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15:54:41

조선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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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반응4. 여담

1. 개요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는 대한제국 말기 및 일제강점기 당시에 대한제국 황실을 수비하는 역할을 한 부대이다. 즉, 일종의 황실 근위대라고 보면 된다.

모병제로 복무기간은 2년이었다. 주둔지는 현재의 정부서울청사 자리다.

2. 역사

대한제국군 해산 당시 남은 시위대 2연대 2대대를 개편한 근위보병대가 그 전신이다. 근위기병대와 더불어 경술국치 이후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와 조선기병대(朝鮮騎兵隊)로 바뀌었다.

1913년 돈이 많이 드는 기병대는 폐지되고 보병대만 남았다. 1920년에 규모가 다시 축소되어 1개 중대 228명 수준으로 유지됐다.

1926년 순종이 붕어한 후 그 뒤를 이은 영친왕 일본에 거주하였으므로, 조선보병대는 더 이상 유지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때마침 일어난 대공황으로 지원자가 급증하기도 했으나, 결국 1931년 4월 해체되었다. 당시 인원은 202명으로, 장교는 6명, 부사관은 21명, 은 175명이었다. 이 중 199명이 일본 제국 육군 조선군 조선헌병대[1] 경찰[2], 교도관 등으로 재취업했다.

3.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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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당시의 조선보병대.

그 당시 지식인들은 "침묵의 덕으로 사해를 평정하는 세계 유일의 절대평화군대"라는 말로 비꼬았다. 관련기사 망국의 근위대였고 사실상 의장대 역할이 전부여서 실질적으로 군대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기 탄약 관리도 일본군이 담당했다. #

당시 동아일보( 1930년 11월 9일자)에서는 "은 메었으되 사람은 해칠 줄 모르고 탄약갑은 찼으되 탄환은 가지지 않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평화 군대 조선보병대가 해산된다. (중략) 조선인 군인의 잔해가 조선에서 사라지고 외국에서나 조선인 군인들을 찾아 볼 수밖에 없게 될 터이니 마지막 닫히는 평화의 군대 만세나 불러볼까"라며 비꼼보다는 회한이 느껴지는 기사를 썼다.

4. 여담

조선보병대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여럿 있는데,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했던 장진홍 의사가 1914년부터 1916년까지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원식을 처단한 양근환 의사도 1910년대 중반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했다.


[1] 주로 장교 부사관들이 해당됐다. [2] 창덕궁 경찰서에 50명이나 취직했다.