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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48년
11월 24일 (음력 인조 26년 10월 10일) |
사망 |
1736년
11월 15일 (향년 87세) (음력 영조 12년 10월 13일) |
충청도 충주목 (現 충청북도 충주시) |
|
묘소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산 100 |
재임기간 | 제159대 영의정 |
1725년
6월 3일 ~
1727년
6월 3일 (음력 영조 1년 4월 23일 ~ 영조 3년 4월 14일) |
|
시호 | 문경(文敬) |
본관 | 연일 정씨[1] |
자 | 중순(仲淳) |
호 | 장암(丈巖) |
붕당 | 노론 |
부모 |
부친 - 정경연(鄭慶演, 1605 ~ 1666) 모친 - 민광환(閔光煥)의 딸 여흥 민씨 |
부인 | 최응천(崔應天)의 딸 강릉 최씨 |
자녀 |
2남 4녀 장남 - 정희하(鄭羲河, 1681 ~ 1747) 차남 - 정순하(鄭舜河) 딸 - 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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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숙종조 중기부터 영조조 때의 문신. 정철의 현손이며 송시열의 제자로, 영조조 초기에 민진원과 함께 노론 강경파의 수장이였다.2. 가족 관계
- 고조부 정철
3. 여담
정치적으로는 노론 강경파에 속했지만, 학문적으로는 의외로 호락논쟁에서 낙론, 즉 인물성동론을 지지했고 그의 제자인 김위재와 김정묵[4]도 낙론을 지지했다,야사에 따르면 30이 넘도록 과거 급제를 못하고 있었는데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이름을 고(告)로 고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보통 설화 속 등장인물들은 이러면 이름을 고치는데, 정호는 "내가 실력이 안돼서 떨어지면 몰라도 이름 때문에 떨어졌다고?"라는 생각에 빡쳐서 안 고쳤다. 그것도 꿈에서 여러번 산신령이 나와 거듭 고치라고 해도 그는 무시했고 결국 혼자 노력해서 35살에 급제했다고.
그 밖에 배나무에 관한 에피소드도 전한다. 78살 때 정호는 낙향해서 수안보에 살았는데, 어느 날 그 근처로 벼슬하러 온 이형좌(李衡佐)가 정호에게 인사를 올리러 왔을 때 정호가 배나무를 심는 것을 봤댄다. 늙어서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 배나무는 왜 심냐고 의아했던 이 사람은, 10년 후 충청도 감사가 되어서 88살이 된 정호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정호가 그때 갖다준 배가 10년 전에 심은 그 나무에서 따온 것이었다.
윤승운이 만화로 이 사람에 대하여 그린 바 있다. 이 만화에서 은퇴하여 배나무를 심은 정호에게 그 벼슬아치가 배는 열매를 맺자면 몇년은 걸리지 않습니까? 말했는데 당신 나이가 이제 여든인데 언제 그거 먹을려고? 은근히 비아냥이 담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정호도 그 말을 이해했지만 그냥 덤덤하게 나무를 심고 신경도 안 썼다. 그리고, 10년 지나 그가 정호랑 배를 먹으며 맛있다고 감탄하자 정호는 웃으면서 "누가 꼭 자신이 먹고자 뭘 키우겠나? 이 배나무에서 열린 배를 다른 사람이 먹으면 그만 아니겠나?" 라며 10년전 그런 말을 한 그 사람을 점잖게 타일렀다고 한다. 그 사람은 부끄러워하며 사죄했지만 정호는 자네를 꾸짖고자 말하는 게 아니니 그렇게 사죄할 거 없다면서 같이 배를 먹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