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18 15:09:44

리히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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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ür Gott, Fürst und Vaterland
하느님과 후작, 그리고 조국을 위하여.
상징
국가 Oben am jungen Rhein
( 저 라인 강 위쪽으로)
역사
건국 1719년 1월 23일
독일 연방 탈퇴 1866년 8월 24일
수도 최대 도시
파두츠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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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38,557명(2019년)
인구밀도 237명/㎢(2019년)
출산율 1.48명(2019년) 출처
기대 수명 80.5세(2018년)
공용어 독일어( 스위스 독일어)
공용 문자 라틴 문자
종교 국교 가톨릭
분포 가톨릭 73.4%, 개신교 14.5%, 이슬람교 5.9%, 다른 기독교 계열 7%(1.3% 정교회), 무종교/명시되지 않음 18.3% ( 2020년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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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93년 3월 1일
북한: 2001년 5월 2일
무비자 협정 한국인→리히텐슈타인: 무비자 90일
리히텐슈타인인→대한민국 : 불명
여행경보 여행자제: 전 지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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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3. 역사4. 언어5. 정치
5.1. 군주와 공가5.2. 의회5.3. 선거
6. 국방/치안7. 사회8. 경제9. 관광과 교통10. 스포츠11. 외교
11.1. 대한민국과의 관계11.2. 독일과의 관계11.3.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12. 창작물에서

[clearfix]

1. 개요

유럽의 중부, 오스트리아 스위스 사이에 있는 나라로, 면적은 160.4㎢로 성남시 면적과 비슷하고, 인구는 3만 8천 명밖에 되지 않는 매우 작은 나라다.[2] 게다가 인구의 34%가 외국에서 왔다. 수도는 인구 5천 명 정도의 파두츠(Vaduz). 바다에 닿아 있지 않은 내륙국이며 그중에서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전 세계에서 2개국뿐 이중내륙국[3]에 속한다.

EFTA의 가입국이지만, 유럽연합에는 가입되어 있지 않은 4개국[4] 중 하나다. EU 가입국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지만, 리히텐슈타인의 외교를 위임받은 스위스가 영세 중립국이라는 정치적 문제로 EU 가입을 하지 않고 있으며, 스위스가 보호국으로 여기는 리히텐슈타인도 마찬가지로 영세중립국이라는 이유 등으로 스위스의 정책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지리적 표시제도 스위스에 묻어 갈 정도.

국가의 정식 명칭은 리히텐슈타인공국[5] <(독) Fürstentum Liechtenstein> <(영) 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인데, 이름처럼 국가원수가 왕(King)이 아닌 Fürst이다.

참고로, Fürst는 대공·공작·왕자·후작 등 중구난방으로 번역되고는 하는데, 이는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까닭이다. 자세한 것은 공작, 공국, 후작, 후국, 프린스 문서 참고. 참고로 중국에서는 모나코와 함께 간단히 리히텐슈타인 '친왕국'으로 부른다.
리히텐슈타인 관련 영상

2. 상징

2.1. 국호

나라 이름인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은 공가 이름이기도 하다. 서유럽, 중부유럽의 많은 귀족 가문들이 자신의 영지를 성씨로 사용한 것처럼 리히텐슈타인 가문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영지 이름인 리히텐슈타인을 성씨로 삼았기 때문인데 엉뚱하게도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오늘날의 리히텐슈타인공국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에 있는 성(城)에서 유래했다. 즉, 현재의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지명과 리히텐슈타인공국이라는 국호는 리히텐슈타인 지역의 공국이라는 뜻이 아닌 리히텐슈타인 가문이 다스리는 공국이라는 뜻이다.

가문명의 유래가 된 리히텐슈타인 성(城)은 '빛나는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오스트리아의 수도 근교에 있다. # 이 성은 12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소 1140년에는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소유물이었음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직접 쌓은 듯하다.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이 성의 소유권을 13세기 에 상실했다가 제1차 빈 공방전 때 폐허가 된 뒤 1808년에야 되찾았다. 지금 보이는 성은 1884년에 복구한 것. 그 뒤로 줄곧 리히텐슈타인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다. ( 독일 뷔르템베르크에도 같은 이름의 성이 하나 있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

2.2. 국기

리히텐슈타인의 국기는 파랑 빨강 2가지 색에 공작을 상징하는 왕관 문장이 있는 깃발이다. 1921년에 제정한 국기로 파랑은 하늘을 상징하고 빨강은 열정과 불을, 금색은 공가(公家)와 단합을 상징한다. 파란색에 있는 금빛 왕관 문장은 국가원수인 공작을 상징하며 이 나라가 공국임을 의미한다. 원래는 관 문양이 없었지만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아이티와 국기 배색이 비슷해서 하도 오인되는 경우가 많자 이를 계기로 추가한 것이다.

2.3. 국가

리히텐슈타인의 국가는 ' 저 라인 강 위쪽으로'라는 제목을 사용하고 있지만 영국 국가 God Save the Queen을 가사만 바꾼 것이라서, 가사를 잘 안 듣고 있으면 착각하기 쉽다고 한다. 사실 독일 독일 제국 시절 국가가 God save the Queen과 같은 멜로디에 가사만 다른 Heil dir im Siegerkranz이기도 했고, 원래 왕을 찬양하는 노래의 원조급이 영국 국가라서 다른 나라에서도 영국 국가에서 가사만 바꾼 왕 찬양 노래가 많았다.

그 예로 유로 2004 예선에서 잉글랜드와 리히텐슈타인과의 경기가 있었는데, 똑같은 멜로디의 국가가 2번 나왔고 잉글랜드 선수들은 영문도 모르고 국가를 두 번 불렀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반대로 유로 2012 예선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이 스코틀랜드와 원정경기를 하기 전 국가제창을 하였는데, 영국 국가와 음이 똑같은 리히텐슈타인의 국가가 연주되자 스코틀랜드 팬들이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결국 경기가 끝나고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는 사과하였다. 관련 기사 그 상황의 현장

3. 역사

이 지역은 본래 신성 로마 황제의 직할영지였으나,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한스 아담 1세가 제국의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 셸렌베르크 남작령(Herrschaft Schellenberg, 1699)과 황제 직할 영지인 파두츠 백작령(Grafschaft Vaduz, 1712)을 매입하여 합쳤다.[6] 그 뒤 17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윤허로 공국(Fürstentum)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7]

이렇게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얻은 영지였고, 땅부자였던 과거 리히텐슈타인 가문 입장에서는 제국의회를 제외하면 크게 부유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영지였기 때문에 리히텐슈타인 가문원 중 1818년까지 공국을 방문한 이는 없었다. 재위 중인 리히텐슈타인 대공이 처음 방문한 해는 1842년이였다.

이후 프랑스 혁명과 뒤이은 혁명전쟁 당시 오스트리아의 봉신국으로서 참전했다. 당시 리히텐슈타인 공은 오스트리아군의 주요 지휘관 중 하나였으며, 그는 기병 2,000기를 이끌고 보병 7,000여 명 규모의 일개 군단을 격파하는 무쌍을 벌이기도 했다.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다가, 1806년 라인 동맹에 가입하고 1815년 독일 연방에 가입하는 등, 이리저리 돌다가 1866년 정식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이 무렵의 군주인 요한 2세(별명은 "선량공 요한(Johann II der Gute)")는 70년 간 재위하면서(1858~1929년) 유럽 주권국의 군주 중에선 세 번째로 오래 재위했다.[8] 본래 리히텐슈타인 공작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신하인 탓에, 1867년의 대타협 이후로도 리히텐슈타인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화폐를 사용하고 총리를 비롯한 주요 각료에 오스트리아인이 임명되고, 리히텐슈타인 공작가도 에 거주하는 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후국에 가까웠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오-헝 제국이 붕괴되면서 실질적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이후 1921년 신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하였으며 이전( 1852년)에 오스트리아와 맺었던 관세동맹을 폐지하고, 새로이 스위스와 관세동맹 ( 1919년)을 맺고 스위스 프랑을 기본통화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1938년 이후로는 공가도 리히텐슈타인에 살게 되었다. 당시 공비 (프란츠 1세의 후처) 엘리자베트 유대인이라 빈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현존하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제후국'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중립국이었으나, 프란츠 1세의 비가 유대인이었기에 나치를 매우 경계했다. 그래서 보호국인 스위스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군비를 크게 늘려 군인 숫자가 리히텐슈타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500여명까지 늘어났다. 한편 독일계 국가인 특성상 이웃나라인 오스트리아가 전간기에 그러했듯이 대독일주의가 유행하면서 나치 독일에 편입하자는 ‘국가연합당’이 많은 지지를 얻게 되나 상술했듯이 후작비가 유대인인 관계로 대거 탄압당하고 해산되었다. 여하튼 나치에 적대적이었으나 중립국인 스위스와 연계된 것도 있고 워낙 규모가 작아서 나치를 탄압하든 말든 딱히 큰 영향이 없어서인지 다행히도 독일의 침공을 받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1945년 종전 이후 러시아 해방군 500여명이 망명을 신청하게 되는데, 왕정 국가라 나치보다도 공산당이 훨씬 싫었는지 발광하는 소련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들의 망명을 전원 받아준다. 한편 러시아 해방군 소속 군인들에게는 리히텐슈타인에 귀화하기, 남미 등 중립국으로 떠나기, 그리고 소련으로 돌아가기(...)라는 세 선택지가 제시되었는데 지휘관인 보리스 스믜슬로프스키 장군을 포함한 소수는 리히텐슈타인에 남고 200명 정도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소련으로 돌아가기를 택했다고 한다. 나머지는 중립국행을 택했다고. 그리고 소련으로 돌아가기를 원한 200명은 불행하게도 소련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헝가리에서 즉결처형당했다.

한편 리히텐슈타인 공작가는 체코슬로바키아에 1,600㎢가 넘는 영지(리히텐슈타인 영토의 열 배, 트로파우 공국)를 가지고 있었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가 귀족들의 영지를 몰수하면서 모두 상실했다. 게다가 나치가 안슐루스로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거처를 리히텐슈타인으로 옮겼고, 제2차 세계대전 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독일계를 쫒아내면서 자국 영토 내의 리히텐슈타인 영지를 전부 몰수해버리자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공가의 영지인 현재의 리히텐슈타인으로 거주지가 확정된 것이다. 그래서 리히텐슈타인은 체코 슬로바키아와 외교 관계가 없었다가, 2009년 뒤늦게 수교했다. 그러면서 영지를 반환하라고 재판까지 갔지만, 패소했다. # 그리고 유럽인권재판소에서까지 다투게 된다. #

대량의 영지를 상실하고 리히텐슈타인만 남게 되자, 원래 농업 외에 별다른 산업이 없었던 리히텐슈타인 경제상황 때문에 공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동안 대대로 수집했던 예술품을 내다 팔아서 연명해야 했다. 하지만 돈세탁에 손을 대면서 지금은 굉장히 부유해졌다.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종가는 오스트리아에 있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한 저택으로 어지간한 궁궐보다도 크다. 현재는 상당 부분 외부에 개방되어 관광 명소로 유명하다고. 리히텐슈타인 후작이 1년에 두 번씩 종가에 방문하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빈에 있는 공가에 관광객은 방문할 수 없다. 관리자가 리히텐슈타인 대공 본인 앞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실질적인 월경지같은 역할인 듯.

4. 언어

주요 언어는 독일어.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지역 방언 알레마니슈(Alemannisch)를 쓴다. 리히텐슈타인의 ch발음이 좀 센 편이라 자국명을 읽을 때는 '릿쉬텐슈타인' 정도로 읽는다고 한다.

5. 정치

중부유럽 정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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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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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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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슬로바키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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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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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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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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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5.1. 군주와 공가

리히텐슈타인의 현 군주는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한스 아담 2세이다. 리히텐슈타인의 군주는 독일어 원어로는 Fürst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대공, 공작, 공(), 후작 등 여러 가지 번역어가 난립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공작(작위), 프린스, 후작, 공국 문서 참조.

입헌군주국이기는 하지만 군주에게 법안의 거부권이나 의회의 해산권[9]이 있는 등 제법 권력이 강한 편이다. 전 세계 군주들의 권한이 날이 갈수록 축소되는 와중에[10] 리히텐슈타인은 이례적으로 21세기 2003년에 군주의 의회 해산권, 법관 임명권, 법률 거부권 등을 골자로 하는 왕권 확대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통과함으로 군주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었다. 영국 BBC에서는 이걸 두고 리히텐슈타인이 사실상 전제군주제 국가가 되었다면서 깠다(...)[11] 심지어 2012년에는 유럽연합에서 리히텐슈타인의 왕권이 비민주적이라는 경고를 받아 다시 공작의 법안거부권을 박탈할 것인지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80%에 가까운 리히텐슈타인 국민들이 공작이 법률 거부권을 가지는 것이 맞다고 공작을 지지했다. 공작가에서 내는 돈이 없으면 국가운영이 곤란하다! 공화제를 포함하여 현존하는 모든 상징적 국가원수들을 모아보아도 상징적 직위치고는 권한이 가장 많다.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리히텐슈타인 공의 권한을 프랑스 대통령과 비견하였다.

재위중인 다른 유럽 왕실들이 왕위 계승의 법칙을 절대장자상속제로 속속 갈아타고 있는 중에도 고고하게 살리카법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에서 바꾸라고 했지만, 한스 아담 2세는 그 법이 리히텐슈타인 공국 성립 전에 만들어져서 내 마음대로 못 바꾼다고 말했다.[12] 남계 자손만으로도 계승권자가 50명이 넘어 계승법을 바꿔야 할 절박한 이유도 없기도 하고. 젊은 남자 후손이 단 1명뿐이라 대 끊기기 직전인 일본 황실이 보면 부러워할 듯 농담이 아니라 현존하는 유럽 왕실은 정치적인 이유로 모계계승 및 동군연합이 일상이었으나, 이 가문은 역설적으로 가문이 작아서 계승권 견제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남계 후손이 많다. 가문 작위가 낮아서 귀천상혼 가드라인이 낮은 것도 도움이 됐다.[13] 귀천상혼 한계선을 높게 잡은 여러 구 왕가들이 줄줄이 갈려나간 걸 생각해 보면(...) 그리고 가톨릭에 충실하게 다산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렇게 늘어난 후손들의 남녀성비를 볼때 남초현상이 심해서 그냥 현행대로 놔두는게 최선.

공작 가문의 모국어 독일어지만,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기본적으로 한다. 공작 가문이 사업을 해 번 으로 국가 예산의 상당 부문을 충당하는 등의 이유로 리히텐슈타인의 세율은 매우 낮다.[14]

이처럼 공작 가문이 국가 예산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공작의 권한이 크고 국민들도 인정하고 있다. 한가지 예시로 리히텐슈타인 의회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공작 한스 아담 2세의 장남 섭정 알로이스 공자가 보수 귀족[15]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지 "나라를 빌 게이츠에게 팔고 국명도 마이크로소프트로 바꾼 후 오스트리아 빈의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위협했다. 리히텐슈타인은 공작가의 가산으로 유지되는 나라라 결국 의회는 알로이스 공자에게 굴복, 법안을 거부했다. 뉴욕타임즈 기사

5.2. 의회

정치 체계는 총리와 부총리와 3명의 장관이 있는데, 이 5명이 기본적으로 3개씩의 장관직을 겸임하고 있다.
  • 총리, 재무부 장관 겸임
  • 부총리, 경제·건설·스포츠부 장관 겸임
  • 외무·법무·문화부 장관 겸임
  • 사회부 장관 겸임
  • 내무·교육·환경부 장관 겸임

의회는 정원이 25명인데, 전 국토를 저지(Unterland)와 고지(Oberland)의 2개의 선거구로 나누어 저지 선거구에서는 10명, 고지 선거구에서는 15명을 선출하며, 총선은 4년마다 열린다. 유권자는 자신이 속한 선거구에서 정해진 선출 인원수만큼 투표용지에 기표할 수 있다. 그래서 유권자 수가 2만 명을 넘지 않지만 유효표 수가 20만 표 가까이 나온다.[16]

리히텐슈타인에서 선거권을 얻으려면 만 18세 이상의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가져야 하며, 선거에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만 18세 이상의 리히텐슈타인 시민권을 가진 자격 있는 선거인단이어야 하며, 출마하는 선거구 내에서 30명 이상의 유권자에게 지명을 받아야 한다.

5.3. 선거

파일:리히텐슈타인 의회 로고.png
리히텐슈타인 의회의 원내 구성
(괄호 안은 리히텐슈타인 의회 의석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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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 여당 진보시민당
(10석)
애국연합
(10석)
야당 자유명단
(3석)
민주당
(2석)
재적
25석
}}}}}}}}}


기본적으로는 보수우위를 지내고 있으며, 거의 60년 이상 진보시민당[17]+조국연합[18]이 같이 연립집권하고 있다. 특이점은 총 의석 수가 적다보니 소수 정당 난입을 막기 위한 것인지 봉쇄조항이 무려 8%[19]이다. 의석 수가 25명밖에 안되다보니 진짜 한두명에 여당 야당이 왔다갔다 하는 위태로운 상황이 선거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진보시민당, 조국연합이 같이 연정하고 있어 문제는 없다. 오랜동안 원내에서 양당제로 가다가 1993년 2월 총선에서 자유명단[20]이 원내진입하여 양당제가 깨지게 된다. 2013년 총선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독립당[21]이 0석에서 4석으로 첫 원내진입했지만, 독립당 내 내분이 일어나 일부는 민주당을 새로 창당했으며, 독립당은 2021년 총선에서 0석으로 몰락한다.

투표율이 높아 70% 후반대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스위스가 낮은 투표율로 고민이 많은 것과는 다르게 투표율이 높다.사람이 적어서 그런게 아닐까?

국민투표를 자주 시행한다. 1년에서 2년에 한 번 치른다. 한편 헌법 113조에는 공화제로의 전환 절차도 규정해 놓았다.[22] 국민투표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시민 1000명을 서명하면 일반법안과 재정법안에 대해서 국민투표를 가진다. 또, 1500명이 넘으면 헌법과 국제조약 변경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지방선거에서 지방자치장은 결선투표제를 통해 선출되고 있다. 여성 참정권이 유럽에서 가장 늦게 얻어진 나라인데 1984년의 일이다. 여성참정권에 대한 1969년 첫 국민투표에서는 54.5% 반대,[23] 1971년 국민투표에서는 51.1%로 부결되었고 1973년에는 55.9% 반대, 그러다 1984년에 51.3% 찬성으로 4수 만에 통과된 것이다. 이렇게 정치가 현대 기준으로 군주 중심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은 지상낙원 그 자체인 데다가 국가재정 대부분을 공작 개인재산으로 충당해서 딱히 불만은 없는 모양이다.

6. 국방/치안

파일:리히텐슈타인_국가경찰.jpg
리히텐슈타인 경찰의 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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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준으로도 작은 공국이었던 이유로 군사력을 키워서 다른 나라를 공격할 이유도, 군사력을 키운다고 해서 주변국이 작정하고 침공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외교에 집중하고 실질적인 군사력은 매우 작은 규모의 군대를 유지해왔다. 독일 연방 가입 시에는 외교적 조약 때문에 군사적 개입이 의무시되었기 때문에 1866년에 발발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 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80명의 리히텐슈타인군을 파병했는데, 교전은 없고 날씨가 나빴던 관계로 이탈리아 국경 근처에서 6주 동안 야영하다 사상자 없이 복귀했다. 중간에 친구도 하나 데리고 와서 81명이 되었다 보오전쟁 이후로 외교상 조약에 따라 파병할 의무가 사라졌기 때문에 1868년 12월 군대를 해산한다. 1939년에 95세로 사망한 기수병 출신 남성이 리히텐슈타인군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중립국을 표방하며 현재 외교와 국방은 스위스에 위임하고, 1933년 창설한 리히텐슈타인 경찰(Liechtenstein Landespolizei)이 치안을 맡고 있다. 유럽의 다른 미니국가 안도라, 바티칸 시국 등과 더불어 '군대가 없는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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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경찰. 위 15명이 리히텐슈타인 경찰력의 10%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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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eitschaftspolizisten

경찰 인원은 2013년 기준 겨우 소화기로 무장한 130명이 전부이다. 영국의 'Special Constabulary'같은 Bereitschaftspolizisten라는 제도가 있어 일반 시민이 파트타임으로 경찰로 활동할 수 있다. 위 사진의 12명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2013년 기준 32명. 리히텐슈타인은 전 세계에서 범죄율 최저 수준의 국가 중 하나[25]로 범죄율이 매우 낮아 수감시설도 매우 적어서, 리히텐슈타인에서 2년이 넘는 징역을 선고받을 경우, 이웃 오스트리아 감옥으로 이송된다. 리히텐슈타인 경찰은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3개국 협정을 체결하여 공동으로 범죄인 관리를 한다고 한다.

워낙 나라가 작아 뜻하지 않은 침공을 3차례나 받았는데 전부 스위스(...)였다. 1985년 12월 5일에는 스위스군이 포병 훈련을 하다가 숲을 태워버리는 바람에 보상금을 지불했다. 1992년 10월 13일엔 스위스의 장교후보생들이 독도술 훈련을 하다가 트리젠베르크(Triesenberg)를 스위스령인 줄 알고 침입했다. 2007년에는 스위스군 1개 중대가 군사훈련 중, 야간에 악천후로 인해 길을 잃는 바람에 실수로 리히텐슈타인 영토를 1.5km가량 침범했다고 발표하며 사과를 했으나, 정작 리히텐슈타인 정부에서는 스위스에서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스위스의 사과 후 리히텐슈타인은 "이전에도 이런 일은 있었으며, 아무도 스위스가 침공한 것을 알지 못했다."라고 성명을 내면서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2차대전 이후 최대의 군사 위협

2004년 유로컵 예선에서 리히텐슈타인의 라인파크 스타디움에서 리히텐슈타인과 잉글랜드의 경기가 치러졌다. 리히텐슈타인측은 훌리건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로부터 400명의 경찰인력을 지원 받았다.2차 대전이래 70년만에 최대의 안보 위기 그러나 경찰이 성난 훌리건을 통제하는 사태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관련 기사. "리히텐슈타인이 잉글랜드의 침공에 대비하다."

2011년 이후에는 부족한 인력을 보완하기 위해 국경지역에 CCTV가 설치되어 운용중이다.

7. 사회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민주적이고 인권보호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민법에 비유럽인을 차별하는 조항이 많아서 인권단체들의 비난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차별사례는 특정 업종에만 취업이 가능하다든가, 귀화 조건이 까다롭다든가, 가족 초청이 힘들다는 점 등이 있다. 거주 인구의 34%가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빨리 고쳐야 할 점. 게다가 저소득자는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에 가입하기가 힘들다. 요구하는 소득액의 하한선이 있기 때문. 취업의 제한이 있는 비유럽계 외국인이 저소득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또한 인종차별로 비판받는 점.

나라가 작다보니 없는 것이 많은데, 다른 나라에 보통 있는데 여긴 없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군대를 꼽을 수 있다. 스위스에 국방을 위임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병역의 의무가 없으며,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국경에서는 출입국 검사도 없고, 통화도 스위스 프랑을 쓰고, 스위스와의 국경에는 세관도 없다. 반대로 리히텐슈타인과 오스트리아 국경에서는 출입국 사무소가 있으며,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스위스 관리들이 일하고 있다. 2011년부터는 솅겐조약 가입으로 더이상 CIQ를 실시하지 않으며 국경검문소 사무실도 거의 열지 않는다.

라디오 방송국은 4곳이 있고, TV 방송 개시는 굉장히 늦은 편이다. 무려 2008년 8월 15일에야 처음이자 유일한 텔레비전 방송국인 1FLTV가 개국되었기 때문. 여담으로 세계에서 가장 늦게 TV 방송이 시작된 나라가 리히텐슈타인이라고 한다.[26][27]

이 나라도 8월 15일이 국경일이다. 이날 독립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고, 가톨릭 성모승천대축일이라서 그렇다. 이를 봐도 알겠지만 국민의 대다수(76%, 2010년 기준)가 가톨릭 교도인 국가다. 개신교도 의외로 세가 있다(8.5%, 2010년).

인구의 5.9% 정도 되는 무슬림들이 기도할 곳을 구하지 못한다고 인권단체들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무슬림 인구는 2009년 퓨 리서치 센터의 통계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4.8%였는데, 2015년 인구조사에서는 전체 인구의 5.9%로 증가했다. 리히텐슈타인 거주 무슬림은 대다수가 수니파이며 민족적으로는 대부분 터키, 보스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출신이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리히텐슈타인 현지 무슬림의 숫자는 극히 적은지 따로 집계된 바 없다.

리히텐슈타인에는 기도실이 아닌 마스지도[28] 규모 되는 예배 시설이 없고 무슬림이 거주하기 시작한 뒤에도 오랫동안 이슬람 이맘이 종교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 때문에 무슬림들은 종교시설의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 다만 이슬람 이맘 문제는 2001년부터 1명의 이맘에 대한 장기 종교 비자와 라마단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머무를 1명의 이맘에 대한 단기 종교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함으로서 어느정도나마 완화되는 추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 정부가 취한 이맘의 상주 허용 조치는 국내외 이슬람 공동체가 극단주의의 확산을 저지하겠다고 약속한 후 취해진 조치다.

8.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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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관광과 교통

나라 면적이 면적이니만큼 공항 같은 건 없다. 한국에서 갈 때 취리히 공항이 가장 가까운 공항.

가는 방법은 스위스의 국경 기차역인 자르간스(Sargans)에서 국경을 넘어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갈 수 있다. 기차를 타고 펠트키르히(Feldkirch)역에서 내린 뒤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는 버스를 타면된다. 아니면 펠트키르히역에서 스위스의 북스(Buchs)로 가는 철도노선을 이용하는것도 좋은 방법. 노선의 총 길이가 18km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경을 무려 2번이나 넘는다. 참고로 리히텐슈타인 내부에 있는 역은 총 4개고 총 연장 9.5km로 굉장히 짧다.

국경을 넘을 때는 여권검사가 없는데, 관광안내소에 가서 돈을 내면 여권에 기념 삼아 입국 스탬프를 찍어준다. 시내버스에는 '전국의 모든 버스 노선도'가 한 장의 그림에 들어가 있다. 노선은 총 13개. 리히텐슈타인군 농어촌버스

10. 스포츠

축구에서는 다른 소국들처럼 국제대회에선 승점자판기 신세이지만 그래도 꽤 이변을 낳았다. 축구 강국인 포르투갈을 이긴 전적이 있고, 2000년대에 들어서 스위스 슬로바키아를 상대로 승리하기도 했다. 2004년 룩셈부르크 원정에서 4-0 대승을 거둔 게 역사상 최다 골 승리 기록이다.

UEFA 회원국 중 유일하게 축구 프로리그가 없다[29]. 축구 클럽들이 7개 있지만 모두 스위스 리그에 참가한다. 수도 파두츠를 연고로 하는 FC 파두츠는 1부와 2부를 오가는 수준이긴 해도 최상위 리그에서 모습을 보이지만 나머지 6개 팀들은 죄다 하부리그에 위치해 있다. 다만, 스위스 리그에 참가하는 리히텐슈타인 클럽 들을 위해 리히텐슈타인 축협이 컵 대회를 매년 주최하고 있는데 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30] 진출 자격이 주어진다. 이 나라의 국대에 관해선 리히텐슈타인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이 나라 출신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2000년대 중반 이탈리아 무대에서 뛰었던 공격수 마리오 프릭이 뽑힌다. 헬라스 베로나와 시에나 소속으로 세리에 A에서 활약했던 그는 리히텐슈타인 국가대표팀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2018년부터 상술한 리히텐슈타인의 최상위급 팀이라 할 수 있는 FC 파두츠의 감독직을 역임하고 있고, 그의 아들 둘인 첫째 야닉 프릭이 독일 프로 축구팀인 에네르기 코트부스팀에서 활약 중이고, 둘째 노아 프릭은 스위스 챌린지 리그 뇌샤텔 크사막스 FCS에서 활약하고 있으면서, 리히텐슈타인 국가 대표의 책임을 이어받고 있는 중이다.

한국 스키어들에게는 일본 Onyone(온요네)사에서 만드는 리히텐슈타인 팀복[31]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리히텐슈타인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나라라서 스키는 기본적으로 잘 탄다. 그 때문인지 현재 IOC 가입국들 중 '동계올림픽에서만 메달을 획득한 나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만 동계올림픽 메달을 따오던 시절처럼 이 나라는 알파인 스키에서만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6개를 획득했다. 국제대회도 개최한 적 있다. 2015 유럽 유스 동계 올림픽을 오스트리아 포어아를베르크와 공동 개최했었다.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는 이 나라가 역대 올림픽에서 획득한 금메달과 은메달을 모조리 획득하며 사상 최고 성적인 종합 6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30년만에 알파인스키 여자 슈퍼대회전에서 티나 바이라터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여 카자흐스탄, 라트비아와 함께 메달 순위 공동 28위를 기록했다.

11.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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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독일), 베른( 스위스), 워싱턴 D.C.( 미국), ( 오스트리아), 브뤼셀( 벨기에)에 재외 공관이 있다. 이 일부 주요국과의 외교를 제외한 외교권은 스위스에 위임한 상태다.

또한, 바티칸과 함께 자국 내 외교공관이 없는 둘뿐인 나라이다.[32]

11.1. 대한민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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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독일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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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오스트리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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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창작물에서

한국과 일본의 순정만화에서는 모나코와 함께 툭하면 유럽의 백마 탄 왕자님이 사는 금테 두른 나라로 등장하곤 한다.일본은 천황가가 있는데 굳이 백마 탄 왕자가 필요할까[33] 나라 이름이 묘하게 이국적이면서 귀티가 나는 데다가, 하지만 직역하면 "빛나는 돌"이다. 즉 보석이네. 실제로 있는 나라면서도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소국이라는 점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환상을 자극해서 그런 듯 하다. 순정만화 설정에 딱 맞게도 역사가 오래된 귀족가문인데다 돈도 많기도 하고. 만화 속에선 마치 동화 속의 나라같은 국가로 표현되는데, 실제로 리히텐슈타인은 알프스 산맥 자락에 위치하고 고풍스런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광이 넘쳐난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종말의 이제타에서는 작품의 배경으로 나오는 에일슈타트 공국의 모티브가 되었다.

국가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는 위에 국방과 외교권을 실질적으로 스위스에 위임했다는 점을 고려했는지 스위스 아래의 보호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에서는 이웃국가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모두 등장하지만, 정작 리히텐슈타인은 등장하지 않는다.[34]

Hearts of Iron IV에서는 국토가 너무 작은 나머지 교황령, 산마리노, 안도라, 모나코 등과 더불어 등장하지 않는다. 모드로는 등장시킬 수 있지만 당연히 약소국이고, 세계 정복을 하려면 치트키나 모드의 힘을 필히 빌려야 한다.

사이퍼즈의 캐릭터 갈증의 플로리안이 이 국적 출신의 캐릭터로 알려져있다.


[1] 다른 유럽 군주국들에 비해 군주의 권한이 강한 편이다. [2] 고양시 덕양구 수준의 면적에 인구는 덕양구 내의 행신2동 정도밖에 안 된다. 또한 3만 명대면 그럭저럭 군 하나 정도 규모는 된다. [3] 리히텐슈타인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인 스위스, 오스트리아도 내륙국이다. 즉, 바다로 가기 위해선 최소 2개국을 거쳐야 한다. 카스피 해를 바다로 간주한다면 리히텐슈타인이 세계에서 유일한 이중내륙국이 된다. [4]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아이슬란드 영국 [5] 역어 채택에 따라서는 후국. [6] 당시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이미 현재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베니아 등 여러 지역에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전부 다 누군가의 봉신 자격으로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를 제외한 주군이 없어야 하는' 제국의회 참가 자격에 해당되지 않았다. [7] 단, Fürst (Prince) 작위는 1608년부터 칭하고 있었다. [8] 첫 번째는 프랑스의 루이 14세, 두 번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다만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까지 합치면 순위는 한참 내려간다. [9] 오늘날 내각제 국가에서 국가원수(군주나 대통령)가 거부권이나 의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가원수가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독자적으로 해산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가 드물다. 거부권은 사실상 행사하지 않으며, 의회해산 정부수반(총리)이 사실상 해산을 결정하고 국가원수가 이를 최종 확인만 해주는 역할을 하거나,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이 있을 때만 국가원수가 해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10] 스웨덴 왕국 1974년 국왕의 작위 수여권을 비롯한 그나마 남은 형식상 권력마저 모조리 박탈했고, 네덜란드 왕국 베아트릭스 여왕 시절에 왕권이 크게 축소되었다. [11] 사실 굳이 따지자면 교황령도 전제군주제에 더해 신정국가이기까지 하다. 물론 리히텐슈타인이나 교황령 같은 나라들은 아주 작은 소국들이어서 국제사회에서 별반 관심을 갖지 않는다. [12] 일단 여기는 계승법을 군주나, 정부, 의회에서 바꾸는게 아니라 가문 구성원 전체의 회의에서 결정한다. 문제는 이 집안은 직계후손부터 남초가 극심한 집안이라 어떤방식으로 투표를 하든 계승법 변경은 부결될게 뻔하고 계승법을 바꾸는 내용이 통과했다고 쳐도 순위가 밀리는 후손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방계라인까지 다 재산을 퍼줘야 하는 쓸데없는 일이 더 생긴다. [13] 역대 리히텐슈타인 공비를 보면 슈탄데스헤어 출신도 몇 있었지만, 통치가문 출신은 같은 리히텐슈타인 가문(...) 출신 1명 뿐이었다. 오히려 비텔스바흐 출신인 현 공세자빈 조피가 오버스펙급. [14] 리히텐슈타인에 세금이 '없다'는 말이 있으나 전반에 굉장히 잘못 알려진 오류다. 심지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18.12.05.~2019.02.10.에 걸쳐 열린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전시회에서도 ' 세금이 없다'고 설명했다. 세율이 매우 낮은 편이기는 하나, 엄연히 법인세, 개인소득세 등의 세금이 있다. [15] 라기보다 낙태를 금기시하는 가톨릭 신심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사실 가톨릭뿐 아니라 정교회 개신교도 (피임이라면 모를까) 낙태는 극악스러운 죄로 취급하기 때문에, 기독교인이라면 교파를 가리지 않고 낙태를 극력 반대하는 것이 보편적이기는 하다. 가톨릭 신도가 많은 아일랜드는 무려 공화정으로 전환된지도 수십 년 뒤인 21세기에야 낙태 금지법을 폐지했을 정도이며 여타 가톨릭 국가에서도 아직까지 낙태를 엄금하는 국가는 드물지 않다. [16] 이런 방식으로 투표하는 나라로는 룩셈부르크가 있다. 룩셈부르크는 유권자 수가 20만 명을 조금 넘는데, 유효표 수는 320만 표가 넘는다. 둘 다 작은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방식을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유효표 수가 중국 인구를 넘을 것이다. 참고로 이란에서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의원 선거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서 선출되는 인원수에 따라 기표한다. 그래서 테헤란 같은 대도시나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심야시간까지 투표소에 줄이 늘어지는 모습을 볼수있다. [17] 국가 보수주의를 관념으로 삼고, 왕정을 지지하는 정당. 1918년 창당되어 99년간 8년을 제외하고 연정을 통해 집권한 당이다. [18] 기독교 민주주의 자유보수주의를 관념으로 삼는 정당. 1936년 창당되어 86년간 8년을 제외하고 연정을 통해 집권했다. [19] 이것도 원래 이보다 높은 18%였다. 대법원에 의해 봉쇄조항 근거없다는 이유로 무효처리 받다가 1973년에 낮춘 것이다. [20] 사회민주주의를 관념으로 삼고, 녹색 정치를 추구하며, 왕정을 지지하지 않는 정당. 1985년에 창당했지만, 집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21] 포퓰리즘을 추구하는 우파 정당. 2013년에 창당했지만, 집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22] 1) Not fewer than 1500 citizens have the right to introduce an initiative to abolish the monarchy. In the event of this proposal being accepted by the people, the Diet shall draw up a new, republican Constitution and submit it to a referendum after one year at the earliest and two years at the latest. The Prince Regnant has the right to submit a new Constitution for the same referendum. The procedure. specified in the following therefore replaces the procedure. to amend the Constitution laid down in Art 112, para. 2.
리히텐슈타인 헌법 113조 제1항) 1500명 이상의 시민은 군주제를 폐지하는 시책을 제안할 권리가 있다. 이 제안이 국민에 의해 받아들여질 경우, 의회는 새로운 공화주의 헌법을 작성하여 빠르면 1년, 늦어도 2년 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군주 역시 같은 국민투표를 위해 새로운 헌법을 제출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다음에서 명시한 절차(113조 2항을 말한다)는 112조 제2항에 규정한 헌법 개정 절차를 대체한다.
[23] 이 국민투표에서는 여성들도 투표권이 있었다. 여성참정권에 대해 남성들은 39.8% 찬성, 여성들은 50.5%가 찬성했으며, 이후 세 번의 국민투표는 모두 남성들만 투표권이 있었다. [24] 안도라에도 의장대 역할을 하는 12명 규모의 군대가 있지만 후원을 통해 운영되고 전원 자원봉사자라서 정규군으로 보기 애매하다. 바티칸 시국은 국가헌병대 이외에 스위스 근위대가 존재하지만 스위스 근위대는 바티칸 시국 소속이 아니라 성좌(Holy See) 소속이다. 법적으로도 애초에 군대가 아니라 경찰이다. [25] 2016년 12월 24일, 즉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자면 범죄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살인 사건이 2007년에 있었으며, 그 후 2020년 현재까지 10년 넘도록 살인사건이 없다. 죽일 사람도 적어서 [26] 그 이전까지 리히텐슈타인 국민들은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TV 방송을 대체적으로 봐야만 했다고 한다. [27] 물론 리히텐슈타인이 2019년 기준으로도 인구가 4만 명도 안되는 매우 작은 국가란 것은 감안해야만 한다. [28] 상가교회 같이 건물 구석에 세들어 있는 경우가 아닌 건물과 부지를 갖춘 예배 시설. [29] 최소 8개 클럽이 있어야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이 주어지는데 리히텐슈타인은 구단이 7개밖에 없다. [30] UEFA 컵 위너스 컵 -> UEFA 유로파 리그 ->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31] 국가 대표 스키 레이싱 팀의 공식 복장. 쫄쫄이 레이싱복의 겉에 경기 대기 중 보온을 위해 입거나 연습 시 입는 옷으로, 각 스키복 회사의 최고급 스키복 라인이다. 수십명 내외인 팀원만을 위해 따로 라인을 돌리는 건 무리이기 때문에, 각국 국가 대표 팀과 거의 같은 원단과 디자인으로 옷을 만들어 해당 팀 외 일반 소비자에도 판매하고 있는데, 2010년 현재 상하의 1벌에 100만 원을 넘는 고가이기 때문에 주요 소비처는 뽐내기 좋아하는 한국과 일본의 스키어들 뿐이다. 스키장에서 보는 상표 와펜가 좀 들어가고 자세 나오는 스키복 대부분이 팀복이다. [32] 바티칸 같은 경우 이웃 나라 수도에 대사관을 따로 두고 있어 대사관을 2중으로 관리하는 특징을 둔다. 이웃 나라 수도가 자기랑 국경을 접한 유일한 지역이라는게 함정 [33] 천황가가 있는데도 굳이 다른 나라 왕자를 동경하는 이유는, 일본 국내에선 자국의 천황가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든 부정적으로 얘기하든 상관없이 얘기하는 것 자체를 매우 꺼리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에서도 잘 다루려 하지 않는 편이다. 우익은 우익대로 천황과 천황가를 신성시여기 때문에 언급을 꺼리고 좌익은 좌익대로 메이지 덴노와 히로히토에 대해선 부정적이더라도 그 후대인 아키히토와 나루히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편이기에 굳이 거론하는 것을 꺼린다. [34] ProMods에서는 등장하지만 위치 오류가 있다. 해당 지역에 오스트리아 브레겐츠(Bregenz)가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