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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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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BTN, 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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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보
여행유의 전 지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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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hutan_CIA_WFB_2010_map.png
부탄 지형도 보기

1. 개요2. 국기3. 역사
3.1. 고대~근대사3.2. 현대사
3.2.1. 민주화
4. 정치
4.1. 민주화 이전4.2. 민주화 그 후
4.2.1. 선거제도
5. 자연6. 경제7. 행정구역8. 사회
8.1. 치안
9. 교통10. 외교11. 문화12. 언어13. 스포츠14. 종교15. 관광 정보16. 창작물에서

[clearfix]

1. 개요

인도 중국 사이에 낀 남아시아의 작은 내륙국. 면적 38,816㎢, 인구는 약 81만 명(2018년). 수도 팀부(ཐིམ་ཕུག, Thimphu).

북쪽의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중국령 티베트 자치구와 접해 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부탄(Bhutan)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 티베트의 끝"이란 뜻인 "보따-안따(भोट-अन्त)"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앞의 보따(भोट)는 고대 티베트어 티베트를 가리키던 말인 "보드(བོད་)[12]"이며, 티베트의 끝이라는 이유는 말 그대로 티베트 고원의 남쪽 끝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탄인들 스스로는 용의 나라라는 뜻으로 뚝위(འབྲུག་ཡུལ་ / Druk Yul [ʈuk̚˩.yː˩])라고 부른다.

종교 티베트 불교가 대다수이며 네팔계 주민 힌두교도 믿는다.

1950년대에 티베트와 시킴이 각각 중국과 인도에 병합되면서, 부탄은 유일한 티베트계 독립국가가 되었다. 항공편은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태국, 스리랑카, 아랍에미리트만 있다.

2. 국기

부탄의 국기는 짙은 노란색과 오렌지색이 조합을 이룬 바탕에 동양의 용이 그려진 국기로 용이 발마다 구슬을 잡으며 날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란색은 나라의 영광, 광명을 상징하고 동시에 왕가의 색이기도 하며 오렌지색은 불교를 상징한다. 무늬로 그려진 동양의 용은 부탄의 용맹, 충성, 강인, 단결, 웅비함을 상징하며 발마다 잡고있는 구슬은 나라의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참고로 국기에 그려진 용은 백룡(白龍)이며 부탄이라는 나라 이름도 종카어로 용의 나라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용이라는 자체가 파괴와 광포함으로 인식하지만 동양에서는 용을 신성시하는 것이 다르다. 한국에서도 왕조 시대에 동양의 용 무늬가 그려진 용기(龍旗)와 용고(龍鼓)를 쓰고, 국왕의 안면을 용안(龍顔), 국왕의 복장을 용포(龍袍)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파일:부탄 바탕 + 웨일스 드래곤.svg 파일:웨일스 바탕 + 부탄 용.svg
드래곤 때문에 웨일스와 엮이기도 하는데 두 나라의 국기에 그려진 용이 서로 뒤바뀌기도 한다.

여담으로 청나라의 국기와 굉장히 닮았다.[13]

3. 역사

남아시아의 역사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몰디브
네팔 부탄 티베트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티베트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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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고대~근대사

지진과 화재로 인해 역사적인 사료가 될 문서들이나 역사서들이 대거 소실당해, 19세기 이전의 역사는 개괄적인 파악이 가능한 선에 머무른다. 부탄 현지에선 부탄에 처음 정착한 민족을 샤르초프인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인구조사를 할 때는 같은 한장어족이고 불교가 대다수라는 이유로 보티야인과 샤르초프인을 그냥 같이 묶고 네팔계만 따로 분류할 때도 있다. 그러나 보티야인들과 같은 티베트 계열이 중국어파와 분리된 것은 이미 선사시대에 있었던 일인 반면 샤르초프인들은 기원전 2세기에야 분리되었기 때문에[14] 그 사이 많은 차이가 생긴 데다가, 인도의 영향으로 아삼어를 모국어로 쓰는 샤르초프인들도 있기 때문에 보통은 샤르초프인도 따로 집계하는 일이 더 많다. 그런데 티베트 쪽의 역사 기록을 보면 고대로부터 부탄 땅을 로몬(Lhomon, 남쪽의 어두움)이나 몬율(Monyul, 어둠의 땅)이라 부른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샤르초프인들이 정착하기 전 이미 벵골인들이 선주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방향으로 딱히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7세기에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감포가 부탄에 2개의 사찰을 건립하였으며, 9세기경 인도의 승려 파드마삼바바가 부탄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이러한 티베트인들의 남하는 꾸준히 이어졌다. 이외에도 구전되어 오는 전설이나 야사들에 따르면, 몽골에서 온 군인들이 부탄을 침략하면서 당시 부탄을 아끼던 공주가 항복을 거부하다 죽으면서 늪지 거머리가 되어 세계최강의 몽골군의 침략을 막아주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다. 전설의 진실여부를 떠나 외부 세계 최강대국 침략자들도 이 산악지대를 공격해도 이로부터 별달리 얻을 이득이 없었기에 부탄의 땅은 늘 평화를 유지했다고 한다. 때문에 옛날 몽골 제국이 침략전쟁을 벌일 때와 청나라 만주족이 티베트를 침공하였을 때 다른 유목민족들이 티베트를 정복하자 일부 티베트인들이 부탄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인도나 중국의 기록들에는 15~16세기에는 왕과 승왕(僧王)이 따로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인 권력을 누렸으며, 지방 영주들이 자치적으로 산악령에서 권력을 가지는 봉건제와 같은 정치적 구조를 가졌다고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1627년에 포르투갈인 예수회 선교사 이스테방 카셀라(Estêvão Cacella)와 주앙 카브랄(João Cabral)이 부탄을 지배하던 까규빠[15]의 승려이자 영주인 응아왕 남걀(Ngawang Namgyal)을 알현하고 망원경을 바쳤으며, 티베트의 침공에 대비하는 차원의 군사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응와왕 남걀은 이를 거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저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가톨릭 개종 및 가톨릭 선교 자유화와 같은 종교적인 조건을 내세웠으니 거절했던 것. 그리고 남걀은 이런 지원 없이도 티베트 침공을 막아냈다.

17세기 경, 티베트의 5대 달라이 라마 아왕롭상갸초는 전 티베트영역과 그 영향력하에 있는 작은 왕국들을 통합하려는 목적으로 1629년, 1631년, 1639년, 1647년에 걸쳐 무려 4차례나 부탄을 공격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악이 받친 티베트는 몽골의 지원을 받아 1714년에 또다시 부탄을 공격했으나, 또 실패하였다. 지금도 부탄에는 티베트와 싸우던 요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로써 결과적으로 동족인 티베트와 부탄은 완전히 갈라지고 말았다. 물론 부탄 또한 같은 티베트계 국가인 옆동네 시킴을 몇 차례 침공한 전력이 있으니 완전한 피해자는 아닌 셈이다. 게다가 외세인 영국군과 함께 동족인 티베트로 쳐들어간 적까지 있다. 사실 다른 티베트계 왕국인 무스탕 왕국 역시 네팔의 편에서 티베트와 싸우다가 네팔로 편입되기도 하는 등의 일도 있었다.

1864년부터 일어난 앵글로 부탄 전쟁에서 패배하고 영국에 일부 영토를 할양한다.

1903년 티베트에 같이 침입한다.

1907년에 동부지방 영주이던 우겐 왕축 절대군주제를 선언하며 왕축 왕조가 세워졌다. 이후 친영정책을 펴며 영국의 지원을 받아 빠르게 지방영주세력이 차지하던 영토를 통합해나가며 현재의 부탄 영역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영국이 부탄의 수장격이었던 우겐 왕축을 국왕으로 정식공포하면서 비로소 세계사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대신 1910년 외교권을 영국에 양도하며 보호령이 된다.

3.2. 현대사

1949년 8월 8일에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사실 부탄의 영토 안에는 별다른 자원이 없기 때문에 인도가 겪은 것과는 달리 영국의 착취가 없었고, 따라서 반영 감정은 그리 없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일부 영국인들이 각박한 사회가 싫어서 조용하게 살고자 찾아오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국이 부탄을 식민지화한 것은 1800년대 말에 서방의 나라들이 아시아의 시장을 놓고 경쟁하던 때, 부탄의 지형적인 요건이 영국 육군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곳의 험준한 산악 지형은 공격하기는 어렵지만 지키기는 쉽다.

종교적으로도 같고, 민족도 티베트계들이 대다수인 부탄이었기에 이웃 티베트를 큰형님 나라로 우대하였으나, 중국군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중국에게 정복당하면서 시킴이나 같은 라다크 지방과 남티베트 일대의 다른 티베트계 작은 왕국들이 혼란에 빠진 끝에 친인도측에서 집권하였다가 인도를 불러들여 인도에게 합병[16]된 것과 달리, 부탄은 독립국을 유지하였다. 더하여 이전 영국의 속국 시절 때부터 인도에게 외교권을 넘겨줄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지만, 부탄은 청나라의 식민지였다가 이제는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살아남고자 더더욱 친인도 성향이 되었다.

물론 부탄이 인도를 완전히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 방면 역시 최소한의 경계는 하고 있다. # 다만 중국의 위협이 대체로 인도의 경제적 종속보다 훨씬 위험하므로 대체로는 친인도 성향을 따르는 것이다.

3.2.1. 민주화

부탄은 예로부터 절대왕권을 추구해 왔지만 왕축 왕조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일 뿐 아니라, 교육 수준이 높다고 보기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국민이 많은 편이다. 허나 그런 지식인들도 일단은 20세기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이는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 자신부터 경제보다는 행복지수에 중점을 두고 이른바 행복 정책을 펼쳤기 때문으로, 당시 부탄 사람들은 왕정에 큰 불만이 없었고[17] 의회 역시 민주주의로의 파격적인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러다 2002년 부탄의 언론 자유 지수가 170위권에서 발전함에 따라 국왕이 몸소 적극적으로 나서서 민주주의를 주창하였고, 결국 국민들은 마지못해(?) 국왕을 좇아 민주화를 받아들이는 세계사적으로도 특이한 케이스가 성립되었다. 최소한 자신의 권력을 일정 수준 스스로 제한하려 했다는 점에선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 당장 그 알량한 권력 못 내려와서 개판치는 독재자들 꼬라지를 보면..[18]

이에 대해 굳이 정치 공학적으로 보자면, 부탄은 티베트계 주민들이 많은 나라인데, 그런 티베트 지역을 병합한 중국에 당연히 불만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나라다. 때문에 현실적으로 인도에 기대는 부분이 많은데, 인도는 민주주의 공화국이고 중국은 일당독재국이니 명분, 현실 모두 다 입헌군주제라도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키는게 끼인 국가의 생존을 위해서도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2008년 3월 24일 총선을 실시해 하원을 구성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화하였지만, 국민들의 왕실에 대한 지지는 여전해서 왕의 삼촌이 이끄는 평화번영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그렇다고 실질적 일당독재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 5년 뒤(2013년 7월 13일 선거) 야당이었던 인민민주당이 반대로 압승을 거둠[19]으로써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이후에도 부탄통합당(DNT) 등 신생정당들이 계속 생겨나고 집권도 성공하는 등 정권교체가 제법 활빌히 이뤄지고 있다.

물론 부탄에도 1990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적은 있었다. 이는 네팔계(系) 탄압과 민주주의를 원하던 젊은 층의 욕구와 관련이 있으며, 당시 인도로 망명한 민주화 인사도 있었다. 또한 당시 네팔의 마오주의 반군(현 여당)의 영향으로 부탄에서도 민주화와 왕정 철폐를 요구하는 인민전쟁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여기에는 다소 복잡한 뒷이야기가 있다. 노동력으로서 유입된 네팔계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버린 시킴 왕국이 1975년 인도에 합병되었고, 1990년 네팔의 왕권이 약화되고 선거제가 도입되었을 당시 네팔계 부탄인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다방면으로 넓히기 위하여 부탄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였다. 이에 앞수레가 전복되면 뒷수레가 경계한다고 제2의 시킴이 될 것을 우려한 부탄 정부가 네팔계 사람들이 부탄에서 강제로 축출하였고, 거기에 불만을 품은 네팔계 사람들은 인도의 무력을 빌려 부탄에서 네팔계와 힌두교의 입지를 넓히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인도로서는 여러 면에서 친(親)인도파인 부탄을 뒤엎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므로, 오히려 부탄에게 네팔계 사람들의 행보를 일러 주고 좋을 대로 처리하라며 좌시하였다. 결국 네팔계 사람들을 더 많이 축출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러한 흐름의 여파로 민주화를 주장하던 다른 부탄인들까지도 네팔계로 몰리는 곤경에 처하기도 하였다.

어찌됐든 행복지수에 근거한 정책을 펼치다 민주주의까지 이룬 부탄 국왕의 전통은 그의 아들이자 유학파인 '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에까지 이어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 역시 나름 선정을 펼치는 중이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이고 부탄 입헌군주제의 첫 번째 왕이며, 미남이다.(...) 덕분에 전 세계 독신 지도자 중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 감 5명 중 한 명으로 뽑힌 적도 있을 정도였으나 현재는 후술되어있듯 결혼했다. 그는 오지에 사는 국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자 직접 배낭을 멘 채 걸어서 찾아가기도 한다.

지식채널e에서 자세히 다뤘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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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0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10살 연하의 1990년생 일반인인 제선 페마와 결혼을 발표했다. 제선 페마 또한 영국 리젠트 대학에 재학한 유학파로, 결혼식은 2011년 10월 13일 검소하게 치러졌다.

4. 정치

남아시아 정치
파일:네팔 국기.svg 파일:몰디브 국기.svg 파일:방글라데시 국기.svg 파일:부탄 국기.svg
네팔 몰디브 방글라데시 부탄
파일:스리랑카 국기.svg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파일:인도 국기.svg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

부탄의 주요 정당
<rowcolor=#191919> 여당 야당
인민민주당
30석 / 47석
부탄텐드렐당
17석 / 47석
<rowcolor=#191919> 주요 원외 정당
부탄통합당 부탄 Kuen-Nyam당
평화번영당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30px><tablebordercolor=#fff> 파일:부탄 하원 로고.png 부탄 국민의회
원내 구성
}}}
여당
인민민주당
30석
야당
부탄텐드렐당
17석
재적
47석

4.1. 민주화 이전

부탄의 정치체계는 나라가 건국될 때부터 이 모든 것을 다스리고 결정하던 전제군주제였고, 의회는 그저 왕에게 약간의 충고나 조언을 하고, 자료 정도를 조사하고 실행하던 역할이었다.

그러나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계 왕축과 그 뒤를 이은 5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은 자신들의 행복 정치도 결국 후대에 폭군이 나타나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여, 자신들이 가지는 왕으로서의 권력을 포기하고, 전제군주제였던 부탄을 입헌군주제로 바꾸기로 결심한다.[20] 그들은 먼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알렸고, 의회에도 이러한 안건을 통보했다. 이에 당시 상당수 부탄 사람들은 정치 잘하는 국왕이 계속 정치 해달라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반대하는[21] 세계사적으로도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어쨌든 상당수 여론과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 지그메 싱계 왕축 국왕은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민주화를 외쳤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유학파 출신이기도 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의회의 반대를 일축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왕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인구 77만 명의 부탄에서 2008년 7월 18일부로 입헌군주제 민주정이 실행되게 된다.[22]

하지만 여전히 왕국으로 남았기 때문에 부탄 공화국 성립과 완전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게나마 여전히 있는데, 네팔어 사용 인구를 중심으로 한 부탄 공산당[23]과 당군인 부탄 맹호군은 2008년 인민전쟁을 선언하는 등 부탄 정부 입장에선 반란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 허나 큰 호응이 없는지 2010년대 이래로는 거의 활동이 없다.

4.2. 민주화 그 후

부탄은 헌법을 만들고 지방 정부를 설치하며[24] 상원 하원을 설립하고 입법부 사법부 민주주의에 필요한 기관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총 47명의 하원의원이 선출되게 되는데, 2008년 치러진 하원 선거에서는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의 친인척(삼촌)이 이끄는 평화번영당이 압승을 했으나, 2013년 치러진 하원 선거에서는 야당이었던 인민민주당이 47석 중 32석을 차지하여 역전하였다. 이후 2018년 선거에선 다시 야당인 부탄연합당이 30석을 차지해 승리하면서 부탄의 총리는 부탄연합당의 총수인 로타이 체링이 되었다. 야당은 왕당파인 DPT다. 그리고 2023년 - 2024년 선거에서 인민민주당이 30석을 차지해 다시 여당이 되었다. 야당은 중도정당인 부탄텐드렐당(BTP)이다.

한편 상원은 총 20명을 선출하고, 5명은 정부에서 임명하는데, 특이하게도 상원 의원 25명은 어떤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부탄의 상원에서는, 화폐와 예산에 대한 일을 제외한 다른 부탄의 법률을 작성하고 검토한다고 한다. 상원 선거는 2007년 12월 31일부터 2008년 1월 29일에 걸쳐서 한번[25], 2013년 4월 24일에 한 번이 더 치러졌다.

민주주의가 들어오면 왕권은 자연스럽게 약해지게 되는데, 부탄도 예외는 아니었다. 헌법을 통해 왕의 재위에 관련된 몇 가지의 법률이 생겨났는데, 아래는 그중의 일부다.
부탄을 다스리는 왕축 왕조의 국왕은 다음의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설립하나 국왕은 그대로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왕의 혈통은 이어진다.
그러나 왕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왕은 65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부탄의 모든 국민에게 뜻을 물어 과반수면 즉위를 할 수 있다.[26]
또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에는 의회가 왕의 폐위 투표를 개최할 수 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왕의 폐위에 찬성하면 왕은 즉시 폐위된다.
이런 규정들은 왕권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만 애초에 국왕이 앞장서서 왕권 약화를 의도한 것이기에 이 법률은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국왕의 솔선수범한 개혁, 검소한 생활, 국토 구석구석까지 방문하여 국민들의 의견들을 들으려는 행보, 평민과의 결혼에 많은 국민들이 감동하여 현재도 부탄에선 왕가의 인기와 권위가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국민들이 국왕이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축제를 열고 환영했을 정도였다.

물론 입헌군주제라도 결국엔 왕이 있다는 한계상 다수 의원이 왕당파들이라 왕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자발적이든 타발적이든 여행객들에게도 불교와 왕가에 대한 쓸데없을 정도의 찬사를 실제로 하는 편이라고 한다. # 또 상기되어있듯 티베트계, 불교가 주류인 부탄에서 소수 민족이나 종교는 알게 모르게 차별받는 점도 있어서인지, 민주화 세력 내부에서도 극단적인 경우는 게릴라전도 종종 하는 모양.

2020년 12월 10일, 부탄은 소도미법을 폐지해 동성애( 성소수자 활동)를 합법화했다. #

4.2.1. 선거제도

여러 당 중에 1, 2위를 뽑는 1차 투표를 하고, 그 두 당에게 의석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결정하는 2차 투표를 한다. 2차 투표에서 얻은 표 수를 비례하여 의석이 주어진다. 제도적으로 양당제를 강제하는 특이한 제도인데, 군소 정당 난립의 방지를 통한 정국 안정과 야당의 정부(여당) 견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함으로 보인다.

이런 제도 속에서 기어이 2018년 9월, 집권당인 인민민주당(PDP)이 1차 투표에서 득표율 3위를 기록하면서 순식간에 전체 ⅔ 이상의 거대여당에서 0석의 원외정당으로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2024년 부탄 총선 예비선거에서 인민민주당(PDP)이 1등을 차지하여 원내 진입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참고로 여당인 부탄통합당(DNT)은 4위에 그쳤다.

5. 자연

정부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보장해야 한다. 나라의 천연 자원을 보존하고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부탄 전체 토지의 최소 60%를 산림으로 항상 유지한다.
부탄 헌법 제5조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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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지형도
히말라야로부터 기인한 여러 산맥들에 위치한 지형상 남쪽은 해발고도가 낮은 반면에, 북쪽으로 갈수록 고산들이 많고 고도가 높아진다. 북쪽 끝에 히말라야산맥이 있어서 남쪽은 아열대~ 열대기후, 중부지방의 2,000m~3,000m 지역은 온대기후, 북쪽은 고산기후 또는 냉대기후에 속한다. 수도인 팀푸는 약 2,300m에 위치한 도시로 온대기후에 속한다.[27] 최고봉은 강카르 푼섬이다. 높이는 7,570m다. 이 때문에 부탄인에게 한국의 산을 산이라고 소개하면 "저런 건 부탄에서는 언덕이라고 하는 거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남쪽의 아주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국토 전체가 산지로 덮혀 있으며 실제로 국토의 98.8%가 산지로 세계에서 가장 산지가 많은 나라이다.

부탄에서는 자연을 보존하고 이를 후대에 물려준다는 확고한 원칙 때문인지 헌법에도 삼림의 비율이 60% 이하로 떨어지면 안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부탄 국민은 나무를 벨 때는 반드시 부탄 산림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무거운 처벌이 가해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부탄인들이 얼마나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울창한 삼림 덕분에 부탄은 국토 면적의 약 95%가 삼림인 수리남과 함께 전 세계에서 유이한 마이너스 탄소 배출량 국가이다.

6.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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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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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는 광역행정구역에 해당하는 종카(Dzongkhag)가 20개가 있고, 종카그는 또다시 기초행정구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게워그(Gewog)와 특별 행정 구역인 둥카그(Dungkhag)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로 보면, (좀 많이 크긴 하지만) 군(郡)에 읍, 면을 기초단체로 보고 특별행정구역은 구(區)로 갈음하면 될 듯.

8. 사회

2000년대 한때 세계에서 국민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국민의 행복지수가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오보였다고 한다. 조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2010년대 후반에는 세계 95위로 54위를 기록한 한국보다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 물론 이에 대해선 오히려 20세기까진 철저한 고립 사회로 덕분에 내부적으론 꽤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던 부탄이 21세기 들어 개방 사회가 되면서, 외부 정보를 접할 요인들이 늘어나니 역설적으로 비교질을 하면서 행복도가 떨어졌다는 주장도 있고, 애초에 행복도 자체가 개인의 주관적인 것인데 그걸 수치화한다는거 자체가 엉터리라는 의견도 있다.[28]

한편으론 부탄 정부가 20세기 국왕 주도로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은 맞으나, 이것이 한국에서 국내총생산(GDP, Gross Domestic Product) 위주의 성장지상주의가 결과적으로 행복한 사회는 못 만들었다는 자성론 속에서 이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이들의 눈에 띄면서 대안모델의 하나로 제시되어[29] 과대 평가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20세기 부탄은 북한 엔베르 호자 알바니아,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 적도 기니도 능가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다.[30] 부탄으로 향하는 도로가 처음으로 건설된 것은 1961년, 라디오 방송 시작은 1973년, 외국인의 공식 방문을 처음으로 허용한 것은 1974년,[31] 항공사 개설은 1981년, 첫 영화 제작은 1989년, 텔레비전& 인터넷 도입은 1999년, 휴대전화 서비스 시작은 2003년이었다.

부탄의 사망률은 안정된 사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다. 물론 부탄 정부가 개선하려고 노력하면서 10여 년간 계속 감소해 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높다. 2020년 기준 1세 이하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7.6명, 5세 이하 유아 사망률은 28명으로 만성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보다도 높다는 말도 있다.[32] 특히 부탄 국민의 30%가 65세가 되기 이전 사망하고 국민 기대 수명도 69.8세에 불과하다고 한다.[33] 의료 인프라도 인구 1,000명 당 병상도 고작 1.8개밖에 없을 정도로 부실하다. 통제력이 강한 중앙 정부에서 복지를 거의 무상 제공하려고 노력함에도 국민 수명이 대단히 짧다는 것은 복지가 부실하며 복지 혜택이 도시는 물론 농촌까지 골고루 미치지 않고 아직까지 국가 전토에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빨리 죽고 간섭 받을 여건 자체가 안되어서 행복했던 것일지도

현재 부탄 내부에선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커져가는 것이 제일 큰 문제다. 급격한 경제 성장은 필연적으로 빈부/도농 격차를 심화시킨다. 대부분의 사업이 수도인 팀푸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미 팀푸의 월세는 부탄의 일반 노동자 월급보다 더 비싼 수준으로 올라갔으며 고급 주택의 가격은 한화로 억대를 호가한다. 특히 팀푸에는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클럽에서 사교를 즐기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부유층이 존재하는 반면, 농촌에는 국가가 무상으로 교육을 지원함에도 자식들을 다 학교로 못 보내며 끼니 걱정을 하는 가난한 가정이 흔하다. 교육시킬 돈이 없어 몇 명은 일을 시켜야 생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렇게 학교에 보낸 아이들조차 시설이 낙후된 학교에서 학용품 부족으로 고생하면서 힘겹게 공부한다. 게다가 이렇게 의무 교육을 수료하고 대학을 나온다 해도 취업하기는 쉽지 않으며 청년실업도 높다. 그러다보니 도시에서의 행복지수는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경제발전의 혜택이 부실한 농촌지역에서의 행복지수는 크게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소득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까지도 잘사는 나라는 아니다 보니 국가 예산이 별로 없고, 인구 규모도 적어 경제의 규모 자체도 크지 않다보니 모든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다. 일례로 언제 기준인진 알 수 없으나, 부탄 전국에 의사는 고작 180여 명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이 의사들조차 수도인 팀푸에 몰려 있어서 지방으로 내려가면 약방 주인 한 명이 주민 1만 명을 케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나마 군부대가 있는 곳은 군의관이 환자들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떨어지고, 의료 장비가 열악하여 난치병에 걸리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은 환자는 인도 병원으로 보내는 것 말고는 사실상 답이 없다.[34] 특히 부탄은 부족한 의료 인프라를 방증하듯 아직까지 국민 평균 수명은 60대에 머물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가 추구하는 복지 정책만 훌륭하지 이를 뒷받침할 자본과 기반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이 때문에 부탄의 행정을 맡은 사람들은 현재의 부탄이 행복하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다. # 과한 사치도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지만, 성직자 수준의 정신력이 강한 자가 아니라면 돈과 물자가 없는 상태에서 키울 수 있는 행복 역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역 격차가 커서, 2021년 기준으로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높은 수도 팀푸 지역은 0.832[35]를 기록한 것과 달리[36] 가장 낮은 가사 지역은 0.542[37]만 기록했다. 차이가 0.29인 것.[38] 부탄보다 지역격차가 막장스러운 국가는 중국[39], 모리타니, 에티오피아[40], 나이지리아, 부르키나파소 정도밖에 없다. #

한편,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기엔 아직까지 극복해야 될 문제점이 있다. 교육 수준도 더 높여야 되고, 인구 대비 넓은 영토와 척박한 험지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진 사람들 동시 투표가 힘들다고 한다. 부탄 정부가 헬기로 투표용지를 전달하려 했으나 실패한 지역도 있다. 물론 시도라도 한건 잘한거지만. 전자 투표도 아직은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 게다가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왕이 주도했다보니 대중적 인식이 확 바뀐건 아니라 알고 보면 각종 차별과 검열, 탄압이 상당히 심하다는 의견도 있다. #, #, # 물론 상기된 동성애 합법화 등처럼 일부는 조금씩 개선되는 추세긴 하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이나 불교 유물 도난 및 파손 사건도 종종 벌어지는 모양. 여행객을 제한적으로 받는 나라 특성상 현지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도 있다.

부탄은 2012년에 세계 자살률 22위를 기록했다. # 1위는 알다시피.. 부탄이 아직 발전 중이고, 빈부격차가 여타 개발도상국에 비해 낮으며, 극빈층이 드물다는 점, 날씨가 특별히 우울한 것도 아니고[41], 국가에서 행복에 크게 신경 쓰는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 자살률은 많이 높다. 오히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혼란스러운 남미 국가들이 자살률은 더 낮다. 정책적으로 노력함에도 자살 건수가 조금씩 늘고 있고, 자살자 중 다수가 젊은이라 정부에서 고민이 늘고 있다.

그래도 부패인식지수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으로, 2022년 기준 미국보다도 한 순위 낮고 대한민국보다 여섯 순위 높은 세계 25위다. 국민소득이 크게 늘어나는 것에 비해서 사회 청렴도는 잘 유지되고 있다.

2020년대 기준 부탄 역시 한국과 상당히 유사한 사회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데, 청년실업, 빈부격차, 불법루트로 들어온 마약 중독 문제로 골치를 썩는 중이라고 한다. 특히 10-20대 사이에서 마약 복용이 늘어나며 처벌 강화와 동시에 왕실 주관으로 마약퇴치 캠페인, 마약 중독자 재활 프로그램 운영을 벌이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모양. 부탄이 발전하면서 고학력자도 늘어났지만, 문제는 현재 부탄의 경제규모에 한계가 있어서 이들을 전부 취업시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졸업했는데 일자리가 없거나, 학교랑 사회생활에 찌들어버린 청년들이 현실에 절망하여 자살하거나 마약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이 마약 복용 문제가 미성년자들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 이러한 문제로 인도 및 여러 국가로 취업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청년들도 많다고 한다.

평화로운 이미지와 치안에 비해 높은 자살률, 문화 검열 등 보이지 않는 사회 문제가 창궐하는 현상은 관료적이고 안정된 사회에서 제법 보이는 공통점이다. 어느 사회를 가든 인간이 모인 곳인 이상 모두 폭력적인 면모가 있고, 그것을 범죄나 일탈행위 등을 통해 외부로 발산하지 않으면 문제가 내부에서 곪아 소극적인 방식으로 터진다. 사회가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관료적인 동아시아와 동유럽 역시 비슷한 사회문제가 있다.[42]

8.1. 치안

일단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부탄의 범죄는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상술되었다시피 청소년 범죄와 마약사용이 범죄율 증가의 큰 폭을 차지했다.

그래도 미 국무부 여행자문국의 2019년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기준으로 부탄의 치안단계는 1등급이다. 즉, 한국, 일본과 같은 등급이며 매우 치안이 안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범죄 발생의 95%가 수도 팀푸에 집중되어 있으며 살인, 강도, 강간 같은 강력범죄의 발생율은 매우 적다.

인구 대비 수감된 범죄자가 적긴 하지만 2014년 부탄 내 수감자는 1119명이었고, 그중 93.2%가 부탄인이다. # 가장 많은 범죄는 폭력, 절도, 강도 등이고, 성폭행이나 살인 등의 흉악범죄가 상대적으로 적다. 인구가 집중된 팀푸에서 반 이상의 범죄가 일어난다. 현재 부탄에서 걱정하는 범죄는 청년 사이에 만연한 불법 약물 남용 문제다.

물론 근처의 인도 네팔에 비하면 범죄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데다,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2014년→ 2015년 한 해 동안 범죄 건수가 13.6% 감소했다.

9. 교통

10.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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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은 55개 유엔 회원국, 그리고 유럽연합과 직접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가장 최근에 수교한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2024년 9월 18일에 수교하였다.

이상하게 수교국이 적은 것을 알 수 있는데, 더욱이 놀랍게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전체와 수교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의 고립주의적 외교 정책에 더하여 1971년 유엔 가입 전까지 사실상 인도의 보호국처럼 돌아가던 역사적 배경이 있다.

물론 직접 외교 관계가 없어도 미국, 영국, 독일 등 명예영사관 등을 통해 비공식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부탄과 개별적으로 직접 수교하지 않은 유럽 국가라도 유럽연합 회원국이면 유럽연합을 통해 간접적 관계가 유지되고 교류가 이루어진다. 인도를 통하여 외교가 이뤄지면서 인도와 외교권을 가진 나라들은 거의 간접적으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부탄인이 국외로 올 일은 거의 없고 소수의 관광객이 부탄을 방문해도 높은 치안 덕분에 크나큰 문제도 없기에 국외 대사관들은 굉장히 한가롭게 일한다는 말이 있다.

11. 문화

부탄에 새로 건축되는 건축물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건축되어야 한다는 명문화된 헌법이 있다. 겉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재료부터 인테리어, 구조까지 모두 전통에 따라서 지어져야 한다. 때문에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들도 사실 알고 보면 지어진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한 건축물 층수 제한까지 둬가지고 6층 이상 높이를 못 넘게 되어있다.

부탄에서는 (한국의 )이 나라와 국민을 잇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며, 종을 중심으로 나라 업무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를 국법으로 보장하지만,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수다 보니 사실상 국교 비슷한 분위기도 있다. 때문에 이슬람이나 힌두교 등 소수종교는 차별받는다는 인식도 있는 모양.

부탄은 세계 유일의 금연 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서나 일탈자는 있기 마련, 한국이나 일본에 유학 와서 담배 잘만 피우는 부탄 사람들도 있다. 본국에 돌아가면 어쩔 것이냐고 물어보면 암시장을 통해 담배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부탄의 길가와 들판에는 대마가 수북이 자생한다고 한다.[43] 그러나 채취는 불법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감옥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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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전통의상 고(Gho, 남성용)와 키라(Kira, 여성용)

역사와 전통문화를 무척 사랑하는 부탄인지라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예전에는 전통의상을 입지 않으면 경찰이 잡아서 벌금을 매길 정도로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했다. 요즘은 복장 자율화 시대라 현대식 옷을 입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학생 및 공무원은 학교에 갈 때나 출근할 때 의무적으로 입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부탄은 전세계적으로 드물게 남자 치마 검은색 스타킹을 착용하게 되는 진풍경을 맛볼 수 있다. 스타킹이나 치마 등을 착용하는 분위기를 가진 이유는 전통 문화, 독특한 경우 등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네이버 지식백과의 EBS 세계테마기행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남성의 복장 규제가 매우 심화되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전통 의상을 지켜내기 위함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부탄인의 국제결혼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인도인이 일하러 들어오고 이들이 부탄인과 결혼하는 경우가 생기는지라 인도와의 동화를 우려한 정부가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부터 다시 국제결혼을 허가하고 국제결혼에 관한 가이드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인터뷰에 통과해야만 혼인신고가 되는데 인터뷰가 상당히 어려워 2016년 1년에 단 한차례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신청자의 3분의 1 정도만 통과되었다. 부탄의 문화, 역사, 법 등 다양한 질문을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과하고 혼인신고가 되면 부탄에서 살 수 있는 영주권이 주어지므로 이렇게 어렵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아직은 외국인과의 결혼을 별로 탐탁지 않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한몫하고 있다.

부탄이 고추를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실제로 거의 모든 식사에 고추가 들어간다고 한다.[44] 대표적인 요리 '에마다시'는 말린 고기[45], 치즈, 고추 등을 버무린 반찬이다. 부탄인들은 이를 주식과 같이 먹는다. 심지어 이 반찬을 삼시세끼 먹는 사람도 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관광객의 경우 목과 혀가 다소 얼얼하고 아플 수 있다.

남근 숭배 사상이 있어서 건물 벽면에 남근 그림을 그려넣거나 조각상을 만들어서 팔기도 한다. 나름 종교적인 상징이 있다. 기사 관련 글

인도 문화권에 있는 국가답게 부탄에서도 자국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시점에서 전국에 약 8개 정도 되는 영화관이 있고, 1년에 20개 정도의 부탄 영화가 나오는데, 영화관에서는 부탄 자국 영화만 틀고 있어서, 상영관 잡기도 쉽다고 한다. '크로스로드'를 제작한 감독인 카르마의 증언에 따르면, 투자사 없이 감독이 촬영, 편집, 음향까지 다 해서 한화로 4200만 원 정도 제작진의 자비를 들여 '크로스로드'를 제작했고, 부탄 인구 80만에 영화 관람료는 한화로 3000원 정도밖에 안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이라고 한다. #

티베트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세는나이를 사용한다. 유사한 국가로는 일상생활에서 연 나이를 사용하는 북한이 있다.

12.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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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언어 지도.

공용어로 종카어를 제정했지만 오래 전부터 다양한 토착 언어가 존재했으며, 위의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에 따라 티베트 인도, 네팔에서 유입된 언어들도 쓰이고 있다. 현재 부탄에서 사용 중인 언어의 종류는 무려 53종류이며, 학교에서는 종카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아이들에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크게 북부 지역의 중국티베트계 언어와 남부의 인도계 언어(네팔어)로 나눌 수 있다. 네팔어는 부탄 국토의 핵심부인 산악지대가 끝나고 평야 지형이 시작되는 남부 국경지대에서만 쓰이지만, 이 지역의 인구가 엄청나기 때문에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역사 문단에서 언급했듯 부탄에서는 네팔계 인구가 너무 불어나 국내의 다수가 되는 것을 우려하여 상당수를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고 탄압한 적이 있다.

1980년대까지는 남부 지방에서 학교에서 네팔어로도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1988년 첫 인구조사 이후 네팔계 인구에 대한 탄압과 인종 갈등이 시작되며 # 네팔과의 관계도 소원해진 탓에 네팔어 교육을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언어가 뒤섞여 있지만 종카어는 전 국민의 25%가 구사할 수 있고, 현재 청소년들은 국어, 국사, 윤리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모두 영어로 교육을 받으며 시골 노인들도 영어를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국민 간의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다.

1990~2000년대 출생자부터는 종카어를 어렵다는 이유로 안 쓰고 영어만 쓰는 젊은이들이 많다.

13. 스포츠

한때는 세계 축구 동네북으로 알아주기도 했으며, 지금도 세계적인 최약체다. 그러나 최근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 진출과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3차 예선 진출을 이루어내며 AFC 시상식에 발전상을 받기도 했다.

국대 축구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부탄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

이 작은 나라도 1986년에 시작된 프로 리그인 부탄 A-디비전이 있었다(2부 리그는 B-디비전). 이름은 꽤 뭔가 있어 보이는 트랜스포츠 유나이티드 팀이 90년대 후반에 아시안 위너스컵 예선에 나왔다가 우즈베키스탄 파흐타코르에게 0:13으로 뭉개진 적이 있다. 2012년부터 팀푸에만 머물렀던 리그가 전국으로 확대되며 부탄 내셔널리그가 시작되었다. 대신 부탄 A-디비전은 팀푸 지역리그로 강등되었다. 리그 구성은 팀푸 리그 8팀이 경쟁하여 리그 1위부터 3위까지 부탄 내셔널리그 출전권을 얻고 부탄 내셔널리그는 팀푸지역 3팀, 타 지방팀 3팀으로 구성되어 시즌을 치른다. 여기서 우승하는 팀은 AFC컵 예비 라운드 진출했다.

지방의 축구 인프라가 안 좋은 관계로 팀푸에서만 리그를 진행하고 나머지 지방 3팀(파로 유나이티드, 푼촐링 시티, 우곈 아카데미)은 팀푸 리그가 끝날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는 신세였지만 타 지역 내 다른 팀들도 참여를 시작했기 때문에 조만간 지역리그 체제가 잡힐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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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활쏘기이다. 부탄에서 자라는 특수한 대나무로 만든 죽궁은 북방계 나라들의 각궁과 거의 비등한 사거리와 관통력을 자랑한다. 부탄의 죽궁은 세계 국궁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전력이 있는 유일한 죽궁이다. 부탄의 왕들은 기본적으로 죽궁을 잘 쏘아야 하며, 부탄에서는 매년 여러 차례의 활쏘기 대회가 열리며, 어린아이들도 죽궁을 가지고 놀 만큼 활과 인연이 깊은 나라이다. 어떤 조사에서는 부탄의 최고 인기 스포츠에 활쏘기를 꼽기도 했다.

활쏘기 외에도 다트 던지기도 주로 한다. 우리가 아는 조그마한 다트가 아니라, 표적이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팽이만 한 다트를 던진다.

농구 한국인 감독이 대한체육회의 국제 교류 사업 하에 부탄에 진출하여,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고 한다. 참고기사 다만 이 기사에는 오류가 있는데, 부탄 역사상 구기종목에서 국외 대회 1승을 거둔 게 농구가 처음이라고 하지만, 2003년 서남아시아컵에서 파키스탄을 상대로 거둔 1승이 있다.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14. 종교

부탄인의 75%는 티베트 불교를 믿고 있으며, 부탄은 엄연한 불교 국가다. 그러나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도 22%나 되며, 민속종교도 있는데, 약 2%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1%의 사람들은 기독교 등의 외부 종교들을 믿는다. 즉 7,700여 명의 사람들이 부탄의 토착 종교나 힌두교, 민속종교가 아닌 외부 종교를 믿고 있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해서도 2021년 1월 인도가 부탄에 자국에서 위탁 생산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무료로 나눠주었는데 정부에서 불교 점성술사에게 길일을 물어 2021년 3월 27일부터 원숭이해에 태어난 여성을 1호 접종자로 선정하여 전국민 접종에 나설 정도다.

국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부탄의 국교는 티베트 불교이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차별받기 쉽다. 불교와 부탄의 정체성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탄 정부는 자국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네팔계 부탄인 힌두교도들에 대한 매우 강력한 배척 정책을 펼친 바 있으며, 이 때문에 10만 명의 네팔계들이 부탄으로부터 도망쳐서 난민이 되었다. 말이 10만 명이지, 인구 85만 명인 나라에서 10만 명을 쫓아냈으니 무려 인구의 ⅛을 국경 바깥으로 내몬 셈이다. 이들은 네팔 측이 이들이 부탄 국적임을 들어 입국을 거부하여 네팔로 가지도 못하고, 부탄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20년을 난민촌에서 떠돌다 UN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다른 나라들에 뿔뿔이 흩어져 정착했다.

또한 기독교공포증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기독교 탄압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2008년 부탄 헌법이 제정되면서 부탄 국민에게 종교의 자유가 허가되었지만, 기존 관습과 구전으로 내려오는 문화 속에서 진정한 종교의 자유는 아직 없으며, 부탄 전체가 기독교 신자들에게 사회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관련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기독교도 부탄인이 나오는 등, 기독교에 대한 배척 사례도 간간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 부탄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긍정적인 변화도 이끌고 있다. 과거 부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의례를 치르는 사십구재와 비슷한 것을 하는데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부담이 가 사람들이 장례 의식이 간편한 기독교를 대안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에 부탄 불교에서는 발 빠르게 장례식 비용을 낮췄고, 심지어 정부 후원으로 무료로 하는 것과 더불어 승려 크리스천처럼 대형병원에 파견을 가 환자들의 병과 죽음을 돌보기 시작했다.

부탄의 왕족 출신인 요셉 킨리 셰링이 첫 가톨릭 신부로, 199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46] 2000년에서 2018년까지 인도에서 선교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부탄에서 사목을 하고 있다. #, 관련 기사.

현재 부탄에서 공식적으로 성당을 짓거나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관습적으로 허락되지 않지만(법적 규제는 없다.) 한 개인이 건물 전체를 예수를 찬미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비공식적으로 가톨릭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킨리 셰링 신부는 장기적으로 10년을 내다보며 부탄에 성당 건립을 허가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15. 관광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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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창작물에서

김인권이 주연한 영화 방가방가 취업난에 시달린 청년이 외국인 노동자 행세를 하여 취직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이 사칭한 국적이 부탄이다. 극중 김정태가 분한 친구의 대사에 의하면, 가는 데마다 주인공이 사칭하는 국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어서 부탄인 행세를 하게 된 것으로 그려진다. "대한민국에 부탄 사람은 딱 3명이 있어. 부탄 대사, 대사 부인, 그리고 (부탄 국적을 사칭하는) 너" 다만 실제로 부탄에서 한국에 파견한 외교관은 없다. 참고로 이때 김정태는 부탄가스(…)드립을 친다. 나중에 진짜 부탄에서온 노동자도 등장한다.

[1] Druk Gyal Khap [2] 주로 히말라야 산맥에서 사는 동물로, 염소를 합쳐놓은 것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몸길이 약 130~220cm, 몸무게 220~310kg이다. 사향소와 생물학적 관계가 있고, 암수가 모두 뿔이 있다. [3] 자료마다 다른데, 정확한 면적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어서 해외 자료들도 차이가 심하다. 여기에서는 그나마 가장 많이 보이는 수치를 기재한다. 대략 충청도 전라도를 합한 정도다. [4] 인도의 보호국 영향도 있다보니 요즘은 영어 사용자가 늘고 있다. [5] 부탄의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크게 서부, 중부, 동부, 남부로 나뉘어있다. [6] 한국으로 따지면 정도에 대응된다. 종데이 바로 밑에 있는 두 번째로 높은 단계의 행정구역이다. [7] 다만 국왕의 권력이 좀 강한 편이다. [중간] [9] 인도 루피도 함께 통용된다. [10] 부탄내 지정 여행사(해외 제휴여행사 포함)를 통해 입국하기 최소 10일 이전 사증발급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11] 인구 수십만의 부탄 입장에선 한국에까지 대사관을 설치하고 외교관을 파견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명예영사 제도다. 명예총영사는 해당 국가와 관련이 있는 한국인 국적의 인물이 임명되며,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엄격한 절차를 거쳐 정해지고 거의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12] 현대 티베트어로는 '푀' 정도로 읽는다. 와일리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면 'bod'로 쓴다. [13] 용의 모습도 거의 일치하며 색과 방향만 같으면 거의 청나라 국기라고 해도 웬만해선 속는다. 어디에서는 좌우반전 청나라 국기라고 할 정도. [14] Burling, Robbins. "The Tibeto-Burman Languages of Northeastern India," <Sino-Tibetan Languages>. Abingdon: Routledge, 2013 [15] 이 당시 까규빠는 겔룩빠와의 경쟁에서 패배해 티베트에서는 영향력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부탄에서는 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까규의 분파인 둑빠 까규의 법왕은 부탄 국왕의 국사(國師)로 대접받는다. [16] 그래서 남티베트계 나라들이 있던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는 중국 땅이라고 중국인들은 주장하지만 인도에서는 무시하며 군대를 주둔시켜서 악사이친처럼 허무하게 중국에게 정복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탄은 이에 대하여 강제로 합병당한 게 아니라 원해서 합병한 것인데 왜 중국이 끼어드느냐며 인도 편을 든다. 사실 몇몇 작은 왕국들은 인도에게도 반협박도 당하던 터라 불쾌해했지만, 결국 중국이 아니라 인도에게 병합된 곳이 대다수였다. [17] 물론 이 말도 좀 애매한게 왕정 체제에서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기엔 사회 분위기가 제한적인 면도 있다는건 감안해야 된다. 후술되어있듯 부탄 역시 20세기 민주화 시위는 있었다. [18] 굳이 근대적 독재자까지 갈 것도 없이 그리 멀지 않은 태국 정치만 봐도 말만 입헌군주제지 왕이 거의 전제군주같은 행태를 부리고 있다. [19] 전체 의석 47석 중 32석. [20] 태국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감안하면, 속사정이야 어떻든 얼마나 선진적인지 알 수 있다. [21] 물론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왕정제 특성상 양위 파동마냥 왕이 하자고 해서 첨부터 넙죽 받는게 도리어 눈치 없어보일수도 있고. [22] 참고로 민주주의가 실행되기 이전 2006년 부탄 민주주의 지수는 2.62점였다. 당시 중국 2.97점, 베트남 2.75점임을 보면 웬만한 일당독재국가보다도 낮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2008년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이후 4점대로 크게 상승했다. [23] 2003년 창당 직후 불법화되었다. [24] 2011년에 지방선거가 있었고, 총 205명을 선출했다. [25] 각 지역이 날짜를 나누어 선거를 치렀다. [26] 입헌군주제에서도 좀 특이한 제도긴 하다. 보통 입헌군주국에서 새 왕을 추대하기 전 국민 투표로 결정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 물론 이렇게 통과되면 국왕의 정통성은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다. [27] # 이곳의 기후는 해발고도가 낮았다면 아열대나 열대기후였을 곳이 해발고도가 높아서 온대기후에 속하는 경우에 해당하며, 이런 기후를 아열대고원기후라고 한다. [28] 불교에서 강조하는 것도 결국 행복이란 외부에 있는게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양도 강조하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스님처럼 수양할 순 없는 노릇이니.. [29] 허나 이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게, 당시에도 부탄을 소개하면서 어 이런 모델도 있네 그럼 참고해서 좋은건 뽑아쓰자 정도였지 립서비스를 넘어 그래서 우리도 아예 부탄처럼 가자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때나 지금이나 주류적인 방향성은 복지국가 모델에 다양성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문화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30] 오직 민주 캄푸치아 하나만큼은 이들 이상으로 훨씬 고립된 국가였다. [31] 지그메 싱계 왕축의 대관식 대 외국인의 방문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관광객 허가도 같은 해에 이루어졌다. [32] 동시기 한국 수치의 약 9배에 해당한다. 출처 요망. [33] 이것도 꽤 높인 거다. 1972년 사망한 3대 국왕이던 지그메 도르지 왕축 국왕 시절엔 평균 수명이 '50세 미만'이었다고 한다. [34] 문제는 인도 역시 의료 기술이 높은 편은 아니며 의료 기술이 열악한 병원이 많다는 것이다. 의료가 뛰어난 곳은 굉장히 뛰어나긴 하지만 특히나 부탄과 인접한 지역은 인도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들이다. [35] 아르헨티나(0.842), 튀르키예(0.838)와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고 러시아(0.822)보다도 높다. [36] 인간개발지수가 팀푸 다음으로 높게 집계된 파로 지역(0.736)과는 거의 0.1 차이가 난다. [37] 파키스탄(0.544)과 거의 똑같고 아이티& 나이지리아(0.535), 르완다(0.534)와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38] 한국인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비유해보자면 수도권 지역에는 평균적인 한국, 캐나다 선진국 수준의 인력 개발이 진행되었다면 지방에서는 후진국 수준의 인력 개발이 진행된 것이다. [39] 가장 부유한 베이징과 가장 열악한 티베트의 인간개발지수 격차가 0.293이며, 홍콩까지 고려하면 무려 0.338이다. [40] 여기서는 가장 부유한 지역과 가장 열악한 지역의 인간개발지수 차이가 0.3을 넘어선다. [41] 물론, 국토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 지대라서 땅이 척박하고 타지로의 이동이 무척 힘든데, 이것이 자살률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똑같이 복지에 꾸준히 신경을 쓰는데다 심지어 돈도 많아서 부탄의 선진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 스웨덴에 이은 유럽 내 자살률 2위를 기록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스위스도 알프스산맥을 낀 나라라서, 역사 자체가 산과의 투쟁이라고 할 정도로 은근히 살기 힘든 나라다. [42] 반대로 미국이나 남미처럼 사회가 불안하지만 자유분방한 지역은 자살율이 낮지만 범죄율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43] 대마는 줄기의 섬유는 옷감(삼베) 소재로, 씨앗은 기름 짜는 용도로 쓰인다. 흔히 말하는 환각 효과를 바라고 피우는 부분은 대마 암그루의 꽃이다. [44] 이는 고추를 향신료가 아니라 (같이 먹는) 채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45] 인도에서 수입한다. 주로 물소나 야크의 고기를 말린다. [46] 가족은 모두 열성적인 불자인데, 아버지는 끝내 서품을 받는 장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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