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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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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식민주의
2.1. 정착형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2.2.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3. 이득4. 부작용5. 종합6. 식민 지배 이후 사과7. 현존하는 식민지8. 영향
8.1. 지배국8.2. 피지배국
9. 식민지였던 국가의 국력이 지배국이었던 국가 이상이 된 경우
9.1. 1인당 GDP를 초월한 경우
10. 문서가 작성된 과거의 식민지 목록11. 관련 문서12. 인터넷에서의 식민지

1. 개요

/ Colony

본국 밖에 있으면서 본국의 통치를 받는 지역.

현재는 7번 단락에 서술되어 있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립했으며, 독립하지 않은 식민지는 모두 자국 영토로 편입됐고 주민들 역시 공식적으로 자국의 국민이다.

원래는 고대 그리스의 해외 개척처럼 민간 자발적으로,[1] 또는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처럼 정부 주도 하에 국민의 일부가 나라 밖의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하는 것을 뜻했다.[2] 독일의 도시 쾰른도 어원은 식민지이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서 건설된 이 도시는 라틴어로 Colonia Agrippina라고 명명되었다가 Colonia가 독일식 철자인 Köln으로 굳었다. 영어로 Cologne라고 쓰는 것은 라틴어 표기의 프랑스식 오철이 그대로 영어에 편입된 것이다.

이러한 관념은 유럽 국가들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로 시작된 17, 18세기 정도까지 유효했으나 19세기부터 프랑스 알제리 정복을 비롯해서 과거와 다른 유형의 식민지와 정복 양상이 나타나게 된다. 인구 분산과 거점 중심의 과거의 식민지와 달리 발전된 열강의 군사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광역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정복의 원인도 경제적인 목적이 강했던 과거와 달리, 국가 위신과 민족주의과 밀접한 경우가 많았고 아예 열강의 정부와 무관하게 약간의 인원만으로도 대량의 정복이 가능해진 기술 격차를 등에 업은 우발적인 확장과 정복이 이어졌다. 이런 변화된 양상에 따라 식민지라는 뉘앙스 자체가 달라지게 되었다.

후자의 뜻의 식민지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여러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원주민을 학살하며 계속 건설하였으나, 앞 문단의 내용처럼 식민지의 주요 뜻이 바뀌면서 이 나라들은 식민주의란 비난을 다른 의미로 벗어나게 되었다. 원주민 인종청소하고 땅을 빼앗는 것이 목표지 그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

2. 식민주의

2.1. 정착형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

본토의 연장선상에 있는 식민지. 따라서 본토인들의 대규모 이주 및 정착이 필수적이다. 식민화된 지역은 정착민들을 따라 본토의 언어, 문화 및 체제 등이 거의 그대로 이식되므로, 장기적으로 독립 이후에도 본국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고대 페네키아 및 그리스의 식민지, 유럽 아메리카 식민지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식민지, 러시아 시베리아 개척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런 식민지들은 주로 자치령으로 승격되는 과정을 거쳐 본토와 연방으로 연계되는 과정을 주로 거쳤으며 과거 서방 식민지 중에 지금도 선진화된 체계를 가진 강대국들은 이 같은 과정에서 형성된 식민지가 대부분이었다.

2.2.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애국심 고취, 사회갈등 해소, 군사적 필요 등과 같은 비경제적 목적이 강했던 식민지 시대.

3. 이득

이 문단을 읽기 전에 유념해야 할 것은, 17세기까지의 식민주의와 18세기 후반에 등장한 제국주의다른 개념이란 것이다.

17세기까지의 거점형 식민지와 스페인 제국, 포르투갈 제국으로 대표되는 유럽 남아메리카 진출의 가장 중요한 이점은 바로 그곳만의 특별한 자원을 지닌 해당 식민지와의 교역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근세 이후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를 건설한 것 역시 처음에는 동양과 향신료를 무역하고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원주민들에 대한 약탈의 목적도 있었다.

노예무역 역시 식민지 경영의 원인이었다.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로 인해 유럽의 열강들은 헐값으로 대량의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당시에는 노예무역 자체가 큰 이득을 남기는 사업이었다. 이 시절 아프리카에서 끌려간 노예가 최소 수천만 명에서 최대 억대일 수도 있다고 한다.

다만 아메리카 노예들은 역병에 시달린 데다가 지구력도 아프리카 노예들에 비해 떨어져 금방 대체되었고, 아프리카 노예들은 쓸 만했으나 이들을 거래하는 형태는 식민지로 정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교역하거나 그들을 납치하는 등의 형태였다. 심지어 19세기까지도 유럽인들 외에 아랍인들도 노예무역의 주된 수요층이었으며, 결정적으로 아프리카가 식민지 정복에 시달리는 19세기에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노예제를 금지했다. 특히 아메리카 식민지의 이주민들은 현지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대량으로 구입했으며, 기타 노예가 필요한 국가들과 교역을 하기도 했다.

식민지 현지에서 유럽에서 인기 있는 작물들을 대량으로 경작하기도 했는데 커피 설탕, 각종 향신료 등이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 품종이었으며, 이러한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이런 품목들이 해당 국가의 유명한 수출 품목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 제국 사탕수수를 들 수 있는데, 당시 영국은 한해 설탕 소비량이 무려 7만톤에 달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에서 대량의 사탕수수를 재배하였고, 대중국 무역에서 차수입으로 적자를 보자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의 밀수출과 아삼 지역의 재배로 이를 대체하였다. 또한 현지민들을 농노로 부려먹거나 금광을 채취하게 강요하기도 했으며, 식량 자원을 수탈하기도 하는 등 그 유형도 다양했다.

이렇게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얻은 이득은 그야말로 막대하였다. 실제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경우는 동양과의 향신료 무역과 아메리카에서 나는 풍부한 자원[3]으로 순식간에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4]

다만, 적어도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들어 식민지로부터 얻는 이득이 그렇게 컸다고 보기는 어렵다. 19세기 중반부터 먹어치운 식민지, 특히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돈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밑의 부작용 단락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단적으로 말해 식민지의 경제 규모에 비해 본토의 경제력이 훨씬 압도적이거나, 식민지와 장사하는 것보다 비슷하거나 자기네들보다 더한 선진국과 교역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이익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의 경우, 4공화국 당시 식민지들과의 무역 비중은 전체 교역 비중 중 5위에 불과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서방권과의 교역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식민지의 경제 사정은 본토의 물건을 사줄 만큼 좋지 못해서 시장으로도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애초에 본국 물건을 대량으로 소비해서 본국에 이득을 줄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었으면 식민지가 안 됐겠지?

약간 다른 예시로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자신의 사유지인 콩고 자유국에서 사실상 자신의 노예나 다름없는 콩고 원주민들에게 고무 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을 절단하는 형벌을 가하여 최소 1,000만에서 최대 3,000만에 달하는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 결과, 1893년엔 250t도 되지 않았던 콩고 자유국의 고무 수출량은 1901년엔 6,000t으로 엄청나게 증가하여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재산을 크게 불린 것은 물론, 벨기에에 크고 아름다운 수많은 공공건물들을 건설하기까지 했다. 다만 콩고 자유국은 금을 비롯한 광물자원과 고무와 열대작물 등 없는 게 없는 자원이 풍족한 땅이었다. 콩고 자유국은 19세기 제국주의 열풍으로 개척한 식민지보단 17세기의 경제적 이득을 노린 거점형 식민지에 가깝다.

식민지의 경영은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가령 영국은 인도와 본토를 연결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를 인수하고,[5] 아프리카를 종단으로 개척하기도 했다. 일본 역시 조선을 대륙 침략의 기지로 활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식민지 개척을 통한 국수주의적 열망 충족은 산업혁명 시절에 만연한 각종 정경유착 및 기업비리 및 노동착취, 산업재해, 빈약한 사회복지제도와 분배각 제대로 이루워지지 않은 극심한 양극화 등 각종 사회문제로부터 하층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좋은 소재였다. 또한 종교적 열망, 국가적 위신, 군인 등의 일자리 보전 등이 동인으로 꼽힌다. 또한 식민지 지배가 경제적으로 생가보다 이득을 보지 못한다는 얘기가 많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국가경제 전체로볼때나 그런것이고 정치가들이나 식민지에 자본금을 투자한 [6] 식민지에 거점을 둔 관료들은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구체적으로 따져 본다면 고대, 중세의 식민지 개척은 인구 분산이나 거점 확보적 측면이 강했다.[7] 그리고 대항해시대 이래 19세기 초까지는 시대가 지날수록 원료 독점과 같은 경제적 목적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 마지막 19세기 말 이후에 들어서는 애국심 고취, 사회갈등 해소, 군사적 필요 등과 같은 비경제적 목적이 강했다.[8]

4. 부작용

식민지는 분명 초중반에는 식민지를 경영하는 국가들에게 물질적ㆍ경제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런 주장에는 반론이 있다. 사실 영국은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으로 본토의 경제력이 쩔어줬고, 물론 식민지 자체는 엘리자베스 1세 시절부터 아메리카 쪽에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질이 좋지는 않았다.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 쪽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제대로 먹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막대한 인력과 시장을 제공해서 유지하던 인도를 제외하곤 돈은 별로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인도의 시장이라는 것은 영국이 굳이 인도를 정복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이었고[9] 그나마 확실히 도움됐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인도의 인력밖에 없다. 아니, 그 인도조차도 100만 명 이상의 군인을 1차대전에 투입한 것이나[10]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 저항에서 보듯이 억지로 지배하면서 이익까지 보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2차대전 이후 영국의 국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자발적으로 독립을 시켰다.

이미 세계 각국의 동인도 회사 미국이 독립했을 때인 1776년부터 서서히 맛이 가기 시작하였고, 이익은커녕 손해가 커서 19세기엔 거의 사라지기에 이른다. 또한 스페인의 경제 성장은 네덜란드의 덕을 본 것도 있다. 네덜란드 역시 인도네시아를 먹으면서 향료 무역을 독점했지만 얘네 역시 이전부터 경제력이 높긴 했다. 포르투갈 역시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국의 국력이 너무 약해 결국 스페인에 합병되었고, 독립한 뒤에도 스페인-프랑스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의 2중대가 되었다.

일단 19세기 이전의 거점 식민지 형식과 달리 19세기 이후의 땅따먹기식 식민지 경영은 본국의 병력 + 관료 + 유지 관리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 특히 영국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이런 문제로 향료 무역의 이익에도 불구하고 유지 비용이 너무 많아서 적자, 부정부패 등에 시달렸다. 네덜란드는 아시아 국가간의 무역이 쇠퇴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여기에 분식회계 문제, 영국 및 아메리카와의 경쟁 문제 등이 겹치면서 영란전쟁 이후로는 세가 축소되었으며, 영국은 국방비를 충당하기 위해 미국에 무리하게 세금을 매기려다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고, 결국 미국의 독립을 허용하고 말았다. 거기에 식민지 지역 중 상당수가 본국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영 환경이 좋지 않거나 본국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서, 지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본국민들을 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나마 19세기 유럽은 프랑스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출산율이 매우 높아서 인구 유출이 심각해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11] 20세기에 이르면서 그 출산율도 떨어지고, 그 상황에서 식민지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인구 유출이 가속되다 보면 오히려 본국의 활력이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기기도 한다. 헬레니즘 제국이 이런 사례이며, 마케도니아- 그리스의 인구 팽창이 정지하자 로마와 파르티아에게 다 같이 몰락하고 말았다.[12] 현재 스페인 포르투갈도 이 시기의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국가 막장 테크를 밟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있는데 본국의 인력, 그것도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엘리트 청년층이 구 식민지로 대량 유출되고 있기 때문. 거기에 식민지의 인력, 자원을 써먹기 위해 인프라부터 재투자를 하느라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생겨났고, 식민지인들의 경제력이 좋을 리도 만무하니 식민지인들이 식민제국의 물건을 사서 손해를 메꿀 리도 없다.

또한 식민지 경영에 지나치게 힘을 쏟다보니 자연히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져 결과적으로 본국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단점이 발생하였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기존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2번의 세계대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식민지 경영을 하는 대신 국내 산업의 육성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스페인 포르투갈이 몰락한 것도 지나치게 해외 식민지에만 집착하다 보니 자연히 본국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영국의 공업 중에서도 식민지 수출로 먹고 살던 방직공업은 1920년대 이후로는 몰락했다. 그리고 영국은 이 식민지 제국의 부작용인 영국병을 1990년대까지 끌고 가야 했다.

스페인은 본디 목축 위주의 산업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양모를 팔아서 돈을 벌고 그걸로 강대한 스페인군을 유지하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신대륙 개척 이후로는 신대륙산 으로 바뀌어 덕분에 스페인은 군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금은으로 인한 인플레[13]로 오히려 타 산업이 붕괴되어 경제 구조를 취약화시켰단 거다. 결국 그 군대가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망하였으니 완전 망했어요. 포르투갈의 경우 분명 인도 무역 자체는 짭짤했지만, 결국에는 무역이 낫냐 식민지 정복이 낫냐의 문제. 더 심각한 것은 인도 무역은 이문도 짭잘했지만, 리스크도 그만큼 큰 산업이라 선원이나 선박 손실이 심각했단 거다. 특히 선원들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양성하기도 어려우니 망했어요.

스페인, 포르투갈의 항로 개척 등에서 들 수 있듯이 식민국이 피식민국을 병합하기 이전에는 보통 양자간 교류가 없거나 미미한 경우가 많았다. 어쨌건 이런 접촉을 통해 식민국과 피식민국간 상품 등의 교류가 이뤄지므로, 식민지 개척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 이건 득을 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양자가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인 상태에서 무역을 하는 것과 식민지 무역의 손익을 비교하면 통제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 그나마 후자가 더 나은 점이라면 식민국이 피식민국의 정책을 통제할 여지나 교류의 안정성 정도를 들 수 있다.

전자의 예시로 미국을 들곤 하는데, 미국은 식민지가 손해를 가져다줄까봐 그런 건 아니고, 남북전쟁을 수습하고 뒤늦게 식민지 쟁탈 경쟁에 뛰어들어들었다는 점, 그리고 미국의 영토가 굉장히 넒으며 특히 서부를 중심으로 미개발지가 많아 굳이 식민지가 필요 없었고 이 쪽을 개발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점 때문에 직접 식민지화를 하는 것을 가급적 피해서 그런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필리핀 정도를 들 수 있다. 나머지는 섬 지역이라 독립 운동을 할 역량이 거의 없기도 하고.

19세기 식민제국의 대표주자인 영국 프랑스는 결국 지나치게 식민지 경영에 힘을 쏟다보니 세계 대전이 발생할 즈음에 가면 기술과 산업에서 미국 독일에게 완전히 추월을 당하게 된다. 이후 식민지가 독립하고 자국 경제성장에 전념하면서 오히려 독일을 따라잡았을 정도. 그나마도 1870년대 이후에 먹은 식민지들에게선 이득 본 것도 없이 순전히 자존심 싸움만 했다. 영국의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회사는 주주들에게 투자 배당금도 주지 못해서 쩔쩔 맸고 아프리카 투자 기피 현상까지 벌어졌다.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하부 구조 자체가 없으니 뭐 돈이 벌릴 구석이 있나. 오히려 네덜란드나 영국, 프랑스 등에서 드러나는 점은 식민지들을 다 독립시키니까 경제성장률이 더 크게 상승했단 거다. 영국, 프랑스 중산층들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나아진 시기도 식민지를 독립시킨 뒤였다.

게다가 외국에 정복당한 피지배민들이 100% 적극적으로 본국에 협력했을 리는 없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졌다.[14] 점령 초반에는 어떨지 몰라도 결국 열강과의 충돌로 인하여 식민지의 정치적 각성이라는 결과는 좋든 싫든, 빠르던 느리던 결국 따라왔고 결국 식민지들은 지배국에 맞서서 들고 일어나게 되니까 원래도 돈 안 되는 식민지는 오히려 돈을 쓰는 곳이 되었다. 그나마 영국은 미련없이 식민지들을 차례로 독립시켜줬지만 프랑스의 경우에는 베트남 알제리에서 수십만의 젊은이들의 피를 뿌리며 국력이나 소모하게 된다.[15] 네덜란드, 포르투갈도 이 전철을 밟았다. 특히 포르투갈은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는 순간까지 기니비사우, 앙골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대륙의 해외 식민지에 집착하다가 나라가 그야말로 개판이 돼버렸다.

스페인처럼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엄청난 부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경우, 쏟아져 들어오는 보물이 국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경제 위기를 겪은 사례도 있다.

그리고 웃긴 게, 식민지를 많이 가진 나라일수록 오히려 일반 국민들의 생활은 더 가난하기 일쑤였다. 영국 같은 경우 하층민들의 노동 조건이 극악하기 그지없었고, 런던에서 조금만 이동해도 법의 보호조차 제대로 못 받는 빈민가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득의 분배에 대한 노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인데, 자본가들이 식민지에서 쉽게 이득을 얻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부를 분배하여 하층민들을 부유하게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탓이 크다. 당장 올리버 트위스트 레 미제라블, 오싱 등의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독일 제2제국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이런 이유로 식민지 정책에 부정적이었다. '이미 먹을 만한 식민지는 선발주자들이 다 처먹었으니 우리는 그냥 닥치고 산업화랑 인재육성, 기술개발에 몰빵하자!'라는 게 그의 국가정책 기조였던 것.[16] 그는 처음엔 " 독일 제국은 식민지를 확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1884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토고, 카메룬 등의 약간 식민지를 얻긴 했지만, 그 뿐이었고 금세 그만두었다. 그나마도 경제적인 요인과는 전혀 상관없이 국가 내부의 불만 세력의 이목을 해외로 돌리고 민족주의를 고취하려는 의도였다. 북마리아나 등 여기저기 더 얻은 것도 있지만 그냥 있으나마나.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나서 연합국이 "식민지를 포기하라"고 요구하자 마지못해서기는 하지만 포기했다. 그럼에도 독일은 식민지 보유국들보다 오히려 국력 및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더 앞섰다. 당장 영국 프랑스 미국의 지원을 그렇게 받고도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17] 독일은 양 사이드로 전쟁을 자그마치 4년간 하고도 비록 순무로 버티는 세월이었다지만 국가 근간을 마지막까지 유지했을 정도이다. 독일은 2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전 후 잿더미가 되고 분단까지 된 서독이 불과 20년 만에 영국과 프랑스를 앞지른 선진국이 되고, 동독도 공산권 국가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1위를 유지했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크게 작용했겠지만 독일의 역량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18] 더군다나 영국은 전쟁비용을 치르느라 미국에 대량으로 발행했던 채권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버려서 2006년이 되어서야 그 빚을 전부 갚을 수 있었다.

반면 야심만 크고 현실에 대한 인식 능력은 떨어지던 빌헬름 2세와 독일 내 식민지 획득파들은 쓸데없는 식민지 확장에 나섰다가 결국 신나게 얻어 터지고, 기존에 갖고 있던 식민지는 물론 제국까지 멸망했으며,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식민지 획득 겸 제국 건설에 착수했다가 또 한 번 제대로 얻어터지고 나서야 그만뒀다. 유사한 생각에서 일본의 이시바시 단잔[19] 같은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도 " 한반도, 대만을 독립시키고, 중국, 동남아 등 다른 국가들과 무역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그리고 일본의 경제 역시 정작 세계 3위에 이른 건 식민지 독립을 다 시키고 자국민들 살찌우는 데 전념하게 된 뒤다. 물론 6.25 전쟁 시절부터, 한강의 기적으로 성공한 옆 나라를 이용한 것도 꽤 된다.

식민지에 관련해서는 홉슨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유명한데 홉슨은 보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레닌은 공산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홉슨의 경우 식민지는 경제적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개척된다고는 하지만 정말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식민지는 그 국가의 경제에 정말로 이바지한다기보다는 이익 집단들의 열망과 한 몫 잡고 싶은 열망[20]에 따라 나온 바가 크다. 또 홉슨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국가가 피할 수 있는 비극"이라고 봤다. 반면 레닌은 이를 부정했다.

5. 종합

식민지는 어떤 지역을 차지했느냐에 따라 (경제적) 순이익 측면에서 강대국에 이득[21]이 될 수도 있었고, 손실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의 주요 자원, 향신료, 기호품 생산지가 주요 식민 지역이 되었고, 열강은 이러한 생산물을 독점하면서 재미를 보았다. 다만 여기에는 식민지 경영에 따른 이득 외에도 기존에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제권의 연결에 따른 이득도 포함되어 계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식민지 획득 과정에서 경제보다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식민사업, 일본의 한국 병합, 스페인의 모로코 병합, 이탈리아 리비아, 에티오피아 병합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식민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나마 일본의 한반도와 대만 병합의 경우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 침략의 전진 군사 기지로 기능했고, 리비아 역시 2차 세계대전 당시 본토의 방패 노릇을 하기라도 했다.

오늘날까지도 유럽과 같은 정치사회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에서도 황금시대이고 천국이자 파라다이스라며 그 시절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유럽의 경우 경제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타나며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일들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억 보정일 뿐이다. 유럽, 일본의 진짜 '황금기'는 노골적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비록 다른 방법을 통해 계속 착취 대상으로 삼으려 했을지언정) 오히려 식민지를 상당수 놔주고 고도의 경제 성장으로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 중산층이 두터워진 1950~1980년대라 볼 수 있다.

6. 식민 지배 이후 사과

한국 정부 1965년 일본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여 사과와는 무관하지만 독립축하금 명목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청구권을 지불받았다. # 이후에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간 담화 등의 공식적인 범죄 인정과 사죄도 있었다. 물론 일부 우익 인사들은 식민 지배가 한국에 도움이 되었다느니라는 말 개소리을 하여 양국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1950년대 케냐 식민 통치 때 영국은 무장 단체 '마우마우' 조직원들을 비롯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케냐인들을 물고문과 생매장, 성폭행 등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2013년 6월, 영국 정부는 공개 사과와 함께 피해자 5,228명에게 1,990만파운드(약 360억원)를 배상했다. 영국 일간지 < 가디언>은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책으로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윌리엄 헤이그 당시 외무장관의 말에 따라 배상이 즉시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 사건은 영국 정부가 식민지에서의 범죄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한 첫 번째 사건이다.

2013년 9월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네시아 점령 통치 시기인 1945~1949년에 저지른 대규모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당시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이긴 인도네시아의 피해자 유족과 생존자 등은 1인당 2만 유로(약 2,500만 원)의 배상금을 받았다.

2008년에 이탈리아는 1911년부터 30년간 리비아를 식민 지배한 것에 대한 보상 명목으로 리비아에 25년간 50억 달러(약 5조 8,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리비아의 장학금·연금 등에 매년 일정액을 투자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에 비해 132년간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2012년 알제리를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알제리인들에게 끼친 고통을 '인정'한다"면서도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아 프랑스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반감은 여전하다. #

2014년 영국 정부는 런던 의회 광장에 마하트마 간디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 한편 그러면서도 과거 인도 시위대를 학살한 사실에 대한 사과는 거부했으며, "이번 동상 건립 발표는 인도와의 경제 협력 강화를 목적에 둔 분위기 조성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2013년에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인도에서 있었던 학살 사실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 바가 있다.

독일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식민지배 중 일어난 학살에 대해서 2004년에 와서야 학살 사실은 인정했으나, 장관 개인의 담화 차원에 그쳤다. 2016년에 와서야 독일 정부 차원에서 나미비아에서의 학살 사건을 집단학살로 규명하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공동 논의, 나미비아에서의 행위에 대한 독일의 사과 등 요소를 포함해 정부 공동 선언을 준비 중[22]이라는 의견을 밝혔으나 배상은 거부하였고, 또 이후 관련한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의 태도 전환에 대해서도 부인하고 있다. # 2019년 재건되는 독일 베를린 프로이센 황궁(훔볼트 포룸)에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국가들에서 독일이 저질렀던 학살과 과오를 반성하는 전시공간이 들어설 계획이다. #

식민지배 전체에 관해 아직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으며, 위에 선례로 든 국가들도 식민지배 행위 중 일부에 대해서만 사과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부 일본의 우익들이 식민 지배에 대해 사과한 국가는 일본 뿐이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것은 분명하다.

7. 현존하는 식민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 탈식민주의, 제3세계 운동의 바람이 불고 열강 구조가 재편되며 강대국들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표적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호주, 뉴질랜드 같은 서방 세계 국가들이 오세아니아 카리브 지역,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소유하고 있는 누벨칼레도니,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왈리스 퓌튀나, 마르티니크, 과들루프, 생바르텔레미, 세인트마틴 섬, 프랑스령 기아나, 마요트, 레위니옹, 케이맨 제도, 앵귈라, 몬트세랫,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버뮤다, 버진 제도, 포클랜드 제도, 이스터 섬, 아루바, 퀴라소, 카리브 네덜란드, 카나리아 제도, 세우타, 멜리야, 마데이라 제도, , 북마리아나 제도, 미국령 사모아, 하와이, 푸에르토리코, 코코스 제도, 크리스마스 섬, 노퍽 섬, 쿡 제도, 니우에, 토켈라우 등이 있다. 아시아에도 위구르 티베트 중국의 식민지인 상태이고, 류큐 역시 일본의 식민지인 상태이다.

보면 알겠지만 이들 서방 국가들의 대부분은 식민지를 앞장서서 만들었던 국가들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이다.[23] 패전국인 독일 일본의 식민지들의 경우 패전 후 다 승전국에 의해 독립되거나 승전국에 편입되었기 때문.[24] 당장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 선언 후 패망하자 35년간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반도가 독립했다.

오늘날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서방 국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식민지들은 독립운동의 열기가 강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립해서 듣보잡 국가 국민으로 사느니 강대국, 선진국 국민으로 사는 게 해외에 나가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본국도 바보들만 모여있는 곳은 아니라서 식민지들 중 일부 지역은 유화책을 펼치기도 했고, 시대가 지날수록 인식도 바뀌어서 강경책도 자제하긴 했고. 독립운동 열기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식민지는 드물게 아예 본국으로 편입되거나(하와이 등) 본국의 해외 영토라는 식으로 어느 정도 본국과는 행정체계가 분리된 채 자치 지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강대국들도 괜히 챙겨야 할 국민만 늘어나니, 기존 식민지를 독립시켜줬으면 시켜주지 식민지를 새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 이러한 식민지들은 기본적으로 이익이 있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누벨칼레도니의 경우 세계 니켈 매장량의 약 20%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니켈 채굴로 인한 막대한 수입이 프랑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경우 프랑스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프랑스는 이 식민지 덕택에 세계 제1위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에도 프랑스처럼 떨어진 곳에 섬 영토가 있는데 영국의 경우도 프랑스와 비슷하다. 미국의 경우 전세계에 미군을 깔아둬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태평양 카리브 일대에 상당수의 식민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식민지들이 거점으로써의 이득을 보는 편이다. 이를테면 이나 북마리아나 제도, 푸에르토리코라든가, 아예 50번째 주가 된 하와이라든가. 이쪽은 아예 태평양 함대의 최중요 거점이기도 하고.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와 차이점이 있다면 오늘날 옛 제국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식민지에서 식민주의적 정치 지배구조를 청산하고 군사와 외교 분야를 제외한 자치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옛 식민제국은 대부분 본국에서 민주주의를 확립했기 때문에 이를 자신들의 식민지 지역에도 적용해, 현지인 유권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선거를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자치정부를 구성해 내정을 완전히 현지인에게 맡긴다. 비교하자면 19세기~20세기 초반 대부분의 식민지에서는 대영제국 자치령 정도를 제외하면 현지인의 자치가 허용되지 않았고, 현지인이 제한적으로만 식민지 정치에 개입할 수 있거나 그것마저 원천봉쇄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물론 이들 지역에서도 독립운동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폭력으로 독립을 추구하지 않는 한 독립운동을 강압적으로 탄압하는 경우는 드물며, 대신 경제원조를 더 해주겠다거나 다른 회유책으로 이들을 달래고 있다. 그리고 정말 본국이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독립 열기를 막을 수 없다면 주민투표 등을 통해 독립의사를 묻고,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오면 독립 절차를 밟아 독립시키고 대신 본국에서 독립한 신생 국가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허나], 아르헨티나[허나], 이란, 북한 등의 반미, 반서방 성향의 국가들은 이 지역들을 문제 삼으면서 UN 등지에서 이 지역들의 소유국인 서방 선진국들을 향해 현재까지도 제국주의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며 제대로 씹어대고 있으며, 덤으로 이 지역들의 조속한 독립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전세계 개발도상국 진영의 지도자로 군림하려고 하는 중국은 다른 반미, 반서방 국가들보다 더욱 강하게 서방 국가들을 비난하고 있다. 북한 역시 오래전부터 반 제국주의, 탈식민주의적 자주 노선을 자국 외교의 핵심 방향으로 삼아왔던 터라 중국과 마찬가지로 서방 국가들을 강하게 욕하고 있다.

8. 영향

8.1. 지배국

독립이 된 이후에도 식민지는 과거 종주국에게 이득이 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종주국의 언어, 종교 및 문화 영향력 확대이다. 과거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독립한 이후에도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처럼 대부분[27] 그 종주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쓰는 일이 많다. 거기다 식민지 시대에 쌓인 학맥과 인맥으로 구 식민지 국가의 지배층과 지식은 구 식민지배국의 대학에서 학문을 수입하거나 유학하여 구 식민지배국의 문화 지배가 계속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종주국들은 인재난이 심한 분야인 건설업과 제조업 등에 언어가 통하는 과거 식민지였던 개도국의 인력들을 충당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경제난을 극복하고 또한 경제를 성장시킨 나라들이 대표적으로 스페인 프랑스이다.

하지만 포르투갈과 브라질처럼 식민지 종주국이 개판이 되고 반대로 식민지였던 나라가 잘 나가면 본국이 오히려 구 식민지 국가들에게 인재를 제공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현재 스페인 포르투갈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이 자국 청년층 및 엘리트들이 한창 자원 개발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앙골라, 모잠비크, 브라질, 칠레 등 과거의 '식민지'로 진출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제 위기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부실한 기간산업 및 유로존 체제 등 근본적인 경제 구조 자체의 문제인지라 단기간 내에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8.2. 피지배국

노예가 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노예가 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식민지의 경험은 한 민족의 넋에 드리운 그림자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다.
- 소설 비명을 찾아서
식민 지배를 당한 나라는 독립하더라도 자주적인 국가 운영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식민지 시절 지배자들의 뒤를 핥으며 거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한 매국노들이 독립 후에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쥐어잡고 있고, 아니면 반대로 독재자가 된 영웅 문서에서도 보이듯이 독립 운동 투사가 총 권력을 움켜쥐며 독재자로 변모하기도 한다. 식민지 주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로 인한 각종 부정부패와 경제적 혼란이 만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 때문에 정부와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여 공권력 무시도 심하고 치안이 엉망이다. 또한 식민 지배 시절 지배국들이 멋대로 혹은 의도적으로 헤집고 갈라 놓은 그 나라의 민족, 문화, 역사 등의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식민지 시절 본국의 이해관계로 만들어 놓은 경제환경이다. 피지배국의 경제 상황과는 무관하게 식민 모국의 분업화 과정에서 플랜테이션 등 특정 산업만을 기형적으로 발전시킨 경우가 많다. 비유하자면 식민 모국이 자동차를 만들면서 A 식민지는 유리창만, B 식민지는 타이어만 만들게 특화시켜서 독립 후에도 식민 모국에 경제가 종속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피지배국이 독립했지만 해당국의 산업 구조 자체가 식민 모국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경제적 혼란 및 침체 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나라만 형식적으로 독립했지 산업 전반은 식민 모국을 본거지로 하는 기업 집단에 의해 또다시 지배되어, 사실상 식민지 시절이나 다름 없는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게다가 식민지 시절 지배국이 식민지 주민들에 대한 교육 거부 및 축소, 강간 및 강제노역 동원, 차별 등으로 인해 식민국 인구 특성이 변질되어서 생기는 인종 및 민족차별 등의 문제도 있다. 식민지배자가 물러간 대신 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민족 외에도 이념 차이로 인해 나라가 갈라지기도 한다.

비교적 재출발이 수월했던 스웨덴,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등은 꽤 예외적인 경우이다. 스웨덴,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종주권 국가들이랑 독립전쟁해서 이겨서 독립했고, 거기다가 국가들 간의 유대감이 깊은 유럽 쪽 국가였으므로 그나마 평화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28] 게다가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수백년 앞서 독립했으며, 석탄이 풍부하고 영국과 가까운 지역적 이점을 살려 유럽 본토에서 거의 먼저 산업 혁명이 일어난 나라였으며, 벨기에의 경우는 유럽 제 2의 항구도시인 안트워프를 보유하여 지정학적 위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국가들보다 재출발이 아주 쉬웠다.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 등은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근대 국가 구축이 뒤늦었지만 경제성장을 이루고 삶의 질도 끌어올려 자주적인 국가 운영이 이뤄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케이스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도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며, 그 시절의 유산이 아직도 국가의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방식의 예외는 미국, 캐나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호주, 뉴질랜드 같은 국가들이다. 어째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국가들뿐이다 이런 나라들은 하나같이 국가를 세운 주체가 원주민이 아니라 원주민들을 억압하는 유럽 출신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본국에서 독립했다.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식민지배 시절만큼이나 독립 이후에도 큰 탄압을 받았는데, 대부분의 신대륙 국가의 독립 주도세력들은 원주민 땅 뺏어서 유럽인 이주자한테 더 많이 주지 못해 안달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독립 이전에는 오히려 가톨릭교회와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후안 데 미라아나 등의 양심적인 학자들 주도로 원주민과 노예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와 자치를 존중했으며, 북미의 경우도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신대륙 독립운동가들의 대의에는 "원주민 땅 마음대로 못 빼앗게 하는 잔소리 시어머니 본국 정부를 엎어 버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뺏어 먹자!"라는 계산이 노골적으로 깔려 있었다.

이런 나라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원래 살던 민족의 수와 영향력을 줄여 혼혈 소수민족으로 만들어 찍 소리 못하게 함으로써 자국 건국에 얽힌 약탈과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고, 권위주의적인 본국에서 해방되려 투쟁한 자유의 나라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이런 나라들이 '유럽 본국의 폭정으로부터 스스로의 자유를 얻기 위해 저항한 민주주의의 종주국' 소리를 들으며, 프레드릭 잭슨 터너 같은 미국인 역사학자는 이를 프론티어 데모크라시라 하여 아예 식민주의와 민주주의를 깊이 연관지었다.

그리고 종교 민족주의 문제 특히 열강들에 의해 민족, 종교적인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국경이 슥슥 나뉘어진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 쪽이 가장 심각하다. 물론 이쪽 동네들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없었던 라이베리아, 에티오피아 같은 국가들도 내전이 일어났지만.[29]

9. 식민지였던 국가의 국력이 지배국이었던 국가 이상이 된 경우

피지배국이 지배국보다 국력이 비슷해지거나 우월해진 사례는 매우 희귀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식민지였다는 것은 지배국보다 국력이 한참 딸렸다는 것이기 때문에, 지배국보다 국력이 비슷해지거나 우월해진 사례가 있어도 대부분이 17~18세기 정착형 식민주의 시절의 국가들이다. 당장 이 분야의 대표인 미국부터가 그렇다.

하지만 흔치 않게 피지배국이 지배국보다 앞서거나 비슷하거나 상당히 근접한 예시도 존재한다. 다음은 그런 흔하지 않은 선례들을 거론해본다. 기준은 국력 문서의 초강대국, 강대국, 지역강국, 중간국을 기준으로 하며, 피지배국이었던 국가의 국력이 지배국이었던 국가의 국력과 같은 등급이거나 높은 등급일 경우로 한다.
  • 브라질
    지역강국으로 중간국인 포르투갈을 아득히 추월하고 BRICS의 일원이 되었다. 애초에 나라 크기가 포르투갈의 80배가 넘는 데다가 인구도 브라질이 20배가량 많으며, 독립 당시부터 이미 포르투갈은 인구 수로 따돌린 상태였다.[33] 게다가 브라질은 페드루 2세 치하에서 적극적으로 근대화 정책을 펼치고, 공화정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이민을 널리 받아들면서 공업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데 반해, 포르투갈은 혼란기를 겪고 살리자르 하에서도 공업화가 더딘 상황이었고, 거기에다가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벌어진 장기간 전쟁으로 발전이 크게 뒤쳐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1970년대 오일 쇼크 때부터 9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막장 테크트리를 타고 반대로, 포르투갈이 70년대 들어 민주화가 정착되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브라질에서 포르투갈로 대대적으로 유입이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가, 2010년대 이후에는 다시 역전되어서 많은 포르투갈인들이 유로존 위기로 인해 미래가 안 보이는 조국을 떠나 브라질 땅에서 새출발을 하고 있으며, 이는 포르투갈의 인재 유출을 더욱 촉진시키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포르투갈이 포르투갈어의 표준 지위를 포기하는 안습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포르투갈이 앞서는 점이라면 브라질은 포르투갈과 달리 정치적으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며 1인당 GDP 역시 포르투갈이 훨씬 높다.
  •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와 같은 지역 강국으로 분류된다. 또한 영토 면적도 지배국인 네덜란드보다 더 크다. 사실 그건 인구발이 받아서 그런 거고 네덜란드와 달리 정치적으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된다. 1인당 소득도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이고. 하지만 경제력과 군사력 규모에서 옛 지배국인 네덜란드를 넘어섰고, 네덜란드도 인도네시아에는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커진 편이다.
    그래서인지 인도네시아인의 네덜란드 이민은 지금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인데[34] 오랫동안 식민 지배를 당하기도 했고,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본국을 떠나 네덜란드 본토에서 부역자로 생활하기도 했으며, 세계 대전에는 네덜란드군의 일원으로 싸우다가 희생되기도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임은 물론, 인도네시아의 국력도 더이상 네덜란드가 무시할 수준이 못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토로 이주한 네덜란드인들은 대부분 네덜란드의 사회와 문화에 거의 동화되면서 이름도 인도네시아식이 아니라 네덜란드식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름만 가지고 인도네시아계를 찾기는 쉽지 않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은 축빠들이라면 다들 알 법한 지오반니 판 브롱크호르스트.
  •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중간국으로 분류된다. 덴마크 스웨덴의 지배를 겪고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북유럽에서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였으나(그래도 세계적으로 보면 부국) 1970년대 북해에서 석유가 나오고 이후 석유 수출을 기반으로 경제 발전, 복지 등에 투자하면서 모든 국력 부문에서 지배국이었던 스웨덴과 덴마크를 역전했다. 오죽하면 옛날엔 노르웨이인들이 스웨덴으로 일하러 가던 게 이젠 반대로 스웨덴인들이 노르웨이로 일하러 오는 신세가 되었을 정도.

중남미 나라들도 아이티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스페인보다 산업화도 빨랐고 훨씬 부유했었지만 현대 들어와서 따라잡혔다. 1960년대만 해도 중남미 나라들이 스페인과 1인당 GDP가 비슷하거나 더 높았다. 아르헨티나도 1960년대 후반까지 당시로서는 인구가 훨씬 많던 스페인보다 총 GDP에서 앞섰다. 다만 스페인이 잘했다기보단 중남미 나라들이 현대에 들어서 폭망한 거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경우 그대로 냅뒀더라면 미국을 상대로는 힘들어도 프랑스와 대등한 국력을 가질만큼 성장했을 것이지만 호르헤 비델라가 아주 제대로 말아먹었다. 실제로도 브라질 제국 시절 아르헨티나는 그 브라질 제국을 개박살내버린 뒤 우루과이를 독립시켜줬고 그게 원인이 되어 브라질 제국에서는 페드루 1세가 황제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그러던 강대국을 호르헤 비델라가 아주 다 쓰러져가는 나라로 전락시킨 것이다.[35]

그래선지 아직까지 스페인은 중남미 국가보다는 앞서는 것으로 간주되며, 여전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일본의 국력에 아직 미치지는 못하나 식민지 경험이 있는 최빈국 출신 중에서는 가장 크게 약진한 경우에 속한다(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같은 사례처럼 인구가 수억단위이거나 국토가 엄청 넓거나 자원이 넘처나는 나라가 아닌 가난한 국가중에서 몇 안되는 지역강국으로 도약하였다).

2019년에는 인도와 멕시코가 각각 영국, 스페인의 바로 뒤를 밟고 있는 중이라 넘어설 전망이 유력하며 프랑스만이 유일하게 식민지 국가에게 뒤쳐질 가망성이 낮은 상황이다.[36]

9.1. 1인당 GDP를 초월한 경우


어떻게 보면 이것이 식민모국에게 더 굴욕적일 수 있다. 국력은 규모와 정치적 상황으로 식민지가 더 강해질 수 있지만 1인당 소득이 뒤쳐졌다는 것은 더 못 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10. 문서가 작성된 과거의 식민지 목록

현존하는 식민지는 속령 문서 참고.

11. 관련 문서

12. 인터넷에서의 식민지

정전에 가까운 커뮤니티를 자기들 것으로 점령하는 경우와, 멀쩡한 커뮤니티를 침략자(?)와 비슷한 성향으로 물들게 만들 경우 이를 식민지나 멀티라고 일컫는다.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전자에 해당하는 케이스가 많으며, 이는 점령갤 문서를 참고할 것. 반대로 침략받은 입장에서는 강점기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1] 그리스는 산악 지형이었기 때문에 농업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엔 인구 수가 일정숫자 이상이 되면 대량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폴리스는 고향 폴리스와 끈끈한 동맹관계가 되었다. [2] 고대의 대표적인 식민지 국가로는 고대 로마와 자웅을 겨룬 카르타고가 있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식민지에서 시작했으며, 본국 멸망 후에도 살아남아 크게 성장한다. [3] 오죽하면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나는 은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겪을 정도였다. 또 아메리카 식민지의 효용성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랬다면 애초에 자원의 저주라는 말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4] 정확히 말하자면 스페인은 이전부터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금 조달이 시급했다. 이게 신대륙 개척 이전 레콩키스타를 할 적에는 양모 같은 상품들을 팔아 조달하는 식으로 해결이 되었다. 이 외에도 아라곤은 지중해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신대륙 개척 이후에는 네덜란드 같은 부유한 동네에서 거둔 세금과 귀금속으로 해결이 되었다. [5] 물론 수에즈 운하 인수는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6] 물론 알다시피 노동착취나 토지강탈을 통해서 이득을 본 경우가 많았다. 사실 식민본국도 양극화가 극심했고 각종 기업들의 비리같은것도 횡행하던 시절이었는데 거기에다가 백인우월주의 및 사회진화론이 극성이던 시절이었던지라 식민당국에서도 이를 방관하거나 조장한 경우가 많았고, 필요하면 문화파괴까지 일삼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더군다나 이러한 횡포를 막을만한 시스템은 식민지에서 없다시피하거나 매우 미약했으니 당연히 식민본국내에서 벌어졌던 문제점들이 몇배 이상으로 농축되고 거기에 피식민지민의 정치권력 박탈 및 문화파괴같은 문제가 더해지며 문제가 더욱 심해졌던것이었다. [7] 사실 이러한 주요 거점의 인구 분산이 원래 그 식민지의 컨셉이다. 식민지의 한자를 풀이하면 나무를 심듯이 사람을 심는 땅이라는 의미이므로. 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인구 분산적 경향은 어느 정도 수행된 바 있다. 히키아게샤가 대표적이다. [8] 19세기 말 이후의 식민지 경영은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홉슨의 제국주의론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레닌 역시 홉슨의 제국주의론을 발전시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서도 제국주의론을 저술했다. 홉슨의 아이디어는 일본의 이시바시 단잔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9] 독일 제국은 자국령 아프리카 식민지가 아니라 영국령 인도에 더 많이 팔았다. 관세가 있으니까 식민지 모국이 다른 나라보다는 물건 파는 데 유리했지만 못 파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관세라는 것도 대공황 시절이 아닌 이상 수입을 금지하다시피 한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식민지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별것 없다. 그나마 토착 산업과 인구가 막대한 인도 정도니까 방직공업 같은 일부 분야에 한해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거지. [10] 이 병사들이 영국군에게 총을 겨눈다고 생각하면 딱 답이 나오는 문제다. [11] 오히려 자국민 중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는 인력을 외부로 보내려고 일부러 식민지를 확장한 영국 같은 나라도 있었다. [12] 그래도 로마는 헬레니즘 제국의 후예인 이집트, 시리아, 마케도니아 왕국을 다 정복하고도 이슬람에 밀려 상실하기 전까지 몇 백년을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유화정책도 병행하여 식민지 출신들이 자신들도 로마인이라고 생각할 만큼 잘 동화시켰기 때문이다. [13] 물론 종교재판 등의 다른 요소도 있다. [14] 물론 식민지가 된 곳 중에서 한국 같은 곳이 특이한 케이스다. 대개 서로 동족의식도 없고 오히려 적대감정이 넘치는 부족, 세력, 번국들이 넘쳐나는 곳이 대다수였다. 때문에 열강들은 이런 부족 간 갈등을 이용하는 식으로 협력자를 얻었고, 식민지배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식민지 엘리트들이 등장하여 식민지배에 협조하게 된다. 식민지화 이전부터 민족의식이 강력했던 우리나라에선 흔히 매국노로 폄하되지만, 그리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15] 베트남 프랑스인들의 농장이 꽉 들어차 있고 알제리는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일부로 간주돼서 그렇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16] 덕분에 19세기의 독일 제국은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체제 하에서 길드 전통의 도제식 육성 프로그램을 기업에 접목하여 우수한 노동력과 이에 기반한 좋은 품질의 제품, 온건한 노사문화 등을 바탕으로 지금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 [17] 그 지원에 미국의 채권 수매가 있었으니 당연히 안 힘들리가... [18] 기술의 경우 나치당의 집권을 전후하여 인재들이 탈독일을 시도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딱히 우위는 없다. 미국에 비해서는 확실하게 열세인 건 넘어가더라도 영국이나 프랑스와 비교하면 일장일단이 있는 정도? [19] 뒷날 총리대신 역임. [20] "식민지로 가면 보다 고래등 같은 집에서 원주민들을 종처럼 부리고 살 수 있다"는 열망이 하층민들에게 적지 않게 퍼졌다. 한 몫 잡은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고 비교우위 원리에 따라 오히려 식민지인들 때문에 3D 산업, 농업 등지에서 몰락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모토야마 히로시의 <나라가 불탄다>라는 만화에서는 조선 등지에서 가져오는 일본 현지 농민들이 착취와 몰락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식민지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등 사실상 현지와 동화했던 사람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는 나라에서 강요한 히키아게샤 참고. [21] 자원 원산지를 차지하거나 무역하기 좋은 곳을 차지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전자의 사례는 콩고 민주 공화국, 후자의 사례는 홍콩. [22] 일본이 100년 넘게 한국에서의 식민 지배에 대해 무시해오다가 "사과 계획을 준비 중이지만 교육에 있어서 방침을 바꾸진 않겠다"는 얘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23] 이들 국가들 중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의 3개국은 모두 유엔 상임이사국들인 동시에 핵무기 보유국들이다. [24] 사실 패전국인 독일 일본은 애초에 전쟁 전부터 승전국들에 비해 가진 식민지 숫자가 많지 않았고 통치기간도 승전국들에 비해 짧았었다. [허나] 반미는 아님 자세한 관계는 추가바람 [허나] [27]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미국의 영향으로 영어, 타갈로그어를 쓴다. [28] 실제로 네덜란드는 벨기에의 독립을 막으려고 전쟁까지 각오했지만, 대영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등의 압력에 굴복하여 독립을 허용해야 했다. [29] 라이베리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서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은 이력은 없었고, 19세기 미국의 해방 흑인 노예들이 미국 정부의 지원을 얻어 아프리카에 땅을 차지하여 국가를 건국하는 등 제2차 세계 대전 후 서구 열강의 식민지에서 독립국으로 독립한 다른 아프리카의 나라들과 달리 처음부터 독립국에서 시작한 나라였으나, 국가를 세운 소수의 미국 노예 출신 흑인 기득권 세력들이 국민 다수 아프리카 흑인 토착민들을 차별하고 억압하여 20세기 내내 권력을 독식하는 등, 내부 통합에도 실패하여 내전이 터질 위험성이 매우 높았던 국가였다. 에티오피아 또한 1974년 공산 쿠데타로 하일레 셀라시에 2세 황제의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수립된 멩기스투 공산 독재 정권이 국가 통제에 실패하면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멩기스투 정권에 저항하던 반정부 게릴라 저항 세력들과 기타 부족 민병대 세력들을 제어하지 못 해 막장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30] 미국의 국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것도 있지만, 당시 대영제국이 전무후무한 수준의 최강대국이였고, 현재는 그때에 비하면 매우 쇠퇴한 국가라는 점도 한몫한다. 물론 절대적으로 보자면 영국은 여전히 상당한 국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가 미국이라... [31] 그러나 미국이란 나라가 영국에서 넘어간 이민자들의 후손들로부터 만들어졌고(현재 미국 정치, 경제계의 고위직도 영국의 후손인 백인들이 거의 다 장악) 언어적으로도 영국과 같은 영어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밑에 언급된 언어적,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도나 다른 예시들과는 달리 영국의 영향력이 확장돼서 약간 변형만 된 거라는 견해도 있다. [32] 물론 스페인 제국, 포르투갈 제국의 남미도 미국-영국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세계의 존망을 걸었던 1차대전, 2차대전 연합국으로 동맹국, 추축국과 전쟁을 치뤘고 현재도 약간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Special Relationship(특별한 관계)로서 혈맹으로 지내는 걸 보면 피지배국이 지배국을 엄청나게 싫어하거나 아예 안중에도 없는 취급 하는 걸 보면 전형적인 국민정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매우 다르다고 할 수 있다. [33] 물론 포르투갈의 인구가 더 많았을 때도 있지만 이건 남미 원주민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일시적으로 인구가 격감한 영향이며, 포르투갈 현지에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립되고 노예 무역으로 흑인 인구도 꽤나 유입되면서 재추월했다. 그리고 독립 이후로도 식민 본국인 포르투갈은 물론 이탈리아, 그리스, 불가리아, 폴란드, 독일, 러시아, 일본, 아랍인, 유대인 등의 이민 인력을 널리 수용하였고, 반대로 포르투갈은 쿠데타, 독재정, 식민지 전쟁 등의 혼란 속에서 이민을 받을 여유가 안 되었기 때문에 애초에 포르투갈보다 인구가 적으려야 적을 수가 없다. [34] 여전히 네덜란드 식민지로 남아 있는 아루바,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퀴라소 출신의 주민들은 출생과 동시에 네덜란드 시민권을 부여받으며, 본토에 거주하는 경우 투표권도 지닌다. 최근까지 식민지였던 수리남 출신들도 네덜란드에서 영주하는 데에 큰 제약이 없다. [35] 사실 아르헨티나는 리즈시절에 해당하는 19세기 후반~대공황 직전까지 이후로는 서방국들과 비교해서 제조업부문 육성의 실패와 지나친 농축산업의 의존도로 인해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서 G7급으로 성장하기는 좀 힘들다는 반응도 있다. [36] 프랑스 식민지 국가 중 가장 경제력이 높은 나라는 베트남인데 프랑스와 GDP 차이가 무려 13배에 달한다. [37] 정확히 말하면 위임통치령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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