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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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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c224> 제1-3대 제4대 제5-9대 제10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rowcolor=#ffc224> 제11·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rowcolor=#ffc224>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rowcolor=#ffc224> 제20대
윤석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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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1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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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5BA6,#FFC224> 정당 이름 비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이승만 당선
한국독립당 김구
무소속 안재홍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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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2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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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무소속 조봉암
2 자유당 이승만 당선
3 민주국민당 이시영
4 무소속 신흥우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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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제3대 대통령 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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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1 무소속 조봉암
2 민주당 신익희 사망
3 자유당 이승만 당선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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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3.15 부정선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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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5BA6,#FFC224> 기호 정당 이름 비고
| 민주당 조병옥 사망
{{{#fff }}} 자유당 이승만 당선
(사퇴)
1 · 2 · 3 · 3.15 · 4 · 5 · 6 · 7 · 8 · 9 · 10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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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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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제2대 제3대 [[제4대 국회|{{{#FFF 제4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이승만
신익희
신익희 이기붕 이기붕
곽상훈
[[제4대 국회|{{{#FFF 제4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5대 국회|{{{#FFF 제5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5대 국회|{{{#FFF 제5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6· 7대
곽상훈 백낙준 이효상
제8대 제9대 제10대 [[제11대 국회|{{{#FFF 제11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백두진 정일권 백두진 정래혁
[[제11대 국회|{{{#FFF 제11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12대 [[제13대 국회|{{{#FFF 제13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13대 국회|{{{#FFF 제13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채문식 이재형 김재순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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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이만섭
황낙주 김수한 박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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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섭 박관용 김원기 임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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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박희태 강창희 정의화
[[제20대 국회|{{{#FFF 제20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20대 국회|{{{#FFF 제20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21대 국회|{{{#FFF 제21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제21대 국회|{{{#FFF 제21대 {{{#!wiki style="padding: .5px 1.5px; border: 1px solid #FFF; border-radius: 3px; display: inline; font-size: .8em"]]
정세균 문희상 박병석 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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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부의장 · 대한제국 중추원 · 임시의정원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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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 임시대통령 (1919~1925)
초대
이승만
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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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수반 국무총리 (1919~1925)
초대
이승만
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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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노백린
제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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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박은식
제6대
노백린
국무령 (1925~1927) 국무회의 주석 (1927~1940)
초대
이상룡
제2대
홍진
제3대
김구
제1-2대
이동녕
제3대
송병조
국무회의 주석 (1927~1940) 국무위원회 주석 (1940~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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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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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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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자유당 심볼(백색).png 파일:자유당_투명.pn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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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제5대
이승만
제6대
조경규
제7대
장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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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제8대
남송학
제9대
이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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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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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파일:독립협회 글씨.png 회장
<rowcolor=#87ceed> 초대
안경수
제2대
이완용
제3대
서재필
제4대
윤치호
파일:독립협회 글씨.png 간부
위원장 이완용 고문 서재필
파일:독립협회 글씨.png 위원
김가진 남궁억 박정양 송헌빈
안창호 오세창 유길준 윤치호
이상재 이승만
[1] 취소선 쳐진 인물은 독립협회에서 제명된 인물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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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49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대한민국
1960년 8월 13일 윤보선 대통령 대한민국
1963년 12월 5일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 대한민국
1967년 6월 23일 육영수 영부인 대한민국
1979년 12월 7일 최규하 대통령 대한민국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1979년 12월 7일 홍기 영부인 대한민국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전두환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0년 8월 29일 8월 29일 이순자 영부인 대한민국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노태우 대통령 대한민국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1988년 2월 24일 2월 25일 김옥숙 영부인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김영삼 대통령 대한민국
1993년 2월 11일 2월 23일 손명순 영부인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대한민국
1998년 2월 17일 2월 25일 이희호 영부인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노무현 대통령 대한민국
2008년 1월 28일 권양숙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이명박 대통령 대한민국
2013년 2월 12일 김윤옥 영부인 대한민국
2013년 2월 19일 박근혜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문재인 대통령 대한민국
2022년 5월 3일 김정숙 영부인 대한민국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상훈 연도 결정일 수여일 이름 직책 국적 비고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하인리히 뤼프케 대통령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4년 12월 3일 12월 8일 빌헬미네 뤼브케 영부인 서독 외국인 최초 상훈자
1966년 2월 1일 2월 7일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7일 틍쿠 인탄 자하라 왕비 말레이시아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0일 시리낏 끼띠야콘 왕비 태국
1966년 2월 1일 2월 15일 장제스 총통 중화민국
1968년 5월 10일 5월 18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반티에우 총통 남베트남
1969년 5월 23일 5월 27일 응우옌티마이아인 제1부인 남베트남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하마니 디오리 대통령 니제르
1969년 10월 28일 10월 28일 아이샤 디오리 영부인 니제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 엘살바도르
1970년 9월 25일 9월 28일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영부인 엘살바도르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오마르 봉고 대통령 가봉
1975년 6월 27일 7월 5일 조세핀 봉고 영부인 가봉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대통령 세네갈
1979년 4월 17일 4월 23일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영부인 세네갈
1980년 5월 11일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국왕 사우디아라비아
1980년 5월 14일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1981년 6월 25일 수하르토 대통령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5일 시티 하티나 영부인 인도네시아
1981년 6월 29일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1년 6월 29일 틍쿠 아프잔 왕비 말레이시아
1981년 7월 6일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필리핀
1981년 7월 6일 이멜다 마르코스 영부인 필리핀
1981년 10월 13일 로드리고 카라소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1년 10월 13일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영부인 코스타리카
1982년 5월 10일 사무엘 도 대통령 라이베리아
1982년 6월 7일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 자이르
1982년 6월 7일 보비 라다와 영부인 자이르
1982년 8월 25일 압두 디우프 대통령 세네갈
1982년 12월 21일 케난 에브렌 대통령 터키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대통령 수단
1983년 3월 10일 3월 15일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영부인 수단
1983년 9월 10일 후세인 1세 국왕 요르단
1983년 9월 10일 누르 왕비 요르단
1984년 4월 9일 하사날 볼키아 국왕 브루나이
1984년 4월 21일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국왕 카타르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다우다 자와라 대통령 감비아
1984년 8월 30일 9월 13일 치렐 자와라 영부인 감비아
1985년 5월 17일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대통령 파키스탄
1985년 5월 20일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대통령 코스타리카
1986년 9월 4일 4월 10일 엘리자베스 2세 국왕 영국
1986년 9월 4일 4월 16일 보두앵 국왕 벨기에
1987년 4월 7일 아메드 압달라 대통령 코모로
1988년 11월 3일 이스칸다르 국왕 말레이시아
1988년 11월 3일 자나리아 왕비 말레이시아
1989년 11월 3일 11월 20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 서독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프랑스
1989년 11월 3일 11월 30일 다니엘 미테랑 영부인 프랑스
1990년 6월 21일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대통령 파라과이
1990년 11월 5일 괸츠 아르파드 대통령 헝가리
1991년 9월 13일 아즐란 샤 국왕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13일 투안쿠 바이눈 왕비 말레이시아
1991년 9월 25일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대통령 멕시코
1992년 8월 13일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대통령 과테말라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피델 발데즈 라모스 대통령 필리핀
1993년 5월 20일 5월 25일 이멜리타 마르띠네즈 라모스 영부인 필리핀
1994년 11월 7일 11월 21일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대통령 칠레
1994년 12월 5일 12월 9일 레흐 바웬사 대통령 폴란드
1995년 2월 7일 2월 16일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1995년 2월 21일 3월 6일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 독일
1995년 3월 28일 4월 3일 젤류 미테프 젤레프 대통령 불가리아
1995년 6월 26일 7월 7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5년 9월 26일 9월 29일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아르헨티나
1996년 7월 23일 9월 4일 알바로 아르수 대통령 과테말라
1996년 7월 23일 페르난두 엔히크 카르도주 대통령 브라질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스페인
1996년 10월 8일 10월 20일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왕비 스페인
1996년 11월 26일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국왕 말레이시아
1996년 12월 10일 12월 15일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우크라이나
2000년 2월 22일 3월 3일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대통령 이탈리아
2000년 2월 22일 3월 6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프랑스
2006년 3월 12일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알제리
2007년 3월 26일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국왕 쿠웨이트
2007년 3월 28일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국왕 카타르
2009년 5월 13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카자흐스탄
2009년 11월 12일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 페루
2012년 5월 30일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스웨덴
2012년 11월 21일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대통령 아랍에미리트
2018년 10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2019년 하랄 5세 국왕 노르웨이
2021년 6월 14일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 오스트리아
2021년 6월 16일 펠리페 6세 국왕 스페인
2021년 6월 16일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 스페인
2021년 8월 25일 이반 두케 대통령 콜롬비아
2021년 9월 21일 보루트 파호르 대통령 슬로베니아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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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파일: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부장.png
1949
이승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49
이시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53
밴 플리트
파일:미국 국기.svg
1953
장제스
파일:대만 국기.svg
1955
하일레 셀라시에
파일:에티오피아 제국 국기.svg
1957
응오딘지엠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1958
아드난 멘데레스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1962
허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김좌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오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조병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안중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윤봉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이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강우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김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안창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신익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김창숙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손병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이승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한용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최익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이강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2
민영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64
더글러스 맥아더
파일:미국 국기.svg
1964
해리 S. 트루먼
파일:미국 국기.svg
1964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파일:독일 국기.svg
1965
프랑수아 톰발바예
파일:차드 국기.svg
1965
다비드 다코
파일: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국기.svg
1965
수루-미강 아피디
파일:베냉 국기.svg
1965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파일:세네갈 국기.svg
1965
펠릭스 우푸에부아니
파일:코트디부아르 국기.svg
1965
레온 음바
파일:가봉 국기.svg
1965
아마두 아히조
파일:카메룬 국기.svg
1965
하마니 디오리
파일:니제르 국기.svg
1965
조모 케냐타
파일:케냐 국기.svg
1965
무테사 2세
파일:우간다 국기.svg
1965
필리베르트 치라나나
파일:마다가스카르 국기.svg
1965
툰쿠 압둘 라만
파일:말레이시아 국기.svg
1966
타놈 키티카초른
파일:태국 국기.svg
1966
쑹메이링
파일:대만 국기.svg
1966
천궈푸
파일:대만 국기.svg
1968
쑨원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1968
천치메이
파일:중화민국 북양정부 국기.svg
1969
피델 산체스 아르난데스
파일:엘살바도르 국기.svg
1970
조만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6
임병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7
필립 제이슨
파일:미국 국기.svg
1979
박정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0
최규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1
시리낏 끼띠야꼰
파일:태국 국기.svg
1981
푸미폰 아둔야뎃
파일:태국 국기.svg
1983
전두환(취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
김규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
조소앙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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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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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유관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
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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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유공자 : 기타 공훈 및 국가원수}}}}}}

<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이승만
李承晩 | Rhee Syng-man
파일:이승만.jpg
출생 1875년 3월 26일[1]
황해도 평산도호부 마산방 삼리 능안골[2]
(現 황해남도 봉천군 성기리[3])
사망 1965년 7월 19일 (향년 90세)
미국 하와이 주 호놀룰루 카운티 호놀룰루 시
카이무키 구 마우타네리아 요양원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대통령묘소
재임기간 초대 대통령
1948년 7월 24일 ~ 1952년 8월 14일
제2대 대통령
1952년 8월 15일 ~ 1956년 8월 14일
제3대 대통령
1956년 8월 15일 ~ 1960년 4월 26일
서명
파일:이승만 서명(영어).svg
파일:이승만 서명(한자).svg
[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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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ba6><colcolor=#ffc224> 본관 전주 이씨[5]
부모 아버지 이경선, 어머니 김말란
형제자매 3남 2녀 중 3남[6]
배우자 박승선 (이혼)[7]
프란체스카 도너 (재혼)[8]
자녀 친아들 이봉수[9]
양아들 이강석, 이인수
학력 배재학당 (졸업)
조지 워싱턴 대학교 ( 정치학 / 학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 역사학 /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 정치학 / 박사)
병역 해당사항 없음
종교 개신교 ( 감리회)
신체 170cm, 60kg, O형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
약칭
우남(雩南)[10] }}}}}}}}}
파일:이승만대통령초상화.png
공식 초상화

1. 개요2. 약력3. 일생4. 평가5. 이승만과 박정희의 관계6. 묘소7. 선거 이력8. 소속 정당9. 여담10. 어록
10.1. 초대 대통령 취임사10.2. 제2대 대통령 취임사10.3. 제3대 대통령 취임사
11. 관련 자료
11.1. 본인이 저술한 저서11.2. 전문가들의 저서11.3. 비전문가들11.4. 다큐멘터리
12. 대중매체에서
12.1. 단독 작품12.2. 담당 연기자12.3. 대체역사물
13. 각종 타이틀14. 관련 단체15. 둘러보기

[clearfix]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취임 선서

1. 개요

대한민국의 제 1-3대 대통령.

2. 약력

3.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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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고종 12년) 조선에서 태어나 배재학당에서 수학하며 신학문을 연마하였고, 독립협회[20], 만민공동회, YMCA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 하에서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고종이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체포 구금하고 만민공동회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박영효의 황제퇴위 음모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5년 7개월 간 한성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러일전쟁 중에 사면되어 을사조약의 국제법적 부당함을 주장하는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돼 활동하였고,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한 청원외교를 전개하였다.

이후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이후 국무위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등을 지내며 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했고,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주도했다.

초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거쳐서 1948년 국회 간선제로 치러진 제1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독립당 김구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되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이후 직선제로 바뀐 1952년 2대 대선과 1956년 3대 대선에서도 2연속으로 도전해 왔던 무소속 조봉암 후보를 이기면서 총 12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냈다.

대통령 재임 중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 농지개혁, 초등학교 의무교육,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대대적인 학교 건립, 평화선 선포 등과 같은 족적을 남겼으며, 6.25 전쟁과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 권력을 추구하여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4.19 혁명이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이후 미국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냈고 1965년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나 고국에 안장되었다.

3.1. 이승만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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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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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승만과 박정희의 관계

파일:이승만박정희.jpg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하는 박정희 당시 5사단장

현대에는 두 사람의 지지세력이 겹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에 비해서 두 사람의 행보는 상당히 다르다. 이승만은 독립운동가였으나 박정희는 만주군에서 복무했고, 광복 후에도 이승만은 극렬 반공주의자였던 반면 박정희는 남조선노동당에서 군사총책으로 활동한 바 있다. 특히 이 남로당 활동으로 인해 사형을 당할 뻔까지 했었으니 개인적으로 박정희가 이승만을 좋게 볼 리 없었고, 이승만 역시 남로당 활동을 한 박정희를 좋게 볼 리 없었다. 즉, 이승만과 박정희는 근본부터가 서로 반대였으며, 서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박정희가 집권했을 때 이미 4.19 혁명으로 하야했음에도 여전히 인기 있던 이승만은 그에게 장벽이었다. 박정희는 이승만의 귀국을 불허하였으며 장면 총리는 죽어서야 집 밖에 나오도록 했다. 당시 상황이「60∼64년 외교문서」공개를 통해 드러났는데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귀국을 고집하면 그와 프란체스카여사의 여권을 취소하라』며 절대 귀국치 못하게 호놀룰루 영사관에 강력지시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이승만의 실정과 무능은 경멸의 대상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승만을 무능한 지도자라고 줄곧 비판하였으며, # 이승만 정권에 대해 "노인의 눈 어두운 독재와 썩어 문드러진 자유당과 관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해방 귀족이 날뛰었다!"고 비난할 정도였다. 실제로 박정희는 이승만과 가까웠던 정치군인의 횡포, 여기서 비롯되는 인사 적체 문제 등 이승만 정권의 총체적 난국과 문제점들을 집권기에 직접 겪은 바 있다. 1차적으로는 여순반란사건이 박정희와 이승만의 앙금을 만드는데 기여했고, 2차적으로는 전후 진급심사에서 곽영주가 자신의 남로당 행적때문에 진급을 누락시키려하자 백선엽이 말려 겨우 진급한 것 때문에 박정희와 이승만의 사이가 나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는 발췌 개헌 당시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상관인 이용문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계획을 수립한 바가 있다. 즉 5.16 군사정변은 두 번째 계획이었다. 본래 5.16은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계획되었다. 시행날짜는 3월 15일로부터 두 달 뒤인 5월 8일이었다. 그렇게 정한 이유는 쿠데타를 일으키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사람이 송요찬인데 그 송요찬이 미국으로 가는 날이 5월 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 8일로 정한 것이다.[21]

이승만 대통령 영결식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가 대독한 추모사에서 이승만을 '독립운동의 원훈이요 건국 대통령'이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김종필은 박정희가 우남 '이승만 박사를 건국의 아버지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던간에 일단 죽은 고인에 대해선 심한 비판을 삼가고 되도록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박정희의 개인적인 생각과 별도로 영결식에서의 발언은 립서비스에 가까울 수 있다. 그 증거로 박정희의 1962년 저서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에서 박정희의 이승만 평가는 영결식 당시 연설과 전혀 다르다. 내용 일부 발췌 그리고 2015년 4월,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는 배나TV의 장원재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조사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않고 대신 참석한 정일권 전 총리가 말하길 박 대통령에게 조사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조사는 노산 이은상에게 부탁해서 쓰게 했다."라고 증언하였다. #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박정희는 이승만의 장례에 대해서도 시큰둥했는데, 당연하게도 이승만의 장례 문제 때문에 갈등이 일었다. 거기서 양자와 의견 조율이 안 되자, 박정희는 이승만의 유족에게 국민장을 권유했다.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는 국민장을 거부하고 가족장을 한다고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구 자유당측 인사들은 국장을 요구하였다. 이에 박정희는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이석제 당시 총무처 장관은 이 보도를 부인했다.

박정희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독립운동가와 그 일족에게 훈장을 수여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게 독립 운동이 되는 건가요? 똑바로 말해 그 사람들 독립 운동 때문에 우리가 독립된 거요? 독립 운동했다는 건 말짱 엉터리요, 엉터리'라고 비하했다. #[22]

이승만과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임 기간이 두 번째와 첫 번째로 길다.[23] 또한 보수, 우익 진영에서는 찬사와 높은 평가를, 진보, 좌익 진영에서는 비난을 받는다. 다시 말해 70년 현대사에서 절반 가까이 재임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굵직한 행적을 남긴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6. 묘소

파일:presiPic1.gif 파일:external/www.segye.com/aooo0309-45-4.jpg
우남(雩南)[24] 이승만 묘소.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와 같이 안치되었으며, 국립서울현충원 이승만대통령묘소에 자리하였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48 제헌 국회의원 선거 서울 4[25]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무투표 당선 당선 (1위) 초선[26]
제1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 180 (91.8%) 초선[27]
1952 제2대 대통령 선거

[[자유당|]]
5,238,769 (74.6%) 재선[28]
1956 제3대 대통령 선거 5,046,437 (70.0%) 3선
1960 제4대 대통령 선거 9,633,376 (100.0%) 당선 (1위) 4선[29]
역대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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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승만 초대총선.jpg
파일:이승만 2대 대선.jpg
제헌 총선 (서울 동대문 갑) 2대 대선 (대한민국)
파일:제3대대선이승만이기붕.jpg
파일:이승만 3,4대 대선.jpg
제3대 대선 (대한민국) 제4대 대선 (대한민국) }}}}}}}}}

8. 소속 정당

<rowcolor=#ffc224> 소속 기간 비고

[[독립협회|]]
1897 - 1898 개화파의 영향을 받아 정계 입문


[[무소속|
무소속
]]
1898 - 1909 독립협회 강제 해산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
1909 - 1924 창당


[[무소속|
무소속
]]
1924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인한 탈당

대한인동지회
1924 - 1925 입당


[[무소속|
무소속
]]
1925 흥업구락부 창당을 위한 탈당

[[흥업구락부|
흥업구락부
]]
1925 - 1938 창당


[[무소속|
무소속
]]
1938 - 1945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인한 정당 해산

[[독립촉성중앙협의회|
독립촉성중앙협의회
]]
1945 - 1946 창당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
1946 - 1951 합당[30]


[[무소속|
무소속
]]
1951 탈당


[[자유당|]]
1951 - 1960 창당


[[무소속|
무소속
]]
1960 - 1965 4.19 혁명으로 인한 대통령직 하야로 탈당
정계 은퇴
사망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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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록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것 입니다.
6.25 전쟁 때인 1950년 10월 평양 탈환 후 평양에서 했던 연설 中[31]
우리 국군 장병들은 어떠한 위험과 난관이 있을지라도
38선을 넘어 북진하라
이승만 대통령 38선 돌파지령
당분간 공산 압제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우리 동포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르는 체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민족의 기본 목표,
즉 북쪽에 있는 우리의 강토와 동포를
다시 찾고 구해내자는 목표는 계속 남아 있으며
결국 성취 되고 말것입니다.
1953년 7월 6.25 전쟁 정전협정 직후 발표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32]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이승만의 유언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구별할 수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다.
이젠 천하 근본이 농사가 아니라 상업이다.
1901년 4월 19일자 제국신문 논설 中
전국을 통틀어 양반은 1000분의 1도 못된다. 나머지 999는 모두 그 양반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실로 나라에서는 1000분의 999는 다 잃어버리고 앉아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책 독립정신[33]
공산주의는 콜레라[34]와 같다. 인간은 콜레라와 같이 살 수 없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들이 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기념 연설 中
민주주의적 정부 원리를 신봉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다. 정부의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그 위에 한 국가의 구조가 세워지는 기반이 된다. 국민은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이념과 달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권리는 정부에 의한 그 어떤 침해의 가능성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서 Japan inside out 中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조약은 앞으로 우리를 번영케 할 것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우리는 우리 집 종들이나 남의 집 하인배들, 낮고 천하게 여기는 부인과 여자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어린아이들을 다 한층 올려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사람의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속한 물건으로만 알던 모든 악습을 버리고, 국법과 올바른 도리 앞에서 그들을 모두 동등한 사람으로 대접하여 따로 서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국민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책 "독립정신" 中
모든 정치제도의 성패는 항상 그 나라 백성들의 수준에 달려있다. 굽어 자란 나뭇가지는 갑자기 펴지 못하고, 앉아서만 자란 아이는 하루에 멀리 가지 못한다.
그의 책 "독립정신" 中
교육을 하는 근본 목적은 사람이 가진 지혜와 본성을 거울처럼 맑게 닭아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추게 하여 잘잘못과 우열을 가리게 하려는 것이다.
저서 독립정신 中
우리는 선진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를 모두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배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실행하고 옮겨야 한다. 남들이 흉보고 욕하는 것을 상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형식적으로 하는 체해서는 소용이 없다.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저서 독립정신 中
배신을 일삼는 일인들은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을 정복하고자 하였소.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경제 구조를 엄청난 규모로 구축해 주었고, 그래서 일부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 중에는 일본만큼 대단한 지원을 받으려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농담을 할 정도라오.
대일 미국 원조와 일본경제의 급속한 부흥에 대해 분개하며 남긴 1951년 4월 25일자 메모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권리만 주장하고 공공의 이익을 등한시한다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 오히려 권리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선원들이 술에 취해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눈이 멀고 팔이 부러져서 배를 움직일수록 위태롭게 만들어 물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데 이 배의 선객들은 구조하는 일을 남에게 미뤄두고 무심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하겠는가. 선객들은 남이 건져주기를 바라지 말고 선원들에게 버려두지도 말고 각자 자기 일로 생각하고 자기 힘을 다해야 한다. 우리 대한 삼천리 강산은 곧 2천만 생명을 싣고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 몰아치는 큰 바다를 외로이 나가는 배와 같다. 우리는 지금 당장 물에 빠져가는 배 안에 앉아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 한다.
그의 저서 "독립정신" 中[35]
전쟁이 끝나면 하루빨리 부흥 사업을 펼쳐야 할 것이니 그 기초가 되는 철강 산업 진흥책을 마련하라. 특히 주택 건설 사업을 위한 함석, 철판 등의 공급을 담당할 제강 사업 건설 계획을 우선적으로 강력히 추진하라. 미국이 돈을 못 내겠다면 정부가 보유한 자체 보유 달러로 공장을 지으라.[36]
1953년 4월 4일 내각에 특별 지시
조금만 더 견디면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나라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전후 복구와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고급 교육을 받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 때를 위해 대학 재학생들을 보존시켜야 한다.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언제까지 미국이 사다주는 비료에 의존하고 살아야 하는가.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미국이 제공하는 원조자금으로 공장을 건설하고 기술자를 양성해서 필요한 물자를 국내에서 생산해야 우리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 내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 측과 상의하여 반드시 비료 공장을 지어라.
비료 공장 건설안을 거부한 미국에 대해
내가 산에 올라가 나무 한 토막이라도 베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고 공포했지만 소용이 없어요. 다른 땔감을 만들어주고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해야 국가의 영이 제대로 서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석탄 열심히 캐서 연료를 공급해야 사람들이 나무를 베지 않을 것이오. 내가 어떻게 하든 식량은 미국에서 끌어다 댈 테니 당신은 땔감 문제를 책임지시오. 우리 힘을 합쳐 나라를 살려봅시다.
정인욱 강원탄광 사장을 대한석탄공사 총재로 임명하면서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
4.19 시위 소식을 듣고 병원을 방문해 다친 학생들을 보며 한 말[37]

10.1. 초대 대통령 취임사

여러 번 죽었던 이 몸이 하느님 은혜와 동포 애호로 지금까지 살아 있다가 오늘에 이와 같이 영광스러운 추대를 받는 나로서는 일변 감격한 마음과 일변 감당키 어려운 책임을 지고 두려운 생각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기쁨이 극하면 웃음이 변하여 눈물이 된다는 것을 글에서 보고 말로 들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나에게 치하하러 오는 남녀동포가 모두 눈물을 씻으며 고개를 돌립니다. 각처에서 축전 오는 것을 보면 모두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본래 나의 감상으로 남에게 촉감될 말을 하지 않기로 매양 힘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목석간장이 아닌 만치 나도 뼈에 사무치는 눈물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40년 전에 잃었던 나라를 다시 찾은 것이오 죽었던 민족이 다시 사는 것이 오늘 이어서 표명되는 까닭입니다.

오늘 대통령 선서하는 이 자리에 하느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책을 다하기로 한층 더 결심하며 맹서합니다. 따라서 여러 동포들도 오늘 한층 더 분발해서 각각 자기의 몸을 잊어버리고 민족 전체의 행복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시민된 영광스럽고 신성한 직책을 다하도록 마음으로 맹서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맡기는 직책은 누구나 한사람의 힘으로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중대한 책임을 내가 감히 부담할 때에 내 기능이나 지혜를 믿고 나서는 것은 결코 아니며 전혀 애국남녀의 합심 합력으로써만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바입니다.

이번 우리 총선거의 대성공을 모든 우방들이 칭찬하기에 이른 것은 우리 애국남녀가 단순한 애국성심으로 각각 직책을 다한 연고입니다. 그 결과로 국회 성립이 또한 완전무결한 민주제도로 조직되어 2, 3정당이 그 안에 대표가 되었고 무소속과 좌익색태로 지목받는 대의원이 또한 여럿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기왕 경험으로 추측하면 이 많은 국회의원 중에서 사상 충돌로 분쟁분열을 염려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극렬한 쟁론이 있다가도 필경 표결될 때에는 다 공정한 자유의견을 표시하여 순리적으로 진행하게 되므로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다 민의 대로 종다수 통과된 후에는 아무 이의 없이 다 일심으로 복종하게 되므로 이 중대한 일을 조속한 한도 내에 원활히 처결하여 오늘 이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이니 국회의원 일동과 전문위원 여러분의 애국성심을 우리가 다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국회의장의 책임을 이에 사면하고 국회에서 다시 의장을 선거할 것인데 만일 국회의원 중에서 정부 부처장으로 임명될 분이 있게 되면 그 후임자는 각기 소관 투표구역에서 경선 보결하게 될 것이니 원활히 보결된 후에 의장을 선거하게 될듯하며 그 동안은 부의장 두분이 사무를 대행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의장 두 분이 그 동안 의장을 보좌해서 각 방면으로 도와 협의 진행케 하신 것을 또한 감사히 생각합니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조직에 대해서 그간 여러 가지로 낭설이 유포되었으나 이는 다 추측적 언론에 불과하며 며칠 안으로 결정 공포될 때에는 여론상 추측과는 크게 같지 않을 것이니 부언낭설을 많이 주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정부를 조직하는데 제일 중대히 주의할 바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 것입니다. 둘째는 이 기관이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회상 명망이나 정당단체의 세력이나 개인 사정상 관계로 나를 다 인식하고 오직 기능 있는 일꾼들이 함께 모여 앉아서 국회에서 정하는 법률을 민의 대로 준행해 나갈 그 사람끼리 모여서 한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니 우리는 그분들을 물색하는 중입니다. 어떤 분들은 인격이 너무 커서 적은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고 혹은 적어서 큰 자리에 채울 수 없는 이도 있으나 참으로 큰 사람은 큰 자리에도 채울 수 있고 적은 자리도 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은 자리 차지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참 큰 인물들이 있어 무슨 책임을 맡기든지 대소와 고하를 구별치 않고 적은데서 성공해서 차차 큰 자리에 오르기를 도모하는 분들이 많아야 우리의 목적이 속히 도달될 것입니다.

이런 인격들이 함께 책임을 분담하고 일해 나가면 우리 정부 일이 좋은 시계 속처럼 잘 돌아가는 중에서 이적을 많이 나타낼 것이오 세계의 신망과 동정이 날로 증진될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수립하는 정부는 어떤 부분적이나 어떤 지역을 한하지 않고 전 민족의 뜻대로 전국을 대표한 정부가 될 것입니다.

기왕에도 말한 바이지만 민주정부는 백성이 주장하지 않으면 그 정권이 필경 정객과 파당의 손에 떨어져서 전국이 위험한 데 빠지는 법이니 일반국민은 다 각각 제 직책을 행해서 위선 우리 정부를 사랑하며 보호해야 될 것이니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필경은 남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과거 40년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의로운 자를 옹호하고 불의한 자를 물리쳐서 의가 서고 사가 물러가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일꾼이 소인을 가까이 하고 현인을 멀리하면 나라가 위태하다 하였으나 지금은 백성이 주장이므로 민중이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을 명백히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승인문제에 대하여는 그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 판단할 수는 없으나 우리의 순서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모든 우방의 호의로 속히 승인을 얻을 줄로 믿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하는 바는 승인을 얻는데 있지 않고 먼저 국권을 공고히 세우는데 있나니 모든 우방이 기대하는 바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우리가 잘만 해나가면 우리의 요청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후원할 것이니 이것도 또한 우리가 일 잘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9월에 파리에서 개최하는 유엔총회에 파견할 우리 대표단은 특별 긴급한 책임을 가지니 만치 가장 외교상 적합한 인물을 택하여 파견할 터인데 아직 공포는 아니 하였으나 몇몇 고명한 인격으로 대략 내정되고 있으니 정부조직 후에 조만간 완정 공포될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로 레이크썩세스에 가서 많은 성적을 내고 있는 임영신 여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고맙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재정 후원도 못하고 통신상으로 밀접히 후원도 못한 중에 중대한 책임을 그만치 진취시킨 것을 우리는 다 영구히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이북동포 중 공산주의자들에게 권고하노니 우리 조국을 남의 나라에 부속하자는 불충한 이상을 가지고 공산당을 빙자하여 국권을 파괴하려는 자들은 우리 전 민족이 원수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나니 남의 선동을 받아 제 나라를 결단내고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반역의 행동을 버리고 남북의 정신통일로 우리 강토를 회복해서 조상의 유업을 완전히 보호하여 가지고 우리끼리 합하여 공산이나 무엇이나 민의를 따라 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기왕에도 누누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의 매국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므로 이북의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공실히 깨닫고 일제히 회심해서 우리와 같이 같은 보조를 취하여 하루 바삐 평화적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정치와 경제상 모든 권리를 다 같이 누리게 하기를 바라며 부탁합니다.

대외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와 다 친린해서 평화를 증진하여 외교 통상에 균평한 이익을 같이 누리기를 절대 도모할 것입니다. 교제상 만일 친소에 구별이 있다면 이 구별은 우리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오 타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나라이던지 우리에게 친선히 한 나라는 우리가 친선히 할 것이오 친선치 않게 우리를 대우하는 나라는 우리는 친선히 대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40년 간에 우리가 국제상 상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와 접촉할 기회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일인들의 선전만을 듣고 우리를 판단해 왔었지만 지금부터는 우리 우방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우리 자리를 찾게 되었은즉 우리가 우리 말을 할 수 있고 우리 일도 할 수 있나니 세계 모든 나라들은 남의 말을 들어 우리를 판단하지 말고 우리가 하는 일을 보아서 우리의 가치를 우리의 가치대로만 정해 주는 것을 우리가 요청하는 바이니 우리 정부와 민중은 외국의 선전을 중요히 여겨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각국 남녀로 하여금 우리의 실정을 알려 주어서 피배에 양해를 얻어 정의가 상통하여 교제가 친밀할 것이니 이것이 우리의 복리만 구함이 아니오 세계평화를 보증하는 방법입니다.

건설하는 데는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정부가 다 필요하지마는 새 백성이 아니고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패한 백성으로 신성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나니 이런 민족이 날로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을 버리고 샛길을 찾아서 날로 분발 전진하여야 지난 40년 동안 잊어버린 세월을 다시 회복해서 세계문명국에 경쟁할 것이니 나의 사랑하는 3천만 남녀는 이날부터 더욱 분투 용진해서 날로 새로운 백성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기로 결심합시다.
1948년 7월 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10.2. 제2대 대통령 취임사

오늘 취임식에서 내가 다시 지게되는 책임은 내가 할 수만 있으면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나간 4년 동안에 행한 정부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앞으로 오는 일이 좀 쉬우리라고는 볼 수 없는 터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민국이 이 위험한 때를 당해서 정부관료나 일반 평민이나 너나를 물론하고 누구나 각각 나라의 직책과 민족의 사명 외에는 다른 것은 감히 복종할 생각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당한 노력과 고초를 우리들이 피하고 우리 몸의 평안과 마음에 원하는 것을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할 수 있는 대로는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밖에서 노력해서 이남이북의 우리 국민을 먹여 살릴 일을 하든지 전쟁에 나가서 악독한 원수를 쳐 물리치든지 정부에서 무슨 직책을 맡아 진행하든지 각각 실수하거나 실패하고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다 희생적으로 공헌할 때입니다. 모든 한인남녀는 다같이 사명을 맡아서 고상하고 영웅스러운 공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백만명의 반수되는 우리 청년들이 희생적 제단에 저의 생명을 바쳐서 냉정한 담량과 백절불굴하는 결심으로 무도한 공산당의 침략에서 우리를 구해내기 위하여 싸우는 중입니다.

일천만 우리 동포는 가산을 잃어버리고 도로에 방황하니 무염지욕을 가진 적군들이 우리를 정복하자는 희망으로 파괴소탕한 중에서 살길을 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북에 칠백만 우리 형제자매들은 적색학정아래서 피를 흘리고 애통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다 구해내지 않고서는 잠시라도 평안히 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불의한 전쟁의 참혹한 전화로 우리나라는 거의 다 적지가 되었으니 2백만 우리 동포가 잔혹한 사상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반도의 한가족도 비참한 지경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게 되었으며 각각 우리 포악한 원수들의 죄를 징벌하고 우리 파괴된 나라에서 몰아내라는 요청을 하기에 정당한 이유를 안 가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 환난에 대해서 우리는 한가지 경력으로 배운 것이 있느니 이것은 동족상애와 호상원조의 뜻을 배운 것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우리가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 몸을 둘째로 생각하든지 아주 잊어버린 데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런 애국심과 통일정신으로 우리나라는 오늘날에 이르러서 모든 파괴 중에서도 전보다 몇 갑절 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충분히 훈련받고 무장한 국방군이 준비되어서 육지와 해면과 공중에서 모든 방면으로 전투력이 증가되며 무기 무장이 날로 구비해지는 것이니 이 용감한 군인들은 모든 연합군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며 우리 원수들이 미워하매 두려워하고 우리 민중의 영원한 감격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민국의 방패가 되어있는 만치 우리는 어디까지든지 이 사람들의 뒤를 바치도록 맹서하여야 될 것입니다.

우리 앞으로 당하는 몇 해 동안은 우리의 해결할 문제가 중대하고 또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위로되는 것은 이 문제를 우리가 외로이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53 자유국들이 우리 옆에 서서 나가기를 보증한 것입니다. 또 16개국의 군인들이 우리 땅에서 같이 서서 원수들을 쳐 물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반도에서 일어난 어려운 문제는 세계에서 공동의 투쟁과 충돌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것을 정복하기에는 우리의 도움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을 우리 도시와 우리 집에서 싸워 나가느니 만치 우리나라를 재건하기에도 다수의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쉬지 않는 노력으로 성취할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방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직책을 더욱 할수록 우리 친우들이 더욱 감동되어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들이 더 희생할 것입니다.

이 두 해째의 난리를 겪은 뒤에는 우리의 첫째 직책은 전쟁전선에서 할 일입니다. 우리가 승전해서 원수들을 다 항복 받을 때까지는 우리에게는 쉴 수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마크 크라크 장군과 잼스 밴풀맅 장군은 우리에게 선언하기를 ˝우리 땅에서 토굴을 파고있는 공산군이 어떠한 강력으로 우리를 쳐들어오던지 우리는 능히 정복시킬 결심과 능력이 상당하다˝ 는 것입니다.

이 전쟁 때와 그 후라도 우리의 행할 보편적으로 목적하는 것은 악독한 원수들이 우리에게 피를 흘리게 한 상처를 합창시키는데 있을 것입니다.

국제연합제국과 우리의 가장 친절한 우방인 북미합중국이 여러 번 선언하기를 자기들의 목적은 우리와 같다고 한 것이니 즉 우리 대한이 통일 독립민주국가로 완전히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통일의 목적을 완수해야 되겠다는 구체적 방책은 얼마쯤은 우리 원수들의 정략과 계획에 달렸지만 동시에 우리의 마음에 매친 결심과 담량과 목적이 얼마나 공고한가에 달린 것입니다.

이만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한국은 분열이 되거나 얼마쯤 점령을 당하고는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세계도 공산제국주의를 허락해서 제국주의의 승리한 것을 길러 주고는 자유세계도 부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공산제국주의는 모든 연합국을 대립해서 전 세계의 민족주의를 타도시킬 목적으로 할 것이니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세계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승전은 모든 나라들의 승전입니다. 만일 우리가 실패한다면 세계 모든 자유국민에게 비극적인 실패일 것입니다.

자유세계의 단결은 누가 깨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를 치는 힘이 클수록 모든 반공국들의 공동안전을 위해서 단결심이 더욱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 과정은 크렘믈린에 있는 모든 불의한 사람들이 먼저 배와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 과정을 잘만 배우게 되면 집단안전의 길이 우리 앞에 널리 열려 있어서 모든 자유를 원하는 세계민족들의 한량없는 물산과 번성이 평화의 새 시기를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 국내에서도 모든 내정과 지방에 관계되는 문제들도 앞으로 몇 해 동안에는 국제상에 영향이 없게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살 수 없는 물가고등으로 민중의 혈맥을 모두 말려주는 이 문제도 전답에서와 공장과 광산에서 생산력이 충분히 회복되어야만 충분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 도시와 촌락과 우리들 가정과 생산근원은 우리를 도와서 집단안정을 위하여 싸우는 나라들이 각각 자기들의 부담으로 도와줄 그 수량을 충분히 내어주기 전에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태평양 전체에 대한 문제와 전 세계에 대한 문제는 지금 한국 내에서 되어 가는 문제와 결연되고 있으니 이는 처음으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담대히 일어나서 근대의 제일 악독한 전쟁을 싸워나가며 공산당 제국주의의 오래 내려오든 것을 끝막기로 결심한 까닭입니다.

그 끝을 한국에서 막기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은 나의 개인 메세지로써 우리 국민과 또 친절하고 관후한 우리 연합국에 한마디 하려합니다.

내 평생은 우리나라의 운명과 같아서 계속적 투쟁과 인내력으로 진행해온 것인데 어떤 때는 앞에 장해가 너무도 커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1882년 한미조약 이후로 우리가 밖으로는 각국의 제국주의와 안으로는 추락하여가는 군주정부의 학정을 대항할 적에 희망도 보이지 않은 것을 싸워왔던 것입니다. 지금 와서는 이 싸움 시작하던 사람들이 다 없어지기 전에 민주정부를 세워 민의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놓고 세계 모든 결심한 친구들이 우리를 호위하고 있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본의 무력가들의 폭력으로 우리의 독립문을 닫혀놓은 뒤에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를 방기하고 잊어버렸으나 우리 민중은 굴복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 국가의 자유를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우리 의병들이 싸우며 보호하라했고 1919년에 만세운동으로 우리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중국과 만주에서는 우리 국군의 잔병이 1945년까지 싸워오다가 마지막으로는 공화민주국가의 결실이 되여 지나간 4년 동안에 처음으로 민국정부를 건설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에게 정치상 굴복을 거부해서 싸운 것입니다. 미국군정시대에 소련과 교섭해서 여러 어려운 문제를 평화적 담판으로 해결하고 우리나라를 다시 통일시키자는 주의를 가졌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자유국가와 합해서 전쟁으로 결말내기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도 우리사람들의 이전에 싸워오던 전쟁과 같이 결국은 승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목적이 우리 이웃의 자유를 없이 하자는 것 보다 우리의 자유를 회복하고 보유하자는 것뿐이니 만치 우리는 실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간담에 깊이 갈망하며 원하는 바는 내가 60년 동안을 공헌해서 분투 노력한 이 나라를 내 생명이 끝나기 전에 굳건히 안전하게 자유와 통일과 민주국가 안에서 성립되는 것을 보자는 것입니다.

이번에 소위 정치상 파동이 일대위기라고 세계에 전파된 것이 실상은 솥 안의 풍파였든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몇몇 외국 친우들과 외국 신문기자들이 나의 정치적 원수들의 말을 듣고 내가 병력을 이용해서 국회를 해산하고 민주정체를 없이하련다는 괴이한 언론으로 곧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평생역사와 나의 주장하는 목적으로 아는 친우들은 이런 낭설을 듣고 웃었으며 혹은 분개히 여긴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동포가 나를 전적으로 지지한 힘으로 우리가 반대자들과 대립하야 그들을 이기고 그 결과로 오래 싸워오든 개헌안을 통과시켜서 대통령선거권을 국회에 맡겨 주지 않고 민중의 직접투표로 행하게 되었으므로 우리의 민주정체와 주의가 절대 굳건해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통일과 우리의 민주정체를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나의 생명과 나의 공헌을 다 하기를 다시 선언하는 바입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전 민족에게 대하야 각 개인에게 일일이 말하노니 이 공동목적을 완전히 달성할 때까지 각인의 모든 생각이나 주장을 다 버리고 일심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4천여 년의 역사를 계속하며 우리의 신성한 조상들이 계계승승하야 내려오며 이 금수강산에서 살며 일하다가 필요한 때에는 다 일어나 싸워서 우리의 거룩한 유업을 물려주었고 또 앞으로 이 신성한 유업을 보유할 책임을 우리의 손에 끼쳐준 것입니다.

우리의 오랜 역사상에 어떤 시대를 물론하고 오늘 우리가 당한 형편같이 어려운 적은 없었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 난리를 담대히 치루고 직책을 행한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다 합해서 연속 진행할 것입니다. 우리가 같이 일하며 희생하며 우리가 같이 싸워서 마침내 승전할 것입니다.

승전이 우리 마음과 우리 간담에 있을 동안에는 우리가 실패는 없을 것입니다. 제일 위험한 것은 다 지나갔으며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오직 승전과 성공일 것입니다

이것으로 마칩니다.
1952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10.3. 제3대 대통령 취임사

나의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내가 오늘 또 한번 우리 민중 앞에 서서 대통령 취임 선언식을 제3차로 행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나의 지도에 신념을 표시한 것에 대해서 내가 겸손한 마음과 영광스러운 뜻으로 평화할 때에나 전쟁 중에서나 또 국내 국외의 관계를 막론하고 우리 민족의 복리를 위해서 내 성심과 능력을 다하기를 맹서하는 바입니다.

이 다음 4년은 우리 역사에 제일 긴절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앞에 당한 여러 가지 큰 문제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당하며 여기까지 나온 역사를 대강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제일 긴급하고 절박한 문제는 통일입니다. 한국이 분렬된 것을 잠시라도 그저 두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에게 불공평한 것이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 반면으로 한국을 통일시키는 것은 유엔의 큰 영예가 될 것이며 또 국제상 관계에 이유와 공의를 믿는 모든 나라에 큰 성공일 것입니다.

우리 국제상의 둘째로 큰 문제는 일본이 공산당과 점점 친밀하여 가는 것입니다. 일본이 사절단을 중공과 한국 이북에 연속 보내서 공산당들과 결속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경찰이 날마다 우리나라에 잠입하여 들어오는 공산당들을 잡아드려서 저의들의 행동을 밝히 드려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군기와 재정을 상당히 준비해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나라에 난동과 혁명운동을 선동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만일 일본이 북경 모스코의 공산당들의 뒤를 계속 따라간다면 어떠한 결과가 생길 것입니까. 자유세계가 이 위태한 것을 제때에 각오하고 일어설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내정을 말하자면 내 생각에는 지나간 첫 8년 동안에 민주정체의 진보를 성취한 것은 실로 역사상 드문 성공입니다. 일본의 선전에 빠진 사람들은 한인들이 능히 자주 국가를 진행할 준비가 되었을가를 의심했던 것입니다.

오늘 와서 보면 우리 정부는 삼권분립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병행해서 발전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전국적으로 또 지방적으로 여러 번 선거를 집행했었는데 매번에 각오가 깊이 박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주권이 민중에게 있다는 것이며 또 우리 유권자들의 권리가 점점 늘어가서 굳건한 토대가 선 것입니다.

사회상이나 교육상의 발전은 막대한 성공입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가 많은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벌서 교육의 나라가 되어서 우리 청년들이 전에 없던 기회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다 배울 수 있을 만치 교육제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한과 질병을 다 이겨냈으며 우리의 농지들을 농민들에게 다 넘겨주어서 농민들이 농토의 주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부녀들도 날마다 정치 사회 경제상으로 진전해 나가고 있으며 우리 청년들도 새 세계의 안광을 가지고 앞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상 전도도 크게 진전되고 있는 것이니 1953년 하반기까지는 미국의 원조금액을 대부분 임시 구급책에 쓰고 우리나라의 생산력을 회복하는 데는 쓰지 못했던 것이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그 정책이 고쳐저서 지금은 전쟁에 파괴된 경제를 다시 회복하는데 놀라운 진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원주나 춘천같이 전쟁에 전수히 파괴되였던 도시들이 날로 재건축이 되어가는 중이며 지나간 수 년 동안에 새 공장들이 건축되어서 우리 민족이 여러 대를 내려가며 누릴 복리를 양출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간단하게 이 몇 마디로 그 동안에 성취한 것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더욱 낙관적으로 결심해서 이 앞에 모든 어려운 문제를 이겨나가자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이 어려운 문제를 다 인정하며 또 우리 민중의 복리를 진전시키기 위해서 앞으로 장기계획이 필요한 것을 또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장기계획의 순서를 우리가 만들어서 진전시키는 계획은 대략 5개년을 앞두고 해나갈 것인데 그 동안에 우리가 노력해서 성공하려는 조건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중소공업을 많이 발전시키는 것이니 이 공업들을 다 민간에서 자유로 해가도록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생산력을 증가해 가지고 국내에서 쓸 것과 해외에 수출할 것을 만들며 동시에 직업을 마련해서 실업자가 없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발명하는 재능과 용진력이 충분함으로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이 양편으로 있으니 이것은 우리가 은행의 필요를 알아서 그리로 달하여 모든 영업을 진전시킬 것이요 중소공업에 대해서는 융자를 해주는 제도를 펴놓게 하며 남은 귀속재산을 속히 다 팔아서 민간 사유물을 만들 것이니 나는 대통령의 책임으로 이 방면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쓸 것이고 또 국회에 요청해서 애국성심으로 협조하며 이 여러 가지 긴요한 사업을 속히 또 정밀하게 도달하여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쌀과 다른 곡식의 생산 수량이 늘도록 만들기를 힘쓸 것이니 이것은 수리사업과 개간사업을 개량해서 나가야 할 것이며 보통 물건값 수준에는 곡식 값이 표준이 되는 것이니 생산을 증가하는 것이 경제의 안전을 성취하고 또 유지하게 만드는 근본이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정부의 공무원과 봉급 생활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버는 것을 가지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이 살도록 해주어야 될 것이며 또 여기에 대해서 특히 내가 한 가지 말하려는 것은 우리 국군의 식량 부식물을 좀 더 늘여서 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전력하려는 것입니다.

또 둘째로는 우리나라 농민들을 위해서 재정 순환하는 데와 물건 사고 파는데 새 제도와 개량된 방식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농림부에서 전국농민회 조직을 완성하기에 힘쓰고 있는 중이니 이것이 성공되면 이전 농회에 속했던 재산을 다 그리로 넘겨줄 것입니다. 그전 농회는 전쟁 전에 해산을 시켜서 그 재산이 농림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인데 새 농민화가 조직된 후에는 그 재산도 농민회에 넘길 것입니다. 이 새 농민회는 단순히 농업관계 뿐이고 정치상에는 아무 관계가 없게 만들 것이며 이 회의 권한은 농업은행을 주식회사로 차지하고 또 주장할 것이며 이 회에서 비료 발매권과 미곡 매매권리를 가지게 되며 또 농민에게 융자를 주어 농민들이 적은 변리로 돈을 얻어 쓰도록 만들어야 될 것입니다. 이 순서 하에서는 농민들이 고리대금을 쓸 필요가 없게 되며 또 우리가 해마다 봄과 여름을 당해서 쌀값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경제안전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벌써 많이 교정된 것인데 작년에 미국과 협의해서 달라 환산률을 500 대 1로 정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쌀과 다른 곡식의 생산을 늘이고 공장에서는 생산력을 증가시키며 또 농산물을 매매하는 제도와 물산수출을 전적으로 장려하자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해외에서 곡식을 수입할 적에는 그 물건이 제때에 들어오게 만들어야 될 것이니 이것이 제때에 들어오지 못하면 쌀값이 졸지에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환산률을 절대로 지켜서 전국이 경제상으로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을 국민들이 다 도와야 될 것이니 이것은 국민된 자의 직책이며 우리 국민이 다 지켜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해갈 정책이 광대한 것이나 성공할 능력이 자재한 것이며 미국이 우리의 재건축하는 계획을 양해하고 동정해서 도웁는 힘으로 우리의 목적을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민중의 복리를 위해서 성심으로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정책인 것이니 우리는 희생적 정신으로 합동해서 전력을 다하여 진행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에는 나라를 제일 먼저 도와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행정상의 정신이며 또 국회와 모든 국민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내가 우리 사랑하는 동포들에게 일르고저 하는 말은 지금 세계가 다 공존주의의 함정에 들어가는 것 같으나 이것은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다시 새로 맹서하노니 우리들은 오직 독립으로 또 통일민주국으로 세운 한국을 위해서 우리들은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을 공헌하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독립이 없으면 우리 개인의 자유가 없는 것이며 우리들은 자유가 없는 생명보다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선서 밑에서 다 합동으로 나아가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을 나는 아는 바입니다.
1956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11. 관련 자료

이승만은 1800년대 후반부터 신문 발행에 참여하는 등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생애 동안 여러 저서와 논설 등을 남긴 바 있다. 그래서 아래에 대략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2019년부터 이승만 전집도 차례로 발간되고 있다. 동시대 다른 인물들의 전집 발간이 대부분 이미 오래전에 완료된 것과 달리 이승만 전집 발간은 뒤늦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이화장에 있던 방대한 분량의 이승만 관련 자료들이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학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11.1. 본인이 저술한 저서

  • 독립정신
    이승만이 독립협회 활동을 통해 고종의 양위 문제에 연루되어 한성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던 1904년에 저술한 책이다. 집필 동기는 러일전쟁으로 나라가 더욱 위태로워지면서 민족 독립에 대한 조선 민중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04년부터 대한제국의 내정에 개입한 일본으로 인해 국내에선 출판되지 못하였고, 1910년 2월 10일에 미국 로스엔젤레스 대동신서관에서 발간되었다. 조선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순한글로 썼다. 일제강점기 내내 금서로 지정되었고, 4.19 혁명 뒤에 절판되었다가 1993년에 다시 발간되었다. 당시 지식인으로서 국민의 계몽에 앞장서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 한국교회핍박
    1913년 4월 미국 하와이에서 105인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발간한 책이다. 105인 사건의 경위와 배경, 재판 과정과 사건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여론 등을 소개하며 궁극적으로 105인 사건이 일제가 한국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조작한 ‘한국 교회 핍박 사건’이었다고 설명한다.
  • 청년 이승만 자서전
    1912년에 집필한 자서전이다. 과거 자신이 배재학당을 다니던 중 서재필의 영향을 받아 일본의 아시아주의에 경도되었고 자신을 비롯한 배재학당 출신이 박영효계 친일파와 손잡은 것을 '불행한 연결'이라고 표현하며 독립협회 활동의 과오를 인정하는 내용도 쓰여있다.
  • 청일전기
    청일전쟁이 끝난지 5년 후이자 이승만이 한성감옥에 있던 1900년 옥중에서 탈고하여 1917년 하와이에서 출판한 책이다. 청일전쟁에 대한 중국의 "중동전기본말"을 발췌, 번역하고 거기에 자신의 논설을 덧붙여 만들었다. 즉, 일종의 편역서. 조선의 대중들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순한글로 썼다.
  • Japan Inside Out
    이승만이 1941년 7월에 미국에서 출판한 책으로, 일본 제국주의 사상을 낱낱이 분석하여 일본이 미국을 공격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저술하였다. 일본 신화부터 대략적으로 설명하며 일본인들의 성전(聖戰)사명과 전쟁 심리를 분석하여 일본에 대한 전쟁의 대비를 하지 않는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처음 출판될 당시엔 미국인들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그로부터 약 5개월 후,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일으켜 일본과 미국 간 전쟁이 발발하자 그때서야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 이승만 일기 #
    이승만이 1904년 ~ 1934년과 1944년에 썼던 영문 일기다. 한성감옥에서 나온 뒤 미국으로 출발하는 시점부터 시작하는데, 마치 메모의 느낌으로 매우 간략하게 기재되다가 1933년 들어서는 굉장히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후 아래의 책들은 이승만에 대한 주요 서적들이며 이외에도 이승만을 다룬 책과 연구 논문들은 무수히 많다. 다만, 아직까지 만 90세를 살았던 이승만의 생애에 대해서 세밀한 연구는 많이 부족한 편이다. 이승만 전집발간사업 조차 2016년부터 시작되었고, 이승만과 관련된 자료들에 대해서 치밀한 고증을 한 연구는 많지 않은 편이다.

11.2. 전문가들의 저서

실제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이 쓴 책이다.

유영익의 저서
  • 유영익, 『건국대통령 이승만 - 생애 사상 업적의 새로운 조명』 (학술서적)
  • 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 (학술서적)
  • 유영익,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교양서)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연세대 교수 시절을 포함하여 거의 일평생을 이승만 연구를 천착해온 학자이며, 1989년 탈냉전 이후 학계 일각에서 이승만에 대해 재평가하는 연구를 선도하였다. 이승만과 관련된 1차 자료들을 두루 섭렵하여 저술과 연구를 남기고 있다. 특히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로부터 이승만이 소장하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수집한 편지, 문서, 수첩, 사진 등과 같은 방대한 문서군들을 기증받아서, 이를 바탕으로 이승만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를 진행했다.[38]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이승만의 전반에 대한 책이고, 『젊은 날의 이승만』은 청년기 이승만의 사상에 관한 책으로 이승만이 24세부터 29세까지 한성감옥에 수감된 시기에 집필했던 옥중잡기를 바탕으로 그의 초기 생애와 사상을 분석했다. 옥중잡기의 원문을 원본과 일일이 대조해가며 번역하고 그 해제를 썼다는 것이 특징이다. ( 월간조선 2008년 11월호 기사)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승만 연구를 종합하고 보완하여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이라는 책을 썼는데 대중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은 책이다.

▲ 고정휴의 저서
  • 고정휴, 『이승만과 한국독립운동』 (학술서적)
고정휴의 이 책은 이승만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차분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서술한 책이다. 3.1 운동 시기, 한성정부 시기 이승만의 행적, 이승만의 구미위원부 조직과 활동, 이승만의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이승만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외교활동 등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승만과 구미위원부, 이승만의 독립운동을 알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봐야할 책이다. 이 밖에도 고정휴는 이승만의 독립운동활동과 사상에 대해서 상당한 연구를 남겼다.

▲ 오영섭의 연구
  • 오영섭, 「상해 임정내 이승만 통신원들의 활동」,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52집(2007) (학술논문)
  • 오영섭, 「이승만의 『청일전기』 번역·간행과 자주독립론」, 『한국사학사학보』 22(2010) (학술논문)
  • 오영섭, 「1910-1920년대 태평양잡지에 나타난 이승만의 정치사상」,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70집(2012) (학술논문)
  • 오영섭, 「대한민국임시정부 초기 위임통치 청원논쟁」,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1집(2012) (학술논문)
  • 오영섭, 「이승만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통치구상」,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61집(2009) (학술논문)
  • 오영섭, 「대한민국임시정부 두 대통령 이승만과 박은식의 관계」, 『숭실사학』 제32집(2014) (학술논문)
  • 오영섭, 「이승만의 상해 체류 활동」,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91집(2017) (학술논문)
오영섭은 이승만 연구의 권위자 유영익의 제자이다. 이승만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 및 자료정리 및 번역출간 등을 수행해왔다. 이승만에 대해서 단독저서로 낸 책은 아직까지 없지만 공저 및 학술지 논문을 통해서 이승만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해오고 있다.

▲ 이정식의 저서
  • 이정식, 『이승만의 청년시절』 (학술서적)
  • 이정식,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 (학술서적)
이정식 경희대 교수는 비교적 이승만을 중립적 시각에서 연구했으며, 특히 《이승만의 청년시절》에선 올리버가 소장한 이승만 관련 문건을 토대로 저술했다. 또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에선 서재필-김옥균-박영효-박지원 등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했다.

▲ 정병준의 저서
  • 정병준, 『우남 이승만 연구』 (학술서적)
정병준이 출판한 "우남 이승만 연구"도 일독할 만하다. 정병준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여운형과 좌우합작운동으로 석사 학위를, 이승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전쟁과 제1공화국 시기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출판사 '역사비평사'에서 한국학연구총서의 일환으로 2005년 출간한 이 책은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제1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이승만의 행적을 담고 있다.

손세일의 저서
  • 손세일, 『이승만과 김구』 (전 7권) (교양서)
손세일은 학자 출신은 아니지만[39]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비교 연구에 오랫동안 천착하며 이 책 역시도 선행 연구 및 자료들을 소화해낸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심인물이자 한국독립운동사의 두 거목인 이승만과 김구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1969년 신동아에서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글을 처음으로 투고한 이래, 이후 월간조선 연재활동 및 단행본 출간을 통해서 이승만과 김구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 김명섭의 연구
  • 김명섭·김석원, 「김구와 이승만의 지정인식 :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제43집 제3호(2009). (학술논문)
  • 김명섭·김석원, 「독립의 지정학: 대한제국(1897-1910) 시기 이승만의 지정학적 인식과 개신교」, 『한국정치학회보』 제42집 제4호(2008). (학술논문)
  • 김명섭·김주희, 「20세기 초 동북아 반일(反日) 민족지도자의 반공(反共): 이승만과 장개석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34집 2호(2013). (학술논문)
  • 김명섭·김정민, 「워싱턴회의 시기 이승만의 외교활동과 신문 스크랩, 1921-1922」, 『한국정치학회보』 제51집 제2호(2017). (학술논문)
  • 유지윤·김명섭, 「프레데릭 B. 해리스의 한국관련 활동: 이승만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40집 1호(2018). (학술논문)
  • 김정민·김명섭, 「만주사변 발발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연맹외교: 이승만의 외교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제53집 제1호(2019). (학술논문)
  • 한서영·김명섭, 「미국 유학 시기 이승만 강연활동의 양상과 함의」, 『국제정치논총』 제59집 2호(2019). (학술논문)
  • 김명섭, 「『독립졍신』에 대한 서지학적 재조명」,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41집 1호(2019). (학술논문)
  • 김명섭·박재원, 「제1차 세계대전 전후 하와이 대한인 독립운동: 이승만과 박용만을 중심으로」, 『국제정치논총』 제61집 4호(2021). (학술논문)
  • 김명섭·김민식, 「전쟁과 연설 : 6ㆍ25전쟁 시기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제56집 제1호(2022). (학술논문)
김명섭은 한국정치외교사 연구자로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제자들과 함께 이승만에 대한 많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아직 이승만에 관한 단행본을 출간하지는 않았지만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독립노선, 외교활동과 연설, 지정인식, 저술 등에 대한 광범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서중석의 저서
  • 서중석,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학술서적)
  • 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 (교양서)
서중석은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학자로 이승만을 가장 강도높게 비판하는 인물이다. 굳이 정치적 성향을 들이댄다면 좌파적 민족주의 정도로 분류된다. 다만, 본래 이승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아니며, 이승만에 관한 연구로는 해방 이후로 국한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유영익, 고정휴, 오영섭, 정병준 등의 학자들과 달리 이승만과 관련된 1차자료, 미국자료 등에 대해서 방대하게 고증, 분석하지는 않았으며, 개인적인 선입관이 많이 투영되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 공저
  • 송복 외, 『저서를 통해 본 이승만의 정치사상과 현실인식』 (학술서적)
  • 유영익 외, 『이승만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학술서적)
  • 김영호 외, 『이승만과 6.25전쟁』 (학술서적)
  • 최상오, 홍선표 외,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 (학술서적)
  • 유영익 외, 『이승만 연구』 (학술서적)
  • 오영섭, 홍선표 외, 『이승만과 하와이 한인사회』 (학술서적)
  • 이주영 외, 『이승만 연구의 흐름과 쟁점』 (학술서적)

11.3. 비전문가들

▲신화에 가린 인물: 이승만(원제: Syngman Rhee: the man behind the myth): 원서
이승만의 정치고문이던 로버트 올리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교수가 1954년에 미국에서 낸 책으로, 해당 저서는 관변 입장을 제외한 이승만 옹호론의 뿌리이자 선구격인 책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에 황정일이 번역하여 건국대학교 출판부에서 냈다.

▲망명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 서적정보
김인서 목사가 1963년에 쓴 책. 2016년에 비봉출판사에서 다시 출판했다.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전 2권)
언론인 이한우가 1995년 신정부터 12월 26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글을 묶은 도서로, 연재 시기가 광복 50주년을 맞는 해인지라 '이승만 신드롬'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학계 등지에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승만 깨기:이승만에 씌어진 7가지 누명 서적정보
저자는 남정욱 바른사회시민회의 운영위원, 류석춘[40] 연세대 교수. <우남 이승만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라이트 인사들이 2015년 11월 출판하였다. 한강철교 폭파와 같은 민감한 주제도 포함하고 있다.

▲독부 이승만 평전 -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 서적정보
저자는 참여정부 시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고 오마이뉴스에 정치,역사 글을 연재하고 있는 언론인 김삼웅. 2012년 9월 출판. 이승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책으로 이승만의 과오인 친일파 등용이나, 독립운동 내부의 분열, 제주 4.3이나 여순사건 그리고 보도연맹 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과 이승만 독재에 대해 주로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 외 김삼웅이 쓴 인물 평전이나 한국현대사를 서술하는 책에서는 이승만 개인과 정권이 비슷하게 비판받고 있다. 역사전공자가 아님에도 2020년 이후로만 50명이 넘는 근현대사 인물에 대한 평전을 썼다. 2020년에는 독부 이승만 평전 개정판이 나왔다. 2020년 개정판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서적정보
저자는 조선일보 출신의 언론인 김용삼.[41] 2014년 6월 출판. 이승만의 국가건설 과정에 대한 책이다.

▲이승만의 대미투쟁 (원제: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 1942-1960)
저자는 이승만의 정치고문이었던 로버트 올리버. 상/하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승만과 주고받은 서한, 전보 등 원사료 중심으로 쓰여져 있으며 이승만이 미국의 정책입안자들과 벌여온 투쟁을 보여준다.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서적정보
저자는 하와이 한인 이민사에 대해 중점적으로 책을 쓰는 이덕희. 2015년 7월 출판. 이승만의 하와이에서의 활동을 추적해 연구한 책이다.

▲자존심을 지킨 한 조선인의 회상 서적정보
저자는 해방정국 시기 돈암장 시절 이승만의 공보비서를 역임했던 최기일. 책 자체는 전반적으로 본인의 일생을 회고하는 회고록이지만 그동안 잘 알려져오지 않았던 이승만의 개인적인 면모들에 대해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어 이승만 연구자들이 자주 참고하는 서적이기도 하다. 돈암장 시절 이승만을 비롯하여 주변 측근들이었던 윤치영, 임영신, 프란체스카 도너의 면모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저자 최기일의 경우 1948년 정부수립 전에 이승만 곁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가서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고[42], 훗날 김대중 미국으로 망명갔을 때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고[43], 계훈제, 함석헌 등과도 교류하면서 재미 인사로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기여하였다. 여담으로 김준엽 장준하의 유년시절 친구이기도 해서 장준하의 수기 <돌베개>에도 막판에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44]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 이야기 서적정보
이승만을 좋아하는 한 인물이 낸 청소년용 위인전이다. 2020년 6월 에 출판.

11.4. 다큐멘터리



▲한국사전: 이승만 2부작 (2008. 08. 30 ~ 09. 06. KBS1)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대통령 이승만 (2011. 09. 28 ~ 30. KBS1)
총 3부작으로 구성돼 있으며, 김정수 CP가 기획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1부는 '개화와 독립', 2부는 '건국과 분단', 3부는 '6.25와 4.19'로 각각 구성돼 있다. 이 프로그램에선 이승만이 미국과의 원조 협상에서 기선제압식으로 성사시켜 외교 주도권도 양보 못할 사람으로 그려 친미주의자 프레임을 벗었고, 원자력의 필요성을 제창하고 과학자를 키운다거나 의무교육을 확대시킨 점, 반공포로 석방을 지시한 점 등의 공적을 많이 다뤘다. 물론 손세일이나 유영익 등과 같은 이승만에 긍정적인 인물들 중심으로 인터뷰가 나오지만,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김삼웅이나 주진오, 브루스 커밍스 그리고 김동춘 등의 인물들의 입장과 인터뷰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부각됐는데, KBS 2노조 측이 '독재자 미화'라며 제작을 반대한 바 있으며, PD저널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45] 그 1부에선 임시정부 위임통치 파문에 대해 사실만 얘기했지 파장은 안 다뤘고, 2~3부에선 친일청산 실패를 '인력 부족' 탓이라 한다거나 거창 양민학살 사건을 '훈련이 안 된 병사들이 한 짓'이라 하고, 4.3 사건은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만 최악의 행적이라 할 수 있는 보도연맹 학살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4.19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책임을 거론하는 대신 교수 시국선언 후 이승만이 직접 사태를 파악해 병원에서 부상자를 위로하는 모습도 내보냈다. 새로운 사실 전달마저도 이승만이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선물인 나전칠기를 전달한 얘기 뿐이다.

2013년에는 청미디어를 통해 단행본으로 나왔다.


▲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2012.11.29. 민족문제연구소)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에서 분석한 다큐멘터리다. 친일파 문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는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했으며, 서중석, 정병준, 주진오, 이만열 등의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들의 인터뷰와 미국 측 근거자료를 토대로 만들어 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승만의 독립운동 시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 후속작은 박정희 편인 프레이저 보고서와 함께 나오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 시절의 이승만에 대해 비판의 강도가 꽤나 높다 보니, 한국 정치사회에서 많은 공격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악의적인 편집으로 객관성을 훼손했다며 고등법원에서 중징계 제재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2019년 대법에서 파기환송되었다.[46]

12. 대중매체에서

12.1. 단독 작품

  • 잘돼갑니다
    1964년 DBS에서 방송했던 라디오 드라마로, 총 120부작에 극본은 한운사가 맡았으며 이승만 역은 성우 구민, 류기현 조병옥, 고은정이 영부인 프란체스카, 주상현이 이발사 김광제, 이창환이 해설을 각각 맡았다. 이 작품은 이승만의 전속 이발사 김광제의 시점을 토대로 자유당 정권 말기 6년간의 인간과 권력, 권력의 무상함 등을 중점적으로 다뤘고, 훗날 MBC TV드라마 <박마리아>와 <제1공화국> 등 정치드라마 장르의 토대를 구축한 역사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라디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968년에는 아세아필림[47] 조긍하를 감독으로 맡겨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했는데, 이기붕 역은 장민호, 조병옥 역은 박노식, 최인규 역은 허장강, 박마리아 역은 김지미, 이발사 역은 김희갑 등이 각각 맡았다. 당시 일반인 최용한이 자신과 똑같은 외모를 지닌 이승만 대통령 역을 맡았으나 얼굴이 제대로 안 나왔다. 초기에는 공보부로부터 데모 장면 등 일부 수정 지시를 받았긴 해도 정부는 청와대를 촬영 장소로 제공하고 이기붕 자살 장면까지 실제 이기붕 자택에서 찍게 하는 등으로 배려하면서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영화 개봉 하루 전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로부터 서울 국도극장에 걸린 간판이 뜯어졌고, 이에 김상윤은 문화공보부에 수차례 상영 허가 요청을 한 후 문공부 측의 지시에 따라 문제가 된 내용들을 개작했지만 1971년 문공부 측은 영화진흥공사로 하여금 융자금 540만원을 주는 한편, 필름을 강제로 압수하면서 상영이 아예 성사되지 못했다.
    결국 공동제작자였던 김상윤은 늘어나는 빚과 정신적 충격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1975년에 뇌출혈 투병 중 숨졌고, 차남도 1979년 4월 청와대에 호소하려다 경비경찰에게 구타당해 정신이상을 앓는 등 가정이 풍비박산나기도 했다. 이에 아내 홍정순 등 유가족들이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10여 년간 호소한 끝에 1987년 6.29 선언 뒤 이듬해 상영 허가를 얻어 1989년 9월에야 합동영화가 배급을 맡은 뒤, 서울 명보극장에서 추석 특선 프로로 처음 개봉됐지만, 이미 관심이 사라져 흥행을 못했다. 2000년에 유가족이 이 영화 제작행위와 관련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민보상위)'에 민주화운동 보상금 신청을 했으나 2001년과 2007년에 각각 2번 기각됐다가, 2013년에야 직권으로 인정받았다. 다만 보상은 2013년에 법원에서 손해배상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해당 영화는 2016년 12월 20일에 TBS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 2002년 오마이뉴스 기사, 2012년 일요신문 기사)
  • 2014년에는 코미디언 출신 영화제작자 서세원 전광훈 등의 후원을 받아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만드려고 했으나, 정치 논란 등에 시달리다 2015년에 중단됐다.

12.2. 담당 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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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물 역사상 최초로 이승만 역을 맡은 배우는 1959년 신상옥 감독 작품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에서 젊은 시절의 이승만 역을 맡은 김진규다. 1959년작 <한말풍운과 민충정공>에선 방수일이 연기했다.
  • 1968년에 만들어진 영화 <잘 돼 갑니다>와 1973년작 <광복 20년 백범 김구>에서 이승만과 외모가 비슷한 일반인 최용한이 연기했다.
  • 1979년작 KBS-TV <일요사극 맥> '벼랑 위의 파수병(2부작)'에선 배우 민지환이 연기했으며, 1998년작 SBS <삼김시대>에서도 같은 배역을 맡았다.
  • 역대 이승만 전문 배우 중 배역을 잘 소화한 배우로는 역시 최불암이 첫손에 꼽힌다.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 처음 맡은 이래, 거의 드라마 자체의 상징처럼 되었으며 1982년 8.15 특집드라마 <한: 단재 신채호 일대기>와 1987년작 <산하>, 1989년 <제2공화국> 및 <독도수비대>, 1990년 8.15 특집극 <반민특위>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나올 정도였다. 그 특유의 스타일은 그 이후 이승만을 맡게 된 후배 배우들이 이승만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최불암을 흉내냈다고 일컬어질 정도다.
  • 1982년 KBS1 8.15 특집드라마 <그 여름의 이틀>에서는 성우 이강룡이 연기했다.
  • 1984년작 KBS1 다큐드라마 <휴전 6.25>에서는 배우 출신인 양동군 교수가 연기했는데, 목소리 대역은 성우 구민이지만 영어 대사는 본인 목소리다.
  • 1985년 KBS 광복 40주년 대하드라마 <새벽>에선 배우 신구가 연기했는데, 1990년 실록대하드라마 < 여명의 그날>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나왔다.
  • 1985년 KBS1 국군의 날 특집드라마 <전웅실록: 오성장군 김홍일>에선 배우 최정훈이 연기했는데, 1993년 <다큐멘터리극장>과 2004년 EBS 드라마 <명동백작>에서도 같은 배역으로 등장했다.
  • 1989년작 KBS2 미니시리즈 <무풍지대>에선 배우 하대경이 연기했다.
  • 1989년 MBC 특집드라마 <백범일지>에선 배우 김인태가 연기했다.
  • 1994년작 뮤지컬 <4월 하늘 어디에>에서는 배우 김진해가 연기했다.
  • 1995년작 KBS 광복 50주년 기획드라마 < 김구>에선 배우 정욱이 연기했다.
  • 2003년 SBS 대하드라마 < 야인시대>에선 배우 권성덕이 연기했는데, 그는 이듬해 MBC 특별기획 드라마 < 영웅시대>, 2006년 KBS 대하드라마 < 서울 1945>에도 같은 배역으로 나왔다. 특히 <야인시대>에선 종영 후 2010년대 들어 인터넷상에서 밈화돼 있고( 이승만(야인시대) 문서 참고), <서울 1945>에선 장택상과 함께 여운형 암살의 배후로 그려졌는데, 방영 직후 양자 이인수와 장택상의 3녀 장병혜 등 유족들이 담당 PD 윤창범과 이한호 작가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2010년에 대법원은 '이승만이 여운형의 암살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장면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007도8411)
  • 성우들 중 1964년작 DBS 드라마 <잘 돼 갑니다>와 1967년작 TBC 라디오 드라마 <광복 20년>에서 이승만 역을 깔끔히 소화해낸 구민이 알려져 있으며, 방송 당시 청취자들은 이승만 목소리가 실제 육성인지 구민의 연기인지 점심내기를 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MBC <격동 50년>의 박일도 선배 구민을 능가할 정도로 맛깔스럽게 대사를 구사했다. 동시에 이승만의 능구렁이같은 면도 세세하게 표현하여 많은 호평을 받았다. 미중년을 많이 맡았던 박일의 또 다른 면을 보여 준 연기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원조 이승만 전문 성우 구민은 2001년에 미국으로 이민갔고, 박일마저 2019년 7월 31일 돌연사했다.

12.3. 대체역사물

구한말과 독립운동기를 다룬 대체역사물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주로 유능하지만 음흉하고 정치적이며 권력 지향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명과 암이 뚜렷한 인물이다보니 댓글란에서는 그에 대한 평가를 두고 항상 병림픽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능구렁이 같은 거물 정치인'이라는 이승만의 대중적 이미지 자체가 소설에서 써먹기 좋은 소재라서 주인공의 협력자나 라이벌로 많이 등장한다.

13. 각종 타이틀

14. 관련 단체

1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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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2월 19일 [2] # [3] 대한민국 이북5도위원회 기준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대경리 [4] 국문으로 된 한국 정부의 공문서에는 우측에 있는 한문 휘호로 서명하였고, 보고서에는 '晩'자를 흘려써서 서명하였다. [5] 양녕대군파 16대손, 시조 40세손 승(承)○ 항렬. [6] 두 형이 이른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이승만이 사실상 장남이었다. [7] 음죽 박씨 박춘겸(朴春兼)의 딸이다. 출처: 《전주이씨족보》 이승만편. [8] 1934년 10월 8일 뉴욕 몽클레어 호텔에서 오랜 친구인 윤병구 목사와 존 헤인즈 홈즈 박사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고, 1965년 하와이에서 임종하는 순간까지 평생을 함께했다. [9] 아명은 태산. 박승선 사이에서 둔 그의 유일한 친아들이었으나 10살 때 디프테리아로 사망했다. [10] 족보에는 운남(雲南)이라고 써져 있다. [11] 퇴직 대신 이건하가 운영하는 서당이다. [12]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이근수가 운영하는 서당으로, 한성부 용산에 위치해 있었다. [13] 배재고등학교. [14] 서재필이 세운 최초의 학생 단체이다. [15] 본래 1908년 전 과정을 수료했으나 사회적 이슈들로 미국인 교수들에게 냉대를 받아 석사 학위 수여가 연기되었다. [16] 그가 다닐 당시 총장이 나중에 미국 제28대 대통령이 되는 우드로 윌슨이었다.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아 한국인 최초의 박사 학위 보유자가 되었다. 그의 박사 논문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이며 영문판은 인터넷에서 PDF로 다운받아 볼 수 있고 연세대 출판부에서 나온 한국어 번역판도 있다.
[17] 한인중앙학원으로 개칭 [18] 국무총리 외무부장관 [19] 일명 구미위원부 [20] 이승만은 1912년 집필한 '청년 이승만 자서전'에서 배재학당을 다니던 중 서재필의 영향을 받아 아시아주의에 경도되었고 자신을 비롯한 배재학당 출신이 박영효계 친일파와 손잡은 것을 '불행한 연결'이라고 표현하며 독립협회 활동의 과오를 인정하였다. 이승만은 출옥한 1904년을 기점으로 일본관이 지일에서 반일로 바뀌며 민영환의 대미 밀사로 활동한다. # # [21] 다만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데는 군 인사에서의 소외, 진급 지체 등 개인적인 불만과 군의 파벌 및 비리에 대한 반감, 장면 정권에 대한 비판 의식 등이 함께 작용했고, 그 바탕에는 만주군 시절의 경험 군국주의적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이른바 5.16 군사정변의 주체들이 내세우는 '국가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은 상당 부분 언어적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그들의 주장대로 무능한 민주당 정권에 들고일어난 것이라 해석한다 하여도, 5.16 군사정변이 합법적인 민주주의 정부를 전복하고 무력으로 권력을 탈취한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라는 사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22] 실제로 박정희의 가족 중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와 밀접하게 연관된 형이 있었는데, 비록 자신이 일본군에 있었긴 했으나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고 냅뒀으며 오히려 임시정부의 실체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했다. 임시정부도 박정희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이 일제에게서 독립시키고자 정부를 열었으나 정작 독립군을 이끌고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당파 싸움으로 여러 번 무산되었으며 결국에는 중일전쟁으로 여러 번 옮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23] 임시정부시절까지 포함 하면 이승만 대통령이 햇수로 18년, 박정희 대통령이 16년으로 대통령직 자체를 역임해 본 사람 중에는 재임기간이 가장 길긴 하다 [24] 어렸을 때 서울 우수현 남쪽에서 자라서 호를 '우남'이라 지었다. [25] 당시 행정구역 기준 동대문구 갑. 관할 모든 동들이 서울 확장으로 인한 분구와 구간 경계 조정을 거치면서 다른 구로 이관 되었다. 현재 기준 서울 종로구 창신동, 숭인동 성북구 돈암동, 성북동. [26] 1948.07.20. 초대 대통령 당선 및 취임에 따라 사퇴. [27] 제헌 국회에서의 간접 선거. [28] 역대 직선제 대선 당선자 중 최고 득표율.
역대 직선제 대선 당선자 중 2위와 최고 득표율 차 당선. (63.2%)
[29] 4.19 혁명으로 하야 및 당선 무효. 이승만의 득표율이 100%인 것은 당시 상대 후보였던 조병옥이 병사하면서 이승만이 단독 후보가 됐기 때문이다. [30]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와 신설 합당 [31]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창궐 이후로는 이 말을 패러디해 역으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로 패러디되기도 한다. 2009년 1박 2일 혹한기 특집에서 재발굴된 이후 꾸준히 유행어는 아니어도 쓰인 문장이었다. [32] <38선은 없어졌다. 휴전 결사반대. 38선 대신 압록강을 달라. 38선 대신 두만강을 달라.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여러개 구호를 번갈아 들면서 휴전협정이 조인되기까지 몇 달 동안 데모를 해야 했다. 이때 학생들만이 아니라 전국민이 결사적인 데모를 하였다. [33] 조선인들의 마음을 결박하고 있는 것 중 하나로 여전히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양반은 조상이 이름났다는 이유로 능력이 없어도 자리를 차지하고 비천한 출신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상놈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니 수많은 잠재적 인재들이 썪고 있음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34] 당시 표현으로는 호열랄(虎烈刺). 헌데 언젠가부터 한자 발음이 와전되어 호열자라고도 불렸다. [35] 조선이라는 나라를 에, 지배층을 선원에, 백성들을 선객에 비유하며 무기력하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백성들이 자기 일이라는 주체적 의식을 가지고 깨어날 것을 외치고 있다. [36] 다만 미국에서 철강 산업에 태클을 건 데다가 보유 기술도 없던 국면이라 전쟁 후에 철강 산업을 진행하지는 못 했다. [37] 출처: 김정렬 국방장관의 회고록 "항공의 경종" [38] 이인수가 기증한 문서군들은 오늘날 연세대학교 이승만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들이 많다. [39] 손세일은 신동아 및 사상계 편집장 등을 지낸 언론인으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래 주로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40] 연세대 사회학 교수.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41] 황장엽 망명사건에 대한 특종 보도로 대한민국 언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2] 공교롭게도 본인의 상사 이승만이 재학했던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하여 최초의 한국인 학부생이 되기도 했고, 이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43] 단순히 지지를 한게 아니라 김대중에게 하버드 대학교 인사들과 미국 상원의원들을 소개시켜주는 등 실질적으로 김대중에게 미국 정계 인맥을 쌓아주는데 기여를 하였다. [44] 해방 이후 장준하 김구의 비서, 최기일은 이승만의 비서를 역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이 힘을 합쳐서 김구 이승만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 우익진영에 더할니위 없이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장준하의 수기 <돌베개>에 나온다. 하지만 신탁통치 문제로 정세가 점점 악화되어가서 결국 이 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최기일은 아예 정부수립 전에 이승만 곁을 떠나서 미국으로 유학가버렸다. 그래도 미국에 체류하면서 가끔 장준하의 잡지 사상계에 글을 개재하기도 했다. [45] 아무래도 2부가 '건국과 분단'이라는 제목을 쓰다보니 그런 듯 하다. [46]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다소 이승만에 대한 '밈(Meme)'적인 표현들도 있다. 그것이 악의적인 편집으로 반대측에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47] 영화제작자 이지룡이 이끌던 제작사로, 1972년 영화사 법정등록요건 및 제작실적 미달로 등록 취소 후 폐업. [48] 대한제국의 경우 존속기간이 짦아서 대한제국 시기에 출생한 대통령은 한명도 없다. [49] # # # # # # 단, 이는 《 고종실록》을 《조선왕조실록》으로 인정할 경우에 한한다. 조선이 1910년에 멸망했기 때문에 조선이 다시 부활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실릴 대통령은 전혀 없다. 참고로 거의 다 독립협회 관련해서 처벌받은 내용이다. [50]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한정한다면 가장 최연소 대통령은 1963년 취임한 박정희(1917년생)이며, 다시 민주화 이후로 취임한 최연소 대통령은 2003년 취임한 노무현(1946년생)이다. [51] 정부 수립 이후로는 박근혜. [A] 2022년 [53] 윤보선 박정희에게, 최규하 전두환에게 각각 대통령직을 강탈당하였고, 박정희는 아예 임기 중에 암살당했고, 박근혜는 임기 중 탄핵을 당했다. [A] [55] 현재 가장 장수한 대통령은 1990년 92세로 사망한 윤보선이다. 두 번째는 2021년 90세(+10개월)로 사망한 전두환이다. [A] [A] [A] [59] 김대중에게도 김소희라는 딸이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다. [A] [61] 김대중과 윤보선도 재혼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경우는 이혼이 아닌 사별 후 재혼이다. [62]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황해도 출신은 물론 이북 출신 대통령은 당분간 없을 듯 하다. 20대 국회에서 이북 출신인 사람은 김진표만이 유일했으나, 2020년 4.15 총선에서 탈북자 출신 태영호 지성호가 당선되면서 21대 국회에서는 김진표, 태영호, 지성호 3명이 이북 출신 국회의원이다. 새터민 출신이 아니고서는 깨지기 어려운 기록. 다만, 본적지가 이북인 대통령은 존재한다. 19대 문재인은 양친 모두 이북 출신이다. [63] 이회창도 황해도 출신이어서 만약 당선됐다면 두 번째 이북 출신 대통령이었겠지만, 2번 다 물먹으면서 결국 이승만이 유일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2022년 기준으로 대권을 도전하는 후보들도 최소 1950년대 이후 출생이니 앞으로는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나올 일은 없을 듯 하다. [64] 전체의 사례로 보면 노무현이 가장 짧다(1년 3개월). 박정희는 임기 도중 암살당했으니 제외. [65] 이 타이틀은 이승만 이후로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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