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02:04:35

서의

徐義
(221년 ~ 298년)

서진의 여성이자 가남풍의 유모, 사마염, 사마충의 후궁으로 청주 성양군 동무현 사람.

사서에는 기록이 없고 금석문 기록으로만 전해지며, 1953년에 하남시 낙양성 노성구에서 그녀의 묘비가 출토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족은 바닷가 집안 출신이고 서의의 외모는 추하고 신체는 건장했다. 전란으로 가족들이 죽자 하내에서 떠돌다가 태원의 서씨에게 시집가 아들 서열(徐烈)을 낳았고, 아이들을 엄하게 교육해 총명함과 자애가 인근에 알려졌다. 곽괴가 자식이 요절하는 일이 계속되면서 256년, 가충의 집안에 들어가 가남풍 가오의 유모가 되어 두 자매를 애정있게 키웠다.

270년, 가남풍이 태자비가 되자 따라서 입궁했고 가남풍이 서의를 잘 따랐으며, 282년 5월 24일에 사마염이 중재인(中才人)에 봉했고, 290년에 사마충이 즉위하자 양인(良人)으로 승급했다. 291년, 양준의 난 때 태후 양씨가 가남풍을 불러 음모를 꾸몄는데, 이 때 궁인은 겁에 질렸지만 서의는 거짓으로 그 자리를 속여 가남풍을 보호한 공으로 70세의 나이에 미인(美人)으로 승급했고 비단 천 필과 종자 20명을 하사받았다.

이후에도 가남풍의 신뢰를 받아 여러 일을 부탁받고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295년, 아들 서열이 태자의 천인독(千人督)에 봉해졌다. 297년 7월에 병으로 인해 눕게 되면서 자택에서 요양했고, 조정에서는 환관들이 찾아오고 정거, 유선 등이 문병을 갔다. 약과 음식, 진기한 보물을 선물받았지만 298년, 78세의 나이로 죽었다.

서의가 죽자 가남풍은 추모하면서 무기와 의복, 500만 전, 비단 500필을 하사해 장례를 치뤘고, 299년에 묘비를 세웠다. 사마충과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