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칼리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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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이 4명만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으나 하산도 잠깐동안 칼리파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포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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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6대 칼리파
알 아민 الأمي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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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
아부 무사 무함마드 이븐 하룬 알 라시드 أبو موسى محمد بن هارون الرشي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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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787년 4월 |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
사망 | 813년 9월 27일 (향년 26세) |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
재위 기간 | 아바스 칼리파 | |
809년 3월 24일 ~ 813년 9월 27일 (4년 6개월) | ||
전임자 | 하룬 알 라시드 | |
후임자 | 알 마문 | |
부모 |
아버지 :
하룬 알 라시드 어머니 : 주바이다 빈 자파르 |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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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왕조 제6대 칼리파. 이복형 알 마문과 4차 피트나를 치른 끝에 패망했다.2. 생애
787년 4월 바그다드에서 아바스 왕조 5대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와 무함마드 알 마흐디의 아들 자파르의 딸인 주바이다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아바스 왕조의 혈통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정통성이 매우 강력했다. 이복형 알 마문이 있었지만 첩 마라질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다만 하룬은 알 아민과 알 마문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키웠고, 당대 최고의 가정교사를 초빙하여 두 아들을 철저히 가르치게 했다.하룬은 혹여 두 아들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내전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사전에 조치를 취했다. 799년 일가족과 함께 메카 순례를 떠난 그는 카바 앞에서 알 마문을 알 아민의 뒤를 이을 두 번째 후계자로 지명했고, 또다른 아들인 알 카심을 세번째 후계자로 지명했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 알 마문이 호라산 지방을 다스리고 알 아민은 나머지 지역을 다스리도록 했다. 그러던 809년 3월 24일 호라산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러 가던 하룬이 중병에 걸려 사망하자, 알 아민이 예정대로 칼리파에 등극했다.
하룬으로부터 알 아민의 보좌 임무를 맡은 알 파딜은 호라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가져온 군인 급료를 바그다드로 돌려보내서 그가 직접 군대에 사려금으로 지급하게 했다. 알 마문은 그에게 하룬의 개인 유산을 자신에게 양도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알 파딜은 "지금은 때가 좋지 않다"며 거절했다. 이 일로 알 마문의 미움을 사자, 알 파딜은 만약 알 마문이 칼리파에 등극하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여기고 알 마문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자 음모를 꾸몄다.
알 아민은 처음에는 아버지가 카바 앞에서 한 서약을 준수했다. 알 마문을 트란스옥시아나로 보내 그곳에 주둔한 군대를 이끌게 했다. 하지만 그는 알 파딜의 참소를 듣고 알 마문을 의심하여 정보국 관리를 메르브로 보내 알 마문의 동태를 매일 알리게 했다. 이후 알 마문에게 라이, 쿠미스, 타바리스탄 정부를 자신에게 넘기라고 지시하며, 해당 지역의 세금 수입은 호라산에 주둔한 군대를 지원하기에는 너무 적지만 바그다드에 주둔한 군대를 지원하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알 마문은 이를 거부하고 호라산에서 주조되는 동전에 칼리파의 이름을 생략하고 "알 이맘 알 후다(올바른 길)"이라는 문구를 추가하게 해, 메카에서 맺은 서약을 준수하라는 뜻을 공공연히 밝혔다. 이복형이 자신의 명령에 거부하자, 그는 알 마문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고 아들 무사를 차기 후계자로 지명했다.
알 타바리에 따르면, 그는 알 마문을 징벌하고자 5만 병력을 파견했고, 알 마문은 이에 맞서 2만에서 2만 5천 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2배 이상의 전력이었지만, 토벌대는 레이에서 알 마문에게 참패했다. 알 마문은 이 때부터 자신이 속한 영토에서 자신을 "무슬림의 지휘관이자 이맘"이라고 칭했다. 한편, 알 아민은 시리아에서 반란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접하자 아브드 알 말리크 이븐 살라흐를 그곳에 보내 질서를 회복하게 했다. 그러나 아브드 알 말리크는 반란군과의 전투 도중 전사했다. 이후 알 마문을 토벌하기 위해 아흐마드 이븐 마즈야드와 압둘라 이븐 후마이드를 보냈지만, 두 장군이 불화를 일으키고 서로 싸우면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알리 이븐 이사의 아들 후세인이 바그다드에서 반란을 일으켰을때, 바그다드 정규군은 방관했고 시민들이 민병대를 결성해 대신 진압했다.
이렇듯 알 아민이 군대의 신망을 잃고 위신이 땅에 떨어진 틈을 타, 알 마문은 811년부터 813년까지 이라크 각지를 공략하고 812년부터 바그다드를 포위 공격했다. 바그다드에 잔존한 알 아민 지지자들은 1년간 완고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도시에 기근이 들면서 수비대는 차츰 기력이 쇠진했고, 813년 가을 알 마문의 병사들이 점차 바그다드의 여러 요충지를 공략했다. 게다가 감옥을 탈출한 죄수들이 거리 곳곳을 불태우며 난동을 부렸다. 결국 더 저항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안전한 탈출을 위해 협상을 시도했다. 알 아민은 칼리파의 홀, 인장 및 여러 상징물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사면해달라고 청했고, 알 마문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칼리파의 상징물들을 선박에 싣고 티그리스 강을 통해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도중에 발각되어 알 마문의 장교들에게 체포되었고 곧 처형되었다. 그의 수급은 한동안 안바르 성문에 전시되었다. 이후 알 마문이 새 칼리파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