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6 06:29:54

삼국시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중국의 삼국시대에 대한 내용은 삼국시대(중국)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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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三國時代)
국가 고구려 백제 신라 금관가야 대가야
성립 기원전 37년 기원전 18년 기원전 57년 42년 42년
종결 668년 660년 676년 삼국 통일 532년 562년
군주 수 28명 31명 30명 10명 16명
건국 군주 동명성왕 온조왕 혁거세거서간 수로왕 이진아시
멸망 군주 보장왕 의자왕 문무왕 (삼국통일) 구형왕 도설지왕
수도 졸본성
국내성
평양성
위례성( 한성)
웅진성
사비성
서라벌( 경주 월성) 김해 고령

1. 개요2. 역사3. 시대 구분
3.1. 전체적 구분3.2. 고구려의 시대 구분3.3. 백제의 시대 구분3.4. 신라의 시대 구분
3.4.1. 삼국사기의 상중하대 구분3.4.2. 삼국유사의 상중하고 구분3.4.3. 현대의 구분
3.5. 가야의 시대 구분
4. 삼국의 국력5. 가야멸망전6. 삼국통일전쟁7.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7.1. 게임7.2. 드라마7.3. 만화7.4. 뮤지컬7.5. 소설7.6. 애니메이션7.7. 연극7.8. 영화
8. 참고9. 관련 문서

1. 개요



고대에, 북부의 고구려, 중서부의 백제, 동남부의 신라 주요 3국과 기타 소국가들이 정립했던 한국사의 시대 구분.

2. 역사

정사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기원전 57년 가장 먼저 건국되었고, 뒤이어 고구려 기원전 37년에, 마지막으로 백제 기원전 18년 건국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건국에 대해서 고구려의 경우 현도군을 몰아낸 '고구려현' 등의 존재로 인해 건국 연대를 좀 더 올려야 한다는 설이, 백제와 신라의 경우에는 고고학적 실증 자료의 부재로 인해 삼국사기의 기록을 대폭 혹은 일부 불신하고 건국 연대를 내려야 한다는 설이 어느 정도 지지를 얻고 있다.[1] 풍납토성 몽촌토성의 발굴 등으로 《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설은 어느 정도 약화되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완벽히 극복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1세기 ~ 2세기부터 신라와 백제가 치고받고, 진흥왕 이전의 신라군이 오늘날의 함경도 지역까지 올라간다거나 하는 기록은 거의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신뢰하지 않고 있다.[2]

일반적으로는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대강 삼국 시대로 분류하는 편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한반도에 다른 소국 없이 삼국만이 있던 시기는 가야 제국들이 신라에 병합된 562년부터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고작 98년에 불과하다.[3] 그리고 엄밀한 의미를 따지지 않더라도 3세기 중엽을 묘사하는 《 정사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 한반도 중부 이남에는 78개국이 존재했다고 설명하고, [4] 이 외 옥저, , 부여 등 한국사를 설명할 때 함께 설명되는 국가들이 여전히 존재했다고 묘사된다.

따라서 실제로 '삼국 시대'로 칭할 수 있는 시기는 아무리 일러도 4세기 이후이며, 국정 국사 교과서에서는 위서 동이전의 국가들을 삼국 시대 이전의 국가들로 배치하고 있기도 하다[5] 학계에서는 따라서 대략 3세기까지는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를 통해 삼국 시대에서 배제시키고 있는 편이다.

실질적으로 각국이 일대의 패권을 확립한 것은 고구려 2세기 ~ 4세기, 백제 4세기, 신라 5세기 중엽 이후나 되어서의 일이므로, 빨라도 4세기 ~ 5세기 정도 이후에 한정지어야 할 용어이다. 가야 6세기 초중엽까지는 존속해있기 때문에 엄연한 의미에서 삼국시대로 통칭할 수 있는 시기는 100여 년 정도이다. 그래서 사국시대 같은 용어를 미는 경우도 간혹 보이는데, 해당 문서에 설명되있지만 사국시대라는 용어도 허점이 많아 삼국시대 용어보다 더욱 적합한 표현이라기엔 애매하다.

이런저런 대체표현이 제기되고 있지만 '삼국 시대'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게 고조선 이후의 한국사를 설명하는 일반 용어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제법 이름이 알려진 네임드 국가들도 삼국의 성장 과정에서 우걱우걱 당한 잡몹 취급 당하는 안습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략 다음과 같은 국가들이 피해자.
  • 부여(북부여, 동부여): 북부여는 494년 동부여는 410년에 고구려에 멸망
    285년 선비의 습격으로 큰 타격을 입은 뒤 물길에 치이다가 고구려에 실질적으로 병합된 뒤 5세기까지 존속. 현재의 송화강을 중심으로 한 북만주 일대.
    고조선과 존속기간이 수백여년 겹칠 정도로 먼저 성립했고 고구려나 백제도 부여를 계승했다고 자저했으며, 수백 년 후에도 부여의 후손임을 내세운 나라가 있을 정도로 나름 위상이 있는 나라인데... 지못미.
  • 두막루: 동부여 멸망 이후 ~ 8세기 초엽에 쑹화강(송화강) 이북의 샤오싱안링(소흥안령) 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
    북부여의 유민이라고 자처했지만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 낙랑국: 서기 30년대에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멸망. 현재까지 평양설과 함경도 함흥설 등이 대립 중.
  • 옥저 동옥저는 56년 고구려에 남옥저는 260년 백제에 북옥저는 285년 동부여로 바뀌었다. 현재의 북간도,함경도,강원도 북쪽 일대.
  • 목지국: 고이왕 또는 근초고왕 대 백제에 병합되었다는 설이 유력. 백제가 강성하기 전까지 본래 마한의 주도국이었다. 마한을 주도했던 나라라 그런지 목지국이 아니라 그냥 마한이라고 표기되는 경우도 많다. 백제에 점차 밀려 현재의 충남 천안에서 전북 익산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비정. 더 나아가 전남 나주로까 밀려났다는 설도 있다.
  • 침미다례: 일본서기에 따르면 목지국 다음으로 마한에서 초기 강했던 것으로 보이며 369년 백제 근초고왕에 의해 멸망
    전라남도 쪽의 남해안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목지국 이후 마한의 주도국이 되었으나 도륙이라는 단어가 쓰일 만큼 백제에게 처참하게 얻어맞는다.
  • 탐라국: 498년부터 백제의 부용국화, 662년 신라의 부용국화. 왕조로만 따지면 고려 시대에도 왕건 대 부용하여 생존(!)했으나(사실상 중앙정부 지배는 받으나 자치권을 보장받은 자치령 시기) 숙종 대 완전히 군현 체제에 진입했으며, 그나마 명목상 제주도의 군주인 탐라국 왕가는 성주라는 이름 으로 조선초까지 계속 세습됐다. 현재의 제주도.
  • 가야 제국(諸國): 삼한 중 변한이 거의 그대로 계승된 체제로 그나마 고백신 삼국 이외에는 가장 많이 알려져 교과서의 지도에서도 일일이 표시되는 국가 모임 으로, 금관가야가 532년, 대가야가 562년 멸망했다고 하지만 문헌에 따라 가야라는 범주에 묶이는 국가의 수는 5개 ~ 40개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난다.
    대체적인 판도는 현재의 경상남도 전체 및 경상북도 남서부와 전라도 동부.
    가야를 감안해 삼국 시대가 아닌 사국시대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혹 제기되지만 어차피 사국 시대라는 주장도 맞지 않는 것이 애초에
    가야 자체가 다른 삼국과 다르게 1개의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아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듯 가야 말고도 비슷한 시기 여기저기에 나라가 많았기 때문에 오직 4개 나라만 있었던 적은 없었다.
  • 기타 마한, 진한, 변한으로 분류되는 수십 개의 군장 국가들: 대부분 이름과 위치만 겨우 남아있거나 백제, 신라에 언제 어떻게 정복당했다.
    반란을 일으켰다 같은 파편적인 기록만이 남아있으며 고고학과 결합해 겨우 더듬어가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국가들 중 율령제를 통해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고 삼국시대 마지막 백여 년간 한국사의 패권을 두고 실질적으로 경쟁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세 나라 고구려, 백제, 신라뿐이므로 삼국시대라는 단어 자체는 타당성이 높은 편이다.

일부 역사가들은 대가야가 말기에는 나름대로 중앙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실증 자료를 찾기 힘들고 규모도 작은 탓에 대부분의 인식은 중앙 집권화에 실패한 연맹체 또는 소국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라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가야를 연맹 왕국으로 보는 견해 대신 그냥 특정 지역을 통째로 가리키는 명칭에 불과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 가야 문서 참고.) 구삼국사, 삼국사기의 기초가 되는 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사서와 후대의 명칭 등을 보면 최소한 고려 시대부터는 '이 시절은 삼국 시대'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던 것 같으니 지금 와서 고친다는 것도 당위성이 떨어지는 말이기는 하다.

대개의 고대 국가들이 그러하듯 정확한 시작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학계 공통으로 정확히 끝났다고 평가되는 연도는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승리해 당나라 세력을 축출하고 통일을 완성한 676년. 아주 간략화해 설명하는 경우 고구려가 멸망하는 668년을 삼국시대의 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당과 얽혀있던 고구려와 백제의 잔여 세력과 영토를 신라가 흡수한 것이 나당전쟁 와중이므로 676년을 끝으로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나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건국되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에 터를 잡으면서 남북국시대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삼국 시대는 삼국 중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일본 국가의 형성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주었던 시기이며, 일본인들의 직간접적인 조상들이 이 시대에 한반도에서 건너가기도 했다.[6] 심지어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고구려와 백제인의 후예들이 1300년도 더 전에 멸망해버린 조국을 기리는 신사들도 여전히 있을 정도이니 흠좀무 (대표적으로 고구려를 기리는 히다카 시에 위치한 고마 신사). 그야말로 재일교포 0세대(…). 물론 더 나중에 망한 신라를 기리는 신사들 역시 많이 남아있다. 심지어 가야 신사도 있다고 한다.[7]

이 삼국 시대란 용어는 다소 사후처리적인 용어인데, 어떤 통일 정권이 삼국으로 분립된 게 아니라 삼국이 신라로 정리된 이후에 이전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삼국 시대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삼국시대와 명칭이 같지만 중국의 삼국은 하나의 통일 왕조가 멸망하고 다음 통일 왕조가 들어서기 이전의 혼란기, 과도기라는 점, 기간의 차이에서 차라리 한국사의 후삼국시대와 비교될 수 있다. 그래서 태조 왕건에서 삼국지연의를 따라한 건가? 한국사의 원삼국과 삼국 시대는 아직 통일 왕국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이전의, 원시적인 소국들이 서로 경쟁하고 병합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엄밀히 말해서 한국사 버전 춘추전국시대에 가깝다. 그럼 고조선은 한국사 버전의 은, 주 시대?[8]

3. 시대 구분

3.1. 전체적 구분

교육과정에서는 삼국시대 초반부의 경우 '초기 여러 나라의 성장' 단락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나라는 고구려, 부여, 옥저, 동예, 삼한( 마한, 진한, 변한).

교과서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이 삼국시대 초반 시기를 가리켜 원삼국시대라는 용어도 사용하고 있다. 그 외 다른 용어를 미는 경우도 많은데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에 원삼국시대 문서를 참조.

이후는 4세기 백제의 전성기( 근초고왕 재위기), 5세기 고구려의 전성기( 장수왕 재위기), 6세기 신라의 전성기( 진흥왕 재위기) 3단으로 구분해 도식화하는 편이다. 각 세기에 팽창해 한강 유역 등 많은 영토를 군사적으로 차지하고 체제정비가 이루어지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3.2. 고구려의 시대 구분

삼국 중 고구려란 나라를 지칭해 시기별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졸본성, 국내성, 평양성 도읍기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2차례의 천도가 있었고 이것이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삼기에 간편하기 때문이다.

3.3. 백제의 시대 구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2차례의 천도가 있었고 수도의 변천이 백제의 흥망성쇠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삼기에 적절하기 때문에 위례성, 웅진성, 사비성 도읍기를 기준으로 삼아 '한성백제시대', '웅진백제시대', '사비백제시대' 등으로 구분하는 편이다.

한성시대는 백제의 성장과 발전기, 웅진시대는 백제의 침체기, 사비시대는 중흥 및 멸망기로 파악하고 있으며 이런 백제 정치사는 노중국에 의해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었다.

3.4. 신라의 시대 구분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는 천도한 적이 없으며 비교적 사회변혁이 복잡해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3.4.1. 삼국사기의 상중하대 구분

가장 전통적으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통용되는 구분법이다. 삼국사기에서는 왕실의 변화에 따라 상대, 중대, 하대로 나누었다.

3.4.2. 삼국유사의 상중하고 구분

삼국사기의 구분이 왕의 계통이라면 삼국유사의 구분은 불교와 연관돼있다.
보다시피 삼국사기의 상중하대 구분과 삼국유사의 상중하고 구분이 묘하게 겹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어 간단한 시험에서는 암기사항으로도 자주 출제되는 편이다.

3.4.3. 현대의 구분

건국 초기 신라에 대해서, 특히 고고학적으로 말할 때는 지증왕이 국호를 확정하기 전에 많이 사용됐던 사로국으로 지칭하는 편이다. 이는 대체로 '상고기 신라'와 의미가 겹친다.

삼국 중 하나였던 신라와 나당전쟁 종료(676년) 이후 영토가 넓어지고 삼한일통 의식을 정립한 신라를 구분하기 위해 이후의 신라를 통일신라로 구분한다. 해당 문서 참조.

3.5. 가야의 시대 구분

보통 금관가야가 주도권을 잡았던 초기 혹은 전기 가야(연맹), 대가야가 주도권을 잡은 후기 가야로 구분하는 편이다. 연맹설은 학계에서는 거의 부정되고 있지만 교과과정이나 각종 시험에서는 아직 연맹이란 단어를 써서 가르치는 편이고 연맹은 아니라도 전기, 후기라는 단어는 아직도 많이 쓴다.

굳이 상세히 구분하자면 건국기:(42~116년),변진시기:(116~209년),분열기:(209~215년),금관가야 주도기:(215~400년)
쇠퇴기:(400~475년),대가야 주도기:(475~529년),안라가야 주도기:(529년~548년),백제간섭기:(548~554년),멸망기:(554~562년)이다.

4. 삼국의 국력

고대 삼국의 국력이 각각 어느정도였는지도 학계의 큰 관심사이다. 고대 농본 국가의 국력은 인구와 비례하므로 고대 삼국의 국력 역시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인구 수에서 나왔을 것이다.[10]

삼국의 인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조심스럽고 논란이 많은 부분이긴 하지만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병력 동원규모, 파편적인 사료, 그리고 현대의 동아시아 인구 비율을 통한 당시 삼국 인구 추정치 등을 분석했을 때 7세기 중반 기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인구 비율은 3:1:1 내지 4:1:1 정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구당서의 고구려 69만호 기록이나 주필산 전투를 비롯한 고구려 병력 동원 규모가 백제나 신라의 수 배에 달하기 때문이다.[11] 다만 고구려 수도권 이남 지방만이 신라로 들어왔고 평양 이북의 당과 발해, 몽골,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인구 등을 통일신라가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신라 내 삼국의 인구 비중이 1:1:1 정도 아니겠는가 추정하는 것이다. 백제와 신라의 인구의 경우 당시 백제와 신라의 병력 동원 규모가 거의 비슷했다는 점에서 양국간의 체급도 비슷하지 않았겠는가 추정이 가능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백제(충남, 전북, 전남)보다 영역이 몇 배는 더 넓었던 신라(경북, 경남, 충북, 강원 남부, 경기)가 조금은 더 인구가 많지 않았겠는가 하고 추정한다.[12] 영문 위키백과에는 삼국 인구를 각각 350만, 76만, 89만으로 적고있으며 또 백제 당평백제비 24만호 기록, 그리고 병력 동원 기록 등에서 신라가 백제보다 25% 정도 더 많았다는 점(백제 3만 vs 신라 5만) 등을 고려했을 때 각각 350만, 120만, 150만 정도로 보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구려 350만 인구설은 당서 69만호를 근거로 하는 것인데 이것이 연남생이 당에 갖다바친 국내성 주변 10만호를 상실한 인구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고구려 인구가 400만에 육박한다. 사실 중국 통일 왕조를 상대로 수십년간 맞서 싸웠고 수나라 멸망에 크게 기여하기도 한 고구려가 당나라 13만(+신라 5만)한테 일주일만에 망한 백제나 그 백제한테 쩔쩔맨 신라와 비슷한 체급이라는 자체도 말이 안되긴 한다. 다만 백제, 신라가 남한 기반 국가이고 고구려가 북한 기반 국가이다 보니까 남한에서는 삼국 간 국력 차이를 강조하지는 않는듯.[13]

결론은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보다 3~4배 강하고 백제(+마한)와 신라(+가야)의 국력 총합보다도 1.5~2배 더 강한 국가라는 것. 실제로 근초고왕기 백제나 진흥왕기 신라 때조차 당시의 고구려 단일 국력을 백제나 신라가 넘어보지 못했다. 단지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보다 상대해야 하는 전선이 넓기 때문에[14] 백제와 신라에게 투입해야 하는 국력이 전체 국력대비 한정되어 있었고 그 고구려의 일부 국력보단 백제와 신라가 강했던 것이다. 반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으로 대표되는 고구려 전성기에는 그 고구려의 일부 국력조차 백제, 신라, 가야보다 훨씬 강력해 충청도, 경상도 중부까지 국경이 내려와 백제와 신라를 압박했다.[15]

5. 가야멸망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가야멸망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삼국통일전쟁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국통일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 가장 왼쪽에 표시된 것이 원작, 오른쪽이 파생 작품으로 원작보다 유명해진 경우는 굵은 표시를 한다.

7.1. 게임

  • 계백전
  • 광개토대왕(1995년)
  • 광개토태왕(2015년) - 넥슨과 엔도어즈에서 개발한 모바일 게임
  • 봄이 오면 꽃이 피고
  • 삼국기(게임)
  • 삼국이야기 - (주)다고이에서 제작한 보드 게임이다.
  • 삼국통일 대륙을 꿈꾸며
  • 삼한영웅전(웹 게임) - 웹 게임인 계백전을 리메이크한 게임 서비스 한후 서버 종료했다가 2017년 모바일 버전으로 서비스 시작.
  • 삼한일통 - 다물 소프트에서 제작했다가 미완성이 된 채로 제작 중단이 되었다.
  • 삼한제국기
  • 역사왕 - 비져너리 사에서 제작한 보드 게임이다.
  • 왕도의 비밀 - 원작은 소설이고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추리 작품이지만 게임은 백제를 다룬다.
  • 전략 삼국시대
  • 전략급 백촌강의 전투 - 보드 게임으로 일본의 잡지인 게임 저널의 15호 부록으로 등장했다.
  • 천년의 신화
  • 천년의 신화 2
  • 통일 - 2010년에 가단에서 제작한 턴 전략 게임이다.
  • 화랑의 검 - 일본 게임인 검성전을 한국에 수입하면서 현지화한 것 뿐으로 본래 배경은 옛 일본이다.
  • GO! FISH 신라의 삼국통일
  • 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 삼국시대

7.2. 드라마

7.3. 만화

7.4. 뮤지컬

  • 삼천 망국의 꽃
  • 풍월주

7.5. 소설

  • 고구려(소설)(김진명 저)
  • 고구려(정수인 저)
  • 고구려 국선랑 을지소
  • 고구려의 섬
  • 고백신조 - 삼국기(드라마)
  • 광개토대제 - 태왕북벌기(만화), 광개토태왕(드라마)
  • 남당유고
  • 대륙의 한
  • 대제국 고구려
  • 대조영(유현종 저) - 대조영(드라마) - 발해의 건국을 다루기 때문에 초반 한정이다.
  • 대조영(이수광 저)
  • 모살기
  • 미실
  • 백마강
  • 백제의 칼
  • 살수
  • 삼국의 혼
  • 삼한지
  • 아, 고구려
  • 안시성(명건영 저)
  • 역적전
  • 연개소문(강무학 저)
  • 연개소문(김영진 저)
  • 연개소문(박혁문 저)
  • 연개소문(유현종 저) - 연개소문(드라마)
  • 연개소문(이언호 저)
  • 연수영( 황원갑 저)
  • 영웅 온달
  • 오국사기
  • 오국지
  • 왕도의 비밀
  • 요하 ( 김성한 저)
  • 우리나라 삼국지(임동주 저)
  • 을지문덕전
  • 잃어버린 왕국
  • 적패
  • 제국의 꿈(오수영 저)
  • 좌평 성충
  • 천년전쟁
  • 현의 노래( 김훈 저)
  • 홍익대제 고건무
  • 흑산

7.6. 애니메이션

7.7. 연극

  • 가야(춤극)
  • 고구려(춤극)
  • 삼천

7.8. 영화

8. 참고

9. 관련 문서



[1] 이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의 시작이 하필 일제강점기 일제 어용사학계였어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수정론 식민사관설 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다. [2] 이러한 기록에 대해서는 백제와 신라가 자신들이 정복한 국가의 역사를 자국을 주체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 않느냐는 주장도 제시된다. 예를 들면 전라도 일대의 성읍국가 A와 경상도 일대의 성읍국가 B 사이에 1~2세기경 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A와 B가 각각 백제와 신라에 정복당했다면 백제와 신라 측에서는 이 성읍국가들간의 역사를 승자인 자신들로 주체로 바꾸어서 표기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백제와 신라가 후대 5~6세기에야 있었던 사건을 자신들의 역사가 오래됐음을 과시하려고 끌어올린 것이라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렇게 일본서기를 쓰기도 했고... [3] 그나마 가야가 완전히 소멸한 뒤에도 한반도 외부 지역이면서 한국사의 영역이라고 보는 탐라국, 우산국 등 곁가지격인 소 국가들 몇몇은 계속 반독립적으로 존재했다. ( 두막루는 한국사로 보아야 할지 애매하다.) [4] 마한 산하 54개국, 진한 산하 12개국, 변한 산하 12개국으로 중국 시각에서 '편의상' 분류했다. 각 국가의 목록은 각 문서 참조. [5] 다만 고구려, 백제, 신라 단락에서 태조왕, 고국천왕, 고이왕 등을 넣어두기도 했다. [6] 물론 삼국 간에도 일본에 준 영향력 정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백제>>>고구려>신라. [7] 사실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면 삼국 시대 중 한반도에서 일본으로의 집단 이주가 가장 많이 일어났던 시기는 광개토대왕의 가야 공격 즈음으로 추정된다. [8] 사실 은, 주 시대, 즉 춘추 전국 시대 이전의 양쯔강 일대는 중원과 정체성 자체가 아예 달랐다. 애초에 초나라부터가 아예 주나라와 그 산하의 수많은 제후국에 속하지 않은 묘족의 국가에서 출발했다는 말도 있고 초나라 이남으로 가면 한장어족이 아니라 오스트로아시아어족이나 오스트로네시아어 등의 언어를 쓰던 종족들이 살고 있었으니 말 다한 셈. 그리고 한국사에서도 고조선과 아예 별개의 정치체인 진국 등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 들어맞는 비유인 셈. [9] 사실 삼국사기의 서술과 달리 현대의 연구로 성골 개념의 시작시점이 불분명해졌지만, 어쨌든 성골의 끝이 진덕여왕인 것은 이견이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는 성골이 끝날 때까지라고 정의해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10] 다만 유목 제국의 경우 인구 이상의 전투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꼭 국력이 인구가 아니다. [11] 백제의 경우 76만호라는 기록이 당서에 적여있어 이것을 토대로 백제 인구를 380만으로 보는 견해도 소수 존재한다. 그러나 백제가 보여준 동원규모는 최대가 겨우 3만밖에 안되어서 380만의 인구와 맞지 않는다는 점, 고려와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 인구보다도 백제 인구가 더 많게 된다는 오류 등의 이유로 주류 학계에서는 76만호 기록을 부정한다. 대신 76만호를 76만명으로 보거나 혹은 당평백제비에 적힌 24만호(약 120만명, 620만명은 오기로 본다)를 더욱 신뢰하는 편이다. [12] 면적만 보면 신라가 백제의 3~4배 수준이었지만 양국의 인구가 이 정도 차이는 절대 아니었을 것이다. 병력 동원규모가 고구려처럼 차원이 달랐던 것도 아니고 신라의 영역 중 많은 부분이 현재의 경기도, 강원도였는데 이 일대는 당시 기준으로 전방이었을 뿐더러 특히 강원도는 산간지역이라 인구밀도가 상당히 희박했을 것임을 생각하면 양국간 체급 차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이 난다. [13] 실제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백제 전성기, 고구려 전성기, 신라 전성기를 비슷한 분량으로 서술하고 한강 유역 점령 여부를 강조하며 서울의 정통성을 부각하는 등 확실히 남한 지역 위주의 역사 서술이 눈에 띈다. 중국의 삼국지도 말이 위촉오지 위가 촉오를 압도했던 것처럼 삼국시대도 말이 삼국이지 사실 백제, 신라와 고구려를 같이 삼국으로 대등하게 묶기에는 확실히 체급이나 국력 차이가 너무 크다. 다만 위는 서진으로 이어져 삼국의 최종 승자가 되었지만 고구려는 최종 승자가 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북한 평양을 수도로 둔 고구려에 분량을 너무 실어주고 강조해주다 보면 이는 북한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같이 삼국으로 묶인다. [14] 무려 중국과 유목민족을 상대해야 했다. 규모로 봤을 때 고구려 입장에서 백제-신라 싸움은 조금 과장해서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15] 장수왕기 고구려가 남진한 국경선은 사비성과는 약 50km, 서라벌과는 약 30km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 백제나 신라가 고구려 수도와 이렇게 근접한 국경선을 형성해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근초고왕기 백제는 당시 수도 국내성과 수백 km 떨어져 있었고, 진흥왕기 신라가 원산, 함흥까지 올라가긴 했으나 평양과 거리가 그래도 족히 150km는 넘었다. 이렇게나 중국 방면에 발이 묶여 한반도에는 제한된 국력만을 투사하는 고구려마저 백제와 신라의 국력은 크게 능가했다. 다만 고구려는 끝까지 백제와 신라를 멸망시키지는 못해 오히려 신라에 한반도 전선에선 역전까지 허용했지만 당은 백제를 열흘만에 무너뜨리고 고구려도 결국 멸망시켰고 나당전쟁에서 신라를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점을 토대로 보면 고구려가 삼국 중에선 압도적인 국력이긴 하나 환빠들의 주장처럼 중국 통일 왕조와 같은 '제국'이라 불릴 급은 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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