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4 20:24:44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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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대륙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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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Afric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50px-Africa_%28orthographic_projection%29.svg.png
면적 30,221,532km2
언어별 명칭
한자 阿弗利加
태국어 แอฟริกา
프랑스어 L’Afrique
영어 Africa
독일어 Afrika
러시아어 Африка
힌디어 अफ़्रीका
일본어 アフリカ
포르투갈어 África
스페인어 África
중국어 阿非利加洲&非洲
그리스어 Αφρική
체로키어 ᎬᎿᎦᏍᏛ
아랍어 أفريقيا
히브리어 אפריקה
1. 개요
1.1. 아프리카의 나라들
2. 지역3. 지리 및 지질4. 역사
4.1. 고대~15세기4.2. 15세기 이후: 유럽인의 도래4.3. 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4.4. 195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독립
5. 정치
5.1. 통합
6. 경제7. 문화
7.1. 인종7.2. 종교7.3. 언어7.4. 사회7.5. 음식7.6. 스포츠7.7. 영화
8. 아프리카의 군사9.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10. 특징
10.1. 면적10.2. 인구10.3. 비슷비슷한 나라 이름
11. 한국과의 외교 관계12. 미승인국과 기타 지역13.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거나 등장한 대표적 작품
13.1. 영화
14. 기타15. 관련 문서

1. 개요

지구 상의 육지를 형성하는 대륙 중 하나. 지질학적으로는 아프로-유라시아 대륙의 일부로 북쪽으로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동쪽으로는 수에즈 운하 홍해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인접해 있다.

이름의 유래는 라틴어 리비아 지역[1]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아프리(Afri)'[2]. 여기에 라틴어로 '~의 땅'을 뜻하는 접미사인 '~ica'가 붙어서 '아프리의 땅'이라는 뜻의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완성되었다. 그 외에 고대 그리스어의 아프리케(Aphrike, 추위 없는), 페니키아어의 아파르(Afar, 먼지), 라틴어의 아프리카(Aprica, 햇빛이 내리쬐는)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로마 제국의 아프리카 속주가 설치된 옛 카르타고 영토, 그러니까 지중해 사하라 사막 사이에 끼인 북아프리카 해안지역만 가리키는 좁은 명칭이었으나 세월이 흐르고 대항해시대를 거쳐서 사하라 남쪽으로도 거대한 땅이 계속 이어져 있음이 알려진 이후로는 최북단 튀니지부터 최남단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1.1. 아프리카의 나라들

아프리카의 국가목록
서북아프리카 모로코, 서사하라, 알제리, 튀니지
북아프리카 리비아, 이집트, 수단
동북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지부티,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동아프리카 남수단,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 케냐, 탄자니아, 세이셸
동남아프리카 잠비아, 모잠비크, 말라위 , 짐바브웨, 코모로,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남아프리카 에스와티니, 남아프리카 공화국, 레소토
서남아프리카 나미비아, 보츠와나
중앙아프리카 앙골라, 콩고 민주 공화국, 콩고 공화국, 가봉, 적도 기니, 상투메 프린시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차드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말리, 니제르, 모리타니, 카보베르데, 세네갈, 감비아, 기니비사우,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가나, 토고, 베냉
  • 남수단 수단에서 분리되어 나왔음에도 북아프리카가 아닌 중앙아프리카로 분류된다. 그 이유는 문화적으로 동아프리카나 중앙아프리카에 더 가깝기 때문.
  • 중앙아프리카는 종종 서아프리카-동아프리카-남아프리카로 쪼개지기도 한다.
  • 국가 목록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서북아프리카, 북아프리카는 다른 지역과 문화가 많이 다르다. 사하라 사막을 기준으로 북쪽의 아랍권과 남쪽의 흑인 문화권으로 나뉜다.

2. 지역

아프리카는 두 번째로 큰 대륙에 12억이 넘는 인구와 54개국이 존재하는 거대한 지역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아프리카 사람 또는 아프리카 정도로 뭉뚱그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3] 이는 아시아 전체를 두고 '아시아 사람' 또는 '아시아 말'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리카는 아시아 만큼이나 엄청나게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공존하는 곳이다. 한국 이스라엘이 다른 것처럼 레소토 튀니지는 다른 국가라는 것. 한 나라 안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 이상으로 민족집단간에 정체성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유전적으로도 상당히 다르다. Y 염색체 하플로그룹에 따르면 모로코의 베르베르인(E), 나미비아의 코이코이족(A), 피그미족(B), 말리의 도곤족(E1a), 베냉의 폰족(E1b1a), 투아레그족과 소말리족(E1b1b), 하우사족(R1b)[4],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인(O)[5]의 유전자는 상당히 상이하다. 언어상으로도 당장 니제르콩고어족, 아프리카아시아어족, 나일사하라어족, 코이산어족, 오스트로네시아어족까지 어족만 최소 5개 이상이다. 물론 고립어도 있다!

다만, 대부분 오랜 시간동안 독자적으로 존재해온 유라시아 제국과는 달리, 대부분의 근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제국은 전통적인 부족 단위가 아닌 서구 열강이 자신의 편의에 따라 구분지은 것이 그대로 국경선이 된 것이기 때문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국민들은 부족성 다음이라면 ('아시아인'같은 전혀 생뚱맞은 구분과는 달리) '아프리카인'이라는 정체성과 소속감이 상당히 강한 것은 사실이다. 서구 열강에 맞서 아프리카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의 부흥도 한몫했다. 다만 사하라 이북의 북아프리카 아랍인이니까 전혀 상관없다.[6] 모리타니, 차드의 국내 갈등과 남수단 수단의 갈등을 보면 이 문제를 잘 알 수 있다.

여러가지로 아프리카의 문화권을 나눠볼 수 있겠지만 크게 사하라 사막이 가장 큰 분기점으로 두 구역이 나뉜다. 사하라 사막 이북은 넓은 의미에서 중동(혹은 리비아 ~ 모로코 마그레브로 따로 지칭) 문화권에 포함되는 반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많이 포함한다. 지역별 종교,언어등의 차이는 아래의 '문화'항목 참조.

물론 이 안에서도 서아프리카, 중앙 아프리카,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정도의 구획을 나눌 수 있으나 여기에서 다루기 곤란한 점도 많고 무엇보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적은 탓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편 19세기 당시 서구 열강들이 땅 크기를 균일하게 나누기 위해서 지도상에 줄 긋는 것처럼 만든 국경선이 현재의 국경선이 되었다. 세계지도 한복판에서 위엄과 패기를 내뿜는 아프리카 국경선의 반듯반듯한 모양새는 바로 이것이 원인이다. 원래 국경이라는 건 강이나 산처럼 국경으로 쓰기 편한 게 있으면 그쪽으로 긋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아서 그냥 선 쭉 그어버린 경우도 못지않게 많다. 중동 국가들의 국경선 역시 마찬가지.

이 결과 수천 개의 정체성 및 종족이 50여 개 국가에 합쳐졌다. 서로 원수인 여러 민족이 한 국가에 존재하거나 같은 민족이 나뉘기도 했고, 이외에도 종교, 인종 분쟁의 씨앗을 무수히 심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유럽의 식민 통치 시기에는 각지의 소국들을 하나의 식민 통치 기구 하에 편성하여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존재했지만, 식민 통치가 끝난 이후에는 갓 성립된 정치체가 이를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결국 수많은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아프리카 지역의 부족/종족들의 분포를 표현한 지도. 이 복잡하게 쪼개져 있는 판도를 정치, 문화, 사회 등의 면에 대한 고려를 거의 하지 않고 그냥 지도에 줄 긋고 국경을 정했으니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열강이 지배할 당시에는 적어도 그 분쟁을 통제할 힘이라도 있었지, 독립한 후부터는 통제할 세력도 없겠다 해서 이제 말 그대로 막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하루에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가는 막장 대륙이 되고 말았다. 나이지리아엔 250개 이상의 민족이 존재하며 콩고민주공화국도 이와 비슷하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모두 완전히 다민족국가는 아니고 레소토처럼 인구의 99.7%가 한 민족인 나라도 있다.

그래도 2002년에는 아프리카 경제 공동체(AEC)와 아프리카 통일 기구(OAU)를 통합하여 유럽연합과 비슷한 아프리카 연합을 창설함으로써 뭉치려고 하고 있다.

3. 지리 및 지질

아프리카는 총면적 3,024만 4,050제곱킬로미터로 지구상 육지 면적의 20.3%를 차지해 아시아 대륙 다음으로 큰 대륙이다.

지반도 오래 전부터 존재한 것이기 때문에, , 다이아몬드 등의 광물 자원이 풍부하다. 기후적으로는 적도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고온을 띠고 열대 기후, 사바나, 사하라 사막 등으로 유명하나,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은 온대 지중해성 기후에 속한다. 알기 쉽게 쾨펜 기후 지도로 보자[7]

아프리카 대륙은 과거 곤드와나 대륙에 속했던 땅의 일부며 대부분의 지역은 해발고도 평균 670m 정도로 고지대 없이 광활한 대지로 구성되어 있다. 남부와 동부가 대체로 높은 편.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크기치고는 비교적 기후가 단순하게 구성되며 북쪽 중위도 지역의 광활한 사막지대와, 적도 주변부의 사바나, 남부의 건조한 곳으로 나뉜다. 특히 북쪽 사막은 사하라 사막으로 가장 유명한 사막 중 하나다. 또한 중부의 사바나 역시 야생동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자,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무대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킬리만자로 산, 케냐 산, 카메룬 산 일대 등 고지대도 존재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 강을 비롯해 니제르 강, 콩고 강 등 수량이 풍부한 7대 강이 흐르고 있지만, 대부분 강 하류가 급경사고 상류에 폭포가 많아, 콩고강과 나일강을 제외하면 하천교통로로서의 이용가치는 별로 없다.

이 대륙의 기후와 식생은 원래는 지금보다 더 습윤하고 풍요로운 곳이었다. 그러나 대략 1500만 년 전 쯤 파나마 지협이 만들어져 태평양 대서양이 분리되고, 멕시코만류(Gulf Stream)가 형성되면서 대서양 일대의 기후가 재편성됨에 따라 지금처럼 건조한 대륙이 되었다. 이 사건은 인류의 조상이 정글에서 광활한 대지로 나아가게 밀어붙여 인류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지구조적 활동이 없었던 안정한 지괴(craton)여서, 매우 두꺼운 지각(약 40 km)과 암석권(약 100 km)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5억 년에 걸친 기나긴 시간동안 여러 차례의 킴벌라이트가 발달했다.[8] 킴벌라이트라는 이름 자체도 아프리카의 킴벌리에서 유래했던 만큼, 아프리카의 킴벌라이트는 매우 유명하다. 킴벌라이트는 매우매우 깊은 곳의 암석을 지표까지 끄집어올리기 때문에, 보통은 볼 수 없는 깊은 곳의 암석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종종 자라는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온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예로부터 다이아몬드의 산지로 유명했던 것이다.

또한 수천만년 전부터 아프리카 대륙 아래에는 커다란 맨틀 플룸이 자리잡고 있다. 그 중심지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있지만, 그 영향력이 아프리카 거의 전역에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플룸이 밀어올리는 힘 때문에 아프리카의 동북부와 인근 땅은 모두 찢어지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홍해, 아덴 만, 그리고 동아프리카 지구대(열곡대)이다. 동아프리카 지구대(East-African Rift)는 현존하는 지구대(열곡대) 중 가장 활발하고 유명한 곳으로,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유명한 킬리만자로 화산, 케냐 화산, 에트 알레 화산 등은 모두 이 열곡대의 영향으로 인해 생겨난 화산들이다.

4. 역사

흔히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마치 하나의 나라처럼 뭉뚱그려 취급하는 편견과 더불어 "아프리카는 미개하다"는 편견 때문에 아프리카사는 무시당하거나 오독되고는 한다. 허나 역사적으로도 고대부터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로 추측되는 이집트를 비롯해, 중동 지방(북아프리카)을 제외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방만 보더라도 동아프리카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수단 왕국, 악숨 왕국 등이 있었고, 서아프리카로는 교역의 중심지었던 가나 제국, 말리 제국, 송가이 제국, 베넹 제국, 졸로프 제국, 아샨티 제국 등이 있었으며, 중앙아프리카로는 사오 문명, 카넴-보르누 제국[9], 룬다 왕국, 콩고 왕국 등이 있었고, 남아프리카로는 마풍구브웨 왕국, 짐바브웨 제국, 무타파 제국, 줄루 제국 등이 이룩되었다. 이렇듯 아프리카는 엄연히 역사를 가진 대륙이며, 그 외에도 왕국, 제국 등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인 부족사회를 이뤄가며 다양한 부족 문화를 꽃피웠다.[10] 또한 근대에도 에티오피아 제국 줄루 제국 등은 서양 열강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한 경험이 있으며, 이 중 일부는 독립을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유럽 서구열강의 식민지배에 놓이면서 역사가 저평가되고 침탈과 식민지화 중 많은 역사적 유물과 문화재가 파괴, 약탈, 손실되었고, 많은 부족의 전통 문화가 잊히기도 했다.

4.1. 고대~15세기

북아프리카는 지중해 문화권을 형성하는 주요한 지역으로, 이른 시기부터 국체를 형성하여 인류의 역사를 선도한 바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나일 강 하류를 낀 이집트가 중심이 되었으며, 기원전 1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리비아, 수단, 에티오피아, 카르타고 등도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페니키아인들은 카르타고 등을 건설하고, 기원전 600년경 이집트 왕 네코 2세(Necho II, Νεχώς Β')의 명을 받아서 서아프리카 연안을 항해했다. 기원후 70년경 이집트 상인 그레코가 저술한 에리트라해 안내기에는 그리스부터 동아프리카 잔지바르까지 이어지는 해상교역 활동이 기록되어있다.

그러다 포에니 전쟁으로 대표되는 로마 제국의 성장으로 카르타고와 이집트가 몰락, 이후엔 헬레니즘 제국과 로마 제국에 편입되어, 북아프리카는 오히려 유럽세계의 일원으로서 수백년을 지냈다. 이 시기의 북아프리카는 오히려 로마화된 경험이 없는 동유럽, 중부유럽, 북유럽보다도 더욱 유럽중심문화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그러다 7세기에 아라비아에서 발원한 이슬람 제국의 발흥으로 다시 유럽 세계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 반달족, 동로마 제국 등에 속해 경제적으로 흥성했으나, 7~8세기 동쪽에서 밀려들어온 이슬람교의 열풍이 이 지역을 휩쓴 뒤에는 역사의 새로운 장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집트는 중동의 주류 문화권에 보다 밀접히 가담해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했으며, 그 이서 지역은 마그레브로 불리며 북쪽으로는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 남쪽으로는 서아프리카 무역 국가들에까지 이슬람교를 전파하며 큰 영향을 미쳤다. 북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역할은 베르베르족, 투아레그인, 무어인 등 유목적인 상인들이 맡았다. 한편 에티오피아 수단도 단성론계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으며 계속해서 왕국의 정체를 유지했는데, 16세기 이후에는 남쪽과 서쪽에서 등장한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이는 이 주변 지역의 정치적 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편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반투족 계통 농경민이 남쪽으로 확산되며 철기를 전파하였으나, 초기 역사에서는 혹독한 자연 환경으로 인해 통일적 국체의 형성이 다소 늦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올드 젠네 등의 소국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하다가, 유럽인의 도래 이전까지 가나 왕국, 말리 제국, 송가이 등이 이슬람권과 교류하며 , 노예 등을 매매하였다. 이들은 북부로부터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문자, 의학 등을 보조받을 수 있었으나, 모로코의 개입으로 국가가 패퇴하기도 하였다.

동아프리카 내륙 고원에서는 농경이 아닌 목축이 주류가 되어 정착 생활은 다소 미약했으나, 해안지방에서는 아랍 상인들과의 교역의 결과로 소팔라, 잔지바르, 모가디슈등의 도시가 발달하였다.

남아프리카에는 코이코이족, 산족 등이 남하하였으나 열대 기후를 거치면서 온대 작물은 전해지지 못했고, 이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목축만이 행해지고 있었다.

중앙 아프리카에서는 다소 늦은 16세기 이후에에야 콩고, 루바, 룬다 등의 국가가 형성되어 자리를 잡았다.

북아프리카와 달리 사하라 이남의 그 넓은 땅에서 중앙집권화된 국가가 거의 없었던 이유가 의아할 수 있는데, 이건 전적으로 자연환경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의 식물들은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사하라 이남의 초원지대와 밀림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겨울을 대비할 필요가 없으므로 사시사철 자라면서 지표무기질을 빨아들여 재빨리 씨앗을 퍼뜨리는 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곡물이나 열매는 없고 나무와 풀만 무성하다고 생각하면 쉽다. 자연히 식량수집 방법 역시 채집, 수렵, 목축 정도로 제한된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의 형태도 고정된 영토를 점유하기보다는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시기에 맞춰 이동하는 부족집단 정도로 결정되는 것이다. 중세 이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국가가 사바나와 열대 사이의 좁은 간극에서, 그것도 강의 유량이 풍부한 서아프리카만 일대에서 잠깐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한 위도의 남아메리카에서는 옥수수가 기적적으로 개량되어 중앙집권화된 제국이 성립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주변 부족국가를 완전장악하지는 못하는 수준에 그쳤다.

반면에 사하라 이북의 자연환경은 인해 여름과 겨울이 확연히 구분되므로 겨울에 대비해 각종 과실수나 밀, 쌀, 보리, 콩 등 영양소를 저장하는 곡물류가 자연적으로 생장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는 농경이 시작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중앙집권화된 왕국이 고대부터 등장하게 된다.

4.2. 15세기 이후: 유럽인의 도래

15세기 소위 대항해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특히 포르투갈인들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위해 그 중간에 지나가야 하는 아프리카 항로 개척과 식민화에 열심이었는데, 1415년에 인판트 동 엔히크(항해왕자 엔리케)가 북아프리카 세우타를 점령한 것을 서구인의 아프리카 식민화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엔히크는 1460년 카보 베르데를 발견, 그의 사후 뒤를 이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남아프리카 끝의 희망봉까지, 1497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하면서 아프리카 대륙을 270도 도는 항로 개척이 완성되었고 그 중간중간의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 루안다, 모잠비크 등에 중간 기착지로서 식민기지가 건설된다. 포르투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서 스페인과 교통정리를 했으며 이 시기 아프리카에서 확고한 지위를 획득한다. 다만 이 때는 바다 근처의 일부 지역만 식민지배의 대상이었고 내륙은 아프리카인들의 정치체가 계속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아메리카 대륙을 유럽인들이 발견하면서, 서아프리카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예 무역이 이루어졌다. 현대 미국 브라질 등에 사는 수억명의 흑인들은 사실상 대부분이 이 때부터 있었던 노예무역의 결과인 것이다. 15세기 이후에는 서구 열강의 노예 무역과 새로운 질병의 전파로 인해 인구가 줄어들어 집권적인 국가의 성장이 지체되었다. 흔히 유럽 열강의 대표적인 악행으로 꼽히는 노예 무역은 사실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아프리카 내에서도 자주 행해졌고 아랍인에게 수출하는 일도 흔했다지만 문제는 유럽 각국의 이권을 위해 노예사냥이 인구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격화되어 아프리카의 인구를 대대적으로 유출시키고 정상적인 국가 및 행정 구조의 성장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 유럽인을 통해 전해진 카사바, 옥수수 등의 전래는 한편으로 더욱 많은 인구의 부양을 가능하게 하였다. 병주고 약주고라고나 할까. 이 결과 서아프리카 해안에는 아샨티, 다호메이, 요루바, 오요 등의 국가가 건립되기도 하였는데, 이 국가들은 한국인이 주로 생각하는 '미개한 아프리카', '부족들의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게 나름대로 건실한 국체를 이루며 유럽과 교역하면서 19세기 후반까지 살아남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콩고 왕국의 국왕 은징가 은쿠와는 이미 15세기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아들을 포르투갈에 유학보내기도 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노예 무역을 금지하고 이를 명분으로 아프리카 연안 단속에 나서자, 외부로 유출되지 않은 노예는 아프리카 내부에 존재한 국가들에 수용되어 토착 국가의 확장이 일어났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노예제는 아프리카 자체의 내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더욱 확산되었다. 이 무렵 유럽의 산업혁명으로 고무, 커피, 카카오, 기름야자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유럽과의 교역은 노예무역에서 상품작물을 수출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19세기까지 유럽 세력은 아프리카 연안의 얇은 지역에서만 군사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을 뿐 내륙의 드넓은 지역까지 포함한 본격적인 식민 지배는 이루지 못했다. 아프리카인들도 이미 오랫동안 유럽과의 무역을 통해서 화기를 획득해왔고, 그 무기 기술력은 동시대 유럽의 최신기술까지는 아니지만 19세기까지 조총에 머물던 동양에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석궁을 든 스코틀랜드의 노예상인을 총으로 무장한 원주민들이 쫓아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유럽인들이 19세기 이전에 내륙까지 지배하지 못한 또다른 이유는 아프리카 깊숙한 지역의 질병과 열대 기후가 유럽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11][12] 유럽인의 식민지 건설은 15 ~ 16세기부터 시작되었지만 아프리카 연안의 소규모 도시나, 온대기후라 거주환경이 좋은 남아프리카 지역에서만 성공적이었다. 이 시기에 포르투갈 콩고 모잠비크 해안을, 덴마크 영국, 프랑스는 서아프리카의 황금 해안, 노예 해안, 상아 해안, 후추 해안을, 오만은 동아프리카 해안 일대를 지배했다. 내륙지역까지 지배에 성공한 국가는 거주환경이 좋은 남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네덜란드, 그리고 이집트를 통치한 오스만 제국 뿐이었다.

4.3. 19세기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아프리카의 혹독한 자연 환경과 토착 왕조의 저항은 대항해시대 이후 수백년간 그럭저럭 유럽인의 아프리카 본격적 진입을 좌절시켰다. 그러나 18세기부터 유럽은 데이비드 리빙스턴, 헨리 스탠리같은 탐험가를 파견하면서 내륙 아프리카의 지도를 완성했으며, 슬슬 아프리카 내륙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19세기에는 아시아 식민화가 고착상태에 빠지고, 원래 유럽인의 노예상태에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이 대대적으로 독립했고 노예무역도 거의 폐기되었다. 유럽인들은 이 피해를 보상받을 새로운 만만한 '먹잇감'을 찾았고, 그것이 아프리카 내륙의 완전 식민화였던 것이다.

이때쯤이면 아프리카 국가들도 유럽과의 교역을 통해 총과 대포로 무장했으나[13] 유럽 각국은 비유럽인을 압도하는 개틀링, 맥심 기관총, 야포 등의 더 대단한 무기를 개발하여 아프리카 국가들을 손쉽게 압도한다. 의학 기술의 발달로 아프리카 내륙의 질병을 견딜 수 있게 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결과 19세기에는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가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에 저항해 투쿨로르와 수단 등에서는 마흐디(Mahdi, 구세주) 신앙에 근거한 이슬람 저항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진압되었다. 수단에서는 마디 교단이 다스리는 신정 국가가 들어서서 한동안 영국의 침입에 잘 저항했으나, 맥심 기관총으로 무장한 영국군과 싸운 옴두르만 전투에서 5만 명의 군대가 무참히 궤멸되는 참패를 당하는 바람에 결국 영국한테 60년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다.

서구 열강들의 아프리카 나눠먹기는 경쟁이 심해져 공개적으로 자기들끼리 보어전쟁 같은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1884년 베를린 회담을 통해 거의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 영국이 각각 아프리카의 35.6%, 29%를 잠식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포르투갈, 벨기에, 독일 등이 아프리카의 7% 정도씩을 차지하게 된다. 프랑스는 마그리브 지역과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시작해 끝내 서아프리카 내륙을 대부분 식민지로 장악하였고, 영국은 이집트와 수단, 남아프리카, 나이저 강 하구를 장악한 뒤 서서히 동아프리카 지역 전역을 장악하였다. 스페인은 신대륙 식민지에 집중했던 나라라 아프리카에는 식민지가 많지는 않았지만 서사하라를 포함한 모로코와 적도기니를 정복했으며, 포르투갈은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 등 전통적인 해안 식민지에서 좀 더 주변 내륙 지역으로 뻗어나간 지역에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이외에도 후발주자인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등도 아프리카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특히 벨기에의 콩고 자유국은 같은 제국주의 열강마저 맹비난할 정도로 비인도적인 통치로 악명높았다. 최종적으로는 미국 흑인들의 이주를 명목으로 미국이 독립시켜준 라이베리아와 메넬리크 2세의 근대화 정책이 성공을 거둔 에티오피아 제국 두 케이스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이 서구열강에 의해 식민지화되었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아프리카에 대한 경제적 착취'는 20세기 초반까지 성공적이지 못했고(경제 목적으로 점령한 지역은 목화 산업이 번영했던 이집트 정도뿐), 흔히 알려진 '아프리카 횡단 정책'과 '아프리카 종단 정책'도 영토 과시 외에는 큰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식민지를 확보한다고 철도가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통치 형태도 대체로는 간접 통치 형태였다. 사실 유럽에서 아프리카의 식민지화를 촉진한 동인은 경제적 타산이 아닌 유럽 각국 자본가들의 시장 확보를 위한 탐욕, 정치가들의 국가주의적 경쟁의식 등이었다.

하지만 유럽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프리카에 도움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착취적인 플랜테이션 농업과 군사적인 지배 구조, 타 유럽 국가와의 정치적 대결을 위한 무분별한 식민지의 확장, 인종주의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인종차별 등으로 인해 이 시기의 아프리카는 큰 고통을 받아야 했다. 유럽의 제국주의 정책이 미친 가장 큰 악영향은 그나마 아프리카에 존재하던 고유 국가 체제를 파괴하여 결과적으로 부족들이나 소국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통제력을 떨어뜨리고, 이를 유럽의 취향대로 통합하거나 해체하여 이후 아프리카에 벌어질 혼란상을 야기했다는 점이다.[14]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아프리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 왕국이 아프리카를 정복해 이탈리아 제국을 세울 야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탈리아는 이집트를 침략하면서 아프리카 전선이 시작되었다. 나치 독일, 비시 프랑스도 이탈리아 편을 들었고 이집트는 영국과 함께 연합군 측으로 참전했다. 한편 나치 독일은 북아프리카 전선에 유명한 에르빈 롬멜을 파견하여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결국 추축국은 패배했고,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추축국 세력을 모두 몰아냈다. 에티오피아도 1936년 잠시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가 이때 해방되었다.

4.4. 195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독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지역이 황폐화되자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유럽 국가의 통치에 항거하여 1950년대 ~ 1960년대를 중요한 기점으로 대개 독립 단계에 들어섰으며, 특히 1960년은 '아프리카 독립의 해'로 불린다. 이후 아프리카는 제3세계의 한 축으로 떠올랐으나, 유럽의 식민 통치 동안 내재해 있던 여러 갈등과 불만이 폭발한데다, 독립하면서 유럽과의 연결고리가 끊기자 경제 구조를 재편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많은 국가에서 분란과 내전이 발생했다.[15] 소말리아가 가장 극단적인 예시.[16]

그나마 안정을 찾은 국가들에서도 이디 아민 등의 독재자들에 의한 가혹한 통치, 착취적인 플랜테이션 농업의 지속 등으로 인해 광물이나 석유 자원 등 비빌 구석이 없는 국가는 정치 및 경제 구조도 철저히 망가졌다.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아랍의 봄 당시 대대적인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면서 독재자의 축출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류사에 획을 그을만한 요소들이 많이 모여있음에도, 정작 아프리카 대륙은 혹독한 자연 환경과 근대 이후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행태, 이전에 소국을 이루었던 부족들 사이의 알력과 내전, 집권자들의 독재로 인한 무능한 행정, 부정부패 등으로 인해 많은 시련을 겪고 있다. 자연적으로도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인해서 가뭄이 심화되어 농사와 목축도 제대로 할수 없게되며 이미 부족한 식수가 갈수록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이미 진행 단계에 있는 사막화 또한 갈수록 빨라지고, 날씨가 더욱 따뜻해져서 각종 질병 역시도 갈수록 창궐하고 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에이즈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이 지역에는 무슨 중세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평균 수명이 40살 45살에 불과한 나라들이 수두룩한데, 물론 위생과 영양 상태 등의 다른 요인도 많지만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에이즈이다.

현재 아프리카의 상황은 그 어느 대륙보다도 나쁘지만, 각종 문제들로 인해 갈수록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이 대륙은 점점 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이 되어가고 있다. 국제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정부나 국가적 차원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지라, 민간 단체에서 주최하는 각종 모금 행사나 혹은 각종 공익 방송 프로그램들이 나서서 어떻게든 지원해 주고 있다. 물론 도움을 보낼 수 있는 곳보다 보낼수 없는곳이 더 많은 형편이지만.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상태가 지옥 수준이며 대부분이 정치적으로도 군사 쿠데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독재자가 장기 집권하는 경우도 많고, 그나마 상태가 상대적으로 낫다는 나라들조차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사회적으로 여성의 강간률이 무려 25%나 된다거나 부패정권, 심각한 빈부격차, 높은 문맹률, 위생불결, 에이즈의 창궐 등에서는 다들 별 차이가 없는 막장 상황인지라 아프리카에서 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국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17] 게다가 2000년대 이후의 현대 사회를 기준으로 다른 대륙의 국가들에서는 결코 흔하다고는 할 수 없는 군사 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나 20년 이상의 장기 독재가 이 대륙에서는 거의 정치가들의 기본 소양 수준인지라 이런게 별다른 이슈도 안된다. 35년이 넘게 독재를 이어가는 중인 카메룬 폴 비야같은 이도 자국민 학살이나 나라 전체를 거덜내는 수준의 부정축재 같은 짓은 안해서 개념 독재자 취급을 받는게 바로 아프리카이다.

이외의 국가들도 대개는 석유나 광물 자원이 경제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 그러나 이 나라들에서도 에이즈를 비롯한 질병의 창궐이나 엄청난 빈부격차와 같은 점들은 어쩔 수 없는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그나마 있다는 광물 자원도 수준 낮은 독재자들의 창궐로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독재자 개인이 독식하려고만 들어서 경제 수준은 여타의 대륙들과 비교하면 최악 수준이란 것이다. 설령 독재자라 해도 심하게 부패하진 않고 개념이 잘 박힌 지도자라면 동아시아 국가들의 개발 독재처럼 어떻게 나라를 잘 이끌어나갈 수도 있으나 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은 뭐가 문젠지 열에 아홉은 위 문단의 폴 비야처럼 자국민 대량 학살이나 엄청난 규모의 부정 축재 같은 짓거리만 안하면 다행인 수준의 답없는 통치를 하고 있기에 뭐하나 나아지는 경우가 없다.

무엇보다 이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지정학적 차이에 의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아시아가 2차대전후 냉전에 접어들면서 유럽과 함께 냉전의 주 전장이 되버린 것과 달리 아프리카는 국제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가장 크고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냉전을 겪고 있는 아시아에서는 아무리 독재자라고 해도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으려면 최소한의 나라꼴은 갖춰줘야 했으며 이래저래 간섭받는 일도 잦았고, 그러면서 차관과 공업화, 엘리트 계층의 육성 등이 이루어지는 등 아프리카 국가들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즉, 아시아의 성공한 독재자들[18]의 경우, 물론 개인의 능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여러 환경이 따라주었던 것도 있었다는 것. 반면 아프리카의 경우 미국도 소련도 관심밖의 지역이였던데다 종주국이던 서유럽은 제 코가 석자라 있던 식민지도 독립시키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간섭을 할 수 없었고 아프리카 내부의 국가들은 전부 갓 독립한 신생국가들인지라 다들 상황이 고만고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나라꼴이 엉망진창이라고 침략해 온다거나 할 수도 없었던지라 독재자들이 남의 눈을 보지 않고 막 나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19]

5. 정치

뻑하면 독재자들이 창궐하고 툭하면 쿠데타 내전이 일어나는 등 개판 오분전, 아니 이미 완전히 개판이다.[20]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오마르 봉고( 가봉), 이디 아민( 우간다),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에티오피아),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튀니지),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장 베델 보카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냐싱베 에야데마( 토고) 등 독재자들이 너무 많이 창궐했고 잦은 군사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과 정부가 맨날 바뀌다시피 하는 혼란한 상황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년병들도 많이 징병당해 소년병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계속되는 내전과 쿠데타, 상당수 독재자들의 독재 정치로 나라는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한 개판이 되어버렸다. 르완다 부룬디,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르완다 내전과 부룬디 내전, 비아프라 전쟁, 시에라리온 내전이라는 커다란 유혈 사태를 겪었으며, 그 와중에 남수단이나 에리트레아 등이 역사적인 배경과 민족, 종교, 문화가 속해있는 국가와 다르다는 명분으로 수단,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치뤄 분리 독립을 했다. 소말리아같은 경우는 정치가 아예 없다시피한 나라로 전락해 몇몇 군벌들과 해적, 알샤바브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들이 횡행하는 아프리카판 전국시대가 도래한 상태이며 그나마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나미비아, 보츠와나, 탄자니아, 잠비아, 가나, 케냐정도만이 내전이 없이 정치가 안정적인 편이다.

전세계에서 중앙아시아와 함께 미국과 정치외교적 접점이 가장 없는 지역 중 하나이다. 다만 이와 전혀 별도로 19세기까지 이어진 노예제의 영향으로 인해 현재 미국 국민들 중에 미국 흑인들이 상당히 많기는 하다. 함께 예시로 제시된 중앙아시아 혈통의 미국인들이 소수의 우즈베키스탄계를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것과는 대조적.

5.1. 통합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아프리카 연합이란 유럽 연합과 비슷한 형태의 연합을 결성했다. 그리고 정치, 문화, 경제 등의 분야를 통합시키기 위한 노력도 있는 편이고 경제부분에서는 아프리카의 경제도 통합하기 위해 자유무역지대까지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그외에도 남수단,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르완다, 부룬디를 중심으로 동아프리카 연방(!)을 결성할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합중국(!)이란 것도 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전에도 바르텔레미 보간다 라틴 아프리카 합중국(!)을 제안한 적도 있었다.

6. 경제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으로,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려고 해도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남극을 제외한 전 대륙중에서 OECD 가입국과, UN이나 IMF등 어느 국제기관의 기준으로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대륙이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명목 GDP가 가장 높은 국가는 28위의 나이지리아로, 444,916$를 기록하고 있다. 2위는 G20 참가국인 35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의외로 높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부의 재분배가 실패해 상상 이상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겪고 있는 나라가 상당수이다. 나이지리아 같은 경우도 명목 GDP를 1인당으로 환산하면 겨우 2,049$로, 세계 140위에 속한다.

전체적인 산업구조는 80%이상을 차지하는 농업, 20~10% 정도의 광공업, 10%의 서비스업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많은 나라에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렇다 할 산업기반 없이 자원 수출만으로 성장하고 있는데다, 지나치게 급격한 인구증가 등 뜯어보면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프리카의 경제는 GDP로만 따지면 비슷하지만, 앙골라(앙골라 해에서 나는 석유 제품의 수출 증가 덕이 크다), 에티오피아[21], 나이지리아[22], 모잠비크[23], 가나[24], 적도 기니[25]등의 경제 성장률이 높다.

그 외에 니제르는 1970년대 우라늄 값이 상승할 당시는 무려 9% 경제성장률을 올린 적이 있고, 카메룬은 사실상의 '독재자'로 분류할 수 있는 폴 비야가 개혁을 한 덕에 경제성장률 중상위권에 올라 있다. 보츠와나는 60년대 이래로 안정된 정치상황과 중공업 발전에 힘입어 내륙국이라는 단점과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은 14,000달러 정도로, 웬만한 동유럽 국가 또는 그 이상의 소득을 보여준다. 다만 다이아몬드의 공도 크다. 더욱이 빈부격차가 지니계수 기준으로 0.6에 달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전체 GDP 총합은 미국이나 중국[26], 일본은 커녕 과거 자신들을 악독하게 착취했던 영국, 독일, 프랑스의 GDP보다도 낮다. 2014년 IMF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GDP 총합은 약 2조 5100억 달러인데, 같은 시기 영국은 약 2조 9451억달러, 프랑스는 약 2조 8469억 달러, 독일이 약 3조 9049억 달러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2015년 이후부터는 자원 가격의 폭락으로 GDP가 크게 감소했고, 2016년에는 2조 1600억 달러까지 쪼그라들어서 인도에게마저 역전당했으며, 2017년부터는 1인당 GDP까지 인도가 아프리카를 앞서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인도하고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어서 2018년 아프리카 대륙의 GDP 총합은 2016년보다는 다소 회복된 2조 3200억 달러지만 인도는 2조 7200억 달러에 달하며, 오는 2024년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GDP가 3조 4600억 달러, 인도의 GDP가 4조 7200억 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특정 국가들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인데, 아프리카의 3대 경제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집트의 GDP의 합은 나머지 아프리카 국가들의 GDP의 총합에 맞먹는 수준이며 4위 알제리까지 합산하면 오히려 특정 국가들의 비중이 절반 이상을 넘어간다.[27] 그나마 알제리, 앙골라, 모로코, 케냐, 수단 등의 GDP가 높은 편. 아프리카에서 꽤나 잘사는 나라인 가봉, 리비아, 튀니지는 인구가 적어서 GDP가 별로 높지 않다.

농업은 아프리카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수확량이 낮은 품종, 영농 기구의 보급률의 저조, 수리 및 개보수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계절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다 보니, 국가 경제도 큰 문제를 안고 있다. 1960 ~ 70년대에는 세계 각지의 공업화로 고무, 카카오, 커피 등의 플랜테이션이 수익을 냈으나 그 이후에는 시원찮은 편.

아프리카에서 공업은 주로 광업 위주로 행해진다. 우라늄은 니제르, 석유는 나이지리아 · 적도 기니 · 앙골라, 구리 잠비아, 석탄 남아프리카 공화국, 알루미늄 기니 · 가나, 다이아몬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보츠와나, 시에라리온 등지에서 나온다. 문제는 남아공과 보츠와나, 가나, 코트디부아르[28] 같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광업을 이용할 제철소나 화학공업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굴된 광물들은 대부분 자국에서 한번 정제되는 걸 끝으로 타국에 수출된다.

우간다, 에티오피아, 케냐, 남아프리카 공화국, 가나 등에서는 자동차도 생산한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서비스업은 아프리카에서 부진한데, 빈부격차가 심각하다보니 인구의 소비 능력이 좋지 않아 자연히 도태되는 형편이다.

아프리카 국가의 수출은 식민 모국과의 관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광물이나 곡물 영국이나 프랑스에 수출하는 양이 많다. 특히 가봉의 오마르 봉고(2대 세습을 이룬 독재자다)는 자국의 석유를 대부분 프랑스에 수출하는데, 이는 독재 용인의 대가성이 작용했다. 그러나 케냐 에티오피아 처럼 다양한 수출 판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국가도 있으며, 세계 시장에 자국 브랜드로 제품을 수출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엄청난 인구와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미개발 지역인터라 발전가능성이 높은데 아프리카가 선진국 하나도 제대로 못넘기는 경제력을 가진 근본적 이유는 그놈의 전쟁과 내전, 독재, 부정부패, 빈부격차로 발전역량을 죄다 갉아먹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주민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해외자본이 그 발전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해도 그 발전이 꽃피기 전에 독재와 내전으로 기존의 자본까지 박살내버리기 때문이다. 특히 치안문제가 매우 심각해 외국자본이 들어오려고 해도 치안 때문에 있던 투자자까지 포기하는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점들에도 불과하고, 아프리카 시장[29]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적도 기니, 앙골라, 콩고 공화국 등은 경제 성장률이 매우 높고, LG가 콩고 민주공화국에 진출했을 당시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밀어내고 품질 면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00~2010년간 경제성장률 세계 10위 안에 드는 나라중 7개가 아프리카일정도.

90년대부터 아프리카 연합의 회원국들은 아프리카 경제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일에 아프리카 연합의 의장을 맡고 있는 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은 누악쇼트에서 열린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7월 2일에 아프리카 자유무역지대에 49개국이 참가하기로 합의하고 아프리카 대륙 자유 무역 협정에 남아공 등 5개국이 서명하는 등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가 생겨났다. # # #

중국이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끼치자 EU측은 아프리카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향후 5년간 일자리 1000만개를 창출하는 등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 거기에다 EU는 아프리카국가들과 FTA도 체결할 움직임을 보였다. #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자체적으로 백신을 개발할려는 움직임이 있다. # G7에서도 아프리카 여성들의 디지털 금융을 돕기로 합의했다. # 2020년 7월까지 회원국들은 수출입 상품의 90%에 대해 관세 등을 철폐, 역내 무역촉진을 추진할 예정이다. #

나이지리아도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 미중간의 갈등이 심각하지는 상황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에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다. # 그리고 중국의 지원으로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과 앙골라 로비토를 잇는 철도가 개통되었다. #

7. 문화

7.1. 인종

사하라 북부는 서남아시아계의 아랍인 등 백인종 계통으로 구성된 반면, 사하라 이남은 대개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는 화이트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대부분은 블랙 아프리카라 불린다. 남북의 인구비율은 북부가 20%, 남부가 80%정도 된다. 북아프리카의 아랍계와는 유입경로가 다르지만 유럽 독일, 네덜란드, 영국 이주민들이 건너가 세운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나미비아도 화이트 아프리카로 불리기도 한다.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는 독일인들이 세웠고, 시내에서는 독일계 백인들도 흔히 보여 다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다르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네덜란드인들의 후예들이 아예 본토 네덜란드에서 변형되어 아프리칸스어를 쓰는 보어인이란 별개 민족집단으로 분화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의 아랍인도 인종별로 나뉘어지는건 마찬가지라 수단, 지부티, 소말리아, 차드, 이집트 남부 누비아 등의 흑인계 아랍인과 모로코, 알제리, 리비아, 튀니지, 이집트 북부의 백인계 아랍인,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랍인인 아라비아 반도 출신들이 공존한다. 아라비아 반도 출신들은 대게 예멘에서 바다를 건너왔고 이집트 동부에 흔하다. 이들은 아라비아의 특성상 각 인종이 짬뽕되어 있어[30] 얼굴형이나 피부색이 어중간하다.

아프리카의 인종군(人種群)의 분류는 학자에 따라 견해차가 있는 데다 아직 정설(定說)이 없고, 인종의 명칭도 구구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나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 북부 아프리카 인종: 함-셈계(系)라고 할 수 있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메디테라니데(지중해인) ·베르베리데( 베르베르인) ·오리엔탈리데( 아랍인) 등으로 분류한다. 고대 이집트인 ·콥트인 ·베르베르족(族) ·모르인 등이 메디테라니데에 속하며, 특히 베르베르족 중 아틀라스 산중에서 사하라에 걸친 지역에 사는 종족이 베르베리데라고 불린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백인(코카소이드)의 특색을 지닌다.
  • 서부 아프리카 인종: 이른바 검은 아프리카인은 ‘멜라노 아프리카 인종’이라든지 ‘네그리데’ ‘니그로이드’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서부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아인종(亞人種)’으로서는 ‘기니 아인종’ ‘콩고 아인종’과 ‘수단 아인종’ 또는 ‘바레 네그리데’ ‘수다니데’라고 부르는 종족이 있다. 전자는 기니만에서 콩고에 걸쳐 분포하는데 키는 160∼168cm 정도이며 턱이 튀어나오고 코가 낮다. 이들은 중두(中頭) 또는 단두(短頭)이고, 체격이 늠름하며 주로 열대우림 지대에 살고 있다. 후자는 170cm 이상으로 키가 크고 턱이 심하게 튀어나온 데다가 코가 낮다. 이들은 얼굴이 길고 피부는 아주 검다. 이들은 세네갈강 유역에서 차드호(湖)에 걸친 서부 아프리카의 내륙 사바나 지대에 거주한다. 또한 카메룬 남부에서 콩고에 걸친 열대우림에는 ‘네그릴로 인종’ ‘ 피그미’ 또는 ‘밤부티데’라고 부르는 단신(短身:140cm 내외)에 황갈색 피부와 체모(體毛)가 발달한 인종이 살고 있다.
  • 북동 아프리카 인종: ‘멜라노 아프리카 인종’ 중 ‘아이르 아인종’ 또는 ‘닐로티데’라 부르는 종족인데 마른 데다가 키가 아주 크고(180∼200cm) 팔다리가 길고 코가 좁으며 얇은 입술, 장두(長頭)를 특징으로 한다. 이 종족들은 나일강 상류에서 잠베지강 상류까지 동아프리카 대지구대 연변을 따라 거주한다. 또 다른 중요한 인종으로는 ‘에티오피아 인종’ 또는 ‘에티오피데’라고 부르는 인종이 있는데 이들은 키가 비교적 크고 피부는 상당히 검으나 머리의 모양이나 얼굴 생김새는 백인종적인 특성을 지닌다. 이들은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소말리아에 걸쳐 살고 있으나, 마사이족 등 탄자니아의 내륙에 살고 있는 종족도 있다.
  • 동부·중부·남부 아프리카의 인종: ‘멜라노 아프리카 인종’ ‘네그리데’라고 부르는 인종 중 ‘반투 아인종’이라든지 ‘반투이데’ 또는 ‘카프리데’라 부르는 아인종이 거의 적도 부근에서 남쪽 전지역에 걸쳐 분포한다. 키는 167∼169cm 정도이며 턱은 별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얼굴이 길고 피부색은 다른 흑인계통에 비해 비교적 밝다. 그 밖에 ‘코이산 인종’이라든지 ‘코이사니데’라고 부르는 호텐토트족과 부시먼이 있다. 이 인종은 키가 작고 피부는 황갈색이며 장두 또는 중두, 둔부(臀部)의 돌출이 뚜렷한 특징을 지닌다. 또 언어에 ‘클릭’이라는 정지음(停止音)이 있다.
별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아프리카너’, 혹은 역사적으로는 보어인이라고 자칭하는 토착백인(土着白人)이 있는데 ‘ 아프리칸스어(Afrikaans:네덜란드어 방언의 일종)’를 독자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예외적 케이스로 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 섬에는 ‘몽골로이드’ 혹은 ‘바레몽골리데’라고 하는 말레이 폴리네시아어를 사용하는 동남아시아 출신 계통의 인종이 있다. 이들은 조상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인도양을 건너 마다가스카르 섬에 정착한 것이다.

7.2.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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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종교 분포도. 녹색은 이슬람교, 보라색은 기독교, 주황색은 힌두교, 섞인 곳은 토착신앙과 기독교 또는 이슬람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대체적으로 북쪽은 이슬람교가, 남쪽은 기독교가 양분하는 모양새이다. 사하라 사막을 기준으로 사하라 북쪽은 이슬람교, 사하라 남쪽은 기독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다만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소말리아 탄자니아의 동부해안(잔지바르 섬이 껴 있는)은 무슬림의 비율이 높은 지역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무역과 오만 제국의 확장으로 아랍권의 영향력이 미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부/중부 아프리카에서는 사하라 사막,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대략 남수단 ~ 소말리아 남부 정도를 이슬람 - 기독교의 경계선으로 삼으면 될 듯.

흔히 사람들은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종교의 대다수는 원시 토착 신앙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19세기부터 계속된 서구의 지속적인 기독교 선교/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영향으로 인해 기독교인구와 이슬람교 인구가 각각 거의 절반씩 차지하고 있으며, 양 종교 모두 계속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순수한 토착 종교는 5%~10% 정도로, 세계구급 종교들에 밀려 교세가 약해지고 있다. 다만 한국의 무속 신앙, 제사, 민속 풍습과 같이 아프리카 토착 신앙의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히 존재하며, 아프리카의 기독교, 이슬람교는 토착 신앙과 혼재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부분이 많으며,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문화적으로는 토착 신앙을 같이 신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외에 인도계 이민자들이 주로 믿는 힌두교와 극소수지만 유대교 불교도 있다. 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분포한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선 기독교와 이슬람교, 아프리카 토착 신앙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온건한 국가들에서는 심지어 한 가족 안에 기독교인과 무슬림, 토착 신앙 신자가 섞여 있기도 하다. 그리고 부족 사회가 많은 아프리카의 특성상 한 부족 지도층이 기독교나 이슬람, 토착신앙 중 한 종교를 믿으면 그 부족 구성원 전체가 그 종교를 따라 믿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 절대 다수와, 수단, 나이지리아,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소말리아, 잔지바르 등지에서는 어느 중동 골수 국가들 못지 않은 근본주의 성향의 이슬람이 득세하고 이에 대한 기독교의 반격으로 양 종교가 서로 충돌하며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알샤바브에 의한 테러가 발생되고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 의한 테러도 발생되고 있어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

7.3. 언어

아프리카는 가장 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대륙이다. 어족으로 나누면 크게 아프리카-아시아 어족, 나일-사하라 어족, 니제르-콩고 어족, 코이-산어족 4개로 나뉜다. 그 외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여러 유럽어가 통용되고, 자연환경 때문에 고립어도 많다.

사하라 사막 북부인 북아프리카는 그나마 언어가 통일성있는 편으로, 주로 아랍어를 쓴다. 베르베르계 언어처럼 다른 언어도 존재하지만 주류는 아랍어이다.[31] 물론 다른 아랍어 사용 지역과 마찬가지로 표준 아랍어와 차이가 꽤 있는 아랍어 방언이 많이 쓰인다. 또 프랑스의 식민 경험이 있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서는 프랑스어도 교육, 행정등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어른아이 할것없이 아랍어(방언 포함)와 프랑스어 둘을 모두 구사하는 경우가 아주 잦다. 또한 이들 나라에선 베르베르어를 사용하는 지역도 많이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에 있는 국가들은 일단 가족 및 친척 등 공동체 내에서 무수한 토속언어를 사용하며, 이 때문에 공용어로 쓰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아 영어 프랑스어 등 기존 식민 종주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였다. 기니만을 낀 서아프리카는 주로 프랑스어를 쓰며,[32]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미비아 아프리칸스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하고 이외 보츠와나, 말라위, 잠비아등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영어를 사용한다.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앙골라와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상투메 프린시페,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적도기니에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의 영향으로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가 널리 사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케냐 탄자니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쓰이는 스와힐리어는 토착 언어 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다. 스와힐리족은 무역을 업으로 삼았고, 각지에서 상업활동을 하며 이들의 말이 동아프리카 각지에 퍼졌기 때문. 현재 스와힐리어는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있지만 영어와 달리 유일한 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두 나라 이외에도 콩고 민주 공화국, 코모로의 공용어이기도 하다. 게다가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연합에서는 공식언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 중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부족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동시에 할 줄 아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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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주요 언어와 언어 계열의 분포도를 보여주는 지도.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은 사헬과 동남아시아로 이어진다. 니제르콩고어족은 반투어군의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둘로 나뉘었다.
아프리카에는 3천개가 넘는 언어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 중 아프리카에서 파생된 언어들은 네 가지 어족으로 나뉜다.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는 240개의 언어가 속하며,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 사헬과 동남아시아에서 2억 8500만 명의 사람들이 사용한다. 나일사하라어족에는 100개 이상의 언어가 속하며, 주로 차드, 수단,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와 탄자니아 북부에서 3000만 명이 사용한다. 니제르콩고어족은 주로 사하라 남부에서 사용되며 그 언어의 다양함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짐작된다. 그중 많은 수는 반투어군에 속하며 중부 및 남부 아프리카에서 사용된다. 코이산어족에는 50개 이상의 언어가 속하며, 남부 아프리카에서 1200만 명의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들 언어 중에는 사멸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들이 많다. 코이 족과 산 족은 아프리카 남부의 첫 정착자로 여겨진다. 유럽의 언어 또한 널리 사용된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강세를 이루며 타 국가의 공식 언어( 네덜란드어,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아프리칸스어, 러시아어)도 가끔 볼 수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인구증가율이 높아지면서 아프리카내에서는 프랑스어 사용자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2050년이 되면 아프리카의 프랑스어 사용자의 수는 8억명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는 프랑스어권 지역에서는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보니 인구증가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거기에다 중국-아프리카 관계의 영향으로 중국어를 배우는 아프리카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쓰이는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의 경우에는 유럽식에 가까운 편이고 발음이나 어휘도 유럽식에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하라 이남에서는 10만명이상, 북아프리카에서는 130만명이상이 러시아어를 할수있다고 러시아 연방기관의 파벨 셰프소프 부대표가 밝혔다. #

7.4. 사회

사하라 사막 북부는 에이즈 감염율도 낮고, 살인율도 낮고, 평균 수명도 긴 편에 속한다. 반면 사하라 이남은 반대로 에이즈 감염, 높은 살인율, 내전/내란 등으로 불안한 사회상을 보인다. 다만 요즘은 북부도 안심 할 수는 없는게 사막이 워낙 넓어 테러단체가 설쳐대기엔 딱 좋은데다가 리비아 내전으로 인하여 북부의 정세도 급격히 악화되어 지금까지도 영향력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가장 안전한 곳은 바다 건너에 스페인을 맞대고 있는 모로코 북부지방이다.

7.5. 음식

아프리카 요리는 지역과 재료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재료는 일반적으로 카사바, , 보리, 바나나 등으로 한다. 고기는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의 영향으로 주로 을 쓴다. 짐바브웨의 경우 로버트 무가베가 독재를 할 당시에는 귀빈들에게 닭고기를 대접하기도 했다.

북아프리카 지역은 베두인이나 무어인의 음식이 프랑스 같은 서구 식생활의 영향을 받았다. 코트디부아르, 말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지역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쌀을 주식으로도 한다. 다만 우리나라와는 품종이 다르다. 특히 마다가스카르는 다른 아프리카의 음식들과는 달리 무척 아시아스럽다.

7.6. 스포츠

동부 아프리카는 마라톤 및 중장거리 달리기 등의 육상, 서부는 축구가 강세이다. 월드컵 때 8강까지 가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받았던 남자 축구와는 달리 여자 축구는 실력이 저조한 대륙이다. 그나마 나이지리아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힘을 쓰고 있다.

그렇다 해도 오세아니아와 더불어 월드컵 4강에 들어간 적이 있는 국가가 단 1개국도 존재하지 않는 대륙이다. 유럽 남미야 애초에 축구를 양분하는 대륙이고 북중미 미국이 1930년 우루과이 첫월드컵에서 4강에 올라갔으며 아시아도 2002년[33] 한국이 4강에 진출한 바 있다. FIFA 여자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만 두 번 토너먼트를 넘었다. 아시아 일본도 우승한 판국이고 미국은 3번이나 우승을 했다.

육상, 축구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종목의 스포츠들이 타 대륙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편이다.

다만, 아프리카 대륙의 월드컵 개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루어진 바 있다. 비록 개최국이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불명예를 겪기도 했지만. 그나마 프랑스를 상대로 1승은 챙겼다.

2016년 하계 올림픽이 그동안 올림픽이 미개최 지역이었던 남미[34] 대륙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됨에 따라, 아프리카는 올림픽 참가 대륙[35] 중에서 유일하게 올림픽 대회를 미개최한 대륙으로 남게 되었다. 케냐, 남아공, 모로코 2028년 하계 올림픽 유치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이지만 2017년 IOC와 파리 그리고 LA의 삼자합의가 이루어져서 2024년은 프랑스 파리로 2028년은 미국의 LA가 개최지로 선정되어서 2028년은 실패로 돌아가서 유치를 할려면 최소 2032년 이후를 노려야할 듯하며, 이마저도 암울한 전망이다. 리우 올림픽 이후 IOC에서 재정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개도국의 올림픽 유치를 극도로 꺼리고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어려울 듯하다.

7.7. 영화

독자적으로 시장이 구축되고 유명 인사들을 배출한 이집트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안습한 편. 심지어 위키백과에서도 항목이 빈약한 축에 속한다.

프랑스인이었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장 루슈[36]와 IDHEC에 입학해 탈식민주의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폴린 소마누 비예라가 있었지만, 현대 아프리카 영화의 시초는 보통 세네갈 우스만 셈벤[37]이 1960년에 만든 흑인 여인을 꼽는다. 세네갈은 한동안 우스만 셈벤이나 지브럴 좁 맙벱티 같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감독들을 배출하며 선두에 섰으나 1980년대부터 많이 쇠퇴한 편이다.

이후로는 비디오 붐을 타고 올라온 나이지리아가 주도권을 잡고 가나 영화나 우간다 같은 후발주자들이 따라가고 있는 상태. 하지만 비슷한 입지를 다지며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인도 영화랑 달리 아직 갈 길이 먼 편이다. 당장 가나, 우간다 영화들은 타국에선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일종의 유머로 소비되고 있고 나이지리아 영화 역시 갈길이 멀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래도 국가에서도 주목하고 있는지 자체적으로 영화 학교를 설립하고 유럽 쪽의 지원을 받아 발전시키려고 하는 중.

아프리카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우스만 셈벤의 할라, 물라데, 지브롤 좁 맙베티의 투키 부키 (이하 세네갈), 술레이만 시세의 광채 ( 말리), 마하멧 살룬 하룬의 절규하는 남자 ( 차드), 압데라만 시사코의 팀북투 ( 모리타니)가 꼽힌다. 대체로 현실은 시궁창을 내세우는 리얼리즘 계통의 영화가 많으며, 탈식민주의적인 비판이라던가 자국 문화에 대한 고찰이 중심을 이룬다.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에서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오는건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한다. 그나마도 프랑스와 영국, 독일 같은 유럽에서 투자해줘야지 겨우 나온다고.[38] 그리고 그렇게 나온 영화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개봉된 적이 없다. 디지털 영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정이 좀 나아지긴 했다.

출처

8. 아프리카의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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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

유럽에서는 흑인이 많이 산다는 이유로 검은 대륙이라고 불렀다. 한편으로 대항해시대 당시에는 이곳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 위험하고 야만적이라고 여기고, 비유적 의미에서 검은 대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대에도 이러한 선입견이 매우 강해서, '검은 대륙 아프리카'라는 이미지는 이미 한국인에게도 익숙해진 표현이다. 즉, 흔히 알려진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것에 집중되어 있다.

과거 1960년대~80년대의 개발도상국 시절 대한민국에서는 아프리카나 아프리카 국가 및 민족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더럽고 지저분한 놈들이나 사는 혐오스러운 곳이라고 인식해 왔으며, 아프리카 흑인에게는 ' 깜둥이', '시커먼놈', ' 초콜릿', ' 석탄', ' 연탄', ' 번개탄' 이라고 비하하며 부르기도 하였고, 맨손으로 밥을 먹는다거나[39] 옷을 입지않고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미개한 민족, 토인이라고 비하하거나 왜곡해서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는 1960년대 이전 서양의 관점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40]

그도 그럴것이, 대한민국은 조선 후기부터 일본을 통해 접해왔던 유럽 열강이나, 6.25이후 들어온 미국식의 서구 문화가 동아시아를 벗어난 '해외'의 전부였으며, 거리도 멀어서 그 당시 상호 교류도 없었고 아프리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은 마찬가지 였음에도 서방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인식되는 국가라면 인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집트, 6.25 전쟁 때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친위 부대인 메할 세파리(Mehal Sefari)를 파병한 에티오피아 제국 정도가 다였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의 유치가 바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의 지지로 가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예 말도 안통하는 원시부족이라는 엄청난 오해는 어느정도 벗어졌다. 실제 전두환 대통령이 1982년 아프리카 (중부) 국가 4개국( 케냐, 나이지리아, 가봉, 세네갈) 등을 직접 방문하는 등 공을 들이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를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공헌했다. 이것이 정치적 기반을 다지지 못한 5공 정권의 홍보성 방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외교력 증대와 아프리카와의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전까지 금전적 물주 + ' 제3세계'에 대한 외교력을 통해 외교적 우위를 점했던 북한(심지어 전두환의 순방 때도 가봉에서는 실수로 북한 국가(!)가 울려퍼져 장세동이 제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을 뒤집은 결정적인 시점이 1980년대로 평가되는 것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전환점.

허나 그후에도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올림픽 이후로도 일상 생활에서 검은 피부에 경제적으로 빈곤한 '부족민', '미개인' 등의 이미지[41]로 아프리카의 흑인 민족 및 국가를 제시하는 것은 여전하였고, 미디어에서 아프리카를 비하하는 내용도 자주 나오곤 했다. '아프리카 토인'이라는 말은 이미 상당수 청년층 이상 한국인에게 익숙할 것.

20세기 말을 지나 21세기 초엽에 들어 한국인들이 경제 발달과 세계화 이후 국제적인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미신과 주술, 부족 정치, 벌거벗은 인물 군상, 정글 혹은 사바나 속의 사냥 등 단순하고 원시적인 이미지에 그쳐 있었다. 2012년에도 굴지의 글로벌 항공사라는 대한항공 케냐에 취항하면서 '원시적(primitive) 에너지가 넘치는 케냐'라는 문구로 광고 때렸다가 현지인들의 항의를 받고 삭제하는 소동도 일어난 바 있다.

그래도 2010년대 이후론 뉴스와 다양한 매체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의 이미지가 단순한 원시 미개인에서 내전, 군벌, 빈곤, 전염병, 기근, 분쟁 지역, 원조 대상국, 독재 국가 등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변하였으며, 이는 반박하기 어려운 엄연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나마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 이런 것들로부터 안전한 국가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떨어져 있는 섬나라들이다.[42] 애시당초 더 떨어질래야 떨어질 곳도 없는 인식이였지만, 적어도 사실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는 것.

많은 한국인들이 이러한 현실에 기초해 아프리카가 '유럽의 식민지 이전 시대까지 제대로 된 정체를 형성하지 못하여 현재에도 빈곤한 대륙'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래에서 열거할 책들을 읽고 있으면 주변에서 "아프리카에도 역사가 있어?"라고 묻는 것이 안습한 현실. 하지만 그곳에도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다. 아프리카가 빈곤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과거 아프리카 펜팔 피아노라는 도시전설이 유포되기도 했다.

알려진 대로 치안이 극히 좋지 않은 지역이 많으나, 모로코 튀니지, 탄자니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미비아, 이집트 같이 유럽, 혹은 타 대륙에서 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이 유명한 나라들은 치안 상태가 훨씬 나은 편이다.[43] 이렇듯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국가들이 여럿 존재하나, 대체로 일부 지역은 아직도 내전 및 테러단체가 활동중이기도 하며, 꼭 내전이 아니더라도 국가의 치안 자체가 불안정해서 신고를 해도 경찰이 오질 않거나 하는 경우가 많고 강도나 살인사건등이 상당히 일어난다. 특히 성별로 보자면 아무래도 당연히 남성보단 여성이 더 범죄를 당할 위험성이 높다.

또한 여성 인권이 낮은 국가가 상당히 많다. 사하라 이남 중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여성할례같은 행위가 벌어지는 곳도 상당히 많으며,조혼에 피임도 제대로 안되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엄청나게 높은 출산률을 기록한다. 그리고 지역마다 아주 상당한 편차가 있으나, 에이즈 감염률이 높은 곳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모로코 튀니지를 비롯한 아프리카 북부가 중동국가와 합쳐도 18,000명밖에 안되는 에이즈 감염율을 보인 반면, 아프리카 동부 및 남부는 약 800,000명으로 세계 1위, 서부는 약 370,000명으로 세계 2위의 감염률을 보인다. 다행인것은 이것이 2017년자 통계인데, 7년전인 2010년에 비해선 아프리카 동부 및 남부 기준으로는 에이즈 감염율이 30%나 떨어졌다는것. ##

2010년대를 지나 2020년대에 접어드는 시점에서는 한국에서도 샘 오취리 새미 라샤드, 조나단 토나등의 아프리카계 인물들이 방송에 자주 등장하며 익숙해지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는 인식이 상당히 정상화 되어가고있고, 아프리카라는 대륙의 잠재성에 눈독을 들인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나서 투자를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44]

선입견 및 편견을 벗어나 아프리카의 변천사에 대해 알고 싶다면 루츠 반 다이크(Lutz van Dijk)가 쓴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라는 책을 입문 차원에서 참고하면 좋다. 존 아일리프의 '아프리카의 역사'가 다음 스텝. 그 외에는 대한교과서 북아프리카사와 두산에듀의 통아프리카사가 있으며, 그 외 교과서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서적들에서도 아프리카 역사가 다른 적도 근방 대륙 역사들과 함께 나온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을 추천하고 싶지만, 이집트 이외에는 아프리카의 개별 국가들을 다룬 책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번역서조차도.( 마그리브 중동 쪽 개설서에서 함께 엿볼 수 있긴 하지만...)

10. 특징

10.1. 면적

대륙별 면적순으로는 딱 중간이다. 즉, 유라시아 대륙 > 아메리카 대륙 > 아프리카 대륙 > 남극 대륙 > (섬 대륙)호주 순이다. 2위인 아메리카 대륙의 3/4 수준이다. 다만 아메리카 대륙을 남/북아메리카로 구분할 경우에는 아프리카 대륙이 2번째로 크다.

흔한 지도에서 보이는 것보단 아프리카의 면적은 왕창 커서, 3000만 km2에 달한다. 한반도의 150배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유럽을 뺀 아시아지역 면적인 4,382만 km2(섬 제외)와 비교해도 상당히 큰 편이다. 거기에서 다시 1,380만 km2 시베리아를 빼 놓으면 아시아와 맞먹는다.

이렇게 큰데도 왜 그렇게 보이지 않냐 물으면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해 극지에 가까울수록 왜곡되는 정도가 커지기 때문. 그린란드가 실제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면적이지만 평면지도에서 대륙 정도로 엄청나게 큰 섬처럼 왜곡되어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45] 지구본으로 보면 실제 면적 비교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적도가 대륙의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어서 열대기후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기후에 속하는 지역도 많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대부분 사바나기후 열대우림기후에 속하지만, 57.8℃를 기록한 사하라 사막 지역은 건조기후에 속하고, 사하라 사막 북쪽 지중해에 인접한 지역은 온대기후 아열대기후에 속하며, 마찬가지로 적도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남아공도 아열대기후에 속한다. 심지어 일단 킬리만자로 산 정상의 만년설은 제외하고 -15℃보다 낮은 최저기온을 기록한 지역도 4군데나 있다. 물론 4군데 다 아프리카의 북쪽 끝과 남쪽 끝에 가까운 지역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곳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나와라 시베리아

그러나 거주 가능 면적을 생각해보았을 때에는 다소 더 좁아진다. 면적의 1/3이 사하라 사막이며 그 인근 스텝 지역도 척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10.2. 인구

거대한 면적에 비해 인구는 적은 편인데 인구밀도가 1km2 당 30명으로 지구 육지의 평균 인구밀도인 52명/km2보다 낮다. 아프리카 대륙의 전체 인구는 약 12억명으로 중국 인도의 14억보다 적다.

하지만 높은 인구증가율로 2016년 36.4로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의 인구밀도를 추월하였고 30년내에 유럽대륙부의 인구밀도도 추월할 전망이다. 인구 성장률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출산율이 5명대를 넘어가는 대부분의 나라가 아프리카에 있으며 심지어 니제르 기니비사우7명대다. 이러니 내전이나 기아 등으로 사람이 무수하게 죽어나가든 말든 도저히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가 없다.

2012년 현재 6대륙 중 사실 상 유일하게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율이 매년 상승하고 있는 대륙이다. 전망하는 바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 인구는 2030년에 16억, 2050년에 23억 명까지 증가하며 특히 우간다, 니제르 에티오피아는 인구가 각각 2030년이면 6700만 명, 3200만 명, 1억 6000만 명까지 증가한다. 참고로 이 세 나라의 현재 인구는 각각 3500만 명, 1700만 명, 9000만 명이라는 점을 볼 때 20년 만에 인구가 두 배나 증가하게 된다. 2050년 전망은 각각 1억 2500만 명, 5500만 명, 2억 7500만 명까지 는다고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내에도 1억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가 존재하는데,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로 2019년에 1억9,894만4,129명을 기록했지만, 에티오피아가 2018년에 1억690만8,880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9년에 이집트가 1억30만1,912명을 기록하면서 아프리카내의 인구가 상술했다시피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0.3. 비슷비슷한 나라 이름

아프리카의 나라 이름을 잘 살펴보면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곳이 몇 군데 있다. 아래 목록은 이름이 비슷하거나 혹은 이름에 뭐가 붙고 안 붙고의 차이가 존재하는 등의 이유로 혼동의 여지가 있는 나라를 서로 짝지은 것이다.

일부는 하천이나 만(灣) 등의 지명 때문에 이름이 비슷하게 붙여진 경우가 있고, 의미가 있는 국명을 정하려 할 경우 여러 부족들의 분란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지명을 선택해 국명을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 들어올 예는 아니지만 남수단 공화국이 그런 경우.

11. 한국과의 외교 관계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과 아프리카와의 관계는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며 이미 구한말부터 수교를 맺은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 일제강점기 이후에 가서야 뒤늦게 관계를 맺을 정도로 외교관계면에서도 뒤쳐져 있어서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다.[47]

게다가 한국 내에서도 유럽과 북미문화를 숭상하는 분위기 때문에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상식 등으로 오해를 부르기도 하였고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편이었다. 21세기인 현재도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인 편견이나 오해는 없어졌다고는 해도[48]아직까지 남아있고 관련 전공자도 별로 없어서 방송 매체 등에서도 아프리카를 대륙이 아닌 단일국가인 것처럼 묘사한다.[49]

일례로 2014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 사태를 전후하여 덕성여대에서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을 행사에 초청한 것을 두고 벌어진 해프닝이 있다. 나이지리아 등 발병 국가 출신자는 이미 초청을 취소한 상황에서 발병지역과 5,0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학생들까지 '에볼라가 유행하는 아프리카 사람' 이라는 인식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일이 있었다.[50]

심지어 방송에서 아프리카어나 아프리카 이름에 대해 진지하게 얘길 나누기도 했다. 예능에선 뭐 말할 것도 없다. 무한도전만 해도 무한상사 편에서 정준하가 구사하는 언어를 두고 아프리카어라고 방송을 내보낸 적이 있다. 마치 한국어나 일본어, 태국어 및 힌디어를 다 뭉퉁그려서 "아시아어"라고 이름붙인 꼴이니 현지인들이 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무식하게 보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프리카에 존재하는 언어 수는 언어학자들 간에 이견은 있으나 대략 수백에서 수천가지에 달한다.

과거 냉전이 한창일 시기에 아프리카의 일부 사회주의 및 친북 성향을 가진 나라에서는 반한 혐한 인식이 강한 반면 북한과의 친교를 앞세워 친북 성향을 중시하여 남한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까지 가졌던 적도 있었다. 가난하고 부족한 대륙이다보니 소련의 사회주의가 물들어 있기도 하였고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도 있는 탓에 남한을 비롯한 친자본국가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인식이 높았다. 그러나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재임 시기 남방 외교 강화를 위해 아프리카 5개국 순방 등이 이루어지며 어느정도 관계가 개선되었고, 냉전이 종료된 이후에는 더욱 완화되어서 지금은 남북한과 동시관계를 맺은 나라들이 증가하는 등 변화도 있었다.[51]

최근에는 아래에서 보듯이 아프리카라는 대륙의 잠재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여러가지 투자 및 원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 5월 30일에 남아공의 브랜드 아프리카가 최근 발표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존경받는 브랜드에 삼성 LG가 10위권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한인단체들이 우물기증행사을 열고 있다. # 그리고 신한은행은 2018년 9월 14일에 런던에서 아프리카 수출입은행과 1억5천만달러규모의 신디케이션론 약정 서명행사를 개최했다. # 2018년 10월 11일에 한국 외교부는 한국-아프리카 연합 정책 협의회를 갖고 협력강화방안을 논의했다. # 2018년 11월 23일에 한·아프리카재단은 대한상공회의소와 국내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 그리고 대한민국 외교부는 2018년 12월 5일에 '서울 아프리카 대화'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 그리고 이주영 국회 부의장은 12월 7일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사들과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들이 힘을 합쳐 국제사회를 주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 2018년 5월에 2018 아프리카 연합은행 연차총회를 성공리에 개최한 부산시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에티오피아[52] 이집트[53]를 제외한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와는 대한민국 직항편이 없어 비행 시간이 최소 15시간은 걸리는 나라들이 많다.[54] 또한 아프리카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관광[55]보다는 대부분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가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 3개국에서 사이클론 '이다이'로 인해 피해를 입자 한국 정부는 5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 농촌진흥청은 아프리카에서 채소유통중 손실을 줄이는 방법을 가나와 케냐에 보급한다고 밝혔다. #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아프리카에 사진작가를 파견해 현지주민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 그리고 해외건설협회는 ODA 사업참여확대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협의회를 개최했다. #

아프리카 국가들의 한국 중고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 중고차를 이 곳으로 수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2019년 6월 12일 ~ 15일까지 외교부주관으로 아프리카의 편견을 깨는 영화, 문화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

아프리카 3개국을 방문중인 강경화 장관은 2019년 7월 11일에 아디스아바바에서 무사 파키 마하마트 아프리카 연합 집행위원장을 면담하고 파트너십 강화 방안을 논의하면서 한-아프리카 연합 청년교류협력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

외교부의 4번째 산하기관으로 출범한 한·아프리카재단의 최연호 이사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프리카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밝혔고, 한-아프리카 간 우호·협력 관계[56] 확대에도 공을 들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또한, 이집트와 마다가스카르의 외교관들이 유튜브로 주재국을 알리는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 대한상의는 아프리카 8개국의 공무원들을 초청하는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

아프리카 콘텐츠 대중화 브랜드 쏘쿨아프리카는 아프리카 현지에서 목표치를 넘는 펀딩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 그리고 국가기술표준원은 아프리카 29개국 표준전문가 33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한국의 표준화 경험을 공유하고 양측 간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한 경제5단체는 한국을 공식방문중인 에티오피아 사절단을 만나 에티오피아 및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 2017년 5월 21일에 서울시에선 국내 최대의 아프리카 축제가 개최되었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주한대사관이 주최가 되어서 운영이 되었다. #

아프리카가 12억 단일시장을 목표로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를 공식 출범시키며 아프리카의 전략적 중요성을 두고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이미 아프리카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한국측도 한국-아프리카 재단을 설립하고 국무총리의 아프리카 방문 등 여러분야에서 협력을 하고 있다. # 그리고 코이카는 세계보건기구의 아프리카 소외 열대질환 퇴치 프로그램에 3년간 총 6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 코트라는 2019년 10월 1일 ~ 5일까지 남아공 케이프타운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 소비재 수출전 플러스를 개최하고 있다고 밝혔다. #

코트라는 2019년 10월 31일에 아비장에서 아프리카의 인프라 사업 진출 방안을 모색하는 '2019 한·아프리카 프로젝트 플라자'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

12. 미승인국과 기타 지역

  • 레위니옹 - 프랑스 해외주. (동아프리카)
  • 마요트 - 코모로 제도의 섬 중 하나로, 다른 섬들이 독립할 때 오로지 이 섬만 주민들이 프랑스 자치령으로 남기를 희망해서 지금도 독립하지 않고 있는 지역.[57] (동아프리카)
  • 서사하라 - 모로코로부터 독립운동중인 지역. (과거엔 모리타니도 함께)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기도 했다. 50여개국이 승인하였지만 국제적으로의 독립 인정은 받지 못하며 대부분의 지역을 모로코가 실효지배중이라 보고있다.(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음.)
  • 비르 타윌 - 이집트와 수단 국경지대에 위치한 무주지, 즉 어느 나라도 영유권을 행사하지 않는 땅. (북아프리카)
  • 비아프라 - 해당 전쟁 항목 참조. (서아프리카)
  • 세우타, 멜리야 -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스페인령 항구 도시들. 섬들인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대륙 본토에 남아있는 유럽 국가들의 영토는 이 두 도시뿐이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모로코는 끊임없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스페인은 묵묵부답.
  • 세인트헬레나 - 영국 자치령 (남아프리카)
  • 소말릴란드 - 소말리아의 내전에서 독립을 선언한 사실상의 국가 (동아프리카)
  • 어센션 섬 - 영국 자치령 (서아프리카).
  • 아자와드 - 2012년 4월 투아레그족을 중심으로 말리 영토 절반을 차지하며 새롭게 나타난 나라. 하지만 아프리카 연합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후 소멸되었다. (서아프리카)
  • 잔지바르 - 탄자니아 자치령으로, 1963년 영국에서 독립한 후 독립 국가로 있다가 1964년 탕가니카(지금의 탄자니아)와 통합 (동아프리카)
  • 카나리아 제도 - 아프리카로 분류되는 스페인의 속령.
  • 트리스탄다쿠냐 제도 - 영국 자치령 (남아프리카).

13.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거나 등장한 대표적 작품

13.1. 영화

14. 기타

15. 관련 문서


[1] 이 당시 '리비아'라는 단어는 나일 강 서쪽의 마그레브 전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2] 복수형으로 단수형은 '아페르(Afer)'라고 한다. [3] 다만 대한민국에서 흔히 지칭하는 아프리카는 주로 사하라 이남 흑인계 아프리카를 의미하기는 한다. 아랍 문화에 가까운 북아프리카는 예외적으로 치는 편. 그러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만 따져도 대단히 광활한 지역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에 가깝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4] 영국이나 프랑스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Y 염색체 하플로그룹이다! [5] 한국인에게서 가장 흔하다. [6] 단 유전자는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과 상당히 다르다. 사실 '아랍인' 자체가 아랍어 사용자를 총칭하기 때문. [7] 빨간 지역은 덥고 건조한 편이고 파란색이 옅어짐->짙어짐으로 갈수록 사바나-> 몬순-> 열대우림기후라고 설명을 하고 있다. 지도에 대입해보면 파란 지역 중에서도 사하라 이남에서도 중앙내륙에서 열대몬순과 열대우림색이 표시되어있고 중앙서부지역과 동남부지역, 마다가스카르 서부 일부 지역까지 걸쳐있는 색은 설명에 따르면 열대사바나이다. 더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가 떠올리는 아프리카의 이미지 정글/초원 중 정글은 중앙내륙 깊숙한 곳 일부지역이고 초원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해안 인접 지역은 습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8] 매우 두꺼운 암석권을 뚫고 분출하는 화산암의 한 형태인데, 흔히 알고 있는 해령, 섭입대와는 무척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9] 역사가 무려 2,500년이다 [10] 국가가 아닌 부족단위로 살아간 이유는 유목민으로 유랑생활이 필수였거나, 정착하고 살아가지만 국가단위로 조직을 이루고 살기에는 환경이 적합하지 않았던 이유가 크다. [11] 미국 만화가인 래리 고닉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에서는 15세기 경의 포르투갈 탐험가들의 사례가 나온다. 당시의 서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비만 오면 생기는 물웅덩이를 두려워하여 피했는데, 당시 포르투갈에서 온 탐험가들은 '저들이 미개해서 저렇게 바보같은 짓을 한다'는 식으로 비웃었고,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면서 원주민들이 미개하다고 조롱했다. 그런데 원주민들이 물웅덩이를 피한 진짜 이유는 거기에 서식하는 기생충때문이었고, 덕분에 원주민들을 비웃고자 그곳에 걸어들어간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그 기생충이 자신의 피부를 뚫고 나오는(!) 충공깽한 상황을 맛봐야 했다고. [12] 그런 이유 때문에 유럽인들은 19세기에 들어 해열제인 퀴닌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아프리카 내륙 지역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열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13] 오히려 19세기 동아시아보다 더 최신 유럽 무기를 많이 갖추고 있었다. 동아시아보다 아프리카가 유럽에서 훨씬 가까우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14]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에 대한 감정이 좋지못하다. [15] 탄자니아, 케냐, 말라위, 보츠와나, 가나, 잠비아, 카메룬, 마다가스카르처럼 식민지에서 독립후 내전이 안 일어난 국가들도 있었지만 이는 극히 드물다. [16] 나이지리아, 콩고 민주공화국, 르완다, 앙골라 같은 나라들도 유럽으로부터 독립 후 내전을 겪었지만 소말리아처럼 바다와 육지가 해적들과 군벌세력, 무장 단체들로 들끓는 극단적인 무정부 상태로까지는 가지 않았다. [17] 굳이 따지자면 아프리카 대륙 본토에 있지 않은 모리셔스 세이셸 같은 섬나라도 몇 개 있다. 사실 아프리카 대륙과 섬을 통틀어서 1인당 GDP가 5,000달러가 넘으며 지니계수가 0.5가 안되고 민주적인 나라가 모리셔스 하나밖에 없다... [18] 박정희, 일본 자유민주당, 장제스, 마하티르 빈 모하메드, 리콴유, 수하르토 등등. [19] 중남미도 마찬가지로 미국의 눈에만 거슬리지 않으면 뭔짓을 해도 봐주었던 덕분에 2차대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상당수가 독재에 신음하다 저소득 국가로 퇴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20] 이는 민주주의에 대해 무지한 국민들과 부족장들, 정치가들 등의 존재로 인해 종신 집권을 당연시 여기는 인식의 차이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 언어, 문화 등 아프리카의 내부 사정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자기들이 통치하던 식민지 지역에 멋대로 국경선을 그어버리고 식민지배를 하면서 식민통치에 협조적인 식민지 현지의 특정 민족 집단들을 우대하여 타민족들의 불만을 키워 각국이 독립한 이후에 내전과 쿠데타, 정정 불안 등의 원인을 초래한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독일 등 유럽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만행도 한몫했다. [21] 최근 들어 사유화 등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보통' 수치로 환산하면 32%로 나온다. 실제 경제 성장률은 8%로 추정된다. [22] 올루세군 오바산조 정권(1999~2007)의 개혁이나 시장자유화, 외국 자본의 투자 유치 덕으로 경제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23] 역시 시장 자유화 등 개혁 덕을 보고 있다. [24] 무려 경제 성장률 14%를 기록했다. 본격 아프리카판 한강의 기적 가나 정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 이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탄탄한 기초 인프라와 풍부한 자원, 활발한 서비스업이 중요한 이유다. [25] 석유 때문에... [26] 심지어 중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전체 GDP가 아프리카보다 뒤쳐져 있었고, 1990년대 후반까지도 1인당 GDP가 아프리카보다 낮았었다. [27] 물론 오세아니아의 경우도 호주가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 쪽은 그래도 호주를 제외하면 나머지 국가들은 작은 섬나라들에 불과한 수준이라 이해를 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아프리카는 저 3개국의 인구 총합이 아프리카 대륙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28] 사실 이 쪽은 공업에 쓰이는 게 아니라 그냥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하는 쪽이다. [29] 단 중앙아프리카만큼은 답이 없다. 특히 DRC, 차드, 중아공. [30] 지중해 인종+ 페르시아인+흑인 노예+ 튀르크 용병+ 수메르-드라비다계 등등. [31] 근데 베르베르계 언어나 아랍어나 같은 어족( 아프리카아시아어족)에 속한다. [32] 단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가나와 감비아,시에라리온은 제외,지리적으로 서아프리카 국가지만 영국 식민지 지배의 영향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33] 파울루 벤투 현임 감독이 선수로 뛰었던 그 대회다. [34] 그동안 오륜기에서 하나는 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하나 사실상 북미 대륙에서만 개최되었다. [35] 남극도 엄연히 대륙이지만, 여기는 국가 조차 없기 때문에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에 참가 불가능하다. 사실 남극에는 각종 과학 연구를 위해 과학자들도 빼고는 상주 인구가 없어 남극팀이 만들어질리 없다. [36] 장 루슈 밑에서 일했던 흑인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각자의 국가에서 자국 영화 산업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37] 셈벤은 소설가 출신으로, 더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소설을 그만두고 소련과 프랑스에서 영화를 배웠다고 한다. [38] 이중 프랑스가 적극적인 편이라, 국제 영화계에서 유명해진 아프리카 영화들은 프랑스 식민지를 거쳤던 국가에서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39] 사실 수식 문화 자체는 아프리카 뿐 아니라 지구 전체 인구수로 따져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할 정도로 흔하긴 하다. [40] 비슷하게 한국도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로는 삼성, LG, 현대자동차, 롯데, SK 등 한국 기업들과 스포츠 스타들, 그리고 대중음악 가수들의 이름이 대대적으로 알려지고 난 이후에 가서야 이미지가 겨우 올라갔지, 사실 1990년대 이전, 올림픽 개최 이전에는 별반 다를게 없었다. 이런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였으며, 알더라도 싸구려 공산품이나 만드는 나라, 전쟁을 겪은 비참한 나라에 독재정치와 쿠데타, 대통령과 영부인이 총 맞아 죽는 정치 상황이 혼란한 그냥 아시아 흔한 못사는 나라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했다. 어떤 옛날 미국 드라마에서는 아예 한국을 동남아시아 같이 열대나무가 무성한 곳에 판자집 몇개 있는 나라로 묘사할 정도였다. [41] 특히 부시맨 [42] 세이셸, 모리셔스 등등. [43] 그렇다고 완전히 좋은 건 아니어서 일부 오지 및 접경 지역들은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철수 권고, 여행 자제 등급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일반 관광객 신분이라면 그런곳에 갈 이유도 전혀 없는데다,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들은 안전한 편이다. [44] 자세한 내역은 아래 한국과의 관계 문단을 참고 [45] 아프리카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심한 경우는 그린란드가 아프리카 대륙보다 더 크게 왜곡되기도 한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이 15배 정도 더 넓은데도 말이다. [46] 이 나라는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개명하기 전 자이르로 불렸다. 1970 ~ 80년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 모부투가 지배했던 나라. [47] 물론 구한말 시절 한국이 먼저 유럽과 미국에 수교를 제안하자고 한 것은 아니고 식민지 정책을 앞세운 유럽 및 미국 등에서 구한말 시절 한국에 문호개방 압력을 집어넣었던 영향이 크겠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들의 식민지화가 되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문호개방 대열에는 당연히 빠져있었다. [48] 대신 긍정적인 선입견이 생겼답시고 흑형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계에게 "노랭이 형님"이라고 부르는것과 마찬가지인 피부색을 들먹이는 차별적 용어이며, 당사자인 흑인들 또한 이 단어의 사용을 싫어한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현재는 사용이 자제되는 추세이다. [49] 조지 W. 부시도 한 나라라고 했지만... 여긴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50] 대한민국 서울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까지 직선거리가 약 5,000km이다. 2015년 대한민국 메르스 유행 당시 '메르스가 유행하는 아시아 사람'이라며 우즈베키스탄 사람을 꺼려하는 경우라고 생각해보자. [51] 사실 아프리카는 더더욱 현지인들이 남한이든 북한이든 굳이 구분할 생각 안하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그러나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 북한이랑 삼성 갤럭시는 알아도, 남한은 잘 모르는 경우는 있을수 있다. 북한이 워낙 독재와 부패로 유명한곳 이다보니까. [52] 에티오피아 항공이 운영중 [53] 대한항공이 운영재개예정 [54] 주로 두바이를 경유해서 가는 편이다. [55] 동물의 왕국으로 유명한 케냐 탄자니아는 그나마 관광 수요가 있다. [56] 지차제-아프리카 교류협력 사례 ( 한·아프리카재단) [57] 다만, 코모로 정부에서는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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