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16:15:28

1960년대

연대구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1. 개요2. 정치 경제 및 사회
2.1. 세계2.2. 한국
3. 경제4. 문화
4.1. 음악
4.1.1. 한국 음악4.1.2. 일본 음악
4.2. 미술4.3. 게임4.4. 애니메이션4.5. 방송4.6. 영화
5. 1960년대생
5.1. 한국5.2. 해외
6. 196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개요

서기 1960년~ 1969년까지의 연대시기. 전후 세대를 맞이하게 된 연대이자 경제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 및 성장기의 과정을 거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의 태동연대라고도 불리며 일명 저항의 시대로 대변된다.

현재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age(1969-01-01)]세 ~ [age(1960-01-01)]세이다. [1]

2. 정치 경제 및 사회

2.1. 세계

1960년대, 프랑스 파리의 모습

한국전쟁 이후 잠시 조용하던 냉전은 다시 격해지기 시작했다. 1961년의 서베를린 위기,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 존 F. 케네디 소련 니키타 흐루쇼프는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지만 다행히 소련의 양보로 인해 핵전쟁은 피하게 되었다.

외교상으로 이때 들어서 대한민국 미국 등의 일부 국가를 넘어서 6.25 전쟁에 참전하였던 자유진영 국가를 비롯해 중립국가 그리고 범아프리카 일부 국가 등과 외교관계를 활발히 맺으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인도( 네루), 이집트( 나세르) 등과 함께 UN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1960년은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해로 불린다. 1967년에는 동남아에서 ASEAN이 성립되었으나, 한국처럼 서구식 민주주의 실험이 한계로 접어들자 군사쿠데타가 점차 벌어져 독재체제로 전환되었다.

50년대 말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이어서, 60년대는 우주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소양국의 ' Moon Race'가 치열했다. 이 문 레이스의 정점은 주지하다시피 1969년 최고의 이벤트였던 아폴로 계획에 따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반면 소련은 N1 로켓 발사에 실패하면서 달착륙 경쟁은 포기하고, 이후 우주정거장 건설로 나아간다.
Anti-Vietnam War Movement Documentary

반면 베트남 전쟁은 6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고, 권위주의와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 청년들이 68혁명 프라하의 봄을 정점으로 히피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에 과 권력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Youthquake).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대표적. 또 민권운동이 격렬해지고 존 F. 케네디, 마틴 루서 킹 목사, 맬컴 엑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는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의 프라하의 봄 진압과 리처드 닉슨의 당선이 보여주듯이 혁명의 불꽃은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사라졌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는 투쟁과 저항의 시대였다. 학생운동이 이때 정말 치열해서, 전학공투회의의 투쟁이나 안보투쟁과 같은 좌익 세력의 사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는 되려 자민당 득표율 감소에도 야당의 다당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일본의 좌파운동세력은 투쟁 방식에 관한 논쟁과 세력 다툼(우치게바)으로 점점 사라져갔고, 1970년대에 다다르면 거의 사라지고 만다.

종교적으로는 요한 23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면서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2. 한국



당시 영화인 < 수학여행 1969>에서 반영된 1968년경의 서울 모습.[2]

대한민국은 이 연대 초부터 이승만 집권 말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 4.19 혁명이 일어났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대통령 윤보선)하에서 잠시 민주적 신장이 일어났으나 혼란 속에 1년 만인 1961년 5.16 그리고 박정희 집권기( 1963년 부터)로 박정희 정부가 성립하였다.

정통성과 민주적 기반이 부족했던 박정희 정권은 국가 산업화를 국시로 내세웠다. 장면 내각 시절 세워졌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1차 계획은 장면 정부의 계획을 대부분 차용해 경공업 중심의 경제 발전을 꾀했으나 2차 계획부터는 박정희 정부측의 독자적인 중공업 투자와 수출 산업 투자에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 2차례의 경제발전 계획과 그로 인한 성공적인 경제성장 및 인프라 구축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1967년 대선과 총선[3]에서도 상당한 표 격차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 부정한 선거운동으로 인해 전국적인 반발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동백림 사건이 일어났으며 큰 민주주의적 후퇴가 일어났다. 교통부문에서는 1968년부터 2년간 경인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켰다.

하지만 패스트 푸드 분야에서는 여전히 발전이 더뎠다. 이 때문에 정부를 중심으로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이 때부터 한국에서 혼식이나 라면( 분식) 식사문화가 장려되었다. 또한 을 갉아먹는 떼들 때문에 를 잡자, 쥐 잡기 운동이 민간 곳곳에서 성행하기도 하였다. 패스트 푸드 분야는 이후 1970년대가 돼서야 두드러지게 발전한다.

1955년을 시작으로 1960년대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났다.[4] 이른바 386세대. 이 때문에 지금과는 반대로 산아제한정책이 실행되었다. " 콩나물 교실"도 부족해 오전, 오후반의 2교대 수업을 한 것도 흔한 일이었다.

일제 말기와 해방을 겪게되었다는 1940년대 출신들이 이 연대에 들어서 해방 세대 첫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였는데 구한말과 경술국치를 겪었던 당시 30대 이상 세대였던 1900년대 ~ 1930년대 세대들이 망국의 통한을 비롯해서 일제의 간악무도한 만행 등을 눈과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일제의 만행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거나 해방을 맞이하였던 세대들이었으니만큼, 이들에 대한 기대가 꽤 컸었던 편이었고, 또한 해방 후의 조국의 미래를 짊어져야하는 과제를 안기도 하였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대일 외교굴욕에 맞섰던 6.3 항쟁을 통해서 반일감정을 뿌리깊게 이어나가는 세대들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났다는 1950년대생들이 10대 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전쟁을 겪게 되었고 피난까지도 갔기 때문에, 이들의 성장은 그 당시 정서로 따지자면 기대 이상이었던 편. 과외금지조치가 이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3. 경제

한국에서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해당 문서와 한강의 기적 참고. 이 시기의 한국이 로스토우의 도약기에 해당했다는 것이 통론이다.

독일과 일본에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전후 경제 회복과 성장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두 나라는 서방진영에서 미국에 이은 2, 3위의 경제대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4. 문화

4.1. 음악

1950년대 후반 폭발적으로 유행하던 로큰롤이 더욱 발전하여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며 대중음악의 실세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비틀즈를 통해 록 뮤직의 장르가 정의내려지고 여러 장르로 세분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대중음악의 거대한 줄기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비틀즈는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로 자리잡아 있다.

'영국의 침공'이라 불리우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되어 영국 밴드들이 대거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비틀즈는 물론, 롤링 스톤즈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더 후 킹크스, 크림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인기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수준도 뛰어나서 다수의 명반들이 60년대에 발표되게 된다.

미국의 경우 영국 밴드들 외에도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포크송이 인기를 끌었고,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서던 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였다. 1960년대 초반 한정으로 비치 보이스를 위시한 여러 밴드들이 서프 뮤직을 유행시켰으나,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서프 열풍은 한풀 꺾이고, 비치 보이스는 Pet Sounds를 시작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감행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이키델릭 음악이 성행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히피 문화가 성행했다. 히피족들의 지지에 더불어 우드스톡 페스티벌 같은 음악 축제들도 크게 성공하게 된다.

백인들에게 로큰롤의 주도권을 빼앗긴 흑인음악계에도 큰 변화가 이 시기에 일어났으니 디트로이트의 모타운 레코드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R&B, 재즈, 블루스와 같은 정통 흑인음악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대신 대중음악계의 트렌드를 빠르게 분석하여 시기마다 색다르면서 대중친화적인 노래들을 발표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들은 로큰롤의 위세에 저물어가던 흑인 음악을 다시금 견인하고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끔 해주었으며 모타운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아 펑크(Funk), 디스코, 그리고 현대식 댄스팝등의 장르가 새로이 탄생했다.

이곳 출신들도 화려한데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 슈프림즈 등이 있으며 훗날 1980년대에 들어 팝의 황제로 군림한 마이클 잭슨 역시 잭슨5라는 그룹으로 모타운에서 데뷔해 인기를 얻으며 활동했다.

모타운 뮤지션 외에도 아레사 프랭클린, 레이 찰스, 제임스 브라운 등의 흑인 뮤지션들이 1950년대의 R&B장르의 명맥을 유지하며 60년대 소울, 펑크(Funk) 장르의 탄생에 기여했다.

4.1.1. 한국 음악

국내의 경우 미8군 출신으로 대표되는 스탠다드 팝, 가곡 위주의 장르를 부르던 가수들이 큰 활약을 보였으며 패티김과 같은 가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일본의 엔카를 기반으로 미국의 블루스, 한국의 전통 민요등이 조금씩 뒤섞인 현 시대의 트로트 장르가 완성되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이 중심엔 국내 가수 최초로 10만장의 앨범을 판매한 아이콘 이미자가 있었다.

여러모로 한국 대중가요계가 상업적인 성과와 시장성이 커진 최초의 시기이며 많은 가요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진정한 한국가요계의 시작이라 일컫는 시기가 1960년대이다.

4.1.2. 일본 음악

일본에선, 1962~1965년, 고교생 출신의 가수들인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 하시 유키오[橋幸夫], 후나키 카즈오[舟木一夫], 사이고 테루히코[西郷輝彦], 미타 아키라[三田明]가 발표하는 청춘가요 (고교3년생,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17살의 이 가슴에) 와, 청춘영화 (언제라도 꿈을, 고교3년생,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저 구름에 노래하자, 키타쿠니의 거리)들이 인기를 끌었다.

4.2. 미술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다.

4.3. 게임

'스페이스워!' 라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이 1961년에 개발된 후로,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확대된다. 물론, 본격적으로 게임기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고, 현재 게임의 대략적인 형태가 잡힌 것인 1980년대.

4.4. 애니메이션

1963년 TV에서 철완 아톰의 첫 방영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문화 장르로 탄생했다.

4.5. 방송

서구권과 일본, 소련에서는 TV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었을때였다. 다만 한국에서는 TV가격이 매우 비쌌던지라 TV방송망의 확충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음에도 이때까지도 여전히 부유층의 전유물이었고, 따라서 라디오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4.6. 영화

한국영화의 전성기로 손꼽히던 시절이었다. 전후수습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지방에서도 영화관이 대대적으로 늘어섰지만 TV는 아직은 매우 비싸서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이 몹시 제한적이었던지라 자연히 영상매체는 영화가 주가 되었다. 물론 당대기준으로는 영화 표값이 마냥 싼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대중적인 여가수단이었다. 한국영화도 1950년대에 비해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추워지면서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한국영화가 영화시장에 차지하는 점유율도 점유율도 50~60%대를 기록했고 1969년에 절정에 달했다.

전설적인 영화 시리즈 007 시리즈가 시작된 년대기도 하다.

5. 1960년대생

5.1. 한국

1960년부터 196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흔히 586세대라고 불린다. 2019년 기준으로 1960년생이 60대에 접어들었고, 69년생이 51세이다.

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1960~1970년대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기는 철권통치로 점철된 시기였다. 그리고 대다수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대학의 혜택을 본 이가 적다.

1965~1966년생이 국민학생 3~4학년 시절인 1974~1975년부터, 한국에 전자오락실이란 것이 생겼고, 중학생 시절에는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즐겼다.

물론 1960년대생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외환위기를 겪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게 된 분들도 상당수 있다.

현 30대 초반~20대의 부모 세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세대 역시 1960년생은 60대에 접어들었고, 나머지도 곧 60대로 돌입할 예정이라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할 확률도 크다.

이들의 형제자매 수는 4~5명으로 1970년대생 출생자들에 비하자면 많은 편이고, 1950년대생 출생자들보다는 약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인구통계상으로는 가장 많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 산아정책을 시작했지만, 1970년대와는 달리 강압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으며 1950년대 초반생이 태어난 시기가 한창 전쟁통인지라 베이비붐이 시작된 1950년대 중후반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매우 적고 편차가 컸다. 그에 반해 1960년대생은 전반적으로 편차가 없고 태어난 인구수가 꾸준했기에 일어난 현상. 한 마디로 실질적인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이나, 1965~1966년생이 다른 연도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11% 정도 출생수가 적은데, 이유는 역시 미신으로, 일본도 같은 현상이 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들은 결혼도 점차 늦춰져가서 대부분 20대 중반 ~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결혼한 사람들이 상당수이다.[5] 이들의 자녀 수는 평균적으로 2명 수준이다.

정치성향은 진보성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1970년대생들보다는 보수성향이 강하다. 정치적으로 본래는 운동권, 386세대라 불리며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대라 원래 진보성향이 지나칠 정도로 매우 강했다.[6] 사실상 1960년대생들이 학생 운동시절에 받아들이고 추진했던 사상들(NL, PD)이 지금 현재 한국의 진보계열 정치계에도 굉장히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하지만 1990년대 김영삼 이회창이 보수정당을 장악하고 나서, 보수성향이 강해졌다가 다시 15대 대선 16대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에게 몰표를 주면서 진보성향으로 돌아갔지만 민주정부가 경제정책에서 실패하자 다시 보수성향이 강해져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에게 상당한 표를 주었고 18대 대선에서도 박근혜에게도 상당한 표를 주면서 보수성향이 제법 강해졌다.

그 이후 19대 대선에서도 안철수 후보가 선전하는 등 보수정당에는 호의적이지 않지만, 민주계 정당에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전체적으로 냉담한 세대이다. 그리고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도 50대에서 제법 지지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이재명, 표창원, 안민석, 김민석, 우상호, 안규백, 김태년, 윤호중, 김경수, 송인배, 황희, 조정식, 백원우, 국민의당의 안철수 등이 1960년대생 출신이다. 보수성향의 경우 김진태, 우병우, 조윤선, 김태흠, 윤상현, 김도읍, 권성동, 원희룡, 남경필, 박민식, 서용교, 주광덕, 김용태, 조경태, 정진석, 하태경, 나경원, 이혜훈, 오세훈, 원유철, 김재원, 손범규, 김영선, 유기준 등이 있다. 진보성향은 이정미, 윤소하, 김종대, 김종훈, 이상규, 조승수, 권오길, 윤종오, 이정희, 김창현 등이 있다. 재벌가로는 이재용, 정용진, 최태원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이 정치에 진출한 시기도 14대 국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5대 국회부터 대거 정치에 진출했다. 그리고 16대 국회에 들어서서 꽃을 피우더니 17대 국회에서는 대거 정치에 진출을 했고 18대 국회에서는 부조력자로 있다가 19대 국회에서는 계속 정치에 진출해서 조력자가 되었고 20대 국회에서는 주도권을 쥐었다.

아마 이들이 이 연대의 일부 출생자들로 추정된다.[7][8][9][10]

대부분 이들은 과외금지조치의 피해자였는데, 돈 많은 집은 편법과 탈법으로 비밀리에 과외를 하였고, 전두환 정권부터 시작된 일반계 고등학교(인문계 고등학교)의 야자(야간 강제 자율학습)의 최초 피해자이다.

5.2. 해외

세계적으로는 출생율이 감소하는 세대이기에 '베이비 버스터'라고 불리며, 1965년생부터가 이에 해당되고 1968년생부터는 'X세대'이다. 이 시기 출생자 중 도시 전문직 종사자는 '여피족'이라 불리고, 무자녀 맞벌이 젊은이들은 '딩크족', 개인주의자는 '님비족' 등으로 각각 불린다. 일본에선 이때 출생자를 '오타쿠 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선배 신인류 세대보다 더 자유분방하고 탈권위적인 발상을 가지기도 하기에 일본 애니 현업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젊은 시절 다수의 공감보다는 소수 집단의 공감에 집중하기도 한다. 20대 들어선 일본 버블경제도 경험했다.

6. 1960년대에 들어가는 해


[1] 1960년생이 [age(1960-01-01)]세. 1969년생이 [age(1969-01-01)]세. [2] 영화 내용은 단순하다. 전라도 시골마을의 학생들이 힘겹게 돈을 모아서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온다는 내용. 구봉서가 출연하기도 한 영화다. 제목은 1969지만, 촬영시기를 감안하면 1968년에 가깝다. 당시 주한미군 복무중이던 닐 미샬로프가 안양과 서울의 풍경을 촬영한 시기와 비슷하다. [3] 다만 총선에서 금품을 이용하는 등 노골적으로 부정 선거운동을 벌여 덕분에 일부 의원을 제명하는 등 비민주적인 문제가 심각했다. [4] 통계적으로 대한민국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생~1963년생으로 잡고 있다.(더 길게 잡자면 1974년생까지도 베이비붐 세대로 잡기도 한다.) [5] 여담이지만 1990년대에 태어난 자식들의 80%(특히 90~95년생의 경우는 95% 이상)가 이 연대의 부모를 두었다. 왜냐하면 90년대 당시 남성 평균 결혼연령이 28세였기 때문이기도 해서 딱 들어맞는다. [6] 다만 1960년대 초반생들은 다른 1960년대 중후반생들보다는 보수성향이 제법 강한 편인데 1960년대 초반생들은 386세대의 시작점을 끊었지만, 반공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7] 것도 극초반으로 추정. [8] 이 연대 말년엔 분명 빠른 70까지 일부 포함되었을 것이다. [9] 현시점의 만나이 성인 기준으로도 1979년 ~ 1988년에 모든 60년대생이 완전한, 온전한 성인이 되었다. 물론 후반 말년대에 극초반인 빠른 70 역시 일부 포함되겠지만서도. [10] 조기졸업 그리고 몇 년 이상 휴학-재학한 경우 등등의 일부 역시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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