「외국열전(外國列傳)」
· 토혼 · 달단 · 당항 · 돌궐 · 토번 · 회골 · 우전 · 고려 · 발해 · 신라 · 흑수말갈 · 남조만 · 장가 · 곤명 · 점성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000> ||
}}}}}} ||

《북서》<열전>
<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地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地. <辰韓>亦曰<秦韓>. 相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 <馬韓>割其東界居之, 以<秦>人, 故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 有似中國人,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不與<馬韓>同. 又<辰韓>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傳, <辰韓>不得自立王, 明其流移之人故也. 恒爲<馬韓>所制. <辰韓>之始, 有六國, 稍分爲十二, <新羅>則其一也. 或稱魏將毋校勘 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 其後復歸故國, 有留者, 遂爲新羅, 亦曰斯盧. 其人雜校勘 有華夏·高麗·百濟之屬, 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 諸本 「雜」 訛作 「辯」, 據隋書卷八一新羅傳改. 兼有沃沮註 ·不耐註 ·韓註 ·濊註 之地.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校勘 ,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 傳世三十, 至<眞平>.《隋書》作[傳祚至<金眞平>]. 按《通典》卷一八五《新羅傳》云[其王姓<金>名<眞平>],  引《隋東蕃風俗記》云:[<金>姓相承, 三十餘葉.] 這裏[眞平]上當脫[金]字. 以<隋><開皇>十四年, 遣使貢方物. <文帝>拜<眞平>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
'신라'는 근본이 '진한'의 종자이다. 땅은 '고려'의 동남쪽에 있고, '한나라'때의 '낙랑'땅에 거한다. '진한'의 역시 '진한'이라고도 한다. 전하는 말로 '진'나라 때에 사역을 피하여 온 사람이라고 하니,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나누어 거하게 하였다. '진'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고로 '진한'이라고 하였다. 그 말로 물건의 이름이 중국인과 유사하니 나라의 이름을 나라 하고, 궁을 호라 하고, 적을 구라하고 주를 상이라고 상을 도라고 하니 '마한'과 같지 않다. 또한 '진한'의 왕은 항시 '마한'사람이 하는데, 대대로 전하여 '진한'은 스스로 왕위에 오를 수 없어, 밝혀 유이민이기 때문이다. 항상 '마한'의 제도를 따랐다. '진한'의 처음에 육국이 있었는데, 점점 나누어져 십이국이 되고, '신라'는 그중의 하나였다. 혹 칭하길 '위'의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쳐서 이를 깨뜨렸는데, '옥저'로 도망해서, 나중에 옛날의 나라로 돌아왔다. 남는 자가 있어서 '신라'를 이루었다 하니, 역시 '사로'라 불리었다. 그 사람들은 '중국'과 '고려', '백제'와 섞여있는데, '옥저', '불내', '한', '예'의 땅에도 겸하여 있다. 그 왕은 본래 '백제'사람으로 바다로 도망하여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에서 왕을 하였다. 처음 '백제'에 의지해 있었는데, '백제'가 '고려'를 정벌할 때, 혹독한 사역을 견디지 못하여, 후에 돌아와 강성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백제'를 엄습하고, '가야국'에 의지하였다. 삼십세를 전하여 '진평'에 이르렀는데, '수' '개황'십사년이다.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받쳤다. '문제'가 '진평'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에 봉하였다.
其官有十七等: 一曰伊罰干, 貴如相國, 次伊尺干, 次迎干, 次破彌干, 次大阿尺干, 次阿尺干, 次乙吉干, 次沙 干, 次及伏干, 次大奈摩干,《通典》[干] 作[于], 未知孰是. 又《梁書》云:[其官名有子賁旱支·齊旱支·謁旱支·壹告支·奇目旱支.] 與此不同. 次奈摩, 次大舍, 次小舍, 次吉士, 次大烏, 次小烏, 次造位. 外有郡縣. 其文字·甲兵, 同於中國. 選人壯健者悉入軍, 烽·戌·邏俱有屯營部伍.諸本及《隋書》[營]作[管].《通典》作[營], 是, 今據改. 風俗·刑政·衣服略與<高麗>·<百濟>同. 每月旦相賀, 王設宴會, 班賚 官. 其日, 拜日月神主. 八月十五日設樂, 令官人射, 賞以馬·布.《隋書》[每]下有[正]字, [主]字作[至]. 按《隋書》是說正月元旦相賀, 拜日月神; 至八月十五日, 又設樂競射.《北史》疑是脫訛. 其有大事, 則聚官詳議定之. 服色尙 素.《隋書》無[ ]字. 按 則不素, 疑是衍文. 婦人 髮繞頸,《隋書》[頸]作[頭], 是. 此形似致誤. 以雜綵及珠爲飾. 婚嫁禮唯酒食而已, 輕重隨貧富. 新婦之夕, 女先拜舅姑, 次卽拜大兄·夫.《隋書》無[大兄]二字,《通志》卷一九四《新羅傳》作[次拜大兄, 次拜夫]. 死有棺 , 葬送起墳陵. 王及父母妻子喪, 居服一年. 田甚良沃, 水陸兼種. 其五穀·果菜·鳥獸·物産, 略與華同.
관직은 17품으로, 일은 이벌간으로 중국의 귀와 같고, 다음은 이척간 다음은 영간, 다음은 파미간, 대아척간, 아척간, 을길간, 사돌간, 급복간, 대나마간, 나마, 대사, 소사, 길사, 대오, 소오, 조위 순이다. 밖으로 군현이 있고, 문자와 갑병은 중국과 같다. 건장한 사람을 가리고 군사로 뽑는데, 봉, 술, 라로 함께 영, 부, 오로 진을 친다. 풍속과 형벌, 정치, 의복은 '고려', '백제'와 같다. 매달 아침마다 하례하며 왕이 연회를 배풀면서 무리에 관직을 하사한다. 그날에 태양과 달의 신에게 절한다. 8월 15일은 풍류를 베푸는데, 관인이 활을 쏘아 상으로 말과 포를 내린다. 큰 일이 있으면, 벼슬아치들이 모여 의논하여 정한다. 옷색깔로 흰색을 숭상하고, 부인들은 머리를 땋아 목에 두르며, 비단과 구슬을 섞어 꾸민다. 결혼의 예는 술과 음식으로 하고, 빈부로써 경중을 따른다. 신부는 저녁에 가서, 여자가 먼저 시아비와 시어미에게 절하고 다음으로 대형과 지아비에게 절한다. 죽은 자에게는 관이 있고, 장사 지냄에 봉분을 쌓는다. 왕에서부터 부모, 처자의 상까지 1년간 복을 입는다. 밭은 물대기가 좋아서 물과 육지의 씨를 겸할수 있다. 오곡과 과채, 조수과 물산은 중국과 같다.
<大業>以來, 歲遣朝貢. <新羅>地多山險, 雖與<百濟>構隙, <百濟>亦不能圖之也.
대업'때에 왔는데, 해마다 조공하였다. '신라'의 땅은 산이 많고 험하고, '백제'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백제'도 능히 제도할 수 없었다.

13. 시기 구분

한국사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특히 신라는 국가 존속 기간이 1,000여 년[76]이나 되기 때문에, 시기별로 나라 체제의 차이가 커서 여러가지 시기 구분이 있어 왔다. 옛날부터 사용되던 구분 방식으로는 《 삼국사기》의 구분대로 상대, 중대, 하대로 구분하는 방법과 《 삼국유사》의 구분대로 상고, 중고, 하고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유학자 김부식이 주도해 집필한 책인만큼 왕의 혈통을 기준( 성골 태종 무열왕 진골 내물왕계 진골)으로 했는데, 상대는 혁거세 거서간 ~ 진덕여왕, 중대는 태종 무열왕 ~ 혜공왕, 하대는 선덕왕 ~ 경순왕이다. 상대는 통일 이전, 중대는 왕권이 강했던 전성기, 하대는 쇠퇴기와 대강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지금도 많이 사용되는 구분이다.[77] 후자는 승려 일연의 구분답게 불교와 연관됐는데, 불교 수용 이전( 고유어 왕호) → 불교식 왕호 사용 → 중국식(유교식) 왕호 사용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상고는 혁거세 거서간 ~ 지증왕, 중고는 법흥왕 ~ 진덕여왕, 하고는 태종 무열왕 ~ 경순왕이다.

현대에는 좀 더 세분화해 여섯 시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 신화 시절을 포함하여 사로국으로 존속한 기간이 불분명하기는 하고 국가로 인정하기에는 미흡한 점들이 있기 때문에 신라의 역사를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78]

676년 이후의 신라를 통일신라로 부르는 문제에 있어서도 논란이 있다. '통일 신라시대'라는 용어는 발해까지 아울러 남북국시대라고 부르는 쪽으로 현대에는 대체가 된 편인데, 그럼 남북국 두 나라 중 남국인 신라를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하면 이 쪽은 지금도 통일신라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신라의 통일이 불완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것도 부적절한 호칭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딱히 자리잡은 대체 용어는 없고 학자에 따라 대 신라, 후기 신라 등의 이름으로 676년 이전(삼국 중 1개국으로서의 신라)과 구분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도 고려의 존속 기간인 474년과 조선의 존속 기간인 518년을 더하면 992가 나오는데 이는 고려 조선의 전신인 신라의 존속 기간인 992년과 같은 기간이다. 고려와 조선이 당대 중국 왕조들보다 2배 가량 더 존속한 장수 왕조들임을 감안하면 신라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나라를 영위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14.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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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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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왕실

| 《삼국사기》에 의거한 신라 왕실의 성씨 변화 |<tablealign=center> 회차 || 성씨 || 재위기간 || 누적기간 ||
- 박씨(제1대 박혁거세~제3대 유리왕) 114년 114년
1 석씨(제4대 탈해왕) 23년 137년
2 박씨(제5대 파사왕~제8대 아달라왕) 104년 241년
3 석씨(제9대 벌휴왕~제12대 첨해왕) 77년 318년
4 김씨(제13대 미추왕) 22년 340년
5 석씨(제14대 유례왕~제16대 흘해왕) 72년 412년
6 김씨(제17대 내물왕~제52대 효공왕) 556년 968년
7 박씨(제53대 신덕왕~제55대 경애왕) 15년 983년
8 김씨(제56대 경순왕) 8년 992년

신라는 박씨, 석씨, 김씨 세 성씨가 여러 번 번갈아가며 왕위를 이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런 방식은 한국사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에서 찾아봐도 비슷한 경우가 거의 없는 특수한 방식이었다. 왕조 국가에서 어떻게 박, 석, 김이라는 성씨가 다른 왕이 번갈아 왕위에 오르는게 가능한가. 또한, 왜 그 어떤 나라의 역사적 사료에서도 신라의 특이한 3성 정치 체제와 역성 혁명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는가.

사실 신라 초창기에는 성씨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김알지의 후손이라 전하는 김(金)씨 진흥왕(540~576년) 때부터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 본격적으로 성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신라 내에 있던 3개의 다른 집단인 박혁거세 후손, 석탈해 집단, 김알지 집단이 이때부터 성씨를 소급하였기 때문에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면서 성씨가 3개가 있는 것처럼 뒤죽박죽 마치 성이 바뀌듯 나오게 된다.

다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의 초반부는 불완전한 고대 기록을 모으는 과정에서 신화적인 대목이 많고, 초기 왕들의 지나치게 긴 수명 등 연도에 오류가 너무 많아[79] 진흥왕 이전의 박씨, 석씨 왕의 통치기간에 대한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신라 왕실은 대부분의 기간을 김씨 왕들이 통치하였지만 그들 모두 시조인 박혁거세를 참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군주는 김알지의 후손인 김씨 집단이 992년의 대부분 기간인 586년을 지배했지만, 모시는 시조는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였다. 중국이나 외국 사료에서 박혁거세 시조를 참배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아 외부, 그리고 머나먼 후손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내막을 알지 못하고 그냥 왕의 성씨가 김(金)씨여서 김씨 왕조가 세운 왕조인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신라가 성씨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김씨가 왕으로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왕들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신라 말기에 신라가 기울면서 처남이었던 박씨 왕조가 728년 만에 잠깐 다시 부활하나 견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다시 김부가 왕으로 등극하나 얼마 안가 고려의 왕건에 항복하고 신라는 992년만에 멸망하게 된다.

앞서 서술한 대로 신라 왕실의 군주가 된 석탈해·김알지 혈통은 석탈해 신당이나 김알지 신당을 시조 사당으로 참배하지 않고 박혁거세를 자신들의 시조로 숭배하였다. 일례로, 제14대 유례왕은 석탈해 혈통이지만, 《삼국사기》<신라본기>에 따르면 그는 박혁거세 신당을 자기 시조의 사당으로 참배했다. 또 제18대 실성 이사금, 제19대 눌지 마립간, 제20대 자비 마립간, 제40대 애장왕, 제41대 헌덕왕, 제42대 흥덕왕 등은 김알지 혈통이지만 신라본기에 따르면 그들 모두 박혁거세 신당을 자신들의 시조로 참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석탈해·김알지 혈통이 비록 성은 다르지만 자신들을 박씨 왕실의 일원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즉, 박·석·김의 세 혈통 모두 박혁거세를 자신의 시조로 같이 모셨다고 볼 수 있다. 김씨가 왕위를 500년 이상 독점할 때에도 박혁거세 시조 참배는 계속 되었으며, 이러한 시조 박혁거세에 대한 신성함이 후대에 박씨 왕조가 잠깐이나마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커다란 가문 내에서 작은 가문들이 독자성을 유지하는 모습은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성씨 제도, 즉 성과 씨의 제도에서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원래 (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는 보다 위의 개념이었고, (氏)는 그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개념이었다. 즉, 신라에 적용을 해보면 성(姓)은 신라 왕실이 공동시조로 모셨던 박혁거세의 박(朴), 씨(氏)는 성(姓)의 하위 개념인 석(昔), 김(金)이 된다. 따라서 신라 왕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朴) 왕실이었고 역성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김씨가 통치했던 시기에도 박혁거세를 공동시조로 같이 받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姓)과 씨(氏)의 구분은 원래 중국에도 있었지만 진나라, 한나라 대에 이르러 없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통합된 성씨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이 신라시대를 보면 마치 박, 석, 김의 서로 다른 성씨가 왕위를 쟁탈하는 전쟁터, 역성혁명인 것처럼 비춰보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성과 씨가 현재와 같이 통합되지 않은 다른 개념이었고[80] 다른 어떤 나라의 사료에서도 신라 왕실의 성이 바뀌는 것을 역성혁명처럼 보는 기록이 전무한 것을 고려해보면 신라가 건국된 박혁거세 때부터 멸망했던 경순왕 때까지 약 991년간 역성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 모두가 박혁거세를 공동시조로 모시면서 같이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약하면 박혁거세를 시조로 모시는 박(朴)이라는 성(姓)을 가진 왕실 안에 박(朴)씨 외에 석(昔)·김(金)의 분파가 용인됐던 것이었고, 이 3개의 분파 중에서 김(金)씨가 왕위를 가장 오랫동안 많이 차지해 후손들이 많이 번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81] 박씨 집단은 신라 초기에 알영·박혁거세 부부의 여성 후손을 왕비족으로 묶고, 이 왕비족과 결혼해야만 왕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다른 성씨 집단의 경우에도 박씨의 여성 후손과 결혼하면 왕위를 이을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석·김 혈통의 남성이 왕이 된다 해도 박씨 왕실은 '이 왕실은 여전히 우리 것'이라는 자부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왕비들의 혈통으로만 본다면, 박씨 왕실은 992년 동안 지속적으로 배출이 됐기 때문이다. 이랬기 때문에 석·김 혈통이 왕이 된 시절에도 박씨들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지키고 왕족의 위상을 유지하며, 나중에는 728년 만에 왕권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14.3. 왕릉

신라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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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라부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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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역사귀속과 계승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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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신라를 소재로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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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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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청동 도장의 인장 관련 내용

21. 같이 보기

21.1. 통일신라



[1] 북동단은 오늘날의 함경남도 리원군으로 마운령비가 세워진 곳이다. 이미지의 해수면은 현행 해수면을 시뮬레이션으로 올린 것으로 학술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2] 갑자년( 기원전 57년) 음력 4월 병진일 또는 1월 15일.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의 건국을 기원전 57년으로 전하고 있으며, 《삼국유사》역시 동일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두 사서의 기록은 모두 정사로 여겨진다. 다만,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3세기 이전 기사에 대한 비판적 견해(초기기록 불신론)가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문서 참조. [3] 을미(乙未)년 기축(己丑)월 임신(壬申)일로, 음력 935년 12월 12일, 율리우스력으로는 936년 1월 8일이다. 신라의 합병 연도를 일반적으로 935년이라고 하지만, 《 고려사》에 의하면 왕건이 공식적으로 신라 합병을 결정하고, 경순왕과 신라 왕족이 제후왕 신분을 완전히 잃는 날은 12월 12일인데, 이를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변환계산 시스템을 이용해 현대에 쓰이는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하면 해를 넘겨 936년 1월 13일 금요일이 된다. [4] 다만, 실제 항복과 경순왕의 개성 입조는 935년 11월에 이뤄졌고 이게 936년 1월까지 미뤄진 건 경순왕이 귀부를 요청하고 왕건이 거절하기를 반복하는, 예의상 인사치레를 한 달 동안 했기 때문이다. [5] '신라'에 해당하는 고유어 음을 한자를 빌려 나타냈기 때문에 '사로(사로국)', '신라', ' 사라' 등 여러 표기가 혼용되었다. 따라서 진한 12소국 시기의 사로국을 '신라국'이라고 해도 완전히 같은 말이다. [6] 503년 국호 통일. 이 밖에 일종의 별칭으로, 건국 신화의 발원지이자 신라인의 정신적 구심점인 ' 계림'이 곧 신라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계림대도독부 등). 계림은 심지어 신라가 고려에 합병된 뒤에도 조선 시대까지 한반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해당 문서로. [7] 골벌국과 같이 신라에 우호적인 국가가 많았다. 이후 영천의 토착신이 신라에서 행하던 대사(大祀)에서 모시는 3선(仙)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골벌국은 신라 사회에서 나름대로 대접을 받았다. [8] 신라-우산국 전투로 울릉도(우산국) 복속 [9] 탐라국, 우산도. 탐라국은 672년 통일신라에 자진 복속한다. [10] 676년 나당전쟁 승리( 임진강선) → 694년( 효소왕3) 송악성 축성( 예성강선) → 748년( 경덕왕7) 대곡성(오늘날 평산군) 등 축성 → 선덕왕대 패강진( 황해도 일대) 개척 → 헌덕왕대 취성군(오늘날 황주군) 신라 말기 진성여왕 시대에 전국에서 호족과 도적떼가 들고 일어나 난세가 시작될 때 금용은 평양성주장군(平壤城主將軍)이었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가 평양을 통치권으로 차지했는지 아닌지는 논란이 있어서, 금용을 발해의 변방 지배자나, 신라나 발해 어디의 간섭도 받지 않던 토착세력 정도로 보기도 한다. 사실 신라도 나당전쟁 끝나고 얻은 영토에서 계속 가만 있었던 건 아니고 주민들 이주시키고 개척하면서 조금씩 북상했기 때문에, 황주에서 평양이 멀지 않으니 아마도 9세기 후반쯤 가면 평양도 통치권에 들어갈랑 말랑 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은 가능한 수준. 대체로 남북국시대 지도에는 발해가 평양을 먹은 것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지만 발해 중심지는 매우 먼 상경 용천부였고, 발해가 평양을 지배했다는 근거도 딱히 없고 9세기 후반쯤 가면 발해도 끝물인 건 신라와 비슷했기에 뭐라고 확언하기 어렵다. [11] 고구려 멸망 후 신라의 장군 설오유가 고구려 유민과 합세해 요동에 주둔한 당나라를 선제공격해 몇 달간 점령했다. ( 석문 전투)이 사건이 본격적인 나당전쟁의 시작. [12] 후삼국시대( 나말여초) 우산국 탐라국은 신라에 복속이 되어있는 상태였다가 930년대 우산국의 백길 토두는 고려에 복속요청, 탐라국은 독자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13]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14] 고구려, 백제와 비교해도 수도의 변동이 없었다. 다만 신문왕 달구벌( 대구)로 천도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귀족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는 고려도 마찬가지. [15] 소경(小京)이란 수도인 서라벌이 동남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거리가 먼 지역의 주요 도시에 설치한 행정구역을 의미한다. 요즘으로 치면 광역시쯤 된다. 558년의 국원소경(충주시) 설치 과정 기록을 보면 서라벌 인근의 부유한 백성을 옮겨서 도시를 키웠다고 한다. 삼국통일 이전에는 514년에 설치한 함안군 또는 의성군의 아시촌소경, 충주시의 국원소경, 강릉시의 북소경 3경이 있었으며, 통일 이후에는 옛 고구려 지역이 둘, 옛 백제 지역에 둘, 옛 가야 지역에 하나씩 5소경을 뒀다. 9주 5소경 문서로. [16] 신라 건국 신화에 계룡이나 백마, 김알지 설화와 신라의 국호( 계림( 김알지), 계괴, 유괴 등)에서 닭이 많이 등장한다. [17] 고조선 멸망 이후 삼한으로 이주한 예맥계 유이민들. 이들 중 일부가 경주 분지 일대에 정착해 신라를 세웠다. 진흥왕 대에 고구려 백제를 상대로 펼친 전쟁에서 흡수한 인구와 포로도 다수 포함된다. [18] 파사 이사금 시기 등과 같이 신라가 진한 소국들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흡수한 원삼한 계통의 주민들. [19] 고구려를 멸망시켜 고구려 남부를 병합하고, 고구려 북부의 인구가 고구려부흥운동 실패 후 신라로 피난하는 과정에서 고구려인과 같이 유입되었다. 이 말갈인으로 흑금서당이란 부대를 만들었다. [20] 설총대에 이두문이 재정립된다. 특히 향가에서는 향찰이라는 형식으로 특화되었다. [21] 신라에서 원효와 의상으로 대표되는 교종불교가 발달했으나, 하대가 되면서 중국에 유학한 구법승려가 개인주의적, 사회개혁적, 민중지향적인 선종을 수입전파하고 호족들이 선종을 후원, 후삼국시대가 되면서 왕건의 고려는 선종 세력으로부터 사상적 후원을 많이 입었다. 그러나 고려도 국가 성립 이후에는 지배층은 교종과 밀교를 많이 신앙하였다. 고려 시대 불교 통합운동을 위해 노력한 의천도 교종 승려였다. 고려시대때는 의천이 불교를 개혁하고자 했으며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고 수행 방법으로 교관겸수를 제시했다. [22] 신라 때 원효 의상으로 대표되는 교종불교가 발달했으나 신라 하대 선종의 출현으로 신라 말의 혼란은 더더욱 가중되었는데, 신라계 중앙귀족들은 왕실의 지원을 받는 교종(5교)을 신봉했다면 삼한계 지방 호족들은 신라의 원신라계 우대정책에 반발하여 중앙에 대한 악감정으로 누구나 부처가 될수있다는 교리를 지닌 선종(9산)을 추종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부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석가모니 부처가 아닌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한 자를 말한다. 하지만 궁예는 선종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를 악용하여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처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처하던 궁예가 타락하고 멸망하게 되자, 왕건 고려는 초반에 선종 세력의 후원을 많이 받았음에도 정작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호국불교 교종을 국가이념으로 삼아 선종을 박해하였는데, 귀족 지배층 입장에서는 전통을 중시하는 교종 쪽이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고종 시기 대각국사 의천은 선종을 매우 증오하여 선종을 사문난적이라 표현하며 조선 연산군의 파불에 가까울 정도로 박해를 가한다. 하지만 아무리 위에서 박해를 해도 대중의 지지는 선종쪽이 더 높았기 때문에 선종의 씨를 말리는것은 불가능했다. 이 교종과 선종의 대립은 12세기 후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고 숭유억불 방향으로 나가면서 왕실의 불교 지원이 크게 줄어들게 되고 이로 인하여 정통 교종이 몰락하면서 오히려 선종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한국사에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 도의선사(9산중 가지산파)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종 전체로 봤을 때 제일 먼저 들어온 시기는 서기 8세기 후반에 신행대사가 단계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북종선을 들여온 것이 최초다. (도의선사는 우리가 잘 아는 돈오=즉각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남종선을 들여왔다.) 선종이 들어오던 서기 820년대, 이 시기는 한국사의 3대 반란으로 칭해질 만큼 기세가 무시무시했던 그 유명한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던 시기고 그 규모는 신라 9주 중 4주를 점령할 만큼 막강했으나 상당히 빨리 진압된다. 거기다가 일부 주에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공로로 7년간 면세, 이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890년 이후에 일개 지방의 독립선언도 못 막는 상황과 너무 대비되기 때문이다.의 혜택을 주었을 정도다. 그 정도로 이 시기까지만 해도 신라 정부의 여력이 충분하고 권위도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 입장에서도 권위에 의지하지 말라는 선종의 가르침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북종선은 말할 필요도 없이 더 주목받지 못했다. 때문에 도입되던 당시에는 선종이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라 말기인 서기 890년대 이후, 흔히 말하는 국가 막장 테크 시기에 9산 선문이 소율희 등 몇몇 호족들의 지원을 받고 성장하면서 보편화되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신라 정부는 선종과의 제휴를 시도했다. 이유는 선종을 통해서 떨어지는 권위를 다시 세우려고. 물론 호족의 지원이 더 커서 선종 측은 이를 거절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간단하게 말해 원효대사의 정토종(법성종)보다도 파격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그 때문인지 '무식한' 호족과 무신정권기의 무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이 표현은 조금 비약이긴 하다. 교종은 본래 문벌귀족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무신정권으로 문벌귀족 사회가 무너지자 이들을 지원했으며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최충헌 시기 지눌과 같은 승려가 무신정권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고 한다. [23] 역대 한국 왕조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독자적인 군호를 가지고 있다. [24] 1대 박혁거세 또는 2대 남해 [25] 2대 남해 [26] 3대 유리 이사금 ~ 16대 흘해 이사금 [27] 17대 내물 마립간 ~ 21대 소지 [28] 광개토대왕릉비, 충주 고구려비에는 매금(寐錦)이라는 왕호도 등장한다. 또한,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서도 ‘ 모즉지매금왕’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29] 가야멸망전 당시 신라 장군이 칼을 빼서 목을 치려고 하며 억지로 하카마(褌)를 벗기고 이어서 엉덩이를 야마토(日本)로 향하게 하고 "야마토(日本) 이쿠사노키미(將)는 내 엉덩이를 깨물어라!"라고 크게 부르짖게 하자(부르짖는다(叫)는 것은 울부짖으며 소리친다는 말이다) 곧 "신라 코니키시(王)는 내 엉덩이를 먹어라!"라고 소리쳤다라고 일본서기에 적혀있다. 백제에서 쓰이던 ' 건길지'가 이와 관련이 있다. [30] 22대 지증왕 ~ 56대 경순왕 [31] 다만 울진 봉평리 신라비 등의 금석문을 살펴볼 때, 법흥왕까지는 마립간(매금)이 혼용된 것으로 보인다. [32] 한자로는 寐錦之尊,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서 발췌. 모든 신라왕을 칭하는 것일 수도 있음. [33] '황왕'이라는 군주 칭호는 사서에는 나오지 않고 당시의 금석문에서 주로 확인된다. 진흥왕 순수비 등 금석문에서는 황왕 외에도 제왕(帝王), 태왕(太王) 등의 칭호도 그 당시에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황제와 왕의 복합어로 외왕내제적 성격을 보여준다. [34] 신라를 건국한 왕 [35] 왕을 부를 때 쓰는 칭호를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꾸었다. [36] 우산국(지금의 울릉도)이 이 시기에 병합되었다. [37] 신라 전성기 [38] 삼국이 통일되었다. [39] 처음에는 박씨&석씨&김씨 3개 성을 가진 사람들이 교대로 왕에 즉위하며 국가를 통치했지만, 중앙집권 과정을 거쳐 김씨가 독점을 하게 되었다. [40] 밀양 박씨 [41] 경주(월성) 석씨 [42] 경주 김씨 [43] ( 해자) 위, 아래가 법궁 경주 월성이다. 그 위쪽 일부는 북궁이다. 또한 시가지 중간중간에 지붕이 누런 집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황금 기와 모양으로 만든 것을 올린 기와집 금입택이다. [44] 신라의 시초는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사로국이다. [45] 패서. 최근 연구 등에 다르면 대동강~ 영흥만 남쪽 지역뿐만 아니라 평양성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46] 물론 신라도 처음에는 변방에서 시작한 나라답게 굉장히 열악했지만, 국력 증대를 통해 한강 유역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중국과 다이렉트로 교역을 하며 성장한 것이다. [47] 고려 왕조는 국가 공인 관찬사서인 《 삼국사기》나 그에 준하는 《 삼국유사》에서 신라가 과거 통일을 했었음을 부정하지 않았고, 고려가 고구려의 이름을 이어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계승성이 신라 계승성보다 크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삼국 세 나라의 비중은 명목상 대등하게 똑같은 본기에 실었다. 다만 신라의 삼국통일은 불완전,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진정한 통일로 봤기 때문에 신라의 통일을 정통으로 봤다면 삼국사기 이후에 등장했어야 할 신라사를 따로 저술하진 않았다. 중국사의 관찬사서인 24서와 비교해보면 중국 삼국시대 및 이후에 대한 관찬사서는 삼국지에서 진서로 이어지는 구조인데, 여기서 조위만을 정통으로 보아 본기로 넣고 촉한과 동오는 세가로 넣었으며, 통일 왕조로서의 서진사를 따로 저술하였다. 이에 비해 고려는 삼국 모두를 정통으로 보아 본기로 저술, 직후 고려 왕조로 이어지게 서술하여 고려야말로 중국의 서진 왕조처럼 그 모두를 완전히 싹 다 통합한 진정한 정통 왕조라는 입장이었다. [48] 어두에서는 두음 법칙에 따라 '나'이지만 둘째 음절 이하부터는 '라'로 발음. [49] 이순신은 계림 최고의 장수라는 식. [50] 신라 초기의 한나라에서 사용한 상고한어로는 s.tsʰi(n)rˤaj, 신라 후기의 당나라에서 사용한 중고한어로는 sinla로 발음했다. 한글로 비슷하게 표기하자면 각각 "ㅆ-씬라이" 및 "신-라" 정도. 공교롭게도 중고한어 발음은 자음동화가 없는 점만 빼면 현대 한국어 발음과 거의 일치한다. [아랍어] 정관사 ال(al)+سيلى(silla)의 합성일 경우, 아랍어의 음운변화에 따라 앗실라로 읽는게 맞다. 아랍어로 중국을 지칭하는 الصين (앗씬)같이 정관사+단어로 구성된 국명이 많은데, 신라도 이와 같은 가능성이 높다. [52] 시칠리아 왕국의 부탁,지원으로 만들었다. [53] 라틴어로 의자라는 뜻도 있다. [54] 조선의 수도인 ' 한양'이나(이 경우는 정식명칭은 한성이었다) 고려의 수도인 ' 송악/ 개성시', 그리고 동래, 대구광역시, 전주시 등 여러 지역 중심도시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55] 즉 중앙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지명을 통일함으로서 호족들에게 질서를 강요하고 행정을 통일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56] 고마나리(固麻那利)→웅진, 벌나→평양, 국내, 요동, 한성(황해도 재령군), 국원 등의 수많은 한자식 명칭. [57] 게다가 이런 개혁 및 교류로 인해 후기 삼국의 문화는 이미 무덤양식까지 같아질 정도로 서로 유사한 형태로 수렴 중이었고 따라서 경덕왕의 개혁은 완전히 새로운 신라중심주의적인 혹은 기존 전통을 깡그리 소멸시킨 독자적인 작업이 아닌 삼국시대부터 이미 진행되어 오던 중앙집권적 개혁의 전통을 계승한 것에 해당하며 종합적으로 보면 고려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 일련의 작업이 완성된 형태를 띠고 있다. [58] 고려시대에 기록된 서동요는 대격표지로 乙(을, ur)을 사용하는데 비해 이전 신라에서 기록된 향가에서는 肹(힐, gur)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이는 언어의 변화에 따른 차이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59] 황해 방언, 경기 방언. 충청 방언은 모두 방언연속체에 해당한다. [60] 장수왕 즉위 이후 최전성기를 맞은 고구려라는 공통의 적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맺은 120년간의 나제동맹 기간에 있었다. 해당 문서로. [61] 고구려 유민들 입장에서는 신라보다 당에 대한 적대감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라와 손을 잡은 것이다. 물론 신라에 대한 반감도 상당히 컸을 것은 분명하다. [62] 주로 황해도, 강원도 지역민들과 여러 사유로 남하한 고구려인들 [63] 다만 백제인은 거의 대부분이 신라인이 된 반면 고구려인은 일부만이 신라인이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64] 단 대조영이 신라 벼슬을 받았다는 기록은 신라인인 최치원이 발해를 비하하는 글에만 나오는 내용이고 다른 사료에는 등장하지 않아 교차검증이 안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65] 일본서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과장되고 왜곡된 내용이 많다. [66] 처용을 이 예로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67] 어떤 국내 모 포털 사이트의 네티즌은 후백제의 견훤이 아니라 태봉의 궁예가 왕건의 쿠데타로 몰락하지 않고 신라를 침략했으면 신라 침공 후 경순왕만 세워놓고 괴뢰국화하는 선에서 그친 견훤과 달리 무력으로 멸망시킨 다음 태봉 영토로 강제 병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68] 892년에 사실상 왕이 되었지만 신라 서면 도통 지휘 병마제치지절도독전무공등주군사 행 전주 자사 겸 어사중승 상주국 한남군 개국 공식 읍 이천호라는 형식상 신라의 신하로 깔고 들어가는 칭호를 자처했다. 백제 왕 칭호는 8년 뒤인 900년부터다. [69] 세계사적으로 볼 때는 비슷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동로마도 최측근 경비대원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정치역학과 무관한 바이킹이나 앵글로 색슨인 바랑기였다. 하지만 신라 왕실이 뿌리가 같고 평소에는 왕실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던 진골을 왕궁 경비에서 제외한 것이 특이해보인다는 것이다. 신라 왕실이 전성기 때부터 진골의 위험성을 인지한 것이다. [70] 당장 삼년산성을 비롯해,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을 막기 위해 수많은 산성을 쌓았는데 가실 같이 병역의 의무를 짊어진 장정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71] 색상은 전주를 제외한 해당 주의 만보당 부대의 상징색이다. [72] 색상은 해당 부대의 옷깃 상징색이다. [73] 총기가 들어오는 이후에는 화승총 [74] 다만 이는 구서당을 통해 흡수했던 고구려, 백제, 말갈인들을 더욱 차별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시기가 되면 적어도 서라벌에 살았던 이들은 왕경인으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서인지 조상이 고구려인이든 백제인이든 말갈인이든 완전히 신라인으로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구서당 부대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75] 이 100척을 당 수군에 대한 보급선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삼국사기에서 비전투함은 조선(漕船, 수송선) 등으로 불러 전투함과 구분해 기록했기 때문에 이상훈 교수는 전투함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76] 보통 나라가 길어봐야 600~700년 존속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긴 기간동안 존재했다. 존속 기간이 가장 비슷한 나라를 꼽자면 이 녀석. [77]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중대에도 너무 어린 왕이 즉위해 정국을 주도하지 못했고, 반대로 하대 초기의 원성왕 ~ 헌덕왕처럼 개혁 정치를 통해 강한 전제 왕권을 추구했기에 도식화가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78] 고구려보다 국가 체제 발전이 늦었던 신라가 더 먼저 건국 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 고대 사학계의 쟁점 중 하나인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79] 《삼국사기》 기록상 초기 왕들의 수명이 인간의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긴 것은 고구려 백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다. [80] 姓이 氏보다 더 위의 개념 [81] 가야가 멸망한 후 김해 김씨 왕족들은 모두 신라로 흡수, 합병, 통합되었는데 이때부터 김씨들의 장기집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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