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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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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남포시 개성시 라선시
함경남도 함경북도 량강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주의]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OO특별/광역시'라고 표기하는 것과 달리 'OO시'라고 표기한다.
[가] 북한 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상으로는 '직할시'만 명시적으로 존재하며, 평양시, 남포시, 라선시, 개성시를 모두 동급의 직할시(혹은 특별시)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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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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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역
평천구역 형제산구역 화성구역
강남군 강동군
*
방현동
* 2018년에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평양시로 편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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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平壤市 | Pyongyang City[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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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40001><colcolor=#fff> 시소재지 중구역 중성동[4]
하위 행정구역 19 구역 2 1
면적 1,849㎢[5][6]
인구 최소 2,999,466명[7][8]
인구 밀도 1,622명/㎢
당위원회 책임비서

김수길
인민위원장[9]

최희태
최고인민회의

78석[10]


1석[11]

[[공석|
공석
]]
3석[12]
상징(관습상)[13] 버드나무
지역번호 02[14], 0195
IATA 도시 코드 FNJ
ISO 3166-2 KP-01

1. 개요2. 명칭3. 지리
3.1. 인구3.2. 도시 구조3.3. 지형3.4. 풍수3.5. 지질3.6. 기후
4. 역사5. 현재
5.1. 정치
5.1.1. 역대 책임비서 및 인민위원장
5.1.1.1. 책임비서/당위원장5.1.1.2. 인민위원장
5.2. 경제5.3. 교통5.4. 문화5.5. 교육
6. 건축
6.1. 공공시설6.2. 예술시설6.3. 체육시설6.4. 고건축 및 유적6.5. 식당
7. 행정구역
7.1. 구역7.2. 군7.3. 동7.4. 행정구역 개편7.5. 과거 행정구역
8. 남북통일 이후 전망
8.1. 낙관론8.2. 비관론
9.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10. 기타
10.1.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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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opad> 파일:북한 경제.jpg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 시가지의 모습

북한 수도이자 최대도시. 북한에선 "혁명의 수도"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현 북한의 정치, 경제, 인구, 역사 등 모든 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최대 도시이다.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 고려의 '제2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남북 분단 이전 대한제국 시대에도 제2의 수도로 육성하려 했었던 도시이기도 하다.[15] 때문에 조선시대 평양부는 조선 팔도에서 한성부 다음가는 대도시로 손꼽혔다. 현대 대한민국(남한)에서도 실질적으로도 평양의 유산이 남아 평양에서 피난간 학교, 교회가 지금도 존재하며, 평양의 문화적 요소도 ' 을밀대', '봉피양'[16] 등의 상호나 평양냉면 같은 음식, 음악[17], 모란봉에서 이름을 딴 경기도 성남의 모란시장 모란역으로도 명맥을 잇고 있다.

한반도 전체로 봐도 인구로는 추산에 따라 서울, 부산에 이은 3위의 대도시이다.[18][19] 6.25전쟁 이후 부산 시가지가 동래지역으로 확장되기 이전까지 평양은 서울에 이은 2위의 대도시이기도 했다. 평양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특권 계층과 함께 당국으로부터 불순 분자가 아니라고 판명받은 주민[20]이다.[21]

북한의 특권층만 거주한다는 인식과 달리 시 외곽 등지에서는 북한 서민층도 상당수 거주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당연히 매체에 주로 등장하는 평양의 신시가지나 주요 거리들은 그 특권층만이 살고 있다. 평안도의 '평' 역시 평양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안'은 안주이다.

북한의 부문법 중 하나인 ' 평양시관리법'에 근거하여 운영되고 있다.

2. 명칭

언어별 명칭
한국어 평양[22]
부루나, 바라나, 부르나[23]
영어 Pyongyang / Pyongyang City
스페인어 Pionyang
독일어 Pjöngjang
포르투갈어 Pionguiangue
루마니아어 Phenian
에스페란토 Pjongjango
베트남어 Bình Nhưỡng
러시아어 Пхеньян[24]
중국어 平壤(Píngrǎng)
일본어 平壌(ピョンヤン[25] / へいじょう[26])

평양은 평천(平川), 평나(平羅)로 기록되어 있기도 한데, '평(平)'은 '벌'의 뜻을 빌려 쓴 것으로 보이고, '나'는 시내 할 때 '내'의 이두로 보인다. 따라서 평양의 순우리말은 현대 한국어로 + 이며, 북한에서는 부루나, 부르나, 바라나로 명명하고 있다. 벌내와 비슷한 음차 표기 지명은 국내성의 또 다른 표기인 불내성(不耐城), 부여, 나주시의 옛 표기인 발라 등이 있다. # 부루나, 부르나, 바라나 등은 고대 한국 여러 곳에서 쓰였던 지명인 '벌' + '내'라는 것이다. 또한 평양성 항목에서도 써 있지만 최신 이론에서는 평양 혹은 국내 자체가 지명이 아니라 고구려어로 수도를 가르키는 보통명사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별칭으로는 버드나무의 고장이라는 뜻의 유경(류경, 柳京)이 있다. 그래서 조선 후기 평양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상인들을 유상(柳商)이라고 불렀다. 류경호텔의 류경도 여기서 따온 명칭이다. 고려시대의 명칭에서 비롯한 서경(西京)이라는 역사적 표현도 있다. 중국의 옛 지명 평양 (平陽)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한자도 다르다. 중국어에서는 구분되나 한국식 한자 독음에서만 우연히 구별이 안될 뿐이다.

로마자 표기 시에는 Phyŏngyang이 길기 때문에 종종 P'yang으로 줄여 쓰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서북(평양)방언으로는 피양이라고 한다. 물론 그것을 의식해 P'yang이라고 쓰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스펠링이 평창(Pyeongchang)과 유사해서, 평창을 평양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흥행이나 이미지 문제를 거론하며 평창 올림픽 유치를 반대하는 IOC 위원들도 있었다. 실제로 한 케냐 사람이 평창을 가려다가 실수로 평양을 간 사례가 있다고 한다. #출처 그나마 남북한의 로마자 표기법 차이로 인해 평창의 평은 Pyeong, 평양의 평은 Phyŏng(또는 Phyong)으로 표기될 수 있다지만, 조선어의 라틴문자 표기법도 'Pyongyang'은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표기이므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는 'Pyong'과 'Pyeong'의 차이가 더 자주 나타난다.

우편 주소를 비롯한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평양직할시'가 아니라 그냥 '평양시'라고 부른다. 기관 명칭을 절대로 줄여서 말하지 않는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도 '평양직할시'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즉 직할시니 특별시니 하는 것은 분류를 위하여 도와 동급이라는 의미로 부여하는 행정적 용어일 뿐, 실제 지명에 붙여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평양직할시'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며, 단순히 '평양시'라고 적는 것이 맞다. 이는 남포, 라선, 개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는 '남포시', '라선시', '개성시'라고만 적지, '남포특별시', '라선특별시', '개성특별시'라는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도급의 위상을 가진 도시는 맞으며, 평양 출신 탈북민이 만든 한 단체는 자신의 사이트에 '평양특별시'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했다. 남한 통일부의 북한정보포털도 편의상 '평양직할시' 같은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 우리나라에서 특례시 지위를 가지고 있는 도시들을 'OO특례시'라고 부르지 않는 것(예시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199)을 생각하면 된다.

한편 1994년 김일성의 사망 이후 김일성을 기리는 의미로 평양시를 김일성시라고 개칭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27] 보류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적화통일 이후 서울을 김일성시로, 평양을 김정일시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반도의 적화통일의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되긴 하지만.

3. 지리

<nopad>파일:평양 12.jpg
파일:평양 대동강.jpg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 시가지의 모습

서울에서 철도로 약 260km 거리에 있다.[28] 대구광역시[29], 광주광역시[30]보다 가깝다. 직선상 거리로는 약 190km 정도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31] 경상북도 안동시[32], 김천시[33], 강원도 삼척시[34]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35] 휴전선에서의 최단거리를 기준으로 한다면 휴전선에서 평양까지의 거리가 휴전선에서 세종특별자치시까지의 거리와 비슷하여, 서울 수준의 군사적 최전방도 아니지만 딱히 휴전선에서 멀다고 볼 수도 없다. 물리적 거리도 가깝지만 남북분단 이전 일제강점기 시점까지는 대륙과 서울 남쪽을 잇는 활발한 교류가 있었으며 분단이 되면서까지 평양에서 피난을 오거나 이미 서울에 자리를 잡았던 사람들이 북한과 가까운 서울 등 경기권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숭실대학교, 평양 출신 유일한이 설립한 유한양행이 대표적이다. ' 명동 백할머니'로 불린 백희엽 씨는 평양 지주 가문 출신이었는데 가문의 가산을 몰수하던 북한을 피해 1.4후퇴 당시 서울에 정착해서 70년대 남한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30~40%를 가지던 금융 거물로 지내기도 했다.

넓이는 약 1,850km²( 광복 당시 275km²)로, 서울의 약 3배이나 정작 시가지의 크기는 광역시급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주변 지역을 무리하게 편입시킨 영향인데,[36][37] 그럼에도 인구는 1/3 수준이다 보니 강동군, 강남군처럼 농사를 주산업으로 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3.1. 인구

인구 2008년 기준 3,255,288명[38][39]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한반도 전체 통틀어서 서울, 부산에 이은 3번째의 대도시였다. 한편 북한이 데모그라피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108,000명으로, 이 기준으로 보면 인구로는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를 제치는 한반도 3번째 도시가 된다. 이후에는 정확한 통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인구 변화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상하며, 자료에 따라서는 300만 명 이상 으로 보는 기사도 있다. 2017년에는 260만의 인구를 200만으로 감축한다는 기사도 있다. #

주간조선에서는 2005년의 평양의 17세 이상의 주민등록 현황을 입수했다는 보도를 하였다. 군인을 포함한 주민의 직업, 혈액형까지 등록된 자료다. # 이 보도를 통해 연고자의 생사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였다. 평양 17세 이상 주민은 210만명이 등록되어 있다. 평양 주민 중 토박이는 절반 수준이고, 노동당원이 주민의 3분의 1 수준이다. 인구 100명 당 남성 42명에 여성 58명인 여초 도시라고 한다. 총 인구는 평양에 들어온 군인을 평양 주민으로 가정해도 260만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이 자료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

한국은행은 2023년 북한이탈주민의 95명의 증언을 입수한 후 이를 바탕으로 평양 지역의 출산율까지 조사한 바가 있다. 그 결과 2010~2019년에 평양은 1.02명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남한 전체가 당시 1.153명이니까, 평양이 남한 전체보다 합계출산율이 낮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부산급으로 남한에 속한 광역자치단체에 비교해도 2~3번째로 낮다. 동남아 저소득 국가는 2명대 초중반은 기록하고, 북한과 비견될 수 있는 저소득 국가는 4명 이상의 합계출산율을 보인다. 북한 전체조차 1.38명이다. # 평양은 90년대 들어 1자녀 추세가 굳어져서, 70년생들의 자녀가 2명 이상인 가정을 찾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2018년경 기준 여성 고졸은 27세에, 여성 대졸은 29세에 결혼한다. 여성은 집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경향이 있는데, 8명이 방 3개, 화장실 1개의 집에 사는 것은 굉장히 비좁은 것으로 여겨진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개념이 매우 낮아서[40] 돈 벌러가면 출산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다.

3.2. 도시 구조

<bgcolor=#e40001> 파일:위성 평양.jpg
평양 일대의 위성 지도
고대의 주력 도시들은 강이나 산 같은 자연지형을 방어 시설로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는 한반도 또한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북한산 일대를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던 서울과 마찬가지로, 평양 또한 대동강을 남쪽의 방어 시설로 삼고 도시를 강북에 지어서 보통강을 북쪽 방어 시설로 삼았다.[41] 다만 평양의 경우 한반도 내 오래된 고을과는 다르게, 인근에 요새로 삼을만한 산이 별로 없으며 방어 시설의 토대가 산이 아닌 강으로만 형성되었다는 점[42]에서 여타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평양은 본평양, 서평양, 동평양, 남평양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분단 이전부터 쓰이던 구분이다.
  • 본평양: 대동강 북안의 전통적인 평양 중심지를 일컫는다.
이 안에서도 중구역, 보통강구역이 핵심적이며 중구역은 1950년대 영광거리부터 쭉 개발되어 왔다.
1958년 영광거리부터 1970년대 천리마거리, 1980년대 창광거리, 안상택거리 건설, 2010년대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 경루동 등이 꾸준히 개발되고 있는 중심 구역이다.
중구역, 평천구역, 보통강구역, 모란봉구역, 서성구역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경치가 좋다고 알려진 대성산에 대성산혁명렬사릉, 대성산유희장이 자리잡고 있고 김일성이 생전에 살았던 금수산태양궁전도 있다.
1989년 13차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이 개최됨에 따라 청년중앙회관, 동평양대극장 등이 건설되었고 김정은 정권 당시 려명거리가 개발되었다.
  • 남평양: 충성의다리를 통해 연결되는 대동강 남안의 시가지를 말한다. 락랑구역 일대다.
1990년대 초반에 통일거리가 개발되며 본격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 서평양: (신)보통강 서쪽에 광복거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시가지를 말한다. 만경대구역 일대다.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당시 광복거리, 청춘거리가 조성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6.25 전쟁 이후 남한이 서울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한강 이남까지 서울로 편입시킨 것[43]처럼, 북한도 평양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동강 이남 지역으로까지 시가지가 확장되어 현재는 대동강이 시의 중심부를 관통하며[44] 대동강의 지류인 보통강이 평양에서 합류한다.

다만 북한에서 강남 지역은 강북 지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후달리는 편으로 강남은 평양 노동인력 거주지이고 통일거리 사업 이후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현재 북한이 보여주는 주요 기관은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있다고 보면 된다. 사실 북한 정권 차원에서 강남 개발에 대한 뜻이 없던 것은 아니고 평양의 인구 증가가 통제 정책에도 급속히 늘자 강남 지역을 개발했고, 아예 지하철 건설까지 하면서 강남 개발을 대대적으로 밀어주려 했는데 건설의 난점[45]이 많아 건설 계획이 취소되었고, 이후로 평양전차 건설로 도시철도로는 연결은 되었기는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고난의 행군이 닥쳐오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도시개발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기에는 여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냅두는 것이다.

평양의 독특한 도시 구조는 사회주의 도시계획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이념을 반영하기 위한 계획이다. 대한민국이 경제가치에 따라 도심은 주로 부가가치가 높은 고밀도의 업무·상업지구가 형성된 것에 비해[46], 평양의 중심지는 정부 기관이나 공공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한이 블록 중심의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한다면 북한은 통일거리, 미래과학자거리 등 거리 중심의 신도시 개발을 한다는 것. 예전부터 '버드나무거리' 같이 신도시를 조성하고는 했다. 대로변에는 아파트가 위치하여 있으며, 주택가 내부에 공업·상업지구가 위치하여 집과 직장이 근접한 구조다. 즉 직주근접을 통해서 교통량을 최소화하고, 각 블록 단위별로 자체적인 생활이 가능하게끔 만드는 게 구소련에서 시작된 일반적인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형태이다.[47] 그러나 2020년대의 최근에 들어서는 송신·송화지구, 화성지구, 대평지구 같이 블록이나 지구 단위에 가까운 건설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는 대놓고 블록 단위로 지었다.

당장 직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배치구조지만,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르는 남한으로 보자면 '명동 대로가에 주거지가 위치한 것과 비슷한' 도시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게, 서울도 1970년대까지는 그랬다. 서울도 시 중심가인 중구, 종로구에 수많은 주택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서울시내가 확장되기 이전까지는 비슷했다. 지금의 남한 중소도시에 가보면 번화가라 할지라도 조금만 지나면 주택이나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자가용은 물론이고, 대중교통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주거지는 필연적으로 일터와 가까워야 했다. 하지만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지가 상승과 교통수단의 발전이 도심지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구조를 가진 오늘날의 도시구조 형성에 기여한 것이다.

쉽게 말해,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이고 부동산 거래도 이루어지고는 하지만 토지를 사는 개념은 없고, 주택과 건물을 거래하는데[48], 이게 상당히 불분명한 개념이기 때문에 도심 공동화가 이루어 진다거나 할 일이 없다. 그러므로 중소도시이던 시절 그때의 그 느낌으로 이때까지 발전해 온 것.

사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의 계획도시가 이러한 구조를 띠고 있다.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동유럽 국가들의 도시나 소련의 도시들은 공장지대 주변에 상업지구가 위치하고 있고, 상업지구 가까이에 주택가가 위치해 있고, 그 주변에 가족단위의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놀이공원이나 녹지, 경기장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서방 세계에서는 이렇게 나름대로 깔끔한 구조 때문에 도심의 쇠퇴(Urban Decay)를 막을 수 있는 구조로 호평 받은 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개발 한 번 하려고 해도 엄청난 시간과 조율과정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도시가 아예 새로 짓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심시티를 해본다면 이해가 될지도. 예외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과거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을 이룩한 남한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 있다.

중구역의 중심인 해방산동, 중성동 일대에는 북한의 중앙행정기관이 다수 자리잡고 있다. 서성구역과 대성구역에 걸쳐 있는 아미산 일대에는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등 권력 기관이 자리잡고 있다.

평양 일부 구역, 특히 동평양 쪽에는 거대한 건물들 뒷쪽으로 아직 60년대식 주택 단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유는 북한의 발전 속도가 남한에 비해 더딘 것도 있고, 주민들이 집을 버리고 이사가기 싫어하는 것도 있고, 결정적으로 남한처럼 대규모 도시개발로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멀쩡한데 걍 그대로 집을 쓰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다만 이것도 2010년대 들어 건설붐이 불면서 남한이나 중국처럼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식이되면서 본평양과 그 근교 지역은 남한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주택 건설에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는데,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할 정도로 많이 짓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쉴새없이 일을 시켜 딴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해 사업을 벌인다는 주장까지 나올 지경이다. 2008~2012년에는 평양 10만호 건설사업이 있었으나 2~3만호 정도만 완공했다. 그 이후 창전거리(2012년), 미래과학자거리(2015년), 려명거리(2017년)를 시작으로[49] 2020년대에는 5만 세대의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다.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사동구역 송신·송화지구부터 시작하여 2022년에는 구 룡성구역 화성지구[50]에서도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다.[51] 다만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주로 정부 예산으로 건설했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민간회사들의 돈도 다수 끌여다쓴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다.

3.3. 지형

대동강과 그 지류들인 보통강, 무진천 등 여러 하천들에 의해서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서부와 북부 일대에는 오랜 기간 동안 침식작용을 받아서 낮은 구릉성 산지들이 많이 분포했다. 평양평야는 경작이 가능한 낮은 구릉지들이 많고, 근처에 안주평야와 재령평야가 있으므로 굉장히 넓은 평야를 주변에 가지고 있다.

3.4. 풍수

택리지에 의하면 100리 정도 되는 평야가 앞뒤로 펼쳐져 있어서 기상이 크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평양의 풍수를 행주(行舟)형[52]이라고 하는데, 평양 전체가 하나의 와 같기 때문에 우물을 만드는 것은 선박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다고 여겨서 우물을 파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실제로 우물을 판 이후로 평양 시내에 많은 화재가 발생해서 우물을 다시 메웠다고 한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떠다 판 이야기는 평양의 풍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평양은 두 개의 강을 끼고 있는 충적평야지대다. 따라서 지하수 수질도 별로 좋지 않을뿐만 아니라, 지하수를 지나치게 퍼내면 지반이 침하될 우려가 있다. 이런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닫고 과도하게 우물을 파지 말라는 구전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는 전승되지 않고 이 사실을 어기면 재앙이 찾아온다는 경고만 전해져서 전설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주형의 풍수를 보완하는 비보[53]로서 배를 묶는 닻과 같은 상징물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배는 재물을 뜻하고, 재물을 담고 있던 배가 떠나지 않으려면 닻으로 묶어둬야 된다나. 이러한 비보로서 연광정 밑에 닻이 묻혀져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까지 풍수지리설이 퍼져 있었던 남한과 달리 일본은 이런 것에 무관심했다고 한다.[54]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닻을 건져 올렸는데, 하필 닻을 건져 올렸던 1923년에 평양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에 기겁한 평양 주민들은 그 닻을 다시 찾아 다시 제자리에 묻어놨다고 한다.

3.5. 지질

시생대에 생긴 낭림층군을 포함하여 원생대층, 고생대층, 신생대층이 분포했다.

3.6. 기후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냉대 동계 건조 기후(Dw)에 속하기 때문에 연교차가 서울보다 조금 큰 편이다. 연 평균 기온은 10.9℃, 1월 평균 기온은 -5.4℃, 8월 평균 기온은 24.9℃로 서울보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조금 시원한 편이다.[55] 대략 서울보다 겨울은 3도, 여름은 1도, 나머지는 2도 평균기온이 2도 정도 낮다고 생각하면 된다. 참고로 남한 철원군 시가지에서 측정되는 기온이 1월 평균 -5.7℃, 8월 평균 23.9℃이다. 물론 중강진이나 함경 지방보다는 당연히 따뜻하다. 같은 위도에 있는 스페인 이비자의 1월 평균 기온은 무려 12℃다. 북위 60도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헬싱키와 겨울철 평균 기온이 비슷하다. 연 평균 기온은 시카고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것은 한반도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여 중부 지방 기준 북위 45~50도는 가야 한다. 반면 상반기에는 온도가 정말 빠르게 올라가는 것인지, 아래에 나와 있듯 1~3월은 추움에도 불구하고 4~5월 평균은 서울보다 1~2도 낮고 6~7월 평균은 서울보다 조금만 낮다.8월 서울보다 1°C 정도 낮기는 하지만, 초고온이 왔던 2021년 7월 평균기온을 27.0도나 기록해 점점 여름도 서울을 따라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56] 심지어 2019년 7월에는 26.2°C로 서울보다도 높다.

연 평균 강수량은 936.4mm인데, 한반도의 강수량 특징이 그러하듯이 강수량의 70% 가량이 여름에 집중되어 내린다. 특히 7~8월에만 484mm가 내려 두 달 동안 한 해 강수량의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반대로 겨울에는 남한의 서울특별시보다도 강수가 적다. 실제로 12~2월의 평균 강수량은 각각 18, 9.6, 14.5mm로 서울의 60%에 불과할 뿐더러[57] 세 달을 합쳐도 50mm가 채 안 된다. 남한 소우지 대구와 비교해도 이곳은 1064.6mm라 더 적다. 다만 660mm 정도의 연강수량을 기록하는 베이징 수준은 아니다. 백령도의 825.6mm보다는 많다. 북한에서 베이징 수준의 강수량을 기록하는 곳은 청진시, 신포시 등 함경도 일대다. 다만 함경도라도 겨울 강수량은 평양 수준은 된다. [58] 매년 눈은 오는 수준이라 북한 매체가 눈이 오는 평양을 다루며 제설차량이 돌아다니는 도시다. # 대구, 부산 마냥 눈이 신기한 수준은 아니다. 김정일 영결식 때는 이례적이지만 폭설이 내렸다. 베이징의 12월~2월 강수량은 2.8mm, 2.7mm, 4.9mm로 평양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베이징 수준이면 겨울에는 한 두 번 눈 섞인 비가 간혹 오는 수준이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900mm가 넘으므로 세계 평균 정도는 되기에 적지 않은 강수량이지만, 6~9월의 우기를 제외한 나머지 8달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은 271.3mm이다. 그래도 베이징조차 BSk가 아니라 베이징보다 40% 가량 강수량이 많은 평양은 스텝 기후까지는 아니다. 겨울 가뭄이 더 문제되는 곳은 개마고원 일대의 수력발전소인데, 실제로 전력난이 발생하여 갈수기에 평양 중심구역조차 하루 10시간만 전력이 공급되는 사태가 있다고 한다. # 2023년 3월에는 오랜 자체 봉쇄 때문인지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중구역 같은 가장 중심조차 평균적으로 하루 4시간만 전기가 들어왔다고도 한다. # 심지어 2023년 겨울에는 중구역조차 하루 2시간만 전기가 들어온다는 보고가 있다. #

여하튼 서울조차 겨울 강수량의 합이 사막 국가 1년치 수준인데, 그 보다 더 적은 평양은 대도시로써 대도시의 인구를 감당할 수리시설 확충과 수원 확충, 상수도, 하수도 정비가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지방에서는 돈이 없어 일제강점기 시절 수도체계를 아직도 쓰고 있는 상황인데 평양이라고 해서 상황이 더 나을지는 미지수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만든 문수물놀이장( 워터파크)의 수질이 매우 나쁘다는 보고서가 공개된 적도 있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
평균 기온(℃) -5.4 -2 4 11.1 17.4 21.9 24.7 24.9 20.2 12.9 4.8 -3.4 10.9
평균 최저 기온(°C) -9.8 -6.6 -0.9 5.6 12 17.4 21.4 21.5 15.6 7.8 0.5 -7.4 6.4
평균 최고 기온(°C) -0.4 3.1 9.7 17.3 23.5 27.5 29.1 29.6 25.7 18.8 9.7 0.9 16.2
강수량(mm) 10 14 24 45 75 90 275 210 91 47 39 18 936[A]
습도(%) 57 56 57 60 65 72 81 81 73 67 66 58 66.1
평균 강수일 3 3 4 5 6 8 12 10 5 4 6 4 6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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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black> 시기 당시 명칭
고조선 왕검성
원삼국시대 낙랑군 조선현(朝鮮縣)
고구려 안학궁/ 대성산성 장안성
남북국시대 평양주(平壤州)
고려시대 서경
조선시대 평안도 평양부
구한말 평양부 평양군
대한제국 평안남도 평양부
1914년 대동군(大同郡) 신설
1946년 평양특별시(平壤特別市)
1952년 평양시(平壤市)(직할시)

평양은 약 기원전 3세기(고조선, BC 194년 이전)에 건설되어 경주(신라, BC 57년), 서울(백제, BC 18년)보다 약 200여 년 더 앞서 건설되었다. 이른바 '단기위고 3천년'[60]의 도읍으로, 고조선[61], 고구려, 고려[62] 고도이자 현재는 북한 수도. 한국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가 큰 곳이다. 손꼽히는 고도인 서울특별시 경주시, 개성시에 못지 않는데, 평양은 한국사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수도였고[63], 고구려 후기의 수도[64]였다. 수도의 지위를 잃은 이후로도 고려시대의 3경[65] 중 하나였고, 조선시대 한성에 이은 제2의 도시, 북한 정권의 정치적 중심지이자 수도가 되었다. 이에 평양에는 남한의 서울이나 공주, 부여, 경주, 김해 못지않게 전통유적이 많다. 동명왕릉을 비롯한 고구려의 유적과 고려시대 유적이 특히 많은 편이며 비록 이후에 개건한 것이고 날조 논란도 많지만 단군왕검을 모시는 단군릉도 있다. 숭령전 같은 조선시대에 중요하게 여겨진 유적도 있고, 멀쩡한 것은 이쪽이 더 많다. 평양 시가지 외곽에 조선시대 이전의 유적이 있는데, 그것도 공주, 부여, 경주 같은 느낌으로 완전하지는 못하다. 이미 고려시대 말부터 파괴된 유적이 많기 때문이다.[66] 그래도 북한이 개발되거나 통일되면 이러한 전통유적 보존 및 교토 같은 고도의 분위기를 풍기는 도시로 발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다만 한국전쟁 당시 평양이 미군의 집중적인 폭격으로 인해 궤멸적인 피해를 입은지라 근교의 왕릉급 무덤 정도를 제외하면 평양 소재 문화재들은 싹다 재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려 시대에는 개경과 라이벌구도를 형성하고 있었고 특히 고려 전반의 지역사는 개경과 서경의 대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에 맞설만한 정치적 힘과 문화적 정통성을 가진 도시는 평양 즉 서경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개경 귀족 입장에서도 서경(평양)이 아무리 뻗대도 고조선 고구려의 수도라는 엄청난 정통성 때문에 쉽게 건들지 못했다. 묘청의 난이 발생한 걸 보면 두 수도 사이에도 위상의 차이가 있던 정도다. 하지만 여몽전쟁, 홍건적의 침입을 직격으로 맞았고,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청야 전술까지 동원되어 평양은 경제적 기반을 잃어버리고, 매국노들이 평양 일대를 원나라에 넘겨주는 큰 혼란도 겪으며 역사적 이름만 남은 채 정치적인 권력도 줄어들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여몽전쟁과 홍건적으로 쑥대밭이 된 고려 말의 사정으로 '2위 도시'라는 상징성 빼곤 한양과 경쟁 자체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조선은 삼조선과 고구려의 고도라는 이유로 평양의 역사적 가치를 중시했으나 정작 평양 출신들은 혈통적인 문벌을 중시하는 풍조로 조선조 내내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67] 평안도 자체가 북방의 안정으로 경제력이 높아지고, 함경도 출신 이용익조차 고위 관료가 되며 이런 풍조가 사라진 구한말 이후부터는 오늘날로 따지면 서울-부산 사이의 관계와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패강랭 같은 1938년의 소설에는 평양에서 특히 다른 고장보다 유명한 기생조차 서울말을 쓰려고 하고, 머릿수건을 매던 전통이 사라져서 서울에 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문화가 사라져감을 한탄하는 주장이 나온다. # # 마천루가 서울보다 부산에 많듯 #, 평양에도 기생 같은 것이 서울보다 앞선다는 말이 있었는데 식민 통치 속에 개성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사에서 딱 한 번 평양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절이 바로 남북국시대이며, 신라에게도 발해에게도 수도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사실상 양국의 완충지대에 위치해 있어 고구려 멸망 후 고려가 서경으로 삼기까지의 253년간(668~921) 폐허로 방치되었다. 수도인 기간은 길게 잡아도 약 500년으로 의외로 짧은 편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에서는 원래 다른 곳을 수도로 삼다가 왕조 후기에 평양으로 옮긴 것이었고 고려 서경은 위상은 높았다지만 결국 개경에 밀려 수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였던 기간만 치면 서울이나 경주에는 확실히 밀리고 개성에 비해서도 확실한 우위라고 말하기 힘들다.[68] 그러나 수도가 아니었을 때에도 한사군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곳이기도하고, 고구려 제 2도시(국내성 시기), 고려 제 2수도, 조선 제 2도시였기 때문에 꾸준함의 측면에서 인정받는다.

구한말까지는 서해안 쪽으로 뻗은 땅거스러미가 존재했기 때문에 과거에 진주시가 그랬던 것처럼 해안에 접한 도시였다. 그러다 1906년에 이 땅거스러미를 구성하던 반석면, 성태면, 적송면이 증산군[69]으로 이관되면서, 서해에 접한 적송면을 잃고 내륙도시가 되었다.

분단 직전까지만 해도 현재의 남북한 영역에 있는 도시 중 가장 현재의 북한과 동떨어진 색채를 띠던 도시 중 하나였다. 특권계층이 자리잡은 현재의 북한의 평양과 달리 신분이 평범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던 곳이며, 조선 후기부터 상업으로 번성하던 곳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내가 남(南)으로 가게 된다면 북녘의 동포들은 김일성과 소련의 공산치하에서 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던 조만식 같은 우파가 가장 인기가 많던 곳이었고, 북한 당국이 가장 싫어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교세도 가장 강했다. 그래서 북한이 펴낸 《조선향토대백과》에서 이러한 광복 전의 평양을 두고 ' 비문화적이고 기형적인 상업소비도시'라고 깎아내릴 정도였다. 이런 세력이 꺾인 것은 정권 수립 직후에는 소련의 무력으로, 몇 년 뒤에는 김일성의 파격적인 특혜를 받는, 가려 뽑힌 숙청에 특화된 인물과 조직을 동원한 주민에 대한 삼엄한 감시와 지방 추방 등 각종 물리적 탄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원래 1948년 제정된 북한 헌법 10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이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 성립 초창기에는 한반도 정치체의 정통성이 서울에 있음을 은연중에 인정한 상태에서, 적화통일을 전제했던 조항으로 보인다. 이 때까지는 평양은 일종의 임시수도와 같은 위상이었던 셈인데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은 서울에 엄청 집착했다. 그러다 남북분단 상황이 고착화되자 나중에 김일성 일인 독재 체제를 확립한 1972년 사회주의 헌법에서 이 부분은 삭제되고 대신 평양을 혁명의 수도로 규정하였다.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기준으로 서울은 지방 대도시라는 것이다.

혁명의 수도라는 이름 하에 사실상 수도임을 인정한 다음부터 북한은 지금의 북한 지역에 중심지를 두었던 고조선이나 고구려, 고려와 그 뒤를 잇는 현재 북한정권의 역사성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며 단군릉, 동명왕릉 등을 크게 개건하였는데,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한반도 정치체의 정통성이 남한과 서울이 아닌 평양에 있다는 선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70] 다만 고대 국가는 고조선이라도 노예 소유 국가라는 등 모조리 깎아내리고 인민의 역사성을 강조할 때만 평양을 강조한다. 그래서 동학농민운동 같은 남부 중심의 민란도 교과서에서 잘 다루지만 왕은 시조 정도만 제대로 나온다. 보통 북한 교과서는 왕은 잘 안 나오고 장수, 예술가만 나온다.

5. 현재

파일:류경평양.jpg

5.1. 정치

평양시는 혁명의 수도인 것만큼 당을 옹호하는 사람 밖에는 그 누구도 살 권리가 없습니다.
김일성

평양은 북한 당국에 의해 엄격하게 관리되는 도시가 되었다. 북한의 평양시관리법은 ‘평양시의 환경을 개선하고 인구집중을 막는 것은 수도관리에서 나서는 기본요구'라고 밝히고 있으며, 식량과 전기 등을 우선 공급하도록 명시한다. 여기에 평양시 '주변지역'에서 '중심지역'에 거주하려는 공민까지 당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 # '410호 대상'이라고 하여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하층시민으로 취급받는다.

특히 '중심지역'은 평양 내 거주 허가 외에도 중앙행정기관인 내각이 관여하는 여러 특혜가 부여되는 곳이다. 대놓고 평양시관리법에서 "주민과 도시환경을 특별히 관리하기 위하여 정한 지역"이라고 명시한다. 중구역 종로동에 있는 김일성 동상이 있는 만수대[71], 남한에서는 '장대현'이라고도 불리던 고개가 있던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정한 지역이라고 한다. '주변지역'에는 보호지대와 평양 내의 '위성도시', 농촌지역이 속한다. 지방과 평양 뿐만 아니라, 평양사람끼리도 차별이 있는 셈이다. 거기다가 평양 주민이 지방 주민과 결혼하면 지방으로 쫓겨나게 된다.

자원 배분 자체가 대단히 계급화되어 있어 2023년 기준 경루동이라는 김정은이 직접 충성계층을 이주시킨 신도시에서는 도로변의 최상급지에는 18시간 전기를 보내주지만, 경루동 다른 지역은 전기 공급이 점차 줄어들더니 경루동이 속한 중구역은 앞서 언급하였듯 사정이 나쁘면 하루 4시간 전력이 들어온다고 한다. 전기가 부족한 대신 빨래를 해주는 서비스를 주 2~3회마다 해주고, 이동식으로 간편식을 판매해준다고 한다. # 그러나 평양 중심에서 벗어난 410호부터는 아예 대중교통마저 이용할 수 없는 계층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저런 전기 사정은 웬만한 개발도상국에서도 비웃을 수준[72]이지만 외부 정보가 차단당한 상황에서 북한 서민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을 안겨주어 이 계층은 '만족'하게 된다.

중심지역의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주변지역으로의 인구집중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며, 농촌지역도 중심지역을 고려해서 지정된다. 보호지대도 중심지역의 환경을 보호하고 주민들의 문화휴식을 보장하기 위한 지역이다. 공해를 일으키는 시설, 차량, 보일러도 '중심지역'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 중심지역 근방의 남한의 '구'로 비유되는 구역을 '중심구역'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중심지역에서도 조금만 떨어져도 나름 중심구역으로 인정받는 평천구역 같은 곳에 있는 평양화력발전소, 평천오수정화장 같은 곳 근처는 미세먼지( 사진)와 악취가 심하다. #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북한에서 자본주의화가 심하게 일어난 상황이라서 돈이 많으면 평양에 거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당의 기관이 분양하는 건설권을 사면 평양에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평양 남편과 결혼을 하여 평양에 살거나, 운동을 잘해서 평양에 사는 경우도 있다고도 한다. 2010년대 후반 기준 위장전입 같은 사례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본래 북한의 행정구역 책임자는 시, 도, 군 당 책임비서 직함을 달고 있었지만 2016년 5월 제 7차 당대회 이후 당 위원장으로 직함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2021년 1월부터 다시 책임비서로 직함이 변경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평양에 거주 중인 사람들은 핵심계층~ 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의 충성도가 높은쪽에 속하는 사람들로, 평양시민증을 가진 인민은 타 지역민과는 차원이 다른 특혜를 주고 있다. 이런 성분보다는 충성도가 더 중요해서, 핵심계층이라도 충성도가 낮다고 판명되면 쫓겨나며 동요계층이나 적대계층도 살 수는 있다. 일례로 TV와 유튜브에서 탈북자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평양 출신과 그 외 지역 출신 사람들의 배경지식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상 서로 다른 나라나 다름없는 수준.

북한의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양, 특히 '중심지역'은 북한에서 최고의 부촌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지방 사람들은 포상휴가를 받거나 수학여행을 갈 때에나 방문하는 수준. 평양은 려행증 중에서도 특별한 려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특권층 도시이기 때문에 일반 북한 주민들은 사는 게 쉽지 않은 데다가 출입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73] 갈 돈도 없을 뿐더러 평양시 려행증을 받는 건 타 지역 려행증 받는 것보다 수 배는 더 어렵다. 그만큼 평양은 북한 당국이 간판으로 내세우는 도시이기 때문에 북한 전국 인민들의 피땀을 모아서 평양 꾸미기에 공들이고 있다. 일례로 김정은 시기 과거에 비해 확연히 '발전'했다는 북한의 모습을 보면 절대다수가 평양의 모습들이다.[74]

일단 평양 시민들은 려행증으로 인해 도를 넘어가는데 제약이 심한 타 지방과 달리 그나마 다른 지방을 여행할 때 북중 국경지대( 청진시 이북 등), 휴전선 인근, 자강도 일대를 제외하고 통행증이 필요없고, 평양 중심지역은 생필품과 수도/전기 공급 제 1순위이며, 인트라넷이 그나마 공급되는 곳이다. ' 인터넷'은 외국인이나 대외 선전 요원을 제외하면 정부가 외부 동향을 확인하거나 연구자들이 연구 자료를 찾아보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75] 다만 라디오 청취는 불법이라, '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의해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적발만 되어도 사형이라고 한다. # 자가용 소유가 거의 불가능한 타 지역들과는 달리 평양에선 자동차가 생각 외로 많으며 출퇴근 시간때에는 교통 체증이 있다.

이렇게까지 평양 시민들에게 한해 편애에 가까운 수준의 대우를 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1972년 김일성 유일체계가 확립되고 평양이 혁명의 수도로 격상되면서 충성도가 낮은 주민들을 타 지역으로 쫓아내었기 때문이며 그만큼 감시도 심한 곳이라, 불법 체류자 등을 잡아내는 숙박검열이 다른 지역보다 잦으며, 북한 당국의 규범에서 벗어난 옷차림을 하는 등 충성도가 낮은 사람을 찾기 위한 다른 감시도 마찬가지다.

이는 뒤집어서 본다면 평양 거주민들의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은 타 지역에 비해 굉장히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도 2011년 말 김정일 사망 소식 당시 조용조용한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평양 지역은 그야말로 난리법석. 다만 그만큼 중앙 정부의 집중적인 통제를 받기도 하여 신흥 부유층들이 인근의 평성시 등을 선호하는 현상도 최근에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차별대우를 한다해도 다른 개발도상국의 도시보다 부족한 모습도 있는데, 전력난이 이곳에도 있다든가, 치적사업으로 지은 아파트도 날림 공사를 한다든지 동시대에 지어진 남한의 어느 아파트보다도 시설이 나쁘다는 주장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이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외부 정보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타 지방엔 이미 끊긴 배급으로 일종의 정치적 선전 효과의 대상이 되며, 외국과 비교하면 완화도 아니나 일부 제한 완화는 열심히 선전하기에 이런 대접이 어마어마하다고 느끼게 된다. 체제 유지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정치적 최상류층은 정말 남북통일이나 개혁개방이 있으면 물질적으로 가난해질 수도 있다. 리춘히 아나운서는 벽걸이 에어컨[76]이 달린 김정은이 선물했다는 평양 중심부 경루동의 2층집에서 산다. 주민을 뜯어먹는 간부의 생사여탈권을 관장하여 더 크게 뇌물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도 다른 데에서는 받아주지 않을 타고 난 핏줄로 말이다. # 즉, 이들은 북한에서 태어났기에 남한에서 태어나는 경우보다 더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이며 자신들의 지위의 추락을 막기 위해서 더 체제 유지에 힘쓰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남한 국적의 사람이라면 통일부의 방북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북한과 관계가 없는 제3국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광이 열려있는 곳이다. 중국, 러시아 등 구 공산권 우방국뿐 아니라 영국인이나 일본인 등 여러 서방권 국민들도 방문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오토 웜비어 치사사건 전까지는 미국인도 방문할 수 있었다. 사건 후 2017년 9월 1일부로 미국인의 북한 관광은 전면금지되었고, 북한 방문하려면 국익 관련이나 취재, 인도적 지원 목적이 있음을 미 국무부에 예외사례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비자가 필요하고 항공편 구하기가 까다로운 문제는 있지만[77], 패키지 상품은 물론 자유여행도 받아주고 있으며, 그들의 시점에서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혼자 다니는 것도 딱히 제재를 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만약 평양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Pyongyang이라고 검색하면 관련 영상이 셀 수 없이 나오므로 참고하도록 하자. 탈북자들의 유튜브에서도 평양에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이 많으며, 이런 것은 정치 성향이 강한 유튜브[78]를 빼면 믿을만한 정보가 있으며, 북한이 보여주지 못하는 다소간의 사상적 이완도 언급한다. 남한 방송에서도 남북정상회담 같은 행사가 있을때마다 평양의 모습을 취재했다.

북한 관련 관광상품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이다. 북한 당국이 주민을 통제하는 것이 용이하고, 호텔 같은 인프라나 교통수단도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주 등장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지 다른 지역은 안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라는 관광사는 북한의 모든 도의 관광상품을 내놓은 적도 있다. # 북한도 관광업에는 열심이라 신의주 같은 곳을 무비자로 중국인에게 방문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개천, 해주 같은 신의주보다 개발이 덜 된 곳도 유튜브에 고려투어 같은 곳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2019년에는 양덕온천, 원산을 개발하려다가 코로나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칠보산 같은 곳도 외국인에게 개방된 곳이다. 평의선, 부전군 문서를 보면 낙후한 북한 시골의 영상이 올라와 있으며, 혜산시에는 아예 강변을 따라 북한 흙수저들이 모여 사는 '하모니카 주택'이 있어 강 너머 중국에서 주된 촬영대상이 되지만 아파트 몇 채 세우는 것 빼고는 철거는 안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이 볼 수는 있는 지역이 숫자로는 적지 않다. 북한은 그냥 주민과의 대화를 막거나, 군사 시설에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외국인들이 아무리 북한이 가난하다고 여겨도 내부적으로 안 알리면 정권 유지에 문제가 없다. 실제로 보여주지 않는 곳은 군사 시설이 많은 자강도[79], 개성이나 금강산을 제외한 휴전선 인근 지역 정도가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 등의 아파트는 골조는 건설부대, 나머지는 주민의 강제 동원과 '세외부담'이라는 강제적 부담금으로 건설된다는 주장이 있다. 기관이 중앙당 간부 출신의 돈을 받으면, 이 간부가 분양을 하여 기관에 낸 돈 보다 훨씬 큰 소득을 얻고, 이런 이윤에서 다시 김정은이 땅과 노동력을 주었다며 절반 이상을 떼 간다는 주장이다. #

흔히 평양의 이미지로 손 꼽히는 중심지역 근교에 사는 사람들은 평양 인구의 20~30%인 40~60만 정도이며[80] 나머지 70~80%는 일반 노동자, 농민 등으로 지방도시 주민과 큰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애초에 평양의 모든 시민이 특권계층이 아니며, 평양의 서민보다는 지방에서 좀 부유한 계층이 더 잘 사는 모습도 흔하다.[81] # 본평양 근교에는 교도통신, AP통신, AFP의 지부가 있는데, 여기서 취재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은 모두 북한 사람이다. 평양 시내에서 군인은 기본적으로 군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금지되며 부대가 이동할 때도 평복으로 갈아입게 한다. 평양시민은 외국인과 말을 많이 하거나 대응이 나빠도 비판될 수 있다. # 남한으로 치자면 방문객들에게 청담동 같은 부촌이나 강남역 일대, 여의도, 종로 같은 중심지구만 안내하고 다른 지역으로의 진입은 통제하며, 그 주민에게 함부로 대응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있는 것과 같다. 그래도 외국인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평양 골목의 사진도 있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남한의 1960년대 초(혹은 그 이하)를 연상케 하는, 그야말로 반전세계(反轉世界)가 펼쳐진다. 게다가 평양의 행정구역은 서울보다도 두 배 이상 넓으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낙후된 지역이 얼마나 많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82] 다만 그런 모습을 구경하려면 가이드의 매의 눈깔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점이 문제. 실제로 일본 언론 아시아프레스의 한 기자가 몰래 외국인 출입금지 지역을 가니 상점에서는 어떤 백화점으로 가라면서 팔이 잡힌 채로 호텔로 끌려갔으며, 다시 몰래 나가니 한 남자가 "위험에 처하면 안 되니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며 또 호텔로 데려 갔다고 한다. 이건 신고 당한 것이라고 한다. #

그래서 북한의 잘 사는 모습은 평양 일부만 불과하다는 주장이 지지를 받기도 한다.[83] 북한에서 평양 중심지역처럼 잘 사는 곳은 없어 절반 정도는 맞는 말인데, 북한 정치에 대한 반발심으로 평양 아니면 모두 끼니조차 잇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방에도 평균적인 평양 시민보다 부유한 사람이 많으며, 탈북자의 경우 평양보다 못사는 함경도 북부 출신이[84] 많은데도 2016~2019년 경에는 90% 이상이 세 끼를 잇고 있다. # 이는 2000년 이전에 32.1%에 불과하던 것이다. 위성사진으로 봐도 동평양 쪽의 허름한 곳보다는 지방(사리원, 함흥 같은 내륙 포함)의 중견 도시 중심부가 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2020년 북중 국경인 혜산시 같은 경우에 여성의 경우 남한 기준으로도 살찐 사람이 유튜브 영상에 등장, 많은 사람이 중국이냐고 믿지 않으려는 바람에 편집자[85]가 같은 장소에 인민군이 걸어가는 모습을 올려 북한이 맞음을 증명한 사례도 있다. # 북한이 생각보다는 잘 살 때도 있다는 것이야 장사로 부업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86] 당연히 돈을 버는 사람 가운데서도 비만한 사람이 있는것은 당연한 것이고, 실제로 북한 전역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 활동 자체가 아예 불법[87]인데 그게 부패[88]로 검열이 무력화된 것이라는 증언도 많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특이한 증언도 새어 나오고 있다. 외부에 보여주는 정치의식마저 실제 평양시민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에 실린 평양에서 2017년 탈북한 탈북자의 언급에 따르면, 뒤에 설명하듯 개혁개방을 지지하는 여론이 50~60대 사이에서도 흔하고, 그 아래 세대는 더하다는 것이다. ‘김일성주의 정수분자(精粹分子, 어떤 사회나 조직체에서 가장 우수하고 기본 주축이 되는 사람.)’, ‘김정일주의 정수분자’는 20대에는 없다고 한다. ‘국가가 어떻든 내 입만 굶지 말자, 내가 잘 먹고 잘살자’는 인식이 삶을 지배한다고 한다. 학교 다닐 적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를 열심히 공부했으나 다 헛소리로 여긴다고 한다. 다만 이건 어른들은 다를 수 있다고 한다. 10대가 더 심해서, 김정은 때 통일을 이뤄내지 못하면 나중에 먹힌다는 인식도 강하다고 한다. 남한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도 많이 들어와 젊은 세대는 사상적으로 이완된 모습도 보인다. # 당국에서는 이런 외부 문화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마약 사범보다 중대하게 여겨 감옥에 넣으려고 하지만, '걸리는 놈이 머저리'라는 말이 돌 정도로 이런 문화가 퍼져 있으며, 심지어 "김태희 이민호 장나라 팬이 평양에 특히 많다."라는 주장을 한다.

이것은 옛날처럼 무조건 충성은 안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지, 위와 같은 주장에서도 아직은 정치적으로 과거에 머물러있거나 그 잔재가 남은 사람도 많다고 주장한다. 노인, 노병 같은 경우는 흔히 알려진대로 충성심이 강하다고 한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학생 이하의 나이대에서는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려고 애국심으로 공부하는 대학생들은 한 명도 없으며, 심지어 당국의 코로나 환자가 없다는 주장을 믿지 못하기도 하지만, 주부 같은 경우에는 배급을 주고 생활을 좀 개선시켜주면 농촌에 동원시켜도 불만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2023년에는 평양 중심구역을 둘러싸는 철조망이 위성으로 확인되었다. # 3300V 고압선과 변전 설비, 동화상 감시카메라의 시설 기준을 갖춘 곳이라고 하며, '혁명의 수뇌부(김정은)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

5.1.1. 역대 책임비서 및 인민위원장

5.1.1.1. 책임비서/당위원장
5.1.1.2. 인민위원장

5.2.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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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호텔 일대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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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신도시인 미래과학자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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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관광객이 촬영한 2017년 4월 경 평양시내의 모습

평양, 특히 본평양 일대와 그 밖의 지역의 생활 수준은 눈에 띄게 차이가 큰데[89], 2017년 현재 평양 시민, 특히 본평양 지역 주민의 생활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중산층에 준하는 수준이며, 2019년 남한 역도 선수들이 평양에 가서는 '90년대 남한 모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실제로 평양 시내의 식당들에는 매일 저녁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며, 북한(평양)내에서 대한민국의 고급 백화점 위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류경관(구 해당화관)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외화로 판매함에도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인데다가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고층건물도 크게 늘고있다. 평양시민도 욕하지만 대성백화점 같이 돈주나 고위 간부를 위한 곳은 샤넬 페라가모 같은 진짜 명품을 팔기도 한다. 대북제재를 뚫고 밀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

북한에서 가장 먼저 챙겨 주는 지역인 만큼 해마다 10월이 되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현물알곡을 분배할 때 가장 먼저 군량미와 수도미(평양시민에게 공급되는 식량)를 우선 공제하고 다음으로 '2호미'라고 불리우는 전시식량을 공제한 후 나머지를 농민들에게 결산분배하고 있다고 한다. #

주성하 기자는 2017년 평양에서도 상위 1%[90]와 이메일, SNS[91]로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고려호텔 길 건너에 있는 창광숙소[92]에 주말마다 단골로 갈 때에는 보통 3명이 점심에 와서 새벽까지 1,000유로, 한화 130만 원을 탕진하기도 한다고 하며, 가끔식 1,500유로를 탕진할 때도 있다고 한다. 보통 즐기는 술은 50유로짜리 스카치 위스키라고 한다.[93] 이 부자는 남한 사람들도 이건 믿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당에서 인사권에 관여하여 뇌물을 받아먹는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한 번에 1만 달러를 받는 경우도 있어 북한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로 꼽힐 정도로 굉장히 잘 사는데, 군 장령 인사를 하는 중앙당 61부나 그 아래 군관 인사를 맡은 군 총정치국 간부부에서 일하면 조직지도부 부부장[94]보다 더 잘 살 정도라고 한다. 백화점은 비싼데 상설 시장 중 평양에서 가장 큰 통일거리시장에서 밍크코트도 팔아 여기서 명품을 산다고도 한다.

덤으로 중앙당 간부나 군부 장령(장성)급들이 애호하는 해당화관[95]은 전술한 창광숙소 이상으로 비싸 3명이 가면 아무리 적게 먹어도 '벤자민'[96] 다섯 장(500달러)은 쓴다고 하며, 자신의 친구는 생일 저녁에 가족 7명을 데리고 가 5000달러를 썼다고 전했고, 음식 값이 너무 비싸 외국 관광객들도 기겁할 정도라 음식을 사먹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청류관 옆 '은반식당' 같은 곳에 가서 사시미 캐비아, 샥스핀까지 시키면 셋이 1000달러는 넘게 나온다고 한다. 이런 고급 식당에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온몸에 명품으로 휘감은 고운 여자애들 서너 명은 북한의 상류층들 사이에서는 '마약'이라는 은어로 불리며, 보안원들도 "일본인인가 싱가포르인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단속을 포기할 지경이라고 한다.

또한 평양에서는 여자가 있는 술집은 없지만 웬만한 부자들은 다 을 두고 살고 있으며, 그 애인을 위해 10만 달러 상당의 아파트 한 채와 명품은 기본으로 사줘야 한다고 한다. 예술인 출신의 예쁜 처녀들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신분이 확실한 고정 VIP만 허용하며 술과 잠자리를 포함해 하룻밤에 보통 100달러를 버는 등 암암리에 성매매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덤으로 그 부자는 자신은 롤렉스를 차고 다니고 자신의 아내를 포함한 북한 상류층들은 사파이어 보석이 박힌 목걸이와 반지는 물론 특히 샤넬을 좋아한다고 전했으며, 글라스는 구치를 좋아한다고 하고, 신발은 나이키, 휠라, 미즈노가 인기가 많고 상류층 어린이들은 아디다스 추리닝을 좋아한다고 전했다. 다만 루이비통은 짝퉁이 더 많을 정도로 진품이 귀하다고 한다. 또 평양 상점에서는 일본산 카레&라면과 오뚜기 라면, 신라면 같은 남한산 라면, 오리온 초코파이 판다고 한다. #

2011년 기준으로 평양 중심구역에서는 5만 달러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상위 1% 수준이었으나 # 2017년 기준으로 5000만 원 이상을 가져도 상위 20% 수준이고 1억 원 이상을 가지면 상위 5%, 10억 원 이상을 가지면 상위 0.05% 수준의 부자이며[97] 100억 원 이상은 도합 100여 명[98]에 불과한 정말 극소수만이 가질 수 있다고 한다. #1 #2[99]

특히, 평양에는 2010년대 들어 헬스클럽과 같은 사회 체육 시설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평양에 한정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평양 내부를 촬영한 영상에선 살이 찐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대북제재 속에서도 살까기 열풍이 분다고까지 할까. 종합해보면 평양의 부유층들의 생활은 90년대 남한의 오렌지족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100]

아무튼, 이렇게 평양 시민에 대한 특별한 대우 때문에 북한사람들은 평양에서 살고 싶어서 안달이다. 탈북자들도 과거 습관 때문에 남한도 북한 같은 줄로 생각해 정착 초기에는 서울 거주에 매우 집착한다. "북한에서는 피양가고 싶어서 병아리도 피양피양 하고 운다."나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평양 공화국과 지방공화국으로 나뉘어 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이미 80년대부터 북한 지방민들은 한반도는 남한, 평양, 북한으로 3분단되었다고 말했을 정도이고,( 1986년 12월 22일 슈피겔지 보도 인용) 당시 북한은 고난의 행군에 젖어들기 10여년 전이었던 만큼 경제적으로도 아직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을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101] 실제로 평양에서는 북한 제2의 도시인 남포시 주민들조차 차별을 받는다는 증언이 있다. #

아궁이를 뗀다는 뉴스도 삼지연시, 단천시 같은 지방의 주택을 선전할 때 등장하지 평양은 중구역 같은 최고 엘리트들의 거주지일 경우[102] 가스레인지는 있다. 나라에서 집을 주면 지방 농촌 사람들은 아궁이만 가지고도 행복함을 보여야 하지만, 평양의 상류층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2024년 3월 공개된 강동온실농장 인근 마을에서는 3~4층짜리 연립주택에 아궁이를 설치했다.[103] #

다만 미래과학자거리[104], 려명거리신도시[105], 화성지구[106], 송신·송화지구 창전거리[107] 같은 평양 신시가지 아파트의 부엌에서는 가스레인지가 아닌 듀얼 가스버너를 써야 한다고 한다. 가스레인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 부엌들의 사진에서 가스 배관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가스버너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려명거리신도시에서 김정은이 직접 들어간 집에는 어엿이 가스레인지와 환기 기구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건물 아니면 층의 고저에 따라 가스 배급 수준에 차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NK의 기사에 따르면 적어도 화성지구 주택의 부엌은 LPG통을 놓고 밥을 해먹도록 했다고 하는데, 화성지구의 거주민들이 감당하기에 LPG 가격이 너무 비싸고 국가의 온수난방을 믿을 수 없다보니 개인 취향과 편리에 맞게 무동력 보일러나 주방 부뚜막, 온돌[108] 등을 개별적으로 설치하는 식으로 겨울 난방과 취사를 위한 리모델링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송신·송화지구의 80층 아파트에서도 '난방용 땔감'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정황상 가스 보급 문제로 인해 80층 아파트 내 주택에 주민들이 직접 부뚜막과 온돌 등을 설치하며 난방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 사실상 주민들이 난방 문제를 자력갱생으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땔감이라고 하는 것도 정확히는 연탄을 쓰는 것인데, 평양 주민들이 난방을 해결하기 위해 설치하는 '무동력 난방장치'는 부엌이나 베란다에 부뚜막을 쌓고 연탄으로 덥힌 물을 배관을 통해 방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2013년 기준으로도 설치에 80~100달러 정도, 석탄값도 한 해 40달러나 들어 중산층 이하는 설치할 엄두도 못 낸다고 하며, 연탄가스 중독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2017~2018년경 호황기 기준 평양의 일부 방 5개짜리 최고급 아파트들은 시세가 2억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주성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4억 아파트까지 있다고 한다. 인구가 적은 이상 서울은 남한 수준으로 경제가 발달해도 못 따라잡아 인천, 대구 급의 도시와 비교하면 적절한데, 호황기에는 2017년 동시기와 비교해서 좋은 아파트는 절대 못사지만 대구 수성구 중위가격 아파트를 살 수는 있었다는 것이다. # # 가장 비싼 아파트는 북한의 소득수준을 생각할때 북한에서 2~4억 원은 정말 엄청난 거액이며, 실제로 명품도 사는 극 부유층이 사는 곳이다. 평양 주변과 비교해도 56배 가량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은 집값이 폭등하고 북한은 폭락하여 다시 넘보기 힘든 격차가 발생했다.

공식 경제비중은 13.3%, 비공식 경제비중은 86.7%로 파악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했다. # 평양도 부패가 만연하며, 잊을 만하면 들이닥쳐 검열을 한다. 돈을 찔러달라는 뜻이다. 반대로 돈만 많으면 평양처럼 살기 좋은 곳도 없다. 돈을 무한대로 찔러줄 수만 있다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봐야 한다. '불법'적인 사업이 많은데, 대포폰으로 단속을 피해야 한다. 권력기관도 부패하여 대포폰도 잘 만들어진다고 한다. #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남한의 불법과는 다르다. 후진국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경제시스템의 효율적 운영을 막는다. 가령 북한 같은 경우에는 사업을 크게 벌이거나, 자본주의적 경영을 하는 사업을 꾸리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규제가 뇌물을 통해서 무력화되어 경제가 그나마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남한에서도 법 지키면 손해라는 인식이 아직 남은 경우가 있지만, 북한이 이것이 매우 심하다. #

그리고 평양의 1인당 GDP가 2016년 기준으로 $2,700 내외로 지방들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의 GDP($29,289)의 1/10 미만이며, 남한의 1986년도 1인당 GDP($2,835)는 커녕[109] 동시기 베트남($2,760)보다도 낮다. # 한마디로 상위 10%만 모아둔 도시가 이미 남한보다 30년 이상 뒤쳐져 있다는 말.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아는 제법 잘 사는 평양의 모습은 평양 내에서도 중심부 일대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숙명여대 곽인옥 교수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평양 중심구역에서조차 한 달에 1,000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15%요, 100달러 이상 버는 사람은 58.3%이며, 100달러 미만 버는 사람도 중심구역 주민의 26.7%라고 한다. # 게다가 북한의 경제성장 실태를 고려하면 평양의 1인당 GDP가 이때보다 확연히 높아졌을 가능성은 전혀 없고 사실상 제자리걸음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110] 다만 북한의 1인당 GDP는 2022년 UN 통계 기준으로 590$[111][112]로 추정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평양의 1인당 GDP는 이의 4배 가량은 되는 만큼 북한 내애서 잘산다는 것은 사실이긴 하다.

경제 수준이 높아 북한 내에서도 자본주의가 가장 고도화된 곳 중 하나라고 한다. 2017년 기준 평양 출신 탈북자의 언급에서는 '책임자 동지'라는 사장이 종업원을 고용하고, 해고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탁구장과 빵 생산, 휴대전화 판매 등 개인사업을 통해 수입이 많을 때는 월 1,500달러(대한민국 돈 170만 원)를 번다고 한다. 일정 금액을 여러 사람들과 투자하여, 그 지분에 따라 수익을 나눠가진다고 한다. 평양 시민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북한이 발전하려면 개혁·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라는데, ‘중국식 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50, 60대 어른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이 때는 주체사상이 약화되었어도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김정은을 지지했다고 하였다. 호텔이나 모텔은 없는데, 커플을 위한 집을 빌려주는 서비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또한, 재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의 주택을 두고 투자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주택을 사두면 재개발 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 평양에서는 고층보다 저층이 선호된다. 승강기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전기 사정 탓에 자주 멎어 고층에 살면 힘들다. 재개발이 유력시되는 곳에 집을 사둔 평양 사람들은 당국이 다음 개발 지역을 선정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

그러나 대북제재 여파로 2019년경부터는 경기 침체가 심하다고 한다. 평양의 집값이 거의 반값이 되었으며, 택시회사가 있는데 사납금[113]을 못내서 자살한 택시기사가 있다는 보도가 있다. # 고소득층이 대북제재의 타격을 입어, 이들이 주로 사용할 수 있었던 택시도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납금이 하루에 80~130달러로, 남한 택시회사도 이 당시 사납금이 하루 110달러(13~14만원 가량)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다. 불황에도 깎아주는 법은 없다고 한다. 2018년만해도 사납금을 납부한 뒤에도 50~100달러(5~11만원)를 택시기사가 가져갈 수 있었다는 언급이 놀라운데, 월 26일 근무를 가정하면 130~270만원 정도를 번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에서는 2018년 기준 서울시 법인택시 평균 총수입이 217만원이라고 한다. # 북한치고는 꽤 고소득이라 그만큼 인기 있던 직업이었다.

다만 북한의 시장경제란 것이 제도적인 장려가 있기 보다는, 주민들이 알아서 자본주의를 터득한 것을 조금씩 허용한 것이라 시장경제 활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보호장치가 부족하다. 이 사례에서도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의 택시회사가 평양의 사업을 독점하려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2020년경부터는 코로나19, 수해, 대북제재의 삼중고로 극심한 불황 상태일 것으로 추산된다. 방역을 한다고 그동안 어느 정도의 허가가 있던 도 간의 이동이 거의 막혔으며, 중국으로부터 수입마저도 전년대비 4~5분의 1 가량으로 줄었으며, 지방도 피해를 입어 평양에서 가져갈 것도 줄었기 때문이다. 2023년 6월 BBC의 보도에 따르면 약간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서까지 아사자가 등장한다는 모양이다. #

또한 아시아프레스 보도에 따르면 평양 인구 200~250만 명 중 중심부에 사는 40~60만 명(평양 인구의 20~30%) 정도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지방도시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산다고 한다. #

5.3.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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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문화

옛날부터 평양은 강계시, 진주시와 더불어 ' 미녀의 고장'으로 유명했다. 이와 관련해 "여자는 서울 말씨에, 평양 인물에, 강원도 살결이라야 한다."[114]라는 속담도 있다. 또한 평양 사람들이 대체로 인심이 좋다는 것을 나막신에 빗대어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이라는 속담도 있다. 함경도 계열 사람들과 달리 거절은 기분 나쁘지 않게 돌려말해야 한다는 완곡어법이 존재한다는 평이 있다. #

북한의 문화 활동은 기본적으로 군중문화고, 또 모든 예술 단체가 국가 아니면 당, 혹은 군 같은 집단에 소속된 공립 단체다. 그리고 이것들의 중심지도 당연히 평양이라서 문화 인프라는 상당히 다양하고 대규모로 갖추어져 있다.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국립민족예술단, 조선인민군협주단, 조선국립교향악단, 영화 및 방송음악단, 은하수관현악단 등 북한 내 1급 예술단들은 모두 평양을 본거지로 하고 있고, 각자 전용 극장이나 콘서트홀을 갖고 있다. 다만 이들 시설도 대부분 북한의 리즈시절이었던 1960~70년대에 지어졌고, 그 뒤로는 고난의 행군으로 노후화가 심해졌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지 2000년대 이래 순차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해 현대적으로 개건하고 있다. 시설들은 건축 문단에서 나열한다.

평양에는 이런 국가 주도의 문화 말고도, 비공식적인 문화도 삶의 일부다. 태영호 같은 인물은 남한 문물의 범람으로 드라마를 북한이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아이들이 서울 말투를 쓴다고 하였다. 기 들릴이 방문한 2003년에 비해 린지 밀러가 방문한 2017~2019년은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간다든가, 사진도 V자를 하며 찍는 등 외부 문물이 좀 더 들어오고 여성이 남편을 게으르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생기는 등의 차이가 있다.

비록 지방보다 검열 시도가 강하여 대놓고 북한 당국이 싫어하는 문화를 즐기지는 않는다지만, 경제력, 도시화로 역설적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북한 사상과 맞지 않는 문화의 중심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평양 주민들의 삶에는 이런 문화가 더 영향력이 클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탈북자들은 흔히 더치페이 같은 건 문화충격이라고 하며, 심히 가부장적인 사회를 묘사한다. 그러나 평양의 중산층 이상으로는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문화가 무너진다고 한다. 연상 연하 커플이 늘어나고, 경제력 있는 여성들이 데이트 비용을 책임지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 남한 드라마나 미국 드라마도 많이 들어와있으며, 권력 기관과의 유착으로 이런 것의 단속이 무력화되는 일이 벌어진다. 단속이 심해지면 잠시 주춤해지다가 음지에서 다시 퍼지는 현상이 이어진다. 시장에서 CD 같은 걸 팔다가, 팔지는 못하니 아는 사람끼리 인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더 숨기기 쉬운 USB, SD카드 같은 것을 공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2020년 기준 수년 전부터 빼빼로 데이를 기념하는 경우가 생겼으며 #, 현재는 지방의 일부 젊은이에게도 퍼진다고 한다. 중국이나 남한의 영향을 받아 경제력이 되는 계층을 중심으로 집에서 결혼식을 하던 풍습이 무너지고, '결혼식전문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음식도 이런 식당에서 해준다고 한다. 평양이 이런 추세가 가장 이르게 나타나고, 이런 문화가 지방에 퍼지는 중이라고 한다. # #

한편 고유 사투리는 평안도 방언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 서북 방언'이라는 구분도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유래가 서울말에 가까운 문화어를 '평양문화어'라고 세뇌시키고 문화어가 아닌 말을 평양말이라고 부르는 것을 대외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평양말'이 서울말과 매우 비슷하다는 주장, 평양말이 서울말과 다르다는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이 도는 것이다. 사투리가 사라져가지만 '기다' 같은 표현은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사항은 서북 방언, 문화어 문서 참조.

5.5. 교육

마찬가지로 서울보다 주요 교육 시설의 집중 현상은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일단 김일성종합대학부터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김형직사범대학, 평양교원대학, 평양외국어대학,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평양철도대학,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무용대학, 평양미술대학 등 분과 별 북한 최고의 대학교들이 몰려 있다. 재학생들도 어지간해서는 평양 시민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다가 지방에서 오는 학생들도 있지만 정말로 드물다. 2010년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이 개교되었다.

대학교 외에도 유치원과 소학교, 중학교 같은 교육 기관도 지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개중에는 김일성훈장이네 3대혁명붉은기훈장이네 하는 것들을 받고 엘리트 학교마냥 취급되는 학교도 있다. 당연히 평양 시민들 중에서도 웬만큼 빽있고 출신 성분 좋은 학생들만 다닌다고 보면 된다.

6.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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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중구역의 모습들.[115]

모든 것의 선전효과를 노리는 독재정권의 특성상 일단 권위주의적으로 큰 것과 특정 형상을 그대로 본따는 형태주의 건축물, 민족성을 강조하는 제관양식 건축을 엄청 좋아한다. 남한으로 유신이 반공을 강조하여 정치적 정당성을 얻으려 했던 자유센터나 독재와 북한을 의식해서 만들었다는 세종문화회관,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건축 양식이 북한에서 아직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현재 북한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전반적으로 평양 행정의 중심지이자 상류층 주거지인 강북지역에 집중되어 있다.[116]

하지만 독재라는 것을 놓고 보기에는 소위 서방의 자본주의 건축에 적대적이고 문화가 완벽히 통제되는 구 공산권 특성상 남한의 유신 독재시설 보다 더하다고 할수 있는데 평양의 거의 모든 공공 건축물들은 당의 주도로 지어졋고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유로운 동선이나 개인의 성향이 담긴 자유로운 형태의 디자인을 보기 힘들다.

2009년경이나 그 이전부터 도심지의 건물에 대한 페인트칠이 진행되었다. 2015년경이면 파스텔 톤의 모습이고, 2018년 이후에는 러시아 아나디리 마냥 파스텔톤 내지 강렬한 색채의 페인트가 도시를 덮은 모습이다. # # 평양 건물이 무채색인 것은 2005년경까지 적용된다. 그래서 평양을 찍은 사진은 건물의 색을 통해 대강의 촬영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 평양만 이런 것은 아니고, 2010년대 후반의 경우 사리원시, 개천시 같은 지방도시도 색을 칠한 상태다. 부실하다기 보다는 노동력을 갈아넣은 흔적을 보여주듯 너무 덕지덕지 칠해서 한쪽은 진하고 한쪽은 연하며, 무엇보다도 채도가 높은 페인트를 사용하여 눈이 아프다. 저런 일에 '위생월간'이라고 하여 주민들에게 통제의 목적을 겸하여 일부러 페인트칠을 포함한 일을[117] 시키기도 한다. 조경수의 돌까지 닦는다는 가혹한 일을 시키며,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더해주는' 목적을 스스로 밝히는 것을 보아 거칠게 말하면 통제에 익숙하도록 하는 세뇌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 다만 권력층이 숨기거나 권력층의 눈길을 벗어난 듯한 '북새상점' 같이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는 일부 건물은 오히려 2010년대 건물이 맞다는 느낌이 든다. # 시장경제식으로, 부자들이 남한처럼 전세와 월세를 놓는 아파트를 짓는 곳이 본평양 쪽에 있으며, 이런 건물은 호황기 때는 잘 팔렸다는데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

김정은 시기에 지은 건물들도 수도 공급도 잘 안되지만 그냥 짓고 본 것이며, 관리비를 걷어 발전기를 돌리거나, # 20층에서조차 그냥 물을 긷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 # 이렇듯 상하수도망 등의 인프라가 부실했기에 김정일 시기에는 평양 중심부에서의 건물 신축이 금지되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6.1. 공공시설


평양 시내에 그나마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6.2. 예술시설

6.3. 체육시설

6.4. 고건축 및 유적

평양 근교에 있는 것들도 포함.

6.5. 식당

7. 행정구역

파일:평양시 행정구역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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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행정구역 전도 평양시 시가지 구역도
(단 이 위의 지도들에는 황해북도로 이관된 승호구역, 상원군, 중화군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신설된 화성구역이 나타나 있지 않다.)
2012년 발간된 북한에서 제작된 평양지도

7.1. 구역[123]

순서의 경우, 화성구역과 최외곽의 삼석, 순안, 은정구역을 제외하고 북한에서 종종 사용되는 순서를 따른다.

7.2.

7.3.[125]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정치적 이유로 평양에 편입한 사례. 즉 월경지이다.
  • 방현동(方峴洞)
    구성시 방현동. 북한의 미사일 관련 시설이 밀집해있는 곳으로[126] 2018년 2월 10일 평양에 편입되었다.

7.4. 행정구역 개편

2010년 하반기에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북한이 매년 펴내는 조선중앙연감의 내용에 의거하면 평양시에 속해있던 강남군, 중화군, 상원군과 승호구역 등 남부 행정구역을 황해북도로 편입시켰다. 이는 기존 면적 대비 약 57% 정도가 줄어든 것. 북한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결국 평양 시민에게 더 이상 특혜를 모두 주지 못하게 되자 평양 면적을 줄여 평양 시민의 인구를 줄이자는 의도로 추측하고 있다. 기사 1 기사 2 다만 지도를 보면 여전히 면적만으로는 평양이 서울보다 큰 상황.

다른 이유도 제기된다. 이 기사를 보자. 이런 방법을 쓴 이유를 보면 평양에서 쫓겨난 4개의 지역이 다소 외국인들의 눈에 거슬릴까봐 그런 게 아닌가 한다. 실제로 그 쪽 지역들을 보면 평양의 그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 이후에도 사동구역, 력포구역 같은 동평양역, 송신역 근처 허름한 주택가를 포함한 구역이 남아 있으며, 이는 구글 어스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이 아니면 그냥 외국인의 출입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보아 주된 이유는 전자가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승호구역이 떨어져나간 것은 의문이 남는다. 승호구역은 평양시 내에서 승호 수용소라는 최악의 정치범수용소를 굴리던 구역이었는데 이 승호구역이 2010년에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다. 승호구역이 평양시에서 떨어져나가면 외지인들의 승호구역 방문이 자유로워지는데, 승호구역에 1994년까지 정치범수용소를 굴려놨기 때문에[127] 이 승호구역을 평양에서 떨어냈다는 것은 북한 일반 주민들한테 승호 수용소에 대한 정보가 퍼질 리스크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1991년에 이미 까발려졌고, 정보통제도 100% 완벽한 것은 아닌데다 암시장과 연계된 돈주라 하는 신흥 중산층을 기반으로 외국의 정보가 역으로 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진짜 진작에 흔적까지 싹싹 다 지워 없앴을 수도 있다. 일단 승호 수용소의 폐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발언한 내용이 있는 시점은 1994년.

2011년경에는 강남군 전역을 다시 평양에 편입시키고, 2011~2012년 사이 또다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평성시의 일부 지역을 강동군에, 중화군의 일부 지역을 력포구역에 추가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 이 이후에도 관할구역이 크게는 안 바뀐 것으로 보이나, 위의 2012년 평양 지도와 2021년 력포구역의 경계가 남쪽이 약간 다른 것을 보면 # 미세한 경계조정이 있을 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이후에도 동·리 급의 행정구역 변동도 잦아 매체에는 평안북도 구성시 방현동을 평양시로 편입시켰다거나,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를 조성한 중구역의 경루동 신설, 화성지구 개발을 위해 룡성구역에서 화성구역을 떼어내 신설했다는 소식 정도만 제대로 나오는 수준이나 실제로는 미래과학자거리 일대에 '미래동'을 신설하는 등의 조치 또한 있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9월에는 남한의 한 커뮤니티에서 일기예보에 군 급의 지명과 더불어 '삼등'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여 부군면 통폐합으로 사라졌던 삼등군을[128] 다시 복군시킨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였다. #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 지역이 혁명사적지가 있는 곳이라며 선전하기도 하고, 강동읍과 워낙 떨어진 곳이라서 일기예보를 따로하는 것이 정확도를 높일 수는 있었다. 삼등면이 있던 지역에서 2023년 11월, "강동군 송가농장 초급당비서 홍성민"의 존재가 언급되는 등 적어도 구 삼등면이 복구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삼등군이 상황에서 복구된다면 송가로동자구는 실질적 월경지, 북쪽 산에 막혀서 읍 소재지로 가려면 가상의 삼등군이나 승호군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7.5. 과거 행정구역

아래 행정구역들은 2010년을 기점으로 황해북도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원래 이 지역들은 평양시에 흡수되기 이전에는 모두 평안남도였던 지역들이다.

8. 남북통일 이후 전망

이하의 낙관론, 비관론 문단에서는 평양시가 통일 후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로서 기능할 수 있느냐에 대해 다룬다. 전체적으로 평양은 역사적으로도 항상 주요 도시 중 하나였고, 여전히 북한의 수도라는 어마어마한 상징성 때문에 낙관적인 관측이 우세하다.

만약 현 대한민국 정부 주도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평양은 이미 직할시로의 역할을 하고 있고, 자체적인 인구, 광역권 규모가 크고, 이북 5도 대표 중심지라는 위상 때문에라도 광역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는 북한의 수도 기능을 했다는 특수성을 감안해 서울과 동급의 특별시로 지정하거나,[129] 세종특별자치시에 이은 제 2의 특별자치시로 지정해 정부 기능의 일부나 북부지역의 행정 사무를 분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북 5도 체계에 기반하여 북한의 행정구역을 짠다면 1914년까지 한 몸이었다가 도농분리 정책으로 분리된 대동군과 재통합되어 도농복합 평양시가 되거나, 평양이 광역시로 승격될 경우 대동군 중 시가지가 형성된 지역은 자치구로 편성되고 나머지 대동군 지역은 평양광역시 산하의 자치군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8.1. 낙관론

평양의 인구가 250만 정도가 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중요한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130] 최소 국내에서 서울, 부산 다음으로 큰 대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독특한 도시인 현 평양 도심은 잘 보존해 좋은 관광 자원이 될 수 있고, 기존 도심의 공업단지나 노후화된 지역 역시 문화재 복원지구가 되거나 새로운 주거, 업무지구로 개발될 가능성도 높고, 교외 지역에도 신도시가 건설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평양은 북한의 주요 기관들이 밀집되어 있는 만큼 북한에서 그나마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면 다른 지역을 개발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적게 들 수 있다.[131]

또한 도시를 개발할 때 대동강 남쪽으로 탁 트인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서울, 부산보다는 개발 여력이 남아있다. 당장 평양 - 남포 구간과 평양 - 사리원 구간에 있는 평야 및 구릉 지대를 이용해서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고, 추가 인프라를 증설할 수 있다.[132] 또한 평양은 수도인 주제에 아직도 농지나 미개척지인 부분도 상당하다. 물론 실제로는 군부대인 지역도 있겠지만, 군부대도 결국 철거된 후에는 개발 대상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이 곳에다가 예전에 강남을 개발했던 방식으로 신도시를 건설해 놓으면 지금에 비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은 산지로 둘러싸인 수도권보다 훨씬 강력한 이점이 되는데, 실제로 교통공학/도시공학 전공자들이 평양 배후지역을 수도권처럼 도시개발을 진행하는 것을 가정하여 평지에 인구 수용이 가능한 권역을 시뮬레이션했더니 최대 300만 명 이상 추가 수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평양은 이미 인구 300만 명 정도의 대도시[133]이기 때문에 대규모의 노동력과 소비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통일 뒤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제일 먼저 진출할 곳들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인구 300만 명 정도의 대도시에 자본이 들어서면 몰락하기는 힘들다. 인구가 많은 곳에 인프라가 우선 배치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일자리 덕에 인구가 몰리고 경제력이 성장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북 5도치고는 그나마 인프라가 우수하다보니 남한 지역 주민들이 북한 지역에 진출할 때 고려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통일 이후에는 북한 전역에 걸친 개발이 요구되며 많은 공무를 처리할 공무원들도 필요한 상황이다. 당연히 북한 주민들만으로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는 것은 무리이고, 이 때문에 좋든 싫든 간에 몇몇 남한인들은 이주가 불가피하다.[134]

또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주어져 새로운 터전을 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이주 희망 지역 1순위인 곳이다. 물론, 북한 주민들은 아예 남한으로 이주하는 것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한에서의 삶이 경제적, 문화적 이유로든 남한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든 힘겨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2순위는 평양이다. 어쨌든 평양은 서울과 부산만은 못하지만 북한에선 발달된 도시다. 더군다나 북한 주민들에게는 평양이 최고라는 인식이 상당하다. 단순히 경우의 수지만, 오히려 예상 외로 북한 주민들이 집값이 비싼 남한의 수도권보다도 평양을 선호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