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03 10:52:49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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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삼성 그룹 삼성스포츠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2군
주요 인물 구단주·대표이사 원기찬단장 홍준학감독 허삼영2군 감독 박진만주장 김헌곤
경기장 1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2군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스프링캠프 온나손 아카마 볼파크재활 삼성 트레이닝 센터이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주요 문서 선수단 등번호 유니폼마스코트 블레오 사건·사고 왕조 암흑기
관련 문서 삼적화 여름성 이마양 최채박 조원수박차 JOKKA 삼나쌩 클럽 클래식 시리즈 싸대기 매치 88고속도로 씨리즈
영구 결번 10 양준혁22 이만수36 이승엽
최종 우승
★ ★ ★ ★ ★ ★ ★ ★
1985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현재 시즌 삼성 라이온즈/2022년
팬덤 정보 응원가( · 선수)| 삼갤 삼튜브 사자 사랑방 사자후 김상헌(응원단장) 허니크루 대구아재
지역 연고 경북고 대구고 상원고 포철고 경주고 강릉고 설악고 도개고 예일메디텍고
틀 문서
역대 시즌 역대 감독 역대 주장 역대 1차지명 응원단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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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창단 1982년 2월 3일([age(1982-02-03)]주년)
법인 설립 1982년 3월 5일([age(1982-03-05)]주년)
법인명 ㈜삼성라이온즈
정식 명칭 파일:삼성 라이온즈 국문 로고타입.svg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구단 사무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야구전설로 1 ( 연호동)[1][2]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14 ( 역삼동)[3][4]
구단명 삼성 라이온즈 (1982~)
모기업 파일:제일기획 로고.svg [5]
연고지 대구직할시
파일:대구광역시 휘장.svg 대구광역시 (1982~)
경상북도 (1982~1999)[6]
구단주 원기찬
대표이사 원기찬[7] | 정홍구[8]
단장 홍준학
감독 70 허삼영
주장 34 김헌곤 | 63 피렐라 (임시)
영구결번 10 양준혁 파일:sl10.png 22 이만수 파일:sl22.png 36 이승엽 파일:sl36.png
홈구장 제1구장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1982~2015)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2016~ / 29,000석)[9]
제2구장
포항 야구장 (2012~ / 12,000석)
2군 구장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1995~)
마스코트 파일:블레오 엠블럼.svg
블레오
킷 스폰서 파일:언더아머 로고.svg [10][11]
워드 마크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svg
링크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svg |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svg 스토어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 파일:레딧 아이콘.svg
공식
애플리케이션
파일:App Store 아이콘.svg | 파일:Google Play 아이콘.svg
★ ★ ★ ★ ★ ★ ★ ★
최종 우승 (8회)
파일:삼성 라이온즈 V1.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V2.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V3.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V4.svg
1985년 2002년 2005년 2006년
파일:삼성 라이온즈 V5.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V6.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V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V8.svg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9회)[12][13]
단일 리그 2001년,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전·후기
리그
1982년 후기, 1984년 전기, 1985년 통합[14],
1986년 후기, 1987년 통합[15]
양대 리그 1999년 매직
아시아
시리즈
2011년
포스트시즌 진출 (29회)[16]
한국시리즈 1982년, 1984년, 1986년, 1987년, 1990년, 1993년, 2001년,
2002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플레이오프 1986년, 1988년, 1990년, 1991년, 1993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4년, 2008년, 2010년, 2021년
준플레이오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1997년, 2000년, 2003년,
2007년, 2008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최고 승률 .706
1985년 110경기 77승 32패 1무
최저 승률 .396
2017년 144경기 55승 84패 5무
최다 승 88승
2015년 144경기 88승 56패
최다 패 84패
2017년 144경기 55승 84패 5무
최다 관중 851,417명
2016년[17]
최소 관중 177,774명
1988년[18][코로나19]
최고 계약 5년 120억 원
2022년 구자욱
}}}}}}}}} ||

1. 개요2. 상세
2.1. 지배구조
3. 구단 디자인
3.1. 엠블럼/로고/심볼3.2. 유니폼
4. 홈구장5. 역사6. 팀 컬러7. 팬
7.1. 인기7.2. 팬덤 성향
8. 응원
8.1. 응원단8.2. 응원가
9. 라이벌10. 역대 선수 및 인물
10.1. 영구결번10.2. 레전드10.3. 역대 구단주10.4. 역대 사장(대표이사)10.5. 역대 단장10.6. 역대 감독10.7. 역대 주장10.8. 역대 선수 명단10.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10.10. 역대 선수단 등번호
11. 역대 기록
11.1. 팀 성적
11.1.1. 암흑기11.1.2. 팀 전력11.1.3.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11.2. 개인 성적
11.2.1. 통산11.2.2. 단일시즌11.2.3. 타이틀 홀더
11.2.3.1. 타자11.2.3.2. 투수
12. 지역 연고 학교
12.1. 과거 지역 연고 학교
13. 사건사고14. 특이 사항15. 관련 문서1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oneteamonebody.jpg
'''{{{#ffffff ONE TEAM ONE BODY'''
구단 메인 캐치프레이즈

KBO 리그 소속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대구광역시다. 홈구장은 수성구 연호동에 위치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다.

KBO 리그 원년부터 연고지·팀명·모기업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져온 두 팀[20] 중 하나이며,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17회), 정규시즌 최다 우승(9회)[21], 정규시즌 최다 연속 우승(5년 연속, 2011~2015),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우승(4년 연속, 2011~2014),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 진출(12년 연속, 1997~2008)[22] 등의 대기록들을 보유한 명문 구단이다.

2016 시즌부터 9위로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이후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등 암흑기를 보냈으나, 2021 시즌 다시 반등하며 1위와 승차없는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하며 2015년 이후 6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성공해 2016년 라이온즈 파크 이전 이후 길었던 암흑기를 탈출했다.

2. 상세

모기업이 삼성인 팀답게 KBO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0년부터 KBO에서 메인 스폰서를 도입했는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증권,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삼성전자에서 메인 스폰서를 맡아왔다. 팀의 상징색은 파란색 & 빨강색-하늘색 (연파란색, 1984년부터 1994년까지)[23]-파란색 (1995년부터 2015년까지)[24]-파란색 & 빨간색 (2016년부터). 팀의 마스코트는 블레오, 레니, 핑크레니, 라온이다. 합쳐서 블레오 패밀리라고 부른다.

제일기획 산하로 이관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자금 지원이 줄었다는 말들이 있는데 돈성 시절처럼 리그 내 넘사벽급으로 펑펑 써대진 못 하니 과거보다 줄은 건 맞지만 2017~2019년까지 3년간 FA 계약 총액만 200억 원 넘게 투자했으며[25], 구단 운영비도 10구단 중 다섯 번째로 많이 지출한다. ## 상술했지만 제일기획에서 운영비 전액을 대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경영 방침이 바뀐 것이다.

2.1. 지배구조

삼성스포츠단 중 최초의 독립 법인으로 출범했다. 야구단이 독립법인화 된 후 축구단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도 법인회사로 전환했다.[27] 제일기획에 운영권이 넘어가기 전의 삼성 라이온즈는 삼성 계열사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창업주 이병철의 유언대로 특정 한 회사가 독점하지 않고 범삼성가가 지분을 각각 나눠 가진다.

제일기획 인수 전 삼성 라이온즈 지분은 삼성전자 27.5% + 삼성SDI 15% + CJ제일제당 15% + 신세계 14.5% + 삼성전기 12.5% + 삼성물산 7.5% + 제일기획 3.0% + 이건희 2.5% + 제일모직(구 삼성에버랜드) 2.0%로 분산되어 있었다. 삼성가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상징적 의미로 삼성 라이온즈는 나눠갖지 말고 다 같이 공동 운영하게 하려 했다고 한다. CJ그룹, 신세계그룹까지 포함한 범삼성가가 모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셈. 2021년 신세계그룹 이마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신세계의 삼성 라이온즈 지분 소유 여부도 논란이 됐는데, KBO 규약에 따르면 한 구단이 다른 구단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O는 이마트와 신세계가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이에 문제가 없다고 유권 해석을 내렸고, 신세계도 삼성 라이온즈 지분을 매각치 않고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관련기사[28]

2015년 삼성의 스포츠단 운영 전략 변화의 일환으로 삼성스포츠단은 국내 광고 업계 1위이자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으로 일괄 이전되었다. 다만 제일기획은 구단의 운영비를 전액 지출하는 모기업이 아니며, 단지 운영을 전담으로 하는 것이고 구단의 운영비는 삼성 내의 전자나 물산 등 다른 계열사에서 지원하는 형식이다.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 지분 67.5%(12만 9,000주)[29]를 6억 7천만 원[30]에 사들여, 2016년 1월 1일부로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 ##

제일기획 인수 후에는 제일기획, 신세계, CJ제일제당, 이건희가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이건희가 사망하면서 상속세 납부의 일환으로 이건희가 가지고 있던 2.5%의 지분을 대구광역시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3. 구단 디자인

3.1. 엠블럼/로고/심볼

삼성 라이온즈의 역대 엠블럼 변천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9).svg 파일:samsung_lions_logo_1989.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svg
1982~1988 1989~1994 1995~2007[31] 2008~2021 2022~[32][33]

3.2. 유니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유니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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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홈구장


유일하게 홈구장과 제2 홈구장 모두 2010년대에 지은 구장을 쓰는 구단이다. 자세한 구장의 내용은 문서 참조.

5.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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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팀 컬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팀 컬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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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1. 인기

원년 멤버가 전원 국가대표 출신인 전통적인 강팀이며, 주로 타격 중점적인 이미지의 팀이었기에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해태와 더불어 전국구 인기 구단이었다. #[36][37] 당시 삼성의 홈구장이 그 열악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임에도 불구하고 총 관중수가 60만 명을 넘어선 적이 있을 정도.[38] 프로야구 인기가 절정이었던 2012년에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을 정도인데, 이는 90년대 13,000석이었던 시민야구장 관중석이 고급화로 인해 10,000석으로 줄어들었기 때문.[39] 관련기사. 하지만 IMF가 터지고 축구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떨어진 데다 2003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국민 타자인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나가면서 침체기를 겪게 된다. 이승엽이 떠나자 관중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였다. 그 후에 프로야구의 인기가 다시 부흥했지만 선동열식 불펜 야구에 대한 재미의 반감과,[40] 대구의 청년층 대거 유출 등으로 인해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등 타 구단들에 비해 팬 숫자 증가가 상당히 더디었다. 그러나 2011년 프랜차이즈 스타인 류중일 감독이 취임하고 불펜 야구뿐 아니라 과거의 공격력 회복을 선언했으며 또 좋은 성적을 냄에 따라 과거 라이온즈 팬들을 되돌리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국민 타자 이승엽이 복귀함에 따라 과거 인기를 점차 회복하였다. 2016년 현재는 각종 설문조사나 시청률 등을 종합할 때 KBO 리그 인기 팀 중 하나이다. 3년 연속 갤럽 조사 최고 인기팀

팬층은 대구광역시와 제2연고지인 포항시, 2군 소재지인 경산시[41]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 지역과 인접한 경주, 구미, 칠곡, 영천, 청도 역시 삼성 팬덤이 상당한 편이다. 경북에서 가장 떨어져 있는 도시인 김천, 문경, 상주, 영양, 봉화, 예천 등도 삼성 라이온즈 팬덤이 압도적이라 대구경북 전역이 사실상 삼성 라이온즈의 텃밭이다. 다만 이들 지역은 야구를 하는 고교가 거의 없고 스포츠 불모지라서 삼성 라이온즈 팬덤 비율이 높지는 않다. 삼성전자 모기업의 본사인 삼성전자 수원공장으로 인해 수원시 용인시 및 화성시가 포함된 경기도에도 팬층이 있지만, kt wiz의 창단 이후에는 비율이 반반 정도로 감소했으며 형제 농구단인 서울 삼성 썬더스를 보면 전 연고가 삼성전자 본사로 인해 수원이었지만 2000-2001 KBL 통합우승과 함께 서울연고 입성조건을 충족하면서 서울로 연고이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KBL 대표명가지만 비인기로 비판받고 있다. 반대로,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는 수원의 축구수도 클럽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창단 시절부터 챔피언 등극과 함께 AFC 인기클럽까지 도약했으나 최근 10년대부터 성적부진으로 인해 같이 몰락한 KBL의 농구명가라는 서울 삼성 썬더스와 동급이다. 추가로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 여배구도 있지만 많은 편은 아니다. 이걸 보면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경북의 대구와 포항 그리고 수도의 수원과 서울은 확실하지만 성적부진과 함께 예전같지 않은 게 현실이다.

또한 강원도의 태백이나 경상남도의 거창, 합천, 창녕, 밀양은 비경북권이지만 경북과도 인접한 곳이라 이쪽도 삼성의 팬덤이 상당한 편이다. 물론 밀양같은 경우에는 김해와도 인접해서 롯데나 NC 팬덤도 많은 편이라서 한국에서는 야구 팀 팬덤이 굉장히 갈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파일:갤럽 총정리.jpg
삼성의 팬 숫자를 어림할 때 참고하는 자료로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팬 선호도 조사가 많이 거론된다. 조사 결과. 물론 통계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KBO 리그 인기 팀이라는 자료로 많이 쓰인다. 8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90년대 한국프로야구 인기도 조사.

시청률 또한 항상 최상위권이었던 팀이다. 199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0년대 시청률 TOP경기

2001년까지는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어서 팬이나 구단이나 우승 강박증에 시달리고 선수들은 새가슴 성향을 보였으나, 2000년대에 우승을 여러 번 하면서 이런 점은 고쳤다. 하지만 2000년대는 김응용, 선동열로 대표되는 해태 출신 감독들의 영향으로 골수팬들이 떨어져 나가 인기가 떨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42] 1990년대에는 1995년에 홈 경기 총 관중수 62만 3970명으로 최고점을 찍는 등 내내 50만 명 선을 유지했으나 2000년부터 줄기 시작하더니 김응용 감독 취임 이후 2002년에 24만 7698명을 기록했고 2004년에는 19만 5872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2002년 월드컵 여파와 이를 잇는 한국 최초의 시민 프로구단인 대구 FC에 관심이 더 집중된 것도 이 상황에 한 몫 했다. 이후 내내 30만 명 선을 유지하다 선동열 감독 마지막 해인 2010년에 45만 5246명으로 40만 명 선을 회복했고 류중일 감독 취임 이후에는 45만 1483명의 2013년을 제외하고 50만명 선을 유지하는 등 인기를 회복했다. 출처

과거에는 나이 많은 팬들이 많아, 인터넷 상에서는 다른 팬덤에 밀리는 편이였으나, 2011년부터 삼성 왕조가 시작되면서, 젊은 팬들의 유입도 많아져[43],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대구 시민운동장이다. 하지만, 구장 자체가 너무 작아서 많은 누적 홈 관중 수를 기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대구 구장의 상태는 최악이다 보니 그 때문에 관람을 하지 않는다는 사람이 설문에서 40%를 넘었을 정도다. # 또한 신규 구장이 건설될 경우 관람을 가겠다는 의견 또한 예측 수요는 거의 현재의 2배 수준. # 결정적으로 삼성의 관중동원 미진이 구장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히 2016년 라이온즈 파크가 새로 지어지면서 관중동원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모습이다.[44] 2016년 시즌 초반, 삼성은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두 구장 바로 다음가는 관중동원을 기록했다. 2016년 5월 19일 기준으로 추월하였다. 그리고 시즌 중후반 팀의 부진으로 관중 동원력이 크게 떨어졌으나 처음으로 80만 명을 넘기며 총 85만 1천여명의 관중을 불러모으며 구단에서 예측했던 목표치를 달성했다.

2016년 암흑기의 시작으로 기존 올드 팬층[45]이 굉장히 많이 이탈하였으나[46] 이후 젊은 층의 신규 팬층이 유입되며 팬 수가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길어지는 암흑기로 인하여 팬층은 서서히 감소하고 있었으나 2021년 시즌 마지막에 미끄러져 3위를 하기 전까지 우승까지 노려볼 수 있었던 호성적으로 인하여 올드 팬층이 다시 야구를 찾아보게 되고 신규 팬층도 유입되며 2021시즌 동안에는 사실상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구단이었다. 특히나 2021시즌 올스타 투표에서 2003년에 이어 삼성 선수들이 1위를 독식했고, 네이버 스포츠 중계에서는 1000만 응원 돌파라는 미친 신기록을 세우는 등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2021년 시즌에는 KBO 최다 관중 동원 구단이 되었다.

애초에 2019년 단 한번 한화 이글스에 3위 자리를 빼앗긴 적 말고는 40년이 넘는 KBO 리그역사상 단 한번도 3위 밑으로 내려가본 적 없는 확고한 인기팀이다.원정팀 관중까지 홈 관중으로 집계해서 인기팀인 척 하는 모 팀과는 비교하는게 굴욕일 정도.

또한,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중복투표가 가능한 올스타가 아닌 야구장 티켓 현장 투표만으로 2003년 올스타전에서 2루수 안경현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이 전부 삼성선수로 싹쓸이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현실 기둥

7.2. 팬덤 성향

삼성 팬층은 2016년 라팍 이전을 기점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 팬층간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2016년 이전부터 삼성을 응원했던 팬들은 '명문 구단 팬'이라는 자부심이 은근히 강했다. 특히 왕조를 달리던 2010년대 전반기에는 선민의식 비슷한 게 느껴졌을 정도. 아무래도 모기업이 국내 최대 기업이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삼성 팬을 자칭하는 이들의 경우 다른 구단과의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의견을 많이 표출하곤 했다. 삼성 팬덤 내부에서도 자제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거나 삼성팬도 아닌데 어그로 끈다고 지적했을 정도. 이게 절정을 찍은 게 전성기 때 나왔던 " 삼팬이지만 인정한다". 심지어 팬들이 직접 " 우리는 가을야구 같은 건 직관 안 간다"라는 패기를 시전하는 등 매번 가을야구 가는 게 목표인 타 구단 팬들의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47] 좋은 성적을 가져다준 구단 프런트와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선수협 문제라든가 9, 10구단 문제 등에서도 구단을 옹호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한 같은 영남 구단 아니랄까봐 이따금 롯데 팬 이상의 성깔과 대범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대구아재 문서 참조. 물론 그 시절 전반적인 관중문화가 저런 성향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런 단어가 나올 정도면 그 중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2000년대엔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서 그런지 많이 누그러진 편인데 예전, 특히 전통적으로 콩을 많이 찍은 구단의 특성상 유독 포스트 시즌만 되면 경기마다 팬들이 민감해지고 평소엔 조용하고 사람 좋은 이웃이 가을이 되니까 전투민족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타 지역에 비해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이런 올드 팬들은 대부분 아저씨팬들과 남성팬들이다.[48]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다른 곳같았으면 논란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 사인을 해주기보다는 경기를 이겨라"라는 성향이 짙기에 별 논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라팍 이전하고 성적이 하락하자 팬서비스가 곧 성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정계쪽을 봐도 대경권 연고 구단답게 전국에서도 대경권 사람들에게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국민의힘 정치인들도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매우 많다. 당장 당대표부터가 삼성팬이니 말 다한 셈.

그러나 라팍 이전 및 선수층의 대격변으로 팬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왕조를 지탱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구단이 젊은 팬 및 여성 팬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팬층도 서서히 젊어졌다. 지금 삼성을 지탱하는 선수들, 특히 투수진의 나이는 상당히 젊다. 심지어 팀 연령대가 젊다고 말하는 두산보다도![49] 게다가 강민호, 우규민, 이원석 등 외부수혈이 늘어나면서 덕아웃 분위기도 예전 삼성과는 달라졌다. 반면 올드 팬들은 왕조시절 이후 지속된 주요 선수들의 이적과 구단의 지원 축소,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적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야구에서 멀어졌다.[50] 또한 라팍으로 이전하면서 잔디석, 외야 패밀리석 같이 가족 단위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생기고, 구단이 가족을 겨냥한 이벤트를 많이 개최하면서[51] 가족 단위 팬들이 많이 찾아와 어린이팬들(일명 '삼린이')의 유입이 늘었다. 이와 동시에 젊은 세대 마케팅에 상당히 공을 들이면서 10~20대의 팬층, 특히 구매력이 센 여성팬층의 유입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성적 우선주의 성향이 강한 올드 팬들이 빠져나갔다. 또한 왕조멤버들이 하나둘씩 퇴단하면서 팀 케미가 무너지고 성적이 바닥을 찍어서 라팍을 절반도 못 채울 정도로 매진을 보기 드물어졌다.

이렇게 새롭게 유입된 팬들이나 여성팬, 비(非)TK 지역의 삼성팬들은 팬 서비스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52]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구단에서도 이런 흐름을 아는지 혹은 제일기획 이전의 영향인지 구단에서도 마케팅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덕질용 SNS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이 개설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는 '삼스타'라고 불리는 관리자의 드립력 넘치는 글들도 올라온다!

삼성 야구를 오랫동안 봤으면 알겠지만 삼성에서 팬 서비스나 응원가는 부차적인 요소였다. 팬덤 자체가 팀 컬러가 변화하면서 팬덤의 성향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즉 지금 삼성은 야구 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준학 단장이 인터뷰마다 "새로운 삼성"을 강조하는 것도[53]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모기업에서 자생을 촉구하는 것도 있고, 야구 팬덤에서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자리잡았고 하니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

하지만 6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7년만의 우승을 노리는 2021년에 왕조시절 구단 수입에 막대한 기여를 했던 올드 팬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역대최강급 아저씨풍 팀 칼라로 다시 거듭나는 것을 보면 관중수입 증대는 곧 성적이 답이라는걸 입증하고 말았다.
===# 유명 라이온즈 팬 #===
※ 이름에 ★표시가 된 사람은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와 인근 경상북도 출신. 다른 구단들하곤 다르게 정치계 인사들 비율이 매우 높다. 과거 주요 정계, 장교단, 재계, 법조계에 TK, 특히 대구/경북 출신 사람들이 많으며[54] 지금도 그런 기조가 높기 때문. 그래서 그런지 연예인 시구가 가장 없는 구단이기도 하다.[55]

8. 응원

8.1. 응원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역대 응원단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074ca1,#5ea2f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50403
1대 2대 3대 4대
최봉준
(1995~1998)
이시훈
(1999~2000)
김용일
(2001~2012)
김상헌
(2013~)
}}}}}}}}}}}}}}} ||
2022 시즌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응원단장 김상헌
치어리더 이수진, 권소영, 이소영, 김하연, 최홍라, 고정현, 남민정, 김가영, 김유정, 진유민

응원단의 이름은 '블루팅커스'이며, 홈 경기에서는 6명, 원정 경기에서는 4명씩 나오며, 2020 시즌과 2021 시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홈 경기에서도 4명씩 나오기도 했다. 삼성 구단의 이벤트 대행사인 놀레벤트에 소속되어 있고, 대구경북 출신이 대다수이며,[64][65][66] 웬만해서는 이적을 잘 하지 않는다.[67] 전용 인스타그램에 그날 경기의 라인업이 올라온다.

8.2.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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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라이벌

원년부터 존속한 팀이다 보니 웬만한 팀들과는 다 라이벌리가 어떻게든 엮여 있다. 전자업계 라이벌인 LG 트윈스부터 해서 경상도권이면서 원년부터 함께한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던 해태 타이거즈 - KIA 타이거즈와의 88고속도로 씨리즈, 포스트시즌 명승부 메이커 두산 베어스, 별도의 문서가 생겼을 정도로 치열했던 한화 이글스, 현대 유니콘스가 있던 당시 재계 1, 2위의 간의 라이벌리 등등.

하지만 16, 17시즌 암흑기동안 2년 연속 9위를 찍으면서 kt wiz라는 라이벌이 생겼다. 그것도 두시즌 10위한 kt에게 우위를 보였으면 모를까 두시즌 내내 8승 8패를 주고받으며 이제는 서글프게도 둘이 라이벌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18년에는 블루윙즈 더비가[68] 6위와 9위로 멀어졌으나 상대전적은 7승 2무 7패로 동률이다. 최근 4년간 두팀 모두 가을야구를 못갔으며, 특히 kt는 창단 이후 즉, 그전부터 가을야구를 못갔다. 여러모로 웃픈 더비. 2020년에는 kt가 가을야구가 유력해지고 삼성이 kt에 완전히 호구잡히며 통산 전적에서 승패수가 비슷해졌다. 2021년에는 kt와 삼성이 무려 선두경쟁을 하며 다른 방향의 라이벌리가 되고 있다![69]

새롭게 형성될 라이벌리도 있다. 범 삼성가 계열 기업인 신세계그룹이 2021년 SK 와이번스의 후신인 SSG 랜더스를 창단하면서 이른바 '삼성가 시리즈'가 생기기 때문이다.[70] 다만 SSG 랜더스는 삼성과의 집안 간 라이벌리보다 전통의 업계 맞수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쟁을 더 우선으로 보는 듯하다.

9.1. 88고속도로 씨리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KIA 타이거즈
{{{+1 {{{#ffffff 'KIA TIG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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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싸대기 매치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1 {{{#ffffff 'Samsung Lions'}}} }}}
두산 베어스
{{{+1 {{{#ffffff 'Doosan Bea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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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클래식 시리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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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재계 라이벌 시리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현대 유니콘스
Hyundai Unico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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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역대 선수 및 인물

10.1. 영구결번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양준혁 이만수 이승엽


4개의 영구결번을 가진 한화 이글스 다음으로 KBO 리그 소속구단 중 가장 많은 3개의 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전통적인 타격의 팀답게 레전드급 타자 3명이 영구결번의 영예를 안았다.[71]

파일:삼성영구결번.png

10번은 장효조 양준혁이 달았지만, 양준혁의 번호로 처리되었다. 장효조가 선수협 파동에 연루되어 롯데로 이적해 삼성 소속으로서의 성적이 다소 모자라며, 통산 기록에서도 타율 출루율을 제외하면 양준혁 장효조를 월등히 앞서기 때문. 타율 장효조가 1푼 5리 앞서고 출루율도 1푼 앞선다. 하지만 양준혁 본인은 10번은 장효조 선배의 번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고, 그에 따라 팬들 또한 비록 공식적으로는 양준혁의 번호라도 심리적으로는 공동 영구결번이라고 인정하는 편이다. 구단 역시 10번이 영원한 양준혁 번호가 된 뒤라도 등번호 10번 장효조 포토볼을 내놓는 등 10번과 장효조를 끊지 않았다.

22번은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포수 이만수의 번호이며 2003년에 지정되었다. 다만 은퇴식은 치르지 않았다. 구단과 모양새가 좋지 않게 헤어졌기 때문.

이승엽의 36번은 2004년 일본 진출이 확정됨과 동시에 임시결번이 발표되었으며, 2012년부터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다시 사용하였고 2017년 10월 3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은퇴식과 함께 영구결번이 되었다.

10.2. 레전드

※ 구분선 위쪽은 공식홈페이지 헌액, 아래쪽은 이외에 레전드로 불리는 선수

10.3. 역대 구단주

이름 재임 기간 기타
1 이건희 1982~2001 삼성그룹 회장[72]
대행 김정순 1995 당시 제일제당 사장
대행 안덕기 1996~1997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삼성 라이온즈 4대 사장
대행 이종기[73] 1998~1999 당시 삼성화재 부회장, 삼성 라이온즈 2대 사장
대행 이대원 2000 당시 삼성항공 부회장
대행 현명관 2001 당시 삼성물산 회장
2 2002
3 이수빈 2003~2017 삼성생명 회장, 삼성 라이온즈 초대 사장
4 임대기 2017~2020 제일기획 사장, 삼성 라이온즈 사장 겸직
5 원기찬 2020~현재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삼성 라이온즈 대표이사(사장) 겸직

10.4. 역대 사장(대표이사)

1985년까지는 단장이었다.
이름 재임 기간 기타
1 이수빈 1982~1983년 4월 26일 당시 제일제당 사장
2 이종기 1983년 4월 27일~1988 당시 중앙일보 사장
3 편송언 1989~1990 제일기획 대표이사 전무
4 안덕기 1991 前 삼성의료기기 사장
5 김흥민 1992~1994 삼성물산 전무
6 이광진 1995~1996 삼성중공업 총괄전무
7 전수신[74] 1997~1999 前 삼성물산 건설부문 부사장
8 한행수 2000~2000년 7월 9일 前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 일신상 이유로 사임
9 신필렬 2000년 7월 10일~2004 삼성서울병원 행정부원장[75]
10 김응용 2005~2010 감독에서 승진, 최초 야구인 출신 야구단 사장
11 김인 2011~2015 삼성SDS 사장
12 김동환 2016~2017 삼성웰스토리 대표이사 부사장
13 임대기 2018~2020 제일기획 대표이사[76]
14 원기찬 2020~현재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

10.5. 역대 단장

1983년까지는 이사와 부단장이 혼용됐고, 1985년까지는 부단장이었다.
이름 재임 기간 기타
1 김동영 1982 동방생명 관리이사
2 김삼용[77] 1983~1983년 4월 27일 실업 야구 선수 출신[78]
3 노진호 1983년 4월 27일~1983년 11월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겸 체육부장[79]
4 이달종 1984~1985 前 중앙일보 사업국장
5 윤경헌 1986~1989 前 중앙일보 문화센터국장
6 조복래 1990~1992 사무국장에서 승진
7 지용하 1993~1994 중앙개발 이사
8 김대훤[80] 1995~1996 삼성물산 해외업무실 팀장
9 김종만[81] 1997~1999 스카우트팀장에서 승진
10 김재하 2000~2010 제일모직 이사
11 송삼봉 2011~2014년 8월 16일 부단장[82]에서 승진, 건강상 이유로 사임
12 안현호 2014년 8월 16일~2016 삼성스포츠 부장, 최초 사원 출신 단장[83]
13 홍준학 2017~현재 구단지원팀장에서 승진

10.6.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074ca1,#5ea2f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rowcolor=#fff> 1대 2대 3대 4대
5대
서영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2~1983)
이충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
김영덕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4~1986)
박영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1988)
정동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0)
<rowcolor=#fff> 6대
7대
8대 9대
김성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1~1992)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3~1995)
감독대행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5)
백인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6~1997)
서정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1999)
<rowcolor=#fff> 10대 11대
12대
13대 14대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김응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4)
선동열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5~2011)
류중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6)
김한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7~2019)
<rowcolor=#fff> 15대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svg
허삼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0~)
}}}}}}}}}}}}}}} ||

파일:허삼0원히.jpg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70
허삼영
許三榮 / Huh Sam-Young
(2020~)
이름 재임 기간 성적(승률)
1 서영무 1982~1983 69승 1무 40패 (0.633)
2 이충남[84] 1983 31승 3무 36패 (0.462)
3 김영덕 1984~1986 202승 2무 114패 (0.643)
4 박영길 1987~1988 120승 2무 94패 (0.560)
5 정동진 1989~1990 123승 7무 110패 (0.527)
6 김성근 1991~1992 137승 3무 112패 (0.550)
7 우용득 1993~1995 193승 13무 172패 (0.528)
8 백인천 1996~1997 120승 10무 120패[85](0.500)
9 서정환 1998~1999 139승 4무 115패 (0.547)
10 김용희 2000 69승 5무 59패[86](0.524)
11 김응용 2001~2004 312승 16무 204패 (0.604)
12 선동열 2005~2010 454승 13무 380패 (0.544)
13 류중일 2011~2016 465승 12무 333패 (0.583)
14 김한수 2017~2019 183승 10무 239패 (0.434)
15 허삼영 2020~
유명한 백인천 감독이 개념 있게 감독직에 충실했던 팀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백골퍼 소리는 들었고, 강기웅, 김성래, 이종두 등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타 팀으로 보낸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승엽을 발견한 것[87] 김태균, 김한수, 신동주, 정경배, 최익성으로 타선의 세대 교체를 한 것만으로도 그가 삼성에서 한 일은 대단하다.[88] 또한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주축 선수는 아니었지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꾸준히 백업 멤버의 선두로 활약했던 김종훈도 있었다.

이 멤버를 데리고 1997년 5월 초, 대구에서 정경배의 역사적인 연타석 만루 홈런을 포함해서 3일 동안 LG 트윈스를 상대로 17홈런을 때리며 49점을 내며 발라버리자 뜬금없이 제 3자인 김성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KBO에 공식적으로 조사의뢰를 넣는 바람에 이른바 부정 배트 의심 사건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2003년까지 삼성 타선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승엽도 이 시즌부터 홈런왕의 기질을 보인다.

다만 백인천 본인이 포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포수 육성에는 실패했다는 것이 옥의 티.[89] 뇌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고 전병호의 뺨을 때린 사건도 있어 재계약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타자들을 키운 공 때문에 나중에 삼성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롯데에 가서는 ...

선동열 감독 체제에서, 숙원이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2회(2005, 2006)나 해내 '공공의 적'으로 불렸다. 단 공공의 적임에도 불구하고 욕 먹은 것은 주로 야구 외적인 일이었고[90] 더티 플레이나 빈볼 시비와 같은 야구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깨끗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 특유의 무리한 계투진 운용과 타선의 리빌딩 지연,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2008 시즌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더군다나 원년부터 이어져 온 골수 삼성 팬들은 전통적인 강타자 중심의 팀 컬러에 대한 향수와 함께 삼성 프랜차이즈 강타자이자 당시 SK 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있던 이만수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91]

선동열의 임기 6년 동안 삼성 팬덤의 단결력은 올드 팬 vs 2천년대부터 유입된 신규 팬, 연고지 팬 vs 타 지역 팬, 프랜차이즈 팬 vs 감독 팬 등의 대립으로 박살나다시피 했다. MLB 파크, 디씨 삼갤, 구단 공홈은 특정 세력이 완전히 장악하다시피 하고 다른 의견은 키배 끝에 잠수타고 있는 것이 현실. 그리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까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동열을 옹호하는 팬들은 기아 팬으로 의심 받는 현상 있었다. 특히 팀이 아무리 잘해도 안나타 나다가, 선동열 감독만 비난받으면 갑자기 삼성 팬임을 주장하면서 글을 적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이유없는 의심도 아니였다. 선동열 감독이 물러난 이후 실제로 기아를 응원하는 팬들도 다수 있어서 완전히 틀린 추측도 아니었다고.

2009년 5위로 마감하면서 12년간 이어오던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행진이 중단되면서 못해도 가을야구는 가던 삼성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2010 시즌 더 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양준혁을 사실상 강제 은퇴시키면서 일부 팬들의 반감을 샀다. 추가적으로 일본에서 부진하던 이승엽이 삼성 복귀를 얘기했을 때 "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며 이를 거부함으로써[92] 삼성의 레전드들을 부정한 선 감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악화되었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SK를 상대로 4전 전패로 참담하게 패배하면서 선동열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삼성 팬들은 급격하게 선 감독의 안티 팬으로 돌아섰다. 게다가 2011년 류중일 신임 감독이 선동열과 전혀 다른 투수 운용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는 바람에[93] 선수를 다루는 방식에서 더욱 대비되었고, 부임 후 정규시즌 5연패,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성적을 내며 삼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류중일 감독의 도움으로 이승엽은 8년만에 고향 팀 삼성에 복귀하여 팀의 기둥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기에 선동열 감독의 "와도 자리 없다" 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거기다 2014년에 선동열과 마찰을 일으켰던 임창용이 삼성에 다시 복귀하여 마무리를 맡아 불펜의 중심 축 역할을 하고 팀 통합 4연패의 주역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삼성 팬들에게 선동열은 금지어가 되어 버렸다.

한때 기아 팬들은 선동열이 삼성을 두 번이나 우승시켜 줬는데도 싫어한다고 삼성 팬을 깠다. 그러나 기아 팬들 역시 처음에는 해태 프랜차이즈 선수출신 선동열 감독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지만[94] 우승은 커녕 몇년간 성적이 바닥을 보이자 이제는 기아 팬들도 대부분 선동열을 깐다.[95]그리고 하위권을 맴돌던 기아 타이거즈 성적으로 인해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게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다는 것이 이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0.7. 역대 주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 ||
{{{#!wiki style="margin: 0 -10px;"
{{{#074ca1,#5ea2f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2020~2021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
김상수 강민호 박해민
이원석
2022~
김헌곤
피렐라
}}}}}}}}}}}}}}} ||

10.8. 역대 선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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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역대 개막전 선발투수

년도 이름 상대
1982 황규봉 對MBC
1983 이선희 對해태
1984 김시진 對삼미
1985 김일융 對해태
1986 김시진 對청보
1987 김훈기 對해태
1988 전용권 對해태
1989 진동한 對롯데
1990 김상엽 對태평양
1991 김성길 對롯데
1992 김상엽 對롯데
1993 김상엽 對쌍방울
1994 김태한 對롯데
1995 김태한 對LG
1996 김태한 對OB
1997 전병호 對현대
1998 조계현 對롯데
1999 김상진 對한화
2000 노장진 對SK
2001 임창용 對한화
2002 임창용 對LG
2003 엘비라 對두산
2004 호지스 對롯데
2005 배영수 對롯데
2006 배영수 對롯데
2007 브라운 對두산
2008 배영수 對KIA
2009 윤성환 對LG
2010 윤성환 對LG
2011 차우찬 對KIA
2012 차우찬 對LG
2013 배영수 對두산
2014 윤성환 對KIA
2015 피가로 對SK
2016 차우찬 對두산
2017 페트릭 對KIA
2018 윤성환 對두산
2019 맥과이어 對NC
2020 백정현 對NC
2021 뷰캐넌 對키움
2022 뷰캐넌 對KT

10.10. 역대 선수단 등번호

11. 역대 기록

11.1. 팀 성적

우승
준우승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성적
연도 정규시즌 순위 포스트시즌 최종 순위 경기 승률
삼성 라이온즈
1982 전기 2위 / 6팀
후기 1위 / 6팀
KS 1-4(1무) 준우승(OB) 준우승 80 54 0 26 0.675
1983 전기 5위 / 6팀
후기 2위 / 6팀
진출 실패 4위 100 46 4 50 0.479
1984 전기 1위 / 6팀
후기 5위 / 6팀
KS 3-4 준우승(롯데) 준우승 100 55 0 45 0.550
1985 전기 1위 / 6팀
후기 1위 / 6팀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96] 우승 110 77 1 32 0.706
1986 전기 1위 / 7팀
후기 4위 / 7팀
KS 1-4 준우승(해태) 준우승 108 70 1 37 0.654
1987 전기 1위 / 7팀
후기 1위 / 7팀[97]
KS 0-4 준우승(해태) 준우승 108 64 0 44 0.593
1988 전기 5위 / 7팀
후기 2위 / 7팀
PO 0-3 탈락(빙그레) 3위 108 56 2 50 0.528
1989 4위 / 7팀 준PO 1-2 탈락(태평양) 4위 120 57 5 58 0.496
1990 4위 / 7팀 KS 0-4 준우승(LG) 준우승 120 66 2 52 0.558
1991 3위 / 8팀 PO 1-3 탈락(빙그레) 3위 126 70 1 55 0.560
1992 4위 / 8팀 준PO 0-2 탈락(롯데) 4위 126 67 2 57 0.540
1993 2위 / 8팀 KS 2-4(1무) 준우승(해태) 준우승 126 73 5 48 0.599
1994 5위 / 8팀 진출 실패 5위 126 60 2 64 0.484
삼성 라이온즈
1995 5위 / 8팀 진출 실패 5위 126 60 6 60 0.500
1996 6위 / 8팀 진출 실패 6위 126 54 5 67 0.448
1997 4위 / 8팀 PO 2-3 탈락(LG) 4위 126 66 7 53 0.552
1998 2위 / 8팀 PO 2-3 탈락(LG) 3위 126 66 2 58 0.532
1999 매직 1위 / 4팀 PO 3-4 탈락(롯데) 4위 132 73 2 57 0.562
2000 드림 3위 / 4팀 PO 0-4 탈락(현대) 3위 133 69 5 59 0.539
2001 1위 / 8팀 KS 2-4 준우승(두산) 준우승 133 81 0 52 0.609
2002 1위 / 8팀 KS 4-2 우승(LG) 우승 133 82 4 47 0.636
2003 3위 / 8팀 준PO 0-2 탈락(SK) 4위 133 76 4 53 0.589
2004 2위 / 8팀 KS 2-4(3무) 준우승(현대) 준우승 133 73 8 52 0.584
2005 1위 / 8팀 KS 4-0 우승(두산) 우승 126 74 4 48 0.607
2006 1위 / 8팀 KS 4-1(1무) 우승(한화) 우승 126 73 3 50 0.593
2007 4위 / 8팀 준PO 1-2 탈락(한화) 4위 126 62 4 60 0.508
2008 4위 / 8팀 PO 2-4 탈락(두산) 4위 126 65 0 61 0.516
2009 5위 / 8팀 진출 실패 5위 133 64 0 69 0.481
2010 2위 / 8팀 KS 0-4 준우승(SK) 준우승 133 79 2 52 0.594
2011 1위 / 8팀 KS 4-1 우승(SK) 우승 133 79 4 50 0.612
2012 1위 / 8팀 KS 4-2 우승(SK) 우승 133 80 2 51 0.611
2013 1위 / 9팀 KS 4-3 우승(두산) 우승 128 75 2 51 0.595
2014 1위 / 9팀 KS 4-2 우승(넥센) 우승 128 78 3 47 0.624
2015 1위 / 10팀 KS 1-4 준우승(두산) 준우승 144 88 0 56 0.611
2016 9위 / 10팀 진출 실패 9위 144 65 1 78 0.455
2017 9위 / 10팀 진출 실패 9위 144 55 5 84 0.396
2018 6위 / 10팀 진출 실패 6위 144 68 4 72 0.486
2019 8위 / 10팀 진출 실패 8위 144 60 1 83 0.420
2020 8위 / 10팀 진출 실패 8위 144 64 5 75 0.460
2021 2위 / 10팀 PO 0-2 탈락(두산) 3위 144 76 9 59 0.563
KBO 리그 통산 40시즌 V8 5059 2723 117 2222 0.551

원년 구단임에도 불구하고 KBO 리그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정규시즌 최하위 기록이 없다[98]. 본격적으로 망조를 띄기 시작한 2016년 이후마저도 최하위 기록은 하나도 없다.[99] 삼성이 정규시즌에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유일하게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룬 구단이다. KIA 타이거즈가 해태 시절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적은 있지만, 이 중에 통합 우승은 1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페넌트레이스 연속 우승은 5연속이었으나 통합 우승이 좌절된 것은 도박 파동이 한몫 했다고 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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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승리 1위[100], 통산 승률 1위, 통산 팀 홈런 1위, 특정 팀 상대 최다 승리[101], 통산 팀 타율 1위, 단일 시즌 팀 승률 1위(1985년 0.706), 단일 시즌 팀 타율 3, 4, 5위(2015년 0.302, 2014년 0.301, 1987년 0.300) 등 '삼성의 기록은 삼성만이 경신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02]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가 본 팀이며[103] KIA 타이거즈와 함께 KBO의 전통적인 강호로 손꼽히는 팀이다. 다만 두 팀의 강력함은 느낌이 조금 다른데, 타이거즈는 전성기 때의 무지막지한 강함으로 프로야구를 지배하였고, 1997년 외환 위기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9년 우승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등 강약의 차이가 극명한 기복이 심한 이미지라면, 라이온즈는 소수의 예외 시즌을 제외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꾸준히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1990년대 두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였던 타이거즈의 이종범과 라이온즈의 양준혁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라팍으로 홈을 옮기기 이전의 삼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우승했을 때 '음, 이번 시즌 좀 잘했구나'라는 분위기[104]였고, 4위 턱걸이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굴욕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만약 5위 이하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면 해당 시즌은 바로 삼성의 흑역사로 기록되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이 5위 이하로 내려간 시즌은 본격적인 암흑기가 시작된 2016년 이전까지 34시즌 동안 팬들에게 그나마 암흑기로 불렸던 1994년, 1995년, 1996년과, 5위를 기록한 2009년으로 총 4번이 전부다. 전·후기 리그로 치러졌던 때에도 포스트시즌 탈락은 1983년 단 한 번뿐이니 프로야구 35년 역사상 삼성의 포스트시즌 탈락은 단 6회 뿐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러한 역대 팀 평균 성적을 감안한다면 2015시즌부터 5위 팀 또한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해졌다고 해도 와일드카드전 진출 또한 삼성에 있어서는 굴욕이라고 할 만 하겠지만, 2016시즌부터 2020시즌까지 구단 사상 최장기간 암흑기가 도래하면서 팬들의 가을야구에 대한 갈증은 계속 심해지고 있었다.

1970년대 대구, 경북 야구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때 그 전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198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했을 뿐 명실상부한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1990년대 중반기에 잠시 침체기가 있었으나, 후반기부터 부활하여 다시 리그를 주름잡는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통산 최다 준우승팀으로 2002년 첫 한국시리즈 우승 전에는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에 비해 큰 경기에 약한 팀으로 인식된 적도 있었다.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준우승 10회로 최다 준우승 팀이다.[105]

통산 우승 횟수는 1985년 전·후기 리그 시절의 통합 우승 1회 + 한국시리즈 우승 7회로 총 8회.[106] 일부[107]에서는 1985년 우승을 계산에서 빼기도 하지만, 1985년 삼성이 전·후기 모두 가장 잘해서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게 된 것이며, 사실 KBO의 인증으로 봐도 무엇으로 봐도 엄연한 우승이다.[108]

2002년 한국시리즈는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회자되는데,[109] 상대는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였다. 1, 3, 4차전을 이기고 2, 5차전을 내준 상태에서 홈구장인 대구에 돌아와서 6차전을 치렀는데, 9회말까지 9-6으로 뒤지고 있었고 그대로 7차전까지 갈 가능성이 컸었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헛스윙만 하던 이승엽이 동점 3점 홈런을 쳐내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고, 다음 타자 마해영이 끝내기 홈런을 쳐서 결국 삼성은 지긋지긋한 준우승의 한을 풀고 한국시리즈를 우승하였다.

다만 이런 영광스러운 날이 있기까지에는 일부 팬들이 '콩성'이라고 부르듯 많은 곡절이 있었다. 준우승만 10회로 이 부문 1위인 비운의 팀. 2002년까지는 삼성도 콩라인에 있긴 있었다.[110] 그리고 준플레이오프에도 자주 진출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는 악몽도 여러 차례 겪었다(특히 역전패. 1999년 롯데 자이언츠에게 당한 대역전패는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두산 베어스에 당한 2001년 한국시리즈도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때는 양준혁이 삼성에 없고 LG 트윈스에 있었다.). 또한 원년에 한국 야구를 먹여 살린 두 개의 만루 홈런의 주인공이 된 허무한 팀.[111]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세운 팀으로,[112] 삼성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때는 1994~1996년, 2009년과 2016~18년 단 일곱번. 이는 1990년 플레이오프가 도입된 이래 최소 기록이다. 사실 2000년에 드림 리그 3위로 떨어지며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행진이 3연속에서 멈출 뻔 하다가 '드림 리그는 1부, 매직 리그는 2부' 라고 해도 믿을 만큼 성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통에 매직 리그 1위였던 LG 트윈스보다도 승률이 더 높은 괴이한 현상이 발생하자 억지로 진출했다. 이 때문에 2000년 포스트시즌에 5팀이나 진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13]

참고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장 기록. 2위 기록 역시 삼성의 1984~1993년의 10년(1985년 통합 우승 포함). 3위까지 와서야 KIA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의 1986~1994년의 9년의 기록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에는 삼성 라이온즈 스스로 6년 연속 진출에 성공하면서(2010년~2015년) 다시 기록을 세우는 중이니 이제 기록 경신까지 7년 남았으나 2016년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6년으로 멈췄다.[114]

2015년 정규시즌 1위를 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포스트시즌 관련 또 다른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 바로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이다. 이전까지의 최다 한국시리즈 연속진출 기록은 SK 와이번스의 6연속(2007년~2012년)으로, 2015년 현재 삼성 라이온즈가 역시 6연속(2010년~2015년)으로 타이를 이루고 있다. 이전까지는 5연속 진출로 2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5년 한국시리즈 직행으로 공동 1위에 올라섰는데, 두산 베어스가 2021년에 삼성을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7연속(2015년~2021년)으로 삼성의 기록은 2위가 되었다. 4위는 해태 타이거즈의 1986년~1989년 4연속.

2011~2015년 정규시즌 우승을 거두게 되면서 사상 처음 정규시즌 5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정규시즌 연속 우승은 1996~1997년 해태 타이거즈, 2001~2002년 삼성 라이온즈, 2003~2004년 현대 유니콘스, 2005~2006년 삼성 라이온즈, 2007~2008년 SK 와이번스 등의 2회 연속 우승 기록이 있는데 삼성이 처음으로 5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여기에 2014년 한국시리즈에서도 넥센 히어로즈를 4승 2패로 꺾고 통산 8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1986년~1989년에 기록한 4연패 기록과 타이 기록을 이루게 되었다. 무엇보다 해태 타이거즈는 그 기간 정규시즌 우승을 1회(1988년)만 달성하였으므로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기록은 2013년에 삼성이 기록한 3연패가 유일했으며,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기록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11.1.1. 암흑기

전통의 강팀 이미지가 강한 삼성에게도 부진하던 시기는 있었다.

순위로 따졌을 때 삼성의 첫 암흑기라 하면 우용득 감독의 임기 중반인 1994년부터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첫 해인 1996년까지의 순위를 가리킨다. 각각 1994년 5위, 1995년 5위, 1996년 6위를 기록하며 삼성은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고, 이는 삼성 라이온즈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실패 기록이며 특히 1996년의 6위는 삼성 라이온즈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순위다. 그러나 이승엽이 홈런왕 대열에 들어서고 공격력이 강해지면서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 2005년 한국시리즈,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고, 이후 2011년 한국시리즈부터 2014년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면서 삼성 왕조를 이룩했다.

1994년부터 삼성이 3년간 556의 순위를 찍게 된 주된 원인으로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삼성을 이끈 주전 멤버들의 노쇠화였다. 1993년 준우승 당시에도 김성래, 류중일, 이만수, 이종두 등 베터랑들 대다수가 30대를 훌쩍 넘긴 노장 축에 속했다. 삼성 입장에서는 분명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대구와 경북지역 아마야구의 침체로 인해 삼성에는 쓸만한 신예가 드물었다. 실제로 1991년 이후 삼성의 1차 지명선수 명단을 보면 이영재(1991년), 감병훈(1994년), 안윤호(1995년), 황성관(1997년), 정성열(1999년)등 1군에서 별다른 보탬이 되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다. 1996년부터 도입된 고졸 우선지명에도 김헌수, 김성훈, 권영철(1996년) 설재호, 황영구(1997년), 이준민(1998년), 이성훈(1999년) 등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특히 마운드에는 쓸만한 선수가 아예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삼성은 미국으로 눈을 돌려 최용희, 최창양 등을 영입했지만 그마저도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일설에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삼성 감독이었던 김성근 책임론이 거론된다. 김성근 감독이 첫 해 3위, 2년차 4위로, 생각만큼 대단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경질된 이후 556을 찍게 되었기 때문에, 이를 김 감독의 투수 혹사 경향과 엮어서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성근 본인이 스스로의 자서전에서 인정한 바 있는데, 프런트에서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본인이 엘리트 의식에 빠진 선수들을 휘어잡지 못한 실책의 결과라고 시인했다. 다시 말해 본인의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 거기에 급격하게 추진한 리빌딩과 조범현을 비롯한 자신의 제자 중용 등으로 선수들과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웬만해선 김성근식 감독야구를 옹호하는 김은식 작가조차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김성근의 방식이 삼성에는 맞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직전 감독이었던 정동진 감독을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업계 라이벌인 LG를 상대로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 것을 구실로 경질해버린 프런트의 조급함이 이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그 전년도에는 최동원- 김시진 트레이드라는 병크도 있었고.

그리고 당시 창단 이래 최하위였던 6위를 찍은 1996년에는 전년도에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던 다섯 팀[115] 중 네 팀이 올랐는데 유일하게 못 오른게 바로 이 암흑기에 있던 삼성이다. 대구, 경북 팜에서 이승엽 이전까지 괜찮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았던 것도 이 암흑기의 원인이다.

여담으로 이 비밀번호를 끊은 감독이 바로 롯데 팬 한정으로 금지어 모 골프 전문 감독이다. 또한 베이징 올림픽의 퍼펙트 골드 감독인 김경문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코치로 영입되어 이 때 코치 실전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정확하게 1차 암흑기 동안.

일부는 부임 첫해에 6위를 찍었다는 건 함정이라느니 비하하기도 하지만, 백인천의 잘못이라고만은 보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추진했던 리빌딩과 자신의 제자들의 주전화 등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자 우용득 감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장들을 방출하면서 세대교체가 너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부임 첫해인 1993년에는 이 세대교체 효과가 있었으나 많은 선수들이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린 후 극복을 해내지 못하는 등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고, 하필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만수 등 경험 있는 고참은 급격한 리빌딩 과정에서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삼성 팀의 분위기가 상당히 망가져있던 상황. 오히려 고작 1년만에 팀을 추스리고 유망주를 발굴한 걸 높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556 시기를 암흑기라 여길 수 있긴 하지만, 타팀 팬 입장에서는 겨우 3년 정도 가을야구를 못 가고, 그것도 꼴찌도 하지 않고 리빌딩이 차근차근 진행되며 기대를 모으던 시기를 어떻게 암흑기라 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우승 아니면 의미가 없던 당시 삼성으로서는 충분히 암흑기였다고 말할 근거가 있겠지만. 그리고 꼴찌를 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관중 수 신기록을 쓰는 등 흥행은 했기 때문에 당시 야구를 봤던 삼성 팬[116]들 또한 이 시기를 암흑기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통 90년대부터 야구를 봐온 삼성팬들이 손꼽는 진짜 1차 암흑기는 556 시기가 아니라 김성근 강점기인 1991~1992년이다.

그 외 일각에서는 선동열 감독 시기인 2009년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고 2차 암흑기라고 부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선감독 재임 시절엔 일단 우승도 두 번 했고, 마지막 해인 2010년에도 준우승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타팀 팬들 입장에서는 '저게 암흑기라고?'라고 기막혀하는 경우가 대부분. 물론 삼성 시절 선감독의 논란 많은 행적과 연속 포스트시즌 기록 좌절, 양준혁의 급작스러운 은퇴 등 삼성 팬 입장에선 암흑의 시기라 일컬을 일이 많긴 했기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선감독 재임 시기가 2차 암흑기라는 의견이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많이 얻는 편이다. 실제로 선감독 재임기의 삼성은 우승은 두 번 했지만 관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던 추세였다.

이후 2011년 류중일 감독 선임 이후에는 삼성 왕조 시기를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2015년 도박 사건을 기점으로 생각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침체기에 접어드는 위기를 맞이했다. 2015년 이후 고작 1년 후인 2016년 2017년2년 연속으로 9위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구단 역사상 유례없는 가장 낮은 최종 순위였다. 특히 다른 때와는 달리 모기업 삼성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로 인해 구단 시스템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이라 리빌딩과 인기 둘 다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낳고 있었다. 게다가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에도 엮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시 팬들의 신뢰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위에서 말했듯이 2016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부진을 털어내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성적도 못 내고, 재미도 없는 제대로 된 암흑기를 맞이하고 말았다. 2016년 9위, 2017년 9위를 기록하고, 2018년 시즌 막판에는 혹시나 하는 3년만의 가을야구가 이루어져 순식간에 암흑기 탈출에 성공하나 했으나, 시즌 막판부터 지난해 우승팀인 KIA 타이거즈가 치고 올라오며 5위 자리를 빼앗겼고, 결국 삼성은 기아에 밀려 6위라는 순위에 만족해야 했으며, 2019년, 2020년에도 8위에 그치면서 5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

강팀의 엄살로 보일 수 있는 이전까지의 암흑기와는 다르게 2010년대 후반기의 암흑기는 객관적으로도 명백히 하위권에 가라앉은 상태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좋든 나쁘든 구단 역사상 팀 분위기가 가장 크게 바뀐 시기라 할 수 있는데, 왕조 시절의 멤버가 하나둘 떠나면서 신인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본의 아니게 팬덤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나마 이 시기의 위안거리가 있다면,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위험했던 낡은 구장을 벗어나 여러모로 쾌적한 새 구장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과 제대로 하위권으로 내려앉은 대가로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점. 이는 2021년에 암흑기를 벗어나는 데에 알게 모르게 기반으로 작용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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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팀 전력

전력 순위가 중간 이상인 경우, 굵은 글씨
삼성 라이온즈 역대 팀 전력 (스탯티즈 팀 WAR 기준)
연도 정규시즌 승률 정규시즌 순위 투수 전력 순위 타자 전력 순위
1982 0.675 통합 2/6 21.11 1/6 18.61 2/6
1983 0.479 통합 4/6 15.08 4/6 23.31 1/6
1984 0.550 통합 2/6 17.60 2/6 24.07 1/6
1985 0.706 통합 1/6 25.23 1/6 29.97 1/6
1986 0.654 통합 1/7 16.33 5/7 30/54 1/7
1987 0.593 통합 1/7 14.54 6/7 37/97 1/7
1988 0.528 통합 4/7 13.52 5/7 26.25 2/7
1989 0.496 4/7 12.03 7/7 28.76 2/7
1990 0.558 4/7 14.33 6/7 27.23 2/7
1991 0.560 3/8 18.28 5/8 29.69 3/8
1992 0.540 4/8 17.53 7/8 26.53 4/8
1993 0.599 2/8 21.55 3/8 38.88 1/8
1994 0.484 5/8 21.41 5/8 27.19 2/8
1995 0.500 5/8 17.63 6/8 23.08 4/8
1996 0.448 6/8 14.20 7/8 23.56 4/8
1997 0.552 4/8 17.72 6/8 38.92 1/8
1998 0.532 2/8 16.21 6/8 28.20 2/8
1999 0.562 통합 3/8 24.11 3/8 26.99 4/8
2000 0.539 통합 3/8 23.36 5/8 27.09 3/8
2001 0.609 1/8 25.57 1/8 27.89 1/8
2002 0.636 1/8 25.54 1/8 38.22 1/8
2003 0.589 3/8 22.77 3/8 37.22 2/8
2004 0.584 2/8 27.09 1/8 26.73 3/8
2005 0.606 1/8 26.24 2/8 26.13 2/8
2006 0.593 1/8 23.47 4/8 23.65 4/8
2007 0.508 4/8 22.85 4/8 20.97 7/8
2008 0.516 4/8 19.63 5/8 21.64 5/8
2009 0.481 5/8 20.30 5/8 26.27 2/8
2010 0.594 2/8 28.95 2/8 28.84 3/8
2011 0.612 1/8 29.59 1/8 25.18 4/8
2012 0.611 1/8 28.68 1/8 33.80 1/8
2013 0.595 1/9 24.31 2/9 29.91 2/9
2014 0.624 1/9 28.70 1/9 29.92 2/9
2015 0.611 1/10 14.06 8/10 33.76 1/10
2016 0.455 9/10 12.55 8/10 22.21 4/10
2017 0.396 9/10 6.74 10/10 16.81 8/10
2018 0.486 6/10 18.08 4/10 19.89 7/10
2019 0.420 8/10 11.40 10/10 17.27 8/10
2020 0.460 8/10 19.06 4/10 15.78 8/10
2021 0.563 2/10 19.52 4/10 21.87 7/10
  • 팀 타격이 하위권에 처진게 2000년대 중반이 처음일 정도로, 전통적인 타격의 팀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2002년에 처음 달성한 것은 프로 출범 후 몇해를 제외하고는 줄곧 하위권에 머물렀던 투수력 때문이었다.
  • 2011년 류중일 감독이 부임하고, 전임 선동열 감독과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가 닦아놓은 투수 전력에, 류중일 특유의 선발 야구와 빅볼이 결합하면서 완벽한 투타 밸런스가 갖춰지고, 2015년까지 구단 역사상 유례없는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 삼성 왕조의 몰락이 도박 사건 때문이었다고 많이 알려져 있으나, 2015년의 투수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도박 사건이 아니었어도 몰락이 어느정도 예고 되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배영수 권혁이 이탈하고 장원삼의 노쇠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두 용병 피가로 클로이드도 전년도 밴덴헐크와 마틴 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결국 2016년 삼성은 전년도의 투수력이 보강되지 못한 상태에, 박석민 나바로 채태인의 이탈과 KBO 역사상 역대 최악의 용병운까지 겹치며 처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 2021년은 전년도 전력에 오재일 피렐라가 합류하며 타선이 크게 보강되었다. 이로인해 다른 팀에 앞서지는 못해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타선이 완성되었고, 전년도에 이미 정상 궤도에 올라와있던 투수력과 함께 큰 시너지를 일으켜, 선두경쟁까지 하게 되었다.

11.1.3.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두산 베어스 1982 KS: 1승 1무 4패
1986 PO: 3승 2패
2001 KS: 2승 4패
2004 PO: 3승 1패
2005 KS: 4승
2008 PO: 2승 4패
2010 PO: 3승 2패
2013 KS: 4승 3패
2015 KS: 1승 4패
2021 PO: 2패
PO 3승 2패
KS 2승 3패

개별 경기 합계: 23승 1무 26패
롯데 자이언츠 1984 KS: 3승 4패
1991 준PO: 2승 1무 1패
1992 준PO: 2패
1999 PO: 3승 4패
2000 준PO: 2승 1패
2008 준PO: 3승
준PO 3승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13승 1무 12패
KIA 타이거즈 1986 KS: 1승 4패
1987 KS: 4패
1990 PO: 3승
1993 KS: 2승 1무 4패
PO 1승
KS 3패

개별 경기 합계: 6승 1무 12패
한화 이글스 1988 PO: 3패
1990 준PO: 2승
1991 PO: 1승 3패
2006 KS: 4승 1무 1패
2007 준PO: 1승 2패
준PO 1승 1패
PO 2패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8승 1무 9패
현대 유니콘스 1989 준PO: 1승 2패
2000 PO: 4패
2004 KS: 2승 3무 4패
준PO 1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합계: 3승 3무 10패
LG 트윈스 1990 KS: 4패
1993 PO: 3승 2패
1997 PO: 2승 3패
1998 PO: 1승 3패
2002 KS: 4승 2패
PO 1승 2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10승 14패
쌍방울 레이더스 1997 준PO: 2승 1패 준PO 1승
개별 경기 합계: 2승 1패
SSG 랜더스 2003 준PO: 2패
2010 KS: 4패
2011 KS: 4승 1패
2012 KS: 4승 2패
준PO 1패
KS 2승 1패

개별 경기 합계: 8승 9패
키움 히어로즈 2014 KS: 4승 2패 KS 1승
개별 경기 합계: 4승 2패
  • 정규시즌에 강했던 삼성 라이온즈인 만큼 통산 포스트시즌 진출 횟수 또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는 그 동안 KBO 리그에 존재했었고, 또 현재까지 존속 중인 모든 구단과의 포스트시즌 대결 기록 작성이 가능한 유일한 구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타 구단은 지금은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대결 전적이 없기 때문이다.[117][118]

11.2.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성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

11.2.1. 통산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통산 1위.
삼성 라이온즈 역대 투수
부문 이름 기록 삼성 소속 시즌
등판경기 안지만 593경기 2002~2016
권오준 1999~2020
선발 등판 윤성환 305경기 2004~2020
완투 김시진 61경기 1983~1988
완봉 김시진 14경기 1983~1988
평균자책점 김시진 2.73 1983~1988
승리 윤성환 135승 2004~2020
패전 윤성환 106패 2004~2020
세이브 오승환 350세이브 2005~2013
2020~현재
홀드 안지만 177홀드 2002~2016
이닝 윤성환 1915이닝 2004~2020
피안타 윤성환 2042개 2004~2020
피홈런 윤성환 212개 2004~2020
탈삼진 윤성환 1357개 2004~2020
사사구 배영수 730개 2000~2014
볼넷 배영수 630개 2000~2014
몸에 맞는 공 임창용 108개 1999~2007
2014~201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자
부문 이름 기록 소속 시즌
출장경기 박한이 2127경기 2001~2019
타율 구자욱 .315 2012~현재
출루율 양준혁 .419 1993~1998
2002~2010
장타율 이승엽 .572 1995~2003
2012~2017
타석 박한이 8712타석 2001~2019
타수 박한이 7392타수 2001~2019
안타 박한이 2174개 2001~2019
2루타 이승엽 464개 1995~2003
2012~2017
3루타 박해민 53개 2012~2021
홈런 이승엽 467개 1995~2003
2012~2017
타점 이승엽 1498타점 1995~2003
2012~2017
득점 이승엽 1355득점 1995~2003
2012~2017
도루 박해민 318개 2012~2021
사사구 양준혁 1134개 1993~1998
2002~2010
볼넷 양준혁 1043개 1993~1998
2002~2010
몸에 맞는 공 김한수 148개 1994~2007
삼진 이승엽 1344개 1995~2003
2012~2017
병살타 박한이 156개 2001~2019

11.2.2. 단일시즌

볼드체로 표시된 건 KBO 단일시즌 1위 기록.
삼성 라이온즈 투수
부문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임창용 71경기 1999
임현준 2019
선발 등판 김진웅 31경기 1999
팀 아델만 2018
완투 김시진 17경기 1983
완봉 김시진 5경기 1983
평균자책점 김시진 2.00 1985
승리 김시진 25승 1985
김일융
패전 이선희 13패 1983
김진웅 1999
윤성환 2019
세이브 오승환 47세이브 2006
2011
홀드 안지만 37홀드 2015
이닝 김시진 269⅔이닝 1985
피안타 김성길 219개 1989
피홈런 장원삼 29개 2015
탈삼진 김시진 201개 1985
사사구 김시진 136개 1985
볼넷 김시진 121개 1985
몸에 맞는 공 임창용 24개 2002
삼성 라이온즈 타자
부문 이름 기록 시즌
타율 장효조 .387 1987
출루율 장효조 .475 1983
장타율 이승엽 .733 1999
타석 박해민 649타석 2018
타수 박해민 576타수 2018
안타 최형우 195개 2016
2루타 최형우 46개 2016
3루타 구자욱 13개 2016
홈런 이승엽 56개 2003
타점 이승엽 144타점 2003
최형우 2016
득점 이승엽 128득점 1999
도루 박해민 60개 2015
사사구 이승엽 124개 1999
볼넷 이승엽 112개 1999
몸에 맞는 공 박석민 27개 2012
삼진 구자욱 138개 2017
병살타 김한수 23개 2004

11.2.3. 타이틀 홀더

11.2.3.1. 타자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격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369
1984 이만수 포수 .340
1985 장효조 외야수 .373
1986 장효조 외야수 .329
1987 장효조 외야수 .387
1993 양준혁 1루수 .341
1996 양준혁 외야수 .346
1998 양준혁 지명타자 .342
2016 최형우 외야수 .376
삼성 라이온즈 역대 출루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469
1984 장효조 외야수 .422
1985 장효조 외야수 .460
1986 장효조 외야수 .436
1987 장효조 외야수 .461
1988 김성래 2루수 .459
1993 양준혁 1루수 .436
1998 양준혁 지명타자 .450
1999 이승엽 1루수 .458
2006 양준혁 지명타자 .446
삼성 라이온즈 역대 장타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618
1984 이만수 포수 .633
1987 이만수 포수 .579
1993 양준혁 1루수 .598
1996 양준혁 외야수 .624
1998 이승엽 1루수 .621
1999 이승엽 1루수 .733
2002 이승엽 1루수 .689
2011 최형우 외야수 .617
삼성 라이온즈 역대 최다안타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장효조 외야수 117
1996 양준혁 외야수 151
1997 이승엽 1루수 170
1998 양준혁 지명타자 156
2002 마해영 지명타자 172
2003 박한이 외야수 170
2016 최형우 외야수 195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홈런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이만수 포수 27
1984 이만수 포수 23
1985 이만수 포수 22
1987 김성래 2루수 22
1993 김성래 1루수 28
1997 이승엽 1루수 32
1999 이승엽 1루수 54
2001 이승엽 1루수 39
2002 이승엽 1루수 47
2003 이승엽 1루수 56
2007 심정수 외야수 31
2011 최형우 외야수 30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타점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이만수 포수 74
1984 이만수 포수 80
1985 이만수 포수 87
1987 이만수 포수 76
1993 김성래 1루수 91
1994 양준혁 지명타자 87
1997 이승엽 1루수 114
1999 이승엽 1루수 123
2002 이승엽 1루수 126
2003 이승엽 1루수 144
2007 심정수 외야수 101
2011 최형우 외야수 118
2016 최형우 외야수 144
2017 러프 1루수 124
삼성 라이온즈 역대 득점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98 이승엽 1루수 100
1999 이승엽 1루수 128
2000 이승엽 1루수 108
2002 이승엽 1루수 123
2003 이승엽 1루수 115
2006 박한이 외야수 89
2021 구자욱 외야수 107

삼성 라이온즈 역대 도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2014 김상수 유격수 53
2015 박해민 외야수 60
2016 박해민 외야수 52
2017 박해민 외야수 40
2018 박해민 외야수 36
11.2.3.2. 투수
삼성 라이온즈 역대 다승왕
연도 이름 기록
1985 김시진 25
김일융
1987 김시진 23
2004 배영수 17
2009 윤성환 14
2012 장원삼 17
2013 배영수 14
2021 뷰캐넌 16
삼성 라이온즈 역대 평균자책점왕
연도 이름 기록
1999 임창용 2.14
2002 엘비라 2.50
2014 밴덴헐크 3.18
삼성 라이온즈 역대 탈삼진왕
연도 이름 기록
1985 김시진 201
1993 김상엽 170
2005 배영수 147
2014 밴덴헐크 180
2015 차우찬 194
삼성 라이온즈 역대 세이브왕
연도 이름 기록
1982 황규봉 11
1985 권영호 26
1999 임창용 38
2004 임창용 36
2006 오승환 47
2007 오승환 40
2008 오승환 39
2011 오승환 47
2012 오승환 37
2015 임창용 33
2021 오승환 44
삼성 라이온즈 역대 홀드왕
연도 이름 기록
2006 권오준 32
2009 권혁 21
2015 안지만 37

12. 지역 연고 학교

12.1. 과거 지역 연고 학교

이하는 과거에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연고 대상 학교였으나 폐부된 학교들이다.
  • 경주상업고등학교 : 1983년 창설, 1985년에 해체되었으며, 지명 대상이긴 했지만 해당 야구부에서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 2003년 창설, 2009년 해체되었다. 홍효의, 추승민 정도가 있지만 프로야구에서 눈에 띄게 활동한 사례는 없다.
  • 대건고등학교 : 1970년 창설, 1977년 해체되었다. 대건고 출신 선수로는 권영호, 박승호, 허규옥, 장태수가 있으며, 해체 당시 선수들은 모두 충암고등학교로 전학가 충암고의 우승멤버가 되었다. 이 때 충암고의 우승 멤버가 된 대건고의 마지막 멤버가 조범현이다.
  • 성광고등학교 : 1981년 창설, 1989년 해체되었다. 유명 선수로는 이상목이 있다.
  • 영남고등학교 : 1968년 창설, 1974년 해체되었다. 실업 야구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은 있었으나, 삼성 창단 시에는 아무도 창단 멤버로 지목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프로 야구단에 입단한 사례는 없다.
  •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 2013년 마이스터고로 전환되면서 같은 재단의 자사고인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야구부가 이관됨. 포철공고의 역사는 포철고에 이관되어 있으므로, 위의 해당 문서 참조.

13. 사건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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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특이 사항

  • 로고에 모기업 혹은 메인 스폰서 CI를 사용하지 않는 세 구단 중 하나이다.[120] 다른 둘은 키움 히어로즈 kt wiz이다.
  • 타자와 포수가 쓰는 헬멧에는 양 옆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플래그십 피처폰/스마트폰 이름이 새겨져있다. 피처폰 브랜드였던 애니콜은 2010년까지 사용했고 2021 시즌은 Galaxy Z Fold3|Flip3가 새겨져있다.
  •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1985년 한국시리즈를 무산시켰다.
  • 최초의 한국시리즈, 최초의 플레이오프, 최초의 준플레이오프를 모두 경험한 팀이다. 최초의 한국시리즈와 플레이오프 상대 팀은 모두 OB 베어스였으며, 최초의 준플레이오프 상대 팀은 태평양 돌핀스이다. 최초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그 해 페넌트레이스 성적이 너무 좋아서 경험하지 못했다.
  • 포스트시즌 한정 전승준포스트시즌 한정 전패준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포스트시즌 한정 전승준은 1990년, 포스트시즌 한정 전패준은 1987년).[121]
  • 삼성에서는 개념이었던 감독이 타 팀에 가서는 역대급 막장이 되거나, 그 반대로 딴 팀에서는 명장인데 삼성에서는 도무지 적응 못하고 말아먹는 사례가 종종 보인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백인천. 김응룡도 한화에 가서는 막장 운영을 보여주며 커리어의 마지막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류중일 감독도 LG 감독이 되고 나서부터는 이 대열에 합류 중... 이었다가 2019 시즌에 살아났다. 또 21세기 들어 SK 감독 시절에 한해 김성근은 삼성에서는 흑역사급 추태만 보여준 희한한 경우이긴 한데, 삼성 감독 시절 이전에도 투수 혹사로 악명 높은 감독이었으니 예외가 있다면 정동진 감독인데, 1994년 태평양 돌핀스를 한국시리즈까지 올렸다.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 시절 때와 마찬가지로 LG한테 4대0으로 깨지기는 했지만...
  • 소속 선수가 한국프로야구에 남을 대기록을 세우면 팀이 지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프로야구 1호 홈런, 1호 타점은 1호 패전과 같이 나와버린 건 유명하고, 아시아 리그 신기록으로 인해[122] 허용투수 딱지가 박힌 그 분도 그 경기 승리투수이다. 단, 예외적으로 양준혁이 2000안타를 기록했을 때에는 팀이 이겼다.(6대1로 승리, 상대는 두산 베어스) 물론, 기록의 성립 조건 중 하나가 팀의 승리일 때도 예외이다. 권영호의 프로 통산 첫 100세이브, 김시진 이상목의 개인 통산 100승 등, 공교롭게도 100승을 올린 두 명의 등번호가 모두 29번이다.
  • 팀의 우승을 이끈 라인도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이만수-김시진-장효조로 유명한 통합우승 트리오와 이마양, 최채박, JOKKA, 포스트시즌 한정 철벽의 수비라인이었던 김재걸- 박진만- 신명철 트리오 같은 식.
  • KBO 역사상 두 번밖에 없는 디펜딩 챔피언을 2위로 내리고 우승한 전년 2위팀이다. 1984년 롯데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 이듬해 롯데를 2위로 내린 것도 모자라 한국시리즈 행 사다리를 걷어찼으며, 2010년에는 SK에게 한국시리즈에서 0-4로 압살당했지만 다음해 한국시리즈에서 꺾고 우승했다.
  •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된 그림판 마스코트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잘 나온 디자인이다. 물론 여러 스포츠에서 우려먹긴 했지만(농구, 배드민턴, 럭비단, 배구단)... 2008년부터 팀 로고와 색상이 바뀌었어도 디자인은 그대로인 듯. 가히 본좌급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캐릭터 디자인은 비슷하나 전기형(1995년~2007년)은 원정 유니폼 색과 같은 파란색, 후기형(2008년~2015년)은 짙은 하늘색이다. 전기형 마스코트는 2002년, 2005년~2006년, 후기형 마스코트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 1995년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5회와 6회의 대량 득점으로 역전했다가 재역전패를 거둔 바 있다. 그 당시 7회에 11점이나 실점했는데, 이닝 점수를 두 자리로 찍을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11 대신 B라는 글자가 찍혔었다. 2008 시즌에도 SK 와이번스한테 0-18로 처참하게 패배했는데, 8회에 11점을 실점하는 바람에 전광판에 B가 찍히는 진풍경을 13년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로 삼성 라이온즈는 B성 라이온즈라는 별명을 얻었다.[123] 2013년 6월 6일에는 이닝별 점수는 아니고 총 사사구 수 11개를 기록하며[124] 또 전광판에 B를 띄웠다. 최신식 전광판이 있는 라팍으로 홈구장을 옮긴 2016 시즌부터는 이 광경을 볼 수...있다! 3루측 띠전광판이 예전 시민구장 방식을 따르는지라 유일하게 점수판에 알파벳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선수단 소개는 공홈이 KBO 홈페이지에 비해 더 깔끔하다. 2011년 6월에 새로 홈페이지를 단장했다. 팬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자기 소개 영상으로, 코칭 스태프부터 신고 선수까지 자기 소개 영상이 있다. 단점이라면 피드백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업데이트도 상당히 늦다.
  • 왕조시절의 선수들이 전부 개그 본능이 충만하다. 대표적인 개그맨 박석민을 시작으로 채태인, 정인욱, 안지만, 진갑용 등 거의 모든 선수들이 입담이 좋고 성격이 밝다. 외모에서도 날카롭거나 잘생긴 선수들은 딱히 없고 개구장이 같이 정감가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수들과 외부 영입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덕분에(?) 당시 8개 구단 팀들 중 가장 팀 분위기와 팀워크가 좋았던 팀들 중 하나로 뽑힌다.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 개그 라이온즈.
    • 개그 라이온즈라는 별명에 걸맞게 마스코트인 사돌이와 사순이( 블레오)의 엽기 행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선수들의 외모가 역변하는 것을 삼적화라고 한다. 해당 문서 참조.
  • 최근 몇 년 동안에는 거의 없었지만, 옛날에는 빈볼 시비가 여러 차례 있긴 있었다.( 배영수- 펠릭스 호세, 이승엽- 서승화)
  • 2008년 7월 19일 토요일, 삼성은 1985년 통합 우승 기념 올드 유니폼을 입었는데 초반에는 한화가 2-1로 승기를 잡을 듯했으나 실책과 투수의 폭투로 인해 2-2 동점, 박한이의 역전타로 4-3으로 승리했다. 올드 유니폼은 의외로 예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후로 올드 유니폼 데이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미스터리.[125] 왜 안 하는가 의문이 들겠지만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하지 않아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올드 유니폼 데이를 한 2008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9년, 2020년 다 끝이 좋지 않았다. 특히 라팍으로 옮긴 이후인 2016년부터는 8위 이하의 성적으로 끝내서 올니폼에 혐오감을 느끼는 팬마저 많아졌다. 야구계의 저주들에서 올드 유니폼의 저주 참고.
  • 전 응원단장인 김용일이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용일 문서 참조.
  • 오래된 특징으로 유독 외국인 투수와 신인 투수에게 약하다. 외국인 투수에게 약했던 역사는 꽤 오래되어서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내내 약했으며[126] 소위 말하는 먹튀급 선수를 제외하고는 삼성 상대로 성적이 안 좋았던 투수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 거기에 어느 순간부터 신인이나 1군 등판 경력이 거의 없어 처음 만나는 투수들에게도 약점을 잡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이승우, 강철민, 송창식, 유희관 등. 특히 강철민은 사이버 투수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며 송창식도 버거씨병 이후 복귀해서 첫 승리를 삼성에게 따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좀 심각한 수준. 하지만 두 번째로 만나면 얄짤없다. 그래서 감독들이 삼성 상대 첫 경기를 치룬 투수들을 다시 올리면서 "저번에 잘 던졌으니 삼나쌩이겠지"라며 방심하다가 역관광당하는 사례도 많다.[127] 팬들 중에서는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같은 에이스 투수에게도 물론 약하다면서 종특으로 꼽는 사람도 있는데 [128] 그리고 애초에 잘하니까 에이스인 것이고 특정팀에 유독 털리면 에이스 소리 못 듣는다. 류현진이 특정팀에 특별히 약했던가? 다시 말해 에이스니까 강한 거지 삼성이라서 에이스가 이긴 게 아니란 소리.
  • 한때 응원단이 최대 약점이라 불렸던 적이 있다. 배영수와 입단동기인 치어리더 노숙희가 2013년까지 활동했을 정도로[129] 구단에서는 치어리더 교체에 큰 관심이 없었다. 90년대 후반에는 박채경과 김순희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치어리더도 있었으나 몇 년 후, 한 명은 결혼을, 한 명은 유학을 떠나며 치어리더에서 은퇴하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 LG 트윈스 → SK 와이번스의 강윤이, NC 다이노스의 김연정, 심지어 넥센 배트걸 민수진과 롯데 배트걸 신소정도 전국적으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삼성 치어리더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한 때 삼성 치어리더는 SSAT 성적순[130]으로 뽑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이수진을 비롯한 새로운 치어리더들의 등장으로 삼성팬들은 드디어 잔혹사가 끝났다며 기뻐하고 있다. 또한 응원가는 김용일이 응원단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스포츠쟈키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어 여전히 현 응원단장 옆에서 활동하며 희망이 보이질 않고 있다...가 2016년 시즌 종료 후 그만두었다.[131] 1990년대까지는 김한수 등의 괜찮은 응원가도 있었으나, 응원단장 김용일의 장기집권으로 흑역사가 되었다. 팀 응원가에 대해서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도 괜찮다는 평이 있으나, 선수 응원가가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정도로 충격과 공포의 수준이다. 그나마 2013 시즌에 모든 선수 응원가가 재녹음되면서 채태인, 최형우 등 일부 선수 응원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KBO 전체 수준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진다는 평이 다수다.
  • 대구 지역을 연고로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유독 여름에 승률이 좋다. 다른팀은 퍼질 때 "대구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라는 듯 선수들이 체력 저하 없이 멀쩡하게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오죽하면 "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다 죽었다"는 구단 관계자의 농담까지 나올 정도이며 이를 빗대서 봄데, 여름성, 가을슼, 겨울쥐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법칙은 2013년 들어 깨지나 싶었으나, 개막 한 달동안 단 3승밖에 못 거두며 최하위를 맴돌았던 2017 시즌 여름 6월 월간 승률 5할을 찍고 분위기 전환에 성공하며 뜬금없이 부활했다.
  • 다른 팀 선수들 프로필 사진은 홈 유니폼을 입고 찍으나[132], 라이온즈만 원정 유니폼을 입고 찍는다.
  • 2018년 전반기 기준 유일하게 모기업 외 유니폼 스폰서가 없는 프로야구단, 아니 프로스포츠단이었다. 다른 팀은 유니폼만이라도 비 모기업 제품을 쓰지만 삼성 라이온즈만 광고 패치는 물론이고, 유니폼과 모자 및 의류 제작사까지 삼성 계열사 것이다. 다른 삼성스포츠단의 경우에는 과거에 자사 용품사(라피도)를 쓰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 사라졌고,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이후에는 외부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또한 2020 시즌부터 유니폼 제작사가 벡스에서 언더아머로 바뀌면서 이 특이성은 사라지게 되었다.
  • 나무위키 내에서는 삼성팬이 의외로 초강성팬덤 중 하나다. 대구아재 문서 참고.
  • 올드 멤버 중에서 유독 대구 지역 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출신이 많다.[133] 이에 해당하는 선수들로는 류중일(경북고-한양대), 장효조(대구상고-한양대), 이만수(대구상고-한양대), 김성래(대구상고-한양대), 김용국(대구상고-한양대), 김현욱(경북고-한양대), 성준(경북고-한양대), 오대석(대구상고-한양대) 등이 있다. 한편 이승엽 경북고 졸업이후 한양대 진학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현재는 대다수가 고교 졸업이후 바로 프로에 입단하는 경우가 많아 지면서 스쿼드에서 대구 지역 고교 - 한양대 출신의 선수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최채흥(상원고-한양대)이 등장하여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박해민 한양대 출신[134] 선수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2021시즌 종료 이후 FA LG 트윈스에 이적했다.
  • 외국인 선수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출신 선수를 많이 영입한다. 타일러 클로이드를 시작으로 하여 다린 러프, 벤 라이블리, 데이비드 뷰캐넌, 호세 피렐라까지. 혹자들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마이너리그 한국지부라고(...)[135]
  • 상대적으로 2루수가 취약한 포지션이다. 김성래, 강기웅을 제외하면 그나마 정경배, 신명철이 돋보였으나 유리몸 조동찬이나 백업 수준의 김재걸, 박정환같은 그저그런 선수들도 2루수였다. 공수겸장인 야마이코 나바로가 삼성 통합우승 시절 드디어 이 자리를 매웠으나 그마저 떠나고 난 이후는 뭐...... 2019년 스프링캠프에서는 이학주와 김상수가 번갈아 유격수-2루수를 보고 있었고 결국 김상수가 그 해부터 2루수로 낙점되었다. 그래도 김상수가 2019년 약간의 반등 후 2020년 리그 상위권 2루수가 되나 싶었지만 2021년 공격력에서 망하면서 아직 최상급 2루수 배출은 숙제로 남게 되었다.
  • 과거 이 항목에도 몇번 있다가 지워졌지만, 타자조 일부의 팬서비스가 좋지 않기로 악명 높았다[136]. 차차 개선되어야 할 부분. 실제로 2017 시즌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당시 임시 주장[137]이던 박해민이 향후 팬서비스 개선에 힘쓰겠다고 홈구장 경기 종료후 선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아졌다. 과거 예전 감독이였던 류중일의 황태자 김상수의 경우 팬서비스 및 사회공헌도 찬사를 받는 중.
  • 한 때 개념 운영으로 칭송받던 팀이었으나 라팍으로 옮긴 후 막장운영으로 비판받고 있다. 합리화를 외치며 선수들을 안 잡아 전력이 급락했고[138], 한정판 물품 무한 재판매로 크게 비판을 받기도 했고, 성적 나쁘다는 핑계로 팬 행사를 안 하기도 했으며, 선동 금지라는 핑계로 현수막을 제지하기도 했다. 점차 나아지는가 싶더니 2018년 스페셜 유니폼 데이를 취소하는 등 아직 막장기가 남아 있다.
  • 이 팀을 거쳐간 투수들 중 NPB로 진출한 임창용, 오승환은 한결같이 악성 안티 요미우리 성향이 높은 팀으로 가게 됐다. 그리고 투수로 입단했던[139]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갔다.
  • 창립 멤버 구단들 가운데 KBO 한국시리즈 우승이 가장 늦다. OB 베어스가 전신인 두산 베어스가 리그 원년인 1982년도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고[140] 삼성과 더불어 '진골' 창단 멤버인 롯데 자이언츠가 1984년 첫 우승을 이뤄냈으며[141], 해태 타이거즈가 전신인 KIA 타이거즈도 1983년 첫 우승을 달성한 반면, 라이온즈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은 무려 2002년, 그러니까 21세기에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셈이다. 구단의 첫 우승이 1985년이지만[142] 이 당시엔 전, 후기리그 통합우승이었던 관계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진짜 우승으로 간주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143]. 넓게 적용해 MBC 청룡이 전신인 LG 트윈스까지 창립 멤버로 쳐준다면 트윈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 1990년이므로 제일 늦은 것이다.
  • 우승을 확정지은 지역은 3개로, 오래된 순서대로 부산광역시(1985), 대구광역시(2002, 2013), 서울특별시(2005, 2006, 2011, 2012, 2014)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상대는 총 8팀으로, 한국시리즈 나가봤다는 팀들은 웬만하면 삼성과 최종우승을 놓고 다투었다고 보면 된다. 2022년 기준으로 삼성과 못 만난 한국시리즈 경험구단은 2010년대 신생구단들인 NC 다이노스 kt wiz다.[144]
  • 2006년 한국시리즈를 제외하고 항상 3루 덕아웃에서 뛰어나와 우승 순간을 만끽했다. 1루에서 우승했다고 뛰어나오는 일은 광주에서 KIA 타이거즈를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볼 일이 없다.[145]
  • 의외로 잘했던 선수들 중에 호남 출신 선수들이 꽤 많다. 박충식, 임창용, 오승환, 최형우, 차우찬 등등... 클래식 라이벌이라는 롯데 자이언츠[146]와는 반대되는 부분이다.
  • 21세기 들어서 對삼성 경기 이후 상대팀 감독의 경질 또는 사퇴 소식이 잦아지면서[예시] 다른 의미로 감독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그중에서 김성근은 삼성에게 지고 세 번이나 잘렸다[148]
  • 팀 자체 징계가 타 팀에 비해 상당히 세다. 2011년 6라운드 4순위로 지명되었던 김준희는 경기도 치르기 전에 음주운전을 저질러 바로 임의탈퇴당했고, 정형식도 사람은 안 쳤다만 음주운전 사실을 선수가 은폐했다 걸려서 바로 임의탈퇴당했다. 도박 사건에 연루된 임창용벌금형 선고 즉시 방출, 안지만은 도박 사건 연루때는 재판을 못 해서 살았긴 했다만, 얼마 뒤 도박사이트 개설 가담이 걸려서 즉시 계약 해지를 당하고 계약금 중 일부인 21억원을 구단에 도로 내놔야 했다. 자체 징계의 강도 면에서 비교되는 팀이 KIA 타이거즈.
  • 팀의 레전드급 선수들 대부분의 말로가 별로 좋지 않다. 그나마 현재까지 처지가 양호한 사람은 양준혁[149]이나 류중일, 권오준 정도밖에 없고, 그 외의 인물들은 팀과 마찰을 빚어 말년 커리어가 꼬였거나, 이전의 언행 등이 문제가 돼 은퇴 전후로 여론이 나빠지는 등 커리어 끝을 좋게 맺은 경우가 별로 없다. 삼성의 원조 에이스 김시진과 타격의 달인 장효조는 선수협 파동으로 구단 눈 밖에 나버려 롯데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한 뒤 그곳에서 쓸쓸하게 유니폼을 벗었으며, 당대 최고의 포수 이만수 역시 말년에 본인의 대우 때문에 구단과 마찰을 빚고 결국 은퇴식 하나 없이 쫒겨나듯 그라운드를 떠났다. 삼성 왕조의 배터리를 책임졌던 진갑용의 도핑 전력과 안지만의 원정 도박 의혹 및 불법 인터넷 도박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구단 역대 최고의 3루수로 평가받는 김한수는... 감독 시절의 처참한 팀 성적으로 이제는 오히려 삼성빠들의 금지어가 돼 버렸다. 한때 간첩도 안다는 말까지 있었던 국민타자 이승엽은 KBO 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를 갖고 본인의 은퇴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쳐내는 등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했지만, 현역 시절 본인의 희소성 발언 때문에 은퇴 이후 한때는 호날두 '저리가라' 할 정도로 여론이 나빴으며[150], 또 불혹에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삼성의 선발진을 지탱해준 황태자 윤성환과 차기 영구결번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끝판대장 오승환 역시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여론이 안 좋은 상태다. 결국 윤성환은 또다시 원정 도박 스캔들로 방출되었고 추후 승부조작 사실까지 드러나고 말았다. 비록 팀을 떠났지만 삼성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던 박석민마저 2021년 NC 다이노스 원정숙소 방역수칙 위반 사건으로 그간의 이미지에 큰 흠집을 내고 만 상황. 하지만 이중에서도 정말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사례는 바로 박한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8번의 우승 중 무려 7번을 함께하며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리던 그였으나, 딸의 등교를 위해 차를 몰다 접촉사고를 낸 것이 그만 전날 마신 때문에 음주운전으로 걸리고 말면서 영구결번은커녕 은퇴식도 못 치르고 불명에 은퇴하면서 팀의 레전드로서는 최악의 결말을 내고 말았다.
  • 포털에서 이미지가 가장 좋은 구단이다. 엘롯기 한화, 두산의 경우 인기만큼 팬덤이 크고 사건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해 이 구단들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며 흥참동 팀들의 경우 팬덤이 크지 않아서 반감은 적으나 이 구단들은 사건사고가 워낙 큰 것들이 많아서 그나마 사건사고가 적고 팬덤도 적당한 삼성에 대한 야구팬들의 인식은 호의적인 편이다. 댓글이 사라지기 전 삼성에 대한 기사에서는 5년째 가을야구조차 못 가는 현실에서도 올해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등 전반적으로 훈훈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미화가 과하기도 해서 홍준학이 합리적인 운영을 하는 명단장 취급받는 등의 부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 KBO 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연고지 지방자치단체가 구단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초대 라이온즈 구단주였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 2.5%(5000주)가 이 회장 별세 후 유산 상속 과정에서 대구광역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것은 삼성 측이 대구시에 무상 기부한 것이다. 유족 중 장남이자 열혈 삼빠 중 한 명인 이재용 부회장이 구단 지분을 받지 않고 대구시에 넘긴 것은 "대구가 삼성의 발상지였고 대구시민의 사랑 덕분에 라이온즈가 명문 구단이 될 수 있었던 만큼 지역 사회에 이를 넘기는 것이 맞다"는 이 회장의 뜻을 유족이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LG의 9월 9일, 한글날이 길일인 것처럼 삼성에도 길일이 하나 존재하는데 바로 6월 2일이다. 1999년부터 이날 승률이 굉장히 좋은 편으로 2002년, 2005년, 2010년, 2011년에만 패배했으며 2012년부터는 아예 전승이다.[151] 특히 연승 가도를 달리는 2012년부터는 의미 있는 승리가 많다.[152] 또한 2021년에는 팀의 레전드나 다름 없던 윤성환의 악행이 밝혀지면서 졸지에 홍준학 단장이 재평가 받아 경기 외적으로 길일이 되기도 했다.
  • 신인선수들 같은 경우 입단 후 무조건 3년간 경산 볼파크에서 숙소생활을 해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 동안 1군 출전 시, 구단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된다.
  • KBO에서는 원년 때부터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작은 축에 들어가는 팀이었다.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등이 활약했던 80년대부터 팀의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다른 팀들에 비해 작은 편이었다. 현재도 김상수 김헌곤같은 다소 작은 체구의 선수들이 포진되었고 김지찬, 김성윤같은 160대 초반 선수가 있어서 평균 신장으로는 여전히 작은 축에 들어간다. 공교롭게도 삼성 뿐만 아니라 연고 지역인 대구도 대한민국 지역 중에서는 평균 신장이 최하위권에 있는 지역이다.[153]
  • 한 주간의 경기를 마무리하는 일요일 경기에서 승률이 상당히 좋지 않다. 라팍으로 구장을 옮긴 이후로 일요일 경기 약세가 본격화되었으며 일요일만 되면 이상하게도 고전하면서 허무하게 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022년 5월 무렵부터는 일요일 경기는 꾸준히 계속 이기면서 일요일 경기 연승을 달리며 일요일 약세를 극복하고 있다.
  • 팀 창단 이후 1994년과 2018년 딱 두 차례를 빼고는 FIFA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어떻게든 포스트시즌에 나갔고 대부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우연이라기 보다는 그냥 삼성의 전력이 워낙 극강이어서 가을야구 진출이 당연했기에 이런 기록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시즌에 못 나갔던 두 해는 1990년대 중반 1차 암흑기 2010년대 후반 3차 암흑기였다.

15. 관련 문서

1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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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우승팀 우승 횟수
1982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1회
1983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1회
1984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롯데 자이언츠
1회
1985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9).svg 삼성 라이온즈
1회
1986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5회
1987
1988
1989
1990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png LG 트윈스
1회
1991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6회
1992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롯데 자이언츠
2회
1993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7회
1994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png LG 트윈스
2회
1995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2회
1996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96~2001).svg 해태 타이거즈
9회
1997
1998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1회
1999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1994~2006).svg 한화 이글스
1회
2000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2회
2001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svg 두산 베어스
3회
2002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삼성 라이온즈
2회
2003 파일:현대 유니콘스 엠블럼.svg 현대 유니콘스
4회
2004
2005 파일:삼성 라이온즈 워드마크(1995~2007).svg 삼성 라이온즈
4회
2006
2007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2회
2008
200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01~2009).svg KIA 타이거즈
10회
2010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3회
201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8회
2012
2013
2014
2015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5회
2016
2017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2017~2020).svg KIA 타이거즈
11회
2018 파일:SK 와이번스 엠블럼(2006~2019).svg SK 와이번스
4회
2019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6회
2020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NC 다이노스
1회
2021 파일:kt wiz 엠블럼.svg kt wiz
1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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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 남자 탁구단 삼성생명 여자 탁구단 삼성생명 레슬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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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K리그1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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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대구 FC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대구광역시 연고 기타 구단 보기, 대구광역시/스포츠/역사, 그라지예, 대구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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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년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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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1] 삼성 라이온즈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gif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해태 타이거즈[2] MBC 청룡[3] OB 베어스[4]
[1] 舊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의 전신.
[2] 現 KIA 타이거즈의 전신.
[3] 現 LG 트윈스의 전신.
[4] 現 두산 베어스로 팀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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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 사무실 [2]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3] 서울 사무실 [4] 삼성화재 역삼빌딩 20층 [5] 2014년부터 삼성 내의 프로스포츠단을 인수하기 시작하여 2016년 1월 1일부로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 산하로 편입되었다. [6] 리그 연고지 제도 개편으로 인한 경북 연고 소멸일 뿐, 1차 지명 권한이 날아간 건 아니다. 현재 1차 지명 권한은 대구/경북/강원영동 [7]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인사팀장으로 근무하던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시도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대법원 판결로 이 형량이 확정되면서 KBO 정관에 따라 2026년 2월 3일까지 KBO 이사 직무가 정지되었다. 다만 구단주 또는 구단 대표이사 직무정지는 아니므로 직무정지 기간 동안 KBO 이사로 활동할 수 없을 뿐 이사회 활동을 제외한 구단 내외부 활동은 가능하다. [8] 제일기획 경영기획실장 겸 부사장. 원기찬의 KBO 이사 직무정지 기간 중 공동 대표이사 및 KBO 이사로 활동. [9] 다만, KBO 리그 기준으로 만원 관중은 24,000명이다. [10] 언더아머가 디자인한 선수용 의류들이 너무 이뻐 판매도 해달라는 삼성 팬들이 많다. 2020년에는 레플리카 자켓, 후드를 출시했으며 2021년에는 하반기에 어센틱 유니폼을 출시했다. [11] 다만 이 유니폼의 값이 어마어마한데, 가뜩이나 킷 스폰서가 없던 19년도 시절에도 유니폼이 비쌌던 삼성인데, 거기에다가 언더아머 브랜드값까지 더 하니 지갑 열기 무서워지는 금액이다.. 무려 노마킹상태가 124000원.. 마킹까지 한다면 144000원이지만, 2022년 유니폼 디자인이 변경됨에 따라 2021년 언더아머 유니폼도 20% 할인을 해 99200원에 판매중. [12] 단일 리그 기준. [13] 페넌트레이스 KBO 최다 우승 팀이다. [14] 전기, 후기 리그 [15] 전기, 후기 리그 [16] KBO 포스트시즌 최다 진출 팀이다. [17]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11,825명. [18]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3,292명. [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들은 예외 [20] 다른 한 팀은 롯데 자이언츠. [21] 양대 리그, 전·후기 리그 포함시 17회. [22] 사실 2009년만 진출했다면 19년 연속 진출이었다. [23] 롯데 자이언츠보다 약간 진한 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리 블루에 더 가까운 색. [24] 로열 블루나 코발트 블루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25] 17, 18, 19시즌 문서 FA 계약란 참조. [26] 정용진의 이마트가 아니라, 정유경의 신세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신세계그룹이지만 별도의 법인이다. [27] 그 외 다른 스포츠단들은 전부 모기업의 부서로 포함된다. [28]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2001년 기아자동차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를 출범시킨 이후에도 현대자동차 현대 유니콘스 지분을 유지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선례가 존재한다. [29] 삼성전자(27.5%) 삼성SDI(15.0%) 삼성전기(12.5%) 삼성물산(9.5%) 등. [30] 아무리 야구단이 적자를 본다고 해도 지분 67.5%를 6억 7천만 원에 시장에 내놨다면 아파트를 팔고 빚을 내서라도 살 국민들이 넘쳐날 것이다(...). 그룹 간의 거래였기에 가능했던 일. [31] 마스코트 엠블럼을 메인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 [32] 기존에 있던 야구공 모양은 사라졌다. [33] 물론 이 엠블럼도 기존부터 존재하긴 했었다. 메인이 아니였을 뿐. [34] 현재는 이승엽 야구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근처에 대구 FC 축구장이 있다. 거의 나오고 나서 1~3분 정도. [35] 2020년부터 코로나 여파로 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문서 참고 [36] 당시 야구 국가대표의 70% 이상이 대구, 경북 출신이었다. [37] 대구, 경북 지역 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을 실패해서 타 지역 고교에 간 일이 비일비재했을 정도 [38] 이는 2011년 관중 수보다 무려 10만 명(20%)이나 많은 수치이다. [39] 그리고 그 10,000석조차 2010년대에는 9,200석으로 줄어들었다. [40] 과거 삼성 라이온즈의 경우 이-마-양으로 대표되는 화끈한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선동열식 야구는 말 그대로 정반대인 만큼 기존 팬들의 반감을 샀고, 재미있는 야구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신규 팬 유입도 적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가면서 더더욱 심해졌었다. [41] 라팍과 경산 시내 간의 거리가 대구 구 도심 또는 성서지역 간의 거리보다 더 가깝다. [42] 이들은 1980-90년대에 삼성 골수팬들을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장본인들이고, 그들이 삼성을 지배하고 있어서 당연히 좋아할 래야 좋아할 수 없었다. 거기다 이승엽이 요미우리로 이적하면서 정점을 찍었는데 요미우리 경기 시청률이 훨씬 높았다. [43] 그래도 여전히 아저씨풍이 10개 구단들 중 가장 강력하다. [44] 군인 팬들도 있는데, 공군에서도 제11전투비행단, 공군방공포병학교에서 많이 보러 간다. 부대에서도 야구 이야기 하면 삼성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편. [45] 일명 대구아재로 불리는 중년 남성 팬들이다. 이들은 팬서비스보다 성적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46] 2016~2020년의 일명 99688 기간은 구단 40년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어서 특히 과거 명문 이미지에 익숙하던 팬들은 현타가 오기 쉬웠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지방구단이 관중 수가 중간은 갔다는게 위안거리. [47] 이런 분위기는 2010년대 후반 암흑기를 보내면서 어느 정도 자정이 이루어졌다. [48] 삼성 라이온즈는 전체적으로 봐도 남성팬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그래서 삼성 관중측을 비추면 비교적 시꺼먼 남정네가 득시글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관중수입의 절대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왕조시절에는 아재팬들로만으로도 충분히 경기장을 쉽게 채웠다. [49] 구자욱이 그나마 나이가 많은 축에 들지만 93년생이다. 마무리 투수 최충연은 97년생이고, 양창섭은 99년생. [50] 심지어 마케팅 팀장의 팬 무시 등으로 프런트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사실 이 사건도 팀 성적이 개판이라서 일어난 거다. 왕조시절 성적이었으면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재팬들은 성적이 장땡이기 때문이다. [51] 대표적으로 주말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를 개방하고 어린이와 부모가 캐치볼을 할 수 있는 그라운드 캐치볼 행사. [52] 타 지역 출신 팬들의 경우 팬서비스로는 톱을 달리는 SK식 서비스도 싫어한다. KBO 리그 문서의 팀명에 지역명이 없는 이유에서 보듯 워낙에 지역을 강조 일변도이다 보니 심리적 거리감이 드는지라. [53] 당장 2018~2021 시즌 팀 슬로건도 "NEW LIONS!"이다. [54] TK못지 않게 PK출신들도 상당히 많아서 삼성 못지 않게 NC 다이노스와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인사들도 많다. [55] 여기에 적힌 정치 인사들은 극히 일부다. 즉 삼성을 응원하는 정치인사들은 물론 관료계와 장교단의 고위수뇌부들은 어마무시하게 많다. 그래서 진보 좌파 성향이 강한 연예계에서 가장 안 좋아하는 야구단으로 낙인 찍혔을 정도. 볼트체는 정계인사들이다. [56] 선수 개인 인스타그램에 가보면 삼성 유니폼을 입고 대구시민구장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 [57] 본인의 페이스북에 푸른색 원정 김상수 유니폼을 입은 사진을 올리면서 "김상수 유니폼 개시가 새 컬링 유니폼 개시 순간보다 더 설렌다"고(...) 삼밍아웃을 해버렸다. [58] 이후 이승엽의 은퇴식에서도 사회를 맡았었다. [59] 그런데 2017년 9월 5일 한화 이글스의 홈 경기에 초청되어 신진식 감독이 시구를 맡았고 박철우 선수가 시타를 맡았는데, 신진식 감독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던 반면 박철우 선수는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었다(...) 소속팀 삼성화재가 대전 연고팀인 만큼 대전 연고팀끼리의 유대관계 강화를 위해 이뤄진 시구라서 그랬다. 영상 [60] 유담도 삼성팬이다. [61] 평소에는 빨간 하트를 남발하지만 원태인의 인스타그램에서만큼은 파란색 하트를 쓴다. [62] 삼성은 그날 연장전 패라는 혈압오르는 경기력을 보였다. 덤으로 그담날과 다다음날 시구는 올림픽 출전한 TK출신인 원래 시구자들이 각각 스케줄 경북대학교병원 입원 때문에 나가리행. [63] 사실 원래 지역구는 옆 지역구인 수성구 을인데 21대 총선 때 옆 지역구인 수성구 갑으로 옮겨 당선되었다. 참고로 수성구 을 지역구의원인 홍준표는 NC 다이노스팬. [64] 2000년대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의 대들보였던 노숙희 놀레벤트 팀장, 2010년대 쌍두마차 중 한 명이었던 이연주 전 치어리더도 대구 출신이다. 현재 팀장인 이수진 치어리더는 구미시 출신. [65] 대구, 경북지역 행사에도 놀레벤트 소속 치어리더들이 많이 참여한다. [66] 최근에는 인접한 충청권 출신 치어리더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67]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은데 2016~17년에 블루팅커스로 활동하던 서유림 치어리더가 한화로, 2018~19년에 활동하던 박현영 치어리더가 SSG로 이적한 사례가 있다. [68] 양 팀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수원"과 "삼성"에 대응한다. [69] kt가 압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지만 상대전적은 삼성이 압도우위이다. 작년에는 삼성이 kt에게 압도적으로 썰린 것과는 정반대. [70] K리그1에 존재하는 현대가 더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전북 현대 모터스의 모그룹 현대자동차그룹 울산 현대의 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삼성 라이온즈의 모그룹 삼성그룹과 SSG 랜더스의 모그룹 신세계그룹은 엄연히 다른 기업이지만 나란히 창업자가 똑같고 현재도 기업 총수 간의 친인척 관계( 정의선- 정몽준, 이재용- 정용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71] 라이온즈의 역대 투수 중에서는 김시진, 박충식, 임창용, 배영수, 안지만, 윤성환 정도가 레전드 플레이어로 꼽을 만하지만 6명 모두 삼성이 아닌 다른 팀에서 은퇴했거나 말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나마 영구결번의 가능성을 엿볼 만한 투수가 있다면 오승환 정도일 것이다. [72] 구단주 취임 당시는 삼성그룹 부회장이었고 1987년 아버지 이병철의 사망 이후 회장이 된다. [73] 이병철의 넷째 사위이며 이건희와는 매형-처남 관계였다. 자세한 인물 이야기는 범 삼성가 항목 참조. [74] 2000년 초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 때 입당해 16대 총선에서 수원 팔달 선거구에 출마, 남경필과 겨뤘으나 낙선한 뒤 곧바로 정계에서 은퇴했다. [75] 구단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76] 성균관대학교 이사 겸임. [77] 중학생이던 1957년에 동인천중을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야구사에 기록된 최초의 퍼펙트 게임. [78]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에도 뽑힌 적이 있으나 은퇴 후 한동안 야구계에서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부단장으로 선임됐다. 게다가 부산 출신이라 대구·경북 연고인 삼성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 김삼용이 부단장이 된 건 이건희 회장과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추천했기 때문(김삼용과 천신일은 중, 고교 동문이다.). 시즌 초반부터 저조한 팀 성적을 빌미로 서영무 감독의 작전권을 빼앗아 이충남 조감독에게 이양하는 등 잡음만 일으키다 결국 잘렸다. [79]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1985년 빙그레 이글스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 [80]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18년간 감독을 했으며 해설가로도 유명했던 김계현의 아들. [81] 삼성 라이온즈의 초창기 프런트 중 한 명으로, 선수단 매니저로 프런트 활동을 시작했다. [82] 2006년 신설됐는데, 송삼봉이 부단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후 후임 부단장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83] 삼성 입사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이 삼성 라이온즈였다. [84] 공식적으로는 감독 대행이었지만 삼성 구단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란에서는 정식 감독으로 인정하고 있다. [85] 감독대행 성적 포함 [86] 장효조 감독대행 성적 포함 [87] 사실 이승엽을 발견한 건 우용득 감독이었고, 그런 이승엽을 최정상급 타자로 발전시킨 것도 박흥식 코치와의 합작품. [88] 이때 이승엽-정경배-김태균-김한수의 내야 라인은 당시 최강급으로 평가 받았다. [89]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백인천의 커리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백인천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중견수)다. 포수로 뛴 시기는 고등학교 때와 실업 야구 농협 시절, 그리고 도에이 플라이어즈 입단 초창기 때였다.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한 이후에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외야수로 활약했다. [90] 외국인 선수 한 명만 잘 뽑아도 팀 순위가 두세 계단씩 오르내릴 만큼 규모가 작은 한국 야구계에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자기 팀의 주축 선수를 빼가는 삼성이 다른 팀 팬들의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91] 사실 이만수의 팬들은 대부분 4~50대의 아저씨들이 많고 신세대 삼성 팬들은 이만수에 대해 특별한 감정은 없다. 오히려 2012년 이후 SK에서의 삽질 때문에 이만수를 꺼리는 삼성 팬들이 늘기도 했다. [92] 2011 시즌 삼성의 1루수는 채태인, 조영훈, 모상기 정도인데 셋의 평균 타율은 2할 2푼 정도, 그들의 홈런 개수를 모두 더한 것이 2011 시즌 일본 퍼시픽 리그의 이승엽의 홈런 개수와 같을 정도로 막장이었다. [93] 소위 '믿음의 야구'라 하는데, 5회 정도면 선발을 내려 버리는 선 감독과 달리 선발을 최대한 믿고 길게 쓰는 투수 운용으로 인해 불펜의 과부하를 최대한 방지하고 선발들의 책임감을 강화시켜 2011 시즌 삼성의 선발, 불펜의 성적을 모두 크게 향상시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94] 일부 팬들은 종신감독 시켜야 한다고까지 했다. [95] 사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종범까지 위에 언급한 양준혁처럼 은퇴시켜 버렸던것도 안티가 많아지게 된 원인중 하나다. [96] 당시 규정상 전후기 모두 1위 차지하면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 우승이었다. 준우승은 삼성 라이온즈를 제외한 팀들 중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롯데 자이언츠. [97] 그러나 1985년과는 달리 통합 우승은 하지 못했고 2위팀간 플레이오프를 해서 이긴 팀과 한국시리즈에서 대결해야 했다. [98] 이 기록은 팬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기록 중 하나로 과거 구단 중 없어진 구단까지 모든 개별 구단을 기준으로 하면 현대 유니콘스도 포함된다. 단, 삼청태현으로 묶으면 삼청태가 다 각각 꼴찌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고 현대 유니콘스의 12년만을 기준으로 꼴찌가 없는 것. MBC 청룡의 경우에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존재한 팀이라, 전기리그 꼴찌(전후기 통합 승률은 꼴찌에서 2등)를 해봤고, 해태 타이거즈는 전후기리그 시절에 꼴찌를 안 했지만, 양대리그 시절 드림리그 꼴찌를 했다. [99]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가 창단 첫 시즌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최하위를 기록하지 않았으나 그 NC마저 2018년 시즌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면서 삼성이 유일한 정규시즌 최하위 미기록 구단으로 남게 되었다. [100] 2011년 9월 11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18년 7월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KBO 구단 중 최초로 통산 2500승을 달성했다. 2021년 9월 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여 통산 2700승을 달성하여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다. [101] 그래서 롯까들은 꼴리건에게 맞아 죽기 딱 좋은 시나리오로 마산 구장에서 롯데가 졌거나 홈런 맞았을 때, 상대가 삼성인 경우를 꼽았는데 꽤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단, 특정 팀 상대 최고 승률은 1982년의 OB 베어스 삼미 슈퍼스타즈 상대로 전승을 해서 10할의 승률을 찍었으나, 당시엔 팀간 16경기씩 했다. [102] 2017년까지는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2003년 홈런 213개.)까지 갖고 있었지만 2017년에 SK 와이번스가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서 무려 234개의 홈런을 터뜨리고 단일 시즌 팀 홈런 1위 기록을 경신하면서 2위로 밀려나게 됐다. [103] 17회로 리그 최다. 프로야구가 2021년 기준 출범 39년이니까 2년반에 1번 꼴로 한국시리즈에 오른 셈이다. [104] 실제로 대구와 경북 지방의 '야구팬은 아니지만 굳이 응원하라면 고향 팀인 삼성을 응원하는 사람' 중에서는 매년 10월 말에 지상파에서 삼성 경기를 중계하니까 원래 야구는 10월 말까지 하는 스포츠라고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정도였다. [105] 2위는 두산 베어스의 8회. [106] 코시 기준으로만 따져도 7회로 역시 2위다. [107] 당시 삼성 구단에서도 85년 전·후기 리그 통합 우승을 제대로된 우승으로 여기지 않아 선수단에 대한 포상이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계속된 채찍질이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전까지 지나친 부담감으로 구단을 짓누르게 되었다. 물론 이후 2005년 우승 당시 사용한 V3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 삼성 구단에서도 85년 통합 우승을 정식 우승의 역사로 여기고 있다. [108]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면서 몇몇 분탕꾼들이 V7 대신 V6(+1)이라는 문구로 85년 통합 우승을 평가절하 하지만 KBO에서는 정식 우승으로 인정하므로 V7이 맞다. 몇몇 언론들이 이런 기사들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109] 보통 최고의 한국시리즈로는 최동원의 1984년, 역전 백투백 2002년, 수중 혈투 2004년을 꼽는다. 참고로 3시리즈 모두 삼성이 출전. [110]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이 있긴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111]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만루 홈런을 모두, 그것도 이선희라는 투수가 허용하였다. [112] 이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을 깬 감독이 2009년 당시 선동열 감독. 별 의미없는 계산이지만 2009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지 않았으면 2015시즌까지 총 19시즌 연속이 된다. [113] 물론 와일드 카드 제도가 생기기 전 KBO에서 유일한 사례. 반대로 1995년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4위에 올랐지만 3위인 롯데 자이언츠와 4.5게임차로, 4위와 3위의 승차가 3.5게임 이상 벌어지면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않는다는 당시 KBO 규정에 따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3팀으로 치러졌으며 단일 리그(1989~1998, 2001~) 기준으로는 이 또한 KBO에서 유일한 사례. [114] 포스트시즌 최장 진출 기록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0년대 후반에 강호로 도약한 SK 와이번스가 2007~2012년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과 동시에 한국시리즈 최장 연속 진출까지 기록하고 있었으나 2013년에 귀신같이 몰락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사례와, 암흑기를 벗어나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포스트시즌 단골이 된 롯데 자이언츠도 5년 연속이 전부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롯데 자체적으로는 최다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지만, 대신 1999년 이후로 한국시리즈에 가장 오래 진출을 못하고 있다. [115] 1993~1998년 시즌의 경우 3위와 4위 승차가 3.5경기 이상이면 4위는 탈락하고 3위가 2위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이 중 1995년은 3위인 롯데와 4위인 해태가 4.5게임의 승차였기 때문에 해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1995년 포스트시즌은 OB, LG, 롯데 이렇게 3개 팀만이 참가하게 되었다. [116] 그러니까 지금 와서 당시 성적 보고 그때가 암흑기였구나 하는 팬들 말고 진짜 그 당시에 삼성 야구를 본 삼성 팬들. [117] 삼성 라이온즈 외에 현대 유니콘스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포스트시즌 대결 전적이 있었지만 현대는 2007년 팀이 해체되었다. [118] 이외에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도 현대 유니콘스와 대결한 역사가 있으나, 쌍방울 레이더스와 맞붙은 적이 없다. [119] 영동 지역( 강릉시)만. 영동 지역(강릉시- 강릉고등학교,속초시- 설악고등학교)은 지역 고교 팀을 대상으로 연고 구단 및 1차 지명을 할 권한을 갖고 있다. 영서지역은 한화 이글스가 담당한다. [120] 삼성전자 제품에 새겨지는 삼성 로고 폰트와 라이온즈 CI에 삽입된 SAMSUNG 폰트를 보면 확실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A의 가로획 유무. [121] 전승준의 경우 2003년 SK 와이번스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전패준은 1987년 삼성이 기록한 게 유일하다. [122] 이후 도쿄 야쿠르트의 발렌틴이 경신했다. [123]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삼성은 두산 베어스에게 3회말에 발비노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줄줄이 두들겨 맞으면서 무려 12점을 내줬다. [124] 단, 이건 삼성이 기록한 게 아니고 상대팀인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의 기록. 즉 삼성 타자가 사사구로 출루한 게 11번이라는 뜻. 이때의 B성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도 B성을 떠올렸다 카더라. [125] 현재 올드 유니폼 데이를 가장 많이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비롯하여 두산으로 간판을 바꾼 두산 베어스도 올드 유니폼 행사를 자주 하고 있고, 그리고 여태껏 해태의 무게에 짓눌리던 KIA 타이거즈도 최근에 한 차례 열었던 바 있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올드 유니폼 데이 따위는 꿈도 못 꾸는 한화 이글스조차 2012년 들어 올드 유니폼 데이를 열었다. [126] 이 역사의 종결자는 2005~2006 시즌 현대 유니콘스 소속이었던 미키 캘러웨이가 있다. 2005년 대 삼성전 4승 0패 방어율 1.73/06년 대 삼성전 3승 0패 방어율 1.19. 삼성을 상대로 단 한번도 진적이 없으며 이 시절을 기억하는 삼성 팬들은 캘러웨이를 금지어 취급할 정도다. 전 두산 베어스, kt wiz 소속 더스틴 니퍼트도 삼성 상대로 극강의 모습을 보여 팬들이 두려움을 넘어서 경외의 감정을 가질 때도 있었다. 그나마 니퍼트는 한국시리즈에서 이겨 보기라도 했지만 삼성 공식 페이스북에서 박해민 삼행시로 '해로운 미국인 니퍼트'가 선발되는 등 드립소재로도 많이 써먹는 편. [127] 이게 삼성의 전력 분석 시스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분석 외에도 자신의 팀 선수에 맞춰 상대방 선수의 공략점을 분석을 하는 것의 비중이 큰데 그 때문에 맞춤 데이터가 적은 선수의 경우 쉽게 공략하지 못한다는 것. 그동안의 결과를 보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모양 [128] 물론 에이스들도 날 잡으면 털긴했다. 에이스도 사람이다. [129]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년까지 총 6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현재는 현역에서 은퇴하여 치어리더 팀장으로 있다. [130] 실제로 각 구단에서 응원단은 외부 이벤트기업과 계약하여 SSAT는 드립으로 봐도 된다. [131] 현재는 V-리그 여자배구단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 중이다. [132] 한화도 2018년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바꿨으나 주황색도 엄연한 홈 유니폼이다. [133] 최근에는 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그 예가 조무근. [134] 박해민은 서울 토박이로 영중초, 양천중, 신일고, 한양대학교를 거쳐서 전부 서울에서 학업을 마쳤다. 대학리그에서 우수타자 상을 받았다. [135] 의외로 이 계보는 90년대 해외파 선수로 삼성 역사상 당당히 흑역사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최창양으로부터 시작한다. 최창양은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에서 선수생활을 했었다. [136] 왕조 당시만 해도 김상수 한 명 사인 받았으면 다 받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반면 투수조의 경우에는 예나 지금이나 팬서비스는 확실하다. [137] 김상수가 지속된 혹사를 견디지 못하고 부상으로 드러누웠다. [138] 그러나 2017년 이원석을 저렴한 가격에 잡고 저비용 고효율 FA라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139] 삼성 오자마자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접고 타자를 시작했다. [140] 그 제물이 바로 삼성이었다. [141] 이 역시 삼성. [142] 이를 이룬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143] 사실 구단 자체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가 2005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계기로 구단 역사에 포함시킨것. [144] 2020년이 돼서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시작한 kt는 그렇다 치더라도, NC는 역사에 비해 포스트시즌 진출이 상당히 많은 편이였음에도 삼성과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다. 이는 NC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삼성의 암흑기와 묘하게 겹치기 때문인데, 삼성과 NC가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4시즌과 15시즌에도 직접 맞붙지는 못했으며 나머지 시즌에는 삼성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13,21) NC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거나 (16~17,19~20) 둘 다 떨어졌다(18). [145] 이건 KIA도 마찬가지라 대구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하지 않는 이상 1루에서 뛰어나올 일은 더 이상 없다. [146] 특별히 잘했던 호남 출신 선수들은 없었다. 유망주라 데려왔더니 망한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 [예시] 2002년 KS 패배 이후 LG 김성근 감독 경질, 2011년 8월 19일 문학 삼성전 9:0 패배 이후 SK 김성근 감독 경질, 2013년 KS 패배 이후 두산 김진욱 감독 경질, 2014년 4월 22일 대구 삼성전 1:8 패배 이후 LG 김기태 감독 사퇴[154], 2016년 10월 8일 문학 삼성과의 최종전 이후 SK 김용희 감독 재계약 불발[155], 2017년 5월 21일 대전 삼성전 8:7 패배 이후 한화 김성근 감독 경질, 2018년 6월 3일 마산 삼성전 8:7 패배 이후 NC 김경문 감독 사퇴, 2021년 5월 9일 대구 삼성전 6:8 패배 이후 롯데 허문회 감독 경질. [148] 삼성에서도 1992년에 김성근을 한 번 잘랐다. [149]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람도 선수 시절 해태-LG로 트레이드 당하는 등 온갖 산전수전을 겪었고 은퇴하는 모습도 당시 감독 때문에 사실상 반강제 은퇴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게 좋은 결말을 맺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아예 은퇴식조차 안 열어준 이만수와는 달리 은퇴식 정도는 열어줘서 망정이었지. [150] 물론 이승엽은 나중에 이를 1반성하는 모습을 보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이미지가 어느정도 희석된 덕분에 이 문단에 적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좋은 편이다. [151] 단 1999년 이전에는 특출나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94~6년에는 삼성의 556 암흑기와 맞물려 3연패를 당했다. 그 중에서도 1996년 현대와의 경기는 신인 외야수 장정석에게 만루홈런을 맞은데다가 정명원 이승엽의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진 끝에 패배하며 역대 6월 2일 경기 중 가장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152] 2012년 두산과의 막장 경기 끝에 5할 승률을 기록, 2013년 롯데와의 경기에서 8회의 기적 끝에 승리, 2015년 롯데와의 포항 야구장 경기에서 안지만의 150홀드 기록, 2017년 KIA전 최충연의 첫승, 2020년 LG전 원태인의 무실점 투구, 2021년 SSG전 난타전 끝에 김지찬의 공수 맹활약으로 승리 등 [153] 물론 평균 신장이 큰 편에 들어가는 수도권 지역과 1~2cm 정도 차이라서 크게 의미는 없다.


[154] 다만 자진사퇴가 공식적으로 수리된 것은 5월 10일이다. 하지만 그 기간동안 조계현 수석코치가 사실상 감독대행 역할을 했으니 삼성이 보낸게 맞다. [155] 유일하게 삼성을 이기고 감독이 교체된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