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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가 Tonga |
1. 개요
통가와 한국의 대외관계에 대한 문서이다.약 20명(2017)의 교민이 거주 중이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한국과는 1970년에 수교하였다.[1] 1980년 외무장관 자격으로 투푸토아 왕세자가 방한하였던 적이 있고 1996년 베론 수상이 국빈으로 방한하였다.2.2. 21세기
2010년 이후에는 한국에서 열린 세 차례의 한-태평양 도서국 장관회의에 각각 투이바카노 총리, 바인가 토네 외교차관, 팔렌티나 티우에티 총리실장이 참가하였다.한국에서는 통가라는 나라 자체가 무척이나 작고 인지도가 없는 나라이기는 했지만, 의외로 국가 상류층에서 한국과 이런저런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편이고 이때문에 여러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3. 대사관
양국은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하지만 통가라는 나라 자체가 작아서 대사업무는 주 뉴질랜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대행하고 있는 중이다.4. 사건사고
한국인 사기꾼 60여 명이 이 나라에서 역대급 사기를 친 적이 있었다. 이 나라에 가서 바닷물을 천연가스로 바꿀 수 있는 공장을 짓고 싶다고 통가 국왕에게 야바위를 쳤는데 이게 어떻게 먹혀들어간 것. 리더로 추정되는 인물로 '신학박사 한민수'와 '박사 박준구'가 있다는 사실 외엔 사기꾼들의 정확한 정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이들이 무엇을 챙겼는지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실정이다.바에아 총리가 지난해 통가 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바닷물을 천연가스로 만든다는 '설비'를 보여주며 통가에 공장을 세우고 싶다고 제의하며 미리 공구리를 쳐두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들은 통가 사절단에게 이 기계로 막대한 천연가스를 생산, 수출할 수 있고 한국경제를 신뢰할 수 없어 통가에 진출하고 싶다면서 "토지를 대주면 우리가 공장을 짓겠다"고 말했다. 곧 그들은 목사와 몇몇 한국 기독교 교회 신도들 약 60명을 데리고 왔으며 십자군처럼 몰려와서는 설교하고 1주일가량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 뒤 돌아갔다고 한다.
한국인 사기단은 국왕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의 78회 생일을 맞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상을 내밀며 왕을 구워삶았으며 국왕은 시상식장에 군복을 입고 나와 "세계평화상-하베스터상'이라는 가짜 상을 받았다. 또한, 리더로 추정되는 한민수와 박준구는 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범죄 없는 국가를 건설하고 신이 창조한 자연을 오염시키지 않은 공로"를 인정해 이를 수여하는 것이라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총리 등이 역대 수상자였다는 개소리까지 당당히 해댔다. 더구나 한민수는 통가인들은 몽골인 계통이어서 바에아총리를 '몽골인 세계평화봉사단'의 총재로 선임하기로 했다면서 곧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첫 회의가 개최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이토록 치밀한 사기단의 감언이설이 잘 먹혀들어가는 바람에 통가측은 이들을 위해 퍼레이드를 마련해주었으며 축제가 벌어졌다. 사기단은 정부가 소유한 인터내셔널 데이트라인 호텔에 귀빈 대접을 받으며 묵었다.
공장 기공식에는 이스라엘과 몽골, 말레이시아정부 대표라는 사람들이 참석했으며 한민수와 박준구로부터 '컨버터'라는 것을 기증받은 국왕은 공장 건설을 통해 한국과 통가 양국이 세계평화를 위해 단합할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 사기꾼 작자들은 기공식 1주일 후에 유유히 떠났다고 하며 또 다른 데 가서 사기를 쳤는지 후일담은 모른다. 참고로 이 일이 벌어진 건 1996년도의 일이며 한국에 기사가 난 것은 1997년도의 일이다.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