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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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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카 주 (시리아)

1. 개요2. 역사
2.1. 고대~근현대2.2.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의한 강점기2.3. 2016년: 반격의 서막2.4. 2017년: 해방되다
3. 기타4. 같이 보기

1. 개요


락까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시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로,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다. 알레포로부터는 동쪽으로 160km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는 22만 명(2004)으로 시리아 제6의 도시였으며, 시리아 내전 이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는 시리아에서 세속적인 분위기가 가장 강한 곳이었다. 또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위시한 기독교인의 비중도 10%를 차지했다.

역사적으로 압바스 왕조의 수도들 중 하나였고, 세계 최초의 벽돌 연와무늬 쌓기 기법이 나타나는 등 유서 깊은 도시였다. 하지만 21세기 시리아 내전을 틈타 ISIS의 근거지가 된 이후 여러 의미로 유명해졌다. 물론 2017년 IS가 스스로 내빼면서 악의 근거지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2020년 현재 재건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시내 중심부는 놀이터가 재개장할 정도로 정비되었다.

2. 역사

파일:라카 1.jpg

파일:라카 성벽 2.png

압바스 왕조 시대에 지어진 성벽과 사원. 400여 km 떨어진 이라크 사마라와 유사한 형태이다.

2.1. 고대~근현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인 셀레우코스 2세가 현재의 라카에 칼리니쿰(Callinicum)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를 건설했으며, 동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 1세가 이곳을 레온투폴리스(Leontoupolis)로 명명했다. 531년에 명장 벨리사리우스가 패배한 몇 안 되는 전투인 칼리니쿰 전투가 이 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1] 542년 페르시아 사산 왕조의 왕인 호스로 1세가 이 곳을 침공하면서 파괴되었지만 나중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칙령에 따라 재건된다.

639년 아랍 - 이슬람 세력에 정복당했고, 657년에는 1차 피트나의 마지막 전투로서 중동 세계 운명을 결정한 시핀 전투(무아위야 vs 알리)가 라카 인근의 평원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그 전투에서 사망한 이들의 영묘가 라카 시내에 있었고, 아사드 정권에 이르러 그 위에 우웨이스 모스크가 지어졌는데 내전 중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772년 압바스 칼리파 알 만수르는 기존 라카 부근에 성채를 세우고 '라피카' (동반자)로 명명하였다. 그 건설은 후계자인 알 마하디가 감독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후 동로마 제국에 대한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마하디의 아들 하룬 알 라시드는 라피카 성채 둘레에 현재까지도 상당 부분 남아있는 지름 1.3km, 둘레 5km의 말발굽 형태 성벽을 축조했다. 외부에는 15m 두께의 해자가 파였고, 약 25m 간격으로 132개의 치성이 설치되어 방어력을 높였다. 이 형태는 앞서 완공된 바그다드(마디나트 앗살람)의 축소판이었고, 높이 역시 과거에는 11m에 이르렀다고 한다. 동남쪽의 바그다드 문은 칼리파들의 입성 시에 환영 행사가 열렸고, 796년 하룬 알 라시드는 라카로 천도하여 사망하는 809년까지 잠깐이지만 도시는 압바스 조의 수도로 기능했다. 압바스 조의 쇠퇴기인 943년에 칼리파 알 무타키가 내란으로 얼룩진 바그다드를 탈출해 라카로 피신해오기도 했다.[2]

10세기 함단 왕조와 11세기 하란 누마이르 왕조에 이어 도시는 1081년 후자를 멸한 우카일 왕조의 아미르 무슬림에게 점령되었다. 하지만 4년 후 시리아를 침공한 룸 셀주크의 쉴레이만샤에 패해 전사하였다. 다만 1086년 쉴레이만샤 역시 셀주크 제국군에 패하고 전사하였다. 그 후 알레포 시타델을 지키던 우카일 왕조의 장수 살림 이븐 말리크 이븐 바드란은 셀주크 조에 항복하는 대가로 술탄 말리크샤 1세로부터 유프라테스 중류의 자바르 성채와 라카를 영지로 하사 받았다. 12세기 중반 라카는 장기 왕조의 지배 하에 놓였다. 1182년 11월 살라흐 앗 딘이 그 영주 이마드 앗 딘 이날의 항복을 받으며 도시를 점령했지만, 그는 이듬해 장기 가문의 마우두드 (장기 2세)가 알레포에서 항복하자 그 대가로 신자르와 함께 라카를 하사하였다.

한편 라카는 도예로 유명세를 떨쳤다. "라카 도자기(Raqqah ware)"는 9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12세기에는 채색 도기를 생산하며 그 절정에 달했는데, 13세기 후반 몽골의 침공으로 파괴되고 맘루크 조와의 무인지대가 되었다.[3] 이후 재건된 라카는 맘루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이번에는 유리 공예로 유명했다. 14세기 시리아에서 라카는 다마스쿠스, 알레포와 함께 에나멜채 유리 생산의 중심이었다. 16세기 사파비 왕조 찰디란 전투에서 말 그대로 개박살내고 쿠르디스탄,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오스만 제국은 유프라테스 강과 접한 이곳에 세관을 설치하게 된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자 1차대전기의 아랍 대봉기와 프랑스 위임 통치를 거쳐 거쳐 시리아 공화국령이 되었다.

2.2.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의한 강점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ArRaqqahRoofTops.jpg

라카 시가지. 2003년 12월 21일 사진이다. 사진 속의 십자가는 2013년~2014년경에 도시가 통째로 IS에 넘어갔을 때 강제로 철거되었을 확률이 높다.

본래 라카는 이스라엘보다는 이라크에 인접해있었기 때문에, 시리아 독립 이후에 중동전쟁 이스라엘 등 인접 국가의 소규모 분쟁에 영향을 받는 일은 거의 없었고 중동서 비교적 평화로운 땅이다.

2011년, 아랍의 봄에 촉발된 시위가 내전으로 발전된 사태가 일어났다. 아사드 정권과 반정부 세력의 중심인 자유 시리아군이 '혁명의 수도'로 선포했던 홈스와 반군의 거점 도시 알레포에서 전투에 집중되는 가운데 라카에서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영향력과 공권력이 제대로 닿지 못했다. 이를 틈타 2013년 3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인 알누스라 전선이 라카를 장악했고, 그들을 물리친 다에시(ISIL)가 2014년 1월 이곳을 점령한 뒤 본거지로 삼고 있는, 사실상 다에시의 수도를 가장한 소굴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파일:external/e0df67e12f40dc5e37665a5f51dbce93faf995afe97fb65d3ef3aa6afac1d9ea.jpg

거리가 개판 매드 IS: 분노의 라카

2014년 들어 미국 공군, 시리아 공군, 아랍 연합 국가들의 공습을 받았다. ISIL 점령 이전까지만 해도 카미슬리(정부군과 SDF의 공동 통제지역), 다마스쿠스(정부군 통제 지역), 라타키아(정부군 통제 지역) 등과 함께 내전의 피해가 가장 적은 지역 중 하나였으나 ISIL로 인해 길거리에서 포로들과 시민들이 처형 당하고, 코 앞에 폭탄이 떨어지는 끔찍한 난장판이 되었다.

2015년에는 길거리에 훼손된 시신이 뒹굴고, 비무슬림 여자들은 성노예가 되어버리고, 무슬림 여성조차 부르카를 쓰지 않으면 창녀로 취급 당해 돌아다니지도 못했으며, 물건을 훔쳤다고 손목을 잘라버리고, 결혼을 빙자하여 어린 소녀와 처녀들을 인신매매하는 등 잔혹한 샤리아법 철권통치와 더불어 하루에도 몇 번씩 공개 처형으로 인한 총성이 울렸다. 그야말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폭정과 반달리즘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6년의 라카 시내는 여성을 택시에 태웠다고 기사에게 태형을 선고하고 여성용 화장품에 먹칠을 하는 등의 강압 행위가 있었다. #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프랑스 국방부가 보복 차원으로 라팔 12대를 동원해 라카 주요부에 폭격을 감행하였다. 당시 프랑스 전투기들은 IS의 신병 모집처, 훈련소 및 무기 저장고 등을 폭격했다.

2.3. 2016년: 반격의 서막

2016년 1월 29일 타이거 대령 알레포와 연결된 도로를 차단했다. 라카 수복 작전의 1차 목표 중 절반은 달성한 셈이다.

3월 말, 남쪽에서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군이, 북쪽에서는 미군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족을 주축으로 한 시리아 민주군(SDF)이 이 도시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 도시가 ISIL의 마수를 벗어날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5월부터 ISIL로부터 라카를 수복하기 위한 시리아 정부군의 공세가 확실히 성공을 거두었다. 사실상 라카 탈환이 초읽기에 들어왔다는 관측도 있으며, 5월 13일 IS는 라카에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고 한다. # 연합군이 라카에 150여 차례 공습을 가해 31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

6월 3일부터 시리아 정부군이 라카 서부 50km에 위피한 타브카 비행장과 타브카 댐 탈환을 목표로 정하고 진격에 나섰고, 러시아 공군의 공습 지원을 받으면서 비행장에서 17km 떨어진 지역까지 진격했다. 이들의 2차 목표는 당연히 라카 수복이었다. 미군 지원을 받는 시리아 쿠르드군 및 시리아 민주군도 라카의 배후 전략 도시인 만비즈 등에 공세를 취하고 있고,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이라크 전 지역에서 IS의 패색이 계속해서 짙어지고 궁지에 몰렸기에 라카가 2014년 8월에 IS의 지배에 떨어진 뒤로 수복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IS 내부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IS 괴멸 앞당겨질 수도... 라카 등 전방위 압박 수세.

그러나 정부군의 라카 방면 진격은 6월 말에 돈좌되었고, 시리아 민주군에 의해 만비즈에 포위된 IS 잔당들의 최후 발악도 만만치가 않은 상황이다.

2016년 8월 11일에 러시아군이 라카에 공습을 개시하면서 민간인도 2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

2.4. 2017년: 해방되다

파일:라카 현재.jpg

2017년의 라카.

이라크군 모술을 탈환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라카에 가까이 위치한 로자바 무장세력 시리아 민주군(SDF) 3만 명이 북쪽에서 라카 일대로 진격하고 있다. 작년 시리아 정부군의 실패를 거울 삼았는지 라카 서쪽에 위치한 타브카 댐 일대의 동쪽 영토부터 차근차근 수복하고 있다. 성과는 상당해서 2017년 1월 말, 타브카 댐 근처까지 진격했고, 이라크군도 모술의 동쪽, 북쪽 일대를 수복했다. 결국 2월 말 IS 최고 지도자 알 바그다디는 이라크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이라크 내 잔존 병력들에게 자결하거나 도주해서 게릴라전을 하라고 발악했을 지경에 처했다. #

SDF는 2월 말 기준으로 라카 시가지 5km 지점까지 수복했다.[4] 시리아 정부군은 알레포 수복 이후에 거리가 먼 라카 대신 터키군과 터키군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반군이 진격하는 알-밥 일대와 다에시에게 다시 빼앗긴 팔미라(3월 초 수복), 2년째 포위되어 있으며, 위태로운 상황인 데이르에조르 일대에 우선 주력했다.

3월 18일, SDF는 라카로 직접적인 진공은 하지는 않고 있으며, 라카와 데이르에조르 중간 지점을 점령하여 두 지점간 가장 가까운 병력 이동 경로를 1개로 줄였다. 그리고 이라크 페쉬메르가가 시리아의 SDF의 배후 점령지로 이동하여 데이에조르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이는 SDF의 라카 진공을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리아군은 팔미라 수복 이후 데이르에조르로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타브카댐 서쪽 영토를 차근차근 점령하고 있다.
3월 31일, SDF가 미군의 항공 지원을 등에 업고 타브카 댐을 우회해 아사드호(타브카 댐으로 인해 생긴 호수) 남쪽 지역을 공략했다. 타브카 댐 북쪽에서 SDF와 대치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다에시는 타브카 댐 및 타브카 공군기지를 뺏겼고, SDF는 배후의 타브카 시 및 인근 지역을 공략하고 있다. 그 와중에 다에시는 처음에는 댐을 빼앗기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SDF의 인증 사진으로 논파 당했고, 그 다음에는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제어실 사진을 보여주며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추가하여 댐이 붕괴할 것이라는 최후의 발악을 하여 라카 인근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타브카 댐은 사력댐이어서 붕괴 가능성이 낮으며, SDF도 기술자를 동원해 상태를 점검하고 이미 존재하는 우회로를 통해 물을 빼내고 있다. 시리아군은 하마 시에 이슬람 반군의 공세가 커서 그쪽을 우선 지원 중인 관계로 타브카 댐 서쪽 일대의 공략 속도는 느려졌다. 하지만 서방의 지원을 업은 SDF의 파상 공세 속에서 다에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라카 탈환을 최대한 지연시키도록 발악하는 것뿐이다. 이에 다에시가 사실상 라카를 포기한 상태로 근거지를 안전한 데이르에조르 주의 마야딘으로 옮기고 있다는 가설도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

물론 수복 이후에 시아파 민병대, 수니파, 쿠르드족끼리 보복 삼파전을 일으키려 들 가능성도 있는 등 여전히 시아-수니간의 종파 분쟁 소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라크 정부가 2016년 이후로 통제력을 되찾으면서 진정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4월 26일까지는 SDF는 라카 북쪽 일대의 마을을 점령하고 타브카 시를 포위하면서 라카 진공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시리아/이라크 국경부터 알레포까지 이르는 도로를 완전 개방하여 자유로운 통행을 허가했었다. 그러나 터키가 갑자기 시리아 쿠르드족 본거지를 폭격하는 짓을 저질렀다. 이로서 터키는 IS를 멸망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시리아의 쿠르드족 견제와 IS 토벌을 핑계로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를 목적으로 양국 내전에 개입했음이 분명해졌다. 이에 SDF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우선 터키와 친하고 이번 폭격에 대해 무반응인 페쉬메르가에 항의하여 SDF 점령지와 페쉬메르가 점령지를 잇는 국경을 폐쇄했다. 그리고 터키의 뒤를 봐주는 미국에 항의하는 의미로 더 이상의 라카로의 진격을 중지했으며, 터키의 국경 수비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은 현재 하마 시로의 이슬람 반군 진격을 막아내고, 팔미라 인근 영토과 고지대를 점령하면서 저번과 같이 팔미라를 빼앗기는 일이 없게 대비하고 있다.

5월 13일, SDF는 타브카 댐의 전체 및, 타브카 시를 완전히 장악하여 라카 서부로의 진격을 시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위치를 손에 넣었다. 미군이 시리아 쿠르드족의 동부 영토에 진입하여 터키군이 쿠르드족을 넘보지 못하게 함에 따라 SDF는 라카로의 진군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의 반대에도 쿠르드 족에게 계속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러시아군은 시리아 쿠르드족의 서부 영토에 진입하여 쿠르드족을 보호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은 아사드 호의 서부 영토를 장악하기 위해 진군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마스쿠스-바그다드 간 고속도로 장악을 위해 반군의 영토를 공격하고 있다.

5월 31일, SDF는 타브카 댐 동부 일대를 공략하고 있으며, 라카 동쪽 포위망은 수 km 내외로 다가갔다. 정부군도 타브카 댐 서부 영토를 착실히 공략하고 있다. 한편 SDF가 라카 주변을 포위하고 시내로 진입할 기세를 보이자, IS가 수도를 아직까지는 세력권이 확고한 데이르에조르 쪽으로 옮기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이럴 경우 해당 구역에 고립된 시리아 정부군의 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

6월 6일 SDF는 라카 탈환 전투를 시작했다. 6월 24일 SDF가 유프라테스 강 남쪽을 장악하면서 라카는 완전 포위되고 다에시 4천여 명을 포위망에 가두었다. # 26일 기준으로 SDF는 라카의 1/4을 장악했다고 평가된다. #

원래 SDF는 남쪽을 제외한 3면에서 진격하려 했으나 다에시의 저항이 거세며, 시리아 정부군이 타브카 댐 일대의 SDF와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면서 SDF의 장악 지역을 빙둘러서 SDF의 추가 확장을 막으면서 라카 남부로 진군하려는 행보를 보이자 아예 라카를 포위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북부의 터키 지원 반군이 알-밥에서 삽질해가며 타브카 댐 서부 일대로 진군할 때와 시리아 서남부의 미국- 요르단 지원 반군이 동쪽으로 진군하려는 행보를 보이자 러시아 믿고 위 사례처럼 진군을 못하게 아예 빙 둘러 막아버린 바가 있다.

그런데 IS가 SDF의 포위망을 뚫고 라카 동부 지역을 다시 재수복했다.

IS와 시리아 민주군(SDF)과의 전투가 발생했다.

# 시리아 정부군이 IS의 장악도시인 라카 남부 지역을 모두 점령했다고 시리아 관영매체 사나 통신을 통해 발표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IS와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지난 이틀간 데이르에조르 서쪽과 락카의 남쪽 지역에서 IS가 장악하던 인근 마을과 유전들을 탈환했고, 러시아 공군이 시리아 정부군의 공세를 돕기 위해 엄청난 공중 화력 지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 시리아 민주군(SDF)이 IS와의 라카 전투에서 라카의 중심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시리아 정부군도 라카의 남부 지역 일대까지 장악하며 IS를 압박하고 있으니 IS는 북쪽으로 쿠르드족 민병대 인민수호대(YPG)와 자유 시리아군 출신 아랍계 민병대로 구성된 SDF와 남쪽으로 시리아 정부군의 협공을 받으며 함락 목전에까지 와 있는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라카가 탈환된다고 해도 IS의 완전히 패망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시리아 내 IS 세력들이 차지하고 있는 점령 지역들이 아직도 건재하고 IS의 지휘관들이 라카 전투에서 라카를 버리고 시리아 동남부의 내륙 도시 마아딘과 아부까말 등 아직 SDF와 시리아 정부군에게 함락되지 않은 IS의 장악 도시들로 거점을 이전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라카 탈환은 대 IS 전쟁의 끝이 아니라 IS와의 전쟁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 시리아 민주군(SDF)이 2017년 7월 24일 IS와의 라카 탈환 전투에서 IS로부터 라카 시 영토의 약 41%를 탈환했다.

# 7월 26일 라카 시 탈환 작전에서 라카 시 영토의 50%를 장악했다.

9월 1일, SDF가 라카의 중심인 라카 올드시티를 완전히 해방했다. # 이때 시점으로 라카의 60%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 # # 시리아 민주군(SDF)이 라카의 90%를 IS로부터 탈환했다. 미국 등 국제 동맹군의 강력한 공습으로 지난 48시간 동안 IS가 라카의 주요 구역 5곳에서 퇴각했으며, 이로써 SDF가 라카 영토 90%를 장악하게 되었다.

# IS의 수도였던 라카의 해방이 임박하게 되었다.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의 말에 따르면 "시리아 민주군(SDF)과 미군 특수부대가 라카 작전 끝내기에 들어갔다"고 21일 밝혔다. 이로써 IS가 이라크 모술과 시리아 라카, 리비아 시르테 등을 점거하며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방대한 영토들을 점령하며 세운 칼리프 국가의 수도격 역할을 했던 라카도 2016년 12월 리비아 정부군에게 함락된 시르테와 2017년 7월 이라크 정부군에 함락 당한 이라크 모술에 이어 시리아 정부군은 아니지만 쿠르드족 인민수호대(YPG)과 아랍계 세속주의 성향의 자유 시리아군 반군 조직들로 구성된 쿠르드-아랍 무장 조직 연합체 시리아 민주군(SDF)에 의해 함락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

# IS의 옛 수도 라카의 해방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IS들 대원들 상당수가 라카에서 무더기로 시리아 민주군(SDF)에 항복하고 있다.

#, # IS가 라카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 10월 15일, 마침내 IS의 상징적 수도였던 라카가 사실상 탈환되었다. 리비아 시르테와 이라크 모술에 이어 시리아 라카마저 탈환됨으로서 IS는 그 동안 리비아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장악하던 대중동권 국가들의 대도시들을 모두 잃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리아 동부 아부까말과 이라크 안바르 주 등지뿐인데, 여기도 조만간 이라크군이나 시리아군에게 함락 당하면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를 걸친 방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국가 행세를 펼치던 IS는 패망의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추측된다.

# 라카에서 IS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민주군(SDF)과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SDF는 14일 협정에 따라 라카에 남아있는 IS 조직원들에게 라카를 탈출할 기회를 줬으며, 이 날 탈출을 거부하고 남아서 저항하고 있는 강경파 IS 조직원을 대상으로 마지막 전투를 시작했다. 이번 전투로 잔류하고 있는 IS 조직원 전원이 소탕될 경우 IS는 중동 내 거점 두 곳을 모두 잃고 궤멸하게 된다. 한편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 역시 시리아 동부 유전지대인 데이르에조르에서 따로 대 IS 토벌전을 실시하고 있다.

# 시리아 민주군(SDF)이 IS의 상징적 수도였던 라카 시내에서 IS가 차지하고 있던 국립병원을 탈환했다고 밝혔다. AF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SDF는 이날 오전 성명을 내고 "라카의 국립병원이 해방됐으며, IS의 외국인 대원 22명을 사살했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라카에서 IS 조직원들의 마지막 남은 보루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 #, # IS의 수도격이었던 시리아 라카가 마침내 해방되었다. 미국 지원을 등에 업은 시리아 민주군(SDF) 측은 이 날 시리아 중북부 도시 라카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라카가 함락되면서 IS는 라카를 비롯해 모술, 탈아파르, 라마디, 히트, 하위자, 팔미라, 알수크나, 마야딘, 자라블루스, 알바브, 다비크, 만비지 등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서 그간 IS가 지배하던 점령 도시들을 모두 시리아 민주군(SDF)와 시리아 정부군, 이라크 정부군, 터키군 지원의 시리아 반군 등의 공격을 받아 모두 잃고 시리아 동부, 이라크 서부의 유프라테스 계곡과 사막 지대로 완전히 밀려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탈레반[5]이나 소말리아 알 샤바브, 서아프리카 보코 하람처럼 이라크, 시리아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시리아, 이라크의 오지를 배경으로 폭탄 테러와 게릴라 전을 일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때처럼 또 서구 각지에서 직접, 혹은 동조자들을 동원해 테러를 이어갈 공산도 높아 이번 라카의 함락으로 IS의 테러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 그러나 라카 탈환의 기쁨도 잠시, IS가 사라진 라카의 통치권을 놓고 미국 러시아 간의 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은 시리아 민주군(SDF)을 통해 구축된 주민자치위원회가 라카를 지배하길 원하고 있지만, 시리아 정부군을 지지하는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가 라카를 관할하기를 바라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SDF 주도의 주민자치위원회가 라카를 통제할 경우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입김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실제로 시리아 정부군은 라카 주변 수 km 인근까지 진입했기 때문이다. 다만 서북부에 새로운 적이 나타나서 그쪽으로 관심이 쏠리면서 이런 위기는 사라진 듯 하다.

시리아에서도 ISIL가 소멸되고 시리아 정부군이 북서부를 제외한 대부분을 다시 장악한 후엔 이전보단 안정된 상황이다.

2020년 라마단 후 이드 알 피트르를 즐기는 라카의 아이들.

3. 기타

한국으로 귀화한 시리아 출신 압둘 와합씨의 고향이다.

4. 같이 보기


[1] 비록 패하긴 했지만 532년에 '영원의' 평화 조약이 이란과 동로마 간에 체결되며 양국의 전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2] 다만 이집트 익시드 왕조의 초청에도 튀르크 군벌 투준의 안전 보장 약속만 믿고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갔다가 살해되었다. 그 다음 해인 945년 부와이 왕조가 바그다드를 정복하며 압바스 왕조는 완전히 몰락한다. [3] 안타깝게도 라카 도자기의 유물들은 온전히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다. [4] 다만 일부 지점만 5km이고 평균적으로 20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5] 결국 이 쪽은 2021년 부패한 아프간 정부군을 격파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재장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