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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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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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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유목 스키타이 아조 이베리아 아르메니아 제국 아르탁세스 왕조 파르나바즈 왕조 아르사케스 왕조 호스로 왕조 이베리아 총독령 하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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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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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캅카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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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제국
구르칸 왕조
گورکانیان
Gūrkāniyā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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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راستى رستى
정직함에 구원이 있노라
파일:timurid.png
티무르 재위기의 최대 판도
1370년~ 1507년
위치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수도 사마르칸트(1370~1405)
헤라트(1405~1507)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가 원수 아미르
주요 군주 티무르(1370~1405)
샤 루흐(1405~1447)
울루그 베그(1447~1449)
왕조 티무르 왕조
언어 페르시아어 (궁정어, 공용어)
차가타이어 (문어, 文語)
아랍어 (제례 언어)
그 외 인도계 방언들
민족 차가타이 튀르크인
차가타이 몽골인
페르시아인
우즈베크인
종교 이슬람교 수니파[2]
시아파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통화 디나르
주요 사건 [ 펼치기 · 접기 ]
1370년 티무르 제국 건국
1402년 앙카라 전투
1505년 사마르칸트 함락
1507년 멸망
건국 이전 차가타이 칸국, 일 칸국
분열 이후 모굴리스탄 칸국, 흑양 왕조, 백양 왕조
멸망 이후 사파비 제국,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 무굴 제국

1. 개요2. 역대 군주3. 역사
3.1. 티무르 시대3.2. 샤 루흐 시대3.3. 혼란기와 우즈베크인들의 침략3.4. 북인도에서의 새로운 시작
4. 문화5. 창작물에서

[clearfix]

1. 개요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말까지 중앙아시아 지역 대부분을 지배한 몽골 제국을 계승한 국가이다. 지배층은 서부 차가타이 칸국 출신의 바를라스, 잘라이르, 술두스, 아를라트, 카라우나스 등과 같은 몽골계 부족민들이었으며, 당대에는 스스로를 차가타이 칸국이라고 불렀다. 정치 · 군사적 측면에서도 차가타이 칸국의 지배층과 기마 군단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에 집단명도 변하지 않고 '차가다이인'이라 불렸다. 그럼에도 별개의 국가로 인식되는 이유는, 권력의 중심이 보르지긴씨족 내에서 칭기즈 칸의 직계인 키야트에서 방계인 바를라스 부족으로 정권이 이동하였기 때문이다.

건국자는 몽골 제국의 귀족 계층인 보르지긴씨족 바를라스부 출신의 티무르이다. 티무르는 당시 분열된 몽골 제국 국가들 간 끝임없이 벌어지는 내전 상황에서 몽골 제국의 서반부를 재통합하며 당대 차가타이 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돋움시켰다. 티무르 제국은 멸망 이후 인도[3] 무굴 제국으로 계승된다.

2.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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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티무르 피르 무함마드 할릴 술탄 샤 루흐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울루그 베그 압둘라티프 미르자 압둘라 미르자 아부 사이드 미르자
사마르칸트 정권 헤라트 정권
- - 제9대 제10대
술탄 아흐메드 미르자 술탄 마흐무드 미르자 야드가르 무함마드 미르자 술탄 후사인 바이카라
- - 제11대
술탄 바이순쿠르 미르자 술탄 알리 바디 알자만 미르자
}}}}}}}}}}}}

3. 역사

3.1. 티무르 시대

티무르 몽골 제국 이슬람 제국의 동시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세운 국가로, 국력이 절정이던 시절에는 현재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메소포타미아, 캅카스 산맥, 아나톨리아 동부 내륙 지역을 아우르던 대국이었다. 그 당시 면적이 비슷한 나라는 명나라말고는 없었다. 티무르가 정복을 쉽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화약 무기의 사용과 중앙아시아 여타 세력들의 쇠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가 티무르 본인의 군사적 재능도 한몫했다. 티무르는 최종적으로 몽골 제국의 부활을 목표로 삼았으며, 당시 몽골 제국의 본진이었던 원나라가 중국 대륙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 영토를 되찾아 이슬람화 하고자 하였다.

티무르 제국은 1369년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트란스옥시아나의 여러 튀르크계 유목집단들을 통합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1370년부터 1405년까지 계속된 티무르의 원정에 의해 영토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는데, 초기 10년 가량은 동부의 모굴리스탄 칸국, 서부의 호라즘, 북부의 킵차크 칸국(주치인 울루스)에 대해 이루어졌다. 당시 모굴리스탄 칸국의 카마르 앗 딘은 칭기스칸의 혈족인 황금씨족이 아니었음에도 칸을 참칭하였고 이를 빌미로 티무르는 1370년 모굴리스탄 칸국 원정을 감행하여 성공리에 마무리했다.[4] 이어 1372년부터 1373년까지는 호라즘 지방을 공격하였다. 이 때 킵차크 칸국 좌익의 군주 우루스 칸에 반발하던 토크타미쉬 칸이라는 인물이 도망쳐 와 도움을 청하자, 티무르는 이를 빌미로 1375년부터 1377년까지 킵차크 초원 원정을 단행, 우루스 칸을 패퇴시켰다. 1379년 호라즘의 콩기라트 왕조와 다시 전쟁을 벌인 티무르는 수도 우르겐치를 함락하여 수중에 넣었다.

1380년 이후 티무르의 관심은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먼저 아들 미란샤를 호라산 총독으로 임명하고, 138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지방의 헤라트를, 1383~1384년에는 칸다하르를 점령했다. 이어 이란으로 진출하여 마잔다란, 라이, 술타니야 등을 함락한 뒤 1386년 귀환했다. 그 사이에 자신의 후원으로 킵차크 칸국의 군주가 된 토크타미쉬가 타브리즈를 점령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분명히 드러내자, 티무르는 그를 응징하기 위해 이란과 킵차크 지역 등에 원정을 계속했고, 1395년 사라이를 함락시켰다.[5] 그리고 인도로 관심을 돌린 티무르는 1398년 말 북인도 지역으로 쳐들어가 이 곳을 지배하고 있던 델리 술탄국[6] 군대를 격파한 후 수도 델리를 약탈한 뒤 귀환했다.[7]

1392년부터는 서아시아를 목표로 소위 '7년 원정'을 단행했다. 티무르는 아나톨리아 동부에 근거지를 둔 흑양 왕조(카라 코윤루) 세력을 격파한 뒤, 시리아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맘루크 왕조를 몰아내고 알레포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 1402년에는 오스만 술탄국[8]을 침공, 앙카라 전투에서 술탄 바예지트 1세를 생포했고, 1404년에 사마르칸트로 귀환했다.

티무르 치세동안 차가타이 칸국(차가다이인 울루스)과 킵차크 칸국(주치인 울루스) 등 몽골-타타르 계통의 국가들이 멸망하였으며, 중동과 인도 지역의 여러 이슬람 국가들도 연달아 쓸려나갔다. 특히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에서 이름을 높이던 오스만 왕조도 패배하였다. 이를 통해 한동안 티무르는 중앙아시아 & 중동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이후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였다. 티무르 제국의 역사서인 《승전기》에 따르면 영락제가 7년 동안 조공을 바치지 않은 것을 문제삼아 압력을 가하자 티무르는 " 밀린 7년치를 내 직접 가져다 주겠다."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나 원정길에 오른 이후인 1405년 2월 시르다리야 하반의 도시 오트라르에서 병사하는 바람에 명나라 원정은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3.2. 샤 루흐 시대

대부분의 왕조가 그렇듯이 티무르 사후 후계 구도를 두고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티무르는 생전에 손자 피르 무함마드를 후계자로 임명했지만, 피르 무함마드는 티무르가 사망할 때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에서 멀리 떨어진 발흐에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티무르의 또 다른 손자인 할릴 술탄이 권력을 잡았으나 피살되고, 뒤이어 티무르의 넷째 아들 샤 루흐가 지배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그의 영역은 서투르키스탄에 국한되었고, 중부 이란의 이스파한과 쉬라즈 등지는 티무르의 둘째아들 우마르 셰이흐의 자식들이 지배했다. 그런가 하면 제국의 가장 서북부에 해당되는 서부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에는 투르크멘 계통의 유목부족들, 즉 잘라이르 왕조와 백양 왕조(아크 코윤루), 흑양 왕조(카라 코윤루) 등이 독립해 있었다.

이 내분으로 나라 자체가 막장이 될 뻔 했으나, 이후 샤 루흐가 티무르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샤 루흐는 자신의 근거지 헤라트를 중심으로 제국의 재건을 꾀했고, 중부 이란의 티무르 일족들도 그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흑양 왕조의 카라 유수프가 타브리즈 바그다드를 점령하자, 샤 루흐는 1421~34년 세 차례 원정을 통해 그를 패배시켰다.[9] 샤 루흐는 동쪽의 모굴리스탄 칸국에도 군사적 압력을 가해 1425년에는 아들 울루그 베그를 보내 원정을 감행했다. 다만 중국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달리 평화적인 외교 관계를 모색하여 몇 차례 대규모 사절단을 보내고 맞이하고 했다. 1413년 샤 루흐의 사절단은 북경을 방문하였고 이들이 귀환할 때 영락제는 진성과 이달을 헤라트로 파견했고, 이들은 1415년 귀환하여 『서역행정기(西域行程記)』와 『서역번국지(西域蕃國志)』라는 글을 남겼다. 1419~1421년에도 샤 루흐와 그의 아들 바이숭쿠르가 보낸 사신단이 명에 다녀갔는데, 이때 사신이었던 기야스 앗 딘 나카시는 당시 영락제와 화재를 입은 자금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다.[10] 더불어 이들 사절단은 명나라의 광활함과 부유함, 역참제도를 비롯한 명나라의 행정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놀라운 점은 이들 사신단이 둘러본 지역은 어디까지나 강남지방에 비하여 낙후되었던 화북지역이라는 것이다.[11] 역사가들도 샤 루흐의 시기를 진정한 전성기로 쳐주고 있으며, 유럽과 동방의 문물들을 받아들이고 이들 사이의 교역을 중계하면서 상당한 번영을 누렸다.

다만 샤 루흐 시대에도 제국의 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당장 문서상 티무르 제국의 영토인데도 흑양 왕조, 백양 왕조가 흥기하여 서부 이란에서 쫓겨나는 등 샤 루흐의 통치가 먹혀들지 않는 지방도 적게나마 있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반란이 일어나는 통에 그야말로 군대를 이끌고 순회공연을 다녀야 했던 것. 하지만 다행히도 샤 루흐는 군사적인 재능도 뛰어나 제국의 분열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1447년에 손자 무함마드가 페르시아 서부에서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 사망했다.

3.3. 혼란기와 우즈베크인들의 침략

그리고 샤 루흐의 장자인 울루그 베그가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울루그 베그는 아버지 샤 루흐의 치세 때 사마르칸트를 분봉받아 40년간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을 다스렸으며, 과학이나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천문대를 짓고 여러 학자나 예술가를 초빙하여 그들의 활동을 장려했고 울루그 베그 본인도 빼어난 천문학과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학자이기도 했다.[12] 그는 아버지로부터 문화적인 경향은 그대로 물려받고 나라도 잘 다스리긴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군사적인 재능은 전혀 물려받지 못했고, 즉위 2년만인 1449년에 부친의 정치가 이슬람교를 따르지 않고 지나치게 세속적이라는 것을 명분으로 궁정 쿠데타가 일어나 아들에게 처형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참수시킨 아들 압달 라티프는 제위한지 고작 6달 만에 똑같이 반란을 당해 겨우 나이 서른에 아버지처럼 참수되고 만다. 그 후 여러 지방세력가들이 티무르 제국의 패권을 놓고 아웅다웅하기 시작하면서, 제국은 사분오열되었다. 제국의 서부는 이 혼란기를 틈탄 흑양 왕조와 흑양 왕조를 멸망시킨 백양 왕조에게 차례차례 뜯겨나갔다.

1451년에 즉위한 아부 사이드 미르자[13]는 1457년 호라산을 평정하고 헤라트에 입성하여 중앙아시아와 동부 이란을 석권했다. 그는 황금씨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문율을 깨고 스스로 '칸'을 칭했다. 그러나 그는 백양 왕조를 치러 갔다가 1469년 오히려 포로가 되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아부 사이드 사후 그의 영역은 여러 아들에게 분할되었다. 이 가운데 안디잔과 페르가나를 차지한 우마르 셰이흐가 1494년 사망하자 12살밖에 안 된 그의 아들 바부르가 뒤를 이었다. 호라산에서는 후세인 바이카라가 집권하여 마지막 문화적 번영을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방의 신흥세력 우즈베크인들의 왕조인 샤이반 왕조가 1500년에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점령했다. 1503년 여름, 바부르는 모굴리스탄 칸국의 마흐무드와 아흐마드 2명의 칸과 연합하여 샤이반 왕조와 전쟁을 벌였지만 마흐무드 칸과 아흐마드 칸이 포로로 잡히는 등 엄청난 패배를 당했다. 샤이반 왕조는 1504년 호라즘까지 장악하여 서투르키스탄을 완전히 정복했고 이어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보루였던 헤라트 발흐까지 점령했다. 바부르는 아프가니스탄 방면으로 도주하였다.

우즈베크인들은 원래 주치의 후손들이 튀르크인들과 뒤섞이고 여기에 사마르칸트 내 이란계 백인종( 타지크인)까지 뒤섞여 페르시아화된 사람들로, 당시 문화적으로 꽃피어있던 티무르 제국의 학술적, 문화적 자원을 그대로 흡수해서 티무르의 후손들을 쫓아냈으면서 현재는 티무르를 국부 취급하고 있는 판이다. 그리고 원래 주치로부터 유래했으나 현재 우즈베크어는 주치의 후손들이 쓰는 킵차크계 튀르크어가 아닌 위구르와 같은 차가타이계 튀르크어이다.

3.4. 북인도에서의 새로운 시작

우즈베크인들의 침입기에 속된 말로 개털린 티무르 제국의 황족들 중 하나가 앞서 언급된 바부르인데, 바부르는 제국의 본거지인 중앙아시아를 떠나 아프가니스탄과 인도 지역으로 도망쳐 그 곳에 무굴 제국을 건국함으로써 티무르의 후손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에 정착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 무굴 제국을 티무르 제국의 후신으로 간주하는 역사적 시선도 있다.

이후 바부르와 그 후손들은 티무르 제국의 본거지인 중앙아시아를 탈환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고, 가끔은 과거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도 점령하는 등 옛 영토를 되찾는 듯 했으나...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우즈베크 칸이 이란의 신흥 세력인 사파비 제국 군주 샤(Shah) 이스마일 1세와 벌인 메르브 전투에서 패사하자, 바부르는 이스마일 1세의 도움으로 사마르칸트를 되찾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사마르칸트 등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은 이슬람 수니파를 믿었는데, 바부르가 시아파 군인들을 데려와[14] 큰 반발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향을 떠난 바부르는 1525년 라호르를 점령하고 이듬해 파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서북 인도를 정복하고 무굴 제국의 토대를 놓았다. 이렇게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면서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굴 제국, 우즈베크 칸국이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다. 공교롭게 이들 모두가 튀르크계가 주인이거나 튀르크계와 상당히 관련있는 국가들로 사파비 제국은 페르시아 백인들이 건국했으나 키질바시(kizilbash)라는 투르크멘 유목민 부대가 주력부대였고, 오스만 제국은 오구즈 부족이었으며, 무굴 제국을 세운 바부르의 조상 티무르는 차가타이 칸국 계통의 몽골혈통이었다.

4.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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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마드라사로 둘러싸인 일종의 문화 광장인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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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및 사파비 왕조 양식 건물에서 자주 보이는, 태양을 이고 있는 호랑이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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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바이카라 시기의 궁정 화가 카말웃딘 비흐자드의 그림 (17세기 무굴 제국 모사본)

울루그 베그의 주도로 사마르칸트, 부하라, 기즈다반 세 도시에 고등교육기관인 '마드라사'가 건립되었으며,[15] 직경이 40미터에 이르는 원통형 천문대가 건설되었다. 천문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1437년 천문표를 만들고 이를 계속 수정하여 자신이 살해되던 해인 1449년에 최종 완성했다. 이 표는 당시 이슬람권은 물론 그 후 오랫동안 유럽도 능가하지 못할 정도로 정확한 관측 결과를 담고 있었다. 또한 울루그 베그는 도서관을 세워 각 분야의 서적 1만 5000권을 수집했으며, 자신이 직접 『 의 역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티무르 왕조의 문화는 역설적이게도 왕조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15세기 후반 헤라트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후세인 바이카라가 1469년부터 1506년까지 반세기 가까이 그곳을 통치하는 동안 전쟁과 파괴의 혼란을 피해 많은 학자, 문인, 예술가가 모여들었다. 당대의 재상이자 차가다이 문학의 완성자인 알리 시르 나바이는 『파르하드와 시린』, 『레일리와 마즈눈』 등 많은 시집을 남겼다. 신비주의 시인으로 이름난 압둘 라흐만 자미는 낙쉬반디 교단의 장로인 호자 아흐라르의 전기를 집필했다. 바이카라의 조정에서는 하피지 아브루, 압둘 라자크 사마르칸디, 미르혼드, 혼데미르 등 수많은 역사가들이 활동했으며, 이들이 남긴 역사서들은 규모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사료적 가치도 매우 높다. 티무르 제국의 문화는 전반적으로 훌레구 울루스(일 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라시드 앗 딘 등의 이란 역사, 기록, 문학 문화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 당대 최고 화가였던 비흐자드, 서예가 마쉬하디 등도 이 시기를 빛낸 예술가들이다.

5. 창작물에서

토탈 워: 미디블2에선 기본적으론 플레이 불가능한 팩션으로 등장(올팩션 모드로 플레이 가능하고 커스텀 배틀에선 기본적으로 플레이 가능). 그야말로 악몽같은 기세로 유럽에 쳐들어온다. 특히 투르크로 플레이할 경우 제대로 직격탄을 맞게 되는 악몽의 존재. 몽골은 운 좋으면 러시아에서 등장할 수도 있지만 티무르는 무조건 아나톨리아와 중동 지역을 공격한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1480년을 시작 시점으로 하고 있어, 이스파한, 바드다드 등 주된 세력권 도시가 티무르제국의 도시로 등장한다. 육상 탐험이 가능한 시리즈 특성상 실크로드의 주된 거점이 된 티무르 제국의 주요 거점도시들도 거의 대부분 등장한다.

징기스칸 4의 시나리오 4에서는 쇠퇴한 몽골계 세력 대신 주인공 세력으로 나온다.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인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도 등장한다. 다만 게임 시작시점이 1337년이 끝이기에 처음부터 플레이할 수 없다. 1350년 이후 이벤트로 나타나서 티무르가 영주로 있는 땅이 생기면 play 콘솔이나 세이브 파일에서 티무르를 선택해서 플레이하면 된다. 티무르는 1350~1370년 기간 사이에 랜덤하게 등장하며 등장 후 9년이 지나면 최소 3천 최대 6만의 둠스택을 가지고 호라산, 히바, 메르브 중 하나에 전쟁을 걸고 1370년 이후 계승자는 이벤트로 최대 3만 5천의 둠스택을 얻으며 75의 퇴폐도를 깎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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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IV에서도 2티어 국가로 등장한다. Europa Universalis IV/공략/티무르 항목 참조.

대체역사물 내가 바로 세종대왕의 아들이다에서는 토목의 변 당시 조선군이 오이라트군을 격파하고 영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티무르 제국의 사신단을 구출하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이후 그들이 조선을 방문해 미당 독점 교역권을 따내고 조선이 사신으로 보낸 신숙주가 울루그 베그가 맏아들의 쿠데타로 밀려나는 것을 막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점점 관계가 깊어진다. 그러다 마침내 조선과 형제국이 되었고 다마스쿠스강 재련 기술과 새 가축종과 곡물종자를 전달해 주었으며 그 뒤로도 조선의 서역 원정에서 병력 1만과 대부분의 물자를 지원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원정이 끝나면서 동유럽 연합에게 받은 배상금 절반을 배당받고 새 무역 창구도 열리는 등 대체역사의 최대 수혜국이 되고 있다. 외전에서는 울루그 베그의 정책으로 이슬람 법을 완화시켜 다른 종교에 대한 배척도를 낮추어 외부와의 교류를 이어가고 그 결과 페르시아의 후신으로 인식될 정도로 번영 중이라고 언급되며 현대 시점에 와서도 파르스 이슬람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근육조선에선 조선이 오스만과 전쟁을 벌일 때 조선을 지원했고 1부주인공이 타던 한혈마 흑우도 티무르 제국으로 보내져 말년을 보낸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에서 티무르 제국 이야기를 다룬다. 플레이 문명은 타타르. 오스만 술탄국의 바예지드 1세와의 싸움인 앙카라 전투까지 다루고 있다.

위의 내가 바로 세종대왕의 아들이다 외에서도 킹방원 메이커, 킬방원 동생이 되었다 등에서 나비효과의 일환으로 명나라 원정을 진행하는 역할로 등장하기도 하며 현재 몽골 사용 설명서의 작가 두눈뜬왕의 신작 티무르 사용 설명서에서 아예 배경이 되기도 했다.


[1] 1375년 경 발행된 세계지도 '카탈란 아틀라스'에 등장하는 티무르 제국의 국기. # [2] 제국의 공식 국교였다. [3] 정확하게는 현재의 인도 공화국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 [4] 이 시기는 몽골 제국이 멸망한지 얼마 안 되었던 때이므로 '칸'은 반드시 칭기스 칸의 직계 후예인 황금씨족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인식이 구(舊)몽골 제국 영토에 널리 퍼져있었다. 티무르 역시 자신의 세력을 바탕으로 칸을 참칭하고 싶었으나, 황금씨족이 아니었기에 그의 호칭은 아미르(amir)나 부마(gurgen)에 머물렀다. 실제로 오이라트 에센 타이시는 토목의 변 전후로 칸을 칭했으나, 예하 부족들이 반발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기도 하였다. [5] 이를 계기로 킵차크 칸국은 쇠퇴 일로를 걸었으며 토크타미쉬 역시 티무르에게 도전한 대가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6] 정확하게는 델리 술탄 왕조 중 하나를 구성했던 투글루크 왕조 [7] 인도는 우상의 나라이자 재화의 나라였다. 이슬람에서 경멸하는 우상 숭배의 나라였기에 이를 빌미로 '성전'을 표방하여 쳐들어 간 다음 합법적으로(?) 약탈할 수 있었다. 이른바 '티무르식 성전' [8] 훗날의 오스만 제국 [9] 그러나 샤 루흐가 사망한 뒤 흑양 왕조의 세력은 다시 커져 1450년대에는 이스파한, 쉬라즈, 키르만 등을 모두 점거했다. 이들은 1460년대 후반 백양부 우준 하산의 공격으로 무너졌지만, 서부 이란은 여전히 티무르 왕조의 통제밖에 있었다. [10] 사신이 방문했을 때 막 지어진 자금성에 벼락이 내리쳐 궁궐이 불탔는데, 이를 보며 영락제가 "하늘이시여, 제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이리도 가혹하게 구십니까!"라고 하늘에 울부짖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1] 다만 경제력은 강남이 앞섰지만 행정력의 촘촘함은 수도권이 위치한 화북이 앞섰다. [12] 어느 정도냐면 세월이 흘러 그에 대하여 알게된 근대 시기 서구권 천문학자들이 경악할 정도였다. 지동설로 유명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정확하게 항성 거리를 측정하였고 온갖 천문학 및 수학 연구에 대해서도 엄청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이러한 게 드러나서 독일 천문학자 폰 마들러는 달에 난 화산 분출구를 발견하자 울루그 베그라고 이름을 지어 그를 기렸을 정도다. [13] 티무르의 셋째 아들 미란샤의 손자 [14] 악바르 대제 초기에 권신이었던 장군 바이람 칸도 시아파였다. [15] 특히 1417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남아있는 부하라의 마드라사는 중앙아시아 건축물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