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2:10:38

아바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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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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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와의 병행 칼리파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70px-Fatimid_flag.svg.png 파티마 왕조 | 파일:1280px-Umayyad_Flag.svg.png 코르도바 칼리파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Flag_of_Morocco_1147_1269.svg.png 무와히드 왕조
기타 파일:Tunis_Hafsid_flag.png 하프스 칼리파국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70px-Fatimid_flag.svg.png 소코토 칼리파국 | 파일:헤자즈 왕국 국기.svg 샤리프 칼리파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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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카슈미르 포루스 판찬난다 사칼라 북 사트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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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마크란 인 제국 티아 티아 인 -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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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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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야드 왕조 노예 나자흐 왕조 마흐디 왕조 타히르 하심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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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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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제국 라틴 제국 트라페준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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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
라마잔 카라만 / 잔다르 / 둘카디르 오스만 술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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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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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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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color:#1D1D1D; margin: -6px -1px"
선사 & 고대 중세 & 근세 근대 현대 리비아
T 베르베르 페니키아 카르타고
누미디아
로마 제국 반달 왕국 동로마 제국 우마이야 왕조 피흐리 왕조 무할라브 왕조 아글라브 왕조 파티마 왕조 파티마 왕조 지리 왕조 노르만 무와히드 왕조 하프스 왕조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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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령 리비아 대영 제국 리비아 왕국 리비아 아랍 공화국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리비아 내전
C 펜타폴리스 헬레니즘 제국 동로마 제국 압바스 왕조 툴룬 왕조 이크쉬드 왕조 힐랄족,
술라임족
파티마 왕조
가니야족
아이유브 왕조
F 가라만테스 왕국 베르베르
/
투아레그
프랑스
※ T는 트리폴리타니아 지역, C는 키레나이카 지역, F는 페잔 지역, 붉은색은 튀니지 방면 세력(오스만, 영국 제외), 녹색은 이집트 방면 세력(이탈리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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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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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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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가니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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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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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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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칼리파국
ٱلْخِلافَةُ ٱلْعَبَّاسِيَّة
al-Khilāfatu al-ʿAbbāsiyyah
파일:검은 깃발.svg
국기[1]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Abbasids850.png
서기 9세기경의 최대 강역
750 ~ 1258
1261 ~ 1517[2]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우마이야 왕조 1258년: 일 칸국
1517년: 오스만 제국
위치 서아시아, 아라비아 반도,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수도 쿠파 (749년 ~ 752년)
안바르 (752년 ~ 762년)
바그다드 (762년 ~ 796년)
락까 (796년 ~ 809년)
바그다드 (809년 ~ 836년)
사마라 (836년 ~ 892년)
바그다드 (892년 ~ 1258년)
카이로 (1261년 ~ 1517년)
정치체제 전제군주제
국가원수 칼리파
주요 군주 알 만수르(754~775)
하룬 알 라시드(786~809)
알 마문(813~833)
면적 11,100,000km²
민족 아랍인
페르시아인
베르베르인
아람인
이집트인
소그드인
튀르크인
쿠르드인
유대인
언어 아랍어(공용어)
페르시아어
아람어
쿠르드어
콥트어
베르베르어
소그드어
종교 이슬람 수니파
통화 디나르
언어별 명칭
아랍어 الدولة العباسية (앗 다울라툴 압바시야, Ad-dawlat-ul Abbasiya)
الخلافة العباسية (알 칼리파툴 압바시야, Al-khalifat-ul abbasiya)
العباسيون (알 압바시야둔, Al-abbasiyadun)
페르시아어 خلافت عباسی
영어 Abbasid Caliphate

1. 개요2. 국기3. 역사4. 군사5. 이슬람 황금기
5.1. 교육5.2. 건축5.3. 의복5.4. 문학5.5. 공예5.6. 의료5.7. 과학5.8. 기술과 무역
6. 지혜의 집7. 여성의 지위8. 이교도들에 대한 처우 및 관계9. 후계자 논쟁10. 평가11. 여담12. 아바스 왕조의 계보도13. 역대 칼리파
13.1.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13.2. 카이로 아바스 왕조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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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750년부터 1517년까지 존재한 이슬람 제국. '아바스 칼리파조', 혹은 '압바스 왕조'라고도 부른다.

중세 이슬람의 황금시대이다.[3] 우마이야 왕조에 이은 이슬람의 두 번째 세습 제국이며, 이라크 일대가 중심지였다. 이 시기부터 페르시아인들이 이슬람 세계의 핵심 계층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아바스 왕조가 페르시아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그들의 입김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세기부터 튀르크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9세기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하나피 및 무타질라 학파가 득세하며 이른바 이슬람 황금기라 불리는 문화적 번영기를 구가했으나 10세기부터는 시아파 제국들의 융성 및 지방 왕조들의 독립과 함께 쇠락했다.

이후 부와이 왕조, 셀주크 제국의 꼭두각시가 되어 정치적 실권을 상실했고, 12~13세기에 이라크 일대의 지배력을 회복하며 부흥하는 듯했으나 1258년, 몽골 제국 훌라구 칸에게 바그다드가 함락되며 사실상 멸망했다. 이후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아바스 칼리파의 친척을 옹립하여 칼리파 계보가 이어졌지만 상징적 국가원수에 불과했으며 1521년에 카이로를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황제 셀림 1세가 마지막 아바스 칼리파로부터 선양을 받아 완전히 종말을 고하였다.

여러모로 이슬람 문화의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업적을 남긴 왕조로 유명하다. 칼리파 알 마문은 지식 탐구에 관심이 많아 학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지혜의 집을 세워 바그다드를 세계 최고의 경제, 학문 중심으로 발돋움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분에 바그다드는 무슬림, 그리스도인, 유대인 등이 공존하는 인구 200만의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라는 영예를 누렸다. 게다가 아바스 왕조의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의 고서들을 죄다 모아 보존해둔 덕분에 유럽에서 실전될 뻔한 헬레니즘 문명의 지식들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한국사에서는 신라, 고려와 교류했던 왕조로도 유명하다.[4]

2. 국기

아바스 왕조 국기
파일:검은 깃발.svg
흑의대식 (黑衣大食)
아바스 왕조의 국기는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단순한 모양의 국기였다. 원래 선지자 무함마드는 검은색 깃발과 하얀색 깃발을 사용했는데, 훗날 '멸망의 날이 오면 검은 깃발을 앞세운 군대 호라산에서 몰려올 것이다'라는 예언을 남겼다. 이 예언에서 모티브를 따온 아바스 부족이 우마이야 왕조를 상대로 혁명을 일으킬 때 검은색 깃발을 내세운 것이다. 특히 우마이야 왕조는 아예 통째로 하얀 깃발을 상징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흑백이 눈에 띄게 대비되어보이는 효과도 줄 수 있었다.

눈에 띄는 검은색을 왕조의 상징색으로 삼았던 탓에 아바스 왕조와 맞섰던 세력들은 모두 자기만의 색깔을 내세웠다. 예를 들어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 마르완 2세는 자신의 군대를 붉은색으로 치장시켜 아바스 군대와 구분할 수 있도록 했고, 파티마 왕조는 흰색을 상징색으로 삼았다. 특히 파티마 왕조는 유력한 시아파 왕조였는데, 꽤 오랫동안 수니파 아바스 왕조와 대립했던 덕분에 후대에 가면 흰색 VS 검은색 구도가 마치 시아파 VS 수니파 구도로 번지게 된다. 시아파 세력들은 아바스 왕조의 검은색 깃발이 무함마드가 예언했던 그 검은 깃발이 전혀 아니라고 비난했는데, 아바스 왕조가 망해 사라진 이후에도 멸망의 날이 오지 않자 수니파 세력 역시 아바스 왕조의 검은 깃발은 무함마드가 예언했던 그 깃발이 아니라고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고.[5]

아바스 왕조는 이미 오래전에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역사성이 워낙 큰 덕에 검은색은 여전히 범아랍권 국가의 국기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아랍 국가들의 국기에서 주로 등장하는 초록색, 흰색, 붉은색, 검은색을 묶어서 '범아랍색'이라고 부르는데, 이 중에서 검은색이 바로 이 아바스 왕조에게서 왔다. 범아랍주의의 상징색들 중 하나가 마찬가지로 검은색이기도 하며, 안 좋은 쪽이긴 하지만 테러단체 ISIS의 깃발이 검은색인 것 역시 아바스 왕조처럼 아랍 전체를 아울러 칼리프 체제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ISIS 외에도 일부 체첸 그룹, 무슬림 극단주의 단체들도 검정 깃발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면 대부분이 이 아바스 칼리파 체제를 계승하고 선지자 무함마드가 예언한 그 '검은 군대'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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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군사

파일:2926167ccb46f1ee8ecc1b70ae830aa0.jpg

아바스 군대의 사령관들은 대다수가 아랍계 출신이었다. 허나 대부분의 병사들은 페르시아인이었고, 상당한 비율의 장교들이 호라산이나 트란스옥시아나,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페르시아인들 외에도 다양한 민족과 부족민들이 아바스 군대 아래에서 종군했다. 이렇게 민족적 다양성이 풍부한 군대였기 때문에 아바스 지도자들은 그 무엇보다 군대 내부의 균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경썼다. 아바스 왕조 최대 개국공신들 중 하나인 아부 무슬림은 부족이나 민족 비율이 아니라 무조건 병사의 출신지에 따라서 군대를 조직했고, 최대한 부족민들끼리 뭉쳐서 군대 내에 집단을 이루는 걸 경계하고 방해했다.

상비군의 양은 딱히 많지 않았다. '카이드'라고 불리는 지방의 자치 토후들에게 군 소집령이 떨어지면 그 토후들이 알아서 병사들을 불러모으고 중앙으로 집결하는 방법이었다. 아바스 왕조의 주력은 호라산의 보병과 쿠라사니야의 중기병대였는데, 특히 기병대가 크게 우대받았다. 알 무스타심 시대 들어서는 튀르크계 노예 병사들을 사들여 개인 근위대로 양성함으로써 칼리파의 영향력 증대에 나서기도 했다. 원래 아랍인 병사들에게 줄 봉급을 빼앗아와 이 튀르크계 병사들에게 대신 나누어주었고 그 덕에 튀르크계 병사들의 충성심은 꽤나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튀르크계 병사들은 오히려 칼리파와 아바스 왕조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촉매가 되고야 만다. 이들은 일반 장소가 아니라 머나먼 국경지대에서 징집되었는데, 이때문에 아바스 왕조의 다른 사회계급과 완전히 분리된 채로 자랐던 탓에 자기들끼리만 교류하며 힘을 길렀던 것이다. 나중에 아바스 왕조가 쇠락하자 이들은 역으로 칼리파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되고야 만다. 마치 게르만족을 받아들였던 서로마 제국과 경우가 비슷했다.

정규군이 없었다지만 군력 자체가 약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아바스 왕조는 이집트, 시리아,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 이라크 등 광활한 영토를 아우르는 대제국이었고 약해빠진 군사력으로는 이 영토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것이다. 전성기 시절의 아바스 칼리파는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12만 5천 명에 달하는 엄청난 대군을 동로마 제국과의 국경지대, 바그다드, 메디나, 다마스쿠스 등 군사적 요충지에 집결시킬 역량이 있었다. 게다가 상비군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아서 칼리파로부터 직접 봉급을 받는 정예 상비군과 특수부대들도 소수나마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전성기 시절의 이야기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바스 왕조의 군사력은 크게 쪼그라든다.

군복은 통일되지 않았다. 애초에 중세 시절에 군복이 통일되어 있다면 그게 더 희한한 일이었다. 기병들은 철로 된 투구를 썼는데, 중세 서유럽의 기사들처럼 얼굴에서 노출된 부분은 코 끝과 눈 앞의 작은 구멍 뿐이었다. 군모를 살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그냥 터번을 두르거나 천쪼가리를 묶고 다니기도 했다. 보병은 장창과 검, 호신용 짧은 창을 지급받았다.

투석기, 숫양 머리의 공성추, 사다리, 갈고리 등 다양한 공성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잘 쓰던 무기는 '만자니크'라고 있는데, 서유럽으로 치면 투석기나 다름없는 무기로 거대한 돌을 날려 성벽을 부수는 데 요긴하게 써먹었다. 하룬 알 라시드 시대에는 수류탄을 사용했다고도 하고, 낙타가 끄는 야전병원이나 구급 시설을 끌고 다니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아바스 군대 병종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게 아마 '마가리바(المغاربة)'다. 마가리바는 아랍어로 '서양인'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아는 그 백인종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인, 베르베르인, 동아프리카의 흑인, 아랍계 부족민 등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군대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알 무스타심이 이집트 총독으로 근무할 적에 처음 구상했으며 이후 그가 칼리파직에 오르자 크게 규모를 확충했다. 주로 기병에 종사했으며 자유인들과 노예가 섞여 있었다. 노예가 섞여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병종들에 비해서 대우는 확연히 낮았다. 튀르크계 병사들과 근위대들이 보통 하루에 2디르함 씩을 받았던 반면에 마가리바 병사들은 하루에 1디르함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살았다. 마가리바 외에도 국경지대에서 온 이들로 구성된 '파라기나', 트란스옥시아나에서 온 '우슈루사니야', 호라산에서 온 '샤키리야' 등 다양한 상비군들이 있었다. 개중 가장 권력이 강했던 건 당연히 튀르크계 병사들이었고, 그 다음이 샤키리야, 우슈루사니야, 파라기나 순서였다. 이들 모두가 860년대의 혼란기인 '사마라의 혼란기' 시대에 칼리파를 좌지우지하며 한자리씩 해먹었다.

5. 이슬람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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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피는 순교자의 피보다도 신성하다

- 아바스 왕조 시대의 격언
아바스 왕조의 통치기는 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문화적, 사회적 황금기였다. 이를 이슬람 황금기라고 부르는데, 보통 8세기 경 아바스 왕조의 하룬 알 라시드의 즉위로 시작되어 1258년 몽골 제국 바그다드를 초토화시키기 직전까지 무려 500여 년 동안 지속됐다.[6] 당시 무슬림들은 심지어 이단의 지식이라 할지라도 유용하고 실용적이다 싶으면 죄다 받아들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슬람권은 그리스, 로마의 유산을 그대로 흡수했고 이는 훗날 르네상스의 바탕이 되어주기도 했다. 지금과는 달리 대단히 관용적인 사회였는데, 심지어 이신론을 주장해도 처벌받지 않았다. 바그다드에서는 그리스도교 학자들이 마음껏 활동했으며 아르키메데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이교도 학자들 역시 거리낌없이 받아들여졌다.

이슬람 황금기의 초기에는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의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으며 서유럽은 바이킹의 침략이나 아바르, 마자르 족의 침공 기타 잦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문명세계의 또다른 축인 중국 역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755년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 말기 ~ 5대 10국 시기라 정복전쟁과 내전이 날마다 일어나며 나라가 황폐해지고 있었던 것. 그래서 아바스 왕조 번영기의 이슬람 세계는 전 문명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지역이라 불릴만 했다.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는 가히 세계의 수도였다. 바그다드는 당대 세계 최대 도시였을 뿐더러 전성기 시절 그 인구가 200만 명이 넘어갔고 온 누리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는 문화와 예술의 교차로였다. 아바스 칼리파 알 마문은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을 세워 고전들을 아랍어 페르시아어로 번역하도록 시켰다. 지혜와 학문을 후원하는 건 고귀한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으며 상류층들은 학문 연구에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했기 때문.[7] 이러한 풍조에 힘입어 설립된 지혜의 집에서는 번역 업무만 한 게 아니라서 학문을 연구하고 기록으로 보존하기도 했다. 연금술을 연구하며 중세 화학을 집대성했고 의학, 철학, 건축학, 생물학, 신학 등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페르시아 시대를 거치며 축적된 지식을 집대성한 학문의 장이라 봐도 무방했다. 알코올, 알칼리 등의 화학 용어가 이시기 아랍권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 아바스 왕조의 학문 수준을 짐작 가능하다.

5.1. 교육

파일:800px-المدرسة_المستنصرية_في_بغداد_(3).jpg
1233년 알 무스탄시르가 지은 바그다드 무스탄시리야 마드라사. 바그다드에서 가장 유명하고 거대한 마드라사였고 현재 무스탄시리야 대학교의 전신이다.

아바스 왕조 시대에 배움은 곧 고귀하고 신성한 일이었다. 쿠란 하디스에는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 나와있기에 당시 아랍인들은 지식을 쌓아올리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고 한다. 모든 교육은 이슬람계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당시 초등교육은 집이나 모스크에 딸린 작은 학교에서 쿠란과 아랍어를 배우면서 시작했다. 개중에서 일부 재능있어 보이는 학생들은 따로 가려뽑아 쿠란 해석학과 이슬람 법학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대체적으로 쿠란 구절과 해석 암기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스스로 쿠란을 해독하거나 나름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가장 뛰어난 학생들은 이슬람 최고의 지식인, '울레마'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초기에는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이 부재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지배 계급들이 종교계의 지원을 받기 위해 '마드라사'라는 이름의 고등교육기관들을 설립하기 시작했다. 마드라사는 저명한 학자들이 거주하며 학생들에게 이슬람 법학을 중심으로 의학, 신학, 수학 등 다양한 학문들을 가리지 않고 가르쳤던 기관이었다. 물론 마드라사는 교육 과정이 일관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 학자 마음대로 커리큘럼과 교육 내용을 짰고, 수료라는 개념도 없었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대학이라기보다는 서당에 더 가까운 시스템이었지만 그래도 혁신적인 발명이었다. 공식적으로는 남성들만 입학이 가능했지만 여성도 비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남자들과 똑같은 과목을 배울 수는 없어서 주로 무함마드의 훈시, 캘리그라피, 시 낭송 교육 위주였지만 그래도 여성에 대한 교육 자체가 금지되었던 동시대의 다른 문화권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마드라사는 공식적으론 법학전문기관이었으나 다른 학문들도 전수했던 터라 굳이 법학자가 꿈이 아닌 사람들도 마드라사에서 수업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보통 마드라사는 모스크 도서관, 숙소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기부로 재정을 충당했다. 보통 부호들이 자신의 씀씀이를 자랑하고 지식을 증진한다는 명분으로 돈을 기부하면 그 돈으로 선생의 월급을 주고 학생들을 먹여살렸던 것이다. 여러 학문들을 가르쳤는데 무함마드의 등장 이전에 성립된 고대 철학이나 학문들은 따로 구분해서 가르쳤다. 물론 고대 철학 역시 중시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무함마드 등장 이후의 학문보다는 낮게 취급해서, 공식적으로 가르친다기 보다는 이슬람학을 가리킬 때 밑바탕을 깔아줄 용도로 알려주거나 보조 학문으로 알려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당시에 성립된 가장 유명한 대학이 모로코의 '알 카라윈 대학'이다. 859년 설립되어 기네스북 유네스코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유명한데, 덕분에 모로코 최대의 자랑거리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외에 위 사진에 등장한 이집트 카이로의 '알 이즈하르 모스크' 등도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8]

5.2. 건축

파일:attachment/baghdad.jpg
9세기 경 바그다드의 원형 도시. 중앙에 녹색 돔을 이고 있는 칼리파의 궁전이 있다.

아바스 왕조 시대 지어진 건축물들의 특징을 보면, 메소포타미아 이라크 지방의 건축색이 더욱 짙어졌음을 볼 수 있다. 우마이야 왕조를 거꾸러뜨리고 새로 등장한 아바스 왕조의 중심지가 이라크와 바그다드 지방이었던 터라 옛 사산 왕조, 동로마 제국의 영향이 훨씬 적어지고 이라크의 색깔이 더욱 강해진 것이었다. 게다가 아바스 왕조가 워낙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다스린 덕에 미나레트, 곡선형 스투코 아치 장식 등이 아랍권, 북아프리카 곳곳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이슬람 건축학적으로도 나름 의미있는 시대였기도 하다. 870년 이후로 아바스 왕조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위축되긴 하지만 아바스 왕조가 남겨놓은 건축유산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이는 이집트를 위시한 북아프리카 지방, 그리고 아랍권 대부분에서 독자적으로 건축술이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아바스인들은 보통 도시와 건물들을 지을 때 널찍널찍하고 거대하게 지어댔다. 이라크 지방 자체가 평평하고 거대한 규모의 평야이다보니 지형의 제약없이 마음껏 크기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말린 진흙 벽돌을 사용해 저렴하고 빠르게 건물을 올리는 방법을 써서 더욱 빠른 시일 내에 도시를 지을 수도 있었다. 도시의 집들은 대부분 2층으로 지었고 1층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약간 땅을 파서 바닥을 땅보다 조금 낮게 만들었다. 위쪽에는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쫒기 위한 시원하게 지었는데, 목재로 천장을 올렸고 평평한 계단식 지붕을 쌓았다. 외관은 딱히 화려하지 않았으나 내부는 굉장히 정교하게 장식했다. 대부분의 집 내부에는 화장실과 냉각 장치가 구비되어 있었으며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집들이 죄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아바스 왕조가 남긴 가장 유명한 건축 유산들 중 하나가 바로 바그다드의 원형 도시였다. 공식 이름은 '평화의 도시'(مدينة السلام)인데 바그다드의 명실상부한 중심지였으며 지혜의 집도 이 안에 위치했다. 알 만수르가 762년 8월에 건설을 시작했고 10만 명의 노동자와 장인이 투입되었으며 무려 1,800만 황금 디나르를 쏟아부어 완성했다고 한다. 반경 약 1km 정도의 원형을 띠고 있어 '원형 도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면적은 대략 3제곱킬로미터 정도였다. 도시의 중심에는 칼리팔 궁전, 모스크, 경비본부가 자리했고 그 밖에 귀족들의 사원이나 저택이 세워졌다. 도시에는 총 4개의 문이 있었는데 각각 '쿠파 문', '다마스쿠스 문', '호라산 문', '바스라 문'이라는 이름이 달렸다. 한때는 도시 전체가 금과 꽃으로 장식되어서 굉장히 아름다웠다고. 다만 아바스 왕조의 쇠락과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고야 말았고, 현재는 남아있는 게 거의 없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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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라의 미나레트 알 우카이디르 궁전 내부의 안뜰 회랑
바그다드의 원형 도시와 함께 아바스 건축의 금자탑으로 꼽히는 건물이 바로 사마라의 대모스크다. 848년에 지어져 851년에 완공되었는데 건설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모스크였다. 모스크의 외벽은 구조를 지탱하는 44개의 반원형 탑들과 그 탑들을 잇는 진흙 벽돌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벽에는 총 28개의 창이 뚫렸고 16개의 문이 있다. 내부에는 사방이 아치형 기둥 열주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는데, 지금이야 모두 사라졌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안뜰 한가운데에 대리석 타일로 만들어진 분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모스크 전체가 금빛과 푸른빛 모자이크 타일로 덮여있었지만 현재는 역시 모두 사라져서 진흙 유적 밖에 안남았다. 모스크의 열주들 역시 볼만한 구경거리였는데, 무려 464개에 달하는 기둥들이 높이 11m에 달하는 높다란 천장을 받치고 있어서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여행객들에게 장대한 느낌을 선사했다고.

사마라의 대모스크가 유명한 이유는 아마 모스크보다는 독특한 모양의 첨탑형 미나레트 때문일 것이다. '달팽이 첨탑'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치 계단이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 원주 모양 디자인 덕분에 유난히 눈에 띄는 모습이다. 사암으로 지어 아직까지도 보존된 채로 남아있으며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유별난 모습으로 사마라의 랜드마크나 다름없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에서 파생되었다고도 하고, 다른 사람은 사산 왕조의 미나르에서 영감을 받았다곤 하는데 사실 어디서 영향받았다 하기 힘들 정도로 모양이 독특해서 확실한 답은 없다. 다만 이라크의 비구한 역사 때문에 이 미나레트 역시 수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2005년 이라크 전쟁 때 미군에게 폭격을 받아 꼭대기 부분이 날라가기도 했고, 아예 미군 병사들의 저격탑으로 사용되기도 하면서 외관 곳곳에 흠이 많이 가서 현대 이라크 정부에서 복원했다.

아바스 왕조 시대의 궁전에 대해서는 남은 자료가 별로 없다. 정궁으로 쓰이던 바그다드의 중심에 자리한 '황금 문의 궁전'은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어 사라진지 오래고, 그래서 현재 남은 몇 안되는 궁전 중에 그나마 알 우카이디르 궁전이 유명하다. 알 우카이디르 궁전은 775년 카르발라 인근에 요새 겸 궁전으로 세워졌는데, 그 규모는 상당히 거대하지만 정작 칼리프가 사는 주거 구역은 작은 편이다. 초기 사산 왕조나 우마이야 왕조의 건축술을 거의 그대로 따랐는데 총 4개의 문으로 출입이 가능하다. 내부에는 현관 홀, 중앙 안뜰, 현관 반대편 안뜰로 열린 주거 구역 등이 있는데 기둥들이 하나같이 두껍고 거대한 아치들을 받치고 있어 육중하고 무거운 느낌을 준다. 지금이야 저 위의 사진처럼 그냥 단조로운 흙색이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유리나 도자기 조각들을 붙여놓아 색색이 화려했고, 비단이나 향등을 걸어놓기도 했다. 바그다드의 황금 문의 궁전 역시 사이즈만 더 거대할 뿐 내부는 거의 저것과 비슷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현재 바그다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바스 시대 궁전으로 아바스 궁전이 있는데 무스탄시리야 마드라사와 건축양식이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5.3.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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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시대 사람들의 옷차림
이슬람 발흥 초창기에는 화려한 복식은 곧 죄악이었다. 무함마드가 호화로운 옷을 멀리했고 제 지지자들에게도 지나친 호화를 부리며 자기를 꾸미는 건 죄악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인간의 욕망을 어찌할 순 없었던지 자연스레 아바스 왕조의 옷차림도 갈수록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상류층들의 경우 넘쳐나는 돈으로 멋지고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욕구였고, 이슬람 법학자들도 어쩔 수 없이 이를 눈감아주면서 지배층들의 옷차림은 순식간에 미친 듯이 화려해졌다. 더이상 새틴이나 비단이 경원시당하지 않았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 식의 곱고 우아한 복식 스타일이 유행했다. 종교 최고 지도자였던 칼리파는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차려입고 다녔는데 특히 알 무스타심은 고운 새틴을 덧댄 페르시아식 모자를 쓰고 그 위에 터번을 둘러 뽐내기를 좋아했다.

당시 사람들은 여러 겹의 옷과 천을 몸에 둘둘 두르고 다녔다. 주로 양모, 리넨, 비단, 양단 같은 직물들을 사용해서 옷을 지어입었고 그럴만한 돈이 없는 하류 계급들은 그냥 양모나 동물가죽처럼 값싼 재료를 써서 대충 옷을 지어입고 다녔다.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다닐 수록 그 사람의 지위가 높다는 의미였고 때문에 아바스 왕조의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얇은 옷을 여러 겹 둘러입고 나들이를 다녔다. 여자들의 경우 원단 자체가 빨간 직물들을 제외하곤, 검은색, 녹색, 붉은색, 분홍색 옷은 웬만하면 입지 않았고 주로 사향, 백단향, 용연향, 히아신스 등으로 몸에 향을 냈다. 신발은 주로 모피로 만든 페르시아식 신발을 애용했다.

궁정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색깔은 검은색이었다. 애초에 아바스 왕조의 상징색이 검은색이기도 했고, 특히 칼리파 알 만수르가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의도로 칼리파의 색깔인 검은색을 신하들에게 입기 권유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대 아바스 궁정에 들어가면 죄다 사람들이 시꺼먼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고. 중국 동로마 제국 사람들은 이걸 보고 신기하게 여겨 아바스인들을 '검은 옷의 사람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검은색을 주 바탕으로 다른 색의 옷도 보조적으로 겹쳐 입을 수는 있었지만 색 조합을 잘 정해야 했다. 궁궐 안에서 감히 칼리파보다 더 튀는 옷을 입는 건 미친 자나 할 법한 짓거리였고, 검은색과 색 배합이 잘 안 맞는다고 여겨진 밝은 노란색[9]의 옷은 입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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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시야 궁전 유적에서 11-13세기 압바스 칼리파 복장을 입은 현지인의 모습

아바스 칼리파들은 금실이나 은실로 꼬아 만든 페르시아식 가운과 소매 앞쪽에 단추가 달린 우아한 카프탄을 입었다. '카프탄'이란 소매가 꽉 끼고 아래는 바닥까지 끌리는 기다란 망토 비슷한 옷인데, 당시 사람들은 이걸 정장처럼 입었다. 멋을 내기 좋아했던 알 무크타디르는 은실로 만들어 실크로 장식한 카프탄을 입고 다녔으며 그의 아들은 한술 더 떠서 동로마 제국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값을 주고 사온 카프탄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카프탄 옷은 아바스 왕조의 정복 활동과 함께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심지어 저멀리 당나라에까지 퍼져 유행을 탔다. 심지어 830년대에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필로스가 터번과 카프탄을 두르고 거리를 돌아다녔으며, 당나라 시대 광저우에도 페르시아식 카프탄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5.4.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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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양탄자. 천일야화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장면이다.

천일야화의 배경이 아바스 왕조 시대다. 아마 이슬람 세계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이슬람 소설집으로 꼽히는 천일야화는 인도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일화 모음집을 바그다드의 아랍인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번역하면서 만들어졌다. 훗날 아랍,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심지어 이집트까지 천일야화의 방대한 세계관 속에 통합되었고, 10세기 경에 구체화되기 시작하더니 14세기에 이르러서야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종본의 형태가 등장했다. 주요 줄거리는 페르시아의 한 왕이 여인들과 결혼한 다음 매일 밤마다 죽여대는데, 세헤라자드라는 지혜로운 여인이 하룻밤마다 한 가지씩 이야기를 들려주며 왕을 궁금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무려 천하루의 밤을 살아남아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아는 알라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신드바드의 모험 등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10]

사랑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노골적인 연애 이야기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로맨스 이야기가 바로 이슬람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라일라와 마즈눈'의 이야기다. 옛날옛적 라일라와 카이스라는 두 연인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소꿉친구여서 어딜 가나 손을 꼭 잡고 다녔고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쟤네 연애하나봐' 이러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라일라의 아버지는 대로했다. 그는 일부러 카이스의 접근을 금지했고, 라일라를 저멀리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버렸다. 카이스는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미쳐버렸으며 '미친놈'이란 뜻의 '마즈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편 라일라는 카이스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못하고 외로워하다 병이 들어 죽어버렸고, 이 소식을 들은 마즈눈은 황량한 들판으로 나가 살며 라일라의 무덤 앞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마을사람들은 마즈눈을 말리려 했지만 그 주위에 맹수들이 으르렁거려서 다가갈 수도 없었다. 결국 마즈눈은 사랑을 지키며 혼자 굶어죽었다는 새드엔딩이다.
유리에 퍼지면 무수한 색을 자랑하여 모든 혀들을 잠잠케 하고

연인의 부탁에 아름답게 말을 건네는 나긋나긋한 청년의 손에 재단사와 같은 튼실한 금빛 몸매를 과시하며,

관자놀이에는 곱슬머리가 물결치고 재앙을 불러오는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일지어니, 그는 호라산에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윗가슴과 목을 훤히 드러내고 다니나니

당신이 이 고상한 아름다움에 말을 건다면, 아마 이슬람 교리조차 높은 산꼭대기에서 당장 던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어다

모든 죄인을 범죄케 하는 그의 약탈을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나는 그의 종교로 개종하여 알면서도 사랑으로 그 종교에 들어갈 것이었을지라,

만약 그가 참된 교리를 믿고 있지 않았다면 알라께서 이 젊은이를 이토록 아름답게 구별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착각했을 터이니


- 아부 누와스의 시.[11]
아랍 시는 큰 발전을 이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바스 왕조의 최전성기보다는 오히려 아바스 왕조의 분열기와 혼란기 시대에 걸쳐서 황금기를 누렸는데 이같은 전성기는 페르시아 통일 제국들이 등장할 때까지 쭉 이어진다. 중앙정부의 권위가 약해짐에 따라 반대로 예술은 발전했던 것. 아바스 왕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은 9세기 경 칼리파의 지원을 받아 활동한 '아부 탐맘'과 '아부 누와스'가 있다. 아부 탐맘은 아랍 역사상 최고의 선집으로 일컬어지는 10권의 시집 '하마사'를 발표했고,[12] 아부 누와스는 천일야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위대한 시인들 중 하나였다. 놀라운 점은 아부 누와스가 에로틱한 시들, 심지어 동성애를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시를 남겼다는 점이다. 그는 이슬람 자체를 조롱하며 대담하고 재치있는 시들을 500여 편 넘게 썼는데, 당시 사회상 자체가 대단히 자유로운 편이었을 뿐더러 동성애 코드도 드문 것이 아니었기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룬 알 라시드 치하의 바그다드는 수많은 서점과 책방들로 유명했다. 751년 탈라스 전투로 인해 중국에서 제지술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탈라스 전투에서 사로잡힌 당나라 군대 포로들 가운데에 제지술을 아는 자가 있었고, 이 기술을 높이 평가한 칼리파는 사마르칸트에 이 기술자를 머무르게 해 아랍 최초의 제지소를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는 싸고 가벼운 장점 덕에 양피나 가죽을 제치고 대표적인 기록 매체로 자리했고, 책 생산량은 폭증했다. 단순히 책의 발행량의 늘어난 것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종이가 전파되며 사업, 문학, 은행업 등 수많은 분야에 쓰이기 시작했고 사회 전반 자체가 뒤집혔던 것이다. 거의 서구 유럽의 인쇄 혁명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 덕분에 바그다드는 수많은 서적들과 종이더미로 넘쳐났다.

5.5. 공예

중동 지방은 이미 로마 제국 시절부터 대표적인 유리 공예품 생산지이자 최상급의 크리스털을 만들어내는 명소로 유명했다. 특히 로마 제국이 중동에서 쫒겨나고 새로 들어선 사산 왕조 시대에도 유리 공예 기술은 끊임없이 전승되며 발전했고, 이 명맥이 그대로 아바스 왕조 시대까지 전해져 내려왔던 것이다. 바그다드의 유리 공예소에서는 병, 플라스크, 접시, 컵, 화병 등 온갖 종류를 망라한 유리 기품들이 제작되었으며 그 위에 정교하기 짝이 없는 장식들을 세공하곤 했다. 다만 우상화를 엄격히 금지했던 이슬람 문화권답게 사람의 형상은 웬만하면 그리지 않았고, 대부분이 복잡한 아라베스크 문양이나 식물 덩굴 무늬, 기껏해봐야 동물이 끝이었다.

회화도 발전했다. 안타깝게도 아바스 왕조 시대의 회화 작품은 남은 것이 많지 않은 실정이라 자세한 연구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것들을 조사해보면 우아함과 섬세함이 강한 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마라의 궁전 폐허에서는 벽화와 스투코 조각들이 남아있는데, 잘보면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동물들, 하렘의 풍경 등이 아름답게 그려져있다. 특징이라면 이전 문화권인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적 특성이 짙다는 점.

아바스 왕조 시대의 회화나 건축 기술은 이전 페르시아과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것을 모방해온 성격이 강하지만, 도자기 기술만큼은 아바스 왕조만의 독창적인 분야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가지각색의 형상과 빛깔을 띤 도자기들이 범람하듯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아바스 왕조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바스 도자기는 주로 8세기와 9세기에 그 정점을 찍었다. 도공들은 노란색 흙으로 도기의 형상을 빚었고, 특수 제작한 유약을 발라 여러차례 소성하면 금색, 갈색, 붉은색 등 다양한 금속성 광택을 내는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어찌나 기술이 발달했는지 도금이 아니라 유약으로도 금속성 금빛을 내는 것이 가능했고 이걸 이용해서 코란의 글귀를 황금빛으로 새겨넣기도 했다. 사마라에서는 주로 칼리파가 사용할 도자기들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다양한 색깔의 타일들을 만들어 납품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지방은 섬유 생산의 중심지였다. 주로 콥트교 그리스도인들이 원단 생산에 종사했는데 그 품질이 대단히 뛰어나 지중해권 국가들에게까지 수출했다. 튀니스의 경우 아예 원단을 뽑아내는 대규모 공장이 세워져 있었으며 도시 전체에 무려 5,000여 개가 훌쩍 넘어가는 베틀이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서 만든 대표적인 특산품은 고급 터번용 천인 '카사브'와 상류층들만이 쓸 수 있었던 고급 원단 '바다나'였다고. 특히 아바스 왕조는 뛰어난 직모 기술을 활용해 메카 카바 신전을 덮는 천 '키스와'도 튀니스 지방에서 따로 제작했다. 키스와는 그 무엇보다도 신성한 천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는데, 최고급 흑색 비단에다가 순금을 뽑아만든 실을 박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키스와를 공급하는 것 자체가 이슬람권에서 엄청난 영광이었기에 아바스 왕조는 자금을 아끼지 않고 키스와 생산에 열을 올렸다.[13]

5.6. 의료

병원은 환자가 회복될 때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 먼 곳에서 온 이든 가까운 곳에서 온 이든, 현지인이든 외지인이든, 강건한 자이건 약한 자이건, 천한 사람이건 높은 사람이건,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직업이 있는 자이든 무직자이든, 눈이 먼 사람이라도, 몸이 아픈 사람이라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모든 치료비는 병원 측에서 부담해야 한다. 환자들은 병원에 진료비를 지불할 의무가 없으며 돈을 내지 않았다고 간접적으로 눈치를 주거나 무례하게 구는 일도 없다.

당시 아바스 왕조의 무상의료를 다룬 글.
아바스 왕조의 의료 기술은 시대를 감안할 때 대단히 훌륭한 수준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이슬람 병원은 805년 경 하룬 알 라시드 바그다드에 세운 것으로 982년에는 부와이 왕조의 주도로 짓긴 했지만 어쨌든 바그다드에 최대 규모의 병상이 들어섰다. 10세기까지 바그다드 도시 한 군데에만 10개가 넘는 병원들이 새로 신축되었으며 다마스쿠스에는 6개의 병원들이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군인 병상이나 황실 전용 병상이긴 했지만 이정도의 병원이 있다는 건 그만큼 의료보건 수준이 높다는 걸 의미했다.

당시 병원은 전신질환, 외과, 정형외과 등 진료 부문이 각각 나뉘었고 대형병원일수록 진료하는 과가 다양했다. '전신질환'은 오늘날의 내과에 해당하며 열, 감염, 소화기 문제 등 하위 부문들로 나뉘어졌다. 병원은 일반적으로 주치의이자 학장직을 겸임하는 대표 의사, 그리고 그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비의료 행정관 '샤이크 사이달라니', 수석 약사 이렇게 3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꾸려나갔다. 이들만으로 병원이 굴러가는건 아니었기에 청결만을 담당하는 위생 검사관과 회계사, 기타 행정관리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근무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병원은 보통 매일 밤 해가 지면 문을 닫았으나 10세기 경에 24시간 내내 진료하는 병원을 따로 두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꼭 병원이 도시에 고정된 것만은 아니었다. 무슬림들은 금요일마다 도시 광장이나 모스크에 모여 대규모 설교를 듣거나 예배를 하는데, 이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자연스레 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의사들은 응급사고가 일어났을 때 곧바로 달려가기 위해 응급진료소를 차려놓고 의사를 상시대기시켜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외딴 지역의 의료 서비스를 맞춰주기 위해 일부러 의사와 약사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이동식 진료소를 꾸려 주기적으로 산간벽지를 돌아다니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10세기 초 경에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감옥 시설에도 죄수들을 위한 병원을 차려줬다. 당시 죄수들은 사람 취급을 못받았던 걸 생각하면 시대적으로도 엄청나게 앞선 발상이었다. 카이로에는 세계 최초의 정신병원이 세워졌고 시리아 알레포에는 풍부한 빛, 신선한 공기, 흐르는 물 및 음악 따위로 정신병 환자를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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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진료하는 무슬림 의사의 모습.

이 시대의 의료 시스템에는 놀랍게도 의사 면허라는게 필요했다. 당시 웬만한 문화권들은 동서양의 구분없이 의사 면허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대도시들에서는 의학 학위를 소지해야만 진료를 공식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의대생들은 의사와 직접 동행하고 진료를 보조하며 경험을 쌓았다. 학위를 따고 싶다면 칼리파가 지정한 지방 의료 책임자 앞에서 시험을 치면 된다. 시험은 2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면허를 받고 싶어하는 분야에 관하여 논문을 작성해 책임자에게 검사를 받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직접 책임자와 면접을 하면서 그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이 두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만 의사 면허가 주어졌다.

의사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일했으며 급여도 딱 정해져 있었다. 의료의 질을 어느 정도 수준에 맞춰놓기 위해 의사가 치료하던 환자가 죽으면 가족이 다른 의사들에게 주치의의 처방전을 제시하고 해당 처방이 그 환자에게 올바른 것이었는가 따지도록 했다. 환자의 죽음이 막을 수 있는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가려 의사의 자격이 없는 사람을 쫒아내고자 한 목적이었다. 남자 위주의 이슬람권에서 당연히 대다수의 의사들은 남자였으나 여의사들도 의외로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산부인과의 존재 때문이었다. 산부인과 관련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음부를 보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자들이 제 여인들을 외간 남자들에게 함부로 보여주기를 꺼렸기에 어쩔 수 없이 같은 여자 의사에게 진료를 맡긴 것이었다. 산부인과 뿐만 아니라 아예 남자 의사에게 몸을 보이는 걸 싫어하는 남자들도 많아서 이런 남자들을 위해 여의사들만 근무하는 여성 전용 병원도 따로 있었다.

맨 위에도 나와있는 내용인데, 아바스 왕조와 이슬람 황금기가 절정을 찍던 시기에는 무상의료를 시행하기까지 했다. 자금은 모두 병원의 자선재단이 지급했고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 비마리스탄에 찾아와 무료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 서비스는 모든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고 이집트에서는 매일 4천명에 달하는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물론 완전 공짜로 해주는건 아니어서, 환자들이 감사의 표시로 의사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고 일부 실력이 특출난 의사들은 따로 선물이나 재화를 받기도 했다.

약학 역시 의학의 발전과 함께 큰 진전을 이루었다. 가장 저명한 약학자는 '유한나 이븐 마사와이'라는 인물로 777년 약사의 아들로 태어나 바그다드에서 공부했다. 이후 바그다드에 있는 병원의 원장이 되어 4명의 칼리파들을 치료하는 주치의라는 명예를 누렸고 다양한 그리스 의학서를 아랍어, 시리아어로 번역했다. 특히 약학과 해부학에 소질이 뛰어났는데, 그를 평소 좋아하던 알 무타심은 그가 해부할 수 있도록 유인원들을 잡아서 선물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쨌든 마사와이로 대표되는 아바스 약학은 8세기 경에 독립적인 약국이 세워지며 이미 의약분업의 수준까지 이르렀고 연금술의 발전과 함께 약학 역시 발전했다. 쿠란에서 약의 청결함과 위생을 강조하고 있었던 터라, 매년 '무타시브'라는 정부 감찰관이 내려와 약국들의 위생을 관리했다. 의사와 약사의 업무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고 약사 역시 면허 소지자만 할 수 있는 직업이라 다른 사람이 함부로 약사 행위를 하면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외과 수술도 유명한데 중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수준의 수술도 이루어진 바 있다. 10세기 경 아랍 의사 '아부 알 카심 알 자라위(أبو القاسم خلف بن العباس الزهراوي,)[14]는 '수술의 아버지'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사람이 여성형 유방 절제술 유방암 치료를 위한 세계 최초의 유방 절제술을 집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술에 사용되는 278개의 기구 목록이 포함된 '내과 의사 매뉴얼'을 망라한 3권의 수술 교과서를 저술했다. 그야말로 아랍 수술의 기초를 놓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셈. 외과에만 업적이 있는게 아니라 혈우병의 유전적 특성을 규명하는가 하면 자궁외임신의 하위 유형인 복부 임신을 처음으로 기술했고 마비의 근본 원인을 최초로 발견했다.

5.7.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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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법이 담긴 알 콰리즈미의 책 페이지 인간의 안구 구조 해부도 천문을 관측하는 학자들
하룬 알 라시드의 시대 이래 시작된 이슬람 황금기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누가 뭐라해도 찬란한 과학의 발전이었다. 특히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와는 달리 비무슬림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학문을 흡수하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덕분에 수많은 인재와 자료들을 쉽게 흡수할 수 있었고,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부터 저 먼 인도와 중국의 사상가들까지 다채로운 인재풀을 습득했다. 특히 네스토리우스교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바스 왕조 아래에 고용되어 수많은 그리스어 서적들을 아랍어와 시리아어로 번역해주면서 서구에서 끊길뻔한 학문의 명맥을 이었다는 의의도 남겼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학자들 중 하나가 '알 콰리즈미'다. 일부 사람들은 디오판토스가 아닌 알 콰리즈미를 '대수학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 그는 '키타브 알 자브르 와 이 무카발라'라는 수학 서적을 집필했는데 여기서 ' 대수학'이라는 용어가 파생될 정도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선형 및 이차방정식의 첫 체계적인 풀이법을 제시했고 대수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다룬 첫 학자였다. 게다가 항을 반대 편으로 넘겨서 소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등 현대 대수학의 기본적인 요소를 정립하며 세계 수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알 콰리즈미'라는 단어라고 하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는데, 그건 바로 알고리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저멀리 인도에서 만들어진 아라비아 숫자와 인도의 선진적인 수학 체계를 지중해권에 소개한 알 콰리즈미에 대한 헌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븐 알 하이삼'은 '광학의 서'라는 저서에서 빛의 내향 이론을 제기했다. 그는 외부에서 들어온 빛이 사물에 맞은 뒤에야 눈에 들어와 뇌가 인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시각이 주관적이고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시각이라는 감각 자체가 뇌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며, 훗날 페르마의 원리로 정리될 '최소 시간의 법칙'을 최초로 제기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의의는 '모든 진리는 확인 가능한 절차나 수학적 추론에 기초한 실험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라는 현대 과학의 정석과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문학의 발전도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시리아 천문학자이자 아랍 세계 최고의 천문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알 바타니'는 프톨레마이오스 알마게스트를 번역하고 다듬으며 거기에 자신만의 의견을 덧붙여 독창적인 우주관을 창조했다. 그는 태양을 관찰해 금환일식의 원리를 이해했으며 지구가 황도와 적도면 사이에서 이루는 각도를 정확히 측정했다. 그 외에 태양년, 분점을 정확히 계산해냈고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때 사인 접선을 도입해 고대 그리스의 낡은 기하학적 추론법을 대체했다. 그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알 바타니의 저서들은 이탈리아와 서유럽에까지 건너갔으며, 훗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해주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율리우스력을 수정할 때에도 그의 자료를 참조했고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에서도 3부에 걸쳐 그의 저서를 인쇄했다.

5.8. 기술과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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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의 영토와 무역로의 위치.

8세기 경에는 탈라스 전투를 거쳐 들어온 중국인에 의하여 마침내 아랍에도 제지술이 퍼졌다. 양모보다 훨씬 만들기도 쉽고 두께도 얇아 보관이 용이했으며, 파피루스보다 쌌고 내구성이 강했으니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종이가 특히 빠르게 퍼진 이유는 쿠란 때문이었다. 이슬람 법학자들은 쿠란을 필사하는 것이 엄청난 미덕이라고 여겼는데, 잉크도 잘먹고 보관하기도 쉬운 종이가 등장하자 그 누구보다 이를 반기며 빠르게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후 종이는 후우마이야 왕조의 안달루시아 지방을 거쳐서 10세기 경에야 겨우 유럽으로 전파되게 된다. 종이를 만든 것은 분명 중국이 맞지만 그걸 전세계로 퍼뜨린 것은 아바스 왕조였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 종이 뿐만 아니라 화약도 함께 들여와서, 점차 대포 폭탄 같은 신병기들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던 때이기도 했다.

농업과 무역은 크게 번창했다. 일단 아바스 왕조는 풍차 기술을 도입해 관개 기술과 농업을 크게 발전시켰고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아몬드와 감귤류, 설탕 등을 유럽으로 수출했다. 아바스 왕조는 그 넓은 땅덩어리에도 불구하고 나일강,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거대한 배가 항해할만한 수심이 깊고 폭이 넓은 강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규모 해상 무역은 바다를 통해 이루어졌다. 강을 통해 이동하는 것과 바다를 건너는 것은 천지차이였으니, 아바스 항해사들은 기초적인 수준의 항해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고 육분의를 사용해 나중에는 굳이 해안가를 따라가지 않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마음껏 항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당시 유럽과 지중해에는 돛이 달린 삼중선 '트리에레스'가 이미 오래전에 실전되어 찾아보기 어렵게 된지 오래였다. 이 거대한 선박들을 다시 지중해로 도입한 것 역시 아바스 왕조였으며[15] 아랍 상인들은 16세기에 포르투갈인들이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 인도양 무역을 석권했다. 아바스 왕조는 호르무즈 예멘 연안 지방을 중심으로 저멀리 인도의 술탄국들과 활발히 무역을 진행했고, 저멀리 동남아시아, 중국, 심지어는 한국 일본과도 무역을 했다. 신라 고려와 무역을 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아바스 왕조다. 서쪽으로도 무역을 활발히 전개했다. 아랍 상인들은 제노바, 베네치아, 동로마 제국을 주요 무역 상대로 삼아 전 지중해를 휘젓고 다녔으며, 북쪽으로는 브리튼 섬까지도 다다랐다. 어찌나 멀리 갔던지 러시아 스웨덴 지방에서도 아랍 금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바스 왕조는 지중해, 카스피해, 흑해, 인도양, 남중국해를 아우르는 거대한 무역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고, 실크로드를 통한 중개무역을 통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부를 거둬들였다.

다만 이 시대 아바스 왕조의 해상 무역 수준을 지나치게 고평가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물론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하게 진행된 것은 맞지만 그건 어디까지 소수의 사치품 교역만을 위하여 진행된 것이었다. 꽤나 많은 아랍 캐러밴과 선박들이 목적지까지 닿지도 못한 채 침몰하는 것이 일상사였으며 해적, 선상반란, 태풍 등 다양한 원인 때문에 해상 무역에서 이익을 내는 건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다. 얼마나 해상무역이 힘들었던지 중국에 무사히 갔다온 사람은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축하해줄 정도였다. 아바스 왕조 시대에 지어진 신드바드의 모험만 봐도 해적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나오니 얼마나 해상 무역이 위험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해상 무역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이용한 육로 무역 역시 번성했다. 주로 노예 목적으로 아프리카와 교역했으며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통한 중앙아시아와도 교류했다.

아바스 왕조의 장인들은 에너지 사용에 탁월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기술자들은 머리를 쥐어짜내며 조력, 수력, 풍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았고, 그 결과 이슬람권에서는 이미 7세기에 물레방아가 발명되었으며 펌프, 기어,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 이미 아바스 왕조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물레방아와 펌프를 이용한 제분소들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 아직도 손으로 일일이 밀알을 까부르던 서유럽에 비하면 상상도 하지 못할 비약이었다.

6. 지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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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집(بيت الحكمة )'은 바그다드에 위치한 거대한 아카데미이자 황립 대도서관으로 하룬 알 라시드가 8세기 후반에 제 장서들을 보관하기 위하여 처음 지었다. 이 곳의 가장 대단한 업적은 고대 문헌들을 아랍어로 번역해 그대로 보존했다는 것이다. 사실 아랍인들은 이미 4세기 경부터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세계 문화권들의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해 흡수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콘스탄티노폴리스 제국 도서관[16] 등의 자료들을 아랍어로 번역, 필사했고 유용한 지식이라면 그리스, 인도, 페르시아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가져왔다.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도 무아위야 1세 다마스쿠스에서 책을 모으기 시작해 의학, 연금술, 물리학, 수학, 점성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들을 후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지식들을 모으길 좋아하던 아랍인들의 지식욕은 아바스 왕조 시대에 절정을 찍으니 그 소산이 바로 지혜의 집이다. 당시 아바스 왕조가 관용적인 정책을 피면서 그 수도 바그다드에는 온갖 출신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인종의 용광로가 되었고, 자연스레 수많은 외국산 기록들이 흘러들어오자[17] 이 모든 것들을 아랍어로 번역해 '지혜의 집'에 보관해놓았던 것이다. 그리스어,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시리아어 등 온갖 언어들로 써져서 뿔뿔히 흩어져 있던 책들이 죄다 바그다드에선 아랍어로 번역되어서 대도서관에 비치되었다. 가장 많은 건 의학, 수학, 천문학 책들이었고 철학 책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고 한다.

지혜의 집은 알 마문 칼리파의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알 마문은 전쟁의 전리품으로 과학 서적을 황금보다 더 선호했을 정도로 지식 욕구가 엄청난 인물이었다. 알 마문은 정기적으로 지혜의 집을 방문하며 학자들과 토론을 나누었고, 자신이 궁금한 것들을 지혜의 집에 머무는 현자들에게 직접 질문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세계지도를 작성하라고도 시켰고 알마게스트에 나오는 환산값들이 정확한지 검토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으며 지구의 실제 크기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문의한 적도 있다.[18] 바그다드에 최초의 천문대를 지은 것도 바로 이 알 마문이며 과학 연구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학문 진흥에 압도적인 기여를 했다. 알 마문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 전체에 학계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건 명예로운 일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었고, 사람들이 과시욕에서라도 학자들을 재정적으로 밀어주니 학자들은 생계 걱정없이 오직 연구에만 전념이 가능했다.

번영하던 지혜의 집은 알 마문 사후 조금씩 쇠락했다. 알 마문의 후계자인 알 무타심 알 와시크는 전임자의 선례를 따라 지혜의 집을 잘 보살펴 후원했지만, 알 와시크의 후계자 알 무타와킬은 지혜의 집에 별 관심이 없었다. 쿠란 하디스 경전의 현학적인 해석을 더 선호했던 알 무타와킬은 지혜의 집에서 그리스 학문을 연구하는 걸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며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혜의 집은 칼리파의 암묵적인 방치 속에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가듯이 지혜의 집은 이후에도 300년 가까이 쭉 아랍 무슬림의 지식의 보고나 다름없었는데, 하필이면 1258년 2월 13일 몽골 제국이 쳐들오면서 말그대로 개발살난다. 책 따위에 관심이 없던 훌라구는 도서관의 모든 걸 파괴했다. 훌라구는 말들이 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책을 던져서 다리를 만들었는데, 얼마나 많이 던졌던지 티그리스강이 책의 잉크로 검게 물들었다고... 게다가 책의 종이로 발을 감쌀 샌들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책들을 찢어 신발로 만들어버렸다고도 한다.[19]

앞서 말했듯이 지혜의 집의 최대 업적은 번역 작업이다. 200년에 걸친 엄청난 대프로젝트 끝에 수많은 고서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부터 시작해서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히포크라테스, 유클리드, 플로티누스, 갈레노스, 수슈루타, 아르야바타,[20] 브라마굽타의 서적들이 죄다 아랍어로 통번역됐다. 그렇다고 번역만 해놓은 것도 아니었다. 번역 도중 시대가 바뀌어 사실관계에 어긋나거나 더 나은 기록이 있으면 수정 변경하기도 했고, 주석이나 해석을 달아놓거나 독창적인 논평을 추가했다. 어떤 경우 아예 제목을 바꾸어버리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알마게스트. 원래 이름은 '메갈레 신타시스'였다.

번역 작업만 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아랍 학자들은 이렇게 많이 모아둔 기록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연구를 하고 성취를 이룩하는 데 성공한다. 수학자로 유명한 알콰리즈미는 대수학의 발전에 기여한 업적을 남겼고, 알 킨디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슬람 철학과 융합해 향후 400년 동안 발전할 이슬람 철학계의 근간을 닦았으며 알 자이스는 여우, 늑대와 같은 동물들이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진화해 왔을 것이라는 학설을 제기했다. 지혜의 집에서 일하던 현자들은 '스스로 연주하는 악기'를 포함해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기계 100여 개가 수록된 '기발한 장치들의 서'를 발간했고, 모함마드 무사는 물리 법칙의 보편성을 지적한 세계 최초의 학자였다.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많아서 이븐 알 하이삼은 광학 분야를 연구했고 후나인은 안과 수술 관련 논문을 남겼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기록을 입증할 거대한 천문대에서 하늘을 관측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학문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지식들을 탐구했던 것이다.

7. 여성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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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내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딱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무함마드 본인부터가 여자의 사회 진출을 꺼렸고 부계중심적인 아랍 사회 특성상 여자의 지위가 높다면 그건 그거대로 더 이상할 일이었다. 그래서 남자들이 사회 밖으로 나가 전투를 벌이거나, 정치를 하거나 학문을 배우는 동안 거의 압도적 다수의 여자들은 반강제로 집에 들어박혀 살아야 했고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이건 아바스인들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여인상'이었고, 실제로는 살기도 바쁜데 여자가 집 밖으로 나오는 걸 대놓고 막거나 그러진 못했다. 여자가 시장에 나가지 못하거나 밖 출입이 통제되면 그만큼 노동력이 줄어드는 셈이므로 가계 형편이 훨씬 팍팍해졌기 때문. 그래서 중산층 이하의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면이 있었다.

아바스 왕조의 주 노예 공급원은 유럽이나 중앙아시아 혹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였다. 키예프 루스는 흑해를 통해 여성 노예를 수출하였고, 동방식민운동 과정에서 포로가 된 슬라브인 노예들도 당시 가장 경제력이 높았던 아바스 왕조나 후우마이야 왕조로 팔려나갔다. 이 외에도 아바스 지방 정권인 사만 왕조에서는 튀르크인 노예들을 군인이나 광부로 부렸다. 어찌나 노예들이 많이 유입되었던지 권력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면 최대 1천 명에 달하는 노예들을 소유할 수도 있었고 하다못해 병사들조차 돈을 잘 모으면 10명 정도의 노예를 부릴 수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며 노예가 차츰차츰 해방되기 시작했고, 특히 노예들 가운데 무슬림의 비율도 많아지자 같은 무슬림을 노예로 부리는 걸 금지한 법 때문에 아바스 왕조 내부에서 노예들의 비중은 점차 줄어든다.

이슬람스럽게 하렘도 당연히 존재했다. 주로 가정의 어머니, 딸, 노예 첩, 여성 친척, 여성 및 환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매우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다. 하지만 하렘 내부인들에 대한 대우는 좋지 않았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사회에서 최대한 격리되어있기를 바랐으며, 하렘 내부에서도 두꺼운 커튼을 치고 문을 닫아걸어 함부로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렘의 크기가 커질 수록, 소속된 여인들의 수가 많을 수록 남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기에 남자들은 최대한 많은 여자들을 소유하는 데에 집중했다. 특히 상류층들이 이런 풍조가 심해서 여인들을 애정 관계라기보다는 성욕의 해소 대상으로 여기거나, 아예 일종의 트로피처럼 전시해놓는 비뚤어진 만족감이 사회적으로도 만연했다고 한다.

아바스 하렘의 정점인 칼리프 알 무크타디르는 4,000여 명의 노예 첩들, 11,000여 명의 하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렘을 거느렸다. 하렘의 꼭대기에는 칼리파의 어머니가 있었다.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아바스 왕조에는 본처의 개념이 없었고, 아내들은 본처나 후처의 구분없이 모두 똑같이 대해야 했다. 여럿이 존재하는 왕비들과는 달리 칼리프의 어머니는 단 한 명뿐이었으니 당연히 하렘의 최고 자리를 꿰차게 되었던 것이다. 왕비들은 모두 지위가 동등했고 출신은 노예일수도, 평민일수도, 귀족일수도 있었으나 신분이 아니라 칼리프의 총애 정도에 따라 서열이 갈렸다. 왕비 아래에는 '마지야트'라는 노예 첩들이 있었다.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쾌락의 대상이라 주로 성적 기술을 배우거나 음악, 노래, 시, 춤 등을 갈고닦았다. 잘만 하면 칼리프의 눈에 들어 그의 아이를 낳을 수도 있었는데, 이러면 신분이 '옴 왈라드'[21]로 격상됐다.

마지야트보다 더 아래에 있는 여인들이 '자와리스'였다. 노예 신분으로 보통 칼리프와 여인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무희에 불과했는데 이들 역시 칼리프의 마음에 들면 마지야트로 신분 상승이 가능했다. 하렘 내부에서 유일하게 바깥출입이 가능한 존재는 '카라마나'라는 여시종들로, 밖에 나가서 물건을 사오거나 하렘 여인들의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아니면 하렘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개인 시종, 잔심부름을 하는 등 그 역할도 굉장히 다양했다. 환관들과 함께 거의 유이하게 하렘을 나갔다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덕분에 하렘 내부에서 영향력이 대단히 컸다고 한다. 환관들은 여인들과 간통하는 걸 막기 위해 싸그리 거세시키고 들여보냈다. 이같은 하렘 시스템은 훗날 오스만 제국까지 전해내려가 오스만 하렘의 기본틀이 된다.

8. 이교도들에 대한 처우 및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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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시대의 길거리 모습.

아바스 왕조 아래에는 당연히도 무슬림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 조로아스터교 신자 등 수많은 종교들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슬림들은 이들을 '딤미'라고 부르면서 무슬림들과는 확연한 사회적 차별을 두었다. 딤미들은 종교세인 지즈야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병역, 세금, 재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슬림들과 차별대우를 받았다. 가장 이교도들에게 가혹했던 칼리파는 알 무타와킬이었다. 그는 이교도들이 입을 수 있는 옷부터 제한을 걸었고 아예 무슬림과 잘 구분할 수 있도록 눈에 확 띄는 노란색 옷을 입고 다니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사회에서 이교도들을 분리시키는 한편, 이교도들의 주택을 무슬림 관리들 마음대로 압류할 수 있는 권한과 이교도들이 교육받는 걸 더욱 어렵게 만드는 법안을 만들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이교도들에게는 썩 좋지 않은 칼리파였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되는데, 전반적으로 다른 칼리파들은 알 무타와킬만큼 불관용적이지 않았다. 아바스 왕조는 시대마다, 그리고 특히 재위중인 칼리파의 성향마다 이교도들에 대한 대접 수준이 달라졌는데 알 무타와킬은 개중에서도 최악에 가까울 정도로 불관용적인 칼리파였다. 즉 다른 칼리파들은 그에 비하면 훨씬 유한 태도를 보여줬다는 의미다. 게다가 차별적인 법이 있어도 대충 지켜지거나 아예 안지켜지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위의 알 무타와킬 역시 이교도들이 공직에 오르는 걸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었으나 그 자신도 여러 그리스도인 비서들을 따로 두고 있었다. 알 만수르는 이교도들이 공직에 등용되지 못하는 법안을 만들었지만, 재무 지식이 해박한 사람이라면 종교를 가리지 않고 그냥 재무부 총괄직을 서슴없이 맡기기도 했다. 즉 법안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했을 뿐 실제로는 그때그때 따라서 임의적으로 이교도를 얼마든지 사회에 진출시켰다.

그리스도인과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분명 무슬림들에 비하면 낮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의사나 학자, 높은 관리처럼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직업을 가지는 게 가능했고[22]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든지 재산을 합법적으로 쌓아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아바스 왕조는 꽤나 능력주의적인 사회라서 출신이나 종교에 상관없이 능력만 출중하다면 그에 걸맞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칼리파 아래 최고의 자리인 재상직에 등용된 그리스도인도도 있으며, 이븐 바투타가 남긴 여행록에도 유대인 의사가 들어오자 무슬림들이 일어나 예를 갖추는 내용이 나왔을 정도. 물론 아무 차별을 받지 않은 지상낙원은 아니라서, 무슬림들은 이교도가 자신들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면 당연히 질투했고 폭력적으로 재산을 빼앗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 유럽에서 이교도, 그리고 특히 유대인들이 받던 버러지 취급에 비하면 아바스 왕조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아바스 왕조 아래에서 행해진 이교도들에 대한 차별은 타 국가들에 비해서도 유하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서양 제국의 대표주자 로마 제국만 해도 차별이 없는 게 아니었다. 4세기의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이 공직에 오르는 걸 금지했고 로마 시민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 역시 엄벌했으며 로마 군대에 복무하는 유대인들을 이유없이 강등시키기도 했다. 반대로 아바스 왕조는 최고 대재상이 한 그리스도인 장군을 군대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 위해 신하들과 옥신각신 다투기까지 했고, 결국에는 관철해내는 데에 성공한다. 즉 당시의 아바스 칼리파들은 로마의 황제들에 비해서도 훨씬 관용적인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랍인들이 아닌 민족들 대부분도 아바스 왕조의 울타리 안에서 나름 행복하게 살수 있었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관용이 두드러진 편이었다. 수도 바그다드의 유대인들 대부분은 아랍인 공동체에 편입되어 살 수 있었으며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아바스 사회에 녹아들었다. 일부 유대인들이 학교에서 히브리어를 따로 배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교양에 그쳤다. 다만 종교에 한해서는 얄짤이 없어서 철저한 유대교 중심의 교육을 받았다. 칼리파들은 유대인들이 제국 내의 유대 커뮤니티를 재건할 수 있도록 허가했으며 바그다드에는 무려 10개의 랍비 회당과 23개의 유대 회당이 세워졌다. 동시대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면 온갖 수난을 당하고 살던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유대인들 외에 아라비아 반도에 거주하는 비-아랍인들도 아바스 왕조의 관용 아래 동화되기 시작했고, 스스로 아랍어를 배우고 쓰기 시작하며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종교를 믿는 범무슬림이라는 개념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는 전대 이슬람 제국인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와의 가장 큰 차이였다. 우마이야 왕조는 비아랍인들과 비무슬림들을 철저히 차별해 그들의 반감을 사서 멸망한 반면, 아바스 왕조는 이들을 관용으로 대했고 그 덕분에 오랜 세월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한편 외교적으로는 여러 이교도 국가를 포함해서 주요 상대자는 동로마 제국 프랑크 제국이었는데, 동로마 제국과는 일진일퇴의 상태로 국경 지대에서 계속 소모전이 이어졌으나 프랑크 제국에 대해서는 대놓고 물자 지원을 하여 프랑크 제국과 군사 대립 중인 후우마이야 왕조의 화를 돋구었다. 물론 후우마이야 왕조도 동로마 제국이 아바스 왕조에게 공격 받거나 아바스 왕조에 대해 중대한 군사 원정을 나가면 잊지 않고 동로마 측에 적지 않은 물질적 지원을 해줬다. 후우마이야 왕조는 한동안은 할리파는 어디까지나 바그다드에 있는 군주임을 오랫동안 표방했으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고, 아바스 왕조 또한 본인들을 미워하는 후우마이야 왕조가 존재 자체로 매우 껄끄러웠다.

때문에 아바스 왕조는 차라리 프랑크 제국이 더 잘 될지언정 후우마이야 왕조는 망하거나 쇠락하길 진심으로 바랐으며, 후우마이야 왕조 또한 만약 동로마 제국이 아바스 왕조에게 무너지면 그 다음 차례는 본인들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아바스 왕조의 패배를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동로마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켜야겠다고 굳게 결심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여러 차례 함락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건 오히려 후우마이야 왕조의 직계 선조인 우마이야 왕조의 할리파들이었던 걸 돌이켜볼 때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유는 이 시기에 기독교 사회는 서구든 동구든 가난하고 발전도도 떨어져서 이슬람 사회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던 반면, 후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 세계 내에서 원한이 깊이 맺어진데다 서로 빼앗고 잃을 게 많았던 데 있었다. 해서 아바스 왕조는 전반적으로 이슬람계 정치체들보다는 기독교계 정치체들과 관계가 상대적으로는 더 원만했다.

하지만 외교적 관계가 상대적으로 원만했던 것과는 별도로 아바스 왕조는 시종일관 기독교 세계를 멸시했던 우마이야 왕조의 관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대표적인 예가 동로마 제국의 그리스 계승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사례였다. 동로마 제국인들은 너무나도 무지무식하여 그리스인일리 없는 로마인들이라고 했고 프랑크인들은 싸움만 잘하는 짐승 같은 인간들이라고 여겼다. 위 문단의 이교도에 대한 관대한 처우도 실은 이 시기 이슬람 세계가 경제, 문화, 정치, 군사적으로 주변 이교도 세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어 여유도 그만했던 원인이 크다.

9. 후계자 논쟁

아바스 왕조가 정통 칼리파 시대 - 우마이야 왕조 - 아바스 왕조 이렇게 보편 칼리파의 왕통을 잇는 왕조였던 탓에 아바스 왕조가 망하고 난 이후에도 그 후계를 칭하는 왕조들이 여럿 나타났다. 마치 유럽에서 로마 제국이 망하고 난 이후 제3의 로마 갈등으로 수많은 나라들이 다투었던 것과 비슷하다.

일단 가장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국가는 오스만 제국이다. 애초에 셀림 1세가 최후의 아바스 칼리파 알 무타와킬 3세에게 칼리파직을 선양받은 만큼, 정통성 면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압도적이다. 게다가 오스만이 무려 400년 가까이 중동과 서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고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이렇게 이슬람의 3대 성소를 관리했던 것만으로도 정통 칼리파의 후계를 자칭할만한 자격은 충분했다. 이 시기의 오스만 황제들은 '세 성소의 보호자'라고 불렸으며 거의 대부분의 수니파들을 다스렸다. 심지어 저멀리 떨어져있지만 국력만큼은 오스만 제국에 맞먹었던 악바르 대제 시절의 무굴 제국도 오스만 칼리파의 눈치를 보았을 정도였다.

이렇게 오스만 제국의 국력과 정통성이 압도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는 자신들이 아바스 왕조의 정통 후계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많이 일어났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자손을 자칭하며, 아바스 왕조의 건국자 아부 알 아바스가 무함마드의 피를 물려받았으니[23] 같은 무함마드의 후손으로서 아바스 왕조를 계승할 명분이 있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수단 지방의 와다이 술탄국, 파키스탄의 카이르푸르 술탄국과 바하왈푸르 술탄국, 페르시아의 바스타크 칸국 등이다.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까닭은 아바스 왕조의 후손들이 실제로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탓이 컸다. 몽골 제국이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한 직후, 아바스 왕족들은 죄다 도망쳐 온갖 곳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피신한 곳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거나 세력을 길렀는데, 이들이 자손을 낳고낳아 결국 수많은 방계혈통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스타크 칸국 역시 이런 맥락에서 건국된 왕국이었다.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아바스 왕족 생존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던 이스마일 2세가 가솔을 이끌고 이란 지방으로 도망쳤고 결국 바스타크 지방에 이르렀다. 이스마일 2세의 후손들은 결국 17세기에 독자적인 칸국을 세우기에 이르렀고, 이때는 마침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이 쇠퇴하던 시기였기에 감히 칼리파의 후계를 자칭할 수 있었다.[24]

와다이 술탄국 역시 스토리는 비슷비슷하다. 몽골이 쳐들어오자 살리흐 이븐 압둘라 이븐 아바스 왕자는 저멀리 헤자즈 지방으로 달아났다. 그에게는 '살리흐'라는 이름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마침 헤자즈 지방을 순례하던 한 학자가 그 아들을 보고 왕의 자질이 있다싶어 아들을 데리고 수단 지방으로 돌아갔다. 살리흐 왕자는 수단 지방의 비무슬림들을 싹 다 개종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는데 이 것이 바로 와다이 술탄국의 기원설화다.

10. 평가

아바스 왕조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하룬 알 라시드, 알 마문 등 초기의 칼리파들은 관용을 중심으로 비무슬림들을 포용하는 정책들을 실시했고, 이는 비 무슬림이나 비 아랍인 차별주의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쿠라이시 가문 위주의 족벌주의로 나가다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고꾸라진 우마이야 왕조에 비하면 상당한 발전이었다. 아바스 왕조의 강역 확장에 힘입어 이슬람교는 본격적으로 북아프리카, 페르시아, 파키스탄, 아라비아 지방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고 이는 아바스 왕조 멸망 이후에도 이슬람이 확고부동한 중동의 제1종교로 남아있을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성립된 국가인 만큼 민족과 종교에 상관없이 능력이 있다면 관직에 공평히 등용되고 대우받았다. 특히 종교에 대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관대하여 제국의 백성들은 종교에서 차별을 받지 않으며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했고, 심지어 이슬람을 배교한채 대놓고 이신론이나 불가지론을 선언해도 의견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었다.[25][26]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경전은 아랍인들에게 선교할 목적으로 아랍어로 번역되었으며, 바그다드 성벽 안에는 성모 마리아 수도원을 포함한 여러 로마 가톨릭 성당과 수도원들이 번창했다. 제국 내의 이슬람과 타 종교는 서로 비난하거나 치열한 논변으로 싸울지언정 사적 제재로 살해당하거나 법에 의해 처벌받을 우려가 없었던 시기였다. 현대의 이슬람 국가들과 신자들이 타 종교와 이슬람 비판가, 무신론자들을 대상으로 악명높은 탄압과 공적, 사적 제재, 증오 범죄를 일삼는 것이 흔한 것을 감안하면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융성하게 되고 수많은 무슬림 인재들이 배출되면서 교리가 대대적으로 정비되어 이슬람이 아랍 민족종교에서 벗어나 세계종교로 발돋움을 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전의 이슬람 교리는 '그냥 알라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믿으면 됨'의 성격이 강했지만, 학자들은 각종 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이슬람 교리에 대한 근거를 만들었다. 아바스 왕조 이후에도 수많은 《타프씨르》[27]가 만들어져 왔지만 아바스 왕조 때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이슬람에 접근하려 한 《타프씨르》를 찾아볼 수 없으며, 실제로 현대의 이슬람 개혁가들의 주장도 아바스 왕조 때의 문헌에 기초한다.

하지만 이 시대를 너무 이상화하는 것도 곤란하다. 당시 그리스어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작업에서 희곡들이 번역되지 못한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의 역사서들은 번역되지 못했다.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내용을 담은 헤로도토스의 책은 당시 아바스 칼리파조의 실세였던 페르시아인들의 감정을 건드린 듯 하고, 투키디데스의 저작은 아테네 정치인들이 대중들 앞에서 연설한 내용이 상당히 많이 포함된 것은 물론[28] 고대 민주주의 국가 아테네 시민이던 투키디데스의 관점에서 참주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당시 황실의 후원을 받는 번역가들이 건드리기 적합한 책이 아니었다. 같은 맥락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바스 칼리파조 학자들에게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 중에서도 《정치학》(Politika)은 번역되지 못했다. 본래 고대 아랍인들은 슈라에 바탕을 둔 원시적인 형태의 민주주의 및 평등주의가 강했지만 우미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시대가 되면서 칼리파들은 페르시아와 동로마의 황제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29]

당시 수도였던 바그다드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바스 왕조의 장녀 이라크의 경우 아바스 왕조에 대한 평가가 당연히 매우 좋다. 아바스 왕조가 서로는 알제리, 동으로는 파키스탄과 인도 서북부에 이르는 영역을 통치하는 거대한 제국이었다는것과 바그다드가 인구 200만이 넘는 대도시에 당대 세계 학문의 전당이었다는것에 자부심이 대단하며, 이라크인들이 역사공부를 했을때 수메르,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고대 메소포타미아 국가들과 함께 자부심을 채워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근세 이후 파트는 배우면 배울수록 암울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아서 멘탈이 붕괴된다. 사담 후세인도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아바스 왕조를 동경했던 사람이었다. 이라크에서 대표적인 위인하면 네부카드네자르 2세, 함무라비와 함께 하룬 알 라시드 알 마문등이 위인으로 손꼽히며, 아바스를 대표하는 칼리파들의 이름들이 지명으로 쓰인다.

하지만 페르시아, 즉 이란의 입장은 썩 좋지않다. 일단 아바스 왕조는 페르시아인들이 중용되었던 왕조였지만, 아바스 왕조는 결정적으로 수니파고 현 이란은 시아파 국가다보니 평가가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바스 왕조는 건국 이후 최대 공신이자 페르시아인이었던 아부 무슬림을 숙청했고, 시아파 이맘을 독살해 죽여버리거나 체계적으로 시아파 무슬림들을 탄압한 전적도 있다보니 아바스 왕조에 대한 입장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아부 무슬림 사후 극렬히 반발한 페르시아인들은 호람딘을 창설해 아바스 왕조의 골머리를 썩혔고 페르시아와 아바스 왕조의 관계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란-이라크 관계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현대 이란과 이라크는 하루 종일 으르렁거리는 사이인데, 아무래도 아바스 왕조의 중심이 이라크였고 그 중심지였던 바그다드 사마라 등의 대도시들마저도 죄다 이라크에 있다보니 이란으로서는 아바스 왕조에 대한 인식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서구권에서는 아바스 왕조에 대해 인식이 나쁠만한 이유가 없다. 우마이야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처럼 유럽을 직접 침공한 것도 아니고, 현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처럼 종교에 미쳐 날뛰었던 것도 아니니 오히려 바람직한 무슬림들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게다가 천일야화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메리트 덕분에 오리엔탈리즘의 주요대상으로 살짝 미화되는 감도 없지않아 있다. 특히 실전될 뻔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산들을 잘 보존하고, 훗날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근간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집트, 레바논 등 다른 중동권도 마찬가지다. 아바스 왕조의 시대는 이슬람이 역사상 가장 잘나갔을 시대였고, 특히 북아프리카의 패자 이집트는 아예 아바스 칼리파들을 카이로에 납치해서 부려먹기까지 했으니 딱히 아바스 왕조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만한 건덕지가 없다.

11. 여담

  • 대식국(大食國)은 이슬람 제국을 이르는 말인데, 기록은 적으나 색상을 기준으로 몇 가지 바리에이션이 있었다. 검은 군기를 사용한 아바스 왕조는 흑의대식이라 불렸으며 제일 유명한 '대식국'이기도 했다. 또 아라비아 반도 전체 혹은 한때 중동, 북아프리카, 서유럽 일부, 중앙아시아까지 차지했던 우마이야 왕조는 흰 군기를 사용해 백의대식이라 불렸다. 또한 이집트를 지배하던 쉬아 계열 이스마일파(7이맘파) 파티마 왕조는 녹의대식이라 불렀다.
  • '대식국'이란 중국 당나라 때 표기된 말인데 다양한 유래가 전한다. 하나는 '대식'의 중국어 음역 ‘Tashi’가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로 무역상의 뜻을 가진 ‘Taijr’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650년 이후 이슬람 세력이 서역에서 급속하게 영토 확장을 해나가자 이를 군사야욕이라 규정한 중국인들이 아라비아를 ‘영토의 탐욕자'(=영토 먹기에 환장한 놈)라는 모멸감 섞인 말인 '대식'으로 불렀다는 설, 또다른 하나는 풍족하게 살아서 식사량이 많아서 그랬다는 설이 있다.
  • 전성기 시절, 약 800년대의 바그다드는 그 인구가 무려 20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 역사상 처음으로 수표가 쓰인 것도 아바스 왕조 치하의 바그다드에서였다. #
  • 천일야화의 배경이 된 곳 역시 하룬 알 라시드 치하의 아바스 왕조 시대다. 그래서 잘 읽어보면 간간히 아바스 왕조 시대의 인물들이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걸 알 수 있다. 대표적 인물이 아랍의 위대한 시인들 중 하나로 꼽히는 '아부 누와스'.
  • 교과서나 참고서 등에서 나오는 아바스 칼리파조의 영토는 우마이야 왕조의 강역에서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알안달루스만 뺀 마그레브(모로코, 알제리)에서 트란스옥시아나(우즈벡)까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국의 전성기였던 알 만수르나 하룬 알 라시드 시대의 제국은 이프리키야(튀니지, 리비아)에서 이란까지였고, 제국의 최전성기(일명 이슬람 황금기)인 알 마문의 시대에는 이집트에서 이라크까지만 아바스 칼리파의 직접적인 권력이 미쳤다. 또한, 크레타 섬이나 시칠리아 섬 일대를 아바스 칼리파조의 영토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시칠리아는 아바스 조의 속국이었던 아글라브 왕조가 점령해서 연관성이라도 있지만 크레타는 후우마이야 왕조에서 추방된 안달루스인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바스군에게 격퇴된 일단이 점령한 것이라 더더욱 연관이 없다.

12. 아바스 왕조의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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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역대 칼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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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

13.1.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

대수 이름 재위기간 비고
1대 아부 알 아바스 750~754 아바스 왕조가 개창되었다(제3차 피트나). 당나라와의 탈라스 전투가 일어났다.
2대 알 만수르 754~775 수도를 쿠파에서 바그다드로 옮겼다. 아바스 칼리파의 권력이 강해졌다.
3대 알 마흐디 775~785 바그다드가 번영했다.
4대 알 하디 785~786
5대 하룬 알 라시드 786~809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고, 칼리파의 권력이 더더욱 강화되었다. 아바스 왕조와 이슬람의 황금기가 열렸다. 북아프리카를 서서히 상실하기 시작했다.
6대 알 아민 809~813 알 아민과 알 마문의 내전(제4차 피트나)이 벌어졌다.
7대 알 마문 813~833 알 아민과의 내전에서 승리했다. 제국 곳곳에서 끊임없이 반란이 일어났다. 이슬람의 황금기가 지속되었다.
8대 알 무타심 833~842 튀르크계 용병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이슬람 왕조 몰락 플래그가 섰다
9대 알 와시크 842~847 마우로포타모스 전투가 일어났다.
10대 알 무타와킬 847~861 많은 건설사업이 벌어졌다. 이슬람과 아바스 왕조의 황금기가 종결되었다.
11대 알 문타시르 861~862 이슬람의 혼란기가 시작되었다.
12대 알 무스타인 862~866 튀르크계 장군들이 실권을 장악했다. 제5차 피트나가 일어났으며, 지방 분권화가 가속화되었다.
13대 알 무타즈 866~869 아바스 왕조의 지방 통제력이 무너져 내렸다.
14대 알 무흐타디 869~870 이븐 와시프와 무사 이븐 부가간의 대립끝에 이븐 부가가 승리했다.
15대 알 무타미드 870~892 사마라의 혼란기가 종식되었다. 잔즈 반란 사파르 왕조의 침입을 막아내어 아바스 왕조가 중흥기를 맞았다.
16대 알 무타디드 892~902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북부, 이란 서부 등을 직접 지배령으로 수복하고, 툴룬 왕조 사파르 왕조로부터 형식적인 충성을 받아냈다.
17대 알 무크타피 902~908 툴룬 왕조를 정복했다. 와지르의 권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사후 아바스 왕조의 중흥기가 끝났다.
18대 알 무크타디르 908~932
19대 알 카히르 932~934
20대 알 라디 934~940
21대 알 무타키 940~944
22대 알 무스탁피 944~946 알 무크타디르 사후 다시 칼리파를 좌지우지하던 튀르크계 용병들을 격파하고 쉬아 계열 12이맘파 국가인 부와이 왕조가 바그다드에 입성했다. 이후 수니파 아바스 칼리파는 쉬아파 부와이 왕조, 그 다음에는 수니파 셀주크 왕조에 굴복하여 종교적인 권위만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23대 알 무티 946~974
24대 알 타이 974~991
25대 알 카디르 991~1031
26대 알 카임 1031~1075
27대 알 무크타디 1075~1094
28대 알 무스타지르 1094~1118
29대 알 무스타르시드 1118~1135
30대 알 라시드 1135~1136
31대 알 묵타피 1136~1160 아바스 왕조의 제2차 중흥기가 시작되었다.
32대 알 무스탄지드 1160~1170
33대 알 무스타디 1170~1180
34대 알 나시르 1180~1225 후제스탄을 점령했다.
35대 알 자히르 1225~1226
36대 알 무스탄시르 1226~1242 아바스 왕조가 모술을 제외한 이라크 전체를 회복했다.
37대 알 무스타심 1242~1258 바그다드가 몽골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어 아바스 칼리파조가 사실상 멸망했다.

13.2. 카이로 아바스 왕조

대수 이름 재위기간
38대 알 무스탄시르 2세 1261~1262
39대 알 하킴 1세 1262~1302
40대 알 무스탁피 1세 1302~1340
41대 알 와시크 1세 1340~1341
42대 알 하킴 2세 1341~1352
43대 알 무타디드 1세 1352~1362
44대 알 무타와킬 1세 1362~1383
45대 알 무스타심 1377
복위 알 무타와킬 1세 1377~1383
46대 알 와시크 2세 1383~1386
복위 알 무스타심 1386~1389
복위 알 무타와킬 2세 1389~1406
47대 알 무스타인 1406~1414
48대 알 무타디드 2세 1414~1441
49대 알 무스탁피 2세 1441~1451
50대 알 카임 1451~1455
51대 알 무스탄지드 1455~1479
52대 알 무타와킬 2세 1479~1497
53대 알 무스탐식 1497~1508
54대 알 무타와킬 3세 1508~1516
복위 알 무스탐식 1516~1517
복위 알 무타와킬 3세 1517
셀림 1세에게 선양

14. 둘러보기

구당서(舊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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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고조기(高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6권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 7권 「 중종·예종기(中宗睿宗紀)」 8·9권 「현종기(玄宗紀)」
무조 이현(李顯) · 이단 이융기
10권 「숙종기(肅宗紀)」 11권 「대종기(代宗紀)」 12·13권 「덕종기(德宗紀)」
이형(李亨) 이예(李豫) 이괄
14·15권 「순종·헌종기(順宗憲宗紀)」 16권 「목종기(穆宗紀)」 17권 「경종·문종기(敬宗文宗紀)」
이송 · 이순(李純) 이항 이심(李湛) · 이앙
18권 「무종·선종기(武宗宣宗紀)」 1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2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염(李瀍) · 이침(李忱)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21권 ~ 50권은 志에 해당. 구당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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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a48252> 51·52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왕폐후 · 소양제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양귀비
원헌황후 · 장황후 · 장경황후 · 예진황후 · 정의황후 · 소덕황후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적선황후
53권 「이밀전(李密傳)」 54권 「왕세충등전(王世充等傳)」
이밀 , 선웅신, 왕세충 · 두건덕
55권 「설거등전(薛舉等傳)」
설거 , 설인고 이궤 · 유무주 , 원군장, · 고개도 · 유흑달 , 서원랑,
56권 「소선등전(蕭銑等傳)」
소선 · 두복위 · 보공석 , 감릉 왕웅탄, · 심법흥 · 이자통 , 주찬 임사홍 장선안, · 나예 · 양사도 , 유계진 이자화,
57권 「배적등전(裴寂等傳)」
배적 · 유문정 , 이맹상 진행사 유세룡 조문각 장평고 이사행 이고천 허세서 유사립 전구농 번흥 공손무달 방경운 장장경 이안원,
58권 「당검등전(唐儉等傳)」 59권 「굴돌통등전(屈突通等傳)」
당검 · 장손순덕 ·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 · 시소 · 무사확 굴돌통 · 임괴 · 구화 · 허소 · 이습지 · 강모
60권 「종실전(宗室傳)」
이효기 · 이신통 · 이신부 · 이숙량 · 이침(李琛) · 이효공 · 이원(李瑗) · 이도현 · 이도종 · 이박예
61권 「온대아등전(溫大雅等傳)」 62권 「이강등전(李綱等傳)」 63권 「봉륜등전(封倫等傳)」
온대아 · 진숙달 · 두위 이강(李綱) · 정선과 · 양공인 · 황보무일 · 이대량 봉륜 · 소우 , 소예 소균 소관 소업, · 배구 · 우문사급
64권 「고조22자전(高祖二十二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65권 「고사렴등전(高士廉等傳)」 66권 「방현령등전(房玄齡等傳)」 67권 「이정등전(李靖等傳)」
고사렴 · 장손무기 방현령 · 두여회 이정(李靖) · 이세적
68권 「울지경덕등전(尉遲敬德等傳)」 69권 「후군집등전(侯君集等傳)」 70권 「왕규등전(王珪等傳)」
울지경덕 · 진경 · 정지절 · 단지현 · 장공근 후군집 · 장량 · 설만철 왕규 · 대주 · 잠문본 · 두정륜
71권 「위징전(魏徵傳)」 72권 「우세남등전(虞世南等傳)」 73권 「설수등전(薛收等傳)」
위징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설수 · 요사렴 · 안사고 · 영호덕분 · 공영달
74권 「유계등전(劉洎等傳)」 75권 「소세장등전(蘇世長等傳)」
유계 · 마주 · 최인사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76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77권 「위정등전(韋挺等傳)」 78권 「우지녕등전(于志寧等傳)」
위정 · 양찬 · 유덕위 · 염입덕 , 염입본, · 유형 · 최의현 우지녕 · 고계보 · 장행성
79권 「조효손등전(祖孝孫等傳)」 80권 「저수량등전(褚遂良等傳)」
조효손 · 부인균 · 부혁 · 이순풍 · 여재 저수량 · 한원 · 내제 · 상관의
81권 「최돈례등전(崔敦禮等傳)」
최돈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이의염 , 손처약, , 악언위, , 조인본,
82권 「허경종등전(許敬宗等傳)」 83권 「곽효각등전(郭孝恪等傳)」
허경종 · 이의부 곽효각 · 장검 · 소정방 · 설인귀 · 정무정 , 정명진, , 장사귀, , 조도흥,
84권 「유인궤등전(劉仁軌等傳)」 85권 「당림등전(唐臨等傳)」
유인궤 · 학처준 · 배행검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86권 「고종·중종제자전(高宗中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李孝)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중무
87권 「배염등전(裴炎等傳)」 88권 「위사겸등전(韋思謙等傳)」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위사겸 · 육원방 · 소괴
89권 「적인걸등전(狄仁傑等傳)」 90권 「왕급선등전(王及善等傳)」
적인걸 · 왕방경 · 요숙 왕급선 · 두경검 · 주경칙 · 양재사 · 이회원 · 두로흠망
91권 「환언범등전(桓彥範等傳)」 92권 「위원충등전(魏元忠等傳)」
환언범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위원충 · 위안석 · 소지충 , 종초객 기처눌,
93권 「누사덕등전(婁師德等傳)」 94권 「소미도등전(蘇味道等傳)」
누사덕 · 왕효걸 · 당휴경 · 장인원 · 설눌 · 왕준 소미도 · 이교 · 최융 · 노장용 · 서언백
95권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96권 「요숭등전(姚崇等傳)」 97권 「유유구등전(劉幽求等傳)」
요숭 · 송경 유유구 · 종소경 · 곽원진 · 장열
98권 「위지고등전(魏知古等傳)」 99권 「최일용등전(崔日用等傳)」
위지고 · 노회신 · 원건요 · 이원굉 · 두섬 · 한휴 · 배요경 최일용 · 장가정 · 소숭 · 장구령 · 이적지 · 엄정지
100권 「윤사정등전(尹思貞等傳)」
윤사정 · 이걸 · 해완 · 필구 · 소향 · 정유충 · 왕지음 · 노종원 · 이조은 · 배최 · 왕구
101권 「이예등전(李乂等傳)」 102권 「마회소등전(馬懷素等傳)」
이예(李乂) · 설등 · 위주 · 한사복 · 장정규 · 왕구례 · 신체부 마회소 · 저무량 · 유자현 · 서견 · 원행충 · 오긍 · 위술
103권 「곽건관등전(郭虔瓘等傳)」 104권 「고선지등전(高仙芝等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우선객 · 왕충사 고선지 · 봉상청 · 가서한
105권 「우문융등전(宇文融等傳)」 106권 「이임보등전(李林甫等傳)」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이임보 · 양국충 · 장위 · 왕거 · 왕모중
107권 「현종제자전(玄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108권 「위견소등전(韋見素等傳)」 109권 「풍앙등전(馮盎等傳)」
위견소 · 최원 · 최환 · 두홍점 풍앙 · 아사나사이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다조 · 이사업 · 백효덕
110권 「이광필등전(李光弼等傳)」 111권 「최광원등전(崔光遠等傳)」
이광필 · 왕사례 · 등경산 · 신운경 최광원 · 방관 · 장호 · 고적 · 창최
112권 「이고등전(李暠等傳)」 113권 「묘진경등전(苗晉卿等傳)」
이고(李暠) · 이린(李麟) · 이국정 · 이환(李峘) · 이거(李巨)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114권 「노경등전(魯炅等傳)」 115권 「최기등전(崔器等傳)」
노경 · 배융 · 내진 · 주지광 최기 · 조국진 · 최관 · 경괄 · 위원보 · 위소유 · 위백옥 · 이승
116권 「숙종·대종제자전(肅宗代宗諸子傳)」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희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117권 「엄무등전(嚴武等傳)」 118권 「원재등전(元載等傳)」
엄무 · 곽영예 · 최녕 · 엄진 · 엄여 원재 , 왕앙, , 이소량, · 왕진 · 양염 · 여간 · 유준
119권 「양관등전(楊綰等傳)」 120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21권 「복고회은등전(僕固懷恩等傳)」
양관 · 최우보 · 상곤 곽자의 복고회은 · 양숭의 · 이회광
122권 「장헌성등전(張獻誠等傳)」
장헌성 · 노사공 · 곡환 · 진한형 · 양조성 · 번택 · 이숙명 · 배주
123권 「유안등전(劉晏等傳)」 124권 「설숭등전(薛嵩等傳)」 125권 「장일등전(張鎰等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 설숭 · 영호창 · 전신공 · 후희일 · 이정기 장일 · 유종일 · 소복 · 유혼
126권 「이계등전(李揆等傳)」 127권 「요령언등전(姚令言等傳)」
이계(李揆) · 이함(李涵) · 진소유 · 노악 · 배서 요령언 · 장광성 · 원휴 · 교림 · 장섭 · 장진 · 홍경륜 · 팽언
12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29권 「한황등전(韓滉等傳)」 130권 「왕여등전(王璵等傳)」
단수실 · 안진경 한황 · 장연상 왕여 · 이필 · 최조 · 관파
131권 「이면등전(李勉等傳)」 132권 「이포옥등전(李抱玉等傳)」
이면 · 이고(李皋) 이포옥 · 이포진 · 왕건휴 · 노종사 · 이봉(李芃) · 이징(李澄)
133권 「이성등전(李晟等傳)」 134권 「마수등전(馬燧等傳)」
이성 마수 · 혼감
135권 「노기등전(盧杞等傳)」
노기 · 백지정 · 배연령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위집의 · 왕숙문 · 정이 · 황보변
136권 「두참등전(竇參等傳)」
두참 · 제영 · 유자 · 노매 · 최손 · 제항
137권 「서호등전(徐浩等傳)」
서호 · 조연 · 유태진 · 이서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여위 · 정운규 · 이익 · 이하(李賀)
13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39권 「육지전(陸贄傳)」 140권 「위고등전(韋臯等傳)」
조경 · 위륜 · 가탐 · 강공보 육지 위고 · 장건봉 · 노군
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전승사 · 전홍정 · 장효충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이회선 · 주도 · 유평 · 정일화 · 이전약
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상가고 · 이관(李觀)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한유괴 · 가은림 · 두희전 · 울지승 · 형군아 · 양조성 · 장경칙
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유현좌 · 동진 · 육장원 · 유전량 · 이충신 · 이희열 · 오소성
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설파 · 포방 · 이자량 · 이설 · 엄수 · 소흔 · 두아 · 왕위 · 이약초 · 우흔 · 노징 · 양풍 · 정원 · 두겸 · 양조성 · 설비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두황상 · 고영 · 두우 배기 · 이보길 · 이번 · 권덕여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우휴열 · 영호환 · 귀숭경 · 유후인 · 해척 · 장천 · 장예 · 유등 · 심전사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고숭문 · 이신(伊慎)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염거원 · 맹원양 · 조창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마린 · 학정옥 · 왕서요 · 유창 · 이경략 · 장만복 · 고고 · 학자 · 단좌 · 사경봉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요남중 · 유내 · 원고 · 단평중 · 설존성 · 노탄 공소부 · 허맹용 · 여원응 · 유서초 · 장숙 · 웅망 · 백기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목녕 · 최빈 · 두군 · 이손 · 설융 우적 · 한홍 · 왕지흥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왕굉 · 치사미 · 이용(李鄘) · 신비 · 마총 · 위홍경 · 왕언위 무원형 · 정여경 · 위관지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위차공 · 정인 · 위처후 · 최군 · 노수 한유 , 장적 맹교 당구, · 이고(李翱) · 우문적 · 유우석 · 유종원 · 한사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이공(李珙) · 이우(李祐) · 동중질 · 양원경 · 유오 · 유면 · 석웅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반맹양 · 이소(李翛) · 왕수 · 조화 · 위수 · 정권 · 주지 · 한전의 · 고하우 · 고우 · 최융 · 육선 · 장정보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맹간 · 호증 · 최원략 · 두원영 · 최홍례 · 이우중 · 왕질 · 노간사 왕파 · 이강(李絳) · 양어릉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위하경 · 왕정아 · 유공작 · 최현량 · 온조 · 곽승하 · 은유 · 서회 원진 · 백거이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조종유 · 두역직 · 이봉길 · 단문창 · 송신석 · 이정(李程) 위온 · 독고울 · 전휘 · 고익 · 풍숙 · 봉오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왕번 · 가속 · 서원여 · 곽행여 · 나립언 · 이효본 배도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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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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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권 「외척전(外戚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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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이보국 · 정원진 · 어조은 · 두문장 · 구문진 · 토돌승최 · 왕수징 · 전령자 · 양복광 · 양복공
185권 「양리전(良吏傳)」
위인수 · 장윤제 · 이동객 · 이소립 · 설대정 · 가돈이 · 이군구 · 최지온 · 고지주 · 전인회 · 위기 · 권회은 · 풍원상 · 장엄 · 왕방익 · 설계창 · 배회고 · 장지건 · 양원염 · 예약수 · 이준(李浚) · 양교 · 송경례 · 강사도 · 강순 · 반호례 · 양무겸 · 양인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여인 · 소정 · 장연 · 이혜등 · 임적간 · 범전정 · 원자 · 설빈 · 염제미
186권 「혹리전(酷吏傳)」
내준신 · 주흥 · 부유예 · 구신적 · 삭원례 · 후사지 · 만국준 · 내자순 · 왕홍의 · 곽패 · 길욱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길온 · 나희석 · 모약허 · 경우
187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나사신 · 여자장 · 이공일 · 장선상 · 이현통 · 경군홍 · 풍립 · 사숙방 · 왕의방 · 성삼랑 · 윤원정 · 고예 · 왕동교 · 소안항 · 유문준 · 연흠융 · 안금장 · 이징(李憕) · 장개연 · 최무피 · 노혁 · 장청 · 안고경 · 설원 · 장순 · 허원 · 정천리 · 원광정 · 소진 · 부린 · 조엽 · 석연분 · 장비 · 견제 · 유돈유 · 고목 · 가직언 · 유경휴 · 신당
188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군조 · 조홍지 · 진집원 · 원양 · 배경이 · 배수진 · 이일지 · 최면 · 육남금 · 장수 · 양문정 · 최연 · 정공저 · 나양
189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가공언 · 장후윤 · 곡나율 · 소덕언 · 허숙아 · 경파 · 유백장 · 진경통 · 나도종 · 형문위
고자공 · 낭여령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위숙하 · 축흠명 · 곽산운 · 유충 · 노찬 · 윤지장 · 서대 · 소변 · 육질 · 풍항 · 위표미 · 허강좌
190권 「문원전(文苑傳)」
공소안 · 원랑 · 하덕인 · 유포 · 채윤공 · 정세익 · 사언 · 최신명 · 장온고 · 유윤지 · 장창령 · 최행공 · 서제담 · 두역간 · 노조린 · 양형 · 왕발 · 낙빈왕 · 등현정 · 곽정일 · 원만경 · 교지지 · 유윤제 · 부가모 · 원반천 · 유헌 · 심전기 · 진자앙 · 송지문 · 염조은 · 가증 · 허경선 · 하지장 · 석예 · 제완 · 왕완 · 이옹(李邕) · 손적 · 이화 · 소영사 · 육거 · 유포 · 최호 · 왕창령 · 맹호연 · 원덕수 · 왕유 · 이백 · 두보 · 오통현 · 왕중서 · 최함 · 당차 · 유분 · 이상은(李商隱) · 온정균 · 설봉 · 이증 · 이거천 · 사공도
191권 「방기전(方伎傳)」
최선위 · 설이 · 견권 · 송협 · 허윤송 · 을불홍례 · 원천강 · 손사막 · 명숭엄 · 장경장 · 이사진 · 장문중 · 상헌보 · 맹선 · 엄선사 · 금양봉 · 장과 · 엽법선 · 현장 · 신수 · 일행 · 상도무
192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전유암 · 사덕의 · 왕우정 · 노홍일 · 왕희이 · 위대경 · 이원개 · 왕수신 · 서인기 · 손처현 · 백이충 · 왕원지 · 반사정 · 유도합 · 사마승정 · 오균 · 공술예
193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경상자 · 위무기 · 두백랑 · 두중랑 · 이현진 · 왕화자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회흘 토번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임읍국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동여국 · 남조만 · 표국
198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고창 · 토욕혼 · 언기국 · 소륵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발율국 · 강국 · 파사국 · 불름국 · 대식국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 실위 · 말갈 · 발해 ·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안녹산 , 안경서 고상 손효철, · 사사명 , 사조의, · 주차 · 황소 · 진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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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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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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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고조기(高祖紀)」 2권 「태종기(太宗紀)」 3권 「고종기(高宗紀)」
이연(李淵) 이세민 이치
4권 「측천황후·중종기(則天皇后中宗紀)」 5권 예종·현종기(睿宗玄宗紀)」 6권 「숙종·대종기(肅宗代宗紀)」
이현(李顯) · 무조 이단 · 이융기 이형(李亨) · 이예(李豫)
7권 「덕종·순종·헌종기(德宗順宗憲宗紀)」 8권 「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기(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紀)」
이괄 · 이송 · 이순(李純) 이항 · 이심(李湛) · 이앙 · 이염(李瀍) · 이침(李忱)
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1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이최 · 이현(李儇) 이엽 · 이축
※ 11권 ~ 60권은 志에 해당. 61권 ~ 75권은 表에 해당. 신당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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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bgcolor=#a48252><tablewidth=100%> 76·77권 「후비전(后妃傳)」 ||
태목황후 · 문덕황후 · 서혜 · 무조 · 왕폐후 · 화사황후 · 위황후 · 상관소용 · 숙명황후 · 소성황후 · 왕폐후 · 정순황후 · 원헌황후 · 양귀비
장황후 · 장경황후 · 정의황후 · 예진황후 · 소덕황후 · 위씨 · 장헌황후 · 의안황후 · 효명황후 · 공희황후 · 정헌황후 · 선의황후 · 곽귀비 · 왕현비 · 원소황후 · 혜안황후 · 곽숙비 · 공헌황후 · 적선황후
78권 「종실전(宗室傳)」
이도종 · 이도흥 · 이효기 · 이도현 · 이숙량 · 이효협 · 이사훈 · 이진(李晉) · 이유량 · 이침 · 이효공 · 이괴 · 이원 · 이신통 · 이도언 · 이효일 · 이신부 · 이박의 · 이봉자
79권 「고조제자전(高祖諸子傳)」
이건성 · 이현패 · 이원길 · 이지운 · 이원경(李元景) · 이원창 · 이원형 · 이원방 · 이원례 · 이원가 · 이원칙 · 이원의 · 이원궤 · 이봉(李鳳) · 이원경(李元慶) · 이원유 · 이원명 · 이령기 · 이원상 · 이원효 · 이원영
80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이승건 · 이관(李寬) · 이각(李恪) · 이태 · 이우(李祐) · 이음 · 이운(李惲) · 이정(李貞) · 이신(李愼) · 이효(李囂) · 이간(李簡) · 이복 · 이명
81권 「삼종제자전(三宗諸子傳)」
이충(李忠) · 이효 · 이상금 · 이소절 · 이홍 · 이현(李賢) · 이중윤 · 이중복 · 이중준 · 이헌 · 이총 · 이범 · 이업 · 이융제
82권 「14종제자전(十四宗諸子傳)」
이종(李琮) · 이영(李瑛) · 이염(李琰) · 이요 · 이완 · 이거(李琚) · 이일(李一) · 이수(李璲) · 이교 · 이민 · 이린(李璘) · 이모 · 이분 · 이기(李琦) · 이환(李環) · 이황 · 이빈 · 이규(李珪) · 이공(李珙) · 이진(李瑱) · 이선(李璿) · 이경(李璥) · 이계(李係) · 이담(李倓) · 이필(李佖) · 이근(李僅) · 이간(李僴) · 이정(李侹) · 이영(李榮) · 이광 · 이수(李倕) · 이사 · 이소(李佋) · 이동(李侗) · 이막 · 이하(李遐) · 이술 · 이유(李逾) · 이연(李連) · 이형(李迥) · 이구(李遘) · 이내 · 이신(李迅) · 이선(李選) · 이소(李溯) · 이조 · 이섬 · 이운(李運) · 이우(李遇) · 이휼 · 이통 · 이규(李逵) · 이일(李逸) · 이의(李誼) · 이심(李諶) · 이량 · 이상(李詳) · 이원(李謜) · 이겸 · 이인(李諲) · 이계(李誡) · 이악 · 이함(李諴) · 이경(李經) · 이위(李緯) · 이종(李縱) · 이서(李紓) · 이주(李綢) · 이종(李綜) · 이약 · 이결 · 이상(李緗) · 이구(李絿) · 이기(李綺) · 이현(李絢) · 이훈(李纁) · 이관(李綰) · 이선(李繕) · 이롱 · 이곤 · 이신(李紳) · 이륜 · 이작 · 이집 · 이녕 · 이운(李惲) · 이종(李悰) · 이흔 · 이오 · 이각(李恪) · 이경(李憬) · 이열 · 이순(李恂) · 이역(李懌) · 이음(李愔) · 이협 · 이담(李憺) · 이충(李㤝) · 이췌(李惴) · 이척(李惕) · 이탄 · 이책 · 이주(李湊) · 이용(李溶) · 이보(李普) · 이휴복 · 이언양 · 이집중 · 이성미 · 이영(李永) · 이종검 · 이준(李峻) · 이현(李峴) · 이기(李岐) · 이역(李嶧) · 이차 · 이한 · 이경(李涇) · 이관(李灌) · 이자(李滋) · 이근(李沂) · 이택 · 이윤 · 이흡 · 이예(李汭) · 이문 · 이옹(李澭) · 이일(李佾) · 이건 · 이길 · 이간(李侃) · 이보(李保) · 이의(李倚) · 이진(李震) · 이승 · 이유(李裕) · 이우(李祤) · 이계(李禊) · 이인(李禋) · 이의(李祎) · 이비 · 이기(李祺) · 이진(李禛) · 이상(李祥) · 이정(李禎) · 이기(李祁) · 이복 · 이희(李禧) · 이고(李祜) · 이제 · 이희(李祐)
83권 「제제공주전(諸帝公主傳)」
동안공주 · 장사공주 · 양양공주 · 평양소공주 · 고밀공주 · 장광공주 · 장사공주 · 방릉공주 · 구강공주 · 노릉공주 · 남창공주 · 안평공주 · 회남공주 · 진정공주 · 형양공주 · 단양공주 · 임해공주 · 관도공주 · 안정공주 · 상락공주 · 양성공주 · 여남공주 · 남평공주 · 수안공주 · 장락공주 · 예장공주 · 북경공주 · 보안공주 · 동양공주 · 임천공주 · 청하공주 · 난릉공주 · 진안공주 · 안강공주 · 신흥공주 · 성양공주 · 합포공주 · 금산공주 · 진양공주 · 상산공주 · 신성공주 · 의양공주 · 고안공주 · 태평공주 · 신도공주 · 의성공주 · 정안공주 · 장녕공주 · 영태공주 · 안락공주 · 성안공주 · 수창공주 · 안흥소회공주 · 형산공주 · 회양공주 · 대국공주 · 양국공주 · 설국공주 · 식국공주 · 금선공주 · 옥진공주 · 곽국공주 · 영흥공주 · 천장공주 · 영국공주 · 흥당공주 · 서평공주 · 낭령공주 · 광화공주 · 창락공주 · 수춘공주 · 장녕공주 · 연경공주 · 정락공주 · 낙온공주 · 영청공주 · 위국문의공주 · 안화공주 · 보강공주 · 창원공주 · 창녕공주 · 금화공주 · 인수공주 · 영수공주 · 당흥공주 · 영평공주
84권 「이밀전(李密傳)」 85권 「왕두전(王竇傳)」
이밀 , 선웅신 조효징, 왕세충 · 두건덕
86권 「설이이유고서전(薛李二劉高徐傳)」 87권 「소보심이양전(蕭輔沈李梁傳)」
설거 , 설인고 이궤 · 유무주 · 고개도 · 유흑달 · 서원랑 소선 · 보공석 · 심법흥 · 이자통 , 주찬 임사홍 장선안, 양사도(梁師都) , 유계진,
88권 「유배전(劉裴傳)」 89권 「굴돌울지장진당단전(屈突尉遲張秦唐段傳)」
유문정 · 배적 굴돌통 · 울지공 · 장공근 · 진경 · 당검 · 단지현
90권 「이유은허정시임구전(二劉殷許程柴任丘傳)」 91권 「온황보이이강최전(溫皇甫二李姜崔傳)」
유홍기 · 은개산 · 유정회회 · 허소 · 정지절 · 시소 · 임괴 · 구화 온대아 · 황보무일 · 이습지 · 강모 · 최선위 · 이사진
92권 「두감왕이원나왕전(杜闞王李苑羅王傳)」 93권 「이이전(二李傳)」
두복위 · 감릉 · 왕웅탄 · 장사귀 · 이자화 · 원군장 · 나예 · 왕군곽 이정(李靖) · 이적
94권 「후장설전(侯張薛傳)」 95권 「고두전(高竇傳)」 96권 「방두전(房杜傳)」
후군집 · 장량 · 설만균 고검 · 두위 방현령 · 두여회
97권 「위징전(魏徵傳)」 98권 「왕설마위전(王薛馬韋傳)」 99권 「이이대유최전(二李戴劉崔傳)」
위징 왕규 · 설수 · 마주 · 위정 이강(李綱) · 이대량 · 대주 · 유계 · 최인사
100권 「진양봉배우문정권염장강장전(陳楊封裴宇文鄭權閻蔣姜張傳)」
진숙달 · 양공인 , 양사도(楊師道), · 봉륜 · 배구 · 우문사급 · 정선과 · 권만기 · 염입덕 · 장엄 · 위홍기 · 강사도 · 장지건
101권 「소우전(蕭瑀傳)」 102권 「잠우이저요영호전(岑虞李褚姚令狐傳)」
소우 잠문본 · 우세남 · 이백약 · 저량 · 요사렴 · 영호덕분
103권 「소위손장전(蘇韋孫張傳)」 104권 「우고장전(于高張傳)」
소세장 · 위운기 · 손복가 · 장현소 우지녕 · 고풍 · 장행성
105권 「장손저한내이상관전(長孫褚韓來李上官傳)」
장손무기 · 저수량 · 한원 · 내제 · 이의염 · 상관의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두정륜 · 최지온 · 고지주 · 곽정일 · 조홍지 · 최돈례 · 양홍례 · 노승경 · 유상도 · 이경현 · 유덕위 · 손처약 · 형문위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누전(劉裴婁傳)」
부혁 · 여재 · 진자앙 유인궤 · 배행검 · 누사덕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최의현 · 양재사 · 두회정 · 종초객 · 축흠명 , 곽산운, · 왕여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사대내 · 풍앙 · 아사나사이 · 아사나충 · 집실사력 · 글필하력 · 흑치상지 · 이근행 · 천남생 · 이다조 · 논궁인 · 손유정 · 울지승 · 상가고 · 배분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곽효각 · 장검 · 왕방익 · 소열 · 설인귀 · 정무정 , 정명진 왕효걸 · 당선 · 장인원 · 왕준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113권 「당장서전(唐張徐傳)」
왕의방 · 한사언 · 소안항 · 설등 · 왕구례 · 류택 · 풍원상 · 장흠서 당림 · 장문관 · 서유공
114권 「최서소두로전(崔徐蘇豆盧傳)」 115권 「적학주전(狄郝朱傳)」
최융 · 서언백 · 소미도 · 두로흠망 적인걸 · 학처준 · 주경칙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왕침 · 위사겸 · 육원방 · 왕급선 · 이일지 · 두경전 · 이회원 배염 · 유의지 · 위현동 · 이소덕 · 길욱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장정규 · 위주 · 한사복 · 송무광 · 신체부 · 이발 · 배린 · 이중민 · 이감 무평일 · 이예(李乂) · 가증 · 백거이
120권 「오왕전(五王傳)」
환언범 , 이복업 습수 설계창, · 양원염 · 경휘 · 최현위 · 장간지 · 원서기
121권 「유종최이왕전(劉鐘崔二王傳)」 122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유유구 · 종소경 · 최일용 · 왕거 · 왕모중 위원충 · 위안석 · 곽진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이교 · 소지충 · 노장용 · 위거원 · 조언소 · 화봉요 요숭 · 송경
125권 「소장전(蘇張傳)」 126권 「위로이두장한전(魏盧李杜張韓傳)」
소괴 · 장열 위지고 · 노회신 · 이원굉 · 두섬 · 장구령 · 한휴
127권 「장원배전(張源裴傳)」
장가정 · 원건요 · 배요경
128권 「소윤필이정왕허반예석제전(蘇尹畢李鄭王許潘倪席齊傳)」
소향 · 윤사정 · 필구 · 이걸 · 정유충 · 왕지음 · 허경선 · 반호례 · 예약수 · 석예 · 제한
129권 「배최노이왕엄전(裴崔盧李王嚴傳)」 130권 「배양송양최이해전(裴陽宋楊崔李解傳)」
배수진 · 최면 · 노종원 · 이조은 · 왕구 · 엄정지 배최 · 양교 · 송경례 · 양창 · 최은보 · 이상은(李尙隱) · 해완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유침전(劉吳韋蔣柳沈傳)」
이적지 · 이현(李峴) · 이면 · 이이간 · 이정(李程) · 이석 · 이회 유자현 · 오긍 · 위술 · 장예 · 유방 · 심기제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곽건관 · 곽지운 · 왕군착 · 장수규 · 왕충사 · 우선객 우문융 · 위견 · 양신긍 · 왕홍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가서한 · 고선지 · 봉상청 이광필 곽자의
138권 「이이마노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여전(崔苗李裴呂傳)」
이사업 · 마린 · 이포옥 · 노사공 방관 · 장호 · 이필 최원 · 묘진경 · 배면 · 배준경 · 여인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최광원 · 등경산 · 최관 · 위소유 · 위백옥 · 이징(李澄) · 한전의 · 노종사 · 고하우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이린(李麟) · 양관 · 최우보 · 유혼 · 위처후 · 노수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고적 · 원결 · 이승 · 위륜 · 설각 · 최한형 · 대숙륜 · 왕굉 · 서신 · 치사미 · 신비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내진 · 전신공 · 후희일 · 최녕 · 엄여 원재 · 왕진 · 여간 · 양염 · 엄정 · 두참 이서균 · 이용(李鄘)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왕사례 · 노경 · 왕난득 · 신운경 · 풍하청 · 이봉(李芃) · 이숙명 · 곡환 · 왕건휴 · 노군 · 이원소 · 노사매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영호창 · 장효충 · 강일지 · 이유(李洧) · 유옹 · 전홍정 · 왕승원 · 우원익 · 사효장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유안 · 제오기 · 반굉 · 왕소 · 이손(李巽) 이계 · 상곤 · 조경 · 최조 · 제앙 · 노매 관파 · 동진 · 원자 · 조종유 · 두역직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장일 · 강공보 · 무원형 · 이강(李絳) · 송신석 단수실 · 안진경 이성, 이소(李愬),
155권 「마혼전(馬渾傳)」
마수 · 혼감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양조성 · 대휴안 · 양혜원 · 이원량 · 이관(李觀) · 한유괴 · 두희전 · 형군아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육지 위고 · 장건봉 · 엄진 · 한홍
159권 「포이소설왕오정육노유최전(鮑李蕭薛樊王吳鄭陸盧柳崔傳)」
포방 · 이자량 · 소흔 · 설파 · 번택 · 왕위 · 오주 · 정권 · 육긍 · 노탄 · 유성 · 최융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조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서호 · 여위 · 맹간 · 유백추 · 양풍 · 반맹양 · 최원략 · 위수 장천 · 조연 · 이서 · 정운규 · 서대 · 왕중서 · 풍항 · 유경휴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요남중 · 독고급 · 고소련 · 위하경 · 단평중 · 여원응 · 허맹용 · 설존성 · 이손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공소부 · 목녕 · 최빈 · 유공작 · 양우릉 · 마총
164권 「귀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귀숭경 · 해척 · 최연 · 노경량 · 설빈 · 위차공 · 설융 · 호증 · 정공저 · 최홍례 · 최현량 · 왕질 · 은유 · 왕언위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정여경 · 정순유 · 고영 · 정인 · 권덕여 · 최군 가탐 · 두우 · 영호초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백지정 · 배연령 · 최손 · 위거모 · 이제운 · 이실 · 황보박 · 왕파
168권 「위왕육유유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위집의 · 왕숙문 · 육질 · 유우석 · 유종원 · 정이 두황상 · 배기 · 이번 · 위관지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고숭문 · 이신(伊愼) · 주충량 · 유창예 · 범희조 · 왕악 · 맹원양 · 왕서요 · 유창 · 조창 · 이경략 · 임적간 · 장만복 · 고고 · 학비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이광진 · 오중윤 · 왕패 · 양원경 · 조화 · 고우 · 유면 · 석웅 우적 · 왕지흥 · 두겸 · 두아 · 범정전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배도 이봉길 · 원진 · 우승유 · 이종민 · 양사복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두군 · 유서초 · 장우신 · 양우경 · 장숙 · 웅망 · 백기 한유
177권 「전최이위이고풍삼이노봉정경전(錢崔二韋二高馮三李盧封鄭敬傳)」
전휘 · 최함 · 위표미 · 고익 · 풍숙 · 이우중 · 이고(李翺) · 노간사 · 고원유 · 봉오 · 정훈 · 경회 · 위박 · 이경양
178권 「유분전(劉賁傳)」
유분
179권 「이정이왕가서전(李鄭二王賈舒傳)」
이훈(李訓) · 정주 · 왕애 · 가속 · 서원여 · 왕파 · 곽행여 · 한약 · 나립언 · 이효본 · 고사옹 · 이정소
180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81권 「진삼이조유전(陳三李曹劉傳)」
이덕유 진이행 · 이신(李紳) · 이양이 · 조확 · 유첨 · 이울
182권 「이이최소이정이노위주이배유조왕전(二李崔蕭二鄭二盧韋周二裴劉趙王傳)」
이고언 · 이각 · 최공 · 소업 · 정숙 · 노균 · 노간방 · 위종 · 주지 · 배휴 · 유전 · 조은 · 배탄 · 정연창 · 왕부 · 노광계
183권 「필최유육정주한전(畢崔劉陸鄭朱韓傳)」
필함 · 최언소 · 유업 · 육의 · 정계 · 주박 · 한악
184권 「마양노노전(馬楊路盧傳)」 185권 「정이왕위장전(鄭二王韋張傳)」
마식 · 앵수 · 노암 · 노휴 정전 · 왕탁 · 왕휘 · 위소도 · 장준
186권 「주왕등진유조이양고전(周王鄧陳劉趙二楊顧傳)」
주보 · 왕처존 · 등처눌 · 진유 · 유거용 · 조덕인 · 양수량 · 양성 · 고언랑
187권 「이왕제갈이맹전(二王諸葛李孟傳)」 188권 「양시주손전(楊時朱孫傳)」
왕중영 · 제갈상 · 이한지 · 왕경무 · 맹방립 양행밀 · 시부 · 주선 · 손유
189권 「고조전주전(高趙田朱傳)」 190권 「삼유성두종장왕전(三劉成杜鐘莊王傳)」
고인후 · 조주 · 전군 · 주연수 유건봉 · 성예 · 두홍 · 종전 · 유한굉 · 장웅 · 왕조 · 유지겸
191·192·193권 「충의전(忠義傳)」
하후단 · 유감 · 상달 · 경군홍 · 여자장 · 왕행민 · 나사신 · 장도원 · 이육덕 · 고예 · 안금장 · 왕동교 · 오보안 · 이징(李憕) · 노혁 · 장개연 · 최무피 · 안고경 · 가순 · 장순 · 허원 · 남제운 · 뇌만춘 · 요은 · 정천리 · 방견 · 장흥 · 채정옥 · 부령기 · 유내 · 맹화 · 장비 · 주증 · 장명진 · 석연분 · 오서 · 고목 · 가직언 · 신당 · 황갈
194권 「탁행전(卓行傳)」
원덕수 · 권고 · 견제 · 양성 · 사공도
195권 「효우전(孝友傳)」
이지본 · 장지관 · 유군량 · 왕소현 · 임경신 · 지숙재 · 정원사 · 무홍도 · 정잠요 · 원양 · 배경이 · 양문정 · 심계전 · 허백회 · 진집원 · 장수 · 서원경 · 여상안 · 양열 · 목종세 · 후지도 · 정구라 · 하징수
196권 「은일전(隱逸傳)」
왕적 · 손사막 · 전유암 · 맹선 · 왕우정 · 왕희이 · 이원개 · 위대경 · 무유서 · 백이충 · 오긍 · 노홍 · 오균 · 반사정 · 사마승정 · 하지장 · 진계 · 장지화 · 공술예 · 육우 · 최근 · 육구몽
197권 「순리전(循吏傳)」
위인수 · 진군빈 · 장윤제 · 이소립 · 손지원 · 설대정 · 가돈이 · 전인회 · 배회고 · 위경준 · 이혜등 · 나상 · 위단 · 노홍선 · 설원상 · 하역우
198·199·200권 「유학전(儒學傳)」
서문원 · 육덕명 · 조헌 · 안사고 · 공영달 · 구양순 · 주자사 · 장사형 · 장후윤 · 개문달 · 곡나율 · 경파 · 나도종 · 낭여령 · 서제탐 · 심백의 · 노경순 · 왕원감 · 왕소종 · 팽경직 · 노찬 · 윤지장 · 유충 · 마회소 · 공약사, 공소안, · 저무량 · 원행충 · 진정절 · 시경본 · 노이빙 · 왕중구 · 조동희 · 담조 · 위융 · 진경(陳京) · 창당 · 임온 · 위공숙 · 허강좌
201·202·203권 「문원전(文苑傳)」
원랑 · 하덕인 · 채윤공 · 사언 · 최신명 · 유연우 · 장창령 · 최행공 · 두심언 · 왕발 · 원만경 · 이적(李適) · 위원단 · 유윤제 · 심전기 · 송지문 · 염조은 · 윤원개 · 유헌 · 이옹(李邕) · 여향 · 왕한 · 손적 · 이백 · 왕유 · 정건 · 소영사 · 소원명 · 이화 · 맹호연 · 유태진 · 소설 · 우소 · 최원한 · 우공이 · 이익 · 노륜 · 구양첨 · 이하(李賀) · 오무릉 · 이상은(李商隱) · 설봉 · 이빈(李頻) · 오융
204권 「방기전(方伎傳)」
이순풍 · 견권 · 원천강 · 설이 · 명숭엄 · 상헌보 · 엄선사 · 두생 · 장과 · 강무 · 상도무
205권 「열녀전(列女傳)」
배숙영 · 왕난영 · 경상자 · 위무기 · 하후쇄금 · 왕아족 · 왕옥영 · 요아 · 두백랑 · 두중랑 · 이묘법 · 왕화자 · 사소아 · 봉순
206권 「외척전(外戚傳)」
독고회은 · 무사확 · 위온 · 주인궤 · 왕인교 · 양국충 · 이소(李翛) · 정광
207·208권 「환관전(宦官傳)」
양사욱 · 고역사 · 정원진 · 어조은 · 유정양 · 토돌승최 · 마존량 · 구사량 · 양복광 · 이보국 · 왕수징 · 유극명 · 전령자 · 양복공 · 유계술
209권 「혹리전(酷吏傳)」
삭원례 · 내준신 · 후사지 · 왕홍의 · 곽홍패 · 요소지 · 주이정 · 왕욱 · 최기 · 모약허 · 경우
210권 「번진위박전(藩鎭魏博傳)」 211권 「번진진기전(藩鎭鎭冀傳)」
전승사 · 사헌성 · 하진도 · 악언정 · 나홍신 이보신 · 왕무준 · 왕정주
212권 「번진노룡전(藩鎭盧龍傳)」
이회선 · 주도 · 유평 · 주극융 · 이재의 · 장중무 · 장윤신 · 이무훈 · 이전충 · 유인공
213권 「번진치청횡해전(藩鎭淄青橫海傳)」 214권 「번진선무창의택로전(藩鎭宣武彰義澤潞傳)」
이정기 · 정일화 · 이전략 유현좌 · 오소성 · 이우 · 이비
215권 「돌궐전(突厥傳)」 216권 「토번전(吐蕃傳)」
돌궐 토번
217권 회흘전(回紇傳)」 218권 사타전(沙陀傳)」
회흘 사타
219권 북적전(北狄傳)」 220권 동이전(東夷傳)」
거란 · 해족 · 실위 · 발해 · 말갈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유귀국
221권 「서융전(西戎傳)」
니파라국 · 당항 · 동여국 · 고창 · 토욕혼 · 언기 · 구자 · 소륵 · 갈반타국 · 우전국 · 천축국 · 계빈국 · 강국 · 안국 · 동안 · 동조 · 서조 · 중조 · 자지국 · 미말 · 굴상니가 · 화심 · 갈상나 · 나색파 · 달밀 · 영원국 · 대발률 · 토화라 · 읍달국 · 구란국 · 월저연국 · 범연국 · 석한나 · 식익 · 사몰 · 구밀 · 호밀 · 개실밀 · 골돌 · 소비 · 다미 · 이오성 · 사자국 · 파사국 · 구위 · 불름국 · 대식국 · 달만
222권 「남만전(南蠻傳)」
남조 · 임읍 · 파리국 · 반반국 · 정랍 · 수진랍국 · 타원국 · 가릉국 · 타화라국 · 타파등국 · 동사만 · 서조만 · 장가만 · 표국
223권 「간신전(奸臣傳)」
허경종 · 이의부 · 부유예 · 이임보 · 진희열 · 노기 · 최윤 · 최소위 · 유찬 , 장현휘 장정범 씨숙종 주우공,
224권 「반신전(叛臣傳)」
복고회은 · 주지광 · 양숭의 · 이회광 · 진소유 · 이기(李錡) · 이충신 · 교림 · 고병 · 주매 · 왕행유 · 진경선 · 이거천
225권 「역신전(逆臣傳)」
안녹산 · 고상 · 손효철 · 이희열 · 사사명 · 주차 · 황소 · 진종권 ·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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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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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권 「태조기(太祖紀)」 4·5권 「태종기(太宗紀)」 6·7·8권 「진종기(眞宗紀)」
조광윤 조광의 조항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13권 「영종기(英宗紀)」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조정(趙禎) 조서 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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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36권 「광종기(光宗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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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조확 조윤
46권 「도종기(度宗紀)」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조기(趙禥)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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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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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유귀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조정미 · 조덕소 · 조덕방 · 조원좌 · 조원희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 조우 · 조윤양 · 조호 · 조군 · 조필 · 조오 · 조사 · 조무 · 조해 · 조추 · 조기(趙杞) · 조허 · 조체 · 조악 · 조식 · 조진(趙榛) · 조심 · 조훈(趙訓) · 조부 · 조거 · 조기(趙愭) · 조개(趙愷) · 조순 · 조횡 · 조자칙 · 조자숭 · 조자력 · 조자지 · 조자주 · 조자숙 · 조사이 · 조희언 · 조희역 · 조사오 · 조사요 · 조사궁 · 조사천 · 조불군 · 조불기 · 조불우 · 조불백 · 조선준 · 조선예 · 조여술 · 조숙근 · 조숙향 · 조언담 · 조언숙 · 조언유
248권 「공주전(公主傳)」
진(秦)국대장공주 · 위(魏)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진(陳)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빈국대장공주 · 양국대장공주 · 옹국대장공주 · 위(衛)국대장공주 · 형국대장공주 · 장혜국공주 · 승국대장공주 · 주진국대장공주 · 진로국대장공주 · 곤국대장공주 · 연서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위초국대장공주 · 위국대장공주 · 한위국대장공주 · 주국장공주 · 당국장공주 · 담국장공주 · 서국장공주 · 진국공주 · 진국장공주 · 가덕제희 · 영덕제희 · 순숙제희 · 안덕제희 · 무덕제희 · 수숙제희 · 안숙제희 · 숭덕제희 · 가국공주 · 문안공주 · 화정공주 · 제안공주 · 안강군주 · 기국공주 · 주한국공주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섬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서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 정한 조도, · 곽밀 ,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任布)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유식(柳植)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포(林逋)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 정조 전여조 이조 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만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부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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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검은색 한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당나라 시대를 다룬 역사서인 《 구당서》와 《 신당서》에도 '흑의대식'(黑衣大食)이라고 언급되었다. 반면 아바스 왕조 이전에 이슬람 세계를 지배했던 우마이야 왕조는 국기가 온통 하얀 색으로 그려진 모습이었다. [2] 카이로 아바스 왕조. 독립 국가가 아닌 맘루크 술탄국의 지배를 받는 칼리파 왕조다. [3] 영토는 우마이야 왕조 시절이 좀 더 넓었지만 우마이야 왕조는 급격한 정복의 후유증으로 인해 피정복민의 반란에 시달렸고 정치 불안정도 심해 존속기간도 짧았다. [4] 자세한 내용은 신라-중동 관계 문서 참조. 다만 세계 최초로 한국이 포함된 세계지도를 작성한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는 아바스 왕조가 아니라 무라비트 왕조 출신이다. [5] 사람들은 무함마드가 말한 그 검은 깃발은 더 클 것이며 단순한 빛깔의 검은색이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비무슬림이 보았을 때에는 변명일 뿐이지만 무슬림 입장에서 감히 선지자 무함마드의 예언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6] 다만 현재는 늦어도 11세기 초로 잡는 경우가 많다. [7] 지혜의 집에서는 수많은 고문서 번역 프로젝트를 가동했는데, 개중 한 프로젝트에 쓰인 예산만 해도 당시 영국의 왕립의학위원회 예산 2배가 넘어갔다. 게다가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같은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현대로 따지면 최상급 프로 운동선수에 비견된 만한 엄청난 연봉을 받았다. [8] 다만 알 이즈하르 모스크의 경우 아바스 왕조가 아닌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가 세우긴 했다. [9] 금색은 예외였다. [10] 서구권에 천일야화가 처음 전파된 건 18세기 경이다. 이후 오리엔탈리즘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는 등 현재는 명실상부 이슬람과 아랍권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들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11] 이 시는 아부 누와스의 대표작으로서 그의 시관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들 중 하나로 꼽힌다. 읽어보면 대충 알겠지만 소년애 성향이 대놓고 드러난게 특징이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예찬, 심지어 이슬람교에 대한 풍자마저도 섞여 있다. 술과 쾌락을 좋아했던 아부 누와스는 동성애와 술을 혐오하는 무슬림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성향의 시들을 많이 남겼다. [12] 그는 폭설로 하마단에 갇혔을 당시 그 곳에 있는 대도서관에서 장서들을 추려내 하마사를 저술했다. [13] 이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현재 메카 신전의 키스와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공급하고 있지만,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집트 왕국에서 자청해서 자신들이 키스와 공급을 하겠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오일머니로 국력이 커지고 이슬람권의 맹주를 자처하면서 자신들이 직접 키스와를 공급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14] 생몰은 936 ~ 1013으로 에스파냐 출신 아랍인 [15] 캐러밸이라는 단어 자체가 '카리브'라는 아랍 선박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16]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위치한 중앙 도서관으로서 고대의 마지막 대도서관으로 꼽힌다. 로마 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유산들이 고스란히 소장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4차 십자군 원정 도중 실수로 모두 불탔다. [17] 아랍인들이 스스로 외국으로 나가 귀중한 고서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알 마문 시대에는 천년고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오직 고서 수집만을 목적으로 사절을 파견할 정도였다. [18] 원래 알 마문은 매우 호기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도굴해서 처음으로 왕의 방 안까지 들어간 기록을 남긴 사람도 이 알 마문이다. [19] 그나마 포위전 직전에 40만 권의 책들을 따로 선별해 이란 북서부의 도시 마라게로 가져가서 겨우 살렸다고 한다. [20] 인도 천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천문학에 엄청난 공헌을 남긴 인물이다. [21] '아이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주인의 아이를 낳은 노예 여자를 말하는 용어다. 아이를 낳은 여인은 팔 수도 없었고 주인이 죽으면 바로 자유인으로 바뀌었다. 움 왈라드가 낳은 자식은 노예의 자식이 아니라 주인의 적법한 후계로 간주되었으며 재산을 물려받을 권리도 있었다. 하지만 주인이 여자가 낳은 아이를 자기 친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여자는 간통죄로 처벌받아 자유는커녕 목숨마저 간당간당해질 수도 있었다. [22] 아바스 왕조 최고의 번역자이자 학자로 꼽히는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역시 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도교를 믿는 그리스도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혜의 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며 엄청난 봉급을 받으며 호화로운 삶을 누렸다. [23] 아부 알 아바스는 메카의 지배 부족인 쿠라이시 부족의 하위 부족인 바누 하심의 일원이었다.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숙부인 아바스 이븐 압둘 무탈리브의 고손자였다. [24] 바스타크 칸국의 마지막 지배자였던 모하메드 아잠 칸 바니에바시안은 1967년 사망했다. 이로 인해 바스타크 칸국은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이와 함께 왕위를 지켜오던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방계 혈통도 대가 끊겼다. [25] 이 당시 활동했던 유명한 이슬람 비판가로는 아부 이싸 알 와라끄, 이븐 라완디를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이신론자 겸 불가지론자 시인이었던 아불 알라 알 마알리가 알려져 있다. [26] 아바스 칼리파조의 영역내에서 마니교도들은 무슬림들을 상대로 선교하는 일이 많았고, 적지 않은 학자들이 마니교 신도들이었다. 후대에는 아바스 왕조 내 마니교도(이른바 잔다까)들이 무신론자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슬람 황금기 시대 학자 중 무신론자로 알려진 사람 중 진짜 무신론자인 것이 확실한 사람은 이븐 알 라완디 정도밖에 없고, 나머지 상당수는 다른 학자들에게 비방당하는 과정에서 악마의 편집을 당해 무신론자로 잘못 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거의 유일하게 확정된 사례인 이븐 알 라완디의 경우도 80세가 넘어 죽기 직전에 자신이 무신론자인 것을 밝혔다. [27] 《꾸란》의 주석서를 말한다. [28] 칼리파를 비롯한 아랍인 지식인들은 대중들 앞에서 금요일 예배를 집전하면서 설교 형식으로 연설을 했는데(아랍어로 이를 '쿠트바'라고 한다.) 투키디데스의 《역사》에 기록된 연설들과 금요일 예배를 전후하여 행해지는 설교는 엄연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투키디데스의 책에 묘사된 연설 방식은 당시 그리스도인인 번역가들이나 무슬림 독자들 입장에서는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이었다. [29] 다만 완고한 보수 성향의 아랍인들은 이러한 칼리파들의 행동을 두고 "왜 당신들은 아랍의 전통을 버리고 이교도인 페르시아나 로마인들을 흉내내는가?"라고 불만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