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1 13:57:29

한국계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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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2. 개요3. 정체성4. 알려진 한국계 일본인
4.1. 정계/공무원4.2. 재계4.3. 작가4.4. 범죄자(야쿠자 포함)4.5. 연예계/예술계4.6. 스포츠4.7. 학계4.8. 기타
5. 도래인/역사적 한민족계 일본인6. 왕공족7. 관련 문서8. 가상 인물

1. 정의

韓国系日本人, 朝鮮系日本人 ( 일본어) / Japanese people of Korean descent ( 영어)

한국 혈통의 일본인. 재일 한국-조선인[1]과는 다르다.

2018년 기준 한국 외교부가 파악하고 있는 한국계 일본인의 숫자는 375,518명이다. 실제로는 이 숫자들보다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일단 본인들이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2], 드물지만 부모가 아예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고 평생을 사는 경우도 있다.[3] 또한 저 숫자는 주로 한국 국적에서 일본 국적으로 옮겨간 사람들을 기초로 판단하는 것이고 국적이 아닌 혈통 기준으로 보자면 1세대는 임진왜란당시 포로로 끌려 온 약 10만명 가량의 조선인이 시마즈, 모리 각 다이묘의 관할인 구마모토, 조슈 부근에 터를 잡고 살게끔 자리를 마련해줬고 조선인들은 특정 지역에서 군집형태로 부락을 형성하여 지내게 되는데 이들을 조선부락민이라 부르며 부락의 시원이란 학설도 있다. 2세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통혼이 부분적으로 이뤄졌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이나 한국 국적의 배우자[4]는 보통 전후에 일본인으로 분류됐던 점도 있다. 물론 이방자 여사 같은 예외는 있다.

2. 개요

기원은 고대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수많은 도래인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 현대적인 국적에서 감안할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 잔류한 재일 한국인 중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사람들이다. 결혼의 주된 요인은 1980년대에서야 정립이 된 영주권 등으로 대표되는 차별이나 통혼 등이 주요 원인이다. 통혼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보통 소수민족 여성의 경우 다수민족 남성과 통혼할 때 다수민족 남성의 국적으로 귀화하는 경우가 많다. 2006년 기준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결혼은 8,376건으로 일본 전체 혼인건수가 그 해에 730,971건이고 재일 한국인의 인구가 1%가 안 되는 점을 감안할 때 재일 한국인이나 조선적 커뮤니티 내부의 결혼보다 일본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더 많음을 뜻한다. 2006년 그 해에 75%가량이(약 6천 건) 일본인 남성과 재일 한국인 여성의 결혼이며 재일 한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결혼은 2,300건 남짓이다.

재일 한국인들의 일본 귀화는 1995년에 1만 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감소세다.

다만 한국식 성을 유지한채 귀화할 수 있는 성씨에는 제한이 있다. 예전에는 귀화시 일본에 이미 등록되어 있는 성씨만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정되어 외국인이 귀화하는 경우 상용한자와 인명한자로 등록된 한자를 이용해서 창씨를 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으나 아직도 이(李)씨나 최(崔)씨의 경우는 등록된 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선택하는것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은 이름은 한국식 이름을 쓰고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되니까 이름은 그다지 귀화시에 문제가 없으며 성이 문제였다. 한동안은 재일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일본으로 귀화하는 것을 일종의 배반 행위라 여기는 일이 많았으나 최근에 그런 터부는 약해진 편이다. 다만 조선적이나 조총련 계열에선 아직도 이런 의식이 강하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불편히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일본 국적법상 귀화한 외국인들은 그 해 관보에 명단이 실린다. 혹시나 부락지명총람사건처럼 쓰이지는 않을까 걱정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도 외국인의 귀화시 관보에 고시된다.(국적법 시행령 제5조).

대다수의 재일교포들이 그렇듯이 한국계 일본인들도 대부분 본적이 경상도, 제주도이다. 이해가 안 되면 왜 동남아 화교들이 남중국 지방 출신인지[5] 생각해보자.[6][7]

3. 정체성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들도 한국 국적은 있지만 거의 모국어 일본어를 사용한다. 재일 한국인들도 일본인과 유사하며 한국계 일본인들 역시 그렇다.

일본의 극우적 태도에 의한 내면화된 차별을 수용해 반외국인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한국을 상대하는 건 껄적지근하니까 중국을 상대로. 혐한인 한국계 일본인도 있긴 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게 동족혐오가 없는 집단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과 일본 안에서도 자국 혐오가 퍼져있을 정도이니

4. 알려진 한국계 일본인

주로 일본어 위키백과의 항목을 참고하였다. 링크 스포츠 연예계에 집중되어 있다. 아직 공무원이나 정치 등에서는 드문 편. 그런 이유로 대신 사업을 많이 하고 사업을 할 때 네트워크를 중시한 탓에 화교들처럼 재계에서는 꽤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있다. 최근에 귀화하는 한국계 일본인들은 한국식 성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의 경우 볼드체로 표시.

4.1. 정계/공무원

  • 도고 시게노리(東郷 茂徳): 1882-1950. 일본의 외교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도공 박씨의 후예로 집안이 조선계임을 알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 외교장관으로 A급 전범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투옥 중 사망. 특이한 것은 어머니가 조선인 도공과 독일인의 혼혈이었는데 자신 역시 독일인과 결혼했다.
  • 도고 가즈히코(東郷 和彦): 1945년생 일본의 외교관. 도고 시게노리(東郷 茂徳)의 손자이다. 정확히는 아버지인 도고 후미히코 전 외무사무차관이 도고의 데릴사위이고 어머니가 도고의 딸이므로 외손자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그도 외교관을 지냈는데 외무성 조약국장, 유럽국장과 네덜란드 대사를 지냈으며 서울대에서 한 학기 강의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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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라이 쇼케이(新井 将敬): 어릴 적 이름은 박경재(朴景在)로 1948년 일본 오사카 출생. 16세 때 귀화. 도쿄대학 이과1류(이학부/공학부)에 입학했다. 미시마 유키오 카를 마르크스에게 심취했다고. 자민당에 입당했으며 파벌 나카소네 야스히로 쪽. 1983년에 도쿄2구에서 이시하라 신타로와 대결했는데 이시하라 측에서 아라이를 북한인이라고 비방하였다. 이시하라는 비서가 멋대로 그랬다고 주장했다. 이때는 낙선했으나 1986년 도쿄 2구에서 중의원으로 당선되어 4선 의원을 지냈다. 1997년 증권 스캔들에 휘말렸고 1998년 2월에 도쿄의 호텔에서 자살하였다. 이 증권 스캔들 당시에 일본 정계에서 받아쳐먹은 인간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유독 당해서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다. 사건 자체는 그 뒤로 묻혀서 진실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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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쿠 신쿤(白眞勳, 백진훈): 195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인이었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는데[8] 한국 국적이었다가 2003년에 한국식 이름 그대로 귀화하였다. 2004년에 일본 참의원에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에 있을 때 내각부 차관을 맡기도 했다. 딸인 미야자키 레이카(宮崎 麗香)는 모델 겸 배우이다. 하쿠가 아내와 이혼하고 아내가 키웠기 때문에 하쿠의 전처 성을 따랐다. 현재는 입헌민주당 참의원 비례대표이자 당내 계파 중 소나무 그룹 일원이다.
  • 시나가와 쓰카사(品川 司): 1910년생. 현재는 불명. 일본의 우익 성향 정치운동가, 평화운동가로 북방영토 회복 등을 주장했으며 일본 민주당(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정당) 등에서 활동. 참의원과 중의원에 지속 출마했으나 당선되지는 못 했다.
  • 이경재(李 敬宰): 1954년생으로 1980년대 지문 날인 거부 운동을 했다. 2006년에 귀화. 귀화한 뒤에 외국계 일본인들이 많아지면 천황제는 저절로 무너진다고 발언하여 문제가 되었다. 참의원 출마했으나 낙선.
  • 김정옥(金 政玉): 장애인 인터내셔널의 일본 사무국장. 2005년 귀화했고 참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

4.2. 재계

  • 한창우(韓 昌祐): 1931년생으로 파칭코 재벌 마루한[9]의 설립자로 2002년 귀화했다. 특이한 것은 귀화 후에도 한국식 독음을 쓴다. 일본은 한자 읽는 법이 제각각이고 딱히 법적인 규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기준 재산이 34억 달러로 일본 8위의 부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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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다 요시타카(福田 吉孝): 1948년생으로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큰 소비자 대상 금융사인 아이풀(アイフル)의 창립자이다.
  • 오시마 겐신(大島 健伸): 1948년생. 오사카 출신으로 SFCG를 창립했다. 사업자 대상 대출금융회사였는데 파산했다. 차녀인 오시마 유키가 뉴욕 메츠 소유주 차남과 결혼했으나 2007년 이혼했다. 아들인 오시마 요시히토(大島 嘉仁, 1976-)는 일본의 금융사인 마그넷 홀딩스의 대표이사이다.

4.3. 작가

  •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 1968년생 일본의 소설가.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소설로 유명하다.
  • 다나카 요시에 (田中楽枝): 1955년생 일본의 작가. 귀화전 이름은 이양지(李良枝). 1992년에 사망했다.
  • 이오 겐시(飯尾 憲士): 1926년생 일본의 작가. 2004년에 사망했다.
  • 이종직(李 鍾植): 작가로 조선적이었으나 한국으로 귀화해 한국 정부를 위해 첩보활동을 했으나 북한이 그에게 접촉하면서 첩보 생활을 정리했다. 이름은 가명이며 인적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는 일본으로 귀화했다고.
  • 고 젠카(呉 善花): 1956년생 일본의 작가. 1998년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혐한 발언으로 일본 극우들에게 책 팔아먹는다.
  • 세키 기세이(関 貴星): 1914년생 일본의 정치운동가. 조총련 계열의 정치운동가였으나 북한의 실상을 안 뒤 일본으로 귀화하여 이를 고발하는 책을 썼다. 1986년에 사망했다.

4.4. 범죄자(야쿠자 포함)

4.5. 연예계/예술계

  • 최양일(崔 洋一) : 1949년생 일본의 영화감독.
  • JYONGRI: 1988년생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 나쓰다 쇼코(夏田 鐘甲): 1916년생 일본의 작곡가. 한국이름은 우종갑(禹鍾甲).
  • 강남(滑川 康男): 1987년생 가수.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 배정명(裵 ジョンミョン): 1985년생 일본의 배우.
  • 호테이 토모야스(布袋 寅泰): 1962년생 일본의 뮤지션. 해당 문서에 호테이 토모야스 본인이 자서전 '비밀'에서 밝힌 가족사에 관한 내용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 마츠다 유사쿠(松田 優作): 1949-1989. 일본의 배우. 어머니가 재일 한국인이며 귀화 전 한국 이름은 김우작(金優作)이다. 드라마 <태양에 외쳐라>에서 형사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다. 명탐정 코난을 비롯한 형사가 등장하는 작품이나 원피스의 아오키지처럼 일본산 창작물에서 자주 패러디된다.

    • 파일:external/yuki-style.red/yusaku_matsuda.jpg
  • 미온(美元): 1979년생 일본의 배우 겸 모델. 본명은 아시자와 유코(芦澤 裕子). 특이한 게 예명을 みをん이라고 쓰는데 일본어로의 발음은 '미온'으로 발음되지만 로마자로 표기하면 MIWON이 된다. 한국어 발음인 '미원'으로 읽힐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예명.
  • 리 토시오(李 闘士男): 1964년생 일본의 PD, 드라마 연출, 영화감독.
  • 와다 아키코(和田 アキ子): 1950년생 일본의 가수, 배우. 한국명은 김복자(金福子). 귀화전 통명은 카네우미 후쿠코(金海 福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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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젤: 걸그룹 aespa의 멤버. 출생지는 한국 서울이지만, 이후 일본 도쿄에서 성장했다.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가 일본인이다.
  • 테이 토와(鄭東和) : 1964년생으로 일본의 작곡가이자 DJ. 본명 정동화로 한국에도 지명도가 있다[11].
  • 박로미(朴璐美, 파쿠 로미): 1972년생 일본의 성우. 2015년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 Pile: 1988년생 일본의 가수, 성우.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 이토 사이리: 일본의 배우로 부모 중 한 명이 한국계에 속한다.
  • 프랭크 나가이(1932~2008): 일본의 가수. 1955년 데뷔 이래 재즈풍의 저음 창법으로 유명세를 날렸다. 1985년에 사생활 문제로 자살을 기도했다가 목숨을 건졌으나, 사망 전까지 뇌 장애를 입어 투병했다.

4.6. 스포츠

  • 마쓰야마 류스이(松山 龍水): 1976년생 일본의 스모 선수. 긴카이야마 류(金開山 龍)라는 링네임(시코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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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 타다나리(李 忠成, 이충성): 1985년생 일본의 축구 선수.
  • 역도산(力道山, 리키도잔) : 1924년생 일본의 프로레슬러. 일본명은 모모타 미츠히로(百田光浩). 귀화하기 전 이름은 김신락이다.
  • 사토 다다히로(佐藤 忠博): 1960년생 일본의 스모 선수. 링네임은 다이류 다다히로(大竜 忠博).
  • 아라이 히로마사(新井宏昌): 1952년생. 일본으로 귀화하기 전 한국 이름은 박종률(朴鐘律). 일본프로야구 선수였다. 귀화하기 전에는 통명인 '아라이 가네노리'를 선수 등록명으로 사용했었다. 스즈키 이치로의 선수 등록명을 イチロー(이치로)로 변경하도록 고안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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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들이 미녀다. 근데 아버지랑 찍은 사진은 영 안 나왔네 장녀인 아라이 히사에(新井 寿枝, 1986-) 만화가 패션모델이며 2011년 미스닛폰 미스기모노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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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딸인 아라이 기코(新井 貴子, 1990-)는 2012년 미스닛폰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1등상)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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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시모토 히로키(吉本 大樹): 1980년생 일본의 모터 스포츠 선수. 재일교포 3세. 한국 이름은 주대수이며, 이 이름으로 2010년에 한국 그랑프리 운영법인 KAVO가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서 실시한 한국인 F1 레이서 선발전에도 참가했다. 또한 요시모토 다이키(한자 동일)라는 이름으로 록밴드 doa[14]의 보컬을 겸하고 있다.
  • 초슈 리키(長州力): 1951년생 일본의 프로레슬러. 2016년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 하야카와 나미(早川 浪): 1984년생. 전북 전주 출신으로 양궁 선수이며 어머니가 일본인과 재혼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2006년 귀화. 2007년 일본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해 일본 신기록을 경신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선 여자 개인에서 6위, 여자 단체 8위. 현재는 은퇴. 한국 이름은 엄혜랑(嚴恵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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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야카와 렌(早川 漣): 1987년생. 하야카와 나미의 동생으로 언니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일본인과 재혼하면서 일본으로 갔고 양궁 선수로 활동했다. 2009년 일본으로 귀화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이름은 엄혜련(嚴惠漣).
  • 야마네 아키라(山根 明): 1939년생 前 일본 복싱연맹 회장. 복싱단체 WYBC 창설자. 연맹관계자로부터 승부조작[15]을 비롯한 13가지 항목에 대해 고발을 당하며 협회에서 제명압박을 받던 중에 기자회견을 통해 회장직을 사임했다.[16]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광복 후 6살 때 어머니를 따라 부산으로 넘어갔다가 당시 극에 치달은 반일감정 때문에 집단괴롭힘을 당했고,[17] 결국 11살에 일본으로 밀입국을 하여 27세까지 무국적자로 살다가 40세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18] 출생시의 한국명은 문갑명(文甲明). 2012년에 결혼한 부인 토모미 씨[19]도 한국계이다.[20]
  • 구지원(具智元): 1994년생 럭비 선수. 2019년 일본에서 열린 2019 럭비 월드컵에 일본 대표로 참가했으며, 2019년 12월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
  • 니우라 히사오(新浦 壽夫, 김일융): 1951년생 일본의 야구 선수.
  • 미츠야마 히데카즈(光山 英和): 1965년생 일본의 야구 선수. 현재는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배터리코치이다.
  • 후지모토 히데오(藤本 英雄, 이팔용): 1918-1997. 일본의 야구 선수. 1943년 0.73의 평균자책점은 불멸의 기록. 요미우리 최초 외국인 감독이다.

4.7. 학계

  • 우장춘: 1898-1959. 아버지 우범선 때문에 히로시마에서 자랐고, 한국인의 일본 망명을 지원하던 스나가라는 인물의 양자로 들어가 스나가 나가하루(須永 長春)란 통명을 썼다. 뒤에 한국인으로 국적회복했다.

4.8. 기타

  • 마고(프로게이머) - 일본명: 하야시 켄료, 한국명: 임현형. 일본의 프로게이머. 2012년에 비자 문제로 트러블이 생겨 한국적임을 고백하였다. 세계최대의 격투게임 대회인 EVO에서는 줄곧 일본명인 HAYASHI KENRYO로 엔트리 했으나, 국적이 밝혀진 이후에 개최된 2013년의 EVO 2013에서는 한국명인 Hyeonhyeong Im 으로 엔트리하였다. 이는 국적이 밝혀지자 손바닥을 뒤집고 마고를 까대기 시작한 넷우익 유저들에 대한 반발로 사료된다. 현재는 귀화하여 국적은 일본.
  • 조 케이토(城 景都): 1946년생 일본의 화가. # #

5. 도래인/역사적 한민족계 일본인

위키백과 일본어판의 카테고리

  • 임성태자(琳聖太子): 생몰년도 미상. 백제 왕족 출신이며 오우치 가문의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26]

6. 왕공족

  • 모모야마 켄이치(桃山 虔一): 1909-1990. 한국 이름은 이건으로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아들. 일본군 대좌(대령)로 복무하였고 전후에 신적강하가 이뤄지며 왕공족의 권한이 소멸하면서 모모야마 켄이치란 이름을 쓰고 도쿄에서 제과점 등을 운영하였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조선 출신은 일본 국적이 박탈되면서 조선적이 되었지만 1955년에 귀화했다. 영친왕과는 달리 반일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Prince_Yi_Geon_and_his_wife.jpg

7. 관련 문서

8. 가상 인물


[1] 한국 국적이나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2]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연예인 중에도 한국계 혹은 조선계임을 숨기는 사람은 꽤 있다. 특히 과거 조선적( 조총련계가 아니다)이었던 사람들에 관한 정보는 한국에 언급되지 않을 뿐, 일본의 조총련계 학교에서 흘러나오는 증언 중에는 놀라운 것이 많다. [3] 이는 아이누 민족이나 류큐인 등 일본의 소수민족들이 차별을 피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보였던 현상이다. [4] 일제강점기엔 조선에 본적을 둔 일본인으로 구분. 그러나 간혹 본적을 일본으로 옮기는 편법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5] 한국, 러시아의 화교들은 반대로 북중국 지방 출신이 대다수다. [6] 경상도, 제주도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서로 영향을 좀 받기도 한다. [7] 중국의 조선족과 러시아의 고려인은 반대로 대개 지금의 북한 지역 혈통이다. [8] 일본은 1986년까지 부계혈통주의여서 아버지가 일본 국적이어야만 일본 국적을 줬다. 한국도 1998년까진 그랬다. [9] 그룹 회장이 재일교포다 보니 자사 로고에 영어, 일본어에 한글도 병기한다. 덧붙여 마루한이란 이름은 파칭코의 구슬(丸, 마루)과 한창우의 회장의 성에서 따와 지어졌다. [10] 아오야마는 외가 성 [11] 사족으로, 가수 이현우의 대학 동기여서, 이현우와는 구면이라고 한다. [12] 디진다 돈까스 먹방 영상이다. [13] 딸 세명은 일본 국적자이지만 아들 세명은 전부 한국 국적자이고 병역의무도 장교로 마쳤다. 그중 큰아들은 현재 의정부 본 정형외과 원장이다. [14] 울트라맨 넥서스의 주제가 英雄(영웅)과 青い果実(푸른 과실)을 부른 밴드이다. [15] 나라현 출신 복서에게 유리한 판정을 주는 소위 '나라판정(奈良判定)'이라는 관례로 2018년 유행어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야마네 회장이 직접 조작을 명령한 게 아니라 복싱불모지 나라현의 복싱저변을 넓히고자 나라현 출신 복싱을 노골적으로 편애했었고, 협회관계자들이 눈치를 보느라 회장의 비위를 맞추려고 편파 판정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린 일종의 손타쿠이다. [16] 말이 사임이지 실질적으로 영구추방에 가까운지라 연맹 복귀는 거의 불가능하다. [17] 엄밀히는 일본인이 아닌 재일 한국인이었지만 당시엔 재일 한국인도 왜놈이라며 차별을 받던 시절이다. 비단 당시 뿐만이 아니라 1990년대 정도 까지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및 일본내 한류 열풍 등으로 교류가 늘어나면서 그런 오해가 줄기는 했으나, 2020년 현재까지도 어느정도 남아있는 문제이다. 당장 나무위키 내부에서만 봐도 한국계 일본인과 재일 한국인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서술이 넘쳐난다. [18] 27세부터 40세 사이의 국적에 대해서는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는데, 국외로 추방되지 않고 일본에서 생활한 것으로 봐서 재일 한국인 특별영주권을 취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 한국명은 이진(李眞). IMF 때 일본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다가, 한국의 남편과 이혼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차린 업소에서 손님으로 온 야마네 회장과 친분을 쌓다가 결혼했다. [20] 현재의 본명은 야마네 토모미인 걸로 봐서 일본으로 귀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영주권을 받으면서 귀화를 한 것인지 야마네 회장과 결혼하면서 귀화를 한 것인지는 불명. [21] 본가가 아예 거기에 있다. [22] 조부모 묘소가 대구 인근에 있다. [23] 본가가 있어서 자주 방문한다고 한다. [24] 특이하게도 일본 이름이 한국어인데, 이는 추성훈이 귀화 당시에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셨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가 반대를 하셨는데, 이 탓에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대신 아버지에게 자식 이름은 한국어로 짓겠다는 약속을 해서 한국어인 '사랑'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훗날 추성훈의 아버지는 방송에 출연해 손녀의 이름이 한국어인 것에 대해 선물받은 것 같다며 기뻤다고 한다. 참고로 추성훈이 방송에서 사랑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한다. [25] 다만 현재 전해지는 버전은 13세기 『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에 실린 것이다. [26] 일단 실존인물인지 여부는 알기 어렵다. 《신찬성씨록》에 따르면 오우치 가문의 선조 가문은 일단 백제계가 아닌 임나(가야)계통 성씨로 분류되고 있다. 오우치 가문은 훗날 메이지 유신을 이끈 조슈가 모리 가문의 영지가 되기 이전에 수백년 동안 해당 지역을 근거지로 한 때 6개 국을 지배하던 서일본 최대의 영주였는데 조선 건국 초기부터 거의 20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꾸준히 조선에 사신을 파견하고 한 번은 자신들이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인데 선계를 상고할 만한 자료를 원한다고 요청한 바 있으나 조선 조정에서 관련 기록이 없어서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조선왕조실록DB에서 "대내전"이라 검색해보면 오우치와 조선의 수 많은 교류 기사를 확인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