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4a2d5b><colcolor=#FFFFFF>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FFFFF> |
羅州 金氏 나주 김씨 |
}}} | |
관향 | 전라남도 나주시 | |||
시조 | 김운발(金雲發) | |||
중시조 | 김정준(金廷雋)•김인충(金仁忠) | |||
집성촌 |
전라남도
무안군 충청남도 공주시• 청양군 충청북도 옥천군 평안남도 성천군 평안북도 태천군• 영변군• 박천군 경기도 화성시 |
|||
인구 | 51,060명(2015년) |
[clearfix]
1. 개요
나주 김씨(羅州 金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2. 역사
시조 김운발(金雲發)은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조에 문하시중(文下侍中)에 수작되고 나주군(羅州君)에 봉해졌다고 한다.[1] 후손 김극순(金克淳)이 안로 현주에 오르면서 비로소 고관대작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김극순의 현손 김대경(金臺卿)은 고려말 출사하여 1326년 문과 급제 후 보문각 대제학에 올랐으며, 문장이 뛰어나 동문선에 이름을 올렸다. 목은 이색(李穡)과 함께 나주 안로현으로 유배되어 생활하였다.
조선시대 들어 김정준(金廷雋)은 태종때 동북면 난을 평정한 공을 세우고, 전주 부윤(全州 府尹)·중군 총제(中軍 摠制)를 역임하며 가문을 중흥시켜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中始祖)로 모시고 있다.
김경석(金景錫)과 김적(金適)은 을묘왜변때, 김충수(金忠守)는 임진왜란 때 무신으로 왜구를 격퇴시키는 큰 공적을 세웠고,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소재 우산사(牛山祠)에 제향되었다.
3. 상계 논란
조선 후기 1784년(정조8년) 개성 북쪽 종암산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김은열 묘지명〉에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 후 고려 태조의 딸인 낙랑공주 왕씨들을 후비로 맞아들여 8남을 더 두었는데, 이들 8자들의 이름이 '일(鎰) · 굉(鍠) · 명(鳴) · 은열(殷說) · 중석(重錫) · 건(鍵) · 선(鐥) · 종(鐘)'이라 한다.이듬해 1785년 김은열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경헌공 김사목이 경주 김씨 족보를 수보하면서 《김은열 묘지명》을 바탕으로 《보국대안군 은열공 묘지명》을 추기하였는데, 여기서는 2자 '굉'을 '황'(湟)으로 3자 '명'을 '명종'(鳴鍾)으로 개명하고, 4자 '은열'의 시호를 '보국대안군'이라고 지어내는 등 가필을 넘어 거의 작문 수준에 가깝게 서술하였다. 이후부터 경주 김씨 일문 족보류에 경순왕의 8자들의 이름 및 서차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은열 묘지명》은 찬한 사람도 없고, 배위 및 생애 등도 누락되어 있으며,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다. 또 경순왕 슬하 8형제들의 이름 또한 《고려사》 등의 정사는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조선 후기 족보 편찬 과정에 위조된 지석을 바탕으로 가탁 내지 조작된 사실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현재 이러한 묘지명은 신빙성이 없어 사료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후 일부 후손들이 족보류에 시조 김운발의 아버지 이름이 '김황'(金湟. 또는 '김굉'(金鍠))이라 한다.
그러나 〈김은열 묘지명〉과 같이 발견되었다는 〈김굉 묘지석〉에도 2자 '김굉'과 4자 '김은열'은 고려 태조의 외손인 낙랑공주 왕씨 소생으로 고려조에 평장사를 지내고, 공이 있는 신하여서 장지를 특별히 하사해 주었다고 하였다.
4. 집성촌
전라남도 무안군충청남도 공주시, 청양군, 예산군
충청북도 옥천군
평안남도 성천군
평안북도 태천군, 영변군, 박천군
경기도 화성시
광주광역시
5. 출신 인물
- 김계원 : 육군대장, 육군참모총장, 중앙정보부장, 대통령비서실장
- 김길선
- 김민형 : 수학자
- 김병립
- 김서은
- 김시헌
- 김용무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제2대 국회의원, 전 고려대학교총장
- 김용현(1913)
- 김우창 : 문학평론가, 영문학자
- 김웅권
- 김웅진(1906): 제헌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
- 김윤 : 정치인
- 김의택 : 정치인
- 김의형
- 김지형
- 김창석
- 김철주(1957)
- 태연 : 그룹 소녀시대 멤버
- 김하연
- 김지호
[1]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시조 김운발의 아버지는 경순왕의 막내 아들로 신라가 망하자 입산하여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법명을 범공이라 하고 해인사에 왕래하다 종신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