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07 06:35:24

대한민국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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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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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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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
大韓民國海兵隊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ROKMC)
파일:대한민국 해병대기.svg
<colbgcolor=#cc101f><colcolor=#ffcc00>
대한민국 해병대기[1]
창설연도 1949년 4월 15일 ([age(1949-04-15)]주년)
국가 [[대한민국|]]
소속 파일:대한민국 해군기.svg 대한민국 해군
임무 상륙전
지휘체계 군령권: 파일:Ssap_nogada.jpg 합동참모의장
군정권: 파일:haijun.png 해군참모총장
사령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해병대사령부[2]
사령관 파일:external/flagspot.net/kr%5Emcmdt.gif 중장 김태성
부사령관 파일:external/flagspot.net/kr%5Em2.gif 소장 김계환
주임원사 파일:원사 계급장.svg 원사 이재룡
병력 28,800명(2022년)[3]
역할 상륙전, 기동전, 강습, 해안/강안/도서 경계 및 방어
군사훈련 파일:해병대 교육훈련단.png 해병대 교육훈련단
마스코트 해병이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상징
3.1. 마스코트3.2. 군가3.3. 경례 구호
4. 병과5. 조직
5.1. 편제5.2. 해체된 부대5.3. 독립과 감축 논란
5.3.1. 해병대 확대 및 독립 주장5.3.2. 해병대 감축 논의
5.4. 사령부5.5. 해병대사령관 지위와 해병 대장
6. 전력7. 생활
7.1. 장교7.2. 부사관7.3. 병
7.3.1. 해병이 된 해군7.3.2. 징집된 해병
8. 출신 인물9. 문제점
9.1. 인적 자원의 문제9.2. 해병대 특유의 악습9.3. 작전능력 부족9.4. 과다한 병력 규모
9.4.1. 반론
9.5. 해군과의 갈등9.6. 해안 경계 이슈
9.6.1. 비판: 해경 업무 대행, 상륙전 능력 부족9.6.2. 옹호
10. 사건·사고11. 여담
11.1. 대중문화11.2. 귀신 잡는 해병대의 유래11.3.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11.3.1. 미담
11.4. 해병대와 해군의 군사경찰
12. 관련 영상13. 관련 문서1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국군조직법 제2조(국군의 조직)
국군 육군, 해군 공군(이하 "각군"이라 한다)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제3조(각군의 주임무 등)
②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 해병대는 상륙작전을 주임무로 하고 이를 위하여 편성되고 장비를 갖추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

대한민국 해병대(大韓民國海兵隊)는 대한민국 해군에서 상륙작전을 주로 담당하는 육상전투부대이다.

1949년 4월 15일, 해군에서 차출한 약 400여 명( 장교 26명, 부사관 84명, 병 300명)의 병력으로 창설되어, 6.25 전쟁에 투입되었다. 이후 꾸준한 성장을 통해 현재는 2개 사단과 2개 독립여단 등을 거느린 군단급 부대로 거듭났으며 총 병력은 대략 29,000명 정도다. 최선임 제복군인 중장 계급인 해병대사령관이다.

2. 역사

2.1. 창설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진해 대한민국 해군 덕산비행장에서 창설되었다. 초대 사령관 만주군 간도특설대 창설 멤버 출신인 신현준이었다. 여순 제14연대 반란사건 이후 당시 해군 장교로 있던 신현준이 해군본부에 "우리도 육전대 같은 상륙부대가 있었으면 바다를 통해 진압병력을 빠르게 기동시켜서 일이 커지기 전인 초기에 진압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를 설득력 있다고 판단한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이 해병대 창설을 승낙하게 된 것이다. 해병대 창설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고 건의한 인물인 신현준은 해군본부의 창설 허가가 나자 해병대 창설을 직접 맡아서 주도했고, 해군병14기 중 440여명을 훈련소에서 선발하여 창설한 뒤, 초대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이 된다.
이후 진주, 제주 등지에서 빨치산 토벌 임무에 투입되는데, 특히 1949년 12월부터는 4.3 사건이 한창이던 제주도의 계엄임무를 도맡았다. 이때 예비검속 학살 등의 만행에도 개입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김두찬, 문형순 문서를 참고.

2.2. 6.25 전쟁

6.25 전쟁이 한창 벌어지던 1950년 8월 17일, 해군과 해병대의 통영상륙작전 중 김성은 중령이 이끄는 김성은 부대가 경상남도 통영에서 북한군 병력을 무찌르고 통영 탈환에 성공하였다.

통영상륙작전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표되는 경인지구작전, 서울탈환으로 대표되는 서울 수복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해병대는 이승만 대통령의 큰 신임을 얻었고, 후에 이승만 대통령은 일개 해병대 대대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헬기를 타고 직접 생일케이크를 전달한다. 이 케이크를 전달받은 대대장이 후에 제6대 해병대사령관이 되는 공정식[4]이다.

1951년 6월에는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로부터도솔산 지구전투를 인수하여 승리로 이끌었다. 이 전투에서 2,263명의 북한군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으며, 개인 및 공용화기 등 198점을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지만, 아군 또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공방전으로서 대한민국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도솔산 지구전투의 승리로 대통령 이승만은 해병대에 무적해병(無敵海兵) 휘호를 하사하였다. 후에 이 전투를 칭송하기 위해 군가 ' 도솔산의 노래(도솔산가)'가 작곡된다.

2.3. 5.16 군사정변

1961년 김포에 주둔하며 최전방 경계 및 방어 임무를 맡고 있던 해병대 제1임시여단[5]의 병력이,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서울로 진입하였다. 그 후로 후술하듯이 박정희 대통령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는 등 실권을 약화시켰다.[6]

2.4.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을 위한 대한민국 국군 전투부대의 파병이 결정나자 비둘기 부대에 이어 해병대의 청룡부대 육군 맹호부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하였다.[7] 자세한 것은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서 참조.

파병 병력을 꾸리기 위해 해병대 제1사단의 병력을 바탕으로 청룡부대라는 별명이 붙여진 제2여단을 창설했고, 베트남 파병이 종료되어 대한민국으로 철수한 뒤로는 이 제2여단이 김포에 주둔하며 김포·강화 지역 경계/방어 임무를 맡게 된다. 이후 2여단은 1981년에 해병대 제2사단으로 증편된다.

그 전까지 김포 지역에 주둔하며 김포/강화 경계임무를 수행하던 해병대 5여단은 2여단과 경계임무를 교대한 뒤 포항 해병대 제1사단으로 돌아가서 예하 부대에 흡수되면서 없어졌다.

2.5. 해병대사령부 해체 및 재창설

대한민국 국군 월남파병이 끝난 후 군조직 개편의 목적으로 1973년 10월 10일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었다. # 이 시기엔 공식적으론 해병대라는 명칭조차 못 썼고, '해군해병'이 정식명칭이었다. 그리고 해병대사령관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계급 역시 중장으로 돌아갔다. 병과도 해군보병, 해군포병, 해군기갑 등으로 서류상 등재된 명칭이 바뀌었고, 병들은 해상병(수병)/상륙병(해병)으로 구분됐다.[8]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7년에 다시 해병대사령부가 부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심지어 당시에 정부가 해병대사령부 부활을 추진하자 해군 측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했는데도 부활을 관철했고, 결국 해병대사령부 부활 쪽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의중이 굳혀지자 해군 측에선 사령부는 어쩔 수 없이 재창설시키더라도 부대 명칭은 '해군상륙군사령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해병대'라는 독자적인 원래 부대명칭이 부활하는 것에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부는 결국 '해군'자를 떼어내고 '해병대'라는 독자적인 명칭으로 부활시켜주는 큰 선물을 해줬다. 해병대사령부를 다시 창설하더라도 만약 해군 측의 주장대로 했으면 부대 명칭은 해병대가 아니라 해군상륙사단 등이 될 뻔했다.[9]

해병대사령부 재창설을 설득하여 대통령의 승낙까지 받아낸 인물은 해병대 성병문 중장[10]이었는데, 해병대 재창설을 반대하는 해군본부의 눈을 피해 국군보안사령관, 합참의장, 국방부장관 등과 접촉하여 설득한 끝에, 드디어 1986년 8월에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재창설 승락을 받아낸다. 그러나 재창설을 위한 구체적인 실무작업에 착수한 뒤 사령부 및 부대의 명칭, 권한 범위, 명령/지휘체제, 예산 등의 문제를 놓고 해군과 해병대간에 이견이 심해서 관련 법령 내용과 최종안을 확정 짓지 못하고 무려 1년여간이나 해군 - 해병대 간 알력싸움 줄다리기를 한 끝에 1987년 10월경에 모든 사안이 확정되었고 같은 해인 1987년 11월 1일에 공식적으로 재창설된다.[11]

3. 상징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대한민국 해병대의 모토
무적해병 상승[12]해병 귀신 잡는 해병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13]

3.1. 마스코트

파일:해병이.jpg
마스코트 해병이[14]

3.2. 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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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경례 구호

과거에 해병대의 경례 구호는 여러 차례 바뀌어 왔다. 해병대는 원래 경례 구호가 육군과 같은 '충성'이었다. 1970년대 초~중반에는 해병대에서도 예하 부대마다 경례 구호가 달랐던 시기도 있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해병부대에서는 경례 구호로 '충성'을 썼지만, '해병'을 경례 구호로 쓰는 부대도 있었고 해병대 2여단(현 해병대 제2사단)은 '청룡'을 경례 구호로 쓰는 등 부대상징을 경례 구호로 쓴 해병부대도 있었다. 그러다가 1973년 이후 박정희가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고 해군으로의 종속성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경례 구호도 해군과 통일시키기 위해 1976년경에 해병대의 경례 구호도 해군과 같은 '필승'으로 바뀌었다. 이 이후로는 더 이상의 변화 없이 지금까지 수십 년간 '필승'을 써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병대의 경례 구호는 해군, 공군과 마찬가지로 '필승'으로 하고 있다.

다만 해병대도 군사경찰이나 전차 승무원, 자주포조종수 등의 특기를 받고 육군종합행정학교 육군기계화학교, 육군포병학교, 제2수송교육연대 등의 육군 예하 교육기관에서 위탁교육 받는 동안에는 육군의 경례 구호인 '충성' 구호를 사용한다. 그리고 해병대 중에서도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수전학교에 각종 위탁교육 받으러 갈 일이 많은 해병수색대의 간부들과 각 교육대의 교관들은 특전사에서 교육받는 동안엔 특전사 경례 구호인 '단결'을 사용한다. 타군의 교육기관에 가서 교육받을 경우엔 당연히 그 부대의 경례 구호를 따라서 모든 교육생의 경례 구호를 일치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해병대 전우회에서는 '해병'이라는 경례 구호를 사용한다. 아주 예전 세대의 해병들은 복무 시기에 따라 현재의 해병대와는 경례 구호가 달랐기 때문에 '해병'으로 통일시킨 것.

4.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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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직

5.1.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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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연평부대 해병대 교육훈련단 해병대 군수단 해병대 항공단 해병대 특수수색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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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제1사단 해병대 제2사단 해병대 제6여단 해병대 제9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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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도서방위사령부 포항특정경비지역사령부
관련 틀 :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 직할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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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대한민국 해군 산하에 있는 해병 부대들도 있다. 이들은 해병대사령부가 아닌 해군작전사령부 밑에 있으며, 지휘도 해군으로부터 받고, 해군 및 해병이 합동으로 근무한다.
그 외에도 경계근무 등 지상작전 경험이 없는 해군 경계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해병대 대위급의 장교가 각 함대에 경비대장 혹은 지상작전담당이라는 직책으로 보직되어, 경계업무에 대한 실질적인 컨트롤을 하거나 조언을 해 주고 있으며, 청해부대 등의 해군 함정 해외 파병 시에도 해병대원이 항상 경계대로서 함께 파병된다.

각 해군부대의 경비중대 등 경비부대에는 옛날엔 해군 군사경찰이 아닌 해병대원들이 들어갔었다. 몇몇 예비역들이 자신들이 해군의 개냐며 기지 경비 업무를 맡지 않게 해 달라고 우긴 게 관철됐는지 현재는 진해 해군기지를 경비하는 진해의 해병대 육상경비대를 제외하면 그 외의 해군기지 경비업무는 없어졌다. 그러나 일각에선 해군 경계군사경찰을 뽑지 말고, 다시 해병대 보병들을 경비중대에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아무래도 지상전 교육을 더 받고 소총 등 육전용 병기에 익숙한 보병이 경계 근무에 더 적합하다는 것으로, 해병대 예비역 내에서도 숫자 늘리고 좋지 않냐며 이 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참고로 해군 군사경찰 장교 역시 임관/전과 후 받는 초등군사반 교육을 해병대에서 받는다.
해병 부대의 명칭은 1973년에 해병대사령부가 폐지된 후에는 해병대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론 못 쓰고 "해군 제1해병(상륙)사단"과 "해군 00해병대대" 등으로 불렸다가[18], 1987년 해병대사령부가 재창설된 이후엔 다시 '해병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예하 부대명도 해군을 해병으로 대체한 "해병대 제1사단", "해병대 제00대대" 등으로 부대 공식 표기명이 바뀌었으며 공식문서와 부대 깃발의 표식 또한 변경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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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해체된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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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독립과 감축 논란

5.3.1. 해병대 확대 및 독립 주장

정치인 홍준표의 지론으로 국군의 모든 특수부대를 해병대와 통합하여 해병특수군을 창설하자는 주장이다. 홍준표가 제19대 대선에서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으며, 대선 이후에도 2020년 7월 6일 홍준표 외 12인의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 해병대 육군특수전사령부, 해군특수전전단, 공군 공정통제사, 제6탐색구조비행전대 등 모든 국군의 특수부대를 통합하여 육해공군과 동급의 제4군인 해병특수군을 신설하고 그 수장을 대장인 해병특수군참모총장으로 보임하며 참모총장과 참모차장은 소속이 다른 군으로 보임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 관련 기사 하지만 서욱 국방부장관은 해병대와 각군 특수부대의 임무, 성격, 편제가 모두 상이해서 통합이 어렵다고 밝혔다.
홍준표가 2022년 예정된 제 20대 대선에서 유력 야권 후보로 다시 부상함에 따라, 만약 홍준표가 당선된다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무래도 특수부대랑 해병대를 합치는 것은 너무 생뚱맞은 주장인데다가 군사적으로 마이너스 요소이고 여러 쪽에서 반대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홍준표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기껏해야 해병대 독립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이 독립마저도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참고로 홍준표 본인은 방위 출신이지만, 아들이 해병대 출신인 해병대 가족이라서 해병대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그래서 특수부대들을 사실상 해병대가 흡수해버리고 해병대를 제 4군으로 독립시킴으로써 해병대의 위상을 엄청나게 높여보려는 의도에서 나온 애초에 무리수 계획이었던 것이다.
결국 2021년 11월 5일에 열린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결과 윤석열이 대통령 후보로 뽑히고 홍준표는 탈락함으로써 해병특수군 창설이라는 희대의 엉뚱한 공약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2022년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해병대를 사실상 독립시켜 준4군 체제로 개편한다고 하는 공약을 발표했다. 독립된 군종으로 둔다는 것. #
이어 2월 9일에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해병대사령관의 4성 보장과 4군 체계 개편을 내놓았다. #
해병대 독립이 국가 전투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묻는다면 그건 글쎄올시다 된다. 해병대가 독립군종 수준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군조차도 국방부 산하 '해군부'라는 이름으로 묶여 같이 움직이는 실정이다.[19] 해군의 수송과 지원을 떼어 놓고서는 해병대의 본연 임무인 상륙작전과 국가전략기동군이라는 타이틀을 지킬 수 없기 때문. 그래서 다양한 이유로 해군 인력이 수시로 해병대로 파견, 배속되어 활동을 한다.
오히려 미해병대는 전투부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보조적인 업무는 전부 해군에 떠넘기고 있으며 최근에는 해병대에 대한 군기 헌병 업무까지도 해군이 직접 감독도록 넘긴 상태이다. 미해병대조차 해군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높았지 낮다고는 할 수가 없는데 이런 타국의 사정을 모른 채 해병대를 독립시킨다면, 미군이 해군부를 통해 상호 연계가 가능하게 만든 것처럼 평시 해군과의 작전연계 및 상륙작전을 위한 합동참모부 개편이 추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정말로 국군이 미해병대처럼 독립군종, 순수 전투부대로 운용을 하겠다는 작정으로 국군 해병대를 독립시킨다면, 미해병대가 지금 그러하고 있는 것처럼 국군 해병대는 기존에 갖고 있던 군사경찰, 공병은 물론 각종 지원업무 병과를 전적으로 해군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이건 해병대의 독립이라는 순수한 뜻과 1만광년 멀어지는 건 당연지사고, 보조인력의 감축으로 해병대의 규모자체도 줄어드는 게 현실이 되어버린다. 해병대의 서포터가 되어야 하므로 해군의 인력이 커지면 커지고 입김이 세지면 세졌지 그 반대가 되지는 않는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상륙작전 이후 내륙 점령을 위한 독립적인 지상군 활동에 제한을 줄 수 밖에 없는 요소가 될 여지가 높다. 그리고 당연히 이를 타개하기 위해선 타군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일 수 밖에 없어진다.
그리고 설사 홍준표나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쳐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이나 국방위원회 위원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해군 수뇌부들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독립이 필요한 집단이었으면 진작에 독립했다. 따라서 위 공약들은 그냥 해병대 출신들의 표를 얻기위한 포퓰리즘성 공략으로 보면 편하다. 후술될 감축 논의처럼 해병대의 독립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차라리 더 많은게 현실이다. 극단적으로는 명칭도 해군육전대[20]로 격하시킨 다음 규모를 지금보다 더 줄여서 현재 국군 상륙함 전력규모의 상륙역량에만 맞춘 최소인원 정도만 남기자는 주장, 심지어 아예 해체 후 육군 소속의 상륙사단으로 재편성하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존재한다.

5.3.2. 해병대 감축 논의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지나치게 높은 현역 판정률은 문제의 소지가 크기 때문에 현역병 인원을 30~40만 명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을 비롯한 원내 정당과 국방부에서도 높은 현역 판정률은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복무부적격자들이 일으킨 사고의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현행유지 말고 주장할 안건이 없는 것이다. 만약 감축이 현실화할 경우 해병대와 육군의 소총수부터 줄일 것이다.

세간에서 해병대 예비역들의 그릇된 행태를 비판하며 질타하는 일은 잦지만, 해병대가 하는 역할이 엄연히 존재하고, 북한군과 효율적으로 대처할 전력이 생기지 않는 이상 해체는 불가능하다. 참고로 1967년에 육군은 3개의 사단을 지정해 특성화 사단으로 개편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그래서 1968년 1월 23일에 제2보병사단을 산악사단, 제5보병사단을 공수사단, 제11보병사단을 상륙사단으로 전환시켰다. 이 중 상륙사단으로 지정된 육군 제11보병사단은 해병대의 역할을 대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3개의 특화 사단은 대규모의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에 관련된 지휘관에 대한 문책, 향후 대간첩작전 대비책 마련에 군 수뇌부의 모든 신경이 쏠리면서 특화사단 운영에 사용될 예산이 줄어들면서 특화사단 유지를 포기하고 일반사단으로 환원되었다.

미래에 해병대가 감축될 가능성은 절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3군 공통의 과제는 자동화와 무인화, 차량화를 통해서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50~60만 명에서 30~40만 명으로 감축되면 대한민국 국군의 소총수가 상당히 줄어들것이다. 그렇다고 감축하지 않고 앞으로도 병력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게 되면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은 남성들과 여성들도 군대에 끌려가야만 가능하다. 병력 감축 없이 50~60만 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 역시도 존재하지만 그러려면 찾아올 부작용이 크다. 군 복무기간 연장과 현역 판정률 100%를 실시해야 하는데 정치적 충격이 큰 이슈인 복무기간 연장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환자들까지 징병하여 인원을 채운다고 군대가 올바로 운용되기는 힘들다.[21] 국군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인원이 입대하면 자기 보직에서 신체적인 한계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당사자 역시 질병의 악화와 후유증을 얻어가면서 선후임과의 불화를 만드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복무기간을 1년 9개월로 늘린다고 병력 확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정신과 관련 기준이 더욱 강화된 현재 한국의 현역 판정률은 무려 86~87%에 육박한다. 정신과 기준과 신체 기준이 강화되기 전의 현역 판정률도 높은 편인데 저출산 문제로 줄어드는 입영 자원 문제를 해결한다고 1년 9개월의 복무기간, 50만 명 병력 유지를 시행하려면 1~2개월마다 군 내 부적응자가 일으킨 사고를 저녁 뉴스에서 봐야 하던 시절과 같은 수준으로 징병해야 한다.

최전선에 근무한 해병대 출신 상당수가 자신들이 경계 근무에 투입되어 육군 해안 경계 부대와 같은 과업을 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22]. 따라서 해안 경계 역할을 주로 수행하는 해병대 제2사단의 섹터를 육군에 넘기고, 2사단이 보유한 기존 인원과 상장, 수색대 등 해병대 특유의 병과를 상륙작전의 주력인 해병대 제1사단에 합치자는 주장도 있다.[23] 즉 2개 사단의 병력에서 사람 수를 줄이는 대신 1사단을 정예화하여 상륙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병대는 공격부대이자 지원부대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소리도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병력이 부족하면 공격부대와 지원부대가 1순위로 군축의 칼날을 맞게 되어있다. 유럽과 구소련의 전례도 그러하였으며 어쩔 수 없다. 극단적으로 상륙작전 포기 vs DMZ 방어 포기(포병전력 등 FEBA 감축)를 저울질하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2021년 현재 이미 대한민국 인구는 감소세로 전환되었기에 재래식 전력의 질적인 우위는 유지할 수 있으나 양적인 우위 내지는 허용가능한 수준의 열세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감축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당장 지금 나오는 병력부족 해결 방안들 중에 북한 점령 포기, 더 심한 것으로는 FEBA-A 지역에 대한 방어 포기 및 민통선 하향조정후 주민 이주, 더더욱 극단적으로는 아예 핵무장 내지는 미군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통해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 핵전력을 찍어누르려는 시도(참수작전, 평양 북진 등)는 때려치우고 똑같이 핵에는 핵으로 맞서자는 대안까지 거론되고 있는 판국인지라. 반대쪽 극단으로는 4급 판정자 현역 징집 같은 것이 있지만 그냥 거기서 거기다. 그나마 여성 징병제가 비교적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편이긴 하지만 정치권의 표계산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낮다.

특히 4급 판정자 징병은 1994년, 2006년 두차례 시범시행해본 적이 있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환원해버린, 실패한 대안이다. 환자에게 전투복을 입힌다고 한 명 분의 역할을 하는 우수한 전사가 될 리는 없으니. 정신적 질환자를 징집해 일어난 사고가 워낙 거해서 묻혔을 뿐 신체적 질환 또는 장애로 보조가 붙어야 하고 그로 인해 건장한 병력까지 손실되게 되는 문제도 충분히 심각했다.[24]

5.4. 사령부

대통령 국방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해병대 부사령관
파일:윤석열 선관위 프로필.jpg 파일:이종섭장관.jpg 파일:해군참모총장_이종호.jpg 파일:김태성_중장(정복).jpg 파일:김계환.jpg
윤석열 이종섭 대장 이종호 중장 김태성 소장 김계환

5.5. 해병대사령관 지위와 해병 대장

초기에는 해병대사령관의 계급이 해군참모총장과 같았고,[25] 1969년 1월 1일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이 서로 함께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이후에는 대장 계급인 시절도 있었기는 했으나, 베트남전 철수 이후인 1973년에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고, # 해병대사령관의 자리가 '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바뀌면서 계급도 중장으로 하향 조정되었다.

1987년에 해병대사령부를 부활시킨 이후,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를 다시 총괄 지휘하게 되고, 꾸준한 법령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해병대의 정원과 조직을 별도 관리가 하고 있다. 해병대사령관의 계급은 중장이지만, 1998년부터 해병대 지휘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해병대사령관을 대한민국 국군 전체의 최선임 중장[26]으로 예우하도록 관행화되었다.

2011년 10월에 국군조직법이 개정되면서 해병대의 인사, 군수, 행정 자치권을 강화하는 조치로, 전역증 발급 등 일부 해군참모총장의 권한을 해병대사령관이 위임 받았다. # #

2018년 7월경에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해병대 장교의 4성 장군 진급이 가능하도록 법률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국방위원장 안규백 의원을 선두로 해병대사령관대장 계급으로의 진급 및 합참의장 혹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자리 등 4성 장군 보직으로의 전출이 가능하도록 검토 중임을 밝혔다.

2018년 9월 13일에는, 안규백 의원이 군 인사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 #

2019년 2월경에 열린 국방부 주재 고위 정책간담회에서, 국방부가 개정안에 찬성함에 따라서 해병대 장성급 장교의 대장 진급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 이것은 '해병대 출신의 대장'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지, 해군참모총장과의 관계가 꼬이기 때문에 해병대사령관 계급이 "중장에서 대장으로 급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제 해병대 소속의 장교는 중장까지 진급하여 해병대사령관을 역임한 이후, 대장으로 진급해 (이론상으로는 육군을 제외한 타군 소속도 부임할 수 있는) 대장 보직인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혹은 합동참모의장에 임명될 수도 있게 되었고 해병대는 오랜 숙원 중 하나를 이루게 됐다. 맨날 육군 장성들이 가져가고, 해군과 공군의 장성들이 어쩌다가 간혹 한번씩 가져가던 자리들에 해병대가 정식으로 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다. #

6.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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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에는 선임이 전차를 조종하면 후임은 전차에서 떨어져 나오는 볼트 너트를 주우면서 구보로 따라간다는 농담이 있다. 해병대가 이러한 구식전차를 모는 이유에는 예산 집행에서 육군에 밀리고 그 나머지도 해군이 먼저 가져가기 때문에 열악할 수밖에 없다. 해병대는 해군의 일부이며, 해군의 최우선 예산 배정은 지상 전력이 아닌 해상 전력에 우선 투자되는 것이 당연하므로, 정도가 지나치지 않는 한 이는 필연적이다. 공군이 전투기 등 항공 전력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하고 그 이후에나 방공포병이나 군사경찰 등에 예산을 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 해병대 역시 같은 이유로 육군보다 구식 장비를 많이 쓴다.

해병대 전차전력은 절반가량이 K1 전차로 대체되었으나, 나머지는 최근까지 M48A3K를 사용하고 있다가 2017년 말쯤 K1E1 전차로 전량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2022년부터는 나머지 M48A3K 전차들도 K-1E1 전차로 교체될 예정이다. 해병대 연평부대 육군보다 먼저 선행양산형 K-9 자주곡사포를 지급받았다. 대신 K-2 흑표 차기 주력전차는 포신이 너무 길어서 상륙함 탑재에 적합하지 않고 중량도 좀 무거운 편이라 해병대에선 성능개량형 K1A1을 원하는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K-9 자주곡사포보다는 상륙작전을 수행해야하는 해병대 제1사단의 경우도 K-55A1을 선호한다. 차체 크기도 차이가 크며, 중량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중량의 경우 상륙하는 지형이 해안 같은 경우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중장비와 화력 쪽으로는 제1사단만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 해병대에 크게 떨어지고 영국 해병대보다는 좀 많은 정도이다[27]

7. 생활

7.1. 장교

해병대 장교를 따로 선발하는 과정은 학사장교[28] 학군단,[29] 단국대학교 해병대군사학과[30]밖에 없다.

해군사관학교 졸업자가 임관 전에 함정, 항공, 상륙 중 상륙 관련 병과를 선택해 선발되면 해병대가 된다. 이들은 임관식 후 포항에서 해병대 관련 교육을 받고 보병, 포병, 기갑 등 해병대 전투병과 중 하나를 부여받는다.[31]

7.2. 부사관

해병대 부사관은 서류전형, 면접, 체력검정을 통과하면 신원조회 후 부사관으로 선발되어 부사관후보생이 되고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훈련을 받게 된다. 부사관의 경우 병보다 지원경쟁이 널널하다.

7.3.

해병대 병은 지원입대를 원칙으로 하며 1990년대 후반까지 징집으로 입대한 해병들도 있었으나 2003년에 완전 폐지되어, 상근예비역을 제외하면 총원 지원병으로 이루어져 있다.

7.3.1. 해병이 된 해군

해병대는 의무 병과가 없다. 대신 해군 군의관, 수의사관, 간호장교, 의정장교, 의무부사관, 의무병 등이 해병부대로 배속된다.

해병대로 배치받는 해군 의무병들은 처음에는 해군에 지원해서 의무병이 되고 배를 탈 거라 생각하고 해군으로 입대한 건데 생뚱맞게 해병대로 끌려가서 원치 않는 해병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해병대를 좋아하긴 커녕 해병대의 문화를 싫어해서 해군이 된 이들이 원치도 않게 해병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는 억울한 경우가 많이 있다.[32] 이 때문에 해군 의무병은 타 군의 의무병에 비해 인기가 없다. 따라서 의무관련과가 아니더라도 의무병 지원이 가능하며 입대 비수기에는 비전공자의 합격도 많이 되는 편이다.

부대에 따라 해병과 동일한 피복을 착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르다. 어떤 경우는 해병들이 휴가나 행사 시에 입는 정모와 근무복을 구해서 입기도 한다. 간부의 경우 피복판매소를 통해 해병전투복을 구하는 게 가능하지만, 수병들은 별도로 해병 피복을 지급해주지 않는 한 예비군 훈련용 전역복[33]을 미리 보급받게하여 착용시킨다.

2차 발령으로 빨리 떠날 생각인 경우면 몰라도 그냥 해병대에 남으려는 의무병, 혹은 2차발령으로 해병대에 온 의무병이라면 깨끗한 전역복은 그대로 물건너간다. 게다가 원래는 전역복 명목으로 주는 물건인 만큼 딱 1척만 보급 받기에 야전에서 구르는 의무병들은 만성적인 전투복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니 수병들이 해병부대에 남는 재활용 피복을 자체적으로 구하거나, 해병들과 좀 친해져서 말년병장들에게 인계받거나,[34] 혹은 간부에게 부탁하여 전투복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말한 예외 중 1%가 바로 이들이다. 그 이유는 미합중국 해병대도 의무병과는 해군의 의무병을 끌어다가 쓰기 때문이다.[35]

일병 이후에는 자신이 원하면 다시 해군부대로 돌아갈 수 있다.[36] 단지 해군부대에 갈 경우 선임수병이 너무 많아서 막내 생활을 다시 할까봐 해군부대가 아닌 해병대에 남는 인원들도 있다. 적어도 해병부대에서는 선임대접은 받기 때문이다. 해군포항병원이나 해군해양의료원 등 해군부대를 가면 선임 수병들 등쌀에 상병 달고도 막내 노릇을 해야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37]

해병부대라고 다 힘들진 않고 교육훈련단 의무실, 사령부, 사단 의무대 등은 교육행정부대라 여건이 좋은편이다. 해군끼리만 근무하다보니 정기외박등을 챙길때 눈치볼일도 없고 훈련도 많이없어 사실상 해군 육상부대 근무랑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1차 발령온 의무병들은 잔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병대로 간 해군 의무병들이 2차발령을 쓰게되면 해군본부에서 명령이 나오고 이렇게 되면 높은 확률로 병원부대로 가게 되는데 당연히 해병대의 교육행정부대들 보다는 힘들다.

함정이나 섬에서 근무했던 해군 의무병들도 2차발령으로 저곳 부대들로 가면 군생활이 수월하다고 느낀다는듯... 교육훈련단 의무실은 돌아가면서 훈병들 야외 훈련때 의무지원 하는것만 좀 힘들며 이마저도 구급차에 탑승해서 따라다니니까 잠을 생활관서 못 자고 구급차나 텐트에서 자는 것만 불편하다. 물론 같이 온 의무부사관 군의관 등 간부도 고생한다.

해병부대로 전입한다고 반드시 해병대와 사는 것은 아니다. 여단 의무중대[38]급 이상에만 배치되면 해군끼리만 군생활을 한다. 따라서 해병대원은 치료받으러 오는 환자들, 병기병, 통신병, 보급병, 운전병 등의 지원 특기들 외에는 접촉할 일이 없다. 만약 전투대대 본부중대 단위까지 내려가면 중간에 2차 발령[39]이 나지 않는 한, 사실상 군생활 2개월 더 하는 해병대가 된다.

해병으로서의 대접은 본인 하기 나름이나, 본인이 열심히 하면 대부분 같은 본부중대 안에서는 깍듯하게 해병대로 대접한다. 다만 똑바로 일하는데도 일부 무개념 해병들이 무시하기도 한다. 분위기 험악하던 시절에는 의무병이 끗발 없을 때는 해병 선임들이 말끝마다 욕설을 섞고 구타하는 게 일상이라 괴로운 시절을 보내다가, 끗발이 차기 시작하면서 해병대 전투복을 일부러 입지 않고 해군 피복을 입고 다니면서(보통 훈련이나 동초근무 등이 아닌 비전투 일상근무나 근무 외 시간에 샘브레이, 당가리나 해군 체육복을 입는 식) 후임 해병들을 작살내며 화풀이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도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해병대가 해군 소속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해병대는 원칙적으로 해군 소속이라서 이런 특과병과는 해군에서 오는 게 원칙이다. 이외에도 법무 군종같은 병과도 다 해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배속된다. 병은 다른 해병대 행정병과 동일하게 해당 해병부대의 보병 병들 중 차출한다.

분위기가 많이 풀어져서 해병대와 해군이 손잡고 PX 다녀오거나, 1사단이면 해룡의 집, 청파관 등지에서 붉은 무리 사이의 남색 무리도 적잖이 볼 수 있다. 등짝에 해병대와 NAVY가 나란히 보이면 좀 묘하기도 하다. 훈련나갈때도 물결무늬 사이에 디지털도 섞여서 함께 걷고 구르다보면 자연스럽게 친해지기도 한다.

해병대 1사단과 2사단에는 각각 예하 사단 항공대에서 UH-1H을 운영 중인데, 과거에는 조종사 전원이 해군 조종사였지만 2008년에 35년만에 해병대 조종사가 다시 양성되면서 현재는 해병대 조종사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항공기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은 아직까지도 모두 해군 소속이며, 과거에는 사단 항공대로 해군 항공병이 배치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고 해병대 병이 배치되고 있다. 항공기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은 해군 정비사와 해병대 정비사가 혼성되어있다.

7.3.2. 징집된 해병

해병대 징집기수제가 폐지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비지원병 1%는 상근예비역이다. 포항시, 김포시 북부, 강화군, 옹진군, 제주특별자치도, 가덕도 등지에는 육군부대 대신 해병대 부대가 예비역 자원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현역 판정을 받은 사람중 일부를 특수한 기준에 따라 상근예비역으로 징집되어 근무하게 된다.

이사 등으로 거주지가 바뀌는 상근병은 새 주소지 부근에 해병부대가 없으면 주소지에 따라 육군이나 해군으로 전군 조치되어 잔여 복무 기간을 채운다. 반대로 육군이나 해군 상근도 같은 사유로 해병대 상근으로 바뀔 수 있다. 복무 기간 자체는 상근병의 경우 소속군에 관계없이 육군병과 동일하며, 소집 해제되면 자신이 최종적으로 근무한 군종의 예비역이 된다.

그리고 울릉도에도 해병상근이 있다. 울릉도 영종도 등 도서 지역 예비군 관리대의 대장은 해병소령이다. 물론 해군과 해병대 상근은 현역과 동일한 중대에서 동일하게 극기주 등 빡센 훈련을 받으며, 따라서 현역 해병 및 수병들도 상근병을 같은 기수의 해병 및 수병으로 대접해준다.

8.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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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제점

9.1. 인적 자원의 문제

해병대 창설 때부터 1958년까지 초창기 10년 동안은 지원이 아닌 전원 징집으로 신병을 충당하였다.[40][41] 그러다가 1958년부터는 지원제 위주로 선발하기 시작했고, 1967년부터 지원제와 징병제를 병용하였다.

그래서 1990년대까지의 해병대에는 자발적인 지원이 아닌 강제 징집으로 입대한 해병들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이렇게 징집기수와 지원기수를 병행했던 시기에는 홀수기수, 짝수기수 번갈아서 징집기수, 지원기수가 되었고,[42] 따라서 전체 해병의 약 절반이 징집 해병이었다.

즉, 과거에는 징병연령이 되어 입대 대상이 된 장정이 육군으로 입대할지 해병대로 입대할지를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공군과 해군은 전원 경쟁입시제로 신병을 선발한 반면 해병대는 무시험 추첨으로 육군 대신 해병대로 영장이 나와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해병대는 육군 전체보단 훨씬 적은 인원을 뽑기 때문에 매번 전국적인 징집으로 입영시켰던게 아니라, 예를들어 어느 기수는 경기, 다음 기수는 경남, 그 다음 기수는 서울,.. 이런 식으로 지역을 번갈아가며 각 기수마다 어느 지역에서 징집을 하는 지역별 징집기수제였다.

이런 지역별 징집기수 제도 외에도 비공식적이고 비정기적인 해병대 징집 케이스들도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 시절에 운동권들 및 과거에 무척 많았던 병역기피를 위해 숨어지내던 사람들을 잡아낸 뒤 "빡센 군대 갈래, 아니면 깜방 갈래"라며 군대 가서 고생 좀 하고 정신차리라는 의미로 반강제식으로 해병대로 입영시켜버리는 경우들도 있었다. 유명인들 중에도 이에 해당하는 실제 케이스가 있는데 바로 코미디언 임희춘씨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훈련병 때의 소대장을 찾아 출연했을 때 사연을 밝혔는데, 당시 일정한 거처가 없이 전국을 떠도는 유랑극단 소속이라 영장을 못받아 늦은 나이까지 군대를 안 갔는데, 60년대 초반에 병역기피자 일제 단속에 걸려서 체포된 뒤 해병대로 강제 입영됐다고 한다.[43] 60년대 초반이면 공식적으론 징집기수제가 없을 때였지만[44] 그 때도 비공식적이고 변칙적인 강제징집 해병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서부터 징집기수를 대폭 줄여나가서 90년대 중반부터는 징집기수는 1년에 두 기수로 줄어들었고, 2003년엔 이 약간만 남아있던 징집기수제마저도 완전히 폐지됐다. 과거보다 갈수록 해병대 지원자가 늘어나서 더 이상 굳이 강제징집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이 2003년부터는 상근을 제외하면 전원이 지원자이다.

과거엔 해병대 지원자가 별로 없어서 전체 해병 인원 중 절반만을 지원으로 뽑았는데도[45] 지원자가 충분치 않아서 지원만 하면 대부분 합격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론 해병대의 이미지도 많이 개선되고 언론홍보도 많이 하면서 지원자가 많아져서 경쟁률이 높아지자 2000년대 중반경부터는 해병 선발에 체력테스트인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도 도입됐다. 그리고 고교 생활기록부도 선발에 중요해졌다. 이렇게 해병대는 합격하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에, 체력테스트조차 없고 그냥 지원만 하면 대부분 무사통과식으로 합격됐으며, 뺑뺑이로 육군 대신 해병대 영장이 나와 입대하기도 한 과거의 해병대 선배들 시절과는 천양지차이고, 따라서 해병대 입대자들의 질적인 수준이 예전의 해병대원들보다는 훨씬 높아졌다.

다만, 2022년 기준 병 지원율이 다시 급락하는 실태이다. 올 3월에 입대한 2021년 12회차 경쟁률은 2.9대 1이고 4월 입대자 경쟁률은 2.7:1밖에 되지 않는다. 2020년 12회차 경쟁률이 5대1이었단 점을 고려하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고 심지어 겨울철 입영 병사 모집 회차에선 무기정비·정보통신·조리 특기 모집은 아예 미달이 나는 추세이다. 이유는 해병대에서 계속 발생하는 가혹행위 및 사건사고 때문에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기도 하고 더군다나 가짜사나이, 강철부대의 흥행에 힘입어 빡세게 군생활하고 싶은 쪽은 아예 UDT나 SSU같이 더 빡시고 부조리는 없는 특수부대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병은 최근에 들어와서야 지원율이 급락하기 시작했지만 해병대 부사관은 여전히 지원자가 적어서 우수 자원 선발은 커녕 인원 유지조차 늘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모병관이 툭하면 병 지원자들한테 "넌 병으로 지원하지 말고 해병대부사관으로 지원해라"고 꼬실 정도다. 스펙이 낮아서 불합격 가능성이 높거나 합격 가능성이 간당간당한 지원자들에게 "넌 해병부사관으로 지원하면 백퍼 합격이니 부사관으로 지원해라"며 꼬신다. 이렇게 '병'과는 달리 해병대 부사관의 인기가 낮은 이유는, '해병대는 병이다'라는, 즉 해병대는 '병'이 주인이고 중심이라는 병폐적인 인식, 해병대 부사관이 실무에서나 예비역 커뮤니티에서나 해병대 병들에게 그다지 대우를 못 받고 소외되어 있는 해병대 문화 및 해병대 부사관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이 그 원인이다.

해병대 부사관이 인기가 없는 것은 2020년대에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21년 10월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밝혀지기를, 해병대 부사관은 지원자가 너무 적어서 모집 선발인원조차 못채우는 미달이 생기는 실정이고 해병대 하사 정원의 60%대 밖에 운용이 안 되고 있으며 #, 이는 해병대의 최정예인 해병수색대[46]도 마찬가지라서 수색대 부사관 정원의 40%가 공석임이 드러났다. #편제상 필요한 특수수색대대와 수색대 부사관 정원의 60% 밖에 못 채우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 등 해병대 출신 유명인들이 인터뷰에서 해병대에 왜 갔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이러이러한 이유로 지원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는 지원이 아니라 징집기수들이다. 주변 현실에서도 자기가 지원해서 간 게 아니라 징집당해서 끌려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해병대 출신은 별로 없다. 굳이 징집이란 걸 밝혀서, 용감하게 빡센 부대에 지원했던 싸나이라는 이미지를 굳이 엎어버리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병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해병대에 징집기수라는 게 있었는지도 아예 모르고 당연히 다 지원해서 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원해서 갔다고 굳이 속이지 않더라도 지원한 걸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징집기수가 완전히 없어졌고 약 98%가 지원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47] 과거엔 지원자가 많지 않았지만 2000년대 이후론 대학생 비율이 늘어나면서 복학시기를 맞추기 위해선 육군보다 빨리 갈 수 있는 해병대를 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꾸준히 지원자가 늘어나서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9.2. 해병대 특유의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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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들은 스스로가 자원입대한 정예병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상당히 마초적이며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점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하나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는 대한민국 해병대의 상징처럼 되었다. 심지어는 전역 이후에도 예비군 훈련 때는 물론이고 민방위 때나 일반 사회[48]에서 만났을 때도 선후임 따지다가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심지어 현재도 나름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모인 인서울권 대학교 예비군훈련에서조차 일반적인 예비군들끼리의 아저씨 호칭과는 달리 해병대 출신들은 빨간 명찰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기수를 따져가며 대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나온 문구가 해병 잡는 해병대, 빤스를 남긴 해병대일 정도로 세간의 인식이 좋지 않다.
과거 해병대 시절에는 해병대의 자부심이 과한 나머지 마치 집단세뇌라도 당한 듯한 비정상적인 마인드로 인해 잘못된 문화를 많이 만들어냈는데, 특유의 허세 부리기, 받지도 않은 훈련을 받았다고 뻥치거나 실제보다 훨씬 과장해서 거짓말하기, 과거 역사를 조작, 왜곡하고 심지어 구라소설을 창작해내면서까지 해병대를 미화하거나 치부를 숨겨서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타군을 근거 없이 비하하고 해병대가 타군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피해망상적 카더라를 퍼트려 타군을 적대시하도록 후임들을 세뇌시켜서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자부심과 결속력을 키우는 문화 등의 문제점들을 낳았다.
2015년을 기점으로 해서 현재 해병대의 모든 부대는 해병대사령부의 지시로 일명 "오리지널 단어" 사용을 엄금하고 3군 공통 용어로 대체했고 특히 해병대 특유의 구타, 가혹행위, 병영부조리, 기수열외 등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 현재 2017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동안 해병대에 잔존해있었던 악습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막장 선임들이 태형을 자체적으로 부활시키거나 식고문 악습을 하는 등 아직도 교묘한 악습이 남아있다.
어쨌든 간에 전혀 변화가 없을 거 같던 해병대 병영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으며 특히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2011년 교육훈련단장 차동길 준장(예비역)[49]의 강한 의지로 파격적인 정책들을 쓰며 병영문화 혁신을 밀어 붙여 해병대 교훈단에서 잔존하던 악습을 많이 없앴다.
2022년 3월 해병대 제1사단 출신 해병대원이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휴가기간동안 국외로 나가 우크라이나에 자원입대를 시도했다. 현역 해병대원 우크라이나 의용군 참전 미수 사건. 자살보다는 의미있는 죽음을 선택을 하기로 결심하고 행한것이라는게 밝혀져 해병대의 이미지가 매우 안좋아졌고 해당 해병에 대한 동정여론이 주를 이루고 있다.

9.3. 작전능력 부족

한국군의 육군 위주의 전력 때문에 해병대에 대한 예산지원은 언제나 뒷전이며 해군의 정책에 밀렸었으나 독자적으로 예산을 받아쓰게 되었다.[50]

독도급 강습상륙함을 제작해도 여전히 자체수송능력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미 해군의 도움 없이는 상륙작전 1회에 고작 1,000여 명 정도를 투입할 수밖에 없으며 상륙 시 한번에 투입가능한 전차 대수가 한손에 꼽을 정도 밖에 안된다는 점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독도함 기준으로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전차가 고작 2대이다.[51] 공격이 방어의 3배여야 승산이 있다는 법칙도 있고 상륙작전의 특성 상 선두는 지뢰밭으로 걸어들어가는 막대한 희생을 치루어야한다.

해병의 상륙전력 구성 자체가 한미연합작전을 상정하고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해병대는 한국 육군이나 공군과의 공조보다는 미해병대나 미해군과의 공조가 많은 편이며 오히려 이쪽이 훨씬 빠르고 쉬운 편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게 전부 돈으로 귀결되는 문제이다. 즉, 언제나 그렇듯 예산이 문제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서북도서를 방어하는 해병 부대(6여단, 연평부대)는 장비 확충이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전원 방탄복을 구비하고 있고 보병의 경우 거의 전원이 특전조끼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보병의 경우 야간투시경의 보급이 폭넓게 이뤄졌으며 신형헬멧의 경우 병과 가리지 않고 교체가 되었다. 특히 김포시 인천광역시를 담당하는 해병대 제2사단은 열악한 근무 요건으로 악명이 잦았다. 오죽하면 2011년 강화도 총격사건의 원인을 지나치게 많은 격오지로 인한 전투피로증으로 보고 최대한 격오지를 줄이라는 김관진 국방장관의 지시가 있었을 정도.

사실 해군의 인천해역방어사령부가 수도권 전 해안경계를 넘겨 받으면 끝나긴 하지만 이쪽도 부대가 작은 규모이고 무엇보다 NLL에 인접한 지역 특성상 육상에도 경비병력이 필요해서 할 수 없이 해병대가 해안경계를 맡는다. 어차피 해군 인방사든 육군이나 경찰이든 어딘가에 이 임무를 이관한다는 건 2사단이 상륙사단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병력을 그 이관받는 쪽에 넘기고 해체될 운명에 처해질 뿐이므로, 별자리 포함 장교 TO가 왕창 사라지는 걸 해병대가 바랄 리 없으므로 이관에 적극적이지 않다.

거기다 독도함은 탑재할 헬리콥터가 없었다. 가끔 행사할 때 쓰는 건 육군 헬리콥터를 빌려오거나 해군이 소유한 일반 UH-60를 쓰는 정도. 바다에서 운용할 장비는 염분이나 바닷바람 등의 문제 때문에 별도처리를 해야만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데, 지금 독도함에서 운용 중인 해군의 UH-60은 그런 장비 따위가 없어서 제대로 굴려먹질 못한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시작해서 2020년까지 수리온 상륙헬기를 해병대 단독소속으로 36대 이상 배치, 2개 기동대대를 만들고 추가되는 공격헬기로 1개 대대를 추가하여 해병대 직할항공단을 창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관련기사 1 관련기사 2 그러나 운용능력을 제대로 갖추려면 도입 후에도 상당기간이 걸리는 만큼 단시일 내에 능력 확보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2018년에 마린온 헬기 시험비행 중에 추락 전소하여 조종사와 정비사 등의 해병대원들이 사망한 포항 해병대 헬기추락 사고가 발생한 것도 불운한 악재이다.

2007년 12월엔 민간인 한 명이 강화 초소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해병대원 2명을 차로 덮치고 흉기로 찔러서 그중 1명을 살해하고 1명에겐 중상을 입힌 뒤 총과 실탄, 수류탄, 유탄 등을 탈취해 도주한 강화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건 1주일 뒤 경찰에 붙잡힌 범인 조모 씨는 애인과 헤어진 것에 대한 화풀이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과다한 경계근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해병대원들이 저지르는 많은 사고들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 2016년에도 서해 대청도에서 근무하던 해병대 이병이 섬 경계근무가 답답하다는 이유로 생활관에다가 수류탄을 투척하여 폭발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다. 관련기사

9.4. 과다한 병력 규모

병력 규모면에서 전 세계 해병대 중 미 해병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52]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 해군이 보유한 상륙수송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규모이다. 이는 유사시 미 해군의 상륙수송능력에 기대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가 아닌 전 세계가 작전 무대라서 해군과 해병대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미군을 제외하면 해병대가 대규모인 국가는 대한민국 국군밖에 없다. 이는 북한이라는 적국과의 휴전 대치 상황이라는 특수성과 역사적 원인에서 기인한 측면이 강하긴 한데 3면이 바다인 한반도 특성상 상륙작전 및 도서지역 방어, 해안선 방어 등으로 수요가 많던 해병대 인원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국가들, 특히 유럽 국가들의 해병대는 미국이나 한국의 해병대와는 달리 해군의 소규모 특수부대 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53]

한국군보다도 바다 건너 전투병력을 투입해야할 일이 더 많은, 즉 한국군보다 작전지역이 훨씬 넓다 못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강대국들도 해병대 인원은 한국군보다 매우 적다. 세계 3위 러시아 해군의 경우 정식 명칭은 '해군 보병'이고 해군 소속의 5개 연대 16,000여 명으로 구성되며, 러시아 해군 각 함대마다 1개 연대씩, 태평양 함대에는 2개 연대가 배속되어 따로 활동한다. 영국 해군의 경우 1개의 코만도 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정예 편제로 총 7,420명의 정규군과 예비군 970명으로 구성된다. 세계 4위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경우 공식 명칭은 '해군 육전대'로 4,000여 명의 병력이 중국 해군 3개 함대에 각 1개 여단씩 배치되어 있다. 단 중국 인민해방군은 군 조직개편을 통해 육군 병력을 줄이고 해군육전대 병력을 10만 명으로 대폭 증강하기로 했다.

중화민국군의 경우 1997년 국군정실방안으로 복무제도가 바뀌기 전까지 35,000명의 비대한 해군 육전대 병력을 운용했다. 대만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본토 수복이었으므로 그 선봉인 해병대에 투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본토 수복 임무는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하고 2개 여단 규모, 9000여 명으로 대폭 줄었다. 하지만 중화민국군은 16만 명인 규모인만큼 해병대 규모가 적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해병대의 비율은 대한민국 국군이나 중화민국군이나 비슷하다. 운용 개념 또한 해안선, 도서지역 방어와 침공에 대응하는 전략기동군으로 나뉘는 등 한국군과 거의 유사하다.

한국 해병대의 상륙병력 투사능력이 비대한 규모에 비해 기형적으로 뒤떨어지는 것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는 애초에 투사능력 대부분을 미군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기인한 구조적 문제이다. 독도급 강습상륙함 실전배치, 수리온 해병대 사양 개발 배치 및 해병대 항공대 창설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탈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9.4.1. 반론

해병대 병력의 2/3은 해안 및 도서방어에 투입된 실상 육군과 다를 바 없고 순수하게 상륙전에 투입 가능한 병력은 기껏해야 1사단 말고 없다. 즉, 순수한 투입규모만 본다면 그다지 크지는 않다.[54] 물론 서해도서방어를 육군으로 투입할 수도 있겠지만 작전 특성상 해군의 지원이 필수적이고 유사시 역상륙 등의 다양한 작전을 위해서는 해병대를 운용할 수밖에 없다. 한때 국방개혁 검토과제로 강화, 김포를 육군 병력으로 교체하려 했는데 현재 해병 1개 사단 지역을 육군으로 대체하면 장비나 부대 편성 등이 다른 점 때문에 무려 2.5개의 육군 사단이 필요하여 없던 일이 되었다.[55] 또한 북한군은 해병 1개 사단의 상륙을 대비해서 후방 지역에 2개의 기계화 군단을 배치하고 있다. 사실상 그 일대 최전선 총알받이인 셈.

한국군 병력이 여타 국가에 비해 총인구 대비 많은 편이지만 이 또한 북한이라는 병영국가의 대병력을 막아내기 위한 최소한의 배치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국가에선 보기힘든 해안, 도서방어에 과도한 병력이 투입된 것이다.

미 해병대는 상륙전 이외에도 기동전 전문부대로 거듭났고 선봉군으로서 모든 전투에 앞장서는 군대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상륙인원만을 남기고 해병대를 해체하라는 논리면 당장 미 해병대 마저도 1~2개 사단으로 줄여야한다. 대한민국 해병대도 바보는 아니라서 1사단을 '교육훈련사단'으로 따로 배정하여 보병대대마다 각각 공정강습, 상륙기습특공, 유격대로 나뉘어서 상황에 맞게 특화된 교육을 실행하여서 부족한 점을 메꾸고 있다.

9.5. 해군과의 갈등

사실 해병대는 해군의 육전대 성격이 있어서 해군과의 합동작전이 매우 중요하며 일부 직별의 경우 해군 소속 인원이 해병대로 배치되기도 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점은 주로 합동 훈련중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 전차상륙함에 동승했을 때 경우에 따라 함정 내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데 부식창고를 털어가는 것은 기본에다 심한 경우 자신들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갑판 장구류나 각종 공구류를 훔쳐가기도 했다. 이런 도둑질을 해병대 용어로 긴빠이라고 한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상황이지만 전차상륙함 승조원 입장에선 함정 내 각종 장구류나 비품이 없어진 경우 직전까지 동승했던 해병들을 의심하기 일쑤다.

또한 과거에 해병대는 별도의 의무병과를 두지 않아 해군 소속 의무병과 수병 및 부사관들이 배치되는데 의무대에 직속되지 않을 경우 해당부대 해병들과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육상용 전투복 없이 해상 전투복만 지급받은 의무수병들을 훈련을 빙자해서 복장과 맞지 않는 조건의 훈련을 소화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며 그 외 내무생활에서 침상, 관물대를 안좋은 자리로 밀어넣거나 한다든지...[56]

그러나 위 문제들은 결국 해군사관학교 동기, 또는 선후배 관계인 지휘장교들의 노력으로 대부분 눈에 보이지는 않을 정도로 사라진 상태이다. 즉, 지휘부에서 눌러서 못하게 한 것이지, 제도와 부대편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언제든 재발 가능한 우려가 있다.

이는 보급문제로 설명할 수 있다. 부식 문제는 함정근무 해당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흥부네 집밥, 놀부네 집밥 하는 식으로 비교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으며 질 좋은 군수물자는 해군이 먼저 가져다 쓰고 해병대로는 B급만 보내준다.는 식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의외로 해군도 군견을 키워 사용한다. 도서지역 R/S나 기지방어 용도로 쓰기 위함인데 이 군견 또한 해군 군수사령부에서 일괄 관리, 보급하면서 똘똘하고 말 잘듣는 군견은 해군에서 먼저 챙겨가고 해병대로는 말 안듣고 교미만 밝히는 모자란 군견들을 보내준다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다.

정리하자면

악습과 관련된 부분이야 기수서열을 엄격히 챙기는 해군, 해병대 공통의 의식을 활용하여 상호 존중하는 의식개선으로 충분히 해소한 수 있는 부분이며 그동안 해병대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사고로 인해 해병대 또한 많이 개선된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존이라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므로 군령권과 제도의 수시 정비와 개선이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부사관 이상 간부들의 경우는 조금 덜 하겠지만 원하든, 원치 않든 병역 이행을 위해 입대한 해병, 수병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른 마찰이 일어날 여지가 많다. 위와 같은 군령과 제도 이외에도 해병, 수병 본인들의 의식전환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해병, 수병들은 가만히 있어도 잡혀들어가는 육군을 포기하고 스스로 군종을 선택하여 입대하는 기회를 사용했다. 해병, 수병으로 복무중이거나 입대가 예정된 위키러라면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선택했던 마음가짐으로 내 선임, 내 후임이라는 생각으로 마음편히 지내보도록 하자.

해병대 예비역들은 대한민국 해군 수뇌부를 상당히 안 좋게 보고 있다. 해병대용 상륙수송헬기 도입을 앞두고 불행히도 해군과 해병대가 서로 자기관할이라고 싸웠던 적이 있어서 해병대 측의 피해의식에 일조하고 있다. 일단 양측 다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명분[57]은 그럴듯하지만 결국 속사정은 밥그릇 챙기기로 보인다. 해군의 경우엔 수십대의 헬기가 늘어날 경우 해군항공부대의 급이 올라가 소장급 지휘관 자리가 생기고 해병대는 준장급 자리가 새로 생긴다. 육군과 달리 해군/해병대의 규모로 볼 때 준장이나 소장급 지휘관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목숨거는 것도 나름 이해는 간다. 한국군은 육군만 유일하게 장성이 수백 명이지 다른 군의 경우는 장성의 숫자가 그야말로 손에 꼽는다.

9.6. 해안 경계 이슈

9.6.1. 비판: 해경 업무 대행, 상륙전 능력 부족

해병대 역시 해안 경계에 절반 이상의 병력을 할애하고 있으며, 상륙전 역량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해병대는 병력은 많으나 경찰이나 대한민국 해양경찰청이 해도 될 해안 경계에 절반 이상의 병력을 할애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후방에 주둔하는 제1해병사단 포항 해안에서 철수 후 경찰에 인계하고 제2해병사단은 전방이라는 특성 상 한강 하구는 제17보병사단, 서해안은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된다. [58]
그리고 제주도의 해병대 제9여단 같이 중대/대대급 병력으로 여단을 운영하는 것은 보직 늘리기로 보이기 딱 좋다.

9.6.2. 옹호

역사적으로 해병대는 군항 방어와 승선전투를 위해 창설되었기에 해안 경계 임무를 맡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해군 내의 육전부대이고, 도서 및 일부 해안 방어 임무가 해군에 할당되어 있는 이상 현행 해군 경계헌병보다 해병대 보병을 투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해병대 병력 50% 이상이 해안선과 도서에 박혀있고 상륙전력도 턱없이 부족해 육군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해병대의 창설 배경과 역할을 무시한 것이다. 미합중국 해병대도 군항 방어 임무를 수행하며, 자체 대함 미사일을 운용하기도 한다.

또 한국 해군은 미 해군처럼 해병대를 동시에 두 곳에 상륙시킬 능력도, 이유도 없다. 상륙사단을 2개씩이나 보유하는 것도 불필요하다. 1해병사단 하나를 상륙전담부대로 놓아두고, 나머지 해병부대는 현행을 유지하든, 도서 같은 해안경계 및 연안 초계만 전담하는 해역사령부 체제로 다시 개편해 해군작전사령부 예하에서 순수 방어 및 도서 점령시 탈환 작전만 맡는 게 더 효율적이다.

9해병여단을 마치 장교 TO 유지용 부대라 주장하는 부분부터 살펴보자. 9해병여단은 현재 장기적으로 증원을 준비하는 점, 정원이 차는 것은 제주도 내 예비역 소집시에 달성되는 일종의 동원부대 성격도 있는 점, 9여단 인원 대다수는 구 해군 제방사 예하 TO들이 변경된 것으로 실제로 추가 인력 증원은 적은 점 등을 감안해 보아야 한다. 이런 시선이면 육군이야말로 후방 동원사단들은, 평시 TO의 10~20%도 못채우는 즉각 해체해야 할 장군 및 영관급 장교 TO 유지용 잉여 부대들이라는 말이 된다.

보통 해병대 예비역들이나 일부 해병빠 밀덕들이 주장하는 바와 달리, 도서 방어를 위해 배치되어 있는 현 제2해병사단 등이 후방으로 빠진다고 해서 상륙전 부대로 거듭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애초부터 해병대가 필요 이상의, 중장 계급의 장군이 사령관을 맡을 만큼 큰 규모를 가질 당위성은 원래 상륙전 전문부대였다면 없었으나, 해병대가 서북 도서나 해안 등의 방어를 이유로 자신들의 규모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오늘날에 이르른 덕에, 최소 군단급 규모의 비대한 해병대를 갖고 있게 된 것일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 진즉에 씨가 마른 북한 해군의 견제 없이 한반도 부속 도서 대부분을 국군이 점령, 장악한 상태였는데, 병력 여유가 없던 육군을 대신해 해병대가 그 일을 맡았다. 따라서, 휴전 직전 해병대의 규모는 해군 총원의 2/3에 달할 만큼 비대했다.

이후 북방한계선 이북 도서를 모두 북에 내어 주라는 휴전협정에 따라 해병대 역시 규모 축소가 불가능해졌는데, 이 때 해병대가 자신들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유사시 점령될 경우 신속한 재탈환을 위해 육군이 아닌 해병대가 주둔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주장한 서북도서 등의 경계 및 방어를 자청했고, 본래라면 육군 병력이 주둔했을 이 지역만은 제주도와 함께 해병대가 계속 틀어쥐게 되었다.

1982년부터 도서 방어 임무가 육군에서 해군으로 이관되며, 해군의 도서방어부대 중 예비군 관리 등 지상전 소요는 그 특성상 해병대가 맡는 것이 효율적이고 전문성이 보다 높았기 때문에, 비록 해병대사령부 해체 등으로 피를 보긴 했지만 해병대는 여전히 군단급 규모를 유지할 명분을 갖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만약 제2해병사단이 경계를 그만두는 순간, 여기는 해병대 밀덕들 생각처럼 포항의 제1해병사단처럼 상륙전 부대가 되는 게 아니라, 그냥 해당 경계 섹터 인계받을 군종이나 부대에게 그만큼 병력 등을 넘겨주고 해체된다. 한강 하구를 넘겨받을 육군 제17보병사단이나 제9보병사단 혹은 김포경찰서 소속 전투경찰이나 서해안을 넘겨받을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인천해양경찰서 등도 병력에 여유가 있는 게 아닌 데다[59], 해병대가 2사단을 존속시킨 이유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니 이는 당연한 것이다.

도서지역 등 해안경계는 연안과 이어져서 육군에 다시 넘기기가 곤란하다. 대부분 철책도 이젠 제거되어 병력도 없고 해상에서 참수리급 포항급 그리고 호버 크래프트 등으로 초계하는게 제일 좋다. 그리고 상륙저지를 위해 고속단정 및 KAAV등을 이용한 해병 신속대응부대를 산하에 두는 정도가 적합하다. 어차피 해군과 해병대는 별개의 군종이 아니므로, 지상전 소요가 높은 해역사령부는 해병대 장성을 지휘관으로 하는 등으로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며, 육군이나 경찰같은 별개 군종과 복잡한 연락체계 등을 갖출 필요도 없다.


[1] 국군조직법 제5조제2항을 따른 군기령에 의하면 육군기, 해군기, 공군기는 '각군기'인 반면 해병대기는 그보다 아래인 '부대기'에 해당한다. 이는 국군조직법 제2조제1항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를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해병대기는 현충일 추념식 등 일부 국군 행사의 기수단 도열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그러나 해병대가 해군으로부터 예산권과 인사권을 넘겨받아 사실상 독립된 제4의 군종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므로, 해병대기에 '각군기'의 지위를 부여하여 육·해·공군기와 함께 고정적으로 도열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 [2] 봉담중에서도 좀 떨어져있다. [3] 장교 2,600명. 부사관 6,800명. 병 19,400명. 첨부 문서 192페이지 참조. [4] 6.25 전쟁 초반만 해도 해군 장교였는데,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해병대 수뇌부 측의 설득으로 인해 해병대로 전군하였다. [5] 1959년 2월 26일에 해병대 제1사단 1연대를 기반으로 창설된 제1임시여단이 김포지역에 계속 남아서 주둔하게 되어, 그때까지 경기 서북부에 주둔하면서 서부전선을 지키다가 1959년에 포항으로 이전하게 된 해병대 제1사단 대신 서부전선 방어를 맡게 되었다. 이후 1사단에서 새로 창설된 제5여단이 김포 경비를 제1임시여단과 임무교대하여 1967년부터 김포 방어를 맡았고, 1임시여단은 1사단으로 복귀/흡수되었다. 1972년에 월남 파병을 종료하고 돌아온 제2여단(청룡부대)이 김포에 주둔하게 되면서 이때부턴 2여단이 김포 경계임무를 맡게 되었고, 67년부터 김포를 지켜왔던 5여단 병력은 1사단으로 흡수되면서 5여단은 없어진다. 2여단은 1981년에 해병대 제2사단으로 증편된다. 당시 김포 해병여단 여단장김윤근 준장이었는데,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처형당한 육군 준장 김윤근 장군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6] 그 이유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이 해병대를 너무 키워놔서 앞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근거로 밝혀진 것은 아니고 해체 이유에 대해서 해병대 예비역들 사이에서 도는 하나의 추측성 카더라일 뿐이다. 월남파병 종료 후 경제적인 군조직 재정비가 당시 군조직 개편과 축소의 공식적인 명목이었다. [7] 원래는 육군만으로 파병부대를 꾸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파월 결정이 나자 박정희 대통령이 각군 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주한미국대사를 불러놓고 파월에 며칠이 걸리냐고 물어보았을 때, 육군 참모총장이 최소 3개월은 필요하다고 하자 해병대 사령관이 "중대급은 즉각, 대대급은 24시간, 연대급은 48시간, 사단급은 72시간이면 충분하다." 라고 말하여 해병대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병대에선 말하고 있다. [8] 박정희 정부는 지상군 병력인 해병대를 축소한 대신 해군에는 많이 투자했는데, 당시에는 없는 형편에 기어링급 구축함을 도입하여 최초로 미사일 운용 함정을 들여오기도 했으며, 이 기어링급은 1990년대까지 해군 주력함 중 하나였고 나중에 KDX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해군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시기가 끝난 뒤인 문민 정부때부터 KDX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참여정부 시기에 이르기까지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 그리고 이지스함 세종대왕급 구축함 획득에 성공했다. [9] 해병대는 엄연히 해군 소속이었고 해군의 지휘 하에 있는 조직인 데다가 더구나 그 당시는 해군에의 종속성이 심할 때라서 해병대에 대한 해군의 영향력과 입김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부대명도 해군 측이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하려고 했다. [10] 당시 직책명칭은 해군제2참모차장 [11] 이런 해병대 부활 당시의 상세한 뒷이야기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12] 常勝: 언제나 이긴다. [13] 미해병의 구호인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Once Marines, always Marines.)'에서 따온 구절. 대만 해병대(중화민국 해군육전대)에서도 이와 유사한 一日陸戰隊 終身陸戰隊(하루 해병이었다면 죽는 날까지 해병이다)라는 구호가 있다. [14] 품종은 진돗개이다. 공식 마스코트가 라는 점에 대해서 개병대 관련 의견, 너무 나약하게 생겨 싫다는 의견, 귀엽고 대민친화적이며 한국산 품종인 진돗개라 좋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호남고속도로 대전방향 벌곡휴게소 벽에 하늘이와 푸르매, 해돌이와 함께 스티커로 붙여져 있다. 재밌는 점은 전투복이 바뀔때마다 해병이의 전투복도 계속 신형으로 바뀐다. [15] 1사단의 별칭이 해룡과 황룡으로 의견이 나뉘는데, 1사단의 별칭은 해룡이 맞다. 황룡은 2여단(과거 2연대)을 '황룡'이라 칭한다. 해병 1사단 예하 2여단(과거 2연대)은 선봉부대의 상징성이 높아서 자체적 '황룡'이라 지칭한 듯 하다. 2사단(청룡), 6여단(흑룡), 9여단(백룡)이 색깔별 용이어서 1사단이 황룡이 아닐까 생각도 하지만, 연평부대(공룡)를 보면 꼭 색깔별로 칭한 건 아닌 것 같고, 1사단의 별칭은 바다의 용, '해룡'으로 칭하는 게 맞다. [16] 해군 제주방어사령부에서 개편 [17] 구 상륙지원단, 군수지원단 [18] 하지만 공식문서상이 아닌 일상에서의 해병들은 옛 습관대로 해병대라고 불렀다. [19] 어디까지나 독립군종 수준의 규모를 지니고, '독립군종 수준의 대우'를 받는거지, 미해병대가 진짜로 아예 '법적으로까지' 독립군종인건 아니다. '해병군(Marine Forces)'같은게 아니라 여전히 '해병대(Marine Corps)'로 불리는 이유이다. [20] 사실 해병대나 해군육전대나 그저 같은 존재를 칭하는 단어일 뿐이지만, 어감상으로는 한국에선 저렇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21] 대한민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생각이 없어서 군 복무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징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22] 실제로 해병대에 입대하면 매일같이 육해공을 넘나드는 훈련을 하고 고무보트 헬리콥터, 상륙장갑차를 타고 다닐 것으로 잘못 알고있던 사람도 많다. [23] 미 해병대를 제외하면 해병대 2개 사단급을 (나눠서 혹은 한 곳에 몰아) 상륙시킬 능력을 갖춘 국가는 사실상 없고, 대한민국 해병대마저 미 해군 미 해병대의 자산 일부를 빌려 상륙할 것을 상정하고 전술을 짜고 있어, 해안 경계를 포기하면 2사단은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24] 요즘은 그런 장병은 현역부적합심사를 통해 그냥 내보내버리기는 한다. 예전처럼 형평성이 어쩌고, 남자가 어쩌고, 국민의 의무가 어쩌고 하면서 붙잡고 있어봤자 간부나, 동료나, 당사자나 서로 손해이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나 주변에게나 그나마 다행이고, 한국의 병역의무가 그나마 쥐꼬리나마 선진화된 사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25] 지금의 육군참모총장 지상작전사령관의 관계와 같다고 볼수있다. [26] 국군의 대장은 총 7명이기에, 현역 장성의 전체 의전 서열에서는 8위가 된다. [27] 영국 해병대 미국 해병대와는 부대의 성격이 많이 다르며, 경보병 코만도 여단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정예의 편제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영국 해병대의 경우는, 1960년부터 대부분의 전투부대를 말 그대로 "코만도"화를 해서 일반적인 해병대보다는 오히려 경보병 부대와 비슷한 면이 많고, 미 해병대는 말 그대로 세계 최대인 ' 미군'의 일부이기에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원정군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타군들이 미 해병대를 해병대의 단어 철자인 "MARINE"의 뜻을 "My Ass Riding In Navy Equipment (나는 해군 장비 타고 있다)"라고 바꿔 부르면서 열약한 지원을 비꼬는데도, 웬만한 다른 나라의 육군보다도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해병대는 미국 해병대나 영국 해병대 등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고, 대한민국의 실정과 현실에 맞게 운용되고 있다. [28] 해병대 군장학생이 존재하는데, 이 과정은 육군과는 달리 3학년 때도 지원가능하다. 3학년 때 지원한 해병대 군장학생의 경우 의무복무기간이 일반 학사장교 3년에 장학금 수혜기간 2년을 합쳐 5년. [29] 해병대 학군단은 한국해양대, 제주대, 부경대 세 곳 대학에만 있다. 그러나 육군 학군단 소속 후보생이 해병대로 지원할 수 있으며,[60] 선발되면 육군에서 해병대로 전군되어 해병 소위로 임관하게 된다. 육군 학군장교보다 의무복무기간이 4개월 짧다. 보병, 기갑, 포병, 공병, 통신 등 전투병과는 물론 비전투병과인 정훈, 군사경찰, 여군까지 모집한다. [30] 이들도 학사장교로 임관한다. [31] 해병대 기행병과를 원하면 해병대 전투병과로 복무하다가 중~대위 때 신청해 옮겨야 한다. [32] 물론 그들 중에서도 해병대에 잘 맞는 성격이라 해병대 문화에 적응을 잘 하고 해병대 군생활을 즐겁게 잘 하는 이들도 소수 있긴 하다. [33] 견장없는 해군식 디지털 전투복이다. [34] 특히 전투복은 몰라도 전투화 정도는 해군이 해병대 전투화 신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다. [35] 영화 아버지의 깃발에서 주인공이 해군 의무부사관으로 해병대와 같이 이오지마에서 굴러다닌 사연이 나온다. [36] 이건 의무병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해군은 6개월 이상 함정이나 도서지역, 격오지, 해병부대 등에서 근무한 수병에 대해 육상의 후방 부대로 발령을 갈 기회를 준다. 보통 함정 근무자나 해병대는 7~80%, 도서나 격오지는 4~50% 정도가 발령을 간다. 해군은 덕분에 함정이나 도서 등은 일이병이 수두룩해 일이 힘든 대신 남게 되면 선임이 거의 없어 내무 생활이 빨리 편해지고, 육상은 일이 편한 대신 상병장이 수두룩한 역피라미드 구조라 끗발 세우기 힘들다. 한 번 배치받으면 거의 무조건 그 부대에서 군생활을 해야 하므로 누군 끝까지 고생하고 누군 끝까지 편한 육공군보단 어느 정도 공평한 셈. 그러나 애초부터 육상에만 근무하는 직별인 군사경찰은 해당사항 없다. [37] 비단 의무병들 뿐만 아니라 다른 수병들도 동일하게 겪는 상황이다. 모 수병의 경우 120명이 근무하는 부대에 상병 4~5호봉 때 발령받아 갔더니 병장만 100명이었다는 일화도 있다. [38] 중대급부터 지휘관의 지휘권이 철저히 보장된다. 게다가 의무중대의 경우 중대장이 대부분 군생활에 별 욕심없는 군의관이 많기 때문에 상급 지휘관들도 의무중대를 함부로 건들기 어렵다. [39] 물론 해병으로 간 의무병은 2차 발령을 쓰기만 해도 바로 간다. 심지어는 2차 발령을 쓰지 않았는데도 발령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무병 상당수를 해병대로 우선 보내기 때문에 해군소속 병원부대들은 항상 의무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40] 휴전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인 데다가, 한반도 도서 지역 전체를 일일이 병력을 보내 지켜야 해서 해병대의 규모가 커야 했기 때문으로, 이때는 해병대가 해군보다 인원 수가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후진국 해군들일수록 해군 내 해병대나 육전대 등 지상전 전담 부대의 규모가 크다. 함정보다 단가가 싸게 들기 때문이다. [41] 단 제주도인들로 구성된 3,4기엔 강제징집 뿐 아니라 자발적 지원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42] 학사장교와 비슷한 맥락이 됐다. 학사장교의 경우는 초기에는 홀수기수, 짝수기수 번갈아가며 보병, 비보병이 되었다. [43] 그 뒤 해병연예대에서 근무했다. [44] 해병대 징집기수제는 67년에 생겼다. [45] 나머지 반은 징집으로 충당했다. [46] 기존 수색대와 신설 특수수색대대를 모두 합쳐서 통칭한다. [47] 2%는 상근예비역, 그리고 해병대에서 근무하는 해군의무병들이다. [48] 심지어 골프장 에서까지도 [49] 해병대 내 엘리트로 손꼽혔으며 예편 후 단국대학교 해병대군사학과 교수가 되어 후임 정예 해병장교 양성에 힘쓰고 있다. [50] 미국 해병대도 어느 정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실 사용할 데가 없다. 미국 해병대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위기를 겪었었다. [51] 독도급 강습상륙함은 3척 운용할 예정이다. [52] 중국군이 해군육전대의 규모를 10만 명 대폭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한국 해병대는 3위로 밀려날 전망이다. 그리고 실제로 밀려났다. 물론 중국 입장에선 늘리는 이유가 있어서 늘리는 거지만... [53] 단, 스페인 해군은 유렵에선 비교적 대규모 해병대를 보유한다. 애초 원조가 이쪽이다. 유럽 국가들의 해병대는 해군 소총부대라 불리며 상륙작전보다는 군항 지역의 육상 해안경계, 도서방어에 더 주력한다. 해군기지가 있는 항구나 섬 등을 적군에 점령당하면 이들이 탈환해야 한다. [54] 그마저도 포항특정지역사령부, 해안경계를 이유로 몇 개 대대가 해안지역, 제주도 등 각지에 투입된 상황이다. [55] 2사단의 작전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며 대대 간 차량 이동을 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예하 연대가 실질적으로 사단급 경계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1사단도 예외는 아니라서 대대 하나가 연대가 필요한 수준의 경계지역에서 경계작전을 펼친다. 물론 여단 직할에서 특기 중대별로 소대가 하나씩 지원을 온다고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56] 2차 발령으로 인해 떠나는 해군 의무병을 해군 부대로 이동하기 전날 밤 구타하는 사례도 있었다. [57] 해군은 이미 기존에 있는 인력과 시설을 활용하면 되니 운용예산이 절감된다고 하고 있고 해병대는 도입목적자체가 해병대 상륙수송용이니 당연히 자신들이 관할해야 하며 해군이 관할하면 상륙수송용 외의 용도로도 쓰이게 되는 걸 우려하는 듯하다. [58] 해병대 2사단은 실질적으로 250여km를 지키고 있으며 육군은 DMZ 100마일(248km)를 10개 사단이 경계하고 있다. 게다가 해병 사단은 육군 사단보다 병력도 적어 경계의 부담이 더 심하다.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 당시 검열단에서 해병대 제2사단에 경계실패를 질타하자 해당 해병 연대에서는 인원 부족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59] 인방사는 현재까지 컨테이너(...) 생활을 할 정도로 여건이 안 좋다. 해경은 좀 나은 편이지만 중국어선이니 뭐니 해상치안에 대해 신경써야 하고, 육군은 감군 추세라 언제까지 9사단과 17사단에 대규모 병력을 가질지는 모른다. 이 상황에서 육군에 한강 강안경계, 해군에 서해안 및 인천항 해안경계를 넘기면 육해군만 죽어난다. 해병대는 어차피 신속대응대도 있는 이상 이 쪽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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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건·사고

  • 5.16 군사정변 참여
    조국을 수호해야할 군인들인 해병대가 특전사와 사이좋게 손잡고 5.16 쿠데타를 일으킨 과오를 범하였다. 그것도 김포 최전방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던 해병대 제1임시여단(현재의 2사단) 병력을 빼돌려서 서울로 진격하게 하였다. 만약 북한이 사전에 정보를 알았거나, 쿠데타 직후 해병대 병력이 김포로 아직 복귀하지 않았을 때 이 기회에 김포 쪽으로 남침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실로 큰 일이 날 뻔했었다. 게다가, 이들은 쿠데타에 대해 상급 기관인 해군본부에 단 한마디의 언질도 주지 않았으면서도 쿠데타 지휘부에는 자신들이 해군을 완벽하게 설득해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생구라를 치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쿠데타 성공 직후 쿠데타 세력들이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이성호 제독( 중장)을 만나 약속된 협조를 요구했다가 내막을 알 리 없던 제독으로부터 "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반란이라니, 뭐하는 짓거리냐?"는 욕만 들어먹었고, 옆방에서 이를 듣던 육군 영관급 장교들이 "해참이 이제와서 말을 바꾼다. 죽여버리자!"며 권총을 빼들고 난입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이성호 제독은 상황을 읽은 전속부관이 그를 잡아끌고 잽싸게 차에 태워 해군본부로 피신시켜 화를 면했고, 이후 해공군만으로는 대세를 바꾸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해병대 장군들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 상관을 죽음에 몰아넣을 뻔한 가히 하극상에 준하는 범죄를, 그것도 일종의 허위보고를 통해 저지른 것. 이 사건 이후, 해군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쿠데타 세력들이 박정희 장군에게 해군을 음해하여 감찰토록 했는데, 감찰 결과 해군이 전군에서 가장 부정이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61] 그 때문인지, 육군 출신임에도 박정희는 재임 기간 내내 해군 함정이나 부대를 꽤 자주 방문하는 등 해군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고,[62] 기어링급 구축함 등을 들여오는 등 해군의 전력 증강에도 돈을 많이 투자했다.[63] 그런데 박정희는 해군 산하의 해병대에게는 사령부를 없애고 해군의 참모부로 격하시키는 행동을 했는데, 아무래도 5.16 군사정변 당시 진상을 안 뒤에 괘씸죄가 걸렸을 수가 있다.[64] 그리고 상급부대인 해군도 규모가 작았는데 그 예하인 주제에 별 4개를 해병대사령관이 달고다니는 모양새도 안 좋고 이래저래 상관 팔아먹은 댓가로 해병대를 말아먹은 셈이다.
  •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해병대 소위 129명이 새벽에 공군 비행학교를 습격하여 자고 있던 공군 장병들을 기습공격을 가했으나 비행학교에서 근무하던 공군 장병 300명에게 역습을 받아 얻어터지고 엉망이 되어 뿔뿔이 도망가고 심지어 해병대 장교 한 명은 도망치다가 사망한 사건. 말로는 일당백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1:2 정도에도 깨진 것. 수적으로 열세였다고 하나 공군 장병들은 새벽에 자고 있다가 아무 준비도 없이 기습을 당했고, 지상전투병과 인원들도 아니고 항공기 및 지상 기술행정관련 등 비전투병과 인원들 상대로 기습을 했는데도 해병대 장교들이 패배한 것.

    무엇보다 전시도 아니고 평시에 그것도 자고 있는 아군을 야습한다는 상황 자체가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며 의식이 깨어있지 않던 시절에 일어난 엄연한 장교단의 부끄러운 역사이다. 현재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 등에 육공군 장교들이 파입되고 합동 근무를 하는 등 타군 장교와 해병대 장교들이 접촉할 기회가 많고 올바른 정신교육도 받기 때문에 현역 장교들이 타군을 비하하는 경우는 줄었다. 아니 그전에 그 육공군 장교가 자기 상관으로 오는 경우도 많으며 이들에게 찍히면 군생활이 피곤해질 수도 있기에 알아서 조심하는 추세다.
  •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
  • 아시아나 항공기 오인 사격 사건
    초소 근무서던 병사가 원래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멀쩡히 가고 있던 민항기를 뜬금 없이 적기로 오해하여 민항기에 수십여발 사격을 가한 황당한 사건. 늘 오가던 평소 비행 경로대로 멀쩡히 가고 있던 민항기에 대해 사격을 가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다행이 유효 사거리가 넘는거리여서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질타를 받았던 사건. 만약 유효 사거리 내의 거리였다면 민항기가 추락하는 초대형 참사를 일으킬 뻔 했다.
  • 강화군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2011년 7월 4일 오전 취침시간에 총소리가 들리자 다른 생활관에 있던 해병들이 누가 쏘는 건지도 모르고 무작정 활동복차림으로[65] 집단 근무지 이탈 후 부대 주변 민가로 도망쳤다. 총격이 벌어진 그 생활관 내에서는 가해 해병의 총을 붙잡고 몸싸움을 하던 권혁 이병이 있었는데 뒷쪽에 있던 다른 선임 해병들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무서워서 차마 나서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 바람에 권 이병은 혼자서 가해 해병과 서로 총을 붙잡고 밀고 당기는 평형 상태만 계속되다가 총이 아래로 발사되어 결국 고환에 총상을 입고야 만다. 그래서 권 이병의 아버지는 그때 단 한 명만이라도 도와줘서 힘을 합쳤다면 총을 쉽게 뺏었을 테고, 그러면 아들이 고환에 총알을 맞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며 선임 해병들을 원망하는 글을 해병대 가족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권 이병이 총을 뺏진 못했지만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범인을 생활관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걸어 잠군 다음 문을 열지 못하게 침대를 밀어 막았다. 그제서야 총을 맞았던 하반신에서 피가 솟구치고 있는 걸 깨닫고 방 안의 선임 해병들에게 자신을 지혈시켜 달라고 부탁했으나 선임들은 지혈할 줄 모른다며 그 도움 요청마저 회피했고 결국 옷을 찢어 스스로 지혈을 했다. 권 이병이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죽었을 수도 있었으니 생명의 은인인 셈인데 지혈 방법을 모른다며 무작정 회피하고, 목숨이 오가는 위기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용기와 전우애도 없이 그저 보고만 있었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해병대의 명성을 크게 실추시키는 흑역사로 남게 된다.
그리고 해병대 장성들은 권혁 이병을 영웅으로 만들어 준다면서 사탕 발린 말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싹 잊고, 네 돈으로 사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배상해 준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이 일로 더욱 더 해병대의 이미지를 실추 시켰으며 그 뒤에도 악성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는 바람에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66]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짤렸으며 최악의 사령관으로 기억 남게 되었다. 다행히 다음 사령관인 이호연 사령관이나 이영주 사령관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해병대 병영문화 개선에 과감히 나섰고 실제로 2015년경 이후부터는 과거 해병대와 비교해 크게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이건 해병대 '부대'와 직접 연관된 사고는 아니지만, 해병대라는 명칭이 붙어 있고 실제 사고에 책임이 있는 캠프교관들도 모두 해병대 출신 예비역들이었기 때문에 #, #, 어쨌든 해병대의 이미지에 타격이 되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해병대 사령부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해병대 캠프는 포항의 제1사단이 운영하는 캠프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해병대 사령부측의 허락 없이 생긴 사설 업체들이다.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이후 해병대 사령부 측에서는 '해병대 캠프'를 상표등록하는 것을 고려하는 중이라고 한다.
난립해 있는 많은 사설 해병대 캠프들도 대부분 해병대 출신들이 교관이긴 하다. '해병대' 체험 캠프이기 때문에 타 군 출신보다는 당연히 모군인 해병대식 훈련과 훈육방식에 대해 잘 알 수밖에 없는 해병대 전역자들을 우선적으로 교관으로 채용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설 해병캠프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서 교관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다 보니, 교관으로서의 실질적인 능력과 자격을 갖췄는지를 철저히 검증하지 않고 해병대 출신이기만 하면 무작정 채용해왔던 안일한 행태가 결국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터지고 만 것이다. 참고로 정식 1사단 해병캠프의 교관들은 해병대교육훈련단 훈련교관 출신과 해병대 수색대 출신 등 숙련된 현역 간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위험요소 등을 잘 인지하고 있다. 1사단 정식 캠프의 교관 중엔 현재는 D.I가 아니라도 과거에 D.I를 역임했던 경력의 군인도 많다. 다행히 해병대사령부에서 사고 직후 상표권 등록을 하여 이제 더 이상 해병대 캠프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쓸 수 없다. 참고로 해병대 현역간부들은 이러한 종류의 사설 캠프를 되게 싫어했다. 그 이유는 해병대 정식 캠프도 아닌 주제에 해병대 이름으로 돈을 벌고, 해병대 출신들 중 함량 미달인 자들도 수두룩하게 민간해병캠프의 교관, 조교를 하기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이 늘 있고 훈육방식도 서투르고 엉망인 등 제멋대로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고도 끊이질 않아서 해병대 사령부는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매의 눈으로 노려보던 참이었다. 대형사고가 터지자 바로 상표권 등록으로 제동을 걸어버렸다. 물론 사령부 말 더럽게 안듣는 해병대 예비역들의 꼬장을 볼 때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렇지만 해병대사령부에게도 골칫거리였던 존재들인 만큼 앞으로는 예전처럼 우후죽순으로 사설 캠프가 난립하지는 못할 것이다.
  •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
    2017년에 탈북한 뒤 한국에서 생활하던 김 모 씨가 탈북 여성을 강간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후 북한으로 도망가기 위해 2020년 7월 19일 새벽에 해병대 경계망을 뚫고 월북한 사건이다. # 범인은 해병대 제2사단의 경계 섹터인 강화도 북단 최전방지역 철책 밑의 배수로를 통해 빠져나가 한강하구를 헤엄쳐서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 배수로 바로 옆에 해병대 막사와 초소가 있었고 해병대 경계병들이 새벽에 그 사람을 목격하고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범인이 배수로를 거쳐 한강 하구를 헤엄쳐 북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해병대 감시장비에 총 10번이나 포착됐는데도 이중 한 건도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해병대는 월북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 1주일 후에 북한측에서 탈북자가 월북해서 들어왔음을 뒤늦게 발표할때까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중대한 경계실패 책임을 물어 해병대 2 사단장 해임되었고, 해병대 사령관[67] 수도군단장이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 현역 해병대원 우크라이나 의용군 참전 미수 사건
    2022년 3월 21일 휴가 중이던 1사단 소속 해병대 일병이 폴란드로 무단으로 출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매스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지원하기 위해 인접 국가인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한 것. 현역 군인이 휴가 중 해외로 출국할 경우 국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가 없었고 정부의 설득에도 강행했기 때문에 군무이탈 혐의가 적용된다.

11. 여담

11.1. 대중문화

  • 미국의 매체에서 자국 해병대를 멋있게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상황이 꽤 다른데,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의 대중매체에서 한국 해병대 출신들은 모군에 대한 부심(은어)이 너무 심한 광신도같은 이미지 및 허풍이 심하고 쎈척하며 허세나 부리다가 제대로 임자 만나서 망신당하는 등 오바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해병대에서 경험한 폭력적인 병영문화 등의 사실에 기반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해안선같은 진지한 작품이나 해병수색대를 다룬 '대한민국 1%' 같은 영화도 있지만 여기에서조차도 상당히 코믹하게 나온다는게 함정. 2022년에는 해병문학이라 하여 과도하게 희화하는 밈까지 발생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데, 마침 해병대 내에서 또 가혹행위가 있었음이 보도되자 이는 해병비문학이라며, 역시 픽션은 논픽션을 당할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의 대상이 되며 해병대에 대한 인식은 그야말로 점점 우주로 떠나고 있다. 희화화되는 점을 제외하면 (여느 군대나 마찬가지로) 가는게 손해인 곳으로 이미지가 잡혀있기도 하다.

11.2. 귀신 잡는 해병대의 유래

마가렛 히긴스는 미국인 종군 기자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6.25 전쟁의 통영상륙작전에 대한 취재차 해병부대를 방문한 미국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마거릿 히긴스 기자가 "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그들은 귀신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쓴 신문기사가 게재된 걸 계기로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는 일화가 해병대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고, 그 썰이 여기저기서 널리 홍보까지 되고 있다.

하지만 히긴스 기자가 정말 그런 기사를 썼다는 걸 증명할 실제 기사의 존재 여부가 확인된 적은 없다. 히긴스 기자의 한국전쟁 종군 기사들을 모두 모아놓은 저서 War In Korea에도 그런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전쟁에서의 히긴스 기자의 활동을 집중해서 다룬 KBS 역사스페셜에서도 히긴스 기자가 한국전쟁 중에 쓴 보도내용들은 모두 마이크로필름으로 저장돼있는 과거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기사 원본들이 방송화면에 함께 소개되는 형식으로 나왔지만[68], '귀신잡는 해병' 관련 내용만은 기사 원본이 안 나오고 그냥 한국 해병대 출신들의 카더라 인터뷰로만 나왔다. 심지어 제6대 사령관을 지낸 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도 회고록에서 그 별명이 히긴스 기자의 기사에서 유래된 거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고 히긴스 기자가 정말 그런 기사를 썼었는지 여부와 정확한 실제 유래가 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회고록에서 공정식 사령관은 진동리 전투 후 UPI 인터뷰에서 해병대 하사관의 재치있는 답변이 아마 그 유래인 것 같다는 정도로만 말한다.

아무튼 이 별명의 진짜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풍문들만 있을 뿐, 어떤 근거로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는 실정이다.

11.3.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기수와 전우애를 중요시하는 해병대답게 전역 후에도 전우회 활동을 하는 해병대 전역자들이 많이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전우회 가입을 강요하는 등 다소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들과 과한 조직문화 때문에 농담 삼아 3대 마피아라고도 불렸다. 일단 취지는 동료애와 지역사회 도움이다.


11.3.1. 미담

해병대 전우회의 경우 지역 내 봉사활동을 벌이는 등, 긍정적인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 # 2021년 7월에는 물에 빠진 초등학생을 해병대 수색대대 출신 청년이 구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11.4. 해병대와 해군의 군사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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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가 해군을 모체로 하여 떨어져 나온 부대인만큼, 해병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각종 용어와 군 문화의 상당수가 해군에서 유래된 것들이고 병과도 해군에서 빌려왔던 것과는 반대로, 대한민국 해군의 군사경찰 병과는 해병 군사경찰에서 분리되었다. 그래서인지 옛날 해군 군사경찰은 성향이 좀 해병같고, 해군과 해병 군사경찰의 제복이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69] 그래서 해군 군사경찰과 해병대 군사경찰의 복장은 상당히 비슷하다. 예복이나 행사복 복장을 보면 마크와 명찰만 빼면 거의 똑같다.

시간이 꽤 지나서 해군 군사경찰들은 해군 군사경찰대가 해병대 군사경찰대에서 분리된 지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고, 분위기도 해병대와 별 연관이 없다. 원래 해병대의 기원이 배 안에서 선상반란을 막는 등 치안유지 임무를 수행하다 적과 조우 시 적 함정으로 건너가 육박전을 벌이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육전수병들이었단 것을 생각하면 해군군사경찰의 기원이 해병대에 있는 건 당연하다. 참고로 해군 군사경찰에는 일반 치안유지를 맡는 군기군사경찰과 조기경보전대,[70] 항만방어전대,[71] 기지 외곽초소 경비 등을 맡는 경계군사경찰으로 나뉘는데 경계군사경찰은 해병대로 대체하고 없애라는 주장이 많으며 해병대 예비역중에서도 병력 증강하고 좋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과거에는 경계군사경찰의 임무는 해병대 보병이 전담했다.

군사경찰에 의한 해병대원들의 단속과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군기 순찰도 신촌, 홍대거리, 서면역 같이 전혀 안 뜰거 같은 곳에도 잘 출현한다. 한 예로 해병대 제2사단의 군기순찰은 인천해역방어사령부 군사경찰의 지원을 받아 신촌 홍대거리 등에 뜨기도 하고 해병대 제1사단의 군기순찰이 해병대사령부 군사경찰단 및 3함대 군사경찰과 함께 부산광역시의 서면역이나 남포역 등지에 뜨기도 한다. 그래서 소동이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잡히고 자인서 쓰거나 심하면 군기교육대로 직행한다. 특히 해군 군사경찰이나 간부들은 해병대와 서류상 동일 군종이므로 타군은 웬만해선 안잡는 그런 것도 없고 복잡한 인계 절차도 없어 거리낌없이 잡는다. 해병대의 명찰은 빨간색이라 한 눈에 띈다. 그리고 전투화가 육면 가죽으로 되어 있다.

12. 관련 영상

대한민국 해병대 홍보영상
KBS 다큐 해병대 국가전략기동부대의 조건
국방TV 본게임 37회 해병대
[그것이 알고 싶軍, 히든스토리] 해병대

===# 훈련 #===
2012년 뻘 극복훈련
2014년 3월 한ㆍ미 연합 훈련 "쌍용훈련"
2014년 실전 전투체력, 사격훈련
2014년 전투체력훈련
2014년 7월 21일 림팩(RIMPAC, 하와이 전지)훈련
2014년 11월 18일 해군과 해병대의 호국합동상륙훈련
2015 한ㆍ미 해병대 연합 대규모 상륙훈련
2015 한ㆍ미 해병대의 대대급 연합작전 강화를 위해 실시된 KMEP(케이맵) 훈련
2015 해군, 해병대 연대급 합동상륙훈련
2015 독수리 연습의 일환, 한ㆍ미 해군·해병대 연합 상륙훈련 "쌍룡훈련"
2016년 코브라 골드 훈련
2016년 3월 한ㆍ미 연합 훈련 "쌍용훈련"
2017 한국 해병수색대 미 해병대가 함께한 한ㆍ미 해병대 연합 동계전술훈련
2019년 코브라 골드 훈련
2019 전투수영 훈련
2022년 3월 한ㆍ미 연합 훈련 "팀 스피릿 훈련"

13. 관련 문서

상륙함 종류 보기
* LST

14. 둘러보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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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단기 자원만 지원 가능하며, 육군에서 장학금을 받은 군장학생은 지원 불가하다. [61] 당시엔 이미 예편해 있던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도 부정축재 의심자로 명단에 올랐는데, 박정희가 "내가 그분을 잘 아는데, 그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넘기기도 했다. 실제로 부정축재의 근거도 없었다. [62] 마침 창원시에 대통령 별장도 있는지라 별장에 쉬러 간다고 내려올 때마다 대통령이 들락거려서 당시 전국 도로들 중 진해 도로가 가장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63] 박정희가 집권한 19년 동안 대한민국 해군은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다. [64] 박정희도 군인으로 수십년 살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거짓말로 상관 팔아먹는 짓을 좋게 봤을 리가 없다. [65] 짧은 반바지였는데 민간인들에게 팬티로 오인됐고 이후 빤스런이라는 단어를 탄생 시킨다. [66] 20대 총선에서 남양주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새누리당 경선에서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했다. [67] 해병대 2사단은 지상작전사령부 - 수도군단 순서대로 지휘를 받기에 해병대사령관에게 엄중경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68] 역사스페셜 제작진들이 미국의 과거 언론기사들을 모두 사진 찍어서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해 놓은 도서관에 방문하여 촬영해서 화면으로 담아왔다. [69] 해군과 해병 군사경찰의 병과 마크와 군사경찰 근무복과 행사복에 다는 배지의 모양이나 흰색 헬멧, 그리고 동/하 행사복의 형태가 동일하다.[73] [70] 섬지역에 주둔하는 해군의 도서 방어 부대로 섬은 육군이 아닌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이나 해병대가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 서북 도서에는 해병대가 후방 지역의 섬에는 해군이 주둔한다. 1982년이후 도서 방어 임무가 육군에서 해군으로 이관되었다. [71] 부산항 등 항만지역에서 해안경계를 맡는 부대다. [72] 디시인사이드등지의 커무니티 사이트에서는 사실상 황근출 해병이 해병대의 마스코트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