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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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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러두기3. 현황4. 역사
4.1. 6.25 전쟁 전후4.2. 냉전 시기4.3. 1990년대4.4. 2000년대4.5. 2010년대4.6. 2020년대
5. 과정과 사례6. 위장 탈북7. 탈북을 다룬 매체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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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탈북(, North Korea Defection) 또는 북한 이탈()은 북한 지역 주민 대한민국(남한)이나 제3국으로 도피· 망명· 귀순하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북한의 억압과 악법, 식량부족, 극심한 노동 등을 견디지 못한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행한다. 반의어는 월북이다.[1]

김씨 일가 독재체제인 북한은 전 주민을 철저한 통제와 감시 하에 두고 연좌제까지 적용하기 때문에, 탈북은 본인 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의 인생/목숨을 거는 대단히 위험하고 어려운 행위이다. 왜냐면 북한은 아직도 연좌제를 적용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고 극단적인 처벌 기준 때문에 본인이 탈북에 성공했다해도 북한 측에선 화풀이나 다름없이 가족/친적들이 북한에 아직 남아있으면 그들을 대신 처벌하기 때문이다.

2. 일러두기

이 문서에는 '탈북'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만 작성합니다. 북한이탈주민 문서와 중복되는 내용이 없도록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현황

파일:남북의 창 로고.png
[클로즈업 북한] “남한 방송 보며 동경”…다양해진 탈북 이유
(2023년 5월 27일 방영분)
북한을 탈출한 전체 탈북자 수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2023년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남성 9,542명, 여성 24,536명으로 도합 34,078명이다. # 2024년 1분기 43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입국하며 코로나 이후 간만에 상승 추세다. #

탈북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국경 지역, 그것도 신의주 같은 평안도 일대보다는 그나마 통제를 피할 수 있는 동북쪽 함경도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즉 탈북하고 싶어도 지리적 여건이나 형편이 함경도민들 외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탈북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다. 탈북 시도, 탈북 계획은 물론 탈북 방조까지도 북한에서는 인생을 걸어야 한다.

북한 탈출 후 중국 등지[2]에서 유랑 생활을 오래 하다가 들어온 탈북자들이 많다. 이 역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과 관련된 뉴스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야 한국의 실상을 알고 남한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국경지역이나 한국 드라마를 비밀리에 접할 수 있는 사람들 빼고는 남한에 대한 실상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곧바로 남한으로 직통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와 같이 직통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처음부터 남한까지 오는 것을 계획하고 북한을 탈출한 고위층이거나 이미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브로커를 고용하여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 등이다.

탈북에 실패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처벌은 기본적으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잡힌 경우는 북한에서도 생계형 탈북으로 봐서 교화소[3]에서 길게는 5년 정도 노동교화형[4]을 마치고 풀려나지만 중국 동북 3성과 다른 성[5]의 접경지역, 3국의 국경 지대, 중국의 공항이나 항구, 중국 영해 등에서 잡히게 되면 다른 나라, 특히 대한민국으로 가려는 의도가 명백해서 그 처벌 수위가 기본 10년형으로 늘어난다. 심한 경우에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 가거나 끔찍하게 처형된다. 가족이나 친척들은 평생 감시와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북한은 연좌제가 버젓이 살아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탈북자들은 입을 모아 "철저히 세뇌당한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주민들은 도망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가장 똑똑한 놈은 북한과 중국을 모두 탈출하여 남한으로 가고, 그 다음 똑똑한 놈은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가고 가장 바보 같은 놈은 그대로 북한에 남는다'는 말이 성행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어떤 마을은 주민 절반이 탈북하고, 어떤 지방은 거의 탈북자가 없어 지역별 차이가 크다. 탈북자의 약 76%가 함경북도, 양강도 출신이다.

한국 내에서는 탈북에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숱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완전히 무시하는 주장이다. 한국은 북한 정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살기 좋은 곳이다. 한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역량이 있는 국가라는 바로 그 사실이 탈북자를 한국으로 유인한다. 탈북자에 대한 수용을 까다롭게 한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북한 주민이 탈북하는 이유는 가난과 김씨 일가의 독재로 발생한 체제에 대한 반감 뿐만 아니라 당장의 신변의 위협 때문이다. 한국이 휴전선, 해상에서 눈에 띄는 탈북자를 잡아다가 돌려보내거나, 즉각 사살하는 정책이라도 실행하지 않는 이상 행정부, 국방부는 한국으로 오려는 이들을 막을 능력이 없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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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6.25 전쟁 전후

북한에서 남한으로의 월남은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6.25 전쟁 이전에는 주로 어선을 이용해서 탈북했다. 강원도 주문해변에서는 1948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50여명이 탈북해왔다고 한다. 황해도나 평안도 출신 월남민은 주로 삼팔선 이남에 살짝 걸쳐있는 문제 때문에 육지는 별도 합의로 전체가 소군정 관할이 되었지만 바다는 미군정 관할인 해주시 남쪽 반도지역에서 배를 타고 옹진이나 연백을 거쳐 월남한 경우가 많았다.[6] 이 방법으로 탈북한 사람은 대표적으로 김형석이 있다.

실향민의 범주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6.25 전쟁 이전에 존재했던 38선을 지금의 북-중 국경을 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넘어서 대한민국으로 향한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탈북민들이 북한 함흥 이북의 함경도[7] 출신이 많다면 실향민들은 평양, 함흥 이남 지역 출신들이 많다. 또한 과거 50년대 대약진운동 - 문화대혁명 같은 마오쩌둥 시기의 사건들로 인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도망치는 조선족 청년들이 많았고,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중 국경지대의 조선족들이 생필품을 얻으러 북한에 넘어오던 시절이 있었지만,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개방의 효과가 84년경에는 북중국경에까지 미치면서 처지가 역전되었다.

정부 기록상 최초의 탈북민은 1948년 9월 15일 탈북한 남포시에 살던 23세 김정수이다. #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9월 9일에는 북한 정부가 수립되었으므로 한반도 분단 직후 최초의 공식 탈북민이었기 때문이다.

4.2. 냉전 시기

냉전 시기에는 남한과 북한의 체제 경쟁이 심하여 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주 훌륭한 선전 효과를 가졌기 때문에,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공 태세를 강화하는 데 이용했는데, 이 경우는 보통 탈북이 아니라 귀순[8]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귀순자가 남한에 들어오면 대대적인 환영 행사와 언론 보도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9].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 경제가 급격히 파탄나고 한국이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면서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4.3. 1990년대

현재 가장 널리 통용되는 의미로의 '탈북'이 시작된 것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경제가 본격적으로 붕괴되어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쓰이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북중국경이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단신으로도 도강을 할 수 있었다. 바로 강 맞은편 마을에 살던 조선족들도 강을 넘어 먹을 것을 찾아온 탈북민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줬다. 탈북자들이 식량을 구하러 중국으로 물밀듯이 몰려오자 중국 국경 마을의 민심은 싸늘해졌고 이러한 도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봄부터는 탈북자들에 의해 가축 절도, 강도 행위가 벌어지자 국경 경비가 강화되고 중국에서 탈북자에 대한 반감이 심해졌다. 북한 여성을 꼬드겨 중국 내륙으로 팔아버리는 인신매매도 시작되었다. 1995~2000년까지는 중국도 탈북자들을 사실상 묵인했었다. 그때는 중국도 한창 경제 개발에 신경을 쓸 때라 동북지방에서 벌어지는 탈북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탈북자들도 대부분 굶주림을 참지 못해 도강을 한 생계형 탈북 사례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한국으로 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식량을 얻어 가족에게 주기 위해 북한으로 돌아가거나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았다. 애초에 90년대는 한국으로 입국할 루트가 개척되지도 않았던 시기였다.

1998년까지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은 매년 많아야 수십 명 수준에 그쳤지만 1999년에 최초로 한 해 입국자 수가 100명을 돌파했다.

4.4. 2000년대

본격적으로 탈북이 활성화되던 시기이다.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민들은 중국 동북 3성 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기독교 교회의 도움을 받아 탈북을 시도할 수 있었다. 탈북민이 조선족에게 도움을 청하면 흔히 데리고 가는 곳이 교회였다. 이 시기에 한국인 기독교 선교사와 브로커들에 의해 몽골, 동남아 등 다양한 탈북루트가 개척되었다. 2000년대 초반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탈북자 단속을 벌이면서 중국 대륙에 살던 탈북자들이 북송을 피해 한국으로 매년 1000명 이상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북한에 남아있던 가족들과 연락을 하게 되면서 돈도 보내주게 되고 대북송금과 이를 중개해주는 브로커가 생기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1,142명이 입국했다. 이후 2008년, 2009년 입국자 수가 3,000명 수준까지 육박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중관계에서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문제가 주요 문제가 되었다.

4.5. 2010년대

2010년대 들어서 북한에서 북중국경을 통한 무역과 밀수, 장마당 시장경제의 활성화로 차츰 개방되고 외부로부터 다양한 정보가 유입되면서 자신이 살던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탈북하는 사람도 점차 늘어났다. 우연히 접한 외부의 문물이나 소식통을 통해 해외의 다른 나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북한 체제보다 낫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장마당 활성화와 함께 대북송금액의 증가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먼저 탈북한 사람이 브로커를 고용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는 '연고형 탈북'이 많아졌다. 강나라처럼 북한에서도 중상류층으로 살았지만 보다 자유롭고 나은 삶을 찾아 탈북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심지어 젊은 세대가 단독 탈북하는 '유학형 탈북' 사례도 생기기 시작했다. # 그래도 여전히 생계형 탈북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일부 고위급 탈북자들이 지금은 풍족하더라도 언제 숙청당해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탈북하여 한국으로 입국한 사례가 많아졌다. 특히 그토록 충성해온 체제에 배신감을 느껴서 도망치는 케이스도 여기에 속한다.

2012년, 2013년에는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 수가 1,500명대에서 정체되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중국도 국경 전 지역에 거쳐서 자동화된 감시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북한도 이 수준은 못해도 감시 초소를 늘리고, 국경 경비를 강화했다. 김정은이 집권하자 탈북에 대한 처벌도 강해졌다. 감시 강화로 그 수가 다소 감소하기는 하였으나 브로커가 국경경비대와 결탁해 도강은 계속 이루어졌고 2010년대 내내 연평균 1,000명 이상 꾸준히 한국으로 입국했다.

4.6. 2020년대

2020년부터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하자 이를 빌미로 김정은이 국경과 내륙 모두 대대적인 봉쇄를 시작했으며, 국경 전 지역에 새로운 철책과 담벽을 건설하고 북중국경의 국경경비대를 견제하기 위해 국경에 폭풍군단을 배치했다. 그 결과, 2020년 이후 중국과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탈북이 매우 어려워졌다. 2019년까지는 탈북민 수가 매년 천 명은 넘어갔지만 2020년에는 229명, 2021년에는 상반기에 온 57명조차 2019년까지 국경을 넘었던 사람이라 100명이 안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고 실제로 100명을 넘지 못했다. # #

김여정은 탈북민을 때려잡자는 등의 광기에 가까운 반응도 보였다. 탈북을 시도하다 적발되면 본보기로 총살까지 당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성은 갈렙선교회 목사는 2021년 7월 "탈북도 살려고 하는 것이지, 누가 죽으려고 강을 건너겠냐" 라며 "뇌물이 통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 국경지대는 매우 삼엄하다" 라고 밝혔다.

2023년 8월부터는 함경북도의 북중 국경 일대에 감시카메라를 빼곡하게 설치한 것을 넘어 주요 탈북 경로[10] 지뢰까지 매설하여 탈북을 시도하다가 사상자가 속출하는 판이라고 한다. # 다만 지뢰는 장마철이나 압록강, 두만강이 범람할 경우 중국 쪽으로 지뢰가 유실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가 이로 인해 탈북 시도자는 물론 밀수업자 등 중국측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살상용 무기인  조명탄을 매립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고 한다. 물론 조명탄을 밟은 후 몸에 직격으로 맞아 다치는 사례도 여럿 보고되었다. #

탈북자 국내 입국 통계자료에서 2020년에는 229명, 2021년에는 63명으로 급속히 감소하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쪽에서 디지털 장비까지 동원해 북-중이나 동남아쪽 국경 감시를 강화하고 자국 내 이동에도 여러 제한을 두기 시작하는 등 탈북을 위해 필요한 국제 및 국내 이동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성하 기자에 따르면 한 달 동안 하나원 입소자가 3명 밖에 안될 정도라고 한다. 이 시기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다리며 중국에서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가 종식된 뒤로도 2022년 67명, 2023년 196명으로 코로나 이전 추세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입국에 성공한 탈북자 중 2020년에 국경을 통과한 사람은 1명이 알려져 있고 2021년에 국경을 통과한 사람은 2명이 알려져 있다. 2023년에 국경도 아니고 배로 북방한계선을 넘어 탈북한 사람이 15명으로 알려져 있다. #

5. 과정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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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장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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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탈북을 다룬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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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1] 탈북을 말 그대로 뒤집은 '탈남(脫南)'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속어에 가깝고 사전에 등재된 말은 아니다. '탈남'은 탈북자가 북한이나 제3국으로 이동하는 경우를 가리킬 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용례가 일부 존재한다. # [2] 대부분 동북 3성 지역에서 활동한다. [3] 북한의 교도소 [4] 말이 노동교화형이지 수년간의 열악한 수감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게 대다수라 사형선고와 마찬가지다. [5] 랴오닝성/헤이룽장성과 허베이/내몽골자치구의 경계 지역 [6] 일단 이 지역에서 감시를 피해 배에 오르기만 하면 바다가 미군정 관할이라 경비병이 추격할 수가 없었다. [7] 이북5도위원회 기준. 쉽게 말하자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량강도 자강도가 없는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정구역을 말한다. [8] 평범한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나 고위 관료의 탈북은 여전히 '귀순'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9] 김만철이 귀국 했을 때 그와 그 가족들은 거의 스타급 대우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0] 정확히는 강폭이 좁아 주민들의 탈북 시도가 비교적 잦은 곳들에 상당히 조밀하게 지뢰를 설치했다고 한다. [11] 방송 당시에는 '김진혁'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으며, 그 아이의 일행들도 다 가명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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